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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직지사 불화, 국보 됐다···일본 환수 고려 나전상자는 보물로
해인사·직지사 불화, 국보 됐다···일본 환수 고려 나전상자는 보물로
2024. 12. 26 16:40문화
.... 국가유산청 제공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불화인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각각 보물에서 국보로...
홍준표 “탄핵 근본 원인은 윤·한 불화…표결 무산 참 다행”
홍준표 “탄핵 근본 원인은 윤·한 불화…표결 무산 참 다행”
2024. 12. 08 14:32정치
... 다행”이라고 8일 밝혔다. 홍 시장은 윤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것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불화 때문이라며 한 대표에게 “더 이상 사욕을 앞세우지 말라”고 했다. 홍 시장은 이날...
싱가포르 국부 아들 간 불화…차남 영국으로 망명
싱가포르 국부 아들 간 불화…차남 영국으로 망명
2024. 10. 23 13:22국제
... 총리의 아들 리셴양. 로이터연합뉴스 싱가포르의 ‘국부’로 꼽히는 리콴유 초대 총리의 아들 간 불화가 깊어지며 차남이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리콴유 전 총리의...
월급 숨긴 남편, 과소비 아내…불화 원인은?
2024. 10. 20 20:28문화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 아내는 남편이 월급을 공개하지 않아 답답하다. 남편은 아내가 생활비를 더 요구할까 봐 걱정이다. 21일 방영되는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에는 금전 문제로...

스포츠경향(총 357 건 검색)

‘4세대 걸그룹 비주얼’ 윤은혜, 베이비복스 무대 뒤 셀카 공개···불화설도 종식
‘4세대 걸그룹 비주얼’ 윤은혜, 베이비복스 무대 뒤 셀카 공개···불화설도 종식
2024. 12. 23 16:05 연예
14년 만에 완전체 무대를 선보인 베이비복스 멤버들. 인스타그램 캡처 윤은혜가 영광스러운 베이비복스 무대를 회상했다. 윤은혜는 23일 인스타그램에 ‘KBS 가요대축제’에서 꾸렸던 베이비복스 무대가 유튜브 인기 급상승 순위 1위에 오른 순간을 캡처하며 “대박”이라고 표했다. 이와 함께 “인급동 1위, 신났다. 난리 났다”고 덧붙였다. 윤은혜는 베이비복스 멤버들과 함께 찍은 무대 뒤 셀카 사진도 첨부했다. 멤버들 전원이 베이비복스 응원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각 멤버들은 전성기 부럽지 않은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윤은혜를 포함한 베이비복스는 지난 20일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KBS 가요대축제’ 무대에 완전체 무대를 꾸려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완전체 무대를 선보인 것은 무려 14년 만의 일이다.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겟 업’으로 시작해 ‘우연’ 무대를 선보였다. 또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와 함께 ‘길러’ 퍼포먼스를 펼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베이비복스는 1997년 1집 ‘머리하는 날’로 데뷔해 한 세대를 풍미했던 5인조 걸그룹이다. 윤은혜는 1999년 3집 때 합류했다. 특히 활동 중 윤은혜가 멤버 중 불화설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윤은혜는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2두 동안 밤새면서 지겹도록 봤다. 내일이 되면 또 보고 싶을 것 같다”며 “이런 기회를 주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완전체 무대와 함께 멤버들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내며 불화설을 종식시킨 것이다.
베이비복스, 불화설 날린 14년 만의 완전체 무대 ‘성공적’ (KBS 가요대축제)
베이비복스, 불화설 날린 14년 만의 완전체 무대 ‘성공적’ (KBS 가요대축제)
2024. 12. 21 10:05 연예
KBS2 ‘가요대제전’ 캡처 그룹 베이비복스가 14년 만에 완전체로 뭉쳤다. 20일 오후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2024 KBS 가요대축제 글로벌 페스티벌’(이하 ‘가요대축제‘)에는 전 세대 음악팬들을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날 베이비복스가 14년 면에 완전체로 무대에 서 눈길을 끌었다. 히트곡인 ‘Get Up’ 으로 포문을 열며 큰 함성을 받은 베이비복스는 ‘우연’ ‘Killer’등을 이어가며 여전히 섹시한 몸매와 걸크러시한 매력으로 팬들을 기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은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와 함께 무대를 꾸미며 1세대 대표 걸크러시 걸그룹과 5세대 대표 걸크러시 걸그룹의 멋진 컬래버레이션을 완성했다. 베이비복스는 모두 40대가 됐지만 키스오브라이프 옆에서도 기죽지 않는 날렵한 춤선과 전매특허인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로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이날 이들은 완벽한 완전체 무대로 과거 불화설을 일축했다. 이들은 활동 당시는 물론 최근까지 불화설에 시달렸다. 베이비복스는 지난 봄 E채널·채널S 예능 ‘놀던언니2’와 지난 여름 SBS 예능 ‘돌싱포맨’에 출연했으나, 다른 스케줄 때문에 출연하지 못한 윤은혜를 두고 ‘왕따설’이 돌았다. 일정 때문이라고 해명해도 소용 없었다. KBS 가요대축제 ‘글로벌 페스티벌’ 베이비복스는 무대를 마친 후 14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선 소감을 전했다. 윤은혜는 “2주 동안 밤 새우면서 지겹도록 (멤버들을) 봤다”며 “근데 내일 되면 또 보고 싶고 안 보면 어색할 것 같다. 이런 기회를 줘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간미연 역시 “‘2024 가요대축제’ 덕분에 멤버들과 같이 울고 웃고 또 춤추면서 좋은 시간 보냈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은진은 멤버들에게 “무대 준비한다고 너무 고생많았다. 오랜만에 모여서 쉽지 않았을텐데 수고했고 사랑한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한편 이날 ’가요대축제‘는 가수 지코, 아이브 장원영, 배우 김영대의 진행으로 펼쳐졌다. NCT 127, NCT DREAM, 엔하이픈, 에스파, (여자)아이들, 아이브, 보이넥스트도어, 이찬원, 장민호, 영탁, 이영지, 피원하모니, 원어스, 케플러, 크래비티, 키스오브라이프, 트리플에스, 유니스, 지누션, 바다, 베이비복스, 구준엽 등이 출연해 신구 가수들이 화합한 다채로운 무대를 꾸몄다.
