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185 건 검색)
- 검찰 ‘성착취’ 공소 사실 낭독만 30분…법정 선 ‘목사방’ 무표정
- 2025. 03. 10 20:39사회
- ... 포함한 234명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가 피해자들에게 자신을 목사라고 부르도록 해서 텔레그램 채널이 ‘목사방’으로 불렸다. 검찰은 공판에서 30분에 걸쳐 김씨에...
- ‘공소사실 낭독만 30분’···역대 최대 성착취 사건 ‘목사방’ 김녹완 첫 재판
- 2025. 03. 10 18:15사회
- ... 234명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김녹완이 피해자들에게 자신을 ‘목사’라고 부르도록 해서 이 텔레그램 채널은 ‘목사방’이라고 불렸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30분에...
- “전광훈·손현보 목사, 엉터리 설교로 성도들 선동 말라”
- 2025. 03. 02 21:16사회
- ... 향해 “목사를 사칭하고 성도를 선동하는 일을 멈추라”고 했다. 그리고 “기독교 고신총회는 손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하 목사는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 전광훈손현보개신교목회자극우화
- “전광훈·손현보는 선동 멈춰라”···‘극우화 경계’ 목소리 모으는 목사들
- 2025. 03. 02 16:26사회
- ... 사칭하고 성도를 선동하는 일을 멈춰라’고, 손 목사에 대해선 ‘기독교 고신총회는 손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하 목사를 지난 2일 전화로 만났다. 하 목사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 전광훈손현보개신교목회자극우화
스포츠경향(총 198 건 검색)
- ‘탐정들의 영업비밀’ 김풍 “인류애가 사라져”···남편도, 아내도 지옥으로 떨어뜨린 ‘김목사’ 정체는?
- 2025. 02. 04 20:28 연예
- 채널A 채널A 생활밀착형 탐정 실화극 ‘탐정들의 영업비밀’을 찾은 팝 칼럼니스트 겸 ‘대북 전문가(?)’ 김태훈이 남편도, 아내도 지옥으로 떨어뜨린 안타까운 사연을 들여다봤다. 지난 3일 방송된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는 ‘베테랑 탐정’ 백호 탐정단마저도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혀를 내두른 이번 의뢰가 공개됐다. 의뢰인은 “25년 전 헤어진 아들을 찾고 싶은데 이름과 얼굴도 모른다”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탐정단은 의뢰인의 인생사를 짚어봤다. 의뢰인은 어린 시절 천애고아로 살았던 삶을 털어놨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며 12살에 혼자가 된 의뢰인은 봉제 공장, 식당 주방, 다방 주방 등을 전전하며 살았고 온갖 폭행과 가난 속에서 고통받았다. 그러다가 중매로 한 남자를 소개받았고,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의뢰인은 만남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 남자와 3번만의 만남뿐인 상태에서 강제로 혼인신고를 당하며 지옥 같은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의뢰인에 따르면 시어머니는 중매자에게 소개비를 지불한 상태였고, 때문에 결혼을 빨리 성사시키기 위해 의뢰인을 끌고 가 혼인신고를 강제로 시켰다. 이후 의뢰인은 “잠자리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시댁 식구들에게 감시당했고, 임신하고 나서는 바람을 피웠다는 의심 때문에 ‘낙태하라’는 협박 속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결국 임신 9개월 차 시어머니에게 강제로 끌려가 이혼을 당했다. 의뢰인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시댁에서 지우게 하려던 아이를 유도분만으로 출산한 고통의 기억을 떠올렸다. 출산 후 정신을 차린 의뢰인은 아이를 찾았지만, 병원 관계자는 아이가 아들이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 행방에 대해선 모두 “모른다”고 답변했다. 시댁에 가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25년이 지났지만 의뢰인은 단 한 순간도 아이를 잊지 못했다며 마음아파하고 있었다. 건강이 많이 나쁘다는 진단을 받은 의뢰인은 죽기 전 “꼭 지키고 싶었는데 못 지켜줘서 한이 맺힌다. 어떻게 사는지만이라도 보고 싶다”며 도움을 구했다. 정보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 백호 탐정단은 의뢰인의 이혼 자료 속에 있는 전남편의 정보를 따라 탐문에 나섰다. 우선 탐정단은 과거 전남편이 뱃일을 했다는 단서로 항구 근처를 수소문했다. 그 결과 전남편이 여전히 뱃일을 하고 있고, 재혼했다가 이혼한 상황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게다가 그의 두 아들 중 큰아들이 의뢰인이 찾는 아들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정보까지 포착했다. 단서 하나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백호 탐정단의 ‘25년 전 잃어버린 아들 찾기’ 사건은 계속된다. 실화 재구성 코너 ‘사건 수첩-결혼은, 미친 짓이다’에는 ‘뇌섹남’이자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출격했다. 이번 사연 속 의뢰인은 헌신적인 아내 덕분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아내는 아픈 시어머니 간병까지 자처할 만큼 의뢰인 가족에게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의뢰인은 시도 때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정신을 차려보면 온몸에 자신도 모르는 상처들이 생겨 있었다. 이에 아내는 “술 마시고 죽고 싶다며 물건 부수고 화장실에 목을 맸다”며 남편의 정신이상 상황에 대해 고발했다. 결국 의뢰인은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자해 충동 고위험군 진단으로 강제 입원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퇴원 신청으로 의뢰인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의뢰인의 신분증, 현물, 통장, 인감도장을 챙겨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의뢰인은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와 아내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탐정사무소에 부탁했다. 추적 끝에 탐정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빼돌린 모든 돈을 ‘김 목사’라는 누군가에게 바치고 있다는 상황을 알아냈다. 아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인지 의심이 커지던 가운데, 김 목사가 탈북자를 돕는 ‘브로커’로 활동 중인 인물이며 아내 또한 탈북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내는 탈북 당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세 살 딸을 중국에 놓고 오며 생이별했다. 딸을 마음에 묻고 살려던 아내는 친한 탈북민 언니와 김 목사를 통해 딸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비용 1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의뢰인이 미친 것처럼 상황을 조작하고 재산을 빼돌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찾았다는 생이별한 딸은 전혀 관련이 없는 아이였다. 두 사람은 아내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탈북민들을 속이며 이미 10억원어치 사기를 친 악질 중의 악질 사기꾼이었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사기꾼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아내와 의뢰인 모두 각자의 지옥 속에 남겨졌다. 김풍은 “인류애가 사라진다”며 악질 사기꾼들에 경악했다. 김태훈은 “목숨 걸고 탈북자를 구출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그분들은 ‘갑자기 큰 돈을 요구하면 주지 말라’고 한다”며 “큰 돈을 갖기 위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버리거나 신고하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생활밀착형 탐정 실화극 ‘탐정들의 영업비밀’은 매주 월요일 밤 9시 30분 채널A에서 방송된다.
- ‘트리거’ 이승훈, 두얼굴 목사 파격 변신
- 2025. 01. 16 09:43 연예
- 이승훈. 에일리언컴퍼니 배우 이승훈이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에서 개성 강한 인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는 이 꽃 같은 세상, 나쁜 놈들의 잘못을 활짝 까발리기 위해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보는 지독한 탐사보도 프로 놈들의 이야기. 출연하는 작품마다 남다른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이승훈은 두 얼굴을 가진 김 목사 역을 맡아 ‘트리거’의 분위기를 정교하게 다질 핵심 캐릭터로 활약할 예정이다. 김 목사는 믿음의 집을 운영 중인 목회자로 파마머리에 도드라진 눈썹 문신까지 외모부터 범상치 않는 비주얼을 소유한 인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악랄한 캐릭터로 극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임팩트 강한 캐릭터다. 이승훈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채로운 변신을 선보인 만큼 신앙 뒤에 숨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김 목사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비주얼부터 표정까지 강렬한 카리스마에 담아 선보일 예정이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이승훈은 드라마 ‘별순검 시즌2’, ‘더 킹 : 영원한 군주’, ‘모범형사’, ‘붉은 단심’, 영화 ‘왕의 남자’, ‘복면달호’, ‘부러진 화살’, ‘검사외전’, ‘서울대작전’, ‘소년들’, 연극 ‘대머리 여가수’, ‘백조의 호수’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서 깊은 내공을 선보인 바 있어 ’트리거’에서의 활약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승훈의 파격 변신으로 작품의 다채로움이 더해진 ‘트리거’는 오직 디즈니+에서 공개되며, 매주 두 편씩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만나볼 수 있다.
