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645 건 검색)
- 소설가 김진명 세금 20억대 체납
- 2024. 12. 17 21:51경제
- ... 등 9666명 공개 유명 셰프 에드워드 권 3억 소설가 김진명씨(67·사진)가 20억원대 세금을 체납해 과세당국이 이름을 공개했다. 개그맨 이혁재씨(51)와 유명 셰프 에드워드 권(53·권영민)도 2억원이...
- 체납김진명국세청
- 소설가 김진명 세금 29억 체납···이혁재 2억, 에드워드 권도 3억 안 내
- 2024. 12. 17 19:41경제
- ...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소설가 김진명씨(67)가 20억원대의 세금을 체납해 과세당국이 이름을 공개했다. 개그맨 이혁재씨(51)와 유명 셰프 에드워드 권(권영민·53)도 2억원이 넘는...
- 체납김진명국세청
- ‘황제의 딸’ 원작 소설가 충야오, 자택서 숨진 채 발견···향년 86세
- 2024. 12. 04 20:24국제
-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중국명 환주거거·還珠格格)의 원작 소설을 쓴 대만 작가 충야오(瓊瑤)가 4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대만 자유시보 캡쳐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드라마 ...
- 황제의 딸환주거거충야오안개비 연가중화권작가
- 소설가 한강이 “영혼의 피 냄새” 느낀 그림···서울에서 만나볼까
- 2024. 10. 15 06:00문화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 마크 로스코 관련 시 2편 수록 서울 페이스갤러리 ‘조응’ 전시 평일·주말 관람객으로 북적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 한강마크로스코노벨문학상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스포츠경향(총 69 건 검색)
- 표창원, 소설가 데뷔
- 2024. 09. 03 09:05 연예
-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 중단→뒤집어엎기 반복 10년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 완성 프로파일러 표창원이 소설가 데뷔 소식을 알렸다. 지난 2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 출연한 표창원은 자신이 집필한 첫 소설 출판을 앞두고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 배우 정은표, 변호사 손수호를 초대해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중단하고 뒤집어엎기를 반복하며 무려 10년 동안 준비한 추리소설이 완성됐다며 『카스트라토』의 준비 과정을 전했다. 프로파일러, 정치인, 방송인의 삶을 살아온 그는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며 자신의 열정을 뽐냈다. 최근에는 추리소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콘셉으로 본인이 직접 가이드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는 사실도 함께 소개했다. 표창원의 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는 돈과 권력을 좇아 양심과 정의, 인간성 같은 인간의 본성마저 저버린 현대 대한민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사적 복수와 정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화두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고민을 건넨다. 묵직한 주제를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감 나는 묘사와 치밀한 수사 과정으로 버무려 새로운 페이지터너의 탄생을 예고한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 범죄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 준 ‘소설가 표창원’의 광대한 세계관의 서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표창원의 소설 ‘카스트라토’ 책은 돈과 권력을 좇아 양심과 정의, 인간성 같은 인간의 본성마저 저버린 현대 대한민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사적 복수와 정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화두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고민을 건넨다. 묵직한 주제를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감 나는 묘사와 치밀한 수사 과정으로 버무려 새로운 페이지터너의 탄생을 예고한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 범죄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 준 ‘소설가 표창원’의 광대한 세계관의 서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집필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프로파일러 표창원은 “부조리가 난무하던 1990년대 초. 웃으며 경찰서를 떠나는 강간범을 쫓아가 두들겨 패 주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른다.”라며 “경찰 수사 현장에서 분노와 자괴감에 휩싸여 품속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면서 공상에 빠지곤 했다. 낮에는 경찰, 밤에는 법망을 피해 악인을 벌하는 현대판 일지매를 그린 상상이 소설로 발아했다”라는 소설 출간 배경을 밝혔다. 한편, 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는 출간 전 부산스토리마켓 한국 IP 전격 선정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경험에 바탕으로 한 치밀한 수사 과정, 새로운 페이지터너의 탄생이라 평가받은 책은 돈과 권력을 좇아 양심과 정의, 인간성 같은 인간의 본성마저 저버린 현대 대한민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 ‘멱살 한번 잡힙시다’ 형사 연우진 VS 소설가 장승조, 비틀린 삼각관계 속 두 남자
- 2024. 03. 16 23:30 연예
-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배우 연우진과 장승조가 불꽃 튀는 신경전을 펼친다. KBS 오는 18일 월요일 오후 10시 10분 첫 방송되는 KBS2 새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연출 이호, 이현경 / 극본 배수영 / 제작 몬스터유니온, 프로덕션H)는 나쁜 놈들 멱살 잡는 기자와 나쁜 놈들 수갑 채우는 강력팀 형사가 연이어 터진 살인 사건을 함께 추적하는 멜로 추적 스릴러로 ‘2020 지상최대공모전’ 웹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동명의 네이버시리즈 ‘오아뉴-멱살 한번 잡힙시다’(작가 뉴럭이)가 원작이다. ‘멱살 한번 잡힙시다’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온 배우 연우진과 장승조가 새로운 이미지 변신을 예고한 가운데 이들이 김하늘과 함께 선보일 비틀린 삼각관계가 기대된다. 이 작품을 통해 첫 형사 역에 도전하는 연우진은 예민하고 묵직한 면이 많은 김태헌을 표현하고자 밤낮없이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형사라는 직업을 더욱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연우진은 몸 사리지 않는 액션 씬까지 직접 소화했다. 게다가 연우진만의 짙은 감정 표현까지 더해진 김태헌이 살인 사건의 진범을 알아낼 수 있을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장승조는 어두운 심연 깊숙이 비밀을 숨긴 서정원(김하늘 분)의 남편 설우재 역을 맡았다. 설우재가 가진 사연이 극을 관통하는 핵심 서사로 예고 된 바. 복잡한 감정선과 서사를 가진 설우재를 연기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고 밝힌 장승조는 비주얼부터 호흡, 톤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우재를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했다. 장승조의 열연으로 완성된 설우재가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아내 서정원의 곁에 남아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하늘을 둘러싼 연우진과 장승조의 팽팽한 대립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앞서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 속 설우재가 김태헌에게 사람 잘못 건드렸다며 살벌한 경고를 날린 장면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들은 만날 때마다 팽팽한 기싸움을 하는가 하면 감정의 폭발로 몸싸움까지 한다고 해 본방송에 담길 이들 관계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된다. 김태헌과 설우재로 완벽 변신한 연우진, 장승조가 선보일 운명의 라이벌 구도는 오는 18일 밤 10시 10분 첫 방송되는 새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멱살 한번 잡힙시다’ 장승조, 재벌 2세 소설가 설우재 역 스틸컷 공개
- 2024. 01. 25 21:37 연예
- KBS ‘멱살 한번 잡힙시다’ 배우 장승조의 심쿵 유발 첫 스틸컷이 공개됐다. KBS2 새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연출 이호, 이현경 / 극본 배수영 / 제작 몬스터유니온, 프로덕션H)는 나쁜 놈들 멱살 잡는 기자와 나쁜 놈들 수갑 채우는 강력팀 형사가 연이어 터진 살인사건을 함께 추적하며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는 멜로 추적 스릴러로 동명의 인기 네이버시리즈 ‘오아뉴-멱살 한번 잡힙시다’(작가 뉴럭이)가 원작이다. 장승조는 인기 소설가이자 서정원(김하늘 분)의 남편 설우재 역을 맡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히트를 친 설우재는 무진그룹 2세라는 후광까지 더해져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 뒤 마음 깊숙이 꽁꽁 감춰둔 어두운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서정원은 자신을 구원해 줄 운명의 여자다. 행복한 신혼도 잠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설우재의 인생은 한 살인사건을 마주한 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25일 공개된 스틸에는 세련된 수트핏과 함께 재벌 2세 소설가의 아우라를 풍기는 장승조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한 내면을 숨긴 채 아내에겐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인 설우재를 장승조가 어떻게 그려 나갈지 주목된다. ‘멱살 한번 잡힙시다’ 측은 “장승조는 설우재의 빈틈없어 보이는 외면은 물론 공허하고 쓸쓸한 내면까지 짚어내며 설우재라는 인물에게 온전히 몰두했다. 철저하게 설우재를 완성한 장승조의 새로운 연기 변신을 만나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극적 몰입도를 더할 장승조의 열연은 오는 3월 ‘환상연가’ 후속으로 방송될 새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신간]소설가 최삼경 ‘붓, 한 자루의 생’…“붓, 그것은 국가요 생이어라”
- 2023. 04. 30 11:07 생활
