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76 건 검색)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범 양광준, 검찰 공소사실 낭독에 눈 ‘질끈’
- 2024. 12. 12 13:38사회
- ... 관계 인정” 내연관계가 들킬까 봐 함께 일하던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강원 화천 북한강에 유기한 군 장교 양광준(38)의 첫 재판이 12일 열렸다.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이날...
- 훼손북한강재판양광준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범은 ‘양광준’···경찰, 신상정보 공개
- 2024. 11. 13 10:02정치
- ...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30대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북한강 상류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현역 장교인 양광준(38)의 신상정보를 13일 공개했다. 강원경찰청은...
- 공개신상정보시신훼손강원경찰청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한 군 장교, ‘신상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행정소송도 제기
- 2024. 11. 08 15:33정치
- ...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30대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북한강 상류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영관급 현역 장교가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 신상정보가처분시신훼손춘천지법강원경찰청장교북한강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한 군 장교 신상 공개 결정···피의자 이의신청해 12일까지 공개 유예
- 2024. 11. 07 17:05사회
- ...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30대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북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영관급 현역 장교 A씨(38)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4월...
- 북한강신상공개시신훼손장교살인강원경찰청
스포츠경향(총 9 건 검색)
- “그릇에만 몇 억 써” 팽현숙♥최양락, 북한강뷰 대저택 공개 (청소광)
- 2024. 09. 11 10:20 연예
- MBC ‘청소광 브라이언’ 코미디언 팽현숙이 최양락과 거주하는 자택을 공개하며 “그릇에만 몇 억을 썼다”고 고백했다. 10일 방송된 MBC ‘청소광 브라이언’(이하 ‘청소광’)에는 팽현숙과 최양락 부부가 의뢰인으로 출연했다. 이날 브라이언과 뱀뱁은 부부의 집을 보며 “완전 디즈니랜드다”라고 감탄했다. 실제로 비춰진 부부의 집은 첨탑이 눈길을 끄는 깔끔한 외관을 띄고 있었다. MBC ‘청소광 브라이언’ 팽현숙과 최양락 집에 방문한 브라이언은 “청소광을 찍으러 왔는데 청소할 게 하나도 없다”며 깔끔한 거실을 보고 놀랐다. 원조 청소광으로 불리는 팽현숙은 브라이언에 “너무 보고 싶었다. 브라이언은 청소계 신화적인 존재로 거듭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추켜세웠고, 브라이언은 “오리지널 청소광을 만나서 배워가는 촬영으로 알고 있다”며 화답했다. MBC ‘청소광 브라이언’ 그러면서 이들은 부부의 집에 있는 청소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팽현숙은 “청소 부잣집이면 저 청소기가 있어야 한다”고 자부하며 청소 용품 사는 것에 관심을 드러냈다. 이어 팽 씨는 “그릇 사는 취미가 있다. 그릇만 몇 억어치를 샀다. 번 돈을 그리 다 쏟아부었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브라이언은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전원 주택에 대해 언급하며 “벌레는 어떻게 하냐”며 고민을 토로했다. 이에 팽현숙은 “거미, 지렁이는 친구다. 마당이 있지 않냐”고 했고, 최양락은 “쥐도 있고 뱀, 박쥐도 있다. 더 큰 건 고라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팽현숙은 주택 관리에 대해 “쉽지가 않다. 전기, 수도, 배관, 설비가 외곽은 비싸다. 4년 차부터는 돈이 막들어가니 여윳돈을 모아놔야 한다”고 당부했다.
