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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14 건 검색)

“부지런한 걸음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 사진가 이호준, 포토에세이 <직조> 출간
2024. 12. 16 18:17 사회
... 피사체의 부족한 틈을 메우고 은근하게 가림으로써 핵심에 바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39p) 사진가 이호준이 흑백사진들을 엮은 포토에세이 <직조>를 출간했다. 이 작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이호준사진가포토에세이
나무야, 내가 왔어! 기억하겠니?…사진가 강재훈 에세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출간
2024. 02. 06 16:23 문화
... 있던 두 그루의 소나무. 설??고 반가웠지만,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이유가 뭘까? 사진가는 생각했다. ‘내 눈과 마음이 속세에 너무 닳아 버린 건 아닐까?’ 그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말이...
국제 사진가 단체 ‘VWI’ 한국지부, 15~21일 대구에서 사진전 개최
2023. 11. 03 10:52 지역|문화
... 확인하면 된다. VWI는 ‘사진으로도 나와 세상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구호를 앞세우는 사진가 NGO이다. 사진 미학의 핵심으로 이 단체는 케노시스(자기 비움)을 꼽는다. 현재...
VWI대구사진전
사진전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여는 사진가 한금선
2023. 05. 03 17:03 문화|문화|라이프|라이프|문화
... 함께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캠프를 다룬 작업이다. 사진전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 한금선 사진가 제공 사진전 ‘갈라선 빛 기대어 선 집’ - 한금선 사진가 제공 사진에는 ‘난민’이라는 편견과...

스포츠경향(총 31 건 검색)

후지필름, 글로벌 사진가 지원 프로젝트 ‘GFX 챌린지 그랜트 프로그램 2024’ 개최
2024. 07. 16 04:47 생활|생활
후지필름 후지필름이 세계 각국의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GFX 챌린지 그랜트 프로그램 2024’를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2021년 시작돼 4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미주, 유럽, 아시아 등 6개 지역에서 공동 개최된다. 참가자 모집은 9월 15일까지 진행되며, 만 18세 이상 아마추어 또는 전문 사진 및 영상 작가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참여를 원한다면 후지필름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프로젝트 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지역별로 1차 서류 심사, 2차 온라인 인터뷰를 거쳐 파이널리스트 15인을 선발하며, 사진가, 큐레이터, 비평가 등으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의 최종 심사 후 올해 11월 후지필름 글로벌 사이트를 통해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심사위원으로는 ‘더 포토북 리뷰’(The PhotoBook Review)를 집필한 레슬리 에이. 마틴(Lesley A. Martin)과 세계보도사진재단의 리드 큐레이터인 아만다 매독스(Amanda Maddox), 세계 유명 사진작가들의 순회전을 큐레이팅 한 사토 마사코(Sato Masako)를 비롯해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큐레이터를 역임한 폴린 베르마레(Pauline Vermare)가 참여한다. 상금과 혜택도 풍성하다. 글로벌 우승자 5명에게는 1만 달러, 지역 우승자 10명에게는 5천 달러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또한 우승자 모두에게는 6개월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후지필름의 라지포맷 미러리스 카메라 GFX 바디 1대와 GF렌즈 2대가 무상 대여되며 GFX 시스템 활용을 위한 테크니컬 멘토링도 지원받을 수 있다. 프로젝트에서 완성된 결과물은 후지필름 글로벌 사이트 및 사진전으로 공개된다. 사진전은 일본 도쿄 외 주요 도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후지필름 코리아 임훈 사장은 “GFX 챌린지 그랜트 프로그램은 전 세계 사진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열정과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며 “후지필름은 앞으로도 사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후지필름은 올해 1월 한국 당선자 2명이 포함된 ‘GFX 챌린지 그랜트 프로그램 2023’ 당선자 15인을 발표했다. 한국 당선자로 선정된 윤석준은 프로젝트를 통해 사막 위에 세워진 송전탑의 심오한 본질을 포착하고 건축물들의 숨겨진 이야기, 철학적 의미, 미적 아름다움을 담아낼 예정이다. 또 다른 한국 당선자인 오정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연극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감정과 표정이 얽혀 있는 인간의 제스처를 연속적인 시간의 대상화로 표현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결과물은 오는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전시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정진운, 알고보니 사진가로 변신…“개인전도 열어”(다시갈지도)
2023. 08. 02 09:45 연예
채널S 에능 프로그램 ‘다시 갈지도’ 방송 화면 가수 겸 배우 정진운이 사진가로 변신한 일화를 소개했다. 채널S 예능 프로그램 ‘다시 갈기조’ 제작진은 정진운이 김신영, 이석훈, 최태성과 함께 랜선 여행에 동참한다며 그의 사진전 소식을 2일 알렸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정진운은 “이번엔 개인 사진전도 열게 됐다”며 “직업상 여기저기 다닐 기회가 많다 보니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진운은 여행 마니아임을 밝히며 자신의 다양한 여행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정진운 조차 놀라게 한 히든 청춘 코스가 시청자를 찾는다. 배낭 여행객들에게 떠오르는 신상 여행지인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저렴한 물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이목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현실판 신밧드의 모험을 연상케 하는 칼리수찌 동굴, 높이 2930미터의 활화산인 므라피 화산 등을 재미있게 즐기고 싶은 청춘들을 위해 익사이팅 코스들이 소개된다. 랜선 너머로 여행을 즐기던 정진운은 “너무 재밌겠다. 사진 찍으러 가고 싶다”며 자신의 소감을 드러냈다. 정진운이 출연하는 ‘다시갈지도’ ‘청춘 여행지 베스트5’편은 오는 3일 오후 9시 20분 방송된다.
