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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전시 반대’ 오사카부 지사, 일본 제2야당 새 대표로
위안부 전시 반대’ 오사카부 지사, 일본 제2야당 새 대표로
2024. 12. 01 21:22국제
... 자매결연 파기를 통지했다. 오사카부 지사 시절인 2021년 6월에는 오사카부립 전시시설이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등을 전시하는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
요시무라 히로후미일본유신회
대만 원주민·미군 위안부 이야기···VR로 체험하는 ‘타인의 세계’
대만 원주민·미군 위안부 이야기···VR로 체험하는 ‘타인의 세계’
2024. 11. 14 18:22문화
... 등을 활용한 한국과 캐나다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김진아의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볼 수 있다. 1992년 벌어진 ‘윤금이 피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동두천’(2017), 미군...
VR권하윤김진아미군위안부국립현대미술관
정의기억연대 “日정부, 유엔 위원회의 ‘위안부’ 피해자 권리 보장 권고 이행해야”
정의기억연대 “日정부, 유엔 위원회의 ‘위안부’ 피해자 권리 보장 권고 이행해야”
2024. 11. 05 18:12사회
... 29일 제9차 ‘유엔여성차별철폐 조약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기이행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 및 보상을 위해 노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안부는 매춘” 발언 류석춘 전 교수 명예훼손 2심서도 ‘무죄’
위안부는 매춘” 발언 류석춘 전 교수 명예훼손 2심서도 ‘무죄’
2024. 10. 24 11:49사회
... “직접적인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니까”라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위안부 매춘’ 발언에 관해 “이 발언이 대학에서 강의 중에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스포츠경향(총 334 건 검색)

[종합] ‘위안부 소설 쓴’ 차인표 “복수심에 시작···피해자 마음 가볍길” (유퀴즈)
[종합] ‘위안부 소설 쓴’ 차인표 “복수심에 시작···피해자 마음 가볍길” (유퀴즈)
2024. 08. 29 10:16 연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배우 겸 작가 차인표가 위안부 소설을 집필한 이유를 전했다. 2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차인표가 출연했다. 이날 차인표는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 도서에 선정된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하고 어리둥절하다. 주변도 놀랐지만 내가 제일 놀랐다. 날 차인표 작가로 부르는 게 어색하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 측에서 직접 연락이 온 거냐’는 질문에 “맞다. 옥스퍼드대 교수님한테 연락이 왔다. ‘3~4학년 석박사 과정에 쓰고 싶다’고 제안하길래 ‘감사하다’고 했다”며 “교재로 선정되면 각 칼리지에 43권을 비치한다고 해서 보내줬다. 옥스퍼드는 책이 한 번 들어가면 마음대로 폐기를 못 한다고 하더라. 내년쯤 가서 한 번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1997년 8월 4일 집에서 TV로 뉴스 생중계를 보는데, 김포공항 입국장 문이 딱 열리니까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걸어 나오더라”라고 회상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발견된 훈 할머니라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차인표는 “그 분이 1942년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5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 한국말을 잊어버리셨다. 근데 ‘아리랑’을 더듬더듬하며 부르시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여성이 그런 일을 당했지 않았나? 그 역사를 생각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여성들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이었다. 그 감정이 몇 달간 진정이 안 되다가 ‘내가 이걸 소설로 한 번 써 보자’ 해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재석이 “소설을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데까지 10년이 걸리셨다”라고 언급하자, 차인표는 “소설 작법도 모르고 아무 기초 지식이 없으니까 뒤늦게 배우기 시작했다. 독학도 하고 작법 책도 읽고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차인표는 “글을 쓰다 보면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머리 뒤쪽에서 누군가가 계속 말을 건다. ‘쓰지 마. 포기해. 이걸 누가 읽는다고 이걸 쓰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인표야,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중요하지만,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상상력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고 하더라.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출밤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차인표는 소설 배경이 되는 백두산을 직접 오르고, 꾸준히 자료를 조사했다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차인표는 “당시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나이가 열여섯, 열 일곱이다. 실제로 훈 할머니도 본인 증언에 의하면 열여섯 때 모내기하고 있던 마을에서 짐 싸서 나가봤더니 동네 온 처녀들이 가득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15일 배를 타고 가니 싱가포르에 도착했다”라며 “사람이 정말 존귀한데 그런 취급을 받은 역사가 우리나라에 있었다. 가슴이 아프고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차인표는 소설 결말에 대해 “저도 할머니가 안 끌려가는 걸 쓰고 싶었다. 처음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소설을 썼지만, 결국은 할머니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드리고 싶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군 장교 ‘가즈오’도 ‘순이’를 업고 가면서 사과를 한다”고 설명했다. 차인표는 옥스퍼드 강연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차인표는 “위안부라는 사건이 어떤 건지 설명해드리고,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는지에 대해 초점을 뒀다”면서 “가슴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The Globalists’ 79주년 광복절 특집, 위안부 피해자 다룬 소설로 옥스퍼드 간 ‘작가’ 차인표
‘The Globalists’ 79주년 광복절 특집, 위안부 피해자 다룬 소설로 옥스퍼드 간 ‘작가’ 차인표
2024. 08. 13 05:57 연예
아리랑TV 오는 14일 오후 4시 50분 아리랑TV ‘The Globalists’는 광복절 특집 특별 편성으로 배우 겸 작가 차인표를 만나 그의 작품 ‘우리가 언젠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 대해 손지애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의 진행으로 들어본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고 있는 대담 프로그램 ‘The Globalists’가 79주년 광복절을 맞아 특집방송을 준비했다. 기존보다 길어진 40분 편성으로 방송되며 광복절 당일에도 재방송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광복절 특집 방송의 주인공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돌아온 배우 겸 작가 차인표다. 아리랑TV ‘작가’ 차인표는 앞서 이미 3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가 처음 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최근 옥스퍼드 대학교의 필수 도서로 선정됐다. 손지애 교수가 “수많은 소재 중 왜 하필 위안부를 첫 소설의 소재로 선택했는지”를 물었다. 차인표 작가는 “신혼 시절이었던 1997년, 집에서 TV를 보다가 캄보디아에서 55년 만에 돌아온 위안부 훈 할머니의 입국 장면을 봤다”면서, “16세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한 소녀가 광복 이후에도 수치심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다른 많은 소녀들처럼 55년을 캄보디아 정글에서 숨어 살았고, 죽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입국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던 훈 할머니를 보고 슬픔, 분노, 실망, 굴욕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만약 이 소녀들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든 고향에 머물게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손 교수가 “소설을 완성하는 데 10년이란 시간이 걸리고 처음 기획했던 내용에서 방향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처음 줄거리는 강한 호랑이 사냥꾼이 일본군들을 모두 물리치고 복수하는 내용으로 매우 간단했다”고 말했는데, “50페이지 정도 작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시 쓰고 있던 중고 노트북이 고장이 나면서 폭발해 버렸고, 나는 그걸 ‘이렇게는 쓰지 말라’는 계시로 이해했다”고 회상했다. 아리랑TV 그 뒤 6년의 공백 기간을 거쳐 다시 소설을 쓰게 된 이유로 차인표 작가는 “한동안은 연기에만 집중했는데, 2006년 당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내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위안부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까’를 고민하게 됐고,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차인표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는 기간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던 가족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했는데, “어머니가 ‘진실이 없는 상상력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라고 조언을 하셔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두산을 직접 찾아가 보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초보 소설가들은 잘 아시겠지만, 소설을 쓰다보면 ‘이런 건 아무도 읽지 않을 거야, 그만 둬’라고 말리는 내면의 목소리와 맞서 싸워야 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단 한 명의 충성스러운 독자가 ‘당신은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응원해줬다”고 아내 신애라 배우의 지지에 큰 힘을 받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손 교수가 “79주년 광복절을 앞둔 현재도 변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대처”에 대해 의견을 묻자 차인표 작가는 “100년 전 문제가 아직도 진행 중인 이유는 한 시대의 고통이 충분히 공감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세계 어느 사람이든 함께 모여 위안부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한다면 강제된 사과가 아닌 진정한 사과가 나오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화해가 나올 것”이라고 피력했다. 아리랑TV 광복절 특집으로 10분 길게 특별 편성(40분 방송)된 ‘The Globalists’는 14일 수요일 오후 4시 50분에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차인표 작가가 직접 뽑은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핵심 장면을 그의 낭독으로 들어볼 수 있다.