[전문] ‘최진실 딸’ 최준희, 라이징스타상 수상 소감에 ‘불화설’ 외조모 없어
[전문] ‘최진실 딸’ 최준희, 라이징스타상 수상 소감에 ‘불화설’ 외조모 없어
2024. 12. 11 02:09 연예
최준희 SNS 배우 고 최진실 딸 최준희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 케이호텔에서 개최된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한 소감을 전했다. 최준희는 SNS에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수상 소감도 전했지만 ‘불화설’이 있는 외할머니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준희은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어 정말 영광이다. 아직 배울 것도 많고 나아갈 길도 많지만 나의 진심과 열정을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 뿐”이라며 “앞으로도 나만의 색깔로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모든 팬 분들에게 이 상의 영광을 돌린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믿으며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전했다. 최준희는 또 “수상을 통해 가장 먼저 감사드리고 싶은 분은 나를 엄마처럼 키워주신 이모할머니다. 누구보다 깊은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주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며 “힘들 때마다 내 곁에서 한결같이 사랑해주신 이모할머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자 삶의 이유”라고 말했다. 최준희 SNS 이어서 “항상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남자친구, 말없이 뒤에서 응원해주는 친오빠, 그리고 끝까지 엄마와의 의리를 지켜주시며 저를 사랑해주신 진경이모, 성아이모, 정화이모까지 이 모든 분들이 저를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분들의 사랑과 믿음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최준희 SNS 최준희는 SNS에서 여러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했지만 외할머니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최준희 SNS 다음은 최준희 글 전문 이렇게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아직 배울 것도 많고 나아갈 길도 멀지만, 저의 진심과 열정을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로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를 사랑으로 키운 모든 팬분들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믿으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번 수상을 통해 가장 먼저 감사드리고 싶은 분은 저를 엄마처럼 키워주신 이모할머니입니다 누구보다 깊은 사랑과 헌신으로 저를 지켜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제 곁에서 한결같이 사랑해주신 이모할머니는 제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자 삶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항상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남자친구, 말없이 뒤에서 응원해주는 친오빠, 그리고 끝까지 엄마와의 의리를 지켜주시며 저를 사랑해주신 진경이모, 성아이모, 정화이모까지, 이 모든 분들이 저를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분들의 사랑과 믿음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 2024년, 제게는 도전과 성장이 공존했던 해였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빛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참으로 특별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과 응원은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제 길을 밝혀주었고, 흔들릴 때마다 제 마음을 다잡아주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기를, 그리고 그 빛들이 모여 더 큰 세상을 밝히기를 바라며 올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해요 모두
김준호♥김지민 불화설? 김준호, 다른 여자 입술 맞혀 ‘날벼락’ (독박투어)
김준호♥김지민 불화설? 김준호, 다른 여자 입술 맞혀 ‘날벼락’ (독박투어)
2024. 12. 06 09:49 연예
‘독박투어3’, ‘독박즈’가 역대급 후폭풍을 몰고 올 ‘와이프 입술 사진 맞히기’ 자폭 게임(?)에 돌입한다. 7(토) 저녁 8시 20분 방송하는 ‘니돈내산 독박투어3’(채널S, SK브로드밴드, K·star, AXN 공동 제작) 16회에서는 베트남 호찌민으로 떠난 김대희x김준호x장동민x유세윤x홍인규가 ‘최종 독박자’ 벌칙인 ‘사막에 묻어버리기’를 피하기 위해, ‘와이프 입술 사진 맞히기’로 독박 승부를 겨루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날 ‘독박즈’는 무이네 사막 투어를 마친 뒤, 인근 해산물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이후, 식사비를 걸고 독박 게임을 하기로 한다. 여러 아이디어를 내던 중 김준호는 “사실 지민이가 베트남에 오기 전에 우리 ‘독박즈’ 아내들에게 부탁해서 입술 사진을 다 받아 놨다. 다섯 아내들의 입술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사실상 이 게임이 사막에 묻히냐, 마냐를 정할 것 같다”고 팽팽한 ‘독박’ 대결 상황을 알린다. 김대희는 모두가 위기인 접전 상황에 좌절한 뒤, “우리 와이프는 평소에 화장을 안 해서 알아맞히기가 더 어렵다”라고 하소연해 짠내웃음을 더한다. 잠시 후, ‘독박즈’는 김지민이 보내온 다섯 와이프들의 입술 사진들을 확인한다. 하지만 홍인규는 아무리 봐도 자신이 없는지, “우리 와이프 입술 사진 못 맞히면 나 진짜로 혼난다”고 괴로워하면서 돌연 자신의 휴대전화 속 와이프 사진에다가 뽀뽀를 투척한다. 반면 김준호는 자신 있게 김지민의 입술 사진을 고른 뒤, 다른 아내들의 입술 사진에 대해서도 확신에 찬 훈수를 둔다. 이에 김대희는 “넌 다른 사람 아내와 얘기할 때 입술만 보냐?”라며 혀를 차는데, 김준호는 정답 발표 후 대충격에 빠진다. 김지민의 입술 사진을 알아맞히지 못한 데다, 다른 아내의 입술 사진은 제대로 맞혀 현장을 초토화시키는 것. 결국 김지민은 김준호의 오답을 확인한 뒤, “이제 뽀뽀는 없을 줄 알아!”라고 정색해 김준호를 벌벌 떨게 만든다. 김준호가 쏘아 올린 ‘와이프 입술 맞히기’ 파문과 베트남 호찌민 편 ‘최다 독박자’의 정체는 7일(토) 저녁 8시 20분 방송하는 ‘니돈내산 독박투어3’ 16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박투어3’는 채널S, K·star, AXN에서 동시에 방송된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이기환의 Hi-story](69)불화 조각내 훔친 범인은…미군 사진에 힌트 있었다(2023. 02. 03 11:25)
2023. 02. 03 11:25 문화/과학
1954년 5~6월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가 찍은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왼쪽)과 같은해 10~11월 미 해병 중위인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찍은 극락보전 내부 모습. 팬처의 사진에는 분명히 보이는 아미타여래삼존불 뒤의 ‘영산회상도’가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흥사를 비롯한 설악산과 속초지역은 미 군정 관할 아래 1954년 11월까지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이곳을 관할한 미군 병사가 뜯어간 것이 분명하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2006년 3월이었습니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 아시아미술실에 부임한 김현정 큐레이터는 소장품 중 한국 유물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중 눈에 밟힌 불화가 한 점 있었습니다. ‘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라 기록된 불화였습니다.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는 없고, 흑백폴라로이드 사진만 달랑 목록에 올라 있는 이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부설 수장고까지 샅샅이 뒤지던 중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던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이역만리 미술관 수장고에 놓여 있던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조, 정성왕후, 사도세자를 기린 불화 ‘영산회상도’는 영산, 즉 고대 인도의 영축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긴급 보존처리 후 불화를 살펴보니 끔찍했습니다. 예리한 칼로 그어진 채 무려 6개로 조각나 있었습니다. 김현정 큐레이터는 우선 ‘영산회상도’에 적힌 화기(畵記·그림의 내력 등을 쓴 기록)의 감정을 연구자(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의미심장한 내용이 읽혔습니다. ‘건륭 20년(1755·영조 31)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산해회(靈山海會)를 마치고 봉안한다’는 것과 ‘주상전하 이씨(영조·재위 1724~1776)와 왕비전하 서씨(정성왕후·1692~1757), 세자저하 이씨(사도세자·1735~1762)의 만수·천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하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불화가 왜 산산조각이 난 채, 그것도 미국의 미술관에까지 흘러 들어갔을까요. LA카운티미술관이 이 ‘영산회상도’를 소장하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답니다. 뉴햄프셔 홉킨튼 지역에서 살던 매리 S. 프렌치라는 인물이 대리인을 통해 “아들의 집 다락방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 같은 그림을 발견했다”며 구입을 의뢰했는데요. 미술관 측은 이때 이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 6점(1798년 작)까지 사들였습니다. 미술관 측은 두 유물의 ‘화기’ 등을 통해 원래 소장처가 ‘설악산 신흥사’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흥사 측에 ‘원소장처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두 번(1998·1999)이나 보냈습니다. 신흥사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56년 새로 제작된 불화를 50년 이상 극락보전에 걸어놓았기에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겁니다. 팬처와 락웰의 사진에서는 신흥사 명부전에 붙어 있던 ‘시왕도’의 도난 흔적도 확인됐다. 팬처의 사진(1954년 5~6월)에는 보였던 ‘시왕도’가 락웰의 사진(1954년 10~11월)에는 없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를 뜯어간 것이 틀림없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미국 현지에서의 특별한 복원 그래도 ‘시왕도’는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었는데요. ‘영산회상도’는 그나마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부설수장고 한편에 방치되다시피 한 겁니다. 뒤늦게 김현정 큐레이터의 눈에 든 ‘영산회상도’는 비로소 환골탈태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 불화 중 가장 크고(가로 406.4㎝·세로 335.2㎝) 화격이 높은 작품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박물관 차원에서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구상했습니다. 