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515 건 검색)
- 공수처, 김용현 휴대전화 보관한 민간인 ‘최측근’ 소환 조사
- 2024. 12. 20 18:37 사회
- ...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일 새벽 김용현을 관저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양모 씨라는 민간인”이라며 “김용현의 비서관 노릇을 하던 양씨는 소대장 시절 전령을 했던 인연으로 경호처장 시절...
- ‘탑건’ 톰 크루즈, 미 해군 최고 등급 민간인 공로상 수상
- 2024. 12. 18 20:52 문화
- ... 크루즈는 이날 런던 인근의 스튜디오에서 미 해군장관 카를로스 델 토로가 수여한 해군 최고 등급의 민간인 공로상(US Navy’s top civilian honor)을 수상했다. 미 해군은 크루즈가 “고도로 훈련된...
- 부산 제1호 민간정원에 ‘F1963 정원’ 선정…도심 속 힐링 공간
- 2024. 12. 13 09:43 라이프|여행|지역
- ... 재배·가꾸기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민간정원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조성·운영하는 정원을 말한다. F1963은 고려제강 공장이 지어진...
- f1963고려제강민간정원소리길단풍가든달빛가든
- 유엔 사무총장 “시리아 민간인 위험···정치적 해결 모색해야”
- 2024. 12. 06 08:53 국제
- ... 과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5일(현지시간)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수만명의 민간인이 이미 불타고 있는 지역에서 위험에 처했다”면서 “우리는 만성화된 집단적 실패의 쓰라린...
스포츠경향(총 188 건 검색)
- 전용기 의원 주최, 시니어 시설 국회 정책토론회 성료···케어닥 “규제 혁신 통한 민간 참여 확대 필수”
- 2024. 12. 15 03:46 생활|생활|생활|생활|생활
- 케어닥 제공 시니어 토탈 케어 기업 케어닥(대표 박재병)은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재선, 국토교통위) 의원실 주최로 열린 시니어 시설 관련 정책토론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2025 초고령 사회 진입, 시니어 주거시설의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시니어 주거 시설 운영 및 규제 현황을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가 최근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국내 시니어 하우징 산업은 수요 대비 공급이 미비해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노인복지주택은 수요가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율이 고령 인구 대비 0.1%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이번 토론회는 이에 대한 실질적 규제 완화 및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뒀다. 토론회에는 시니어 케어 기업 대표로 참석한 케어닥 박재병 대표를 비롯해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회장, 최희정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허경민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 최민아 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공간연구실 센터장, 신용호 해안건축 소장 등 각계 전문가가 참석했다. 케어닥 전용기 의원은 개회사에서 “시니어 주거시설의 현재와 과제를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규제와 지원 정책, 입법에서 보다 나은 정책 방향을 위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라며 “시니어 주거 시설 문제는 모든 세대가 직면한 공동의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의원은 “초고령 사회 진입이라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국민 모두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첫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회장은 노인주거시설 현황을 비롯해 기존 산업의 저성장 원인을 짚으며 △민간임대주택 수준의 세제 혜택 개선 △개발 및 건축 규제 완화 및 지원 △맞춤형 사업자 금융 지원 강화 △시니어 하우징 전문 운영사 공적 인증제 신설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시니어 하우징이 지닌 의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두번째 주제발표자인 최희정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독일, 일본,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시니어 레지던스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민간 시장 활성화 정책이 시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국내 역시 △계층형주거모델개발 △AIP 촉진 △민간 부문 참여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행된 종합 토론에는 박동현 전 회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전용기 의원, 케어닥 박재병 대표,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허경민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 최민아 LH 토지주택연구원 국토공간연구실 센터장, 신용호 해안건축 소장 등 각계 전문가가 참석해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특히 시니어 케어 대표 기업으로 참석한 케어닥 박재병 대표는 토론 발제를 통해 “과도한 규제로 시니어 하우징 개발 및 공급 확대가 쉽지 않으며, 세금 및 자금 측면의 진입 장벽이 높아 민간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라며 “이는 시설 공급 제한, 운영 효율 저해, 서비스 품질 저하, 세제 부담 등의 문제를 야기해 시니어 주거 만족도와 건강 이슈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니어 하우징 규제의 혁신은 상품 개발을 촉진, 시니어의 주거 선택을 넓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다양한 분야의 인력 창출을 일으켜 국가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토론에서는 각 토론자들의 현행 시니어 시설 규제의 문제점 및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 전용기 의원은 “초고령 사회에서 시니어케어 시설은 단지 돌봄의 공간이 아니라, 존엄성과 행복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기반”이라며 “오늘 토론회를 통해 나온 다양한 의견과 통찰은 초고령 사회를 대비한 시니어 하우징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어닥 박재병 대표는 “급증하는 고령인구와 다변화되는 시니어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니어 하우징 규제 혁신이 필수”라며 “케어닥은 시니어 케어 분야의 선두 주자로서 앞으로도 시니어 하우징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 혁신 사업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광주 쌍령동 민간임대 아파트 ‘드림시티’, 홍보관 오픈식 첫날 많은 인파 몰려
- 2024. 11. 23 00:01 생활
- 경기 광주 쌍령동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며, 새로운 주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경기광주역 드림시티’가 22일 오전 10시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주택홍보관을 오픈하며 지역 내 민간임대 주택 시장에 주목을 받고 있다. 경기광주역 드림시티는 경기 광주역 근처에 위치한 대규모 민간임대 주택단지로, 총 1902세대 규모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 오픈한 홍보관은 드림시티의 첫 번째 공개 행사로, 입주 희망자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혜택을 제공하는 자리가 되었다. 오픈 첫날, 홍보관을 찾은 고객은 1000명을 넘으며 큰 관심을 모았다. 홍보관을 방문한 고객에게는 특별 사은품도 제공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경기광주역 드림시티는 장기 민간임대주택으로, 최대 10년까지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하다. 청약통장, 주택 소유 여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 넓은 범위의 입주 희망자가 참여할 수 있다. 이 민간임대 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향후 분양 전환 시 우선권도 제공되는 점이 큰 매력이다. 특히, 다양한 전용면적(59㎡부터 100㎡까지)으로 구성될 예정으로, 가족 구성원에 맞는 유연한 선택이 가능하며, 고급 마감재와 우수한 시공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전대가 자유로워 자금 운용에 유리한 점도 큰 장점이다. 이로 인해 매매 수요와 임대 수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드림시티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원하는 사람들과, 향후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수요자들에게 모두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광주역은 경강선과 이천과의 교통 연결성을 바탕으로 판교, 강남 등 서울 주요 도심으로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GTX-D 노선이 예정되어 있어 향후 교통 인프라가 더욱 확장될 예정이다. 쌍령동은 이 모든 교통 편의성과 역세권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어 주거지로서의 잠재력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드림시티 관계자는 “홍보관 오픈 첫날부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더욱 많은 분들이 드림시티의 혜택을 누리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광주역 드림시티는 쌍령동의 교통 인프라와 대규모 개발의 중심에서,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하는 민간임대주택으로서 지역 주거 시장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 광주 쌍령동 ‘쌍령지구 민간임대 사업’ 시행사, 사랑의 음식 나눔 봉사활동 계획
- 2024. 11. 17 00:01 생활
- 경기도 광주 쌍령동에서 ‘쌍령지구 민간임대 아파트사업’을 진행하는 시행사가 12월,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음식 나눔 봉사활동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봉사활동은 겨울철을 맞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여, 그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이번 봉사활동은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시행사 임직원이 직접 음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행사는 청석공원 환경 정화 캠페인, 복지 소외 계층을 위한 기부 활동 등 지역사회의 상생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다. 이번 음식 나눔 봉사활동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연말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이 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번 활동을 기획했다. 추운 겨울을 보낼 취약계층에게 마음이 담긴 음식을 전달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김영환 지사 등 국회서 청주공항 민간 활주로 신설 촉구
- 2024. 11. 14 22:56 생활|생활|생활|생활|생활
- 충북도 제공 김영환 충북지사와 충북 여야 국회의원 등이 14일 청주공항 민간 전용 활주로 신설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김 지사와 더불어민주당 송재봉·이광희·이연희·이강일 의원,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 이범석 청주시장, 이양섭 충북도의회 의장 등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영환 지사는 성명을 통해 “청주공항은 개항 이래 처음으로 연간 이용객 400만명을 넘어섰고 흑자 공항으로 변화하는 등 무한한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중”이라며 “하지만 군 항공기와 함께 활주로를 사용해야 해 급증하는 항공 수요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 활주로를 신설한다면 항공 물류와 관광·산업·국제교류를 촉진해 지역발전을 유도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며 “포화 상태인 수도권 공항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전용 활주로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원들도 활주로 건설사업이 장기간 소요되는 만큼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활주로 건설을 고민하고 즉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북도는 청주공항 민간 활주로 신설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가칭 청주공항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국가 재정 지원 등이 담긴 특별법을 제정하면 관련 사업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충북도는 기대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지역의 염원을 모아 민·관·정 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 서명운동, 각계 기관·단체 성명 발표 및 결의대회, 전문가 토론회 등 대정부 건의 활동을 벌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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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결론 없는 전쟁, 이번에도 민간인 살육만 남길까(2023. 10. 13 16:00)
- 2023. 10. 13 16:00 국제
-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스라엘 지지 시위(왼쪽).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 AP=연합뉴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유혈 충돌로 사망자 수가 양측 모두 1000명 단위를 넘어섰다. 사태가 전쟁 양상으로 치달으며 사망자와 부상자를 더한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충돌은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공격하며 시작했다. 이스라엘 공영 방송 칸을 인용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측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1일 기준, 1200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를 인용한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복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2일 기준 1200명을 넘어섰다. 공격과 보복이 오가며 하루아침에 사망한 ‘사람’이 2000명이 넘는다.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은 수천명의 사망자와 함께 서서히 전쟁 관련 ‘통계’로 변해가고 있다. 2년여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며 중동 지역에서 ‘간신히’ 발을 뺐던 미국은 최대 우방 이스라엘이 공격받자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고,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갖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탄약과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체계)을 보충할 요격 무기들을 포함한 추가적 군사지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마스의 공격은 이슬람국가(ISIS)의 광란 행위와 닮았다”고 비난했다. 실질적 지원도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월 10일, 미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이스라엘 인근 동지중해에 도착했다. 직접 개입보단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불안정해질 중동정세를 사전에 진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양자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시가전까지 불사하며 가자지구를 점령할 계획이다.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 가자지구에 남은 민간인 등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문제는 미군 철수 이후 힘의 공백 지대에 있던 중동이 이스라엘과 함께 돌아오는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지난 2년여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과 미국과 대립하는 지역으로 갈라졌다.