[화제의 책]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고문기술자의 조우··· 소설 ‘사물의 눈’ 눈길
[화제의 책]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고문기술자의 조우··· 소설 ‘사물의 눈’ 눈길
2023. 11. 26 11:21 생활
사물의 눈 표지 소설가 우경미가 장편소설 ‘사물의 눈’(도서출판 나비문)을 펴냈다. 계간지 ‘작가세계’로 등단하고 2011년 단편집 ‘나비들의 시간’을 발표한 이후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고문 경관으로 낙인찍혀서 이국땅으로 도피 중인 ‘그’가 줄거리를 이끈다. 조직의 명령으로 이국의 도시에 숨어 지내고 있는 그는 호수 산책길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고 푼돈을 받는 주정뱅이 영감을 알게 된다. 영감을 통해 동족이자 이 도시에 은둔해 있는 또 한 명의 미스터리한 젊은 여자를 만난다. 그가 영감과 여자를 알게 되는 소설 속의 주요 공간인 ‘호수’는 어디에나 있는 곳 같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장소처럼 흥미롭게 서술된다. 모자 모양의 호수가 있는 작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2차세계대전의 희생자인 주정뱅이 영감과 일본군위안부였던 김달이, 나치 피해자 애나 할머니가 주요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은 과거사에 머물지 않는다.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두 사람,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별칭으로 가지고 있는 ‘그’와 ‘여자’로 인해 지난 역사의 비극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김달이 할머니가 묻힌 묘역과 나치가 동네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성당 동굴, 관을 파는 장의 가게와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에는 작가 우경미의 유럽생활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상처받은 인물들이 토해 놓는 묵직한 대사도 울림을 준다. 문화평론가이자 시인인 오광수는 이 소설의 해설에서 “경장편 분량의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며 “이국땅에서 떠돌다가 생을 마친 일본군위안부를 통해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반추케 하고, 그 고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환기해 준다”고 평했다. 한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미국과 영국에서 거주하다가 귀국해 현재는 문학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타임슬립으로 응시한 위안부 소녀 이야기, 연극 ‘뚜껑없는 열차’···10일 막 올라
타임슬립으로 응시한 위안부 소녀 이야기, 연극 ‘뚜껑없는 열차’···10일 막 올라
2023. 10. 07 03:29 생활
연극 ‘뚜껑없는 열차’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한 위안부 소녀의 이야기가 다시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무대에 올라간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화냥녀’라는 말이 있다. ‘화냥녀’는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 그리고 더 심한 욕(?)을 포함한 여자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환향녀’에서 자음동화 등 말의 변화와 뜻의 변화에 ‘화냥녀’가 됐다. 그럼 ‘환향녀’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조선인들은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으로 불리었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에서는 반겨주지 않았다. 청나라에 돌아온 여인들이 약 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고 당시 조선에서는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됐다. 이 여인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조정에 의해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돌아왔을 때 모든 책임을 이 여인들이 지게됐다. 조선 양반들의 성리학을 내세우면서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다시 일제강점기에 되풀이 된다. 일제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전쟁터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다 나라가 해방이되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사람들은 이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지금도 일본은 사과없이 위안부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뚜껑없는 열차’는 2020년 제6회 무죽페스티벌의 개막 초청작으로 처음 시작된 연극이 대학로에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연극됐다. 자주 무대에 오르는 연극이라 떠들썩하게 요란하게 관객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슴아픈 연극이다. 이 가슴아픈 연극을 작업그룹 동고동락에서 다시 올린다. 작업그룹 동고동락측은 이번 연극에 대해 “2023년 한국메세나협회 예술지원 매칭펀드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되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이 과거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에게 반성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극 ‘뚜껑없는 열차’는 캐릭커쳐 작가인 우순은 친구의 부탁으로 소녀상의 소녀를 실사로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고민하던 우순은 우연히 뚜껑없는 열차를 타고 순심이가 살고있는 1948년으로 가게 된다. 과거로 돌아간 우순은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자신이 그리려고 하던 느낌과 비슷한 순심을 발견하게 된다. 순심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왔지만 전쟁터에 갔다왔다는 말을 동네사람들에게 할 수가 없다. 이 사실을 알게된 우순은 순심을 그리고 싶어하지만 순심 아버지의 반대로 순심을 그릴 수 없다. 순심의 아픈 마음을 우순은 그릴 수 있을까? 연극은 이유 없이 끌려가 전쟁터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소녀들에게 바치는 무대다. 또한 1948년 갈등의 그 날 이야기를 몰입감 높은 전개로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타임슬립 연극 ‘뚜껑없는 열차’는 오는 10일부터 22일 까지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주간경향(총 38 건 검색)

[만화로 본 세상]풀-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삶(2022. 02. 04 15:48)
2022. 02. 04 15:48 문화/과학
2017년 8월 14일 나온 김금숙의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부르는 ‘하비상(최고의 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나라 바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이 호평받은 이유는 만화미학적 완성도와 함께 폭력과 피해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다. 가령 작가는 이옥선이 ‘위안소’에서 겪은 첫 강간을 3쪽에 걸친 18칸의 어둠으로 채운다. 피해자가 당한 낱낱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시도다. 김금숙 작가의 표지 / 보리 또한 ‘일본군에 의한 인권유린’으로만 피해자의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위안소’ 전과 후의 이옥선의 삶에 드리운 층층의 구조적 폭력을 섬세히 짚어낸다. 이옥선은 식민지 조선에서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났다. 감당할 설움이 많고 복잡했다. 조선인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가난해서, 여자라서 울었다. 피해자들에게 ‘고향’은 그저 그립고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일제가 패망하고도 이옥선은 오랫동안 중국에 남아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조국은 성폭력을 겪은 여성을 위로하기보다 부끄러워했다. 간신히 한국에 돌아온 이옥선의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새겼다. 자신을 자꾸만 주저앉히는 세상에서 이옥선은 삶의 강한 의지로 일어섰다. <풀>은 그렇게 일어나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이옥선을 상징한다. 여성폭력의 피해자를 ‘꺾인 꽃’으로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김금숙이 ‘나눔의집’에서 이옥선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나눔의집’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거주시설이다. 이옥선을 포함해 현재 4명의 피해자가 있는 이곳이 2020년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직원들의 공익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고 피해자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익제보 후 실시한 민관합동조사에 따르면, 88억여원의 후원금 중 피해자에게 직접 쓴 건 2억원 남짓이었다. 공익제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기울어질 정도로 낡은 침대를 그대로 쓰게 하거나 씹지 못해 부드러운 음식을 드셔야 하는 분들께 일반식을 제공할 정도로 서비스의 질이 충분히 좋지 못했다고 한다. 소중한 역사적 기록인 피해자들의 물품도 함부로 방치하거나 훼손했다. 시설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시민단체들은 나눔의집의 후원금 유용과 허술한 운영 배경에는 이곳을 규모가 더 큰 노인요양시설로 확장하려는 법인의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눔의집’ 문제는 현재 답보상태다. 세간의 관심이 식으면서 법인은 툭하면 소송을 걸어대는 방식으로 제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제보자들이 더 괴로운 건 할머니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제보자들은 문제를 드러내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것이 패착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항일’이나 ‘반일’의 관점과 태도로 ‘위안부’ 문제를 대했지, 피해자의 ‘삶’을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공익제보자 중 한명인 학예사 김대월이 나눔의집에 들어와 연 첫 전시의 제목이 <할머니의 내일>이다. 피해자든 운동가든, 한사람의 단면만 보려 하지 말고 두터운 삶을 가진 한 존재로 오롯이 봐달라는 뜻으로 그는 할머니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을 소중히 기록해 전시했다. 그러한 시선이 필요할 때다.
