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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249 건 검색)

[사설] 국민연금도 추경도 ‘시간이 금’, 2월 국회서 매듭지으라
[사설] 국민연금도 추경도 ‘시간이 금’, 2월 국회서 매듭지으라
2025. 01. 31 17:25오피니언
... 개혁을 일부나마 시행해야 한다”며 2월 안에 모수개혁(연금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부터 신속히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지난 26일 당 정책위에 “2월 중 모수개혁 입법을 완료하고 곧이어 구조개혁 논의에
한동훈 “11월 내 매듭지어야” 김 여사 ‘특감’ 압박
한동훈 “11월 내 매듭지어야” 김 여사 ‘특감’ 압박
2024. 10. 30 21:08정치
...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개혁의 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겨울 추위가 찾아오기 전 11월 내에 먼저 매듭지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제안한 김...
취임 100일 맞은 한동훈···김 여사 문제 겨냥 “11월 내 매듭지어야”
취임 100일 맞은 한동훈···김 여사 문제 겨냥 “11월 내 매듭지어야”
2024. 10. 30 17:34정치
...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개혁의 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겨울 추위 찾아오기 전 11월내에 먼저 매듭지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으나...
윤도·매듭·갓일·사경·낙화·화각···사라질 위기의 국가무형유산 한자리에
윤도·매듭·갓일·사경·낙화·화각···사라질 위기의 국가무형유산 한자리에
2024. 08. 20 14:00문화
... 모두 25개 종목이다. 전통기술 종목에선 갓일, 나주의 샛골나이, 낙죽장, 낙화장, 두석장, 망건장, 매듭장, 바디장, 배첩장, 백동연죽장, 사경장, 선자장, 악기장(편종·편경 제작), 윤도장, 장도장, 전통장...
국가무형유산전통공예악기장

스포츠경향(총 30 건 검색)

[종합] 김히어라, 학폭 매듭 지었다···복귀 타진?
[종합] 김히어라, 학폭 매듭 지었다···복귀 타진?
2024. 04. 16 17:26 연예
그램엔터테인먼트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가해’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킨 배우 김히어라 측이 이에 대한 입장을 나타냈다. 김히어라 소속사는 16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김히어라와 당사는 지난해 불거진 일련의 사안에 대해 당사자들과 만나 오랜 기억을 정리하며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각자의 삶을 응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소속사는 또 “이번 사안을 겪으면서 김히어라는 스스로를 더욱 엄격하게 되돌아보고 책임감 있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며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인생을 다시금 다져나가겠다는 입장을 소속사를 통해 전해 왔다”고 알렸다. 소속사는 “그동안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김히어라를 믿고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김히어라는 지난해 학교폭력을 소재로한 OTT 드라마 ‘글로리’에서 가해자 캐릭터를 연기 한 후 스타넘에 올랐으나 이후 학창시절 학폭 가해자라는 의혹이 터졌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에 따르면 김히어라는 중학교 재학시 당시 ‘빅상지’로 불리는 교내 ‘일진’ 무리의 일원이었으며, 3학년이던 2004년 교내 절도 사건에 연루됐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또 제보자의 증언을 통해 그가 직접 담배 심부름을 시키거나 돈을 빼앗는 등의 학폭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학창 시절 김히어라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김히어라의 부인으로 인해 그의 지인이 녹취록을 일부 공개하는 등 진실 공방으로까지 이어졌고 김히어라 측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모범생으로 살진 않았지만, 폭언이나 폭력에 동참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방관한 잘못이 크다. ‘나 정도는 가해가 아니잖아’라고 외면한 생각들 자체가 문제였다. 사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출연자들, 출국 전 매듭 팔찌·보자기 포장법 직접 배워