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등의 미국을 지원하는 단단한 린치핀(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외교가에선 공동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 등을 의미한다)이 있지만 중동은 다르다. 당장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양대 세력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모두 팔레스타인 지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하마스와는 선을 긋고 있지만, 미국이 직접 개입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유럽에 이어 중동에서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하마스는 무엇을 노렸나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파괴된 자동차 모습(왼쪽).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이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공습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건물들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뿜어나오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 발생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두 가지 방어선을 뚫었다. 하나는 미국 CIA, 이스라엘 모사드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기관의 힘이다. 이번 공격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 지방을 향해 로켓포 5000여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은 하마스가 5000여발의 로켓포를 확보하는 과정,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모두 놓쳤다. 이를 두고 미국 CNN은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 첩보)와 모사드(해외 첩보), 방위군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누구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정보 협력을 해온 미국 CIA를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하고, 세계가 부러워 한 ‘아이언돔’의 실패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구축 중인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원조격이다. KAMD를 ‘한국형 아이언돔’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방어체제를 C-RA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C는 대응한다는 의미의 Counter, RAM은 로켓(Rocket), 곡사포가 중심인 대포(Artillery), 박격포(Mortar)를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은 국경 북쪽에서 대립하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 내부에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이언돔을 구축했다. 요격 성공률은 90%에 달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서 아이언돔은 사실상 무기력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점만 노출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한 번의 성공이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뒤집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하마스의 공격 성과가 커질수록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인한 붕괴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가혹하고 끔찍한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전례 없는 공세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0일에는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이 “이스라엘 남서부와 가자 봉쇄선 부근에서 약 1500명의 하마스 전투요원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보복 위험을 감수한 공격에 나선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해묵은 원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는 ‘왜 꼭 지금, 이 정도로 대규모 공격에 나서야 했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중동전문가인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양측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고 봤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공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마치 제4차 중동전쟁을 연상케 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상황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다. 이스라엘 영토 내부에 쪼개져 있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로 나뉘어 있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확대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가자지구와 이른바 웨스트뱅크로 불리는 서안지구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지구를 통치하는 세력이 다르다.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1987년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한 하마스다. 이들은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을 대(對)이스라엘 투쟁의 이념으로 삼고 출발했다.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건설이 목표다.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세력이 주축이 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출발했다. 부패 문제로 비판받지만, 서구 및 이스라엘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동-서로 분리된 팔레스타인의 영토 안에 각각의 통치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은 자연히 경쟁을 낳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하마스가 이스라엘만큼 싫어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고 인정한 서안지구 자치 정부”라며 “하마스가 무리해 보이는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들의 경쟁관계에서도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관계에 변수가 생겼다. 사우디의 등장이다. 수니파 이슬람의 수장격인 사우디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로 ‘네옴시티’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실리를 확보하고자 했다. 문제는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불러올 중동 지역의 반발이다. 이에 사우디는 역시 수니파 이슬람이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처우 개선을 수교 조건에 넣었다. 그런데 사우디와 협력하는 팔레스타인은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아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였다. 차질없이 수교가 이뤄진다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원까지 확보하게 된다. 경쟁관계인 하마스 입장에선 달가울 수 없다. 수니파 사우디와 경쟁하는 이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판을 깨는 데 전쟁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팔레스타인 내 주도권 다툼과 지정학적 변화를 종합해보면 ‘왜 지금 대규모 공격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하마스의 의도가 성공했는가’까지 평가해볼 수 있다. 지난 10월 9일 국내 언론은 사우디의 실권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지키고 영토의 평온과 안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선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해당 보도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된 부분이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통화에서 지지 의사를 밝힌 건 팔레스타인 전체가 아닌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와 하마스와의 거리는 변한 것이 없다.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일까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나예프 알수다이리 요르단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왼쪽)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만나고 있다./EPA연합뉴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포기한다’, ‘중동 내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시아파 수장 이란이 개입해 이스라엘·미국과 대립한다’ 정도면 하마스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셈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을 뿐, 하마스를 지지한다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수교가 잠시 미뤄질 수는 있겠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 이란 역시 선을 긋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10월 1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해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 편을 드는 자들은 지난 2~3일간 (하마스) 행동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란 배후설’이 적극 제기됐던 미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하마스 공격에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란의 전통적인 대외 군사전략이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이란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전쟁은 이란 국경 밖에서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대리인(Proxy)의 존재다. 즉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 내 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해 이란 국경 밖에서 자신들의 적과 대리전을 벌인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 하마스 편에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곳은 레바논과 골란고원 지역을 두고 이스라엘과 영토분쟁을 해온 시리아 정도다.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언급하며 확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만일 시아파 벨트 국가들의 추가 참전이 이어지더라도 이란은 전략적 선택에 의해 직접 개입할 확률이 높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하마스의 의도대로 중동 지역 분쟁에 직접 개입할 것이냐는 점 역시 변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과 전쟁에 개입해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는 있어도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을 할 여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며 “중동 지역 주요 국가들도 하마스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미국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짜 변수는 하마스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간)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공격으로 사망한 시신을 옮기는 이스라엘 보건당국 관계자들.(오른쪽) 지난 10월 12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사망한 시신을 옮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연합뉴스 하마스의 공격이 발생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은 사법제도 재편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맞춰져 있었다. 끊임없이 시위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다. 극우세력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은 네타냐후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안보 강화로 정당화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민주주의를 위협한 네타냐후 정부가 안보에도 무능력하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 됐다. 장 센터장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네타냐후 정부의 정보, 안보, 리더십 실패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치닫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일단락되면, 가장 먼저 네타냐후 정부의 책임부터 물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 극단적 선택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좁은 가자지구 내에 사는 민간인이 하마스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을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폭격 전 가자지구 내 민간인을 향해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가자지구 내 민간인은 사실상 하마스의 인질에 가까운 데다 이스라엘에 의해 분리된 팔레스타인 영토 구조상 가자지구를 떠나 탈출할 곳도 없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시가전 감행은 사실상 민간인도 함께 죽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법의 지배에 따라 행동할 때 얼마나 더 강하고 안전한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한 전시 국제법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고려할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10월 12일 이스라엘이 폭격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 유니스 남부 지역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 10일 이타르타스통신 등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주거지역에 백린탄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백린탄은 가연성이 강한 파편을 흩뿌리는 화학무기로 연기만 흡입해도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해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돼 제네바 협약 등에 의해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2009년에도 백린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번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마스 역시 지난 10월 7일 기습 당시 납치한 인질들을 이른바 ‘인간방패’로 세우고 있다. 이미 지난 10월 9일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1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이란, 유엔 등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거나 중재할 능력, 의무가 있는 곳들은 상황을 관망 중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미국과 지역 강대국이 확전을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피해는 군인보다 민간에 집중될 확률이 높아진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 남긴 채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사망자 수를 기록한 통계수치가 쌓여가고 있다.