만화로 본 세상
위안부 2차 판결’ 무엇을 배울 것인가(2021. 04. 30 11:28)
2021. 04. 30 11:28 사회
ㆍ‘국가면제 인정’ 소송 각하… 인권 영역에서 선도적 판결 아쉬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국내 법원이 일본을 피고로 재판을 해도 판결의 전제는 국제법이 된다. 이에 따라 국내 법원에서 승소해도 그 요건이 국제법에 부합하지 못하면 실질적 해결은 될 수 없다. 일본을 판결에 승복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크워크 소속 회원들이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올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2건이 3개월 간격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두 재판의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피해자들이 승소한 판결에는 ‘정의’라는 명예가 붙었다. 반면, 패소한 판결에는 ‘몰지각한 판결’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 법원에서의 승패가 아니다. 승소해도 당장 피해자들이 일본에 청구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내 법원에서의 승패가 아닌 두 판결 중 어느 쪽이 더 국제법 요건에 부합하느냐이다. 이를 파악해야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편의상 1·2차 소송으로 나뉜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나눔의집 할머니들이 중심이 된 1차 소송에 “피고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지난 4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동일한 피해 사안을 다룬 2차 소송을 “각하한다”고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같은 사안에 대한 상반된 판결 동일 사안에 대한 정반대의 판결은 ‘국가(주권)면제’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에 발생했다. 국가면제란 주권국가의 행위는 타국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국가면제는 일본에 유리하고, 국가면제 예외는 피해자 측에 유리한 구조다. 1차 소송 재판부는 원고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차 소송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면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국제법의 대세”라며 2차 소송 재판부를 비판한다. 하지만 다수의 국제법 학자들은 “국제법의 기본 원칙은 여전히 국가면제의 인정”이라고 전제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면제에 예외를 두자는 의견이 조금씩 제기된다”는 것이 상황에 대한 보다 정확한 설명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법에 따르면 소송이 제기된 국가 내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라도 국가면제가 인정된다”며 “피해자가 배상을 받지 못해 부당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제법의 취지는 국가 간 합의로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돕고 있는 학자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2차 소송에서 증인으로 나선 백범석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경향을 불문하고 타국의 주권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이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원칙”이라며 “상업 행위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제한적 국가면제론’ 정도까지 나아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다툴 것을 주장하는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 역시 “냉정히 말해 국가면제 예외를 대세로 보기는 어렵다”며 “기존 판례 대부분 국가면제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2차 판결의 논리가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제법의 이 같은 경향은 소송 과정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에 예외를 밝힌 ‘유엔 국가면제협약’, ‘유럽 국가면제협약’을 논박하고 ‘ICJ 판결’을 국가면제의 근거로 밝혔다. 구체적으로 유엔 국가면제협약은 비준국의 수를 채우지 못해 정식 발효되지 못했고, 유럽 국가면제협약 가입국은 8개국 정도다. 유엔 국가면제협약의 비준국 수는 회원국 총 193개국 중 11.3%에 불과하다. 이를 유럽 국가면제협약 가입국과 합산해도 19.2% 정도다. 또 이탈리아와 독일이 ICJ에서 국가면제를 두고 맞붙은 결과 ICJ는 독일의 국가면제를 인정했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들 역시 ‘제한적 국가면제론’을 주장했다. 국제법의 대세가 ‘국가면제 예외’라면 굳이 ‘제한적 국가면제론’을 주장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이 논리는 위안부 피해자를 모집하는 과정이 일본과 민간업자의 공동불법행위로 일종의 ‘상업적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는 위안부 문제의 주체를 일본이 아닌 사적 행위로 보게 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를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국가면제는 주권행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법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며 “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결국 국가면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전략을 사용한 셈이다. 2차 소송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국가면제라는 제약만이 아니다. 각하 결정은 헌법 제27조 제1항에 나온 이른바 ‘재판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 근거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제시했다. 합의가 존속하는 한 재판 외에도 권리구제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테스크포스(TF)’를 만들고 ‘위안부’ 합의를 검토했다. 그 결과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다’며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정부가 흠결이 있다고 밝힌 합의는 지금도 명백히 존속 중이다. 외교부는 지난 4월 28일 기자의 문의에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대내외적 노력 이루어져야” 재판부는 해당 합의를 이유로 대한민국은 ‘외교적 보호권’ 행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적 보호권은 피해자의 국적 국가가 가해국을 상대로 피해구제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흠결’이 있는 합의를 존속시킨 것이 법원이 ‘외교적 보호권’이 행사되고 있다고 본 근거가 됐다. 보호권 행사는 반드시 가해국과의 합의일 필요가 없다. ICJ 제소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지난 4년 동안 정부가 선택한 대안은 없었다. 정부의 소극적 행보에 대해 2차 소송 재판부는 이렇게 지적했다. “대한민국 행정부가 위 합의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일관되지 아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한민국이 위 합의를 파기하는 등의 이유로 합의가 효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피고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2차 소송 판결이 법리에 어긋난 것으로 보기 어렵더라도 아쉬운 점은 있다. 백 교수는 “국가면제 예외를 인정해야 할 근거도 부족하지만 반대로 반드시 인정해야 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며 “언제까지 피해자들에게 국제법 때문에 안 된다고만 할 것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은 각 국가의 법 시행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인권범죄와 같은 영역에서 선도적으로 판례를 만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신 박사 역시 “국가면제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도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원고들의 재판청구권은 인정됐어야 했다”며 “2015년 합의가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판 외에 다른 권리구제 수단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국내적으로만 합의에 반대한다고 선언하지 말고 외교적으로도 일본을 압박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국제법으로 판단받아야”(2021. 03. 12 16:09)
2021. 03. 12 16:09 사회
