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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203 건 검색)

[유로2024] FIFA 랭킹 3위 자존심이 한껏 구겨진 벨기에, 루마니아 잡고 명예회복 성공?
2024. 06. 23 03:17국제
벨기에 축구대표팀 인스타그램 캡처 첫 경기에서 터무니없는 졸전을 펼친 끝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벨기에가 2차전을 승리하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벨기에는 23일 독일 쾰른의 쾰른 스타디움에서...
검찰, 5·18 관련자 2년간 115명 명예회복…“죄 안됨” 처분
2024. 05. 13 15:13사회
... 민주화운동으로 군검찰(육군검찰단)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170명 중 절반 가까이가 아직 명예회복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검찰이 당사자가 직접 ‘진정서를 접수한...https://www.khan.co.kr...
조국 “명예회복 길 찾아야 하지 않나”···총선 출마 시사?
2023. 11. 06 10:31정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6일 유튜브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총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6일 22대 총선 출마에 대해...
해병대 전우들, 이틀간 50㎞ 걸으며 “박정훈 대령 명예회복” 외쳤다
2023. 11. 06 06:00사회
... 채모 상병 사건을 수사하다 도리어 항명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명예회복과 채 상병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고난에 타협하지 않는 해병대 50㎞ 정의의...
채 상병 1주기

스포츠경향(총 155 건 검색)

좋은 흐름 속에 대표팀 합류한 황인범-이강인, 명예회복 벼른다···오늘밤 요르단전 대표팀 공격의 열쇠
2024. 10. 10 11:10 축구
한국 축구대표팀 황인범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슛팅하고 있다. 2024.09.05 문재원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 이강인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돌파하고 있다. 2024.09.05 문재원 기자 홍명보 호 유럽파 공격진 가운데서 가장 좋은 폼으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0월 일정에 합류한 선수는 중원 핵심 멤버 황인범(페예노르트)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다. 한국시간으로 10일 오후 11시 요르단 암만국제경기장에서 열리는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3차전 요르단전에 공격을 이끌 두 선수의 발 끝에 기대감이 크다. 둘은 대표팀 2선 공격의 열쇠로 이번 일정에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일단 좋은 흐름 속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황인범은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를 떠나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 유니폼을 입었다. 황인범은 이적 후 팀의 주전 미드필더를 꿰차며 단 4경기 출전에서 구단 선정 ‘9월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팀 합류 직전인 지난 6일 트벤테와의 리그 8라운드 홈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 결승 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에 앞장 섰다. 황인범은 네덜란드 진출 첫 골이자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뒤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강인은 어린 나이에도 대표팀에서 손흥민과 에이스 역할을 한다. 소속팀에서는 선발과 벤치를 오가는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준수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리그에서는 벌써 3골도 넣었다. 태극마크를 달면 존재감은 더 커진다. 패스와 드리블은 물론 해결사로서 능력치도 증명한다. 이강인은 2차 예선 6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했다. 최근 A매치 5경기에서도 3골 2도움으로 대체불가능한 활약을 보여준다. 사실 둘은 요르단에 져 4강에서 탈락한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당시 준결승전에서 황인범은 전반 막판 왼측면에서의 땅볼 컷백을 노마크 슈팅으로 때렸으나 공이 뜨면서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또 실점의 빌미를 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중원에서 고립된 황인범이 빌드업 과정에서 상대의 압박에 공을 끊기는 상황이 두 차례 나왔는데, 그 가운데 한 번이 실점으로 연결됐다. 이날 고전하던 이강인도 후반 25분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손흥민과 2대1 패스를 통해 만든 결정적인 왼발 슈팅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상대 태클에 막히면서 무위에 그쳤는데, 타이밍이 다소 아쉬웠다. 이강인은 대회 직후 요르단전 전날 ‘선배’ 손흥민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명보 호는 대표팀 안팎에서 터지는 이슈들로 위기를 맞고 있다. 원정 요르단전과 이어질 이라크와의 홈 경기에서 축구팬들을 납득시킬만한 경기력과 승리가 필요하다. 대표팀 공격을 조율하는 황인범과 이강인이 그 열쇠가 될 수 있다.
김민재, 물 건너간 명예회복?
2024. 08. 27 05:10 축구
개막전부터 결정적 실수 새 감독은 질책 안했지만 현지 매체는 콕집어 비난 바이에른 뮌헨 김민재(오른쪽)가 26일 볼프스부르크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상대 로보르 마예르와 공을 다투고 있다. 볼프스부르크 | AP연합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에겐 최악의 스타트였다. 김민재가 2024~2025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결정적인 수비 실수를 범해 팀을 위기로 몰았다. 다행히 팀은 승리했다. 뮌헨은 25일 독일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리그 개막전에서 볼프스부르크에 3-2의 진땀승을 거뒀다. 뮌헨을 이끌게 된 ‘젊은 사령탑’ 뱅상 콩파니 신임 감독은 첫 경기에서 깔끔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승점 3점을 따냈다. 지난 시즌 뮌헨에 입단해 주전으로 뛰다 후반기 들어 벤치로 밀려난 김민재는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으로 명예회복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불안한 수비로 아쉬움을 남겼다. 김민재는 전반 7분 페널티지역에서 상대 압박을 빠져나오면서 센터백 파트너인 다요 우파메카노에게 연결하려는 패스가 상대 선수에게 읽혔다. 다행히 우파메카노가 황급히 걷어내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두 번째 실수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1-1이던 후반 10분 김민재가 중앙선 부근에서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에게 보낸 느슨한 백패스가 볼프스부르크 파트리크 비머에게 끊겼다. 비머의 패스를 받은 로브로 마예르의 슈팅은 역전 골이 됐다. 김민재는 지난 시즌 후반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스페인)과 준결승에서도 실점으로 연결된 수비 실수로 토마스 투헬 감독의 공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현지 매체들은 콩파니 감독의 역전승을 거둔 데뷔전에 일단 합격점을 주면서도 김민재의 수비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시각을 공통적으로 내보였다. ‘바바리안풋볼’은 “뮌헨이 개막전에서 승리했지만, 불확실성은 있었다. 문제 영역은 수비”며 “김민재와 우파메카노의 센터백 듀오는 많은 패스에서 실수가 있었고, 특히 김민재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후반 36분 에릭 다이어와 교체된 김민재가 눈에 띄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뮌헨은 역전을 허용한 뒤 후반 20분 해리 케인이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며 2-2로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김민재가 교체 아웃된 뒤 후반 37분에는 케인의 패스를 받은 세르주 나브리의 결승 골로 귀중한 승리를 거웠다. 콩파니 감독은 수비진의 실수보다 팀 승리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었다. 콩파니 감독은 “우리 팀의 멘털리티는 훌륭했다”며 “김민재의 실수에 대해 말하기 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모든 선수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저 어려운 경기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경기에서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국가대표, “파리 패럴림픽은 명예회복 무대”
2024. 07. 15 18:10 스포츠종합
