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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21 건 검색)

시인·여성운동가·출판문화운동가···사후 30여년간 더 넓어진 고정희의 세계
2023. 03. 05 17:04 문화
... e메일 인터뷰에서 연구 결과를 두고 “차세대 신진 연구자들이 ‘시인’ 고정희에게 갇히지 않고 여성운동가이자 출판문화운동의 네트워킹 행위자로서 고정희를 호명하면서 고정희 연구를 국문학을 넘어...
페미니즘리부트고정희여성해방출사표
탈레반 재집권 후 처음으로 아프간 여성운동가가 피살됐다[플랫]
2021. 11. 08 16:44 국제
...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해온 20대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여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AFP통신은 7일 카리 사예드 호스티 탈레반 내무부 대변인이 전날 성명을 통해...
플랫여성인권탈레반 여성인권운동가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 여성운동가 첫 피살
2021. 11. 07 21:27 국제
... 신원 미상 3명도 함께 숨져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해온 20대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여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AFP통신은 7일 카리 사예드 호스티 탈레반 내무부...
아프가니스탄탈레반미국, 아프간 완전 철수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별세
2020. 10. 04 17:08 사회
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사회학자인 이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전 교수는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47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수료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스포츠경향(총 2 건 검색)

OBS, 독립-여성운동가 박현숙 선생 일대기 ‘그곳에 박현숙이 있었다’ 30일 방송
2023. 10. 28 16:11 연예
OBS 특집다큐 ‘그곳에 박현숙이 있었다’ 한 장면. 사진 OBS OBS의 특집 다큐 ‘그곳에 박현숙이 있었다’가 30일 오후 방송된다. OBS는 숭의여자대학교 개교 120주년을 맞아 청해(靑海) 박현숙의 일대기를 다룬 특집 다큐멘터리를 오는 30일 오후 9시에 방송한다. 박현숙은 꽃다운 나이에 3.1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독립을 광신하는 여자’로 복역하는 등 불행하고 어두웠던 나라와 겨레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인물이다. 또한 겹치는 수난과 역경 속에도 묵묵히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독립운동가로, 광복 이후에는 여성교육의 선두주자로,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는 정치가로 활동했다. OBS는 팔십 한평생 감당하기 힘든 풍파 속에도 돈독한 믿음과 철저한 애국사상으로 나라와 민족에 헌신했고, 자신의 모든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칭했던 박현숙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동안 다른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진과 자료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박현숙 선생의 일대기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OBS 특집 다큐 ‘그곳에 박현숙이 있었다’는 오는 30일 오후 9시 방송된다.
박준금은 여성운동가, 아내 해방의 날 선언 이유는?
2011. 05. 30 09:30 연예
배우 박준금이 남편의 출장을 아내 해방의 날로 선언했다. SBS플러스와 SBS E!TV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국내 최초 ‘부부공감 리얼 시트콤’ 에서 30년차 권태기 부부의 까칠 아내 역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준금이 극 중 남편 이병준의 갑작스러운 출장 소식에 한껏 들뜬 모습을 선보였다. 모처럼만에 남편 없는 집에 홀로 남게 된 박준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저녁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친목을 도모 할 수도 있어 남편의 출장이 마치 해방의 날처럼 기쁘다는 설정으로 중년 아내들의 공감을 살 것으로 보인다. 극 중 남편인 이병준은 까칠 아내를 둔 덕에 출장 가방도 직접 싸고 출장 당일에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으로 또 한번 굴욕적인 중년 남편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줄 예정이다. 출장 가서도 전화 한통 없는 아내의 무심함에 “밀린 이불 빨래를 하거나 김치를 담그는 게 분명하다”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이병준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박준금과 이병준의 폭소만발 코믹 연기가 회가 거듭 될수록 흥미를 더해 가고 있다. 결혼 30년차 권태기 부부의 면모를 한껏 과시한 까칠 아내 박준금과 찌질 남편 이병준은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촬영 내내 끊임없는 애드리브를 쏟아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제작진은 “매번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컷’소리가 끝나자마자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기 일쑤”라고 전하기도 했다. 부부 공감 리얼 시트콤 ‘남편의 출장’ 편은 오는 30일 밤 9시 SBS플러스에서 만날 수 있다.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제1세대 여성운동가 김정례 “제 생애 마지막 꿈은 남북 평화통일입니다”
2012. 12. 05 19:59 화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 신장은 여전히 여성계의 최대 화두다. 그만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에서 여성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1940년대부터 여성 계몽과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있다. 최근 그 공로를 인정받으며 비추미여성대상 대상인 ‘해리상’을 수상한 김정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문을 만났다. 비추미여성대상 해리상 수상 지난 10월 31일, 제12회 비추미여성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비추미여성대상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주관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권위 있는 여성상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과 여성 문화 창달에 기여한 인사를 선발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여기서 ‘비추미’는 해, 달, 별의 통칭으로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비추는 사람을 의미한다. 