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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617 건 검색)

추석 연휴, 대구간송미술관서 꼭 봐야할 보물···딱 4점만 추렸습니다
2024. 09. 16 19:48 문화|문화|지역
... 골라줄 것을 요청했다. 엄선을 거쳐 총 4개 작품이 선정됐다. 추석 연휴에 관람을 추천하는 간송의 보물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소개할 작품은 ‘풍악내산총람’이다. 가을의 금강산을 한 폭의 그림에 모두...
용왕·동자와 함께 한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보물 된다
2024. 09. 13 13:59 문화|문화|문화
... 함께 구성된 희귀한 조선 후기의 불상인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이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흥천사목조관음보살삼존상남순동자해상용왕보물
가족과 함께 갯골생태공원 곳곳 누비며 보물찾기
2024. 09. 10 20:12 보도자료
... 미션을 수행하는 생태오리엔티어링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보물찾기 방식을 도입해 더 생생한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했다.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도 갯골축제의...
시흥시
[송혁기의 책상물림]보물상자를 내주지 않으려면
2024. 09. 03 21:18 오피니언
... 가공만 거쳐도 우리 한문을 그들의 데이터로 편입시킬 수 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보물상자를 통째로 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전체 국가 연구비 가운데 한문 번역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은...
송혁기의 책상물림송혁기송혁기의 책상물림

스포츠경향(총 179 건 검색)

몰디브 세인트 레지스 보물리 리조트, 한국 로드쇼 개최…여행객 유치 적극 나서
2024. 11. 29 20:50 생활
몰디브에서 럭셔리 중의 럭셔리로 꼽히는 세인즈 레지스 보물리 리조트(St. Regis Maldives Vommuli Resort)가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 로드쇼를 개최했다. 세인트레지스는 1904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돼 120년 역사를 지닌 호텔리조트 체인으로 현재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계열에 속해 있다. 아메리카는 물론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등지에 68개의 호텔리조트를 운영 중이다. 달루 아톨(Dhaalu Atoll)에 위치한 세인트 레지스 보물리 리조트는 한적함이 특징인 몰디브에서도 특히 섬이 적은 달루 아톨의 한적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수상비행기로 방문할 수 있다. 9개 카테고리의 다양한 객실은 선택의 폭이 넓다. 몰디브의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것처럼 즐기는 비치 빌라는 물론 몰디브를 상징하는 오버워터 빌라까지 총 77실의 빌라를 보유한 세인트 레지스에서는 각자 개성이 있는 숙소를 즐기기 위해 비치 빌라 3박과 오버워터 빌라 3박을 믹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인트 레지스가 자랑하는 버틀러 서비스는 일반적인 버틀러보다 한차원 더 높고 전문적인 서비스로 여행의 불편을 제로로 만들어준다. 여행 중 모든 크고 작은 불편 사항에서부터 레스토랑이나 액티비티 예약, 이동, 짐을 풀고 싸는 것까지 모두 버틀러가 해결해주니 고객은 그저 세인트 레지스를 즐기며 쉬기만 하면 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의 하나인 블러디 매리의 고향이 바로 세인즈 레지스다. 1934년 세인트 레지스 뉴욕에서 탄생한 블러디 매리는 핏빛의 붉은 비주얼과 강렬한 이름, 맛, 단순한 레시피로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의 하나가 됐다. 현재 모든 세인트 레지스는 각자의 고유한 버젼의 블러디 매리를 시그니처 칵테일로 제공한다. 세인트 레지스 몰디브에서는 몰디브만의 맛을 더한 아일랜드 블러디 매리를 맛볼 수 있다. 이번 로드쇼를 위해 몰디브 현지에서 방한한 앤드류 쳉(Andrew Cheng) 세일즈 디렉터는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몰디브 세인트 레지스를 방문해 궁극의 럭셔리 여행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인트 레지스만의 특별한 서비스와 문화는 물론 시그니처 칵테일까지 세인트 레지스 보물리의 매력을 체험해보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프리미어12] 장타에 도루, 볼넷까지···가진 것 다 보여준 김도영, 패배에도 유일하게 빛난 한국 야구의 ‘보물
2024. 11. 14 07:31 야구
한국 야구대표팀의 김도영이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조별리그 1차전 대만과 경기에서 적시타를 치고 있다. 타이베이 | 연합뉴스 무조건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당한 충격적인 패배. 3회 연속 결승에 도전하는 한국 야구가 첫판부터 쓰라린 결과를 안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김도영(KIA)의 활약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김도영은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대만과의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조별리그 B조 1차전에 3번·3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1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김도영은 이번 시즌 KBO리그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타율 0.347(3위) 38홈런(2위) 109타점(7위) 143득점(1위) 40도루(6위) OPS 1.067(1위)로 타격 전부문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며 KIA의 통합 우승의 주역이 됐다. KBO리그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 등 무수한 기록도 세웠다. 김도영은 한국시리즈까지 치르느라 다소 지친 상태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프리미어12에 앞서 치른 쿠바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부진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전지’ 대만에 도착한 뒤 잘 회복한 김도영은 이날 대만전에서 자신이 왜 ‘경계대상 1호’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한국 야구대표팀의 김도영이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조별리그 1차전 대만과 경기에서 적시타를 친 뒤 아파트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 | 연합뉴스 대만 선발 린여우민을 상대로 1회초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정면으로 가는 아쉬움을 남겼던 김도영은 4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는 한국의 첫 안타를 시원한 장타로 장식했다. 선발 고영표(KT)가 2회말 만루홈런과 투런홈런을 연거푸 맞고 6실점해 0-6으로 끌려가는 가운데 4회초 1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도영은 좌익수 키를 넘기는 1타점 2루타로 한국의 첫 안타를 신고했다. 이후 윤동희(롯데)의 내야 땅볼에 3루까지 진루한 김도영은 이어진 박동원(LG)의 적시타에 홈을 밟아 2-6으로 추격하는 득점까지 올렸다. 6회초에는 빠른발로 2루까지 가는 모습도 보였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도영은 장이의 6구째 공을 절묘하게 밀어쳐 우익선상으로 타구를 보냈다. 안타처럼 보였지만 3루심이 파울을 선언했고, 비디오판독에도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다소 허탈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김도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10구까지 장이를 물고 늘어지며 볼넷을 골라 출루한 김도영은 2루 도루를 감행, 성공시켰다. 한국 야구대표팀 김도영(오른쪽)이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만과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고 있다. 타이베이 | 연합뉴스 김도영은 프리미어12를 앞두고 일찌감치 한국의 핵심 선수로 꼽혔다. MLB닷컴은 프리미어12 개막을 앞두고 ‘프리미어12에서 주목해야 할 8명의 선수’를 언급하며 그 중 한 명으로 김도영을 꼽았다. MLB닷컴은 “김도영은 엄청난 2024년을 보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팀 우승에 힘을 보탰다”며 “정교함과 장타력을 두루 갖춘 김도영은 한국을 상대하는 모든 투수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타자다”라고 설명했다. WBSC도 홈페이지를 통해 김도영을 ‘경이적인 3루수’로 설명하며 그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대만 언론도 김도영을 주목했다. 대만 ‘야후스포츠’는 “김도영은 장타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출루한 뒤에는 베이스러닝을 공격적으로 해 도루 성공률이 9할에 달한다. 또 이번 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3루타를 쳤다. 그야말로 수비를 힘들게 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대만 ‘나우뉴스’ 역시 “과거 (한국 야구를 대표했던) 이승엽과 이대호, 김동주 같은 타자들은 영웅 같은 스윙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런 유형의 타자는 없어졌고, 김도영 같은 다른 유형의 젊은 타자들이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내내 김도영이 보여준 그의 장점은 바로 ‘다재다능함’이었다. 이날 대만을 상대로 김도영은 장타, 도루, 볼넷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대회 전 자신을 향한 외부의 평가를 당당하게 증명했다. 한국 야구대표팀 김도영이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만과 경기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타이베이 | 연합뉴스
‘전지적 참견 시점’ 이영자, 팔도 김치+제철 과일까지 가득 찬 보물창고 냉장고 공개
2024. 10. 27 00:25 연예|연예
MBC 개그우먼 이영자가 ‘전참시’에서 유도선수 김민종과 합작해 진수성찬을 차렸다. 26일 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기획 강영선 / 연출 김윤집, 전재욱, 이경순, 정동식, 이다운 / 작가 여현전 / 이하 ‘전참시’) 319회에서 이영자 레시피의 원천인 ‘유미 하우스’ 내 보물창고가 전격 공개됐다. 이영자 집에 방문한 전현무, 송은이, 이준은 다양한 모종들로 가득 차 있는 텃밭을 비롯, ‘유미 하우스’ 곳곳을 둘러본다. 무엇보다 뼈대만 있었던 공간이 꿈의 야외 주방으로 변신, 보다 업그레이드됐다. 세 사람은 가마솥은 물론 각종 조리도구와 식자재까지 요리에 최적화된 야외 부엌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 나아가 전국 팔도 김치, 제철 과일, 할라피뇨 장아찌, 유자 무피클 등 이영자 레시피의 원천인 대형 냉장고의 실체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바탕 집 구경이 끝난 후, 이영자를 위한 선물 언박싱 시간도 그려진다. 전현무, 송은이는 이영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선물로 예초기를 준비했다. ‘극강의 효율맨’ 이준은 바디 드라이어를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군고구마 라떼를 새참으로 먹은 후이어진 집들이 손님들의 노동도 흥미를 증폭했다. 이들은 이영자 주도 아래, 모종 심기 등 노동을 시작하는데. 이도 잠시, 또 다른 집들이 손님으로 유도선수 김민종이 고기를 들고 등장했다. ‘마장동 육수저’ 김민종은 모두가 깜짝 놀랄 고기 썰기 스킬로 국가대표급 고기 해체 쇼를 펼쳤다. 이영자는 넘사벽 요리 실력을 발휘해 한 상을 뚝딱 만들어낸다. 두 사람이 합작해 완성된 역대급 음식들의 향연이 시청자들의 군침까지 자극했다. 또, 식사 도중에는 이영자의 동네 친구인 미자까지 합세를 해 즐거움을 더했다.
