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05 건 검색)
- 경향신문 플랫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와 ‘응원봉 든 2030 여성들’[플랫]
- 2024. 12. 26 09:59사회
- ... 것 지난 4월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10명이 처음 만났고 이들은 ‘열매’라는... 피해자를 보살펴온 가족 3명이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은 처음이다. 김복희씨는...
- 플랫
- ‘1979년 12·12 군사 반란일’ 맞춰 5·18 성폭력 피해자들, 손배소송
- 2024. 12. 12 21:08사회
-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12일 제기한다. 원고는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피해자를 보살펴온 가족 3명이다. 위자료 청구 금액은...
- 12월 12일, 국가상대로 손배청구소송 청구하는 ‘5·18 성폭력’ 피해자들[플랫]
- 2024. 12. 12 17:44사회
- ...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5·18 성폭력 피해자들, ‘12·12 군사 반란’에 국가를 상대로...
- 플랫
- 5·18 성폭력 피해자들, ‘12·12 군사 반란’에 맞춰 국가를 상대로 손배청구소송 함께 나선다
- 2024. 12. 12 11:43사회
- ...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석해... 있다. 2024.09.30 한수빈 기자 5·18 성폭력 피해자들, ‘12·12 군사 반란’에 국가를 상대로...
스포츠경향(총 23 건 검색)
- ‘세치혀’ 장동선 “학폭 피해자 뇌, 성폭력 당한 것과 같은 패턴”
- 2023. 03. 28 17:43 연예
- MBC ‘세치혀’ “어딜가나 ‘박연진’ 같은 애들이 있습니다.” 뇌 과학자 장동선이 현실판 ‘더글로리’ 속 문동은이 자신이라며 학폭 피해를 고백했다. 이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폭력에 관한 뇌의 변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8일 MBC 예능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 는 장동선 이 직접 겪었던 ‘학폭’ 경험 썰을 풀었다. ‘뇌슐랭 세치혀’ 장동선 은 “왕따당한 사람들의 뇌는 다를까?” 로 운을 띄웠다. 그는 이야기한 적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준비했다고 밝히며 ‘썰피플’들의 마음을 녹인다. MBC ‘세치혀’ 장동선은 “어딜 가나 ‘박연 ’ 같은 애들이 있다” 며 왕따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가해자들을 비난했다. 그는 “정말 이유가 있어서 왕따가 될까?” 라며 오랫동안 자신이 궁금했던 주제를 분석했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이 섞인 따돌림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하버드 의대의 한 교수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언어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뇌를 보니 실제 외상 증후군 환자, 성폭력을 당한 환자의 뇌와 같은 상처의 패턴을 보인다고 말해 모두를 충격의 도가니로 빠지게 만들었다. 장동선은 독일 학폭 피해에 이어 한국에서도 학폭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왕따당하는 피해자를 도와주려 다가갔지만 어느 날부터 그 피해자가 빵셔틀과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고 고백했다. 장동선은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는 이유는 뭘까? 충격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끌어올렸다. 방송은 28일 화요일 오후 10시.
- 윤석열, 독립운동가·성폭력 피해자 조롱한 만화가 윤서인 언론특보 임명?
