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495 건 검색)
- 메타 이어 아마존도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달러 기부
- 2024. 12. 13 15:37국제
- ... 완화에 힘을 쏟는 것 같다며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앞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저커버그는 지난달 26일 트럼프 당선인과 만찬을...
- 트럼프아마존제프 베이조스프라임비디오다시, 트럼프
- 삼성·구글 연합, 애플·메타에 맞설 XR 헤드셋 내년 출시
- 2024. 12. 13 14:23IT
- ... 손잡고 개발한 확장현실(XR) 헤드셋이 내년 소비자들을 만난다. 이미 비슷한 제품을 출시한 애플·메타와 XR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맞붙게 됐다. 삼성전자는 구글, 퀄컴과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 인스타그램 접속 장애 보고 의무 안 지킨 메타에 과태료 500만원
- 2024. 11. 28 17:11경제
- ... 통신 당국에 제때 보고하지 않아 과태료를 물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플랫폼스에 ‘방송통신발전법’에 따른 통신재난 보고의무 미준수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고...
- 메타버스 국제표준 선점 도전…국표원, 표준화 로드맵 발표
- 2024. 11. 06 11:09경제
- ... 제공하는 증강현실(AR) 안경 형태의 시제품이 공개되는 등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 산업부는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은 2030년 4904억달러(약 68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메타버스...
스포츠경향(총 318 건 검색)
- 스마일게이트 ‘메타휴먼 한유아’, 유기 동물 이야기 담아 그린 감성 달력 펀딩
- 2024. 12. 09 11:27 생활
- 스마일게이트는 ‘메타휴먼 한유아X동물보호연대 2025 달력’의 편딩을 오는 15일까지 진행한다. ‘메타휴먼 한유아X동물보호연대 2025 달력’은 유기 동물 구조 및 보호와 치료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됐다. 달력에는 한유아가 직접 작성한 글과 그림, 유기되었다가 구조된 12마리의 동물 이야기가 담겼다. 한유아는 스마일게이트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술로 여러 유기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연에 공감하는 글과 그림을 작성했다. 안락사 당일 아침 극적으로 구조된 ‘블링이’, 돌봐 달라는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이사 가버린 가족을 빈 마당에서 홀로 기다리던 ‘봉봉이’, 처참한 모습으로 구조돼 제2의 삶을 시작한 ‘지금이’ 등의 사연이 한유아의 글, 그림과 함께 달력에 실렸다. 이번 달력은 탁상 달력과 패브릭 포스터 등이 포함된 4종의 리워드로 구성된다. 리워드는 총 3가지 패키지가 준비되어 있어 독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제작 비용을 제외한 수익금 전액은 사단법인 동물보호연대에 기부한다. 기부금은 유기 동물 구조와 보호, 치료 활동에 쓰일 예정이다. 더불어 달력 구매 인증 이벤트도 진행한다. 구매 인증을 남겨준 후원자들을 추첨해 한유아가 후원자들의 반려동물 디지털 초상화를 그려 증정한다. 이벤트와 펀딩 마감일은 이달 15일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텀블벅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NFT플랫폼 “메타패스트” 송년의 날 행사 개최!
- 2024. 12. 09 11:17 생활
- ‘METAFASTEST(메타패스트)’는 메타버스 기반의 NFT 게임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들이 메타버스 가상세계에서 각각의 NFT를 소유하고, 이를 육성하며, ‘아레나’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경쟁에 참가하는 형식의 P2E(Play-to-Earn)플랫폼 내에서 회원 각각의 고유한 NFT로 존재하며, 소유권이 인정되는 자산으로 게임 내에서 경쟁과 거래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METAFASTEST’를 개발한 ‘Metaf Group’은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여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번 송년의 날을 통해 그간의 성과와 플랫폼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메타버스 내에서의 회원소유의 NFT 육성과 경쟁의 가능성을 한층 더 강조 할 예정이다. 오는 12월 26일 ‘METAFASTEST의 송년의 날’이 일산 킨텍스에서 행사가 열린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METAFASTEST’는 이를 기념하고, 플랫폼 사용자들과 소통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 할 예정으로 “올해 ‘METAFASTEST’가 메타버스와 NFT 게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전 세계 유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 덕분입니다. 이번 송년의 날을 통해, 앞으로도 메타버스와 NFT가 결합된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가고자 합니다” 라고 전했다.
- LG유플러스, 대학 메타버스 ‘유버스’에 실시간 AI 통역 도입
- 2024. 10. 20 12:10 생활
- LG유플러스가 대학 특화 메타버스 서비스인 ‘유버스’ 온라인 강의에 실시간 인공지능(AI) 통역 기능을 도입했다고 20일 밝혔다. LG유플러스 임직원이 실시간 AI 통번역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 |LG유플러스 유버스의 실시간 AI 통역은 AI가 발화자의 음성 언어를 추출해 문자화하면 이를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언어로 즉각 바꿔준다. 통역할 수 있는 언어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요가 높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세 가지다. 유버스의 AI 통역은 숙명여대와 순천향대를 대상으로 올해 2학기부터 시범 운영 중이며 적용 대상 학교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학생들의 대학 생활 고충을 해결하는 온라인 ‘학생 상담실’에도 AI 통번역 기능을 적용, 외국인 학생의 원활한 대학 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AI 통번역 서비스 외에 자체 AI 기술인 익시(ixi)를 활용해 수업 내용 요약, 챗봇 서비스 기능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실시간 AI 통번역 서비스를 시작으로 ▲수업 내용 요약 ▲생성형 챗봇 ▲AI NPC(Non Player Character) 등 자체 AI 기술인 익시(ixi)를 활용해 서비스 기능을 고도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원유니버스, ‘메타 소울메이트’ 티저 이미지 공개···이달 얼리억세스 출시
- 2024. 10. 18 11:22 생활
- 원유니버스는 자체 개발 중인 ‘메타 소울메이트’의 티저 이미지를 공개하고 이달 30일 스팀 얼리억세스를 출시한다고 18일 밝혔다. ‘메타 소울메이트’는 누구나 쉽게 다양한 목적의 버튜버(버추얼 유튜버) 캐릭터 제작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창작 툴이다. 유저들은 언리얼엔진5(UE5) 기반 최신 기술로 자체 개발한 서브 컬쳐 일러스트풍 쉐이더가 적용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지난 2월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 출품 시,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커스터마이징 기능과 뛰어난 그래픽 퀄리티로 호평을 받았다. 이 기간 스팀의 캐릭터 창작 도구 부분에서 기대작으로 선정되며, 약 6만명 이상 유저가 위시리스트에 등록한 바 있다. 원유니버스는 지난 6월 메타 소울메이트 데모 공개 이후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옵션, 직관적인 페이스 트래킹 인터페이스 구조 및 방송 시스템(OBS)과 연계 가능한 메타 스크린(크로마키) 기능 등을 추가했다. 색조, 채도, 질감 등을 조절해 유저 설정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 가능한 아바타 코스튬도 제공한다. 진재혁 원유니버스 메타 소울메이트 총괄 개발 프로듀서(PD)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환경의 활성화로 버추얼 트렌드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버추얼 캐릭터를 활용한 개인방송뿐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에서도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적 시도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간경향(총 44 건 검색)
- [정태겸의 풍경](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꽃길 - 연꽃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2023. 09. 15 10:58)
- 2023. 09. 15 10:58 문화/과학
- ㆍ 햇볕이 제법 온화하다. 비로소 가을이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 충남 공주 여행을 떠난 길에 입소문 자자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전남 담양일 테다. 하지만 공주 정안천 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안천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그러니까 금강수계에 해당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충적평야가 만들어진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보물앞들, 새보들, 백보들, 오인들, 수촌들처럼 ‘들’이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물길이 만들어진 평야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광이 오밀조밀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정안천 생태공원 일대는 그런 면모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 과거 이 주변은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생태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2010년대에 이 일대를 공원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제는 양쪽으로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가 터널을 만든다. 여름 내내 이 일대에 연꽃 향기가 은은했지만, 지금은 메타세쿼이아의 청량한 향기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 정태겸의 풍경
- [박주연의 메타뷰](37)“사고와 ‘헤어지고’ 소중한 오늘을 사는, 나는 이지선입니다”(2023. 04. 07 11:45)
- 2023. 04. 07 11:45 사회
