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414 건 검색)
- 성폭력 저항 ‘유죄’ 60년 만에 재심 길 열린 최말자씨 “우리 후손에겐 이런 피해 없어야”
- 2024. 12. 20 14:33 사회
- ... 모임 공간 상연재에서는 박수와 환호 소리가 쏟아졌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최말자씨(78)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지 60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한 재심 가능성이 열린 것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 ‘1979년 12·12 군사 반란일’ 맞춰 5·18 성폭력 피해자들, 손배소송
- 2024. 12. 12 21:08 사회
- ... 청구 금액은 강제추행·강간·특수강간 등 가해 행위와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정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은 처음이다. 이들은 12월12일에 맞춰 소장을 제출했다. 5·18민주화운동의...
- 12월 12일, 국가상대로 손배청구소송 청구하는 ‘5·18 성폭력’ 피해자들[플랫]
- 2024. 12. 12 17:44 사회
- ... 피해자, 44년 만에 손잡고 세상으로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후대까지 대물림된 ‘5·18 성폭력’의 상처…“국가치유센터가 적극 나서야” 이들은 12월 12일에 맞춰 소장을 제출한다....
- 플랫
- 5·18 성폭력 피해자들, ‘12·12 군사 반란’에 맞춰 국가를 상대로 손배청구소송 함께 나선다
- 2024. 12. 12 11:43 사회
- ....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인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홍보 담당인 김선옥씨(66)는 “피해자들이 고령이고 이씨처럼 아픈 경우도...
스포츠경향(총 254 건 검색)
- [단독] ‘데이트 성폭력 피소’ 허웅, 수서서 이첩 뒷말
- 2024. 08. 05 14:24 스포츠종합
- 전 연인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허웅(부산 KCC)이 서울 수서경찰서로 사건을 재이첩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 연인을 폭행하고 성폭행한 의혹을 받는 허웅(부산 KCC)이 주거지를 옮겨 사건을 재이첩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지난 2일 허웅에 대한 ‘강간상해 혐의’ 고소 사건을 서울 수서경찰서로 이관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허웅의 전 연인 A씨는 지난달 9일 허웅에 대한 강간상해 혐의 고소장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접수했다. A씨 측은 허웅이 2021년 5월 13~14일 무렵, 서울 소재 호텔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다 다툼이 벌어지자 허웅이 A씨를 폭행해 치아(라미네이트)를 손상하게 만들었고, 이후 주위 시선이 집중되자 허웅이 A씨를 강제로 호텔방으로 데려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해 두 번째 임신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지난달 12일 한 차례 고소인 조사를 마쳤으나 허웅은 현재까지 피고소인 조사를 받지 않았다. 허웅 측은 A씨가 사생활을 언론 등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3억원을 요구했다며 A씨를 공갈미수와 협박 등의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A씨는 허웅과 수년간 교제하면서 두 차례의 임신과 중절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웅의 본래 주소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허웅이 속해 있는 부산 KCC 클럽 하우스 또한 인근에 위치해있다. 허웅이 부산 KCC로 이적한 2022년 시즌부터 오랜 시간 거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허웅이 구단 클럽하우스와 거리가 있는 서울 수서경찰서 관할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긴 뒤, 이송을 요청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관할쇼핑’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수완박 이후 피의자들이 조사받기 전에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아마 경찰이 사건종결권을 가지게 되어 피의자 또는 피의자의 변호인이 친분이 있는 경찰이 근무하는 관할 경찰서로 주소지를 옮기면 혜택이 있을거라는 기대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하나의 수사 트렌드가 되는 추세”라며 “실제로 최근 경찰출신 로펌 고문들이 경찰들과 결탁하여 수사정보를 유출하다 적발돼 구속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고 했다.
- 단독
- 기성용 ‘성폭력의혹’ 제기 폭로자, 변호사에 손배소 패소
- 2024. 08. 03 10:27 축구
- FC서울 기성용이 동료 선수들을 격러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기성용(FC서울)의 학창시절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폭로자들이 기성용의 법률대리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 이건희 판사는 최근 성폭력 의혹 폭로자 A씨와 B씨가 기성용 측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기성용의 초등학교 시절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이들은 기성용의 법률대리인 송상엽 변호사가 자신들을 ‘대국민 사기극 피의자’ 등으로 표현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2021년 5월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기성용의 입장은 성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며 원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원고들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 피의자’라는 표현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의뢰인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로 지칭된 의뢰인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변호하는 입장에서 의뢰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A씨와 B씨는 2021년 2월 2000년 초등학교 시절 기성용으로부터 성폭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기성용이 자신들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할 시 폭행 등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폭로자 측 법률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기성용 또한 입장을 내고 “보도된 기사 내용은 저와 무관하다. 결코 그러한 일이 없었다. 제 축구인생을 걸고 말씀 드린다”며 “사실이 아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축구인생과 가족들의 삶까지도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임을 깨달았다.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후 폭로자 측과 기성용간의 추가 폭로와 반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당시 기성용 법률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 서평 송상엽 변호사는 “대국민 사기극 피의자 중 한 명이 수사를 받았다. 피의자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두 달 가까이 수사기관 조사를 미뤄왔다”며 “그들과 달리 기성용은 대국민 사기극 수사에 정정당당하게 협조하고 있다. 대국민 사기극이 반드시 처벌받도록 국민들이 함께 감시해달라”고 했다. 송상엽 변호사의 이와 같은 당시 발언이 이번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이어진 것이다. 기성용은 A씨와 B씨를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됐다.
- 황의조, 태극마크 되찾을 확률은 4% 미만…검찰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
- 2024. 07. 11 18:11 축구
- 황의조. 연합뉴스. 불법 촬영 혐의를 받고 있는 황의조(32·튀르키예 알란야스포르)가 태극마크를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1부(김지혜 부장검사)는 11일 황의조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고 밝혔다. 황의조는 성관계 중 상대방을 불법 촬영하고,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신상 관련 정보를 공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황의조가 해당 혐의로 입건되자 축구대표팀에서 잠정 배제했다. 황의조는 지난해 6월 전 연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과 여성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 네티즌을 협박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불법 촬영 정황이 포착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고, 지난 2월 검찰에 송치됐다. 동영상을 올리고 황의조를 협박한 인물은 그의 형수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황씨의 형수는 1심에 이어 지난달 열린 2심에서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황의조는 지난해 11월 18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직후인 21일 중국 원정에 동행해 경기까지 출전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협회는 수사기관의 명확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황의조를 국가대표팀으로 부르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복귀 조건은 수사기관의 불기소 처분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이날 황의조에게 죄가 있다고 기소 의견으로 재판에 넘기면서 복귀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황의조가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까지 받는다면 축구계에서 제명될 가능성도 있다.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운영 규정 제14조에서는 폭력, 성폭력, 체육인으로서 품위를 심히 훼손하는 경우를 징계 대상으로 삼는다. 유형별 징계 기준을 살펴보면 ‘범행 과정을 촬영 또는 유포한 경우 등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 등 성폭력을 저지른 자에겐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을 처분할 수 있다. 황의조가 제명을 피하더라도 국가대표 선수로 그라운드를 밟을 가능성은 사라진다. 축구 국가대표 운영 규정상 결격 사유를 규정한 제17조 4항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5년이 지나지 않거나,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않는다면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공정위원회에서 성희롱, 성매매 또는 성폭력과 관련된 비위 행위로 자격정지 1년 이상 징계를 받은 경우도 A매치를 뛸 수 없다. 황의조가 살 길은 무죄 판결이 유일할 전망이다. 그러나 2022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혐의자 중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비율은 3.48%다. 황의조가 태극마크를 되찾을 확률도 그만큼 희박하다. 과거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축구 스타가 그 빛을 잃은 채 추락하고 있다.
