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0 건 검색)
- 삼청교육대 진실규명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 구제…“2억원 지급하라”
- 2024. 11. 06 11:15사회
- ...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신청을 받았다. 현재까지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는 총 564명이다. A씨는 1980년 10월 삼청교육대에 입소해 약 3년간 강제로 순화교육을...
- 진실화해위대한법률구조공단인권침해삼청교육
- 법원 “국가가 삼청교육대 ‘보호감호’ 피해자들에 손해 배상해야”
- 2024. 10. 10 11:28사회
- .... 이날 재판부가 법정에 출석한 피해자들에게 고지한 손해배상액은 각 1000만~2억4000만원이다. 삼청교육대 사건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계엄포고 제13호에 의해 군부대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하고, 약...
- 삼청교육대보호감호
- 법원 “삼청교육대 ‘보호감호’ 피해자들에 국가 배상해야”
- 2024. 07. 06 14:48사회
- ... 판결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재판장 김동빈)는 지난 3일 삼청교육대 피해자 19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300만~2억80000만원을 지급하라”고...
- 삼청교육대
- 야학·학생운동 했다고 가혹행위, 삼청교육대는 출소 후에도 관리…진실화해위 진실규명
- 2024. 06. 27 12:00사회
- ... 진실화해위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164명도 추가로 진실규명했다. 이로써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는 총 564명으로 늘었다. 삼청교육 피해사건은 1980년 8월 4일 계엄포고 제13호에 따라...
- 노동야학연합회민주화추진위원회삼청교육대
스포츠경향(총 6 건 검색)
- ‘선녀들’ 전현무, 삼청교육대 실체에 경악×분노
- 2021. 09. 12 13:41 연예
- MBC 제공전두환, 신군부의 인간 개조 프로젝트 ‘삼청교육대’ 실체가 공개된다. 오늘(12일) 방송되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 : 마스터-X’(연출 한승훈/이하 ‘선녀들’)에서는 서슬 퍼런 제5공화국 시절을 다루는 현대사 특집 2탄으로,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 만든 ‘삼청 교육대’ 실체를 이야기한다. 이날 전현무, 김종민, 유병재는 삼청교육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확인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전국 불량배를 소탕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알려진 삼청교육대에는 사실 억울하게 끌려온 죄 없는 사람들도 다수였다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순화 교육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삼청교육대 실상은 무작위로 사람들을 잡은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선녀들’은 싸움을 말리다가, 혹은 신분증이 없어서, 심지어 낮잠을 자다가 끌려온 황당한 연행 사유들에 귀를 의심한다. 전현무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을 해야지. 이게 말이 되냐”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무엇보다 지옥으로 묘사된 삼청교육대의 실상은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삼청교육대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인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혹한 일들이 이 곳에서 벌어졌다. 급기야 삼청교육대 안에서는 폭력으로 사망자까지 속출했다. 과연 ‘선녀들’이 확인한 삼청교육대 실상은 무엇일지 이목이 집중된다.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삼청교육대에선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지, 9월 12일 일요일 밤 9시 5분 방송되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 : 마스터-X’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역사 예능
- 이인영 “황교안, 박찬주 삼청교육대 발언 분명한 입장 밝혀라”
- 2019. 11. 05 10:08 생활
-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5일 자유한국당 영입대상으로 검토돼 논란을 빚은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기자회견과 관련, 황교안 대표의 해명을 공개 요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황 대표는 박찬주의 망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며 “어제 (박 전 대장의) 기자회견은 국민의 귀를 의심케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갑질을 정당화하고, 갑질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삼청교육대를 보내야 한다는 막말에 한탄마저 나온다”면서 “참혹, 당혹, 궤변의 삼박자였다. 이제는 황 대표가 나설 차례”라고 말했다. 그는 “왜 구시대 인사를 1호로 영입하고자 했는지, 삼청교육대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라”면서 “박 전 대장의 생각과 황 대표의 생각이 같은지 거듭 해명을 요구한다. 황 대표는 국민의 우려에 직접 나서 소상히 대답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제1야당인 한국당이 극우정당화 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의 걱정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 대해선 “더 겸손하게 쇄신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는 다짐을 나눴다”면서 “세계 경제가 동반하락하는 엄중한 경제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집권여당으로서 시급한 민생현안을 해결하고, 더 깊이 혁신하는 민주당이 되겠다”고 했다. 또한 아세안 10개국 및 한국, 중국, 호주, 일본, 인도, 뉴질랜드 등 16개 국가가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전날 타결된 데 대해 “우리의 새로운 전략적 경제 파트너인 아세안 국가와 신남방정책의 결실을 맺는 것이라 더 뜻깊다”면서 “국회에서 차질없이 비준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선 “한일관계를 슬기롭게 푸는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내와 끈기로 거둔 결실로 평가하고 응원과 박수를 보인다.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해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삼청교육대 사건’ 핵심적 역할?