[종합] 아이유도 인정했다…온유 “트라우마였던 목소리, 지금은 보물” (라디오쇼)
2024. 09. 05 12:33 연예
(왼쪽부터) 가수 아이유·그룹 샤이니 온유. 연합뉴스 그룹 샤이니 온유가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5일 방송된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는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온유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온유는 미니 3집 ‘FLOW’로 컴백했다. 온유는 타이틀곡에 ‘매력’에 대해 “곡을 만들면서 자기의 매력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본인의 매력이 분명히 있으니 어떤 자리에서든 좋은 영향을 주실 수 있을 거라는 내용으로 만들어봤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랩을 하는 온유의 모습도 담겼다고 한다. 그는 “가녹음을 하면서 랩파트를 들어낼까 고민했는데, 짧으니까 불러보자. 좋은 파트가 될 것 같다”면서 랩 파트를 그대로 수록하게 됐다고 밝혔다.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 이어 온유는 앨범 발매 이후 멤버들의 반응에 대해 “같이 챌린지 하면서 들려줬는데 되게 신난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나왔던 곡과 달라서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특히 멤버 민호는 온유의 라이브 방송 중 찾아와 노래가 좋다고 극찬했다고. 이에 박명수는 “노래가 마음에 든다. 가을에 대학행사도 있고 한데 많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박명수는 온유에게 본인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온유는 “옛날에는 성대모사도 못하고 모창도 못해서 트라우마였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온유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이후 자신감을 찾았다고 한다. “보물이 목소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 이를 듣던 박명수는 온유에게 “아이유도 극찬을 했더라. ‘내가 남자라면 온유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다. 멋을 부리지 않는데 정직하게 마음에 울림을 준다더라’”라고 거들었고, 온유는 “정말 사람 잘 보시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서 온유는 목 관리 방법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최근에도 물을 자주 마시고 있다면서 “4리터까지도 마신다. 화장실을 많이 가지만 목소리가 촉촉한 게 가장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주간경향(총 19 건 검색)

[이기환의 Hi-story](111)신안 보물선에 밀수품이 800만개나?(2023. 12. 06 07:00)
2023. 12. 06 07:00 문화/과학
신안 보물선에서 출토된 동전. 총 800만개나 됐고, 무게가 28t에 이르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30, 50, 70, 700, 900, 1500. 무슨 숫자조합일까요. 올해(2023)에 유독 많이 붙은 ‘~주년’의 수식어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이고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입니다. <고려도경>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방문(1123) 900주년이 됩니다. 백제 무령왕의 장례식(523)이 거행된 지 1500주년이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올해가 또 하나의 ‘~주년’이었다는 사실을 알린 행사가 열렸더라고요. 그것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 보물선’이 1323년(충숙왕 10) 원나라 경원(저장성 닝보·浙江省 寧波)을 출발한 지 700주년이 된 해라는 겁니다. 얼마 전(11월 11일) 고려대에서 ‘신안선 출항 700주년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답니다. 새삼 ‘신안 보물선’ 인양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도자기 6점의 기적 1975년 8월 20일이었습니다. 증도 방축리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최형근씨)의 그물에 청자꽃병을 비롯한 중국제 도자기 6점이 걸렸습니다. 최씨는 그러나 이 도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해역에서는 1950년대부터 어민들의 그물에 곧잘 중국제 청·백자가 걸려 올라왔는데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답니다. 이 도자기를 요강 혹은 개밥그릇으로 사용했거나 엿과 바꿔먹기도 했다죠. 최형근씨는 인양한 도자기들을 그냥 집 마루 밑에 넣어 두었답니다. 그나마 엿 바꿔 먹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던 거죠. 해가 바뀐 1976년 1월 초등학교 교사였던 동생(최평호씨)이 형 집을 찾아와 마루 밑 청자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여기서 동생 최평호씨의 ‘촉’이 발동됩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아차린 최평호씨는 신안군청에 신고했습니다. 그해 9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사건이 터졌습니다. 도굴꾼 이모씨가 이 해역에서 인양한 청자화병 등 122점을 팔아넘기다 검거된 겁니다.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은 발굴단을 꾸려 사상 처음으로 수중발굴에 나섭니다. 본격 조사 결과 해저 20m에서 확인된 난파선의 규모는 깜짝 놀랄 만했습니다. 최대 길이 34m, 최대 폭 11m이고요. 승선 인원 100명 정도의 200t급 대형 선박으로 추정됐습니다. 1984년까지 9년 동안 11차례의 인양 결과는 ‘경천동지’, 그 자체였습니다. 유물은 모두 2만3502점에 달했고요. 동전 800만개, 자단목 1017개, 선체 조각 445개가 인양됐습니다. 신안선에서 인양된 동전. 배 가장 아랫부분에 깔려 있던 자단목 위에 총 66종류의 동전이 놓여 있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하카다행 무역선의 침몰 이 배가 언제 어디서 출항했으며, 어디로 가는 무역선이었는지 초미의 관심사가 됐죠. 선적된 물품에 달려 있던 명문 목간 364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목간에는 상품의 종류와 수량, 선적 일자, 수령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는데요. 오늘날의 ‘택배 송장’이죠. 이중 ‘지치 3년’명 목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치(至治)’는 원나라 영종의 연호(1320~1323)입니다. ‘지치 3년’이면 1323년(충숙왕 10)이 됩니다. 그와 함께 ‘4월 22일, 23일, 5월 11일, 6월 1~3일’ 목간과 함께 ‘경원로(慶元路)’명 청동추가 나왔습니다. ‘경원’은 지금의 저장성 닝보(浙江省 寧波·절강성 영파)를 가리킵니다. 도착지는 하카다(博多·지금의 후쿠오카)가 유력했습니다. 목간 중에 ‘하코자카궁(崎宮)’ ‘조자쿠암(釣寂巖)’ 등 하카다의 신사와 사찰 이름이 보였거든요. 이 배는 1323년 4~6월 세 차례에 걸쳐 화물을 선적한 뒤 경원(닝보)을 떠나 일본 하카다로 향하던 중에 신안 앞바다에서 악천후를 만나 침몰하고 만 겁니다. ■동전 800만개의 정체 ‘신안 보물선’ 유물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아무래도 중국제 도자기였죠. 하지만 저는 상대적으로 대접받지 못한 유물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이번 학술대회 발표문 중 에노모토 와타루(榎本涉)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연구원의 논문(‘일본과 원나라 무역의 시박사 무역과 밀무역’)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이 신안선에 밀수품이 다량 적재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건데요. 그 밀수품이란 선체의 밑바닥에서 자단목(1017개) 위에 덮여 있던 800만개의 동전이라는 겁니다. 무게가 28t에 달했습니다. 동전은 대부분 끈에 꿴 채로 확인됐는데요. 끈은 비록 썩었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었어요. 인양 과정에서 동전의 소유주마다 달아둔 목건이 나왔습니다. 그 종류가 66종에 달했는데요. 신(기원후 8~23)에서 제작된 화천 및 후한의 오수전(25~219)부터 원나라 지대통보(1310)까지 1300년 동안 중국에서 제작·유통된 동전이 끊임없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안남(베트남)제 동전(천복통보·天福通寶)까지 나왔습니다. 신안선은 최대 길이 약 34m, 최대 폭 약 11m, 최대 깊이 약 3.7m의 대형 선박이었다. 10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200t급 선박으로 해양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무역선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신안선에 밀수품이 존재했다? 그런데 ‘동전 800만개=밀수품’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겁니다. 발표자는 몇 가지 사례를 듭니다. 즉 신안선이 출항하기 70여 년 전인 1250년대 남송의 관리 포회(1182~1268)가 남송 조정에 올린 장계입니다. “일본선이 경원(공인무역항)에 도착하기 전에 (무역이 불허된) 인근 지역에 들러 동전을 공공연히 (불법) 거래 …일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동전뿐 …중국인들은 일본선이 가져오는 물건을 시가의 10분의 1로 구입 …시장의 동전이 동이 날 지경….” 또 신안선 출항 후 17년 정도 뒤인 1340년 무렵 원나라 문인 허유임(1287~1364)이 “(중국 남부 해안)에서 ‘섬나라 오랑캐(島夷·일본인)’와 빈번하게 이뤄진 (불법) 거래를 관청이 통제하지 못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당시 중국에서 동전의 수출은 불법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동전 밀수가 끊이지 않았답니다. 이유가 있어요. 남송대에 이르러 지폐와 동전 병행정책을 펴기 시작했고요(1160년대). 게다가 금나라(1215)와 원나라(1270)가 동전 사용을 금지하고 지폐(보초와 교초) 사용을 공식화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 동전이 필요 없게 됐죠. ■밀수품은 동전 28t 그럼 일본 쪽 사정은 어떨까요. 일본에서는 683~958년까지 13종의 동전이 발행됐는데요. 동전을 주조하는 비용보다 액면 가치가 높은 화폐를 유통한 게 문제였어요. ‘주조비용<액면가치’의 차액에서 얻은 재정수입을 노린 거죠. 이렇게 동전을 찍어대니 어찌 됐겠습니까. 동전이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됐죠. 결국 일본 동전은 11세기 말이 되면 거의 유통되지 않았답니다(고은미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 그래도 경제활동에서 화폐가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래서 중국의 동전이 대량으로 수입·유통된 겁니다. 정리해볼까요. 중국에서 동전은 수출금지 품목이었지만 (동전이 사라진) 일본에서는 그 수요가 생겼고요.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시가의 10분의 1 가치로 일본 물품을 살 수 있었죠. 그러니 동전의 밀수출입이 성행했습니다. 그 당시 신안선이 출항한 경원은 공인된 무역항이었는데요. 따라서 경원항에서는 정상적인 물품을 싣고, 인근 지역에서는 동전과 같은 밀수품을 선적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이번에 발표된 일본학자의 논문입니다. ■동전을 화폐로 사용? 1195년(남송 영종)에 주조한 경원통보(왼쪽)와 1068~1077년(북송 신종) 연간에 만든 희령원보(가운데), 1310~1311년(원 무종) 시대에 제작된 지대통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신안선뿐 아니라 일본으로 (밀)수입된 동전은 어떻게 화폐로 활용됐을까요. 일본에서 출토되는 동전은 낱개가 아니라 꾸러미 단위로 묶여 있던 흔적이 역력하다는데요. 신안선에서도 66종의 다양한 동전이 꾸러미의 형태를 보이며 인양됐죠. 일본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동전의 구성비를 일정하게 맞춘 흔적이 보인답니다. 무게를 일정하게 만들어 신뢰성을 높였다는 겁니다(고은미 교수). 실제 12~15세기 일본에서 수많은 중국 동전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방증 자료가 있는데요. 13세기 승려 잇펜(一遍·1239~1289)의 생애를 그린 그림을 한번 볼까요. 사람들이 저잣거리에서 동전으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땅에 묻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또 수입한 중국 동전을 사용한 1187년의 토지매매기록도 있어요. ■청동대불 조성용? 그러나 단순한 화폐로만 쓰이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컨대 신안선의 동전이 ‘청동대불 조성용’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즉 일본은 헤이안 시대(794~1185)부터 동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고요. 이에 따라 동의 생산량이 계속 낮아졌지만, 일본의 동 수요량은 늘고 있었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던 시기였죠. 이에 따라 경통(經筒·경서와 경문을 넣는 통)과 청동대불의 주조가 대거 이뤄졌는데요. 일본의 ‘3대 대불’ 중 하나인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佛)의 금속성분을 분석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납 성분이 19.57%에 달했는데요. 이게 의미심장한 분석입니다. 신안선에서 인양된 북송 시기의 동전 5개를 분석한 결과 납 성분이 21.13~45.40%였던 겁니다. 신안선에서 출토된 북송 시기의 동전과 가마쿠라 불상의 성분이 비슷하다는 거죠. 그렇다면 가마쿠라 대불이 바로 북송에서 수입한 동전을 녹여 조성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수입 동전 중 일부는 화폐로, 일부는 청동대불용으로 나눠 썼다는 수정론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자단목. 고급 가구재로 쓰이는 자단목이 선체의 밑바닥에 1017점이나 깔려 있었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 제공 ■명품 원목에 새겨진 부호 이번 학술대회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발표문이 있었는데요. 신안선 밑바닥에 적재한 자단목(1017점)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인도나 동남아,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자단목은 박달나무처럼 단단해서 불상이나 고급 가구, 공예품의 원자재로 쓰이죠. 그런데 신안선에서 인양된 자단목마다 표면에 새겨진 한자 부호나 숫자, 혹은 아라비아 숫자가 주목을 끕니다. 한자 중에는 ‘대일(大一)’명이 51점으로 가장 많고요. 그 뒤를 ‘일정(一丁·32점)’과 ‘품(品·13점)’, ‘팔(八·10점)’ 자가 잇고 있습니다. 이외에 ‘대길(大吉)’, ‘일본(一本)’, ‘팔팔(八八)’, ‘대+십(大+十)’, ‘품(品)’명 자단목도 있습니다. 로마자를 새긴 자단목이 241점이나 됩니다. 이와 함께 ‘본(本)◈’처럼 글자와 문양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명문도 보이고요. 