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41 건 검색)
- 개혁 성향 이란 대통령, 10여년 만에 여성 장관 지명
- 2024. 08. 12 16:24국제
- ...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10여년 만에 첫 여성 장관을 지명했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후 두 번째 여성 장관이 된다. 이란에서 여성이 장관으로 지명된 건 12년 만이다. 이슬람혁명...
- 해리스, 검사장·주 법무장관 거쳐 정계로…‘첫 흑인 여성 대통령’ 도전
- 2024. 07. 22 20:50국제
- ... 지방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뒤 2004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에 올랐고, 2011년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으로 선출되며 승승장구했다. 2016년엔...
- 해리스대통령바이든미국대선바이든사퇴트럼프 2기
- 장관급 성평등 지수 ‘20점’…여전히 고위직엔 여성이 없다 [플랫]
- 2024. 06. 07 14:57사회
- ... 3.4점이 감소한 수치다. 공공·민간 할 것 없이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고위직 여성의 비중이 작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장관 비율이 20점으로 가장 낮았다. 장관 비율은 2021년 38.5점에서 18.5점이나...
- 플랫
- [시스루피플]“고통 속 여성들 외면할 수 없다”···프랑스 임신 중지 ‘비범죄화’ 이끈 베이유 전 장관
- 2024. 03. 06 16:59국제
- ... 국회의사당 연단에 올랐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뒤로한 채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보건부 장관으로서, 여성으로서, 국회 밖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선출직 공무원들께 임신 중지 관련법 변화를 제안하기...
- 시스루피플
스포츠경향(총 18 건 검색)
- 홍승모 인천성모병원장, 여성가족부 장관상 수상
- 2020. 09. 15 15:27 생활
- 홍승모 몬시뇰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장 겸 인천북부해바라기센터장이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홍승모 몬시뇰 인천성모병원장은 여성·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인 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수사·법률·의료 등의 적극적인 지원 활동과 피해자 인권 보호 활동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장 홍승모 미카엘 몬시뇰또한 ▲성폭력 예방 캠페인 및 예방 교육 ▲피해자 및 가족들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원 ▲피해자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유관기관 간담회 등 실시 ▲유관기관 연계 봉사활동 ▲직무능력향상교육 ▲상담 사례 회의 및 슈퍼비전 ▲종사자 소진방지 워크숍 등을 실시했다. 홍승모 몬시뇰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장(겸 인천북부해바라기센터장)은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날로 심각해지고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며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춘 지원과 성폭력 예방 캠페인 등을 통해 밝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일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2013년 5월 개소한 인천북부해바라기센터는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여성가족부, 인천광역시, 인천지방경찰청 간 4자 민관 협약 기관으로,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를 위한 상담, 의료, 수사, 법률자문을 지원하고 있다. 경찰관(여경), 상담원, 전담간호사가 365일 24시간 상주하며 인천성모병원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의료진과 연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5공 유일 여성 장관’ 김정례 전 보사부 장관 별세
- 2020. 02. 18 18:57 생활
- 5공화국 당시 유일한 여성 장관이었던 김정례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연합뉴스.5공화국 당시 유일한 여성 장관이었던 김정례 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오전 6시55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27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김 전 장관은 여성주보 사장과 제1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지냈다. 1980년 입법회의 의원, 제11·12대 국회의원을 거쳐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보사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유일한 여성 장관이었다. 1990년 한국여성정치연맹 초대 총재를 지냈고 1998∼2000년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2014년 ‘프레시안’ 기고문(통 큰 ‘동네 누님’ 金正禮 여사 [남재희 칼럼] 國卒로서 여성운동의 代母·長官까지)에서 김 전 장관이 여야를 아우르는 넓은 인간관계로, 1980년대 정계에서 ‘통 큰 동네 누님’으로 통했다고 전했다. 2005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로부터 ‘제6회 김활란 여성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청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아들 윤민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 유디치과, 2018 좋은경영대상 여성가족부 장관상 수상
- 2018. 12. 05 15:48 생활
- 유디치과가 ‘2018 상호 존중하는 좋은경영대상’ 시상식에서 여성 일자리 창출과 여성 친화적 조직문화 조성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진세식 유디치과 협회장(왼쪽)이 2018 좋은경영대상 시상식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한 후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유디치과는 전체 직원의 84%를 여성으로 채용하는 등 여성일자리 창출에 앞장서 왔다. 또한 정기적인 성희롱 예방교육과 성희롱·성차별 고충처리위원회를 운영해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기혼자의 경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비롯해 출산장려금 지급, 수유실을 설치 하는 등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해 왔다. 이런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진세식 유디치과 협회장은 “수평과 존중을 바탕으로 여성친화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다양한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며 “이러한 제도 시행은 합리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져 국민의 구강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싱글대디’ 김승현, 오늘(10일) 여성가족부 장관 만난다…왜?
- 2018. 11. 10 09:54 연예
- 배우 김승현을 비롯한 싱글대디 6명, 자녀 5명이 10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한 키즈카페에서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을 만난다. KBS2 화면 캡처여성가족부는 싱글대디가 정부 정책 울타리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도록 돕고 모든 아동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차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앞서 장관이 직접 정책 대상자들을 만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간담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이혼 및 사별 등에 의한 한부모가구는 153만3000가구이며, 이중 ‘부(父)+미혼자녀’ 가구는 28만1000가구로 18.3%를 차지했다. 특히 부자(父子) 가족은 모자(母子) 가족보다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고 양육·교육 관련 정보가 부족해 아버지 역할이나 자녀와의 관계 형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싱글대디들을 만나 홀로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듣고 정책 차원에서 도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승현은 지난 2003년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3살 짜리 딸이 있는 싱글대디임을 고백했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 여성 정치인 ‘장관 성적표’ 어땠나(2021. 01. 04 15:48)
- 2021. 01. 04 15:48 정치
- ㆍ문재인 정부, 주요부서에 기용… 추미애·박영선·유은혜·김현미·진선미 등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의 화제는 ‘센 언니’다. 이효리·박세리 등 ‘센 언니’들이 <환불원정대>, <노는 언니>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김기남 기자 최근 정치 뉴스에서도 ‘센 언니’ 장관들이 줄곧 화제의 대상이 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추·윤 갈등으로 2020년 후반기 내내 뉴스의 중심인물이 됐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부동산 정책을 놓고 2020년 후반기에 화제가 됐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올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출마가 거론되면서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도 문재인 정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 현장이 늘 국민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지만 나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센 언니’ 장관에게 연말 연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추 장관은 사퇴 의사를 밝혔고,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박범계 의원이 지난해 12월 30일 내정됐다. 박범계 의원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추 장관은 1년간의 장관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부처에서는 일단 ‘센 언니’들 환영 김현미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28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국토부 초대 장관으로 취임 후 3년 6개월 만에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박영선 장관은 올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출마를 앞두고 있다. 조만간 있을 3차 개각에서 차기 장관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 장관의 경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옮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소문에 그쳤다. 차기 비서실장에는 유영민 전 과기부 장관이 임명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개각에서는 또 다른 ‘센 언니’ 장관이 내정됐다. 한정애 의원이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른 정부와는 달리, 여성 정치인에게도 비중이 큰 장관직이 배정됐다. 법무부 장관과 국토부·교육부 등 알짜배기 장관직을 맡긴 것이다. 이들에 대한 장관 성적표는 어떠할까. 기대치는 높았다. 이미 여의도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민주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맡아온 경험 때문이다. 특히 이들 장관은 정치 초년병 시절에 대부분 대변인직을 맡으면서 현안에 대한 파악 능력과 대응 능력이 체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센 언니’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부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하는가 하면, 잘못된 질문에 대해서는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여의도가 아닌 정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가장 큰 장점은 조직 장악력이다. 다선 의원의 경험 덕분에 공무원 조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측 한 인사인 A씨는 “문재인 청와대에서 이들 정치인 출신 여성 장관에게 일을 맡기면 청와대의 뜻대로 부서 조직을 잘 이끌어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서 “무엇보다 이들 장관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청와대가 요구하는 개혁 임무를 잘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인사인 B씨는 “고위 관료가 어떤 사안을 놓고 다른 부처의 미협조나 예산문제, 국회에서 문제 등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장관은 고위관료가 적당히 알아서 처리하길 원한다”면서 “하지만 이들 정치인 출신 여성 장관은 바로 다른 부처 장관이나 의원들을 직접 만나 해결에 나선다”고 말했다. B씨는 “때문에 부서 내에서는 여성 정치인 장관에 대한 평가가 외부에서의 평가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전 장관(왼쪽)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20년 12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정은 좋았지만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김두수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치인 출신 여성 장관이 여성 비율을 채우기 위해 배려를 받은 것이 아니라 굵직굵직한 부처의 역할을 맡아 나름대로 훌륭한 성과를 남겼다”면서 “하지만 너무 센 개혁 과제에 부딪히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추미애·김현미 장관 비판론에 몰려 1차 개각과 2차 개각 대상에 포함된 김현미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은 평가가 박하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장관이 모두 떠안게 됐다. 