‘연예계 산증인’ 스타사진가 김중만, 투병 중 별세
2022. 12. 31 15:36 연예
수많은 연예인들을 담아 오며 스타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김중만이 31일 투병 중 별세했다. 연합뉴스 수많은 연예인들을 담아왔던 스타 사진가 김중만이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중만은 31일 오전 10시쯤 폐렴으로 투병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프랑스 숄례고를 졸압한 뒤 프랑스 국립응용미술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김중만은 1975년부터 사진가로 활동했다. 그는 국내에서 패션·광고 사진가로 활동하며 패션·광고계에 이름을 알렸다. 영화 ‘괴물’ ‘타짜’ ‘달콤한 인생’ 등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당대 최고 연예인들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담아왔다. 김중만은 2006년부터 상업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순수 예술 사진을 찍어왔다. 김중만은 1977년 프랑스 아를 국제사진페스티발 젊은 작가상을 받았고 2002년 패션사진가상, 2009년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2011년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 포토 부문상 등을 받았다. 사실상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중 한명으로 활동해왔다. 김중만의 빈소는 내년 1월 1일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치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그해 1월 3일 거행된다.
배윤영, ‘2021 패션사진가의 밤’ 올해의 모델상
2021. 12. 31 09:20 연예
소속사 제공배윤영이 ‘2021 패션사진가의 밤’에서 상을 받았다. 톱모델 배윤영은 ‘2021 패션사진가의 밤’에서 올해의 여자 모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배윤영은 “함께 일하는 패션 사진 작가님들이 주신 상이라서, 더욱 영광이고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항상 겸손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라며 벅찬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한국의 뮬란’이라고 불리며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윤영은 2017년 S/S 프라다 컬렉션을 통해 해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시즌을 거듭하며 샤넬, 버버리, 펜디, 발렌티노, 크리스찬 디올, 토즈 등 빅쇼를 장악하며, 현재 다양한 캠페인, 매거진, 광고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BAES(배스진)’을 론칭하며 브랜드 모델은 물론 브랜딩까지 담당하며 팔색조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한편, 지난 30일 개최된 ‘2021 패션사진가의 밤‘은 한국패션사진작가협회에서 개최하는 행사로, 모델, 디자이너,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 업계 관계자들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다.
배윤영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사진가의 현실은 을 중의 을이다”(2015. 08. 18 14:18)
2015. 08. 18 14:18 사회
“지금 사진을 전업하길 희망하는 분들은 붙들어 말리고 싶다.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스스로 유명해지는 거 외에는 자신의 권리를 찾을 방도가 없다.” 박준수씨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보통 다큐 사진가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사진가 박준수씨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진가, 특히 다큐 사진가는 마치 백조처럼 생계를 위해 물 아래에서는 계속 상업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계수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다큐 사진가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과는 거리가 먼 광화문 세월호 희생자 가족인 유민 아빠의 단식현장을 사진으로 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사진가 박준수이다. 취미로 하다가 제대후 본격적으로 사진을 전업으로 삼아 일을 하고 있다.” 왜 일못유니언에 가입하게 되었는가. “사진가로서의 현실은 바로 을 중에 을이다. 특히 대행사를 통해 일할 경우 대행사와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다.” 사진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몇 년 전 타계하신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최 작가님처럼 사람 냄새 나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어떤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가. “2006년부터 전업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프로로서 돈을 받고 찍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사진을 하며 영어와 관련된 사이드잡을 유지하며 작업을 하니 일이 잘 안 되었다. 결국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다큐 사진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상업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큐는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으나 상업 사진은 광고주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시장이 레드오션이다. 그래서 외국인 대상으로 일을 받고 있다.” 외신과 일할 때 대우는 어땠는가. “외국인과 일할 때 인간적인 대우가 더 좋다. 저작권을 이야기할 때도 국내에서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몰리는데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당연스럽게 존중해준다. 최근에 슈피겔과 일해보니 일하는 방식이 체계적이고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가로서 노동시장을 평가한다면. “지금 사진을 전업하길 희망하는 분들은 붙들어 말리고 싶다.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혼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서로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아 우리의 권익을 주장하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영향력 있는 선배들이 이런 행동을 먼저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스스로 유명해지는 거 외에는 자신의 권리를 찾을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현실적인 부분을 잊으면 안 된다. 돈을 어떻게 벌고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실지가 관건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문의하는데 왜 돈 이야기를 하냐고 반문하고는 하는데, 다시 말하면 생계유지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세월호와 관련해 작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외신 통역으로 진도에 내려가 통역하며 진행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노출되지 않은 사실들이 다수 존재했고 사건 자체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였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언론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세월호 피해자와 그 가족의 존재가 관념적으로 되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 안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 유민 아버지의 단식과정을 찍은 것은 그분을 살리고 싶어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일못에게 한마디. “상처 받은 사람들끼리 오히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연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혼자가 아니다. 부당함에 맞서 외롭지 않게 같이 목소리를 내보자.” <김종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최명애의 북위66.5도](24)북극을 동경한 사진가의 ‘바람같은 이야기’(2011. 06. 22 16:27)