수상자는 국내외 주요 기관과 전문 인사들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아 별도의 심사위원회가 2개월에 걸쳐 현장 실사 등을 통해 결정된다. 올해 수상자는 해리상에 김정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문, 달리상에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의사, 별리상에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특별상에 서혜경 경희대 음악대학 교수이며, 각 부문별로 상금 3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됐다. 해리상을 수상한 김정례(85)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문은 이날 시상식에서 “이 상을 받게 돼서 영광스럽다”라면서 “상금은 평화통일을 위한 시금석으로 사용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해리상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익 신장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김 고문은 제11대·12대 국회의원, 제20대 보건사회부 장관, 국무총리실 직속 여성정책심의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 차별 조항 개선에 노력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시상식이 끝난 직후인 11월 초,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김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 석류나무와 감나무를 심고, 다양한 종류의 장이 담긴 장독대를 손수 관리하며 여성계의 대모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김 고문. 그의 명륜동 집은 여성계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아지트 같은 장소다. 김 고문은 자택을 방문한 기자에게 “비 오는 날에 찾아오느라 고생했다”라고 반갑게 웃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비추미여성대상 해리상 수상 축하 인사를 전하자 김 고문은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큰 상을 받은 것 같다”라면서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되라고 준 것 같아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라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이어가던 김 고문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때론 진지하게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녹록지 않았던 삶의 여정을 전했다. 법적으로 여성 차별 조항 개선에 앞장서 김 고문은 전라남도 담양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집은 가난했지만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성격 역시 매사에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농촌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가난해서 한평생 고생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제가 스무 살 초반이었으니까 광복 직후였어요. 제 눈에는 농촌 여성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마다 여성들을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죠. 무지했던 여성들이 한글을 익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고 보람을 느꼈어요. 그 일이 제가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어요.” 그는 그 후로 1년 동안 농촌 여성들의 계몽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또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해서 경찰서에 드나드는 일도 잦았다. 집에서 아버지는 “여자가 밖으로만 나돈다”라며 노발대발했고, 결국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 고문을 둘러싸고 “담양에 여장군이 한 명 나왔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버지의 화는 누그러졌고, 담양군 관계자들은 김 고문을 두고 “앞으로 담양을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가 될것”이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실제로 얼마 뒤 조선민족청년단(청년들의 수련을 위해 결성된 청년운동단체)에서 ‘교육을 받으러 왔으면 좋겠다’라는 제의를 받았다. “조선민족청년단의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어요. 국가지상, 민족지상, 비정치, 비군사, 비종교였거든요. 좌익과 우익을 따지지 않고, 서로 비판도 하지 않았죠. 이 나라 청년은 조국을 재건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지도자로 성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훈련이었어요. 당시 3백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저희가 여성 1기였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담양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민족청년단 담양 지부를 결성하고, 담양군단부 여성 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서울중앙단부 여성부 지방조직책을 맡았으나 1년 뒤 여자 청년단이 통합되면서 그 진행 과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김 고문은 여자청년운동의 기틀을 확고히 했고, 국립여학도 중앙훈련소를 신설해 여군 창설의 기반도 다졌다. 또 1960년에는 국내 최초의 여성 주간지를 발행하는 여성주보사를 창설하고, 1969년에는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창립해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해 주력했다. “처음에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창립했을 때의 취지는 여성의 참정권 행사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었어요.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계몽운동에 주안점을 뒀죠. 지금도 정치는 우리의 생활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여전히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국회의원을 뽑도록 계몽하고 지도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 김 고문은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 배출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회 곳곳에서 많이 노력하고 있다”라며 “그동안 장관 4명, 국회의원 6명, 대학총장 3명, 한국여성개발원장(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명 등을 배출했다”라고 밝혔다. 김 고문은 민정당 소속으로 제11대·12대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및 제20대 보건사회부 장관도 역임했다. 또 국무총리실 직속의 여성정책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1991년에는 한국여성정치연맹을 창립하고 1, 2대 총재를 지냈다. 