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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51 건 검색)

[이대근 칼럼]트럼프 귀환에 준비되지 않은 윤석열 외교
2024. 12. 02 20:51 오피니언
... 의문이 고개를 들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미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의 꿈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
이대근칼럼이대근
[이대근 칼럼] ‘윤석열’ ‘트럼프’ ‘김정은’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
2024. 11. 11 17:18 오피니언
.... 국민의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국정 책임자로서 윤석열로부터 국정을 인수하고 주도해야 한다. 윤석열은 2027년 5월9일 퇴임하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 소망, 이루어질 수 있다. ...
이대근칼럼
[이대근 칼럼]어쩌다 우리는 부부통치를 받게 되었나?
2024. 10. 21 21:14 오피니언
... 쥘지 지켜보느라 눈이 충혈될 지경이다. 자기 집 불난 줄 모르고 불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 불을 꺼라. 이대근 칼럼니스트 ...
이대근칼럼이대근
[이대근 칼럼]통일은 잊자
2024. 09. 30 21:58 오피니언
... 상태의 결과가 통일이라면, 통일이 평화의 다른 이름으로 온다면, 평화냐 통일이냐가 무슨 소용인가? 무조건 평화가 우선이다. 평화에 집중해야 한다. 통일은 잊자. 이대근 칼럼니스트 ...
이대근칼럼이대근

스포츠경향(총 4 건 검색)