2011. 06. 22 16:27 문화/과학
ㆍ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호시노 미치오란 일본인 사진작가가 있다. 어려서부터 북극을 동경했던 그는 1978년 알래스카로 건너와 평생을 여기서 보냈다. 이 여행기의 ‘시스마레프’ 편에도 잠깐 나온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에 시스마레프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15권에 이르는 그의 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차례로 번역됐는데, 그 중 는 대한항공의 알래스카 취항 광고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북극박물관’ 앞에서 본 풍경. 눈을 뒤집어쓴 산이 매킨리, 원주민 말로는 ‘데날리’라고 부르는 산이다. 그 책에 컬러 화보로 실려 있던 카리부떼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야생사진이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삶과 죽음과 사랑이 가득 차 있다’라는 철학자스러운 멘트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은 유난히 초록색이 ‘쨍’하게 나오는 후지 벨비아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어떻게 보면 좀 촌스러워도 보인다. 그러나 그 투박한 사진과 세련되지 못한 글에서 나는 말로는 어떻게 설명하지 못할 진정성을 느꼈다. 지금도 느낀다. 그는 1996년 러시아 캄차카에서 불곰을 촬영하다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작정하고 연출하려 해도 쉽지 않았을 자연 다큐 작가다운 죽음이었다. “호시노 미치오는 일본인들에게 신” 나는 알래스카 중부 페어뱅크스에 와 있었다. 정확히는 알래스카대학 페어뱅크스 분교(UAF)의 ‘북극 박물관(Museum of the North)’ 복도였다. 여기엔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는 80년대 초반 이 대학 야생동물학부의 학생이었다. 호시노 미치오가 사망한 뒤 부인 나오코는 그의 사진 150여점을 대학에 기증했다. 평생 극북의 마을들을 떠돌았지만 그의 ‘집’은 페어뱅크스였다. 해안의 에스키모와 내륙의 인디언들이 교역하던 알래스카의 오랜 옛 마을. 지도에서 알래스카를 잘라 들고 연필 위에 놓으면 무게중심은 페어뱅크스에 찍혀 있을 것이다. 그 페어뱅크스에 여름이면 일본인 관광객들이 전세기까지 대절해 날아온다. 호시노 미치오 ‘성지순례’를 오는 것이다. 우리 B&B의 소심한 주인 아저씨는 “일본인들에게 호시노 미치오는 신”이라고 삐쭉거리면서도 간판 밑에 일본어로 ‘방 있음’이라고 붙여 놓았다. 북극박물관도 ‘성지순례’ 코스여서, 아니나 다를까 호시노 미치오 사진집이 오로라 사진집과 패키지로 팔리고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맞춤 상품 되겠다. 호시노 미치오 못지않게 일본인 관광객이 사랑하는 것이 오로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로라가 잘 보이는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관광객의 90%가 일본인이다. 신혼부부가 오로라를 보면 천재를 낳는다는, 관광업계 발 전설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에스키모 어린이들은 다 아인슈타인이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UAF가 자랑하는 북극박물관은 명성대로였다. 가히 알래스카의 ‘대영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알래스카에도 대학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알래스카대학 본교가 앵커리지에 있고, 페어뱅크스에 분교가 있다. 특히 UAF는 북극 연구가 특화돼 ‘북극학과’ ‘알래스카 원주민어학과’ ‘고지대 농업’ 같은 과들이 있다. 나는 언젠가 북극곰(여행 동행자)을 UAF 북극학과 석사과정에 입학시키고 나는 ‘사커맘’이 되어 두 해쯤 페어뱅크스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북극박물관을 구경하러 가는 바쁜 길에 틈을 내 학교 행정실에 들러 혹시 석 달쯤 해볼 만한 어학연수 코스가 없느냐고 물어봤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고,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서 빙하로 하이킹을 떠나고, 금요일 밤엔 ‘알래스칸 라이프스타일(Alaskan Lifestyle)’에서 곰 퇴치 스프레이며 방울 같은 것들을 사는 거다. 행정실 직원은 냉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 어학연수하러 여기까지 몇 명이나 오겠어요?” 페어뱅크스 교외를 지나가는 알래스카 송유관의 모습. 다음날은 렌터카를 몰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과 참새의 혀처럼 뾰족 내민 침엽수의 새 잎들이 점점이 찍혀, 풍경은 점묘화가의 작품 같았다. 우리는 교외의 UAF 연구소에 잠깐 들러 사향소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향소는 둥글게 말린 뿔 두 개가 갈기와 함께 달려 있는 북극 소다. 사향소떼가 씩씩거리며 눈밭을 달려오는 사진을 보면, 매머드와 함께 마지막 빙하기를 보냈어야 할 것 같이 생겼다. 연구용 사향소 농장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사향소 10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갈기는 침이라도 발라 빗어놓은 것처럼 단정하게 앞가르마가 타져 있었다. 크지도 않았다. 송아지만 했다. 나는 사향소가 매머드만은 못해도 코끼리만은 할 줄 알았다. 눈발이 붙어 있는 갈기를 휘날리며 준엄하게 인류를 꾸짖을 줄만 알았다. 나의 실망한 마음따위는 아랑곳 않고, 사향소들은 ‘영구’ 같은 얼굴을 참으로 싹싹하게도, 자꾸만 들이댔다. 한 시간쯤 달리니 알래스카 송유관이 나왔다. 북극해에서 시추한 석유를 남부의 프린스 윌리엄 해협까지 옮기는 거대한 파이프다. ‘관제 설명’은 알래스카에 강림하신 과학기술의 경이를 칭송하고 있었는데, 영구동토층에 파이프를 세우기 위해 3년간 노력한 끝에 1977년 첫 석유가 송유관 속으로 들어갔다, 석유는 프루도 베이에서 장장 800마일을 달려 한 달 뒤에야 발데즈 해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송유관 조사팀에서라도 나온 듯 면밀하게 다각도로 사진을 찍던 관광객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지구 모양의 조그만 공을 꺼내더니 송유관 이음새 틈에 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가을날 오후였다. 석유 배당금 대신 살 권리를 선택한 그위친족 그러나 알래스카 송유관은 원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연방정부는 석유가 발견되는 땅에 사는 부족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북극해에 면한 배로우는 같은 에스키모 마을이라도 부자 마을이다. 이 배당금 제도는 에스키모 ‘우민화 정책’이란 비판도 받았다. 일자리는 주지 않고, 돈만 줘서다. 정부의 ‘돈 폭탄’에도 넘어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으니, 바로 알래스카 중부의 아크틱 빌리지(Arctic Village)에 사는 그위친족이다. 광활한 알래스카를 유목하며 살아온 그들은 석유 배당금 대신 살 권리를 선택했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세금도 내지 않는다. 아크틱 빌리지를 방문하려는 자는 부족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북극곰은 몇 년 전 아마도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아크틱 빌리지를 다녀왔다. 장작을 패서 불을 때고, 원주민과 친해 보고자 순록 고기를 집어먹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단다. 페어뱅크스 시내의 ‘걸리버 북스토어’에는 알래스카 섹션이 따로 있었다. 훌륭한 서점이었다. 새 관측 가이드만 책장 하나다. 개썰매를 몰고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24번 탐험했다는 크누트 라스문센이며, 알래스카 북부 국립야생동물보호지구에 사는 덫사냥꾼 하이모 코스며, 오지의 마을과 섬들을 연결하는 소규모 독립 항공의 부시 파일럿들 이야기도 책장 가득이었다. 알래스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을 하루하루 붙여놓은 365일 달력도 있었다. ‘1년 동안 꾸준히 보시면 다시는 찍지 않으실 겁니다’라는 광고 문구도 함께다. 우리는 홀리기라도 한 듯 10권의 책을 사고, 9장의 지도를 샀다. 주머니를 탈탈 터니 39 달러와 동전 한 줌이 나왔다.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다.