- ㆍ모교 이화여대 임용된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교수 지난 3월 28일 이지선 교수가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나 자신을 버리고 싶었던 그 시기에 스스로 다시 안을 수 있도록 한 힘은 결국 주변의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3월 28일, 벚꽃이 만개한 이화여대 교정은 봄기운으로 화사했다. 오가는 학생들의 얼굴에도 봄꽃이 피었다. 정문에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만난 이지선 사회복지학과 교수(45)의 연구실. 그런데 문고리가 이웃한 다른 연구실들의 동그란 손잡이와 달랐다. 화상으로 양 엄지손가락을 제외하고 첫 마디를 모두 잘라내 손가락이 짧아진 동생을 위해 오빠 정근씨가 돌리지 않고, 아래로 당기면 되는 도어락을 설치해준 것이다. 그가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은 지난 3월 2일 그의 첫 출근에 맞춰 여러 언론이 조명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성취를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오빠와 승용차로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중화상을 입었다.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 오가고 화마는 곱던 그의 옛 모습을 앗아갔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 풀어낸 긍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을 웃고 울게 했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와 처음 인터뷰한 것은 2002년 11월이었다. 그가 만든 홈페이지 ‘주바라기’에 쓴 글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그는 피부 이식 수술 차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경기 안양시 평촌의 자택에서 전화로 인터뷰하고 가족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님 이야기를 넣으라는 것’과 ‘절대 소설을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미화되는 것도,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과 글을 옮긴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인터뷰 반응은 뜨거웠다. 003년 에세이 를 펴내고 2004년 KBS 1TV 이 조명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화여대 부임 전 그는 2016년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7년부터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모교 교단에 서니, 어떻습니까.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소원이 이뤄져 너무 감사해요. 신입 선생님으로 좌충우돌하던 시기를 잘 견뎌준 한동대 학생들 덕분에 이날이 왔다고 생각해요.” -모교가 그렇게 그리웠나요. “저는 가족이 아주 중요한 사람인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경북 포항에서 사는 게 사실은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교수를 그만두고 유튜버가 될까도 생각했어요(웃음). 한편으로는 이미 좋은 것을 가졌는데, 욕심을 내는 건 아닌지, 감사할 줄 모르는 건지 고민도 많았어요. 그런 상태에서 지난 2월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울었어요.” -유학생활을 12년 가까이 했는데도 혼자 사는 게 외롭던가요. “오히려 유학생활은 덜 외로워요. 친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에서 직장인으로 살면서 혼밥하는 것은 외로워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요. 그러다 보니 주말마다 상경하느라 점점 더 관계 맺음의 희망이 안 보였어요.” -지금 서울 부모님 댁(평촌에서 오래전 이사했다고 한다)에서 같이 사는 거지요. “예. 싸워서 집을 나가는 그날까지 같이 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지금은 엄마, 아빠와 제가 3인 1조로 되게 괜찮은 팀이에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그래서 좋아요.” 악몽 같은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은 2000년 7월 30일 밤 11시 30분 무렵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한 후 이웃한 연세대 학생이던 오빠 정근씨가 운전하는 소형 승용차를 타고 안양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용산쯤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남매의 차를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들이박았다. 남매의 차는 중앙선을 넘어갔다가 튕겨서 되돌아오기를 반복해 일곱 대의 차와 충돌한 끝에 불이 났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는 차 유리창을 깨고 튕겨져나간 후 화염에 휩싸인 자동차들 사이에 떨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오빠가 달려가 불길 속에서 그를 끄집어냈다. 이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타버린 상태였다. 그는 얼굴과 목, 등, 가슴 등 몸의 35%에 3도, 25%에 2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거듭되는 수술과 고통스러운 치료 속에 그는 일곱 달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2년 11월 28일 발행된 제 500호 (현 )에 게재된 이지선씨 인터뷰 / 경향신문 DB -사고 1년여 후인 2001년 4월 ‘주바라기’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지요. “덤으로 살게 된 제 이야기를 써간다”며 써내려간 글들이 감동과 웃음을 주며 입소문이 났어요. 큰 시련을 겪고도 어떻게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나요. “사고를 만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주어졌던 많은 것들이 다 선물이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손톱은 내 것이겠지, 눈썹 하나는 내 것이겠지 하며 내 맘대로 하고 살았는데 그것을 잃고서야 소중함을 깨달았으니까요. 만약 제가 작은 일부분만 다쳤다면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작은 부족함에 억울해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거의 무(無)에서 시작했잖아요. 그저 생명을 건졌다는 사실 하나로 시작했기에 모르고 살았던 모든 것에 감사함을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고 이후의 제 삶을 두 번째 삶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힘들던 차에 모교로 매일 슬프진 않다는 걸 알리려 글쓰기 시작 나를 객관적으로 만나며 치유의 시간도 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내면에 사랑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맞아요. 제 첫 번째 책 제목이 <지선아 사랑해>였던 것도 주변 사람들이 보내준 사랑의 힘으로 제가 저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이거든요. 정말 저를 버리고 싶었던 그 시기에 스스로 다시 안을 수 있도록 한 힘이 결국은 주변의 사랑이었어요. 특히 그저 살아만 주기를 바란 엄마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면서 살게 된 것 같아요. 사랑받는 경험이라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사고 후 글은 왜 쓰기 시작했나요.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제가 매일 슬프지 않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홈페이지도 만든 거예요.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쓰다 보니까 설명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저를 전혀 모르던 분들도 들어와서 보시니 누가 읽어도 문장에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더 주의를 기울여 쉽게 읽히도록 썼어요. 불쌍하다, 안 됐다, 저렇게 사는 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렇게 보여지는 오해가 정말 싫었거든요.”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혼자만의 시간에 계속 생각하며 글을 쓰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됐어요. 괴로웠던 시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좋은 상담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글쓰기를 통해 되게 많은 치유가 이뤄졌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타고난 성격이 명랑하지요. 지난해 출간한 두 번째 책 <꽤 괜찮은 해피엔딩> 곳곳에도 유머가 배어 있더군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반장을 맡으면서 늘 앞에 나서서 아이들을 웃기곤 했어요.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미팅에 나가서도 혼자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고요. 덕분에 커플이 많이 성사되는데, 정작 저는 짝꿍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집에 돌아갔어요(웃음).”(2002년 인터뷰에서 그는 “대학 시절 별명이 ‘샬랄라공주’였다”고 말했다. TV 만화영화 <시간탐험대>에서 어떤 난리가 나도 전혀 개의치 않고 즐거워하는 캐릭터다.) -자신을 ‘짝사랑 마니아’로 표현했더라고요. “아, 제가 연애 기술이 없어요(웃음).” -지금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남자는 없습니까. “결혼을 무척 하고 싶었고 평생 함께할 누군가가 생기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비혼 상태가 익숙하고 편해요. 아마도 쭉 이렇게 살지 않을까요?” 그는 2005년 온누리교회의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2008)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2010)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2016년)를 취득했다. 지하철 시위 아주 기본적 권리 위한 것 시위 격해지게 만든 것은 장애인 아냐 모든 복지는 당사자 목소리 더 들어야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 사고 후에는 어떤 마음으로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학을 공부했나요. “일단 아이들이 제 모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또 제가 사고로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시기를 보냈잖아요. 만약 부모님이 더 연로하셨을 때 제가 사고를 만났다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이, 또 친구가 해줄 수 없을 때 같이 고통을 감당해줄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거예요.”