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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724 건 검색)

경찰의 무혐의 불송치 결정…수사결과에 남는 의문들[국정원의 위험한 사찰②]
경찰의 무혐의 불송치 결정…수사결과에 남는 의문들[국정원의 위험한 사찰②]
2025. 03. 04 06:00사회
... 휴대전화 ‘휴지통 파일’에 주씨의 사진 수십장이 발견된 뒤 나온 답변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는 무혐의 처리하고 주씨 등을 특수감금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지난해 10월14일 서울경찰청...
국정원의 위험한 사찰
세관원 마약 연루·수사 외압 ‘무혐의’ 가닥…특검 등 논란은 계속
2025. 02. 12 20:44사회
... 수사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해당 의혹의 증거를 찾지 못해 조만간 무혐의 불송치 처분을 할 예정이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말레이시아 마약...
[단독]‘세관 직원 마약 밀수 연루 의혹’ 증거 없었나…조만간 무혐의 결론 가닥
[단독]‘세관 직원 마약 밀수 연루 의혹’ 증거 없었나…조만간 무혐의 결론 가닥
2025. 02. 12 15:06사회
... 외압’ 수사가 성과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해당 의혹의 증거를 찾지 못해 조만간 무혐의 불송치 처분을 할 예정이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말레이시아 마약...
인사 거래 폭로 칼럼으로 감찰받은 임은정 검사…법원 “무혐의 결정문 공개하라”
인사 거래 폭로 칼럼으로 감찰받은 임은정 검사…법원 “무혐의 결정문 공개하라”
2025. 02. 10 20:46사회
... 대검 감찰부는 진상조사부터 착수했다. 2023년 무렵 대검 감찰부는 진상조사 끝에 임 검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결정문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임 검사는 사건 당사자로서 처분 이유와...

스포츠경향(총 279 건 검색)

쯔양에 피소된 가세연, 무혐의 결론···경찰 “탈세 등 범죄의혹 제기 정당”
쯔양에 피소된 가세연, 무혐의 결론···경찰 “탈세 등 범죄의혹 제기 정당”
2025. 03. 04 13:01 연예
유튜버 쯔양(왼쪽)과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 연합뉴스 유튜버 쯔양(박정원)으로부터 피소된 MBC 기자출신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대표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쯔양이 김 대표를 상대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협박·강요·업무상비밀누설·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경찰은 쯔양이 김 대표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 쯔양은 구독자수 1140만명 상당인 인플루언서로 유명인 내지 공인으로 볼 수 있어 김 대표가 개인정보법상 쯔양과 관련한 방송을 한 것이 스토킹처벌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김 대표가 가세연 방송에서 ‘지금이라도 해명 또는 사과를 한다면 쯔양을 주제로 방송하는 것을 중단하겠다’ 등을 발언한 것에 대해 경찰은 쯔양의 낙태, 탈세, 유흥업소 근무 이력 등 범죄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해명 달라는 촉구의 취지일 뿐 해악의 고지가 아니고 당시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였다고 봤다. 또한 쯔양은 공인 중의 공인으로 차명으로 낙태 수술을 받았는지 여부, 탈세 의혹에 대해 충분히 법적으로 처벌받을 범죄이기에 이에 대한 사과 및 해명 촉구는 정당한 언론의 자유 영역이라고 했다. 앞서 쯔양은 지난해 7월 “가세연 측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김 대표가 쯔양 뿐 아니라 쯔양 주변인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하는 등 도를 넘는 사적 제재를 일삼았다”며 수원지검에 김 대표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대표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황앤씨 김소연 변호사는 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쯔양이 김 대표, 심지어 구제역(이준희)의 변호인으로서 언론대응을 한 저까지 고소와 소송을 남발했으나 불송치가 나올 뿐”이라며 “쯔양 식의 행태를 보면 구제역은 김태연 변호사(쯔양 법률대리인)에 대한 고소 10건은 족히 했어야 할 듯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김태연 변호사를)위증교사 등 고소해뒀지만 구제역 접견 가서 상의 후 김태연 변호사와 쯔양이 구제역 명예훼손 한 부분을 검토한 후 추가 고소 등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문] ‘작곡비 사기 무혐의’ 유재환 “시간 걸려도 돈 모두 갚을 것”
[전문] ‘작곡비 사기 무혐의’ 유재환 “시간 걸려도 돈 모두 갚을 것”
2025. 02. 28 10:59 연예