한국 장애인국가대표 선수단이 15일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파리 패럴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오는 8월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이 명예 회복을 다짐했다. 한국 선수단은 15일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를 통해 “금메달 5개 이상을 따서 종합 순위 20위권 이내로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1988 서울 대회부터 2008 베이징 대회까지 6회 연속 패럴림픽에서 두 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2012 런던 대회에서 9개,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7개에 머문 뒤 도쿄 대회에선 2개로 추락했다. 이번 패럴림픽에 참겨하는 선수 중에는 강선희·정호원(보치아), 주영대·서수연(탁구), 조정두·박진호(사격), 최정만·김정준·유수영(배드민턴), 주정훈(태권도)이 금메달 후보로 거론된다. 주정훈은 “도쿄대회에서 따지 못한 금메달을 이번에는 꼭 따겠다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3위 조은혜(휠체어 펜싱)는 “펜싱을 시작한 뒤 간절하게 원한 올림픽 무대”라며 “애국가를 꼭 울리겠다”고 다짐했다. 김정남(사격)은 “사상복 목뒤쪽에 새겨진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다짐한다”며 “대한민국 최고가 세계 최고임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장애를 당하기 전에 카누 선수로 활약한 최용범(카누)은 “현재 내 기록은 세계 1등과 0.9초차”라며 “최근 나도 40초대에 진입하면서 금메달을 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일한 단체 구기 종목은 골볼이다. 골볼은 28년 만에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주장 김희진은 “모든 선수가 올림픽에 처음으로 나선다”며 “출전국이 대부분 우리보다 상위랭커지만 동메달을 목표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보치아는 패럴림픽 10연패에 도전한다. 정호원은 “다섯번째 패럴림픽 출전”이라며 “고인물이 새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윤지유(탁구)는 “3개 종목에 출전하다”며 “금메달 3개 또는 금메달 2개에 은메달 1개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수영은 “두개 종목에 출전하는데 목표는 금메달 2개”라고 힘줘 말했다. 김정남(사격), 주정훈(태권도),조은혜(휠체어펜싱),최용범(카누), 주정훈(태권도), 유수영(배드민턴), 윤지유(탁구), 서민지(골볼).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코로나로 연기된 도쿄 대회 이후 3년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며 “도쿄 대회보다는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배동현 선수단장 “패럴림픽이 44일 앞으로 다가왔다”며 “10여년 동안 장애인과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단 중심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종철 이천장애인선수촌장 “선수들이 스포츠과학적 지원 효과가 체감된다고 입을 모은다”며 “며 “금메달 7,8개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한국 선수단은 15일 현재 16개 종목, 선수 81명이 패럴림픽에 참여한다. 휠체어 테니스 종목에서 추가로 출전권을 획득하면 역대 최다인 17개 종목에 나서게 된다. 파리패럴림픽 한국 선수단복을 입은 주정훈(태권도), 조은혜(휠체어 펜싱) 장애인체육회는 공식 단복과 시상복도 공개했다. 단복은 국내 브랜드 ‘스파오’가 제공한다. 시상복도 국내 브랜드 ‘프로스펙스’ 제품이다. 체육회는 이번 대회에서 국내 기자단 선정 최우수선수(MVP)를 뽑아 후원사 한국토요타자동차가 제공하는 5000만원 상당 차량을 부상으로 제공한다. 패럴림픽은 8월 28일 시작돼 9월8일까지 이어진다. 한국 선수단은 2주 전인 8월 14일부터 26일까지 파리 동남부 외곽에 현지 훈련 캠프를 차린다.
[유로2024X라인업] 첫 경기서 자존심 구긴 벨기에, 루마니아 잡고 명예회복 하나
2024. 06. 23 03:13 축구
벨기에 축구대표팀 인스타그램 캡처 첫 경기에서 터무니없는 졸전을 펼친 끝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벨기에가 2차전을 승리하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벨기에는 23일 독일 쾰른의 쾰른 스타디움에서 루마니아와 유로 2024 조별리그 E조 2차전을 치른다. 벨기에 입장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경기다. 벨기에는 지난 18일 열린 슬로바키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0-1로 패했다. 물론 로멜루 루카쿠(AS로마)의 2골이 VAR로 취소되는 불운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벨기에가 너무 못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위 벨기에 입장에서는 1차전을 패한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것보다 이번 루마니아전까지 패하면 자칫 16강 탈락의 굴욕을 당할 수도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가 절실하다. 벨기에는 최정예 멤버들을 가동했다. 루카쿠가 최전방에 서고 케빈 더 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와 도디 루케바키오(세비야) 양 옆을 지킨다. 유리 틸레만스(애스턴빌라)와 아마두 오나나(에버턴), 아르투르 테아테(렌), 제레미 도쿠(맨체스터 시티)가 중원에 서고 바우트 파스(레스터시티), 얀 베르통헌(안데를레흐트), 티모시 카스타뉴(풀럼)이 스리백을 구성한다. 골키퍼 장갑은 쿤 카스테일스(볼프스부르크)가 낀다. 반면 1차전에서 우크라이나에 3-0 완승을 거뒀던 루마니아는 내친김에 벨기에도 잡는다는 각오다. 루마니아는 1차전과 스타팅 라인업이 거의 동일하다. 데니스 드러구슈(가지안테프)가 최전방에 배치됐고 그 뒤에 데니스 만, 발렌틴 미허일러(이상 파르마), 러즈반 마린(엠폴리), 니콜라에 스탄치우(다마크)가 출전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마리우스 마린(피사)이 맡고 포백은 라두 드라구신(토트넘), 안드레이 부르처(알 오크두드 클럽)의 중앙 수비에 니쿠쇼르 반쿠(우니베르시타테아 크라이오바), 안드레이 라티우(라요 바예카노)가 좌우 풀백으로 출전한다. 골문은 플로린 니처(가지안테프)가 지킨다. 루마니아 축구대표팀 인스타그램 캡처

주간경향(총 7 건 검색)

[이기환의 Hi-story](119)남편 자결 막은 ‘7일의 왕비’ 233년 만의 명예회복(2024. 01. 30 05:30)
2024. 01. 30 05:30 문화/과학
‘7일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지 233년 만인 1739년 복위되면서 ‘단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종묘에 신주가 안장되는 과정을 그린 반차도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516년 3월 28일 <고려사>(‘세자·명종’)를 읽던 상(중종)이 깊은 한숨을 쉬며… ‘멍’ 하니 있었다.”(<중종실록>) 조선조 중종(재위 1506~1544)이 <고려사>를 읽다가 시쳇말로 ‘멍때렸다’는 기사입니다. 문제의 <고려사> 구절은 ‘고려 무신정권의 핵심인 최충수(?~1197)가 태자(희종·재위 1204~1211)의 조강지처(태자비)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했던 대목’입니다. 최충수 때문에 쫓겨난 태자비가 흐느껴 울자 궁궐이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겁니다. 중종은 신하의 강압에 조강지처를 내쳐야 했던 희종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 겁니다. <중종실록>의 사관도 중종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상(중종)이 신씨(愼氏)의 폐출을 필시 후회한 것이다. 그러나 강한 신하에게 제압돼 폐출했으니, 이제 어찌할 것인가.” ■‘멍때린 중종’ 8년 뒤인 1529년(중종 24) 9월 13일 충청도 부여 출신인 김식이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공자는 ‘얼룩소의 새끼라도 빛깔이 붉고 뿔이 똑바로 났으면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씨가 왜 폐출됐습니까. 신씨의 덕이 얼룩소만도 못 하단 말씀입니까.”(<중종실록>) ‘얼룩소의 비유’는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말인데요. 붉고 뿔이 곧은 소에 비해 ‘얼룩소’는 못난소의 대명사였죠. 공자는 그러나 ‘출신이 천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재능이 있으면 반드시 쓰임새가 있다’고 가르친 겁니다. 두 기사에서 동일인물이 등장하죠. 바로 ‘신(愼)’씨입니다. 반정으로 즉위한 중종의 조강지처인 단경왕후 신씨(1487~1557)를 가리킵니다. ‘7일의 왕비’로 알려진 분이죠.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시리즈물 학술총서 중 7번째 책을 펴냈는데요. <외규장각의궤 연구: 추상·복위부묘봉릉>입니다. <외규장각 도서(의궤)>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했다가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책(297권)이죠. 이번 출간된 책은 당대에는 홀대받았거나 혹은 폐위됐다가, 훗날 추상(존호를 올림) 혹은 복위(신분 회복)된 분들을 다뤘습니다. 이분들의 추상·복위 논의와 의례의 모든 과정을 수록했습니다. 1560년 9월 2일 반정군이 집을 에워싸자 진성대군(중종)은 자결하려 했다. 그러나 부인(신씨)은 남편을 만류하면서 “만약 반정군의 말머리가 집을 향했다면 죽어야 하지만, 궁궐을 향했다면 대군을 호위하는 것이니 알아보라”고 했다. 과연 반정군의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 ■남편의 자결을 막은 부인 이중 ‘7일의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를 살펴보려 합니다. 신씨는 문신 신수근(1450~1506)의 딸입니다. 신씨는 1499년(연산군 5) 성종의 둘째 아들이자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혼인했습니다. 그런데 얽히고설킨 관계가 운명을 가릅니다. 연산군의 부인이 신수근의 동생(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연산군의 부인(거창군 부인)과 진성대군(중종)의 부인(단경왕후)은 고모와 조카 사이였던 겁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1506년 9월 2일의 일화가 눈에 띕니다. 반정군이 진성대군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진성대군은 반정군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신씨가 남편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말렸답니다. “에워싼 군사의 말머리가 집을 향해 있으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다면 공자(진성대군)를 호위하는 겁니다.” 