마침내 박지선 용인대 교수팀(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을 초청해 현지 복원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펼쳐나갔습니다. 복원팀은 한국에서 1t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장비를 가져갔습니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현지 복원은 박물관 전시장이었던 도자실에 마련된 공개 작업장에서 진행했습니다. 복원팀은 영하 10도 정도의 강추위 속에서 쑨 지 10년 이상 묵힌 풀을 썼고, 비단은 수백년 된 것처럼 광선을 쏘이고 염색해 사용했습니다. 오염 제거에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 드러난 오염만 제거할 뿐 세월의 흔적까지 지우면 안 됐기 때문입니다. 7겹이나 되는 배접지(비단 위 그림을 고정하기 위해 뒷면에 덧대는 종이)를 제거하고 새 배접지로 다시 7겹 붙이는 작업도 두 달 이상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복원팀이 신경 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미 밝혔듯이 누군가 그림을 가로로 크게 두 번 칼질해 세 조각 낸 다음 윗부분만 다시 세로로 세 번 베어냈죠.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잘라놓았습니다. 누군가 그 커다란 불화를 ‘돌돌말이’로 가져갈 생각만 했던 겁니다. 박지선 교수는 “여섯 조각으로 남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와 시련만큼은 지우고 싶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최초로 기획한 불화 복원공개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됐습니다. 2011년 12월 온전한 ‘영산회상도’가 공개됐습니다. 각종 불교 행사가 열렸고,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마냥 박수 칠 입장이 아니었던 불교계 한국불교계 입장에서 마냥 박수만 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명백한 ‘불법 반출 문화재’입니다. 무엇보다 불화는 예술품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예경의 대상인 ‘성보(聖寶)’라 할 수 있습니다. 여느 문화유산보다 더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라졌을까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에 편입됩니다.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되죠.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 민정으로 이양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때 비로소 복귀한 신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합니다. 극락보전의 ‘영산회상도’와 명부전의 ‘시왕도’ 등 사찰의 성보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용의자는 이곳에 주둔한 미군이나 한국군 중 한 명이겠네요. 그러나 한국군은 분명 아닐 겁니다. 서양에서 기독교 성화를 훼손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불화에 칼자국을 낼 강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뜯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으로 반출되지 않았습니까. 필시 미군 중 누군가가 뜯어갔겠죠. 만약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반환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미국 연방 도난품법은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고 규정했거든요. 1954년 사라진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44년이 지난 1998년 예리한 칼로 6조각 난 채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 팔렸다. 그때 ‘시왕도’ 6점도 함께 팔렸다. / 조계종 제공 그 때문에 LA카운티미술관이 1998 ·1999년 두 차례나 유물 구입과 관련해 신흥사에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신흥사 측에서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던 것도 ‘귀책사유’가 됩니다. 무엇보다 LA카운티미술관이 아낌없는 열정으로 그림의 제 모습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선뜻 “내가 주인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는 불법 반출품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참전 미군의 사진에 담긴 비밀 사실 비장의 카드는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 개관한 속초시립박물관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통신장교(폴 뷰포드 팬처)가 1953년 말에서 1954년 11월 사이 찍은 속초 일대의 사진 271점을 기증했는데요. 그중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극락보전의 불상(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뒷벽에 1755년 제작된 ‘영산회상도’가 떡하니 걸려 있었거든요. 그뿐이 아니고요. 명부전을 찍은 사진에서도 ‘시왕도’가 3점 남아 있었습니다. 팬처는 사진을 기증하면서 “1954년 5~6월에 신흥사를 방문했다”고 밝혔는데요. 속초지역의 미 군정이 그해(1954) 11월 끝난 뒤 스님들이 사찰로 복귀했다고 했죠. 그렇다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1954년 5~11월 사이에 반출됐다는 이야기가 되죠. 이렇게 팬처의 사진이 ‘미군=밀반출 자’임을 사실상 입증하는 자료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LA카운티미술관의 공을 무시하고 반환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저하던 그 와중에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1988년 대구 동화사 염불암에서 도난당한 19세기 불화(‘지장시왕도’) 1점이 다름 아닌 LA카운티미술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지장시왕도’는 도난신고된 유물이어서 논란의 여지 없이 반환대상이 됐습니다. 2015년 1월 조계종단과 신흥사 측은 동화사 불화건을 거론하면서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건도 조심스레 포함시켰습니다.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의 사진 등을 근거로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요. 2017년 2월에는 공무원, 교사, 주부, 불자 등이 주축이 된 ‘속초시 문화재제자리찾기 위원회’가 창립됐습니다. 당초 우려와 달리 LA카운티미술관 측도 예상 밖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니만큼 공공 박물관의 명예를 중요시했던 겁니다. 또 한 장의 결정적인 사진 2019년 ‘결정적인 한 방’이 터졌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미 해병 중위로 속초에서 근무했던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 등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했는데요. 만약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의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조건 없이 반환해야 했다. 미국 연방법이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도난품법)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그 속에는 팬처가 촬영한 극락보전 사진에서는 보였던 ‘영산회상도’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역시 팬처의 사진에 남아 있었던 명부전 속 ‘시왕도’도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락웰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1954년 10~11월 사이”라고 밝혔습니다. 1954년 5~6월 팬처의 사진에는 보였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같은해 10~11월 락웰의 사진에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연히 미군이 1954년 7~11월 사이에 뜯어갔다는 이야기죠. 이 대목에서 첨언할 것은 있습니다. 신흥사 ‘시왕도’는 염라대왕 등 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각각 그린 작품인데요. LA카운티미술관이 그중 6점을 소장하고 있었고요. 나머지 4점도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6점을 한꺼번에 뜯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1998년 LA카운티미술관에 팔린 거고요. 어쨌든 불교계는 ‘영산회상도’와 함께 이 ‘시왕도’ 6점의 환수까지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4점의 환수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영희 교수의 젊을 적 ‘자랑 한마디’ 락웰은 사진뿐 아니라 신흥사에서 뜯어간 경판 1점(17세기 제작)까지 기증했습니다. ‘제반문’(諸般文·사찰에서 수행한 일상의 천도 의식과 상용의례를 기록한 것) 경판 중 87~88장에 해당합니다. 이 경판과 관련해서는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고 리영희 교수(1929~2010)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1996년 12월 4일 법보신문에 흥미로운 회고담(‘내가 젊었을 적 잘한 한가지’)을 털어놓았는데요. “(1951년 겨울) 11사단 9연대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신흥사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 돌과 도끼, 삽으로 빠갠 불경 목판 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 (장교였던) 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리영희 교수는 그때 불경판을 지킨 공로로 2000년 제4회 만해대상 ‘실천상’을 받았습니다. 락웰의 기증 사진에도 1954년 가을 신흥사에서 미군들이 불을 피우는 장면이 보입니다. 락웰은 이 무렵 신흥사 경판 1점을 전리품 삼아 들고 갔을 겁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 치하로 편입된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된다.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진다. 민정 이양 후 신흥사로 복귀한 스님들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 성보 문화유산이 사라진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환지본처 본지풍광 각설하고 팬처와 락웰의 사진과 함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6점) 환수 협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이 미군에 의해 불법 반출된 전시 약탈문화재가 분명해진 만큼 반환은 시간문제가 됐습니다. 드디어 2020년 7월 29일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환수됐습니다. 여섯 조각으로 무참히 잘린 채 밀반출된 ‘성보 문화유산’이 66년 만에 귀환한 겁니다. 국내 보존상태 등의 점검이 끝난 8월 28일에는 성대한 이운식과 함께 본향인 신흥사로 돌아왔는데요. 새삼 불교에서 말하는 ‘환지본처 본지풍광(還至本處 本地風光)’의 구절이 떠오르네요. ‘환지본처’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본지풍광’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일컫는다죠. ‘영산회상도’의 환수야말로 ‘환지본처 본지풍광’의 정수라 할 수 있겠네요.