- ‘다큐인사이트’ 배우 장혁, ‘국가유산순례 2부’ 프레젠터 참여···1702년 제주 목사의 화첩 ‘탐라순력도’ 재조명
- 2024. 12. 31 21:23 연예
- KBS “한 점 조그만 땅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땅은 외져 아름다운 꽃이나 기이한 풀들이 많다 절제사가 방어의 실태와 군민의 풍속을 살피는데 이를 순력이라 한다” (탐라순력도 서문) 배우 장혁이 프레젠터로 참여한 1702년 제주의 생생한 풍경과 이야기를 담은 ‘다큐인사이트 국가유산 순례 2부–1702년 그날, 탐라순력도’가 2024년 12월 31일 오후 10시 KBS 1(일부지역 자체 방송)에서 방송된다.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 그해 가을, 도내 고을을 둘러보기 위해 순력을 떠난다. 21일 동안 이어진 순력길엔 화공이 동행해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18세기 제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41장의 그림. 조선시대 지방관의 순력을 기록한 화첩은 ‘탐라순력도’가 유일하다. 예로부터 빼어난 풍광으로 유명한 화산섬 제주. 제주목사 이형상은 부임 후, 순력을 하며 주요 명승지를 탐방하는데, 그 장면이 탐라순력도에 선명하고 세밀하게 담겼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 아름다운 천지연폭포, 정방폭포는 1702년 제주를 방문한 이형상 목사에게도 신선이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KBS 1702년,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천지연 폭포에선 폭포를 사이에 두고 활쏘기 시합을 벌이고, 뱀의 전설이 깃든 김녕굴에선 횃불을 들고 용암동굴의 비경을 눈에 담았다. 3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날의 현장. 프리젠터 장혁을 따라 제주의 비경을 새롭게 들여다본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섬. 동북아 해상의 길목에 자리한 제주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해안을 따라 9개의 진성을 쌓은 이유다. 제주목사는 관찰사의 역할을 대신했는데, 각 고을의 방어시설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탐라순력도’에도 9개의 진성에서 군사와 물자를 검수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런데 ‘탐라순력도’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뜻밖의 사료가 발견된다. 배접지로 쓰인 종이가 놀랍게도 17세기 제주지역 속오군의 신원과 소속을 기록한 명부였던 것! 군적부에는 군인들의 나이와 출신지뿐 아니라, 키, 수염과 흉터 등 신체 특징이 매우 상세히 기록돼 있다. ‘탐라순력도’가 조선시대 제주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귀한 단서를 선물해준 셈이다. 따뜻한 남녘의 섬에서는 육지에서 나지 않는 특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목마장을 운영한 제주는 대표적인 말 생산지. 임금이 타는 어승마도 제주에서 올라갔는데 그 이름을 딴 오름이 바로 ‘어승생’이다. ‘탐라순력도’ 중 말을 한 곳으로 몰아와 점검하는 ‘산장구마’의 기록을 보면, 이날 동원된 군인과 목자가 총 6천5백여 명에 이른다. KBS 궁에서 제수품으로 쓰는 귤도 제주에서 매년 진상했는데, 그 가짓수만 무려 12종류다. 제주목 관아 망경루 앞마당에서 귤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장면이 ‘탐라순력도’에 담겨 있다. 제주목사가 귤의 상태를 일일이 검수하고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선 모습에서 긴장감이 감돌던 그날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KBS
- 배우 정민성, 영화 ‘원정빌라’ 출연···미스터리한 목사 역
- 2024. 12. 04 07:22 연예
- 토탈셋.에이픽엔터테인먼트 배우 정민성이 영화 ‘원정빌라’ 에 합류했다고 3일전했다. ‘원정빌라’(제작 (주)케이드래곤, 감독 김선국)는 교외의 오래된 빌라를 배경으로, 불법 전단지로 촉발된 이웃 간 갈등이 광기 어린 공포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현우, 문정희, 방민아가 주연을 맡았다. 정민성은 극중 기천성령교회의 담임 목사인 문수 역을 맡았다. 문수는 성도들을 섬세하게 챙기는 목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미소 뒤 숨겨진 모습을 지닌 인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정민성은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고박사를 비롯해 ‘마더’, 디즈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KBS2 ‘개소리’, TV조선 ‘DNA러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온 정민성은 ‘원정빌라’를 통해 종교인으로 변신, 새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을 이야기 속에 몰입시킬 예정이다. 정민성은 “2024년의 마무리를 ‘원정빌라’ 개봉과 홍보로 보낼 수 있어 기쁘다.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쁘고 내년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인사드릴 예정이니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 ‘원정빌라’는 오는 4일 개봉된다.
주간경향(총 32 건 검색)
- ‘김건희 명품가방’ 최재영 목사, 검찰 수심위 신청(2024. 08. 23 13:39)
- 2024. 08. 23 13:39 사회
-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가 8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 여사 명품 가방 검찰 수사 관련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가방 등을 건넨 최재영 목사가 8월 23일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 목사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행위가) 직무 관련성이 없다거나 청탁이 아니라는 식으로 검찰이 판단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상식에 반하므로 납득할 수 없다”며 “제가 (김건희 여사에게) 준 선물이 감사의 표시, 만나기 위한 수단이라는 명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탁의 의미가 섞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처음부터 통일운동, 남북 문제, 대북정책 등을 자문하고자 한다고 만남 목적을 밝혔고, 심지어 통일TV 부사장 직책도 맡았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이 부인될 수 없다”며 “저 자신은 분명 청탁이라고 말했고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검찰에서도 진술한 바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심의하는 기구다. 심의 의견은 수사팀에 권고적 효력을 갖는다. 앞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8월 22일 정기 주례 보고에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 수사 결과 김 여사와 최 목사에게 혐의점이 없다고 이원석 검찰총장에 보고했다. 이 총장은 수사팀의 판단을 받아들여 수사 결과를 그대로 승인하거나,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자 외부 의견을 듣기 위해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
- 법원, ‘성소수자 축복’ 이동환 목사 정직 무효 소송 각하(2024. 08. 21 13:08)
- 2024. 08. 21 13:08 사회
- 이동환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영광제일교회 목사가 8월 21일 ‘정직 2년 징계’의 무효를 확인해달라며 낸 소송이 각하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법원이 성소수자에 축복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 처분을 받은 목사가 낸 징계 무효 소송을 각하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김형철 부장판사)는 8월 21일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가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상대로 낸 총회재판위원회판결 무효확인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징계 처분이 교회법에 따라 적법한 게 아니거나 징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확정된 판결을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단체의 조직과 운영은 최대한 보장돼야 하므로 각종 결의나 처분이 당연 무효라고 판단하려면 일반 단체의 결의 처분을 무효로 돌릴 만한 하자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자가 매우 중해야 한다고 대법원에서 보고 있다”며 “이런 법리에 비춰볼 때 정직 판결의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무효라고까지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2019년 8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의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일부 목회자들에게 동성애 옹호 행위로 고발당했다. 2020년 10월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이 목사가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 처분을 내렸다. 상소심 재판에서도 정직 2년이 유지됐다. 감리회 재판은 2심제로 진행된다. 이 목사는 정직 처분이 부당하다며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목사가 2020년 12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재차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의식을 집례했다는 등의 이유로 이 목사에게 출교 판결도 내렸다. 이 목사는 지난 3월 이 판결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법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 출교당한 이동환 목사 “또 다른 육우당 없도록”(2023. 12. 15 17:00)
- 2023. 12. 15 17:00 사회
- 감리회 “성소수자 축복은 교회법 위반” 교단 안팎서 반발 목소리 터져나와 “교회가 어떤 그리스도인을 죄인이라고 낙인을 찍고 이런 낙인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끊었다면, 과연 하나님은 이 핏값을 누구한테 물으실까요.”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42)는 지난 12월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토로했다. 앞서 이 목사는 교회 재판에서 출교형을 선고받았다. 교단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이 목사가 성소수자를 위해 펼친 각종 활동이 교회법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지난 12월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이번 선고를 두고 시민사회는 물론 교단 내에서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리회 소속 목회자와 신학생 등의 집단 움직임도 감지된다. ■석연찮은 재판 진행 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법원에 해당)는 지난 12월 8일 이 목사에게 출교를 선고했다. 감리회에서 아예 나가라는 뜻으로,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다. 재판위원회는 이 목사가 2020년 12월~2022년 7월 여러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하거나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든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이런 행위가 교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 제3조 제8항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정직, 면직, 출교 등 중징계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재판위원회는 이 목사가 ‘교회를 모함 및 악선전’한 죄도 범했다고 판단했다. 