작곡가 유재환. 연합뉴스 제공 작곡비 사기 혐의로 피소된 유재환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후 근황을 전했다. 28일 유재환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불송치 처분 받았다는 사진과 함께 “결과적으로 단체 고소건이 무혐의 처리를 받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치만 없던 언행이 기사로 사실인냥 떠돌아서 참 많이 괴로웠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개월이 됐다. 솔직히 아버지 없는 삶에 어머니의 부고 소식은 저를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했다. 공황장애 때문에 세상 밖에 나가는 게 미치도록 두려웠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젠 용기를 갖고 나가보려 한다. 저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모두 환불해드리고 갚겠다. 시간이 걸릴 테지만 넓은 아량으로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러분들께 연락을 드리지 못한 점은 제가 한 말이 실시간으로 단톡방에 올라오고, 변호사님 말씀 대로 제 말이 협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가나다순으로 곧 연락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유재환은 작곡비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4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재환으로부터 작곡 사기를 당했다는 폭로글이 게재됐다. 같은 해 8월 해당 내용의 피해 주장인들이 “유재환이 작곡 대금을 받더라도 작곡을 해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3명으로부터 총 5,500여만 원을 받아챙겼다”라며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지난달 20일 경찰은 유재환이 작곡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 이에 대해 ‘불송치(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냈다. 한편, 유재환은 2015년 MBC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다음은 유재환 SNS 글 전문. 안녕하세요 작곡가 겸 가수 유재환입니다. 결과적으로 단체고소건이 무혐의처리를 받게되었습니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치만 없던언행이, 기사로 사실인냥 떠돌아서 참많이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개월 되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없는삶에 어머니의부고소식은 저를 집에서 한발자국도못하게하였습니다... 그놈의 공황장애때문에 세상밖에나가는게 미치도록 두렵기만했습니다. 허나 이젠 용기를 갖고 나가보려합니다. 저 때문에, 부푼꿈을 가지고 무료작곡 프로젝트신청한분, 어려울때도와주신분 등등, 제가빚을졌다 생각한 분들은 모두 환불해드리고 갚겠습니다. 물론 시간이작지않게걸릴테지만 넓은 아량으로 조금기다려주시길 간곡히 얘기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어떤사업이되건, 음원사업이되건 일체 돈한푼쓰지않고모아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P.S 제가여러 많은분들께 연락을 드리지 못한 점은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에 두려움을 느꼈고 변호사님 말씀대로 제 말이 협박이 될 수 있고, 조사가 끝나지 않았을 때 연락을 하는건 위험하다 하셔서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불법 감금” 뉴진스 매니저 주장, 어도어 ‘무혐의’ 종결
“불법 감금” 뉴진스 매니저 주장, 어도어 ‘무혐의’ 종결
2025. 02. 24 14:37 연예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하고 새로운 팀명을 발표한 뉴진스.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어도어가 그룹 뉴진스 매니저의 불법 감금 주장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4일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전 어도어 직원이자 뉴진스 매니저인 A씨가 어도어 김주영 대표에 대해 진정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조사 결과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무혐의(행정 종결)’ 처분을 내렸다. 진정인의 제출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다. A씨는 지난해 12월 김 대표에 대해 “업무 협의를 하는 것으로 유인한 후 대기발령서를 주며 집에 있는 노트북을 즉시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퇴근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이 반환되기까지 3시간 가량 불법 감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개인 휴대폰을 제출하라고 강요했다. 노트북을 포맷했다는 이유로 징계 사유로 삼겠다면서 조사를 개시했다” 등의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어도어 측은 당시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직원이 광고주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회사를 배제한 채 아티스트와 브랜드 간에 직접 계약 체결을 종용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아티스트의 전속계약 위반을 돕는 심각한 해사행위”라고 A씨의 감사를 진행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뉴진스는 지난 7일 새로 개설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팀명을 엔제이지(NJZ)로 바꾸고 독자 활동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어도어는 앞서 뉴진스를 상대로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과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각각 다음 달 7일과 오는 4월 3일에 첫 심문 기일이 열린다.