- 2022. 03. 04 20:58 연예
- 윤서인 SNS 캡처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측이 독립운동가 후손 명예 훼손·성폭력 피해아동 조롱 등으로 논란을 빚은 만화가 겸 유튜버 윤서인을 중앙선대본 소속 국민화합위원회 언론특보단으로 임명한 사실이 드러난 후 4일 온라인과 모방일상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윤서인은 지난 3일 SNS에 윤석열 후보 중앙선대본 소속 국민화합위원회 언론특보단 임명장 사진을 올렸으며 이 내용은 이날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아동 성폭행 사건을 희화화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전력이 있는 윤서인이 선대위 임명장을 받으면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논란이 이어지자 윤석열 후보 측은 윤서인은 4일 해촉 했다. 만화가 윤서인. 연합뉴스국민의힘 공보단은 언론에 “국민화합위원회에서 독자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윤씨의 임명 사실을 확인한 후 즉각 해촉 조치 했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윤서인은 웹툰 플랫폼에서 ‘조이라이드’ 등 만화를 연재했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친일파 후손들이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라는 글을 올려 독립운동가를 폄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8년에는 당시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한국 방문을 비판하기 위해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피해자를 다시 찾아오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다가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바 있다. 윤서인 웹툰. 미디어펜 캡처
- 윤서인
- 미국체조협회·올림픽위원회, 주치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4500억원 배상해야
- 2021. 12. 14 10:18 스포츠종합
- 래리 나사르(오른쪽)가 2018년 5월 미국 미시건주 샬럿에서 개최된 성폭력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ㅣ게티이미지2016년 미국 체조계 성폭력 피해 폭로 사건으로 미국체조협회와 미국올림픽위원회(USOPC)가 500여명의 피해자들에게 3억8000만 달러(약 4500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인디애나폴리스 연방파산법원은 미국체조협회와 USOPC와 성폭력 피해자들 사이에 제기된 소송에서 양측의 합의를 조건부 승인했다고 14일 AP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체조협회와 USOPC는 합의금 지급과 함께 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성폭력 사상 피해 보상으로는 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게 될 이번 합의를 계기로 5년간 끌어온 소송은 마무리 됐다.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중 300여명은 미시간대 체조팀과 미국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래리 나사르에게 성폭력을 당한 선수들이다. 1986년부터 30년 동안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로 일한 나사르의 상습 성추행은 철저히 은폐되고 무시되다가 2016년 전 여자체조 선수이자 변호사인 레이철 덴홀랜더의 폭로를 계기로 수많은 선수가 피해를 증언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나사르는 2018년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아동성범죄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그에게 법원은 40~175년형을 추가로 선고했다. 미국체조협회와 올림픽위원회는 나사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책임과 수차례 선수들의 피해호소를 무시하거나 은폐하려고 한 혐의로 함께 피소됐다. 합의금 중 약 1억 7000만 달러는 USOPC가 지불해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이같은 내용의 합의에 지난 8월 동의했으며, 최근 미국체조협회 파산청문회를 통해 사실이 공개됐다. 한편 미국 법무부는 지난 10월 미연방수사국(FBI)가 2015년 나사르의 성범죄 의혹을 조사하고도 8개월 넘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나사르가 체포될 때까지 70여명이 추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부실수사를 조사중이다.
- 기성용 사태 급반전…“성폭력 피해자는 또다른 가해자였다”
- 2021. 02. 25 16:28 축구
- ㆍ“다른 친구들에게 똑같은 성폭력”ㆍ온라인커뮤니티서 또 다른 폭로글ㆍ“고교서 쫓겨나고 부친도 직장 잃어”ㆍ기성용은 “축구인생 걸고 사실무근” FC서울 기성용. 프로축구연맹 제공기성용(32·서울)이 휩싸인 성폭력 논란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왔다. 그에게 성폭력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한 제보자가 거꾸로 다른 이들에게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가해자로 드러났다.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지난 24일 축구선수 출신인 C씨와 D씨가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부 생활을 하던 2000년 1~6월 선배인 A선수와 B씨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도권 명문 구단에 입단한 국가대표 출신 유명 선수로 묘사된 A선수는 사실상 기성용으로 지목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당일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성용 고발한 에이전트 폭로’라는 제목으로 같은 지역 중학교에서 D씨가 자신과 친구들에게 똑같은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에는 실제로 성폭력 사건으로 일부 선수가 퇴출됐던 당시 기사가 첨부됐다. D씨는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난 뒤 귀국해 현재 국내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전남 지역 유소년 팀에서 오랜기간 활동했던 관계자는 “D씨가 성폭력을 저질러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로 쫓겨나듯 전학한 것이 맞다”면서 “D씨의 부친도 해당 사건으로 직업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축구계에선 D씨의 성폭력 가해 행위가 그의 피해 주장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합숙 문화가 만연했던 과거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C씨와 D씨가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를 내놓을 경우 상황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한편 기성용은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보도된 기사내용은 저와 무관하다”면서 “제 축구 인생을 걸고 말씀드린다.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직접 반박했다. 기성용은 “고통받는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동원해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다”면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에 악의적인 댓글을 단 모든 이들도 법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이 아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축구 인생과 가족들의 삶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임을 깨달았다.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기성용