- 2015. 02. 03 11:28 생활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에서 삼청교육대 사건과 관련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3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인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후보자는 삼청계획 수립과 집행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 공로로 보국훈장광복장을 받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출석 9개월간의 원내대표직 소회를 이야기하고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권호욱 선임기자진 의원의 의혹 제기 근거는 2007년 12월 발간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종합보고서다. 여기서 언급한 삼청교육대 사건은 1980년 7월 국보위가 입안한 ‘불량배 소탕계획’(삼청계획 5호)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약 4만여명을 삼청교육대에 수용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케 한 사건이다. 이 후보자가 소속돼 활동했던 국보위 산하 내무분과위원회는 불량배 첩보 수집과 검거, 신고·자수권유 조치, 사후 관리 등 업무를 수행했다. ‘불량배 현황’과 함께 리스트를 작성하고 사전 검거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치안본부 기획감사과 경정으로 근무하다가 국보위 내무분과위 행정요원으로 파견됐다. 진 의원은 국회 5공 청문회 때 김만기 전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장의 증언을 인용해 “행정각부 실무자가 파견 요원으로 참여해 해당 부서의 관련 업무를 협의·조정했다고 한다”며 “따라서 이 후보자는 삼청계획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 공로로 훈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진 의원은 행정자치부에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국가기록원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둔 상태라고 덧붙였다. 진 의원은 “삼청교육대 사건은 위법한 포고를 근거로 한 위법한 조치”라며 “이 후보자는 삼청교육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입장을 밝히고 국보위 내무분과위에서 담당했던 자신의 역할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임창정, 삼청교육대 학력위조?
- 2007. 08. 16 22:00 연예
- 영화 ‘만남의 광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임창정도 ‘학력위조’를 했다? 현실 속에서의 얘기였다면 요즘 분위기 속에서 임창정도 무사하기 힘들겠지만 다행히 영화 속에서다. ‘만남의 광장’에서 임창정은 어수룩하면서도 집요한 구석이 있는 시골청년 공영탄으로 출연한다. 때는 계엄하의 1980년대,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한 그는 삼청교육대가 교육대학인 줄 알고 갔다가 죽도록 고생한다. 그러나 전화위복인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삼청교육대 훈련장에서 이탈한 임창정은 시골분교에 새로 부임할 선생님을 기다리던 강원도 산골마을의 주민들과 만난다. 주민들은 삼청교육대에서 왔다는 임창정을 삼청 교육대학을 나온 신임교사로 착각한다. 본의 아니게 학력을 위조, 가짜 선생님이 된 것이다. 실제 임창정은 중앙대 영화학과 출신. ‘만남의 광장’은 1980년대 휴전선 때문에 30년 전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이 가족상봉을 위해 국가적으로 엄청난 일을 벌인다는 스토리를 가진 코미디 영화다. 류승범이 부임하던 중 지뢰를 밟아 꼼짝달싹 못하는 선생님 역으로, 박진희가 비밀을 가진 마을 이장의 처제로 출연한다. 〈최재욱기자〉
주간경향(총 2 건 검색)
- [사물의 과거사](5)국수 먹다 끌려간 삼청교육대···영겁 같은 ‘3년 18일’(2022. 10. 21 11:08)
- 2022. 10. 21 11:08 사회
- 스무 살 임철원(가명)은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앞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터미널을 오가는 승객들에게 신문과 잡지를 파는 청년이었다. 그날도 포장마차에서 국수로 한끼 식사를 때우려는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의 팔을 낚아챘다. 경찰관들이었다. 조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팔로 통나무를 받쳐들고 훈련을 받고 있는 삼청교육대 피해자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는 마산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관들은 ‘버스 승객들에게 껌을 강매했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런 적 없다”며 저항하는 임철원에게 주먹이 연거푸 날아들었다. “4주만 갔다 오면 되는데 그거 하나 못 쓰나” 하고 회유하기도 했다.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매를 맞았다. 결국 거짓 자술서를 썼다. 그리고 다음 날로 어느 군부대로 끌려갔다. 그곳이 바로 ‘삼청교육대’. 1980년 8월의 일이었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삼청교육 피해사건 조사보고서> 중 진술 일부 재구성) 흔히 연병장 가득 모인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목봉체조와 원산폭격을 하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삼청교육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깡패 같은 사람들을 잡아다 힘든 군사훈련을 시켰다’는 것이 삼청교육대의 ‘진실’은 아니었다. 1980년 7월 29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입안한 삼청계획 제5호 및 계엄포고 제13호에 따라 계엄사령부 지휘 아래 군경은 8월부터 약 6만명의 대상자를 검거했다. 