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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505 건 검색)

[신주백의 사연 史淵]김산의 ‘아리랑’과 12·3 친위쿠데타
[신주백의 사연 史淵]김산의 ‘아리랑’과 12·3 친위쿠데타
2024. 12. 09 20:37오피니언
....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조선독립을 향한 민족의식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옌안에서 김산은 <아리랑>의 공동 저자인 님 웨일즈를 우연히 만났다. 그때가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신주백의 사연史淵신주백
아리랑·판소리···중국이 관리 중인 ‘한국 문화유산 101건’
아리랑·판소리···중국이 관리 중인 ‘한국 문화유산 101건’
2024. 10. 04 17:56문화
... 무형유산으로 20건, ‘성(省)급’ 문화유산으로 81건의 한국 유산이 지정 관리되고 있었다. 아리랑은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의 전통음악으로, 판소리는 랴오닝성 철령시와 지린성...
‘제49회 정선 아리랑제’ 2일 개막···정선아리랑 근원 설화 담은 칠현사 이전 준공
‘제49회 정선 아리랑제’ 2일 개막···정선아리랑 근원 설화 담은 칠현사 이전 준공
2024. 10. 01 10:14사회
... 공연, 불꽃놀이 등이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아리아라리’는 지난 8월 ‘2024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정선아리랑아리랑정선군최승준
정선아리랑의 진수 ‘뮤지컬 아리아라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서 호평
정선아리랑의 진수 ‘뮤지컬 아리아라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서 호평
2024. 08. 13 11:41사회
... 모습을 생방송 하기도 했다. ‘아리아라리’는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선아리랑의 소리와 타악, 현대적 음악과 무용, 3D 홀로그램을 결합한 뮤지컬 퍼포먼스다. 최종수...
영국에든버러뮤지컬페스티벌아리아라리정선군최승준

스포츠경향(총 311 건 검색)

아리랑TV, 아프리카 앙골라에 한국 방송 콘텐츠 전파
아리랑TV, 아프리카 앙골라에 한국 방송 콘텐츠 전파
2024. 12. 12 19:59 연예
아리랑TV 아프리카 앙골라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지난 10일 수도 루안다의 한 초등학교(꼴레지우 에스삐라우, Colegio Espiral) 학생, 학부모, 선생님 등 100여 명에게 한국의 아리랑TV에서 준비한 뽀로로, 좀비덤, 세종대왕 ‘훈민정음’ 등과 같은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을 약 60분간 보여주었다. 또 앙골라에서는 최초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K-Chat(포어 자막)을 소개하여 앙골라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애니메이션 상영 후에는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뽀로로, 세종대왕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리기, 제기차기, 투호 놀이 등 한국의 전통놀이를 함께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아리랑TV 아리랑TV는 주앙골라 대한민국 대사관과 오는 14일 현지 한류 동호회인 ‘KPCEA(Korean Pop Culture Event by Angolans)’가 진행하는 한국문화축제에서도 한국 방송 콘텐츠 홍보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 한국 방송 콘텐츠가 가장 활발하게 방송되는 곳이다. 앙골라 유일의 관영 방송국인 떼뻬아(TPA)와 최대 민영 방송국인 티브이 짐보(TV Zimbo)에서는 지난해부터 한국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열혈사제’, ‘왜 오수재인가?’를 연이어 방송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리랑TV 앙골라에서의 한국 드라마 인기에 이어, 주앙골라 대사관이 겸임하는 나미비아 공화국의 나미비아 방송국(NBC)에서도 지난 9월부터 한국 드라마 3편과 애니메이션 6편을 연이어 방송하고 있다. 주앙골라 대한민국 대사관에 의하면, 2025년부터는 앙골라 방송국에서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앙골라의 각 방송국과 협의중이다. 아리랑TV 최광진 주앙골라대사는 “지난 4월 주앙 로렌쑤 대통령의 방한 및 한국 드라마, K-pop과 같은 K-컬처의 확산과 함께 한국과 앙골라 간 상호 이해와 협력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리랑TV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아리랑TV 유튜브 채널서 공개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아리랑TV 유튜브 채널서 공개
2024. 12. 11 21:53 연예
아리랑TV 세계적인 스타 쉐프 에드워드 리(Edward Lee)에 대한 아리랑TV 다큐멘터리 2편이 13일부터 3주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유튜브 채널 ‘이삼오일 2351’에서 방송된다. 이 다큐에서는 에드워드 리의 가족과 워싱턴 집이 공개가 되며 지인들이 증언하는 진짜 에드워드 리의 모습도 엿볼수 있다. “요리는 제 인생의 전부죠” 뛰어난 실력, 남다른 철학, 끝없는 도전으로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셰프 에드워드 리. 그의 요리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미국 푸드 네트워크의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등을 통해 수차례 극찬받은 바 있다. 주방에서는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완벽을 추구하는 프로지만 집에서는 ‘새하얀 양’처럼 온순해지는 에드워드 리의 ‘흑백 반전’! 그 반전의 이유를 아리랑TV 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에서 전격 공개한다. “골프도 안 좋아하고 영화도 그렇게 안 좋아하고 요리 말고 뭘 하겠어요?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제일 재밌어요.” 1년 365일 주방에서 요리에 푹 빠져 사는 에드워드 리.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면 에드워드 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리랑TV ‘흑백요리사’로 흥한 자, 집에서 ‘흑백요리사’를 재연하다! 딸 아든이 먹다 남은 음료를 소스에 첨가한 그는 아내 다이앤(Dianne Lee)에게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맞혀보라며 ‘도전’을 제안한다. 다이앤은 “집에서 ‘푸드 챌린지’라는 걸 하는데요. 가족끼리 하는 게임이에요 재밌어요. 아든이 심판을 보기도 하고요 그게 좀 웃겨요”라며 ‘리 가족’이 즐기는 게임을 소개한다. 13일에 아리랑TV의 새로운 유튜브 채널‘이삼오일 2351’에서 선공개되는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에서는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리 가족’이 공개된다. “우리 딸이 단 걸 좋아해요.”, ‘우리 딸은 매운 걸 못 먹어요.“, ”이건 딸한테 먹일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에드워드 리는 11살인 딸 아든(Arden Lee)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챙기느라 바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요리 파트너로 엄마와 아빠 중 누굴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든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요“라고 답하자 에드워드 리는 ”못 이겨요. 못 이긴다고요!“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아빠는 세계가 인정한 스타 셰프! 어릴 때부터 ’특급 요리사‘가 만든 요리에 익숙해진 아든은 아빠가 만든 요리 중 최애 요리로 ’짜장면‘을 꼽았다. “아빠가 만든 짜장면의 면발이 더 쫄깃해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소스에요. 다른 데서 먹는 짜장면 소스는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딸의 평가에 대만족한 에드워드 리의 함박웃음을 아리랑TV 카메라가 포착했다. 아빠가 만든 음식 말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든이 꼽은 건 ’라면‘. 곧바로 에드워드 리는 라면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라면 하나에도 그의 요리 철학이 엿보인다. ”라면같은 면요리를 할 때 육수는 제가 만들어요. 손질하다가 남은 재료도 다 포함해서 만들죠. 이렇게 남은 채소나 과일을 막 넣어서 같이 끓이는 거죠.“ 각종 채소를 넣고 요리의 화룡점정인 ’된장‘까지 더해주면 에드워드 리의 ’특제 된장 채소 라면‘이 완성된다.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이자 누구에게나 호평받는 요리사지만 냉정한(?) 평가자인 아내 다이앤과 딸 아든에겐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잊지 마. 맛없어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기! “음~ 맛있다!”라고 말이지.