이기환의 Hi-story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08) 불화의 원인이라고 확신했던 남편의 음주(2018. 08. 20 14:38)
2018. 08. 20 14:38 사회
애주가였던 그에게 술은 오랫동안 알코올 이상의 의미였다. 반면 술의 역기능만 알았던 나는 남편의 애주가 모습이 싫었다. 술잔을 앞에 놓고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남편은 그럴수록 나와는 술로 인해 멀어지게 됐었다. “닭고기와 쇠고기 요리 중 어떤 것을 드시겠어요?” “닭고기요.” “음료는 어떤 걸 드시겠어요? 와인, 맥주, 콜라, 주스가 있습니다.” “와인으로 주세요.” “레드와인과 화이트 중 어떤 걸 드시겠어요?” “음… 화이트요. 그리고 나중에 레드로 한 잔 더 부탁해요.” TV조선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한 최민수, 강주은 부부. / TV조선 유튜브 상냥하고 친절한 승무원의 말과 손놀림은 식사 전부터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 제한된 공간에서 따끈한 음식이 오밀조밀 나오는 것도 재미있고 언제든 친절하게 대접받는 기분은 소풍 가는 아이같이 좋다. 특히 공항이라는 곳이 온갖 긴장이 집중된 곳이다 보니 탑승 후에 밀려오는 피로 섞인 안도감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게 된다.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고, 신경 써도 소용없는 묘한 안도감이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 먹고 싶고 모두 잊고 쉬고 싶다. 그때 그 상냥한 승무원이 똑같은 질문을 옆에 앉은 남편에게도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쇠고기를 선택하는 것까지 들은 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콜라요!”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자동적으로 ‘왜?’라는 듯 옆을 쳐다봤다. 이미 그의 손에는 콜라가 담긴 천진하게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트레이에 내려놓으며 그가 한 말은 “안 먹잖아.” 순간 나는 제정신이 들었다. “그치. 끊었지! 그런데 어라! 이건 뒤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네!” “당신 술 마시는 것 아니면 싸울 일이 없어!” 나는 원래 술을 전혀 못했다. 아니 술맛을 몰랐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애주가 남편과 술 때문에 실랑이를 하다 보니 이제는 예상치도 못한 일까지 생겼다. 가끔 와인이나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오늘처럼 여행 준비로 새벽부터 동동거리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천 수만 피트 상공에서는 더군다나 그렇다. 그저 쉴 일만 남은 상황에서는 와인 한 잔이 딱이다. 특히 알코올이 몸에 들어오면 잠자는 체질인 나에겐 더 그랬다. “이럴 때 저이도 와인 한 잔 정도 마시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까웠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세월 참 변했네. 예전에 내가 당신을 참 구박했는데 이젠 내가 마시다니…. 술꾼 아내 좀 잘 부탁해요.” 쑥스런 마음에 눈을 찡끗했다. 그때 남편이 레드 와인 한 잔을 주문한다. 그리곤 내 트레이에 놓으며 “주문하신 레드와인 대령이오. 내 몫까지 많이 드셔요. 주당 부인!” 몇 년 전 남편이 술을 완전히 끊은 후 우리는 가끔 이런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친다. 애주가였던 그에게 술은 오랫동안 알코올 이상의 의미였다. 마음을 달래주는 묘약이었고 소통의 통로였다. 반면 술의 역기능만 알았던 나는 남편의 애주가 모습이 싫었다. 술잔을 앞에 놓고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남편은 그럴수록 나와는 술로 인해 멀어지게 됐었다. 어느 날 “나 그렇게 꽉 막힌 여자 아니야. 당신이 사회생활하면서 소주 한두 잔 마실 수 있다고 봐. 그러나 지나치게 마시는 것은 정말 싫어! 왜 자꾸 나를 나쁜 여자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 자책하며 상대를 마구 비난했었다. 그 당시 나는 우리 불화의 원인은 딱 한 가지라고 단언했었다. “우리는 당신 술 마시는 것 아니면 싸울 일이 없어!” 그때는 그렇게 확신했었고 그래서 더 분하고 속상했다. “내가 다른 걸로 바가지 긁는 것 있으면 대봐. 없잖아. 그거 하나 들어 달라는데 그렇게 힘들어? 이건 내 말을 개똥만큼도 생각지 않는 거라고밖엔 볼 수 없어.” 이렇게 도망갈 구석 없이 쏘아붙이며 반복된 삶을 살았었다. 얼마 전 ‘엄마가 뭐길래’라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프로는 1~2년 전의 것을 재탕하는 프로였다. 하지만 처음 본 나는 아주 재밌게 봤다. 강주은씨 가족의 리얼리티 프로였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이기에 더 관심이 갔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는 것은 때때로 나이를 잊고 활기차게 한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며 한나절을 보내다 솔직하고 따뜻한, 품격 있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남편의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한 장발을 마주하며 난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한동안 배우자의 그런 모습을 품으려고 노력했던 흔적과 지금도 여전히 못마땅한 면이 있지만 혹시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봐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야 될 때라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상대의 고집을 무장해제시키는, 분명하지만 싸늘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보았다. 또한 자신의 본심을 무리 없이 정확히 전달하는 모습이 과연 ‘마님’이었다. 어떤 프로에서는 자신이 ‘남편 최민수의 전문가’라며 남편에 관해서는 최소한 박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보았다. 재밌고 예뻤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자신이 관심 갖는 대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하고 최상의 상태를 위해 돌보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무수히 실험하고 연구해서 드디어 박사가 된다. 그래, 그녀는 과연 전문가이고 그 남편에 관한 한 박사구나 생각했다. 특유의 편안함과 타고난 명석함이 잘 어우러져 그녀만의 매력을 보였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자신이 꿈꾸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결혼생활 동안 무수히 깨지고, 다시 추슬러 세우고, 수정하며 지켜온 모습일 거다. 아마 일찍이 깨지고 내려놓음이 없었다면 그녀는 애당초 꿈꿨던 얇디얇은 유리상자는 고사하고 무수한 유리 파편에 찔리며 피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남편 박사·아내 박사의 결혼생활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젊은 시절 터무니없이 얄팍한 유리상자를 꿈꾸며 살았던 갓 같다. 맑고 투명한 것이 아름답다며 비틀거리고 불분명한 것들을 밀어냈었다. 가족과 나를 위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고 무엇을 추슬러야 할지 잘 몰랐었다. 훗날 알았지만, 불화의 원인이라고 그토록 확신했던 남편의 음주는 생각처럼 큰 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불투명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쳤던 내 미성숙이 더 큰 원인이었다. 물론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다 옳다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 또한 상대에겐 벅찬 것임을 알게 됐다. 때로 우리는 미성숙한 나 자신과 상대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그 힘든 상황에서 바늘구멍만한 관심이라도 완전히 잃지 않고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의 눈 속에 맺힌 눈물을 통해 나 또한 성장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부는 결코 어느 한 쪽만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틀거리면서도 함께 버티며 서로 힘을 주며 산다. 가끔 세월이 약이라며 수십 년간의 희생이 세월과 함께 얼굴에 녹아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나름대로 녹아내려 더 이상 원래의 형체가 사라진 애잔함이 있다. 또 어떤 얼굴은 내려놓을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여 조금은 거칠지만 당당하게 요구하며 살아온 모습도 있다. 이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내 모습은 젊은 시절 꿈꾸며 설레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 놀라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했던 나의 건너편, 나의 파트너가 있었기에 단금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 박사 강주은씨가 예뻤나 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우리들의 배우자도 오랜 단금질 후 박사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두 박사가 속도와 강도는 다를지라도 서로를 연구하며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게 정말 부부 박사의 결혼생활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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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불만은 ‘불화’를 낳고 분할은 ‘분쟁’을 낳고(2009. 11. 12 11:51)
2009. 11. 12 11:51 경제
ㆍ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사건으로 본 국내 재벌가 경영권 분쟁사 박용오(왼쪽), 박용성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자살’하자 재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자살의 이면에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따른 재벌가의 ‘가족불화’가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두산 일가는 2005년 7월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차남 박용오 전 회장에서 3남 박용성 전 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박용오 전 회장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그러자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용만 형제가 20년 동안 총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사조직 관리와 노조 탄압에 사용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고, 이에 대해 두산가는 박용오 전 회장의 두산 회장직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2006년 7월 박용오-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씩을 선고받았다. 