삼각형, 원, 꽃무늬, ‘원안의 팔(八) 자와 이(二)’ 자 문양도 흥미롭습니다. 이밖에 삼각형이나 동그라미, 산(山) 모양의 문양도 독특한데요. 그동안 이러한 명문과 문양, 부호를 두고 이 자단목의 소유주나 상단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했는데요. ‘세키가하라 전투 병풍’.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이 전쟁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일본 기후시 역사박물관 소장 ■일본 무사 가문의 문장? 그런데 이번에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주인’이 조심스럽게 특정됐습니다. 즉 자단목에 기재된 문자와 문양 가운데 상당수가 중세 일본의 무사 및 유력 가문의 문장(紋章), 즉 가문(家紋·가문의 표지로 정한 문양)일 가능성이 짙다는 견해입니다(정순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기존 연구에서 ‘품(品)’과 ‘클로버’, 두 겹(세 겹) 육각형 문양, 글자 이(二)에 동그라미를 친 것으로 읽었던 문양이 그렇다는 겁니다. 예컨대 ‘세 개의 비늘(三つ鱗·미쓰우로코)’ 문양은 가마쿠라 막부의 집권직을 계승하며 가마쿠라(鎌倉·1185?~1333) 시대의 지배자로 군림한 ‘호조(北條)씨’와 관련된 물품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동그라미에 두 줄 그은 문양(丸に二つ引き·마루니 후타쓰히키)’ 역시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 가문인 ‘아시카가(足利)씨’와의 연관성이 제기됐습니다. 이 밖에도 신안선 적재 화물을 포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름모, 세 개의 별(동그라미), ‘대길(大吉)’ 등 나무상자 겉면의 문양 또한 일본 열도의 특정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정순일 교수). 신안 보물선이 발견된 전남 신안 증도(시루섬) 앞바다. 1975년 8월 20일 이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최형근씨)의 그물에 청자꽃병을 비롯한 중국제 도자기 6점이 걸린 게 계기가 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이 밖에도 자단목의 ‘괭이밥(片餐·가타바미)’ 문양은 일본 여러 무사 가문의 문장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가문(家紋·かもん)’을 검색해보았는데요. 예부터 스스로의 가계, 혈통, 집안,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표시했답니다. 일본에선 현재 241종류 5116문 정도의 개별 가문이 있다고 합니다. 무사 시대에 들어 펼쳐진 크고 작은 전쟁에서 피아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했답니다. 제가 이 논문이 분석한 자단목의 문양과 일본 지식백과 등에 등장하는 무사 가문의 문장을 비교해보았는데요. 비슷한 문양이 제법 있더라고요. 흥미로운 문제 제기여서 향후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환의 Hi-story
‘합스부르크 보물’ 이례적 인기 비결은(2022. 12. 02 11:09)
2022. 12. 02 11:09 문화/과학
유럽을 지배한 왕가의 역사가 한국에서 ‘재탄생’했다.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만날 수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이야기다. 역사를 미술, 조각 등의 예술품으로 만나는 경험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의 주요 전시물 96점을 통째로 한국으로 옮겨왔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매표소 앞 전경 /김찬호 기자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이름의 전시는 지난 10월 25일 시작했다. 주간경향 역시 1501호에서 이를 소개한 바 있다. 한 달여나 지난 시점에서 해당 전시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합스부르크전이 ‘이례적인’ 흥행몰이를 하고 있어서다. 주최 측인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표를 사면 즉시 입장 가능했던 전시는 관람객이 몰리며 30분 단위로 회차를 구분해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회차별로 입장 가능한 인원은 150명이다. 사전 인터넷 예매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현장 판매분을 구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입장권 현장 판매를 시작하는 오전 10시 무렵이면 매표소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합스부르크전의 이례적인 흥행은 몇가지 궁금증을 만든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예술품들은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 “전시품 선정기준은 무엇일까”, “이 정도 규모의 전시는 어느 정도 예산이 들어갈까” 등이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지난 11월 26일, 28일 두차례 방문했다. 당연히 매표소에서 줄을 서고 정해진 시간에 입장했다. 다만 하루에 판매하는 표가 한정돼 있었다. 박물관 측에서 “취재를 위해 허용된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한정된 현장판매표를 구매하는 것이 오히려 관람객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매표소 앞까지 줄만 섰고, 표는 구매하지 않았다. 전시 관람은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만 집중했다. 예술품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어설픈’ 감상은 배제했다. 대신 합스부르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양승미 학예사의 ‘기획의도’와 ‘이것만은 꼭 시간을 들여 감상하라’는 추천작품을 소개한다. 해당 추천작품 중에는 이동 동선 때문에 관람객들이 놓치기 쉬운 작품도 있으니 반드시 확인해보길 권한다. 박물관 협조를 구해 전시작품 사진은 최대한 많이 촬영했다. 합스부르크전의 성인 한 사람 입장권 가격은 1만7500원이다. 연인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경우 최소 3만5000원이 든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자녀 연령에 따라 최소 4만7000원에서 최대 7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부담되는 가격이다. 게다가 전시는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만 열린다. ‘입장료가 비싸서’, ‘서울에 살지 않아서’ 관람이 힘든 분들과도 전시를 공유하고자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긴 역사만큼 전시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숨겨진 이야기’들은 전시를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왼쪽)과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두 작품 모두 1656년 작품으로 전문가들은 동시에 그렸을 가능성을 제기한다./프라도 미술관, 김창길 기자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재탄생’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요 활동 무대는 현재의 오스트리아다. 1892년 조선과 수교를 맺었기 때문에 올해가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이다. 처음 합스부르크전 이야기가 나온 것도 양국 수교를 기념하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초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제안했고, 빈미술사박물관이 참여하며 논의가 진척됐다. 공익 차원의 일인 만큼 국립중앙박물관도 적극 참여했다. 문제는 전시 작품의 선정, 규모, 세부일정 조정 등의 지난한 작업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였다. 양 학예사가 이 복잡한 업무를 맡았다. 합스부르크전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한국인에게 합스부르크 왕가가 익숙하지 않다.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이라는 점 외에 ‘무슨 무슨 몇세’로 이어지는 족보와 시대상까지 파악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생소함은 전시를 지루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한국으로 들여올 수 있는 작품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양 학예사는 “빈미술사박물관은 임대 가능한 70여점의 소장품을 번호를 매긴 목록형태로 줬다. 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 시대순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나하나 해야 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에서 전시 중인 갑옷들. /김창길 기자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갑옷. 안돈 페펜하우저(1525년경-1603) 제작 / 김창길 기자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현존하는 르네상스식 갑옷 중 가장 크다. 외르크 조이젠호퍼(1528-1580) 제작 /김창길 기자 합스부르크 왕가를 공부하는 데만 꼬박 1년여가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성과도 생겼다. 우선 작품 70여점으로는 제대로 된 전시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을 설득해 최종 96점을 들여올 수 있었다. 또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홍보 포스터에도 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받아올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테레사 공주는 어릴 적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정해졌다. 며느리가 될 테레사 공주가 잘 성장하는지 궁금했던 페르디난트 3세는 벨라스케스에게 테레사 공주를 그리게 했다. 그 결과 테레사 공주의 3세, 5세, 7세 시절의 초상화가 만들어졌다.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전시 중인 작품들이다. 본래 빈미술사박물관은 테레사 공주의 3세 무렵 그림을 제안했다. 양 학예사는 5세 무렵 그림으로 바꾸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벨라스케스의 또 다른 작품 ‘시녀들’ 속의 공주가 이 시기 테레사 공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작품은 모두 1656년에 그린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5세 무렵 테레사 공주 그림을 받아올 수 있었다. 양 학예사는 “관람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것, 더 의미가 있을 만한 것을 들여오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조선의 투구와 갑옷/ 김창길 기자 현실적 난관도 해결해야 했다. 전시 수준의 향상은 곧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곧 입장권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전시는 수익 사업이 아니다. 입장권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고, 손실이 크게 나지 않는 범위에서 가격을 정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불 비용과 세부항목은 협약에 의해 공개가 불가능하다. 다만 이번 전시 목표 관람객은 26만명이다. 성인 입장권 가격은 1만7500원이다. 해당 정보들을 토대로 전시에 들어간 예산은 대략 추정해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에서 전시 중인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 /김창길 기자 합스부르크전은 11월 말 기준 8만여명이 관람했다. 1일 평균 관람객 수는 2200여명이다. 2023년 3월 1일까지 전시가 열리는 만큼 목표치를 뛰어넘는 흥행이 유력한 상황이다. 특히 개막식에 참석한 사비나 하그 빈미술사박물관 관장은 “해외에서 열린 합스부르크전 중 가장 좋았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내세우고 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왕가의 역사’가 아닌 ‘수집의 역사’다. 왕들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빈미술사박물관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직 예술적 관점에서 시대를 재편집했다. 정치적 평가가 좋지 않은 루돌프 2세를 수집가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식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을 ‘재탄생’시켰다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건 단순히 ‘진품’을 보기 위함만은 아니다. 오히려 본질은 여러 작품을 연결하고 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든 전시기획의 ‘독창성’을 감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합스부르크전의 의미 역시 분리와 재조립을 통한 전시의 ‘독창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합스부르크 가문 문양과 A,E,I,O,U 암호문 /김찬호 기자 전시품을 공부하고 가야 하나 그렇다고 전시 관람을 위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1부, 2부 하는 식으로 구분이 있지만 반드시 순서를 지켜 관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전시품을 알고 관람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양 학예사는 “전시를 관람할 때는 전시품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며 “해당 작품의 역사적 의미나 가치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도록 검색 등을 통해 확인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오랜 격언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에 설명을 듣고 난 후 비로소 보이게 된 것과 양 학예사의 추천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특이한 문양과 세로로 쓰인 A, E, I, O, U라는 문자다. 해당 문양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고유 상징이다. 암호 같은 문자는 실제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남긴 각종 문서, 물건 등에 등장하는 것이다. 문자는 어떤 문장의 첫머리글자라는 해석이 많은데 Austria Est Imperatre Orbi Universae(라틴어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가 가장 유력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신감을 소개함과 동시에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을 키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각종 갑옷이다. 