ㆍ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요청한 신희석 박사와 김현정 ICJ 회부 추진위원회 대변인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30년째 쳇바퀴를 돈다. 눈물의 호소와 기다림이 반복되는 동안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15명만이 남았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이미 90세를 넘겼다. 기다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추진하고 있는 신희석 법학박사(왼쪽)와 김현정 ICJ 회부 추진위원회 대변인이 지난 3월 9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고령의 피해자는 이제 ‘호소’ 대신 ‘싸울 기회’를 원한다. 지난 2월 16일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은 ICJ에서 한 번도 다퉈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국제정세를 모르는 소리”, “ICJ는 일본이 꽉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제도로 해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9일 ICJ 회부 요청의 근거를 제공한 연세대 법학연구원 신희석 박사, 김현정 ICJ 회부 추진위원회 대변인을 만났다. 이들에게 ICJ 회부의 ‘논리’를 들어봤다. -ICJ는 어떻게 생각한 것인가. 신희석(이하 신)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늘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녀상을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반박할 방법을 고민했다. ICJ 회부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본격적인 추진은 어떻게 하게 됐나. 신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상 ‘주권면제(국가는 다른 나라 법원으로부터 재판받지 않는다)’를 위반했다며 ICJ에 제소한다고 했다. 여기에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논문 사건이 터지며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용수 할머니를 뵙고 ICJ를 가도 불리할 것 없다는 점을 설명드렸다. 문제는 ICJ 소송은 기본적으로 국가만 가능하다. 현재는 할머니와 함께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김현정(이하 김) 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할머니들도 좋아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한 상황에서 일본이 ICJ에 제소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신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ICJ 회부에 대한 준비가 돼 있었다. 이후 물 흐르듯 추진됐다. -이용수 할머니는 ICJ 회부를 납득하셨나. 김 우리가 질 수도 있다는 부분까지 말씀드렸다. 다만 지지 않는다는 것은 할머니가 가장 잘 알고 계셨다. 할머니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여러차례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될 때도 그랬다. 국제사회 반응이 어떻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체감하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의 ICJ 제소 이유와 우리 측 이유는 다른 것 아닌가. 국제법 전문가 신희석 박사 신 일본은 ‘주권면제’에 관한 것이고, 우리는 위안부 문제 자체를 국제법적으로 판단받자는 것이다. ICJ의 특징이자 장점이 개별 사안들에 대해 별개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함께 다루는 특별협정을 맺으면 된다. 주권면제 같은 사안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가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라는 사실은 틀림없이 인정받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투겠다는 것인가. 신 총 네가지다. 먼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 두가지는 ‘위안부 제도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맞는가’. ‘만약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이다. 반면 일본이 다투길 원하는 질문은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는가’, ‘한국이 주권면제를 위반한 것인가’이다. -입증할 증거는 충분한가. 김현정 ICJ 회부 추진위원회 대변인 / 김기남 기자 김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모아둔 자료만 해도 차고 넘친다. 일본군 문서로 남아 있는 것만 봐도 ‘왜 위안소를 설치해야 하는지’, ‘군부가 모집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모집한 여성들이 여권이 없는 경우 어떻게 해외로 보낼 것인지’ 등이 담겨 있다. 할머니들 증언까지 갈 필요도 없을 정도다. 신 일본 측 논리는 단순하다. 당시 민간업자들이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부분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전쟁범죄가 없는 게 되나. 설사 민간업자에게 속아 위안부가 됐더라도 이를 확인하면 풀어줘야 한다. 그런데 군이 위안부를 관리하며 몇년씩 착취했다. 이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인정한 사실들만 모아도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가 성립된다. -ICJ는 일본에 유리하다는 우려가 있다. 신 판례로 답하겠다. 결코 강대국들에만 유리하지 않았다.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니카라과 대 미국 사례다. 당시 니카라과가 미국을 어떻게 이기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미국의 국제법 위반이 확인됐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14년 호주와 포경 문제로 ICJ에서 다퉜다. 호주가 이겼다. 명확한 국제법 위반 사안에 대해 ICJ는 공정하게 판결했다. 싸우길 피하기만 하니까 ‘위안부’ 문제는 지금껏 국제 법원에서 한 번도 다뤄지질 못했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제되지 않나. 신 한일협정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책임을 인정한 시점보다 30년 앞서 체결됐다는 맹점이 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내용인지 법리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 합의문을 보면 법률문서로 보기에는 허술하다. 명확한 조항 없이 단순히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식이다. 특히 합의안에는 개인청구권 이야기도 없다. 김 한일협정이나 위안부 합의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결국 위안부 문제를 돈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30년째 외치는 것은 ‘돈이 아닌 사죄’임에도 여전히 배상이 논의에 초점이다. ICJ 회부는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에 대한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엮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신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전시 여성인권 문제이고 하나는 영토 문제다. 일본이 이를 하나로 엮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이를 정상이라고 보겠나. 전시 인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고 비난받을 것이다. -만약 패소하면 어떻게 되나?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되나? 김 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위안부와 관련된 자료는 유네스코도 인정하는 귀한 자료다. 이런 자료들을 들고 재판을 간다는 점부터 밝히고 싶다. 설사 패소를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일본은 지금도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한국의 문제 제기를 막고 있다. 하지만 그 합의가 역사적 진실을 교육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다. 설사 소송에 진다고 해도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신희석 박사가 만든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위한 특별협정 초안 / 신희석 박사 제공 -정부는 ‘고려해보겠다’는 원론적 입장인데. 신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교관들을 만나보면 분쟁 해결에 국제사법 수단을 활용할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필요하면 던져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안 한다.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또 최근 정부 기조가 한일관계 개선이다 보니 ICJ 회부가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는 동의할 수 없다. ICJ는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다.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까 제3자 분쟁해결기구인 ICJ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ICJ로 회부되면 이 문제는 외교부 국제법률국에서 맡게 된다. 반면 한일교섭 같은 것은 지역국에서 한다. 자연스럽게 투 트랙이 된다. 한일 양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ICJ로 가려고 해도 일본이 동의해야 하지 않나. 신 양국이 ICJ 회부에 대한 특별협정을 맺으면 된다. 일본이 먼저 ICJ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내가 처음 ICJ 이야기를 꺼내니 ‘구체적 방안’ 없는 ‘설익은 의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 않다. 정부에서 참고할 수 있게 한일 합의에 필요한 특별협정문도 준비했다. 양식은 기존 ICJ 사례를 참고했다. 특히 전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문구를 과거 일본이 역사 문제에 대해 밝혔던 견해들을 차용해 썼다. ‘과거를 대면할 용기’,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등은 모두 일본에서 밝힌 입장들이다. 과거 일본이 이런 말들을 했으니 국제법적으로 따져보자는 의미다. -ICJ 회부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대되는 것은 비금전적 조치다. 판결문에 공식적인 사죄, 책임 인정 같은 것들이 담기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일본에 역사교육을 제대로 할 것을 요구하는 근거이자 역사 왜곡 발언에 대항하는 수단이 된다. -승소해도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한다고 볼 수 있나. 신 반성의 진정성은 사과에 따른 후속 조치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교과서 문제만 봐도 일본은 고노 담화에서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ICJ 승소는 말이 아닌 법으로 후속 조치를 한다는 의미다. -ICJ 회부를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김 위안부 피해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와도 실행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ICJ 회부는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다. 반대 논리를 보면 대부분 ‘일본이 안 갈 건데 의미가 있냐’는 식이다. 일본이 응하면 가는 것이고, 거부한다면 그 자체로 일본을 압박하는 논거가 된다. 일본 입장만 미리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위안부 논쟁, 문제는 인식틀이다(2021. 02. 26 14:20)