또 5남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두산가의 형제분쟁과 거의 닮은꼴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의 난’은 지난 7월에 있었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은 7월28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로 금호아시아나 신사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해임 조치를 단행하고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면서 “동생을 해임할 수밖에 없는 유감스런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고 밝혀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삼구 회장이 동반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은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면서 형제간 갈등설, 계열분리설 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전날 열린 가족회의에서 박찬구 회장의 돌출행동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박삼구 회장이 자신과 박찬구 회장의 동반 퇴진을 제안해 수용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에 앞서 금호석유화학은 이사회를 소집해 박찬구 대표이사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금호, 현대, 롯데 등 ‘형제의 난’ 박삼구(왼쪽), 박찬구박삼구 회장은 이 과정에서 고 박성용 명예회장, 고 박정구 회장 등 두 형의 자녀인 재영씨와 철완씨의 지분 및 자신과 아들인 세창씨의 지분을 합쳐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은 이사회 의결에 불복해 법적 대응방침을 밝혔고,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그룹도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치른 대표적인 기업이다. 현대그룹은 ‘왕회장’인 정주영 창업주가 타계하자마자 혈족간 분란에 휩싸였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 그것이다. ‘왕자의 난’은 2000년 3월 당시 현대그룹의 후계 다툼을 벌이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동생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전격 경질하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주영 회장이 사실상 장남인 2남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 관련 계열사에만 전념하라고 지시하고 사실상의 대권을 5남인 정몽헌 회장을 지명한 것이 ‘왕자의 난’ 불씨로 작용하고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북경협을 이끌어 나갈 적임자로 정몽헌 부회장을 지목한 것이다. 당시 형제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현대그룹 김재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헌 부회장을 현대그룹 단독 회장으로 한다고 발표하자 정몽구 회장 측은 이틀 후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주영 회장의 사인이 들어간 문서를 근거로 정몽구 회장이 그룹 공동회장임을 주장했다. 일촉측발 상황이던 왕자의 난은 왕 회장의 현대차를 정몽구 회장쪽에 주면서 교통정리가 됐다. 이후 현대 계열사는 정몽구 회장쪽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정몽헌 회장쪽의 현대건설,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 등의 그룹으로 재편됐다.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 이후에도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정몽헌 전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간에 ‘숙부의 난’이라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도 휘말리게 된다. 2006년에도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와 신경전을 벌인 ‘시동생의 난’을 겪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현대건설 인수 문제로 아직도 맞서고 있다. 정몽구(왼쪽), 정몽헌한진그룹도 내홍을 겪었다. 조중훈 창업주는 4명의 아들들에게 그룹의 주력사를 골고루 쪼개 줬다.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는 대한항공, 차남 조남호 회장에게는 한진중공업, 3남인 조수호 회장에게는 한진해운, 4남인 조정호 회장에게는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금융그룹)을 배분한 것. 그러나 똑같은 재산배분이 아니었기에 분란도 있었다. 결국 장남과 3남, 차남과 4남이 각각 편을 나눠 갈등을 겪으면서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비화됐다.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2006년에 지병으로 별세했지만 ‘장남’과 ‘차남-4남연합’의 형제간 갈등은 계속됐다. 2005년에는 ‘차남-4남’이 장남인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정석기업’의 주식 일부를 넘기고 3억4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한진가 형제들은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주식을 나눠 가졌다. 이 밖에 한진가는 조중훈 회장 사망 직후 유언장 진위를 놓고 벌인 소송을 시작으로 2006년 대한항공 면세품 납품 업체인 브릭트레이딩과 관련한 민·형사소송, 지난해 조중훈 회장의 사가인 ‘부암장’ 건립에 관한 손해배상소송 등 네 차례에 걸친 소송을 주고받았으나 현재는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유산 비중 놓고 편 가르기에 소송도 신격호(왼쪽), 신준호롯데그룹도 형제간 불화로 쑥대밭이 된 적이 있다.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동생 신준호 푸르밀(옛 롯데우유) 회장이 한바탕 싸움을 벌인 것. 신격호 회장이 신준호 회장에게 이 땅을 명의신탁했는데 나중에 신준호 회장이 부지 소유권을 주장한 게 갈등의 발단이다. 재산권 분쟁의 이면에는 신격호 회장이 한국 롯데의 경영권을 아들에게 주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데 대해 신준호 부회장이 암묵적으로 반발하면서 형제간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형제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부회장이 10년 이상 맡아온 롯데건설의 자금유용 혐의로 1995년 말부터 그룹 내부감사를 받은 데 이어 이듬해 2월에는 규모가 작은 롯데햄·우유 부회장으로 밀려난 것이다. 당시 세븐일레븐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차남 신동빈이 신격호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룹기조실 부사장으로 들어가면서 ‘큰아들 동주가 일본 롯데를 맡고 둘째 아들이 그룹 총수 자리를 맡는다’는 롯데그룹 후계구도가 가시화됐다. 이후 신준호 회장은 롯데에서 밀려나 독자행보를 시작했다. 롯데 브랜드를 버리고 푸르밀을 설립했으며, 2004년 6월에는 사돈인 최병석 전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부산지역 소주 업체인 대선주조를 600억원에 사들였다가 2007년 11월 3600억원에 되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김으로써 이로 인해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형제 갈등 극적 화해로 분쟁 종결 최태원(왼쪽), 최재원한화그룹도 역시 형제간의 다툼이 있었다. 1981년 김종희 창업주 타계 후 승연-호연 형제의 경영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경영권 다툼이 시작됐다. 다툼은 김 창업주가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형제는 소송이 시작된 지 3년6개월 만에 극적으로 화해의 모습을 취하며 분쟁을 종결했다. 이복형제간의 불화 사례도 많다. 대림그룹은 배다른 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숙질간 전쟁’을 벌였고, 파라다이스그룹도 생모가 다른 자녀간 법정 싸움을 벌였다. 전락원 창업주의 아들 전필립 회장과 그의 배다른 여동생인 지혜씨가 상속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 대한전선그룹은 설경동 창업주의 후처 자녀 고 설원량 회장이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자 이복형제들이 반발하면서 가족간 갈등으로 확대됐다. 동아제약은 강신호 회장이 본처와의 오랜 별거 끝에 2006년 7월 합의 이혼하면서 부자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이 본처의 소생인 장·차남을 배제하고 후처의 자식인 3·4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 정비에 나서자 장남 강문석 수석무역 회장이 강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강신호-문석 부자간 경영권 분쟁은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형제간 싸움을 넘어 부자간 싸움으로 번지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다. 최신원(왼쪽), 최창원형제간 다툼을 넘어 범가족 간 경영권 다툼은 허다하다. 오양수산 일가도 김성수 회장의 2007년 타계 후 상속지분 처분을 놓고 갈등이 시작됐다. 갈등은 먼저 ‘부자’간에 있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창업주 김성수 회장은 2003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대리인을 시켜 장남인 김명환 부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저지하려 했지만 김 회장의 대리인이 주총장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로 의결권 행사에 실패했다. 부자간 반목은 김명환 부회장에 대한 전체 가족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김 부회장은 모친 및 누이들과도 등을 돌리게 됐고, 어머니와 가족들이 김 회장 소유 오양수산 지분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기자 이에 대해 김명환 부회장이 반발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결국 김 부회장은 모친을 상대로 채권반환소송을 제기해 ‘모자’간 소송을 하기도 했다. 대성그룹 일가인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3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도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에 지분 다툼을 벌이면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룹의 계열분리로 2세들의 독립경영체제를구축했지만 2006년 김수근 창업주의 부인 여귀옥 여사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유산상속을 놓고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 부모-자식 상속지분 둘러싼 다툼도 한라그룹 일가도 고 정인영 명예회장의 장·차남인 정몽국-몽원씨간 재산 분쟁을 겪었다. 형인 몽국씨는 1989년부터 한라그룹의 부회장으로 활동했지만 1992년 몽원씨가 부회장 자리에 오르자 1995년 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몽원씨는 1997년 1월에 정식으로 회장 자리에 올랐다. 형제의 갈등은 한라그룹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뤄진 구조조정에서이다. 정몽원 회장은 대부분의 계열사를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형 몽국씨가 가지고 있던 주식도 함께 팔아 형의 분노를 샀고, 몽국씨가 2003년에 “동생인 정몽원 회장이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본인(몽국)이 가지고 있던 한라콘크리트 주식을 임의로 이전했다”며 동생을 사문서 위조 및 행사혐의로 고소하는 동시에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1심에서 형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동생의 손을 들어줘 결국 최종판단은 대법원까지 갔다. 한때 국내2위의 건설업체이던 동아건설도 최원석 전 회장과 동생인 최원영씨의 분쟁으로 얼룩진 과거가 있다. 1996년에 학교법인 공산학원을 둘러싸고 최원석 회장의 모친인 임춘자씨가 최 회장을 고발한 것.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은 당시 동생인 최원영씨가 배후라며 비난했다.  결국 1997년 두 형제가 화해했지만 최씨 형제에 대한 채권단의 부정적 인식은 동아건설에 대한 지원을 꺼리게 돼 결국 동아건설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커버스토리]코드 불화, 흔들리는 軍心(2004. 08. 05)