‘도포자락 휘날리며’ 출연자들, 출국 전 매듭 팔찌·보자기 포장법 직접 배워
2022. 08. 10 16:41 연예
MBC 제공 ‘도포자락 휘날리며’의 한류 전령사 5인방이 진정성을 가득 담아 한국 문화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도포자락 휘날리며’는 K-POP, 드라마, 패션,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류 전령사 5인이 펼치는 옴므 방랑 여행기다. 가수 김종국, 배우 지현우, 모델 주우재, 배우 노상현, 쇼트트랙 국가대표 황대헌(일명 ‘도포파이브’)은 K-아이템을 구매한 현지 손님들에게 한국 전통 ‘보자기 포장’ 방식으로 물건을 포장해 줌과 동시에 직접 만든 ‘전통 매듭 팔찌’를 선물하는 등, 한국의 정(情)과, 전통이 깃든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벤트가 가능했던 것은 방송 전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한 ‘도포파이브’ 멤버들의 노고가 담겼다. 덴마크로 향하기 전 지현우와 황대헌은 한국 전통 매듭 장인을 찾아가 동심결 매듭(‘영원’이라는 뜻에 주로 길일에 쓰이는 물건에 이용되는 매듭)과 외도래 매듭(한번 묶으면 잘 풀어지지 않아, 매듭 공예의 ‘시작과 맺음’에 쓰이는 매듭) 등 매듭 팔찌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으며, 주우재와 황대헌, 노상현은 ‘복을 담아서 준다’는 의미가 있는 우리 전통 포장 방식인 보자기를 활용한 포장법을 배웠다. 김종국 역시 틈틈이 영상으로 독학하며 도포파이브의 맏형다운 책임감을 보였다. ‘도포파이브’ 멤버들이 배워간 이러한 전통공예들은 현지에서 ‘핸드메이드’ 퍼포먼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방송에서도 공개됐듯이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매듭 팔찌를 만들어 선물했고, 눈앞에서 정성을 담아 보자기 포장을 한 K-아이템을 건네며 물건 가치를 높였다. 한국의 ‘전통 공예문화’를 활용해, 단순한 판매를 넘어서 우리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핸드메이드 포장과 정(情)이 담긴 선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추억’을 전하고픈 멤버들의 정성과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지현우는 덴마크 손님들과 소통하며 직접 만든 매듭 팔찌를 선물함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를 ‘잇고, 맺는’ 모습을 통해 ‘매듭’의 의미를 더했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모습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지현우는 ‘도포자락 휘날리며’ 촬영 이후에도 계속된 ‘매듭 팔찌 사랑’으로 각종 방송에서 매듭 팔찌를 착용했고, 심지어 ‘신사와 아가씨’에 출연한 아역들에게도 매듭 팔찌를 선물하는 등 우리 전통공예 문화에 푹 빠진 모습을 보였다.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고 더 나아가 그 가치를 알리고 싶어 하는 ‘한류 전령사’로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제작발표회 당시 ‘도포파이브’ 멤버 전원이 직접 만든 매듭 팔찌를 착용한 채 등장한 것이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해외에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도포파이브’의 진정성이 담긴 마음에 덴마크 현지는 물론이며, 국내 시청자들에게까지 잔잔하게 스며드는 중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매듭 팔찌와 보자기 포장의 달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도포파이브’가 이번 주에는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또 어떤 에피소드로 덴마크 현지인들과 국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할지 본방송이 기다려진다. ‘한국 문화 알리기’에 진심인 ‘도포파이브’의 덴마크 방랑 여행기는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30분에 방송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도포자락 휘날리며’로 안방극장에 배달된다.