이 목사가 2021년 7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의 인권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됐다”고 밝힌 내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위원회는 판결문에 “종전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대해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음에도 또다시 동일한 범과를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엄한 징계가 필요하다”라며 출교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이 목사는 2019년 8월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2022년 10월 정직 2년을 처분받은 바 있다. 이 목사는 예상한 결과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감리회 목사와 장로 등이 이 목사를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기소 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돼 지난 8월 재판위원회는 공소기각을 결정했다. 하지만 검찰에 해당하는 심사위원회는 초기 절차를 생략하고 지난 9월 이 목사를 다시 기소했다. 사건번호 또한 기존과 같았다. 또 교회법에는 목사와 장로가 고발할 수 있는 범과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동성애 관련 조항은 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위법한 기소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2014년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재판위원회는 그러나 선고를 내리면서 이런 절차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 진행 중에 이 목사를 기소한 심사위원회 측이 아닌 고발인이 선임한 변호사가 사실상 심사위원회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목사 측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재판위원회는 “교회 재판의 특수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목사는 재판위원들과 심사위원장이 점심시간에 함께 커피 등을 들고 이동하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한다. 이 목사는 “재판위원장이 ‘이 목사가 교리와 장정을 어기지 않았으면 이렇게 재판을 열 일도 없지 않느냐’고 말한 적도 있다”라며 “재판위원장은 이미 죄가 된다는 예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했다. 이 목사 측은 이러한 재판 절차상 문제를 들어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이번 징계 등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이 목사는 “종교 내 일이라고 하지만, 특정 정체성에 대해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실제 행동까지 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누가 또 쫓겨날지 모를 일이다. 차별을 일삼는 집단에 대해서 사회 법원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감리회 내에서 이번 재판 결과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리회 소속 목회자와 신학생 등 약 50명은 지난 12월 11일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이번 판결이 감리회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교회 내 만연한 수구 보수적인 분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해당 교회법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대규모 기도회를 추진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 목사는 “지금 감리교에 대한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감리교는 시민들이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출교 선고에 항소할 방침이다. 감리회는 2심제다. 항소를 위해서는 1심 재판비용과 항소 때 필요한 기탁금을 내야 한다. 모금을 진행 중이다. ■기독교인 성소수자 육우당, 18세에 자살 이 목사는 지난 11월 30일 결심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하며 고 육우당(본명 윤현석)을 언급했다. 육우당은 기독교인이자 성소수자로, 2003년 4월 만 18세 나이로 자살했다. 육우당은 필명으로 ‘술·담배·수면제·파운데이션·녹차·묵주 등 여섯 개가 유일한 친구’라는 뜻이다. 그는 시조 시인을 꿈꿨다. 2003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토록 권고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며칠 뒤 육우당은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유서에 적은 세 가지 소원 중 하나가 ‘동성애자 해방’이었다. 이 목사가 주도해 2022년 4월 설립한 단체인 ‘Q&A’(큐앤에이)의 창립 선언문에도 육우당이 등장한다. “우리는 손가락질당하는 이들, 쫓겨난 이들, 고난당하는 이들, 억울한 이들의 친구, 고 육우당의 친구였던 예수를 기억하며 빵과 잔을 나눕니다.” 이 목사는 “육우당이 쓴 시나 글을 보면 한국 교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담겨 있다”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큐앤에이를 설립한 것”이라고 했다. 2019년 4월 25일 서울 중구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고 육우당 16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예배당 뒤 단상 위에는 국화꽃과 육우당 등의 유품이 놓여 있다. 이준헌 기자 이 목사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교회 재판을 받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 우울감에 따른 수면장애 등을 앓았다. 이 목사는 재판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당하고 살아가는지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고, 앨라이(ally·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인데도, 이렇게 공격을 당해 힘들고 버거웠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독교인이면서 성소수자는 사회와 교회의 편견, 자기 안의 검열 등 삼중의 억압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존재의 전부를 의탁했는데, 교회가 너의 존재는 죄라고 말한다. 그때 이들은 ‘정말 나는 잘못된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라며 “이런 다층적인 억압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짐작도 못 하겠더라”고 했다. 큐앤에이는 한 달에 한 번 성소수자들이 모여 함께 예배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를 떠난 이들이 함께한다. 이 목사는 “성소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회 설교 중에 긴장을 많이 한다고 한다. 동성애는 죄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등의 발언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한 것”이라며 “큐앤에이에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마음 편히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추진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목사는 “목회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들으러 오려면, 비난이나 처벌 등을 감수하거나 각오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나 같은 사례를 보면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위축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동성애자는 입학 불허 다른 교단도 성소수자 차별 규정이 존재한다. 지난 11월 24일 ‘개신교 3개 교단 성소수자 차별 법·제도 대응 모색’ 토론회 내용을 보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2014년부터 매년 동성애와 퀴어문화축제 개최,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동성애는 죄이며 치유의 대상’이라는 관점이다. 2017년 9월 헌법 시행 규정에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이런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그해 총회에서는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교단 소속 7개 신학대 입학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서울장신대, 호남신학대, 장로회신학대 등의 정관이나 학칙에 해당 내용이 반영됐다. 일부 대학은 모집요강에도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엄기봉 목사(광주 옥합교회)는 “신학교 입학부터 목사 안수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조차 못 하게 신학교의 눈과 귀, 입을 막았다”라며 “지금 신학교에서 ‘성소수자’, ‘동성애’, ‘퀴어’, ‘차별’이란 말은 입 밖에 내기만 해도 붙잡혀 갔던 유신 시절의 ‘유신’과 같은 말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어 “차별을 강요당한 교역자와 함께하는 교회는 차별하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고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서성일 선임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대표적인 진보 교단으로 평가받아 왔다. 성소수자 등을 직접 차별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2020년쯤부터 교단 내 보수세력의 활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2020년 12월 ‘차별금지법 반대 대책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2022년 7월 ‘동성애·동성혼 반대 대책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3월에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이 2월에 별세한 고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의 추모제를 위한 대관을 허가하지 않았다. 교단 내에서 성소수자 관련 발언과 공연을 이유로 대관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나오면서다. 한신대는 임 목사의 모교다. ‘성소수자의 벗’으로 불린 임 목사는 생전에 각종 압박을 받았다. 예장통합 등 8개 교단의 이단대책위원회는 2017년 9월 임 목사가 이단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일부 교단은 실제로 총회에서 임 목사의 이단성을 결의하기도 했다. 김수산나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그간 기장 내 반동성애 세력에 똑같이 대응을 하면 외려 저들을 더 결집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들이 영향력을 키워가면서 조직적 대응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라며 “성소수자 이슈를 교단 내에서 녹여낼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등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동환감리회성소수자축복
- ‘성소수자 축복’ 이동환 목사 재판, 석연찮은 공회전(2023. 08. 04 11:21)
- 2023. 08. 04 11:21 사회