- 춘천을 대표하는 이야기꾼 중 하나인 소설가 최삼경이 첫 장편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을 펴냈다. 이번 소설은 “조선의 반 고흐, 칠칠이 최북 외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중 하나인 최북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가 최삼경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흔히 3원-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과 3재-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를 꼽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전업 화가이며 조선의 반 고흐로 불린 호생관 최북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번 소설에 대해 이렇게 부언한다. “도시괴담처럼 떠도는 최북에 대한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이것들을 재구성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혹여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고 작품에 각색을 했을지도 몰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조선조에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은 꼭 그려내고 싶었다.” “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기까지 그를 떠밀었던 신분적, 예술적 절실함과 광기에 대한 한을 어찌 풀어가야 할지는 쓰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화두였다. 우리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그 많은 사회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실은 엄혹한 정파 간의 정쟁이 고조된 시기였고, 이때 정권을 잡은 노론의 정치 이념에 따라 이후 조선말의 역사가 어찌 흘러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북에 관한 논문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젊은 시절 만주 쪽을 한 바퀴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시원이랄까, 우리의 국토를 넓혀보고 싶어서 저 샤먼의 태동이라는 바이칼 호수까지 나아갔다. 나름 최북이라는 예술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예술적 고민을 잘 버무려 멋진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읽어봐도 욕심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북이라는 인물을 소설로 재구성하면서 작가는 조선 시대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을 함께 그려내려 했다는 것이고,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조선이 망국, 망조의 길을 걷게 된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발문을 쓴 화가 이광택은 이번 소설을 한마디로 “생의 벼루에 갈린 휘황한 허무”라 칭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이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이병주)고 하듯 일사(逸事)에 가려진 조선의 기인 화가의 삶을 이렇듯 야무진 직조처럼, 십자수처럼 올올이 치밀하게 엮어내 세상에 내놓다니! 역시나 허접한 소원 따위야 저만치 내던진 채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갖추며 한평생을 마칠 것 같은 풍모의 문사에서나 나올 문장의 솜씨가 아닐 수 없다. 관찰의 미더움과 따뜻한 상상력이, 평정과 여유, 관조와 지혜가 도처에서 빛난다. 시대에 대한 비판적 안목과 따스한 마음씨가 단아한 문장으로 교직되어 있다. 크게 보되 작게 살피고, 작은 것 속에 큰 의미를 담았다.” “그가 써낸 소설을 읽고 난 뒤 책을 흔들기라도 하면 월용(月容)의 여인이 뜯는 가야금 소리에 실려 오랜 시간이 쟁여놓은 웅숭깊고 아득하면서도 고즈넉한 향기가 날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소설 안에는 산맥으로서의 이 땅의 역사와 그 골짜기에서 벌레처럼 낮게 엎드려 살아온 뭇 백성들의 다채로운 삶의 결이 깊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암석의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조선 시대 민초들의 절망과 눈물로 응달진 고통스러운 상처가 사금파리처럼 엉켜 있다. 삶의 잡스러움, 그 이질적인 것들의 혼효 속에 현실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소설에서는 왁자한 장바닥의 풍각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어찌 보면 최북은 예술의 가장 깊은 곳을 본 것 같다. 예술이란 것의 본질이 결코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삶의 마당에서 역할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건조한 우리 삶을 촉촉하게 해주는 수분크림 같은 것이니까. 또한 살천스럽고 황량한 세상의 덤불에 걸리고 찢기며 속병 든 한생이었지만 최북은 그 ‘생의 한 철’을 잘 놀고 간 것 같기도 하다. 힘없는 백성들이 너나없이 비인칭 주어로 살던 험악한 시절이었음에도 호생관이야말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정신만큼은 온전하게 ‘주체’로 깨어 있지 않았던가. 그의 죽음이 푸짐한 함박눈의 축복 아래에서 길마 벗은 황소마냥 편안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권력과 폐쇄성으로 꽉 조여진 조선 사회에서 ‘환기통’ 같은 역할을 한 예인이 최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오래전부터 최삼경은 글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호구지책으로 숱한 잡문을 써내야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소설이 자리 잡고 있었고, 홀로 절차탁마한 지도 꽤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호구지책을 벗어버린 그가 펜을 들었다. 밤낮없이 조선의 반 고흐, 칠칠이 최북의 일생을 써내려갔다. 그 사이 몇 개의 계절이 지났다. 1200장의 원고지를 채웠다. ‘붓이 나의 국가였고, 붓이 나의 생이었다’는 문장을 끝으로 마침내 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이 세상에 나왔다. 우화등선(羽化登仙), 마침내 그가 껍질을 벗었다. 이번 소설을 통해 화가 최북과 소설가 최삼경이 제대로 조명받기를 소망한다. 소설가 최삼경은? 소설가 최삼경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 회원으로 소설을 쓰고 있으며, 신문 잡지 등 매체에 현재 인문 사회 역사 문화 관련 칼럼과 에세이 등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 2’가 있다.
주간경향(총 34 건 검색)
- [주목! 이 사람]소설가 정화진 ‘김의기 열사’ 기리는 소설 펴내(2020. 07. 31 15:54)
- 2020. 07. 31 15:54 사회
- 작가 정화진이 쓴 <의기>는 지난 5월 출판사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소설이다. 제목도 단출하고, 작가의 이름 역시 조그맣게 인쇄돼 있다. <의기>는 1980년 5월 30일 의문의 추락사로 숨진 김의기 열사(서강대 무역학과 76학번)의 이야기다. 김 열사는 광주에 갔다가 참사를 목격했다.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했다. 이날 회관 6층에서 떨어져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정화진은 1980년대 <쇳물처럼>이란 노동소설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그 ‘정화진’이다. 그 시절 이후 정화진은 문학판에서 사라졌다. 소설가 정화진의 본명은 황의돈. 그는 서강대 영문과 80학번이다. 서강대 4년 선·후배. 김의기 열사와 정화진 사이에는 옷깃이라도 스친 인연이 있을 법하다. 정화진은 “대학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의기 형’의 이름을 모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80년 봄 서강대 교정이 유일했다. 정화진은 “나는 학교 밖에서 야학을 주로 했고, 당시에는 휴교령이 떨어져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화진은 ‘의기 형’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정화진은 ‘작가의 말’에서 “그는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분명히 몇 번이나 보았던 현실의 사람이었다”고 적어놓았다. 80년 봄 서강대 학생회관 철야농성장에서 연설을 하던 ‘작고 마른 사람’을 기억해낸 것이다. <의기>는 (사)김의기기념사업회에서 김 열사의 40주기를 맞아 발간한 책이다. 평전을 준비하던 기념사업회는 정화진에게 연락했다. 정화진은 ‘작가의 말’에서 “어느 날 의기 형이 내게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이 너무 불현듯 해서 잠시 동안은 피할 구실을 찾았다”고 언급했다. 정화진은 기념사업회에 “평전을 쓰려면 다큐멘터리 작가한테 부탁해라”고 말했다. “내가 한다면 소설 형식을 취해야 하는데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기념사업회는 ‘색다른 평전’을 허락했다. 정화진은 “정화진이라는 소설가가 살아가야 하는 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화진은 김 열사의 친누나,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 그리고 선·후배들을 만났다. 4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김 열사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소설은 김 열사의 묘를 거의 매일 찾는 여자친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은 기독교회관에서 끝난다. 김 열사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등사하는 도중 복도가 소란스러워진다. 김 열사는 등사물을 쥔 채 창밖 난간으로 향한다. 사무실 안으로 군복 차림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정화진은 “소설의 마지막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 한다”면서 “투신이라고 했지만 인터뷰를 한 후 의문의 추락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화진은 2015년 단편소설 세 편을 들고 문학판으로 돌아왔다. 겨우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 정화진은 <의기>에서는 “운동권적 시각을 버리고 오로지 ‘의기 형’의 삶에 천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서 ‘열사’라는 호칭을 뺐다. 책 표지에 기념사업회라는 이름이 빠졌다. ‘의기 형’의 연보도, 사진도, 그의 마지막 등사물도 책 뒤에 붙여졌다. 정화진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당시 의기 형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주목! 이 사람
- [주목! 이 사람]인류학자이자 소설가인 공원국씨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 추진”(2018. 12. 17 14:55)
- 2018. 12. 17 14:55 사회