알아보니 반정군의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었습니다. 만일 신씨의 만류가 없었다면 진성대군은 자결하고 말았을 겁니다. ■‘조강지처를 내쫓다’ 하지만 반정 끝에 즉위한 남편(중종)과 달리 신씨의 운명은 급전직하합니다. 연산군의 매부이기도 한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죄’로 죽임을 당했던 겁니다. 아버지의 선택은 딸(신씨)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반정이 일어난 지 7일 만인 1506년 9월 9일이었습니다. 이때 반정 세력이 총출동해 중종을 다그칩니다, “지금 신수근의 친딸이 궁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왕비)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니… 밖으로 내치소서.” 그러자 중종은 “조강지처를 어떻게 내치겠냐”고 난감해합니다. 그러나 반정 세력의 시퍼런 서슬에 중종은 나약한 군주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땅히 중론을 좇아 밖으로 내치겠다. 당장 오늘 저녁에 나가라 해라”는 명을 내립니다. ■죽은 사람 취급당한 신씨 그런데 ‘신씨를 쫓아낸 이날의 기록’이 훗날까지 논란을 일으킵니다. 반정 세력이 ‘신씨를 왕비로 삼을 경우~’라는 가정법을 쓴 대목입니다. 그래서 신씨가 애초부터 왕비로 책봉된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한마디로 신씨는 왕비에서 폐위된 것이 아니라 중종의 진성대군 시절 부인 신분으로 쫓겨났다는 거죠. 그들은 반정 성공 후 19일이 지난 9월 21일 명나라에 중종의 책봉을 받기 위한 사신단을 보내는데요. 이때 중종의 왕위계승이 정변이 아니라 선위를 통해 이뤄졌음을 고하는 ‘9가지 예상문답’을 마련하는데요. 그중 신씨와 관련돼 기막힌 ‘가짜뉴스’도 들어 있습니다. “만약 명 황제가 ‘왕비를 책봉했느냐’고 물으면 ‘전하(중종)의 대군 시절 부인이 병으로 죽었고, 아직 왕비를 들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중종실록>)고 했어요.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 행사. 2011년 임대형식으로 귀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규장각 관련 학술총서를 계속 펴내고 있다. /연합뉴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남편이 왕이면 부인은 자동 왕비 <국조보감>과 <선원보략> 등 왕실 기록은 그러나 “신씨는 9월 2일 반정 후 중전이 됐고, 9일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또 1557년(명종 12) 12월 7일 승하한 신씨를 위해 쓴 졸기는 “중종이 즉위하자 비(신씨)도 정위(중전 자리)에서 하례를 받았다”(<명종실록>)고 했습니다. ‘신씨=7일의 중전(왕비)’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건데요. 233년 뒤 영조가 신씨를 왕비(단경왕후)로 올리며 반대 여론을 잠재운 한마디가 심금을 울립니다. “날 봐라. 내가 임금이 됐을 때 내 부인은 이미 중전이 됐다. 중종이 왕위에 오른 날 신비(단경왕후) 역시 자동으로 중전이 된 것이다.”(<영조실록> 1739년 3월 11일) ■중종의 임종 때 부른 여인 어찌 됐든 남편에게 쫓겨난 모양새가 되지 않았습니까. 신씨는 사저로 쫓겨나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사이 남편은 반정 세력의 핵심인 박원종(1467~1510)의 조카(장경왕후 윤씨)와 재혼합니다. 하지만 중종의 속은 편치 않았나 봅니다. <국조기사>는 “중종은… 명나라 사신을 맞을 때마다 신씨의 사저에 ‘임금이 타고 온 말’을 보냈다. 신씨는 늘 흰죽을 쑤어 손수 말을 먹여 보냈다”고 했습니다. 또 “폐비 신씨의 사저(어의동)에 도둑이 들었으니 경비 군사를 4명에서 6명으로 늘리라”(<중종실록> 1528년 1월 29일)는 명을 내립니다. 어의동 자택은 중종이 대군 시절 부인(신씨)과 알콩달콩 살던 집이었습니다.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죽음을 앞둔 중종이 사경을 헤맬 때인데요. 급박한 순간의 실록 기사가 심상치 않습니다. “통화문(창경궁 북쪽 문)을 열어놓았기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상(중종)이 임종 때 폐비 신씨를 보고 싶어했기에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진위를 떠나 중종이 신씨에게 진 마음의 빚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죠. ■보류 상소문 신씨를 향한 동정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런데 동정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종의 두 번째 부인인 장경왕후 윤씨가 세자(인종)를 낳고 승하하는데요(1515). 이때 놀라운 상소문이 올라옵니다. 담양부사 박상(1474~1530)과 순창군수 김정(1486~1521)이 “신씨를 복위시켜 원통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신씨를 폐위하신 명분은 무엇입니까… 반정공신들이… 임금을 다리 사이와 손바닥 위에 놓고 희롱하듯 겁박하고, 국모를 병아리 팽개치듯 쫓아냈으니….” 두 사람은 ‘반정공신=난신적자’로 지목하면서 “난신적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 ‘춘추’의 의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경왕후가 돌아가셨으니 지금이야말로 신씨를 복위시킬 호기”라고 중종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중종은 어정쩡한 반응을 보입니다. 중종은 “이런 큰일을 하급관리들의 말을 듣고 처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상소문을 승정원에 보관해두라”는 명을 내립니다. 한마디로 ‘보류’한 겁니다. 중종이 돌아가는 조정공론을 살피려 한 겁니다. 신씨 복위 문제는 숙종 때 또 불거져 나왔다. 이때 “중론을 구한다”는 숙종의 명에 따라 모인 491명의 문무백관이 신씨의 복위 문제와 관련, 각자의 의견서를 냈다. 찬반양론이 팽팽했지만, 반대 의견 가운데는 신씨의 복위 자체는 온당하지만 선조(중종)가 내린 결정이어서 선뜻 복위에 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다수였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 ■기묘사화의 씨앗 하지만 대사헌 권민수(1466~1517)와 대사간 이행(1478~1534)이 앞장서서 박상·김정을 탄핵하고 나섭니다.(8월 11일) “신씨가 복위되면 장경왕후가 낳은 원자(인종)는 어찌됩니까. 또 그 지위가 장경왕후보다 앞선 자리에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죽은 아버지를 위해 피의 보복을 감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중종실록>) 중종도 섣불리 신씨의 복위를 단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정공신들을 난신적자로 규정하면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정통성은 어찌됩니까. 결국 상소문을 올린 박상과 김정은 유배형의 처분을 받았는데요. 이 ‘신씨 복위’ 논쟁은 그러나 또 한 번의 비극을 잉태합니다. 사간원 정언 조광조(1482~1519)가 “박상과 김정의 처벌을 촉구한 대사헌과 대사간을 파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조광조의 끈질긴 대간 탄핵은 조정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폐비 신씨의 복위 논쟁은 기묘사화(1519)의 발발까지 연결됐습니다. <중종실록>은 “박상·김정의 상소문은 올바른 것이었는데, 이를 두고 워낙 논쟁이 격화돼서 결국 사림이 반목해 참혹한 화(기묘사화)를 불렀다”(1515년 8월 8일)고 평했습니다. 중종이 폐비 신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모양이다. 중종이 승하하기 직전, 사경을 헤맬 때 창경궁 통화문을 열어둬 신씨를 만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 ■‘안타까워, 어쩌나’ ‘폐비 신씨의 복위’는 중종이 셋째 부인(문정왕후 윤씨·1501~1565)을 맞이함으로써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폐비 신씨의 처지가 딱하다는 것은 여러 대가 지나도록 불변의 여론이었나 봅니다. 숙종 연간에 ‘폐비 신씨의 복위’ 운동이 일어납니다. 1698년(숙종 24) 9월 30일 전 현감 신규(1659~1708)가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린 겁니다. 이때 숙종의 명에 따라 대신·종친·문무백관들이 궁정에 총출동했고요. 또 지방 대신 및 유신까지 자그마치 491명의 의견을 모았습니다. 찬반 여론이 워낙 팽팽하자 숙종은 “참으로 난처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는데요. 결국 복위는 이뤄지지 못했고요. 다만 별도의 사당을 세우고, 신주에는 ‘폐비 신씨’라 해서 ‘왕비에서 폐위된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일단락지었습니다. 숙종은 신씨를 쉽게 복위시켜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어제시로 읊었습니다. “옛날 왕비로서 지존의 짝이더니/ 밤에 건춘문으로 나감에 백성들이 원통해했네/ 슬픔과 한스러움에 어찌 추복의 의논이 없으랴만/ 어쩌나. 이제 와서 임금 마음 알 수 없음을….” ■538명 중 537명이 ‘복위’ 찬성 숙종의 마음을 알아준 이는 영조였습니다. 1739년(영조 15) 3월 11일 유생 김태남이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영조는 “어찌 백성들만 억울하게 여기겠냐. 내 마음도 아프다”고 공감하면서 밀어붙입니다. 영조는 내외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3월 15일 종친 및 문무백관이 총출동해 신씨의 복위를 두고 찬반 토론을 벌였고요. 지방 관리 및 유생들의 의견도 받았습니다. 무려 538명이 의견서를 냈습니다. 경기 양주 장흥에 조성된 단경왕후 신씨의 온릉. 1506년 9월 2일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남편이 즉위해 왕후가 됐다가 불과 7일 만에 반정 세력에 의해 폐위됐다. 233년 만인 1739년 복위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이중 1명을 제외한 537명이 ‘신씨 복위’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영조실록> 1739년 3월 15일) 같은 날짜 <승정원일기>는 538명의 의견을 전부 기록했는데요. 