주간경향(총 7 건 검색)
- [취재 후] 성폭력 피해자들은 더 많이 말해야 한다(2024. 07. 10 06:00)
- 2024. 07. 10 06:00 사회
- 이혜리 기자 성폭력 피해자를 취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떤 독자들은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피해자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 아니냐 할지 모른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는 피해자에게 피해 본 과정을 세밀하게 묻고, 또 묻는다. 각종 자료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교차 검증도 한다. 피해자로서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되뇌어야 하고,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취재에 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는 숨겨지지 말아야 한다는 게 2018년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의 취지였다. 이는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뒀던 성폭력 피해를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공적인 공간에서 말하면서 함께 해결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주축은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해 대검찰청 통계 기준 성폭력 범죄자의 96.5%는 남성, 피해자의 87.5%는 여성이었다. 여전히 피해는 피해로 다뤄지지 못한다.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했어요. 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는 범위에서 조금 벗어나니까 꽃뱀을 보는 시각으로 ‘그게 말이 돼요?’라고 묻는 거예요. 말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로 겪은 것인데요.”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을 신고했는데 검찰이 무고죄로 기소했고 최근 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A씨의 말이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지 6년이 됐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역고소를 당하거나 무고죄로 수사받을 수 있다는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가 만나본 그 어떤 판사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믿는다”고 한 사람은 없지만, 편견을 배제하려는 노력조차 흔히 피해자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힌다. 급기야는 ‘피해의 경쟁’도 벌어진다. 여러 독자가 교제폭력 문제를 다룬 기사에 “남성 피해는 왜 외면하느냐”, “데이트 꽃뱀이 더 위험하다”고 댓글을 썼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성별이 무엇이든 성폭력 피해를 본 사람은 보호받아야 한다. 타인을 무고한 사람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어떤 맥락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처리되는지, 본질이 무엇인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피해는 모두 피해다.
- 취재 후
- “성폭력 피해자가 움츠릴 이유 없다”(2020. 12. 11 14:12)
- 2020. 12. 11 14:12 사회
- ㆍ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유독 성폭력은 피해자다움을 강요” 지적 지난 11월 20일,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부산지방법원에 섰다. 준강간치상 사건의 피해자로 증인신문을 받기 위해서다. 신문에 앞서 신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증인대기실의 책장 사진을 올리며 “어린이들이 오면 읽을 수 있도록 책이 구비되어 있다. 이 방을 거쳐갔을 수많은 소녀를 떠올린다”고 썼다. 준강간치상은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은 상대방의 상태를 이용해 강간하고 상해를 입힌 것을 뜻한다. 사진/김기남 기자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한 변호사가 그의 선거포스터를 두고 ‘개시건방지다’고 말해 논란이 일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그는 ‘거칠 것 없는 젊은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는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는 정치인 정체성과 피해자 정체성이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유독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답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들이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힘들다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20% 이하로 추산되는데 신고된 범죄만 연간 3만건을 넘는다. 신 대표를 12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한여넷) 대표와 여성신문 산하의 젠더폴리틱스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여넷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이후, 정치계 성폭력이 너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페미니즘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계 성폭력에 긴밀하게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제출한 상태다.” -지난 총선에서 서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힘들지 않았나. “무소속이 힘든 건 사실이다. 심정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무소속 후보는 힘들 수밖에 없는 제도다. 지역에 사는 주민 500명 서명부터 시작해 후원도 정당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힘들었다.” -3.2% 득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서대문갑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헌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가 20년 동안 번갈아가며 당선된 곳이다. 양당 중심 정치를 끝장내고 새로운 정치시대를 열자고 주장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봤다. 3.2% 득표는 아쉽다. 그래도 20~30대 득표율은 10~15% 수준이었다. 새로운 정치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면에서는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선거였다.” 올해 3월, 신 대표는 8년간 몸담았던 녹색당을 탈당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개별 정당 차원에서나 전체 정치 구도에서나 절대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위성정당 논의에 녹색당이 참여한 것과 자신에게 발생한 성폭행이다. 일각에서는 신지예가 총선을 한달 앞두고 탈당했다며 비판했지만 성폭력 사건을 굳이 앞세우진 않았다. 