2021. 02. 26 14:20 사회
ㆍ역사부정론자들의 세상을 보는 눈 30년 전 시각에 머물러 잠잠해지는가 하면 다시 반복되는 일본군 ‘위안부’ 관계 정쟁이 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서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둘러싼 공방이다. 주로 ‘조선인 위안부’가 표적이다. 먼저 역사부정론자들이 도발하고 언론이 이슈화하면 사회는 끓어오른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를 비판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정쟁을 살펴보기에 앞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고 생각하며 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15년간에 걸친 아시아·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군이 진출했던 대부분 지역에 개설됐던 위안소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일본군 장교나 병사, 목격자들이 위안소 개설이나 이용, 목격 경험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991년 이후에서야 아시아 지역 곳곳에서 숨죽이고 살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위안소 안에서 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우리 사회는 이를 ‘근절해야 할 전시 성폭력’이라는 틀로 볼 수 있었다. 근절해야 할 전시 성폭력 동시에 1991년 이전의 인식틀을 고수하며 ‘위안부는 매춘부다’, ‘당시 합법적인 공창이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일본의 대응도 나왔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지금, 후자의 공세는 더욱 조직적이다. 여기에 한국인·미국인 등도 가세하고 있다. ‘위안부’가 ‘매춘부’이지 성노예 또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싶은 미래는 어떤 것일까. 전쟁 기간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성을 이용한 것은 잘못된 일이며,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 피해실태를 드러내면서 가해 연루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싫은 것일까. 역사부정론자들은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위안부’ 문제의 인식틀을 1991년 이전으로 가져가려 한다.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없던 시기로 말이다. 어떻게 세상을 보는 눈이 30년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 시각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심지어 30년 동안 그 시각에 동조하는 자들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었는지. 우리 사회가 성찰할 부분도 있다. 다시 정쟁 문제로 돌아가자. 우리는 왜 ‘매춘부’라는 언어를 가지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논하고 있는 것일까. 매춘을 풀어쓰면 ‘봄을 파는 부녀’이다. 여기에 포주를 통해 여성의 성을 사는 남성의 존재는 없다. 또한 매매되는 성을 ‘봄’과 같은 자연에 비유해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뉘앙스도 있다. 누군가의 아내와 딸이 되는 존재라는 ‘부녀’라는 말 또한 인격적으로 독립된 여성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용어의 문제점을 인식해 2004년 관련 법령을 제정할 때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언론기사나 학술토론에서 ‘매춘부’ 용어가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일제강점기 공창제는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동원되는 역사적 사례이다. 그때마다 빠르게 공유되는 비판적 입장은 ‘위안부가 공창이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주장의 근거가 뭘까. 1873년에 제정돼 20세기 전반기까지 제국주의 일본의 ‘법역’에서 시행됐던 공창제는 어떠한 내용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무엇이 다른가. 조선총독부 경찰관 강습소의 교수 마쓰다 미치요시(增田道義)의 글 ‘공창제도 및 예창기 자유폐업에 관한 약간의 고찰자료’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조선총독부 경찰기구의 기관지였던 경무휘보 327호(1933년 7월)부터 335호(1934년 3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피해 여성들의 용기 기억해야 창기 생업 계약 부분을 보면, 어떠한 계약서를 보더라도 업주와 창기의 봉건적 노예관계가 자세하게 쓰여 있다. 이 내용을 알았는데도 창기와 업주는 각각 독립해 자유롭게 일을 했고, 그사이에 인신매매 사실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업주는 예외 없이 창기를 속박해 일을 시켜 거리낌 없이 착취했다. 이것이 인신매매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이나 기망이다. 따라서 국가가 공창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국가가 인신매매를 인정한다는 말이 된다. 후쿠미는 “실제를 보면 창기는 마치 업주에게 마구 부려지는 노비처럼 보인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인용된 후쿠미 다카오(副見喬雄)의 책은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쓴 <태평양전쟁의 성 계약>에도 인용된 책이다. 마쓰다 미치요시는 법령 형식만으로는 창기를 노예라 하고 창기계약을 인신매매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가. 그들은 과거 노예와 다름없는 비참한 삶에 빠져 벗어날 희망도 없다”고 단언했다. 창기들이 법률 지식이 없고, 사회적 봉건 도덕이 있고, 사실상 속박이고, 도주해도 갈 곳이 없고, 관헌의 취급이 업자의 편이라는 실상 때문이다. 근대 공창제가 실제로는 노예제도이자 인신매매 제도라는 당시 경찰관계자의 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참고문헌에서 그러한 내용은 삭제하고 법령 형식상의 계약관계만을 가져와 성매매된 여성의 피해를 부정하고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주장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왜 진전된 대응을 해오지 못한 것일까.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기획하고 제도화한 주체는 일본의 정치권력이다. 그들은 관계성을 삭제한 섹스가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인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유곽을 이용하거나 민가를 빼앗거나 새로 지어 위안소를 개설했고, 일본인과 조선인, 타이완인, 그 외 아시아·태평양 지역 점령지의 여성들을 병사의 성적 도구로 이용했다. 명백히 반여성적·반인도적 시스템이었다. 일본의 정치권력은 이를 합법적으로 운용했어도, 불법적으로 운용했어도 가해책임이 있다. 그 공권력 하에서 여성들은 합법적으로 성적 도구화돼야 했거나 불법적인 인권침해에 구제를 호소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이후 피해자의 발화로부터 ‘발견’됐다. 따라서 그 해결도 피해자의 관점으로 새롭게 구성된 평화와 인권, 반성폭력의 인식틀 안에서 모색돼야 한다. 그 모색의 길에서 “우리가 겪은 일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사람들 앞에 섰던 피해 여성의 용기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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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할매 이즈 백> 송혜교, 목소리로 위안부 할머니 응원 보낸다
다큐 <할매 이즈 백> 송혜교, 목소리로 위안부 할머니 응원 보낸다
2023. 02. 28 17:25 문화/생활
송혜교가 3·1절 특집 다큐 <할매 이즈 백>의 내레이션을 맡는다. MBC 제공 배우 송혜교가 삼일절 오전 방송되는 MBC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할매 이즈 백>의 내레이션을 맡는다. 1991년 최초의 미투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이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제 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단 10명.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에 11년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국어 안내서와 간판, 작품들을 후원하는 등 역사 문제에 관해 깊은 관심과 지원을 보여온 송혜교가 관련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아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한다. MBC 3·1절 특집 다큐 ‘할매 이즈 백’이 오는 3월 1일 삼일절 아침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MBC 제공 송혜교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질 다큐멘터리 <할매 이즈 백>의 주인공은 올해 96세인 이용수 할머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제 100살이 가까워진 위안부 피해자다. 할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노래. 특히 가사가 자신의 인생 같다는 ‘여자의 일생’을 좋아하는데, 여기에 힙합 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10> 우승자인 조광일이 함께한다. 조광일은 이용수 할머니의 인생사를 듣고, 가사를 만들어 재능기부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부르는 ‘여자의 일생’에 조광일의 랩이 더해지면서 혼자만의 고통과 아픔을 슬퍼하는 노래가 아닌, 모두가 기억하고 위로하는 노래로 재탄생한다. MBC 3•1절 특집 다큐 <할매 이즈 백>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삶과 다양한 기록, 문서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위안소의 설치 배경 및 일본군의 성 착취를 증언한다. 더불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본다. <할매 이즈 백>은 1일 수요일 오전 8시 50분 방송된다. 이어 3월 3일 금요일 저녁 8시 50분 앙코르 방송된다.