- 민간개발 ‘저울질’에…한 발도 못 나간 공공개발(2023. 07. 14 11:21)
- 2023. 07. 14 11:21 경제
-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서 한 주민이 길을 걷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21년 2월 5일 국토교통부, 서울시, 용산구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서울역 앞 동자동 일대 쪽방촌은 지난 수십 년간 사업성의 부족으로 재개발이 진행되지 못했다. 국토부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재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공공주택특별법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구역에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 등으로 공공주택을 절반 이상 짓도록 규정한다. 국토부는 쪽방 주민의 재정착을 위해 전체 2410호의 입주물량 중 1250호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2020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에는 1083명의 세입자가 거주한다. 숫자상으로 쪽방촌 주민 전원이 입주할 수 있는 물량이다. 정부는 재개발로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고 재정착할 수 있도록 ‘선(先)이주, 선(善)순환’ 대책도 내놨다. 임대주택이 들어설 지역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공공주택을 건설해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이 완료된 후에 나머지 부지를 정비해 민간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철거되는 지역에 거주 중인 쪽방 주민을 위한 임시거주지는 사업지구 내 게스트하우스나 인근 공원에 모듈러주택 등을 활용해 조성하기로 했다. 쪽방 주민들이 입주할 임대주택은 5.4평 규모로 보증금 183만원, 월평균 3만7000원의 임대료가 책정됐다. 쪽방촌 주민의 자활, 상담, 무료급식, 진료 등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는 2021년 공공주택지구 지정 완료, 2023년 임시이주 및 공공주택 단지 착공, 2026년 공공주택 입주, 2030년 민간분양 택지 개발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다. 국토부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공공임대주택을 한창 짓고 있어야 한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그러나 아직 공공주택지구 지정이라는 첫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던 날을 회상하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뉴스마다 동자동 이야기가 나오더라. 아파트 두 동을 짓고, 주민들 그대로 들어가 살라고 하니 얼마나 좋아”라며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삽을 떠야 했는데, 이제까지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쪽방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수급비(기초생활수급급여)에 따라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지목돼 왔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방이 16개 있으면, 화장실이 하나다. 거기서 씻고 설거지한다”라며 “한 평도 안 되는 방이 25만원, 30만원이다. 수급비가 올라가면 방값도 덩달아 올라가는 구조다. 평당 가격을 따져보면 강남의 비싸다는 집들보다 사실 더 비싼 셈이다”라고 말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선이주 선순환’ 구조는 재개발이 되더라도 내쫓기지 않고 동자동에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여기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면 힘들다. 외톨이가 된다. 임대주택에 산다고 하면 안 좋게 보고 상대해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여기에는 비슷한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니 친구도 만들 수 있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업에 진척이 없자 쪽방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은 “지난해 겨울에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7000억원 삭감’을 막기 위해 쪽방 주민들이 국회 앞에서 70일 동안 천막을 치고 집회를 했다. 결국은 그 예산을 그대로 깎아버리더라”라며 “예산이 삭감되는 걸 보고 올해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용산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노량진 자택까지 공공주택사업을 촉구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을 벌였다. 토지·건물주들의 반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지구지정조차 안 되고 표류 중인 이유는 토지·건물주들이 사유재산 침해를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 반대하는 토지·건물주들은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간개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2021년 3월 주민대책위원회는 창립총회 보도자료에서 “LH가 동자동 토지를 강제수용하여 알짜 부분을 민간개발 택지로 분양할 경우, 그 시세차익만 최소 조 단위일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정부가 민간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이 사업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민간개발로 진행이 되더라도 쪽방촌 거주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 및 대안책을 마련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충분한 기여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특위)’도 주민대책위원회에 힘을 실었다. 특위는 민간개발도 용적률과 고도제한을 공공주도 사업수준으로 완화해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1일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공공주택사업 촉진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주민대책위원회는 용적률을 최대 700%까지 완화할 수 있는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하는 민간개발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국토부에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해 민간개발을 하게 해달라, 쪽방 주민들도 잘 모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토부가 안(案)을 만들어보라고 제시했고, 업체를 선정해서 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대책위원회의 민간개발 전환 요구에 대해 민간개발의 타당성 및 사업성 부족은 이미 입증됐다는 반박이 나온다.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2015년 민간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민간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도제한을 5층에서 18층으로 완화하는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됐다. 2020년 3월이 일몰 시점이었는데, 그때까지도 민간에서 사업제안을 못 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공공주택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부동산가격이 급등했고,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 위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나설 때였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한다며 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들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토지·건물주들이 민간개발을 하면 사업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개발로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이미 했어야 한다. 공공주택사업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민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며 “공공개발을 철회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술술 풀려 잘 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주민대책위원회의 주장대로 용적률을 높이면 그럴수록 서울 도심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개발이익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에 대한 공공기여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쪽방 주민들에게는 공공주택사업에서 제시한 수준의 입주물량과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 민간개발이라고 해서 반대할 이유가 있었을까”라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축소되는 쪽방 주민 숫자 홈리스행동 등 주거권 운동 단체에서는 주민대책위원회가 민간개발로 전환하고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쪽방촌 주민 숫자를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민대책위원회 측은 “지난해 쪽방 현장조사를 했더니 쪽방촌 거주 세대가 700~900가구로 추정됐다. 아마 700세대가 조금 넘는 정도 아닐까 싶다”라며 “공공주택개발보다 훨씬 줄어든 규모로 민간개발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성도 좋고 여러 가지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방식으로 가게 되면 평수가 임대주택보다 넓기 때문에 집을 여러 세대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이 3개라면 주방과 화장실은 공유로 쓰고 각각 방을 하나씩 쓰는 형태로도 연구를 해봤다”라며 “지금 민간개발안(案)을 조정하고 있는데, 이를 다시 국토부에 보내 보완점이 있으면 보완을 해서 조율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쪽방 주민 중에 막노동하는 분들은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조사하는 시점에 문을 두드렸는데 집에 없으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겠나. 