그 가운데 약 4만명을 1981년 12월까지 순차적으로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에 수용했다. 순화교육, 근로봉사, 보호감호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가 발생했다. 교육 중 사망자 54명, 출소 후 후유증 사망자 최소 367명 등 확인된 사망자만 421명에 이른다. 삼청교육대 검거는 전국적인 ‘작전’이었다. 1980년 8월부터 약 6개월간 총 5회에 걸친 일제 검거에 군·경 약 80만명을 투입했다. 모두 6만755명을 법관의 영장 발부 없이 검거했다. ‘불량배 소탕’이라는 명분이 무색하게, 전체 피검자 중 35.9%가 전과 사실이 전혀 없었다. 검거된 사람들에게는 A-B-C-D 등급을 매겼다. B-C등급 약 3만9742명을 대상으로 26개 부대에서 모두 11차례의 순화교육을 실시했다. 새벽 6시부터 하루 16시간씩, 육체훈련과 자아반성 등 정신교육을 진행했다. 개선이 없는 자는 ‘특수교육대’에 입소시켜 더 심한 훈련을 받게 했다. 학생, 여성, 노동조합 간부 등에 대해서도 별도의 순화교육을 시행했다. 보통 삼청교육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장면이 바로 ‘순화교육’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순화교육이 끝난 뒤에 ‘미순화자’로 분류된 약 1만명은 전방 20개 사단에 수용돼 근로봉사를 해야 했다. 1980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9차에 걸쳐 전술도로공사와 방어시설 보강공사에 투입했다. 3개월간 계속된 근로봉사 중에도 순화교육을 병행 실시했다. 근로봉사가 끝나면 또 보호감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보위는 1980년 12월 사회보호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1월 삼청교육생들이 이 법의 최초 피적용자가 됐다. 이른바 ‘미순화자’로 분류된 8000여명은 각각 1년에서 5년까지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재판도 없이 군부대나 감호소에 계속 수용돼 순화교육과 근로봉사를 또다시 겪어야 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국수를 먹다 끌려간 스무 살 임철원도 1980년 8월 4일부터 군부대로 끌려가 순화교육을 받았다. 이어 근로봉사와 보호감호도 피해가지 못한 그는 1983년 8월 22일 출소했다. 그가 사회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만 3년 하고도 18일이었다. “4주만 갔다 오면 된다”던 경찰관의 말은 틀렸다. 3년 18일이면 ‘지옥’이 끝날 거라는 임철원의 생각도 틀렸다. 그 뒤로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삼청교육대라는 족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웃과 사회의 왜곡된 시선은 끝나지 않는 형벌이었다.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다들 어떻게든 알게 되니 아이들을 키우기가 힘들어 스물몇 번 이사를 했다. (…) 회사에 다니고 싶어 이력서도 많이 냈지만 중범죄자 취급을 받아 번번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연합뉴스 <“40년 지났어도 도망가는 꿈”… 끝나지 않은 삼청교육대 악몽> 김치연 기자, 2022. 7. 24.) 지난 6월 7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삼청교육 피해사건’의 진실을 규명했다. 과거 정부는 삼청교육 피해자의 범위를 ‘상이·사망한 자’로 제한했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결정을 통해 강제입소한 모든 사람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2018년 삼청교육의 법적 근거였던 계엄포고 제13호가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위헌·무효라고 결정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계엄포고 제13호에 근거해 이뤄진 순화교육 및 근로봉사는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고, 국제·국내 규범이 금지하는 강제노역을 동반한 인권침해였다고 판단했다. 계엄포고 제13호 및 구 사회보호법에 의해 이뤄진 보호감호도 신체의 자유뿐 아니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인권침해라고 봤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삼청교육대 입소자 전원에 대한 배상 방안 마련, 피해자 트라우마센터 설치, 계엄법·사회보호법 유죄 확정판결 피해자에 대한 재심 등을 정부에 권고했다. 계엄포고 제13호를 발령한 1980년 8월 4일, 임철원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어긋난 인생을 바로잡으라는 권고는 그렇게 빨리 이행되지 않을 것이다. 4만명의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데 주저함이 없던 국가는 ‘진실’ 앞에서는 법이니, 예산이니, 사회적 합의니 하는 말들을 앞세우며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낸다. 스무 살 신문팔이 청년 임철원에게 너무나 긴 ‘3년 18일’이 계속되고 있다. ※삼청교육 피해사건은 1980년 계엄사령부 지휘 아래 군경이 약 6만명의 대상자를 검거하고 그중 약 4만명을 순차적으로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에 수용해 순화교육, 근로봉사, 보호감호를 시행했으며, 다수의 사망·부상자를 발생하게 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다.