위성정당 논란과 성폭행 사건이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 대표는 ‘사실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위원장이었음에도 위성정당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 동시에 그가 당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등은 사업 시작부터 예산 집행까지 번번이 막혔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소외됐고, 그래서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가해자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사건 직후 신 대표가 녹음해서 증거를 만들었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성폭행은 인정하지만 성폭행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것은 인정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선고는 내년 1월 22일이고, 12월 31일까지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에 ‘신지예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성폭행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주십시오’라는 탄원서가 공개됐다. “감사하게도 함께 조직 내 폭력에 목소리를 내주셨던 분이 탄원서를 써주셨다. 페미니즘 서울시장 후보를 내걸고 나온 사람을 성폭행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저는 공동위원장이었지만 당 내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당에서 입지가 튼튼한 가해자가 ‘내가 이야기를 잘해볼 테니 만나자’고 했다. 가해자는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계획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당도 직장이다. 직장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도와주겠다고 한 뒤에 강간한 것이다.” -얼마 전에 재판에 출석했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상대측 변호사가 ‘상처가 될 질문을 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다음,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냐고 물었다. 회사에 못 나가야지만 상해폭행이라는 말과 같다. 성폭행 피해자는 죽을 듯이 힘들어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야 피해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맞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고 위자료를 받고 한다. 유독 성폭력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 가해자 변호사 주장처럼 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생활을 못 한다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사진/김기남 기자 -알리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또 없다. 정치계는 어떤 영역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왜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가? 왜 성평등이 더 나은 정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유권자들에게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해결하고 바꾸는 사람으로서 유권자 앞에 서야 하는데, 성폭력 사건 때문에 나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회는 피해자가 약한 존재로 남기를 바란다. 정치인 이미지와는 잘 매치가 안 된다. 이런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많은 여성 정치인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정치인은 사실상 임시직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뭐라도 잘못했다가는 내 커리어가 다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성폭력 생존자는 강한 존재이며,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바꿀 의지를 지닌 이들이다.” -정치계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하고 해결하려면 어떤 조력 혹은 시스템이 필요할까. “최소한 30%가 돼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 많은 여성이 기초의원, 국회의원에 당선돼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20·30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훈련될 필요가 있다. 유권자를 넘어서 정치의 판을 바꾸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은 중2 때 시작됐다. 두발 자유화 운동을 위한 ‘한국청소년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제도권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 ‘하자작업장센터’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이야기꾼의 책공연’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연극인으로 일하며 전국을 다녔다. 입시학원에 다니거나 자기소개를 써본 적은 없다. 이력만 보면 ‘대안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그는 “대안적 삶이라기보다는 과로와 저임금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대학에 갈까 고민했지만 입시 준비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첫 직장은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보통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달 9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대학에도 가보고 싶고 그런 문화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며 “그래도 제가 갔던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녹색당 가입은 우연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다가 녹색당 부스를 보고 후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입당했다. 이후 추첨제로 당 대의원이 됐고, 2016년 총선에서는 녹색당 비례대표로 출마, 2018년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서울시장 선거 사상 최연소(당시 28세) 후보였다. 작은 정당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한계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가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어떻게 결국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나. “서울 마포구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쪽방촌 프로젝트를 했다. 쪽방촌 어르신들과 어울려 사는 프로젝트였다. 내 친구, 마을 사람들과 재미있게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망원동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그 사람들이 모두 ‘적법하게’ 쫓겨났다. 구제시스템이 없었다. 개인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법이 그렇게 놔두지 않더라. 나와 내 주변이 행복하려면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정당에 속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정당이 있는 게 좋다. 하지만 현존하는 정당이 새로운 미래를 열 정당인가? 물음표다. 민주화 세대는 기득정당, 소수정당, 보수정당 진보정당 할 것 없이 포진해 있다. 민주화 세대가 주도권을 쥔 정당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고 민주적으로 연출된 판만 있다. 