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604 건 검색)
- 빠졌던 ‘3·15의거’ 내년 새 역사교과서에 다시 수록
- 2024. 11. 06 21:17 사회
- 당초 16종서 해당 내용 누락 경남교육청 “수정 내용 확인” 내년 새 한국사 교과서(견본)에 ‘3·15의거’ 관련 연표가 빠져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승만 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를 대거...
- “3·15의거 빠진 역사교과서 즉각 반송하라” 학교에 호소
- 2024. 10. 28 14:56 사회
- 3·15의거 모임. 3·15의거기념사업회 제공 3·15의거 관련 단체들은 ‘3·15의거’가 누락·축소된 새 역사·한국사교과서를 반송해 달라고 경남지역 중·고등학교에 호소했다고 28일 밝혔다....
- 특별법은 ‘여순사건 희생자’, 교과서는 ‘반란 가담자’…전남서 역사교과서 ‘반발’
- 2024. 09. 08 11:54 사회|사회|지역|지역
- ... 총 9곳의 출판사가 심사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정부 검정을 통과한 중·고교 일부 역사교과서가 ‘여수·순천10·19사건 희생자’들을 ‘반란 가담자’ 등으로 기술해 전남지역에서 반발이...
- 반란여순사건교과서전남특별법
- 제국주의 옹호? 일제 ‘과거사 청산’ 서술도 최소화···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논란
- 2024. 09. 02 17:18 사회|사회
- ... 혼용친일 인사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교묘한 방식으로 옹호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국학력평...https://www...
- 제국주의교과서한국사한국학력평가원뉴라이트교육부일본
스포츠경향(총 27 건 검색)
-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교육부…검정교과서 개발 고민
- 2017. 05. 20 10:35 생활
-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게 된 교육부가 이번에는 검정 역사교과서 개발 문제로 고민에 휩싸였다. 새 검정교과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현장 적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장·차관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개월 전 공표한 교과서 개발 일정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일 복수의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는 출판업계가 집필중인 새 역사·한국사 검정교과서의 개발 일정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든 국정교과서를 ‘적폐’로 규정하고 취임 직후 중학교 역사·고교 한국사 과목을 검정교과서 체제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이에 교육부는 곧바로 국·검정교과서 혼용 체제인 역사·한국사 과목을 검정 체제로 바꾸는 내용의 수정 고시를 행정예고한 바 있다.
- 111
-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교육관련 시민단체·교총·전교조·교육감들 “환영한다” 한 목소리
- 2017. 05. 12 19:45 생활
-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교육부에 지시하자 교육계가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위민관 집무실에서 교육분야 제 1호 업무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적용 예정인 역사교과서 국·검정 혼용 체제를 검정 체제로 전환하도록 수정고시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 청산’ 중 하나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김석준 부산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김지철 충남도교육감도 등은 국정교과서 폐지와 관련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중·고등학교 과정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강윤중 기자 485개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한상권 대표(덕성여대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즉각 폐기 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그간 국정교과서로 낭비한 44억 원의 혈세 문제나 국정화 추진 과정의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현재 졸속으로 진행 중인 검정교과서 작업에 대한 전면 중단과 함께 2015교육과정에 대한 전면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중·고교 역사교사 2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절대 다수의 역사교사와 역사학자가 반대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이미 실패가 예견돼 있었다”며 “새 정부의 첫 교육정책이 국정교과서 폐지라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계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준 정부의 결단을 환영한다”며 “국정교과서 폐기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교과서는 정치 권력이 손댈 수 없는 교육의 자율적 영역에 속한다”며 “국정교과서 정책과 함께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 교원 성과급제와 같은 교육적폐를 청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그동안 국정교과서로 인한 교육현장의 혼란이 컸다”며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확고한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교총은 “그동안 검정교과서에 대해 이념 편향성이나 사실 오류 등의 문제점이 계속 지적돼온 만큼 보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더 이상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국정교과서 폐기와 함께 내년부터 적용되는 2015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도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 국정 역사교과사서
-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1권당 실제 비용 105만원?