강형욱, 갑질 의혹 벗은 심경 “무혐의 처분…너무 기뻐”
강형욱, 갑질 의혹 벗은 심경 “무혐의 처분…너무 기뻐”
2025. 02. 24 09:46 연예
동물 훈련사 강형욱. 사진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동물훈련사 강형욱이 ‘직원 메신저 무단 열람’ 혐의를 벗고 복귀를 예고했다. 23일 강형욱은 개인 SNS 계정에 “작년 5월 제겐 어떤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2주 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어서 너무 기뻤다”고 적었다. 이어 “너무 죄송하게도 지난해 행사 중간에 일이 생겨서 그렇게 좋아하는 행사에서 빠지게 됐다. 너무 아쉽더라”라며 “정선까지 와주신 보호자님들과 댕댕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다”고 전했다. 강형욱은 지난해 불참한 행사에 올해는 참여한다며 “이번에는 제가 사진도 다 찍어드리고, 사인도 해드리고, 상담도 다 해드리고, 뭐든 다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강형욱이 운영했던 보듬컴퍼니 전 직원들은 강씨 부부가 직원들의 사내 메신저를 무단으로 열람하는 직장 내 갑질을 했다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당시 직원들은 강 대표가 방범 카메라로 자신들을 감시하고,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1대는 6일 강형욱과 그의 아내에 대해 정보통신망 침입, 타인의 비밀 누설 혐의로 수사한 결과 혐의 없음으로 검찰 불송치 결정했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검찰, 김건희 여사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
검찰, 김건희 여사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2024. 10. 17 11:57)
2024. 10. 17 11:57 사회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0월 5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3 세계한인회장대회 및 제17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검찰이 10월 1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모·방조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2020년 4월 당시 열린민주당이 김 여사를 검찰에 고발한 지 4년 반 만이다. 검찰은 김 여사가 상장사 대표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믿고 이익을 얻으려 계좌 관리를 맡겼을 뿐 시세조종을 알지 못했다고 봤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최재훈 부장검사)는 이날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했다. 김 여사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2009∼2012년 주가조작 선수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 돈을 대는 ‘전주(錢主)’로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시세조종성 주문이 제출된 것으로 검찰이 파악한 김 여사의 계좌는 6개다. 앞서 기소된 권 전 회장 사건 1·2심 재판부는 이 중 3개(대신·미래에셋·DS)를 유죄로 인정된 시세조종 행위에 동원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되는 것을 인지했거나, 주가조작 일당과 사전에 연락한 뒤 시세조종을 위해 주식을 거래했단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2007년 12월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한 초기 투자자였던 김 여사가 ‘주식을 사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권 전 회장의 권유에 투자 목적으로 자신의 계좌를 일임하거나 직접 거래했을 뿐, 이들이 주가 조작을 하고 있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봤다. 법원은 권 전 회장 일당의 의사소통 하에 2010년 10월 28일과 11월 1일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두 차례 통정매매가 이뤄졌다고 판단다. 그러나 검찰은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에게 매도하라고 연락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거래 당시 구체적인 연락이 오간 정황을 찾지 못했다. 김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 씨 계좌와의 통정매매 등에 동원된 미래에셋 계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에 활용된 DS 계좌 역시 권 전 회장 일당이 시세 조종에 이용한 것일 뿐 김 여사와는 무관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주포 등과 함께 시세조종 범행을 진행하면서 김 여사 등 초기 투자자들의 계좌와 자금을 활용한 것이 이 사건의 실체”라며 “권 전 회장의 범행에 김 여사의 계좌와 자금이 활용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은순 씨 역시 1개 계좌가 권 전 회장의 차명계좌로 쓰이긴 했지만, 시세조종 행위와 무관하게 투자 목적으로 계좌를 빌려준 것으로 보고 혐의없음 처분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서 “검찰에 수사 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과 상설특검, 국정감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도 (김 여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정권의 몰락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점을 똑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으로 시작된 김건희 특검이 이제는 사실상 국정농단 특검으로 확대되는 형국”이라며 “최근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공천개입, 선거 개입에 이어 불법 여론조작에도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의 김 여사 불기소는 살아 있는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굴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번 특검법에는 수사기관이 ‘봐주기 수사’로 직무를 유기하고 권력을 남용한 행위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0월 17일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과 김 여사 관련 인맥으로 지목된 대통령실 참모들의 인적 쇄신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와 함께 김 여사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고 의혹 규명을 위한 관련 절차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여사 관련 일들로 모든 정치 이슈가 덮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의 개혁 추진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야당의 무리한 정치 공세도 있지만, 그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도 있었고, 의혹의 단초를 제공하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여사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이 반드시, 시급하게 필요하다”며 “인적 쇄신은 어떤 잘못에 대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치, 민심을 위한 정치를 위해 필요한 때 과감히 하는 것이다. 지금이 그럴 때”라고 말했다. 또 “김 여사가 대선 당시 약속한 대로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단독]사기사건 연루 후 4년만에 무혐의 판결 받은 강성훈