- ㆍ심사위 하자로 공소 취소에도 기각은 보류 ㆍ교단 내 재판으로는 문제 해결 한계 드러내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와 ‘이동환 목사 재판 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 26일 서울 종로구 감리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 목사의 기소를 규탄하고 있다. / ‘이동환 목사 재판 대책위원회’ 제공 재판은 한 달 동안 공전을 거듭했다. 심리는 한 차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교회법 등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조치가 자의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법체계와 논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재판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42) 얘기다. 이 목사는 ‘동성애 찬성·동조’를 금지한 ‘교리와 장정’(교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 과정에서 기소 단계에서의 절차상 하자가 발견됐다. 재판위원회(법원에 해당)는 그러나 3주가 넘도록 공소기각 등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 목사를 기소한 심사위원회(검찰에 해당)가 최근 공소를 취소했는데도 재판위원회는 결론을 보류한 상태다. 재판위원회가 공소기각을 결정하더라도 논란이 정리되는 건 아니다. 심사위원회가 추후 다시 이 목사를 기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 과정을 통해 교단 내 형사사법 체계의 미비함과 여기서 비롯한 문제 해결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동성애 찬성·동조 조항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교회 밖 법원의 개입 필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소 과정의 하자 뒤늦게 파악 감리회 경기연회 심사위원회는 위원 6명 전원 찬성으로 지난 6월 이동환 목사를 기소했다. 심사위원회는 이 목사가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등 성소수자를 위해 펼친 활동을 두고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 교회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목사는 2022년 10월 같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두 번째 기소의 발단은 지난 3월 접수된 고발장이다. 감리회 소속 목사와 장로 8명이 고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심사위원회도 고발 내용을 대체로 인정해 이 목사를 기소한 것이다. 이 목사의 재판은 지난 6월 27일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까지 원활한 심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잡음이 일었다. 우선 심사위원회의 기소장에는 구체적인 혐의 내용이 적시되지 않았다. 이 목사 측이 재판위원회에 항의한 끝에 다시 기소장을 받을 수 있었다. 교회법상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지만 첫 재판부터 일부 변호인과 언론인 등의 법정 입장이 제한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7월 10일 두 번째 재판에서는 재판위원회가 기소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심사위원과 고발인 중 한명이 같은 지방회 소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면 심사위원의 제척 요건에 해당한다.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해당 심사위원은 심사에서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소와 동시에 목사 직임이 정지됐던 이 목사는 임시로 직임이 회복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지난 6월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재판위원회는 하자를 치유할 방법을 살펴보겠다며 2주 뒤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다. 이 목사와 심사위원회, 고발인 측에도 필요하면 의견서를 제출토록 했다. 하지만 세 번째 재판이 열린 지난 7월 24일에도 재판위원회는 이 목사와 심사위원회 측에 다시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다. 결국 지난 7월 31일 재판에서 심사위원회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재판위원회는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향후 재판일정을 다시 통지하거나 판단 결과를 서면으로 전달하겠다고만 했다. 이 목사의 변호인인 박한의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기소 과정의 하자가 발견되면 재판위원회가 그 자리에서 공소기각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굳이 고발인의 의견까지 듣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정하게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라며 “재판위원회가 이번 재판을 민사소송처럼 고발인과 피고발인이 그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사위원회, 다시 기소하나 재판위원회가 공소기각 결정하면 이 목사는 아무런 불이익 없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사안 자체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심사위원회가 이 목사를 다시 기소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심사위원회 측은 지난 7월 31일 공소를 취소하면서도 향후 기소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지를 재판위원회에 묻기도 했다. 이 목사를 재차 기소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교단 내에서 기소를 하기에 앞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고발인은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에 ‘회개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권면서(일종의 내용증명)를 상대방에게 보내야 한다.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고발을 할 수 있다. 이후 화해조정위원회와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비로소 기소에 이를 수 있다. 반면 이 목사 측은 이번 고발 자체가 효력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교회법에는 목사나 장로가 고발할 수 있는 범과를 몇 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동성애 찬성·동조’ 범과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목사 측은 이를 근거로 이번 이 목사에 대한 고발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번 기소와 재판도 목사와 장로의 고발에서 비롯됐다. 이 목사 측은 감리회에 이런 고발권을 두고 유권해석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 목사는 통화에서 “기소로 인해 두 달 정도 목사 직임이 정지됐고 재판에도 계속 출석해야 하는 등 피해를 봤다. 이런 상황에서 심사위원회가 자신의 잘못으로 하자가 발생해 공소를 취소했다면 최소한 유감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달 남짓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판위원장도 모두 3번이나 교체됐다. 특히 고발인 측이 제기한 재판위원장 기피 신청을 교단이 받아들여 논란이 일었다. 교회법 등 근거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재판위원장은 애초 A 목사였다. 하지만 지난 6월 27일 첫 재판이 시작됐을 때 재판위원장은 B 목사로 변경돼 있었다. 고발인 측이 A 목사의 기피를 신청했는데 교단이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 A 목사가 이동환 목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게 기피 신청 이유였다. 두 목사가 감리회 내 목회자 모임인 ‘새물결’에서 활동한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새물결은 감리회 개혁을 요구하며 2017년 창립됐다. 교회법은 그러나 재판위원 기피를 신청할 수 있는 주체를 ‘피고소인’과 ‘피고발인’으로 한정한다. 형사소송법도 법관 기피는 검사와 피고인이 신청할 수 있지 피고소·고발인은 해당하지 않는다. 이 목사 측 변호인단이 이의를 제기하자 A 목사가 다시 재판위원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A 목사가 고발인 중 한명과 같은 지방회에 속해 있는 사실이 파악되면서 재판위원장은 결국 B 목사가 맡게 됐다. ‘이동환 목사 재판 공동대책위원회’는 “재판위원장이 세 번이나 변경된 것은 가히 촌극이라 할 법한 일”이라고 했다. 이동환 목사가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등 참가자를 위한 축복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목사는 이 축복식을 이유로 교단에서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다. / 쥬피터 제공 법원 개입 필요성 보여줘 이 목사와 동성애 관련 문제를 교단 내에서 해결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점이 이번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발인의 재판위원장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명백한 공소기각 사안임에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 점 등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교회 재판은 사회 재판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겪으면서 법정 안보다는 법정 뒤에서 뭔가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앞으로 법원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주목된다. 이 목사는 지난 2월 교단이 내린 정직 2년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목사 측은 동성애 찬성·동조 금지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각종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종교의 자유를 들어 종교단체 내부의 결의와 관련한 사안은 심사를 자제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개인의 특정 권리나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이 존재하거나, 교회 내에서 자율적인 해결이 불가능할 때는 법원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게 판례다. 이 목사 측도 동성애 찬성·동조 금지 조항과 관련한 논란이 교단 내에서 제대로 정리되기 어렵고, 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원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 목사의 이번 교회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징계 무효확인 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8월 30일이다. 소장이 접수된 지 6개월 만이다. 앞서 감리회 측은 법원에 답변서 제출을 미루다가 지난 6월 무변론 선고기일이 잡히자 급히 답변서를 냈다. “추후 소송대리인을 선임해 상세히 다투도록 하겠다”는 한 줄이 전부지만, 답변서를 냈기 때문에 법원은 무변론 선고를 취소했다. 감리회 측은 8월 3일 현재까지 법원에 소송대리인 선임서조차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교회법) 내 제척·기피 관련 내용 제17조(심사위원의 제척) 심사위원은 다음 각 항과 같은 경우에는 제척된다. ①심사위원이 고소·고발한 사건인 경우 ②심사위원이 고소인, 고발인, 피고소인, 피고발인의 친족이나 가족 관계인 경우와 연회와 총회는 같은 지방회에 속한 경우 제18조(심사위원의 기피, 회피) ①피고소인, 피고발인은 심사위원 전원 또는 일부가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될 때에 1회에 한하여 그 이유를 들어 임명권자에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제32조(재판위원 제척 및 기피, 회피) 재판위원 제척 또는 기피, 회피는 제17조(심사위원의 제척)와 제18조(심사위원의 기피, 회피)에 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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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지역 공동체 꿈꾸며 국수 삶는 박상남 목사
- 2014. 11. 03 11:45 화제