- 2017. 03. 06 16:27 생활
- 교육부가 6일 전국 83개 학교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수업 보조교재나 읽기자료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신청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날 “2주동안 국정 역사교과서 활용 희망 신청서를 접수받은 결과 총 83개 학교에서 3982권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역사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된 문명고등학교가 연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국정 역사교과서 활용을 희망한 학교의 자율적인 운영이 침해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학교를 적극 보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신청학교 중 중학교는 33개교, 고등학교는 49개교, 특수학교는 한 곳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가 많다. 중학교는 전체 33개 신청학교 중 17개교가 사립이고, 고등학교는 49개 학교 중 45개교가 사립학교였다. 교육부는 신청학교 외에도 28개 국립 중등학교(상설연구학교 20개교, 특수목적 국립고 8개교)와 재외 한국학교 22개교에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한 경북 문명고의 경우 1학년 신입생은 187명이다. 교사용 교과서까지 합해 약 200권이 배포됐다고 계산하면 국정 역사교과서 희망학교에 배포될 3982권까지 합쳐 올해 배포되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총 4182권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비를 최소 44억원으로 기준으로 할때 교과서 한 권당 105만원이 든 셈이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실제 학교 수업에서 쓰일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체 학생이 사용하는 수업 보조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학교 신청과정 처럼 일부 학교가 교장과 재단의 의지로 국정 역사교과서 활용을 할 경우 교육 현장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적용 교육과정도 다르기때문에 시험에 출제를 하는 것도 어렵다. 교육부는 이날 전체 학교 수는 공개했지만 학교 명단과 지역 등은 공개를 하지 않았다.
- 교육부국정 역사교과서105만원
- [속보]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내용 확정 발표
- 2017. 01. 31 11:07 생활
- [속보]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내용 확정 발표 사진|YTN 방송 영상 갈무리
- 국정교과서교육부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 [비상식의 사회]20대 국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아야(2016. 06. 20 18:33)
- 2016. 06. 20 18:33 사회
- 이제 와서 다시 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린단다. 민주주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겠단다. 헌법이 명시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교육을 정권의 손아귀에 움켜쥐겠단다. 역사적인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출범했다. 국민들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 심판의 결과이다.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따라 정부(대통령)에 대한 감시·감독과 견제를 국회가 확실히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20대 국회는 그러한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의지라는 하나의 이유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으로 추진해 왔고, 총선 결과의 민심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추진해 나가고 있다. 제동장치도 없이 폭주하고 있는 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열차를 막지 않으면, 바로 내년 2017년 3월 1일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데, 그 혼란과 난맥상은 불을 보듯 환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8개월도 채 남지 않아, 인쇄·배포 등을 생각하면 제작기간은 반 년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필자 등 진행과정은 공개되지 않은 채 암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와 교사, 학생들이 앞 다퉈 반대의사를 밝혔고, 국민의 국정화 반대 여론은 행정예고 기간을 거치며 계속 높아갔으나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15년 12월 헌법소원까지 제기되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학생, 학부모, 교사와 교장, 집필자, 그리고 국민 등 3374명을 청구인으로 하여 국정화 고시와 근거법령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청구서를 제출하였다. 소송대리인단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48명의 변호사로 구성됐다. 그러나 현 정권 아래서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신속하게 또 진지하게 다루어 줄까는 의문이다. 재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3월 1일, 서울파이낸스센터앞에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국정교과서 저지를 위한 역사골든벨’ 행사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이 정답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어올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필자도 공개하지 않는 암흑 속 진행 평생 교사로 살아온 나는 ‘국정교과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있다. 내가 1974년부터 교단에 섰으니까 30년도 더 전 군사독재시절 얘기이다. 요즘도 나는 가끔 그때 학생들이나 함께했던 교사들을 만나곤 하는데, 특히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나면 수업시간에 있었던 얘기가 다시 꽃 피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교과서에 대한 얘기다. 