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원래는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나요. “아니에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엄마의 압력으로 선택했어요. 그래서 대학 원서 쓰고 집에 가면서 막 울었어요(웃음).” -전공을 다시 사회복지학으로 바꿔 컬럼비아대와 UCLA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유는 뭔가요. “미국은 재활상담 분야의 역사가 깊어요. 당연히 장애인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존재하고 그 일을 하는 훈련된 전문가가 많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이 시스템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았어요. 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어디서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면서 사회복지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전공을 바꾼 거예요.” -그래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까. “미국이 장애인들 살기 참 좋은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것은 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불편부당한 문제들이 시정되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조성됐기 때문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동, 교육, 의료 등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하는 거니까요. 우리나라도 장애인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고 조금씩 바꿔나가다 보면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평등한 그리고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주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한두 해 얘기한 게 아니잖아요. 당신의 삶이 소중하듯 나의 삶도 소중한데 왜 이야기를 (정부가) 이렇게까지 안 들어주는지 묻고 싶어요.” -전장연이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볼모로 잡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시민들의 불편도 이해되지만 시위 양상이 과격해지도록 만든 것은 장애인이 아니에요. 언제까지 장애인들이 이동침대를 거리로 밀고 나와 시위를 벌이고, 삭발투쟁을 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엄마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 우는 아이 떡 하나 쥐여주듯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시혜를 베풀듯 그나마 들어주는 건가요? 큰 나라 살림을 보면 우리가 요구하는 예산이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시끄러운 사람으로 만드는 건가요?” 시종 부드럽기만 하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결기가 서렸다. 그는 “장애인이기 전에 사람이다, 그 생각을 모두가 가지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친구 대신 고통 감당 공동체 필요해 유학 가서 재활상담학과 사회복지학 공부 미국에선 장애인의 권리 요구 당연한 문화 -한국의 장애인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법률 등 명목상으로는 거의 다 돼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 충분하지 않고 강제성이 너무 없어요. 가령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긴 지 15년이 됐는데 무엇이 진짜 차별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요. 실제로 차별이 발생했을 때 권리구제를 위한 강제성도 너무 부족하고요.” -무엇이 선행돼야 할까요. “다른 모든 복지가 그렇지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해요. 그런데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든다 해도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또 사회적 위치가 낮다고 여기죠. 그러다 보니 변화가 더딘 것 같아요.” 그는 장애인 재활 자립 지원 비영리단체인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다. 화상환자는 피부로 호흡을 할 수 없어 마라톤을 뛰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는 2009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대회에 출전해 7시간 22분 26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재활병원을 설립하겠다는 푸르메재단의 목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4개월 뒤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에 또 참가했다. 재활병원 건립비 모금을 위해 100명의 기부자를 모으고 그들의 이름을 티셔츠 뒤에 쓰고 달렸다. 6시간 47초 기록으로 완주했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어떻게 완주했습니까. “홍보대사로서 한 게 없는데, 이거라도 하자 싶어 포기할 수 없었어요. 힘들 때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보다 덜 힘들 것’이라는 김황태 오빠의 말을 떠올렸어요. 김황태 오빠는 저와 중환자실에서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겨 전우나 마찬가지예요. 또 저를 위해 25㎞ 지점에서 목청껏 응원했지만 듣지 못하자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노란 피켓을 급히 만들어 35㎞ 지점에서 몇시간을 기다려주신 여자분도 잊을 수 없어요. 같이 사진촬영을 한 후 그분께 내가 계속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발걸음을 떼는데, 갑자기 힘이 생기면서 다리가 쭉쭉 뻗어나갔어요(웃음).”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기관이 더 있지요. “여러 곳이 있어요. 최근에는 부모가 수감생활 중인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같이 영화나 공연을 보고 밥도 먹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요. 코미디언 이성미·송은이 언니와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가수 션 오빠가 함께 도모한 일이에요.” -그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싶나요. “제가 힘 받았던 순간들은 이모, 삼촌, 친구들이 저를 화상환자가 아닌 그냥 이지선으로 봐줄 때였어요. 마찬가지로 저는 이 아이들도 수용자 자녀가 아닌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봐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내가 어려울 때 나를 응원해준 사람이 있었어. 그러니 나도 계속 살아갈 거야’ 이런 마음이면 좋겠어요.” 장애인 단체 홍보대사로 마라톤 2번 완주 남들이 화상환자 아닌 나로 대할 때 힘 얻어 수감자 자녀들 만날 때도 그들 자체로 응원 -정치권에서는 부르지 않던가요. “오래전부터 대선 때마다 있었어요. 지지 발언을 해달라거나 어떤 그룹에 들어오라거나…. 하지만 제가 모르기도 하고, 그분들이 저를 잠깐 사용하시려는 의도가 너무 느껴져서 거절했어요. 그렇게 사용되려고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만 나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요. 사고를 당한 것과 사고를 만난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당했다는 것은 피해를 입어 뭔가 크게 잃었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표현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사고 2년쯤 후부터 만났다고 표현했어요. 만났다는 것은 헤어질 수 있는 것이고, 저는 불행한 일을 만났지만 그 사고와 헤어지고 있으니까요. 그 결과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기대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살게 됐어요.” -23년 전 추돌사고를 낸 가해자를 용서했다지요. “제가 성인군자나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오해하실까봐 걱정돼요. 사고 후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아빠에게 혹시 가해자가 찾아오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당신의 잘못을 용서하겠다’고 전해달라고 한 건데, 가해자가 오지 않아 전하지는 못하셨어요. 당시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은 제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괴로워하면서 더 힘들어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제가 미워하는 사람도 많거든요(웃음). 하지만 저는 사고를 낸 사람에 대해선 잊었어요.” -이 교수가 믿는 신은 왜 혹독한 시련을 줬다고 생각하나요.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귀한 일을 하게 하려는 신의 계획이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그건 너무 엽기적이에요. 누군가에게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제가 받은 고통은 너무너무 큰 것이었거든요. 저는 그런 신이라면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픈 과정을 지나오면서 내린 결론은 굉장히 단순해요. 그분(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낸 가해자)이 잘못한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영향을 우연히 제가 받았을 뿐이에요.” -매일 아침 눈 뜨면 무슨 생각 먼저 하나요. “아침이구나, 5분만 더 잘까? 그러면서 일어나요. 그래도 저는 너무너무 잘 알잖아요.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기적적으로 주어진 아침인지…. 그래서 오늘도 잘살아보자, 이런 마음을 가져요.”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먼저 그 길을 가본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살아야 할 가치에 대해 제일 많이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애쓰면서 과연 이 인생을 계속 살아가는 게 희망이 있나 하는…. 하지만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이 분명히 있고,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음을 저는 경험적으로 확신해요. 그러니 살아남기로 결정하고,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면 힘드니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리라, 하는 마음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꿈이나 계획이 있나요. “저 역시 먼 미래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잘 살아 있다, 계속 재밌게 살아가면 좋겠다가 제 꿈이에요(웃음).”