“ 아리랑TV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에드워드 리는 딸 아든이 일찌감치 한국 문화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왔다. 음식도 아든에겐 문화 체험의 기회다. 가족을 위해 준비한 고구마에 ’된장 버터‘라는 색다른 소스를 곁들인 이유에 대해 에드워드 리는 “어린 애들한테는 된장이나 고추장이 좀 자극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주고 싶어요. 대부분 버터는 좋아하니까요. 버터를 조금 섞으면 좀 더 쉽게 (된장) 맛에 익숙해질 수 있겠죠”라며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남편이 저에게도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알려줬어요. 늘 생각하고 있는 거죠” 아내 다이앤 역시 에드워드의 생각에 깊게 공감한다. “아든은 자라면서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요. 그러면서 여러 문화를 많이 겪어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 방면으로 삶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게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것이죠. 그 모든 것의 가치를 믿어요. 그중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거죠” 취향도 성격도 각자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만은 하나인 ‘리 가족’의 일상을 아리랑TV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2편에 담았다.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에서는 지인들의 거침없는 ‘폭로전’이 담긴 ‘쿠키 영상’이 더해졌다. 에드워드 리의 절친이자 사업가인 한국계 미국인 샘 현(Sam Hyun)은 “옛날엔 그냥 동네 노래방에 가도 아무도 (에드워드를) 신경 안 썼어요. 사실 예전엔 다들 (워싱턴에서 유명한 한식 셰프인) 대니를 알아봤거든요”라며 과거를 떠올렸다. 워싱턴 DC에서 ‘안주’, ‘만두’ 등 여러 한식당을 운영 중인 스타 셰프이자 에드워드 리의 절친인 대니 리(Danny Lee)는 샘 현의 말에 “이젠 그냥 (에드워드를) 우리 아빠라고 해요”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니 리는 “(‘흑백요리사’에 나온 에드워드를) TV로 보니까 기본이 굉장히 묘했어요. 집에서 아내랑 같이 봤는데 TV 보면서 문자를 보냈어요.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이죠”라며 절친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밝혔다. 그러나 이내 “그렇지만 놀릴 건 또 놀려야죠”라고 운을 뗐다. 아리랑TV 그러면서 “에드워드랑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실제 목소리는 사실 달라요”라며 “원래 저렇게 말 안 해요. (방송에서는) 잠 못 자고 24시간 쭉 요리한 사람 같은 목소리예요. 누구나 그런 상태라면 저런 솜사탕(?) 목소리가 나와요”라며 ‘찐친모드’를 선보였다. 주방에서는 완벽한 프로지만 집에서는 ‘딸바보’가 되는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아리랑TV 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는 2024년 12월 13일 오후 7시(한국시간)에 아리랑TV 유튜브 채널 ‘이삼오일 2351’에서 선공개된다. 총 4편으로 구성된 이번 다큐멘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1편씩 공개된다. 유튜브 외 아리랑TV 채널에서는 12월 25일 오후 8시(한국시간)에는 유튜브에서 선공개된 1편과 2편 합본이, 2025년 1월 1일에는 3편과 4편 합본이 방영된다. 아리랑TV
“저는 에드워드 리, 요리사입니다”···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아리랑TV 방송
“저는 에드워드 리, 요리사입니다”···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아리랑TV 방송
2024. 12. 08 08:02 연예
아리랑TV 2024년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이자 2010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인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의 워싱턴 일상 밀착 취재가 글로벌 채널 아리랑TV에서 방송된다. 요리계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 후보자이며 4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오너. 그리고 2023년 한미정상회담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로 발탁됐던 실력자.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화제의 인물.에드워드 리 (Edward Lee, 셰프)의 한식 파인다이닝 시아(SHIA)과 일상이 4주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아리랑TV 유튜브 채널 ‘이삼오일 2351’에서 방송된다. “저는 에드워드 리, 요리사입니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리할 때면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고수의 포스를 뿜어내지만, 주방을 벗어나면 푸근하고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에드워드 리.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3권의 책을 썼을 정도로 글발도 말발도 뛰어나지만, 서툰 한국어로 말할 때면 조금은 귀여워지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아리랑TV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는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의 반전 매력에 빠진 제작진들이 성덕(?)이 된 마음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에드워드 리가 출연한 TV 프로그램과 그가 쓴 책을 섭렵했다는 김수민 피디는 “에드워드 리는 상상 이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었어요. 일할 땐 냉철한 프로였지만 가족과 있을 때는 영락없는 딸바보더라고요. 방송에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촬영 당시 소감을 전했다. 아리랑TV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의 요리 철학에서부터 한국 방송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집안에서의 일상, 아내 다이앤 리(Dianne Lee)와 딸 아든 리(Arden Lee)와 따스하고 다정하게 보낸 하루,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파인다이닝 시아(SHIA)의 독특한 경영 방식까지 아리랑TV 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에서 모두 공개한다. 지난 6일 선공개되는 1편에는 레스토랑 경영자 에드워드 리의 일상이 그려졌다. 오전 7시, 직접 장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에드워드 리는 사과 한 알, 버섯 한 바구니를 고르는 데에도 프로다운 신중함을 드러낸다. “사과가 그냥 사과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종류가 아주 다양해요. 맛도 당연히 다르고요. 요리하기 좋은 사과가 있고 그냥 먹기 좋은 사과가 있어요. 전 언제나 요리하기 좋은 사과를 찾아요”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당근과 무를 맛보던 에드워드 리는 “가끔 장보고 나서 집에 도착하기 전에 채소 산 걸 다 먹어버려요. 요리할 재료가 없어지는 거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워싱턴 상남자(?)의 깐깐하고 꼼꼼한 장보기 과정부터 흙투성이 생채소를 먹으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자연인의 면모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오전 7시 장보기를 시작으로 레스토랑 영업 준비, 스케줄 관리, 스태프 미팅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에드워드에겐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올 연말 에드워드 리에겐 더 바빠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워싱턴 DC에 새로운 한식 파인다이닝 ‘시아’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아리랑TV 시아의 메뉴판에는 메추리알과 캐비어를 곁들인 참치 비빔밥, 전복·바지락·백김치를 곁들인 된장 삼겹살 현미죽, 그리고 보리차 아이스크림까지 한식의 요소가 골고루 들어간 독특한 요리들이 올려져 있다. “‘시아’는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레스토랑이죠. 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어요. 왜냐하면 한식은 제 어린 시절 추억과 깊게 연결돼 있거든요. 