[단독]사기사건 연루 후 4년만에 무혐의 판결 받은 강성훈
2015. 02. 26 16:56 연예
강성훈은 그대로였다. 예의 ‘귀공자 같은 외모’도, 천진한 미소도. 변하지 않은 미성으로 촬영장에 울려 퍼지는 1990년대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문득문득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레이디경향」이 단독으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대중은 때때로 열광해 마지않았던 ‘왕년의 스타’들이 사건 · 사고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목도하곤 한다.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그 풍경에 하루 혹은 반나절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장식하고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 됐지만 그의 경우는 유독 충격이 컸다. H.O.T.와 함께 1990년대를 이끌었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리드 보컬, 귀공자 같은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팬들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강성훈(35)이 사기 사건에 연루돼 뉴스에 등장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성훈은 사기 혐의를 받았던 4건의 소송에서 모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4년 동안의 지루한 공방을 끝내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그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무혐의 판결을 받고 난 며칠 뒤 기뻐할 새도 없이 5중 추돌 사고로 크게 ‘액땜’을 한 그는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렀다”라고 말하며 옅게 웃었다. 오랜만에 하는 촬영이었을 텐데, 어땠어요? 옛날 생각 났어요.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도 들고, 설레기도 했고요. 빈말이 아니라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어요. 저도 나이가 들었죠(웃음). 체질상 살이 쉽게 찌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몸무게도 예전에 활동할 때와 거의 비슷해요. 건강 상태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얼마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몸은 괜찮아요? 회복 중이에요. 차가 많이 부서졌는데 다행히 저는 덜 다쳤어요. 교통사고는 17년 전에 한 번 나고 이번이 두 번째예요. 앞으로 항상 주의해야죠. 하필이면 이맘때 나서 자꾸 ‘악재’라는 말이 붙더라고요. 액땜을 크게 했다고, 이제 잘될 거라고 주변에서 위로를 많이 해주셨어요. 교통사고 나흘 뒤에 재능 기부 콘서트에 참여했더라고요. ‘러빙핸즈’라는 사회복지 NGO에서 진행하는 재능 기부 콘서트였는데 함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거든요. 가수 생활을 하며 10대를 바쁘게 보낸 경험도 있고, 아이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런 자리에는 다른 스케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에요. 복잡한 사기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어요. 사건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나요? 2009년께 가수 복귀를 앞두고 공연 기획을 하는 동료의 제안으로 대형 한류 콘서트를 추진했어요. 그 과정에서 돈을 빌리게 됐는데 갚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알고 보니 제가 돈을 빌리고 갚은 사람은 중개인이었고, 실제 채권자들이 따로 있었어요. 중개인이 제가 갚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 채권자들에게 전해주지 않은 거예요. 흔히 말하는 횡령인 거죠. 그 때문에 채권자들이 저를 고소했고 사건이 벌어지게 됐어요. 최근에야 이 고소 건들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어요.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소송이라는 게 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진행되는 속도가 굉장히 느려요.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었어요. 2010년에 시작돼 2014년에 마무리됐으니 4년 동안 지루한 송사에 매달려 있던 셈이에요. 그러는 사이 기사화되는 내용들만으로 제가 파렴치한이 돼버렸더라고요. 당시 소속사나 변호인 없이 혼자서 사건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해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무척 억울하고 답답했죠. 이런 사건을 보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표적이 되기 쉬운 것 같아요.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작은 일을 크게 칭찬받을 때도 있고 저처럼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고요. 저는 저를 고소한 사람들과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어요. 제가 연예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코너로 몰아 압박하려고 했던 거죠. 무혐의 판정을 받고 일부 고소인들을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예요. 꼭 처벌만이 목적은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연예인들이 매번 이용당하는 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무혐의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풀었지만 여전히 강성훈씨에 대해 나빠진 여론이 존재해요. 제 잘못으로 인해 시작됐기 때문에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돈 관계에 있어 판단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많은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사실과 다르게 여전히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바로잡아드리고 싶어요. 왜곡된 것에 대해서는 때로는 화도 내고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떳떳하지 않다면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나요? 생각보다 담담해 보여요. 스스로도 좀 놀랐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정말 안 좋은 생각도 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톱스타였다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그것도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렸을 때 그 현실을 견디기가 쉽지 않거든요. 대부분 우울증에 시달려서 집 밖으로 못 나간다고 하던데 그래도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겨낸 것 같아요. 비싼 수업료를 치른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죠. 인생에 큰 공부가 됐어요. 