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764 건 검색)
- [국제칼럼]아프간 소녀들의 꺾이지 않는 꿈
- 2025. 03. 04 21:12오피니언
- ... 교육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전 세계가 여성의 성취를 기념하는 순간에도, 아프간 소녀들은 배움의 기회를 갈망하며 숨죽여 울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 국제칼럼국제칼럼
- 독일서 아프간 남성 흉기 난동에 2명 사망…총선 화두 된 ‘난민’
- 2025. 01. 23 20:49국제
- 용의자 범죄 전력에 당국 조치 도마에…체류 기준 강화 주목 아프가니스탄 남성이 독일의 한 공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2세 유아 등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다음달...
- 독일난민아프가니스탄아샤펜부르크흉기난동
- 아프간 남성, 독일 공원서 흉기 난동···2세 유아 등 2명 사망
- 2025. 01. 23 14:56국제
- ... 않는 거리에 있어 국내 치안 문제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독일, 아프간 출신 범죄자 28명 추방···탈레반 재집권 이후 처음독일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프가니스탄 출신...
- 독일난민아프가니스탄아샤펜부르크흉기난동
- 미국행 막힌 아프간 난민, “우리는 미국 도왔는데” 호소
- 2025. 01. 23 14:53국제
- ... 중 많은 이가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던 기간에 통역 등으로 활동하며 미군을 도왔다”면서 “만약 아프간으로 송환되면 탈레반에 의해 배신자로 간주돼 고문이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 아프간
스포츠경향(총 62 건 검색)
- 탈레반을 피해 도망간 아프간 여자 크리켓팀, “침묵하지 않겠다”
- 2025. 02. 13 09:07 스포츠종합
- 아프가니스탄 여자 XI 선수가 공식 경기에 앞서 감격해하고 있다. 크리켓오스트레일리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 텔레비전 중계를 진행한 멜 존스(52)의 머릿속엔 경기 해설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 여자 크리켓 대표팀을 탈출시키는 일이다. BBC는 존슨와 인터뷰를 통해 영화같은 탈출 스토리를 12일 공개했다.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여성의 스포츠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당시 아프간 여자 크리켓 대표팀 선수 19명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떠나야 했다. 그들은 멜 존스를 비롯한 호주 내 크리켓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호주로 탈출했다. 당시 팀의 주축 선수였던 피루자 아미리는 지금도 탈출 당시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그는 “자동차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며 “‘가족 결혼식에 간다’ ‘어머니 치료를 위해 파키스탄에 간다’는 변명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팀 동료 나히다 사판 역시 탈레반이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찾은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탈레반이 우리 집에 와서 남동생에게 ‘이 집에 크리켓 선수 여자가 살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정말 무서웠다”며 “나는 그날 밤 팀원들의 기록이 담긴 스코어북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와 가족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갈 기회가 있을지, 우리가 살 수 있을지 죽을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탈레반 법 아래, 여성들은 대학, 스포츠, 공원 출입이 금지된다. 또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리는 것도 금지돼 있다.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그들이 찾은 ‘안전한 장소’는 처음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 바로 호주였다. 아프간 여자 크리켓 선수들의 절박한 상황은 한 인도 언론인을 통해 멜 존스에게 전달됐다. 존스는 이를 듣고 곧바로 친구인 크리켓 빅토리아 출신 엠마 스테이플스, 아프간 여자 축구팀을 구출한 경험이 있는 캐서린 오드웨이 박사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긴급 비자를 신청하고, 자금 지원을 모색하며, 현지 탈출 경로를 파악했다. 구출 작전은 6주간 지속됐고, 결국 선수 및 가족 120명을 호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존스는 이 과정을 “제이슨 본 영화 같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계석에서 해설을 하다가도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피신 경로를 안내해야 했다”며 “한 선수가 탈출 차량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내가 ‘잠깐만 기다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탈출 이후에도 선수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2022년 국제크리켓위원회(ICC)에 “우리의 계약은 어떻게 되나. 여자 크리켓팀 운영을 위해 아프간크리켓위원회(ACB)에 지원된 자금은 어디로 갔는가” 등을 문의했다. ICC는 “계약 문제는 ACB의 소관”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선수들은 지난해 6월 다시 한 번 ICC에 국제 난민 팀 결성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답변은 없었다. 아미리는 “ICC가 평등을 외치면서도 아프간 여자 선수들에게는 침묵한다”며 “남자팀은 계속 지원을 받으면서, 우리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XI이 공식 경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크리켓오스트레일리아 탈출후 3년 반이 흐른 지난달 그들은 호주 멜버른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자 XI’라는 이름으로 첫 공식 경기를 치렀다. 경기에서 패했지만 경기를 치른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졌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엠블럼을 제작해 유니폼에 새겼다. 호주와 아프가니스탄의 국화를 크리켓공에 감싸는 디자인이었다. 경기를 마친 후 주장 나히다 사판은 “우리는 한 경기만 뛰고 끝내고 싶지 않다”며 “더 많은 경기를 치르고, 우리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팀은 공식적인 지원이 없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돕기 위한 온라인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고 영국의 매릴본 크리켓 클럽(MCC) 재단도 글로벌 난민 크리켓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돕기로 했다.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파리 패럴림픽 아프간 장애인 태권도 대표 “고통받는 전세계 여성을 위해”
- 2024. 08. 23 08:24 스포츠종합