최명애의 북위66.5도
[새책]클라시커 50 사진가(2005. 03. 22)
2005. 03. 22 문화/과학
◇인체의 신비 인체 여러 기관을 250여 컷의 커다란 사진에 담았다. 단순히 사진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그 자체로는 별것 없지만 인체의 모든 활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뇌를 상세히 소개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인체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신비로운 유기체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윈저 철튼 지음, 예병일 옮김, 넥서스, 3만8000원 ◇클라시커 50 사진가 ‘클라시커 50 시리즈‘의 21번째 책이다. 수공업으로 시작한 사진이 오늘날 예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정리했다. 1835년 최초의 네거티브 필름을 완성한 윌리엄 헨리 폭스를 필두로 1914년 최초로 라이카 카메라를 제작한 오스카 바르나크, 1959년 카메라에 장착하는 줌렌즈를 개발한 포익틀랜더 등 사진발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등장한다. 빌프리트 바츠 지음, 최은아 옮김, 해냄, 2만3000원 ◇원숭이가 된 유학생 저자가 독일 유학 시절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문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들이 한결같이 재미있다. 특히 지식인, 혹은 선생님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향한 신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책 전반에 걸쳐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가운데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김인석 지음, 이일선 일러스트, 똘스또이, 1만2500원 ◇유쾌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 철학자들의 ‘바깥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들도 사람이었기에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자잘한 일화가 넘쳐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서양 철학자들의 삶에도 딱딱하고 머리 아픈 문제 외에 다양한 연애담이 숨어 있고 각양각색의 삶이 있었다. 철학자들의 재미있고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철학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열대림, 1만2000원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전작 ‘풍수‘에서 땅과 관련된 조선의 역사와 사상을 말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장영실에 주목했다. 장영실은 설명이 필요없는 조선시대 최고의 발명가다. 종으로 태어나 온갖 설움을 받다 세종대왕에게 발탁돼 조선의 과학 수준을 끌어올린 그의 삶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작가는 장영실을 그저 뛰어난 발명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를 위해 장영실의 삶을 소설로 복원해냈다. 김종록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전2권 각권 9000원 ◇마이 브라더스 팜 저자는 뉴욕에서 살다 31세에 무일푼이 되어 낙향, 농장에서 일하며 훌륭하게 재기했다. 그의 직업은 ‘채소 배달꾼‘.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에 자신의 채소를 팔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성공기가 아니라 채소를 갖고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느낀 소회 등이 적혀 있다. 팁으로 수록된 38가지 채소요리법과 저자의 일기도 유익하다. 더그 존스 지음, 박여라-이진혁 옮김, 시금치, 8000원
신간

레이디경향(총 4 건 검색)

발레리노, 카메라를 들다! 사진가 박귀섭
2015. 10. 01 17:00 화제
발레리노 출신 사진가 박귀섭은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무용수의 몸을 가장 잘 아는 사진가. 그의 렌즈 속에 담긴 실루엣은 춤을 추듯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뿌 리부터 뻗어나간 기둥과 가지가 마치 살아 움직이듯 넘실거린다. 언뜻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같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 같기도 하다. 사람의 몸이 뒤엉켜 만들어낸 나무 이미지는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잭과 콩나무」의 나무줄기처럼 금방이라도 하늘을 뚫을 듯 뻗어나갈 기세다.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10명이 몸을 포개고 팔다리를 비틀어 형상화한 이 작품은 사진작가 박귀섭(32)의 ‘쉐도우’ 시리즈 중 2번 작품이다. “제목 안에 작품을 가두고 싶지 않다”라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데, 사람의 몸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또렷하게 시선을 붙잡는다. 이 작품은 얼마 전 세계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로 쓰였다.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작가가 그인 것을 알았다는 박 작가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올봄 러시아의 출판사로부터 제 작품을 책의 표지로 쓰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프랑스 판타지 소설가의 작품이라고만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베르나르 베르베르더라고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제 사진을 봤대요. 마침 러시아에서 소설이 나올 예정이었는데, 제 사진을 표지로 하고 싶다고 했다더군요. 아내가 굉장한 팬이거든요. 깜짝 놀랐죠.” 비슷한 시기 미국의 음반사 소니와도 계약을 마쳤다. 얼마 전 발매된 뉴욕의 R&B 가수 ‘LYFE’의 앨범 표지로 우연찮게 미국 진출까지 한 상태다. 세계 곳곳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사진작가 박귀섭은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약했던 발레리노. 2007년 뉴욕 인터내셔널 발레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을 만큼 실력도 뛰어났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무대를 누비는 발레리노 박귀섭을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이후 10년 넘게 발레는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하다가 학교 무용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을 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들 중에 무용을 하는 아이가 드물었는데 미술보다 더 신나 보이더라고요.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마냥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무용수의 길을 걷게 됐죠.” 전남 목포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에게 무용수의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발레를 업으로 삼겠다는 아들의 말에 1년 넘게 얼굴을 보지 않을 정도로 크게 반대하셨던 아버지는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하고 난 뒤에야 무용수 아들을 받아들이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국립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카르멘’의 솔리스트로 지목되는 등 발레리노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불현듯 사진작가로 변신한 건 2010년의 일이었다. 사진 속에 응축시킨 몸의 에너지 “춤을 추면서도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 사업에 눈을 돌리기도 했고요. 발레단에 소속된 발레리노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무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고민의 답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그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을 본 일본의 한 패션 회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를 해온 것. 