장조림 미역국 비빔냉면 등등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한국 음식을 잊을 수 없어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에드워드 리는 한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워싱턴 DC에서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절친 대니 리(Danny Lee) 셰프와 한식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눈다는 에드워드 리는 “한식당 셰프들은 서로 경쟁 관계이기도 하지만 한식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한식 관련 행사나 요리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 평소라면 (제가) 하지 않을 선택이지만 한식과 한국 사회에 관련된 것이라면 언제나 ‘하겠다’라고 나서는 거죠”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적극적으로 한식을 사랑하고 한식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한식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탓에 에드워드 리의 음식은 ‘한식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아리랑TV 이런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에드워드 리는 예상 밖의 답을 내놓았다. “물론 있죠 제 스스로 내 요리는 한식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 제가 만드는 건 한식이 아니에요. 도리어 묻고 싶어요 ‘한식이란 게 대체 뭔가요?’라고요.” 그렇다면 과연 에드워드 리가 정의하는 한식은 무엇일까? 한식 파인다이닝 시아는 에드워드 리의 요리 철학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반영된 공간이다. “(오픈을 앞두고) 걱정되고 긴장되고 떨리네요. 그렇지만 이 순간을 위해 몇 달 동안 준비해왔기 때문에 동시에 설레고 기쁘기도 하죠.” 에드워드 리가 2017년 공동 창립자로 이름을 올린 비영리단체 리 이니셔티브(The LEE Initiative)는 시아의 콘셉트 설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메뉴만 실험적인 게 아니라 경영 방식마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움으로 무장한 레스토랑 시아. 시아의 독특한 경영 방식이란 무엇일까? 2편에서는 아내 다이앤과 딸 아든, 그리고 에드워드 리를 닮은(?) 반려견 재스퍼까지 ‘리 가족’이 한국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에드워드는 가끔 보면 같이 살기 쉬운 남편은 아니랍니다!” 은근히 참고 사는 게 많다는 다이앤의 고백, 요리 파트너로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다는 딸 아든, 딸에게는 늘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고 푸념하는 에드워드 리까지, ‘리 가족’이 티격태격하는 이유는?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아리랑TV 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타 셰프, 베스트셀러 작가, 방송인, 레스토랑 오너, 사회단체 대표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능력자’ 에드워드 리의 진솔한 이야기, 알려지지 않았던 사연을 담아낸 아리랑TV 다큐멘터리 ‘에드워드 리를 찾아서’ 1편은 6일 방송에 이어 아리랑TV 유튜브 채널 ‘이삼오일 2351’에서 선공개됐다. 총 4편으로 구성된 이번 다큐멘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1편씩 공개될 예정이다. 유튜브 외 아리랑TV 채널에서는 오는 25일 오후 8시(한국시간)에는 유튜브에서 선공개된 1편과 2편 합본이, 2025년 1월 1일에는 3편과 4편 합본이 방송된다.
아리랑TV, 프랑스 유료방송 플랫폼 1위 ‘Orange’에서 방송 시작
아리랑TV, 프랑스 유료방송 플랫폼 1위 ‘Orange’에서 방송 시작
2024. 11. 19 07:38 연예
아리랑TV 아리랑TV가 오는 21일부터 프랑스 유료방송 플랫폼 1위 사업자인(점유율 37%/IPTV) ‘오렌지’(Orange)를 통해 방송을 시작한다. 아리랑TV는 ‘Orange’와의 채널 공급 계약 체결 후 기술 검토와 시험 방송을 진행했으며, 이달부터 Orange에 가입된 약 700만 가구의 프랑스 시청자들이 아리랑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아리랑TV는 그동안 IPTV플랫폼 FreeBox(점유율 15%/329만 가구)와 DTH플랫폼 Canal+(점유율 14%/295만 가구)를 통해 프랑스에 방송을 해왔으나 이번 Orange플랫폼 진출로 전체 유료방송 플랫폼 중 66%점유율을 확보하게 되어 프랑스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Orange 플랫폼과의 계약은 지난 2024년 파리 올림픽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한국문화 홍보사업에 발맞춰 아리랑TV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결과로 그동안 아리랑TV는 현지 출장을 통한 피칭, 마케팅 등 다각적 노력을 집중해 왔다. 아리랑TV 김형곤 콘텐츠유통센터장은 “이번 프랑스 Orange 플랫폼 진출은 그 의미가 크며 이는 유럽의 한류 열풍과 맞닿아 있는 성과로 판단한다”며 앞으로도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경향(총 54 건 검색)

[현장답사기]‘아리랑’ 김산의 마지막을 찾아서(2023. 10. 27 11:20)
2023. 10. 27 11:20 문화/과학
의 주인공 김산 등의 지방을 태워 하늘로 뿌리고 있는 필자 / 원희복 제공 1960~1980년대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일 것이다. 님 웨일즈는 미국 AP통신 기자인 남편 에드거 스노를 따라 1937년 중국 옌안(延安)에 들어갔다.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대결 혹은 합작을 거듭하면서 후퇴하는 장정을 수행 중이었다. 중국공산당의 무장조직인 홍군(팔로군)은 장정의 막바지에 이르러 옌안에 주둔하고 있었다. 님 웨일즈는 남편 에드거 스노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만나 취재할 때 한 조선인 남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 조선인 청년은 고향(평북 용천)에서 3·1운동에 가담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간 청년이었다. 그는 16세에 광활한 대륙 중국에서 조선독립군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팔로군과 함께 옌안에 들어온 그 조선인 청년은 님 웨일즈를 만나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얘기했다. 님 웨일즈는 미국으로 돌아와 당시(1941년) 인터뷰 내용을 <아리랑 (Song of Ariran)>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님 웨일즈는 그 조선인 청년을 ‘김산(金山)’이라고 했다. 물론 가명이었다. ‘중국혁명에서 한 공산주의자의 생애’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인에게 별로 흥미를 끌지 못했다. 책도 안 팔렸고, 출판사는 큰 손실을 봤다고 한다. 사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한국에서 먼저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해방 후 잡지 ‘신천지’는 1946년 10월호부터 1948년 1월호까지 <아리랑>을 번역해 소개했다. 신재돈이 번역한 <아리랑>은 ‘아리랑- 조선인 반항자의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16회 연재됐다. 이 연재물은 그러나 큰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험준한 마자거우 계곡 한쪽에서 찾은 산간닝비엔취의 야전병원터 / 원희복 제공 궁금증 불러모았던 김산의 정체 대신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미국에서 공부하던 한국 유학생들에게 조용히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컬럼비아대학에서 유학(국제정치학) 중이던 백선기(서울대 강사)는 “컬럼비아대학 브로드웨이 거리에 있는 한국 유학생 단골집 형제주점에서 <아리랑>에 대한 한 동문의 독후감을 감명 깊게 경청했다”면서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다”고 말했다(백선기·<미완의 해방노래- 비운의 혁명가 김산의 생애와 아리랑> 서문). 이 <아리랑>을 들고 귀국한 사람은 기자 리영희였다. 고 리영희 교수는 1959년 가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미국 6개월 연수를 다녀오다 도쿄의 한 서점에서 만난 일본어판(1953년 조일서방판)에서 자신과 <아리랑>의 인연이 비롯됐다고 생전에 밝혔다(<아리랑> 동녘·1984·추천의 글). 그는 “어느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생애에 관한 기록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감동은 그 후 나의 삶의 방향과 내용에 지울 수 없는 크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면서 “지난 30년의 지적·사상적 암흑 속에서 가끔 <아리랑>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리영희는 주변 친구들과 ‘김산이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 풀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김책 아닐까, 최용건 아닐까, 김두봉이 제일 가까운데 등 그럴싸한 여러 인물이 거론됐지만 조선공산주의혁명, 광복 운동에 상당한 지식을 가진 이들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1961년 님 웨일즈는 김산의 본명이 ‘Chiang Chi-rak’이라고 공개했다. 