- 여행이라면 누구보다 부지런히 다녔던 그였다. 수많은 곳을 지나쳤지만 오랫동안 한 곳에 정착한 적은 없었다. 인류학자이자 소설가인 공원국 작가의 발길이 멈춘 곳은 키르기스스탄 파미르 고원이었다.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파미르 고원의 아름다움은 격조가 있어요. 면적이 넓은 하늘도 아름답고 땅 위의 삶도 매력적입니다.” 지금은 잠시 서울에 와 있지만 현재 공 작가의 ‘집’은 파미르 고원에 있다. 연구를 위해 유목지대를 찾아 들렀다가 눌러 앉았다. 아름다운 자연에 반한 것도 있지만 현지 사정을 알게 된 후에 발을 뗄 수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파미르 고원은 지금 탄광 개발이 한창이다. 분진으로 마실 물이 부족하고 대기오염도 심해지고 있다. 건강을 잃는 현지인들도 늘고 있다. 그는 파미르 고원을 본래대로 되돌려놓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정식 명칭은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다. 장장 5년에 걸친 환경사업으로 깨끗한 식수 공급을 위한 상수도 설치와 숲 복원, 생태관광코스 조성이 목표다. “자연은 아름다운데 현지의 현실이 예쁘지 않더군요. 단순히 관찰만 하려고 갔다가 워낙 여러 사람의 건강이 걸린 문제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인류학자이자 책을 쓴 지 11년이 된 그의 첫 직장은 자동차회사였다. 애초부터 학비 마련을 위해 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데 쓸 만큼만 벌고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학교로 돌아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건 학위를 받은 즈음이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니 ‘평생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았고, 새로운 표현을 찾아 고민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번역서를 내고 역사책과 인류학책을 썼다. 번역은 공부가 되는 작업 이었다. 명저를 다루는 일은 학문을 닦는 작업이기도 했다. 학문서적 집필도 같은 맥락에서 유익한 작업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도전한 소설은 달랐다. 더 어려웠고 더 많은 공력을 요했다. 역사를 녹여야 했기 때문에 현지 조사와 취재도 꼼꼼히 해야 했다. 그렇게 써낸 그의 첫 소설이 <가문비 탁자>다. “이제껏 썼던 책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소설에서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만든 캐릭터와 끊임 없이 대화를 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가문비 탁자>는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경계 없는 인간, 지구인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을 소설 형식을 빌려 담았다. 20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가문비 탁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스스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자부하는 작품이다. 최근 나오는 소설들이 다루지 못하는 ‘죽고 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세기 러시아 소설 수준은 아니지만 반드시 부딪혀야 할 문제를 다뤘어요. 무겁고 큰 주제라서 이 책을 어떻게들 읽어 내셨는지 소감이 무척 궁금합니다.” 내년 3월 그는 다시 파미르 고원으로 떠난다.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가문비 탁자>가 많이 읽혀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 책의 인세가 프로젝트 기금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 책뿐 아니라 올해와 내년에 나오는 책 수익금은 모두 다 프로젝트를 위해 쓰입니다. 부끄럽지만 많은 분들이 책을 사 봤으면 좋겠네요.”
- 주목! 이 사람
- [신간]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일본 소설가(2018. 08. 13 14:50)
- 2018. 08. 13 14:50 문화/과학
-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양윤옥 외 옮김 민음사·각권 9800원 민음사가 동네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시작한 ‘쏜살문고’ 컬렉션은 올해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을 선보인다. 188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메이지 말기(1910년)부터 쇼와 중기(1965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며 다방면에 걸쳐 문학적 역량을 과시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문학의 주요 인사들이 앞다퉈 상찬했던 그는 한 사람의 작품세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문체와 주제, 형식을 넘나들었다. 생전 노벨문학상 후보에 6차례나 지명됐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독특한 형식을 지닌 소설인 <요시노 구즈>, 자유분방하며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 나오미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 <치인의 사랑>, 일본 고전 미학의 정수를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슌킨 이야기>, 권태기에 이른 중년부부의 비밀스런 성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쓴 <열쇠> 등 모두 7권이 나왔으며 3권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 | 박형남 지음·휴머니스트·2만원 30년 경력의 판사인 저자가 역사적으로 곱씹어볼 만한 가치를 남긴 재판을 통해 현실을 투영한 책이다. 지동설을 옹호했던 갈릴레이 재판, 청년들을 타락시켰다고 비난받은 소크라테스 재판, 중세의 종교재판을 비롯해 ‘미란다 원칙’이 나오는 계기가 됐던 20세기 미국의 미란다 재판까지 15건의 재판을 통해 좋은 재판, 나쁜 재판을 가려본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이라영·동녘·1만5000원 자신이 세운 기준에 따라 진정한 페미니즘을 모른다고 훈계하거나 진짜 페미니스트라고 치켜세우는 목소리에는 어떤 허점이 있나. 이를 지적하는 동시에 여전히 불편하고 할 말 많은 여성의 몸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는 책이다. ▲물의 과학 | 제럴드 폴락 지음·김홍표 옮김 동아시아·2만8000원 우리가 아는 물의 상식은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어 수증기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배타구역’을 거론하며 이 상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배타구역에서 물은 다른 물질과 잘 섞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고체와 액체의 중간 정도 성격을 띤다.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 시민건강연구소 지음·낮은산·1만4000원 피로의 누적과 그로 인한 건강 이상은 개인의 나약 때문인가. 산업재해는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것일까. 강남구와 금천구의 기대수명이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우연일까. 고용불안, 소득불평등과 같은 이 사회 불평등은 우리의 몸에 새겨지고 우리 몸은 그 자체로 정치적 공간이 된다.
- 신간
- [주목! 이 사람]소설 펴낸 소설가 전경일씨 “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의무”(2018. 01. 23 15:11)
- 2018. 01. 23 15:11 사회
- 1954년 겨울, 마릴린 먼로가 강원도 인제군에 왔다. 마릴린 먼로의 방문에 인제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환호했다. 2017년 겨울, 마릴린 먼로는 기괴한 모습의 동상으로 다시 인제 땅에 섰다. 무성의한 동상이 구설에 오를 즈음, 한 이야기꾼이 마릴린 먼로를 끌어들여 한국전쟁에 대한 긴 이야기를 펴냈다. 장편소설 <마릴린과 두 남자>(다빈치 북스)를 펴낸 소설가 전경일씨(55) 얘기다. 왜 지금 시기에 한국전쟁일까? 한국전쟁은 어쩌면 흘러간 옛노래처럼 들릴 수 있다. 전씨는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불씨가 남아있는 곳이지만 우리는 전쟁과 역사, 현실에 대해 남 이야기하듯 한다”며 “역사에 있어서 행·불행의 주인공은 우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 다시 한국전쟁 얘기를 꺼냈다”고 말했다. 소설 <마릴린과 두 남자>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두 사내의 이야기다. 기자 신분으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지켜본 두 사람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푸른 눈으로 바라본 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전쟁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여기서 마릴린 먼로는 소설을 시작하는 섹시한 소재이자 핵심 열쇠가 된다. 금발의 백치미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반골적 기질이 다분했던 지식인이자 사회혁명가인 마릴린의 진짜 모습이 작품 속에서 복원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그 뼈대는 사실로 채웠다. <라이프>지에 실린 사진과 기사, 각종 논문을 소설에 녹였다. 살펴본 단행본 높이만 2m50㎝, 파일도 셀 수 없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장성들의 회고록과 민중들의 6·25 경험담, 그리고 돌아가신 부친의 기록과 구두 증언이 소설의 얼개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2013년에 초고를 완성, 정리하고 고쳐 쓰는 데만 4년이 더 걸렸다. 전씨에게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공포다. 그럼에도 다시 전쟁을 입에 올린 이유는 역사를 똑바로 보지 않으면 또다시 같은 비극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아픔과 상처, 비애, 고통을 다룰 때 우리는 비로소 치유하고 화해하는 법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도 그렇지만 전씨는 역사에 천착한다. 이야기꾼으로서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꿰면 특별한 부채의식을 갖지 않고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전씨의 지론이다. 전씨는 “역사에 나타난 원천 소스를 잡아 소의 뼈와 살을 바르는 백정처럼 제대로 다뤄내 독자에게 내놓는 것이 글쟁이의 역할이자 소임”이라고 말했다. 책의 행간을 통해 작가는 전한다. “이 민족에겐 단연코 지금보다 더 이성적인 시대를 열어나갈 책무가 주어져 있다. 평화를 위한 한반도인의 의무가 해태되었을 때, 이 땅은 물론 세계는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을 우려가 있다.” 1999년 <세계의 문학>에 시 <눈 내리는 날이면>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전경일 작가는 에세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 주목! 이 사람
레이디경향(총 53 건 검색)
- [책 읽는 레이디] 한국 여성 소설가들은 어떤 '여성연대'를 꿈꾸고 있을까?