단순히 좋아서 취미 삼아 찍던 사진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안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리는 듯했다. “제의를 받고 일본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며 사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어요. 사진으로 다시 새롭게 나다운 걸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최태지 단장님께 발레단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죠. 많이 혼났어요. 그동안 해온 게 아깝지 않느냐고요. 그럼에도 하루라도 빨리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발레단을 그만뒀다는 사실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대로하셨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선 서럽게 울며 다짐했단다.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한 다짐이 무색하리만큼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진의 세계는 낯설기만 했다. “사진 쪽으로는 연고나 인맥이 전혀 없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포트폴리오를 보고 먼저 연락을 해온 광고주도 제 이력을 보고 고개를 젓기 일쑤였어요. 제가 생각해도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어본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뭘 믿고 일을 맡기겠나 싶더라고요.” ‘쉐도우’ 연작 시리즈.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한 결정이었기에 부담감이 더 컸다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내겠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이를 악물고 작업에 매달렸다. 그 와중에 무용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분야였다. “사진에 매혹된 가장 큰 이유가 제 머릿속의 상상을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사람의 몸만큼 정교하고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것이 없거든요. 무용수로 살아봤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연결시켰던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몇 날 며칠을 씨름해 탄생시킨 작품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담아낸 ‘쉐도우 시리즈’다. 끝없이 뻗어나가는 뿌리, 악보 속의 음표, 검은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는 모두 무용수들의 몸으로 표현해낸 것들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전까진 사람의 실루엣으로 만들어낸 형상이란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이미지, 그야말로 발레와 사진이 만나 이루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움직일 때 가장 아름다운지 제때 포착해내는 것이 저의 장점이에요. 타이밍을 아니까요. 보통 무용수들이 10번 점프해야 나올 컷이 두세 번만에 나오거든요. 사진작가로서 피사체를 잘 안다는 건 행운이죠.” 발레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예술이다. 정지된 순간에 담아낸 이미지에는 무대에서 보는 그것과는 또 다른 에너지가 응축돼 있다. 그의 작품들이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처음 작품을 찍을 땐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사진 때문에 고생하며 참여해준 발레단 동료들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었다. 요즘 작품이 여기저기 소문이 나며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마음의 부담을 좀 덜었단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고생한 것이 잊힐 정도라고. 예술 작업에 참여하게 돼서 좋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고마울 뿐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함께 팀을 이뤄서 하는 작업이 재밌어요.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퍼즐 맞추듯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무척 즐겁고 행복해요. 발레 역시 여러 무용수들이 만들어내잖아요. 그와는 또 다른 희열이 있어요.”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멀티 아트 그는 얼마 전 새로운 작업을 마쳤다. 바로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 캠페인이다. 그가 총괄 안무를 맡은 이 프로젝트에는 26명의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참여해 담배를 피우는 순간 뇌와 폐가 받는 고통을 발레로 표현했다. 담배 연기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느껴지는 괴로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쉬 잔상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모든 사진작품의 영상화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 그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안무와 영상 작업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쉐도우 시리즈’도 영상화할 계획이 있거든요.” 그의 꿈은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까지 아우르는 멀티 아트를 구현하는 것이다. 댄서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일 생각이다. 특정 개념에 갇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다며 머쓱하게 웃는 그에게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필살기는 무용수 사진이지만 딱히 정해진 건 없어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무척이나 많아요. 사진, 영상, 연출도 하고 싶어요. 제 상상 속의 이미지를 밖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볼 계획이에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민희(프리랜서) ■사진 제공 / BAKI>
사진가 박병혁 장인의 숨결을 담다
2015. 06. 29 10:58 화제
박병혁은 지난 7년간 전국의 숨은 음식 장인들을 찾아다녔다. 깊은 울림을 가진 그의 앵글에는 가치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장인들의 땀과 숨결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숨은 장인들의 대문을 두드리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조용한 주택가. 혜화초등학교를 지나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면 사진가 박병혁(51)의 디자인 작업실이 나온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84학번. 산업사진가, 인물사진가로 30년 가까이 카메라를 잡아온 그는 얼마 전 뜻깊은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의 이름은 ‘명인명촌 아트프로젝트-꽃 피우다’. 그가 전국의 숨은 음식 장인들을 찾아가 찍은 사진들이다. 진지한 앵글로 바라본 사진에는 증류소주, 토판천일염, 황토죽염 등 사라져가는 한국 음식들과 오랜 시간 전통을 지켜온 장인들의 깊은 고집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처음 장인들을 찾아 나선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원래 1990년대 초반에 개인 작업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우리나라의 장인들을 찍어보자 마음먹고 디자이너 1명, 작가 1명과 함께 전국을 다녔죠.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초반에 잘 진행이 되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다시 장인들을 찾아 나선 건 7년 전 다리컨설팅의 정대철 대표를 만나면서부터다. 정 대표와는 안그라픽스에서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던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오던 사이. 산업자원부의 한 사업이던 ‘명인 발굴 프로젝트’를 맡게 된 정 대표가 그에게 장인들의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정 대표의 제의를 단번에 수락했다. 그때부터 전국 방방곡곡, 우리 음식과 맛을 지키고 있는 숨은 장인들을 찾아 나선 그는 깊은 내공과 세월이 깃든 장인들의 손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처음엔 사기꾼 취급도 많이 받았단다. 