2004. 08. 05 정치
지금 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NLL보고 누락 사태로 터져나오고 있는 잡음이 수상하다. 청와대와 군의 코드 불일치에 따른 충돌일까. 군 내부의 권력투쟁 서막일까. 단순한 군사 사건으로 덮어버리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 있는데... 7월 24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북해군간 무선교신 보고누락 사건'과 관련한 보고누락 이유를 설명 중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조 장관이 "해군 작전사령관은 (경고)사격 전 상급부대보고 시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했고, 상황종료 후에는 송신사실 보고 시 언론 등에서 사격의 부당성 제기로 북측의 내부 분열 유도 등에 역이용당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도적 보고누락을 했다는 의미였다. 전날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부주의와 과실에 의한 보고누락이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어이가 없다"면서 "굳이 (남북이) 충돌하기 위해 보고조차 안 했다는 뜻이냐"고 따졌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그렇다면 합동조사단(단장 박정조 소장)은 노 대통령에게 허위보고한 것이냐, 국민에게 허위발표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튿날 청와대가 나섰다. 권 보좌관은 "노 대통령은 모두 보고를 받았다"면서 "다만 해군 작전사령관의 진술이 이치에 닿지 않아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을 뿐"이라며 사건 당사자들의 경징계 조치를 재확인했다. NLL 보고누락 사태로 터져나오고 있는 잡음이 수상하다. 지금 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전통적으로 보수집단일 수밖에 없는 군이 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적응하지 못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인가. 청와대와 군의 코드 불일치에 따른 총체적 불화의 징후는 아닐까. 국민들은 지금 매우 혼란스럽고, 또 불안하다.  군-청와대 진흙탕 다툼의 흔적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군사 사건이 아니다. 군심 달래기를 앞세워 그냥 덮어버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오히려 청와대와 국방부 그리고 군과 국방장관 사이의 진흙탕 다툼의 흔적을 남겼다. 심지어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장관이 사건 원인을 설명하면서 일선 야전사령관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함을 실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보도자료에 (그 내용이) 빠진 줄 몰랐다"는 조 장관의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은 오히려 군 지도부 벙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을 뿐이다. 또 사태 진전의 매듭마다 반전이 거듭됐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불거졌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이 누수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와 군부 간의 알력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각에서는 '권력투쟁설'까지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군 내부의 조직적 반발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까지 말했다.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추가조사 결과에 대한 허위보고 혹은 허위발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군부의 중대한 실수에 대해 청와대가 '군의 사기'를 핑계로 사건책임자에 대한 경징계 조치로 봉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점이다. 사건 초기 노 대통령이 7월 19일 '추가조사' 지시를 내릴 때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군 일각에서 군사기밀을 언론에 유출하는 등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현장 상황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왜곡 보고될 경우 우발적 재앙이 우려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추가조사 이유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경징계로 돌아섰다. 군과 정면충돌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징계의 수위가 문제는 아니다. 단순과실이라도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철칙이 흔들렸다. 남북 대치의 현장에서 정보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해군 정보기관이 군사작전을 여과없이 언론에 노출한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국가보위의 최후소방수로서 책임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역장교는 "대한민국 군인은 무너져내렸다"고 표현했다. 노 대통령이 '추가조사' 지시한 뒤 군 일각에서는 '군 수뇌부 물갈이용'이라거나 '군수뇌부 군기잡기'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표현은 '추가조사'였지만 내용은 사실상 '재조사'였다. 국방부 자체 조사뿐만 아니라 군부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서 비롯된 얘기들이다. 여기에다 참여정부의 과잉참여도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현재 소장 이상 장성급 군인들은 군사정권시대에 성장했다'는 폭언까지 나왔다. 발언의 당사자인 김희선 의원은 "국군 계급체제를 모르고 한 말"이라고 사과했지만 격앙된 군심이 쉽게 가라앉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한 군 관계자는 "군에 대해 문외한인 김 의원이 그런 발언은 권력 핵심부로부터 군개혁과 관련한 언질을 들은 바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니겠느냐"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다가 군 수뇌부 인사까지 맞아 떨어졌다. 오는 10월에 군의 정기인사가 있다.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1-2-3군사령관 등의 임기가 만료된다. 노 대통령이 10월 인사를 계기로 친정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소문은 군부 내에도 꾸준히 돌았다. 군의 물갈이는 통치권 강화의 유효한 수단이다. "대한민국 군대 무너져내렸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 한 차례 군인사를 단행했다. 그때의 인사 특징은 '안정 속 점진적 개혁'으로 요약된다. 즉 무난한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사실 4월 인사 이후 주목할 만한 청와대와 군의 불협화음은 없었다.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사법처리 때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갑종 출신인 조 장관과 사관학교 출신인 군 수뇌부 사이에 알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번엔 군 차례'라는 심리적 압박은 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던 민간인 국방장관 등용론이 재론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덧칠해지고 있다.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 지시로 민간인 국방장관 등용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기대 이하의 국방예산 증액도 군부 내부의 적지 않은 불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국방예산을 현재의 국내총생산의 3%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작년 대비 7천억원 증액된 액수다. 국방부 증액요구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 등의 "지금이 군비 증강할 때가 아니라 국비를 감축할 때"라는 말이 나오자 국방부의 불만은 봇불 터진 듯이 나왔다. 국방부 인사들은 "협력적 자주국방 하려면 미군 감군도 감수해야지"라는 등 불만을 여과없이 토로했다. 남북화해 속도에 군이 부응하지 못하면서 군내 불만이 확산되는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군은 아무래도 업무와 구조상 남북화해와 협력 등 정치적 변화에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한 군의 속성은 '교신누락사건' 처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조 국방장관의 업무보고와 합동조사단 발표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중 하나로 "남북장성급회담 합의 정신이해 부족"을 지적했다. 사실상 일선 지휘관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정보보고 계통상에 있는 한 인사가 조 장관에게 이 문제를 직접 항의하려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포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지난달 초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확성기 등 선전물을 제거키로 합의할 때도 사단장급 일선 지휘관은 물론 군 수뇌부도 "우리측의 유리한 '무기'"라며 일방적 양보에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와 예산 이외에도 참여정부의 정책은 이미 김대중 정부 5년을 거치면서 군부 내에도 상당히 순화되어 있다. 오히려 개혁을 핑계로 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에 대해 군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면복권이 돼 법적 하자는 없지만 과거 간첩혐의로 처벌받은 일이 있는 사람이 군장성을 개인적 비리나 독직도 아닌 의문사 조사를 맡는 일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해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인 강용진씨는 "군사력이란 병력+화력+군의 사기가 아니라 (병력+화력)×군의 사기"라면서 "참여정부는 더 이상 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선교신 누락사건'의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중의 하나로 권력누수가 지적되고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과 군의 불신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이다. 통치권의 핵심 중의 핵심이 국군통수권이다. 