- 2020. 11. 09 14:59 문화/생활
- “언니 믿지?” “당연하지, 언니인데!” 제목부터 눈길을 확 끄는 ‘언니 믿지?’(김서령 외 7인 / 폴앤니나)는 ‘여성연대’를 이야기하는 단편소설 여덟 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김서령·최예지·송순진 소설가 등 여덟 명의 작가는 이 땅에서 여성들이 연대하고 어울리고 위로하는 세상을 발랄하고 또 잔잔하게 그려냈다. 지금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사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절절하게 고민하고 열망했을 ‘여성연대’. 한국의 여성 소설가들은 어떤 식의 여성연대를 꿈꾸고 있을까? 그들의 소설 속에서 어떤 주인공은 씩씩하고, 어떤 주인공은 아뜩하고, 어떤 주인공은 유쾌하고, 어떤 주인공은 여태 어리바리하다. 할머니의 삶에서 여성의 삶을 끄집어내 복원하고(할머니는 엑소시스트-송순진), 이혼하고 돌아온 이웃집 딸을 위해 온갖 오지랖으로 빨래방 창업을 돕는다(언니네 빨래방-김서령). 또 친구의 실종된 딸을 찾으러 모든 것을 팽개치고 떠나기도 하고(안부를 물어요-윤화진), 자신의 존재가 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으로만 집계되는 현실에 기막혀하기도 한다(에그, 오 마이 에그-김지원). 바람을 피우고도 뻔뻔한 언니의 남자친구를 처단하기 위해 자매가 싸움판을 벌이는가 하면(엄마한텐 비밀이야-최예지),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엄마가 제손으로 신고한다(한 사진관-정여랑). 이 밖에 비혼여성이라 당연히 돌봄노동을 도맡게 되는 현실이 그려지고(우리들의 방콕 모임-이명제), 그래야 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완벽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완벽한 식사-임혜연). 연대로 인해 더 단단해지고, 연대로 인해 더 다정해지고, 연대로 인해 또 애잔해지고 눈물겨워지는, 우리 시대 언니들을 그려낸 소설집이다. 어쩌면 이런 세상은 ‘판타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들은 한목소리를 말한다. ‘판타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진짜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 책 읽는 레이디
-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박솔뫼의 뜨개질하는 시간들
- 2013. 09. 06 16:44 문화/생활
- 뜨개질에 대해 쓰고 싶었다. 뜨개질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뜨개질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하는 것에 관해 쓰고 싶었다. 그럼에도 왠지 시작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유는 뜨개질의 세계는 내가 뭐라고 쓰기에 무척 넓고 깊었고 내가 알거나 할 줄 아는 것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뜨개질에 관해서라면 아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지하철을 타도 아무렇지 않게 어려운 뜨기를 손도 안 보고 하는 사람들을 몇 번이나 마주치게 되고, 당장 어머니만 해도 어릴 때 눈으로 배워 혼자서 옷을 여러 벌 떴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아마 어머니 또래의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나는 이제 뜨개질이라는 바다에 발만 담그고 있는 정도인데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써도 되려나’, 뭐 그런 생각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뜨개질에 관해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강하게 품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작년 겨울에 책을 읽은 시간과 뜨개질한 시간 중 어느 쪽이 더 길까 생각해보면 뜨개질 쪽일 것 같다. ‘어느 쪽이 길지 확실히 알 수 없네.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라고 고민해야 할 정도로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겨울의 몇 개월간은 뜨개질이 일상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뜨개질에 관해 무엇이라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로 곧 1년이 다 돼간다. 이전에도 목도리를 떠보려고 두 번 시도했지만 다 중간에 관두었다. 완성을 하지 못했다. 실수가 있을 때마다 자꾸 풀어서 다 뜨기도 전에 지쳐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줄곧 몰입해 뜨개질을 하다 새벽 2시에야 잠이 들고 그러고 나서도 뜨개질을 빨리 하고 싶어 6시에 일어나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다행히 오래 걸리기는 해도 하나씩 완성은 하고 있는데, 그렇게 뜨개질을 해나가며 몇 가지 알아차리게 된 것들이 있다. 우선은 뜨개질은 중독성이라고 해야 할까 몰입도라고 하는 쪽이 나을까, 간단히 말해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에 우연히 영화 만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은 내가 뜨개질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웃음기 없는 얼굴로 뜨개질에는 왠지 광기가 느껴진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시며 ‘레이스 뜨는 여자’를 예로 들었다. 나는 그때는 ‘뭐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에이, 아니에요. 그 전에 실이 다 떨어져 멈출 수밖에 없어요. 미치기도 힘들걸요?”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대로 씻지도 않고 테이블 위 털실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잠시 ‘아, 역시 맞는 말이었어’ 하는 생각에 아주 잠깐 서늘한 기분이 됐다. 아마 실이 다 떨어져도 실을 연결하는 동작 역시 유기적으로 마치 방금 전처럼 뜨개질을 하듯이 이어져 새로운 실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 9월 뜨개질을 배우며 처음 뜨기 시작했던 목도리는 택시에 두고 내려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 목도리는 회색의 두꺼운 실로 뜨고 있던 것이었는데 일정하지도 않고 삐뚤빼뚤한데다가 중간에 코도 두 개나 늘어나 있었지만, 나는 그 목도리를 꼭 완성하고 싶었고 부족하더라도 다 떴더라면 분명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뜨던 목도리를 택시에 놓고 내린 것을 깨닫고 스스로의 부주의함에 화가 나 울고 또 울기도 했었다. 그때 탔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강원랜드에 간 이야기를 타고 가는 내내 재밌게 해주셨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목도리와 그 외에 함께 들어 있던 것들은 이제 잊어버려야지, 하고 간신히 마음을 다독였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래서인가, 그 직후 다시 실을 사서 떴던 목도리는 꽤 빨리 완성했다. 열심히 뜨던 것을 잃어버려서 아쉽고 억울한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목도리만 떴다. 그때 범죄 관련 드라마나 영화 등을 주로 틀어놓고 목도리를 떴는데 사건이 진행되는 것과 뜨개질이 나아가는 것이 비슷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범죄물이나 스릴러, 미스터리물과 뜨개질은 서로 어울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손을 움직여 뭔가를 하고 있으면 무서움이나 긴장감을 좀 참을 수 있었고 뭔가를 몰입해서 보고 있으면 뜨개질을 할 때 실수가 잦을 것 같지만, 의외로 아무것도 안 보고 할 때보다 실수가 적었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나 긴장하며 보고 있어서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뜨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긴 시간 뜨개질을 할 때는 주로 범죄물을 틀어놓는다. 연쇄 살인범을 쫓는 미국 드라마 같은 것들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든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뜨개질을 하기 좋은 조건’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경우는 ‘범죄물을 보며 집에서 뜨개질하기’이지만 ‘클래식을 들으며 소파 위에서’라거나 ‘사람이 많은 2호선 안’ 아니면 ‘라디오를 들으며 서울-부산 구간의 KTX 안’ 혹은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에서 사람이 적은 새벽 시간에’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뜨개질이 잘되는 상황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고, 시도한 것만으로는 네 번째였고 완성한 것으로는 최초가 된 목도리를 뜨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뜨개질을 오래하거나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아예 뜨개질을 하기 좋은 조건 같은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뜨개질이 능숙한 사람이라면 버스나 지하철, 카페나 식당 혹은 길가의 벤치 어디에서라도 별 무리 없이 뜰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시도해본 적은 있지만 자꾸 실수가 생겨 요즘은 거의 집에서 뜨지만, 가끔 지하철 안에서 손도 안 보고 기계적으로 뜨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음, 저 사람은 지하철에서도 어디서도 아무렇지 않게 뜨는구나’ 하는 마음에 살짝살짝 훔쳐보고는 하는데, 우연인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들이 뜨는 것은 늘 정교한 무늬의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뜨개질이 잘되는 상황이나 조건 같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크게 구애받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언젠가 저런 것을 뜰 수 있겠지, 하고 바라며 다시 살짝살짝 훔쳐보았다. 최근에 읽은 소설인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에는 뜨개질을 포함한 각종 수예에 능한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세계 각지를 떠돌며 그 지역의 수예를 배우고 수예에 관한 책을 쓰고 그와 동시에 그 나라 말로 된 혹은 그 지역의 소수만 쓰는 언어로 소설을 쓴다. 수예를 배우며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손을 움직이며 언어를 체득해 그 과정에서 소설과 수예 관련 책을 각각 쓰는 것이다. 말을 배우는 과정이 수예의 진보와 함께 이루어지는 이상, 내 어휘는 수예 용어와 요리 용어를 중심으로 한다. 거기서부터 부족한 게 더해져서 내 말은 짜이고 익는다. -(본문 P54 중에서) 실제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걸까,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지만 대체로는 그건 어떤 것일까, 알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 마음을 붙잡는 것이 있었는데, 언어라는 것이 종이 위에서 책이나 연필로 배우거나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움직이며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 옆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배우는 와중에 체득된다는 것. 