듣도 보도 못한 서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기를 몇 차례,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단번에 결과물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삶에 가까워져야겠다고 말이다. “한번은 전남에 매실 장인을 찾아갔는데, 분위기가 싸해요. 분위기라는 걸 억지로 만들거나 연출할 수 없는 거거든요. ‘오늘은 그냥 가겠습니다’ 하고 돌아왔죠. 그분들이 몇 대에 걸쳐 해오신 일을 단 몇 시간 만에 찍고 돌아온다는 게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사진이라면 그 인물과 친해지는 게 중요한데 제가 화술이나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자주 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1년에 적게는 4~5번, 많게는 10번 이상 찾아가 찍고 또 찍었죠.” 술 빚는 장인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 한두 잔 마시다 잠이 들면 다음날 눈을 떴고, 꾸벅 인사하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내려갈 날을 꼽았다. 그렇게 7년을 다니다 보니 아무리 무뚝뚝한 장인이라도 친해지지 않고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신뢰와 함께한 시간이 쌓여가는 만큼 장인들의 숨결이 기록된 사진도 쌓여갔다. 그동안 총 52명의 장인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절망을 딛고 발견한 새로운 시선 2012년 그는 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을 겪게 된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전담 사진가로 활동하다 강원도 선거 유세 중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 누구보다 활동적이었던 그에게 닥친 크나큰 시련이었다. 그는 본래 산업사진가였다. 국내 산업사진의 대가인 박기호 선생의 제자로 세계 곳곳의 생산 현장과 산업 현장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왔다. 대선 후보의 전담 사진가가 된 것도 생생한 유세 현장을 누빌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고 후 10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만 있었어요. 명인 발굴 프로젝트도 중단될 위기에 놓였고요. 사진을 찍던 사람이 다리를 다쳤으니 사진뿐만 아니라 인생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죠.” 그는 친구이자 동료 사진가인 박정훈 작가에게 프로젝트를 대신 맡아줄 것을 부탁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박 작가도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명인 프로젝트는 그에게서 멀어지는 듯했다. 며칠 뒤 박 작가가 다시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이건 네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다’라고요. 결국 15개월 만에 다시 카메라를 들기로 했어요. 휠체어를 타고 울진에 조청 장인인 이원복 선생을 찾아갔는데 저를 보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갑자기 낮아진 앵글이 답답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서서히 그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시선의 방향이 조금만 달라져도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 그는 자신이 볼 수 있는 ‘정직한 눈높이’에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앵글은 낮아졌지만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 “예전에 산업사진을 찍을 때는 굉장히 다양하고 와이드한 앵글로 찍었어요. 근데 휠체어에 앉아서 찍다 보니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죠. 미치겠더라고요. 생각하는 앵글은 이건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그러던 중에 예전 국민일보에 계시던 이창수 선배가 ‘이제는 형태를 찍지 말고 그 안의 것을 찍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분명 제 눈높이에서 찍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고정된 앵글 안에서 찾아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는 다시 장인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사고 후 5명의 사진을 더 찍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고의 후유증에 요즘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피사체에 눈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통증이 잊힌다. “사고 후 찍은 사진 중 이번 전시에 4점이 걸렸는데, 주변에서 하는 말이 사진이 훨씬 좋아졌대요. 편안해졌다는 말도 듣고요. 다음주에는 경남 고성에서 밀 재배를 하시는 장인을 찍으러 가요. 소풍 가는 기분이에요.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요.” 낮은 앵글로 바라보는 세상 명인명촌 프로젝트는 단순히 전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명인들의 음식을 알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소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통 과정을 돕고 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향토 음식과 열악한 환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인들을 지척에서 봐온 그는 안타까웠던 적이 많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다양한 어간장이 있었어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자취를 감췄죠. 그걸 다시 복원해서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계세요. 응원할 수밖에 없죠.” 전주에서 7대째 궁중 장을 만들어온 97세 장인은 “100세가 되면 또 한 번 멋지게 사진을 찍어드리겠다”라던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딸이 물려받아 명맥을 잇게 됐지만 여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 음식들이 많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귀한 음식과 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역할을 할 생각이다. “대부분의 향토 음식들은 장인들의 손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져요. 과학적이고 정교한 작업이죠.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모차렐라치즈를 만드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러한 작업 과정에 큰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우리의 전통 음식으로 또 하나의 한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재능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과 협업해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전국의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통한 치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사진과 영상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아이들을 몇이나 봤는지 모른다. ‘낮은 도시’라는 주제로 서울 동대문,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과 사진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쪽방촌에 ‘막내’라는 별명을 가진 할머니가 계세요. 무척 예쁘신 분인데 다리가 약하셔서 다른 분들과 잘 못 다니세요. 저와 함께 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어요. 앵글이 똑같아요(웃음). 원래 50대가 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인데 사고 덕분에 앞당겨 하게 됐어요. 낮은 시선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따스함이 있더라고요. 요즘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60대가 되면 그린란드에 가보는 것이 꿈이라 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월터 미티처럼 말이다. 뜻밖의 사고는 잠시 그를 절망에 빠트렸지만 삶에 대한 의지와 도전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그의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어리는 걸 보면 말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석영(프리랜서) ■사진 제공 / 박병혁>