- 자키아 후다다디가 파리에서 훈련하는 장면. AP 지난 4일 파리올림픽 육상 경기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육상 단거리 선수 키미아 유소피(28)가 육상 여자 100m 예선에서 꼴찌로 들어온 뒤 배번 뒤에 적힌 문구를 들어보였다. ‘교육, 우리의 권리’라고 적힌 종이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시당하고 고통받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위한 대변하는 내용이었다. 오는 28일 파리에서 시작되는 패럴림픽에서도 또다른 아프가니스탄 여성 선수가 용기를 낼 것 같다. 장애인 태권도 선수 자키아 후다다디(26)는 22일 영국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패럴림픽 출전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라며 ““여성과 소녀들에게 자신들이 탈레반이 느끼게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여성들이 강하고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자키아 후다다디. AP 후다다디는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초로 패럴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로 2020 도쿄 패럴림픽에 나섰다. 그는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도쿄 패럴림픽 참가 여부가 불투명해졌지만, 국제적인 도움을 받아 도쿄에 갔다. 당시 그는 “뒷마당에서 도쿄 패럴림픽 준비를 몰래 했다”며 “도움을 청하는 비디오를 공개했고 이게 퍼지면서 여러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아프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떠나는 것 외에는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재점령했을 때 겪은 사건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어둠’”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장악한 이후로, 억압적인 법들이 국민에게 강요됐다. 극단적인 종교 이데올로기는 특히 아프간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 갈 수 없고 남성 동반자 없이 집을 나설 수도 없게 됐다. 47㎏급 파리 패럴림픽 여성 태권도에 출전하는 후다다디는 “패럴림픽 출전까지 많은 걸을 견뎠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패럴림픽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여성들을 위해 싸우기 위해 파리에 있다”며 “전쟁 속에서도 우리가 강하고 침묵당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육상 단거리 선수 키미아 유소피가 지난 4일 파리올림픽 100m 예선에서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교육, 우리의 권리’라고 적인 번호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AP 후다다디는 왼팔 팔꿈치 아래가 없다. 그는 “아프간에서 여성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며 “여성으로서, 무엇보다 장애인으로서도 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물론 아프가니스탄 국기 아래에서 경쟁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라며 “난민팀과 함께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고 이것은 아프가니스탄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후다다디는 지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유럽 패럴림픽 챔피언십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패럴림픽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첫 패럴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아프간 여성 선수 중에는 올림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는 없다. 후다다디는 “나는 패럴림픽 기간 중 내 이야기를 전하겠다”며 “여러분도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역사적인 올림픽 브레이킹 첫 경기, “아프간 여성들에 자유를” 메시지 전하면서 ‘실격된’ 아프간 난민 출전 선수
- 2024. 08. 11 14:24 스포츠종합
- 게티이미지코리아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킹이 열린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역사적인 첫 경기는 비걸 경기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대표로 출전해 화제가 된 마니자 탈라시와 인디아 사르조에(네덜란드)간 맞대결이 장식했다. 탈라시는 대회 특별 초청선수였다. 브레이킹 올림픽 본선에서는 4명씩 4개 조로 경쟁한다. 하지만 비걸 종목에서는 탈라시-사르조에전이 예선으로 추가돼 출전 선수가 17명으로 늘었다. 이 경기 승자가 본선 마지막 16번째 출전권을 따내게 돼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성장한 탈라시는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는 탈레반의 엄격한 통치 속에서 위축된 여성 인권 사회에서 벗어나려 고국을 떠났다. 인터넷을 통해 브레이크 댄스를 접한 뒤 댄서로서 꿈을 키워오던 탈라시는 2021년 탈레반 집권과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없게 됐다. 여성이 교실은 물론 체육관을 출입하는 데도 제약이 생기며 꿈이 막히는 듯했다. 비걸로 꿈을 이루려는 탈라시는 스페인으로 망명을 신청했고, 올림픽 지역 예선 등록을 놓친게 알려지면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은 이 종목, 첫 주자로 나선 탈라시는 첫 올림픽 무대에서 더 나은 성적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전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던졌다. 탈라시가 공연 도중 펼친 망토에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자유를(Free Afghan Women)’이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관중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탈라시는 사르조에와 승부에서 져 본선행에 실패했다. 최종적으로는 ‘실격’에 의한 탈락이었다. 대회조직위원회는 탈라시의 퍼포먼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금지한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해석했다. 경기 결과는 ‘점수 차에 의한 패배’가 아닌 ‘실격 처분(DSQ)’으로 바뀌었다. 탈라시는 경기 뒤 “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탈라시가 본선 경쟁 전 단계에서 탈락했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브레이킹의 가장 큰 무대에서 전 세계인이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파리 올림픽] ‘아프간 여성에게 자유를’ 메시지 펼친 난민 선수, 실격 처분 받아
- 2024. 08. 10 14:15 스포츠종합