지독한 의견수렴이기도 하고요. 또 그 500명이 넘는 의견서를 기록으로 남긴 것도 대단합니다. 아무튼 신씨의 복위가 결정되자 영조는 감회어린 소감을 밝힙니다. “아! 황량한 신비의 무덤에 난 풀은 지금 몇 년이 지났는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다.” <승정원일기> 1739년 3월 15일자. 영조가 중종반정 때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 문제를 거론하면서 무려 538명의 전·현직 및 지방관리와 유생들의 의견서를 받았다. <승정원일기>는 3월 15일자에 538명의 명단과 그 의견서를 모두 기록했다. 관련 내용만 23쪽에 달한다. 의견을 낸 538명 가운데 삼가현령 이도익을 뺀 537명이 복위에 찬성표를 던졌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 신씨의 복위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요. 시호는 ‘단경’, 능호는 ‘온릉’으로 결정됐습니다. 단경왕후의 신주는 태묘의 중종실에 모셨습니다. 신주의 위치는 중종의 ‘원후’, 즉 첫 번째 부인 자리에 놓였습니다. 우리가 그저 ‘7일의 왕비’와 ‘비운의 러브스토리’쯤으로만 알던 분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분에게는 이렇게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기환의 Hi-Story’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기환의 Hi-story
“소득주도성장, 분배지표 개선으로 명예회복(2022. 04. 01 14:20)
2022. 04. 01 14:20 경제
ㆍ김유선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 인터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세가지 중 과거 정부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기댄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사진 / 박민규 선임기자 “우리가 과거에는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이었던 만큼 논란도 컸다. 야당은 “족보 없는 이론”이라며 소득주도성장 폄훼에 나섰다. 특히 16.4%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한 2018년 취업자 수, 하위 10%의 소득지표 등 일부 통계가 악화하자 공세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짚어본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지난 3월 30일 만난 김유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65)은 “소득분배 지표들이 현 정부 들어 꾸준히 개선된 걸 보면 소득주도성장이 명예회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 정책 패키지를 지속적이면서도 과감하게 이어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에 이어 지난해 1월부터 특위를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은 노동전문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고용정책과 노사관계 전반을 연구해온 노동경제학자다. -사람마다 소득주도성장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소득주도성장의 정확한 정의를 다시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끌어올리고,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대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내수기반이 확대되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경제전략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을 주창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뭔가. “임금주도성장이라고 하면 임금 노동자로 한정되는 면이 있다. 한국사회의 경우 노동자들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자영업자들이 많지 않나. 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를 포괄해 소득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측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자유주의 경제학자, 보수언론 등은 소득주도성장이 ‘족보 없는 이론’, ‘검증되지 않은 정책 실험’, ‘경제정책이 아니라 분배에 치중한 사회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이른바 ‘족보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근거 없는 비판이다. 족보가 없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회복 전략으로 임금주도성장을 제안했던) ‘포스트 케인스주의’라고 볼 수 있다. 우파가 생각하는 족보는 과거 한국사회에 팽배하던 ‘선성장-후분배’ 담론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된 뒤부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세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목적의 비판이 있었다고 본다. 야당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야기하는데 분배에 대해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야당의 분배는 복지정책을 통해 사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사후적 재분배와 더불어 시장소득(근로·사업소득, 이자, 배당 등) 측면에서도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소득주도성장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인식한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정책 패키지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뚜렷하게 각인될 만한 다른 정책수단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양한 정책 집행이 분명히 있었다. 주로 시민들에게 인지된 건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정책 영역이다. 이 영역은 노사라는 이해관계자 집단이 명확하게 있어 주목도가 높은데다 언론도 이 부분을 주로 부각했다. 노동정책뿐 아니라 자영업자 대책도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으로 대응을 했다.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집행했다. 2018년 10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법정 계약갱신 청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임대차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9%에서 5%로 낮췄다. 카드 수수료 인하도 몇차례 있었다. 다만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자영업자 피해가 커진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재분배 영역에선 제도적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근로장려금(EITC) 확대, 기초연금 인상, 고교 무상교육, 아동수당 도입 등이 그것이다. 전국민고용보험제,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이런 부분이 어려운 분들이 실질적으로 내 삶이 확 바뀌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닐 수 있지만 일정한 진전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시장소득 양극화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외에 어떤 정책수단이 필요하다고 보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격차가 축소된 면이 있다. 중위임금과 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상당히 축소됐다. 다만 중위임금하고 상위 10%의 임금 격차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래를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중위임금과 상위 10%의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데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연대임금’ 정책이다. 1980년대나 1990년대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임금인상과 관련해 하후상박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잘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게 떳떳하고 당당한 것이라는 식으로 풍토가 바뀌었다. 최근 임금인상을 하면 대부분 정률제다. 만약 똑같이 3%를 올린다 해도 액수로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같은 재원 내에서 정액으로 인상하면 임금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그다음에 고위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의 고액 연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있다. 고액 연봉자의 임금을 일반 직원들의 몇 배 이내로 제한하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한국사회의 오랜 숙제다. 지금처럼 교섭 방식이 기업별 교섭이면 계속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초기업 교섭(산별교섭)을 통해 임금 평준화를 도모하는 게 필요하다.