또 언어가 체득되는 시간 사이에 다양한 무늬가 천 위에서, 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그려보는 일은 마음을 떨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요즘은 방울이 달린 모자를 연이어 뜨고 있는데 엔조 도의 소설을 읽은 후로는 가끔 실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필요한 말만을 하며, 즉 필요한 말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뜨개질일지 말일지, 혹은 둘 다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전달하는 모습을 그려보고는 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고요한 시간은 못 될 것이고 가끔 고요하고 대체로 웃기면서 또 웃으면서 조금 긴장감이 있는 이상한 시간일 것이다. 그런 시간을 한 번만이라도 갖게 된다면 실 사이에 오가는 것이 바람뿐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말한 것처럼 최근에는 방울이 달린 모자를 뜨고 있는데 오늘 올여름 들어 두 개째의 완성했다. 아직 실을 정리하는 것이 남았지만 어쨌거나 다 떴다. 모자를 뜨는 것은 목도리보다는 금방 끝나고 왠지 모자라는 물건 자체가 조금 귀여운 물건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서인지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뜰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인지 다른 것보다 모자를 많이 떴는데 방금 헤아려보니 나는 오늘 뜨개질을 시작한 이래 여섯 개째의 모자를 완성했다. 털실의 굵기나 색은 다르지만 모두 방울이 달린 털모자였다. 언젠가는 방울이 안 달리고 좀 더 길거나 짧은 혹은 좀 더 넓거나 좁은, 그게 아니면 끈이 달리거나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만들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무엇을 뜰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다음에 뜰 것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또 모자이다. 여름에 세 개의 모자를 완성하겠다고 결정해서인지 이 다음이 모자라는 것에는 고민이 없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뜰까, 하고 잠시 소파에 앉아 고개를 젖히고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며칠 전 뜨개질 상점에서 보았던 색색의 다양한 굵기의 실들, 그 옆에 같이 파는 이런저런 뜨개질 관련 책들,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생각해보다 보니 왠지 나른해지면서 혼자서 피식피식 웃게 됐다. 그냥 가만히 앉아 어떤 것을 뜰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것이었다. 문득 지난달 함께 뜨개질 상점에 갔다가 실을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놀렸던 것이 생각났다. 분명 뜨개질은 대개의 경우 혼자서 하는 일이고 자신만의 필요한 최소의 공간에서 가만히 몰입해서 하는 것이라 거기에 어떤 식의 즐거움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뜨개질할 실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꽤 오래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뜨개질을 하기 좋은 조건’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어느 순간에는 어떤 장소나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되는 경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번쯤은 맞이해보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가끔 실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필요한 말만을 하며 -즉 필요한 말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뜨개질일지 말일지, 혹은 둘 다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전달하는 것일 것이다. 그 사람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잊히지 않는 목소리나 손으로 기억하게 되겠지. 뭐 그런 생각들을 한다. 바로 뜨개질을 하면서 말이다. 편집 후기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들이 있다. 때로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재미없는 것일 수도, 시시한 것일 수도 혹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시간들 말이다. 대개 그런 시간은 우연히 ‘발견되며’, 그렇게 머리 위로 충만한 고요와 함께 이런저런 무언가 중요한 것들이 오고가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고 난 뒤로는 그 기묘한 즐거움을 결코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손을 움직이며 모자를 뜨는 것일 수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종이 위에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일 수도, 또 어떤 이에게는 나무를 다듬고 깎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게는 한때, 그 비슷한 것으로 ‘칼질하는 시간’이 있었다. 저녁 늦게 들어간 집에서 제대로 불도 켜지 않은 채 냉장고며 베란다 용도로 쓰는 창고 등을 뒤져 이것저것 칼질할 재료들을 꺼내와 도마 위에 주르륵 늘어놓고 싹둑거리는. 굶주림에 시달려 있던 상태도 아니고, 당장 멋진 요리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통통 탄성 좋게 튀어 오르던 칼의 부딪힘 소리가 듣기 좋았고 퐁퐁 수증기를 내며 끓는 냄비에 그 재료들을 쏟아 부을 때 나던 경쾌한 울림이 후련했달까. 간혹 날씨라도 도와주어 잔뜩 찌푸린 도시에 빗방울이 닿는 소리가 함께 엉겼다 풀어지기라도 하면 더욱 가슴속 밑바닥에 동심원이 생기는 기분이 들며 뭔가 아득해졌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물론 그 시간의 뒤편에는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열병과 같은 기대와 허기가 동력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살아가는 데는 사랑하는 사람도, 소중한 무엇도, 어떠한 일도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그 고유한 시간들이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견디고 채우고 끌어안는 시간들 말이다. 기록적인 폭염이다. 날씨가 고온다습해서인지 감정 또한 아주 덥고 축축하다. 마치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가동하고 있는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다. 만사가 귀찮고 힘들지만, 오랜만에 햇볕에 바짝 말려두었던 도마를 꺼내봤다. 시간은 흘렀고, 틈은 메워지지 않는다. 말들도, 사람도, 약속도, 모두 떠났다. 하지만 이 시간, 이걸로 충분하다. 박솔뫼 작가는… 올해 황순원문학상에 이름을 올린 후보자 중 최연소인,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했다. 2009년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장편 「을」, 「백행을 쓰고 싶다」가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박솔뫼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 프런트 에세이
-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김미월의 어느 날 시화전에 갔다
- 2013. 07. 03 15:03 문화/생활
- 소설가가 된 이후로 사람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어릴 때부터 꿈이 작가였나요?” “언제부터 소설을 썼나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번번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할 때를 놓치곤 했다. 어느 시인은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됐느냐”라는 질문에 “당신은 언제부터 김치를 먹었는지 기억하느냐”라고 대답했다던데, 나는 기억이 안 나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대답하려고 하면 왠지 막막해져서 그랬다. 참으로 싱겁고 시시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동화책들 때문이다. 그것들을 통해 이야기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 얼마나 매혹적인지 깨닫게 됐으니까. 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서 어느 틈엔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책과 나만이 남은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그때의 희열이란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의 달콤함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여 나는 그 순간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노상 동화책에 매달렸다. 나아가 오빠의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내 수준에 맞지도 않는 소설책들로 독서의 범위를 넓힌 후에는,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그것의 뜻을 정리해두는 데 재미를 붙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해도 수첩에 적어놓았다. 아마 그 전까지는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던 관심이 그때 처음으로 문장에까지 옮겨갔던 것이 아닐까.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라든가 ‘불행이 내 머리맡에 앉아 뜨개질을 한다’ 같은 문장들, 그리고 본제입납이니 시쳇말이니 참척이니 막새 등등의 단어들이 적혀 있던 그 스프링 달린 파란색 수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내 꿈이 ‘작가’였다는 것도 물론 기억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때의 꿈은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거나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처럼, 필히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 없이 그저 그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좋고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었다. 내가 어찌 작가가 될 수 있겠는가. 작가는 아무나 하나? 그것은 단지 어린 날의 치기 어린 꿈일 뿐이라고 나는 자라면서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0년 전의 어느 여름, 학교 담벼락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전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작가의 꿈을 끝내 꿈으로만 간직하고 말았으리라. 