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81 건 검색)
- ‘노벨 평화상’ 니혼 히단쿄, 시상식 연설문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 언급
- 2024. 12. 10 21:39 국제|국제
- ... 히단쿄를 대표해 수상 연설을 한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은 이날 영어와 일본어로 미리 배포된 연설문에서 니혼히단쿄를 출범했을 때 두 가지 기본 요구사항이 있었다면서 “첫 번째는 전쟁을 시작하고...
- 노벨상노벨평화상원폭 피해자니혼 히단쿄
- [속보] 윤 대통령 “어떤 어려움 있어도 4대 개혁 완수”···총리가 시정연설문 대독
- 2024. 11. 04 10:24 정치|정치|정치
- ...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독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문을 통해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라며...
- [송혁기의 책상물림] 좋은 연설문, 멋진 연설문
- 2023. 08. 22 20:22 오피니언
- ...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학에 속할지와 무관하게 좋은 연설문과 안 좋은 연설문, 그리고 멋진 연설문은 분명히 존재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한 편의 연설문으로 평가해 보면 어떨까?...
- 송혁기의 책상물림
- ‘키맨’ 유동규 “김용에 건넨 돈은 경선자금···경선 땐 돈 안 나오지 않느냐, 텔레그램서 연설문도 검토”
- 2022. 10. 28 19:44 사회
- ... 있었다면서 “(대화방에서 이 대표의) 이미지를 어떻게 할 것이냐, 어디에 가서 연설을 하면 연설문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다 이런 것들을 이야기했다. 텔레그램으로 다 했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은...
스포츠경향(총 21 건 검색)
- 고영태 “최순실 연설문 고치는 것 목격…靑 직원들 개인비서처럼 대해”
- 2017. 02. 06 15:20 생활
- “연설문 고치는 것 봤다”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고영태씨는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연설문 고치는 것을 목격한 게 사실이냐’는 검찰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고영태 전 더불루K 이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는 “더블루K 사무실에서 (최씨가) ‘프린터가 안 된다’고 해서 최씨의 방에 들어갔더니 노트북 화면에 그런 문구, 그런 연설문 같은 게 쓰여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와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검찰이 묻자 고영태씨는 “류상영(전 더블루K 부장)이 얘기했던 것도 있고, 제가 직접 지켜본 것도 있다”며 “(최씨가) 청와대에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고 청와대 비서들이 (최씨의) 개인비서인 것처럼 했다”고 답했다. 이어 “(최씨가) 무슨 일을 해도 ‘대통령을 위해서 일한다, 대통령 때문에 일한다, 대통령의 신의를 지키면서 일한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해서 둘의 관계가 굉장히 가까운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함께 사업을 운영하는 등 과거 최순실씨의 최측근이었던 고영태씨는 이후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한 최씨 비리를 언론 등에 폭로했다.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제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최씨는 앞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변론에서 고씨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 바 있어 이날 재판에서 ‘진실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검찰 주신문을 거쳐 최씨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진행한 이후 최씨가 직접 고씨에게 질문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 황교안 저격수 하태경, 최순실 연설문 공개할까 “미스터리한 연설문 세계”
- 2016. 12. 22 08:25 생활
- ●황교안 저격수 하태경, 최순실 연설문 공개할까 최순실 불출석 사유서/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페이스북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불출석 사유서를 공개했다. 하 의원은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최순실이 고쳤다는 연설문 원본을 꼭 봐야겠다는 의지가...”라며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최 씨의 불출석 사유서를 공개했다. 하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순실 ‘공항’장애 다 나았습니다. 내일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에 공항 장애 언급이 없습니다”라며 “대신 심신이 ‘회폐(?)’하다고 하는군요. 최순실이 고쳤다는 연설문 원본을 꼭 봐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솟구칩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그런데 회폐는 황폐와 피폐를 합성한 신조어일까요? 최순실의 연설문 세계 너무 미스테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하 의원이 공개하 최 씨의 불출석 사유서에는 “저는 현재 수사나 구속수감으로 평소의 지병으로 심신이 ‘회폐’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다. 이를 본 누리꾼은 “제2의 공항장애가 등장했다” “생각하고 쓴게 아니라 따라 적은 것만 같다” “연설문도 공개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하 의원은 21일 진행된 국회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권한대행과 언쟁 중 “촛불에 타 죽고 싶냐”며 일침을 가했다.