- ‘성인 페스티벌’ 앞두고 여성단체 반발···“심각한 성폭력”
- 2024. 03. 13 02:00 연예
- 수원여성의전화 제공 오는 4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릴 예정인 성인페스티벌에 개최를 놓고 지역 사회에서 논란이 일고있다. ‘2024 K-XF The Fashion 성인 페스티벌’은 민간 컨벤션센터인 ‘수원메쎄’에서 다음 달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40여 개 성인용품 업체 부스 등이 참여하는 행사다. 수원여성의전화 등 7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수원여성단체네트워크와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12일 수원역 문화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행사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성의 신체를 ‘놀이’로 소비하고 있기에 심각한 성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주)플레이조커 측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난해 12월 광명시에서 첫 행사가 열린 바 있다. 두 번째인 이번 행사는 성인 인증을 거친 입장객이 입장료를 내고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행사장에서는 일본 성인비디오(AV) 배우들과 사진 촬영 등 이벤트와 란제리 패션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주)플레이조커 지역 여성단체들은 이 행사에 대해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성매매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문화를 조장하는 공간, 여성을 성 착취하는 장에 불과하다”며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상품화하는 행사 개최를 당장 중단하라”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추최 측은 관련 홈페이지에 “한국에서도 성인문화를 접하는 것이 더 이상 감추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으며, 대규모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고양에서 열린 첫 행사 때에는 1000여 명이 참가했고, 이번 행사에는 1만 여명의 참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성인페스티벌은 행사장에서 50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경향(총 23 건 검색)
- [취재 후] 성폭력 피해자들은 더 많이 말해야 한다(2024. 07. 10 06:00)
- 2024. 07. 10 06:00 사회
- 이혜리 기자 성폭력 피해자를 취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떤 독자들은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피해자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 아니냐 할지 모른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는 피해자에게 피해 본 과정을 세밀하게 묻고, 또 묻는다. 각종 자료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교차 검증도 한다. 피해자로서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되뇌어야 하고,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취재에 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는 숨겨지지 말아야 한다는 게 2018년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의 취지였다. 이는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뒀던 성폭력 피해를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공적인 공간에서 말하면서 함께 해결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주축은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해 대검찰청 통계 기준 성폭력 범죄자의 96.5%는 남성, 피해자의 87.5%는 여성이었다. 여전히 피해는 피해로 다뤄지지 못한다.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했어요. 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는 범위에서 조금 벗어나니까 꽃뱀을 보는 시각으로 ‘그게 말이 돼요?’라고 묻는 거예요. 말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로 겪은 것인데요.”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을 신고했는데 검찰이 무고죄로 기소했고 최근 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A씨의 말이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지 6년이 됐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역고소를 당하거나 무고죄로 수사받을 수 있다는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가 만나본 그 어떤 판사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믿는다”고 한 사람은 없지만, 편견을 배제하려는 노력조차 흔히 피해자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힌다. 급기야는 ‘피해의 경쟁’도 벌어진다. 여러 독자가 교제폭력 문제를 다룬 기사에 “남성 피해는 왜 외면하느냐”, “데이트 꽃뱀이 더 위험하다”고 댓글을 썼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성별이 무엇이든 성폭력 피해를 본 사람은 보호받아야 한다. 타인을 무고한 사람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어떤 맥락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처리되는지, 본질이 무엇인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피해는 모두 피해다.
- 취재 후
- [신간]시장으로 간 성폭력 外(2023. 02. 10 11:36)
- 2023. 02. 10 11:36 문화/과학
- ㆍ성범죄 ‘감형 컨설팅’ 전성시대 <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휴머니스트·2만1000원 미투 운동이 새 세상을 여는가 했더니, 이상한 시장이 생겼다. 성범죄 가해자가 역고소로 보복하고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을 받고 풀려난다. 피해에 대해 용기 있게 입을 여는 사람이 늘자, 가해자를 위한 법적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반성문 2부, 탄원서 2부, 서약서 1부, 심리교육수료증, 상담사의견서…’ 감형 패키지가 등장했고, 성폭력 가해자 보호 카페가 운영 중이다. 반면 대부분 피해자는 국선변호사나 무료법률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데 그친다. 그마저도 예산 삭감으로 서비스의 질이 더 나빠지고 있다. 저자는 법이 가해자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나 관련 자료가 되레 가해자 관련 시장을 키우는 역설을 지적한다. 대신 변호사 시장의 홍보 과열과 고소 남용을 막을 업계 차원의 규제, 변호사 윤리 장전에 더 구체적 지침 적시, 법조인 성인지 감수성 훈련 등 해법을 제시한다. ▲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지금·이야기장수·1만7800원 서울 은평구의 한 헌책방 주인에겐 수상한 취미가 있다. 남들은 잘 사지 않는, 누군가의 흔적이 가득한 헌책을 수집하는 것이다. 책탐정에게 이 ‘흔적책’ 수집은 일종의 수수께끼 풀이다. 범상치 않은 표지의 <타인최면술> 속 ‘김○○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라는 낙서를 보면서 최면의 효과를 탐구한다. <행복한 책읽기> 속지에 좌우 반전 글씨로 적힌 시 밑에서는 또 다른 시를 찾아낸다. 그는 “책이 가장 책다운 것은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 책에 남는 순간부터”라고 말한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정혜윤 옮김 문학동네·1만6000원 한인 마트에 장만 보러 가는 건 아니다. 뻥튀기를 담는 꼬마와 짬뽕 먹는 할머니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기 위해 간다. 인디밴드 뮤지션인 한국계 미국인이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 문화적 성장통 등을 음식 이야기로 풀었다. ▲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39가지 길 이야기 일본박학클럽 지음·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1만8500원 10만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온 길, 동서 문화를 융합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 비단이 만든 실크로드, 중세를 끝장낸 십자군 원정, 세계사 중심축을 옮긴 콜럼버스의 항해길 등 역사를 바꾼 길 이야기를 묶었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지음·창비·1만6000원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 부모가 낳은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 아이다. 고요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이길보라 감독이 장애의 의미를 사유케 하는 논픽션 작품을 통해 거절과 포용의 경험을 말한다.