이효리가 만든, '위안부' 피해생존자 영화 '코코순이' 주제곡 공개
이효리가 만든, '위안부' 피해생존자 영화 '코코순이' 주제곡 공개
2022. 08. 11 10:17 문화/생활
‘코코순이’ 뮤직비디오 스틸 컷 가수 이효리가 참여한 영화 ‘코코순이’의 엔딩곡 ‘날 잊지 말아요’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영화 ‘코코순이’는 위안부를 매춘부로 매도하는 ‘미 전시정보국(OWI) 49번 심문보고서’가 주관적인 평가로 왜곡됐음을 고발하고, 직접 추적한 단서를 따라 사실에 근거해 기록한 르포 무비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심도 깊게 파헤쳐온 KBS 탐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의 촬영팀과 제작팀이 참여하고 이석재 기자가 연출을 맡았다. 이효리는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이 작품에 힘을 더했다. 특히 따뜻한 목소리와 시적인 가사로 긴 여운을 선사한다. ‘하늘 바람과 별 그리웠던 엄마의 품 속’ ‘이제 다시 볼 수 있나’와 같은 가사를 통해 가족과 고향을 두고 떠나야 했던 수많은 코코순이들의 심정을 드러낸다. 여기에 ‘겨울왕국’의 안나, ‘유미의 세포들’의 감성세포 역으로 친숙한 박지윤 성우의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담담하고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편 ‘코코순이’ 제작진은 코코순이의 행적을 따라 함양, 제주, 미얀마, 파키스탄, 미국, 호주를 거쳐 세계 각지에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자료를 직접 발굴했다.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미치나의 조선인 위안소 현장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등 스케일까지 신경썼다. 제작진은 “올해는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통과 15주년과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기림의 날) 공식 제정 10회차가 되는 해인만큼 영화 ‘코코순이’ 개봉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이효리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 ‘귀향’ 그리고 조정래 감독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 ‘귀향’ 그리고 조정래 감독
2015. 08. 27 15:52 화제
6분으로 압축한 촬영 영상 상영만으로도 미국 뉴욕타임스 한 면을 장식했던 영화. 바로 일본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이다. 4만여 명의 국민이 낸 성금으로 지난 6월 기적적으로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여전히 제작비와 배급사 문제로 개봉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이틀 앞둔 날,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을 만났다. 시놉시스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촬영을 마치기까지, 꼬박 13년 동안 이어온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7월 28일에 미국 워싱턴 의원회관에서 6분으로 압축한 촬영 영상을 상영했어요. 그 영화를 미국 의회에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죠. 다른 분들은 13년이라고 하면 많이 놀라시지만, 13년이란 시간은… 제겐 숫자에 불과해요. 이제는 오래됐구나 하는 느낌도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바쁘게 버티면서 정말 ‘하루’만 살았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동안 야외 촬영 현장을 누비며 작업하느라 검게 그을린 조정래(42) 감독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소위 영화판 특유의 깡이랄까, 거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외유내강이라고 했던가. 외부의 숱한 압력과 방해,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은 수시로 중단됐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13년을 매달려 기어이 촬영을 마친 보이지 않는 강한 오라에 절로 긴장이 됐다. 봉사로 시작된 만남, 실상 알고 충격에 빠져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주보고 앉아만 있어도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저절로 알아지는 경우가 있다. 조 감독이 그랬다. 조 감독은 미 의회에 상영됐다는 압축 영상을 인터뷰 시작 전에 보여줬다. 압축 영상만으로도 아픈 마음을 추스르기가 버거웠다. 눈물을 감출 길이 없어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연신 “죄송하다”라고 사과했지만 한동안 말을 잇기 어려웠다. “제가 죄송해요. 저야 남자니까… 더 죄인이에요. 촬영하면서 배우들이랑 스태프들과 함께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원망도 많이 하고요. 그래도 13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님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죠.” 조 감독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 같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어딘가 함께 울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조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이었다. 영화감독이지만 국악에도 조예가 깊다. 그리고 판소리 고수이기도 하다. 판소리와 민요를 하는 친구들과 경기도 광주 퇴촌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아름답고도 긴,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모진 인연이 시작됐다. 매달 봉사활동을 가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조 감독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일출 할머님께서 심리치료를 받을 때 그리신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이었어요. 당시 끌려갔던 조선 소녀들의 평균 나이가 16세라고 해요. 요즘 신체 나이로는 12세 정도밖에 안 돼요. 거의 초경도 안 한 어린 소녀였죠. 아프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고쳐준다고 부대 밖으로 데려가서 할머님의 그림처럼 소각장 같은 데서 태워 죽이는 거예요. 증거를 없애는 거죠.” 조 감독은 표현이 조심스럽다면서 당시에는 일본군들에게 조선인 소녀들이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고 실상을 공개했다. 정조 관념이 있어 깨끗하고, 병사들에게 연애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짧게는 3일, 길어야 한 달이나 두 달 정도면 다 죽었다. 성병에 의한 죽음은 거의 없었다. 초경도 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신체 파열, 즉 자상으로 인한 출혈로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군의 구타에 의한 죽음도 많았다. 위안소에 들어가서 여자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때린 것이다. 막연하게 성적인 학대로 죽음을 맞았을 거라고 예상한 조 감독은 이 사실을 알고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와달라는 할머니들의 부탁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정말 사실이야?’, ‘이게 사실이야?’예요. 얼마 전 미얀마 국경 지대에 버려졌던 시신들이 조선인 위안부로 판명됐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잖아요. 할머님들의 증언집을 보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하세요. 본인도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중국인 농부가 구해줬다, 뭐 이런 식이에요.” 조 감독은 지금 살아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결심은 굳어갔다. 13년간 촬영한 영화 ‘귀향’의 시작이다. 시놉시스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리플릿부터 자료집까지 온갖 것을 제작해 13년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고 했다. 조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구걸’을 하며 다녔다고. 도움을 주려던 큰 회사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론 투자를 받는 데 모두 실패했다. 소재가 상업성과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홀로코스트를 만든 영화는 무척 많은데 말이죠. 이런 건 한국 영화에선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 선배는 마지막 남은 영화 금맥인데 왜 영화가 안 만들어지겠냐면서… 우리는 안 해본 줄 아냐고, 안 된다는 거예요. 단언컨대 안 된다고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할머니들을 책으로 만난 게 아니잖아요. 이야기로 전해 들은 게 아니잖아요. 직접, 직접 만나서 들었잖아요, 증언을. 어떻게 멈춰요.” ‘태워지는 처녀들’ 조 감독은 지금도 힘들고 지치는 날엔 나눔의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소녀의 동상 앞에서 혼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온다고. “지금도 살아 계신 분들이 계시지만… 제가 아는 할머님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올해만 해도 여덟 분의 할머님들이 세상을 뜨셨고요.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영화를 완성해드리고 싶어요. 할머님들에게 ‘도와달라’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달라고요. 무엇으로 지금껏 버텼는가 물으셨죠? 할머님들의 말씀과 눈빛이요.” 조 감독은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집도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만든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영화다. 집 팔고, 차 팔아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조 감독은 정말 집 팔고, 차 팔아서 영화를 찍었다. “100%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죠. 개인적으로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 클라우드 펀딩으로 후원을 받았고요. 사전에 티켓을 판다는 형식이었죠. 여기 후원자분이 4만2,000명이 넘어요. 그러니까 저희 영화는 상영 전임에도 4만 명 넘는 관객을 확보한 거예요. 또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이란 코너를 통해 2억5,000만원이란 기적적인 후원금을 지원받기도 했고요.” 촬영은 마쳤지만 후반 작업비 등 제작비 문제에 부딪혀 다시 한번 뉴스펀딩 후원을 받았을 때다. 후원 기사 업데이트 1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다 채우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기 돈 들여가며 영화 찍은 스태프 후원의 기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귀향’은 스태프의 기적도 한몫 단단히 했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건 무조건 잘 찍어야 하는 영화”라고 먼저 결의를 다졌던 것은 스태프였다. 