그리하여 어쩌면 지금과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단발머리, 교복과 명찰,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 그런 것들이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던 시절,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며 이루고 싶은 것도 없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눈에 비친 세상은 늘 우중충했다. 한여름이었음에도 곧 다가올 기말고사의 환영이 저승사자처럼 교실 안을 맴돌고 있어 분위기가 냉랭하기까지 하던 그 어느 날, 나는 충동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쳤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교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들 두엇이 교문 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교문 옆의 수위실 뒤로 숨었다.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교문 쪽의 동정을 살피다가 나는 문득 수위실과 교문 사이 담장에 웬 전단이 나붙은 것을 발견했다. 싯누런 16절 갱지. 수성 사인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문장들. 잃어버린 지우개를 찾는다는 전단도 그처럼 볼품없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초라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칫하면 교문 밖 선생님들에게 들킬 수 있는 행동임에도 나는 기어이 전단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제가 X 시들로 X촐한 시X전을 열고X X니다. 관X 있X 분들의 성원X X탁드XX다. 몇몇 글자가 빗물에 번져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라진 문자들을 퍼즐 맞추듯 상상해서 빈 칸에 끼워 넣었다. 제가 쓴 시들로 조촐한 시화전을 열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뜻밖에도 그것은 시화전 안내문이었다. 어느 가난한 시인이 쓴 것일까, 아니면 시인 지망생이 쓴 것일까. 얼마나 빈하고 궁하면 달랑 한 장짜리 안내문을 인쇄할 돈도 없어서 이렇듯 손으로 직접 썼단 말인가. 조X 공원, 이X 주 토XX.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문구도 빗물에 번져 있었으나 나는 용케 읽어냈다. 조각 공원, 이번 주 토요일. 조각 공원이라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이번 주 토요일이라면 바로 내일이었다. 전단을 뒤집어 보았다. 의외로 뒷면에도 손으로 쓴 글줄들이 빼곡했다. 다행히도 번진 부분이 거의 없었다. 첫 번째 줄을 읽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때 품은 바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 잊고 지낸 나의 꿈도 작가였음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 번째 줄을 읽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흡사 암호와도 같던 그 문구가 저 유명한 조세희의 소설집 제목이었음을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어리둥절해하며, 한편으로는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매혹된 영혼, 동시에, 슬픈 카페의 노래, 에밀리를 위한 장미, 부서진 사월, 목신의 오후…. 이게 다 무엇인가. 막막하고 답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비가 그쳤다. 수위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언제 선생님들이 자리를 떴는지 교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저만치 꿈속의 세상인 듯 환하게 불이 켜진 교실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교문 앞 단골 서점의 주인아저씨가 마침 점포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내게 웬일로 집에 일찍 가느냐고 알은 체를 했다. 왜였을까. 나는 불현듯, 당장, 아무에게라도 이 전단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물었다. “아저씨, 혹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세요?” 대꾸 없이 서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아저씨의 손에는 웬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세상에,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모두 책 제목이라는 말인가? 당장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조세희의 책 한 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아니, 그 책이 나를 읽었나? 내 육신과 지각과 영혼을 뼛속 깊숙이 정독하고 지나갔나? 마지막 장을 덮자 누군가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맞은 자리가 욱신거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잠보다 먼저 새벽이 찾아왔다. 토요일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조각 공원으로 갔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성인일까, 청소년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쓴 시들과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어제 당신의 시화전 안내 전단을 보았어요. 뒷장에 적힌 책도 찾아 읽었지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시라고요? 주말이라 공원에서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가 돼도 시화전은 열리지 않았다. 공원은 내내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시인 비슷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점 아주머니에게 공원 행사 일정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시화전이 열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여름 긴긴 해가 이울 때까지 그곳을 서성였다. 옆구리에는 간밤에 읽은 책을 끼고, 주머니에는 빗물에 젖었다 마른 전단을 넣고서.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나는 공원 입구에서 바람에 팔랑거리는 시뻘건 종잇조각을 한 장 발견했다. ‘오라, 평양으로!’ 그것은 삐라였다. 난생처음 주워보는 것이었다. ‘남조선 동지들을 렬렬히 환영합니다!’ 몹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문구를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 어쩌다 내게로 온 것일까.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더더욱 이유 없이,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마음 밑바닥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다. 나는 결심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 돼야지, 될 거야. 이틀 사이 내게 일어난 이 기이하고 낯선 일들을, 그 속의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글로 쓸 거야.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듯 따뜻하고도 충일한 기운이 온몸 가득 차올랐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기운이 결국 나를 다시 작가의 꿈을 꾸도록 이끌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말이다. 그 비 오던 저녁, 학교 담벼락의 전단은 대체 누가 붙여놓은 것이었을까. 한때 작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음을 이미 잊어버리고 살던,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노라 생각하며 무기력하게 생활하던 어느 사춘기 소녀에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누군가 전해주려 했던 것일까. 전단의 주인은 짐작이나 할까. 내가 그 다음 주 토요일 또 그 다음 주 토요일에도 시화전을 보러 갔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조각 공원을 지날 때면 공연히 사방을 두리번거리곤 했다는 것을. 그리고 운 좋게 꿈을 이루어 작가가 된 지금도 글을 쓰다가 문득 마음이 허허로워지면 그 비에 젖은 전단을 떠올리며 혼자 웃는다는 것을. 그는 알까.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작가를 꿈꾸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이 열리지 않았던 시화전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나는 또 어쩌면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대답할 때를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편집 후기 김미월 작가께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건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당신을 아주 잠깐이지만 무척 미워한 적이 있습니다. 시샘했다는 표현이 더 올바를 것 같군요. 맹렬하게 불타오르던 그 감정을 그나마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건, 우습지만 작가님이 저보다 일곱 살이나 많다는(죄송)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4년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등단했고 2007년에는 (무려) 첫 번째 소설집으로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최연소 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또다시 눈을 세모꼴로 치켜뜨게 됐습니다. 부럽고, 멋있어 보였고, 또 좌절감이 들었기 때문이죠. 주변의 모든 것들이 교교하게 내려앉은 산사의 따끈따끈한 방 안에 엎드려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몸은 충청남도 산기슭 어디메에 있었는데, 점점 눈앞에 하루에 한 번씩 지나다니곤 하는 시청 광장이 펼쳐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올려다만 보던 P호텔 객실에서 광장을 내려다본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시간을 넘나들며 감정 사이를 오갔습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간다”라고요. 2012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당신의 이야기는 분명 한 명의 독자에게서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갔습니다. 그 이야기가 김미월 작가의 소설 중 최고라거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분명 제 마음이 움찔했습니다. 아마도 제 안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과 맞물려 강렬한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겠지요.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의도로, 어떤 바람으로 이 이야기를 탄생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이야기의 곳곳에 자리한 틈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채워 넣는 것은 독자의, 바로 제 몫이니까요. 