논란 매듭지은 추자현 ‘아는형님’ 출격
논란 매듭지은 추자현 ‘아는형님’ 출격
2022. 03. 23 14:46 연예
최근 파오차이 표기 논란을 일단락 지은 배우 추자현이 드라마 홍보 일정을 위해 ‘아는형님’에 출격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최근 논란을 일단락 지은 배우 추자현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격한다. 추자현은 오는 24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JTBC 일산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자사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녹화에 출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추자현의 이번 ‘아는 형님’ 출연은 오는 4월 6일 첫방송이 예정돼 있는 JTBC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 홍보 일정으로 동료배우 장혜진과 함께 예능 나들이에 나선다. 추자현이 녹화를 마친 ‘아는 형님’ 방송분은 오는 4월 초중순에 시청자에게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추자현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1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남편 우효광(위샤오광)과 함께 달달한 금술을 보이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그는 지난해 5월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출장 십오야’에 출연한 이후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에 주력해왔다. 추자현이 출연하는 ‘그린마더스클럽’은 ‘녹색어머니회’로 대표되는 초등 커뮤니티의 민낯과 동네 학부형간의 관계망을 그린 드라마다. 추자현은 미모 1위, 정보량 1위의 학부모 변춘희 역을 맡아 이요원(이은표), 김규리(서진하), 김영미(장혜진), 박윤주(주민경)과 함께 치열한 심리전을 예고했다. 추자현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속 자막에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고 표기해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을 인지한 추자현은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냈다. 추자현은 22일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고유 음식 이름을 바로 알고 사용하고 올바른 표현이 더욱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종합] 20년만에 지어진 매듭, 구준엽·서희원 결혼
[종합] 20년만에 지어진 매듭, 구준엽·서희원 결혼
2022. 03. 08 13:58 연예
결혼을 깜짝 발표한 구준엽(왼쪽)과 대만 배우 서희원을 두고 각계의 축하가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무려 20년 전 연인이 다시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구준엽은 8일 결혼을 전격 발표했다. 오랜 기간 공개 열애를 하지 않았던 구준엽의 깜짝 발표였다. 그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20년 전 사랑했던 여인과 매듭 못 지은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며 “그녀의 이혼 소식을 듣고 20년 전 그 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고, 다행히 그 번호 그대로여서 우린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많이 지나간 시간 더이상 허비할 수 없어 제가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도 받아들여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기로 결정했다”며 “저의 늦은 결혼이니 만큼 여러분들의 응원과 축복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구준엽의 결혼 상대는 대만 스타 서희원(쉬시위안)이다. 서희원은 대만판 ‘꽃보다남자’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일약 국민 배우로 떠오른 이다. 이들은 약 20년 전 1년 간 교제했으나 서로 바쁜 스케줄 때문에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준엽은 2010년 3월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서희원과의 열애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방송에서 구준엽은 “대만 콘서트 장을 찾은 서희원이 나의 짐승 같은 모습에 반했고, 이후 교제를 시작했다”며 “서희원이 애정의 표지로 구준엽을 뜻하는 ‘구’(九) 문신을 새겼다”고 말했다. 구준엽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희원과의 과거 만남을 고백하기도 했다. MBC 방송화면서희원은 중국 재벌 2세 왕소비(왕샤오페이)와 2011년 결혼했다. 중국·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로 알려진 이들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며 금술을 뽐냈지만, 지난해 11월 이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이들의 이혼 배경으로 중국-대만간의 정치적 갈등이 꼽히고 있다. 왕소비는 웨이보에 “대만에 있는 가족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전혀 접종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말 수치스럽고 저속하다. 이것이 중국과 대만의 차이”라고 적었다. 또한 “중국 본토 매장은 사업이 번창하는데 대만은 어렵다”며 “중국에 오면 월급을 두 배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왕소비는 중국에, 서희원은 대만에 각각 머물었고,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들은 정치적 이견 때문에 이혼까지 가게된 것이다. 중화권 내에서 유명 부부의 이혼 소식은 구준엽에게도 전달됐다. 구준엽이 20년 전 번호로 서희원에게 연락을 시도했고, 서로를 잊지 못했던 이들은 결혼까지 성사시켰다. 국내 누리꾼은 물론 중화권 누리꾼까지 이들의 급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20년 전 과거 인연에서 재결합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축하 행렬을 이어갔다. 서희원 또한 구준엽의 결혼발표에 화답했다. 서희원은 이날 인스타그램에 구준엽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삶이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의 행복을 소중히 여긴다. 지금의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했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한동훈 “김 건희 여사 문제 11월 내 매듭···특별감찰관 관철될 것”