- 박주연의 메타뷰
- [박주연의 메타뷰](36)“헛된 욕망 자극보다 힘든 사람 살리는 게 가치 있는 광고니까”(2023. 03. 17 14:25)
- 2023. 03. 17 14:25 사회
- ㆍ공익광고에 꽂힌 광고장이 이제석씨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이제석씨(41)는 여전히 ‘똘끼’가 충만해 보였다. 자신감도 넘쳤다. “무언가로 막히면 뚫릴 때까지 계속 두드린다, 반드시 뚫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가 인정한 ‘광고장이’다. 지방대 출신의 설움을 딛고 2006년 9월 미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 만에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공모제에서 수상했다. 대기오염의 위험섬을 경고하는 ‘굴뚝총’ 광고로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는 카피와 함께 군인이 겨눈 총구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전 포스터는 세계 유수의 공모전에서 동시다발로 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인 JWT와 BBDO를 거쳐 FCB에 입사했다. 빅히트작을 연달아 선보인 그에게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장밋빛 미래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9년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다. 원하는 광고를 하고 싶어 같은해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차렸다. “공익광고의 개척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제작한 광고의 80% 이상은 공익광고다. 설치미술형 광고와 퍼포먼스형 광고, 게릴라 캠페인과 인쇄 광고 캠페인, 포스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말을 걸었다. 광고주는 주로 지자체나 관공서, NGO단체다. 지난 3월 14일 찾아간 경기 고양시의 이제석 광고연구소 외관은 투박한 컨테이너처럼 보였다. 폐차 직전의 낡은 자동차 몇 대가 놓인 1층은 용접 등을 하는 공장으로 사용하고, 넓은 공간에 책걸상 몇 개와 응접세트가 전부여서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 2층은 회의실로 이용한다고 했다. 도시의 소음이 싫어 본진은 서울 마포에 둔 채 작업실만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이제석씨가 FCB 시절 제작한 시티 하비스트의 공익광고 ‘종이 한 장의 힘’(2008) /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뉴욕 초대형 광고회사서 상업광고에 염증 식량 기부 자선단체 공익광고 작업서 눈떠 “기발하고 재미있는 공익광고 만들려 창업” -창업 후 작업한 작품의 8할이 공익광고예요. 왜 공익광고에 꽂혔습니까. “꿈꾸던 뉴욕 한복판의 초대형 광고회사들에 다니면서도 저는 뭔가 늘 허전함을 느꼈어요. 아이디어는 분출하는데 시키는 일만 하자니 답답했어요. 사람들을 끝없이 자극해 헛된 욕망을 갖게 하는 상업광고 시장에도 조금씩 싫증 나기 시작했고요. 그런 와중에 제가 다니던 FCB에서 식량 기부 자선단체 ‘시티 하비스트’의 공익광고를 제게 맡겼고 즐겁게 작업했어요. 미국에선 광고회사들이 NGO 광고를 의무적으로 할당 제작하거든요. 뉴욕타임스 등 신문사도 수억원짜리 지면에 이런 공익광고를 공짜로 실어주고요. 학생 시절에도 공모전 출품을 위해 공익광고 제작을 많이 했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공익광고의 가치에 더 눈을 떴어요.” -그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어떤 광고가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좋은 옷과 고급 아파트, 비싼 자동차를 소비하게 하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게 해주고 얼어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는 게 훨씬 더 행복한 광고라고 생각해요.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기사회생하게 하는 광고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고요.” -그 일을 시장이 큰 미국에서 하면 더 파급력이 클 텐데요. “제가 세계 공모전 수상으로 유명해지면서 한국에서도 광고 의뢰가 드문드문 있었어요. 출장차 한국을 오가다 초기 사업자금 문제나 업무의 난이도 면에서 한국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믿었고요. 그래도 2012년까지는 뉴욕에도 제 사무실이 있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면서 아예 한국에 뿌리를 내린 거예요.” 이태원 참사 후 ‘위험 구간 표지판’ 작업 등 광고주 의뢰 없는 자발적 캠페인 벌이기도 “광고는 누가 듣건 말건 그냥 귀에 박는 것” -천성이 따뜻하거나 혹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한 건가요. “오해와 편견이에요.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광고장이로서 제 작업에 대한 욕심이 있을 뿐이에요.” -창업 당시 ‘공익광고 개척자가 되겠다’는 말을 했지요. “당시 한국은 크리에이티브의 불모지였고, 공익광고 하면 공익광고협의회만 생각나던 때였어요.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면이 많았죠. 단순히 도덕적인 이야기나 올바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공익광고가 아니거든요. 광고를 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전화를 걸거나 후원을 하는 등의 실제 행동을 이끌어내고, 사용자의 욕구 해결을 전제로 완성해야 해요. 그러려면 관련 기관들과의 협업이 굉장히 중요하죠. 저는 자신 있었어요. 공익광고를 기발하고 재미있게 만든 거장으로, 그래서 국가의 자랑으로 남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지난 14년간 완성한 광고가 몇 건이나 되나요. “500건 가까이 될 겁니다.” -작업은 재미있습니까. “굉장히 즐겁고 보람되고 뿌듯해요. 광고주의 의뢰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술자리 대화를 하다 자발적으로 마음이 동해 시작하는 일도 많아요. 지난해 8월 홍수 때 ‘깨끗한 빗물받이’ 캠페인을 벌인 것이나, 이태원 참사 직후 압사 사고 위험 구간 표지판을 만들어 홍대 앞 좁은 골목 등에 부착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 등이 그런 사례예요. 작업의 퀄리티가 높지는 않아요. 이런 캠페인은 타이밍이 중요해 전광석화처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 안에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소외계층을 위한 광고를 비롯해 장애인 인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광고, 기아와 식수, 범죄와 치안, 환경 그리고 국가를 위한 광고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수많은 광고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매일신문, 조선일보, 국민일보 등 신문사와 컬래버 작업도 수차례 했다. 특히 2016년 창간 70주년을 맞은 경향신문 1면의 파격적 편집디자인은 큰 화제를 모았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올려놓고 ‘오늘 알바 일당은 4만9천원…김영란법은 딴 세상 얘기.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라는 메모를 적은 디자인이다. -뉴욕에서 지내던 2008년 7월 미국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 거리 곳곳에 “STOP ISLAND THEFT.”(섬 도둑질 그만) 문구와 함께 일장기로 복면을 한 도둑 형상의 설치 광고를 해 주목을 끌었어요. 이후에도 2009년 덴마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행사장에 주최 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코끼리똥 사진을 걸었고요. 이런 게릴라성 광고를 자주 하는 것 같더군요. “광고는 굉장히 폭력적인 거예요. 누가 듣든 안 듣든 상관없어요. 영화는 극장에 가서 돈 주고 보지만, 광고는 그냥 귀에다가 박는 것이거든요. 일일이 허락받으면 어느 천년에 뜻을 이루겠어요. 제가 그동안 수상하고 히트친 작품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보여준 것들이에요.” -광고주는 주로 지자체나 관공서, NGO단체예요.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회사의 재정상태는 괜찮습니까. “지자체나 관공서는 예산이 있어요. 공익광고 제작으로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걸 보충하기 위해 다른 사업도 겸하며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하하하….”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1면 편집디자인(2016)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려운 점은 없나요. “결국은 공익이 뭐냐는 근본적 고민을 해요. 가장 힘든 점이에요. 모두가 공익이라고 주장하니까요. 심지어 JMS 정명석 같은 자도 자기가 공익이라고 주장할걸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저는 방패 앞에 선 시위대와 방패 뒤에 선 공권력 모두와 일해요. 양측 모두 자신들이 공익이라고 주장하죠. 또 극단적으로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사람과도 만나요. 이들 역시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열변을 토해요. 때로는 저도 헷갈려요. 그러면 산술적으로 따져 다수의 사람에게 이익이 가는 쪽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소수는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죠. 