내가 가르치던 국어는 당연히 국정교과서였는데, 획일화된 내용도 문제였지만 그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할 때의 여러 가지 토막얘기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정교과서에는 군사정권을 미화하거나 전·현직 대통령을 칭송하는 내용도 있었는데, 그런 내용이 나올 때마다 내가 화를 내며 “이런 따위를 교과서에 실으면 어찌 하냐?”며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침통한 목소리로 “여기 교과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며 그 배경설명도 재미있게 해 주면서 “이런 건 시험에 잘 안 나오지만, 그래도 모의고사나 입시 등에서 문제가 나오면 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등 애매하게 가르쳐서 몹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북관계나 북한의 현실 등에 이런 내용이 많았는데, 6·25전쟁의 배경과 발발 등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면서 내용을 좀 더 풍부하고 깊게 가르쳐 주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때도 있었단다. 한 번은 어느 단원을 새로 시작하는데, 내가 갑자기 “이 단원의 필자는 친일파여서 민족배반자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고, 그 내용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건너 뛸 수밖에 없다”며 대신 그 시간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친일파들의 행적과 문제점에 대해 토론수업을 하자고 해서 한편으론 재미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입시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린 친일파의 글이 한두 편이 아니어서 그걸 다 빼자니 전체 균형도 안 맞고, 그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골라 대안으로 가르치자니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며 수업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되니 나는 자연스럽게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안 가르치고 다른 엉뚱한 소리나 많이 하는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군사독재정권이 교과서와 입시로 교육을 철저히 통제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초·중등 보통교육을 독재정권의 유지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교과서는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이어 당시 체제에 복종하지 않았던 많은 교사들은 그 다음 해 벌어진 유월항쟁의 민주화기운에 힘입어 자주적 교원단체인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이어 1989년 5월에는 한 걸음 더 발전한 조직형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오한 대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지루한 재판이 계속되고 드디어 결심공판에 이르러 최후진술의 기회가 왔다. 나는 차가운 독방에서 한 평범한 교사인 내가 왜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교사로서 양심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다. 결심공판 날 재판정에서 나는 울먹이며 (촌스럽게) 최후진술이랍시고 몇 마디 했다. “내가 지금 이 시대의 한 교사로 푸른 죄수복을 입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서대로 살아라 하면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나도 내가 가르친 대로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오늘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교과서대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또 교단에 서겠지요. 그때도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얘들아 우리 최소한 우리가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는 교과서대로만이라도 살도록 노력하자. 나도 그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할게’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아니 우리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는 교과서는 그런 의미였다. 결국 나는 그 일로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왔다. 그 뒤에 또 한 번 끌려가서 2년의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 길거리교사 생활 10년 만에 복직하여 다시 교단에 섰다. 모든 게 변해 있었다. 교과서도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현 대통령을 칭송하는 글도 친일파의 글도 없었다. 대신 여러 종류로 다양하고 풍부했다. 교육민주화의 기반이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린단다. 민주주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겠단다. 헌법이 명시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교육을 정권의 손아귀에 움켜쥐겠단다. 그래서 영구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겠단다. 이미 스물일곱의 청년 전교조를 법 밖으로 추방하고, 무지막지한 탄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또 교사들이 해직당하고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학생들은 진실과 정의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결국 보통교육이 또 죽임을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압도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수를 점한 새누리당의 횡포로 야당은 아무 일도 못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시대착오적이며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일임에도 교육부가 고시로 밀어붙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회 지형이 바뀌었다. 야당이 의지를 가지고 힘을 모으기만 하면 고유권한인 입법권으로 얼마든지 이 횡포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재앙은 화산재처럼 온 땅을 뒤덮을 것이다. 원내 야 3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 비상식의 사회