차를 팔고, 전세금을 빼고, 심지어 장모님 집을 팔기도 했다. “세트 만드는 스태프도 투자했고요. 적금도 깼어요. 스태프가 카드론 받아서 업체들 월급 주고요.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후원자들도 감사하지만, 우리 스태프들도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충무로 예산으로 액면가 환원을 하면 40억, 50억원 예산의 영화가 나온 셈이라고 했다.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 감독은 이 영화에 한해 말하자면 돈 많은 분들은 안 도와주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도와줬단다. 영화사 사무실에 나와 다양한 작업을 하며 일을 돕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 자원봉사로 시작해 여태 남아 자신들의 몫을 묵묵히 하고 있단다. “저희가 미 의회에 초청받아 6분 압축 영상을 상영했잖아요. 그리고 뉴욕타임스 한 면 전체에 기사로 소개도 됐고요. 그때 그 영상을 보고 제가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정말 그랬냐’라는 거였어요. 정말 사실이냐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이 영화는 하루 찍고, 또 돈 빌려서 하루 찍고, 돈 갚은 다음 또 빌려서 하루 찍고 그렇게 왔어요.” 영화에서 끌려가는 연기를 한 여배우가 실제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진짜 이렇게 끌려갔냐”라고 묻는다. 그러나 실제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가장 어린 소녀의 나이는 11세.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영화가 갖는 힘을 조 감독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 돈을 들여가며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초등학교 교사이신 후원자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소녀들이 아닌 할머니들이 끌려간 줄 알더래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런 오해는 안 하죠. 시각적인 효과, 영화가 갖는 힘이죠. 왜 이런 걸 만드는가 하는 비아냥거림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것들, 그런 게 있더라고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배우들도 재능 기부에 가깝다. 배우들은 중학생도 있고 재일교포 4세들도 있다. 일본어 구사 문제 등이 있다 보니 재일교포 4세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재일교포 배우들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삯까지 전부 개인이 부담해가며 영화에 출연했다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까지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재일교포가 우리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한국 배우와는 다른 의미거든요. 만약 이 영화가 잘돼 세상에 알려지면 그들은 당장 생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그런 말을 제게 하더군요. 자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늘 조선 사람이었다고. 자신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귀향할 수 있었다고요.” 그날도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렇게 영화 ‘귀향’은 저마다에게 진정한 귀향을 선물하고 있었다. 한 번 상영 때마다 한 명의 소녀가 귀향한다고 믿어 한 장면, 한 장면 가슴 아프지 않은 장면이 없지만 그래도 촬영하면서 유독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을 것 같았다. “강일출 할머님의 그림처럼 태워지는 처녀들 찍을 때 제일 안 좋았어요. 배우도 스태프도 다 정상이 아니었죠. 그날은 촬영 시작 전에 제사도 지냈어요. 저는 촬영할 때마다 처음에 절하고, 끝나고 절해요. 신기한 게, 광주 나눔의 집에 가면 지하에 위안소 모형이 있어요. 관계자분 말이, 거긴 한여름에도 영하에 가깝게 서늘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촬영장이 그랬어요. 너무너무 추웠어요. 계절에 상관없이요.” 조 감독이 알 수 없는 서늘함마저 무심히 흘려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소녀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십시일반 제작비를 모아준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영화는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전쟁 나면 제일 먼저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를 받는 건 당연하다, 굳이 그런 걸 들춰내 영화화해야겠느냐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조 감독은 가장 나쁜 논리라고 일축했다. 모 신문사의 기자는 “좌파가 도와주고 있나?” 하고 물어오기도 했다. 조 감독은 이 영화만큼 보수적인 아이템이 어디 있냐며 항변했다.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영화 속으로나마 모셔 밥 한 끼 드시게 하는 게 잘못된 거냐고 반문한다. “우리 영화는 반일 영화가 아니에요. 반전 영화예요. 할머님들이 도와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다고 했잖아요. 앞에 말까지 덧붙이자면 ‘후세에는 자신들처럼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알려달라, 도와달라 하신 거예요. 전쟁 없는 평화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일본은 벌써 평화헌법 없애고 전쟁헌법으로 가고 있고요.” 할머니들은 그런 걸 체감하고 있으신 것 같다고 했다. 조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잔인한 범죄라고 단언했다. 일종의 시스템을 만들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루 스무 명씩 상대하게 한 후 아프거나 더 이상 위안부를 할 수 없으면 부대 밖 소각장으로 끌고 가서 태워 죽였다는 건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능가하는 엄청난 전쟁 범죄다. 조 감독은 그래서 이 영화를 꼭 완성해 가능한 한 많이, 오래 상영하고 싶다. 한 번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한 분의 소녀가 돌아오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분들 후원 조약에 보면 유튜브 조항이란 게 있어요. 배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영화를 유튜브에 올린다고요. 다 동의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조항 때문에 투자해주신 분도 계세요. 비공식적으로 20만 명이 넘는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전 그분들이 모두 돌아오시도록 20만 번 상영됐으면 해요. 그게 목표예요.” 조 감독은 대체 이 어마어마한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왔을까. 늘 힘들어서 힘든 줄 몰랐다는 조 감독이지만 무서울 때는 있단다. 바로 300명의 배우와 스태프, 4만 명이 넘는 후원자들까지 셀 수 없을 만큼의 후원과 수고다. 부족한 자신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후원금이 쌓이는 게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했다. 꼭 필요한 돈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 무섭다. 영화를 반드시 만들라는 일종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감격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것이 바로 후원금이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하나하나 역사 아닌 게 없었던 만큼 이 역사를 완성해가려 한다. 그래서 조 감독은 오늘도 뛰고 있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사진 제공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위안부는 거짓말, 독도는 일본 땅, 한류는 언론 플레이?! 일본보수단체 요네다 다카시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위안부는 거짓말, 독도는 일본 땅, 한류는 언론 플레이?! 일본보수단체 요네다 다카시
2012. 08. 03 16:06 화제
‘종군위안부는 강제연행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것이다. 강제징용이 아니라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한 자의적인 일본행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반한류 시위, 위안부 사진전 반대 시위 등으로 우리에게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보수 단체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과 접촉했다. 8월 15일. 일본은 이날을 종전기념일이라 부른다. 일본에서 20년을 살다 보면 매년 같은 질문을 받는다. “오는 8월 15일, 일본에선 어떤 행사가 있나요?”라는 부류의 질문이다. 매년 식상한 대답밖에 할 수 없어 안타깝다. 국회의원 몇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거나 참배할 예정이며, 재일본 한국거류민단에서 광복 기념행사를 가졌다는 정도다. 일본에서는 8월 15일이 공휴일도 아니며 커다란 의미도 갖지 않는다.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을 기념하는 행사는 있지만 8·15는 그렇지 않다. 패전기념일도 아닌 종전기념일이란 단어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종전(終戰)’이라는 단어는 36년간 우리 민족을 침략했던 사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양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과거를 가볍게 일축해버린다. ‘인터넷 우익’은 인터넷상에서 일본의 과거 전쟁을 미화하고 한국의 배상 요구에 대해 한일 기본 조약하에 이미 끝난 얘기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최대 세력은 회원 약 1만2천 명을 거느린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하 재특모)’이다. 그들의 혐한(嫌韓) 편력은 화려하다. 일본 땅이던 독도를 한국이 빼앗았으며 종군위안부, 강제징용은 거짓이라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을 찾아가 반대 시위를 하고, 배우 김태희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제약회사를 협박한 혐의로 체포당하기까지 했다. 최근엔 니콘살롱의 위안부 사진전에 항의해 사진전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를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이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재특모’의 홍보 담당, 요네다 다카시를 만났다. (국내 언론에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 ‘재특회’ 등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본지에서는 필자의 요청에 따라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으로 표기한다_편집자 주). 한류는 인기 상품이 아닌 언론 플레이? 레이디경향(이하 LADY) ‘재특모’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는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합니까? 