- 안산시 선부동 제일종합시장에서는 매달 두 번 국수 잔치가 열린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간 자리였지만, 박상남 목사는 이곳에 어려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안산시 선부2동 제일종합시장 1층 한쪽의 입구. 이곳에서는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점심에 국수 잔치가 열린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부터 학교가 쉬는 주말이라 놀고 있는 아이들, 점심을 놓친 상인들, 오가며 들른 옆 동네 사람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잔칫집처럼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고 간다. 국수를 먹을 자격 조건이나 방법, 지참 서류 따위는 없다. 그냥 당당히 와서 한 그릇 맛있게 먹고 가면 된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뜨끈한 한 끼가 아쉬운 이들의 국수임을, 삼시 세끼 먹는 것이 꽤 고단한 이들의 국수임을 말이다. “진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널리 알려지고 싶지도 않고요. 저희한테 오신다고 했을 때 해줄 이야기도 없고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도 아니고, 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주도하는 일도 아니라 참 난처했어요. 동네잔치도 취재하세요?(웃음)” 인터뷰할 자격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카메라를 어색해하는 사람은 선부동 국수 잔치의 대표격인 박상남(45, 안산 광성교회) 목사다. 안산에 온 지 3년 차 새내기 이주민인 그는 목사라는 직함에서 알 수 있듯 국수 잔치가 열리는 시장 상가의 2층에서 작은 교회를 개척 중이다. 솔직히 교회에서 목사가 주도하는 사회봉사가 특별한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싶었다. 그것도 전국 방방곡곡 방송 정도는 탄 유명한 봉사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현장을 가보니 이곳의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왜 유명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넉넉지 않은 서민들의 동네였지만 모두가 격의 없었다. 보통의 음식 봉사라 하면 음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의 국수 잔치는 줄이 없다. 오전 11시부터 음식이 준비되는데 그저 탁자에 빈자리가 나면 앉아 국수 한 그릇 청하면 그만이다. 끝나는 시간도 손님이 오지 않을 때까지다.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없어 못 먹는 분들이 많으세요. 예전은 다 같이 어려워서 나누는 게, 도움을 조금 받는 게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되는 처지에 놓인 것이 알려지는 게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 됐어요. 먹고살 만해졌다는 건 어쩌면 착시 현상일지 몰라요.” 돕는다는 표현을 극구 꺼리는 박 목사는 교인 30명의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인 자신의 처지가 누구를 도울 입장도 아니라며 웃는다. 하지만 돕지는 못해도 나눌 수는 있다고 했다. “나누자”라고 권할 만한 직함은 되지 않겠냐고도 한다. “저희가 국수 30인분짜리 대용량을 사거든요. 이게 정가가 8천6백원쯤 해요. 이거 다섯 봉지만 삶으면 1백50인분이 나와요. 어마어마하죠?(웃음) 국수 값으로 5만원쯤 드는데 교인들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나 국수를 한 그릇 드셨던 분들까지 서로 ‘다음 국수는 내가 살게’라고 하세요. 순서를 정해서 계획하냐고요? 아니요. 그냥 ‘다음은 내가 살게’ 하면 돼요(웃음).” 요즘은 일곱 봉지를 끓여도 모자랄 만큼 소문이 났고, 국수를 사는 순서도 꽤나 대기해야 한다. 급한 성격 탓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육수도 끓이고, 국수에 올릴 지단도 만들고, 김치도 담가 가져온다. 비록 누군가는 국수를 먹기만 하는 처지에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도자도, 순서도, 체계도 없이, 그러나 언제나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삶아지는 국수를 보며 ‘다음은 내가 살게’를 꿈꾸면서 당당히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교회 이름을 어깨에 두르고 봉사를 하는 교인도 있었지만 시장 상인이나 동네 주민, 국수 잔치의 단골손님까지 한데 어우러져 같이 국수를 삶고, 나르고, 정리하고, 또 맛있게 먹었다. “전도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사죠. 그런데 제가 유일하게 안 하는 설교가 뭔지 아세요? 헌금과 전도예요. 사람들이 이미 잘 아는 이야기를 뭐 하러 해요. 그건 잔소리예요. 전 큰 교회도 꿈꾸지 않아요. 사람들 속에서 ‘함께’가 중요해요.” 돕는 시대가 아닌 나누는 시대여야 한다는 박 목사는 국수를 더 많이 삶는 것보다 더 자주 삶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드러난 자리에서 먹기 부끄러워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편안하게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누는 시대라고 강조하는 그말의 울림이 크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 [‘트로트 엑스’ 화제의 3인방]② 아따, 참말이여! 구자억 목사
- 2014. 07. 08 19:07 연예
-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겄는디, 하느님이 인간이 되셔 이 땅에 오셨다고.” 초록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한 남자가 트로트를 맛깔스럽게 부른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적절한 타이밍에 윙크를 날리는 무대 매너는 베테랑 가수 뺨친다. 목사와 트로트. 낯선 조합이지만 어색함이 없고, 오히려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진다. ‘트로트 엑스’가 낳은 또 한명의 스타, 구자억 목사의 이야기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다 “어휴, 분에 넘치는 결과였죠. 지난 2월 첫 촬영을 시작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살아남을 때마다 ‘우와! 내가?’ 그랬거든요. 사실 파이널 무대는 문자 투표의 비중이 컸잖아요. 쟁쟁한 분들 사이에서 제가 3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전국에 계신 성도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웃음).” 화면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다. 평소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지만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멋을 부렸다는 구자억(35) 목사. 그에게는 상대를 즐겁게 하는 힘이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알아보세요. 한 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분이 차를 세워 창문을 내리고는 ‘어! 목사님 아니십니까?’ 하더라고요. 가던 길까지 멈추셨으니 제가 뭐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아 (무릎을 탁 치며) ‘아따, 맞습니다!’라고 리액션을 해드렸죠. 방송의 힘이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며칠 전엔 편의점에 갔다가 삼각김밥 서비스도 받았는걸요(웃음). 제일 기억에 남는 댓글은 ‘불교 신자인데 목사님 때문에 흔들린다’였어요(웃음).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기분 좋은 댓글들이 오랫동안 남네요.” 사실 그의 인기는 인터뷰 전 섭외 단계에서 이미 짐작했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구자억 목사, 교회 어디?’라는 질문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온 뒤 지난해 부천 대장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그는 현재 25사단 상승교회에 파송돼 목사로 재직 중이다. 동시에 정규 앨범 3장, 싱글 앨범 5장을 낸 6년 차 트로트 CCM(기독교 음악) 가수다. “진리는 단순한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진리가 종교라는 틀을 거치면서 무겁고 딱딱해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트로트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됐어요. 첫 무대에서 불렀던 ‘참말이여’도 만약 예수님께서 유대 땅이 아닌 전라도에 오셨으면 어떠셨을까, 사투리로 이야기하셨겠지, 라는 상상을 하면서 가사를 쓴 거였어요. 아! 실제 고향은 경기도 광명시예요(웃음).” 처음 트로트를 접한 건 다섯 살 때. 부부싸움을 하고 속상해하던 어머니가 나훈아의 노래 부르는 모습에 웃는 것을 본 뒤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트로트의 매력에 빠졌다. “누가, 무엇이 어머니를 웃게 하는 거지, 하고 봤더니 나훈아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라고요. 그 뒤로 저도 혼자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어요. 뭐랄까, 트로트가 제 몸에 밴 것 같아요. 찬송가도 트로트처럼 불러요(웃음). 제딴에는 정성스럽게 부른다, 하면 트로트가 되더라고요.” 트로트는 나의 힘 늘 ‘꿈을 갖고 멋지게 살라’라고 설교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즈음, ‘트로트 엑스’의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다. 본인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렇지만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처음 그가 트로트 찬양을 시작했을 때에 그랬듯, 아니 그보다 더 큰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종교는 민감한 부분이니까요. 목사이기 때문에 악성 댓글의 수위가 더 셌던 것 같아요. 성경 말씀으로 비난하는 분들도 계셨고…. 어떤 분은 ‘지금 크게 잘못 가고 있다’라며 저를 만나야겠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젊은 목사가 연예인 병에 걸렸다’라며 혀를 차셨어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꺼림직한 게 있었다면 민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돈이나 명예, 인기를 위해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요. 제 스스로 즐겁고 떳떳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악의적으로 보는 분들보다 좋게,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가장 떨렸던 순간은 역시나 첫 무대. 초반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심사위원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취소’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꿋꿋한 척했지만 너무 창피했어요.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 했죠. 내가 뭘 틀렸나, 윙크를 괜히 날렸나, 그러면서요(웃음). 입이 바짝바짝 마르더라고요. 다행히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오직 교회밖에 몰랐던 그에게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생각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사고의 장을 넓혀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제야 밝히는 힘든 점도 있었지만. “같은 팀이었던 인디밴드 레이지본이나 외국인 참가자 로빈과 생각을 나누면서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다만 힘들었던 건 전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해야 하는데, 이 친구들은 늘 늦게 연습하는 거예요. 살인적인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어요. 또 레이지본 친구들은 뭐랄까, 음악색도 뚜렷하고 개성이 있더라고요. 조금씩 친해지면서 말을 편하게 하게 됐는데, 어찌나 거칠던지. 처음엔 깜짝깜짝 놀랐어요(웃음).” 그에게 음악은, 트로트는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다. 표현에 있어 코믹이란 장르를 더한 건, 교회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선입견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꾸고자 한 나름의 장치이자 배려였다. 앞으로도 자신의 ‘끼’를 활용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제안을 받았는데, 저는 교회가 소속사예요. 목회자 안수를 받았으니 그 안에서 잘 풀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교회 안의 사람들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도 같이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도 ‘우리네 인생’이란 곡을 썼는데 파이널 무대에서 부른 ‘공’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헛되고 헛되도다’는 전도서의 구절이기도 하고요. 그 노래를 들고 예전처럼 장터에 나가 즐겁게 노래하면서 찬양할 거예요. 행복을 전하면서(웃음).”