공익이라는 말이 정말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공익 대신 공공이라는 말을 쓸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광고주는 주로 지자체, 관공서, NGO단체 공익광고 수입 크지 않아 다른 사업 겸해 “계약 기준은 어떤 사람인가…진정성 보죠” -광고 수주 여부의 선택 기준이 있습니까. “광고주가 어떤 사람이냐가 기준이에요. 상업광고를 거의 안 하긴 하지만 이 기준은 상업광고 수주 여부를 결정할 때도 동일해요. 완장 찬 것처럼 매너 없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아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분들과 일하면 행복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을 자주 언급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행·불행을 주는 것도 ‘사람’인 듯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대규모 축제 및 행사가 열리는 밀집 지역에 압사사고의 위험성을 알린 표지판(2022) /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신문 인쇄 광고나 방송 광고처럼 전통매체를 통한 광고보다 옥외 광고나 캠페인, 퍼포먼스 같은 비전통, 비정형 매체 광고를 주로 하는 이유는 뭔가요. “표현의 자유 때문이에요. 전통매체를 이용하는 광고는 규제가 너무 많아 심의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아요. 별것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 방송을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그로 인해 실제로 완성했으나 공개하지 못한 광고도 많았고요. 크리에이티브가 훼손된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아예 길바닥에다 광고를 하기 시작했어요. 스트리트 광고죠. 그게 대박이 나 TV 뉴스에도 보도되면서 지금까지 그걸로 먹고사는 거예요.” -한국이 유난히 규제가 심한가요. “심하죠. 유교 전통을 지닌 국가인 데다 인권 감수성 이슈 때문인지 사고가 대단히 경직돼 있어요. 민원도 많고요. 그러니 공중파 방송 등의 광고는 표현의 제약이 심해요.” -그럼에도 한국에서 계속 작업하는 이유는 뭔가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에요. 정서적 검열 등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지만, 그런 문화적 토양 때문에 저 같은 놈이 더 돋보일 수 있으니까요.” 시민이 부르면 총알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산의 옥외광고(2003), 폐차를 경찰차로 도색한 다음 외벽에 박아 완성했다. /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무슨 얘기인가요. “매스컴은 제게 ‘광고천재’라는 과한 수식어를 붙여줬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하는 광고는 개념광고라고 해서 이미 해외 광고 선진국에서는 활발했던 장르예요. 뭔가를 비틀고 후려치고 한 번 돌려서 생각하게 하는 이미지 광고를 그동안 한국에서는 볼 수 없어 쇼킹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죠. 한국은 이전까지 읽기 위주, 즉 카피 위주의 광고나 연예인 중심의 광고만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거예요. 마이너스 요인을 다르게 보면 성공의 발판이 돼요. 주어진 핸디캡을 잘 이용하면 플러스 요인이 되고요.” 그는 “한국에서 사막과 오아시스를 동시에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한테 가끔 ‘너희는 왜 관공서라는 가장 보수적 집단과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꼰대니까’라고 대답해요. 꼰대니까 안 맞지만, 또 꼰대이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거든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넌 나를 완성시킨다’고 말해요. 악의 화신 조커나 선의 화신 배트맨이나 서로가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죠. 정반합의 개념이에요. 그래서 저는 세종시를 지옥이라고 생각해요. 공무원들에게는 날라리들이 필요한데, 그곳은 공무원 천지의 도시니까요.” -이제석 광고의 특징을 한 마디로 어떻게 규정하나요. “쉽고 단순한 광고,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광고죠.” -요즘도 자신을 ‘아이디어 중독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두지 않아요(웃음). 매 순간 아이디어를 짜내려 고심해요.” -메모가 일상화돼 있다지요.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기록해 둬야 하기 때문에 냅킨이든 뭐든 눈에 띄는 곳에 닥치는 대로 적어둬요. 예전에는 타고 다니던 자동차 내부 천장과 측면, 바닥에도 사인펜으로 마구 써놔 자동차 안이 온통 낙서투성이였어요.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메모할 때 스마트폰을 많이 활용한다는 점이에요.” -일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트럼펫 같은 악기를 불기도 했는데, 요즘엔 자동차 정비를 해요. 그렇게 육체를 써서 정비에 몰두하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거든요.” 그는 1982년 대구 태생이다. 훗날 의사가 된 형과 달리 공부를 못하고,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때부터 교사들에게 툭하면 두들겨 맞았다. 책과 공책 여백마다 그려댄 만화가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림만으로도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죽도록 그렸다. 그렇게 들어간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그를 인정한 공모전도, 기업도 없었다. 동네 ‘간판장이’로 일하면서 명함집 사장에게까지 모멸당하자 독기를 품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1년간 미군부대를 들락거리며 그림을 가르쳐주고 영어를 배웠다. 2006년 9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했다. -미술적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건가요. “손재주는 금손으로 불렸던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기질이나 사이코적 면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어떠셨길래요. “아버지는 대구의 유명 호텔 주방장이셨어요. 업계에서 나름 명성과 악명이 자자했던 분이에요. 굉장히 다혈질적이고 충동이 일면 불같은 사람이었어요.” 사진/서성일 선임기자 -아버지가 폭력적이었나요. “난폭했어요. 모난 돌 취급을 받던 저는 욕도 많이 듣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아버지뿐만이 아니었어요. 동네 형들한테도 돈 빼앗기며 두들겨 맞았고, 교사들한테도 수시로 얻어 맞았죠. 제가 불우했던 청소년기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잘 안 믿어요. 저도 굳이 다 말하고 싶지 않고…. 돌이켜보면, 보통 아이들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보냈겠군요. “그런데도 저는 그렇게 우울하거나 공포에 치를 떨면서 잠을 못 자거나 하지 않았어요. 낙천적이라기보다는 멘털이 강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난 별 의미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때리면 맞고, 누워 있으라면 누워 있었어요.” 한국은 정서적 검열 등 규제 심하지만 덕분에 비전형적 광고로 더 돋보인 것 “오늘의 이제석 만든 건 생존본능이죠” -그런 사람이 어떤 계기로 달라진 건가요. “고등학생 때 제 그림을 보신 어느 선생님이 많은 용기를 주셔서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했어요. 그리고 스무 살 때 대학에 가서 평생 처음 장학금이라는 것을 받아본 거예요. 수석을 했어요. 그러니까 몸에 귀신이 들린 것처럼 20년간 참아왔던 서러움이 터지면서 잘해봐야겠다, 잘살아봐야겠다. 업신여김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초인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어요. 눈 떠 있는 시간 동안 미친듯이 일하고 그렸어요.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맹수가 사냥하듯 일한 게 20년째예요.” -무엇이 오늘의 이제석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생존본능이요. 그로부터 초인적 힘이 나와요. 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지금도 저는 생존을 위해 굉장히 몸부림치고 있어요. 쫓고 쫓기는 삶, 거기서 스릴과 희열을 느껴요. 만약 이 불씨가 꺼지면 저는 100%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혹은 치매가 올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분주한 삶을 살고 있어요(웃음).”
- 박주연의 메타뷰
- [박주연의 메타뷰](35)“음악이 없는 영화는 소금 안 친 고기 같죠”(2023. 03. 10 11:13)
- 2023. 03. 10 11:13 사회