제대로 된 조사가 됐을 리 없고, 또 주민대책위원회가 조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공공주택사업 이후 주민대책위원회가 전략적으로 세입자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최근만 해도 벌써 두 집이 비었다. 이들은 주민설명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건물주들에게 ‘월세 몇 푼 욕심내지 말고 빨리 사람들 내보내라’고 이야기한다”라며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오면서 쪽방 주민이 200명 정도 줄었다. 한 해 돌아가시는 인원은 30명 정도이며, 새로 또 유입되기도 해서 매해 비슷한 수준으로 주민 수가 유지된다. 200명이 줄었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내보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 숫자다”라고 말했다. 민간주택으로 전환돼 사업계획을 변경할 경우, 임대주택 물량을 줄이고 세입자들에 대한 개별보상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을 내보낸다는 주장이다. 2021년 3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건물 외벽에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민간개발이 진행 중인 남대문 인근 양동 쪽방촌의 경우도 재개발을 앞두고 강제퇴거가 이어졌다. 주민 중에서는 재개발 소식조차 전해 듣지 못한 채 이주에 필요한 적정 금액의 보상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어 논란이 됐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위원장은 “500명 정도의 쪽방 주민이 있었는데, 민간개발을 앞두고 세입자들을 미리 내보내라고 하더라. 지금은 150세대 정도가 남았다. 그때 쫓겨난 분들은 동자동 창신동 돈의동 쪽방촌으로 이사하거나 서울역 뒤 서부역 쪽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후 쪽방 주민들과 주거권 단체는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요구했고, 182세대의 영구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활동가는 “공공주택사업이 진행될 거라고 본다면 건물주들이 계속해서 세입자를 받겠지만, 민간개발을 전망하는 건물주라면 세입자를 안 받을 것이다”라며 “거기다가 장기전세주택을 공유주택처럼 만들겠다는 검토안은 사실상 시설에 들여보내겠다는 발상과 같다. 아주 폭력적인 시각으로 쪽방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대책위원회가 주장하는 민간개발로의 전환은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는 걸까. 동자동 쪽방촌 일대 토지·건물주들 중에는 공공주택사업에 찬성하는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 주민대책위원회(공공주택 주민대책위)’도 있다. 공공주택주민대책위의 의견은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주민대책위와 또 다르다. 조재형 공공주택주민대책위 총괄본부장은 “국토부나 서울시에서도 공공개발이 더 타당성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 공공이냐 민간이냐로 흔들릴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토지주 입장에서 공공개발이 더 실익이 있다.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회사, 감정평가사, 시공사 등과 시뮬레이션을 해봤을 때 민간보다 공공개발의 수지가 더 좋게 나왔다”라고 말했다. 국토부의 저울질 사업의 주체인 국토부는 민간개발 전환 논란에 대해 “서울역 쪽방촌은 공공주택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 등이 다른 방식의 개발안을 제출했고, 서울시와 용산구 등과 함께 해당 개발안이 공공개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인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반발하는 건물주들을 달래기 위해 소유주들에게 현물보상(분양권)을 할 수 있게 특례 조항을 신설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토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한편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승인권자인 서울시는 민간개발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는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해당 지역이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조건에 부합하는지 검토해보지 않았다. 국토부가 공공주택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국토부가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서울시가 따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해명, 특별법 개정 등은 공공주택사업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작 공공주택사업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민간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상황을 저울질하면서 사업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현 활동가는 “국토부와 서울시에서 주민대책위원회의 민간개발 요구를 계속해서 수용하고 있다. 민간개발안은 세입자 보장방안이 약하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주민대책위원회에 수정해서 제출하라고 하기 때문에 주민대책위원회 측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라며 “이렇게 되면 결국은 시간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리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저울질에서 쪽방촌 주민들은 배제되고 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에서 “지구지정이 하염없이 미뤄지는 동안 사업 시행자와의 소통은 가용할 자원과 능력을 확보한 소유주 집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유야무야 시간만 끌면서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사업이 지연되면서 국토부가 있는 세종시에도 가고,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했다. 그때만 해도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 많이 지친 상태다”라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이기환의 Hi-story](48)민간인이 기록한 이순신·원균 이야기(2022. 08. 26 15:16)
- 2022. 08. 26 15:16 문화/과학
- ㆍ선비 오희문의 은 임진왜란 전후로 1591년 선비 오희문이 쓴 임진왜란 피란일기 이 전하는 한산대첩 승전기록.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임진왜란을 기록한 공식 사료는 당연히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겠죠. 우리 조상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기록에 진심이었습니다. 진중일기인 이순신(1545~1598)의 <난중일기>, 관리로서 임진왜란을 치른 유성룡(1542~1607)의 <징비록>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민간인의 신분에서 전쟁 상황을 기록한 일기가 있습니다. 바로 선비 오희문(1539~1613)의 <쇄미록>(7책)입니다. 오희문이 임진왜란 전후로 1591년 11월 27일부터 1601년 2월 27일까지 9년 3개월(3368일)간 쓴 피란일기입니다. 자잘하고 보잘것없는 이의 피란일기 오희문은 임진왜란 5개월 전인 1591년 11월 27일 서울을 떠나 남행길에 올랐는데요. 남쪽에 사는 노비들에게서 신공(身貢·노비가 주인집에 노동력을 대주는 것 대신 내야 했던 현물)을 거둬들이고, 외가(충청 영동)와 처남(전라 장수), 매부·누이(전라 영암) 등을 만나보고자 했습니다. 여행 도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죠. 이후 장수~홍주~임천(부여)~평강(아들의 부임지) 등지를 떠돌다가 1601년 2월 26일 서울로 돌아옵니다. ‘쇄미(?尾)’는 “자잘하고 보잘것없이 떠도는 사람이로구나!(?兮尾兮 流離之子)”라고 한 <시경> ‘패풍·모구’에서 따왔습니다. ‘피란일기’라는 뜻이죠. <쇄미록>은 작자의 피란 생활은 물론이고, 전쟁 중 고통받은 민중의 삶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냈습니다. 전쟁과 맞닥뜨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당대 백성들 사이에 흘렀던 밑바닥 여론의 동향을 살필 수 있답니다. <쇄미록>이 평가한 원균 요즘 영화(<한산: 용의 출현>)에서 재조명된 한산대첩을 <쇄미록>은 어떻게 다뤘을까요. “우수사는 이달 초(7월 8일) 전라 좌·우 수군과 함께 나가서 적선 80척을 나포해 700여명의 수급(머리)을 베었다. 초 10일에도 또 적선을 만나 80여척을 사로잡았다….”(1592년 7월 26일) 한산대첩 하면 이순신 장군의 업적으로 알고 있지만 <쇄미록>의 기사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깁니다. 전투를 주도한 것 같은 ‘우수사’는 바로 경상우수사인 원균(1540~1597)을 가리킵니다. 원균의 주도 아래 전장에 나서 대승을 도운 것으로 묘사된 전라 좌·우 수군의 지휘관은 바로 이순신(전라좌수사)과 이억기(1561~1597·전라우수사)입니다. 한산대첩 이전에도 <쇄미록>에는 원균 관련 기사가 제법 보입니다. “들으니 경상우수사 원균이 지난달에 적선 10여척을 불태웠고….”(1592년 4월) “수군절도사 원균이 또 적선 24척을 불사르고 적병 7명의 수급을 베었다는 소식을… 만나니 근심이 풀렸다.”(1592년 5월 30일) ‘~들으니’로 시작되고, ‘원균의 승전보에 근심이 풀렸다’는 내용은 당대 민간의 여론을 가감 없이 전했다 할 수 있습니다. 오희문은 또 1597년(선조 30) 4월 5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왜선 2척을 포획하고 왜적 65명의 수급을 베었다”면서 ‘참으로 기쁜 소식’을 일기에 적었습니다. 