- 신간
- 성폭력 폭로한 선생님은 오늘도 징계와 싸운다(2022. 03. 04 14:54)
- 2022. 03. 04 14:54 사회
- ㆍ유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그루밍 성폭력’ 당해 ㆍ가해자 2020년 3월 사망…교육청 징계 안 풀려 수년째 사투 3년 전쯤 교사 A씨는 유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모씨로부터 당한 ‘그루밍 성폭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폭로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유형의 성범죄다. 의사 김씨의 환자로, 2년여간 치료를 받았던 A씨는 자신이 김씨의 정신적 지배하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SNS를 통해 주장했다. 당시 그는 자신 외에도 복수의 피해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실제로 A씨의 폭로 이후 추가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루밍 성폭력’ 고발했더니 김씨는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유명 의사였다. 피해자들이 당했다고 밝힌 수법은 대부분 비슷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사적으로 접촉해 병원 외의 장소에서 따로 만나 부적절한 행위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A씨의 폭로를 비롯해 유명 남성 연예인을 임의로 진단해 병명을 온라인에 공개한 일 등으로 인해 김씨는 2018년 3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제명됐다.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A씨의 신상, 허위사실을 포함한 상담 내용을 유포한 점도 고려됐다. 의사 김씨는 A씨를 모욕 및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로 고소했다. A씨가 자신을 ‘피감독자 간음죄’로 고소한 데 따른 역고소였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원은 2019년 2월 20일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아직도 남은 징계 문제는 여기서 시작했다. 이후 경상북도 김천교육지원청은 A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2019년 4월 15일 견책 처분을 내렸다. 모욕,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약식명령을 받은 A씨가 국가공무원법 제63조가 규정하는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해당 조항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체면 또는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 징계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징계위원회에 진술서를 내고 정식 재판을 청구해 징계의 부당함을 입증해보이겠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정식 재판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의사 김씨는 A씨에 대한 처벌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공소도 기각됐다. A씨의 징계 근거가 된 약식명령의 효력이 뒤집힌 셈이었다. 하지만 징계처분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징계 이후 A씨는 소청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놓쳤다. 소청심사 절차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고, 징계 이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여서 제대로 대처할 경황이 없었다는 게 A씨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는 사건 이후 한 달가량 입원하기도 했다. A씨를 돕고 있는 경북교육청 성폭력피해생존자 부당징계 및 2차 가해 투쟁대책위(대책위)는 징계 이후 교육 당국의 대응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성범죄 피해자인 A씨를 조직에서 보호하지 못한, 이른바 ‘2차 가해’가 있었다고 했다. A씨의 징계를 담당했던 장학사가 2020년 4월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와 징계에 이의가 없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울면서 거부해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구두로라도 동의할 것을 요구받았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후 해당 장학사는 A씨가 있는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A씨는 또다시 충격을 받아 휴직했다. 피해자만 남아 A씨 측은 김천교육지원청에 징계를 직권취소해달라고 요구해왔다. A씨를 대리하는 박인숙 변호사는 “A씨가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고 명확히 밝혔기에 약식명령이 뒤바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징계한 것”이라며 “이는 특히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보복성 고소를 한 상황에서 피해자 A씨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 측은 이 점이 김천교육지원청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제8조를 위반했다고 본다. 해당 조항은 피해자 또는 성폭력 사실을 신고한 자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불이익이란 징계, 전근, 집단 따돌림, 해고 등을 의미한다. 또한 약식명령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유죄임을 전제로 처분을 내려 무죄추정의 원칙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소장에서 “교육지원청은 원고(A씨)를 징계할 권한뿐만 아니라 보호할 의무도 갖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상황을 살피지 않고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속한 진광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 정책국장은 “징계를 둘러싼 과정에서 벌어진 2차 가해에 대한 대응도 향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천교육지원청은 절차적으로 문제없이 내린 징계여서 직권 취소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김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행정적 하자를 범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징계했기 때문에 (A씨가) 법적인 구제 절차를 밟아오면 거기에 맞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대책위와 김천교육지원청 측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에도 김천교육지원청은 A씨 측에 법적 판단을 받아오라는 뜻을 전달했다. 아울러 김천교육지원청 측은 의사 김씨가 피해자에 대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공소가 취하된 것과는 별개로,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공무원 품위 유지 위반이란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해서) 징계를 취소하지는 않는다고 안내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에 김천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한 ‘징계처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가해자인 의사 김씨는 2020년 3월 사망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을 피한 상태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아 수년째 징계와 싸우고 있다.
- “성폭력 피해자가 움츠릴 이유 없다”(2020. 12. 11 14:12)
- 2020. 12. 11 14:12 사회
- ㆍ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유독 성폭력은 피해자다움을 강요” 지적 지난 11월 20일,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부산지방법원에 섰다. 준강간치상 사건의 피해자로 증인신문을 받기 위해서다. 신문에 앞서 신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증인대기실의 책장 사진을 올리며 “어린이들이 오면 읽을 수 있도록 책이 구비되어 있다. 이 방을 거쳐갔을 수많은 소녀를 떠올린다”고 썼다. 준강간치상은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은 상대방의 상태를 이용해 강간하고 상해를 입힌 것을 뜻한다. 사진/김기남 기자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한 변호사가 그의 선거포스터를 두고 ‘개시건방지다’고 말해 논란이 일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그는 ‘거칠 것 없는 젊은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는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는 정치인 정체성과 피해자 정체성이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유독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답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들이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힘들다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20% 이하로 추산되는데 신고된 범죄만 연간 3만건을 넘는다. 신 대표를 12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한여넷) 대표와 여성신문 산하의 젠더폴리틱스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여넷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이후, 정치계 성폭력이 너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페미니즘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계 성폭력에 긴밀하게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제출한 상태다.” -지난 총선에서 서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힘들지 않았나. “무소속이 힘든 건 사실이다. 심정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무소속 후보는 힘들 수밖에 없는 제도다. 지역에 사는 주민 500명 서명부터 시작해 후원도 정당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힘들었다.” -3.2% 득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서대문갑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헌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가 20년 동안 번갈아가며 당선된 곳이다. 양당 중심 정치를 끝장내고 새로운 정치시대를 열자고 주장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봤다. 3.2% 득표는 아쉽다. 그래도 20~30대 득표율은 10~15% 수준이었다. 새로운 정치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면에서는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선거였다.” 올해 3월, 신 대표는 8년간 몸담았던 녹색당을 탈당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개별 정당 차원에서나 전체 정치 구도에서나 절대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위성정당 논의에 녹색당이 참여한 것과 자신에게 발생한 성폭행이다. 일각에서는 신지예가 총선을 한달 앞두고 탈당했다며 비판했지만 성폭력 사건을 굳이 앞세우진 않았다. 