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려면 노조법상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 적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하나의 지역에서 같은 업종의 노동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게 될 때’라는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효력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건설공사 노동자의 임금이 하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깎이지 않도록 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건설공사 적정임금제’를 다른 업종으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임금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고 있는 택배, 배달라이더 등의 영역은 ‘공정 수수료’ 보장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법 개정 등을 통해 산별교섭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고 보기 어렵다. “노사 모두 기업별 교섭이라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부도 초기에 이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예컨대 택배, 배달라이더 등은 노사 모두 나름대로 ‘임금’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은 기업별 노사관계가 제도화돼 있지 않아 오히려 초기업 교섭에 유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영역에서 초기업 교섭을 하고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등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다.” -2018년 취업자 수 증가폭 둔화, 1분위(하위 20%) 근로소득 감소세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이 야당과 보수언론의 집중적 공격을 받은 결과,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는 관측이 있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소득주도성장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다소 뒤로 밀렸던 건 사실이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고용참사, 분배참사가 벌어졌다는 당시 비판은 사실과 상당 부분 달랐다. 2018년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이 9만7000명에 그친 건 사실이다. 2019년엔 달랐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10.9%에 달했지만, 그해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은 30만1000명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용률도 2018년 0.1%포인트 감소했지만 이내 회복해 2019년에는 6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이 줄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계동향조사보다 표본이 많아 더 공신력이 있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시장소득 자체는 2020년까지 크게 악화되지도, 개선되지도 않았다. 개선이 뚜렷하게 이뤄지지 않은 건 고령화와 가구 구성의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재분배 정책을 통한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연금을 포함한 공적이전소득-세금·사회보험료 등 공적이전지출)의 경우 확실히 개선된 걸 확인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정책을 운영할 때 단기적 통계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마무리되는 최근 시점에서 보면 노동소득분배율, 지니계수 등 각종 분배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그간 저평가받았던 소득주도성장이 이러한 개선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2017년 22.3%였는데 2020년 16.0%다. 하위 10%와 상위 10% 임금 격차도 4.3배에서 3.6배로 떨어졌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도 2017년 62.0%에서 2020년 67.5%로 높아졌다. 67.5%는 한국은행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노인일자리 사업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다. 야당에서는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 수치만 늘린다고 했지만 70~80대 노인들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노인빈곤율이 2020년 현재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진 데도 노인일자리 사업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구소득 분야에서 가처분소득이 개선된 것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근로장려금 확대 등 재분배 정책의 효과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엔 자영업자 지원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긴급재난지원금, 긴급생계지원 등이 가처분소득을 개선하는 역할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축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또 공약과 달리 민간 부분의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법·제도 도입도 안 됐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일부 진전을 시켰다. 다만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서 이른바 공정 이슈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한 조직 안에 있다가 아웃소싱된 것을 원상복구시킨다고 생각했는데 MZ세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공정성 논란 여파도 있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야당의 공격도 들어와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다룰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또 문재인 정부 초기 때는 국회가 여소야대여서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을 임기 후반기로 미룬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다 보니 후반기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졌다. 2021년 비정규직이 대폭 증가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커진 불확실성으로 사용자들이 일단 기간제 노동자를 많이 뽑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이 흐름이 고착화될까 우려스럽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소득 격차 완화가 일정하게 이뤄졌다고 해도 자산 격차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집값 상승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시장소득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 보니 자산 격차 해소 부분은 놓쳤다고 봐야 하나. “소득불평등뿐 아니라 자산불평등도 중요한 이슈라는 걸 전제해야 했는데 정부 초기에 소득불평등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졌다. 부동산 영역은 소득주도성장특위에서 직접적으로 다룬 이슈가 아니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전체로 놓고 보면 부동산 등 자산 격차 문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선 소득주도성장이 그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방향성은 맞는데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정책적으로 잘 구현하지 못해 소득주도성장이 되레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소득주도성장이 최근 명예회복을 하고 있다고 본다. 특위에서 최근 <소득주도성장,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16명의 필자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책을 준비하며 정리하다 보니 소득주도성장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족보 없는 이론이라는 우파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이 앞으로 계속 지향해야 할 경제전략이라는 게 필자들의 공통적 생각이었다. 분배지표와 관련해 부분적 성과도 있었다. 다만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불평등이 싹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니 지속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일관성을 가지고 좀더 과감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경우엔 비판을 수용하면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추진해 나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소득주도성장의 기조가 어느 정부에서든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나. “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이윤주도성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명칭을 무엇으로 하든 불평등 문제, 양극화 해소는 향후 정부가 받아안을 수밖에 없는 과제다.”