어떤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냐를 생각했을 때, 기존에 있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보단 우리 세대에 맞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장 다음 보궐선거도 준비하고 있나. “공동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그를 위한 ‘영끌’이 필요하다. 원팀을 만들어서 이길 수 있는 제4지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어떤 정당과 단체, 개인이 함께할 수 있는가? 일단 위성정당 사태와 같은 편법·위법은 안 된다. 그리고 박원순·오거돈 사건을 규명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번 재보선에서 ‘영끌’하지 않으면 결국 민주당 서울시장이 나올 것이다. 민주당 서울시장이 박원순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보궐선거가 왜 열리는지 기억해야 한다.” -정치를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정치는 인류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과 같다.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낫게 살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 내가 죽더라도 나와 같은 열망을 가진 사람이 뒤를 이어서 뛰어주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 [표지 이야기]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언어는 없다(2020. 05. 29 14:50)
- 2020. 05. 29 14:50 사회
- ㆍ위안부든, 정신대든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언어 지난 5월 25일 피해생존자이자 활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이후 ‘정신대’와 ‘위안부’의 용어 차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위안부’와 1944년 전 ‘여자근로정신대’를 비교하면서 용어의 혼동이 연구의 부족이나 시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 양 지적한다. 그러나 정신대는 1938년 총동원체제 이후 일상화된 용어였으며, 같은 시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위안부’ 동원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위안부’와 착종된 말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5월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신대와 위안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초대 대표 윤정옥은 17세 때인 1942년, 미혼여성을 ‘처녀공출’ 또는 ‘정신대 동원’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된 뒤 전쟁터로 끌려간 여자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고 걱정됐다. 여러 차례 서울역에 나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징용자·징병자들을 붙들고 그 여자애들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어느 날 어느 남자가 툭 던졌다. “그 애들은 정신대가 아냐, 위안부야.” 윤정옥은 이때 ‘위안부’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일본과 한국의 책을 들춰보면서 ‘위안부’에 대해 추적했고,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임을 알았다.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저지른 사건이라고 생각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80년대 후반 여성활동가들이 공감했고, 그렇게 1990년 11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윤정옥은 정대협이 자신의 경험을 ‘정신대 피해’로 인식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위해 찾아올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이 있었고, 언론은 일제히 ‘정신대로 끌려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 중에는 ‘정신대’와 ‘위안부’가 혼용되었다.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역사부정을 통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두드러졌다. 우익들은 일본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아사히신문>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여자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전장으로 연행돼’라는 기사를 쓴 기자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 못 하는 날조 기자라고 공격했다. 그해 말 <아사히신문>은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기사는 오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정신대’와 ‘위안부’는 서로 다른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식민지 시기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정신대를 위안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억은 일본의 기억으로 덧칠됐다. 정신대는 일본어 ‘데이신타이(挺身隊)’의 한자를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이는 ‘혼신을 다해 나아가는 부대’라는 뜻의 일본군 전시(戰時) 선전 용어다. 러일전쟁 중인 1905년 4월 13일 <아사히신문> 기사에서 일본군 장교를 ‘정신대 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일본 언론은 학술정신대·무역정신대 등의 표현을 쓰면서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에 정신대라는 미사여구를 붙였다. 이처럼 정신대는 국가에 대한 개인의 헌신을 미화하는 말이었다.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고 본격적인 전시동원체제에 들어가면서 대중의 사상과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애국정신대’·‘농촌정신대’·‘국어(일본어)보급정신대’·‘산업정신대’ 같은 이름의 조직들이 생겨났다. 이 시기 정신대는 자발적인 전쟁협력의 외양을 띠었으나 거부하면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1941년부터는 조선총독부가 14세에서 25세 사이 미혼여성을 근로보국대로 편성했다.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 돈벌이를 빌미로 사라지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일본이나 만주의 군수공장이나 종군간호부로 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듣고 따라갔는데 소식이 끊겼다. 주로 ‘처녀들’이고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빨래를 하거나 피를 뽑히거나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밤에는 군인들의 위안을 해야 한다는 말도 뒤따랐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말들이 치안을 어지럽히는 유언비어일 뿐이라며 육군 형법 위반죄로 처벌했지만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1940년대 들어와서는 부락마다 처녀를 공출해 전선에 보낸다는 식으로 소문은 더 구체화됐다. 경남 양산의 김복동은 1941년 동네 구장이 ‘나라를 위해 데이신타이에 가야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중국 광둥의 위안소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데이신타이가 뭐냐고 했을 때, 구장이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1945년 전남 승주의 이남님 또한 정신대로 뽑혔다는 구장의 말에 버마의 위안소로 보내졌다. 