위성정당 논란과 성폭행 사건이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 대표는 ‘사실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위원장이었음에도 위성정당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 동시에 그가 당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등은 사업 시작부터 예산 집행까지 번번이 막혔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소외됐고, 그래서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가해자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사건 직후 신 대표가 녹음해서 증거를 만들었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성폭행은 인정하지만 성폭행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것은 인정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선고는 내년 1월 22일이고, 12월 31일까지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에 ‘신지예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성폭행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주십시오’라는 탄원서가 공개됐다. “감사하게도 함께 조직 내 폭력에 목소리를 내주셨던 분이 탄원서를 써주셨다. 페미니즘 서울시장 후보를 내걸고 나온 사람을 성폭행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저는 공동위원장이었지만 당 내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당에서 입지가 튼튼한 가해자가 ‘내가 이야기를 잘해볼 테니 만나자’고 했다. 가해자는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계획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당도 직장이다. 직장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도와주겠다고 한 뒤에 강간한 것이다.” -얼마 전에 재판에 출석했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상대측 변호사가 ‘상처가 될 질문을 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다음,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냐고 물었다. 회사에 못 나가야지만 상해폭행이라는 말과 같다. 성폭행 피해자는 죽을 듯이 힘들어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야 피해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맞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고 위자료를 받고 한다. 유독 성폭력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 가해자 변호사 주장처럼 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생활을 못 한다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사진/김기남 기자 -알리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또 없다. 정치계는 어떤 영역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왜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가? 왜 성평등이 더 나은 정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유권자들에게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해결하고 바꾸는 사람으로서 유권자 앞에 서야 하는데, 성폭력 사건 때문에 나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회는 피해자가 약한 존재로 남기를 바란다. 정치인 이미지와는 잘 매치가 안 된다. 이런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많은 여성 정치인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정치인은 사실상 임시직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뭐라도 잘못했다가는 내 커리어가 다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성폭력 생존자는 강한 존재이며,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바꿀 의지를 지닌 이들이다.” -정치계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하고 해결하려면 어떤 조력 혹은 시스템이 필요할까. “최소한 30%가 돼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 많은 여성이 기초의원, 국회의원에 당선돼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20·30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훈련될 필요가 있다. 유권자를 넘어서 정치의 판을 바꾸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은 중2 때 시작됐다. 두발 자유화 운동을 위한 ‘한국청소년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제도권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 ‘하자작업장센터’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이야기꾼의 책공연’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연극인으로 일하며 전국을 다녔다. 입시학원에 다니거나 자기소개를 써본 적은 없다. 이력만 보면 ‘대안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그는 “대안적 삶이라기보다는 과로와 저임금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대학에 갈까 고민했지만 입시 준비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첫 직장은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보통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달 9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대학에도 가보고 싶고 그런 문화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며 “그래도 제가 갔던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녹색당 가입은 우연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다가 녹색당 부스를 보고 후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입당했다. 이후 추첨제로 당 대의원이 됐고, 2016년 총선에서는 녹색당 비례대표로 출마, 2018년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서울시장 선거 사상 최연소(당시 28세) 후보였다. 작은 정당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한계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가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어떻게 결국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나. “서울 마포구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쪽방촌 프로젝트를 했다. 쪽방촌 어르신들과 어울려 사는 프로젝트였다. 내 친구, 마을 사람들과 재미있게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망원동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그 사람들이 모두 ‘적법하게’ 쫓겨났다. 구제시스템이 없었다. 개인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법이 그렇게 놔두지 않더라. 나와 내 주변이 행복하려면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정당에 속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정당이 있는 게 좋다. 하지만 현존하는 정당이 새로운 미래를 열 정당인가? 물음표다. 민주화 세대는 기득정당, 소수정당, 보수정당 진보정당 할 것 없이 포진해 있다. 민주화 세대가 주도권을 쥔 정당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고 민주적으로 연출된 판만 있다. 어떤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냐를 생각했을 때, 기존에 있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보단 우리 세대에 맞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장 다음 보궐선거도 준비하고 있나. “공동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그를 위한 ‘영끌’이 필요하다. 원팀을 만들어서 이길 수 있는 제4지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어떤 정당과 단체, 개인이 함께할 수 있는가? 일단 위성정당 사태와 같은 편법·위법은 안 된다. 그리고 박원순·오거돈 사건을 규명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번 재보선에서 ‘영끌’하지 않으면 결국 민주당 서울시장이 나올 것이다. 민주당 서울시장이 박원순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보궐선거가 왜 열리는지 기억해야 한다.” -정치를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정치는 인류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과 같다.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낫게 살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 내가 죽더라도 나와 같은 열망을 가진 사람이 뒤를 이어서 뛰어주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레이디경향(총 7 건 검색)
- [웹툰 작가 인터뷰] ① 가족 간 성폭력, 낙태, 미혼모 소재로 작품 그려낸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미역의 효능
- 2015. 10. 01 17:00 화제
- 사촌 오빠들에게 당한 성폭력, 가족의 은폐, 소문 그리고 낙인, 남자친구와의 낙태 고민, 미혼모의 삶까지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독특한 그림과 스토리로 풀어내는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가 화제다. 작위적이지 않게 풀어낸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여성 혐오와 성차별이 그 어느 때보다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영문도 모른 채 ‘그게 다 여자 탓’이란 질타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각종 ‘○○녀’가 판치는 세상에 사촌 오빠들에게 당한 성폭력으로 인해 환각 증세를 보이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미성년자 미혼모를 여주인공으로 하는 웹툰을 겁도 없이 연재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미역의 효능(28, 이하 미역. 작가는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작가다. 미역 작가는 자신의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webtoon.daum.net/webtoon/view/motherdaughter)’에서 심각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다룬다. 더욱이 동양화풍의 먹물과 붓을 이용한 그림은 소재와 주제의 무게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구상하게 됐을까. “미리 받은 인터뷰 질문지를 보고 저도 생각해봤어요. ‘내가 이걸 왜 시작했지?’ 하고요. 그런데 그 답이란 게… ‘그냥, 잘, 그리다 보니 나온 건데’뿐이더라고요(웃음). 가끔 실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의 쪽지를 받긴 해요. 저는 애도 없고 주인공이 겪은 일들 중 하나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냥’이라 답하는 작가지만 작품은 그냥이 아니다. 미역 작가의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미성년자 미혼모 선희와 죽은 어린 딸 노루가 주인공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돼 나온다. 특히 선희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비둘기, 닭, 백조 등 조류로 보이는 환각 증세가 있다. 자신의 얼굴도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유일하게 사람 얼굴로 보이는 이가 죽은 딸 노루였다. 하지만 딸 노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선희는 다시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 함은 어린 시절 당한 성폭력의 상처, 가족의 책임 회피, 소문과 낙인, 무책임한 남자친구와 낙태 고민 등등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나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징그러워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선희의 말은 이 땅의 많은 선희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잔인한 시선은 아닐는지. 