-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와 수녀 출신 김연수 시인 부부
- 2012. 06. 11 20:00 화제
- ㆍ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걸어온 구도의 세월 하나님께 평생을 바치겠노라 서원한 천주교의 수녀와 하나님께 평생을 어떻게 바칠 것인가 고민하던 열혈 개신교 신학생 간의 사랑은 시대의 불문과 금기를 파괴하는 일대 사건 중 사건이었다. 양쪽 교단은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연인의 가여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상 모두가 그들에게 등 돌렸을 때 두 사람은 목사와 수녀라는 이름표를 떼고는 떨리는 두 무릎을 맞대고 꿇어앉아 신께 기도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다 더 참사랑을 하기 위해 동행하길 원하노라고. “최 전도사님, 이분이 바로 아네스 로즈 수녀님이세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잔인한 달이라 불리던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찌나 볕이 좋고 따뜻하던지 아직도 그 온기가 고스란히 기억되는 그런 오후였다. 우연히 소개받은 앳된 수녀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돌아서기 전까지 최일도는 그저 신앙에 대한 고민이 많은 열혈 신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알았으랴. 그가 뒤돌아서는 순간 멈출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운명을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안녕하세요. 저는 최일도라고….” 뒤돌아서 보니 환하게 웃는 뽀얗디뽀얀 얼굴의 한 수녀가 눈에 들어왔다. 맑은 얼굴이 어찌나 눈이 부시던지 그는 채 인사말을 맺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갓 피어난 하얀 프리지아꽃이 연상됐다. 기다랗고 가녀린 꽃 한 송이가 그의 앞에 서서 웃고 있는 것이다.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번민하는 신학생에 지나지 않는 그였지만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앞에서 웃고 있는 한 송이 꽃 같은 여인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운명을 알아본 죄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 사람인 걸 알았죠’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김연수 사모(61)를 처음 본 최일도 목사(56)의 당시 심정을 표현하라면 바로 이 노랫말과 같지 않을까. “예전에 발간된 책에도 자세히 썼지만… 아내를 처음 본 순간 알 수 있었어요. ‘아! 이 여인은 내 운명이구나’ 하고 말이에요. 첫눈에 반했다느니, 운명이라느니 이런 말들은 그저 사람들이 예쁘게 표현한 말에 불과한 것 같지만 아니에요. 첫눈에 반한다는 것, 운명을 직감한다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개신교 신학생으로 천주교 수녀를 만났는데도 아름다운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웃음)” 어찌 보면 당시의 최일도 목사는 괴짜에 가까운 기독교인이었다. 개신교에 적을 두고 있는 신학생이자 전도사임에도 허구한 날 천주교 성직자들과 교류하며 전국의 수도공동체들을 떠도는가 하면 가톨릭 성인과 성녀들의 전기와 생애에 몰두하면서 지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독신 수도자의 삶을 살라는 신의 계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정도다. 나름 종교 분쟁 없이 평화롭다는 나라에 살고 있다지만 당시만 해도 종교 간의 교류는 시국 사건을 제외하고는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었어요. 좋게 말하면 순박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윤리적으로 엄격한) 바리새인적인 신앙과 교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유치했죠. 일례로 당시 저는 결혼은 목회자의 길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목회자가 되면 결혼을 포기할 것이고 반대로 결혼을 하면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을 정도거든요. 딴에는 출가자의 구도 행각이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문제아의 고뇌와 방황쯤으로 보셨던 것 같아요(웃음).” 당시에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속을 좀 썩였을 것 같지만 지금에 와서 그간 최일도 목사의 행적을 되짚어본다면 그마저도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로까지 자리 잡은 ‘밥퍼’라는 약어로 대변되는 다일공동체의 빈민 구제사업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의 장점들이 성공적으로 융합된 다일공동체의 열린 성격은 종교를 넘어 사회 안팎으로 롤모델이 되어주고 있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최 목사와 김연수 수녀의 만남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두 사람이 남자로 여자로 만나 사랑했으되 그 사랑은 그들이 믿는 신이 계획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서원을 파기한 수녀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수녀를 아내로 맞은 목사는 신의 뜻을 저버린 것이라고 당시엔 모두에게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죄인이 되는 심정이었고 낙인찍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하고 살아온 삶을 이야기할 참이면 이 두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신의 뜻을 따른 이들이란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목사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으며, 수녀가 아니었다면 감내하기 힘든 삶이었던 탓이다. 이 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아본 죄뿐이리라. 왜, 하필이면 수녀입니까! 아네스 로즈 수녀라 불리던 김연수를 만난 후부터 최일도는 잠 못 이루는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어쩜 그렇게 어여쁠 수 있는지, 어쩜 그렇게 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떠올리다 보면 그는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장미향을 맡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최일도만이 맡을 수 있는 아네스 로즈 수녀의 향기였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녀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궁리뿐이었다. “아네스 로즈 수녀에 대한 상념들로 복잡한 머릿속을 식힐까 싶어 서점에 나갔다가 우연히 시문학지에서 김연수 시인의 「다래헌 記」라는 시를 보게 됐어요. 맑고 깨끗한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죠. 시가 정말 좋아서… 당시 국어 교사였던 아내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나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이도 꽤 근사할 것 같았거든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제외한 우리 두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관계가 당시의 제겐 참 절실했어요. 왜 아니겠어요. 상대는 하나님의 아내인 수녀라고요(웃음).” 최일도는 시를 좋아하느냐는 말과 함께 김연수 시인의 「다래헌 記」를 아네스 로즈 수녀 앞에 의기양양하게 내민다. ‘마음에 무척 드는 시라 수녀님께도 전해주고 싶었다’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시를 본 아네스 로즈 수녀는 이렇다, 저렇다 시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저 시를 쓴 시인이 아는 사람인가 간단히 묻고는 말이다. “나중에 한 학생이 아네스 로즈 수녀에게 ‘김연수 수녀님!’ 하고 부르는 걸 듣고서야 제가 내민 시를 보고 왜 그저 웃기만 했는지 알 수 있었죠. 참 신기하지 않나요? 그 시를 처음 봤을 때도, 그 시를 보여주었을 때도 아내가 시를 쓰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저 국어 교사니까 시에 관심이 좀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는데 말이에요.” 목사의 길과 신부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열혈 신학생에게 김연수는 너무나 뜨거운 복병이었다. 평생 옆에서 바라만 볼 수 있어도 원이 없겠단 생각에 사제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연수라는 여인을 향한 마음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성난 파도와도 같았다. 3년을 끝없이 끈질기게 구애했다. 모두들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손가락질했지만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최일도에게는 김연수만 보이는 탓이었다. 하지만 뜨거운 그의 마음을 수녀의 신분을 가진 김연수는 받아줄 수 없었다. 이미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 몸이 아니던가. 달래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냉정하게 대하기도 했다. 그러다 꼭꼭 숨어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 역시 남편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전 수녀였기 때문에 제 마음을 제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었죠. 수녀원과 학교, 그리고 수녀로서의 삶 이외의 것은 알지 못하는 제겐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끝까지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자 남편은 죽음을 결심한 것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어요. 어찌나 놀랐던지…. 그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를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죠.” 당시 최일도는 수도자의 길을 가려는 자신에게 왜 김연수 수녀를 만나게 했는지, 그녀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다지도 잊지 못하는지, 또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이 왜 하필이면 수녀인지 신께 묻고 또 묻다 종국에는 삶을 깨끗이 정리하겠다는 극한의 결심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간 곳이 목포 인근의 한 섬. 유서로 비쳐질 수 있는 편지 한 통을 김연수 수녀에게 보내고 간 곳이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섬 주민과 날씨 때문에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무사히 서울로 돌아오게 됐고, 아네스 로즈라는 이름의 수녀 또한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김연수라는 자연인이 되어 그의 곁으로 간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운명처럼 만나 드라마틱한 사랑을 한 두 사람은 예쁜 동화 속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결혼으로 행복한 맺음을 한다. 비록 화장실도, 욕실도 없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이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회고한다. 방이 어찌나 작았던지 외짝 장과 작은 냉장고 하나 들여놓으니 겨우 두 사람 누울 공간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고작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이 단칸 셋방으로 데려오려고 수녀원에서 잘 지내던 아내를 흔들었단 말인가, 하고 속상해질 참이면 김연수는 최일도의 마음을 다 읽은 것처럼 “당신은 목회를 할 사람이다. 이렇게도 살아봐야 여러 계층의 어려움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며 다독이곤 했다.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누울 자리가 있어 다행이라는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했을 정도라니 가톨릭의 수녀든, 개신교의 사모든 그 어떤 자리에 있든지 손색이 없을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알콩달콩 재미난 신혼 시절이기에 앞서서 수녀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자유분방하게 살던 신학생에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선 것이었다. “수녀원이란 온실 속에서만 살던 성직자였던 제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직장도 다니면서 살림을 하는 생활은 힘들다고 표현하기 전에 적응을 해야만 하는 낯선 삶 그 자체였어요. 우리라고 그저 아름답게만 살았겠어요? 여느 부부와 같았죠. 부부싸움도 했고 고부 갈등도 겪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낯선 것은 최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녀와 아내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었노라 털어놓았다. 