- 스타벅스에서 즐기는 콘서트…‘더북한강R점’서 버스킹 콘서트 열린다
- 2023. 06. 02 09:56 생활
- 스타벅스의 플래그십 스토어 ‘더북한강R점’에서 버스킹 콘서트가 열린다. 스타벅스는 2일 오후 4시부터 스타벅스 ‘더북한강R점’ 야외 잔디 마당에서 밴드 몽니의 보컬 김신의의 버스킹 콘서트를 통해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타벅스 ‘더북한강R점’ 스타벅스 ‘더북한강R점’은 반려동물과 아웃도어 등 고객들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해 기존 매장과 차별화한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이에 맞는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갖춘 스타벅스의 ‘데스티네이션(목적지)’ 매장. 스타벅에 따르면 야외 옥상을 포함해 총 4층에 걸친 300여 석 규모로 주변 북한강 풍경과 어울리는 건축물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된 매장으로, 내부 공간 역시 간결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자연 경관을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처럼 느끼도록 북한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대형 창을 마련했다. 송미선 스타벅스 운영팀장은 “더북한강R점’은 고객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에 스타벅스의 ‘데스티네이션(목적지)’ 매장을 방문해 특별한 경험을 보내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최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특별한 매장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5월 오픈한 가평에 위치한 ‘리버사이드대성리DT점’은 산과 강의 전경을 매장 안에서 모두 즐길 수 있어 스타벅스의 대표적 목적지 매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MT 등을 위해 가평을 방문하는 젊은 고객층들에게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 [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 좋은 상상] 북한강~남한강 200㎞를 내달린 자랑스러운 아이들
- 2022. 05. 20 15:52 생활
-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0%의 국민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한국의 교육문제로 꼽으며, 인성교육·도덕교육과 같은 창의성이 있는 교육이 잘 실행되지 않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사회는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의 끼와 특성을 고려해 주어야 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목 외에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입시 위주의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에 우리 센터에서는 4~6학년 아이들이 꿈과 재능을 찾아 학업 의지를 향상할 수 있도록 10명을 대상으로 주 1회 자전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전거 활동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꾸준히 자전거를 타게 되면 새로운 뇌세포들이 더 많이 자라나고 뇌의 기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자전거 타기가 아동들의 정서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전거 활동은 소수 인원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탈 수 있기에,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감염 위험이 적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매주 자전거를 타며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실력만큼 아이들의 꿈도 기대도 커졌다. 그래서 지역사회 후원으로 ‘너와 나를 연결시켜 주는 두 바퀴 여행’이라는 부제로 북한강 자전거길~남한강 자전거길 총 200㎞를 종주하는 자전거 캠프를 다녀오기로 했다. 자전거 캠프에서 경험하게 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인성을 함양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특히 게임 등 사이버 세계에 대한 탐식으로 심신이 허약한 아이들의 건강을 되찾고, 함께하는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관계 맺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가 격상돼 코스를 변경하는 등 자전거 캠프를 출발하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준비하면서 마음 졸이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200㎞의 거리를 건강하게 완주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니 너무 대견했다. 힘들었지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친환경 저탄소 자전거 여행을 통해 나비효과처럼 아이들에게 미칠 긍정적 영향력을 생각해 봤다. 페달을 구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타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면서 흘리는 땀방울을 닦으며, 다음에는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린다는 걸 알았을까? 나비의 반복적인 날갯짓이 주변 공기의 움직임에 미세한 변화를 가져와 결국엔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매우 작은 조건이 날씨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이 자전거 캠프가 아이들의 삶에 나비효과처럼 큰 파장으로 다가가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 뜨거운 햇살을 친구삼아 200㎞의 거리를 오로지 두 바퀴에 의지해서 완주를 한 자랑스러운 아이들! 이따금 3박4일간 느낀 깊은 감동의 여운을 다시 꺼내어 기억해 보곤 한다.
- 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 좋은 상상지역아동센터
- ‘밝히는가’ 정가은, 북한강 뷰 호텔서 즐기는 ‘미리 바캉스’
- 2021. 07. 06 13:03 연예
- SBS FiL 제공정가은이 호캉스를 즐긴다. 최근 진행된 SBS FiL ‘당신의 일상을 밝히는가’(이하 밝히는가) 촬영에서 정가은은 ‘핫태그 하우스’ 메이트 김현영과 함께 영화배우 심혜진이 운영하고 있는 호텔&리조트를 방문했다. 정가은과 김현영은 가장 먼저 동남아 풍을 자랑하는 세 가지 콘셉트의 룸 투어에 나섰다. 기본에 충실한 디럭스 룸부터 테라스에서 북한강 뷰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 스위트 객실, 서양식 침대와 일본의 다다미 침대가 공존하고 있는 킹스 다다미 스튜디오까지 압도적 비주얼에 연거푸 돌고래 소리로 감탄을 했다. 두 사람은 룸 투어를 마치자 마자 마음에 드는 숙소를 선택한 후 1박을 위해 챙겨온 캐리어 공개에 나섰다. 정가은은 두피와 모발에 좋은 샴푸, 보디 세럼, 피부 열감을 낮추는 미스트 등 바디 용품을 비롯해 4개의 수영복, 휴양지 룩 등 한 짐을 챙겨와 김현영을 놀라게 했다. 이어 정가은과 김현영은 지하 암반수를 자랑하는 수영장에서 신나는 물놀이를 즐겼다. 마치 발리에 여행을 온 것 같은 모습으로 ‘밝히는가’ MC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정가은이 즐긴 호캉스는 6일(화) 오전 11시 SBS FiL과 라이프타임 ‘밝히는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밝히는가’는 SBS FiL과 라이프타임에서 월, 화, 수요일 오전 11시, SBS MTV에서 금, 토, 일요일 오전 11시, SBS Biz에서 토요일 오후 7시 55분 전파를 탄다.