구장은 ‘정신대가 군인들의 밥과 빨래를 하거나 군복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며 ‘전쟁 덕분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1942년에 버마의 위안소로 동원된 이용녀는 싱가포르로 가는 배 안에서 ‘위안부’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위안부’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종전 후 위안소를 드나들었던 병사, ‘위안부’를 목격했던 동포, 정신대와 처녀공출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선의 여자들이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다’는 서사를 완성했다. 이런 서사는 해방 직후부터 김학순이 등장할 때까지 언론 지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언론도 1960년대까지 ‘정신대나 위문대 명목으로 동원된 위안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실 ‘위안부’도 미화된 언어다. ‘병사를 위안함으로써 전쟁승리를 돕는 여성’이라는 일본군의 관점이 배 있다. ‘국익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조직’이라는 정신대의 말뜻을 생각했을 때 위안부든, 정신대든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언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당시 식민지 여성들에게는 돈벌이 또는 새로운 삶의 기회라는 감언이설도 있었다. 정신대든, 위안부든 끌려간 여성들이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한 것은 벗어나기 힘든 위안소 생활을 시작한 뒤였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그 기억을 악몽이나 지옥으로 묘사하거나 망각이나 침묵으로 거부했다. 1990년대부터 국제사회는 ‘자유와 자율성을 박탈당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라는 의미를 담을 용어로 전시 성노예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어떤 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말의 역사가 성폭력 피해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전망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역사를 쓰는 일은 성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타자화된 말들의 싸움에 휩쓸리기보다 언어의 역사성을 인식하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말을 찾아야 할 때다.
- 표지 이야기
- [만화로 본 세상] 친족 성폭력 피해자도 말할 용기를 얻었다(2019. 04. 16 09:32)
- 2019. 04. 16 09:32 문화/과학
-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툰 <27-10>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자기 기록 형식을 취하고 있다. <27-10>이라는 제목은 열 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폭력을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미투운동’에 대해 언론들이 앞다퉈 조명하던 때 한 방송에서 ‘미투’가 어려운 사각지대로 친족 성폭력 문제를 언급했다. 성범죄는 신고율이 낮다는 특성이 있는데, 가해자가 친족인 경우는 더 그렇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AJS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친족 성폭력의 신고율이 처참하게 낮은 이유는 피해자가 놓인 권력관계의 강력함을 방증한다. 가족 같은 관계는 그 비합리적 요구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다. 가장 아름답게 칭송되지만, 가장 잔혹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친족 성폭력의 낮은 신고율은 이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를 제외한 가족관계는 ‘성적인 일’과 무관한 것처럼 여겨진다. 가족은, 실제의 가족들이 어떻건 간에,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라는 관념이 지배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훨씬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특히 아버지가 가해자일 경우에는 믿기 어려워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말을 뒤집으면,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말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한다는 공포와 자기 의심을 무릅써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또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피해당할 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그는 나를 강간했지만 ‘괜찮은 아빠’일 때도 있다. 나는 당장 먹고 입고 잘 곳을 그에게 의탁한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말할 용기를 주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진행한 1359건의 상담 분석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피해자 지원방안 문의에서 ‘법적 지원’(723건, 60.8%)이 전년도에 가장 많았던 ‘심리·정서 지원’(719건, 59.7%)을 앞질렀다. 싸울 용기를 낸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피해자의 말하기는 단순한 고발 이상의 의미와 사회적 효과를 가진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 너울씨는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책을 통해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기록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내 몸과 마음의 고통이 형체를 갖게 되고, 그러면서 그 고통과 서서히 멀어질 수 있었다.” 그는 “내 안에는 빛나는 여러 자아가 있고, 성폭력 피해는 그 자아 중 일부에 생채기를 낸 것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툰 <27-10>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자기 기록 형식을 취하고 있다. <27-10>이라는 제목은 열 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폭력을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주인공은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의 집’을 떠나고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변화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담담하게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을 그려가는 과정이 뭉클하다. 직접적인 묘사 없이도 주인공이 느꼈을 아픔이 피부에 와닿게 하는 연출의 힘이 인상적이다. 2017년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아 지갑 놓고 나왔다>나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히 고발한 <그래도 되는가>도 같이 읽어보길 추천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웹툰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띈다는 점은 시대의 변화상을 드러낸다. 떠들고, 설치고, 싸우는 여성들이 일궈낸 변화다.
- 만화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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