현재는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고문, 한국여성정치연맹 명예총재로 활동 중이다. 1 (사)한국여성유권자연맹 주최 남녀모두행복한세상만들기 행사. 2 취로사업장에 나온 할머니를 위로하는 김정례 여사. 3 1983년 4월 한국여성개발원 현판식 하는 날. 4 김정례 선거대책본부에 격려차 방문한 윤보선 전 대통령. 김 고문의 이 같은 활발한 정치활동은 여성이 정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국정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여성의 올바른 참정권 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통해 여성 정치 지도자를 발굴·육성하며 여성의 정치의식을 향상시키도 했다. 김 고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치면서 법적, 제도적 분야부터 여성 차별 조항을 고쳐나가는 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우선 1980년 헌법시안에 ‘여성평등조항’을 삽입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부모평등·부부평등·남녀평등 이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가족법’ 개정 운동에 선봉으로 활동했다. 특히 보건사회부 장관 시절, 남녀차별 조항 개선, 근로환경 개선,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재취업 특별법’도 추진하는 등 여성의 사회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1983년에는 여성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한국여성개발원을 설립하고 청사를 마련해 오늘날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제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여성운동가의 모습이 아닌, 아내와 엄마로서 김정례 여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20대 초반부터 여성운동에 빠져 살아왔던 김 고문은 아예 결혼 생각이 없었다. 워낙 외부활동이 많은 터라 결혼한 뒤 가정에 소홀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고향 사람이었던 남편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김 고문에게 반해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라며 손을 내밀었다. “남편은 결혼 생각이 없던 저를 10년 동안 말없이 지켜줬어요. 그래서 결혼했는데, 하고 보니 잘한 것 같아요(웃음). 가정을 갖고 엄마가 돼보니, 여성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남편은 결혼 전부터 일본에서 사업을 해왔다. 때문에 결혼 뒤에도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한평생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김 고문과 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남편 故 윤재수씨. 일과 가정밖에 모르던 남편은 19년 전, 지병이 악화되면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지금의 명륜동 자택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현재 47세인 아들은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 중이다. 김 고문은 어떤 공식석상이든 한복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20대 초반에는 활동성 때문에 바지를 자주 입었는데, 약혼식 때 우연히 한복을 입어본 뒤 한복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뒤로는 거의 한복을 입는 편이다. “남자든 여자든 한복을 입으면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한국적인 정서도 느껴지고요. 그래서 공식석상에서는 무조건 한복을 입으려고 노력합니다. 여성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즐겨 입어서 한국의 미를 알리는 데 앞장섰으면 좋겠어요.” 김 고문을 포함해 국내외 여성계 인사들이 오랫동안 여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온 덕분에 지금은 여성의 정치 참여도와 의식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김 고문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제가 여성운동을 시작했던 건 시대적인 분위기도 강하게 작용했어요. 오랜 시간 여성의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을 높이고, 모든 분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계몽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다른 여성단체들도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 고문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여성의 역할이 지식이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걸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남녀가 함께 사회 참여에 앞장서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합니다. 여성이 주최자가 된 만큼 사회와 국가 발전은 물론 경제 발전에도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 고문이 생각하는 여성의 남다른 경쟁력은 바로 ‘모성애’다.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여성 특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정서는 남성에게 없는 여성만이 가진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의 이런 장점이 인류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여성의 높아진 의식수준에 발맞춰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과거에는 남성들에게 가려져 기를 못 펴고 여성운동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가진 자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또 여성의 지식수준도 매우 높아져 충분히 자질을 갖췄어요. 때문에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야 하고, 성 차별 없이 사회의 일꾼을 선발해야 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올해 85세인 김 고문의 꿈은 ‘남북 평화통일’이다. 젊었을 때는 살아 있는 동안에 통일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김 고문이 직접 ‘통일’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한다. “비추미여성대상을 받고 제가 달라진 점이 있어요. 해리상이 저에게 세상에 도움이 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비추미여성대상의 상금 3천만원 역시 저의 염원인 통일운동을 하는 데 가치 있게 쓰고 싶어요. 제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원상희 ■사진 제공 / 김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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