요리하는 사진가 오즈의 식탁
2005. 11. 01 요리
전공은 미술, 직업은 포토그래퍼, 특기는 요리…. 자신을 ‘오즈’라 칭하는 이 남자의 본명은 이성호. 블로그를 통해 유명해진 그가 얼마 전 청담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스튜디오 붐’과 ‘오즈의 키친’이란 타이틀이 걸린 그의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요리를 카메라에 담는 남자, 오즈를 만났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화려한 요리보다 한두 가지 재료로 맛을 낸 소박한 요리가 좋다.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 칼칼한 끝맛을 남기는 페페로치노, 상큼한 토마토와 올리브유만 있으면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나만의 파스타가 완성된다. 올리브유 핫 파스타 진정으로 파스타를 즐기는 사람들은 올리브유 파스타를 최고로 꼽는다. 올리브유의 맛을 제대로 살리려면 재료의 수분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 관건. 토마토의 물기를 꼭 짜고, 삶은 파스타 역시 체에 건져 물기를 뺀 뒤 소스에 버무려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재료(1인분) 스파게티니 100g, 토마토 1개, 페페로치노 3개, 마늘 2톨, 올리브유 5큰술, 파슬리가루·굵은 소금 1큰술씩,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이렇게 만드세요! 1 페페로치노는 방망이로 찧어 곱게 다지고, 마늘도 곱게 다진다. 2 토마토는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끓는 물에 15초 정도 데친 뒤 껍질을 벗기고 잘게 다진다. 3 다진 토마토는 꼭 짜서 물기를 없앤다. 4 끓는 물에 굵은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니를 넣어 8분간 삶는다. 5 달군 팬에 올리브유 4큰술을 두르고 다진 페페로치노와 마늘을 살짝 볶다가 ③을 넣고 볶은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6 ④의 스파게티니를 체에 건져 물기를 뺀 뒤 ⑤에 넣고 파슬리가루를 뿌려 10~15초 잘 섞은 뒤 올리브유 1큰술을 뿌려 낸다. *스파게티니 : 스파게티보다 가는 롱 파스타(두께 1.6mm). *페페로치노 : 이탈리아의 마른 고추로 매운맛이 강하다. ‘오즈의 키친’의 특별한 매력을 만나다 뭔가 특별할 것 같았다. 미술을 전공하고 패션 사진을 주로 찍던 한 남자가 요리 사진을 접하면서 요리 세계에 빠져 급기야는 쿠킹 스튜디오까지 냈으니 말이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그의 애견 하이디와 멜로디가 반갑게 맞아준다.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시선을 잡는 화이트톤 스튜디오는 6개의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 요리와 사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동선이 설계된 인테리어, 그가 아끼는 갖가지 소품으로 채워진 주방이 어우러져 훌륭한 공간이 탄생했다. 틀에 박힌 요리가 싫어 요리 선생에게 배우지 않고 외국에서 사들인 책을 가지고 독학으로 마스터했다는 그의 요리는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이탈리아 요리를 베이스로 자신의 감각과 창의성을 더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창작 요리를 완성한다. 이성호라는 본명이 너무 흔해 자신을 기억해줄 만한 이름, 오즈를 탄생시킨 남자. 그가 만들어내는 요리에는 오즈의 끼와 열정이 그대로 살아 숨쉰다. 양파수프와 루꼴라샐러드 바게트와 치즈를 곁들인 양파수프는 한 끼 식사로 먹어도 충분하다. 여기에 루꼴라와 리코타 치즈로 만든 샐러드를 곁들이면 주말 브런치 메뉴로 그만. 채썬 양파는 약한 불에서 천천히 정성껏 볶아야 특유의 달콤하고 깊은 맛이 잘 우러난다. 재료(2인분) ◆양파수프 양파 2개, 올리브유 4큰술, 물 450ml, 야채스톡 2개, 바게트 2쪽, 버터 2작은술, 마늘 2톨, 피자 치즈 10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루꼴라샐러드 루꼴라 100g, 리코타 치즈 50g, 올리브유 4큰술, 레몬즙 2큰술 이렇게 만드세요! 1 양파는 잘게 채썰고, 마늘은 굵게 다진다. 2 팬을 충분히 달군 뒤 불을 약하게 줄여 올리브유를 두르고 채썬 양파를 넣어 20분 정도 볶는다. 3 ②에 분량의 물을 붓고 야채스톡을 푼 뒤 약한 불에서 5분 정도 끓여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4 달군 팬에 버터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바게트를 넣고 노릇하게 구워 마늘빵을 만든다. 5 수프 볼에 ③을 붓고 마늘빵을 넣은 뒤 피자 치즈를 듬뿍 얹어 200℃로 예열된 오븐에 6~8분 구워 낸다. 6 루꼴라는 먹기 좋게 뜯어 씻은 뒤 물기를 없앤다. 7 볼에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넣고 섞은 뒤 루꼴라와 리코타 치즈를 넣어 버무린다. *루꼴라 :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채소 중 하나. 향이 독특하며 주로 샐러드로 먹는다. 또띠아 피자 도우를 반죽해서 피자를 만들려면 최소한 2시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급하게 피자를 만들어야 하거나 배가 많이 고플 때는 또띠아가 요긴한 재료. 직접 반죽한 피자보다는 맛이 덜하지만, 바삭하고 제법 괜찮은 맛의 피자를 즉석에서 만들 수 있다. 재료(2인분) 또띠아(8인치) 1장, 토마토 1개, 말린 오레가노 1작은술, 블랙 올리브 8개, 피자 치즈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이렇게 만드세요! 1 토마토는 껍질을 벗기고 반 갈라 씨와 물기를 없앤 뒤 듬성듬성 다진다. 2 믹서에 다진 토마토와 말린 오레가노를 넣고 곱게 간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3 블랙 올리브는 0.3cm 두께로 둥근 모양을 살려 슬라이스한다. 4 또띠아에 ②를 펴 바르고 블랙 올리브를 골고루 올린 뒤 피자 치즈를 듬뿍 얹는다. 5 250℃로 예열된 오븐에 ④를 넣고 2~3분 구워 낸다. 팬케이크 4개를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작은 팬, 피자 도우 반죽도 문제없는 널찍한 도마, 소금을 뿌려 오븐에 말린 토마토와 알싸한 향이 살아 있는 마늘, 신선한 라임과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까지. 나의 부엌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인공들이다. 해물 버섯 그릴구이 이 요리는 그릴에 구워 군데군데 탄 자국이 있는 것이 매력 포인트. 버터를 바르기 때문에 특별히 간할 필요가 없고, 해물은 곁들인 레몬 소스에 찍어 먹으면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만들기도 쉽고 폼나기 때문에 파티용 술안주로 그만. 재료(3인분) 중하 3마리, 가리비·냉동 바닷가재 3개씩, 양송이버섯·표고버섯 9개씩, 아스파라거스 1팩, 버터·레몬즙 4큰술씩, 다진 타임 1큰술, 후춧가루 약간, 소스(레몬즙 4큰술, 소금 1/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이렇게 만드세요! 1 달군 그릴에 중하, 가리비, 바닷가재살, 양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를 굽다가 녹인 버터 1큰술을 붓으로 발라준다. 2 버터 3큰술은 상온에 두어 부드럽게 만든 뒤 다진 타임과 후춧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3 표고버섯은 꼭지를 자른 뒤 속에 ②를 채워 넣는다. 4 180℃로 예열된 오븐에 ③을 넣고 10분 정도 굽는다. 5 구은 표고버섯과 양송이버섯을 번갈아가며 꼬치에 꿰고 그릴에 구운 나머지 재료는 접시에 보기 좋게 담은 뒤 레몬즙을 살짝 뿌린다. 6 분량의 재료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낸다. 요리 / 오즈의 키친(517-0113, blog.naver.com/tomte) 진행 / 성하정 기자 사진 / 박형주
사진가로 활동하는 물방울 화가 김창렬의 아들 오안
2003. 10. 01 화제