하지만 누구인지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님 웨일즈 역시 김산의 정확한 한자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님 웨일즈가 밝힌 ‘Chiang Chi-rak’이 조선인 ‘장지락(張志樂)’임을 밝힌 것은 1972년 서대숙 하와이대 교수가 쓴 <한국공산주의 운동사>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서대숙 교수는 <아리랑>에서 장지락의 활동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서대숙 교수의 논평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평가하는 등 장지락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1941년 미국에서 발행된 초판본 / 원희복 제공 1984년 동녘출판사에서 <아리랑>을 번역해 출간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금서로 지목됐다. 이 책은 그러나 대학가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무려 15만 부가 판매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6년 학민사 출판사에서 장지락의 한국에 관한 사실을 보충한 <아리랑 2>를 펴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장지락의 행적을 추적(답사)하기 시작했다. 재미 의사 노광욱은 님 웨일즈를 만나 취재노트를 찾는 등 김산의 마지막 행적을 취재했다. 앞서 언급한 백선기는 한국·중국·일본을 돌아다니며 김산의 행적을 모아 1993년 <미완의 해방노래- 비운의 혁명가 김산의 생애와 ‘아리랑’>이라는 책을 냈다. 장지락의 행적을 추적한 이들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일본 교토대 교수도 김산의 족적을 찾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재일교포 이회성·김찬정은 김산의 마지막을 추적해 1987년 11월 잡지 ‘민도(民濤)’ 창간호에 “김산은 1938년 ‘일본 특무’라는 죄명으로 옌안에서 처형됐다. 1983년 가족의 소청에 의해 재심한 결과 무죄가 판명되어 명예가 회복됐다”고 구체적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1986년 중국에서 발간된 <조선혁명열사전>을 인용한 것이다. 1989년 일본 아사히신문은 보충 취재를 거쳐 김산이 1938년 처형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은 장지락이며, 그는 자신의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옌안에서 처형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안싸이현 마자거우 주민이 총성이 들린 계곡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원희복 제공 그러나 장지락이 옌안에서 처형된 것만 확인했을 뿐, 어떤 과정으로 처형돼 어디에 묻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여전히 많은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이 장지락의 마지막 장면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장지락에 대한 조그만 단서가 나오기라도 하면 ‘특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보도됐다. 베이징에 있던 중국공산중앙당교의 최용수 교수는 조선족으로 중국혁명과정에 기여한 많은 조선인을 발굴한 사람이다. 그는 중앙공산당 내부 자료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선인 학자이기도 했다. 2005년 5월 23일 그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김산(장지락) 처형에 관계된 사람이 아직 생존해 있어 처형되는 과정과 처형된 장소, 묻힌 곳을 찾는 것이 남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아리랑>과 장지락에 관해 남아 있던 마지막 의문이었던 셈이다. 최 교수는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아리랑>과 김산에 대한 관심은 뚝 끊어졌다. 김산 그리고 김찬과 도개손의 처형 2005년 경향신문은 앞서 최용수 교수를 통해 1939년 옌안에서 죽은 조선인 남자 김찬(金燦)과 중국인 여성 도개손(陶凯孙·타오카이순)의 국경을 넘는 사랑과 항일투쟁 그리고 옌안에서 나란히 죽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했다(‘70년 만에 햇빛 본 부부 항일투쟁’ 경향신문 2005년 5월 30일자). 이후 김찬의 활동상과 처형 그리고 복권 과정을 보완해 2015년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한·중 항일혁명가 부부 김찬·도개손 평전>이 나왔다. 이 책에는 김찬과 도개손 집안이 복권을 위해 중국공산당 핵심부를 통해 확인한 옌안에서의 이들 처형 절차를 자세히 기록했다. 책에 따르면 1938년 1월 산간닝비엔취((陜甘宁边区·산시성, 간쑤성, 닝샤성 3곳을 합친 곳) 정부의 사회부장 캉성(康生)은 중국공산당 기관지 에 ‘트로츠키 비적을 제거하자’는 글을 기고하며 연안파(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있던 옌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던 조선의용군 출신의 정치집단) 대숙청을 예고했다. 옌안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된 피의 숙청 절차는 산간닝비엔취 보안처 소속 탄정웬(潭政文)의 고문에 의한 수사, 보안처장 저우싱(周興)의 결재(동의), 산간닝비엔취 정부 서기 겸 보안사령부 책임자 가오강(高岗)) 최종 결재를 통해 완성됐다. 그리고 산간닝비엔취 부주석 가오쯔리(高自力)의 사형집행 결재 이후 옌안 북서쪽 안싸이현(安寨县) 쩐우동(眞武洞) 마자거우(馬家沟) 계곡에서 김찬과 도개손을 비롯한 연안파가 대규모로 총살돼 인근에 묻힌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 모든 절차의 총책임자는 캉성이었다. 그가 기획하고 주도했다. 왼쪽부터 (님 웨일즈·김산 지음), (백선기 지음), (원희복 지음) 표지 / 원희복 제공 <조선혁명열사전>과 필자의 보충 취재 및 저서 내용, 그리고 김찬 아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1938년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과 김찬-도개손 부부는 거의 같은 시기 보안처에 연행된 것으로 보인다. 김산은 1938년 즉시 처형됐지만, 김찬은 중국공산당 고위층과 끈이 있던 부인 도개손 집안의 끈질긴 구명작업으로 사형집행이 1년여 늦춰졌다. 중국인 여성 도개손은 조선인 남편 김찬을 부정하면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같이 최후를 맞았다. 따라서 김산과 김찬-도개손 부부 등 연안파들은 옌안에서 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개연성이 높다. 10월 초 필자를 비롯한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원이 이들 연안파의 마지막 행적으로 추정되는 옌안 안싸이현 쩐우동 마자거우 답사에 나선 배경이다. 여기는 장제스의 국민당 군으로부터 옌안을 방어하던 팔로군 야전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홍성림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중국 블로거를 검색해 이곳에 중국공산당 보안처가 구치소를 짓고 2~3년 동안 주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답사단은 마자거우 계곡에 사는 한 주민으로부터 “보안처가 있던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가끔 동쪽 산속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얘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김찬-도개손 평전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나오는 기록과도 일치한다. 그들의 ‘마지막 현장’에서 제사를 지내다 마자거우 계곡은 그러나 많고도 깊었다. 전시 야전사령부의 주둔지답게 험준한 산세에 천혜의 요새였다. 깊은 계곡에 띄엄띄엄 농가가 나타났다. 과거 팔로군이 사용하던 군 막사를 후에 농민이 개조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로 계곡을 헤매길 서너 시간, 산속에서 만난 한 농민이 옛 팔로군 병영이 남아 있는 곳을 알려줬다. 답사단은 아슬아슬한 계곡 한쪽에서 산간닝비엔취의 야전병원터를 찾을 수 있었다. 답사단이 마자거우 계곡에서 팔로군의 흔적을 마침내 찾은 순간이었다. 험준하지만 나름 안전하니 야전병원을 설치했을 것이다. 야전병원이 있는 행정구역의 정식 명칭은 황과탑(黃瓜塌)이다. 현지 안내판에는 그러나 황과탑(塔)으로 돼 있어 한참을 혼동했다. 한자로 탑(塌)은 움푹 들어갔다는 의미로 우리말로 치면 ‘골’쯤 된다. 그러니까 험준한 산속에서도 깊은 골짜기란 뜻이다. 답사단은 GPS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위의 노란 점은 야전병원터, 아래 노란 점은 제사를 지낸 곳이다. / 신춘호 영상아카이브 연구중심 제공 답사단은 <아리랑>의 팔로군 야전병원 앞에서 험준한 마자거우 계곡을 향해 술을 한 잔 따르고 절을 했다. 아울러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주인공 김찬과 도개손에 대한 제사도 지냈다. 아마도 84년, 85년 만에 그들의 ‘마지막’ 현장에서 치러지는 첫 제사였으리라 생각한다. 김산의 경우 지방(紙榜)에 ‘항일혁명가 김산 신위’를, 김찬과 도개손은 ‘항일투사’로 썼다. 그리고 불타는 지방을 하늘로 뿌렸다. 지방은 재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답사단은 젊은 영혼들이 더 이상 마자거우 계곡에서 방황하지 말고, 하늘로 올라 평안을 찾으라고 기원했다. 답사단에 동행했던 연행노정(중국과 사신 교류) 아카이브 전문가인 신춘호 박사(영상아카이브연구중심 대표)가 팔로군 야전병원과 제사를 지낸 장소를 정확한 GPS 좌표로 기록했다. 이번 발굴이 수십 년간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의문과 토론 그리고 현장 답사의 대상이 됐던 <아리랑> 주인공 장지락의 마지막 행적이 정리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학계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한복·아리랑·판소리가 중국의 전통문화?(2020. 11. 13 15:09)