무엇인가 들켜버린 기분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든다. “애 아빠는 어디 있느냐”라는 신파 같은 질문을 했다. 미역 작가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현실처럼”이라고 답한다. 듣는 귀가 아파온다. 1 딸 노루를 잃고 혼자가 돼 충격에 빠진 선희의 모습.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다. 2 ‘미혼 여성의 낙태에 대하여.’ 작가가 연재를 통해 밝힌 견해다. 많은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공감을 얻었다. 왜 다 여자만의 탓이고 몫인가! 사실 미역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작품에 덧붙은 ‘미혼 여성의 낙태에 대하여’라는 작가의 말이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 등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작가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책임을 물으며 ‘낙태충’이라는 혐오 단어까지 사용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또 피임의 중요성과 미혼모 지원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미역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낙태에 관한 견해를 밝힌 이유를 “낙태에 관한 사회의 분위기에 화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낙태충이라는 혐오 단어로 여성을 공격하는 것에 분노했다.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낙태를 할 수도 있다’라고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근 남자 지인과 여성 혐오 관련 이슈나 임금 혹은 승진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일화를 소개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보다 다섯 살 많은 남자 지인은 제게 ‘너는 사회생활 안 해봤고 만화가니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며 임금 덜 받고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회식이나 야근 안 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면서요.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제 경험을 가지고 말할 순 없었지만(웃음) 저보다 몇 번 더 경험한 걸 가지고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린 거 아닌가요?” 미역 작가는 엄연히 사회적 통계로 여성 임금이 적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 넘쳐나는 ○○녀부터 ○○충까지, 남성이 주체고 여성이 객체로 프레임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의 주점을 지날 때면 아저씨들의 토사물을 종종 본 이야기를 했다. 당시 누구도 그 남성들을 향해 ‘토사남’이나 ‘토사충’으로 부른 적인 없지 않느냐며 ‘맘충’이란 단어의 등장에 놀랐다고 했다. 이 땅의 많은 선희들, 행복해졌으면 이 작품이 특히 화제가 되는 건 붓으로 휙휙 그려낸 그림이다. 선희의 이야기와 짙은 검은색 붓질의 하모니가 주인공의 감정을 잘 전달한다. 유일한 사람 얼굴이었던 딸을 잃고 처연하게 앉아 있는 선희의 모습은 백 마디 말을 무색게 한다.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큰언니를 따라 민화 전시에 갔는데… 막 그린 그림이 많더라고요(웃음). 조상님들이 그린 그림들, 잘 그린 것부터 해학적으로 그린 낙서까지 다양한 민화를 보면서 제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란 걸 알았죠.” 서예를 하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 좋은 재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일부러 돈을 들여 재료를 사느니 집에 있는 걸로 그려보자 한 것이 지금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미역 작가에게 이번 작품은 데뷔작이다. 신인 작가가 데뷔작으로 이런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음에도 독자 입장에선 능수능란하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다. 특히 선희가 미혼모가 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대단한 모성 코드를 철저히 배제한다. 어쩌지? 하고 망설이다 낙태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여주인공 선희를 처음 진료한 산부인과 의사의 시점도 조금 나온다. 어린 여학생의 임신, 충분히 어른이자 전문가로 나설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적당히 모른 척해버린다.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작가는 이 땅의 다른 많은 선희들에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선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도 선희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다면서.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작가는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커뮤니티에 웹툰을 연재하면서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것은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웹툰이라고 한다. 네티즌의 ‘좋아요’ 추천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작품을 봐주는 팬들에게 고마워 늘 마음을 다잡는다는 미역 작가는 인터넷에 오이, 당근 같은 걸 검색하면 효능 등이 뜨는데, 미역을 검색하면 자신의 활동 닉네임이 더 먼저, 더 많이 뜰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그야말로 영리하고 똑똑한 작가라 그렇게 되고도 남을 것으로 보였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자료 제공 / 레진코믹스 단지, 다음 만화속 세상 미역의 효능>
-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는 아동 성폭력 문제
- 2013. 07. 04 16:46 육아/교육
- ㆍ시대의 육아 멘토, 서천석 원장에게 듣다 지난 6월 11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정독도서관에서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원장의 강연이 열렸다. 고전 그림책 「빨간 모자」를 재해석한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를 통해 서 원장은 현대사회의 성폭력 문제와 그 속에 감추어진 아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각각 처한 시대의 메시지가 녹아 있는‘빨간 모자’ 언제나 빨간 모자를 쓰고 있어 ‘빨간 모자’라 불리는 어린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 드리던 중 늑대 한 마리를 만난다. 늑대는 소녀를 당장 잡아먹고 싶었지만 근처에 나무꾼들이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점잖게 빨간 모자에게 다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 순진한 소녀는 할머니 댁으로 가는 중이며 그곳이 어딘지 이야기해준다. 늑대는 지름길을 이용해 소녀보다 먼저 할머니 댁에 도착한다. 그리고 빨간 모자 행세를 하며 할머니를 잡아먹고, 이번에는 할머니 행세를 하며 빨간 모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가 오자 소녀마저 먹어 치운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에 발표한 동화집에 수록된 빨간 모자의 이야기다. 페로는 빨간 모자를 통해 ‘수상한 사람(늑대)과 이야기하는 것은 늑대에게 저녁을 제공해주는 것과 다름없다’라며 낯선 이에게 함부로 친절을 베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점잖고 예의 바르게 보여도 사실은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경고도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유럽에서 교육용 동화로 오래전부터 사용돼왔다. 페로의 빨간 모자 이야기는 그림 형제에 의해서도 다시 쓰였고, 그 이후에도 많은 작가들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가가 쓴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사계절)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45)은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를 통해 과거의 시대상과 그 속에 담겨진 경고의 메시지를 살펴보고, 또 한편으로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를 통해서는 오늘날의 시대상과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는 낯선 남자를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강하죠. 이야기도 비극으로 끝나고요. 시간이 흘러 그림 형제는 이 이야기에 재치를 불어넣어요. 사냥꾼이 와서 소녀를 구하잖아요. 비극을 극복하는 거죠. 하지만 이것도 한계는 있어요. 실수는 여자가 하고 구해주는 것은 남자라는 인상을 받거든요.” 우리 시대의 빨간 모자 아이들 샤를 페로가 「빨간 모자」를 쓴 4백 년 전이나 그림 형제가 이야기를 다시 만든 2백 년 전이나 그리고 인노첸티에 의해 새롭게 쓰인 오늘날이나 이야기 자체가 변화한 부분은 거의 없다. 이는 여전히 우리 아이들이 빨간 모자로 상징되는 ‘두려움’을 갖고 많은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그야말로 위험투성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또한 두렵다. 부모가 아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3백65일, 24시간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흉악한 범죄들을 보면 과연 늑대만 피한다고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아이들을 구해줄 사냥꾼은 여전히 존재하는 걸까. 우리 시대의 빨간 모자를 쓴 아이들은 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린이 성폭력에 대해 바르게 전달할 이야기책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당대의 문제를 제대로 전달할 만한 내용을 가진 책 말이에요. 대부분의 이야기는 부모나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공감을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현실이거나 아예 상상의 나라면 오히려 쉬울 텐데 말이죠. 그런 면에서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슬프지만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요.” 서 원장은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의 첫 장을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청자들이 아담한 집과 예쁜 들판 그리고 녹음이 짙은 숲이 나오리라 예상했다. 아무리 오늘의 현실을 담았다지만 아이들 그림책이고,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빨간 모자」라는 고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장의 그림은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였다. 독거노인부터 실업자, 싱글 맘이나 부모가 일하러 가 아이들만 있는 집들이 나오는. 비록 외국 그림책이라고는 하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복잡한 도시의 한쪽 구석 모습이었다. 책의 시작 부분에는 숲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그 숲은 분명 울창한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 도시 숲이었다. 작가는 아파트가 있는 도시를 숲이라 했다. “사실 아이들은 숲에 들어갔을 때 어른들처럼 여러 생명체가 함께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나무에 둘러싸인 자신이 갇혔다고 생각하죠. 지금의 아이들에겐 도시가 그래요. 어느 순간 버려지면 자신은 혼자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어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의 내용은 이렇다. 