[표지 이야기]숨진 수형인들 명예회복 과제(2019. 03. 25 15:30)
2019. 03. 25 15:30 사회
ㆍ사망자는 증언할 수 없어 재심 걸림돌… “군사재판 무효” 특별법 개정안 필요 지난 3월 19일 오전, 제주 남문사거리에 위치한 ‘4·3 도민연대’ 사무실이 술렁거렸다. “김○○ 삼춘 돌아갔수다. 부고났네.” “아이고 큰일났네. 벌써 금년에 두 사람 돌아가셨네. 현창용 할아방, 김○○ 할아방….” 제주 4·3 도민연대 관계자가 수형인 명부와 이를 정리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이하늬 기자 김○○ 할아버지는 재심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고문 후유증이 심해 요양원에 있던 처지였지만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가족들의 설득이 큰 역할을 했다. 생전 김 할아버지는 4·3 이야기만 나와도 얼굴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증언은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2016년 도민연대는 4·3 수형인 2530명 중 생존자가 40명가량이라고 발표했다. 도무지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한 숫자다. 일각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간 수형인도 많았을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제주로 돌아가면 더 큰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올해 초 생존자는 30명으로 줄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28명이다. 올해 초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피해자는 18명(1명 사망)이다. 도민연대와 변호인단은 나머지 12명(김 할아버지를 포함한 숫자)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민연대에 따르면 5명이 제주도, 6명 육지, 1명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 몇 명이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심은 형사소송이기 때문에 판결문 등 자료와 당사자들의 구술능력이 중요하다. 애초 걸림돌이었던 판결문 등 자료는 첫 번째 재심을 거치면서 해결됐다. 남은 문제는 생존자들의 구술이다. 11명 중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만 3~4명에 이른다. 생존자들도 고령, 시간 갈수록 줄어 당사자와 가족, 도민연대, 변호인단 모두 “시간이 없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11명 중 한 명인 송순희 할머니의 딸 강영숙씨는 “우리 엄마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며 “재심을 청구하는 걸 몰라서 1차 때는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재심을 청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숨진 수형인 2500여명의 명예회복도 남은 과제다. 이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받거나 ‘일괄무효’의 내용이 담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수형인들의 재심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사망자도) 재심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진술기록이 없고 증언도 할 수 없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특별법 개정안이 좀 더 쉽고 명확한 길이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은 2017년 12월 19일 국회에 제출됐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추가 진상조사를 위해 조사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지난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 재판부가 4·3 생존 수형인들의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나아가 특별법 개정안에는 2530명의 수형인을 양산한 불법적인 군사재판 전체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간 수형인 구제에 관한 법은 없었다. 이들은 4·3 피해자 가운데 가장 늦게 드러났다.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이들이 피해자 범주에 들어간 건 2007년이다. 그마저도 보수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한 수형인 유족은 “근거도, 절차도 없는 재판으로 평생을 고생했지만 옥살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피해자로 인정도 못받았다”며 “당사자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지금 2세들이 70대에 들어섰다. 이제 이 고통을 끝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보고서 재발간돼야” 하지만 특별법 개정안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9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현재 (희생자가) 1만4000명에 해당하는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보상비용 추계가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정당국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궁극적으로는 수형인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수형인과 관련된 자료는 수형인 명부가 전부였다. 지난 첫 번째 재심과정에서 ‘군집행지휘서’를 추가 확보했다. 하지만 그 외에 국가가 가지고 있는 관련 자료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 양동윤 도민연대 공동대표는 “시간이 오래 지나 피해자들의 증언에 한계가 있다고 해도 증언이 포함된 정부 차원의 진상보고서가 재발간되어야 한다”며 “재판으로 명예는 회복됐을지 몰라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보고서는 2003년 10월에 마지막으로 발간됐다. 양 공동대표는 이어 “4·3 추념식을 성대하게 하고,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여러 가지 부대시설을 만들고, 피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제주 4·3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는데, 정리된 역사가 없다면 교훈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나. 특별법에 진상보고서 재발간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0일 ‘제주 4·3 희생자유족회’는 각 정당 대표와 원내대표실을 찾아 호소문을 전달했다. “고령의 희생자와 유족들이 세상을 뜨기 시작해 참극을 겪어온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념이나 (정치)세력의 유·불리가 아니라 피해받은 국민들에 대한 화해와 치유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주십시오.”