- ㆍCBS 라디오 25주년 맞은 신지혜 아나운서 “오늘 첫 곡은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중에서 바르다가 차 안에서 따라 부르던 그 곡이에요. ‘링 마이 벨(Ring My Bell)’…. 아니타 워드가 부릅니다.” 신지혜 아나운서가 지난 3월 7일 CBS FM 생방송 스튜디오 부스에서 방송을 마친 후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오프닝 멘트를 작성하고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는 모니터와 음원 송출용 모니터 및 기기가 놓여 있었다. / 한수빈 기자 매일 오전 11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OST ‘바이시클(bicycle)’의 선율이 흐르면 어김없이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가 청취자들의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25년간 CBS 음악 FM(93.9MHz) <신지혜의 영화음악>(이하 <신영음>)을 지켜온 신지혜 아나운서(54)다. 매년 봄·가을 개편 때마다 1, 2년도 안 돼 숱한 프로그램들이 사라지는 라디오 세계. 그 속에서 25년을 한결같이, 그것도 영화음악으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다. 동시간대 청취율 1위도 거의 빠짐없이 기록 중이다. <신영음>은 신지혜 아나운서의 1인 제작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 작가 한 명이 일부 원고를 써주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일을 신 아나운서 혼자 처리한다. 기획·연출·진행은 물론 청취자들을 위한 이벤트 준비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지난 3월 7일 신 아나운서를 CBS 사옥에서 만났다. -지난 2월에 <신영음> 25주년을 맞았지요. 감회가 어떻습니까. “청취자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분들이 신지혜가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고, 선곡을 잘한다고 인정해주신 결과예요.” -매일 10~14곡을 틀어주던데, 선곡의 원칙이 있나요. “오늘은 이 곡을 들려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해둔 음악도 있지만, 많은 경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보면서 그때그때 선곡을 해요. 이런 사연엔 이 곡이 어울리겠다 싶은 곡을 들려드리죠. 그런데 되도록 오리지널 스코어를 틀어요. 영화음악의 본질은 해당 영화를 위해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가령 ‘가브리엘 오보에’는 <미션>의 오리지널 스코어지만, ‘넬라 판타지아’는 사라 브라이트만이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로, 영화에는 나오지 않거든요.” -PD 없이 일인다역을 소화하다 보니, 생방송 중에도 분주해 보여요. “저는 방송하며 두 개의 모니터를 봐요. 하나는 인터넷 검색과 함께 오프닝 멘트 같은 한글문서를 작성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연도 보는 모니터고요, 다른 하나는 nCROS라는 통합단말이에요. 쉽게 말해 음원을 카트에 꺼내놓고 페더를 올리면 해당 카트의 음원이 송출되는 모니터예요.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작가도 붙여주고 많이 나아진 거예요. 예전에는 음반을 사용하다 보니 음악을 틀어놓고 수시로 음반자료실로 냅다 뛰어가 30초 만에 CD를 찾아와야 했어요. 사연도 부스 밖 팩스로 수시로 받고, <신영음> 시사회 초대권도 제가 일일이 봉투에 넣어 부쳤어요(웃음).” PD 없이 일인다역으로 생방송 소화 예전엔 수시로 음반자료실 뛰어가고 시사회 초대권도 직접 일일이 포장해 -음반을 어떻게 30초 만에 찾아올 수 있나요. “음반자료실에서 CD마다 장르별로 고유 기호와 숫자로 넘버링을 해서 관리해요. 생방송 중에 신청곡이 들어오면 바로 그 음반을 가져와야 하니까 저는 자주 신청이 들어오는 곡은 각 CD의 고유 번호를 리스트로 만들어 지니고 다녔어요. 아예 넘버링을 외우는 곡도 많았고요.” <신영음>이 처음 청취자와 만난 것은 1998년 2월 2일이다. 그가 CBS에 입사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9세였다. -짧은 연차임에도 진행자 이름까지 내건 영화음악 전문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꽤 기쁜 일이었을 것 같은데, 원래 영화마니아였나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KBS <토요명화>, MBC <주말의 명화> 열혈 팬이었어요. EBS 영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고요. 중학생 때 영화감독과 영화배우, 영화 내용을 적고 별점을 매긴 노트까지 있었어요. 1994년 CBS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어떤 음악이 나오거나 특정 풍경이 보이면 제가 이 음악은 어느 영화에서 나온 거라고 하든가, 어느 영화의 어떤 장면과 흡사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나 봐요. 1950~1960년대 영화까지 줄줄이 꿰니까, 나이든 선배들이 놀라셨어요. 그러다 1995년 12월에 CBS에 음악 FM이 생기면서 제게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웃음).” -1995년부터 영화 프로그램을 맡았다는 얘기인가요. “그때는 일요일 밤에 2시간 동안 방송하는 <시네마 천국>이었어요. 제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이 이듬해 가을 개편 때 오전 11시대로 옮겨진 거예요. <오정해의 영화음악실>과 <추상미의 영화음악>을 거쳐 1998년 봄 개편 때 제가 다시 맡게 된 거고요.” -영화를 좋아해도 음악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데,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나 봐요. “1979년부터 전파를 탄 TBS FM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애청자였어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거듭 들었어요.” -현재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신영음>뿐인가요. “아니에요.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방송되는 종교 프로그램인 <신지혜의 내가 매일 기쁘게>도 맡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은 하루 전날 녹음해 방송해요. 또 당연히 뉴스도 진행하고요.” -일정이 빡빡하겠어요. 일과가 어떻게 이뤄지나요. “오전 9시에 출근하면 바로 다음 날과 주말에 방송될 <내가 매일 기쁘게>를 녹음해요. 그런 다음 <신영음>의 오프닝 멘트를 쓰고 처음 들려드릴 곡을 결정하고 각 코너의 원고를 숙지한 후 어떤 음악을 틀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해둬요. 물론 생방송 중에 올라오는 사연에 맞춰 선곡하는 것도 많고요. 정오에 <신영음>이 끝나면 예전에는 개봉을 앞둔 영화의 시사회에 갔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는 스크리너로 받아서 점심시간에 김밥을 먹으면서 봐요. 일주일에 평균 3~4편을 보고, 관련 정보들을 숙지하죠. 이후 뉴스 진행이 없으면 책을 읽거나 3시간쯤 휴가를 내서 미술 전람회에 가기도 해요.” -힘에 부치지는 않나요. “너무 힘들어요(웃음). 사실 아나운서들은 거의 다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요. 초창기에 아침 뉴스 앵커까지 맡았을 때는 녹음을 마치자마자 3층 스튜디오에서 2층 보도국으로 내려가서 뉴스 원고를 받아 다시 3층 끝 다른 스튜디오로 뛰어가서 방송해야 했어요. 생방송의 경우 1초라도 늦으면 대형 사고니까 알람을 맞춰놓고 다른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수시로 시계를 보죠. 여기에 저는 1인 제작이다 보니 긴장감이 더 높을 수밖에 없어요.” -직업병이랄까, 영화를 보면 음악에 더 귀를 기울일 것 같아요. “그래서 스크리너를 보면서 좋은 음악이 귀에 꽂히면 바로바로 메모해둬요.” -영화에서 음악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음악 없는 영화도 있는데. “음악이 가미되지 않은 영화는 소금간 안 한 고기 같지 않을까요? 물론 질 좋은 신선한 고기는 간을 안 해도 맛있지만, 소금과 후추만 쳐도 맛이 더 살잖아요.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 형제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음악을 거의 안 써요. 영화제작 현장에서 일상화된 특수효과 등을 모두 거부했던 ‘도그마 95’의 감독들도 음악은 장면이 촬영되는 곳에서 들리는 것만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고요. 하지만 대다수 영화에는 음악이 있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면서 나름 깨달은 건 영화음악은 단순히 BGM(배경음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뜻인가요. “영화는 내러티브가 중요하잖아요. 미장센을 중시했던 유럽영화도 요즘에는 내러티브에 더 강하게 방점을 두고 있고요. 그런데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데 있어 음악의 역할이 커요. 가령 카메라 속 배우가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슬픈 음악이 흐르면 저 사람은 지금 슬픈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반면 경쾌한 음악이 흐르면 엉뚱하거나 재미있는 캐릭터인가보다 하고 상상하게 되죠.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영화음악을 제2의 내러티브라고 말해요.” 사진 / 한수빈 기자 -영화음악 하면 엔니오 모리코네나 한스 짐머 같은 해외 영화음악 거장들이 먼저 떠올라요. 반면 국내에선 스타라 할 만한 영화음악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한국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을 알리는 일을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5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9월 마지막 주에 개편하면서 이건 꼭 해야겠다고 생각해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금요일 코너를 신설했어요. 