- [사회]번갯불에 구워낸 역사교과서?(2011. 05. 18 16:11)
- 2011. 05. 18 16:11 사회
- ㆍ검정 인력 부족과 짧은 검토 기간으로 오류 속출 현재 고2·3학년생들이 배우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는 갑신정변 실패 후 개화파 4인이 찍힌 사진이 실려 있다. 이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은 왼쪽에서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이다. 하지만 법문사가 만든 교과서에는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으로 잘못 나와 있다. 두산동아가 만든 교과서 역시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김옥균’으로 틀리게 소개하고 있다. 그나마 두산동아 교과서는 작년에 법문사와 같은 오류를 실었다가 고친 것이다. 갑신정변 실패 이후 개화파 4인의 모습. |경향신문DB 이 외에도 7차 교육과정의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 과목의 크고 작은 오류를 정리한 결과 A4용지 880쪽 분량에 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리한 것이 아니다. 용인 고시원아카데미 역사 강사 신승욱씨(40)가 수 년간 작업한 결과다. 신씨의 꾸준한 문제제기 끝에 국사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에서 모두 500여 건 중 175건의 오류가 수정됐다. 신씨는 “최근 역사교과서의 이념이 어떻다는 말만 무성한데, 이념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 사실관계가 맞아야 할 것 아니냐”며 “평소 교과서의 이념성향 문제에 관심이 많던 일부 보수 언론사에도 제보를 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옛 홈페이지(http://old.history.go.kr)에는 신씨처럼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한 글이 1만건 넘게 올라와 있다. 한국사 전문 연구가가 아닌 신씨는 일일이 1차 사료를 찾아가며 오류를 찾는 대신 국사 교과서와 지도서,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 3종의 세계사 교과서와 시중에 나온 백과사전의 같은 부분을 비교, 대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오류를 하나둘씩 찾다가 본격적으로 오류 찾기에 나선 지 어언 3년째. “그동안 제대로 생계도 못 챙겼다”는 신씨는 “편찬위나 출판사나 민원을 넣고 전화도 걸고 난리를 쳐야 뭔가 좀 고쳐진다”며 그동안의 경위를 전했다. 연도, 사건 선후관계 오류 500여건 신씨는 “2010년판 국사 교과서가 마지막 국정 교과서이기 때문에 2009년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국사 교과서의 이름이 ‘한국사’로 바뀌고, 국정이 아닌 검정체제가 되어 종류도 6종이 됐다. 국정체제에서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된 편수관과 직접 통화도 하며 교과서를 고칠 수도 있었다. 반면 검정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들은 신씨의 질의에 응답을 거의 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출판사 수도 여러 군데여서 문제제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가 정리한 880여쪽 분량의 오류 내역의 대부분은 연도나 사건의 선후관계가 잘못된 것들이다. 이 중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오류도 상당히 발견됐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60쪽에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무역조약의 결과 “베이징과 한성 양화진에서의 무역을 허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양화진은 현재의 서울 마포구에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그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책 104쪽에는 이 내용이 “청은 서울과 양화진에서의 상점 개설을 보장받았다”로 되어 있어, 양화진이 서울 내에 위치하지 않은 것처럼 서술했다. 한 교과서 내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셈이다. 신씨는 중앙뿐 아니라 양화진이 서울 바깥에 있는 것처럼 서술한 다른 출판사에 내용 수정을 요구했으나 단 한 군데도 내용을 올바르게 고치지 않았다. 신승욱씨는 역사 교과서들을 비교분석, 수백건의 오류를 찾아냈다. |백철 기자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잘못된 내용이 많이 발견됐다. 교학사의 세계사 교과서는 기원전 73~71년 로마에서 벌어진 노예 반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해설에서 “영화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 그라쿠스나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들도 스파르타쿠스와는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100년에 태어난 카이사르는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전후로 변호사, 군사호민관 등으로 활약하고 있었으므로 스파르타쿠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또한 이 교과서는 매카시즘에 대해 “6·25 전쟁, 베트남 전쟁을 보면서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어, 매카시즘 열풍이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생겨난 것처럼 서술했다. 하지만 매카시즘이 시작된 연도가 1950년인 데 비해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시작됐다. 신씨는 이와 같은 오류를 출판사 측에 지적했지만 2011년판에서 이런 오류들은 고쳐지지 않았다. 신씨는 “앞으로 사교육 강사인 나보다는 공교육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교과서 오류를 수정했으면 좋겠다”며 올해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이 배울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는 검정 과정과 교과부 모니터링단 활동에서 고쳐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 검정은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담당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2009년 11월부터 7개월에 걸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했지만, 실질적 검정이 이뤄진 본심사 과정은 한 달 남짓이었다. 본심사에서 11명의 검정위원은 3~4주간 각자 심사한 뒤, 5일간의 합숙 심사에서 13종의 교과서를 6종으로 압축했다. 