또 그해 7월 29일 원균의 칠천량 전투 대패를 전하면서 “흉적(왜군)이 불의에 야습해 함락됐으며, 통제사 원균 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면서 “매우 놀랍고 한탄스럽다”고 했습니다. “이순신이 죽었으니 바다는 누가 지키겠는가” 이순신은 어떨까요. <쇄미록>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적선 42척을 불태웠다”는 옥포해전(1592년 5월 7일)과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함께 대승을 거둔 한산대첩(7월 8일)의 전과를 소개한 뒤 “10일에도 적선 80여척 등을 나포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1598년(선조 31) 12월 3일자에서 왜군의 철병 소식을 전하면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탄환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면서 “나라의 불행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느냐”고 슬퍼했습니다. “전사한 이순신은 난리 초부터 전라도의 보루가 됐는데 지금 왜적의 탄환에 죽었으니 애석하다. 지금 조정에서 전쟁이 끝났다며 호들갑 떨고 있다. 그러나 이순신이 죽었으니 누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겠는가.”(12월 16일자) 오희문이 이순신에게도, 원균에게도 어떤 선입견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쇄미록> 1595년(선조 28) 6월 20일자에 심상찮은 내용을 전합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 원균은 난리 초기에 경상우수사로서 많은 공로를 세워 2품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사이가 벌어져… 서로 용납되지 못해 충청 병마사로 관직을 옮긴 것이다.” 1597년 7월 29일 원균의 칠천량 전투 대패를 전하면서 “흉적(왜군)이 불의에 야습해 함락됐으며, 통제사 원균 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매우 놀랍고 한탄스럽다”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이순신과 원균은 불구대천의 원수 안타깝게도 이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옥포해전(1592년 5월) 이후 군공 다툼에서 시작됐습니다.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병을 청해 적을 물리치고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했다. 그러나 이순신이 ‘천천히 하자’고 말해놓고는 밤에 장계를 올리면서 ‘원균에게… 공로가 없다’고 진술했다. 원균이 대단히 유감스러워했다.”(<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 1일) <선조수정실록>은 “이때 두 사람이 각각 장계를 올려 공을 다투었는데, 두 사람의 틈이 그로부터 생겼다”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의 반목은 극심해졌습니다. 1594년(선조 27) 11월 12일 선조가 참석한 조정회의에서 두 사람의 갈등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벌어집니다. 이때 선조는 “왜적을 포획한 이순신의 공은 가장 크다”고 인정하면서도 “지병(습증)에도 불철주야 해상에서 죽기를 각오한 원균에게 전공과 관련된 불만이 있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원균의 처지도 이해했습니다. 조정회의에서는 “원균도 사졸이 따르니 가장 쓸 만한 장수요, 이순신도 비상한 장수인데 둘이 다투면 큰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섣불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경질한다면 수군이 동요할 것이라는 염려가 통한 겁니다. <난중일기>의 ‘원균’ 뒷담화 따지고 보면 이순신·원균의 알력에서 원균을 더욱 불리하게 만든 것이 있죠. 바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일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쓴 글이 아니죠. 그러니 관할권, 작전권, 전공 다툼으로 사사건건 부딪쳤던 원균을 곱게 볼 리 만무하죠.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원균을 80~120번 정도 언급했는데요. 절대다수가 원색적인 비난입니다. “원균의 술주정에 배 안의 모든 장병이 놀라고 분개하니 고약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1593년 5월 14일) “원균이 온갖 계략으로 나를 모함하려 덤비니 이 역시 운수다. 뇌물로 실어보내는 짐이 서울 길에 잇닿아 있다.”(1597년 5월 8일) 이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어떻든 이순신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은 원균은 모함꾼, 비겁자, 술주정뱅이로 전락하고 말았죠. 반면 원균의 치명적인 약점은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 같은 공적인 기록 외에는 변명의 수단이 없죠. 하기야 훗날 이순신의 경질(1597년 1월)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조선 수군을 궤멸 상태로 빠뜨린 칠천량 전투의 패전 책임자인 것은 분명하잖아요. 장수로서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맞겠죠. 다만 원균을 두고 성웅 이순신을 모함해 밀어내고 그의 자리를 차지했고, 전투에 임해서는 늘 도망만 다니는 겁쟁이라고 마냥 매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원균은 전쟁 후 이순신·권율(1537~1599) 등과 함께 나란히 ‘선무1등공신’으로 책록됐거든요. 문무관 등 관리나 의병 신분이 아닌 민간인의 신분에서 전쟁 상황을 기록한 선비 오희문의 . 1591년 11월 27일부터 1601년 2월 27일까지의 피란일기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주상께서 도성을 굳게 지켰다면…” <쇄미록>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람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과 동시에 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죠. 오희문은 백성을 팽개치고 줄행랑친 선조 임금을 원망합니다. “주상께서 도성을 굳게 지키고 장수에게 명해 미리 준비해 막고… 필사의 각오로 길을 끊었다면 적이 어찌 침범하겠느냐. 그런데 먼저 퇴둔(退屯·물러나서 진을 침)하니 몹시 애석한 일이다.”(1592년 4월) 오희문은 선조의 몽진길을 수행하다가 사초를 불구덩이에 던져넣고 도망친 사관 4명(임취정·박정현·조존세·김선여)을 “이런 개돼지 같은 무리…”(1592년 8월 21일)라고 욕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기막힌 ‘드립성 표현’도 나왔습니다. “경상도관찰사가 백성들을 동원해 농사철까지 ‘지키지도 못할’ 성을 쌓는 바람에 원망이 하늘을 덮었다. 그래서 ‘성을 높이 쌓은들 누가 지키며 싸우랴. 성은 성(城)이 아니라 백성이 바로 성(姓)이라네’ 하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왜군의 만행은 필설로 헤아릴 수 없었다. 은 “나무에 사람의 머리를 베어 무수히 걸었는데 부패해서 살과 뼈는 떨어지고 머리털만 걸려 있거나 망건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한다. 분한 마음을 이기기 어렵다”(1592년 9월 24일)고 기록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끔찍한 전쟁통의 삶 <쇄미록>이 전하는 전쟁의 참상은 끔찍합니다. “길에서 굶어죽은 사체 곁에서… 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어미라 하는데, 뼈를 묻으려 해도 힘이 없어….”(1594년 2월 14일)라는 내용은 새발의 피였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심지어 육촌의 친척도 죽여 씹어먹는다고 한다. 요즘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잦아 사람의 씨가 다 말라갈 지경”(1594년 4월 3일)이라고 고발합니다. 배고픔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 “성주를 점령한 왜군이 관청의 곡식을 나눠주자 백성들이 ‘새로운 상전(왜군)이 나를 살렸다’고 칭송했다는 얘기까지 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긴 나무에 사람의 머리를 베어 걸었는데 부패해 살과 뼈는 떨어지고 머리털만 걸려 있거나 망건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한다”(1592년 9월 24일)고 했습니다. 여성들은 또 어떤 고초를 겪었습니까. <쇄미록>에는 “왜적은 영남 양반가 여성 중에 얼굴이 고운 자를 뽑아 간음한 다음 일본으로 가는 배편에 보냈다”고 고발했습니다. 또 “왜적의 포로가 된 여인이 적들에게 돌아가며 강간당해 자결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인의 치마를 들춰보니….”(1592년 5월) 더 이상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내용입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쇄미록> 곳곳에는 부모와 아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새벽에 꿈을 꾸니 아내가 집에 있는데 옛날과 같다. 내가 무릎 위에 막내딸 단아를 안고 그 볼을 만졌다”(1592년 7월 3일)는 내용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한 막내딸 단아가 1597년 2월 1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희문은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기다리던 단아가 나와 띠를 풀어주고 옷을 벗겨주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애통한들 어쩌겠느냐”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쇄미록>에 요즘이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아버지상이 있어 하나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아내와 두 딸, 네 계집종이 모두 학질을 앓고 누워 저녁밥 지을 사람이 없다. 그들이 덜 아프기를 기다려 짓는다면 반드시 밤이 깊을 것이다.”(1593년 9월 7일) 아니 집안 여자들이 모두 학질을 앓고 있는데, 고작 ‘밥을 얻어먹지 못할까봐’ 걱정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요즘 같으면 큰일 날 일인데 당시는 어쩔 수 없는 가부장 사회였으니까요. 평생 과거급제는 못 했지만… 사실 오희문은 평생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포의(布衣)로 지냈죠. 하지만 그 어떤 장원급제자도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죠. 그분은 꼬박꼬박 그 참혹한 역사(임진왜란)를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 복이 후손들에게 미쳤답니다. <쇄미록> 1597년 3월 19일자는 “맏이(오윤겸·1559~1636)가 5대조 이하에서 처음 급제했다”면서 “가문의 경사를 어찌 표현할 수 있냐”고 기뻐했습니다. 오윤겸은 인조 연간에 영의정이 됐습니다. 둘째 오윤해(1562~1629)의 아들인 오달제(1609~1637)는 병자호란 때 충절의 상징인 삼학사(홍익한·1586~1637, 윤집·1606~1637), 오달제) 중 한분이죠. 그러고 보면 오희문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산 분이네요. 벼슬 없이도 이름 석자를 청사에 길이 남겼으니까요.