추 장관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였으나, 행정법원이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역풍에 휩싸였다. A씨는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센 언니’가 이른바 ‘센 부서’에 갔을 때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에서는 추 장관이 검찰개혁이라는 힘든 과제를 떠안아야 했고, 국토부에서는 김 전 장관이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했다. A씨는 “검찰개혁이나 부동산 가격 안정은 해당 부서의 장악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 “부처 안에서 반대가 있을 경우 이들 여성 정치인이 돌파는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평가를 보장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B씨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경우 종합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하는데 국토부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은 2019년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기 싸움 끝에 물러난 뒤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때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과 맞서서 검찰개혁을 밀어붙여야 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때문에 장관직이 ‘독이 든 성배’로 비유됐다. 추 장관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추다르크’라고 불릴 만큼 뚝심이 있는 정치인이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표로, 대선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여권 핵심인사인 B씨는 “검찰개혁은 정말 어려운 과제였고,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면서 “국민과 검찰의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추·윤 갈등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B씨는 “추 장관이 좀 더 세련되게 대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추 장관으로서는 검찰과 날선 감정 대립만 하다가 오히려 검찰이 조직적으로 더 거세게 반발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게다가 윤석열 총장의 위상을 역으로 높여주는 결과만 낳았다. 김두수 정치평론가는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처리에서) 검찰 권력이 얼마만큼 센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켜줬다”면서 “추 장관이 아니면 저렇게 밀어붙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 추 장관과 김 전 장관은 늘 공격 대상이 됐다. 해당 상임위인 법사위와 국토부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추 장관의 “소설을 쓰시네”라는 발언도 이 과정에서 터져나왔다. 국민의힘 C의원은 “여성 정치인이든 남성 정치인이든 장관이 되어 국무위원이 되면 야당 정치인의 비판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하지만 자신들이 의원일 때는 목소리를 높여놓고 장관일 때도 목소리를 높인다”고 말했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국회에서 ‘내로남불’식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20년 12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영선 장관이나 유은혜 장관은 장관직 수행에 대해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장관은 바로 앞의 전직 장관이 비교적 빠른 시기에 물러난 후에 조직을 맡아 무난하게 일을 처리해왔다는 점에서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 장관은 교육부의 업무를 관장했던 국회 교육문화위(현재는 교육위와 문화위로 분리)에서 줄곧 활동했다. 게다가 금배지를 달기 전에도 당 부대변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박 장관은 여러 상임위에서 활약했지만, 특히 법사위원장으로 인상 깊은 활약을 남겼다. 당시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으로서 장관들을 쩔쩔매게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박 장관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가게 되면서 중기부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권 내 인사인 A씨는 “정치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던 ‘센 언니’들이 적합한 부처에 가게 되면 그 부처에서 일단 환영을 받게 된다”면서 “그동안 다른 부처나 입법부에서 치여 설움을 받다가 다선 경력의 여성 정치인이 오면서 부처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 있게 처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영선·유은혜 장관 무난한 평가 문재인 정부는 여성 장관 30%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30%라는 숫자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비중 있는 자리에도 여성을 배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현재까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인정받은 여성 정치인들 역시 비중 있는 자리에서 활약했다. 추미애·박영선·유은혜·김현미 전 의원 외에도 김영주 의원이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기도 했고, 진선미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았다. 국회에서 이들 장관의 의원 시절 보좌진으로 일했던 D씨는 “다선 정치인이었던 만큼 현안을 파악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뛰어나며, 곧바로 자기의 것으로 체화한다”고 말했다. D씨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여성 정치인과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 “부처의 특성이 다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통을 잘한 여성 정치인들이 장관직 수행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C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중량감 있는 여성 정치인을 중량감 있는 자리에 배치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남성 정치인과 다르게 섬세함이나 부드러운 정치로 야당과 협치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국회에서 목소리만 높인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30% 여성 장관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 못지않게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발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주당 E의원은 “재선이나 3선 정도의 의정활동을 거치게 되면 자신의 정치적 주관이 뚜렷하고 기존 남성 중심의 관료 사회를 뛰어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면서 “하지만 장관을 맡길 경우 그 부처에 맞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그 부처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집]“한국도 여성 국방장관 나와야”(2016. 10. 18 14:15)
- 2016. 10. 18 14:15 정치
- ㆍ김종대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ㆍ여군 비율 30%까지 확대 공론화 추진 1958년생 여성, 산부인과 전문의, 독일 니더작센 주의원, 메르켈 행정부 1기(2005~2009) 가족여성부 장관·3기 노동사회부(2009~2013) 장관. 2013년 12월 독일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의 이력이다. 메르켈 총리가 폰 데어 라이엔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 폰 데어 라이엔은 ‘저출산 해결’이 전문분야였다. 본인이 7남매의 어머니로, 노동부 장관 시절 남성 2개월 육아휴직 제도와 육아휴직 여성에게 임금의 67%를 보조하는 법안을 이끌어냈다. 반면 군 경험은 전무했다. 메르켈 총리는 “노동부 장관 시절 보인 중재·교섭 능력이 유용하게 발휘될 것”이라며 그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독일 연방군을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계적으로 여성 국방장관 드물지 않아”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이 지휘하는 독일군은 유럽 안보의 중심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병력상한선 18만5000명을 해제했다. 1990년 통일 이후 처음으로 병력감축에서 증대로 기조를 바꿨다.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것이었다.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지난달 유럽연합(EU) 국방장관 회의에서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별도로 유럽의 독자적 군 지휘체계를 창설하자고 주장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알바니아(미미 코델리), 네덜란드(헤니스 플라셰르트), 노르웨이(에릭센 쇠레이데), 이탈리아(로베르타 피노티)의 국방장관도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 국방장관은 군의 문민통제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여성 국방장관을 꿈꿀 수 있어야 미래가 열립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말이다. 김 의원은 여성 국방장관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군의 비율을 30%까지 늘리는 것을 20대 국회에서 공론화히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여성 국방장관을 “한국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상상”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여성 국방장관은 드물지 않다. 유럽 밖에서도 호주,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국방수장은 모두 여성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성 국방장관을 상상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 ‘여성’과 ‘민간인’을 넘어서야 한다.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국방장관은 전부 군인 출신이다. 분단국가의 특수성 때문일까. 김 의원은 “국방부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이 국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방부가 군을 대리해 국민을 통제하는 기관으로 왜곡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며 “시민을 대리해 군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민간인이 장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는 행정·지원·정책부서이지 전투조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군인 출신 장관이 국방부를 맡아야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고 안보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지만 전문성이 필요한 곳은 합동참모본부입니다. 국방부는 군인 출신의 직업적 편견을 완화하고 보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방부를 맡아야 군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시민의 상식으로 군을 통제하는 것이 국방부의 전문성이다. 병영 내 가혹행위, 방위산업 비리, 군인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등 군이 시민의 상식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민적 전문성이 있는 장관이 아니라 군의 조직논리에 체화된 사람이 계속 국방부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설명이다. 여군 자체의 증원도 국방개혁의 핵심으로 꼽았다. 김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2025년까지 여군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2023년부터 현역 모집 인원보다 입영 대상자 수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다. 신규 첨단무기를 도입하고 사병을 감축하고 간부장교를 증원하는 등 군 조직을 정예화·슬림화된 형태로 21만8920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의원실 자체 분석에 따르면 각 군의 병력 요청 현황은 국방부 계획보다 1만200명(2.4%) 웃돈다. 새로운 군 조직의 핵심이 될 간부 장교 인재를 선발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대안으로 여군 확충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지난 6월 기준 여군은 총 1만263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간부의 5.5%로, 장교(준사관 이상)는 7.4%이다. 여성을 우수한 인적자원으로 보고 군 조직에 흡수시키자는 담론이 여성에게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는 2015년 106집에 실린 ‘여성군인의 우수인력 담론’에서 “군은 필요에 따라 여성을 (군대 혹은 남성과) 분리시키기도 하고 통합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여군에게 성별을 초월한 작전·지휘능력·강인함 등과 동시에 여성의 꼼꼼한 능력이나 보살핌 등 ‘여성적 역할’도 함께 요구한다. ‘친누나 같은 소대장’의 역할을 요구받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여군은 능력 있는 우수한 군인으로 소환돼 젠더화된 여성군인으로 조율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소속 여성 국방장관인 미미 코델리(알바니아, 왼쪽부터), 예니네 헤니스-플라샤르트(네덜란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독일), 이네 에릭센 쇠레에이데(노르웨이), 로베르타 피노티(이탈리아)가 9월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전투조직이 군사력의 전부가 아니다” 그 결과 여군이 병영문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혹한 병영문화의 희생이 되기 쉽다. 2012년 여성정책연구원의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군의 11.9%가 성희롱을 경험했고, 41.3%가 주변 여군의 성희롱을 인지했다. 반면 2014년 10월 국방부가 전체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 특별신고’를 받은 결과 단 3건의 신고만 접수됐다. 올 상반기 성범죄 가해자로 군사법원에서 입건된 경우는 29명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 내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여군의 숫자가 오히려 너무 적기 때문이다. 여군이 군 전체 조직의 30%가 돼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고 조직도 바뀐다”고 말했다. 여성 징병제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여성 징병제를 포함한 징병제 부활 논의가 일고 있다. 테러·러시아의 위협 등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조치다. 난민 문제 등으로 극우의 입김이 세지고 사회불안 분위기가 조성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김엘리 교수에 따르면 모병 형식의 한국 여군은 그마저도 폐지될 뻔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국회·군 수뇌부가 나서서 ‘여군 무용론’을 내세웠는데, 남성 병력자원이 충분했고 사회적으로도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더 중시됐기 때문이었다. 김 의원은 “북유럽에서 징병은 일종의 상호부조적 안보공동체로서 기능한다. 한 마을 젊은이들이 다 함께 입대해 그 마을을 지킨다. 생활공동체와 군복무 공동체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징병제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오히려 생활공동체로부터 젊은 남성들을 떨어뜨려 놓고 고도로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여성까지 징집대상이 되면 공동체 파괴현상이 더 가속화돼 우리 실정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급격한 병력자원 감축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사병 처우를 개선시키고 모병제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 차원의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전투조직이 군사력의 전부가 아니다. 전투만 하더라도 지휘·보급이 필요하지만 군을 지원하는 행정·정책부서와 군무원 등의 조직이 합리적으로 잘 돌아가야 튼튼한 국방이나 군사력이 가능하다”며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군인이 아닌 국방 관련 민간인 연구자들의 성비 현황을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 적다는 것은 폐쇄적 조직문화의 결과다. 군을 둘러싼, 군과 함께 한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모든 기관이 합리적 조직문화와 운영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의 비율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집