갑옷 표면에 새겨진 문양과 섬세한 주름이 마치 아름다운 의복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갑옷은 당시 유행한 ‘패션’을 반영하고 있다. 생각보다 갑옷이 불편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설명 영상도 있다. 갑옷을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닌 미적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시장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루돌프 2세의 수집품이 전시된 공간을 감싸는 음악은 실제로 당시 궁정 악장이었던 필리프 드 몽테의 미사곡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품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앞에서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루벤스의 작품은 별도의 공간에 전시돼 있다. 그림을 비추는 조명 외에 빛이 없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을 감상하는 기회로도 활용해볼 수 있다. 또 오스트리아 쇤부른 공전을 테마로 한 공간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곳에는 하이든의 48번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하이든이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작곡한 헌정 교향곡이다. 이처럼 전시장 곳곳에 감상을 위한 보조장치들이 숨어 있다. 전시장 끝에는 특별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조선의 투구와 갑옷을 볼 수 있다.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교를 기념하는 역사적 증표다. 투구 앞면에는 발톱이 5개인 용이 있고 뒷면에는 봉황 무늬가 있다. 양 학예사는 “합스부르크 600년과 우리 민족과의 교차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투구와 갑옷 역시 요제프 1세의 주요 수집품으로 분류돼 높이 평가받는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의 합스부르크 왕가 갑옷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포인트다.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양승미 학예사 추천작품 #1 루돌프 2세의 ‘십자가 모양 해시계’ 크기는 작지만 이 해시계에는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3가지나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뒷면에 있는 12가지 별자리와 도시의 위도 정보로 일출과 일몰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측면에 숫자가 새겨진 9개의 눈금이 있는데 해가 뜨고 지면서 만들어진 그림자와 눈금이 닿는 위치가 시간별로 달라집니다. 즉 눈금에 닿는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면 디스크에 0도부터 360도까지 기록된 지명의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디스크를 잘 보면 비엔나, 프라하도 보이고요. 360도 위치에는 카나리아 제도가 있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 튀르키예 이스탄불, 케냐 몸바사, 이란 호르무즈해협 등 16세기 대항해 시대 항로로 이용된 도시들이 새겨져 있어 각 도시의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십자가 모양 해시계’는 예술, 수학, 과학, 기술의 결합체입니다. #2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야자열매 주전자’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취향이 독특해 세계적으로 희귀한 소재의 예술품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야자열매 주전자와 잔입니다. 야자열매는 16세기 바다에 둥둥 뜬 채로 유럽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됐습니다. 치유에 효능이 있다는 둥 여러 속설이 퍼지면서 굉장히 귀한 소재로 각광받았어요. 특히 야자열매를 소재로 해서 금세공을 추가한 공예품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됐고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귀한 예술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이런 야자열매를 소재로 한 공예품이 총 6점 남아 있는데 그중 2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됐습니다. #3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어머니는 페르디난트 3세 황제의 딸이었습니다. 즉 오스트리아 황제가 테레사 공주의 외할아버지였는데요. 그런데 테레사 공주는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즉 자신의 외삼촌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 셈이죠. 그래서 페르디난트 3세는 손녀이자 며느리가 될 테레사 공주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빈미술사박물관에는 테레사 공주의 3세, 5세, 7세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 5세의 테레사 공주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4 피터르 파울 루벤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졌어요. 주피터와 머큐리, 즉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허름한 나그네들을 문전박대했지만 오로지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만이 이들을 정성껏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포도주와 과일을 내왔는데요, 아무리 포도주를 따라도 그 양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필레몬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눈앞의 사람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바우키스는 거위라도 잡아 신들에게 대접하려 하지만 주피터는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를 한 화폭에 녹여낸 것은 루벤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역동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루벤스의 진가입니다. #5 18세기 궁정행사의 기록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약혼 축하 연회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작센의 공작 알베르트와 연애결혼을 하고자 했으나 아버지 프란츠 1세는 이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765년 프란츠 1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약혼식은 이듬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연회장 뒤에 쳐진 검은 천막은 프란츠 1세를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황실의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운데 ㄷ자형 테이블에는 12명의 황실 가족들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1번부터 12번까지의 명단도 작성돼 있습니다. 중앙에는 프란츠 1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 부부가 앉아 있고 왼편에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입니다. 이 자리에는 2코스에 76가지 음식이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전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지난 11월 26일 아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10시 정각이었다. 현장티켓판매라는 알림판이 있는 곳까지 줄은 이어져 있었다. 줄의 끝에서는 매표소가 보이지도 않았다. 표를 사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 35분 남짓 걸렸다. 판매원이 “11시 입장권이 구매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말 전시관람을 목표로 한다면 오전 10시까지는 매표소로 가는 것이 좋다. 정해진 인원수를 초과해 표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늦게 갈수록 입장 가능한 시간이 뒤로 밀린다. 실제로 이날 정오 무렵, 매표소에 다시 물었더니 “오후 4시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표를 사고도 약 4시간 가까이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매표소 앞 모습. 오전 10시임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 김찬호 기자 기획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입장권을 확인하는 별도의 책상이 있다. 매 시각 30분 이곳에서 표를 확인하고, 함께 입장하는 방식이다. 한쪽 편에는 100개의 물품보관함이 있다. 두꺼운 외투와 가방은 이곳을 이용하면 된다. 무료다. 물품보관함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물품보관함에 붙은 검은색 도어를 손으로 쓸어내리면 숫자가 나타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매표소 앞 모습. 약 35분 정도 줄을 선 뒤에야 매표소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전시를 설명해주는 오디오가이드가 있다. 저녁 9시까지 관람시간을 연장하는 수, 토요일 기준 대여는 전시 종료 1시간 전인 오후 8시까지 가능하다. 반납은 전시 종료 15분 전인 오후 8시 45분까지 해야 한다. 이용료는 3000원이다. 타인이 사용한 오디오, 이어폰 등에 거부감이 든다면 본인 스마트폰으로 ‘가이드온’ 앱을 미리 다운받고, 전시탭에서 합스부르크전을 선택해 이용하면 된다. 앱을 이용해도 비용은 3000원으로 동일하다. 이 전시되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안에는 두꺼운 외투, 가방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이 100개 마련돼 있다. / 김창길 기자 관람객들이 몰리는 만큼 전시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줄이 형성된다. 전시실 안에서는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이동해도 된다는 뜻이다. 줄이 형성되는 것은 한 작품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줄을 서다 보니 이동 과정에서 적체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해당 전시는 플래시&보조광만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날 96점의 전시품을 모두 촬영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꼼꼼하게 전시품을 보려면 전시장을 모두 도는 데 최소 1시간 30분 정도는 서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입장 전 화장실 이용은 필수다. 전시실 앞쪽에선 관람객들이 줄까지 서며 꼼꼼하게 관람했지만, 뒤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기환의 Hi-story](44)안중근 의사 유묵 31점 보물, 너무 많다고요?(2022. 07. 29 14:16)
2022. 07. 29 14:16 문화/과학
한 인물의 작품이 31점이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은 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유묵들은 단순한 붓글씨가 아닙니다. 안 의사의 삶과 학식, 정신, 사상을 오롯이 담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묵 한점 한점이 안 의사의 유언이자 분신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31점. 안 의사는 사형언도를 받은 1910년 2월 14일부터 집행 때인 3월 26일까지 40여일 동안 유묵을 집중적으로 썼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 “아니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며칠 전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팀장이 약간 곤혹스러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 5점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거든요. 일종의 항의전화 요점은 이겁니다. 역사상 3대 명필 중 두분인 석봉 한호(1543~1605)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예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두분보다 결코 잘 썼다고 할 수 없는 안 의사의 유묵이 너무 많이 보물로 지정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문제 제기였습니다. 개인 최다 31점이 보물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5점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하기 전인 1910년 3월에 쓴 유묵입니다. 이중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는 다롄(大連) 세관에 근무하던 일본인 가미무라 쥬덴(上村重傳)에게 써준 것인데, “사람이 깊은 사려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는 <논어> ‘위령공’ 편의 구절입니다.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은 일본인 간수과장 기요타(淸田)에게 써준 글귀입니다. ‘날마다 고상하고 청아한 말을 소통하던 분’으로 풀이되는데요. 중국 동진 시대 시인 도연명(365~427)의 시(‘은진안과 헤어지며’)의 “이틀 밤을 머물러 고상하고 청아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친해졌음을 알았네(信宿酬淸話 益復知爲親)”라는 글이 연상됩니다.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는 일본인 경수계장 나카무라(中村)에게 써준 것으로, “황금 백만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의 가르침만 못 하다”는 <명심보감>의 문구에서 따왔습니다. ‘지사인인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은 안중근 공판을 지켜봤던 일본인 기자 고마쓰 모토코(小松元吾)에게 써준 겁니다.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이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라는 <논어> ‘위령공’ 편의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세심대(洗心臺)’는 가운데 ‘세심대’ 글자와 함께 왼쪽에 작은 글씨로 “경술삼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5점인데요. 