멋진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글쓴이의 현재 나이와 글을 썼을 때의 나이를 검색해봅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어떻게 이런 인물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놀랍고 신기하고 또 부럽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면 ‘그래, 아직 나는 그만큼 덜 살았으니까’라며 안심하기도 하고, 비슷하거나 더 아래라면 ‘천재일테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확인하게 되는 건, 나의 재능 없음에 대한 불안감과 괜한 질투입니다. 그러다 곧 이토록 좋은 작가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데 대한 기쁨과 뿌듯함으로 전환되곤 하지만요. 세상을 떠다니는, 빼곡하게 들어찬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신기하고 좋습니다. 너무 잔인한 이야기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한없이 시시한 이야기에 실망하기도 하고,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일방적인 이야기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 모든 사람의 모든 시간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진저리치며 욕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뉴스를 보고, 때론 마음을 다치면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자주 투덜거리면서도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소설책 몇십 권은 펴낼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특히 좋아하는 일은 책으로 이야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마음이라도 잡아 이끄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 반짝거리는 재능과 어마어마한 끈기를 가진 특별한 이들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기에, 감히 나서지는 못하고 그저 시샘만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문득문득 멋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감탄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나도’라는 부끄러운 욕심은 마음 깊이 접어뒀고요. 그런 점에서 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Y, H, K, 또 K, 그리고 또 K 작가 같은 분들이 더 자주 더 많이 이야기를 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김미월 작가께도 부탁드리고 싶고요. 누군가 붙여놓은 담벼락 전단을, 당신이 지나치지 않고 떼어봤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척 큰 행운이었네요. 비에 젖은 그 전단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열심히 써주시길 바랍니다. 김미월 작가는… 강릉 출생. 고려대 언어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단편소설 ‘정원에 길을 묻다’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섬세한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글을 쓴다. 2011년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김미월 ■사진 / 이연우, 경향신문 포토뱅크>
- 프런트 에세이
- [프런트 에세이]소설가 전민식의 세상 물정이라는 거, 하늘의 뜻이라는 거
- 2013. 04. 29 16:23 문화/생활
- 다들 잘들 계시죠? 요즘 들어 나이를 얼마 먹지 않았는데도 인생 뭐 별거 있냐라는 생각도 들고, 영화를 보다가 남들은 웃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느 땐 생각에도 없던 감상이 떠올라 날밤을 새기도 하네요. 시간이 흐르며 이런 지질한 생각들이 확장되는 건, 늦게 결혼한 탓일 수도 있고 불혹을 넘긴 후에 자식을 얻은 덕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철도 들지 않았는데 그저 세월을 자꾸 먹은 탓이겠지요. 세상이 수상한 걸 수상하지 않은 척 느끼며 살아온 벌일지도 모릅니다. 하루는 집에 쌀이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쌀을 박박 긁어 압력밥솥에 담아놓은 후 넋 놓고 있자니 텔레비전이 저 혼자 떠들어대던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 수상한 세상을 욕하기 위해 광화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고요. 누군가는 먼저 간 사람을 애도하고 누군가는 남은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며 어깨를 들썩이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도 저 자리에 나가 초 하나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곳까지 나갈 차비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늘 수상했는데 우리가 초 하나 보탠다고 수상한 세상이 밝아지겠느냐고 변명하며 주저앉았지요. 밀린 요금을 내지 않으면 내일 당장 전기를 끊겠다는 협박에도 의연했는데 초 하나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조금은 우울해졌습니다. 텅 빈 곳간처럼 빈 여백만 있는 통장을 들여다볼 때도, 유독 빨간색의 글자가 많이 박힌 고지서를 읽고 있을 때도 우울하지 않았는데 그깟 초 하나 때문에 우울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쌀은 연극을 하는, 저만큼 철이 없던 친구의 도움으로 해결했습니다. 돈 내라는 협박은 그 즈음 기적처럼 들어온 일감을 맡으며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어린이나 천재 혹은 죄 없는 인간만이 망각의 자질을 갖추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린이도, 천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죄가 없지도 않은데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았다는 걸 그 즈음 깨닫고 있었습니다. 모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지도 못한 모양입니다. ‘보통’이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제가 사는 방식을 두고 보통의 방식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있는데 그처럼 보통이 아닌 방식으로 살다 보니 기억에 남겨두어야 할 일보다 빨리 망각해버려야 할 일들이 더 많았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 지질하고, 감당이 안 되고, 모자라고, 무책임하고, 간사한 기억들을 어떻게 잊지 않고 끌고 다닐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버리고 잊고 살았는데 사실 버려진 것도 잊힌 것도 하나 없더군요. 하지만 세상일들이 그렇게 망각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대학을 들어가던 그해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 오래된 망각 하나를 끌어올리는 실마리를 만났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두 개의 가방을 짊어지고 어둔 거리에 선 적이 있습니다. 두 개의 가방 안에는 제 삶의 전부가 들어 있었지요. 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가을이었을 겁니다. 좀 쌀쌀했고 따뜻한 국물 같은 게 먹고 싶었던 날이었습니다. 제 가슴속에 둑 하나 쌓고 20년을 숨어 있다가 언젠가 불러주기를 기다렸던 듯 툭 튀어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은 한 신문 기사가 실마리 되어 망각에서 기억으로 상승했지요. 기사의 내용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노숙하면서 하버드대학엘 갔다는 한 흑인 여성의 기사였지요. 참으로 대단한 여성입니다. 저는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당치도 않게 그 여성과 저를 비교하다니, 부끄러웠습니다. 인생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그 여성과 저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분명한 건 시간의 더께로 뒤덮여 영원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그날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끔 학교 강의실이나 동아리방에서 잠을 청했는데 자잘한 사고가 터진다며 대학에서 동아리방과 강의실을 폐쇄했던 겁니다. 막막했지요. 여러 차례 신세를 졌던 후배들에게 더 신세를 질 면목도 없었지요. 그래서 가방을 들고 신촌과 홍익대학교 부근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각색의 사람들과 번득이는 건물을 구경하며 걸었습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부산까지 걸어 내려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비가 내렸고 저는 어느 공사장 앞에 섰습니다. 공사 중인 건물은 외벽이 모두 올라간 상태였습니다. 인도와 건물 사이에 가림막이 쳐져 있었는데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간이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더군요. 그래도 건물과 건물 사이에 틈이 보였습니다. 가방을 먼저 밀어 넣고 그 틈으로 몸도 밀어 넣었지요. 그런 후 건물 꼭대기인 5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곳엔 보온재로 쓰이는 하얀색의 스티로폼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제겐 훌륭한 침대였지요. 그걸 바닥에 깔고 가방을 베개 삼았습니다. 인근 건물의 네온사인과 조명이 제 방이 된 건물 안까지 흘러왔습니다. 저는 비에 젖은 그 빛을 조명 삼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잭 런던의 책이었습니다. 행복했고 누구도 무엇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두꺼운 침대가 있고 빛이 있고 책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저를 두고 보통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를 두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말하겠지요. 그날 새벽까지 한 외항 선원이 소설가가 되어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공사장에 일찍 출근한 한 인부가 저를 깨우더군요. 처음에는 야단을 치더니 이만저만해서 공사장에서 잠을 잤다고 말하자 국밥까지 한 그릇 사주더군요. 마침 공사장의 작업반장도 나왔는데 그는 제게 학교 가지 않는 날이나 방학 때 와서 일을 하라고 주선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아주 운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그곳의 신세를 졌지만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삶을 위로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위로받을 삶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통의 방식으로 살아갈 줄 모르는 저를 지금의 아내가 받아주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인간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게 쌓이는 게 아니더군요. 