표지 이야기
영남 야구, 올해는 명예회복 성공할까(2019. 02. 18 15:33)
2019. 02. 18 15:33 스포츠
삼성, 롯데, NC는 올시즌에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세 팀은 다시 도약하기 위해 투수진 정비가 최우선 과제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영남권을 연고로 하는 세 팀은 지난해 정규시즌을 마친 뒤 모두 고개를 숙였다. 축 처진 영남권 야구팀의 부활은 이뤄질 수 있을까. 감독들의 고민이 깊다. 왼쪽부터 삼성의 김한수 감독, 롯데 양상문 감독, NC 이동욱 감독 / 경향DB 대구가 홈구장인 삼성은 시즌 6위(68승4무72패·승률 4할8푼6리)로 시즌을 마감했다. 9위에 그쳤던 2017시즌보다는 성적이 나아졌지만 2016년 이후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한 ‘왕조’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7위는 부산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는 롯데(68승2무74패·승률 4할7푼9리)가 차지했다. 2017년에는 정규시즌 4위에 오르며 5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2년 연속 가을무대에 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창원이 연고지인 NC는 창단 처음으로 ‘꼴찌’를 하며 체면을 구겼다. NC는 58승1무85패로 1군에 진입한 2013시즌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로 밀려났다. 군사용 레이더 활용 외국인 투수 선발 수도권과 대전까지 이어졌던 포스트시즌을 멀리서 바라봐야 했던 세 팀은 올 시즌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이들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투수진 정비가 최우선 과제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삼성의 2018시즌 팀 평균자책점은 5.19. 10개 구단 중 5위로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평균자책점 5.88로 최하위에 그쳤던 2017년보다는 훨씬 나아진 성적이다. 그렇다고 삼성이 마냥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외국인 투수 ‘잔혹사’를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2017 두 시즌 동안 삼성이 선택한 외국인 투수 6명이 거둔 승수는 단 11승에 불과하다. 2018시즌을 맞이하면서 ‘외국인 잔혹사’를 끊고 싶었던 삼성은 2017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풀시즌을 소화한 팀 아델만을 영입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15경기의 경력을 가진 리살베르토 보니야도 데려왔다. 그러나 아델만은 31경기 8승12패(평균자책점 5.05)에 그쳤고 보니야는 29경기에서 7승(10패)만을 올리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삼성은 올 시즌 외국인 투수 구성에 또 한 번 새롭게 변화를 줬다.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카드’를 선택하기 위해 군사용 레이더를 활용한 선수별 측정시스템 ‘트랙맨’의 자료를 토대로 선수를 선별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뽑은 투수는 저스틴 헤일리와 덱 맥과이어다. 특히 구단 측은 선수의 구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영입을 결정했다. 헤일리는 최고 구속 150㎞의 강속구를 던지며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맥과이어는 헤일리보다 더 빠른 153㎞의 공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 삼성이 외국인 투수에게 거는 기대는 각각 10승이다. 삼성은 최근 3시즌 동안 10승 외국인 투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헤일리나 맥과이어가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하면 가을야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롯데는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비보를 접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노경은과의 계약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노경은은 지난 시즌 롯데에서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33경기에 나와 9승6패(평균자책점 4.08)를 기록했다. 선발로 퀄리티스타트를 10차례나 기록했기에 FA 계약만 성사되면 선발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경은의 부재로 토종 선발진을 찾아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 선발로 풀타임을 치른 선수는 김원중뿐이다. 2017시즌부터 선발진에 진입한 김원중은 지난 시즌 30경기에 출장해 개인 최다승인 8승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은 6.94로 높았다. 또 다른 선발 자원 송승준이 있지만 만 39세의 나이가 부담스럽다. 최근 하락세를 타며 선발보다는 불펜으로 기용되는 빈도가 잦아졌다. 노경은 놓친 롯데, 신인들에게 기대 지난 시즌 선발진 평균자책점 5.67로 10개 구단 중 9위를 기록한 롯데로서는 고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양상문 롯데 감독은 이 같은 난관을 ‘오프너’ 전략으로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오프너’는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템파베이가 유행을 일으킨 전술로, 불펜 투수를 첫 번째 투수로 내보내 경기 초반을 소화하게 하는 운용법이다. 양 감독은 구위는 좋지만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는 투수들을 ‘오프너’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잠재력을 가진 선발투수 자원들에게 기회를 부여해 성장을 꾀한다. 양 감독은 강속구 투수 장시환을 포함해 2017년 신인 윤성빈, 선발 경험이 있는 박시영 등을 후보군에 올리고 있다. ‘투수 조련사’라고 불린 양 감독 아래에서 한 명이라도 잠재력이 터진다면 롯데는 다시 도약을 노려볼 수 있다. NC는 지난 시즌 투타 기록에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잘 못치고, 잘 못던졌으니 승수를 쌓을 수가 없었다. 특히 투수진은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피로가 누적된 불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2017시즌에는 구원진 평균자책점 4.32로 이 부문 1위인 두산(4.31)에 이어 강한 불펜을 자랑했던 NC였다. 그러나 2018시즌 NC의 불펜진 평균자책점은 5.53으로 10개 구단 중 7위까지 떨어졌다. 선발진도 마찬가지다. 대만 출신으로 KBO리그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왕웨이중은 잦은 부상 탓에 7승(10패)을 올리는 데 그쳤고, 로건 베렛도 6승만 올린 채 한국과 작별했다. NC에서 가장 많은 승수를 쌓은 건 좌완 불펜인 강윤구(7승5패)일 정도로 선발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NC는 새 시즌을 맞이하면서 이동욱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특히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로 발탁된 손민한 코치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05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는 등 현역 시절 업적을 쌓은 손 코치는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디며 ‘자율 야구’를 철학으로 삼았다. 선발부터 불펜까지 모두 스프링캠프에서 경쟁을 치러야 한다. 특히 NC는 4년 총액 125억원을 들여 FA 최대어 양의지를 영입해 안정적인 안방을 구축했다. 이동욱 감독은 “양의지가 포수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젊은 투수들이 안정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양의지의 역할은 포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의지는 지난 시즌 3할5푼8리로 타율 부문 2위에 올랐다. 이호준 타격코치는 이미 양의지를 중심타선에 배치해 둔 상태다. 여기에 외국인 타자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백업으로 안방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NC는 2019시즌부터 새 야구장에서 야구를 한다. 높아진 새 마운드와 특급 FA를 앞세워 관중 몰이를 할 계획이다.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10년의 ‘와신상담’ 끝에 명예회복 나선 ‘스잔’ 김승진
2005. 11. 01 연예