- 이기환의 Hi-story
- 염명배 명예교수 “민간과 협업 통해 재정건전성 회복해야”(2022. 07. 15 14:31)
- 2022. 07. 15 14:31 경제
- 2017년 한국재정정책학회장을 지낸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7월 12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지출 효과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 회복을 강조해온 그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건전성 회복 기조는 옳다”면서도 “경제위기를 감안해 그 규모와 속도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재정의 방파제 역할이 많이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무너진 재정 규율을 복구하기 위해 강화된 재정준칙을 도입하라고 현 정부에 주문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의 국가재정전략회의 내용을 총평하자면. “우선 긴축재정이라는 표현보다는 재정의 효율화 또는 재정의 건전화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총량적 측면에서 보면 재정을 확대하지 않기 때문에 긴축재정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지향점이 재정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던 역할을 민간으로 이전한다는 의미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건전성 회복이라는 방향은 명확히 설정하되 구체적 로드맵은 경제 여건을 봐 가면서 속도와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기 초부터 재정을 급속히 확대한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재정을 더욱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줄곧 유지돼온 재정의 방파제 역할을 상당 정도 훼손했다. 또 임기 마지막까지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결자해지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쳤다. 정작 기대했던 경제성장이나 분배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나랏빚만 역대 최대로 늘린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재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재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전에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가 의심받는 최근 상황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이 분업과 협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공공부문 고용을 늘렸다. 고용은 원래 기업의 소관이니 기업이 자발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유인책을 쓰는 게 맞다. 굳이 정부가 예산을 들여 고용을 담당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민간부문과의 협업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뭔가. “재정의 직접적 변수는 재정지출과 조세다. 재정 변수들은 여타 경제 변수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거나 주기도 한다. 재정지출을 늘리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또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이자율 상승과 국가채무비율 상승으로 인한 국가신인도 추락, 이로 인한 환율 상승과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등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재부가 재정수지 기준 지표를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바꾸겠다고 했다. 무엇이 배경이라고 보는가. “재정수지는 크게 관리재정수지와 통합재정수지로 나눌 수 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지표로, 연도별 실질 재정수지의 변화를 나타낸다. 한국이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퇴직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연금 지급액보다는 연금 수입액(적립액)이 많아 연금수지가 흑자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할 때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할 때보다 적자폭이 줄어들어 실질 적자 상황을 과소평가하는 착시 가능성이 있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적자 규모를 작게 보이게 하려고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해왔던 관리재정수지 기준 대신에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바꿨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착시를 걷어내고) 재정적자 상황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향후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해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관리재정수지 적자보다 지속적으로 커질 경우에는 그때 가서 적자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재정준칙 준수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수준의 독립성을 갖춘 국가재정위원회(가칭)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역대 정부에서 그동안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 한도를 문재인 정부에서 전면 부정하면서 국가채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 번 무너진 규율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성문법 형태의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 재정준칙은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이 있을 때 미리 세워놓지 않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능 사태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제대로 재정준칙을 세우지 않았던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파산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한시적으로 재정을 풀었다가 곧바로 향후 재정건전성의 회복 작업에 들어간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행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막기 위한 궁극적 방안으로 국가재정위원회 설치에 적극 동의한다. 재정위원회는 평상시 엄격한 재정준칙의 시행을 통해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통제하는 한편 경제위기 발생 시 규칙을 신축적으로 운용해 신속하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양면의 역할을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월례포럼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재정 쪽이 너무나 망가진 것 같아서 저희는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 정부 재정 정책의 방향을 빨리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총량 자체는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해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올 연말 기준 49.7% 추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봐야 할 것이 있다. 외관상 일본(224%), 미국(107%), 프랑스(123%), 영국(116.4%)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9%)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아 추가 채무증대 여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국가채무비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1970년대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독일,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과 같은 유럽국가를 보면 당시 국가채무비율이 모두 30%를 넘지 않았다. 현재는 국가채무비율이 독일 70%를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폭증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이제 막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상황과 고령화가 이미 많이 진행된 선진국 상황을 바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국가부채의 범위를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부채 통계는 범위에 따라 국가채무(D1), 일반정부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등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의 개념은 현금주의로 작성하는 정부(중앙+지방)의 회계·기금상 부채(D1)로, 포괄범위가 가장 좁다. 일반정부 부채(D2)는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가 더해진다. IMF나 OECD의 국제비교 대상이 되는 국가부채는 일반적으로 D2를 기준으로 한다. 공공부문 부채(D3)는 일반정부 부채(D2)에 비금융공기업의 빚을 합해 계산한다. 한국의 2019년 GDP 대비 부채비율은 D1 기준 37.6%이지만, D3 기준으로는 59.0%까지 뛰게 된다. 2020년에는 D1 기준으로 43.8%인 반면 D3 기준으로는 66.2%에 달해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의 ‘위험수위’로 지정한 64.0%를 이미 넘어섰다. 또한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주요 기축통화국들과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이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긴축재정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고령화·양극화에 대비해 재정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재정을 당장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향후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정이 확대될 것이다. 이때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재정의 현실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 재정을 무작정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근래 들어 재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대규모 재정·금융 완화정책을 실시했음에도 경제성장률이 제대로 오르지 않는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 봉착했다. 이는 더 이상 전통적인 케인스식 재정확대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을 풀면서 앞장서서 끌고 가려고 하기보다 민간의 활력을 북돋아주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재정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에 일부 역할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가 선언한 대로 내년도 예산안에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운용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에서 급속하게 악화시킨 재정 상황을 바로잡지 않은 채 방만한 재정운용을 지속한다면 그리스 등과 같은 재정위기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재정건전화 의지를 윤석열 정부의 중기재정전략에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미국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자면. “미국과 세계의 경기가 침체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올리고, 우리도 따라서 금리를 올릴 경우 (가계부채가 이미 세계 최대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돈을 빌린 취약계층이 받을 충격이 커진다. 그렇다고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자니 외환 유출로 환율 폭등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를 막겠다고 국채를 발행하면 이자율이 높아져 채무자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국제신인도가 하락해 외환이 다시 더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개방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아주 복합적인 영향권 아래 놓이는 셈이어서 적잖이 우려스럽다.”
- 특집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민간 봉사 활동에 앞장서는 윤상구 총재·양은선 부부
- 2006. 08. 01 화제