나머지 6개월은 검정위원 섭외, 기초조사, 검정 불합격 출판사의 이의신청, 국사편찬위원회 감수 등에 사용됐다. 교육과정 주기 단축도 혼란 낳아 문영주 교육과정평가원 검정평가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연구위원 9명이 본심사에 앞서 1개월간 교과서 오류 내용을 중점 점검하고, 본심사에서 지적된 내용을 검토한다”고 답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연구위원들은 “분량이 많아 보고서를 완성하는 데 급급했다”고 한다. 기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사 교과서를 만들 때 6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점검했음에도 신씨에 의해 수백 군데의 오류를 지적당한 것과 비교된다. 검정이 끝난 이후에는 교과서의 오류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문 위원은 “평가원의 역할은 검정을 통해 최종 합격본을 가려내는 것이고, 검정 이후에 발생한 교과서 상의 오류는 교육과학기술부 교과서기획팀에서 담당한다”고 전했다. 유대균 교과부 교과서기획팀 연구관은 “우리는 역사뿐만 아니라 전 과목 교과서를 담당한다. 한 해 발매되는 교과서는 4500여종이 되는데, 교과서기획팀 전문인력은 단 3명이다”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용검토 외에도 개발, 편찬 등 관련 임무를 모두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신씨처럼 교과서 비교분석을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유 연구관은 “수정 요구가 들어오면 집필자에게 내용 검토를 요청하는데, 전공자도 아닌 우리가 교과 내용을 깊게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을 편 바 있는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최근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한국근현대사를 따로 만들었다 없애는 등 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체계가 통째로 바뀌면서 내용상의 오류를 걸러낼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교육과정 주기가 이전의 5년에서 2년이 되면서 집필기간도 짧아지고 오류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바 있는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집필진끼리도 내용을 검토하지만, 미처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검정 과정에서 잘못된 사실을 최대한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교수는 “교과서에서 오류가 속출했다면 이는 검정위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했거나 검정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다고 봐야 한다. 뭘 새로 만들 게 아니라 전문성 있는 인력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정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일촉즉발! 한·중·일 역사교과서 전쟁(2005. 03. 22)
- 2005. 03. 22 사회
- 동아시아 패권을 다툰 '총칼 전쟁'이 끝난 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미래를 차지하려는 소리 없는 '역사교과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 반발 따른 신국가주의 바람인가, 각국 우익세력의 반란인가 ‘역사 교과서는 미래를 여는 창.’ 동아시아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뤄온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역사교육연대)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미래의 창'인 역사교과서를 놓고 2005년 봄, 한-중-일 3국간에 일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과 한국-중국은 근대사 문제로, 중국과 한국은 고대사 문제로 상대국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우익사관을 훨씬 더 반영한 후소샤(扶桑社)의 새 역사교과서가 오는 4월 검정을 거친다. 동북공정 추진으로 한국은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도 고대사 서술과 관련해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894년 청-일 전쟁, 1904년 러-일 전쟁 등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툰 과거의 전쟁이 끝난 지 100여년의 세월이 흘러 '미래'를 차지하려는 '역사교과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포성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총칼이 동원되지 않은 '소리없는 전쟁'은 벌써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교육은 가까운 미래에 전쟁을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교육연대 양미강 상임운영위원장은 “역사교과서는 역사인식을 재생산하고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 투영되는 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어느 나라든 역사인식의 형성은 학교에서 이뤄지며, 그 통로는 역사교과서“라고 지적했다. 역사학 교수 출신인 강창일의원(열린우리당)은 “역사교과서 문제는 국가 구성원의 정신적 기반을 만들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가장 큰 정치“라고 말했다. 강의원은 역사교과서가 정신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는 정신적 무기 될 수 있어“ 일본의 우익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2001년 우익사관으로 기술된 새 교과서를 만들면서 “지금은 일부에서 비판이 있지만 이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이 성인이 된 몇십년 후에는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이들이 지원한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 시민사회의 반발과 주변국들의 항의로 일선 학교에서 채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역모는 4년 후를 다짐했다. 올해 '4년 후의 복수'가 시작되고 있다. 후소샤의 새 역사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가 4월 초 발표될 예정이다. 현해탄을 건너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왜곡 내용이 하나씩 들려오고 있다. 