- 생활 정보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 [인생도처유상수]작곡가 정원철씨-대성리 북한강이 선물한 ‘반야심경 음반’(2017. 10. 10 16:25)
- 2017. 10. 10 16:25 사회
- 삶은 여전히 힘겹고 예술은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지만 대성리의 북한강은 그의 설움을 씻어주었다. 그 곳 바람소리를 모아 11곡의 곡을 쓰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그의 음악은 대성리 북한강변의 선물이었다. 작곡가 정원철씨는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다. 음악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치유음악 음반을 냈다. ‘치유음악 반야심경’ 그리고 ‘사랑에게 말하다’라는 음반이다. 음반 제작에는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악보의 행간에는 우여곡절과 절박한 고난이 박혀 있다. 그는 10대 후반을 밤무대 밴드가수로 일했다. 고등학생으로 가발을 쓰고 대구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낮에는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를 가고 밤이면 무대에 섰다. 정씨는 “노래도 독학으로 배웠다. 밴드를 했는데 선배들 눈에 들어서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선다는 것이 우쭐했고 약간의 수입도 있어서 그 세계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록밴드였지만 나이트클럽에서 원하는 대로 팝송과 대중음악도 불러야 했다. 발성과 창법, 악보를 보는 법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익혔다. 그래도 그는 꽤나 인기 있는 가수였다고 한다. 독학으로 작곡을 배워 게임, 드라마, 영화 음악감독을 맡았다. 독학으로 음악 시작한 지 30년 만에 그는 군대를 가면서 밴드활동을 접었지만 평생 노래하며 살 줄 알았다. 제대를 하고서도 음악을 계속했다.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제법 인기를 얻고 있던 터라 따르던 팬과 눈이 맞았다. 그는 “결혼을 약속했는데 큰 장애가 나타났다. 처가에서 음악하는 사람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음악해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연히 음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사랑을 좇아 음악을 배신했다. 생계를 위해 사업을 시작했는데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동안 거침없이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무대 경험이 사업상 사람을 대하는 일에 힘이 됐다고 한다. 그는 “전기공사 업체를 운영했다. 당시 건축 붐도 있었고 영업도 잘 됐다. 무대에 섰던 것을 알아보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고 회상했다. 돈을 벌어 어느 사이 집도 사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면서 적당히 자리 잡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음악의 유혹은 소리 없이 다가와서 꼼짝할 수 없이 그를 사로잡았다. 큰 변화 없던 날들은 정씨에게 망상을 부추겼다. 그는 “우연히 어느 작곡가를 만나게 됐다. 대학가요제로 이름이 알려진 가수의 형이었다. 그로부터 곡을 주겠다는 제안을 들었다. 제대로 된 노래로 다시 세상에 나서고 싶은 꿈이 생겼다. 당시에는 거금인 2500만원을 선뜻 넘겨줬다”고 한다. 그 작곡가가 돈을 다 써버리는 데는 딱 일주일이 걸렸다. 돈은커녕 노래 한 곡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황당한 경험은 무모한 결정을 하게 만든다. 그는 한마디로 눈이 뒤집혔다. 돈을 받겠다고 사업도 팽개치고 서울로 왔다. 작곡가의 집 옆동네에 방을 얻고 매일 드나들며 채근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돈을 못 받으면 곡이라도 받으려 했는데 성과가 없었다. 그는 내가 그때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매일 그 집을 찾아가 앉아 있었지만 작곡하는 시늉만 할 뿐 성과는 없었다.” 정씨는 안개 속으로 난 길로 하염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돌아서 나왔다면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씨는 자신이 몰랐던 재능을 지닌 스스로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돈 떼먹은 작곡가의 방 한편에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기타를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코드를 잡으면서 즉흥곡을 연주했다. 그때 놀러왔던 모 방송국 음악감독의 말이 그를 불태웠다. 정씨는 “당시 음악감독이 내 곡을 듣더니 ‘너의 곡이 훨씬 더 좋다’고 평가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작곡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떠오르는 악상대로 악보에 옮기기만 하면 될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악상이 떠오르면 허밍으로 곡을 만들어 악보에 기록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철없는 낭만주의자 그때부터 정씨는 작곡에 빠져들었다. 