한국 영화음악가를 소개하는 코너인데, 매회 한 명의 영화음악 감독이 직접 육성으로 자신의 대표작과 철학을 소개한 다음 그분들의 대표곡들을 듣는 시간이에요. 영화음악 감독들의 육성을 따 시리즈로 방송하는 것은 음악방송 사상 처음 시도한 일일 거예요. 물론 이 코너와 별개로 이재진, 조성우, 이병우, 최승현 감독님은 자주 저희 스튜디오에 직접 나오셨지만요.” 영화음악은 제2의 내러티브라 생각 한국 영화음악 작곡가들 알리기 위해 음악감독들 육성 따 시리즈로 방송도 -육성은 어떻게 따나요. “제가 한분 한분 다 섭외해서 직접 녹음해 보내주신 음성을 받았어요. 너무 길면 지루할 수 있으니까 1분~1분 30초로 제가 편집해서 방송으로 내보내요.” -청취자 반응은 좋습니까.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어요.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만드셨는데 그동안 감독님 이름도 모르고 있었으니 너무 죄송하다, 계속 응원하겠다, 앞으로 좋은 음악 더 많이 만들어달라는 리뷰가 엄청 쏟아져요. 저도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감독님들도 행복해하시고요. 지금은 그래도 영화음악 감독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또 젊은 친구들도 굉장히 좋은 영화음악들을 만들고 있고요. 예를 들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수리남>을 비롯해 영화 <헌트>, <헤어질 결심>의 영화음악 감독은 30대인 이명로 감독이에요.” -오래 장수할 코너군요. “그런데 국내는 신진 영화음악 감독까지 거의 다 소개했어요. 4월부터는 해외 영화음악 감독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한국의 영화음악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1997년 개봉된 영화 <접속>은 오리지널 스코어도 좋았지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장면 장면에 맞는 음악도 잘 엄선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영화에 비해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변곡점은 <쉬리>(1999)였다고 생각해요.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기 시작했어요. 덩달아 영화음악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죠. 조성우, 조영욱, 한재권, 이병우, 최승현, 이지수, 심현정, 이동욱 감독님이 활약하셨어요. 여기에 대중음악을 하시던 달파란, 장영규님도 영화음악 쪽으로 오셨고요. 그러면서 한국 영화음악 수준이 어마어마해진 거예요.”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있습니까. “반짝이는 수많은 별 중 하나만 꼽으라는 것 같아 답하기가 쉽진 않은데요.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OST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와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기가 막히게 빼어나잖아요. 또 반젤리스가 작곡한 <블레이드 러너>의 사운드트랙은 1번부터 마지막 번까지 다 좋아요. 최근으로 오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 굉장히 좋아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몹시 아름다워요.” -한국영화 음악은 안 꼽습니까. “좋아하는 곡이 아주 많은데, 한두 곡만 꼽으면 다른 감독님들이 서운해하실 테니까요. 하하하….” 한국영화는 부침이 많았다. 1988년 영화법 개정 요구와 외국영화 직배 반대시위가 격렬히 일어났다. 1988년 9월 직배사 UIP의 첫 배급영화 <위험한 정사>가 상영된 신촌 신영극장에서 일어난 ‘뱀 소동’은 직배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벌인 일이었다. ‘뱀 소동’은 1989년 UIP 배급영화 <레인맨>이 상영된 극장에서도 재현됐다. 1993년과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 수) 축소 반대시위가 있었다. 그만큼 한국영화의 위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2006년 7월 1일부터 종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반젤리스 OST 좋아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곡들도 아름다워 한국 영화음악 수준도 어마어마해져 -많은 부침 속에서도 한국영화의 세계 속 위상은 크게 높아졌어요. 칸, 베를린, 베네치아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잇따라 수상했으니까요. “내 친구가 너무 잘 됐을 때 느끼는 뿌듯함, 뭉클함을 느껴요. 초창기에 제가 새벽근무를 했을 시기에는 오전 5시 반에 출근해 오후 1시면 퇴근했어요. 그때는 교통이 지금처럼 막히지 않아 운전해서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시사회에도 빠짐없이 갈 수 있었어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봤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홍보사 직원들과도 굉장히 친해졌고요. 요즘 한국영화의 성과를 보면 내가 응원하고 싶은 친구가 대성해서 갈채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아 큰 보람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위기를 겪은 시기는 없었습니까. “몸이 아팠어요. 특히 2007년에는 경추 3번과 4번, 6번과 7번이 완전히 눌려서 거북목이 된 데다 오른팔이 심하게 저렸어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요. 1인 제작하는 게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거든요. 펑크가 나면 안 되니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그때 3개월 무급휴직을 했어요. 2014년에는 제가 아나운서부장이라는 보직까지 맡는 바람에 번아웃 상태가 됐어요. 오른팔을 아예 쓰지 못했고, 어디 부딪치거나 물건이 떨어져 맞은 것도 아닌데 가만히 서 있다가 발등의 인대가 터졌어요. 의사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손등이나 발등의 인대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생방송으로 을 방송 중인 신지혜 아나운서 / 한수빈 기자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아나운서부장 1년을 하고 6개월간 휴직을 했어요. 잠만 잤어요. 깨어 있는 시간에는 계속 울었고요.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정했던 거예요.” -휴직 기간 동안 <신영음>은 어떻게 운영됐나요. “두 차례 모두 후배가 대신 맡아서 진행했어요. 그러다 약속한 6개월이 지나자 이제 그만 나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다시 <신영음> 진행을 맡았어요. 이후 2년간은 제 마음이 처져 있으면서도 방송할 때는 일부러 밝은 척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고 나아지니까 몸의 회복도 빨라지더라고요. 청취자들과 함께한 시간, <신영음>을 진행하는 시간이 결과적으로 치유에 도움이 됐어요.” 신 아나운서는 1969년 서울 태생이다. 시흥고(현 금천고)를 거쳐 1987년 숭실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졸업하면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방송반에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면서 방송에 큰 매력을 느꼈다. 언론사 입사를 위해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1991년 졸업 후 작은 출판사에서 9개월간 근무했고, 이후 극동방송 리포터로 활약했다. 중저음의 안정된 음색, 정확한 발성, 차분한 전달력으로 인정받았다. 1994년 CBS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해 입사했다.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 시험을 본 이유는 뭔가요. “기자 일은 대학 때 해본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PD가 되고 싶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은 달라요. 저는 내향적 성격이거든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해 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도 소파의 구석 자리예요(웃음). 제 목소리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지금의 이 일이 저에게는 최적의 일이에요.” 2007년·2014년 두 차례 아파서 휴직 힘들어도 <신영음> 청취자와 함께 회복 훗날 몇 분이라도 ‘최고였다’ 기억해주길 -결혼은 언제 했습니까. “2001년에 했어요. 남편은 CBS 3년 후배예요. 나이는 남편이 두 살 연하고요. 원래는 엔지니어여서 제가 뉴스 진행할 때 생방송 부스를 사이에 두고 같이 일하다가 이야기가 서로 잘 통해서 2년 연애 후 결혼했어요. 지금은 행정부서에서 근무해요.” -자녀가 있나요? 일과 양육 병행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2003년생 딸이 있어요. 친정엄마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셨어요. 엄마가 많이 엄격하셔서 저희 부부 중 한 명은 반드시 오후 7시에 집에 정확히 도착해야 했어요. 10분이라도 늦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으니까요(웃음).” 그는 자신에게는 “굉장한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언젠가는 제가 이 프로그램을 놓고 회사도 그만둘 때가 올 거잖아요.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정말 몇 분만이라도 ‘그래도 영화음악은 신지혜가 최고였어’라고 생각해주시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웃음).”