- AP연합 ‘2024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비걸 종목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대표 마니자 탈라시(21)가 실격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경기 후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자유를’(Free Afghan Women)이란 메시지를 펼쳐 보였는데, 대회조직위원회는 이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금지한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해석을 했다. 탈라시는 1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비걸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의 인디아 사르조에와 맞대결을 펼쳤다. 마니자 탈라시는 공연 도중 상의를 벗고 안에 입은 옷 등 뒤에 ‘Free Afghan Women’이라는 메시지를 펼쳐 보여 관중들 박수를 받기도 했다. 탈라시는 심사위원단 투표에서 사르조에에게 밀려 16강 진출은 실패했다. 경기 후 대회 조직위원회는 경기 결과를 ‘점수 차에 의한 패배’가 아닌 ‘실격 처분(DSQ)’으로 바꿨다. 아울러 탈라시의 점수를 ‘0점’으로 표기했다. 이는 탈라시가 IOC 헌장 50조를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IOC는 헌장에 ‘올림픽 현장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종교·인종적 선전을 할 수 없다’고 명기했다. 이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조처다. IOC는 해당 규정을 위반할 경우 국가올림픽위원회, 국제 연맹 및 IOC가 해당 안건을 평가한 뒤 필요에 따라 사안별로 징계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탈라시는 탈락 사유와 관계없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자란 탈라시는 인터넷을 통해 브레이크 댄스를 접했고, 여느 또래처럼 댄스를 배웠다. 하지만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탈라시 꿈이 고난을 맞았다. 탈레반은 여성들 스포츠 및 대외 활동을 막았고, 여성 브레이크 댄서로 성장한 탈라시는 살해 위협까지 받아야 했다. 탈라시는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고 파키스탄을 거쳐 스페인에 정착을 했다.
주간경향(총 18 건 검색)
- 문제는 ‘뿌리 내리기’! 아프간 피란민 구호 제2막(2021. 09. 10 15:02)
- 2021. 09. 10 15:02 국제
- ㆍ영·미, 확실한 주택 확보 방안 아직… 수용국 정치적 성향도 난민 정착 변수 지난 8월 30일 밤 11시 59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미군의 마지막 C-17 수송기가 이륙했다. 20년을 끌어온 아프간전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의 긴박한 대피작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17일간의 대피로 아프간을 빠져나간 피란민은 12만3000여명. 탈레반으로부터 위협받는 이들 다수가 여전히 아프간에 남겨졌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단한 성공”이라 자평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밤 아프간 피란민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빼곡히 탑승해 있다. / 카불 | AP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은 아프간 피란민의 구호에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향후 아프간을 탈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이 여전히 많기도 하지만, 이들을 데려오는 것만으로 구호를 마쳤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착하기까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줘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교육과 의료지원도 해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과 씨름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당면과제는 재정과 주택 난민지원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번 사태에선 특히 짧은 시간에 대규모 난민이 이동한 만큼 수용국들의 상당한 재정 부담을 촉발할 전망이다. BBC가 입수한 영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영국은 아프간인들의 재정착을 위해 최근까지 4억파운드(약 6404억원) 미만의 금액을 배정했는데, 향후 3년 동안 추가로 5억5700만파운드(약 8918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은 앞서 영국군과 함께 일한 약 8000여명의 아프간인을 수용한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지방 정부에 자금을 지원해 아프간 주민들의 재정착을 도울 예정이다. 하지만 향후 소요될 자금이 많다 보니 재정문제를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노동당의 닉 토마스 시몬스(그림자 내각 내무장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국가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어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나서는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주택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영국 정부는 지방 의회가 확실한 지원을 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주택 확보가 어려운 지역에선 주택을 다수 보유한 개인이 나서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 기존에 주택 대기자 명단에 있던 영국인들보다 아프간인들에게 먼저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미국도 주택문제를 두고 고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프간 피란민의 급격한 입국으로 재정착을 돕는 기관들의 부담이 늘어났으며, 이들이 저렴한 주택을 찾는 동안 피란민들은 호텔과 숙박공유 업체가 임대하는 주택을 이용하고 있다. 앞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 등 5만명 이상의 아프간 피란민들이 재정착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국방부는 난민들의 잠재적 거주지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개 지역을 거론한 바 있으나, 현실은 간단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독교 초교파 구호단체 ‘처치월드서비스’ 관계자는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에 발생한 화재 진압을 돕기 위해 오고 있고, 다수 호텔의 예약이 차 있어 임시숙소조차 찾기 힘든 상태”라 말했다. 난민지원기구들의 여력이 크게 위축된 것도 재정착을 돕는 데 난관이 되고 있다. 이들 기구는 매년 정착을 지원한 난민수에 비례해 정부지원금을 받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난민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며 3분의 1가량이 문을 닫은 것이다. 남아 있는 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단체의 지역 사무소는 비용을 즉시 충당할 수 있다는 보장 없이는 보호 요청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며 “지금 기금을 모금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외곽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지난 8월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챈틸리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 챈틸리 | AP연합뉴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단체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위해 ‘재건’을 서두르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IRC) 측은 재정착 지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우선 직원수를 다수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브리이민자지원협회(HIAS)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해고한 직원들을 다시 배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독일 총선 핵심 이슈로 부상 수용국들의 정치적 성향도 난민 재정착의 주요 변수다. 