한동훈 “김 건희 여사 문제 11월 내 매듭···특별감찰관 관철될 것”(2024. 10. 30 15:19)
2024. 10. 30 15:19 정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0월 30일 국회에서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건희 여사 문제를 올해 11월 안에 매듭지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10월 30일 국회에서 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개혁의 동력을 키우기 위해선 11월 내에 먼저 매듭지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최근 드러난 문제들을 비롯해 국민들이 우려하는 지점들에 대해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말한다. 한 대표는 “국민의힘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며 “정권 재창출의 주체가 국민의힘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지점’에 대해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우려와 걱정이 있고, 그 문제가 주요한 부분이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특별감찰관은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문제를 예방하는 기관이고, 지금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며 “국민의힘이 그것조차 머뭇거린다면 ‘정말 민심을 알긴 아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견을 토론할 충분한 절차는 보장돼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결국 등 떠밀리지 않고 변화와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며 “그 첫걸음이 문재인 정부가 5년 내내 미루고 (윤석열 정부 출범 뒤) 2년 반 동안 해 오지 않았던 특별감찰관을 우리가 자발적, 주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특별감찰관이 안 되면 자체적으로 김 여사 특검안을 발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감찰관은 관철돼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도 변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본다”며 “저희가 요청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길을 찾기 위해 대통령실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 득표율이 61%였고 부산의 국정 지지율이 27%라면서 “‘우리가 바꿔볼 테니 기회를 달라’는 약속만으로도 (시민들이) 40%포인트에 가까운 괴리를 만들어주셨다”며 “우리가 민심에 조금만 더 다가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돌아섰던 민심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비록 소수당이지만 무한 책임을 지는 집권 여당”이라며 “서로 시너지를 이루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또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해 의정 갈등을 풀고 의료 공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며 “협의체 참여에 대한 (민주당의) 분명한 입장을 대표가 직접 밝히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마 출마 가능성에 관해서는 “원내·원외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제가 개인적으로 뭘 하느냐 하는 차원은 생각하지 않고, 당의 위기 극복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30)고르디아스의 매듭, 알렉산더의 파격(2023. 03. 10 11:12)
2023. 03. 10 11:12 문화/과학
살면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등이 자로 잰 듯이 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문제만 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답이 보인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더’(1718~1719년경, 캔버스에 유채,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 소장) 그리스신화에서 어려운 매듭을 숙제로 남겨 놓은 인물이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아스다. 마케도니아의 가난한 농부 고르디아스는 어느 날 자신의 소달구지에 앉아 하루종일 떠나지 않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게 된다.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한 고르디아스는 텔미소스의 사바지오스 신탁에 이 일을 물어보려고 소달구지를 몰고 간다. 고르디아스가 텔미소스 성문 앞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우물에서 물을 긷던 여인이 그 독수리를 제우스 신전에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그 무렵 프리기아는 내란이 거듭돼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제사장이 신에게 해결책을 묻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고르디아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오자 사람들은 그가 곧 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르디아스는 수도 고르디움을 세운 뒤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소달구지를 신전에 묶어 두었는데, 매듭은 특이하게 첫머리가 없었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탁은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이 풀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길에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도착했다. 