영원한 이름, 젝스키스 1990년대 사랑받았던 가요들을 재현한 MBC-TV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방영 이후 일명 ‘토토가’ 열풍에 힘입어 젝스키스의 재결합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역시 멤버들이 다시 모여 무대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다. 과거의 인기를 다시 바란다거나 화제성 ‘추억팔이’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10대를 바친 젝스키스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화려한 10대를 보냈어요. 지금 돌아보면 어때요? 요즘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어릴 때는 그 나이에 맞는 경험을 하며 자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어린 나이에 연예인이 돼 무척이나 큰 사랑을 받았어요. 물질적으로도 풍족했고요. 그래서인지 세상 물정에도 어둡고 나이 들어서도 내가 최고인 것처럼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탓에 이런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남을 탓하기보다는 제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10대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그 환경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느냐가 기본인 것 같아요. 강성훈씨는 어땠어요? 항상 주위에 유명 연예인들이 포진돼 있었죠. 매니저와 방송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막상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일반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끼게 돼요. 생활 패턴부터가 다르니까요. 화려하지만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정상적인 삶은 아닌 거죠. 원래 어렸을 적 꿈이 가수였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상이었어요. 중학교 때 하와이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만난 은지원씨와 함께 음악 공부를 하며 음악쪽으로 마음이 완전히 기울게 됐어요. 마침 하와이에 와 계시던 기획사 사장님에게 발탁돼 한국으로 들어와 가수 준비를 하게 됐죠. 이건 멤버들도 잘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처음에는 은지원씨랑 듀오로 활동하기로 돼 있었어요. 그룹으로 바뀌며 안 하겠다고 살짝 발을 빼기도 했는데(웃음), 결국 마음을 돌려 멤버를 모으기 시작했죠. 그렇게 젝스키스가 완성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여섯 개의 수정’이 모이게 된 거군요. 당시 H.O.T.와 함께 활동하는 내내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때 생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예요? 정말 스케줄이 많았어요.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김밥을 엄청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는 물려서 못 먹겠더라고요. 한동안 배가 고파도 김밥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웃음). 우리 멤버들이 대부분 마른 체형이었는데 그때 다들 살이 많이 빠져서 50~52kg 정도 됐어요. 사실 지금도 대부분 그래요. 얼마 전에 (장)수원이를 봤는데 53kg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주름이 지더라고요(웃음). 생각보다 젝스키스로 활동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더라고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활동했으니 햇수로 4년이에요. 그 후 솔로로 2004년까지 앨범을 냈고요.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젝스키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영혼과 같은 이름이에요.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줬고 또 깨닫게 해줬어요. ‘토토가’의 열풍이 거세요. 요즘은 어딜 가나 1990년대 노래가 나와요. 함께하지 못해 참 아쉬워요.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보고 싶어요. 그 시절의 인기를 다시 누리고 싶다거나 추억팔이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과 손잡고 노래하는 그 자체가 무척 그리워요. 생각하면 울컥할 정도로요. 올해 목표이자 소원이에요. 멤버들과는 어떻게 지내요? 젝스키스도 재결합할 수 있을까요? 자주 연락하고 얼굴도 보는 편이에요. (이)재진이 형은 3일에 한 번꼴로 연락을 주고받아요. 어찌 보면 재진이 형이 제일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김)재덕이 형도 마찬가지고 수원이는 워낙 친한 친구라 편하게 연락하고요. 다 함께 무대에 오르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얼마 전 아이 아빠가 된 (고)지용이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본인이 하는 일도 있고 가정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니까요. 아쉽지만 한 명 정도 빠진 상태로 콘서트나 무대에 올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재결합하게 돼 지용씨가 빠진 자리에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게 된다면 누구로 하고 싶어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래도 다섯 명이잖아요. 지용이의 자리를 누군가로 채우기보다 우리 다섯이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용씨도 그렇고 1세대 아이돌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부모가 돼가고 있어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아직까지는 없어요. 조금 더 있다가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강성훈의 미래 “사람 사는 게 그렇잖아요”라고, 담담한 미소로 말을 이어가는 그는 분명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해요, 여러분”을 외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그때 그 시절의 강성훈처럼 말이다. 장수원씨가 ‘로봇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데 어때요? 자극이 된다거나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수원이가 잘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나도 활동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활동을 하고 싶었다면 진작 했을 거예요. 젝스키스로 4년을 열심히 일했고 또 그 후 4년 동안 솔로 활동도 했어요. 열일곱 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연예인으로 살고 보니 활동에 대한 미련이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휴식기가 필요했군요. 2004년까지 솔로 앨범을 내고 한동안 원 없이 자유를 누렸어요. 평범한 사람처럼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찾아다니고요. 그러다 30대로 넘어올 무렵 K-pop 산업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워낙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산업이기도 하고, 아이돌로 활동해본 경험도 있으니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전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사건을 겪게 됐지만요. 30대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른 셈이네요. 