- 살면 살수록 멋과 맛이 느껴지는 한옥처럼 ‘나누는 삶’ 속에서 진짜 행복을 느낍니다! 전통과 문화유산보다 편리함과 편안함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만 할 때 ‘지킴’이라는 것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남 윤상구 총재와 양은선 부부. 옛것을 지키는 가운데에도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부부의 동행이 아름답다. 6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고택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윤보선 전 대통령의 고택(古宅)이다. 윤보선가(家)는 개화기 이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한 집안으로 손꼽히는 명문가다. 조선시대 때 지은 한옥집에서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윤보선가. 현재 이 고택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57) 국제로터리 3650지구 총재 부부가 살고 있다. 예부터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다. 윤상구 총재와 양은선(52) 부부는 한옥의 정갈함과 기품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으로 안국동 고택을 찾은 손님들을 반겼다. 장맛비가 아주 잠깐 한옥 지붕 너머로 자취를 감춘 사이 1백30~40년의 전통을 간직한 고택의 앞마당에선 자연스럽게 선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부엌은 새로운 공간 사랑채에 부엌 없어 ‘철가방’ 신세 되기도 손숙(이하 손) 한옥을 어쩜 이렇게 깨끗하게 돌보셨어요? 이 집이 지은 지 1백30~4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윤상구(이하 윤) 저는 이 집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데 오래된 고택임에도 우리집이 깨끗한 건 바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옥은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에 따라 집이 많이 달라집니다. 우리집은 한 번도 빈 적이 없었기에 아직도 정갈한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손 아무래도 사모님께서 힘드시겠어요. 요즘 주부들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단독 주택에만 살아도 손질할 것이 많다고 하던데, 하물며 한옥은 구석구석 쓸고 닦아야 하니 사모님께서 힘드실 테죠. 사모님이 아파트로 이사하자는 말씀 안 하시던가요? 윤 예전에 몇 번 했는데 지금은 한옥이 좋다고 해요. 현재 우리집은 문화재 사적지로 지정돼 있어서 집 수리를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도 변경하거나 큰 수리를 하는 것이 힘든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 안채에 들어와 살면서 수리를 많이 했죠. 특히 아내가 주로 활동하는 부엌은 집안 골격을 흔들지 않으면서 서구식으로 개조했어요. 아내의 센스가 돋보이는 공간이죠. 약간 영국풍으로 인테리어된 우리집 부엌은 한옥에서 만나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손 한옥은 집안에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나뉘어 있어서 대가족이 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윤 한옥은 집이 아무리 커도 한 채당 방이 두 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공간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기는 힘들죠. 저희도 결혼 후에 사랑채에서 살았는데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살았어요. 현재 미국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하는 딸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우리 가족은 한 방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다락을 개조해서 딸 방을 꾸며줬죠. 우리 딸은 그때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졌어요. 손 그럼 사랑채에서 살 때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사랑채에도 부엌이 있나요? 윤 부엌은 안채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안채에서 음식을 해서 사랑채로 가져왔는데, 하루는 아내가 비가 오는 날 음식을 가져오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제가 철가방을 사줬어요. 그래서 한동안 비오는 날마다 아내가 철가방을 들고 안채와 사랑채를 오갔죠. 손 그것 참 기발한 아이디어네요. 그래도 부인께서 큰 살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윤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엔 손님이 끊이는 날이 없었어요. 거의 매일 1백여 명의 사람이 집안에 들락거렸죠. 제가 결혼한 뒤에도 매일 손님이 많았어요. 그 많은 손님을 치러냈으니 아내가 힘들었죠. 손 그럼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부인께서는 첫 인상에도 ‘딱 이 댁 며느리다’ 싶을 만큼 이 집과 잘 어울리세요. 양은선(이하 양) 대학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 교수님께서 부르시더라구요. 그래서 갔더니 누가 앉아 있더라구요. 당시 교수님이 제 아버님 친구분이셨는데 저를 참 아끼셨어요. 그래서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간 자리였는데 그게 맞선 자리더라구요. 그렇게 처음 만났어요. 윤 저는 사촌 형수 소개로 그 자리에 나갔어요. 그때 조건이 ‘서로 싫은 사람은 강요하지 말자’였어요. 근데 맞선 자리를 주선한 형수가 참 좋은 분이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도 평소 그 형수를 아끼고 신뢰했기 때문에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우리집에서는 아내에 대해 이미 좋은 점수를 줬죠. 손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만나기 전부터 인연이셨네요. 그렇게 만나서 결혼한 후 바로 이 집에서 사셨나요? 양 아니에요. 결혼 후 2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어요. 윤 제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녔어요. 군복무를 하느라 잠시 귀국했고 제대 후 다시 미국으로 갔죠.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에는 와이셔츠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어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같이 한 사업이었는데 8년 정도 했죠. 국제로터리 총재&아름다운 가게 이사인 부부 ‘나누는 삶’이 진짜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 손 그럼 현재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윤 현재는 건축자재와 관련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 봉사단체인 국제로터리 3650 지구의 총재로 활동 중이죠. 손 국제로터리 클럽은 어떤 단체인가요? 윤 친교와 봉사를 원뜻으로 하는 민간 봉사단체예요. 우리나라에만 1천3백여 개의 지구가 있고 서울에만 1백90여 개가 있죠. 그중 저는 ‘새한양’의 회원입니다. 손 얼마 전 몽골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국제로터리 활동과 관련이 있으신가요? 윤 물론이죠. 국제로터리에서 몽골에 방풍림을 세우기 위해 ‘5년 계획’을 세웠어요.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작년에는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죠. 근데 몽골에는 가축이 많아서 나무를 심은 뒤에도 가축들이 망가뜨리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야 해요. 그리고 해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나무에 물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몽골인들이 유목민이라서 우물을 만들어주고 일자리를 줘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다닙니다. 손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방풍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저도 ‘아름다운 가게’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지만 참 큰일을 하시네요. 윤 지난 5월에도 다녀왔는데 그때 함께 간 다른 지구의 총재께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그 사고로 목 밑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됐죠. 몽골에서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급히 서울로 와서 큰 수술을 하고 겨우 깨어났을 때 중환자실에서 만났는데 첫마디가 “윤 총재,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거였어요. 제가 어찌나 미안하고 고맙든지. 아무튼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래서 국제로터리 활동이 제 소명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죠. 손 좋은 일 하다가 하반신 마비까지 되셨다니 참 마음이 아프네요. 부인께서도 ‘아름다운 가게’ 협동 이사로 활동하시는 등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혹시 시아버지 혹은 시어머니 영향을 받으셨나요? 양 저는 시어머니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사실 시어머니께서는 기독교 신자셨는데 교회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시아버지께서 ‘며느리는 좀 얌전하고 집안 살림만 할 사람’으로 삼고 싶으셨대요. 근데 제가 사회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걱정하셨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바깥 활동하느라 집안일에 소홀할까 걱정하신 거죠. 사실 결혼 후에 시어머니께서 봉사 활동 혹은 사회 활동하는 곳에 늘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손 부인께서 기억하실 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양 두 분 모두 좋으셨어요. 특히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지 한 번도 야단을 친 적이 없으세요. 학교만 다니다가 졸업하고 결혼한 제가 무슨 살림을 할 줄 알았겠어요. 서툰 제 모습을 보면서도 무조건 잘했다 칭찬해주신 게 제게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한 가지 집안에 손님이 너무 많이, 자주 오시기 때문에 제가 사생활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불만이었죠. 친구와 약속을 했더라도 아침에 “아버님이 오늘 무슨 일이 있으니까 준비해라”고 하면 개인 스케줄은 취소했으니까요. 윤 1980년에 결혼해서 바로 미국으로 떠났고 2년 반 만에 돌아와서는 계속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살았으니까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죠. 특히 어머니는 저희와 7년 반 동안 함께 사셨는데 그중 3년은 치매를 앓으셨어요. 저야 바깥일이 있고 또 어머니가 여자다 보니 아내가 어머니 시중을 많이 들었죠. 손 부인께서 시어머니 수발을 다 드셨겠네요. 양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는 아주 착한 아기가 되셨어요. 평소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가진 분이셨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보일 정도였어요. 시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리기 전에 함께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때 계속 제 옷과 제 손을 잡고 “나 혼자 두고 가지 마라”면서 저를 꼭 잡고 다니셨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치매 기운이 있던 거 같아요. 손 시어머니 수발 들 때 제일 힘든 점은 어떤 거였어요? 양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어요. 시어머니께서 당뇨가 있었는데 아이처럼 단것을 달라고 자꾸 떼를 쓰셔서 그걸 말리는 게 힘들었고, 가끔 다른 사람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울 때가 있으셨어요. 그때는 제가 “어머니 이게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하면 엄마 말 듣는 아기처럼 제 말을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저희 친정아버지가 의사라 어려서부터 주사 놓는 것을 많이 보고 자라서인지 주사를 놓는 게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뇨를 앓는 시어머니께 아침마다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렸어요. 그럼 시어머니께서 어느 날 손님이 오시면 “우리 며느리가 아침마다 좋은 주사를 놔줘서 내가 이렇게 좋아졌어요” 하면서 자랑하셨어요. 저는 시어머니 덕분에 별로 한 일도 없이 ‘효부’라고 칭찬을 들었죠. 그런 거 생각하면 제가 시어머니께 감사해요. 손 윤 총재의 모친 되시는 공덕귀 여사께서는 한국 여성사에 기록될 만큼 귀한 분이세요. 사회 봉사 활동도 많이 하셨고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우셨죠. 치매 앓아 어린 아이된 시어머니 3년 동안 수발 시어머니 덕분에 ‘효부’ 소리 들은 것이 복이죠 양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함께 잤어요. 치매를 앓기 시작한 뒤 옛날에 시어머니를 모시던 침모께서 오셔서 함께 지냈어요. 그분이 워낙 잘해주셔서 밤에는 제가 편히 잘 수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같이 자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이부자리를 펴고 함께 잤는데 새벽녘에 저절로 눈이 떠져서 깼더니 시어머니께서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허공을 보고 계시더라구요. 그때 그 눈이 어찌나 맑은지… 너무 편안하고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눈빛이셨어요. 그렇게 함께 밤을 보내고 이틀 뒤 돌아가셨죠. 손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 어떠셨어요? 양 어머니 계실 때 많이 배웠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후회되더라구요. 그리고 어머니를 모신 것이 복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손 시아버지 되시는 윤보선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시어머니만큼 애틋하진 않으시죠? 양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주 잠깐, ‘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저희가 사랑채에서 살았기 때문에 안채의 구조를 잘 몰랐죠. 근데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보려고 하다가 ‘그래도 안채에서 한번 살아봐야지’하는 마음에 안채로 살림살이를 옮겼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살면서 시아버지가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임을 깨달았어요. 시아버지께서는 한국적인 것은 살리면서 서양의 합리적인 생활 방식을 도입해 부엌과 거실 등을 개조하셨더라구요. 너무 놀랐어요. 윤 아버님은 신생활 운동의 창시자세요.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은 분식을 하자는 주의셨고, 옷도 주름이 많이 가는 옷이나 손이 많이 가는 깃이 달린 옷은 지양하자고 주장하셨죠. 합리적인 분이셨어요. 양 그래도 세 끼 식사는 꼭 집에서 하셨어요. 저희 집은 외식을 1년에 한 번 정도 했어요. 참 엄격했어요. 윤 아내 말대로 아버님은 좀 무섭고 엄한 편이셨어요. 그리고 남자는 독립심이 있어야 한다며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셨죠. 손 윤보선 전 대통령께서 무섭고 엄한 편이셨다면 윤 총재께서는 어떤 교육관을 가진 아버지셨나요? 윤 저는 특별한 교육관을 가진 아버지는 아니었어요. 다만 우리 아들이 힘들어할 때 ‘아빠도 너랑 같이 힘들어해줄게’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적은 있죠. 아들이 고교 3학년때 공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더라구요. 근데 그걸 제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해서 마라톤을 시작했죠.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제가 마라톤을 한다니까 다들 반신반의했는데 1년 만에 경주마라톤대회에 출전해서 완주했어요. 손 대단하시네요. 