특히 유럽연합(EU)의 맹주인 독일은 9월 26일 총선이 예정돼 있어 난민정책의 향배가 주목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시리아 사태 당시 100만여명의 망명 신청자들을 수용했고,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도 최대 4만명에 대한 재정착을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달 26일 정계를 은퇴할 예정이다. 난민문제는 이미 총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아프간 난민들의 유입이 늘어나자, 이를 불안해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가 시리아 난민 사태의 반복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이 확산하면 선거 이후 보다 폐쇄적인 난민정책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독일 최대의 난민구호단체 ‘프로아질(Pro Asyl)’의 칼 코프 이사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독일에서 이주 문제에 대한 유독한 논의를 낳았다”고 말했다. 난민 유입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극우정당의 선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난민 반대를 강조한 독일대안당(AfD)은 시리아 사태 당시 대중의 위기감을 자극해 성공 가도를 달렸고, 의회까지 입성했다. 그 뒤 난민 숫자가 줄어들며 지지율이 하락했으나 이번 아프간 사태가 발생하자 다시 반등을 노리고 있다. AfD는 독일 내에서의 유엔 난민협정 적용을 중단하고 난민이 가족을 데려오는 것을 금지하며, 영주권을 얻기까지 10년의 대기시간을 요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총선을 기다리는 독일 내 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독일에 정착한 시리아인으로 2015년 메르켈 총리와 셀카를 찍기도 했던 아나스 모다마니는 현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독일인은 AfD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만약 AfD가 강해지고 차기 정부가 시민권 신청을 더욱 어렵게 만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취재 후]아프간 사태, 한반도에 ‘나비효과’ 불러올까(2021. 09. 03 15:33)
- 2021. 09. 03 15:33 국제
- 20년을 끌어온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시작도 요란했지만 그 끝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시작된 지 약 4개월, 탈레반이 주요 거점도시를 장악한 지 불과 10일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됐습니다. 미국은 20년간 2조2600억달러(약 2622조원)의 전비를 썼고, 무엇보다 2461명의 미군 병사와 민간인 사망을 감수했습니다. 그럼에도 안전한 철수조차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은 미국이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동에서의 패권을 놓아버린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앞세우며 중동에 경제적으로 침투하는 상황에서 지역을 ‘무주공산’으로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향후 중동 동맹국들을 이용해 지역 패권을 유지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김찬호 기자 이러한 미국의 사정과는 별개로 한국은 이번 사태가 동아시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미들파워(중견국가)는 외교능력이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습니다. 중동 정세 변화가 만들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중견국가 한국의 생존과도 직결됩니다. 당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난 8월 3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입니다. 그는 아프간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세계가 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10년 더 꼼짝 못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가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이 더 이상 ‘이상주의’만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더욱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아시아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더욱 많은 역할분담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 집중한다는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가 언제까지 균형외교를 지속하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안보에 있어서 국제정세 변화는 일종의 외생변수입니다.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국제정세는 차치하더라도 ‘외교력’, ‘국방력’ 강화와 같은 ‘자구책’은 부지런히 다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취재 후
- “중국, 아프간에 직접 발 디디진 않을 것”(2021. 08. 30 11:05)
- 2021. 08. 30 11:05 국제
- ㆍ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공산주의가 붕괴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완성한 역사를 허물려는 악의 국가를 멸해야 한다. 그 자리에 민주국가를 세우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이를 일종의 신의 계시처럼 받아들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중동아프리카연구부장)가 8월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미국 대외정책에서 아프간 철수가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아프간의 탈레반은 1400년 전 선지자의 시대처럼 살기를 원했다. 교육은 여성에게 음란한 자유를 주는 불신앙적 정책이며, 이슬람국가를 멸망으로 이끈다고 봤다. 선거제도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양립할 수 없으므로 없앴다. 이단이라고 보는 시아파의 소수민족 하자라를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카불공항의 혼돈은 세상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며 정치를 해온 이들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아프리카연구부장)는 “미국의 아프간 철수로 정복주의 세계관에 기반을 둔 민주국가 건설 프로젝트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인남식 교수를 만나 미국의 아프간 철수 이후의 중동정세를 물었다. -아프간은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였다. 