막히는 것이 있으면 책을 읽거나 주변의 작곡가들에게 물었다. 곡을 만드는 세계는 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음표를 그리는 흉내라도 내게 됐을 때 주변 사람들도 그의 재능을 달리 평가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전기공사 일과는 완전히 담을 쌓았다. 다시 음악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듣고 배웠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지만 음악이 없는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단란했던 가족과의 인연도 멀어져갔다. 음악의 유령들이 그를 이끌어 산 사람들의 세상과는 다른 곳에 내려놓았다. 정원철씨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곡을 쓰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었다. 작곡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고 미디로 연주곡을 들으며 곡을 써갔다. 음악이 필요한 분야가 있으면 그의 곡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게임과 웹드라마에 정씨의 음악이 실렸다. 소소한 수확이 있었다. 단편영화와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정원철씨는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영상과 나의 음악이 만나 영화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경험도 했다. 특히 고 구성주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영화 (2012)는 영상만큼 음악의 힘이 크게 평가 받았다. 해외에서도 음악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예술만으로 먹고살기엔 그의 경력도 배경도 음악도 힘이 없었다. 그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작곡은 그에게 먹을거리를 주지 못했다. 가족에겐 능력 없는 가장이 돼버렸다. 옛 친구들에게 그는 철없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졌다. 도시는 그를 밀어냈다. “서울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각종 고지서와 싸우며 살 수 있는 경제능력도 없고 열심히 일한다고 먹고 살 만한 음악작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일은 해도 소득이 없었다. 혼자만의 벽 속에 갇혀 길을 잃고 말았다.” 정씨에게 한없이 가혹한 시절이 닥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숙제였다. 그러다 경춘선을 타고 우연히 내린 대성리 북한강가에 자리를 잡은 것이 13년 전의 일이다. 강과 가까운 산자락에 깃들어 살자 친구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세상에 지친 사람들, 그와 같이 예술의 고갯길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정씨는 “서울에 살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1년에 닭만 100여 마리를 잡는다. 그러다보니 닭백숙의 달인이 됐다. 산에서 옻나무를 가져다가 황칠나무와 함께 끓이면 일품이다. 나를 만나기보다 닭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더 많다”며 웃는다. 삶은 여전히 힘겹고 예술은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지만 대성리의 북한강은 그의 설움을 씻어주었다.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마음속 울분이 많이 나았다. 내가 가족에게 못한 일이 떠올랐다.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 내가 세상에 돌려줘야 할 음악을 더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이 오지 않는 날이면 강변 길을 몇 시간이고 걸어다녔다.” 주머니 가득 땅콩을 채우고 소주 한 병을 들고 나가 강을 걷다가 한 잔을 마시고 또 걸었다고 한다. 길섶에 술병을 두고 다음날 지나쳐가다 또 한 잔을 마시며 걸었다. 그때 그를 사로잡았던 악상들이 있었다. 정씨는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또 남에게 상처를 준다. 겉은 멀쩡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흐르는 강물은 나를 위로했다. 강과 바람이 들려준 노래를 마음속에 담고 기억했다. 그 음악이 사람들을 위안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바람 소리를 노래하고 강의 출렁임을 기록했다. 한 소절을 콧노래로 흉내 내고 집에 오면 악보에 담았다. 그렇게 바람소리를 모아 11곡의 곡을 쓰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그의 음악은 대성리 북한강변의 선물이었다. 8년의 작업기간이 걸린 치유음악 음반 반야심경. 청도 운문사 비구니들의 염불소리 정원철씨의 고향은 경북 청도. 운문사 자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가며 운문사 비구니들의 염불소리를 듣고 자랐다. 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는 한가할 때면 염불을 흉내 내곤 했다. 