매듭을 바라보던 알렉산더 대왕은 갑자기 칼을 꺼내 들고 그 매듭을 베어버렸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매듭을 풀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신탁대로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자르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 조반니 파울로 파니니(1691~1765)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더’이다. 커다란 신전 중앙에 고르디아스 마차가 제우스 동상 아래에 묶여 있다. 황금색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인물이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대고 있는 전차 끝에는 매듭이 있다. 밑의 줄은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풀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조반니 파울로 파니니의 이 작품에서 사람들의 손이 왕을 향하고 있다. 이는 왕의 파격적인 행동에 놀랐음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정답은 없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만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편집실에서]고르디우스의 매듭
[편집실에서]고르디우스의 매듭(2019. 03. 11 14:51)
2019. 03. 11 14:51 오피니언
왕이 없던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에 어느 날 신탁을 통해 ‘테르미소스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골 농부였던 고르디우스가 그의 아들 미다스와 함께 테르미소스성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사람들은 기뻐하며 고르디우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타고 온 마차를 신전에 바치면서 굵고 단단한 줄을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었다. 그러면서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라’는 예언을 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에 나섰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고, 이 매듭은 영원히 풀지 못할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불렸다. 올해 3월 전국을 온통 잿빛으로 휘감고 있는 미세먼지를 보고 있노라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힌 답답한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이 지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환경과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계를 약 3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88년 4월 25일자 <경향신문> 12면에는 ‘대기오염, 서울 남산이 잘 안보인다’라는 기사가 톱을 장식했다. 살인적인 스모그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한 이 기사는 ‘1년 중 115일이 시계(視界)제로’라고 전하면서 예산과 장비 확보가 시급한데, 더 방치하면 ‘재난’을 자초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의 경고대로 지금 우리는 ‘재난 상황’을 맞고 있다. 오염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에 나서고, 인공강우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정치권도 3월 13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미세먼지를 국가재난사태에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30년 전 경고가 어쩌면 지금 상황과 이렇게 딱 들어맞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교육은 100년 대계’라고 했지만 환경문제도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오랜 기간을 두고 면밀한 조사와 검토,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단순히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지정학적 요소, 외교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미봉책으로 점철되어온 그간의 미세먼지 대책, 환경을 대하는 시민들의 인식의 부재도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전쟁 중이던 알렉산더 대왕이 프리기아에 도착했을 때 매듭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풀 수 없었다. 매듭을 꼼꼼히 살펴보던 알렉산더는 칼을 빼들고 단번에 잘라버렸다. ‘쾌도난마(快刀亂麻),’ 알렉산더는 결국 고르디우스의 예언대로 아시아를 정복했다. 미세먼지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풀어버린 알렉산더처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법을 위한 작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올해 3월은 더욱 숨 막히고 답답하다.
편집실에서
[연극관람석]인간사 매듭 사랑으로 풀어(2003. 09. 25)
2003. 09. 25 문화/과학