지금도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나. “맥락은 달라졌다. 19세기 지정학적 게임이 벌어졌을 땐 따뜻한 남쪽 바다를 향하려는 제정러시아가 세력을 뻗치려 했고,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영국이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러시아가 아프간과 파키스탄 쪽으로 내려오면 인도가 위험해지고, 제국의 핵심이익이 침해된다고 생각해 힌두쿠시산맥 쪽에서 막아선 것이 그레이트 게임이다. 20세기엔 비슷한 맥락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노리는 소련의 남진을 막는 ‘컨테인먼트(봉쇄) 전략’의 차원에서 개입이 이뤄졌다. 냉전 종식 이후 지정학적 가치는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았다. 지역 패권을 위한 교두보로서가 아니라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통제하는 차원에서 주목했다. 그대로 둘 경우 미국 본토가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동해 지난 20년간 미국 역사상 최장의 전쟁을 펼쳤다.” -미국이 아프간에 머물 유인은 이제 없는가. “아프간전쟁으로 2442명의 미군이 죽고, 2조2600억달러(약 2700조원)의 전비가 들었다. 50만명에 가까운 미군, 동맹군, 정부군이 8만명의 탈레반을 못 없앴다. 더 주둔한다고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애초 2001년 10월 7일 시작된 전쟁의 목적은 알카에다 거점 해체와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핵심인사의 검속이었다. 이 모든 게 다 해소됐다고 본다면 바이든으로선 전쟁을 더 끌고 갈 이유가 없었다.” -탈레반을 축출한 것으로 전쟁을 끝냈어야 했나. “바이든도, 오바마, 트럼프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만 소위 ‘민주평화론’이라는 이론에 기대 세상을 민주주의로 다 심어놓아야만 전쟁을 완전히 종식할 수 있다는 다소 이상주의적 가치를 추구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정권교체로 민주주의를 심겠다고 한 건 과도한 욕심이었다. 치고 빠져야 했는데 치고 눌러앉는 바람에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을 20년 가까이 지속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국가건설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인가. “네오콘은 굉장히 이상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자기들이 역사를 완성했다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역사의 종말>을 통해 나타났다.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의 시장경제를 꽃피워 우리가 역사를 완성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완성된 역사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있고, 그 독성이 9·11로 표출됐다. 미국이 해야 할 일은 9·11의 주범만 처벌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완성한 역사를 허물어뜨리려고 하는 불순세력을 다 없애야 한다는 공세적 현실주의를 가졌다. 필요하다면 선제공격을 해서라도 악의 축을 비롯한 불량국가들의 레짐(정권)을 바꾸는 게 목적이었다. 지나고 보니 압도적인 미국의 국력과 화력으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가 하나 건설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 시민 입장에서는 간단하다. 이라크전에서 4497명이 죽고, 1조2000억달러를 썼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더 많은 병사가 죽었다. 그런데 달라진 게 뭐냐. 오히려 이슬람국가(ISIS)가 창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희생을 감수해야 하냐, 이런 인식이 오바마 정부에선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라는 아시아 재균형의 형태로 나타났다. 트럼프 정부에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다소 구호는 멋지지만 ‘미국은 다 빠지겠다’는 고립주의로 나타났다. 바이든은 말을 앞세우지 않고 그냥 빼버렸다.” -오바마도 문제를 인식했다면, 왜 철군 대신 증파를 선택했나. “먼저 펜타곤을 중심으로 한 군산복합체의 주요 세력은 전쟁을 끝내기보다 유지하는 걸 선호했다. 펜타곤의 여론을 압도하면서 철군을 하면 패전을 자기가 결정하게 된다. 그 책임을 지기 싫어했다는 해설이 있다. 오바마가 병력을 뺐다면, 지금도 바이든이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공화당이나 의회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 워낙 압도적인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였다면 2~3년 전쟁하면 고갈돼 나와야 하지만 미국의 역설은 너무 부자 나라라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들어도 전쟁을 유지할 능력이 되면서 독특한 딜레마에 빠졌다. 전쟁을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 지지 않는 전쟁으로 바꾼 것이 지금까지의 패턴이었고 이번에도 그랬다.” -바이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너무 성급하게 철군을 진행했다. 철군 시한을 못 박았을 때 민간의 필수요원은 다 빠졌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 직원이 다수 남아 있다. 아프간의 지방에 들어가 재건을 위해 20년간 노력한 이들이다. 펜타곤과 백악관에선 이들부터 철수하는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이들을 카불로 모아놓지도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제일 늦게 빠져야 할 군이 바그람에서 야반도주하듯 빠졌다.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 대표단과 평화회담을 할 때 미국은 철군을 약속하면서 전제 조건을 걸었다.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과 절연해야 한다. 무기를 내려놓고 정치회담을 통해 아프간 내 다양한 정파와 연대할 정도의 포용적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등이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철군을 지지하고,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어차피 합의됐으니 연말까지 시간을 더 두는 게 맞았다. 하지만 바이든은 9·11 20주기가 돌아오기 전 철군해 20년 넘게 끌고 가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성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계획을 짜기보다 시간에 쫓기게 됐다. 물론 이렇게 빨리 카불이 함락될 줄 몰랐고, 이렇게 정부군이 무능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거의 1000조원 가까이 쏟아부어 정부군 역량을 강화했는데 수도 하나 한달을 못 지킨다는 건 설사 정보당국이 예측했다고 해도, 보고서에 솔직히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보 실패이지만 자기가 결정하고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책임 하에 끝내겠다고 공언하면서 실제로 결단을 한 것은 오바마나 트럼프 때 보지 못한, 어쩌면 미국 대통령의 가장 전통적인 모습에 근접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탈레반이 개방적·포용적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까.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다. 