더욱이 누락보고를 하고 또 허위발표 혹은 허위보고를 한 국방부보다 크지 않더라도 국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에게도 귀책사유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갑종vs사관학교 출신의 '알력' 한 야당 인사는 "단순한 군사적 사건이라고 비밀리 조사를 통해 했어야 했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이 재조사를 지시했고 그 때문에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세상에 알려져 청와대와 군의 관계가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과정의 미숙성으로 인해 야기될 국익손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한 전역 영관급 인사는 "한국군에 대한 우방국들의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미 군사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부대의 ㄱ 대대장은 "우리 정부와 군이 북한의 교란작전에 완전히 말려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용진씨도 "이번 사건으로 우리 해군의 타킷 세일(목표 항해:작전 시 함대의 이동경로)를 완전히 노출시켰다"면서 "북한군은 아마 가가소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의도적 월경으로 우리 군의 작전체계를 알게 된 전리품을 얻게 됐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군기가 엄정한 군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박정조 합동조사단장이 했던 핫라인 교신과 관련한 합의사항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북한측에 책잡힌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박 단장은 "군대에서 북측의 호출을 상호교신이 아닌 일방송신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핫라인 자체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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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거짓 은퇴, 친이모와의 불화…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2011. 05. 02 14:57 연예
1980, 90년대 섹시 댄싱 퀸으로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김완선이 돌아왔다. 그녀는 40대 초반,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변함없는 모습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김완선.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매니져었던 친이모와의 불화설 등에 대해 입을 열었다. 1990년대 여가수 최초로 앨범 판매 100만 장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던 김완선. 그녀는 섹시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관능적인 춤으로 당시 남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해 ‘지난 이야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리듬 속의 그 춤을’ 등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크게 히트하면서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쓴 그녀는 당시 헬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과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2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팬들과 연예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 후로는 간간이 활동을 했을 뿐 방송과는 인연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홀연히 하와이로 유학을 떠났다가 6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정이라도 한 듯, 지난 4월 중순 MBC-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과거의 이야기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김완선이 그동안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실들을 조목조목 정리했다. 김완선, 나를 둘러싼 루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나이를 속이고 활동했다 1986년 데뷔 당시 스무 살라고 알려졌던 김완선. 하지만 사실은 데뷔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고. 당시 시대 분위기상 10대라고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아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속였다는 것. 때문에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자리를 피해 다녀야 했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1988년 3집 앨범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로 활동할 때는 “19세에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라는 가사가 너무 민망해서, 무대에 오를 때면 항상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고 밝혔다. #2 ‘닦’이라고 쓴 여가수, 내가 아니다 오랫동안 김완선을 따라다녔던 루머 중에 하나가 바로 ‘닦’이라는 글자다. 당시 KBS-TV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에 출연했던 김완선이 정답을 적는 과정에서 ‘닭’을 ‘닥’이라고 적었다가, 수정을 요구하자 ‘닦’이라고 고쳐 썼다는 루머다. 이에 대해 김완선은 “닭 관련 루머에 대해 나도 알고 있다”며 “내가 닭띠다. 만약 자료가 있다면 보여달라.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자료는 없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회를 맡았던 이계진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사건은 사실이지만, 김완선씨가 아니라 다른 가수”라고 밝혀 김완선의 억울함을 깔끔하게 풀어줬다. #3 1992년 은퇴 발표, 모두 거짓이었다 한창 가수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인기를 누리던 1992년, 김완선은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가요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김완선은 이 사건이 매니저이자 이모였던 고 한백희씨가 꾸며낸 거짓이었다고 했다. 김완선은 이모가 홍콩 진출을 계획하면서, 그냥 떠나는 것보다 쇼킹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며 친한 기자와 기획해 은퇴를 결정했다는 것. 당시 김완선은 은퇴 발표를 하면서 그 누구보다 많이 울었는데 슬퍼서 운 게 아니라, 거짓말한 것이 괴로워서 울었다고 한다. #4 매니저였던 고 한백희씨, 친이모 맞다 고 한백희씨는 1970년대 가수로 활동하다가 인순이를 발굴해 가수로 키워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매니저다. 김완선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그녀는 김완선의 친이모라고 한다. 하지만 평소 한백희씨가 김완선에게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 때문에 ‘친이모가 아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이에 대해 김완선은 “이모가 무섭고 엄했지만, 24시간 나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라며 세간의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5 13년 동안 한 푼도 못 받았다 김완선은 1986년 데뷔 이후, 13년 동안 매니저로 일했던 이모 한백희씨와 결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충격적인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바로 13년 동안 일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완선은 “이모가 차라리 그 돈을 자신에게 썼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고 한백희씨는 2006년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응급실에 갈 때마다 돈이 없어서 김완선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는 “그러기에 나한테 진작 돈 좀 주지…”였는데, 이모는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이모는 세상을 떠났고, 김완선은 마음속에 쌓인 앙금을 끝내 풀지 못했다고 한다. #6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불행했다 김완선은 연습생 시절, 이모의 집에서 약 7년 동안 감금된 생활을 했다며 믿을 수 없는 과거를 털어놓았다. 하루 종일 노래와 춤 연습으로 일과가 빡빡했다며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매일 죽어라 연습만 했다는 것. 데뷔한 후에도 모든 것은 이모의 뜻대로 움직였다고. “옷, 신발, 머리, 화장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이모가 관리했고, 인터뷰도 이모가 대신했으며 심지어 음악 선택도 모두 이모가 했어요. 3집 때부터는 이모의 아바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때문에 톱스타가 됐어도 김완선은 전혀 행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자 가수들하고 사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신 적이 없었고,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부러웠을 정도로 굉장히 불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7 지금은 가수를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김완선은 지난 2005년 ‘리턴’을 발표한 후, 이듬해 하와이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 대학에서 디지털아트를 전공하고 유화도 배웠다. 갑작스럽게 유학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김완선은 “그동안 인생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많은 것들을 정리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하와이의 자연 덕분에 이모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오랜 공백기를 가지면서 결국 내가 할 일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쉬지 않고 평생 노래하고 싶어요.”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서민정>
[가족문제 솔루션]시부모와 남편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아내
2010. 10. 13 14:49 화제