정씨는 “아버지가 녹음기로 독경소리를 틀어놓고 따라하셨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중에서 반야심경이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의식 한편에서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가 낸 음반 속 11곡의 곡 중에 6곡이 불교경전 반야심경을 주제로 삼은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그는 자신의 곡에 대해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지혜의 세계를 그려내고,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화해와 평화를 노래한다고 했다. 월츠도 있고 가야금과 첼로 연주도 들어 있다. 음반의 제목은 반야심경이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것은 갈등의 화합과 치유이다. 반야의 지혜란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 또한 영원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의 경전을 넘어 집착 없이 자유로운 지혜의 세계를 그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음악을 만들고 음반작업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음반을 듣고 있으면 고요해지고 평안해진다. 특히 반야심경의 만트라 부분은 레 미 파 3개의 음계만을 썼다. 강물과 바람 소리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씻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세파 속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듣기를 권했다. 정씨는 “음반의 두 번째 파트 5곡은 ‘사랑에게 말하다’라는 주제이다. 지혜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지혜가 마음이라면 사랑은 몸이다. 머리로 지혜를 깨달으면 몸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은 헛될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음반에 사랑과 지혜를 바탕으로 세상 모든 상처를 씻어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했다. 그런 거창한 뜻을 담지 않아도, 이 음반은 그가 상처를 남긴 가족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북한강을 퍼올려 곡을 쓰고 대성리의 바람 소리를 담아서 노래를 만든 뜻은 음악이 자신의 고통을 위로하고 세상의 고난을 위안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험한 세상에 음악을 만들면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냥 산다”고 했다. 그냥 살 수 있다면 그대로 삶의 고수이다. 독학으로 들어선 작곡의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의 음악이 그에게 명성과 돈을 주지 않더라도, 갈등의 세상에 치유의 노래를 들려주리라는 그의 바람은 분명하다. 귀 기울여 노래를 들을 누군가에게 그의 음악은 가장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 인생도처유상수
- 북한강에서 청평사까지(2004. 05. 13)
- 2004. 05. 13 스포츠
- 청춘은 아름답다. 실제로는 덧없는 격정일 뿐이었지만 추억 속의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은 봄이다. 그 또한 속절없이 흘러가고야 말겠지만 아쉬움으로 청춘은 봄이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탄다. 물안개처럼 아련한 추억을 거슬러 마침내 수향(水鄕)에 이르면, 꿈결처럼 젊음이 되살아 올랐다가 문득, 봄날처럼 다시 지고야 만다. 아무래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인가. 봄, 청춘의 기억 방황하는 젊음은 대성리나 남이섬, 강촌쯤에서 잠시 청춘 본연의 모습을 되찾곤 했다. 70, 80년대 식으로 표현하자면 서클활동의 백미는 MT('서클' 대신 '동아리', 'MT' 대신 '모꼬지'라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이 훨씬 갸륵하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삼삼오오 청량리역으로 모여든 젊음들은 조금은 어색하고 멋쩍게 경춘선 열차에 올라탔다. 행색이라고 해봐야 야전점퍼에 워커발, 한쪽 손엔 알코올 버너와 코펠 따위가 들어 있는 덜렁거리는 캠핑백, 다른 한 손엔 잘 해야 야외용 컨버터블. 발산해야 할 젊음도 그리 많지 않건만 설렘 속에 기차는 덜컹거리며 떠나갔고, 이윽고 작은 시골역 한켠에 우리는 부려졌다. 역사 밖으로 나서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미루나무 이파리들, 그리고 막막함. 거기 서성이던 젊음의 얼굴은 누구였던가. 그때 젊음의 노트에 적은 낙서들은 시였던가, 노래였던가. 북한강의 자욱한 아침으로부터 출발하여 남이섬을 돌아 다시 찾아간 강촌은 여전했다. 비록 아찔함을 느끼며 건너던 출렁다리는 걷히고 강마을의 정경 역시 많이 바뀌었지만, 그렇게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빛바랜 흑백 사진 위에 채색을 하고, 장식 몇 개를 덧그리면 추억은 온전히 되돌아올 것만 같았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젊음은 이제 압구정 로데오나 오렌지들 속에서나 찾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웬걸, 강촌의 그 많은 젊은이들은 아직도 앳되고 풋풋하고 순수해 보였다. 