낙관론에서 보면 1996에서 2001년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던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그때 왜 허망하게 정권을 잃었는지 복기할 것이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자. 5년이 아니라 영구히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라고 생각한다면 옛날처럼 총을 들이대고 이념 통치를 할 시대는 아니다. 탈레반 축출 이후 태어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속에서 자란 20대들, 소위 MZ세대 경우 반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20년 전의 무도한 세력이 돌아와 여성이 학교를 못 다니게 하면, ‘무슨 이런 나쁜 놈들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두 번째, 90억달러(10조5000억원) 정도의 자금이 동결된 상태이다. 국가 운영자금을 만들어야 하는 탈레반 입장에서는 얼마나 아쉽겠나. 없으면 마약이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까라는 관측이다. 카타르에서 여러차례 회담이 열렸는데 탈레반의 경우 수많은 서방 외교관을 만나면서 세상이 변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게 낙관론적 접근이다. 비관론에서 보면 원리주의 정부를 지향하는 탈레반의 경우 (그들이) 달라졌다면 변한 근거를 쿠란에서 제시해야 한다. 여성의 교육을 금지했던 과거의 입장을 바꾼다면 ‘우린 쿠란을 이렇게 새롭게 해석하게 됐다’는 식으로 소위 법적 배경을 밝히는 ‘파트와’를 내려야 하는데 전혀 그런 말이 없다. 그런 점에서 기만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탈레반은 20년간 미국과 나토 등 세계 최강대국과 싸워 결국 축출한 승리자가 됐다. 재미있는 건 소셜미디어에 익숙해 사상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입장이 강한 일반적인 10~30대와 달리, 탈레반에 가담한 10~20대는 훨씬 더 과격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총을 잡고 싸워 20대가 되자 미국을 쫓아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자신감에 과도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세 번째, 국가 운영을 위한 해외 원조와 차관이 필요해 서방에 투항하는 대신, 중국과 파키스탄 같은 대안세력이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난 약간 비관론에 가깝다.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세상을 안심시킨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립’을 세게 잡고 반대파를 숙청할 가능성이 있다.” -9·11 20주기까지가 고비가 될 수 있겠다. “8월 31일까지 1만명이 넘는 사람을 내보내 아프간 영토에 미국인이 하나도 없게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알카에다 프라임(AQP)이다. 파키스탄 접경지에 주로 있던 이들은 많을 때 2000~3000명 수준이었다가 최근에 수십명대로 떨어졌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미국은 조직이 와해됐다며 승전보를 울렸지만 이들은 평화협정으로 대부분 풀려났고, 탈레반 지방조직에 흩어져 싸움의 기술을 전수했을 것이다. 소위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라는 아프가니스탄 기반의 이슬람국가(ISIS) 분파 일부도 탈레반 조직에 잠입했다. 탈레반이 공식적으로 우린 알카에다나 ISIS와 절연했다고 선언해도 이들이 신분을 세탁해 탈레반에 가담하면 누가 이들을 잡아낼 수 있겠는가. 카불이 무슨 합의를 하든 상황을 악화시켜 카불을 제2의 ISIS 거점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칸다하르의 탈레반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도 통제 못 한다. 지난해 2월 미국과 합의했을 때도 이들은 끝까지 반대했다. 리더십이 약속을 했으니 8월 31일까지는 지켜보지만, 그 이후로는 미국인을 향해 총을 들 것이다. 그럼 최악의 상황이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입장에선 10월 중간선거는 끝나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과 연결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을 아프간이라는 수렁에 빠뜨리겠다는 목표를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아프간에 내전이 일어날 경우 접경국가인 중국의 부담이 제일 클 것이다. 중국은 탈레반이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들어가 분리주의 운동을 선동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미국이 빠지면서 주변 나라들이 돈과 사람, 외교를 투입해야 한다. 하필 주변국들이 다 미국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라면, 철수가 나쁘지 않은 카드가 된다. 중국 견제에 올인하기 위해 과감하게 철군을 했을 수 있다.” -중국의 전략은. “그간 해왔던 행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정간섭에 반대하고, 정부가 어떻게 꾸려지든 그건 아프간의 몫이라고 남겨놓을 것이다. 중국은 항상 경제 이익에는 굉장히 민감하고 빠르게 움직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동과 서남아시아, 특히 이슬람권에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헤매는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아프간과는 비록 짧지만 와칸 회랑에서 76㎞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곳이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프간을 안정화할 정당성 있는 정부가 들어서길 바랄 텐데 그렇다고 탈레반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클 것이다. 탈레반이 무도한 짓을 하며 돌아다닐 때 세상 천하의 나쁜 국가를 지원한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경제적으로 개입하되, 정치적으로는 가능하면 거리를 둘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파트너는 파키스탄이다. 거의 동맹국에 가까운 수준이다. 탈레반의 복귀에는 파키스탄 파슈툰족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중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통제하는 계획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직접 발을 디디진 않을 것이다.” -이란이 어떤 대응을 할지 궁금하다. “탈레반은 테헤란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란이 추종하는 시아파는 단순히 종파가 다른 게 아니라 이교도이자 멸절돼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는 다양한 부족 네트워크가 있어서 이들이 이란 동부와 아프간을 오가며 탈레반에게 집권 후 공존하자는 테헤란의 메시지를 계속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다리어와 파슈토어 모두 페르시아 계열이다. 종파적으로 상극에 있지만 부족 네트워크를 통해 적대적으로 돌아서지 않을 수 있는 포석을 할 것이다. 탈레반을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이란과 미국이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어 핵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미·이란 핵협상이 실패해 제재가 유지될 경우 이 라인이 전부 친중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바이든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란과의 핵 합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아프간을 정상국가로 이끌 방안은. “과거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한 나라는 지구상에 딱 세 나라밖에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파키스탄인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건이다.