역사교육연대는 3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후소샤 역사교과서 개정판이 '일제 식민지 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역사왜곡 내용을 담고 있다고 공개했다. 또한 일제의 창씨개명이 강제로 이뤄진 사실을 뺀데다 2001년 판에 기술된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다'라는 표현을 아예 삭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민(사회) 교과서에는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의 영토'라고 명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교과서의 화보에는 독도전경 사진이 실렸다. 여기에 더욱 기름을 끼얹은 것은 일본 당국의 반응. 일본의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지난해 11월 “일본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표현이 줄어든 것은 잘된 일“이라고 주장했다가 비판여론에 밀려 사흘 만에 공개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리아키 문부상은 지난 1월 “자학적인 교과서가 엄청나게 많다“고 발언,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3월 6일에는 문부과학성 정무관인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의원이 “근린제국조항이 생기는 바람에 자학사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3월 4일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은 곧 반일교육이므로 중국의 역사교육에 대한 개선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발언, 중국측을 자극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도 동북공정의 추진으로 우리에게는 최근 경계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교육부의 의뢰로 중국역사교과서 38종을 분석한 결과 18종의 교과서에서 한국 고조선과 고구려 등의 고대사 관련 조항이 전혀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보고서에는 “이러한 양적인 축소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교과서의 지도에 보이듯이 과거 중국의 영토를 과장하여 표시하는 한편 고려 이전의 한반도를 마치 중국이 지속적으로 지배한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나타나 있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중국 근-현대사)는 “동북공정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뤄지는 1차적인 과정이며 동북공정의 연구성과가 교과서에 반영되는 2차적인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에 대해 '세계화'를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념 대립이 희석화되고 1990년대 들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신국가주의'를 주창할 필요가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김한종교수는 “이념의 대치되는 개념으로 국가의 이익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가주의자들의 개입이 문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창일의원도 “글로벌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각국의 우익 세력이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며 최근의 역사적 기류를 설명했다. 세계에서도 특히 동아시아라는 특정 지역에서 역사교과서 논쟁이 일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 몰락 이후 근대화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식민지(한국)와 반식민지(중국), 제국주의(일본)를 경험한 세 국가가 1945년 종전 이후 동-서 냉전이라는 새로운 틀로 대립구도를 형성, 제국주의의 폐해를 제대로 체험할 틈을 갖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승전국인 미국이 일본에서 제국주의 청산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반공 전초기지 건설에 더 큰 비중을 둠에 따라 가해국인 일본에서부터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 동북공정 성과 반영 주시해야 역사교과서 문제는 영토문제로 인해 더욱 예민한 사안이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센카쿠열도(조어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간도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 영토분쟁의 교과서 반영 여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인 셈이다. 이런 역사교과서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민단체가 앞장서고 있다. 2001년 4월 '일본교과서바로잡기 운동본부'로 시작된 역사교육연대가 좋은 사례. 한-중-일 시민단체와 역사학계가 중심이 된 이 단체는 3국간의 공동적인 역사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5월에는 3국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를 발간한다. 양미강 상임위원장은 “3국의 시민단체와 학계 사이에 신뢰를 구축해 평화를 추구하는 역사의식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본과 한국-중국의 대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쟁세력과 반전평화세력의 대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익화로 점차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4년 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보다 지금 더 여건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의원은 “일본에서는 역사교과서 문제에 정치인들이 개입하고 있는 만큼 역사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위원장은 “일본에서는 4년마다 교과서가 개정되는데 매번 비난만 퍼붓는 것에서 끝나면 되지 않는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특정기구를 통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위원장은 또 “국가가 할 수 없는 영역도 있는 만큼 3국의 시민단체는 시민단체 나름대로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기자 hou@kyunghyang.com]
- 표지 이야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