- [유인경이 만난 사람]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유리천장은 한 번 뚫려도 깨지지 않는 만년설”(2014. 01. 14 15:01)
- 2014. 01. 14 15:01 정치
- 한때 폐지론이 일기도 했던 여성가족부의 위상이 달라졌다.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1조원이 안 되는 5000억원의 예산과 적은 인원을 가진 부처지만 예산도 7% 올랐고 여성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각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3명이 정원인 여성가족부 사무관 모집에 13명이 몰리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의 부활에는 조윤선 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서 조윤선 장관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두 번째로 일 잘한 장관으로 뽑혔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깊어 나타난 후광효과일까, 아니면 정말 이 정부의 가장 잘한 인사 중 하나일까. 조윤선 장관을 만나 그의 ‘장관 도전기 1년’을 들어봤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된 지 11개월, 거의 1년을 맞은 소회는 어떤가. “변호사, 은행 부행장, 국회의원 등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공직생활은 처음이다. 여성정책 전문가도 아니어서 처음엔 두려움도 컸는데 막상 맡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곳이다. 여성가족부의 원래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 즉 ‘양성평등가족부’다. 흔히 여성 권익을 위한 일만 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독신 남성 빼고는 전 국민이 모두 우리의 정책 대상이다. 1인 가구까지 감안하면 독신 남성도 소관일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인 범죄, 폭력, 학교폭력, 가출, 청소년 문제 이런 것들이 결국 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우리 국가나 사회 전반을 살펴보고 공부하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 수도, 가장 약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가정이니, 이 가정을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신념이다.” 장관을 맡아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무엇인가. “여성가족부가 중앙부처로 자리잡은 건 2001년이다. 정무 제2장관실에서 시작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있다가 여성부가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부서였는데 보육업무, 가족업무, 청소년업무가 들어왔고 이후 여성, 가족, 청소년 이 세 가지 업무부서로 짜여지게 됐다. 현재는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이 안전한 국가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1월 7일 국무회의에서도 ‘여성정책 총괄·조정 기능 내실화 추진 결과 및 향후계획’을 보고하고, 성 격차 지수(GGI)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WEF)과 연계해 올 상반기 성 격차 해소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가정이 행복하고 국가경쟁력도 향상된다.” 장관이 특정 부처를 맡아 그 부처의 기능과 분위기가 변하기도 하지만, 어떤 부처에 부임해서 그 장관의 철학이나 인생관이 변하기도 한다. 조 장관은 어떤가. “예전에 어렴풋이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으며 구체화되고, 어떤 모멘텀을 발견한 느낌이다. 베네수엘라의 국회의원, 변호사, 경제수석 등을 지낸 아브레올 박사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자원을 극빈층 아이들이 문화혜택을 통해 성장하는 데 쏟아부었다. 난 여성가족부가 특수복지부이자 평생교육부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피해자, 게임중독 청소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 등 취약계층을 그대로 놔두면 그저 기초수급자가 될 뿐이다. 복지부와 고용부, 기획재정부를 연결해 이들 취약계층이 개별적 자활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활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다. 즉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 부처에서 맡은 일만 하면 늘 해오던 분야, 레드오션만 바라본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도자기 수업을 시켜도 누가 팔아주나.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도 커피숍에 취업을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업무영역과 시스템을 1년간 조망하면서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알게 됐다.” 조직 장악력과 업무 파악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있다. “모든 공무원은 사명·소명의식이 남다른 분들이다. 내가 뛰어나서 조직 장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화두가 여성이어서 각 조직원의 소명의식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올해 국정과제 140개 가운데 14개가 우리 부처의 몫이다. 기대되는 과제가 늘어서 벅차고 예산과 인원이 너무 적어 힘들지만, 이런 결핍과 부족함에서 오는 절실함이 우리 직원들을 단결하게 하고 업무 몰입도를 높여서 그런 평판을 들은 것 같다. 나는 큰 선을 긋는 것만큼이나 작은 부분, 디테일한 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현장에도 자주 가는데 서류를 보는 것보다 100배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왜 문화전문가인 조 장관을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했을까. “대통령께서 장관직을 제안하며 ‘나와 오래 생활하면서 내가 여성정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 워킹맘의 경험으로 정말 도움이 되는 여성정책을 개발하고 일해주세요’라고 했다. 이번에도 국무회의에서 ‘아무리 강한 무쇠로 만든 문고리도 잡아당기면 정작 가장 약한 곳부터 떨어져 나간다’며 그 약한 부분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가 일하는 엄마이고.”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물리적·심리적으로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데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은 전혀 불통이 아니다. 내가 정말 사소한 질문을 해도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나’는 말을 하지 않고 일일이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든 들어주는 경청력도 뛰어나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내가 파란색 옷을 입고 무채색 옷을 입은 후보와 언론사 행사에 참석했는데 한 기자가 ‘왜 대변인이 혼자 튀는 옷을 입었냐’고 지적했다. 당시 후보는 ‘보기 좋은데요’라고 웃으며 나를 감싸주셨다.”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걸 지켜보다가 문득 ‘만약 저 분이 대통령이 되면 많은 남성들이 여성 대통령과 소통하고 잘 보이는 법을 연구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사장이 여자이고, 단체장이 여자라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의 의식과 태도가 달라질까’라고. 반드시 저 분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여성 대통령 하나가 각 분야에서 여성들을 둘러싼 벽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들이 여성과 더불어 잘 지내고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기업에서 여성 취업을 확대하는 것 등에도 다 영향을 미치리라고 기대한다.” 우리나라 성 격차 지수가 111위라고 하는데,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에서 좀 부끄러운 것 아닌가.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나. “성 격차 지수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과 연계해 올 상반기 성 격차 해소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일단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경제활동이다. 정치적 대표성은 국회나 정당의 몫이고 경제활동은 동일 직장·동일 업무에서 동일 임금을 받는가를 따지는데,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지수가 더욱 낮게 측정된다. 통계청에 의뢰해 2015년부터 제대로 된 통계가 나오면 지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경제포럼이나 IMF의 총재, OECD 사무총장 등을 직접 만나 우리나라 여성정책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한국이 발전하고 있지만 계속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신년사에 보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부분이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의 신년사에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지난 청문회 때 위안부 할머니들 시설에도 가보지 않고 수요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야단을 많이 맞았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등 담당부처도 많이 바뀌었지만 지난해 두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자제분이 ‘어머니는 일본 정치인들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발언에 너무 상심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현재 생존한 51분의 할머니들 평균연령도 88세다. 시간이 너무 없다. 장례식에 다녀온 날 위안부 리포트를 밤새 읽었다. 현재도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전쟁 성폭력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일어나려면 과거사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가을부터 차례차례 만나고 있다. 지방에 출장갈 일이 있을 때마다 전국에 흩어져 사시는 51명의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현재 28분을 만났다. 그 분들이 원하는 것은 명예회복이다. 그 분들과 관련된 기록을 다 정리해 국가기록원까지 참여시켜 과거 구술 녹취록이나 영상물들을 유네스코에 기록유산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어야 그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이 되고, 앞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흔히 말하는 모든 스펙을 다 가진 엄친딸인데, 그래도 대한민국의 워킹맘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떨어져도 봤고,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히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번째 여자 변호사였는데,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애 키우느라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치열하게 일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술자리에도 참여하고 그게 참 당 대변인을 할 때도, 지난 대선 때 후보를 수행할 때도 3~4시간 자고 일을 해야 해서 가정살림도 잘 못하고 아이들과의 시간도 많이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항상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라고 세뇌를 하고 주문을 걸었다.” 변호사나 정치인 생활을 하며 한 번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마음속으로는 수시로 사표도 쓰고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경력단절을 하면 후회될 것 같아 버티고 버텼다. 아무리 여성 대통령에, 각 분야의 여성 1호가 나와도 여성들에게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그런데 유리천장은 한 번 뚫으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만년설이다. 산기슭에는 봄이 왔지만 산 정상에는 아직 만년설이다. 만년설을 녹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깔고 앉아 녹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에서 여성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들도 각자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성에게 미움받지 않는 여성리더가 되는 법은 뭘까.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붓글씨로 ‘무사시귀인 단막조작’(無事是貴人 但莫造作)이란 글을 써주셨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절대 억지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가장 편하게 상대를 대하면 내 능력도 잘 발휘되는 것 같다. 여성이라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여성의 장점을 살리면서 남성과 여성을 모두 편하게 대하면 그들도 나를 리더로 존중해준다.” 조윤선 장관은 조그만 메모지 한 장 없이 각종 숫자와 사람 이름을 열거하며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그의 성공이 스펙이나 미모 덕분만은 아닌 것 같아 질투심을 접었다.