하얀 프리지어꽃 같았던 아네스 로즈 수녀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까닭이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갈 참이면 아내 김연수가 아닌 아네스 로즈 수녀가 맞아줄 것 같은 착각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심하게 드는 날이면 수녀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아내의 모습이 더욱 낯설게만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을 어렵게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최일도 목사의 어머니였다. 지금은 다일공동체에서 묵묵히 설거지를 하며 날마다 새벽기도로 아들의 목회를 돕고 있는 최고의 협력자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특히 수녀 출신의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탓에 결혼 전부터 고부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최일도라는 남자 하나만을 보고 수녀로서의 종신허원을 풀고 속세로 나온 여자였건만, 최 목사의 어머니는 결혼 자체를 결사반대했다. 목사나 장로의 딸이 목회자의 사모로 적합하며 수녀 출신은 목회를 해야 하는 아들의 장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게 최 목사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어머니는 제가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길 바라셨죠. 당시만 해도 천주교는 교리적으로 이단에 가깝다는 그릇된 근본주의가 빗어낸 편견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런 입장에서는 수녀 출신의 사모는 큰 교회 목사가 될 저에게 약점으로만 보이셨겠죠. 더구나 큰 교회에서 번듯하게 목회를 하길 원했던 제가 공동체다 뭐다 빈민 활동을 하니 그마저도 가톨릭 출신의 아내 탓이라 여기시며 저와 아내를 못마땅해하셨답니다.” 당신, 여자라도 생겼나요? ‘밥퍼’라는 말을 굳이 끌고 오지 않아도 최일도 목사는 퍼주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하던 신학생 시절에도 허구한 날 사람들을 단칸방으로 끌고 들어와 밥을 먹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번은 17명의 친구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오는 바람에 방에 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부는 현관에, 일부는 부엌에 그리고 문 밖까지 나가 앉아 밥을 먹은 적도 있다. 아내가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마련한 등록금을 어려운 친구 식권 사주는 데 써버려 등록을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없는 살림에 친구들 데려다가 밥을 먹이는 것에는 쌀이 떨어졌다거나 돈이 모자란다는 투정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아내였지만 학교 공부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헌신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화라도 낼 참이면 “밥이 중요하지 공부가 중요하냐”라며 천진하게 반문하는 남편 앞에 할 말을 잃기 일쑤였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다 못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정도가 됐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할 때 종종 ‘10년 넘게 수녀 생활을 한 사람이 그것밖에 안 돼?’ 하며 제 속을 긁을 때가 있어요(웃음). 저희 부부만 주고받을 수 있는 얘기죠. 그래요. 수녀 출신인 제가 남 돕는 일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목사님은 원래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목사님이 돈 계산에 밝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저조차 존경심을 갖기 힘들 테니까요. 하지만 그 돈 때문에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한 적이 있답니다(웃음).” 최일도 목사와 김연수 사모 부부는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두고 서로 필요할 때마다 지출 명목을 쓰고 꺼내 사용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최 목사의 지출이 한없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지출 명목도 ‘식사대’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어디에 돈을 썼는지 물으면 즉답을 피하는 남편이 의심스러웠다. 누구누구와 밥을 먹었다지만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연수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그것밖에는 짐작이 가는 구석이 없었다. “직장생활 하면서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 둘 키우고 거기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호된 시집살이까지 하던 때였어요. 고부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였죠. 그런데 남편마저 밖으로만 돌며 집에 소홀한 거예요. 집에 들어와서는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고 말이에요. 그러니 여자가 생겼다고 의심할 밖에요. 어떤 여자기에 그러냐고 막 따져 물었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더 이상 이 남자와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말이에요.” ‘식사대’라고 써놓고 가져가는 뭉텅이 돈의 수혜자를 확인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김연수 사모는 최일도 목사를 다그쳤다. 그리고 함께 길을 나섰다. 남편의 뒤를 따르며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최 목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여자도 아니고, 젊지도 않았다. 한눈에도 길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부랑자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노인 여남은 명이었다. 그들은 속칭 ‘청량리 588’ 홍등가 주변의 한 설렁탕집에서 이미 식사를 끝내고 돈을 내줄 최 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연수는 단박에 그들이 그간의 ‘식사대’ 수혜자임을 알 수 있었다. 뜨거운 밥, 그 두 번째 운명을 만나다 1988년 어느 초겨울 아침, 최일도는 청량리역 앞에서 그의 두 번째 운명과 만나게 된다. 예매한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쁘게 역 광장을 걷고 있는 그의 앞에서 한 노인이 쓰러진 것이다. 부축을 해드려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 잠깐의 갈등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기차 출발 시간은 가까워왔고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다. 최일도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 노인을 도울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 않아 되돌아가봤더니 노인은 입에 거품까지 물고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내버려 둬”라고 주위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질 환자는 이내 평상시로 되돌아온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어 말 그대로 ‘내버려두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밤이 늦어 다시 청량리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침에 보았던 노인이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로 온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최일도 목사는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의 뜨거움이었다. “청량리역 광장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북적이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런데 그 노인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준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화가 치밀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신학 공부를 왜 하며, 영성수련센터니 전원교회니 해외 유학이라는 것이 대관절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물음이 들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지 드셨느냐?’라는 저의 물음에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라는 할아버지의 답은 ‘일도야, 내가 배가 고프다’,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길바닥에 눕혀놓을 셈이냐?’ 저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자 저희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노숙자와 부랑자가 하나 둘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밥을 먹었는지 묻고 다니며 그들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기 시작했다. 놀림도 당하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병들고 힘든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로 배 속을 뜨겁게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최일도의 기도였다. 멈출 수 없는 기도 말이다. 더구나 그의 뜨거운 한 끼 기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한두 푼의 적은 용돈으로는 감당은커녕 표시도 낼 수 없었다. 가족 몰래 역전의 행려자와 알코올 중독자,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 곳곳에 누워 있는 무의탁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꿈꿔왔던 유럽 공동체 순례와 독일 유학, 수도원과 전원 공동체의 꿈을 고이 접어두고 그는 등산용 코펠과 양은 냄비, 그리고 라면 한 박스를 챙겨 청량리로 향했다. “남편은 집에 오면 제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지 못했어요. 밖에 있는 어려운 분들 생각에 그 밥 한 숟가락을 넘기지 못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속도 상하고 청승맞아 보이기도 해 전재산이랄 수 있는 통장을 주었어요. 라면을 끓여주든, 밥을 해주든 원 없이 해보라고요. 그랬더니 그 돈을 가지고 나가 전기밥솥 네 개와 40인분의 숟가락, 젓가락을 사더라고요.” 그렇게 최일도 목사의 두 번째 운명인 다일공동체는 그의 첫 번째 운명인 김연수 사모의 도움으로 뜨거운 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부부는 처음 라면을 끓였던 양은 냄비 또한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처음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고마운 동반자 청량리 홍등가 부근의 허름한 굴다리에서 시작한 다일공동체의 오늘은 눈부시다. ‘밥퍼 운동’으로 대표되는 다일공동체의 무료급식 운동은 어느새 500만 그릇을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 다른 어려운 아시아 국가로까지 그 봉사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명실상부한 국제적 NGO 단체가 된 것이다. 또 다일천사병원, 다일영성수련원을 둔 사회복지재단법인으로 발돋움했다. 등산용 코펠에 라면을 끓이던 때를 떠올려보면 기적에 가까운 오늘이 아닐 수 없다. 수녀를 마음에 품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음을 야속해하며 죽음을 결심하던 그 치기 어린 젊은 신학생의 이 거대한 운명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그의 회한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었다. “그 힘든 세월을 어찌 견뎌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고는 합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밥을 짓거나 그 일로 비난을 받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제 어미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서 남의 부모를 섬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노여워하는 어머니를 맞닥뜨리거나, 홍등가 한복판에 방치된 우리 아이들을 보며 아내가 낙심하며 슬퍼할 때였습니다. 가족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밖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느라 정작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을 돌보지 못한 미안함이 두고두고 최일도 목사의 마음에 큰 생채기로 남아 있는 듯하다. 어려운 시절부터 언제나 그의 옆을 지키며 동행해준 아내 김연수 사모는 그런 남편을 한껏 추켜세웠다. “남편이 6개월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액의 연봉을 받는 직장이든, 재미난 취미든 사람들은 지겨워하며 쉽게 그만두기도 하건만… 24년을 한결같이 그 어려운 자리를 지켜온 남편의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옵니다. 언제나 하하호호 웃으며 살지는 못했지만 함께 눈물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저는 남편에게 더 바랄 게 없답니다.” 언제나 한발 먼저 앞선 모습을 보여왔던 최일도 목사는 인도와 섬김, 나눔에 전념하고자 얼마 전 정년을 11년 앞두고 다일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조기 은퇴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은퇴하면서 교회로부터 받은 퇴직금 4억원과 전세 보증금 2억원 중 퇴직금 4억원을 다시 교회에 헌금해 장학기금을 조성했으며 전세 보증금도 사후 기부를 약속해놓은 상태다. 지금껏 목회를 해오면서 교회로부터 자녀 양육비를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최 목사는 나눔과 기부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몸소 앞장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고자 하는 일을 꼭 해내는 그의 실행력과 오랜 가톨릭 수녀원 생활을 통해 절약과 인내가 몸에 밴 김연수 사모가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종교를 나누지 않아도, 목회자인지 수도자인지 직분을 가르지 않아도, 남편인지 아내인지 관계를 정하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그들의 신 앞에 삶 전체를 바쳐 뜨거운 기도를 올렸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걸어온 구도의 길에 무엇이 더 부족하다 말할 수 있으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고마웠노라 말하는 그들에게 부족함을 탓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오직 그들이 무릎 꿇어 마지않는 신뿐일 것이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이성원 ■헤어&메이크업 / 니케인뷰티(02-514-4425)>