- 박주연의 메타뷰
레이디경향(총 12 건 검색)
-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 “영화 <수유천> 홍상수·김민희 불륜 사건 ‘메타포’ 있어”
- 2024. 08. 19 17:30 문화/생활
-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가 영화제 포토콜에 응하고 있다. 화인컷 제공 배우 김민희가 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으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김민희는 홍 감독의 2017년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데 이어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수상을 하게 됐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어떤 영화제일까? 1946년 제1회를 시작으로 스위스 북동부 휴양도시 로카르노에서 매년 8월에 개최된 권위 있는 영화제다. 주로 실험적인 작가주의 영화들이 경쟁하는 영화제로 영화 업계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영화제다. 이 영화제에서 특히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영화 <우리 선희>로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이 영화제의 최고상 국제경쟁부문 황금표범상을 수상했고 배우 정재용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18년 작품 <강변호텔>로는 배우 기주봉이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영화 <수유천>은 네 번째로 로카르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수유천>의 내용은 이렇다. 여대 강사인 전임(김민희)은 자신의 외삼촌 시온(권해효)에게 촌극(짧은 단편 연극) 연출을 부탁한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째 일을 못 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다. 40년 전 이 학교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영화 <수유천> 스틸컷. 화인컷 제공 그러다 시온은 촌극을 하는 전 연출자와 출연진 학생들 사이에 성적 스캔들이 일어났고 자신이 백업 감독임을 알게 되며 불쾌해한다. 이 일과 별도로 시온은 자신의 오랜 팬이었던 텍스타일과 여교수 정(조윤희)과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전임이 아침마다 수유천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데….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영화 <수유천>을 두고 영화 속에서 과거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 스캔들이 한국 언론에 공개됐을 때 받았던 대중의 외면(cancel culture)을 슬쩍 암시하는 교묘한 메타포(암시)를 감지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어 버라이어티는 <수유천>에 홍 감독의 주특기인 술 기운이 흥건한 식사 장면이 또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며 “(홍 감독은) 인물의 친밀감과 적대감이 그들이 먹는 음식과 음료 등 식탁의 역학 관계를 재치있게 묘사하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도 홍상수 감독의 자기 패러디에 가까울 정도로 일관된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점점 확장되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변하지 않았지만 변했다”는 말로 평을 마쳤다. 영화 <수유천>은 오는 9월 국내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 과학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서울시립과학관에서 만나는 메타버스
- 2023. 01. 31 10:34 육아/교육
- 서울시립과학관 메타버스 인게임 화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메타버스’가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메타버스란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립과학관은 최근 G(공존) B(연결), O(생존), R(순환) 등 4개의 전시실과 과학관의 상징인 다이내믹 토네이도가 위치한 로비를 메타버스 공간으로 재설계했다. 이에 따라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전 연령층이 어려움 없이 전시를 메타버스로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게이미피케이션 체험형 콘텐츠는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체험을 원하는 관람객은 ‘서울시립과학관 메타버스 타임어택! 지구의 시간을 벌어라!’라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하면 된다. IOS와 안드로이드 OS를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기종에 상관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 한편 해당 서비스는 메타버스 서비스 플랫폼 기업 ‘와이드브레인’과 협업으로 성사됐다. 해당 기업은 지난해 과학 진로 패스파인더 AR 서비스 공급을 진행한 곳이다. 정혜원 와이드브레인 대표는 “이번 메타버스 전시 서비스 공급으로 서울시립과학관의 메타버스 전시 서비스에서 과학적인 호기심을 갖는 사용자가 서로 만나 커뮤니티를 이루고 과학이라는 주제로 공감하며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책 읽는 레이디]메타버스 미래 교육에 먼저 다가가려면? '에듀테크 트렌드:메타버스 편'
- 2022. 12. 16 07:29 문화/생활
- 메타버스 교육 A~Z까지 담아낸 신간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세계관 스토리텔링 ZEP, NFT, 수업 운영 노하우’가 발간됐다. 다빈치books 제공 메타버스 교육이 뜨고 있다. 알듯 말듯 애매모호한 메타버스 교육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신간이 나왔다. 서적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세계관 스토리텔링 ZEP, NFT, 수업 운영 노하우’(이하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편’)는 현직 선생님과 강사들의 메타버스 세계관, 스토리텔링 방법과 수업 운영 노하우를 총정리했다. 미래 교육을 위해 한 발 더 앞서 나갈 수 있는 책이다. 서적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편’은 삼성전자 교육용 메타버스 기획 개발자의 세계관 및 스토리텔링 융복합 기획 개발 노하우, 자체 메타버스 구축을 위한 ZEP 활용 전략, 메타버스 세계관 기획, 구축, 노하우를 한 권에 담은 것이 특징이다. 메타버스 에듀테크를 위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는 메타버스 현업인들의 관심사를 세계관 설계, 플랫폼 구축, 수업 활용의 3개 분야로 소개한다.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편’는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성공한 메타버스가 가진 공통점,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텔링을 다룬다. 1장 후반부에서는 자체 메타버스 기획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특히, 구축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기획 노하우를 공개하여 기획자들과 구축 담당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2장에서는 메타버스 ZEP에서 수업하기 위한 접속 환경, 디바이스, 카메라와 오디오 설정, 네트워크의 사전 고려 사항들을 안내하며, 3장에서는 메타버스 ZEP 수업 공간 설정 방법을 소개한다. 이번 ZEP 업데이트의 핵심이 된 좌측 사이드바 활용법과 사용자 설정을 통해 공간을 제어하는 방법, 호스트 설정을 변경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4장에서는 메타버스 ZEP 방탈출 공간 기획과 제작 노하우를 공개하며, 5장에는 3D 기반 메타버스인 모질라 허브(hubs.mozilla), 스팟(SPOT), 스페이셜(Spatial)을 사용하여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메타버스 수업의 교사 연수 방법과 수업에 활용할 때 궁금한 점을 다룬 Q&A를 제공한다. 도서 부록으로는 메타버스에서 수업할 사람들을 선발할 때 필요한 역량의 체크리스트가 제공된다 책의 저자인 박찬, 변문경, 이지은 작가는 “‘에듀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편’은 미래 교육을 선도하는 많은 분들에게 한발 앞선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독자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미래 교육의 리더로서 활약하시리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저자 박찬은 과학, 영재, 융합장관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2016년에는 올해의 과학교사로 선정됐다. 서울대, 경인교대 등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고, 전국 STEAM 교사연구회 책임연구원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 변문경은 주식회사 메타유니버스의 대표이사이자, AI & 메타버스 콘텐츠 연구소 소장이다. 삼성전자 DX, DS 메타버스 기획, 운영 총괄, 산학협력 EXPO PM을 맡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저자 이지은은 주식회사 메타유니버스 AI & 에듀테크 글로벌 사업 팀장이며, 세종학당재단 메타버스 개발 총괄, 교보생명 메타버스 행사 총괄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 책 읽는 레이디
- "Z세대, 현실 패션 못지않게 디지털 패션 중요" 로블록스, 메타버스 패션 트렌드 발표
- 2022. 11. 23 16:11 패션
- 로블록스 제공 로블록스 Z세대 사용자 4명 중 3명은 디지털 패션을 구매한 경험이 있고, 사용자의 절반은 최소 매주 한 번 이상 아바타의 옷을 꾸밀 정도로 디지털 패션의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Roblox)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협업해 Z세대의 디지털 패션 트렌드를 분석한 ‘2022 메타버스 패션 트렌드’에 따르면 아바타의 스타일과 디지털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소비자들이 디지털 패션에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 조사는 로블록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디지털 패션에 친숙한 미국 내 이용자 중 Z세대(14~24세) 1천 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로블록스 Z세대 사용자의 절반은 최소 매주 한 번 이상 아바타의 옷을 꾸몄다. 아바타에 옷을 입히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47%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답했으며, 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43%) 디지털 컬렉션을 자랑할 수 있으며(35%) 디지털 공간에서 친구나 동료와 더 연결된다고 느껴진다(32%)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5명 중 2명은 디지털 세계에서 옷과 장신구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 출시된 레이어드 복장 기술 서비스 이용자는 현재 1100여명에 달한다. 이는 의상과 장신구를 자연스럽게 겹쳐 입고 아바타의 체형에 맞게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3D 복장 시스템이다. 이처럼 로블록스 소비자들은 디지털 패션에 기꺼이 지출하고 있다. Z세대 사용자 4명 중 3명은 디지털 패션을 구매했다고 응답했다. 월 최대 5달러(약 6천 5백원)를 지출한다고 응답한 사용자가 31%로 가장 많았고 10~20달러(약 1만 3천~2만 6천원)를 지출한다는 응답자도 30%에 달했다. 월 50~100달러(약 6만 5천~13만원)를 지출하는 사용자는 12%를 차지했다. 아바타의 스타일을 바꾸는 이유는 현실세계에서의 기분과 감정(53%), 새로 구입한 디지털 패션 아이템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42%), 패션쇼나 콘서트 등 로블록스 내 참여하는 특정 활동이 있을 때(37%), 현실세계의 날씨나 계절에 따라(24%),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의 영향(24%) 순으로 나타났다. 로블록스 내 아바타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이미지. 로블록스 제공 눈에 띄는 결과는 현실세계의 패션과 아바타 패션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Z세대 사용자의 70%는 현실세계의 자신과 유사한 스타일로 아바타를 꾸미고, 반대로 아바타가 입는 옷에서 스타일에 대한 영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 배리 파슨스 대학 패션 스쿨의 학장 겸 형평성 및 포용성 담당 부교수는 “디지털 패션 디자이너의 전문 분야인 디지털 패션은 패션 산업과 디자인 관행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크리스티나 우튼 로블록스 글로벌 파트너십 담당 부사장은 “Z세대 소비자들이 몰입형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패션에 대한 경제력과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메타버스의 트렌드가 현실세계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현실세계의 트렌드 역시 메타버스 세계에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로블록스가 발표한 ‘2022 메타버스 패션 트렌드’ 보고서 전문은 로블록스 블로그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