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의 관심사는 안정적으로 왕권을 승계하는 것이고, 여기에 미국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바이든이 등장하자마자 카슈끄지 암살사건을 두고 정면 공격하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사우디를 압박해 사우디로 하여금 탈레반의 정통성을 허물게 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의 비자 쿼터를 주지 않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임하는 사우디로부터 성지순례라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를 이행할 수 없는 이단의 집단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자신들의 뉘앙스를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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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탈레반](1) 아프간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2021. 08. 30 11:05)
- 2021. 08. 30 11:05 국제
- ㆍ아프간 정부 부정부패로 민심 잃어… 철수 원한 미국, 세 키운 탈레반과 평화협상 20년 전 미국에서 9·11테러가 벌어지고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어났다. 사실 미국의 일방적인 폭격에 탈레반 정부는 제대로 대항도 못 했다. 미국의 막강한 화력 앞에 탈레반 군사력은 형편없이 무너졌고, 그들은 정부를 버리고 퇴각했다. 2001년 당시 수도 카불은 새로운 세상이 온 것 같은 활기가 있었다. 탈레반 정부 시절 여성의 외출과 등교 금지, 음악과 TV 시청 금지 등 각종 제한이 모두 풀렸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탈레반 정부 인사를 만나 인터뷰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인적 사항이나 사진이 없었다. 알고 보니 탈레반은 사진 촬영을 죄악시하고 물라(성직자) 누구누구 하는 식으로 본명인지 아닌지 모르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적도 없이 수도 카불에서 사라졌다. 탈레반이 지난 8월 1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서부 파라주의 주도인 파라시에 진입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그랬던 탈레반이 화려하게 카불로 돌아왔다. 20년 만에 나타난 그들은 카불 전역의 도로를 점령하고 대통령궁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 책상 위에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너무 빠른 복귀에 미군도, 서구 언론도 우왕좌왕했다. 카불공항은 피란 가려는 인파로 넘쳐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는 나라들은 모두 국경을 막았다. 탈레반 병사들도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철통처럼 막았다. 모든 길에는 탈레반의 검문소가 생겨났다. 아프가니스탄은 길이 외길인 경우가 많다. 그 길목을 다 탈레반이 지키니 아프간 사람들의 선택은 공항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편수는 한계가 있다. 공항에 넘치는 인파 중에 비행기로 피란을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아프간 정부는 도둑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탈레반이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등장할 수 있었는가이다. 탈레반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조짐은 진작부터 있었다. 2001년 공중 분해됐던 탈레반은 각자의 고향으로 가거나 파키스탄 탈레반 지역으로 옮겨 철저하게 은둔 생활을 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미군의 드론 공격과 오폭 등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생겨나자 아프간 전역에서 서서히 반미 감정이 커졌다. 이 반미 감정을 양분 삼아 탈레반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탈레반은 미군과 연합군을 수시로 공격했다. 그때까지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을 부르는 이름은 ‘아프간 급진무장단체’였고, 두 정부가 섬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문제는 미군의 막강한 군사적 화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세가 너무도 빠르게 확장돼 나갔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전쟁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하는 절실함으로 탈레반에 대해 군사적 해결 방법이 아닌 정치적 해결 방법을 택했다. 2010년부터 물밑에서 탈레반과 미국의 직접 협상이 추진됐다.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미국이 직접 만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협상이 순조롭지 못했다. 탈레반 측 대표라고 나타난 사람에게 미국이 기껏 공들여 협상했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다. 중간에 탈레반 인사를 소개한다며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 측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탈레반 온건파와 협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국외로 도피한 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 카불 AP=연합뉴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미국은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을 만났을까’이다. 당시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는 정말 심했다. 아프간 초대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의 형제들은 부패의 상징일 만큼 아프간 정부 인사들의 부정부패가 대단했다. 전 세계가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마음으로 보낸 국가 재건 원조금은 대부분 아프간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아프간 국민의 분노가 커지며 “아프간 정부는 도둑들”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미국으로서는 민심이 떠난 아프간 정부를 이 협상에 끼워넣기가 난처했다. 탈레반도 부패한 아프간 카르자이 정부를 협상에서 배제하는 것을 첫 번째 협상 조건으로 내세웠다. 미국과 탈레반의 단독 협상이 아니면 탈레반은 절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탈레반은 아프간 영토가 아닌 제3국에서 미국과 직접 협상을 원했다. 그 결과 미국과 탈레반은 아프간 영토가 아닌 프랑스, 노르웨이 등지에서 수개월간 비밀협상을 이어갔다. 아프간 정부 빠진 평화협상 그때 탈레반과 미국 사이에서 협상을 도와주겠다고 나타난 나라가 카타르다. 