- 유인경이 만난 사람
- [유인경이만난사람]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2005. 07. 12)
- 2005. 07. 12 사회
- “가족문제 예방~ 사후치료까지 서비스” 저출산, 이혼, 고령화, 청소년 및 노인 자살…. 성장속도가 세계 수준을 자랑(?)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고민거리로 떠오른 문제들은 ‘가족’이나 ‘가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신없이 낳다보면 삼천리가 거지소굴’을 외치며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고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면 정관수술까지 시켜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라’란 주례사도 옛말. 이혼율이 급증해서 오랜만에 만난 부부를 보면 과거의 그 배우자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성적이나 카드빚, 혹은 신병을 비관해 10대부터 팔순 노인까지 목숨을 끊어 가족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좀더 확대하면 부모나 보호자가 있는데도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 죽음에 이르기까지 잔혹해지는 가정폭력, 이혼 후 양육권까지 빼앗기자 살인마로 변신한 유영철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의 배후에 ‘가족’이 있다. 모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인 ‘또 하나의 가족’이나 모 그룹의 경우 ‘직원 가족 행복 극대화’를 경영이념으로 내세워 눈길을 끌고 CF마다 행복에 겨운 가족, 단란한 가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요즘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훈훈한 대상이 아니라 가슴 답답하고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은 ‘남의 집 안방 일’로만, 그리고 개개인이 해결할 일로만 여겨졌던 ‘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여성부는 지난 6월 23일 ‘여성가족부’로 새롭게 출범하며 그동안 보건복지부 등에서 맡던 보육업무를 비롯, 전반적인 가족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 실현’을 다짐하며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1999년 출범 당시 200억 원 정도의 예산에 100여 명의 초미니부서였던 여성부에서 7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과 400여 명의 직원으로 늘어났으니 슈퍼마켓에서 백화점으로 변모한 셈. 취임 6개월 만에 대한민국 가족문제의 해결사로 나선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54)을 만났다. 쟁쟁한 집안에서 태어난 공주(?) 과거 ‘여성부’란 명칭도 말이 많았다. 영어로 풀이하면 양성평등부(Gender Equality)였지만 “지금은 여성상위시대인데 왜 남성부는 없냐”라거나 “항상 직장 내 성희롱 등 직장여성 문제만 다룬다” 등의 비난도 받았다. 여기에 ‘패밀리’를 덧붙인 여성가족부의 출범 첫날, 민주노동당이 “정부부처의 명칭에 가족을 명시하고 지나치게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여성을 존엄한 인격과 시민권을 갖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지위에만 가두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원에게는 낙인을 찍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논평을 내며 딴지를 걸기도 했다. 장 장관은 ‘오해’라고 강조한다. “아마 우리 부의 정책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합니다. 과거 여성부는 요보호중심의 가족이나 자녀중심의 가족문제만 주로 다뤘지만 이젠 모든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일들을 다룰 거예요. 5대 핵심추진과제 역시 ▲새로운 가족문화 조성 ▲다양한 형태의 가족지원 확대 ▲가족친화적 사회환경 조성 ▲돌봄의 사회화 및 역할분담, 그리고 ▲가족정책 인프라 확충입니다. 이제 가족형태가 얼마나 다양해요? 1인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국제결혼가족 등도 있고 혈연이 아닌 이들이 모여 살아도 가족으로 여기죠. 이런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어릴 때부터 가족개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새로운 가족문화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이혼율 증가, 가족갈등 등 급격히 약화되는 가족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부교육, 부모교육, 가족주기·형태에 맞는 교육도 실시하고 상담치료 서비스를 통해서 가족문제 예방에서 사후 치료까지 포괄적 서비스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아버지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파파쿼터 제도나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휴가를 얻을 수 있는 부양자 휴가서비스 지원, 장애인·치매 등 중증질환자가 있는 가족에게 보호 스트레스를 줄여 가족 내 갈등을 해소해주는 가족휴식지원 시스템 등도 여성가족부에서 할 활동들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편견이 심한 이들에게 장하진 장관은 오해받을 요소가 많다. 첫째 그는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싫어하는 여성운동가 출신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지만 ‘한국여성정치연구소‘를 만들었고 전문분야 역시 여성정책과 여성고용이다. ‘여성노동자 인권을 보장하라’ ‘호주제 폐지하라’ 등 시위현장의 모습이 매스컴에 주로 소개되어서인지 여성운동가는 가정도 없고 남성들을 원수로 여기는 ‘마귀할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장 장관은 조선대 총장 출신인 김홍명 교수와 대학생·고교생인 두 아들 등 세 남자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탄탄한 ‘가정’을 이끄는 주부이다. 둘째 ‘공주병 환자’란 의혹(?)이다. 교수 출신, 한국여성개발원 초대 공채 출신 원장, 여성가족부 장관 등 화려한 타이틀은 물론 항상 어떤 자리에 임명될 때마다 공개되는 ‘화려한 가족사’가 의혹의 배경이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장 장관의 집안은 ‘천재집안’으로 소문났다. 본인은 “평범한 집안이며 특히 나는 더더욱 보통사람”이라고 말해 ‘진짜’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항일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비롯, 전직 장관인 삼촌(장재식)은 물론 동생들(고려대 경영대 장하성 교수, 광주대 장하용 교수, 장하원 열린우리당 정책실장)과 그 배우자까지 ‘박사’가 아닌 이들이 드물 정도이다. ‘과거사 논쟁’과 함께 친일파 조상이 밝혀져 곤혹을 치른 정치인이 많지만 장 장관의 집안은 가족들의 활동으로만 항일운동사를 써도 될 정도란다. 그런 뼈대있는 집안의 장녀에 본인도 박사 출신 장관이니 굉장히 잘난 척할만도 한데 ‘집안’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뛸 만큼 ‘좋은 집안 콤플렉스’(?)가 있고 언행도 소탈하다. 여성개발원 원장 재직시에는 돈을 많이 벌어 CEO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원인지라 여성부 등에서 용역을 주는 과제만 주로 연구했지만 그는 직접 부처나 단체를 찾아가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연구비를 받아왔다. 제일 먼저 경찰청의 문을 열었다. “신문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니 당시 이무영 경찰청장이 여성마인드가 있는 분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보비란 애칭으로 불리며 모든 여성에게 사랑받는 영국의 경찰처럼 우리도 여성적인 것을 활용해 친절하고 다정한 이미지로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만들어 경찰청을 찾아갔죠. 2건에 1억 원의 첫 용역을 따왔습니다. 경찰의 날 행사도 우리와 함께 했어요. 그후 국방부 등 금녀의 영역으로 알려진 부처와 공동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학창시절, 아주 조용한 모범생이었다”고 스스로를 묘사하는 장 장관은 대학시절엔 동기인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 최영희 청소년위원장과 더불어 ‘새얼’이라는 지하서클을 만들어 신문을 발간하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이대에서 ‘금관의 예수’ 공연을 마치고 도망다니던 시인 김지하를 집 근처에 숨겨줬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임권택 감독이란다. 가난한데다 남북 이데올로기에 짓밟힌 환경,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임 감독이 서울대 출신의 정일성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춰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걸작들을 내놓은 장인정신을 존중한단다.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하는 낙천주의자 다른 근엄한 표정의 장관들과 달리 장하진 장관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모든 사진에도 미소를 짓고 있다. 억지로 지어 보이는 연출된 미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성격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표정인 것 같다. 자신도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인정한다. 여성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호주제 폐지 통과, 성매매 집결지 화재사건 등 일도 많았고 급성간염으로 3주간 입원해 업무공백도 있었고 ‘여성가족부’로 규모와 일이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늘 생글생글 웃는다. 취임 100일째를 맞는 인터뷰에서도 “비판도 달게 받고 60점만 맞겠다”며 목표점수도 소박하게 잡았다. 평소 여성부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보수의 상징 성균관을 직접 찾아갔고 집창촌을 탈출한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앞으로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육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제일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뭐냐”는 질문에 “별로 없다”고 한다. “원래 걱정을 잘 안 하고 아주 낙천적이에요. 일단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안 되면 ‘역사적 현실’이라고 인정해요. 일이 잘 안 풀려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역사는 천천히 가는 것이다’란 말을 주문처럼 되새깁니다. 만일 역사가 순조롭게 빨리 흐른다면 왜 지금까지 굶는 사람이 있고 전쟁은 왜 안 끝나겠어요. 여성계가 50년간 소리 높여 주장했던 호주제 폐지도 21세기가 되어서야 해결되었잖아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길을 걷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도 “운이 좋았다”는 낙천적인 대답을 했다. 자신보다 훨씬 유능하고 똑똑한 여성도 많지만 자신은 운이 좋아서 장관직까지 올랐단다. 하긴 리더 가운데 머리 좋은 지장보다 덕이 있는 덕장, 또 덕장보다 복많은 복장이 더 낫다고 하지만 운동권 출신의 장관이 ‘운이 참 중요하다’고 말하니 공감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장하진 장관은 임기 내 가장 이루고 싶은 일 가운데 ‘보육문제 해결’을 첫째로 꼽았다. 만 다섯 살까지 350만 아동의 50%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싶다는 것. 저출산의 원인도, 고학력 여성인력의 활용이 제대로 안 되는 요인도, 여성 경제 활동이 부진한 이유도 대부분 보육의 어려움 때문. 그래서 2008년까지 만 5세 이하의 영유아 가운데 절반이라도 국가에서 재원을 지원해줘 마음놓고 제대로 된 시설에 아이를 맡기거나 위탁할 경우 지원금을 주겠다는 복안이다. 시설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빵점엄마라고 고백한다. 남편은 조선대, 자신은 충남대에서 근무해 전라도와 충청도를 오르내리느라 집을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정했지만 일하느라 바빠 두 아들에게 알뜰살뜰한 엄마는 아니었다는 것. 전국민의 가족행복을 책임지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가족사랑법이나 행복비결은 뭐냐는 질문에는 “각자 알아서 독립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남편인 김 교수는 장 장관이 여성개발원 원장으로 3년간 재직할 때 집안일로 사무실에 전화를 건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다른 직원들이 놀랐단다. 그러더니 소녀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편이랑 동갑인 한 교수를 얼마 전에 만났더니 오는 9월이 환갑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남편 생일이 지난달이었는데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뭐 요새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두 아들도 좀 무뚝뚝한 성격이라 다들 그러려니 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요.” 장하진 장관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밥상은 꼭 직접 챙기고 뜨개질이 취미여서 애들 스웨터는 꼭 떠서 입힌다”라거나 “남편이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결혼기념일에 장미 100송이를 받았다”고 했으면 얼마나 열등감과 좌절감에 시달렸을까. 김 교수와 같은 달인 내 남편 생일을 잊지 않았다는 자부심에 괜히 으쓱해졌다. 가족사랑과 행복에 정답이나 공식은 없다. 다만 열악한 제도와 인식 때문에 빼앗겼던 ‘가족끼리 행복해질 시간’을 장 장관이 앞장서서 찾아주겠다니 기대해봐야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굳세게 밀고 나갈 그의 낙천성을 믿으면서….