한꺼번에 5점이라니 좀 많아 보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많다”고 문제 제기할 수준은 아니지 않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화재청 사이트의 ‘문화재 검색란’에서 ‘안중근’이라는 키워드를 쳐보십시오. 보물로 지정된 유묵만 이번 5점을 포함해 31점이 검색됩니다. 3대 명필에 꼽히는 석봉 한호와 추사 김정희는 어떨까요. 지정건수로 보면 석봉 한호는 4점, 추사 김정희는 8점으로 검색됩니다. 개인의 유물이 31점이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유례가 없습니다. 그러니 “안중근 의사 유묵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겁니다. 안 의사 유묵을 받으려 줄 섰던 일본인들 과연 그런 소리를 들어도 되는 건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유묵을 집중적으로 쓴 것은 사형언도를 받은 1910년 2월 14일부터 집행 때인 3월 26일까지 40여일 동안입니다. 안 의사의 자서전(<안응칠 역사>)에 그 이유가 나와 있는데요.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다. 법원과 감옥의 관리들이 내 필적을 기념하려고 비단과 종이 수백장을 사 넣으며 청구했다. 나는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하지 못하면서 매일 몇시간씩 글씨를 썼다.” 보물로 지정된 5점에서 보듯이 이 유묵들은 모두 일본인들에게 써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극적인 예가 있죠. 1910년 3월 26일 오전 9시, 안 의사가 사형집행장으로 나가기 직전 호송관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등병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며칠 전 안 의사에게 “휘호 한점을 받고 싶다”고 했던 지바의 요청을 떠올린 겁니다. 안 의사는 급히 준비한 비단천과 필묵으로 단숨에 글씨를 써내려갔는데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행서 8자였습니다. 안 의사는 지바에게 “동양에 평화가 찾아오고 한일 간 우호가 회복되는 날 다시 태어나 만나고 싶다”고 작별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지바뿐이 아닙니다. 안 의사를 뤼순 옥중에서 취조한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 靜四朗) 검찰관, 간수 시타라 마사오(設樂正雄), 경관 야기 마사노리(八木正禮), 의사 오리타 다다쓰(折田督), 경수계장 나카무라(中村), 감옥을 찾은 경시 타케시(猛), 간수 미쓰이 도쿠이치(三井德一), 한국통감부 경시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뤼순 초교 교사 히시다 마사모토(菱田正基) 등도 안 의사의 유묵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사형수 신분인 안중근 의사의 담당 승려(쓰다 가이준·津田海純)도 안 의사의 유묵을 3점이나 보관했습니다. 뤼순감옥의 교도소장과 간수, 경찰, 검찰관, 통역, 세무관, 교사, 교화승까지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했다는 거죠. 안 의사가 어떤 분입니까. “내 거사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척살한 독립전쟁의 일부”라고 강조했죠. 안 의사가 내건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중 하나가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이거든요. 따라서 안 의사는 죽는 그 순간까지 보통 일본인들의 양식을 일깨워 자신의 동양평화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을 겁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안 의사의 학식 안중근 의사의 삶과 학식, 철학을 알 수 있는 저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수의 저작과 글들은 수감 후 나왔는데요. 그 기간에 쓴 자서전(<안응칠 역사>)과 미완성으로 남은 <동양평화론> 등이 있습니다. 그밖에 뤼순감옥 이감 직후 검찰관에게 제출한 ‘한국인 안응칠 소회’와 ‘이등박문 죄악 15개조’ 등의 글이 있죠. 그 가운데 마지막 40여일간 붓을 휘둘러 써내려간 것이 바로 유묵입니다. 생각해보면 옥중에 무슨 참고문헌이 있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의 필체로 확인된 유묵은 62점 정도에 달하는데요. 그중 같은 문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불과 서른두 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깊고도 넓은 학문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안 의사가 인용한 중국 고전 중에는 공자의 <논어>가 유독 많습니다. 이중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더불어 논의할 수 없다(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는 유묵은 <논어> ‘이인’에서 인용했고요. ‘(일신상) 이익을 얻으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 見危授命)’는 글은 <논어> ‘헌문’에서 따왔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도 인용된 ‘날이 추운 뒤에야 소나무·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는 유묵의 출전은 <논어> ‘자한편’입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人無遠慮 難成大業)’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절제한다(博學於文 約之以禮)’도 <논어> ‘헌공’과 ‘안연’ 등을 인용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와 시도 두루 인용했는데요. ‘서툰 목수는 아름드리 좋은 목재를 다룰 수 없다(庸工難用 連抱奇材)’(<자치통감>)와 ‘오로봉을 붓으로, 삼상을 연지로 삼고, 푸른 하늘만 한 큰 종이에 내 마음속의 시를 쓰리라(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이백의 시)는 유묵이 그렇고요. 중국 진(秦)나라 말 인물인 황석공의 병법서(<소서>)와 옛 선현의 구전 문장까지도 인용했습니다. ‘홀로 자만하는 것보다 더한 외톨이는 없다(孤莫孤於自恃)’(<소서>)와 ‘백 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함이 있다(百忍堂中有泰和)’(구전 문장)가 그것입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는 유명한 유묵도 있죠. 우국충정을 드러낸 유묵들도 있습니다. ‘천리 밖 임(나라) 생각에 바라보는 이 눈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 표하니 행여 이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달라(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와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이 단단하고 의사(義士)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상은 구름같이 드높다(丈夫雖死 心如鐵 義士臨危 氣似雲)’는 유묵이 그렇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내건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중 하나가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였다. 안 의사는 죽는 그 순간까지 보통 일본인들의 양식을 일깨워 자신의 동양평화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 ‘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노심초사한다(國家安危勞心焦思)’는 글도 심금을 울리죠. 사형집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눈이 뚫어질 듯’ ‘노심초사’하며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걱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 의사의 염원인 동양의 평화가 일본의 침략야욕 때문에 어려워진 것을 비판하는 유묵도 있습니다. ‘동양의 대세 생각하면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있는 사나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구나. (동양)평화시국 이루지 못한 게 개탄스럽기만 한데, (일본이) 침략 정책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도다(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글씨로 동양평화 외친 안 의사 순수한 서예의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요. 안 의사는 “필법도 능하지도 못하고 남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이것은 겸손의 소치라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는 해서(정자체)와 행서(흘림체)의 중간인 해행(楷行)이 주가 되고 있는데요.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는 “엄정하고 단아한 해서 중에서도 필묵이 정확하고 법도가 엄격한 안진경(709~785)류의 필법을 구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천여불수반수기앙이(天與不受反受其殃耳)’, 즉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뿐’이라는 유묵인데요. 사람을 전율시키는 송곳 같은 필획이 돋보인다고 합니다. 안 의사의 성정·기질과 정신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네요. 안 의사의 작품으로 확인된 62점 가운데 국내에 소재한 것이 40여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한 인물의 작품이 31점이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은 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유묵들은 단순한 붓글씨가 아닙니다. 안 의사의 삶과 학식, 정신, 사상을 오롯이 담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묵 한점 한점이 안 의사의 유언이자 분신입니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의 언급이 심금을 울립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부터 집행 때인 3월 26일까지 40여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유묵을 썼습니다. 안 의사는 글씨로 죽음을 극복했고, 글씨로 동양평화를 외친 분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가운데는 안 의사의 염원인 동양의 평화가 일본의 침략 야욕 때문에 어려워진 것을 비판하는 것도 있다. 유묵은 “동양의 대세 생각하면 차마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다”면서 “(일본이) 정략(침략 정책)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다”고 질타하는 내용이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 다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너무 많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석봉 한호나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너무 적게 지정됐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그동안 서양의 잣대로 서예는 미술도 예술도 아니라는 인식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다”면서 “앞으로는 한호와 김정희의 작품도 적극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대우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백범 김구(1876~1949)와 만해 한용운(1879~1944),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 등의 유묵도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분들의 작품도 국가지정문화재의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분실된 청와대 소재 유묵 참 제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언급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다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유묵(보물)이 있습니다.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더불어 논의할 수 없다(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는 작품인데요. 문화재청의 문화재 정보란에 이 유묵의 소재지가 ‘서울 종로 세종로1 청와대’라 돼 있는데요. 도난 문화재 정보란에 ‘청와대에서 도난 분실’로 표시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갖고 있던 안중근 유묵이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건데요. 이 유묵은 1976년 3월 17일 당시 소유자인 이도영 홍익대 이사장이 청와대에 기증했다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사라졌다네요. 도대체 언제 어떻게 분실됐는지 알 수 없답니다. 청와대가 어수선할 때인 1979년 10·26 사태 이후나 1980년대 중후반 누군가가 슬쩍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죠. 문화재 사범단속반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추적해주기 바랍니다. *이 기사를 쓰는 데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팀장과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가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줬습니다.
이기환의 Hi-story
[골목 내시경]신설동 골목엔 레트로와 보물이 있다(2021. 03. 05 13:56)
2021. 03. 05 13:56 사회