브로드웨이에서 호평받았던 [프루프](데이빗 어번 작, 김광보 연출)가 공연되고 있는 정동 제일화재 세실극장 무대에는 가족-남녀-사랑-외로움-믿음-두려움이라는 말과 개념과 느낌이 둥둥 떠다녔다. 이 떠다니는 것을 손에 잡아 수학공식처럼 명료하게 증명하고 풀어낼 수 있을까. 미국 작가 데이빗 어번(David Auburn)은 [프루프]에서 천재 수학자와 두 딸, 그리고 한 청년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을 개입시킨다. 풀리지 않는 수학의 증명이 인간사보다 복잡할까. 천재 수학자의 작은딸 캐서린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수학계를 놀라게 할 소수의 증명을 연구해냈지만 그녀는 아버지처럼 미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 닮은 부녀간의 사랑과 믿음, 아버지를 많이 닮은 딸과 그렇지 않은 딸, 자매간의 사랑과 미움, 아버지의 제자와 캐서린의 만남,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과 믿음과 실망과 신뢰회복의 과정을 작가는 탄탄한 극적 구성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 작품은 2000년 5월 맨해튼 극장에서 초연된 뒤 브로드웨이에서 연일 공연 매진 사례를 보였다. 그후 미국 각 지역과 여러 나라에서 성공리에 공연되었다. 2001 토니 어워드 최우수 연극상-여우주연상-최우수감독상과 퓰리처 드라마 상 외 뉴욕 비평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런던 무대에서 '캐서린 역'으로 열연했던 기네스 펠트로를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캐스팅하여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져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프루프]의 서울 공연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첫 장면은 죽은 아버지와 딸의 대화이다. 극의 흐름은 침울한 상태에서 시작해 흔들리다가 거의 부서질 것 같은 위기 직전에 따사로운 생명력을 얻어 되살아나는 캐서린의 심적 변화를 따라갔다. 이 흐름은 캐서린 역(장영남 더블 캐스팅)을 맡은 추상미를 통해 강렬하게 살아 움직였다. 영화나 TV에서보다 연극무대에서 훨씬 반짝거려 보이던 추상미는 지적이고 자존심 강하고 냉소적이지만 여리고 섬세하고 상처받는 복잡한 캐서린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육화시켰다. 그리고 추상미의 빛남은 전성환(아버지 로버트 역)-추귀정(언니 클레어 역)-장현성(제자 헬 역)의 조화로운 연기와 함께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무대는 수학자의 서재와 안채의 문이 보이는 베란다 뒤뜰로 단순하지만 군더더기 없다. 단순한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복잡한 내면, 어려운 수학적 증명처럼 풀릴 듯하다가 풀리지 않는 인간사의 매듭이 사랑과 믿음으로 풀리는 작품의 결말은 환하고 따뜻했다. 작가는 수학적 증명 저 너머의 것을 증명하려 했고 그 증명은 아주 단순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왔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사 매듭도 그리 단순하게 풀릴까. 9월 28일까지 공연. 임선옥〈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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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2015. 10. 01 16:59 연예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그냥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요.” 가수 한영애와의 인터뷰는 숨바꼭질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녀의 옷자락. 마냥 헤매었다고 생각했는데, 되새김한 대화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가슴에 남았다. 진한 눈 화장, 풍성한 파마머리, 영혼을 빨아들이는 목소리에서는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영적인 기운마저 느껴진다. 1975년 ‘해바라기’의 멤버로 가요계 데뷔 후 그룹 ‘신촌블루스’, 솔로 활동을 통해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한영애는 말이 아닌 노래로 설명되는 가수다. ‘누구 없소’, ‘코뿔소’, ‘바라본다’, ‘조율’ 등 그녀의 호흡으로부터 발화된 노래들은 폐부를 뚫고 심장을 건드린다. 거칠지만 부드럽게, 울부짖듯 속삭이며 주문을 건다. 정신을 홀린다. 오죽하면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스무 살, 명동 가톨릭여성회관의 해바라기 살롱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한 ‘이상한 목소리의 여자애’는 포크와 록, 블루스, 트로트 등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대중 곁에서 40년을 함께했다.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그녀를 명륜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제껏 한 번도 숫자를 기념하는 공연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이쯤에서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라며 팬들을 만날 생각에 여고생처럼 설렌다고 했다. 10월 9일 열리는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꿈 인(in) 꿈’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들도 함께한다. 한영애의 시작을 함께한 ‘해바라기’의 이정선과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질문과 답이 오가는 일반적인 인터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어김없이 한 템포 느리게 돌아오는 대답에는 본능처럼 여겨온 삶의 철학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깊은 진심이 묻어났다. 한영애는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고 언어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노래처럼 말이다. 요즘 연습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시죠? 여기서 음악 작업도 하고 연습도 해요. 제 놀이터예요. 보통 ‘연습’이라고 하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 그냥 하루 종일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 가는 것도 연습이고 영화 보는 것도 연습이죠. 작년 11월에 발표한 「샤키포」가 15년 만의 앨범이었어요. 다들 오랜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요. 그동안 계속 공연도 하고 바쁘게 살았어요. 다만 청년 시절 음악만 했던 시기만큼 온 시간과 온 열정을 쏟지 못했다는 것뿐이지, 제겐 15일이 지난 것 같아요. 사실 앨범을 내고 봄쯤에 콘서트를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뒤죽박죽됐어요. 40주년 기념 콘서트라니, 기분이 어때요?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지냈어요. 저에게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주변에서 40주년이라고 하는데 부끄럽더라고요. 극단 생활하고 이것저것 사적인 시간을 빼면 한 25년 된 것 같은데(웃음). 