찢어진 청바지, 노랑머리와 배꼽티에 피어싱조차 조금도 거북살스럽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래, 젊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무리 가리고 막으려 해도 기어이 솟구쳐 오르고야 마는 것이 젊음이다. 지나간 시절의 왜곡만으로 재단하기에는 턱없이 벅찬 것이 젊음이었다. 한껏 싱그러운 강물을 타고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는 은어들처럼, 젊은것들은 자꾸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내 느슨한 동공 속으로 날아들어 왔다. TIP 강촌에서 구곡폭포 쪽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그 유명한 '검봉산 칡국수집'(033-261-2986)이 있다. 칡국수는 춘천식 막국수의 일종인데, 메밀가루 대신 갈근전분을 사용해 한결 쫄깃쫄깃하고 특유의 향미를 풍긴다. 막국수와 함께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은 닭갈비다. 4-19가 일어나던 해, 중앙로의 한 돼지갈빗집에서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렵자 닭고기를 갈비처럼 발라 내놓으면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막국수라지만 결코 막 만든 것은 아니며, 닭갈비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계륵'은 없다. 다만 이름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미친 사랑의 노래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만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침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洞名)을 실레라 부른다. ...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데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 -김유정 [오월의 산골작이] 강촌역에서 다시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다음 역이 신남역이다. 고맙게도 최근 춘천시는 신남역의 이름을 고쳐 부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남역이 있는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작가 김유정을 기려, 역명을 '김유정역'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경춘 복선전철사업과 함께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바뀔 때,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명소 하나를 얻을 것이다. 김유정이 누구인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이 땅에서 [동백꽃] [봄봄] 등 주옥 같은 단편들을 남기고 요절한 작가. 그래서 누구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무지개처럼 사라진 작가라 했다. 그가 한국문학사에 남긴 성과도 성과지만, 그의 쓸쓸하고 짧았던 생애는 우리에게 더 긴 울림으로 다가온다. 1908년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을 더듬어 한때 눌언교정소에서 교정치료를 받기도 했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천석꾼이던 가세도 기울었고, 끊임없는 병마는 줄기차게 그를 따라다녔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그의 심약한 마음속에 들어앉은 광기 어린 사랑에의 갈구였다. 우연히 거리에서 흘끗 스쳐본 당대의 명창(名唱)이며 명기(名妓)였던 박록주에게 홀려 2년이 넘게 광적인 구애를 바쳤으나, 네 살 연상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일방적인 사랑은 또 한 번의 타격을 받는다. 이번에는 시인 박용철의 동생에게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써보지만, 답장이 일절 없었을 뿐 아니라, 후에 그도 알고 지내던 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함으로써 그를 결정적으로 절망케 한다. 실연에 폐병과 치질이라는 병고까지 겹친 그는 고향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을 세우고 야학과 계몽활동을 벌이는 한편 집필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심신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고,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짧지만 고단했던 삶을 마감한다. 낙향한 유정이 만무방-따라지-들병이들과 어울려 상처를 달래던 산골 마을은 새로 들어선 김유정 문학촌의 헛된 시설물들을 빼놓고는 여전히 고즈넉했다. 금병산 기슭을 따라 '동백꽃 길' '금 따는 콩밭 길' '산골 나그네 길' '봄봄 길'들이 이어졌지만 점순이와 함께 쓰러진 '노란 동백꽃'(동백꽃과는 다른 올동백으로 실제로는 생강나무를 일컫는다) 숲에 꽃들은 이미 져버렸고, '어린 신부'(봄봄)는 아직까지도 채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 '몹쓸 물소리'(산골 나그네)조차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TIP 김유정 문학의 현장을 따라 금병산을 오르는 길목에 산국농장(033-262-9946, www.sangook .com)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금병산 자락을 지키는 자칭 산지기 김희목씨가 운영하는 과실농원이다. 