저는 아직도 카페에서 먹는 커피 값에 놀라고 티셔츠 한 장에 몇 십만원 하는데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렇다고 아주 세상 물정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1주일에 몇 번씩 배달되는 전단지에서 어느 가게의 달걀이 싼지, 어느 가게에서 우유를 세일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억해뒀다가 장을 보러 가니까요. 물론 아내가 있지만 아내는 그런 부분에서는 좀 젬병인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그런 유의 일을 처리하는데, 이 정도면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런 건 사실 세상 물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건 그저 물가였던 겁니다. 세상 물정이란,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우리는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 만나 인사하고, 불편하지만 밥 같이 먹고, 즐겁지 않지만 웃고, 마시고 싶지 않지만 술 마시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수다 떠는 그런 일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누군가는, 그 나이 먹어서 쯧쯧, 하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이제 하늘의 뜻을 알 만한 나이도 되지 않았냐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은 둘째치고 저는 세상 물정조차 모르는 인간이었지요. 모르면 배우면 되지만 사실 하늘의 뜻 같은 거 모르고 살아도 되지 않나요? 그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늘의 뜻을 알고 살겠습니까. 가만 생각해보면 세상의 물정만 알면 하늘의 뜻도 알게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닌가요? 하늘의 뜻은 세상 물정보다 더 복잡할까요? 제가 보기엔 세상 물정이 더 복잡해 보입니다만. 그런데 세상 물정 알고 사는 분들이 제게 하늘의 뜻 좀 가르쳐주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아주 우연히 그리고 예고도 없이 터지는 부조리한 일들이 하늘의 뜻일까요? 그런 거라면 사실 하늘의 뜻 같은 거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유의 일은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들이 더 많으니까요. 어느 날 또 한 차례 세상 물정을, 아니면 하늘의 뜻일 것도 같은 일이 터졌습니다. 제가 결혼하던 그해 여름, 해외에 나가 있던 동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생이 해외에 나간 줄도 몰랐을뿐더러 사고가 날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사고로 죽었다는 겁니다. 인간이란 게 본래 죽음에 하루하루 걸어가는 부조리한 존재라지만 이럴 땐 더더욱 극명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건강했고 성실했고 큰 욕심 없이 살던 동생이었는데 그런 변을 당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제게로 향한 모종의 협박이 최고조로 달해 있을 때였습니다. 많은 세금이 밀려 생활해 나갈 수 있는 모든 편의사항이 중단되기 일보 직전이었고 주머니에서는 마른 먼지만 가득할 때였습니다. 겨우겨우 동전 몇 개 찾아서 가족에게 공중전화로 비보를 알렸습니다. 그렇게 느닷없이 삶의 부조리를 깨닫게 해주는 게 세상의 물정이고 하늘의 뜻이었을까요? 인생이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말하는데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그런 걸 깨닫기 위해 지천명의 나이까지 살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게 세상 사는 물정이고 하늘의 뜻이라면 깨닫기를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인간다운 게 아닐까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 글에 그런 부조리에 대한 반감과 함께 소멸은 영원한 단절이라는 그런 세상의 물정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 속에서 저는 소멸은 소멸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설령 1,500℃의 열로 하나의 형체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고 해도 그 물질이 차지하고 있던 질량은 그대로 다른 어떤 세상에 혹은 공간에 그도 아니면 누군가의 물정 속에 그대로 환원될 수도 있을 거라고 썼습니다. 고체가 액체로 변하고 액체가 기체로 변하지만 그 원형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환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세상의 부조리에게 뒤통수 맞은 이들이 억울하지 않을 거라고 세상의 물정에 항변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세상의 물정도 하늘의 뜻도 모릅니다. 아마 저와 아내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건 수상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훌륭한 무기인지도 모릅니다. 가슴속은 좀 복잡해지겠지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물정에서 멀어질수록, 하늘의 뜻 같은 것에서 비껴 설수록 인간이 더 인간다워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의 물정, 몰라도 사는 데 그다지 큰 부침이 없고, 하늘의 뜻 같은 거 몰라도 하루를 보내는 데 섭섭할 거 없더군요. 저는 오늘도 한 줄 쓰고 물 마시고, 한 줄 읽고 담배 한 대 피우고, 한 줄 수정하고 술 한 잔 마십니다. 하늘의 뜻 같은 거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삽니다. 세상 물정 속에 깊이 묻혀버린 진실 같은 것들이 병들기 전에 빛나기를 바라면서. 편집 후기 이 기획의 담당기자로서, 가끔 독자들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들을, 어떤 이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한 사람의 세계를 세상에서 제일 먼저 읽고 듣고 엿볼 수 있어서다. 매달 작가들의 글을 받고서는 단어 하나를 붙들고 가만히 만져보기도 하고, 문장 하나에 젖어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내용에 빠져서 나름 이런저런 장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내 경험이나 감정을 녹여서 기억을 떠올리거나 수많은 공상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런 오롯한 시간을 갖는 즐거움을 나 혼자 누려도 되나 싶어서 괜히 미안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러다 화들짝 제정신으로 돌아와 마음을 졸이며 원고를 쓰곤 하지만. 그리고 가끔 나중에 책을 읽게 될 독자들과 떠오른 생각들을 두고 도란도란 나눠봐도 좋겠단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글을 읽을 때 주로 어떤 기억이나 다른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옮아가는 편인데, 이달 전민식 작가의 글을 보면서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뭔가 달달한 것이 고파서 얼마 전 다시 찾아본 영화 ‘노팅힐’. ‘대놓고’ 로맨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큰 감명을 받지 못한 영화였는데, 그래도 마음에 새겨놓고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디저트로 딱 하나 남은 브라우니를 두고 친구들이 서로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견주는 장면이다. 이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브라우니를 먹기로 하자. 그리고 이어진 ‘불행 배틀’. 한 명 한 명 어쩌면 그렇게 삶은 가혹한 것인지. 사업은 안 풀리고, 직장에선 무능에 허덕이고, 외롭고,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고, 언젠가는 모두가 자신을 외면하게 될 것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살아가면서 시간 속에서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제대로 혹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서글프지만 명확한 현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나마 서로 농담을 건네고 스스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불행을 각각 전시하지만 결국 불행의 우열은 확실히 가리지 못한다. 제3자가 봐도 그랬다. 왜냐하면 불행이란, 무엇이 더 크고 깊은지를 결정하기엔 자신과 분리된 기준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완벽히 객관화할 수 없고, 또 타인의 상처를 100%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명백한 사실은, 삶은 변덕스럽고 어쩔 수 없이 괴롭다는 것. 그렇기에 각자 다른 방식과 크기로 ‘전쟁 같은 삶’을 떠받치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얼마 동안 괜히 좀 비관적이었다. 캄캄하고 막막하고, 가슴속에서는 계속 까닭 모를 억울함과 서러움이 울렁거리고 걱정이 됐다. 세상도, 나도 나빠지는 것만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좌절하고 상처받고 힘들어야만 성장하는 거라는 이야기도 지겹고, 어딘가에는 쉬운 길이나 확실한 답이 있을 거란 의구심도 들었다. 전민식 작가처럼 “세상 물정 알고 사는 분들이 제게 하늘의 뜻 좀 가르쳐주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해봤다. 물론 일생일대의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껏 어떤 순간마다, 아니 자주 그래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숱하게 맞서야 할 삶의 리듬이지 않을까. 우리는, 또 삶은, 지나치게 변덕스러우니 말이다. 오늘의 혼란스러움은 꽃망울이 피어나(야만 하)는 4월 중순까지도 매서운 바람이 불고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들이 흩날렸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바람은, 황사를 머금고 있든 폭풍우를 품고 있든 어쨌든 지나가니까. 늘 살랑대는 봄바람만 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으니까. 견디며, 아니 그냥 서서, 그렇게 산다. 전민식 작가는… 1965년에 태어났다. 세상 물정 모른 채 방황하며 살다 불혹을 넘겼고 느지막이 소설의 세상에 입문했다. 수없이 많은 부침의 시간을 거친 후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도 세상 물정 모른 채 소설만 쓰며 살면서 추계예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2012), 「불의 기억」(2013)이 있다. <■진행 / 이연우 기자 ■글 / 전민식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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