- 사물의 과거사
- [주간 舌전]“군인권센터 소장은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2019. 11. 08 15:41)
- 2019. 11. 08 15:41 정치
-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공관병 갑질’로 물의를 빚었던 박 전 대장은 11월 4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갑질 의혹’을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삼청교육대 입소 대상으로 지목했다. 회견 이후 논란이 일자 자유한국당은 제21대 총선 1차 인재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던 박 전 대장을 영입리스트에서 제외됐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 / 김정근 기자 박 전 대장은 회견 다음날 이뤄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삼청교육대 발언’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그는 “(임 소장이) 극기훈련을 체험해봄으로써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전 대장의 발언을 두고 심리학자 황상민 교수는 한겨레TV에서 “전두환과 박정희식 정치를 따르는 정치 지망생의 선택”이라며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풋풋한 정치 지망생의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박정희 정치’에 대한 박 전 대장의 뚝심이 통한 것일까. 우리공화당이 박 전 대장에게 적극 영입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박 전 대장은 우리공화당 입당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공화당 측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11월 7일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TBS 라디오에서 “박 전 대장에게 ‘보물을 보물처럼 대접해야지 그렇게 막 내둘리는 게 어디 있나’라고 말했더니 박 전 대장이 ‘결국은 공화당으로 가야 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박 전 대장은 총선에 나갈 태세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로 정체성을 구축한 박 전 대장의 전략이 과연 총선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 주간 舌전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영화‘삼청교육대’로 영화감독 데뷔하는 스타 PD 김재형
- 2005. 11. 01 연예
- “제작비 1백억의 대작, 작품에 진짜 담고 싶은 것은 ‘인간’입니다” 김재형 PD가 영화로 돌아왔다. SBS-TV ‘왕의 여자’ 조기 종영 후 “반드시 더 좋은 작품으로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말한 지 3년 만이다. 과거 영화 연출 경험이 있지만 스스로 이번 작품이 첫 영화 데뷔작이라고 말하는 김재형 PD. 스타 PD라는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김재형 PD를 만났다. “흥행은 부담 없는데, 팬들의 기대는 부담되네요”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사람에게는 대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김재형(68) PD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가지런히 정리한 백발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이 전해졌다. 악수를 통해 전달되는 손 힘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싸움터에서 평생을 살아온 백전노장에게서 느낄 수 있는 무게감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목젖을 두어 번 휘감은 후에 밖으로 흘러나오는 특유의 목소리로 드라마 현장을 진두지휘하던 김재형 PD가 이번엔 영화에 도전한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80년대 사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한 삼청교육대를 소제로 만든 영화 ‘삼청교육대’다. “과거에도 영화를 만든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첫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80년대를 산 사람으로서 시대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청교육대는 ‘인권 유린’에 국한돼 있는데, 극을 연출하는 감독으로서 신문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고발이 아닌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참 사랑’ 이야기를 남녀 주인공을 통해 다루려 합니다.” 한평생 오직 드라마만을 고집하던 그가 영화라는 장르에 도전하자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저는 44년 동안 드라마를 만들던 사람입니다. 후배들이 이번 영화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고 격려해줬습니다. 후배들의 응원에 힘입어서라도 새로운 영화 역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재형 PD는 지난 1961년 KBS에 입사해 국내 최초 연속 사극인 ‘국토만리’를 연출했다. 이후 일일 연속 사극인 ‘사모곡’을 비롯해 ‘연화’ ‘인목대비’ ‘별당아씨’ ‘임금님의 첫사랑’ ‘한명회’ 등 ‘김재형이 만들면 시청률은 걱정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그가 ‘스타 PD’라는 화려한 이력을 접고 현역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저는 드라마와 영화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배우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습니까? 