요네다 다카시(이하 요네다) 언론 대응, 회원 대상 홍보, 회원의 질문에 답해주는 일을 하고 있고,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역 지부장이 없어서 그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LADY 도쿄의 회원은 몇 명 정도 되나요? 요네다 3천 명입니다. 회원 수가 많다 보니 관리가 어려워 누군가에게 지부장을 맡기기가 힘듭니다. LADY 본업은 무엇인가요? 요네다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LADY ‘재특모’는 정기 활동이 있습니까? 요네다 시위가 있을 때만 모이고 평소엔 인터넷으로 정보 교환을 하죠. LADY 한국 배우 김태희씨가 출연한 CF를 문제 삼아 제약회사를 찾아가 협박해 체포된 사건이 있었죠. 협박을 하는 것이 ‘재특모‘의 주요 활동인가요? 요네다 상투적인 말을 했을 뿐이에요. “반일 한국인을 광고에 기용하지 말라,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그런 얘기가 오갔고요. 그 정도가 체포 대상이라면 “우리 회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우리 제품을 사지 말라”라고 으름장을 놓은 그런 기업도 체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LADY 그 건 외에도 한류 반대시위를 전개 중인데 대체 한류의 무엇이 문제라고 봅니까? 요네다 한류가 문제가 아니라 한류가 무척 인기가 있다는 듯 보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공의 전파를 통해 아침부터 밤까지 남의 나라 방송을 흘려보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방송도 이익 추구를 하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방송사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을 텐데, 한국 것만 방송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라(KARA) 섹시하다”, “근짱(장근석) 멋지다”라고 하는데, 이런 게 사실은 아니잖아요. 사실도 아닌데 마치 사실처럼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어요. LADY 정말 인기가 있다면, 한류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해도 되는 겁니까? 요네다 별로 재미가 없어요. 주변에서도 같은 반응이에요. 「닛케이엔터」(일본경제신문의 연예 잡지) 조사에서도 인기가 높지 않았어요. 한류는 일본 광고회사 덴쓰의 프로모션이고, 한류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후지TV의 스폰서엔 한국계 기업이 있지요. LADY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을 말하는 건가요? 요네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요네다는 손정의 회장이 재일 한국인이란 이유로 일본 회사인 소프트뱅크를 한국계 기업이라고 칭했다. 한국에 대한 어떤 불쾌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필자 역시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요네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조신하고 침착하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독도는 일본 땅, 위안부는 거짓말?! LADY 얼마 전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쓴 말뚝을 박은 일이 있었습니다. ‘재특모’가 한 일인가요? 요네다 아닙니다. ‘유신정당 신풍’이란 보수 단체죠. 위안부와 독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독도는 한국이 일본 땅을 침략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독도 문제는 국가 침략이고 위안부는 미인계일 따름이에요. LADY 미인계라니? 요네다 여자와 관계를 맺게 한 후, “우리나라 여자에게 손을 댔다”라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것이죠. 위안부는 국가가 한통속이 되어 벌인 미인계입니다. LADY 국가 주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고 생각하나요? 요네다 현재의 성산업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개자와 업자가 있고 일하는 여성이 있죠. 만일에 위안부가 있었다면 일본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중개자의 문제예요. 중개자가 인신매매로 여성들을 팔아 넘겼다면 그 중개자를 잡아내서 처벌해야 할 문제지 정부에 따질 문제는 아니잖아요. LADY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이 명칭인데, 재일특권이란 무엇인지? 요네다 입관특례법에 따른 특별재류 자격, 즉 특별영주권입니다(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의 후손에게 일본은 ‘특별영주 자격’을 부여해 일본에서 살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본인의 노력하에 일본에서 살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자동적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요. 왜 다른 외국인은 안 되는데 재일한국인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과거 조선이 일본과 하나였을 때 조선인도 일본인으로 생활했지만, 이제 조선은 대한민국이란 별개의 나라입니다. 재일한국인의 2대까지 영주 자격을 부여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후손에게도 영주 자격을 주는 것은 제도상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자격을 받고 생활하는 재일동포도 문제지만 그런 제도를 만들고 계속 인정하고 있는 일본 정부도 문제입니다. LADY 미국은 미국에서 태어나면 국적을 부여하지만 일본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요. 그래서 특별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인데. 특별영주권조차 없다면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들은 살아갈 곳을 잃게 돼요. 요네다 대한민국 국적이 있잖아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한국 국적이 있는데도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대우받으려는 것은 불공평해요. 재일한국인은 일본의 선거엔 참여하지 못하지만 건강보험, 연금에도 가입할 수 있고 취업도 일본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가능합니다. LADY 그런 권리는 재일동포만이 아니라 다른 외국인에게도 있어요. 요네다 그렇죠. 즉, 외국인이 우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어요. LADY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가 과연 우대일까요? 일본에 사는 외국인에게 건강보험조차 없다면 큰 사회문제가 될 텐데…. 요네다 그게 참모습이고 그래야만 해요. LADY 왜 그것이 진정한 일본의 모습인가요? 요네다 외국에 와서 민폐를 끼칠 사람은 외국에 오지 말란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일본인이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재일한국인과 외국인들은 일본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민폐를 끼치고 있단 얘깁니다. 외국인에게 고도의 복지를 보장하면 외국인이 넘쳐나요. 한국은 절대로 일본처럼 외국인을 무조건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일본은 그런 외국인들 때문에 문제가 많거든요. 재일한국인, 외국인의 권리 박탈을 위한 투쟁 LADY ‘재특모’의 이상은 무엇인가요? ‘재특모’가 재일동포의 특권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사라지면 일본은 좋은 사회가 되는 겁니까? 요네다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이익을 위해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특권 반대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국가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LADY 본래 국가의 모습이란? 요네다 공평한 사회요. LADY 구체적으론? 요네다 (재일한국인과 같은) 특정 외국인을 우대하지 않는 것. LADY 현재 ‘재특모’의 활동은 외국인 전원에게 일본에서 나가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요네다 불량 외국인, 즉 일본의 외국인 우대 정책의 단물을 빨아먹는 외국인은 필요 없다는 얘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범죄, 탈세 등과 관여된 외국인을 일본 사회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것이죠. LADY 그럼, 요네다씨가 말하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일본의 제도상의 단물을 빨아먹는 재일동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요네다 그 숫자는 별로 안 될 거예요. 반일매국 정치가와 하나가 되어 활동 중인 재일한국인, 범죄자, 탈세자, 불법 입국자 등을 포함해 10% 정도 되지 않을까요? 20%나 된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요. 요네다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예의 바르고, 침착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고, 한국어를 빼앗았으며, 한국에서 만행을 저질렀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점차 일본이 한국에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동안 받은 교육을 거짓이라 느끼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믿어온 필자에겐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평생을 고난과 슬픔 속에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혹여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더 큰 상처를 받으시는 건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요네다를 비롯한 모임 사람들은 일본의 과거 전쟁 범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냉정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에는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들은 일본이란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그들의 주장처럼 외국인에게 관대하다면(사실 여부를 떠나서), 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일까? ‘재특모’는 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는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활약해온 자칭 베테랑 보수파, 극우파의 지존들은 ‘재특모‘의 과격한 행동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재특모’는 소수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들의 내면에 있는 외국인에 대한 불신, 불안, 과거에 대한 부정은 소수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 특수하지만 평범하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의 단면이다. <■글&사진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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