- 오랜 병마와 싸우면서도 ‘땅에서 하늘처럼’ 살다간 故 이민아 목사
- 2012. 04. 04 17:04 화제
-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남겨진 자들은 그녀가 천국의 아버지 곁으로 갔다고 믿기에, 그녀의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란다. 단지 그녀 없이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 그녀를 그리워할 그날들이 슬플 뿐이라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큰딸 이민아 목사가 이 땅에서 떠나던 날,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육성을 들었다. 지난 3월 15일, 새벽 4시.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의사도 포기한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아내의 가슴을 쳤다. 다시, 또다시…. 이미 숨이 끊어진 아내의 입술에, 암 투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그녀의 입술에 숨을 불어넣어도 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그녀를 끌어안아보고 “보고 싶다”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어린 세 아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부모님, 늦게 만나 아름답게 사랑한 남편을 남겨두고, 그렇게 이민아 목사는 53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니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 9개월 전, 기자와 만났을 때 그녀는 분명 “다 나았다”라고 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 실명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 모두 괜찮아졌다”라고 했다. 병색이 완연한 낯빛이었지만 누구보다 티 한 점 없이 맑고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인터뷰 당시 그녀는 허망하게 먼저 떠나보낸 첫째 아들을 생각하며 청소년 사역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생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고(故) 이민아 목사는 참으로 시련 많은 삶을 살았다. 미국에서 검사, 변호사를 지냈으나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유진을 낳았지만 결혼 5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재혼 후 두 명의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둘째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으면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다. 더구나 김한길 전 의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진이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삶의 의미마저 잃었다. 건강하던 아들이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 의식을 잃은 뒤 19일 만에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본 이민아 목사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다. 신앙의 힘으로 가까스로 일어난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남아 있었다. 세 번의 갑상선암 수술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고,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였지만 기자와 만날 당시만 해도 수술과 치료로 혹은 성령의 치유로 삶의 의미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11개월 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야윈데다가 안색이 좋지는 않았지만 병마를 극복하고 회복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기자에게 그녀의 부음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예고된 죽음 앞에서도 어린아이같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아, 그때 왔던 기자로군요. 그래요. 그때도 많이 아팠었어요. 이미 1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작년 그맘때가 항암제 맞고 잠시 소강 상태였던 때예요. 한 3개월은 괜찮았어요. 그때만 해도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또 금방 상태가 나빠졌어요.” 고 이민아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처연했다. 작년 초 위암 말기를 선고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또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에요. 이 목사는 아주 행복하게 갔어요. 늘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죠.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제 하늘의 아버지 곁에서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얻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고 이민아 목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사는 게 더 즐겁고 무서운 것이 없어졌죠.” 하지만 딸의 죽음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 이어령 전 장관은 말을 잊었다. 그는 이 목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던, 바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평탄치 못한 큰딸의 인생 앞에서 그는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라고 고백했다. 자식의 고통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 발간된 김정운 교수의 책 「남자의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딸에 대한 죄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1 이민아 목사의 두 아들 에단과 루크, 딸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운구 장면을 차마 지켜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민아 목사의 간증집 「땅 끝의 아이들」에서 둘째 아들의 자폐증이 완치됐다고 말한 것처럼 에단은 든든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2 이민아 목사와 사역활동을 함께 하던 그녀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아버지의 품 안으로 돌아온 딸을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온 고단한 딸. 그래서 지난 1년간의 시간은 이들 부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땅끝의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 전했다 고 이민아 목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을 청소년 사역에 불살랐다. 장례식장에는 그녀의 아들, 딸 또래 정도 됨직한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자녀들이라고 했다. 모두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고통을 겪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이민아 목사를 만나 세상의 빛을 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친구들에게는 매일 맞기만 했어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왕따, 그게 바로 제 이야기였거든요. 이민아 목사님은 저에게 뜨거운 기도와 칭찬을 쏟아주셨죠. 덕분에 마음속의 상처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됐고 힘들었던 삶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지금껏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저를 낳아준 엄마한테서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그분이 제게 주셨죠.” 자신을 고 이민아 목사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허길향씨(32)는 “이민아 목사님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라고 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모아 타인을 위한 기도를 했다고. “지난 2월 28일에 마지막 모임이 있었어요. 돌아가시기 겨우 보름 전이었죠. 예배를 하는 동안에는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 같고, 맑고, 에너지가 넘쳤어요. 불꽃같은 분이셨어요. 목사님이 마지막 말씀으로 연어 이야기를 하셨어요.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승리하는 신부(성직자)가 되라’라고 하셨죠. 당시 이 목사님은 이미 복수가 차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예배 중 쓰러지면서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으셨어요.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셨죠.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민아 목사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평온과 사랑 가득한 장례식 고 이민아 목사의 마지막 사역길에는 그의 남편 제프 뷰캐넌 목사가 늘 함께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신앙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만난 그들은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아직 위암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의 일이다. 이민아 목사가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뷰캐넌 목사는 늘 그녀의 곁을 지켰다. 록 밴드 출신인 뷰캐넌 목사가 기타를 연주하고, 이민아 목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뷰캐넌 목사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고, 낯선 타국의 장례 절차를 따르며 아내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내의 빈소를 말없이 지키며 침착함을 유지한 그였지만 운구가 시작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Just Let Her Go! Just Let Her Go…! Oh Jesus!” 그가 오열하자 조용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던 장례식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불태우며 세상의 꽃을 피우고자 했던 고 이민아 목사. 그녀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희망을 향한 정열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소중한 가르침으로 기억될 것이다. 故 이민아 목사는… 1959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강인숙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의 1녀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돼 청소년 범죄 예방과 선도에 헌신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LA 지역 검사를 역임했다. 1992년 세례를 받은 후 2009년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저서로는 「땅 끝의 아이들」, 「땅에서 하늘처럼」이 있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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