이 40주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쩔쩔매다가 한 번쯤 뒤돌아보며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콘서트 이름이 ‘꿈 in 꿈’이에요. 그동안의 시간들이 꿈같았다는 의미일까요?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상상의 영역이 줄어들잖아요. 그래서 늘 설명이 고민스러워요. 춘향가에 ‘꿈에서 깨니 꿈이고 꿈속에 들어가니 꿈이다’라는 대목이 있어요. 전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나는 음악적인 꿈을 꾸고 있는가, 아직 형상화하지 못한 것들은 꿈속에 있는 것일까 현실에 있는 것일까, 과연 원하는 꿈이 그것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요. 중간에 연극에 몸 바친 시간도 길었고 헤맨 시간도 있었죠. 음악을 한 시간만 25년 정도라고 하더라도 정말 꿈같은 시간 아닌가요? 그동안의 공연에서는 게스트를 보기 힘들었는데 특별한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추억을 들춰본다든지 뒤를 돌아보는 부분이 거의 없는 사람임에도 그동안의 히스토리와 음악적으로 걸어온 행보를 돌아보게 됐어요. 머릿속에 스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가장 처음에 만났던 ‘해바라기’의 이정선씨, ‘신촌블루스’ 프로젝트로 함께 활동했던 엄인호씨, 지금은 세상에 없는 김현식, 유재하, 이영훈, 그들을 추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씨예요. 그 세 분을 모시고 “제 흉 좀 봐주세요”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느리지만 충실하게 이어온 삶의 템포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예요? 순간은 모든 게 남아 있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해요. 꿈같아요. ‘해바라기’ 시절엔 그냥 노래하는 게 즐겁고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남들이 박수 쳐주는 것도 좋았고, 그냥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어떤 하나로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맨 처음 노래했던 순간, 기억나요? 엄마한테 들은 얘기인데 제가 두 살인지 세 살 때쯤,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 동네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 데려 가면 그렇게 노래를 불렀대요. 가르쳐준 사람도 없는데.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전 학교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합창대회가 열리는데 제가 필요하다고요. 중·고등학교 때 국군 장병들 위문공연 가면 꼭 뽑혔고. 그랬던 기억들은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수의 꿈을 꾸게 된 건가요? ‘해바라기’ 때도 그랬고, 가수가 되겠다거나 특정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열정을 어디다 쏟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일을 해야 이런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을까, 나를 담을 수 있는 일이 뭘까. 노래 부르고 극단 생활하며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섰던 것 같아요. 연극하던 시절도 참 좋았지만 이게 평생 내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죠. 그러다 어떤 형태가 됐든 죽을 때까지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30대 초반, 1985년 솔로 데뷔 때부터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글쎄요. 살면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잖아요. 어느 날 문득 마음에 올 수도 있으니까. 국물이 좋았는데 갑자기 건더기만 좋아질 때가 있고, 그런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1집 앨범 「여울목」을 시작으로 「샤키포」까지 6장의 솔로 앨범을 냈어요. 활동 기간에 비해 적은 수지만 앨범 하나하나가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죠. 적다는 것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전 1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는 사람들이 천재 같거든요. 아날로그적인 앨범 개념으로 볼 때 느리게 온 건 사실이에요. 그게 제 삶의 템포고 호흡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나이를 숫자로 인식한 게 마흔셋이에요(웃음). 그냥 ‘뭐지? 나 나이 많아?’ 그랬어요. 사람들이 대부분 20대는 어땠고 30대는 뭐 하고 40이 되면 뭐 할 거다, 그런 계획이 있더라고요.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고 유독 숫자, 나이 든다는 개념이 없어요.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다는 얘기로 들려요. 한영애가 매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뭐예요? 하루 세 끼 식사 시간 맞춰서 먹는 것. 이건 정말이에요(웃음). 1993년에 좀 아파서 1, 2년 노래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생긴 습관이에요. 저는 먹는 것이 많은 병을 고친다는 믿음이 있어요. 시간 지켜 세 끼 먹기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죠. 간혹 “종교가 뭐예요?” 물으면 “밥이요~”라고 대답해요. 요즘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아직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이 있어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나의 어떠한 부분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요. 그래도 별명이 없는 것보다는 좋아요. 저를 부르는 말 중 아직 정말 싫거나 소름 끼치는 별명은 없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싫은 게 나오면 싫을 수도 있겠죠. 나에 대한 나도 모르는 이야기는 세상에 붕붕 떠다니잖아요. 제가 다 알 수도, 제어할 수도 없죠. 지친 마음에 따뜻한 체온이 되는 목소리 최근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샤키포」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요즘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까요? 