변두리 아파트에 사는 소피아라는 아이가 있다. 물론 빨간 모자를 썼다. 소피아는 다른 빨간 모자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드리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고 집을 나선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람들이 많은 ‘큰길’로만 갈 것을 당부하지만, 화려한 도시에 눈이 팔린 소피아는 이내 길을 잃고 만다. 후미진 뒷골목을 헤매던 소피아는 불량배, 즉 늑대를 만나지만 사냥꾼 아저씨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여기까지는 비록 도시의 콘크리트 숲이긴 하나 과거의 「빨간 모자」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냥꾼의 도움까지 받은 현재의 빨간 모자 소피아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지 못한다. 소피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냥꾼은 믿어도 될까? “책을 보면 과거 빨간 모자가 헤매던 울창한 나무숲은 이제는 ‘더 우드’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거대한 복합 쇼핑몰이 됐죠. 하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늑대와 사냥꾼일 거예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에 나오는 사냥꾼은 더 이상 샤를 페로나 그림 형제 이야기 속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아프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인 거예요.” 빨간 모자는 분명 불량배라는 늑대를 만났다. 사냥꾼은 그 불량배로 인해 위험에 처한 빨간 모자를 구해주고, 심지어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할머니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푼다. 소녀를 도와준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면이다. 사냥꾼이라는 선의 가면을 쓴 늑대인 것이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책을 통해 ‘늑대와 사냥꾼은 한패’라는 오늘의 현실을 에두르지 않고 전한다. 선의 가면을 쓰고 있어 위험을 알아채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은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무서운 사실이다. “이 책은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이 결코 처음 만나는 늑대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요. 실제로 성폭력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피해 아동과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거든요.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나서 자기 욕심의 희생양으로 삼는 거죠. 순진한 아이들은 살살 달래는 어른에게 속아 그냥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보다 서 원장은 혼자 있는 아이들이 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혼자 있는 아이들이란 부모가 한 명만 있거나 모두 없는 경우, 혹은 모두 일하러 가서 부재한 경우를 뜻하지만 큰 의미로는 아이가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경제 수준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아동 성폭력 발생 빈도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사실 수치 자체는 비슷하고 사건의 유형이 다르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우범지역의 저소득층에서 발생하는 아동 성폭력 사건은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형태고, 중산층 이상에서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 피해는 가족이나 형제 혹은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며 쉬쉬하는 분위기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가족과 친족에 의한 아동 성폭력이 무려 40%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림책 속의 친절한 사냥꾼처럼 아동 성폭력 가해자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친근한 대상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다정하게 다가가죠.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아이의 방어를 흐트러뜨리고요. 아이 스스로 방어를 포기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죄책감을 자극해 아이 스스로 자신이 잘못된 짓을 했다고 믿도록 자책감을 갖게 해 이중고를 겪게 합니다.” 서 원장은 성범죄자의 접근 유형은 크게 애정 표현(예를 들어 의붓아버지), 도움 요청, 애완동물 관심, 선물 대가 요구, 부모 위급 상황 가장의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아이들을 골라 아이가 혼자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범행을 저지른다고 한다. 피해 아동에게 성적 행위를 가르치거나 신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성적인 그림이나 사진 등을 보여준다. 아동 성폭력이란 단순 노출에서 성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 아동들에게 비밀을 유지할 것을 강요하는데, 이것은 가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성폭력을 지속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책 속에 그려진 오늘날의 숲을 한 번 보시겠어요? ‘더 우드’라는 쇼핑몰의 광고들을 보세요. 성이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소비문화에 완전히 편입돼 있어요. 아이들은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대상이 돼버렸고요. 아이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사랑받기 위해서 어른을 대상화하고 있어요.” 성인 성폭력은 갑자기 위협을 당하지만, 아동 성폭력은 아는 사람이 살살 달래며 시작된다. 서 원장은 우리 아이들 역시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후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라는 착한 가면을 쓰고 아이에게 다가온다면 더더욱. 아이와 함께 방법 찾는 게 현명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비극이다. 직접적으로 피해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빨간 모자를 쓴 소피아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닫힌 결말은 아니다. 수상한 사냥꾼을 발견한 선량한 나무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소피아를 구출하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는 사람이 많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빠 개개인은 매우 소외된 곳이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죠.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누군가의 관심만이 희망이라는 거예요. 소피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아이들은 지금 행복하면 그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고 한다. 반대로 지금 불행하다면 그것 또한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빨간 모자처럼 부정적인 경험을 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괴롭힌 것임에도 피해를 당한 자신이 영원히 괴로울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변한다고 이야기해준다 해도 아이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이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외래진료에서 스토리 치료를 한다고 서 원장은 설명했다. 스토리, 즉 이야기는 작가에 의해 얼마든지 뒤의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 작가가 되어 절대 변하지 않을 듯한 현재의 괴로움을 바꾸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고,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그 핵심적인 메시지를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잘 전해주고 있어요. 날씨가 바뀌듯 인생도 달라진다고요.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날씨가 변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잖아요. 따라서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주시길 바라요. 변할 수 있다고.” 소피아가 위험에 처하자 그림책 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눈물이 나는 건 비가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말해주면서 말이다. 날씨가 제멋대로 바뀌면 우리는 깜짝 놀란다. 하지만 모두 안다. 지금 비가 온다고 해서 영원히 흐리지는 않다는 것을. 하늘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비가 오는 상황을 슬픔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이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줄지 부모님들이 많이 어려워하세요. 아이를 도와준 사냥꾼이 사실은 늑대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예외가 아니죠. 숨길 수 없는 현실이라면 문제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아이와 함께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해요. 누구를 조심하라는 식의 사람보다는 ‘상황’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말이에요.” 혹 아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거나 의심 증후가 보인다면 부모의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서 원장은 강조했다. 부모의 첫 반응이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절대 놀라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가해자의 발뺌을 들어주거나 현실을 회피하려는 자세도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책임이 있으며, 아이를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해준다. 그리고 무엇을 묻든지 답해주고 아이의 증상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창피해하지 않도록 한다. 정보를 수집한다며 꼬치꼬치 묻는 것은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니니 즉각 전문가나 신고 기관에 도움을 청하자. “우리 아이들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숲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킬 수도, 보호할 수도 없는 게 현실임을 이제 받아들여야 해요. 어차피 맞닥뜨려야 하는 숲이라면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는 데 도움이 될 거고요. 또한 아이들을 지키는 진짜 방법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 숲 자체를 안전하게 바꾸는 길일 거예요.” 경찰의 구출로 무사히 엄마 품에 안긴 소피아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동화책은 마무리된다. 이 시대의 빨간 모자 소피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관심이 소피아를 구했다는 것과 날씨가 변하듯 아픈 경험을 한 소피아도 다시 행복하게 변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서 원장이 다시금 「빨간 모자」를 편 이유다. 아동 성폭력, 당황하지 말고 전화하세요! 해바라기 아동센터 02-3274-1375 해바라기 아동센터는 19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 아동과 가족, 성폭력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수사 증거 자료 확보와 피해 아동 응급처치, 소아정신청소년과와 임상심리 전문가 등 전문가 그룹에 의한 후유증 치료까지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종합 진료를 아동 중심의 통합 서비스로 제공한다. 이 밖에도 수사 및 재판을 지원하고 소송 안내와 변호사 자문 상담 등을 연계해주며 2차 피해 예방, 피해 가족 보호까지 지원한다. 24시간 아동 성폭력 신고·접수가 가능하며, 전화 및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상담도 할 수 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프리랜서) ■사진 제공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사계절 출판사)>