신설동은 우리말로 새말이다. 숭신방이란 지명을 신설계라 고친 후 갑오개혁 이후 신설동으로 불린다. 당시에는 한양이 확장돼 새로 들어선 신도시였다. 서울은 이후에 더 커져 동쪽 방면의 길들은 대부분 신설동을 거쳐 동대문을 통해 시내로 이어진다. 안암동 방향의 북쪽으로 향한 길과 청량리, 장안동을 거쳐 송파구로 이어진 도로가 만나는 신설동오거리는 늘 차가 막히는 교통의 병목이다. 지나치는 차량은 많지만, 어제의 새 마을은 오늘의 헌 마을이 됐다. 신설동의 골목 대부분은 고색을 입고 있다. 신설동 골목은 오래된 풍경이 남아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과 2호선 신설동역 주변부는 큰길가에 새로 세운 오피스텔과 상업용 빌딩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수십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큰길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에 지은 개량한옥들이 밀집된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흔치 않은 과거의 섬이다. 서울서 흔치 않은 과거의 섬 한옥 사이로 비좁은 골목은 그다지 길지 않아도 방향을 잃을 만큼 충분히 복잡했다. 어떤 집은 지은 지 100년은 돼 보인다. 수시로 고친 흔적은 집 전면에 얼룩처럼 남아 있다. 어떤 때는 회벽으로 미장을 했고, 그 옆 벽은 타일을 붙였다. 사이사이 벽돌로 쌓아올린 곳도 있다. 한집에 어느 곳은 시멘트로 그 옆은 타일로 붙인 모습도 보인다. 햇빛 대부분을 담과 담이 막고 서서 골목은 어둡고 냉랭한 느낌을 전한다. 게다가 한낮에도 행인을 볼 수 없었다. 그런 골목도 요즘엔 일부러 찾아오는 도시 유람객이 있다고 한다. 골목 입구엔 제법 큰 게스트하우스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문을 닫은 상태라는데, 건물 벽엔 청사초롱을 든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웃음을 짓고 있다. 길가 쪽 한옥들은 공장과 가게, 또는 식당으로 아직도 건재하다. 신설동에 한옥들이 살아남아 있는 것은 이 지역 대부분이 획지 개발이라는 규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의 절반까지만 개발 가능해 신축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곳이다. 대규모 개발이 비켜간 모습이다. 나무로 지은 한옥들은 손을 많이 탄다. 지붕의 흙도 때때로 갈아주고 기와도 새로 얹어야 한다. 그런 성가심이 있어야 제 모양과 기능을 유지하는 까탈스러운 건축물이다. 요즘에는 시에서 등록을 받아 보수공사를 지원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유독 눈에 띄는 한옥 한채가 있다. 한옥을 그대로 두고 위로 새 건물을 지어 올려 조화를 맞춘 집이다. 한옥의 뜰과 지붕선을 살려두고 양옥을 비켜 얹어 기능과 효율을 살렸다. 한옥을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재건축방식이라 상도 받은 건물이라고 한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공장과 창고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신설동은 동대문, 창신동, 용두동, 성수동으로 이어지는 동대문 밖 봉제 의류산업 사슬의 중요한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원단 창고들이 신설동 골목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 주문에 따라 동대문과 창신동 봉제공장으로 물건을 실어나른다. 단추, 호크, 레이스 등을 취급하는 부자재 업체와 창고들도 곳곳에 있다. 길 건너 동묘 쪽은 가방과 신발 등 피혁창고가 많고, 신설동 쪽은 청바지와 봉제 의류 원단이 눈에 띈다. 신설동에서 청계천 쪽 건물 하나는 아예 의류 부자재 상가가 차지하고 있다. 때때로 아주 오래된 봉제 가공업체도 있는데, ‘큐큐, 나나이치’ 등 아리송한 현장 용어가 간판으로 붙어 있다. 뭐냐고 묻자 주인은 단춧구멍 가공 공장이란다. 동대문에서 팔리는 옷들은 대개 신설동 원단 창고에서 나와 이리저리 떠돌면서 하나씩 모양을 갖추고 물을 들여가며 장식을 붙여 완성된다. 이곳에서 옷의 여행이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의 개량한옥 골목 의류 관련 창고뿐 아니라 철공소와 철재를 취급하는 업체도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얼마나 됐냐고 묻자 종업원은 “한 50년 됐다”는 답을 들려준다. 이곳에서 실어낸 철재들은 용두동과 성수동 쪽 공장들로 간다고 한다. 그는 “예전엔 왕십리 쪽도 주물공장 철공소들이 많아 밤낮없이 공장이 돌아갔다. 지금은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신설동 골목의 집들과 공장들이 오래된 만큼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식당들은 대부분 평판이 높다. 한옥 한채를 차지한 추어탕집은 그중 인기 있는 곳이다. 쇠솥에 끓여나온 남원식 추어탕에 산초가루를 듬뿍 뿌려 부추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시든 육신도 생기를 되찾을 만하다. 밤엔 추어튀김을 곁들인 술판도 자주 벌어진다. 그 아래 돌로 지은 집의 설렁탕도 근처 공장 노동자들의 단골집이다. 코로나 시대 노점 풍경 일제강점기인 1928년 신설동엔 경마장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이곳에선 말들이 달리고 모던한 경마꾼들이 한탕을 꿈꾸던 곳이다. 한국전쟁통에는 경마장이 비행장으로 바뀌어 소위 ‘에르나인틴(L-19)’이라 부르던 미군 정찰기들이 뜨고 내렸다. 전쟁 이후 경마장은 뚝섬으로 옮겼고, 그 터엔 학교와 공원 그리고 집들이 들어섰다. 지금의 동대문도서관과 우산각공원이 경마장 자리였다. 서울풍물시장이 신설동의 주인공이 됐다. 우산각공원 옆에는 신설동 인근 주민들의 원성을 사는 마사회 동대문지점 건물이 버티고 있다. 경마가 열리는 날 이곳에서는 화상중계를 통해 경마에 몰입하는 꾼들이 몰려든다. 질주하는 말들을 닮아서인지 마권 한장에 행운을 비는 이들은 늘 소란스럽고 거칠다. 요즘 코로나 19 덕분에 경마장 문은 닫혔고,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날이 풀리자 우산각공원 주변에는 경마장에서 본듯한 행색의 중늙은이들이 두셋씩 모여 종이컵에 든 커피를 홀짝거리며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다. 대충 어느 오락실의 기계가 잘 터진다던가, 수십년 전에 놓친 최고배당 경마의 정경을 소상히 얘기하고 있었다. 귀 기울여 듣는 이들은 때때로 탄성을 지르거나 짧은 신음을 뱉으며 놓쳐버린 행운을 반추하고 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풍물시장 주변 골목엔 앉은뱅이 좌판을 깐 노점들이 간간이 보였다. 그중 한 사내는 시계를 팔고 있다. “이게 감쪽같아 감정사들도 답이 안 나온다고 한다. 이런 건 무조건 사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는데 소위 짝퉁 시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손님은 냉담하다. 아무래도 신통치 않아 보였는지 옆의 사내와 하다만 대화를 이어갔다. “청량리는 왜 안 보여?”, “지방 갔대”, “왜?”, “물건 나온 거 보러 간다던데…” 그들은 사람을 성씨나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동네 이름으로 불렀다. 골목 깊숙이 관록 있는 맛집들도 숨어 있다. 오토바이 타고 가던 사내가 멈추자 다른 이가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시계 하나 잡아가”, “있던 것들도 다 팔았는데 뭘 잡아”, “1만원만 주고 가” 사내는 시계를 눈에 붙이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용두를 돌려본다. “이거 맛이 가기 직전이야.” 좌판 구경뿐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도 심심치 않게 재미있다. 요즘 이 골목의 주인은 풍물시장이다. 청계천 개발을 하면서 황학동 일대를 정비하려고 그곳에 있던 난장을 동대문운동장으로 옮겼다가 이곳에 말끔한 건물을 지어주었다. 예전 숭인여자중학교가 있던 곳이다. 건물은 구역으로 나누어 골동품과 구제 옷, 생활잡화와 장식품 등을 팔고 있다. 한쪽으로 막걸리와 국밥을 파는 식당가도 있고, 서울의 옛 골목 분위기를 재현한 전시관도 있다. 전시관 옆 이발관은 60년대식으로 꾸몄는데 실제 손님을 받아 머리를 깎고 있었다. 검정고시 학원부터 봉제공장까지 풍물시장 옆 우산각공원에는 게이트볼 경기장이 있다. 인조잔디에 내린 햇살이 조금 따듯해진 듯 노인들이 패를 짜고 경기를 한다. 목청껏 번호를 외치고 긴 채를 휘둘러 공을 쳐낸다. 어딜 봐도 고물이 된 노인들 같진 않아 보였다. 사람은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을 쓰는 방식에 따라 늙어도 새로워지고, 젊어도 낡은 채 살아간다. 신설동 교차로는 한때 검정고시 학원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수도학원을 비롯해 고려학원 등이 신설동의 주인인 양 성곽처럼 교차로 주변을 에워쌌다. 그 시절 그렇게 많은 검정고시 학원이 필요했던 것은 시대의 사정과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60년대부터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고 기술을 배우러 서울로 올라온 이들이 겨우 자리 잡은 곳은 청계천 일대의 크고 작은 철공장이거나 동대문 봉제공장이다. 노동으로 지쳤어도 공부를 하려는 이들은 신설동 일대의 검정고시 학원을 찾았다. 일하고 밤에는 글을 배워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대신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신설동을 오가며 노동과 학업을 했던 이들의 역할은 경제성장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번영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목하지 않아도 국가나 재벌보다 그들의 헌신과 노고가 더 컸을 수 있다. 신설동에 아직도 남아 있는 한옥골목과 노인과 고물상들은 그들의 시대를 보여준다. 신설동 골목엔 고물이 변한 레트로와 보물이 있다.
골목 내시경

레이디경향(총 17 건 검색)

싱가포르 래플스 호텔, 어떻게 나라의 보물이 되었나
2023. 08. 16 07:18 레저/여행
2012년 당시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가 싱가포르를 방문하며 숙소로 래플스 호텔을 선택하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손자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래플스에 머무르는 김에 싱가포르도 들러봐라.” 래플스 싱가포르 직원들이 전해주는 이 이야기는 래플스가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싱가포르의 역사이자 상징으로까지 여겨지는 호텔. 1887년 문을 열어 1987년에는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헤리티지 호텔의 아이콘이다. 때문에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국빈급의 인사들이나 셀레브리티에게 래플스는 고민의 여지 없는 선택지다. 하룻밤 숙박료가 1000달러(약 120만원) 수준으로, 전 객실이 스위트룸이다. Raffles Hotel Singapore 래플스 싱가포르 메인 로비 싱가포르의 중심지 비치로드(Beach Road)에 자리잡은 래플스 호텔의 파사드(건물의 전면부)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외관을 자랑한다. 식민지 양식(콜로니얼 스타일)이 그대로 보존된 이 건물은 주변을 둘러싼 초고층 빌딩과는 달리 3층에 불과하지만 장중한 위엄을 갖고 있다. 호텔 정원에 들어서면 방문객을 처음 맞이하는 이는 시크교도 차림의 도어맨이다. 래플스 호텔의 상징이자 명물로도 유명하다.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이 전통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 지역에서 시크교도는 주로 경찰이나 군인의 역할을 해왔다. 래플스 호텔 재스민 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는 “시크교도들은 예로부터 용맹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면서 “래플스에서는 10명의 시크교도 도어맨이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인기는 높았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틈을 노리며 기다리는 방문객들도 꽤 됐다. 호텔 내의 기념품숍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도 시크교도 차림을 한 도어맨 인형이다. 래플스 호텔 도어맨 로비에 들어서자 흑백의 조화를 이룬 높은 천장에 달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네오 르네상스식 장중한 기둥이 맞이한다. 1989년(이 때의 보수공사를 국내 건설사인 쌍용건설이 맡았다)과 2017년. 두 번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현대적인 편의성을 더했지만 전체 분위기와 구조는 그대로다. 100여 년 전의 과거와 현재가 같은 공간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주출입구 바로 앞에 있는 벽시계, 북인도 레스토랑 티핀룸 앞에 놓인 축음기는 이 호텔이 생기기 전 영국에서 만들어져 이곳에 놓인 것이다. 2층에 전시되어 있는 피아노 역시 1860년대 런던의 노팅힐에서 연주되던 것. 푸른색 청동 분수가 놓여 있는 팜가든을 둘러싼 철재 기둥은 1898년 영국 글래스고우에서 들여온 것이다. 1987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이 호텔의 전통과 명성은 로비에서 롱바(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이 처음 만들어진 곳)로 연결되는 기다란 복도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 존 웨인, 넬슨 만델라, 빌 클린턴, 에바 가드너, 엘리자베스 테일러, 레이디 가가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거울 만큼 많은 명사가 이곳에 머물렀다. 호텔 벽면에 이곳에서 묵어간 많은 명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번 방문 기간에 묵었던 객실은 팜코트(Palm Court)에 바로 접해 있는 팜코트 스위트다. 팜코트는 엘리자베스 여왕 등 많은 이들이 찬사를 바쳤던,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던 공간.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초록빛 잔디, 주변을 둘러싼 야자나무, 그 뒤로 가지런히 자리잡은 채 세월을 지탱해 온 하얀 건물이 어우러지며 고아(高雅)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마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달과 6펜스’를 썼던 서머싯 몸도 이 팜코트를 마주한 탁자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뭐라도 끼적여 볼까, 아니면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볼까’. 여행 트렁크 안에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책 두 권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방에 다다르니 이미 옆 객실 투숙객이 회랑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그 여성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박4일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일정한 시간에 나와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왔다는 그는 한 달 가까이 이곳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했다. 멋졌다. 부러웠다. 엄청난 숙박비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한 달 가까이 외국의 고급 호텔에 부담 없이 머무르는 그의 재력과 여유가? 아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클라쓰’. 꼿꼿한 자세로 우아하게 책을 보는 저 여유와 품위. 나도 저렇게 늙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객실 앞 회랑에서 팜코트가 내려다보인다 래플스 호텔 팜코트 고객의 요구 사항을 해결해주는 ‘버틀러’(집사)가 객실마다 배치되는 서비스를 도입한 초특급 호텔들이 꽤 있다. 래플스는 유구한 역사처럼 이같은 서비스를 도입한 것도 원조격이다. 방에 짐을 풀고 나니 전담 버틀러가 찾아왔다. ‘에이셔’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다. 그는 우선 객실 문 앞에 있는 태블릿 사용법을 알려줬다. 커튼 내리고 닫는 것, 조명과 온도를 조절하는 것, 자신과의 통화 모두 터치 몇 번으로 가능했다. 습관적으로 손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그가 미니바를 열어 시원한 음료를 권하며 마시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지 물었다. 별생각 없이 우유라고 대답했다. 이내 작은 병에 우유를 담아와서는 방 안에 있는 커피 머신 작동법을 설명하며 카페라테를 만들기 적합한 커피 캡슐도 일일이 알려줬다. 필요한 건 뭐든지, 언제든 불러 달라는 그의 이야기에 살짝 고민이 됐다. 이런 것도 해봤어야지. 