그렇죠. 현실을 깨우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좋은 파트너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제 삶을 찾아가고 싶어요. 이제 강성훈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뭐예요? 최근에 드라마 OST 작업을 시작했어요. 솔로 앨범도 준비 중이고요. 이르면 4월이나 5월께 다섯 번째 솔로 앨범으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이번 일을 겪으며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멤버들도 그렇고, 믿어주고 응원해주신 팬들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복귀할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예전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요즘 연예계가 만만치 않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젝스키스 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라는 뮤지컬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했던 기억이 참 강렬해요.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고 무엇보다 밤 시간대 라디오 DJ를 꼭 해보고 싶어요. 요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러빙핸즈’ 홍보대사로서 청소년들을 위한 재능 기부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에요. 활동을 쉬는 동안에도 재능 기부나 자선 콘서트에 꾸준히 참여해왔어요. 강성훈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랫동안 활동을 쉬면서 목적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너무 일찍 나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예전의 인기와 유명세도 이제는 다 의미가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재능 기부를 통해 제 이야기와 경험들을 나누며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과 겪은 일들이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굉장히 반가워해주시고, 제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많이 배우고 큰 힘이 돼요. 1년 전부터 박수홍 형, 뮤지컬 배우 정영주 누나와 함께 재능 기부 콘서트를 이어왔는데 그게 인연이 돼 올해부터 ‘러빙핸즈’에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됐어요.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에요. 그리고 제가 힘들어봐서 그런지 앞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장수원씨도 하고 있는데, 연기해볼 생각은 없어요? 우울할 때 수원이 연기 보면서 웃곤 해요(웃음). 연기는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강성훈은 잘 웃고 조금은 여성스러운 이미지였는데, 오늘 얘기해보니 다른 면이 많은 듯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격이 남자다운 편이에요. ‘도 아니면 모’예요.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스타일.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지나가게 되면 담아두고 있다 언젠가는 꼭 해요(웃음). 그래도 역시 웃는 게 제일 잘 어울려요. 사람 사는 게 그렇잖아요. 100 중에 20, 30은 항상 안 좋은 기운이 따라와요. 그건 잘나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앞으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착실하게 살아가는 게 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끝으로 놀란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이제 절대 안정을 취하셔도 되고요(웃음). 앞으로 왕성한 활동 기대해주세요. 예전 젝스키스 때의 풋풋한 미소를 전해주는 강성훈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성구 ■신발 협찬 / 로버스(02-542-0385) ■스타일리스트 / 김영아>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2007. 03. 09 연예
지난해 11월 24일은 개그맨 겸 사업가 권영찬(38)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1년 6개월 전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그가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온전히 고통의 시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권영찬이 무죄판결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얼굴은 바로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준 ‘여자친구’였다. 오는 3월 24일은 그런 그가 웨딩마치를 울리는 날. 그의 피앙세는 모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 중인 김영심씨다. 최근 결혼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을 만나 ‘하나 아닌 둘이어서 더욱 행복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 말리던 1년 6개월, 악몽의 나날들 지난 2월 6일, 권영찬(38)이 기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청담동의 한 한복집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대법원 판결 이후 마음의 부담을 덜어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뒤이어 들어오는 권영찬의 피앙세 김영심(00)씨. 청바지에 노란색 자켓을 입고 나타난 그녀가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선하고 단아한 인상이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권영찬과 김씨는 눈이 마주치자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무리 결혼을 앞두고 있다지만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어려운 일을 겪고 난 뒤라 지금의 행복이 더욱 달콤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들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그들은 마음껏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1년 6개월. 이들이 이처럼 편안한 웃음을 짓기 위해 참고 견딘 시간이었다. 두 사람에게 ‘성폭행 혐의’ 사건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물었다. “1년 6개월… 정말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어요.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에요.”