2020. 11. 13 15:09 문화/과학
한복, 아리랑, 판소리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둘러싼 국적 논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이 서로 자국의 전통이라고 맞서면서 벌어진 논쟁이 범위와 강도 모두에서 심각한 정도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네티즌은 당연히 고유한 전통문화라고 인식해온 한복과 아리랑 등이 다른 나라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국경이 없는 인터넷에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각종 분야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자국을 중심에 둔 시각을 드러낸 중국인의 인식이 이번 사태를 맞아 더욱 강경하게 지속될 것으로 보여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게임사 페이퍼게임즈는 에서 게임 등장인물이 입는 한복 의상을 출시했다가 한국과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페이퍼게임즈 역사학 분야에서의 ‘동북공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문화제국주의는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소재는 바로 한복이다. 지난 10월 29일 출시돼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 게임업체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는 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등장인물들에 다양한 의복을 입히며 꾸미는 게임의 성격답게 한국의 전통복식인 한복으로 된 아이템 2건을 함께 출시한 일이 도화선이 됐다. ‘세월 속 한울’과 ‘품위의 가온길’이란 이름이 붙은 게임 등장인물용 한복 두 벌이 한국이 아닌 중국 명나라의 의상 ‘한푸(漢服)’라며 중국 네티즌들이 게임사를 비판한 것이다. 아리랑도 한때 유네스코 등재 시도 자국의 네티즌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뭇매를 맞자 페이퍼게임즈는 즉각 사과와 함께 진화에 나섰다. 중국 네티즌의 주장에 따라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의 입장은 항상 조국과 일치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네티즌의 반발이 일자 아예 게임의 한국 서비스 자체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둘러싼 논쟁을 유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한복이 자국의 복식문화 중 일부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줄곧 커져 왔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한복은 명나라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니 중국의 문화’라는 입장과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 중 조선족의 전통복식이 한복이므로 한복 역시 중국의 문화’라는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샤이닝니키> 논란 전부터 중국의 TV 프로그램에서 한복이 부쩍 자주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소주차만행>과 <삼생삼세 십리도화>라는 중국 사극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일반적인 한푸 복장인 데 비해 시녀 등 당대로선 신분이 낮은 인물들만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온다. <성화 14년>이란 드라마에서는 갓과 망건이 조선 후기의 모양과 비슷하게 등장했다. 이들 드라마에서 명시적으로 한복이 중국 한푸의 일종이라거나 한복의 뿌리가 중국에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나라 전통복식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표현한 탓에 양국 네티즌 간의 설전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한국 네티즌들은 중국 네티즌에 맞서 ‘한복 챌린지’ 운동을 시작하며 한복은 한국 전통의상이라는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식으로 대응했다. 국내 전통복식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국 쪽의 논리를 반박한다. 한복의 원류를 따져 올라가면 중국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 이래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동한 유목민족 스키타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한반도에서 입던 옷의 형태는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윗도리와 아랫도리를 구분한 바지와 치마, 저고리로 구성됐다. 말을 타기 좋게 바지 밑단이 좁아지는 차림새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 것이다. <한국복식문화사>를 쓴 김문자 수원대 의류학과 교수는 “한복의 바지와 저고리 차림 복장은 기마 등 활동에 편리한 상의와 하의가 기본인 당시 스키타이족의 대표적인 복식”이라며 “이는 당시 서양의 대표적인 복식인 그리스복과도, 중국의 대표적인 복식과도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물론 의복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며 변화가 생겼다. 중국 쪽의 주장대로 명대에 이르면 관복 등 일부 복식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요소가 한복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복은 기본 형태는 유지한 채로 변해왔다. 특히 대부분의 민중이 입었던 평상복은 중국을 비롯해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서로 구분되는 특징을 드러내 왔다. 판소리까지 인터넷 백과사전에 게재 한복과 함께 중국에서 자국의 문화로 거론하는 대표적인 전통문화로는 ‘아리랑’이 있다. 지난 9월 중국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리랑 가락에 맞춰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공연이 중국의 전통적인 거리 공연으로 소개된 사실이 알려졌다. 이때도 중국 측은 2011년 자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무형유산이라는 이유를 대며 ‘아리랑’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했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왔다. 당시엔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을 파악한 한국 정부가 ‘아리랑’을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게다가 중국의 최대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에 개설된 백과사전 페이지는 판소리까지 자국의 전통문화 중 일부로 게재해 두기도 했다. 이 역시 중국의 구분에 따르면 조선족에 해당되는 강신자, 김례호 명창이 중국 랴오닝성 등지에서 판소리를 가르친 바 있기 때문에 넓게 봐서 중국의 문화에 포함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문화·콘텐츠 산업 분야 관계자들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같은 입장을 보인다. 지난 11월 10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근 한복을 둘러싼 갈등에 관한 질의를 받자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한복이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임을 세계에 알리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국가주의에 바탕을 둔 배타적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서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화현상을 어느 한 나라만의 것으로 한정하는 것도 무리한 해석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시각만 반영된 렌즈를 벗고 당대의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노력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수출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제국주의적인 태도로 가까운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행동에는 분명한 반대를 표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문화와 소비자를 배타적으로 대하면 결국 우리의 문화가 더 넓은 공간에서 생명력을 얻을 기회도 놓친다”고 말했다.