- 유인경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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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회사 크린텍 고예성 대표, ‘2021 여성벤처 주간행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수상
- 2021. 11. 05 11:02 화제
- 청소장비 전문기업 주식회사 크린텍의 고예성 대표가 지난 4일, 엘타워 그레이스홀 개최된 ‘2021 여성벤처 주간행사(주최 한국여성벤처협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 권칠승) 장관상을 수상했다. 고예성 대표는 세계 최초로 건식 노면 청소 및 살수 겸용 전기식 도로청소차 ‘크린스카이 2.0K’을 개발, 뛰어난 기술력과 미세먼지 및 폭염 등 환경문제의 해결책으로 공익성이 우수하다는 평가와 함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적인 벤처정신을 비롯해 여성 벤처기업인으로서 사회적·산업적 공로를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여성벤처기업인 표창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직무발명보상제도와 미래성과공유제도 도입은 물론 실제 보상지급으로 임직원과의 상생 의지를 실현시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다양한 기부활동 및 여성벤처협회 위상을 높이는데도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주요 수상요인으로 손꼽혔다. 고예성 대표는 “남성 중심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익숙한 업종의 특성상, 여성기업인으로서 애로사항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며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구성원들과 함께 소통하며 수용과 포용을 핵심경영 원칙으로 삼은 끝에 혁신적인 기업문화와 오늘날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고 소감을 밝혔다. 고예성 대표는 이어 “이번 수상이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앞으로도 신사업 및 신제품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R&D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여성벤처기업인으로서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 덧붙였다.
- 주식회사 크린텍 고예성 대표‘2021 여성벤처 주간행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수상
- 워킹 맘이 이끄는 진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 2015. 03. 25 11:42 화제
- 청와대가 보이는 큰 창 너머로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겼지만 장관의 대화 속도와 에너지는 변함이 없었다. 만 두 살 인생에 벌써 어린이집을 세 번이나 바꾼 둘째 아이 이야기를 할 때, “아유, 짠하네요”라고 짐짓 신파 분위기를 유도했지만 장관은 의연했다. 현역 아이 엄마라 의지가 되고,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큰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준비해간 질문보다 훨씬 묵직한 답을 들고 돌아왔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꿰어야 보배 장관 취임에 앞서 읽는 직무 가이드가 있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된 태도, 도덕성에 대한 내용과 함께 전직 장관들이 후임에게 주는 코멘트가 담겨 있단다. 처음 공직자가 된 장관들은 ‘축소된 사생활의 원칙’이라는 문구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사생활이 없다는 것! 지난 2014년 7월 여성가족부 수장이 된 김희정(44) 장관은 이미 1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잔뼈가 굵었지만, 여기에 엄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까지 곱절로 짊어졌다. 장관, 지역구 국회의원, 아내, 엄마…. 흔히 엄살처럼 사용하는 1인 다역이라는 수식이 이처럼 무겁게 와 닿는 인터뷰이도 참 드물었다. 주부들의 기대를 잘 알고 계시니 부담도 클 것이고, 계획도 더 촘촘히 짜셨을 거 같아요. 일단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 중 국민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재적소에 홍보가 되고 또 잘 이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임신하면 고운맘카드 받는 거 아시죠? 그것도 임신 계획 단계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임신하고 나서 관련 커뮤니티나 병원을 통해 알게 되는 게 대부분이죠. 그 밖에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도 그렇고요. 보통 공직자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직접 이용해봤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실제로 엄마의 입장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제도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직장 맘 같은 경우 제일 민감한 부분이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더라도 그곳의 운영 시간과 엄마의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죠. 그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예요. 저도 이용해봤는데, 혹시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아세요? 그 제도가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보통 엄마들이 아이를 돌봐줄 선생님은 어느 사이트에서 구해야 하나, 면접 볼 때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이런 점들로 고민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국가에서 다 해결해주거든요. 믿을 수 있고, 이용료도 저렴하고, 또 엄마가 직접 선생님과 임금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직접 이용해보니 어떠셨어요? 중간에 익명으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쓰는 선생님이 안 맞으면 교체하는 과정이 껄끄러울 수 있잖아요? 여기서는 그럴 경우 엄마가 직접 그 선생님과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국가가 자연스럽게 배정 선생님을 바꿔주니까요. 원래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의 종일제는 아이가 12개월 때까지만 이용 가능했어요. 그런데 돌 지나자마자 바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은 드물거든요. 그래서 24개월까지로 확대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에도 일반 기관처럼 대기 인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부터 도입했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직접 이용해보고 보완점을 찾았죠. 더 개선하고 싶은 점도 있으신가요? 현재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선생님의 절대 수치는 굉장히 비슷한데 문제는 대부분 이용하고자 하는 시간대가 겹쳐서요. 대부분 아침 등원이나 등교 시간, 부모들의 야근 시간대에 이용하고자 하니까 집집마다 필요한 시간이 같은 거예요. 그 시간대에 일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많이 발굴해야겠죠. 어느 정도 아이를 다 키우신 분들 중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아이 돌보미 선생님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공식적으로 90시간 교육을 받고 또 선생님으로 예우받으면서 하는 일이라 어느 지역에서 한 분이 선생님이 되면, 뒤따라오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이번에 새로 시행되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도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준다’라는 점이 와 닿았어요. 며칠 전에 경북 예천에서 80대 할머니가 전 며느리한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잖아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 며느리도 알고 보니까 여섯 자녀를 혼자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정책이에요. 이 제도는 절대 이혼을 하거나 미혼인 엄마, 아빠를 봐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에요. 이혼이나 비혼을 부추기자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간에 그 아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 돌봐주자는 거예요. 아이를 맡은 한부모마저 도저히 힘들어서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최근 들어 한부모 가정의 비율이 9.7%대에 이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혼·미혼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비율이 17%에 불과해요. 그 통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아이들이 버림받고 있어요. 그중 경제적인 이유도 분명 있거든요. 지금 단계에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찾아서 그걸 주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겠지만, 이 제도가 정착되면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비록 부부는 갈라서더라도 아이만큼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동 책임져야 한다는 걸 확고하게 하는 효과도 함께요. 며칠 전 애독자 엽서에서 이혼 후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힘들다는 사연을 읽었어요. 오죽 답답하면 독자 고민란에 적어 보냈을까 싶었는데, 이 제도를 그분께 꼭 알려드려야겠어요. 3월 25일 출범 이후 신청을 받아 순서대로 처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형편이 더 어려우신 분들을 먼저 배려해드리는 방법을 도모할 거예요. 분명 시간이 걸리는 일이거든요. 개개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일을 이제 국가가 나서서 하는 거죠. 올해 소프트랜딩해서 내년에 더 많은 가정을 구제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김 장관은 인터뷰 중 “○○ 제도는 알고 계세요?”라고 몇 차례 물었다. 안다고 대답하면 “인터뷰 준비하면서 알고 계신 거예요?”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뜨끔했는데, 듣고 있자니 관할 수장의 일상적인 설문 조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질문 공세와 답변이라기보다는 함께 최선의 방향을 모색해가기 위한 어떠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워킹 맘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그렇죠!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요? 보통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 1차 고비가 오지요. 힘들게 기저귀랑 이유식 뗄 무렵을 보내고 그 이후 정착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2차 고비가 오고, 고학년이 되면서 또 여러 단계의 고비가 찾아오지요. 그런 순간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도 제도가 안 돼 있다기보다는 회사 여건상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동료들과의 관계 때문에 못 쓰기도 하거든요. 동료들에게 미안해서요? 내가 빠져버리면 그 일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그렇죠. 두 번째가 어려워요. 앞서 한 명이 육아휴직 중이라 두 번째 휴직자로 자리를 비워야 하거나, 둘째를 임신했을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운 거예요. 이런 구조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이 뭐냐하면, 육아휴직은 여자만 쓸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남자도 쓸 수 있는 제도라는 걸 알리는 거예요. 즉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제도가 됐을 때 오히려 여자가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거죠. 아빠의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해 ‘아빠의 달’ 제도를 만들었어요. 또 임신부가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고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대체 인력 지원금을 확대했어요. 기업에서 대체 인력 차원을 넘어 아예 한 명을 더 고용한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원금을 늘린 거예요.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워킹 맘을 위해서는 12개월까지 적용되던 육아기단축근로제 기간을 2배(24개월)로 늘렸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사정상 육아휴직을 3개월만 썼다면, 나머지 못 쓴 9개월의 2배가 되는 18개월간 단축 근무를 쓸 수 있어요. 또 상황에 따라 최대 3회까지 끊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요.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뀐 느낌인데요? 큰 변형이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제도를 현장 상황에 맞게 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임신부가 고운맘카드를 만들면서 동의하면 몸담고 있는 회사에 임신과 출산 관련 제도 및 처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어요. 든든하네요. 일단 길목을 잡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장관들께 제가 제안했는데 두 분 모두 동감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일하는 엄마들이 한결 마음이 놓이겠어요. 아, 올해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 시범사업도 시작해요. 전국에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있는데 주로 주중 주간 시간대에 운영하다 보니 일하는 분들의 경우 이용하는 데 불편했어요. 노무사나 법무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는 직접 찾아가는 상담을 할 거예요. 또 야간이나 주말에는 엄마, 아빠를 위한 육아나 가족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고요. 