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깨끗하게 마무리된 사건이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부신부에게 불쾌했을 당시의 사건에 대해 캐묻는 것이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비신부 김씨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휴대폰이 꺼져 있을 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해외에 나갔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오빠와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권영찬의) 형수님에게 전화가 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어요. 진짜 너무 떨리고 두려웠어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죠. 오빠가 죽었거나, 식물인간이 됐다고 말이에요.” 이어 김씨는 불안한 마음에 권영찬의 형수에게 “오빠가 죽은 것은 아니죠?”라고 되물었고, 결국 전화상으로 “죽지는 않았다”는 형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그날 저녁 김씨는 권영찬의 친형을 만나 자세한 사건의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오빠의 큰형에게 자세한 내막을 듣고, 혼자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누구랑 의논하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막막하더라고요. 진짜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어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성통곡 당시 권영찬은 용산경찰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권영찬은 형을 통해 김씨에게 면회를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차마 김씨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권영찬은 평소 김씨를 한참 어린 동생으로 생각하며, 이끌고 가르쳐오던 입장이었다. 김씨의 친구들까지 권영찬을 ‘큰언니’처럼 따르며 어려운 일을 상담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권영찬은 김씨를 끌어들이면 안 되겠다고 판단, 이별을 결심했던 것. “저는 처음에 24시간 조사만 받으면 끝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마약검사를 하고, 조사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만만치 않겠구나 느꼈죠. 그래서 이 사건에 여자친구를 끌어들이지 않는 게 제가 이 친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면회도 오지 말고, 그냥 헤어지자고 했어요.” 하지만 김씨는 권씨의 어머니, 작은형과 함께 권영찬을 만나러 용산경찰서로 향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권영찬과 김씨.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오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 (여기) 올 줄 알았지?’라고 말하며 그냥 웃었죠. 하지만 오빠는 제 얼굴을 보자마자 막 울더라고요.” 두 사람은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과 황정민이 그랬던 것처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많이도 울었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권씨가 무죄임을 믿고, 그를 빼내기 위한 방법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소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당시 권씨를 고소한 여성은 권씨에게 가명을 썼기 때문에 권씨는 실제 이름도 여자친구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여자친구 권씨는 씩씩했다. 남자친구 권영찬의 무죄를 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치소 안에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여자친구가 대신해서 고소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봐 주더라고요. 결국 싸이월드에 들어가서 몇 백 명을 찾아본 끝에 해당 여성의 미니홈피를 찾아, 무죄를 증명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기도 했어요(권영찬).”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요. 친구들, 엄마, 남동생 등 주변에서 오히려 더 제 눈치를 봤어요. 제가 너무 밝게 지내니까 그게 다들 이상했나 봐요(김영심).” 김씨 아버지, 오히려 “빨리 결혼해서 해결하라” 권유 김씨는 권씨가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죄를 증명할 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처음에는 보석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권씨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냈기 때문. “처음에 보석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때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돈을 다 주고 해결하자고도 했죠. 오빠가 계속 그(구치소) 안에 있는 게 너무나 싫었거든요. 나와서 해결을 하자는 거였죠. 하지만 오빠가 계속 말렸죠(김영심).” “죄도 없는데, 왜 돈을 줍니까. 혹시 누명이 안 벗겨지더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어요.”(권영찬) 하지만 권영찬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이때를 회상하며 “유죄 판결이 나왔을 때는 진짜 막막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이때 권씨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김씨의 부모님이었다. 평소 권영찬을 좋게 봐왔던 김씨의 아버지는 예정대로 2005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리라고 권했다는 것. 결혼해서 사건을 해결하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됐습니다. 저를 자식같이 생각해 주셔서 너무 좋았죠. 만약 아버님이 ‘헤어져라’고 해도 저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법원에서까지 유죄가 나오면, 저는 법정구속이 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대로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고 했죠. 그래서 무죄가 결정되면 그때 당당히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때마침 인터뷰 장소에는 김씨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딸의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오히려 놀랐다”면서 “반대로 딸이 별일 아니라고 우리를 위로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의 아버지는 “우리는 영찬이의 성격을 잘 안다. 평소 너무 착하고 성실해서 이번에도 잘 극복해 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뿐만 아니라 김씨의 부모님들까지도 권영찬이 무죄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 권씨는 아무리 죄가 없다고는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 앞에 나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도 역시 그의 여자친구 김씨였다. “당시 저는 인생의 패배감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그렇게 제가 집에만 있으니까 영심이가 저를 대형 마트에 데리고 나가더라고요. 그냥 철없이 어린 줄만 알았던 이 친구가 제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나가자. 뭐가 두렵냐’고 하더군요. 이후에도 꼭 제 손을 잡고 돌아다녔어요. 