[신간]아리랑(2020. 08. 14 14:22)
2020. 08. 14 14:22 문화/과학
ㆍ이방인이 본 조선 혁명가의 고뇌 <아리랑> 님 웨일즈, 김산 원작·박건웅 그림·동녘·2만원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과의 인터뷰를 거쳐 그의 삶을 기록한 님 웨일즈의 원작을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시켰다. 김산의 삶을 통해 본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 청년의 고뇌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비견되기도 하는 김산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을 향해 온몸을 던진 한 인간의 초상으로 계속해서 부름받고 있다. 김산이 사회에 이바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처음엔 의학을 공부해 생명을 구하려 했던 점도 체 게바라와 비슷하다. 김산은 당시 베이징 최고의 의대인 협화의학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했으나 이후 혁명을 꿈꾸며 낯선 중국 땅 곳곳을 누비며 투쟁했다. 한동안 목숨을 희생한 경위가 명확하지 않았던 점 또한 두 혁명가의 닮은 모습이다. 지금은 김산이 1938년 당시 중국 공산당 사회부장 캉성(康生)에 의해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랜 기간 그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묘연했다. 1983년에 이르러서야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복권시켰고, 한국 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39년 원작을 탈고하며 당시 님 웨일즈는 “나는 이따금씩 옌안에 있는 그 옹색한 방안에서 꾸밈없고 조용하게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해주던 김산의 모습을 생각한다.… 김산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대변동 속으로 내던져진 한 명의 민감한 지식인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였다”고 썼다. 웨일즈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김산을 꼽은 이유도 바로 그가 패배주의라는 숙명을 결국 극복한 개인이었다는 데 있다. 한 개인 안에서 응축된 역사를 발견한 기록이 시대를 넘어 아직까지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 리처드 로티 지음·김동식 외 옮김·사월의책·2만5000원 개인이나 자아, 사회나 공동체 모두 절대적인 본질을 갖고 있지 않고 그저 우연히 만들어졌을 뿐이라는 철학자의 시각에서 삶의 방향을 논한다. 각자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존재들이 보편적인 진리 없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 책이다. ▲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 | 캐런 킬거리프 외 지음 오일문 옮김·놀·1만5000원 제목처럼 자신에게 친절과 예의를 강요하는 환경에 구애받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의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인 저자들이 살면서 직접 맞부딪치며 겪은 경험을 통해 ‘날카로운 직감과 영리한 태도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 ▲테러를 프로파일링하다 | 백수웅 지음·지식의날개·1만7500원 한국이 앞으로도 테러 청정지대로 남아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에게 테러는 그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로만 여겨진다. 테러가 평범한 시민의 생활 현장을 위협하는 시대에 테러 청정지대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테러 프로파일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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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 강제 이주 고려인의 고난과 의지
[내 인생의 노래] 강제 이주 고려인의 고난과 의지(2019. 11. 08 15:42)
2019. 11. 08 15:42 문화/과학
나의 첫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다. 동생을 일찍 본 덕에 돌이 지나자마자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는 <정선아리랑>을 즐겨 불렀다. 밭일 도중에도, 온양 오일장에 가는 길목에서도, 달 밝은 밤 툇마루에 기대앉아서도 흥얼흥얼 <정선아리랑>을 불렀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할머니의 구성진 목소리에 더해져 처량한 가사까지, 듣고 있자면 까닭없이 어린 가슴도 축축해지곤 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내 애창곡은 <정선아리랑>이었다. <정선아리랑>에서 <홀로아리랑>으로 바꿔 탄 건 1990년부터다. <홀로아리랑>은 독도 서사시로 많이 알려졌지만 크게는 한반도 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한돌 작사·작곡으로 가수 서유석씨가 불렀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배타고 떠나면/ 우리네 마음들도 하나 되겠지/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함께 가보자.” 전통 아리랑 선율을 담고 있는데다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가사로 국민아리랑이 된 노래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취재차 평양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을 때는 천지를 바라보며 북측 작가에게 조용히 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홀로아리랑>을 울면서 부른 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마을에서였다. <우즈베키스탄에 꽂히다>라는 책을 내고,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역사와 삶을 기록하는 <최희영의 고려아리랑>을 연재하던 중, 지난 9월 MBC 특집 다큐 <겨레말 말모이> 현지 코디네이터로 참여해 다슈켄트에 있는 ‘시온고’ 마을에 갔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당시 타슈켄트에 정착해 고려인 공동체 마을을 이룬 ‘시온고’에는 ‘고려인 합창단’이 있다. 고려인 2~3세대들이 1주일에 두번 시온고 노인센터에 나와 한국가요를 부른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한국말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고려인들이 부르는 <홀로아리랑>은 좀 더 절절하다. 죽기 전 통일된 조국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홀로아리랑>을 부르다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쏟고 말았다. 요즘 최고의 관심 노래는 <고려아리랑>이다. 1864년 조정의 폭정과 가난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던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들을 ‘고려사람’이라 부르며 연해주 한복판에 ‘신한촌’을 건설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다. <고려아리랑>에는 조선인으로 떠나 고려인으로 살다 한국인으로 돌아온 그들의 150년 이산의 한과 불굴의 의지가 고스란히 스몄다. 이 노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권익을 위해 애써오던 손치근 알마티 총영사가 “고려인을 위한 아리랑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30년 가까이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고려인 연구가로 활동한 김병학 시인이 작사하고, 재즈 작곡가로 유명한 고려인 한야꼬브가 작곡했다. 노랫말엔 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1절에는 강제이주 과정의 고난이, 2절에는 고난을 극복한 한민족의 긍지가, 3절에는 고려인의 새로운 결기와 미래를 담았다. 참고로 가사의 ‘원동(遠東)땅’은 연해주, ‘불술기’는 기차, ‘중아시아’는 중앙아시아를 뜻한다. 나는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고려아리랑> 노래를 알리기 바쁘다. 검색창에 ‘한야꼬브의 고려아리랑’이라고 치면 동영상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원동땅 불술기에 실려서 카작스탄 중아시아 러시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도 우리는 한가족 고려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 아리랑(1절) 진펄도 갈밭도 소금밭도 땀 흘려 일구니 푸른 옥토 모진 고난 이기고 일어서니 우리는 한민족 고려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 아리랑(2절) 아버님 남기신 선조의 얼 어머님 물려준 조상의 말 가꾸고 다듬고 지키리라 우리는 한겨레 고려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 아리랑(3절)