자칫 ‘글로벌 진상’ 되기 십상 아닌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 피트니스 센터 외에 주변에 적합한 조깅 코스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도를 가져왔다. 머라이언 상이 있는 마리나 베이의 조깅 코스가 근사해 보였다. 원하는 시간에 맞춰 욕조에 물을 채워놓을지 묻는 질문에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뭘 그렇게까지. 저녁 조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탁자 위에는 티포트 세트와 함께 예쁜 메모가 놓여 있었다. 운동 후에 숙면을 돕는 허브티를 준비했다는 내용이다. 좀 감동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눈치 백단 버틀러 서비스인가 보다. 냉장고에는 시원한 우유도 한 병 넣어놨다. 래플스 싱가포르 객실 ‘원조’는 언제나 관심을 끌어모으는 힘을 가졌다. 같은 값이면, 같은 음식이라면 원조를 찾는 것이 보편적인 심리일 터다. 싱가포르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이 만들어진 곳이 래플스 호텔에 있다. ‘롱바’(Long Bar)는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들러보는 곳. 때문인지 늘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진과 파인애플 주스 따위를 함께 넣어 만드는 핑크빛 음료. 안주인이 땅콩 껍질을 까서 바닥에 버리는 것 역시 지금도 이어지는 전통이다. 바닥 곳곳엔 땅콩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스타 셰프인 제레미 렁이 이끄는 중식 레스토랑 ‘이 바이 제레미 렁’은 레스토랑 입구에서부터 몽환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흰색 종이꽃이 천장과 벽을 뒤덮은 채 이어지는 입구는 마치 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 같다. 메인 메뉴 ‘금가루를 입힌 골든 로스트 덕’을 먹고 나면 나오는 접시는 안개 낀 호숫가에 백조 한 마리가 앉은 형상을 연출한다. 싱가포르식 빙수에 과자로 만든 백조다. 중식당이 마법같은 기예를 부린다면 4시간짜리 코스요리가 이어지는 프렌치 레스토랑 ‘라 담 드 픽’은 순차적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전시회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래플스에서만 판매하는 맥주 비치로드 라거를 맛볼 수 있는 ‘코트 야드’, 서머싯 몸, 키플링, 네루다 등 래플스를 방문했던 작가들을 기리는 ‘라이터스 바’,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북인도 스타일 레스토랑 ‘티핀룸’, 글로벌 미식 트렌드를 체험할 수 있는 ‘부처스 블록’ 등 어느 곳을 선택해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롱바의 싱가포르 슬링 이 바이 제레미 렁 입구 래플스에서 21세기형 첨단 편의 장치나 대규모 시설물을 기대하는 건 적절치 않다. 대신 시간의 무게가 만들어 낸 품위에 압도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지자체장에게 듣는다] 장충남 군수 "소통으로 ‘보물섬 남해’ 명품 관광도시로 가꾼다"
2021. 02. 08 07:11 화제
장충남 군수다사다난하던 2020년이 지나고 새해를 맞았다.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19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가운데 대한민국도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심각한 경영난에 휘청거렸고, 적잖은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다. 바늘구멍 같던 일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빛은 보인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지금도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공무원도 그들 중 일부다. 특히 지역방역체제를 빈틈없이 유지하면서 소외되고 힘겨운 이들을 살뜰히 돌보는 시·군 공무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여전히 ‘사회적 건강함’을 지키고 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 행정을 이끄는 시장·군수들에게서 2021년의 희망을 들어본다. 그 여섯 번째 순서는 장충남 남해군수다. 경상남도 남해군은 지난해 수차례 대한민국 뉴스의 중심이 됐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서도 신진서 9단과 박정환 9단의 간의 바둑 슈퍼매치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결과다. 특히 주요 관광지를 대국장으로 활용해 야외 대국을 진행함으로써 ‘아름다운 보물섬’ 남해군을 전국의 바둑 동호인은 물론 세계 바둑팬들에게 알렸다.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37억+α’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회예산 대비 10배 이상 남기는 ‘장사’였다. 이 대회를 기획한 사람은 장충남 남해군수다. 신진서 9단의 아버지가 남해군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한 대회로, 세계 바둑 1인자인 신9단을 ‘남해의 아들’로 거듭나게 했다. 이렇듯 새로운 발상으로 남해군의 백년대계를 반석 위에 올려 놓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온 장 군수는 2021년 군정 방향과 관련, “민선 7기도 이제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적극 행정’을 통해 조직 내부를 다지며, 경상남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남해군을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바탕으로 혁신을 꾀하고, 변화와 발전을 통해 효율적인 행정을 정착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새해 꼭 이루겠다는 역점사업으로는 우선 ‘남해읍 시가지의 명품 도시화’를 꼽았다. 주민들에게는 편안한 정주 여건을, 관광객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세부적으로는 관광중심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읍 시장을 ‘상가’와 ‘청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주요 도로는 ‘관광특화가로’ 사업을 통해 남해읍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보행로로 재탄생시킨다. 거리 자체가 행정·산업·교통의 중심지로 남해읍을 대표하는 관광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창생플랫폼과 관광창업아카데미가 들어서고, 통합적인 경관 관리를 위한 종합계획도 마련된다. 장 군수는 이 밖에도 △남해어린이집 신축 등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 △남산공원 일원에 야간 테마공원 ‘빛의 정원’ 조성 △남해~여수 해저터널 사업과 국도3호선 확장 등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내년은 ‘보물섬 남해 방문의 해’다. 남해 방문의 해가 관광남해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고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자 전환점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남해군은 올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이에 대해 장 군수는 “남해 방문의 해를 통해 관광산업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해양관광거점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에 곧 출범할 관광문화재단이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며 “빈집을 활용한 가족친화형 감성 여행 등 ‘남해스러운’ 관광 아이템들을 개발하고,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관광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남해안권 관광 1번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장충남 군수이를 위해 ‘서비스 마인드 미흡’ ‘높은 물가’ ‘대표 먹거리 부족’ 등 남해군 관광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관광수용태세를 개선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장 군수는 관광수용태세 개선은 하향식 행정지도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든다고 본다. 이에 따라 행정주도의 친절교육과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민·관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군민주도의 관광환경개선 운동을 벌이고 군민홍보단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시장·음식점·숙박업소 등 관광객과 직접 대면하는 위생업소의 시설환경을 개선하고, 종사자의 의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친절·위생교육 등을 시행한다. 이러한 일들을 차질없이 이뤄내기 위해 장 군수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 없이는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장 군수의 군정 철학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새로 출범하는 제2기 군민 소통위원회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장 군수는 “지난 2년간의 제1기 군민소통위원회는 민·관 소통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토론과 공론화를 거치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실험기간이자 정착기간이었다”며 “1기 활동을 발판 삼아 2기에서는 위원회별로 토론·회의 진행방법 등 운영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군민소통위 활동은 자칫 ‘옥상옥’으로 비칠 수 있다. 업무 추진의 속도 또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장 군수는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사전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 진짜 일을 빨리 처리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즉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장 군수의 신념이다.
남해시
[Music]9와 숫자들 「보물섬」
2015. 01. 06 17:52 문화/생활
‘9와 숫자들’이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5년간의 활동과 성과를 집약한 이번 앨범은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 몽환적이고 웅장한 사운드로 만들어진 특유의 감성 가득한 트랙으로 구성됐다. 타이틀곡인 ‘숨바꼭질’은 정감 있는 어쿠스틱과 청량한 록 사운드가 친숙한 멜로디로 전해진다. 박진감 넘치는 신시사이저 연주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커튼콜’,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담긴 ‘실버 라인’은 꼭 들어봐야 할 곡으로 추천한다. 써니 킴, 벤 몬더 「The Shining Sea」 다양한 작업과 공연을 통해 음악적 교감을 나눠온 재즈 보컬리스트 써니 킴과 재즈 기타의 거장 벤 몬더가 뭉쳤다. 2013년 9월 가졌던 두 사람의 공연 실황이 섬세하고 탁월한 음질로 재탄생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오리지널과 스탠더드, 가요, 동요까지 기존의 음악들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두 사람만의 특별함을 담았다. 아름답고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벤 몬더의 기타와 깊이 있는 감성 보컬 써니 킴의 노래에 귀 기울여보자. 발렌티나 리시차 「쇼팽, 슈만 연습곡」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가 쇼팽 피아노 연습곡 전곡과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을 커플링한 앨범. 쇼팽 연습곡 중 Op.10-12번 ‘혁명’은 2007년 4월 발렌티나 리시차가 유튜브를 통해 게시했던 연주곡으로 그녀를 ‘대중의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하게 한 곡이다. 슈만의 작품 중 연주하기 매우 까다롭고 어렵기로 정평이 난 교향적 연습곡 또한 낭만적이면서 아름다운 화성의 피아니즘으로 구현해냈다.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 OST」 영화 ‘호빗’ 3부작의 마지막 편인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의 OST 스페셜 에디션 앨범.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사운드 트랙으로 아카데미 어워드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을 석권한 영화음악의 거장, 하워드 쇼어의 음악에 뉴질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감각적인 연주가 더해졌다. 특히 이번 앨범의 메인 트랙 ‘The Last Goodbye’는 ‘피핀’ 역을 맡은 빌리 보이드가 직접 불렀으며, 감독 피터 잭슨과 각본을 맡았던 필리파 보엔스가 작곡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당신의 두 번째 재즈 음반_보컬 」 KBS 클래식 FM ‘재즈 수첩’의 진행자 황덕호 작가의 저서 「당신의 두 번째 재즈 음반 12장_보컬」 편에 소개된 고전 재즈 앨범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됐다. 이번 앨범은 ‘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_악기와 편성’에 이은 두 번째 시리즈로, 동명의 저서에 소개된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재즈 음악 황금기의 보컬 명곡들을 담았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How High the Moon’, ‘Basin Street Blues’과 사라 본의 ‘Lullaby of Birdland’, ‘Jim’ 등 대표적인 스윙 리듬의 곡들을 비롯해 다양하게 변화해온 20세기 대표 재즈 보컬들의 명곡을 만나볼 수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Classic Duets」 ‘세기의 테너’, ‘High C의 제왕’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함께 부른 듀엣 앨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사랑받아온 오페라 가수이자 파바로티의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체칠리아 바르톨리, 미렐라 프레니, 조안 서덜랜드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라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까지 내로라하는 클래식계의 목소리를 한 앨범에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앨범이다. 오페라 ‘라 보엠’의 유명한 이중창인 ‘오 사랑스러운 아가씨’와 ‘나비부인’의 ‘날 사랑해주세요’ 등 추위를 녹여줄 따듯한 사랑의 듀엣 곡들로 채웠다. <■담당 / 노정연 기자>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22) 엄마의 보물찾기