그런 사랑 처음 받아봤어요.” 김씨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결국 법원이 권영찬의 손을 들어 주면서 이들의 오랜 마음고생도 끝이 났다. 만약 내 남자친구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조사대상이 된다. 보통 여자들 같았으면 1년 6개월을 기다리기는커녕,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등을 돌려버렸을 게다. 하지만 가녀리게만 보이던 김씨는 오히려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강인하게 연인의 옆자리를 지켜냈다. 그렇다면 권영찬은 김씨에게 어떤 프러포즈를 했을까.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기 전에 아버님과 영심이가 같이 저희 집에 왔어요. 솔직히 힘든 일 겪고, 쇠창살 사이로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가서 진실이 밝혀지면, 이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었죠. 웬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 시간 동안 제 옆에 있기 힘들죠. 그래서 아버님께 ‘하루를 살더라도 이 여자랑 살고 싶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죠. 그게 제 프러포즈였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이 여자와 살 것 사실 권씨가 김씨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이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권씨는 지난 2002년 11월 우연히 김씨를 처음 본 순간,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당시 권씨와 김씨는 서로 다른 모임에 있다가 합석한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권씨는 김씨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고,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아 용기를 내 그녀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달라며 연락처를 받아냈다. “후배를 소개시켜달라고 해서 연락처를 줬더니, 저한테 밥을 먹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오빠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저한테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약속을 어겼죠. 후후(김영심).” “두 번이나 바람맞고, 삼고초려 해서 겨우 만날 수 있었어요. 이 친구가 제가 연예인이라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더라고요.(권영찬)” 그 뒤 권영찬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편지쓰기. 만날 때마다 편지를 써서 김씨에게 전해준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 편지에 그리 크게 감동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한다. 편지를 여기저기 아무데나 둘 정도로 신경을 안 썼기 때문. 그래서 권씨는 편지를 건넬 때마다 한 장씩 복사를 해서 모아뒀다. 그리고 나중에 그걸 모아 책으로 제본을 해서 ‘영찬이의 마음’이라며 김씨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그 책을 받아든 김씨의 첫 마디는 “이런 걸 만들어주는 곳이 있어?!”였다고. “저는 편지를 모아서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소홀히 대했거든요. 그런데 그 편지책이 나중에 우리 사이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천천히 편지를 다시 봤거든요. ‘오빠가 나에게 이런 편지를 다 줬었구나’ 싶은 게 오빠의 진실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죠. 예전에는 미처 못 느꼈던 거예요. 오빠의 그 편지책, 진짜 가보 중의 가보로 남겨야 할 보물이에요(웃음).”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 살면서 절대 바람은 안 돼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것은 벌써 햇수로 6년째.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아 서로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서로 양력 생일도 똑같고, 휴대폰에 그림 다운받는 취향도 똑같아요. 둘 다 낙천적이고 생각이 긍정적이며 밝죠.” 옆에서 듣고 있던 여자친구 김씨가 한마디 더 거든다. “보통 코드가 같다고 하죠(웃음).” 이들은 권씨가 살고 있는 잠원동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릴 계획이다. 사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살림이 있으면, 하나씩 미리 사다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혼수’가 따로 필요없다.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결정했다. 승무원으로 일하는 김씨가 세계 각지를 돌며 ‘하와이’는 권영찬과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그런 두 사람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사소한 마찰을 피해갈 수 없었다. 3명을 낳고 싶다는 김씨에 비해, 딸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권씨, 여러 가지 드레스를 입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김씨, 처음 본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는 권씨… 물론 살면서 이 정도 마찰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마는 말. 권영찬은 현재 연예인들의 의상, 헤어 등 스타일링을 도맡아서 관리해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을 아예 은퇴한 것은 아니다. 방송과 사업이 모두 적성에 잘 맞고 욕심이 난다는 것. 때문에 방송도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어려운 일을 겪은 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권영찬, 김영심 커플.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결혼생활에 임하는 각오에 대해 물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절대 바람은 안 피겠죠(웃음).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행복한 가정 꾸려가는 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거두지 않아 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김영심)”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결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렇게 결혼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인연인가 봐요. 그리고 사람이 힘들면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어요. 요즘 같아서는 식구들 얼굴을 보면 한 번 더 웃게 되죠. 웃을 수 있는 그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저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니까요(웃음)(권영찬).”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협찬 / 박술녀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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