올해 새로 시작하는 게 무척 많아요. 양육비이행관리원,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등등. 그러다 보니 엄청난 예산 압박이 있죠(웃음). 제가 작년에 장관으로 왔을 때는 이미 예산 기본 세팅이 끝난 상황이었거든요. 올해 시작을 잘해서 내년부터 키워야죠. 올해가 본격적인 시작인 듯하네요. 여성가족부에 오신 뒤로 생각이나 시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일은 실제로 우리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하고 있어요. 전달이 제 몫이라고 생각하죠. 그 점에서 제가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평소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잘 만들어놓은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죠.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운영되던 것을 워킹맘워킹대디센터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처럼요. 국민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장관님 가족 입장에서는 더 바빠진 아내와 엄마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겠어요. 제 개인이요? 네, 그렇죠. 그런데 남편은 저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요. 우리 연령대 자체가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밑천을 다 뽑아먹는 시기잖아요(웃음). 맞아요! 지난주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한국은 제도는 굉장히 많이 발달돼 있는데 잘 활용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야근 문화 때문이라고요. 야근으로 인해 이런 각종 제도나 각종 서비스가 무용지물이고, 일과 가정 양립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풀리지 않고는 절대 다른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수요일을 (정시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자는) 가족 사랑의 날로 정했는데, 수요일 하루라도 하자는 게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이죠. 그렇죠. 네덜란드의 헬데르그로엔이라는 디자인 회사는 오후 6시가 되면 책상이 사라져요. 리프트가 달린 책상을 아예 천장으로 올려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복지가 잘돼 있다는 유럽에서도 이런 방책을 쓸 정도인 거죠.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도 상상을 못했는데 이뤄졌잖아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도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걸요. 이런 것일수록 흐름을 타는 게 중요해요.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중단하지 않고 계속돼야 해요. 터널의 끝은 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당시 김 장관은 초·중·고를 나오고 이사 한 번 없이 내내 한 동네에 살았던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커나갈지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정치란 아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공유해온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현직 의원 최초로 국회의사당 의원동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아이를 낳았다. 한결 여유로운 표정의 김 장관에게서 ‘미스 포청천’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국정감사장에서 맹렬한 질문 공세를 퍼붓던 의원 시절의 기개를 다시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은 바로 최근 논란이 됐던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문제를 언급할 때였다. 주변에서 워킹 맘과 전업 맘의 갈등을 심심찮게 접해요. 전 그게 굉장히…. 이번에도 9시 등교제를 둘러싸고 일하는 엄마들과 일하지 않는 엄마들의 갈등 관계로 몰아가던데, 오히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인 거죠. 그 지역의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9시 등교제를 결정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는 30분 늦게 출근할 수 있도록 제도가 완벽하게 세트로 같이 가야지, 아이들만 9시에 등교하게 하는 것은 반쪽짜리거든요. 이걸 엄마끼리의 싸움으로 몰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죠. 말씀을 듣고 보니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전업 맘도 언제든지 재취업 전선에 들어올 수 있고, 워킹 맘도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두 집단을 갈등 관계로 몰아가는 프레임에 절대 갇혀서는 안 돼요. 혹 회의석상에서도 그런 비슷한 구도로 몰아가면 제가 강하게 얘기를 합니다. 당장 이번에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터져 보건복지부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라고 해서 문제 어린이집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러려면 기존에 다니고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수용할 건지를 반드시 같이 언급했어야 해요.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순간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 국가에서 유연근무를 보장한다거나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선 배치한다거나 하는 뒷받침이 없이 무조건 문을 닫는다는 발표만 가지고서는 절대 안심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제가 회의에서 정말 침을 튀며 했어요(웃음). 엄마 입장에서도 장관님 말씀에 수긍할 것 같아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꿰뚫고 계시니까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희 집만 해도 제 근무지에 따라 아이들이 직장 어린이집을 세 번 옮겼어요. 둘째 아이는 아직 세 돌도 안 됐는데 어린이집을 세 번 옮긴 거예요. 그것도 매번 바로바로 자리가 난 것이 아니라 공백기가 있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까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세요?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요. 예를 들어 제가 출근 준비를 할 때는 일어나는 시간과 밥 먹고 세수하고 옷 입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애들은 그게 아니니까요. 외출 준비 다 끝내놨는데, 갑자기 옷에 똥을 쌀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뭘 쏟아서 자기 옷뿐만 아니라 제 옷까지 다 버리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 전염병이 돌아서 등원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우리 애가 고열에 시달릴 수도 있는 거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에 대한 정책을 늘 고민하죠. 일과 육아 사이에 갈등을 심하게 느낀 적은 없으세요? 특별히 어떤 시기라기보다는, 일하는 엄마들은 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장기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아이가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요. 짜증과 잠투정도 늘고요. 그런데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아주 많이 부족해요. 주말에는 지역구에 가거든요. 지방 행사도 많고요. 그때는 아이들에게 그냥 “엄마 출장 간다”라고 얘기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엄마 아빠 놀이’라는 걸 하는데, 두 돌 지난 둘째가 가방 들고 휴대전화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얘들아, 나 출장 갔다 올게”라고 했다는 거예요(웃음). 다른 아이들 중에는 그런 단어를 쓰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대요. 담담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짠하네요. 아, 네. 「레이디경향」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연령대가 비슷하실 테고, 어떻게 보면 정부가 만날 무언가를 해도 현장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 있으실 수 있는데, 결국은 그 회사에서 누군가가 용감하게 먼저 (워킹 맘을 위한) 제도를 쓰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거든요. 안 쓰는 게 관행처럼 굳어지면 제도를 만드는 저희에게도 한계가 생기고요. 우리 중에 반드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아빠들이요. 제가 기업 CEO를 만나거나 대통령 주재 장관 회의 때 한 얘기가 있어요. 조직에서 성적이 좋거나 우수한 인력, 특히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쓰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자고요. 또 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주요 보직을 줘서 성공하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자고요. 육아휴직은 승진을 포기하거나 업무 의욕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쓴다는 편견부터 없애야 해요. 그 또한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HR팀(인사팀)에 근무하는 한 남자 팀장으로부터 한 달간 육아휴직을 쓰고 나서 그 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퇴근 시간 땡 하면 들어가고 출근시간에 허덕이면서 채 정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여직원에 대한 반감이 있었대요. 그런데 직접 아이를 돌보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다 보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남자분들도 그 길이가 길건 짧건 한 번은 전업 아빠가 돼볼 수 있는 기회에 동참했으면 해요. 그래야 이해의 폭도 넓어지니까. 장관님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워킹 맘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으세요? 제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을 때, 처음 한 일이 직장어린이집을 신청하는 거였어요. 워낙 대기 인원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어린이집은 오전 7시에 문을 여는데, 아침 첫 회의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하는 거예요. 더 의외였던 건, 아무도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와 같은 회의에 참여하는 직급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고위급 회의가 잡히면 그걸 준비하기 위해 실무진들도 그 시간에 같이 나온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린이집이 오전 7시에 문을 여니 회의도 7시에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6시 50분쯤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에게 아침으로 먹을 우유와 떡을 손에 쥐어서 들여보내고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죠. 누군가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셨네요. 사실 동료들에게 ‘쟤 아줌마였구나’ 이런 느낌을 풍기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거든요. 마치 그런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걸 얘기하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느낌을 줄까 봐 얘기를 못하는 건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지금 장관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일단 일하고 계신 분들께는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그 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므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과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절대로 그만두지 말고 극복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고요. 그 과정에 저희가 만든 제도가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 아이돌봄서비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와 같은 다양한 제도가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하셨으면 좋겠고, 저희가 100% 커버는 못해드리겠지만 고충을 함께 나누면서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거든요. 그리고 전업 맘으로 그 자체에서 보람을 찾으시는 분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좋아요. 혹시 재취업을 하고 싶다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혼·미혼 한부모가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지원 신청을 하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 소송, 채권추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연간 2만3,000여 한부모 가정에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 30대 교포 여성으로부터 친자확인소송 휘말린 이만의 장관
- 2009. 12. 01 15:56 화제