2014. 11. 03 11:45 육아/교육
잘한다, 잘한다. 오늘도 아이는 엄마의 칭찬으로 자란다. 작은 단점보다 꼭꼭 숨어 있는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 크게 키우는 능력, 오직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보물찾기다. 은산이는 소심하지만, 세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집중력이 강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소심해도 괜찮아 얼마 전부터 주말마다 첫째 은산이를 데리고 동네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다. 하루 종일 뭘 하고 놀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도 덜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도 찾을 겸 시작한 주말 나들이다. 우리가 간 곳은 은산이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그저 춤추고 뛰어노는 신체 놀이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는데, 과정을 등록하면서 은산이가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했다. 난 역시 멋진 엄마라는 자부심과 함께 말이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파이팅할까요? 이리 나오세요.”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첫 번째 시간. 30개월 안팎의 아이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선생님께 달려가 손뼉을 부딪치고 안기는 등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은산이는 내게 엉덩이를 붙인 채 꼼짝하지 않는 것이다. “은산아, 너도 가서 파이팅하고 와.” 엉덩이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건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어나라고 밀어내는 내 손을 온몸으로 저항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폴짝폴짝 뛰며 율동을 하는 시간에도 녀석은 그저 다른 친구들을 쳐다만 볼 뿐 일어서지 않는다. 이런 아이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몇 달 동안 저랑 이 프로그램을 해와서 친숙한 거예요. 은산이도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져서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간이 되자 조금씩 엉덩이를 떼더니 지금은 제법 방방 뛰며 논다. 물론 아직 두 눈엔 수줍음, 몸짓엔 쑥스러움이 가득 차 있지만 말이다. 아이의 숫기 없는 모습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쇼핑을 하다 가게 점원이 예쁘다고 말을 걸면 내 치마 뒤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 가게를 나올 때쯤 돼서야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요즘은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도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내 뒤로 숨는 일이 종종 있다. 배시시 웃으면서 말이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척 쑥스러운 몸짓으로 선생님 손을 잡고 있던 사진 속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릴 적 내성적이었던 난 외향적인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그보다 먼저 억지로 뭔가를 시키려는 어른들이 참 미웠다. 노래해봐라, 춤춰봐라, 넌 왜 이렇게 조용하니 등등. 나도 무대에 올라가 노래도 잘 불러보고 싶었고, 좌중을 압도할 만큼 재미난 이야기로 친구를 웃겨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간 노래는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똑같은 이야기도 내가 하면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더더욱 움츠러들고 소심해졌다. 수업 첫 시간에 장기자랑이라도 하라고 하면 고개를 책상에 푹 처박고 있었고, 발표는 선생님이 시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만 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아나운서가 됐는지 가끔은 내가 봐도 신기하다. 하지만 이렇듯 철저한 ‘소심녀’도 여러 사람의 격려와 칭찬, 관심으로 지금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날 일으킨 칭찬의 힘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셨다. 도회적으로 생긴 이목구비 때문에 때론 차갑게 보이기도 했지만 5학년인 우리들에게 젊고 예쁜 선생님은 우리의 자랑이었다. 어느 날 음악 시간. 노래에 별다른 소질이 없는데다 그날 역시 혹시 날 시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책상만 보고 있는데 나를 지목하셨다. “고민정, 도라지 타령 한 번 불러볼까?” 소심한 아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시키면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난 조그마한 목소리로 최선을 다했다. “박수! 민정이가 노래를 아주 잘하는데?” 당시 선생님께서는 별 뜻 없이 으레 한 말일 수도 있다. 자라나는 새싹에게 그것도 성악을 전공하는 아이도 아닌 그냥 일반적인 아이에게 굳이 타박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는 내게 큰 용기가 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다. 그림에 얽힌 사연도 있다. 난 왜 이리도 예체능에 소질이 없는지…. 음악, 미술, 체육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예체능 시간을 놀이 시간으로 간주해 기다리곤 했지만 난 차라리 국어, 영어, 수학 시간이 더 좋았다. 뭘 하든 잘하지를 못하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더욱 흥미가 떨어지고, 악순환이 따로 없었다. 그때 이런 나를 미술학원에라도 보냈더라면 흥미라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 부모님 두 분 다 직장일로 바쁘신데다 셋째 딸이니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셨을 거다. 그렇게 일상이 지속되던 어느 날 중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수채화를 그리면 매번 스케치북이 물의 과다한 사용으로 울룩불룩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유화를 그린단다. 그것도 명화 따라 그리기. 초등학생의 그림 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난 다른 건 몰라도 그대로 보고 따라 하는 건 곧잘 했다. 게다가 잘못되면 다시 덧칠하면 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난 또 성실하게,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 그림이 우수상을 타게 된 것이다. 그림으로 많은 상을 타본 사람들에게 우수상은 그저 참가상과 같을 테지만, 그림으로 단 한 번도 상이라곤 타보지 못한 내게 그 상은 전국대회 대상 못지않았다. 내 그림은 학교 복도에 턱하니 걸렸고 그 이후 수많은 이사 속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집에 잘 ‘모셔놓았다’. 물론 그때 그 상을 받은 이후로 다시는 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 일은 내게 그림 그리는 솜씨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계기가 됐다. 한 사람의 작은 칭찬, 작은 상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까진 아니더라도 용기가 되고 긍정의 힘이 됐다. 움츠린 가슴을 펴게 해주었고, 열심히 하면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스스로 느끼게 해줬다. 만일 누군가 내 소심한 노래를 듣고 목소리가 왜 이렇게 기어 들어가느냐는 둥 그것밖에 못하느냐는 둥 이런 말을 했더라면, 내 그림을 보고 넌 왜 이렇게 표현을 못하느냐는 둥 창의력이 그게 다냐는 둥 이런 말을 했더라면 난 더 안으로 침잠했을 것이다. 더불어 나의 쑥스러움 많은 성격을 미워하며 자책했을 게 뻔하다. 끝으로 난 초·중·고, 대학까지 16년 동안 글로 칭찬받아본 적도 한 번 없었다. 글이라고 해봤자 일기나 독후감 정도였지만 언제나 글쓰기는 귀찮은 일이었다. 일기는 개학하기 하루 이틀 전에 몽땅 몰아서 썼고, 독후감은 위인전 제일 뒤에 나오는 요약 글을 짜깁기해서 써가곤 했다. 남편과 연애 시절 썼던 편지를 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정도로 글쓰기에 전혀 소질이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책을 읽기 시작하고 한 문장, 두 문장 조금씩 글을 써 버릇하자 어느새 짧았던 글들은 두 권의 책이 됐고, 지금은 이렇듯 지면에 글을 연재하게 됐다. 내겐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들의 연속이다. 남편이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워주고 못난 내 글에 살뜰한 관심을 가져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난 아이가 자신 없어 하고 쑥스러워하더라도 왜 그러냐고 타박하기보다 기다려주고 한 번이라도 더 칭찬해주곤 한다. “은산아, 쑥스러워서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일어나서 율동하자.” “괜찮아. 안 해도 돼. 다음에 하면 되지.” 소심한 엄마가 이럴 땐 도움이 된다. 은산이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기에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 성격 또한 제각각이다. 예쁜 얼굴, 못생긴 얼굴은 있을지 몰라도 좋은 얼굴, 나쁜 얼굴은 없듯 모든 성격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을 터트리는 성격, 한 가지에 몰두해 ‘오타쿠’ 기질이 있는 성격,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성격, 사람들을 웃기지 않으면 못 참는 성격,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성격 등 사람 수만큼 성격의 종류도 수억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리더십이 있고 유머 감각도 있으며 명랑한 성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마치 드라마 속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누군가 쓴 각본이 아니다. 대범한 사람이 있으면 소심한 사람도 있어야 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 있으면 진지한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숫기가 없는 은산이는 대신 세심한 성격을 가진 아이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꼼꼼히 관찰한다. 책 속 캐릭터들도 두어 번만 보면 다 기억해내고, 집 안에 있는 물건들도 평소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으면 이게 왜 여기 있느냐며 내게 묻곤 한다. 나도 발견하지 못한 것들까지도 말이다. 그런 점들이 특히 더 발휘되는 놀이가 퍼즐이다. 아직 세 돌도 안 된 녀석이 80개짜리 퍼즐도 두어 번만 해보면 혼자서도 척척 해낸다. 그러곤 퍼즐 속 작은 그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관심을 보인다. 또 무척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다. 자석으로 된 놀이기구인 ‘맥포머스’로 자동차를 만들어주면 다른 아이들은 금세 손으로 팍 눌러 부수기 일쑤지만 은산이는 끝까지 잘 가지고 논다. 소꿉놀이 음료 병도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입으로 후 하고 불기만 해도 툭툭 쓰러지는데, 은산이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좋아한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신경 쓰여 원목으로 된 튼튼한 걸로 바꿔줄까 고민한다. 또 7개월 동생이 신기해 보이는 구멍마다 손가락을 넣어볼 만도 한데 조심스럽게 토닥거리며 살살 어루만져준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꽤 길다. 책은 주로 엄마나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혼자서 책을 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앉은 자리에서 수십 권의 책을 꼼짝도 않고 읽어내려간다. 그때는 아무리 밥 먹는 게 급해도, 자야 할 시간이어도 간섭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면 대략 30~40분은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가, 눈으로만 보기도 했다가 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 퍼즐도 10개가 넘는 종류들을 앉은 자리에서 다 완성될 때까지 집중한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다는 것에만 신경 썼다면 아이의 이런 보물 같은 장점들을 짚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아는 일은 참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돼서도 ‘내 꿈이 뭐지? 내가 잘하는 게 뭐지?’ 하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다. 내성적인 내게서 아나운서의 기질을 발견하고 글 쓰는 소질을 끄집어낸 내 남편처럼 말이다. 엄마로서 나의 역할이 아이의 장단점을 찾아내 알려주는 데 있다면, 아이는 자신의 기질, 성격을 정확히 파악함과 동시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것과 남을 귀히 여기는 것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스케줄로 녹초가 돼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안 자고 밖으로 나왔다고 아빠한테 혼날 것 같았는지 문틈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민다. 괜찮으니 이리 나오라고 하자 내게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은산이. 그러면서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예쁘다.” 이어서 힘들어 한숨을 푹 쉬는 내 모습을 놓치지 않고 내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한다. 그러곤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제 기분 좋아?” 난 이렇게 매일 아들에게서 세심한 배려로 치유받는다. profile 고민정은 …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 대학 선배이자 열한 살 연상인 시인 조기영과 결혼해 6년 만에 아들 은산이가 태어났고 지난 3월, 둘째 딸 은설이를 만났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가 있다. <■기획 / 김지윤 기자 ■글 / 고민정 ■사진 / 박재찬 ■의상 협찬 / 모이몰른(02-3215-0017)>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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