“무대에 다시 섰을 때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고교생 가수로 80년대 가요계를 강타한 가수 김승진이 컴백했다. 박혜성과 함께 80년대를 대표하는 꽃미남 가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후 그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좌절을 반복하며 재기를 노린 그가 10년 만에 새 음반을 들고 양지로 걸어 나왔다. 데뷔 20년 맞은 80년대 청춘 아이콘 류승범, 임은경, 공효진 주연의 영화 ‘품행제로’는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겐 빛 바랜 앨범 같은 영화다. ‘아하’와 ‘듀란듀란’을 들으며 ‘롤라장’을 누비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잠자리’ 안경을 쓰고, 앞머리를 동글동글 말아 내리며 동류의식을 느끼던 청춘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빠질 수 없는 논쟁의 불씨가 있었다. ‘품행제로’에서 공효진과 임은경이 그랬듯이 ‘김승진이 멋있냐, 박혜성이 멋있냐’ 혹은 ‘스잔이냐, 경아냐’ 하는 문제는 10대 여학생들에겐 언제나 격렬한 토론 주제였다. “그 영화 저도 봤죠. 너무 웃겨서 한동안 배를 움켜쥐고 웃었어요.(웃음) 정작 저는 혜성이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어차피 스타일이 너무 다르잖아요.” 80년대 청춘 아이콘 김승진. 그는 어려서부터 ‘가수’ 이외에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여 유치원 때부터 각종 어린이 콩쿨에 나가 입상하곤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음악적으로 조숙한 편이어서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산울림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팝송을 듣기 시작했고 집에 마이크까지 설치해놓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그럼 가수를 해보라”고 권하셨지만 아버지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음반을 갖다 버리시면서 반대하셨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봤고 당시 유행하던 음악다방에 ‘고교생 가수 김승진’이라는 수식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고 주말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학교 끝나고 서둘러 종로 일대 음악다방으로 달려가면 김승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내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자 ‘젊음의 행진’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고, 그것을 계기로 방송에 데뷔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그에게 데뷔 20년이 되는 해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음반을 내기 위해 줄곧 녹음만 반복했다. 될 듯 될 듯하다가도 매번 뜻하지 않은 악재가 겹쳤고 그때마다 음반 발매는 좌초됐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녹음만 10년’이란다. 그런 그가 드디어 10년간의 녹음을 마치고 정식으로 음반을 발매했다. 7집 「무사지심」이다. 단돈 5천원 들고 집 나와 10년 동안 ‘떠돌이’생활 흐른 세월만큼 그도 변했다. 여리고 앳된 이미지로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겐 구릿빛 피부의 김승진이 낯설 수도 있다. 달라진 외모만큼 음악적 색채도 낯설다. 그렇지만 18세 소년은 어차피 미완의 존재였을 뿐 현재의 모습이야말로 인간 김승진의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아요. 어떻게 지내긴요. 꾸준히 음악 했죠. 음반이 나오지 못해서 그렇지… 하긴 지난 10년은 제가 생각해도 괴로운 나날이었어요. 1995년에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달라고 해서 1억 5천만원을 지원받아 음반을 제작했어요. 일본에 건너가 실력 있는 뮤지션과 손을 잡았죠. 좋은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볼 욕심에 의욕도 앞섰구요. 그러다가 IMF가 터졌어요. 돈은 떨어지고 음반 제작은 흐지부지되고…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더군요. 수중에 남은 단돈 5천원을 들고 바로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말 그대로 ‘떠돌이’로 지낸 거죠.” 집을 나온 직후 가수 김완선의 녹음실 옥탑방에서 얼마간 신세를 졌다. 여름이면 한증막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술에 찌들어 살다시피 했다. 보다 못한 후배 작곡가가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해 그 집으로 거처를 옮겨서 또 얼마간을 지냈다.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고 또다른 친구집에 얹혀살기도 했다. 그러나 녹음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한 회사가 제공하는 빌라에 들어가 살다가 계약이 틀어지면 다시 나오고… 그렇게 그의 떠돌이 생활은 계속됐다. 어린 나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승진에게 좌절의 시간은 남들 배 이상의 고통이었다. 무작정 집을 나온 뒤 돈이 없어 빵 몇 조각으로 며칠을 버틴 적도 있고 편의점에서 찐 달걀 하나로 허기를 달랜 적도 있다. 누군가 그런 자신을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했고, 비참한 기분에 빠져 술 없이는 잠 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이었다. 그런 아들 때문에 어머니 눈가엔 눈물 마를 날이 없었고 아버지와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무엇보다 사람들의 배신이었다. 사람을 잘 믿는 천성 탓에 사기 아닌 사기도 자주 당했다. 2003년에는 록그룹 ‘미카엘 밴드’를 결성해 재기를 노렸지만 홍보를 담당하던 후배가 공금을 가지고 달아나는 바람에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악재는 끊이지 않고 그의 곁을 맴돌았다. “저는 성격상 여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사람들한테 잘 해주려 애쓰는 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그땐 잘 몰랐죠. 좋을 때는 서로 좋지만 잘 안 될 때는 모른 척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라는 걸 지난 10년 동안 서서히 깨달았어요.” 내공 있는 음악으로 돌아온 김승진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노숙자 출신 CEO로 유명한 에스보드의 강신기 사장을 만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한 것. 강사장 역시 사업이 부도로 망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뒤 사람들의 질시와 편견 속에 벼랑 끝까지 간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김승진을 이해해주었다. 단 세 번의 만남 후에 뮤직비디오를 찍으라고 선뜻 3천만원을 건낸 것도 그런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앨범은 10년 동안 1년에 2곡 꼴로 녹음한 노래를 비롯해서 ‘유리창에 그린 안녕’ 리메이크 버전이 수록돼 있어요. ‘스잔’도 열여덟 살 때 부른 버전 그대로 다시 실었구요. 사실 너무 민망해서 듣기 괴롭지만 지금까지 저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신 팬들을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전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예요.” 타이틀곡 ‘무사지심’은 무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록 발라드 곡. 드라마틱한 곡조 때문에 한번만 들어도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이 노래 외에도 ‘회상’ ‘All for you’등 앨범에 수록된 신곡 모두를 뮤지션 김준선이 작사작곡했다. 김준선은 1990년대 초 연세대 철학과 재학 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를 불러 가수로서도 인기를 끈 인물. 이후 프로젝트 그룹 ‘컬트’와 ‘뷰투’등을 결성해 ‘너를 품에 안으면’ 등의 히트곡을 내기도 한 역량 있는 뮤지션이다. 김승진의 이번 앨범은 그의 노련한 작곡 솜씨가 세련된 편곡과 함께 더욱 돋보이는 음반이다. 김승진 역시 세련된 기교와 창법으로 사뭇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준다. 그 자신 일찍부터 제이팝에 관심이 많던 탓에 일본의 록 발라드풍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아닌게아니라 이 앨범을 일본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란다. “무대에 다시 서니 일단 기분이 너무 좋더군요. 뭐랄까…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바로 여기 있어야 했는데 그동안 너무 오래 딴 곳에 있었구나 하는 기분…. ” 짧지 않은 좌절의 시간.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소외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건 아예 그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음악은 인간 김승진의 본질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각오라… 글쎄요. 이번엔 오히려 담담합니다. 서너 번 깨지다가 네번째로 음반 녹음을 할 땐 각오가 정말 대단했죠. 하지만 그렇게 열두 번을 꺾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경지를 넘어섰지요. 각오라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담담하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나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이젠 저도 철 좀 들어야죠.(웃음)”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박형주 장소 협조 / 모이라이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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