- 충격! 고영욱 사건으로 본 연예계 성폭력 문제
- 2012. 06. 22 18:55 연예
-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그룹 ‘룰라’ 출신의 방송인 고영욱이 연예인 지망생 김 모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건이 보도된 후 두 명의 피해자가 추가로 고소장을 접수해 총 세 명의 여성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연예계에 만연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쾌한 작업남’에서 성폭력 피의자 되기까지 고영욱(36)은 자신이 출연 중인 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연예인 지망생 김모씨(18)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영욱은 토크쇼 형식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던 연예인 지망생의 촬영분 모니터를 보고 프로그램 관계자를 통해 연락처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어 “연예인 할 생각 없느냐. 기획사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라며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해 술을 마시게 하고 두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밝혔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고영욱은 “스무 살인 줄 알았지 법적으로 미성년인 줄은 몰랐다“라며 강제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법상 13세 이상의 미성년자인 경우, 합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연령으로 판단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실명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고영욱에게 10대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알려진 성폭행 피해자 외에 두 명의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데 이어 두 명의 피해자가 더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 모 대학에서 10대의 성폭행 실태 조사를 위해 심층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고씨에게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의 진술이 나왔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한 여성은 세 명이지만 과연 몇 명의 피해자가 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 평소 고영욱이 ‘바람둥이’, ‘작업남’ 이미지로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활약하던(?) 터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그가 방송을 통해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던 ‘작업’ 방식이나 연락처를 알아내는 노하우 같은 것들을 찾아내며 또 다른 폭로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번 고영욱 사건은 유명 연예인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나이 어린 여성들에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인 욕구를 지닌 어느 개인의 문제로 보기에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연예인 소속사 내 성폭력 문제나 성상납 등 연예계 이면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낸 사건으로 어떤 수사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걸그룹이나 연예인을 지망하는 수많은 10대가 존재하는 이면에는 권력을 지닌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소녀들을 대상으로 육체적 관계를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득세해왔는지 모를 일이다. 미성년자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는 것은 원칙적으로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라거나 장담할 수 없는 대가를 내걸면서 성관계를 종용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체적인 폭력을 동원한 강간이 아니라고 해도 이를 순수한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건과 관련된 쟁점 몇 가지를 살펴봤다. 성희롱이 권력 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것처럼 성폭력 또한 본질적으로 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다. 10대인 여성이라면 분명 취약한 점이 있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연예계 지망생이라면 더더욱 약자인 상황에서 자신의 성이라도 이용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과연 이럴 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준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는 문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판명이 필요한 이유다.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가해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현재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최종 판단은 좀 더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쟁점 1 강제성 없는 미성년자 성관계는 처벌받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 우리 실정법에서는 본인의 책임으로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만 13세로 규정하고 있다. 만 20세가 안 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더라도 강제성이 없고 술이나 약물을 먹이는 등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이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13세가 넘은 중학생이 자신이 동경하는 연예인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꼬드김에 넘어가 훗날 후회할 선택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성관계를 가진 어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외국에서는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나이 혹은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이’를 통상 만 16세나 18세로 본다. 그 정도 나이가 되어야 행동에 따른 책임 의무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동은 아니지만 미성년인 상대와 합의한 성관계에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형량을 부과하는 추세다. 쟁점 2 경찰은 왜 이례적으로 실명을 밝혔는가?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 경찰이 언론을 통해 고영욱의 사건과 실명을 밝힌 것은 피의사실 공표죄 위반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형법 126조에 따르면 ‘피의사실 공표죄’란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나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직무를 행하며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 징역 혹은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고영욱의 경찰 조사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경찰관은 기소돼 피의사실 공표죄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피의사실 공표죄가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공표한 경찰의 판단에 과연 문제가 없을까. 사건 초기 고영욱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도 수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범죄 혐의를 확정할 수 없다는 법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예인 관련 사건에 대해 경찰이 미리 피의사실을 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추후 문제의 소지가 될 여지가 있다. 쟁점 3 문란한 사생활이 성폭력과 연관 있는가? 성폭력을 판단하는 기준 일부 법관이나 수사기관의 경우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을 때가 있다. 이제는 “성폭행을 당할 때 흥분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전의 성경험을 묻거나 애인과의 성관계를 질문하는 등 과도한 심문 때문에 수치심을 갖거나 심지어 피해자가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가해자는 행실의 문란함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는 주로 가해자의 입장에 서는 남성과 피해자인 여성에게 이중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은 성폭력을 당해도 된다거나 성폭력이 성립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고영욱처럼 성적으로 분방한 남성은 (다소 긍정적이거나 부러움을 담은 의미로) ‘남자답다’라고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건처럼 성폭력과 성관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데다 가해자의 행실이 문제 되는 경우 더욱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글/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아동 성폭력! 엄마들 가슴속에 쌓인 말 많다
- 2009. 11. 19 15:46 재테크