「레이디경향」과 한국연극치료협회가 ‘2010 가족 문제 솔루션’을 진행합니다. 특수&장애 아동뿐 아니라 청소년과 성인들을 위한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연극치료를 통해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매달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독자 여러분의 신청과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편집자 주) 열 번째 주제 시부모와 남편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아내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상원씨(27)와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내 김은정씨(28) 이야기 이상원씨와 김은정씨는 생후 11개월 된 아들을 둔 결혼 1년 차 신혼부부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 은정씨는 남편과 시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수적인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과 체벌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상처를 받고 자라온 남편은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님과의 불화가 계속되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현재 남편과 시부모님은 대화마저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은정씨 역시 큰 고통을 겪었고 앞으로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편과 시부모님의 관계를 풀어나가고자 연극치료를 신청했습니다. 은정씨의 간곡한 설득 끝에 시부모님도 치료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작업 과정 1. 서로의 모습 피규어로 고르기 부모님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부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서로의 모습을 피규어로 골라보았습니다. 상원씨는 아버지의 이미지로는 트럭, 어머니의 이미지로는 탱크, 은정씨의 이미지로는 시계를 골랐습니다. 은정씨는 자신이 싫어하는 남편의 이미지로 사자를, 자신이 바라는 남편의 이미지를 초록색 공룡으로 골랐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들의 이미지를 작은 화분,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큰 집게벌레로 생각했고 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들을 엎드려 있는 아이, 싫어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어린아이 인형을 골랐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서로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2. 현재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 고르기 아내 은정씨에게 무기력, 공포, 죄책감, 질투, 두려움을 상징하는 여러 색의 상자 중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을 표현한 상자를 고르게 했습니다. 은정씨는 자신의 가장 큰 어려움은 두려움과 공포라고 말하고 검정색 상자를 골랐습니다. 덧붙여 남편이 너무 날카로워져 밤에 잠도 자지 못한다며 남편이 변해가는 것이 가장 두렵고,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서 남편과 시부모님이 만나는 것이 항상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3. 인생길을 걸으며 예전 기억 되돌아보기 남편 상원씨에게 어렸을 때 기억부터 서서히 짚어보게 했습니다. 상원씨는 유난히 엄격했던 어머니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힘들었다고 말했는데 어린 시절 체벌, 발가벗겨 쫓겨났던 기억,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 등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문제의 원인을 부모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행복했던 기억은 거의 없으며 매번 좌절과 절망을 느꼈다고 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님 때문에 힘들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고 고백했습니다. 대학교 때까지 부모님의 체벌을 참고 속으로만 삭여왔고 그 부작용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4. 어머니의 이야기 들어보기 상원씨의 이야기를 듣고 억울하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후에 자신의 전화를 피하고 소원한 아들에게 섭섭함을 느꼈고 자신을 피하는 아들보다 며느리와 대화하는 것이 편해 며느리에게 이야기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상원씨는 “어머니가 상황을 당신 방식대로만 포장한다”고 화를 내며 대화의 통로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로 상원씨는 철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힘들어하던 상원씨가 치료 중간에 휴식을 요청했고 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며 치료가 필요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5. 원망하고 사과 주고받기 어머니가 상원씨 등을 쓸어주면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상원씨는 어머니에게 바라는 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며 일방적 꾸중이 아닌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몰랐는데 그게 상처가 됐을 수도 있겠다. 미안하다”고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6.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의 모습 이야기 듣기 어머니는 상원씨에게 “다른 건 바라지 않고 그저 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된다. 맺힌 게 있으면 하루아침에 되진 않겠지만 조금씩 풀어가면 안 되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듣고 상원씨는 “나도 부모님과의 관계가 이 정도로까지 틀어진 것이 용납이 안 되며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 앞에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방식이 어떻게 됐든 관계가 나아지려면 부모님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부디 나의 말을 들어주고 대화를 해달라”며 “누구보다 좋은 자식이고 싶고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상원씨가 눈물을 흘리며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 싶었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이해하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7. 자신의 문제 확인하고 느낀 점 나누기 상원씨와 은정씨 부부가 함께 무릎을 꿇고 부모님께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상원씨는 “스스로 너무 힘들었고 그걸 보는 아내도 죽을 만큼 힘들었을 거다. 그동안 저희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주고 앞으로 믿어달라”고 했고 처음에는 치료받는 데 거부감을 보였던 어머니는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와서 아들과 마음을 털어놓은 좋은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 아들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솔루션 11개월 된 아들을 업고 남편, 시아버님, 시어머님과 함께 온 은정씨. 얼굴은 많이 힘들고 지쳐 보였지만 그래도 참 부러웠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 해도 며느리의 가족치료 요청에 시부모님이 두 분 다 참여하신다는 것은 대단한 배려이니까요. 은정씨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1.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정확히 보세요. 결혼 후 뭔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는 은정씨.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억울해하는 남편을 보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요. 두 사람의 불안과 두려움이 각각 어떤 이유에서 기인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 감정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대부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주요 원인이기도 하거든요. 문제를 정확히 볼 때 비로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답니다. 2. 결혼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입니다. 원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세요. 한 가정의 아들과 또 다른 가정의 딸이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 그것이 결혼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만남 속에는 세 가정이 들어 있는 거지요. 젊은 부부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역할에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이 새로운 한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과 아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그럴 때 결혼 전 부모님과의 원 가족이 지니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3. 부모님 세대와 아들 세대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세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즐겨 하시는 말씀이 “우리 젊었을 때는 안 그랬다”입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부모님 세대와 아들 세대는 정말 다르니까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말로만 하실 뿐 진심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특히 역경을 이겨내신 분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명목 아래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하지요. 상원씨와 은정씨는 부모님을 닮아서 요즘에 보기 드문 착한 젊은이들이에요. 아들이 어떤 도움을 청할 때 너무 매몰차게 외면하지 마세요. 부모님의 은혜에 그 이상으로 보답하려고 애쓰는 자식들이니까요. 4.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는 수단임을 기억하세요. 그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 속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면서 살다 보면 결국에는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은정씨를 위해 가족치료에 기꺼이 참여한 남편과 시부모님, 그들 덕분에 은정씨는 행복하지요? 또 상원씨를 위해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며느리 덕분에 부모님도, 남편도 행복하지요? 살아가는 모습에서 행복 혹은 불행을 보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은정씨 가족처럼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곧 행복임을 알 때, 우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연극치료 참여를 원하는 가족은 한국연극치료협회 홈페이지와 「레이디경향」 편집부로 신청해주세요. 선정된 가족에게는 12만원 상당의 무료 상담과 치료 작업이 제공됩니다. 다음달 주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족 신청 기간 10월 5일까지 신청과 문의 한국연극치료협회 홈페이지 (http://www.kadt.or.kr/), 한국연극치료연구소 02-3478-0975, 「레이디경향」 편집부 02-3701-1312 박미리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및 동 대학원 예술치료학과 교수. 연극치료를 통해 여러 갈등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옛이야기를 토대로 하는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가운데 ‘감정 모델 연극치료’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획&정리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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