오랜만에 내는 앨범이라 후배들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어요. 묘했던 건 다들 밝은 내용, 밝은 노랫말을 얘기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고요. 최근 우리가 세월호, 메르스 등 사회적으로 많이 힘들었잖아요. 사람들이 지쳐가는 게 무척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더욱 밝고 희망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고, 그런 바람을 담았죠. ‘샤키포’ 가사 중에 ‘내 손을 놓치지 마, 내 체온을 의심하면 안 돼’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절실하게 쓴 거예요. 소설가 황경신씨가 가사 작업에 참여했더라고요. 경신씨는 20년 친구예요. 친구처럼 지내다가 이번에 문득 생각이 난 거예요. 부탁했더니 흔쾌히 쓰겠다고 해서 가사를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둘이 호흡이 잘 맞아요. 경신씨는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다는 건 행복한 삶이죠. 음악을 함께해온 좋은 사람들 중 떠나간 사람도 있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지금 한영애에게 좋은 친구라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앞에 계시잖아요(웃음). 저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을 거의 안 만나고 살아요. 그러나 한 번 맺은 인연들에 대해선 오래가요. 외롭지 않아요? 많이 만나면 안 외롭나요(웃음).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에 있을까요. 결혼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롭고, 외로움은 당연한 거예요. 외로울 땐 어떻게 해요? 그냥 외로워하면 돼요. 일종의 훈련인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인데 저만 이렇게 태어났겠어요. 지금 무척 슬프다면, ‘비 온 후에 해가 뜨겠지. 그럼 좀 슬퍼하자. 슬픔이 없어질 때까지’라고 생각해요. 견디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나가야 하는 일이잖아요.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예요? 오늘 아침 매니저와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려 먹었어요. 매일 떡, 과일, 커피 이렇게 먹었거든요. 고깃국에 김치, 멸치볶음 딱 놓고 먹는데 마음이 참 편안하더라고요. 아침밥을 먹는 게 이렇게 든든한 건지 몇 년 만에 느껴본 것 같아요. 행복했죠. 늘 말이 떠다녀요. 행복은 가까이 있다고요. 말이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느껴져야 해요. 일상의 작은 기쁨들. 그런 게 희망이라고 봐요. 물론 힘든 일도 있죠. 저도 사람이라 잘은 안 되지만 그래도 껴안으려고 애써요. 저는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오랜 팬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안부의 인사 이제까지 음악을 해오며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게 있다면 뭐예요? 거짓말하지 말자. 없는 걸 만들어내지도 말고 있는 걸 숨기지도 말자. 10년 전, 20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을 거예요. 결국엔 자기 최면적인 진정성 아닐까 싶어요. 근데 언어라는 건 무척 유한적이에요. 말은 재미없는 것 같아. 그럼 어떤 게 재밌어요? 가만히 있는 거, 맛있는 거 먹는 거, 가다가 좋으면 머무르는 것(웃음). 최근에 머물렀던 곳은 어디예요? 제주도에 자주 가요. 사무실과 연습실이 있는 명륜동에도 자주 있죠. 집이 모처에 있어요. 새로운 앨범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아날로그 개념의 앨범을 내지는 않을 듯해요. 싱글이나 미니, 온라인상의 한 곡이 됐든 어떤 식으로든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번 앨범이 계기가 됐어요. 마음은 늘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여러 가지 템포가 맞아야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노래하는 모습 자주 보여드리고 싶어요. ‘나는 가수다2’에 출연했던 게 벌써 3년 전이에요. TV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그때는 즐기지를 못했어요. 예능이라면서 그렇게 긴장을 하게 만들었어(웃음). For Fun! 주제에 맞게 편안하게 무대를 꾸미고픈 욕심이 있어요. 여러 가지 변신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나가수’는 그래도 제게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에요. 덕분에 고등학생 팬들도 생기고.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 「샤키포」는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드는 앨범이었어요. 이다음 한영애는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한영애의 나이 든 모습이 될 거예요(웃음). 나이 생각을 안 해도 나이는 드는 거니까.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껴안으면서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지 않을까요. 혼자 작사, 작곡하고 혼자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홍대에 가서 젊은 친구들 노래도 자주 들어요. 전 뭐든지 열려 있어요. 음악은 한영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음악은 제겐 샘 같은 존재예요. 타인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죠. 오랜 시간 한영애의 노래를 들어온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을 매개로 40년이란 시간을 공유했다는 건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그동안 저를 기억하고 지켜봐온 분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파르르 뛰어요. 세월을 같이한 거잖아요. 그들에게 40년 동안의 안부 인사, 설렘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해요. 애인보다 더 좋아.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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