내 인생의 노래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독일 5인조 재즈그룹 살타첼로의 아리랑
2005. 07. 01 화제
“예전엔 불고기, 김치  마니아였는데 최근 바뀌었어요.  갈비탕!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살타첼로의 한국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고 손기정 옹을 추모하는 헌정 음반을 내 화제를 모은 독일 5인조 재즈 그룹 살타첼로가 이번에는 헌정 음악회로 손기정 사랑을 이어간 것. 또다시 한국을 찾은 살타첼로는 우리나라의 예비 국악인들과 만나 뜻 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첼로의 선율 속에 녹아든 살타첼로의 아리랑, 그 2부 리그 속으로. 동서양의 만남! 살타첼로, 한국의 예비 국악인들과 만나다 지난 6월 15일, 중앙대학교 영신기념관 앞. 한국 전통음악의 맥을 잇는 이 학교 국악대학 예비 국악인들의 신명 나는 맞이굿이 한창이다. 이날의 특별 손님은 독일의 5인조 재즈 그룹 살타첼로(SaltaCello). 북, 장구, 징, 꽹과리 소리에 멤버들도 신이 났다. 사물놀이패의 현란한 몸동작에 탄성을 자아내던 밴드의 리더이자 맏형 격인 피터 쉰들러(45)가 이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학생들의 환대에 화답한다. 이날은 ‘손기정 헌정 음악회’를 위해 방한한 살타첼로가 한국의 국악 전공자들과 만나 ‘살타첼로가 사랑한 한국 음악’이라는 주제로 강연 겸 연주를 곁들인 마스터 클래스를 여는 날. 이날의 맞이굿은 한국인보다 한국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일인들, 살타첼로에게 우리가 주는 감사의 선물이기도 했다.  살타첼로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피터 쉰들러가 1995년 결성한 독일 출신 5인조 재즈 그룹. 살타첼로의 멤버들은 각자 클래식을 전공한  솔로이스트이자 세션들이다. 멤버 중 네 명이 세계 4대 실내악단인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 단원 출신. 살타첼로는 그동안 한국 음악과 손기정 옹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여왔다. 지난 3월 초에는 손기정 옹을 추모하는 창작 연주곡 4곡을 담은 헌정 음반 「42.195 그레이트 손」을 발매한 바 있고, 6월엔 손기정기념재단의 초청으로 방한, ‘손기정 헌정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일주일간의 방한 일정 중 이틀을 우리나라의 국악자들과 보낸 살타첼로. 우리 음악을 푸른 눈의 사람들이, 그것도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이보다 낯선 풍경이 또 있을까. 드디어 밴드가 청중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오프닝 곡은 ‘위대한 손기정 - 마라톤 맨’.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던 손기정 옹이 살타첼로의 음악으로 환생하는 순간이다. 살타첼로의 ‘위대한 손기정 - 마라톤 맨’ 속엔 식민시대의 비극을 가슴에 안고 달린 ‘고독한 러너’ 손기정 옹의 가슴 저린 사연이 음표가 되어 녹아 있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42.195 그레이트 손」에 수록된 곡들과 ‘강원도아리랑’ ‘진도아리랑’ ‘옹헤야’ ‘밀양아리랑’ 등 한국 전통 음악이 주를 이뤘다. 악기가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피아노가 질문을 던지면 색소폰이 화답한다. 멤버들은 연주 중간중간 ‘옹헤야~’ 시나위까지 곁들이며 흥을 돋운다. 살타첼로의 멋들어진 즉흥 연주에 관객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휘 젖는 학생도 보인다. 그들의 연주 속에서 우리 국악은 분명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우리 음악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들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라며 “우리는 과연 우리 음악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열정’과 ‘여유’의 나라!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살타첼로’는 앙상블을 의미한다. 살타첼로는 ‘뛰어넘다’의 이탈리아어인 ‘살타레(Saltare)’와 첼로의 합성어. 세상의 모든 음악의 융합을 꿈꾸는 살타첼로의 음악적 목표가 그 속에 있다. “우리는 항상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팀명 앞에도 ‘뛰어넘다’는 의미의 ‘살타’라는 단어를 사용한 거구요. 음악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국 음악에 심취하면서 한국을 알아가고, 또 사랑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혹시 모르잖아요? 남한에서 북한으로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음악으로 세상의 모든 경계를 없애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죠.”  살타첼로는 올해로 데뷔 10년째를 맞는다. 그 사이 그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비롯,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뛰어넘고’ 다니며 연주 활동을 펼쳤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느 나라를 방문하건 그 나라의 전통 음악부터 찾게 되고, 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한국 음악을 접한 계기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신들의 음악에 한국만큼 많은 영향을 준 나라는 없었다고 한다. 한국 방문시 우연히 들은 국악 한 자락은 살타첼로에게 새로운 음악 세계로 가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땐 한국 음악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서 어떤 특정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한국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국 음악의 첫인상은 강렬했습니다. 5음계만으로 모든 음악이 해결됐죠. 한국 음악은 우리가 하는 블루스 음악의 체계와도 일치했어요.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죠.” 한국 음악을 알기 전 살타첼로는 라틴 음악에 빠져 있었다. 데뷔 앨범도 탱고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1995년 처음 한국 땅을 밟고 접한 한국 음악은 이들의 음악적 뿌리를 흔들어놓는다. 물론 살타첼로가 어느 한순간에 한국 음악에 빠져, 국악과 재즈의 크로스오버에 나선 건 아니다. 한국의 음악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해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했고, 3년 전 해인사를 찾아 한국 문화의 전통과 뿌리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한국이 제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이후 접한 손기정 옹의 사연은 이들의 한국 사랑을 더욱 강하게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살타첼로의 손기정 사랑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이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서 독일 언론인 슈테판 뮐러가 쓴 글을 통해 ‘손기정’의 존재를 안 것.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손기정 옹의 가슴 아픈 우승 사연이 담겨 있었다. 1936년 메달을 거머쥔 손기정 옹의 표정은 슬펐다. 곧 그 이유를 안 팀의 맏형 피터는 분개했다. “우리 멤버들은 모두 마라톤 마니아입니다. 그래서 손기정 옹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어요.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음에도 애국가가 아닌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진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울분에 깊은 공감을 느꼈고, 그 아픔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 싶어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한국을 배워가며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다는 살타첼로. 