김희목씨는 그 내력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김유정의 화신으로 불린다. 오직 농장 가꾸기에만 매달려온 우직함에다, 유정의 자취를 찾아 들어온 산골 나그네들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감싸주는 인정을 지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생활의 정취를 담은 소박한 시집까지 펴냈으며, 복사꽃이 한창일 때는 작은 축제도 벌인다고 하니, 별유천지에 사는 귀거래사가 마냥 부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청평사, 상사뱀의 사랑 길은 소양호 뱃길을 따라 청평사로 이어진다. 공지천의 도하주교와 중도의 아베크 코스로도 모자라 소양호 유람선 뱃전까지 젊음은 여전히 쌍쌍이다. 그 젊음들로 해서 청평사는 아직껏 시들지 않은 사랑의 전설 하나를 간직한다. 배에서 내려 산길을 오르면 시원한 물살 아홉 소리로 갈라지는 구성폭포 위에 골짜기 전망을 바라보며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일명 공주탑. 당나라 평양공주를 사모하는 청년이 있었다. 신분의 벽을 넘은 위험한 상사는 죽음으로 끝을 맺고, 죽음보다 지독한 연모는 뱀으로 변해 공주의 몸에 달라붙는다. 떨어지지 않는 사랑의 집착 때문에 공주는 여위어갔고, 시름에 겨운 왕은 멀리 신라의 청평사까지 불공을 드리러 딸을 보낸다. 상사뱀과 함께 청평사에 오르던 공주는 잠시 개울물에 목을 축이는데, 그때 몸을 친친 감고 있던 뱀이 스르르 풀어지더니 스스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거울처럼 맑은 못물에 비친 공주의 그림자를 진짜 공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물에 빠져 죽은 뱀의 원혼을 달래려 왕은 탑을 세워 공양을 올리게 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헛된 이미지조차도 놓칠 수 없는 집착과 열망 때문에 사랑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그러나 불빛 강해질수록 심지는 짧아져 가니, 사랑 깊을수록 젊음은 봄날처럼 빠르게 소진의 길을 간다. 상사뱀의 애잔한 전설처럼 피어난 철쭉꽃을 바라보며 산길을 더 오르면, 아담한 부도 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여기서부터 오롯이 은둔선인 진락공 이자헌의 산중정원이다. 고려 시대 세력가의 후손이었던 이자헌은 벼슬을 버리고 선대가 지은 오봉산 보현원에 들어와 산 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절 이름을 문수원으로 바꾸면서 청평산 일대를 고려 선찰의 모범정원으로 꾸며나간다. 광활했던 문수원 정원은 이제 그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이자헌의 부도 오른쪽에 위치한 영지에서 그 잔영을 찾아볼 수 있다. 영지에 거꾸로 비친 오봉산의 봉우리가 바로 보일 즈음 일주문 격인 두 그루의 훌쩍한 소나무가 나오고, 회전문을 들어서면서 비로소 청평사 경내가 펼쳐진다. 청평사에서 그나마 온전하게 남은 옛 건물인 회전문에 서면, 중생의 윤회전생은 산바람을 따라 그렇게 돌고 돌아가니 봄날-봄내의 꿈결 같은 회상의 여로를 이쯤 끝낸들 그리 아쉬워 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글-사진 유성문〈여행작가-편집회사 투레 대표〉 rotack@lycos.co.kr
- 북한강변 늦피서지(2003. 08. 28)
- 2003. 08. 28 스포츠
- 8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간혹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산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댄다. 그래도 아직은 8월 땡볕이 강렬하게 들판을 내려쬐는 시기. 피서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북한강변이 있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서편으로 달린 다음 남이섬까지의 강변드라이브를 즐기고 신청평대교를 건너 양평 땅의 계곡에서 하루 쉬다 오는 나들이를 소개한다. 팔당대교를 건너 양수리 방면으로 달리다가 잠시 조안면 능내리에 들러 다산유적지를 살펴본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소와 생가를 접할 수 있다. 문화관에서는 다산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며 다산기념관에는 다산 선생의 영정 및 저서([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포] 등)와 산수화 등을 전시. 또한 다산초당, 천일각 등의 유배지를 섬세한 모형으로 만들어 현장감을 살렸다. 인근에는 다산갤러리, 능내웨딩촬영지 같은 독특한 코스가 숨어 있으므로 한 번쯤 들러볼 일이다. 이어서 45번 국도를 타고 대성리 방면으로 올라간다. 그 중간에 수종사 입구를 지나면 서울종합촬영소 입구를 만난다. 무료로 영화도 감상하고 영화세트장 구경은 물론 운이 좋다면 영화 촬영 현장까지 볼 수 있는 곳.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에 위치. 시네극장에서는 매월 한국 영화 1편을 선정, 관람객에게 무료로 상영한다. 영상지원관은 영화문화관-영상원리체험관-법정세트-소품실-의상실-식당-기념품점-카페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야외에는 판문점 세트, 중소도시세트, 영화 [취화선]을 촬영했던 민속마을 세트, 전통한옥세트 '운당' 등이 있다. (031)579-0600, 0605. 계속 북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북으로 향하면 대성리관광지에 닿는다. 8만여 평 규모의 유원지 내에는 피크닉장-산책로-야영장-숲길 등이 조성되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수영은 금지된다는 것이 아쉽지만 노젓는 배-수상스키-모터보트 등 수상레포츠는 가능하다. 