- ㆍ‘이 장관, 유전자 검사 받을 확률 커. 항소심은 12월 중 이뤄질 듯 ’ 35세 미국 교포 여성이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자신의 친아버지라며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은 1심 판결에서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며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이 장관의 항소로 현재 항소심 재판부에 계류 중이다. 과연 35년 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11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만의 장관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그는 “20대 총각 시절에 있었던 부적절한 일이고 당시 일을 매듭짓고 그동안 성실히 공직을 수행해왔지만, 장관이 되고 난 뒤 35년 만에 다시 그 문제가 제기돼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다. 아버지 보고 싶어 하는 딸 때문에 소송 제기 현직 장관이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렸다는 소문은 11월 17일 발행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소송 당사자인 30대 여성의 친모 진야모씨의 인터뷰가 게재되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진씨는 자신의 얼굴은 물론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이만의 장관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증명사진 등을 함께 공개했다. 진야모씨의 딸 진은정씨가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친생자 인지 판결을 받은 것은 지난 9월 25일이다. 지난해 10월 8일 이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친자확인청구소송을 낸 지 근 1년 만에 1심 판결에서 승소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진씨가 1971년 11월쯤 이 장관을 만나 서로 사귀었고, 1974년 11월 임신 했다고 한다. 진씨가 서울 금호동의 산부인과에서 딸 은정씨를 낳은 것은 1975년 7월 22일. 이 장관은 이미 한 달 전인 6월 지금의 부인과 결혼한 상태였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이 장관이 진씨를 만나 사귀는 과정에서 은정씨를 출산한 점, 진씨가 이 장관을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한 적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은정씨가 이 장관의 친생자가 명백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장관이 이번 소송에서 은정씨가 자신의 친생자가 아니라고 다투지 않았을 뿐더러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도 패소 이유라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1 1995년 진은정씨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의 모습. 2 1984년 미국으로 이민 가기 직전 한국에서의 모녀. 3 이만의 장관이 1975년 진야모씨에게 주었다는 여권 사진. 하지만 이 장관은 사진을 직접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세 장 모두 진야모씨가 「시사저널」에 직접 제공한 사진이다.지난 11월 1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나선 진씨는 이 장관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과 출산, 이후 한 차례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했다가 취하한 경위까지의 상세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진씨는 인터뷰를 통해 이 장관과 처음 만난 건 1971년 종로 소재 한 다방에서 일할 때였다고 했다. 이 장관이 다방에 놓고 간 봉투를 전해주려다가 인연이 닿았다는 것. 이후 몇 번 다방을 오가던 이 장관이 3개월 후 그녀의 자취방을 찾아왔다고. 진씨가 임신한 것은 1974년 11월쯤이었는데, 임신 검사 결과를 받은 것은 이듬해 3월이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이 장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후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1975년 7월 진씨는 이 장관을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했다. 진씨는 4개월 뒤 담당검사의 중재로 고소를 취하하면서 위자료 명목으로 50만원을 받는 자리에서 이 장관을 만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전했다. 1984년 4월 그녀는 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물론 갑작스러운 친자확인소송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진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딸아이에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며 “엄마한테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인터넷을 통해 국회 인사 청문회를 본 딸이 이 장관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는 것. 진씨는 인터뷰에서 이 장관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했다. (소송에 앞서)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연락되지 않았던 점과 1심 판결에 이 장관이 항소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진씨는 “딸아이를 35년 동안 혼자 키운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는 못할망정 어떻게 항소할 수 있는지. 유전자 검사도 안 받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딸아이를 조용히 호적에만 넣어줬어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격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항소심에서는 유전자 검사할 가능성 높아 지난 18일 국회에서 이 장관은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30대 여성이 딸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 항소한 것”이라며 “(소송인 측이) 물질적으로 상당한 요구를 했지만 옳지 않은 일과 타협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원칙적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에서는 이번 소송 관련 소식에 대해 이 장관의 대응이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장관직 사퇴 요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사건은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에 자주 나왔던 그러한 사안”이라고 꼬집으며 35년 전 사생활에 대한 비난에 앞서 “이 장관의 태도는 대한민국의 가족윤리에 비춰볼 때 참으로 부적절했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11월 19일 평화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관이 된 뒤에는 공인의 자격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니 사실이 아니라면 아닌 대로 떳떳하게 그런 것(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에 응하는 것이 적절한 처신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밝혔다. 기록 검토와 원고 및 피고 측의 서류 제출 기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사사건의 경우 두 달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이르면 이번 소송의 항소심 첫 재판은 12월 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이 진은정씨를 딸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1심에서 이뤄지지 않은 유전자 대조 검사가 항소심에서는 진행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설 기관에서 이뤄지는 유전자 검사는 24시간 만에 결과가 나오지만, 이번 사건처럼 첨예한 사안이면 통상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검사가 이뤄진다. 이 경우 한 달이 소요되기 때문에 항소심 선고까지도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지난 11월 6일 입국한 진야모씨는 현재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의 일 관계로 11월 말 출국하기 전까지 모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출연과 항소심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제공 / 경향신문 포토뱅크, 「시사저널」
-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장 낸 강금실 전 장관의 일, 삶 그리고 사랑
- 2006. 05. 01 화제
- 여성 최초 형사단독판사에 로펌 대표 변호사, 민변 여성 부회장에 여성 최초 법무장관까지. ‘최초’라는 수식어만 몇 개인지 모른다. 남자들의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만을 넘나들었던 강다르크 강금실 전 장관. 그녀의 도전은 이제 ‘여성 최초 서울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존경받는 법률가인 동시에 탁월한 문화예술인이고 패션 리더이며, 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충실한 ‘역할 모델’이기도 한 ‘여자’ 강금실의 모든 것. 강인하지만 부드럽다.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한다. 일을 즐기지만 노는 일에도 화끈하다. 돈을 잘 벌지만 동시에 빚에 허덕대기도 한다. 경기여고, 서울대의 최고 학력에 법무부 장관까지 특A급 커리어를 자랑하지만 한번의 이혼 등 여자로서는 순탄치 못한 삶도 살았다. 강금실 전 장관의 두 얼굴은 이렇듯 끝을 모른다. “사는 데 두 가지만 있으면 돼. 사랑하고 슬퍼하고”라고 말하던 전형적인 낭만주의자. 그런 그녀가 2006년 봄,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며 혁명을 부르짖고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은 힘주어 말한다. “강남과 강북의, 남성과 여성의, 가진 자와 굶주린 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그녀의 장기이자 특기인 극과 극을 오가는 ‘경계 허물기’가 비로소 제 쓰임새를 찾게 된 듯하다. 법무부 대회의실에는 역대 장관들 사진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고 한다. 넥타이에 정장 일색인 수십 개의 흑백 사진 중 활짝 웃는 여자의 컬러 사진 한 장이 그렇게 눈에 띌 수 없다고, 그 광경을 본 누군가는 얘기했다. 서울시청사에도 기획상황실에 가면 역대 서울시장 사진들이 쭉 걸려 있다. 그 액자들 사이에도 과연 활짝 웃는 여자의 컬러 사진이 걸릴 수 있을까? ‘최초’라는 타이틀을 수집하며 앞선 인생을 사는 강금실 전 장관. 정치인이기도 하고, 뭇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역할 모델인 동시에 행복해지고 싶은 여자, ‘인간 강금실’을 만나보자. 정치인 강금실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 보랏빛 유혹의 실체는? “슬로건은 시민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겠다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이고도 진지한 권유가 있었어요.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일 때 서울시정회관에서 서울시를 위해 발로 뛰며 애쓰시는 전문가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우리 서울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걸 느꼈거든요. ‘같이 서울을 바꾸어보자’ 말씀하시더군요. ‘기회를 접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 우리 생활을 좀더 풍요롭게 바꿀 수만 있다면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세대 리더십센터 강연회에서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세상을 살다 보면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가 있잖아요. 머리로는 ‘열심히 해야지’ 하는데 마음이 그닥 동하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마음은 그러라고 하는데 머리가 ‘이건 안 돼’ 명령을 내릴 때도 있죠. 전 그럴 때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편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선택은 머리로 하는 선택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죠. 이번 서울시장 출마 건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진심으로 선택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장이 되면 시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실 생각이신가요? 제가 되고자 하는 서울특별시의 시장은 진실한 마음으로 시민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정을 여는 사람입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고 역사문화 도시로서의 서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제도시로서의 서울, ‘시민’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서울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저만 해도 이명박 시장 때나 청계천이 좀 이슈가 됐을까 그간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내걸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 정도로 우리 스스로가 그간 너무 서울에 무관심하지 않았었나 생각해봅니다. 시민들의 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서울이 고향 같다는 느낌은 다소 덜한 게 사실이잖아요. 경계를 없애고 밀착된 생활을 통해 시민 스스로가 제안하고 논의해 만들어가는 서울이 되길 희망합니다. 강 후보께서는 보라색과 흰색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전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세상에서는 이벤트를 벌이는 ‘이미지 정치’라는 평가도 내리고 있는데요. 그런 평가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게 선거잖아요. 전 그 정도의 정치적 형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옷을 달리 입는 것처럼 말이죠. 세계적인 흐름인 ‘퍼플오션’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레드오션’이 서로 경쟁적으로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라면, ‘블루오션’은 새로운 것을 찾아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전략인데 ‘이젠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레드와 블루가 섞인 공간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창조적인 길을 찾자’는 게 최근의 경향인데 우리의 상황과도, 저의 생각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판단했어요. 