연출도 마찬가집니다. 장르가 아닌 작품으로 다가서야합니다. 선 긋듯이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 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 ‘삼청교육대’는 순수 제작비만 80억가량 들어간 대작이다. 거기에 마케팅 비용까지 합산하면 총제작비는 1백억원이 훌쩍 넘어간다. 김재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갖던 팬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텐데도 노장은 자신만만한 기색이다. “이번 영화가 제작비 1백억 이상이 든 대작이지만, 제가 그동안 연출한 드라마들도 그에 못지않은 제작비를 쏟아 부었습니다. 최근에 맡은 드라마만 해도 편당 2억에서 2억5천만원의 제작비가 소요됐습니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데, 팬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느낍니다. 꼭 돈을 많이 썼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의욕적으로 뛰어든 이상 좋은 화면을 얻기 위해 예산을 늘리면 늘렸지 삭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영화를 맡기까지 그는 1년여를 고민했다. 영화 제작사는 지난 1년 동안 김재형 PD에게 연출을 맡아 줄 것을 청했다. 특히 올 4월부터는 영화사 대표가 직접 김재형 PD를 따라다니며 청했다고. “1년 전부터 작품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감독 제의를 받은 것은 올 4월이었는데 바로 승낙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평생을 사극을 만든 사람으로서 갖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히고 연출을 수락했습니다.” 사극의 대부 김재형 PD. 그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2백 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왜 역사에 집착하는 것일까? “제 작품의 85%는 역사물입니다. 제가 시대극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선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를 극으로 옮기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이 일구지 않은 땅에 터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닦아놓은 밭에 씨를 뿌려 열매를 얻는 것은 나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사극에 매진했습니다.” “진정으로 작품 속에 담고 싶은 건 ‘인간’이죠” 한국 사극의 대부 김재형 PD의 이력은 화려하다. 무려 45년 동안 2백50여 편의 드라마를 연출했으며, 그중에는 드라마 제목보다 연출가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도 다수다. ‘여인천하’ ‘용의 눈물’ ‘한명회’ 등은 제목보다 연출을 담당한 그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픔의 시간은 있었다. 바로 지난 2003년 80부작으로 예정한 ‘왕의 여자’를 조기 종영한 것. “연출 경력 4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스스로 말한 것처럼 처음 경험한 시청률 부진이었다. 김재형 PD는 처음 ‘왕의 여자’ 연출을 맡은 때,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누구나 그냥 딱 보고 ‘아, 이건 김재형이라는 녀석이 만들었구나’ 하게 갑니다. 재미있게, 한껏 재미있게, 그리고 강하게. 시청률, 이번엔 50% 한번 해볼랍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사실이다. 그의 자신감 못지않게 ‘왕의 여자’는 재미있었다. 특히 그만의 장기인 권력 투쟁과 암투 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또 남녀간의 사랑도 애틋하게 다뤘다. 한번도 시청률이 부진한 적이 없던 김재형 PD지만 ‘왕의 여자’는 동시간대 방송된 ‘대장금’의 벽을 넘진 못했다. 당시 ‘대장금’은 5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왕의 여자’는 고작 8%의 시청률에 머물렀다. ‘왕의 여자’를 연출하기 바로 전인 2002년 ‘여인천하’ 방영 당시 ‘대장금’의 이병훈 PD가 연출한 ‘상도’와 맞붙어 동일 시간대 시청률 압승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열 달 동안 배앓이를 해 낳은 자식처럼 수년간의 준비 끝에 선보인 작품이 시청률 부진이란 이름으로 조기 종영됐어도 백전노장 김재형은 담담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그는 난생 처음 경험한 시청률 부진이 전부 연출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청자에게 애초에 예정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조기 종영하게 됨을 사과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이 ‘왕의 여자’ 홈페이지 게시판에 드라마 조기 종영 반대의 글을 올리고 방송국 관계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다”며 “반드시 더 좋은 작품”으로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드라마를 매듭지었다. 그는 “드라마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 속에 진정 담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연출가 김재형. 국내 최초로 안방극장에 사극 열풍을 몰고 온 그가 영화계에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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