“부친에게 배운 것은 몰입과 장인정신,  아버지의 길을 따라 독특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물방울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창렬의 아들 오안이 국내에서 사진작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인간군상과 길이다. 업계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해 동양적 여백과 선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의 독특한 사진작업과 그가 보고 느낀 화가 아버지의 단상, 삶. 예술. 5년간 보자르 미술대학 다니며 미술 교육 오안(奧顔, 30)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다. 오안은 사진업계에서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작가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월 말엔 성곡미술관이 주관한 ‘내일의 작가’로 선정돼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알려진 것처럼 물방울 그림의 화가 김창렬의 아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사진가 활동을 했다면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어 활동한다는 자격지심이 있겠지만 그는 그런 면에서 둔감한 편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고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국내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 해마다 국내에서 개인전을 치렀다. 파리에서는 1998년부터 그룹전에 참가했다. 아버지의 예술적 끼를 물려받은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예술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가 사진을 시작한 것은 8세 때부터이다. 물론 그때는 사진의 기능이나 창작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줌렌즈의 기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배움이 빨랐다. 그는 그때부터 사진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8세 때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것을 만졌어요. 아버지가 사주셨는데 기능이나 조작하는 방법을 몰라 몇 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엔 그때도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당시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결국 한 장도 나오지 않았어요. 얼마나 아쉽던지(웃음) 그것이 제가 여덟살 때 느낀 카메라의 기억이에요.”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 김창렬씨는 아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안은 미술보다는 사진에 더 흥미를 가졌다. 셔터를 누를 때의 촉감, 필름 감기는 소리… 이런 것들이 무작정 좋았다. 결국 김창렬씨는 아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사진은 제 체질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경우는 한번 작업실에 들어가시면 보통 한달 내내 꼬박 밤샘을 하시면서 그림을 그리세요. 또 작업하시는 것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몰입해서 그림 그릴 때가 많은데 저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적도 있어요. 막상 아버지가 그림 그리시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까진 못할 것 같고… 나에게 잘 맞는 창작을 해보자고 생각했지요 그게 바로 사진이었어요.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물들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슬하에 있으면서 몰입하는 방법과 장인정신을 배웠다. 무언가 한 가지 일에 빠져보는 것. 또 그것을 창작열로 불태워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아버지가 ‘몰입’의 대가이니 장인정신을 배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물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발산됨을 알 수 있다. 피는 속일 수 없다던가. 그는 파리국립미술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졸업할 당시엔 97년 졸업생 전시회에서 사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8년부터 2003년까지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는 의욕적으로 전시를 하며 자신의 색깔을 알려나갔다. 99년엔 프랑스국립예술센터의 주문을 받아 젊은 음악가라는 사진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고 2000년부터는 해마다 의욕적으로 개인전을 치렀다. 사진의 주된 소재는 인간군상과 끝없는 길 그의 작품은 대부분 흑백으로 처리된 것이 많다. 특히 그가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무한하게 뻗어 있는 ‘길’과 ‘인간군상’이다. 그 군상 속엔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 작업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소재가 된 것. “가끔 아버지가 작업하시는 것을 사진으로 옮길 때가 있어요. 무언가 한 가지 일을 놓고 매진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던 거죠. 그런 면에선 길과 군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길을 통해 인간이 걸어가야 할 인생, 또 인간군상을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지요.” 그런 아들의 작품에 대해 아버지 김창렬씨는 인색한 편이다. 칭찬을 잘 해주지 않는 것. 그러나 아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날은 반드시 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래서 눈앞에서는 절대로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애정어린 조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오안은 느낀다고. “이제까지 아버지가 제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 일은 단 한번도 없어요 그렇지만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은 늘 해주세요.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작품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이치겠지요. 그래서 저도 작업을 할 때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해요. 작품의 질이나 가격은 그 다음 문제인 거죠.” 아버지의 그림을 사랑하긴 하지만 오안은 아버지의 그림처럼 사실적인 사진작업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물방울 같은 사실적인 묘사는 아버지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저는 아버지의 사실적인 작품 성향보다는 추상적이면서도 내면의 깊이를 측량할 만한 그런 독특한 사진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아버지와 제가 다른 점일 수 있어요. 전 평면작업보다 공간과 내면세계를 결합한 그런 예술이 좋거든요.” 그런 신념이 작품으로 전이됐던 것일까. 그는 지난 97년 국립음성영상연구소에서 비디오 작품을 발표, 사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아버지가 그의 작품에 대해 어드바이스가 없는 편이라면 그의 어머니 마틴(61)은 아들의 작품에 적극적이다. “어머니의 경우엔 자유롭고 평화롭게 표현하라는 주문을 많이 하세요. 사진작업이란 것이 일반 회화와 달리 사실적인 호소력이 강하잖아요. 어머니는 그런 부분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4번, 프랑스에서 5번 정도 전시회를 가졌지만 앞으로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열 생각이다. 국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외국의 경우엔 작품의 판매에 따라 그 작가의 인기를 측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 화단에서는 그의 사진 가격이 고가는 아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이 어느 정도 팔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직 흡족할 만큼 작품이 팔린 것은 아니라면서 내년엔 좀더 넓은 전시장에서 소품이 아닌 대작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30세. 결혼할 나이겠건만 그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인기작가가 돼야 장가도 가고 집도 마련하지 않겠냐고 너스레를 떤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직 제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이제 5년차 사진작가인 만큼 좀더 작품 활동을 한 이후에 결혼하고 싶어요. 현재 적을 두고 있는 곳은 파리예요. 국내에서 작가로 활동을 원활하게 하려면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뜻을 이룬 아버지처럼 저 역시 아버지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9월 1일 프랑스로 떠난 오안. 그는 내년 이맘때 다시 새로운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글 / 연세영 기자  사진 / 배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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