산적해 있는 서울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대립적인 요소들은 해소하며 나갈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제 생각이거든요. 사실 개인적으로도 보라색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선거에 활용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색이기도 합니다. 보라색이 사실 잘 질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 색으로 쓴 이유는 퍼플오션의 의미를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다행히 현재까진 반응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강 후보께선 상대 후보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 당의 특정 후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후보 간에 평가를 내리고 경쟁하기보다는 시민을 상대로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역할 모델로서의 강금실 여자가 닮고 싶은 여자… 그녀의 멘토는 어머니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해요”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강 후보께서는 여성인권대사로 활동하신 적도 있으시잖아요. 여성 문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또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지난 2000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었잖아요. 하지만 남성이 중심이 되어온 사회 환경은 그대로여서 문제죠. 일하는 여성은 많아졌는데 남성 조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어려움이 클 수밖에요. 겪어보니 정치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분히 공격적이고, 상대방을 헐뜯고…. 남성 중심의 정치 환경 속에서 여성이 정치를 시작하려니 저 또한 곤란을 겪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힘들더라도 바꿔내야죠. 그러기 위해선 여성이 좀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주제 폐지도 여성부 장관으로 여성이 나서니까 적극적으로 해결되고 있잖아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사회적 강자로 대접받는 현실에서 여성인 강 후보께서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성 정치인의 역할 모델을 해달라”는 요구들이 많았어요. 저 또한 역할 모델의 중요성에 공감했구요.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여성, 특히 여학생들의 역할 모델에 대한 강렬한 요구들이 있어왔죠. 남성 문화에 적응한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영역에 알아서 몸을 맞춰 일하는 여성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여성으로서의 역할 모델 말이에요. 이는 또한 제가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기도 합니다. ‘여성 최초 법무부장관’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계신데요, 법무부 장관 시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인데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가장 참기 어려웠어요. ‘이미지 정치’ ‘연예인처럼 인기 끈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 만약 판사를 했고, 로펌 대표를 했고, 법무부 장관을 지낸 ‘남성’이 서울시장에 출마 선언을 했어도 지금처럼 ‘이미지 정치다, 콘텐츠가 없다’는 식의 말이 나왔을까요? 생각해보면 결국은 제가 여성인데 원인이 있는 거예요. 여성 정치인이 많지 않았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부지불식간에 빈번히 표출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가장 보람됐던 일은요? 다들 알고 계신 대로 제가 법무부 장관에 역임되고 검찰 내 반발이 거셌잖아요. 그전까지 여성은 부장검사 한 명 나온 게 고작이어었는데…. 우리나라 검찰은 굉장히 남성적인 조직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 여성인 제가 장관으로 부임됐으니 트러블이 얼마나 심했겠어요. 그런데 1년 5개월 후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상호 불신 과정을 거쳐 상호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고나 할까요?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가장 보람된 일이라면 바로 그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일을 추진하며 마찰이 예상될 땐 어떻게 대응하고, 또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 편이신가요? 저는 원칙대로 일을 풀어나가는 편입니다. 여성에 대한 비하가 좀 있다고 그 부분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 시작하면 해결도 안 되면서 일만 더 복잡해질 수 있거든요. 더 여성 취급을 받게 될 우려도 있구요. 그러면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남성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원칙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우엔 원칙대로 움직이면 틀리질 않기 때문에 반대를 못해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곤 했어요. 역할 모델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본인 스스로가 멘토로 삼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 멘토는 어머니가 아닌가 생각해요. 자랄 때도 그랬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더 어떻게 사셨는지가 기억에 생생하네요. 어머니 스스로가 옛날 세대이신데도 불구하고 딸을 차별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키워주셨거든요. 강인한 분이셨구요, 사람들에게 참 많이 베풀면서 사시다 돌아가셨죠. 제 친구들이 놀러 와도 꼭 차비를 쥐어 보내곤 하셨을 정도로 집에 손님이 오면 빈손으로 보내시는 법이 없던 분인데. 어머니의 따뜻한 성품을 닮고자 참 많이 노력했고, 알게 모르게 그 점에 있어선 닮아간 점도 있을 겁니다. 여자 강금실 법무부 장관 타이틀 단 뒤 데이트 신청 뚝! “계획대로 아이만 낳았으면 일 그만두고 애만 봤을 거예요” 어머니를 닮고자 했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강 후보께선 막상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진 못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던 건가요? 기회가 없었던 거죠. 일부러 아기를 마다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세상에 아무리 일이 소중하다 해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만큼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요. 애를 많이 낳고 싶었는데 (전)남편과 의견 일치가 잘 안 됐던 부분이 있었구요,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던 적도 있는데 결국 기회가 닿질 않았어요. 판사 시절엔 애가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애만 키울 마음까지도 먹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뜻대로 잘 안 됐는데…. 그렇다고 내 아이에게만 집착할 건 또 아니잖아요. 기회와 조건만 허락한다면 입양도 마다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집안 살림을 직접 하는 편이신가요? 솔직히 살림은 거의 못하고 살아요. 제가 직접 살림을 안 하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죠. 결혼 초기 남편과 맞벌이를 할 때였어요. 능곡에 살 때였는데 저는 퇴근하면 살림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남편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많이 서운하고, 여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데요. 그러고 보면 제 남편은 여러 가지로 제 의욕을 많이 꺾어놓은 것 같아요. 신혼 초 부산에서 살 때는 남편이 항상 빵을 사들고 퇴근하곤 했어요. 제가 하는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못 먹겠다면서 말이죠. 너무하죠? 맛없어도 맛있다고 먹어줬으면 더욱 신이 나서 요리 연습도 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면 많이 늘었을 텐데. 그러니까 남편들은 부인이 해주는 음식 타박 말고 맛있게 먹어주시란 말이죠. 아니면 저처럼 아예 파업 선언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하하하~) 전남편과 통화는 자주 하시나요? 이혼은 했지만 서울시장에 출마 하며 상의 정도는 했을 법도 한데요. 연락을 자주 못하고 살아요. 서울시장 출마 건 가지고는 얘기해본 적 없구요. 이제 본격적으로 유세하고 선거에 돌입하려면 체력 관리가 필수일 듯한데요, 강 후보께서는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그리고 목소리가 작고 가는 편이신데 유세를 염두에 둔 목소리 관리를 따로 하시나요? 어떤 분이 소개해줘서 홍삼 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고 있는데 그게 참 좋은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특별히 목소리 관리를 하진 않지만 유세 때문에 집에서 노래를 좀 불러볼까 생각 중이에요. 노래는 잘하는 편이신가요? 어떤 가수를 좋아하세요? 조수미씨가 부른 ‘명성왕후’의 주제가 ‘나 가거든’이 좋아 연습해봤는데 사람들 앞에서 부를 기회가 없었네요. 그리고 제 미니 홈피를 방문하시면 자우림의 노래가 깔려 있잖아요? 자우림의 리드 보컬 김윤아씨 맞죠? 목소리가 어쩜 그렇게 매력적이고 멋있는지요. 인간문화재 김수악씨로부터 ‘살풀이춤‘을 사사했고 손경순, 이명경씨에게 승무를 배웠을 정도로 전통예술에도 조예가 깊으신데요, 만약 시장에 당선되신다면 그 후에도 계속해서 춤을 배우실 건가요? 운동 대신 했으니까요. 꾸준히 했으면 좋겠는데요? 그 사실을 특별하게 받아들이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취미 삼아 하는 건걸요. 법무부 장관 퇴임 후 “앞으로 연애도 마음껏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된 게 들려오는 소식이 없네요. 여자로서의 행복은 이제 포기하신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잠시 미뤄둔 거죠.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게, 법무부 장관 하고 나니까 단 한 번도 데이트 신청이 안 오는 거예요. 법무부 장관 했다는 사실이 아주 그냥 쐐기를 박아버린 거죠. 특별히 하고 계신 재테크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글쎄요. 전 아직 빚이 있어서 재테크할 형편이 못돼요. 작년에 열심히 일해 일부 갚기는 했는데 아직 빚이 조금 남아 있어요. 사실 올해 안에 빚 다 갚고 강북에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제 꿈이었는데. 그래서 청운동, 가회동 쪽으로 집도 둘러보고 다녔었구요. 그 밖에도 올해는 법무부 장관 시절의 얘기를 엮어 책도 한 권 내야지 생각했었어요. 아무래도 둘 다 올해는 어려울 듯해요. 경제적인 문제로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굉장히 많았죠. 처음 변호사 개업할 때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는 걸요. 몇 년을 빚에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매일같이 어음을 막아야 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지요. 그런 생활이 2~3년 동안 계속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정신으로 버텨내기 어려워집니다. 경제적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다른 고통은 고민하고, 버티고, 선택이 가능한데 돈에 대한 고민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돈에 ‘헉헉’거리며 끌려가게 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거죠. 싸이에 직접 올리신 글을 보니 어릴 때 성격이 좀 괴팍하셨다구요. 마흔 살 넘어 낳은 늦둥이에 막내라고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거든요. 언니랑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에서 보면 조끼에 가방까지 든 건 저 혼자예요. 집에서는 내가 왕이라는 식으로 독하게 군 것 같고, 밖에 나와서는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만날 얻어맞고 다니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박정희’라는 남자친구가 절‘강냉이’라고 놀려대며 그렇게 괴롭혔는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몰라요.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학창 시절 쫓아다닌 남학생들은 혹 없었나요? 너무 웃긴 얘긴데,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화장도 안 한 맨얼굴에 생머리를 하고 다닐 때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고1 애들이 좇아와서는 절 귀찮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감히 나한테 그러는 거냐”며 혼줄을 내 쫓아보낸 적이 있죠. 정치인, 법조인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의상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떠한 스타일의 의상을 선호하는 편이며, 쇼핑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하시는지요. 옷은 원래 하나를 입어도 예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본격적으로 화장도 하고 신경을 좀 쓰게 된 건 로펌 대표를 하면서부터였구요. 옷은 저희 집 앞 백화점에서 주로 기성복을 사입는 편이에요. 동대문도 가고는 싶은데 시간 내서 가기가 참 어려워서 조카들이 사다주면 그럴 때나 좀 얻어 입는 편이죠.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뭐니 뭐니 해도 믿음, 그리고 사랑이 아닐까요?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건 역시 사람이더라구요. 돈, 명예 등 세상일에 욕심은 별반 없는 편인데 사람은 포기가 쉽지 않아요. 저를 아끼는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도 않구요. 사람들이 원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보자 해서 서울시장에 도전한 거니까 모두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제 행복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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