그들은 한국 사람 하면 ‘역동’과 ‘여유’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쳐요.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느낀 것이죠. 한국팀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는 4강에 들었다는 것은 그 역동감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포기란 단어를 모르는 듯합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죠. 동시에 한국인들은 특유의 여유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한국을 알고, 한국을 사랑하게 되면서 우리의 삶에도 여유가 생긴 듯해요.” 한국 사람, 한국 음악을 비롯, 살타첼로는 한국의 맛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김치 맛에 반했다. 이젠 김치 없이는 식사가 힘들 정도다. 베이시스트 미니 슐츠는 “김치로 몸무게를 15kg이나 뺐다”며 “한국 음식은 소화도 잘 되고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라며 김치 예찬론을 펼쳤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물으니 리더 피터 쉰들러가 하는 말이 퍽 인상적이다. “최근에 좀 바뀌었어요. 미니는 김치 마니아고, 다른 멤버들은 불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죠. 전 요즘 갈비탕의 맛에 푹 빠져 삽니다.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 대한 연정을 음악에 담아 풀어내는 독일 재즈 그룹 살타첼로. 그들은 이렇게 한국이라는 새로운 맛에 심취해 산다. 한국의 국악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클래스와 19일 서울에서 ‘손기정 헌정 음악회’를 성공리에 마친 살타첼로는 다음날 고국 독일로 돌아갔다. 그들은 가고 없지만 어눌한 우리말로 ‘영원’을 노래하던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살타첼로, 모두 모두 사랑하네. 다정한 친구, 영원한 나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강예지
가수 팀의 형으로 유명한 아리랑-TV MC 데이비드 황
2004. 02. 01 연예
“독수리 5형제거든요. 제가 맏형입니다” 가수 팀의 친형인 데이비드 황은 아리랑-TV의 퀴즈 프로그램 ‘The    Contenders’에서 MC로, EBS-TV에선 ‘토요뉴스’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동생들과 함께 귀국한 후 우연히 방송 활동을 시작하면서 국내에 정착한 것이다. 그에게 듣는 가족 이야기. 일명 ‘팀형’으로 통하는 데이비드 황(본명 황성민·31). 퀴즈 프로그램 MC로 활동중인 아리랑 TV에서 조차 “아, 팀형이요!”라고 되묻는다. 다섯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목회를 하는 부모님과 동생 지민(29), 유민(25), 팀(본명 영민·24), 창민(17)은 미국에서 자라난 교포 2세다. 사교적이며 활달한 데이비드는 LA에 있는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하면서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했다. 스포츠 과학을 전공하며 적극적으로 서양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린 시절, 동양인이라며 손가락질 받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싶었다. “스포츠, 노래 등 특기를 살려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영화처럼 놀았어요. 유명한 휴양지는 전용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닐 정도였지요” 친구들과 지내는 사이, 대학 졸업을 해야 했지만 학점이 부족했다. 크게 실망할 부모님을 걱정한 나머지 동기들 졸업식에 참석해서 ‘가짜 졸업식’을 치렀다. 빌린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위조해 부모님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가슴 한구석은 뻥 뚫린 듯 허전함을 느꼈다. 피부색이 다른 영원한 이국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필라델피아로 돌아오며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한 지인의 소개로 팀과 셋째 유민은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팀과 작곡 공부를 하던 유민은 오디션에 참석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2000년 봄, 서울로 향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걱정하며 맏이인 데이비드에게 한국행을 권했다. 처음엔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영어로 신학 공부를 하는 국내 기관이 있다는 소리에 결심을 굳혔다.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꾸준히 신학 공부를 하며 팀이 활동하기만을 기다린 지 2년째. 2003년 봄, 드디어 팀의 음반이 나왔다. 타이틀 곡 ‘사랑합니다’는 공중파 라디오 순위 1위를 기록하며 급상승했다.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순진한 청년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 특히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멜로 총각’이라는 별명으로 어설픈 춤을 추며 팬들의 시선을 받았다. 이정재, 이병헌… 유명 연예인 일대일 영어 과외 2003년 초여름의 일이다. 데이비드 황은 영어 과외를 부탁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예인이라는 정보만 듣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영화배우 이정재를 만났다. 소탈하고 농담 잘 하는 그를 만난 후 이정재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순발력과 센스 덕분에 오히려 영어 과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이정재씨는 영어 공부를 무척하고 싶어했어요. 중급 이상의 실력이었거든요. 영어로 농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 보통 두세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영화배우 겸 탤런트인 이병헌과도 몇 번 만남을 가졌다. 그 역시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데이비드 황은 대니 정과의 친분 때문에 ‘대니 정 콘서트’ 때 싱어로 나선 적이 있다. 대니 정의 팬이라던 이병헌의 말이 기억나 이날 초대했다. 절친한 사람과 동행해도 괜찮겠냐는 이병헌의 질문에 상관없다며 흔쾌히 대답했다. 당일 나타난 인물은 애인인 송혜교였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걸 그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커플이었어요.” 셋째인 유민은 영화배우 장진영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기도 했다. 2003년 영어 과외를  하며 여름방학을 보내던 중, 친구와 함께 우연히 아리랑-TV를 찾았다. 때마침 퀴즈 프로그램 남자 MC가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복도를 지나던 담당 PD는 데이비드를 발견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제안했다. “재미로 카메라 앞에 섰어요. 그런데 절 마음에 들어했어요. 그 다음날부터 나와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이틀 후면 잠시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려 했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가 MC로 활동중인 ‘The Contenders’는 인기 퀴즈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갈 진행자를 찾던 중 방송국에선 그를 적임자로 생각했다. 그는 신림동 제일성도교회 영어부에서 팀, 대니 정, 브라이언(Fly To The Sky), 빈과 함께 한달에 두세 번씩 만나 신앙 공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며 지내고 있다. “브라이언, 빈의 팬들이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해요. 2집 준비중인 팀을 만나기 위해 팬들이 방문하기도 하구요. 물론 제 인기도 만만치 않아요.(하하)” 사진 촬영 내내 분위기를 쿨하게 만든 데이비드 황. 팀 못지않은 프로였다.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임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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