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 건 검색)
- [부고]윤병선 전남도산림자원연구소장 장모상
- 2013. 12. 19 11:17 인물
- 오종열(KT전남본부사업지원센터)씨 모친상, 윤병선(전남도산림자원연구소장)·정선호(자영업)씨 장모상 = 18일 오후, 광주 서구 매월동 천지장례식장 202호, 발인 20일 오전 10시. 062-527-1000
스포츠경향(총 1 건 검색)
- 31년 양궁협회 이끈 윤병선 사무국장의 헌신
- 2017. 01. 03 17:21 스포츠종합
- 31년, 그의 인생 절반을 넘는 시간을 함께 했던 곳을 떠난 게 아직은 잘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겐 삶의 터전이었고 인생의 전부였던 곳, 대한양궁협회. 그는 자신의 인생이자 곧 세계 최강으로 자리잡은 한국 양궁의 역사를 찬찬히 떠올렸다. 윤병선 대한양궁협회 사무국장(61)은 지난달 31일 정년퇴직을 했다. 대한양궁협회가 창립한 이후 사무처 직원이 정년 퇴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다른 경기단체로 범위를 넓혀도 직원으로 입사해 정년퇴직까지 한 우물을 판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한양궁협회에서 31년간 근무하며 한국 양궁을 뒷바라지하고 최근 정년 퇴직한 윤병선 사무국장. 윤병선 전 국장은 3일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양궁이 세계무대에 도전을 시작한 순간부터 올림픽 전관왕을 이루기까지 현장을 누볐다. 양궁인으로서의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양궁의 도전과 실패, 영광의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실업팀 삼양식품의 감독을 하던 그는 1985년 한국이 양궁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협회 사무처 직원으로 발탁됐다. 양궁 선수 출신으로 대학 시절 경기 행정을 전공한 이력이 인생 항로를 바꾼 계기가 됐다. 윤 국장은 “경기인 출신이고 행정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협회에 들어와 이렇게 31년을 보냈다”며 웃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한국 양궁이 세계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는데 많은 도전과 노력 끝에 이렇게 결실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타계한 고 황도하 부회장과 함께 양궁협회를 이끈 쌍두마차다. 윤 국장은 “황 부회장님이 현대가 출신으로 협회와 현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면 나는 경기인 출신으로 행정과 현장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지난해 리우올림픽까지 8번의 올림픽을 치르며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으로 입지를 다지는데 온 힘을 다했다. 항상 선수들과 현장을 먼저 살폈다. 선수들이 편안하게 활을 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만 몰두했다. 공평무사한 선수 선발과 든든한 현장 지원은 그가 발로 뛰며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는 1989년에는 미얀마 양궁협회의 요청으로 현지로 파견을 가서 미얀마 대표팀을 이끌기도 했다. 윤 국장은 “열악한 팀이었는데 열심히 지도해 동남아 경기대회(SEA Games) 처음 금메달을 따내 미얀마 대통령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다시 국내로 돌아와 한국 양궁의 현장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그는 “감독을 계속 했다면 돈과 명예를 다 잡았겠지만 협회 일을 하면서 선수들을 돌보고 역사의 현장을 누볐다는 영광이 있으니 이 또한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정년인 해에 리우올림픽에서 사상 첫 전관왕을 달성하고 마무리한 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됐다”며 “앞으로도 한국 양궁의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 윤병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