- 하태경
- [2차 청문회 속보] 조인근 “연설문 외부서 고친 느낌 못 받아”
- 2016. 12. 07 15:18 생활
- [2차 청문회 속보] 조인근 “연설문 외부서 고친 느낌 못 받아” 조인근 “연설문 외부서 고친 느낌 못 받아”
- 연설문조인근2차 청문회
- [2차 청문회 속보] 고영태 “최순실, PC로 연설문 읽었다”
- 2016. 12. 07 15:18 생활
- [2차 청문회 속보] 고영태 “최순실, PC로 연설문 읽었다” 고영태 “최순실, PC로 연설문 읽었다”
- 최순실2차 청문회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내 인생의 노래]‘나 어떡해’-‘내가 대통령 연설문을 쓰다니…’(2016. 12. 12 17:29)
- 2016. 12. 12 17:29 문화/과학
- 고교 시절 가장 인기 있는 친구는 MBC 대학가요제에 나온 노래를 기타 치며 부르는 녀석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선망했다.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그런 노래를 불러야 ‘지성’을 인정받을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시늉이라도 내야 했다.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곡인 ‘나 어떡해’를 목 놓아 불렀다. 외할머니는 “어떡하긴 뭘 어떡하냐고. 누가 죽기라도 했냐고”라며 역정 내셨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렀다. “나~ 어떡해.” 그렇게 고3이 됐다. 1980년 5월은 특별했다.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군인의 총칼에 무수히 스러졌다. 광주와 가까운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학생들이 궐기했다. 광주·전남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고등학생이 봉기한 유일한 사건이었다. 반장이었던 나는 자동으로(?) 대열의 선봉에 섰다.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문을 탱크 두 대가 막고 있었고, 계엄군은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입으로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나 어떡해’를 되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이 됐다. 1990년. 입사한 회사가 하필 창립 20주년이었다. 신입사원인 내게 20년사 제작업무가 맡겨졌다. 언론인 출신 필자의 수발을 드는 것이 내 일이었다. 요청한 자료를 챙겨다주고 원고를 받아오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분이 다른 회사 사사를 베껴주는 것이 아닌가. 회사에 신고(?)했다. 항의하고 계약금을 돌려받아오는 일까지 잘 해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창립기념일까지 하늘이 두 쪽 나도 책이 나와야 하는데, 필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나 보고 쓰란다. 자료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신입사원이 20년 역사를 쓰다니. 그야말로 ‘나 어떡해’였다. 또 10년이 흘러 2000년이 됐다. 그해 6월 15일은 나에게나 우리 민족에 역사적인 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평양에 가면서 국민에게 인사말을 했다. 연설 내용 중에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회담에 임하겠습니다’ 이 말이 꽂혔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저런 연설문을 쓰고 싶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간절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는지, 청와대에 들어와 대통령 연설문을 쓸 의향이 없는지 물어본다. 내가 대통령의 연설을 쓰다니. 그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을 쓰다니.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지만 겁도 났다. 또다시 ‘나 어떡해’. 2005년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몇몇 비서관이 오찬을 함께했다. 대통령이 물었다. “여기 다들 깜빵 갔다 왔지요?” 둘러보니 나만 갔다 오지 않았다. 대통령께 이실직고했다. 대통령은 순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윤태영 실장이 구해줬다. “강 비서관은 고등학교 때 시위를 해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아 그래요?” 하며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참여정부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씀 같았다. 나는 그때 1980년 선봉에 섰던 게 다행스러웠다. 짐승들이 판치던 그 시절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래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나마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용감하게 20년사 쓴 것도 행운이었다. 덕분에 김우중 회장의 연설을 쓰게 됐으며, 그 인연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는 영광스런 일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세월이 거꾸로 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역사가 역주행했다. 이제 ‘나 어떡해’ 하지 않는다. 두 발을 굳건히 세우고 광화문에 선다. ‘나 어떡해’는 그저 내 인생의 노래로 남아 있을 뿐.
- 내 인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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