- 일명 ‘나영이 사건’으로 불거진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슬프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이 존재한다. 아동 성폭력에 대한 딸을 둔 엄마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그리고 실질적으로 알아보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처법을 짚어본다. 부모들이 느끼는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실제 딸을 둔 엄마들의 모임을 주선했다. 불편한 주제인 만큼 나서기 꺼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엄마들은 그런 일이라면 적극 나서서 할 말은 해야겠다며 너도나도 자원했다. 그들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모두 6명의 학부형들이 모였다. 우선 우리는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나영이 사건(가칭)’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나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자리에 모인 엄마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 합당한 욕조차도 찾지 못했다며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향희 술을 마셨다고 심신미약으로 판정하고 감형됐다는 사실에 분노가 끓어요. 다른 나라는 가중처벌이 되면 됐지 이런 경우는 없다고 하더군요. 만약 판사 당신네 자식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12년을 줬을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형시켰겠죠. 오영자 도대체 무슨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아동 성폭력 소송은 특히 공개 재판이나 배심원 제도가 필요하고 생각해요. 법문 따위로 가늠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잖아요. 이영희 그러니까 범인이 반성의 기미도 없이 항소를 몇 번이나 했겠지요. 도무지 사람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요. 심정적으로 말하자면 차라리 사형시켰으면 좋겠어요. 전선자 게다가 4천만원 보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안산시가 생활보호대상에서 나영이네를 제외했다잖아요. 이걸 나영이 아버지가 재판부에 탄원하니 6백만원의 피해보상 지원금도 다시 회수하겠다고 통보하고 사람들이 비난하니 다시 주고 사과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요. 힘이 없으니까 당하는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오영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나영이를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제 남편은 자식이 그렇게 되면 자신도 살고 싶지 않을 거라며 같이 죽을 거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더군요. 나영이를 위해서 촛불 시위에 참여해야겠어요. 김선지 요즘 딸을 둔 엄마들은 직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실정이에요. 일단 딸이 눈앞에서 안 보이면 불안함에 머리가 무거워지고 맘이 편치가 않아요. 나영이도 등굣길에 변을 당했다잖아요. 권영희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학교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예뻐해도 기분이 좋지 않으니 이걸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학부모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나영이 사건’으로 아동 성폭력이 공론화되면서 경각심이 생겼지만 결국 이번 일이 전대미문인 사건은 아니다. 크든 작든 우리 주변에서 왕왕 일어났던 일이고 여러 사정으로 암묵적으로 숨기는 경우도 많았다. 학부모들이 실제 주변에서 일어난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김선지 우리 아이의 학교 앞에 나이가 꽤 든 아저씨가 문구사를 운영하고 있었대요. 그런데 남자 애들만 골라 성추행을 했다나봐요. 그것이 아이들 입을 통해 결국 학부모들까지 알게 된 거예요. 경찰에 신고를 해서 아저씨가 조사받거나 잡혀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결국 “노인네가 애들이 귀여우면 그럴 수 있다”고 하고 훈방조치를 시킨 거예요. 전선자 그런 인식이 있죠. 남자 아이들 성추행은 비교적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죠. 김선지 두 번이나 신고했는데 경찰들이 수수방관하니까 학부형들이 모여서 학교 측에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그 아저씨가 동네에서 쫓겨난 모양이에요. 그러면 뭐 해요. 얼마 뒤에 다른 동네에서 또 문구사를 차렸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오영자 어머!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또 그런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권영희 제가 들은 건 경비 아저씨에게 피해를 당한 경우였어요. 보호를 해줘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말이죠. 완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죠. 피해를 당한 다섯 명의 엄마들이 모여 고발조치를 하자고 모였는데 두 집은 고발해봤자 아이들이 상처받는다고 다른 곳으로 조용히 이사를 갔대요. 전선자 안타깝네요. 아이들을 위해 그냥 덮어두는 그런 마음도 이해가 가요. 그만큼 우리가 법이나 경찰을 불신한다는 거죠. 아이들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며 받아야 되는 상처들이 너무 크잖아요. 권영희 맞아요. 남은 세 집은 모여서 신고를 했대요. 아이들이 힘겨운 진술 과정도 감수했는데 결국 경비 아저씨는 집행유예로 풀리고 아무 성과도 없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전향희 일부 문제 어른들의 일이긴 하지만 종종 멋모르는 아이들끼리 그런 경우도 있어요. 제가 들은 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성기를 자꾸 만지고 다니는 바람에 여자아이가 방광염에 걸린 거예요. 오영자 어머 세상에! 요즘 아이들이 ‘야동’에 너무 쉽게 노출돼 있어서 그래요. 성이 뭔지 올바른 인식이 생기기도 전에 왜곡된 동영상들을 보니까. 쯧쯧. 전향희 문제는 유치원 원장의 태도였어요.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심리치료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유난스럽다. 아이들이 장난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더래요. 자신의 유치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났다고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던 거죠. 이영희 그건 유치원뿐만이 아니에요. 동네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 언론에 보도되면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하는 경향이 있어요. 전선자 그나마 나영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 이렇게 공론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까운 과거에만 해도 ‘귀여워하는 것’과 ‘성추행’의 경계가 모호했잖아요. 오영자 밤길이 무서워 방범순찰을 돌아달라고 부탁을 해도 차로 돌면 소용이 없어요. 나쁜 일은 순식간에 당하는 일이잖아요. 제 주변에는 세상이 흉흉하다며 직장에 사표를 낸 엄마도 있어요. 진짜 엄마가 아이만 졸졸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건가요? 학원이면 학원, 학교면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뒤돌아서도 무섭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선 안 된다. 딸을 둔 엄마들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가정에서는 성교육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물었다. 전향희 이젠 딸이라고 옷도 예쁘게 입히지 못해요. 항상 바지만 입혀요. 눈에 띄는 화려한 장신구도 되도록 피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한들 그저 심리적인 안정일 뿐이죠. 1%의 위험에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아요. 이영희 그리고 엄마들끼리 동네 어디서든 수상한 사람이 없나 서로 감시하자고 늘 이야기해요. 내 아이만 돌보지 않고 옆집 엄마가 혹여 사정이 있어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오지 못하면 대신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요. 오영자 낯선 사람이 뭔가를 물어보면 아예 대답하지 말라고 가르쳐요.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엄마 없이 따라가선 안 된다고 하고요. 어른의 말도 듣지 않는 인정 없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서글퍼요. 김선지 맞아요. 너무 착해서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쉽게 범죄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요. 범죄 수법도 파렴치하잖아요. 짐을 들어달라고 한다든지, 아이에게 일부러 지갑을 줍게 한 후에 잡혀간다고 협박해서 끌고 간다든지. 나쁜 놈들이 아이들의 취약점을 너무 잘 아는 거죠. 오영자 전 딸에게 지나가는 남자가 쳐다봐도 눈을 맞추지 말고 무조건 집으로 달려오라고 얘기해요. 전향희 저는 이웃집에 사는 분이 종합병원 간호사라 종종 그 집 아이들을 챙겨주곤 했거든요. 그날도 전화를 해서 “너희 배고프지 않니?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와라”고 했는데 굳이 안 나오겠다는 거예요. “그럼 떡국 가져다줄까?”라고 했는데도 거절을 해요. 이상해서 나중에 그 집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막 웃는 거예요. 가족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쳐서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그게 맞는다고 얘기했어요. 이영희 저도 엄마가 없을 때는 아는 사람의 차도 타지 말라고 얘기해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아이들이 헷갈려 하니까 예방을 위해서는 일관성이 필요하더군요. 김선지 요즘은 보디가드를 두는 것이 유행이라고 해요. 엄마들 4명이 돈을 모아 한 사람을 고용하는 거예요. 제 아이도 일곱 살인데 내년에 학교 들어가면 알아보려고 해요. 권영희 전 아들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들에게 더욱 올바른 성교육과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이 혹시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럴까봐 더 걱정이 돼요. 집에 가끔 여자아이가 놀러오면 전 절대 외출하지 않아요. 아직 어리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남들은 저보고 너무 한다고 하는데 아들 가진 엄마가 먼저 조심해야죠. 엄마들은 딸을 맘 놓고 키울 수 없는 나라에서는 세금을 내는 것도 아깝다며 성토한다. 그래도 최근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국회에서도 다양한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는다고 한다. 권영희 아동 성폭력범의 재범률이 높다는 통계가 무엇을 말해주나요. 그만큼 형량이 가볍고 짧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런 범죄는 앞으로 절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요. 오영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범죄자를 관리해서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미국은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신상 공개를 다 하고 지역 경찰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잖아요. 정치인들은 이런 사안을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선자 그래도 일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치더라도 이 기회에 더 강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술을 마셔서 감형이 된다면 음주운전 사고도 심신미약으로 감형시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영희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해요. 우리 사회가 저지른 일이잖아요. 제도적으로 아이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돼요. 전향희 맞아요. 그 아이가 사회에 고립되지 않도록 정신적·육체적인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해요.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일반 병원에서 증거자료 채취를 의뢰했다가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잖아요. 6인의 엄마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한 가지였다. 자신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인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그들은 절망했다.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엄중한 처벌, 재범 방지를 위한 관리체계의 확립, 그리고 피해 아동들의 치료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 우리의 미래,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 그 어떤 정책보다 우선돼야 할 정책이 아닐까.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도움말 / 김소향(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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