주차장 250대 수용. (031)580-2783. 대성리에서 46번 국도를 따라 가평으로 오르다가 신청평대교를 건너지 말고 청평댐 입구에서 호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멋진 호반 드라이브 길이 기다린다. 이 길은 호명리계곡 입구를 지나 남이섬 입구 선착장까지 이어진다. 그 중간 들러볼 곳이 있다. 가평군 외서면 고성리의 청평스포랜드와 바로 그 곁에 자리한 오페라하우스펜션이다. 5동의 건물이 모여 있어 펜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각 건물에는 2~4개의 객실이 들어 차 있다. 패밀리룸이 2개, 그룹룸이 9개, 커플룸이 취사 가능한 방 2개, 취사 안 되는 방 6개 등이다. 바비큐장-족구장-캠프파이어장 등의 시설을 보유. 마당 앞이 강변이다. 인터넷 예약 w w w .a l etsgo.com. (031)585-8936. 일정이 촉박하다면 남이섬까지 가지 말고 신청평대교를 건넌 뒤 북한강 동편 길(363번 지방도)을 드라이브한다. 가평군 외서면 삼회리에 이르면 가일미술관과 눈맞춤을 하게 된다. 한때 화가를 꿈꾸었던 건축가 강건국씨가 20여 년간 취미삼아 수집했던 작품을 여러 사람과 함께 보고 즐기자는 마음에서 지은 미술관이다. 2003년 4월 개관. A동 미술관 건물에서는 기획전 및 상설전이 열리고 B동은 소품이나 특별전시를 위한 갤러리, C동은 공연장을 겸한 카페, D동은 미술관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이자 레스토랑이다. 입장료는 일반 2,000원, 학생(8~19세) 1,500원. (031)584-4700. 가평과 양평의 경계를 지나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 이르면 명달리계곡으로 깊게 들어 가본다. 때묻지 않은 계곡 안에는 밸리펜션이라는 숙소가 자리한다. 서종면 명달리, 지금은 폐교된 명달분교 인근에 밸리펜션이 자리잡고 있다. 올 봄 문을 열었으며 두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햇님방과 한 가족이 이용하기에 적당한 달님방, 별님방 등 총 3개의 객실을 보유. 너른 마당-잔디밭-정자-원두막-연못 등이 전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031)773-6364. 중미산이나 통방산 등산객에게는 잘 알려진 집. 펜션 바로 옆으로는 명달리계곡 물이 흘러간다. 명달리계곡 입구에서는 오물수거수수료를 받는다. 북한강을 중심에 두고 서편길과 동편길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이 마무리에 이를 무렵이면 양수리 연꽃군락지와 조우한다.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북한강변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군락지가 있다. 식물원처럼 입장료를 받는 곳도 아니므로 주차공간이 보이면 차를 멈추고 연꽃 감상에 나서본다. 붉은색-분홍색-흰색 등 여러 빛깔로 피는 연꽃은 꽃송이가 커서 매우 탐스럽다. 더러운 물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 중생을 구제하고자 늘 미소를 띠는 이치를 여행자는 그 물가에서 이심전심으로 배운다. 한편 북한강은 수상레저의 천국이므로 요즘 뜨기 시작한 레포츠인 웨이크보드 등 물에서 즐길 수 있는 레포츠 체험으로 짧은 휴가를 마무리해도 좋다.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수상스키-모터보트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으로 북한강 강물은 늘 넘실거린다. 북한강레저타운((031)584-5700)의 경우 당일짜리와 1박2일짜리 수상레포츠 캠프를 운영하면서 초보자에게 물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가르치고 있다. 모터보트로 청평호반을 한 번 시원하게 가른 다음 수상스키를 가르쳐주고 워터슬레이를 태워주는 당일 프로그램 비용은 점심식사 포함 6만5천원이다. 그밖의 수상레포츠를 즐기기 위한 비용을 보면 바나나보트 1인당 1만원, 땅콩보트 1인당 1만5천원 등이다. 여행메모 (지역번호 031) 가평군청 582-2684, 남양주시청 590-2114, 양평군청 773-5101, 가평시외버스터미널 582-2308, 청평시외버스터미널 584-0239, 양평시외버스정류장 772-2341. 북한강변 드라이브 중에 들를 만한 맛집으로는 이덕분추어탕-진짜네집매운탕 등이 있다. 이덕분추어탕은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청평댐 직전 강가에 자리한 식당이다. 주방을 책임진 이덕분씨는 경북 구미시 선산 출신으로 어머니로부터 손맛을 배웠다. 추어탕 값은 대 3만5천원, 중 2만5천원, 소 1만5천원. 고객의 취향에 따라 미꾸라지를 갈아주기도 하고 통으로 요리하기도 한다. 팽이버섯-느타리버섯-토란대-대파-깻잎 등이 들어간다. 좌석 수는 40석, 신용카드 사용 가능, 영업시간 오전 8시 30분~오후 10시. 584-6513. 북한강변과 청평호반에는 민물고기 매운탕집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가평읍 복장리의 진짜네집 매운탕은 가평 원주민도 알아주는 맛집이다. 매운탕 재료는 바로 앞 북한강에서 직업적 어부가 잡은 것만 이용하고 냉동한 것이나 죽은 물고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쓴다는 것도 맛내기의 비결 가운데 하나. 메기매운탕은 2만5천원, 쏘가리매운탕은 5만~8만원, 빠가사리매운탕은 5만~6만원. 신용카드 사용 가능. 582-3588. 글-사진/유연태〈여행작가〉 kotou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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