어느 아빠가 아들 힘든 것을 함께 느끼기 위해 마라톤을 할 수 있겠어요. 말로 내세우는 교육관보다 몸으로 자식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윤 총재께서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도 활동하시던데. 윤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 자원과 문화 자산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 환경 운동입니다. 쉬운 예로 설명드리면 현재 저희 집처럼 오래된 한옥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함부로 개·보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옥이라는 게 손이 많이 가는 집이거든요. 비가 오면 기왓장부터 툇마루까지 꼼꼼히 잘 살펴야 하는데 혹시라도 한옥에 작은 흠이 생기면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필요한 정보를 서로 나누며 전통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손 윤 총재께서는 개인 사업체도 열심히 운영하시지만 민간, 봉사 단체 활동에 더 큰 열의를 보이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국제로터리와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등 좋은 사회 활동 부탁드립니다. 부인께서도 ‘아름다운 가게’ 등에서 계속 활동하실 거죠? 양 그럼요.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것이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서로 나누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윤상구 프로필 1949년 서울 출생. 지난 66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5년 뉴욕 주 시라큐스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76년부터 8년 동안 LA에서 의류업에 종사했다. 83년 귀국해 건축자재 수입 판매업체인 (주)동서코포레이션을 설립했다. 현재 국제로터리 3650의 총재로 활동 중이며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위원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부인 양은선씨와는 지난 80년 결혼했으며 1남 1녀를 뒀다. 1·2·3·4 서울 북촌 중심부에 자리한 윤보선가는 부정형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산정채, 별당채, 행랑채, 대문채, 기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5·6 영국풍이 묻어나는 주방은 한옥의 틀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양은선씨가 직접 개조했다. 7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아 생전 생활하던 거실은 동서양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 1 양은선씨의 주 활동 무대인 부엌 입구에 장식된 가족 사진과 어린 날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2 1백3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한옥 구석구석에는 옛 선조들의 물건이 곳곳에 숨어 있다. 3 윤 총재의 3대 조부모 사진. 원래 흑백 사진이던 것에 컬러를 입힌 것이라고 한다. 4 윤상구 총재의 아들 일영씨와 윤보선 전 대통령이 함께한 사진. 5·6 윤보선 전 대통령 내외와 윤상구 총재의 가족 사진에는 윤보선가 3대가 모였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장맛비는 모습을 감춘 채였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떠받친 한옥 지붕이 어찌나 위풍당당한지. 흐린 날은 그대로의 맛이 있고 쨍하게 맑은 날은 또 그 나름대로의 정갈한 멋이 드러나는 한옥. 윤상구 총재와 양은선 부부는 1백 30년을 넘게 살아온 한옥의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었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민영주(Aye 스튜디오 실장)
- 아시아 민간인 최초로 우주 여행자가 되는 허재민의 포부
- 2006. 02. 01 화제
- “우주여행에 대비해서 영어 공부와 ‘몸짱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우주비행사나 과학자가 아니면 꿈도 못 꾸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우주여행’이다. 물론 자비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상품이 나왔지만, 천문학적인 경비가 필요하다. 아시아 민간인 최초로 우주여행을 하게 된 한국의 대학생 허재민씨는 수십억 지구인 중 극소수만이 경험할 수 있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게 된 행운아 중의 행운아다. 대기권 100km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여행 천문대에 가면 ‘Starry Night’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전에 교육을 받는다. 별자리의 변화부터 우주의 모습 등 천체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우주에서 지구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지구를 넘어선 우주에 얼마나 많고 다양한 별들이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 중에는 수십억 년 전에 사라진 별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특히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주여행은 정말 매력적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수십억 인구 중에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최초, 아니 아시아 최초의 우주 여행자가 탄생한다. 울산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 공학부 학생인 허재민씨(24)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아시아태평양지역 4개국에서 진행된 ‘개발자를 위한 오라클 우주여행’ 프로모션에서 1등을 했다. 인터넷 웹 서핑 중 이벤트를 접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주여행의 기회를 잡은 것. “이번 이벤트는 국내에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대상으로 한 퀴즈였어요.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는 퀴즈라 일반 컴퓨터/IT 상식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2년간 학교에서 관련 과목 수업을 들었지만, 참고자료 없이 한 번에 푼 문제는 거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니까요.(웃음) 첨부된 힌트와 관련 책자를 참고로 해서 풀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오라클에서 진행했는데, 한국, 싱가포르, 호주, 인도 등 아태지역 4개국에서 총 2만 명 이상이 참가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한국인 참가자가 40%에 달하는 8천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퀴즈는 1주일에 1회씩 12주간 총 12회가 출제되었다. 각 회당 5~6문제가 나왔는데, 각 회에서 만점을 받아야만 1회 응모가 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운이 좋으면 1회만 풀어도 당첨이 될 수 있고, 12회를 다 푼다고 해도 당첨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이 풀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방식이었다. 아태지역에서만 만점자가 8천여 명이 나왔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4등까지 18명의 당첨자 중 13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허재민씨는 8천여 명의 만점자 중 한 명이었고, 우주여행의 행운을 잡게 된 것. 이번 행사로 북미지역 1명, 유럽지역 1명, 아태지역 1명, 총 3명에게 우주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유럽지역에서는 아직 당선자가 발표되지 않았다. 허재민씨가 체험할 우주여행은 ‘준궤도 우주비행’이다. 한 번에 2~3명이 함께 떠나 대기권 100km 밖에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을 체험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감상하게 된다. 미국 민간 우주여행 업체 스페이스 어드벤처사가 내놓은 상품으로 약 13만8천 달러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다. 스페이스 어드벤처사는 일반인에게 우주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최초의 민간 우주여행 전문회사다. 2001년에는 미국인 데니스 티토를, 2002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인 마크 셔틀워스를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우주여행을 하는 데 한 사람당 2천만 달러(한화 약 2백억원) 정도의 요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으로서는 우주여행은 아직 꿈도 꾸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일 뿐이다. 허재민씨는 내년에 4일간의 비행 훈련을 받게 된다. 우주복 착용과 무중력 상태 적응 훈련, 우주선 내 의사소통, 개인좌석 점검, 안전장치, 천문학 교육 등을 이수하게 된다. “우주여행을 하고 싶어서 참여한 것은 아니에요.(웃음) 이벤트 자체가 컴퓨터 전공자를 위한 이벤트였기 때문에 제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었죠. 참가상으로 티셔츠도 준다고 해서 경험 삼아 도전해봤어요. 물론, 티셔츠도 한 장 받았습니다.(웃음)” 허재민씨는 지난해 9월에 우주여행 당선 통보를 미리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1월 발표가 날 때까지 비밀을 지켜야만 했다. 자랑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다가도 말을 못한 것이 가장 어려웠던 일이라면서 웃는다. “1차 유선 통보가 9월경에 있었죠. 그러니까 4개월간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공식 기자회견 때까지는 비밀로 부쳐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사인 공세를 받기도 할 정도로 유명해져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지 2주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허재민씨는 자신에 관한 기사를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정말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고, 사진 한 번 같이 찍자는 사람도 생겨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자랑한다. “공식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 믿었어요. 오라클이라는 회사가 컴퓨터 관련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워낙 생소한 회사거든요. 그리고 우주여행이라는 상품 자체가 믿기 힘들잖아요.(웃음) 공식 발표 이후에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가족들은 우주여행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있어요.” 그는 내년에 우주여행을 가기 위해 영어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전공을 살려 IT 업계에 취직하는 것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취업을 해서 IT 실력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는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하고 싶었고, 컴퓨터정보통신 공학부에 진학했다. 웹마스터 과정 학원도 다니면서 차분히 전공을 준비했다. 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고, 미래의 IT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우주여행을 가려면 아직도 1년 넘게 남았지만, 우주를 다녀와서 바뀌게 될 제 생활을 생각하면 설렙니다. 우주여행이 저에게 특별한 경험과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최초의 민간인 우주여행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대학생 허재민씨. 우주여행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누구나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다.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가 IT 전문가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본다. 우주여행을 다녀온 후에 그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도 궁금해진다. 이벤트에 출제됐던 문제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 한 퀴즈였기 때문에, 일반 컴퓨터/IT 상식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들이었다. 프로그래머 사이에서도 꽤 높은 난이도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Q 다음 중 TopLink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답: B ⓐ EJB 와 POJO를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툴. ⓑ 데이터 서비스 계층, persistent 아키텍처를 생성하는 object-relational 매핑 툴로서 개발 작업의 편의성과 확장성을 향상시킴. ⓒ Java 오브젝트를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에 저장하는 런타임 아키텍처. Q 다음 중 BPEL과 Oracle BPEL Process Manager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정답: A, C ⓐ BPEL은 OASIS에서 제안한, 프로세스 orchestration을 위한 개방형 표준임. ⓑ Oracle BPEL Process Manager는 Oracle Application Server만을 지원함. ⓒ WSIF를 이용하면, publish된 웹 서비스를 포함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BPEL이 orchestration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음. Q 다음 중 Oracle SOA 툴과 오픈 소스 테크놀로지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정답: B, C, D ⓐ JDeveloper 는 Tapestry에 대한 네이티브 지원 기능을 제공함. ⓑ TopLink 는 Spring을 직접 지원함. ⓒ JDeveloper에는 Struts, Ant, JUnit, CVS 등에 대한 네이티브 지원 기능이 포함되어 있음. ⓓ BPEL Designer에는 Eclipse plug-in이 포함되어 있음.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한국 오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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