카타르가 협상 장소를 제공하며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을 주선했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6월 18일, 미국과 탈레반은 카타르 도하에 ‘탈레반 정치사무소’를 개설했다. 탈레반은 정치사무소의 명패를 ‘이슬라믹 에미리트 오브 아프가니스탄(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으로 걸었다. 이는 과거 탈레반 정부가 아프간전쟁 직전까지 사용하던 국호다. 하얀 탈레반 정부 국기까지 게양하니 마치 정식 대사관처럼 보였다. 그리고 정치사무소를 개설한 지 이틀 후인 6월 20일 드디어 미국과 탈레반은 정식 평화협상을 열었다. 3년간 미국이 공들여 탈레반을 테이블 앞에 앉힌 것이다. 미국은 이 협상에서 먼저 ‘알카에다와의 관계 단절’을 탈레반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탈레반 측은 거절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아프가니스탄 폭력 사태 종식’이나 ‘여성·소수자 인권보호’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수감된 탈레반 인사 석방과 미국의 완전 철군 등을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지난해 2월 29일, 탈레반과 미국은 평화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때로는 UAE로 협상 테이블을 옮기는 등 10차에 걸친 피 말리는 공식 협상이 마침내 빛을 본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시도한 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는 아프간전쟁에서 완전히 손 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숫자의 원조금을 들이부었건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을 궁지로 몰았다. 이 평화협상에는 아프간 정부가 배제됐다. 처음엔 아프간 정부도 반발하며 미국에 항의하며 각종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대세가 이미 탈레반에 기울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다급해진 아프간 정부도 탈레반과 평화협상 테이블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평화협상 타결을 위한 조건으로 내세웠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 7월 “카불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아프간에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포위한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미군의 치누크 수송헬기가 카불에 남아 있는 미국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대사관 건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 카불 AP=연합뉴스 안갯속에 빠진 아프간 정세 지난 8월 15일, 카불은 탈레반에 순식간에 함락됐다.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 조건이던 가니 대통령의 사퇴도 간단히 해결됐다. 가니 대통령은 카불 함락 직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모두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프간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톨로 TV의 기자인 아하마드 쉬르는 “탈레반도 이렇게 쉽게 카불을 함락할지 몰랐을 것이다. 아프간 정부는 진짜 정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 무정부 상태로 산 국민”이라며 분개했다. 탈레반은 이제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새로운 주자가 됐다. 8월 31일이라는 철군 시한을 넘기면 이들은 내각을 준비하고 새로운 법정을 개설할 것이다. 탈레반은 철저하게 샤리아법(이슬람 원리주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세속적인 법정을 모두 철회하고 샤리아 법정을 세움으로써 이슬람 원리주의를 아프간 전역에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서구 사회는 아프간이 다시 20년 전으로 회귀할까 염려한다. 탈레반 지도부는 여성인권도 보장하고 폭력 없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연달아내고 있다. 아프간 정세는 안갯속이다. 탈레반에 맞서는 북부동맹의 전사들이 아프간 북구를 중심으로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ISIS(이슬람국가) 전사들도 4000여명이 아프간에 남아 있다. 이들은 탈레반과 적대적 관계이다. 즉 미국이 20년간 아프간에 쏟아부은 그 많은 최첨단 무기는 탈레반뿐 아니라 다른 무장 전사 손에 들어갔다. 이 무기들이 고갈될 때까지 서로 전투를 이어갈 수도 있다. 마치 1990년 소련이 아프간을 완전히 철군한 뒤 소련군이 버려두고 간 무기로 각종 무장단체가 난립해 최악의 내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카불대학교의 정치학과 나사르 샤리프 교수는 “서구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을 아직 잘 모른다. 그들(미국과 서구사회)이 내세운 아프간의 계획은 그저 페이퍼상의 계획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아프간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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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아프간 탈레반 “TV 출연 모든 여성, 얼굴 가려라”
- 2022. 05. 22 13:56 문화/생활
- 탈레반 통치 이전인 지난 2017년, 자유롭게 방송하고 있는 여성 방송인의 모습. 로이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 중인 탈레반이 “TV 여성 방송인에게 방송 중에는 얼굴을 가리라”고 명령했다. CNN은 아프가니스탄의 대표 매체 ‘TOLOnews’ 직원의 말을 빌어 탈레반의 도덕규범을 결정하는 미덕증진·악행방지부가 새로운 규칙으로 오는 21일(현지시간)부터는 TV에 출연하는 모든 여성 진행자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카불 현지 방송인 카테라(27)는 CNN을 통해 “그들은 여성들이 화면에서 제거되기를 원한다. 교육받은 여성을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지난 3월 여자 고등학교를 폐쇄했다. 익명의 또 다른 방송인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변화는 여성들을 업계에서 밀어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TV에서 발표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입을 가리고 뉴스를 어떻게 읽나? 나는 일을 해야 한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한다”며 호소했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았다. 당초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국제 사회에 선언했지만 이후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아프간을 장악한 뒤 여성의 인권 보장을 통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달 초 탈레반은 아프간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얼굴을 가려야 하며, 집 밖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해당 여성의 아버지나 친인척이 처벌을 받는 규칙이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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