이대근 충격 고백, “마님~ 내 목소리 아니야”
2011. 12. 27 09:31 연예
이대근 충격 고백, “마님~ 내 목소리 아니야” 배우 이대근(70)이 “‘마님’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이대근은 27일 방송되는 KBS2 에 출연해 “그동안 유행처럼 번진 ‘마님~’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마님’은 이대근의 대표작 의 대사로, 그동안 이대근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이날 이대근은 “영화를 17편 정도 동시에 찍은 적이 있다, 동시 녹음이 잘 안되던 시절이라 성우가 내 목소리를 냈다”며 “성우가 극중에서 내가 힘쓰는 모습만 보고 목소리를 그렇게 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대근은 “나중에 TV로 보니 원래 내가 말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놀랐다, 지금까지도 케이블 방송에서 그 영화를 틀어주는 바람에 내가 ‘마님~’이라는 말을 많이 한 것처럼 됐다”고 밝혔다.
[그녀는 예뻤다] 강수연·이대근 ‘원조 에로커플’
2007. 02. 04 22:21 연예
MBC 드라마 ‘문희’로 오랜만에 드라마 나들이를 하는 강수연의 20년 전 모습이다. 강산이 두번 변했지만 강수연의 모습은 조금 거짓말을 보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이 사진은 1987년 영화 ‘연산군’에 출연할 당시의 모습이다. 이때가 강수연의 연기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였다. 영화 ‘씨받이’로 1987년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이름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치가 세월을 멈추게 한 것일까. ‘장녹수’ 강수연의 모습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농염한 교태가 뚝뚝 떨어진다. 강수연의 뒤에는 보톡스를 맞은 양 팽팽한 얼굴의 이대근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할 뿐이다. 이대근은 이 영화에서 ‘연산군’으로 ‘한연기’를 선보였다. 이 당시 강수연은 세월의 벽을 넘어 이대근의 황금콤비(?)를 이뤘다. 이 영화 외에 ‘감자’에서도 함께 출연했던 것. 강수연은 이번 드라마 ‘문희’에서 여고생의 모습도 선보일 예정이다. 도대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배우다. 이대근은 최근 영화 ‘이대근, 이 댁은’의 촬영을 마쳤고 하명중 감독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에 출연해 세월에 탈색된 흰머리를 선보였다. 〈강석봉기자〉
그녀는 예뻤다
이대근이대근, 이댁은’ 충무로 컴백
2006. 08. 17 10:39 연예
왕년의 스타 이대근이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 의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다. (2002) 이후 4년만의 영화 출연이며, 더욱이 그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지는 영화여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대근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1979)란 작품을 통해 이미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지만, 에 그가 갖는 애착은 보다 더욱 크게 느껴진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시대이다 보니 혼자 외롭게 사는 노인이 많아졌고, 자식과 부모간의 사이가 벌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병은 외로움이다”라는 말로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며, 흔쾌히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주연을 맡을 것을 허락했다. 7·80년대 강한 남자의 아이콘이었던 이대근. 그가 이제는 늙고 힘없어진 아버지를 연기한다. 힘의 상징이었던 이대근도 흘러가는 시간에 어느덧 60대의 노인이 되었다. 감독은 그런 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늙어 버린 우리 시대의 아버지 ‘이대근’을 창조해 냈다. 가족의 부양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희생했던 아버지. 하지만 결국 혼자 남는 외로운 우리의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려내는 이대근의 모습이 기대된다.예순 넷의 이대근,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스텝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많게 보아도 5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평소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온 이대근은 극중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장면에서도 청년 못지 않은 근력을 자랑해 주변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때문에 이대근은 검은 머리를 백발로 만들고, 흰 수염을 붙이는 등 분장이 필요했다. 반면, 극 중 젊은 시절을 맡은 이대근을 위해서는 별 다른 분장 없이 진행 되었다. 이대근은 자신의 젊음 유지 비결은 젊은 시절 액션 영화로 인해 단련된 체력이라 밝혔다고. 은 징글징글하고 애틋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장가게를 하며 홀로 살아가는 이대근 노인. 애지중지하던 막내의 사업 실패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자식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아내의 제사를 계기로 3년 만에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보려 애쓰는 이대근. 하지만 맘처럼 쉽지가 않다. 큰아들 내외는 큰아들의 외도로 이혼위기에 처해있고, 딸 내외는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 파출소에 발이 묶여있다. 흥신소를 통해 막내아들을 백방으로 찾고 있지만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우여곡절끝에 막내아들을 제외하고 아들 딸 내외가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12시 종이 치자 감춰왔던 이 말많고 탈많은 이대근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이대근 가족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은 을 연출했던 심광진 감독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았다. 이대근의 40여년 연기생활에서 나오는 경험과 충무로에서 인정받고 있는 조연들 이두일, 정경순, 박철민, 안선영, 박원상 열연이 조화를 이루어낸다. 〈미디어칸 뉴스팀〉
이대근 주·조연 캐스팅 영화 출연 러시
2006. 05. 28 23:07 연예
원로배우 이대근이 2003년 드라마 ‘형사’ 이후 3년 만에 영화 3편에 잇따라 캐스팅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대근은 영화 ‘이댁은 이대근’(감독 심광진, 제작 윤앤준)에서는 주연, ‘무림 여대생’(감독 곽재용, 제작 포도필름)과 ‘아내의 편지’(감독 하명중)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다음달 촬영에 들어갈 ‘이댁은 이대근’은 5년 전 사별한 아내의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자식들과 떠들썩하게 재회하는 한 쓸쓸한 노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현재 촬영 중인 ‘무림 여대생’에서는 오랜만에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아내의 편지’에서는 40대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를 연기하게 된다. 〈최재욱기자〉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3)이대근-환갑 지나 진짜 인생을 말하다
2007. 06. 15 연예
이대근, 이댁은’은 불행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흥행은 둘째로 치더라도, ‘작은 영화’이다 보니 홍보에도 한계가 있었다. 영화의 참신한 작법은 눈길을 끌었지만, 반전은 약했다. 이대근(64)은 힘을 빼고 노년의 외로움과 가족의 소중함을 연기했다. ‘변강쇠’ 이대근은 없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한복을 입고, 절룩거리는 도장집 노인이었다. 자식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사는 도장집 노인의 모습은, ‘기러기 아빠’ 이대근과도 닮아 있다.장기자 - 요즘도 운동하세요? 액션할 때만 해도 했는데 ‘이대근, 이댁은’ 하면서 끊었어요. 50대부터 70대까지 연기하는 데다가 한복을 입어야 하니까 근육이 보이면 안 되잖아요. 작품을 세 번이나 고치느라 그 상태로 기다리다 보니 근 1년 동안 운동 안 하는 게 편해져서 좀 나태해졌죠. 장기자 - 처음 영화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이대근, 이댁은’이라기에 놀리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래서 안 되겠다고 했더니 감독이 책(시나리오)을 한번 보라 그래. 집에 와서 봤더니만 ‘어, 내가 잘못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동안 해온 작품 중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았어요. 제목을 ‘이대근, 이댁은’으로 지은 건 감독이 나를 죽 봐왔고 좋아했기 때문이라더군요. 장기자 - 영화 속에서 혼자 끼니를 챙겨 먹는 장면은 이대근씨 실제 모습이 연상되어 뭉클하기도 했어요. 실제 모습과 영화 속 모습은 어떤가요? 가족과 26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보리밥을 먹고 아이들 공부를 덜 시킬지언정,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는, 뭐 그런 제 심경이 이번 작품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가족의 소중함 외에 또 하나의 테마는 노년의 외로움이에요. 요즘은 너무 개인주의로 사회가 바뀌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요. 최근 영화를 봐도 전부 자극적인 멜로, 반미, 친북, 레프트적인 것들이죠. 이런 정황상 이번 영화가 굉장히 소중했습니다. 작법 자체도 좋았고요. 정기자 - 대사 중에 ‘뜬구름 잡느라고 많이 다녔지’라고 회상하는 장면이 있었죠. 극중 아들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젊은이들이 다 마찬가지지만, 이상과 꿈을 확인하기 위해서 달리다가 실패하면 뜬구름이 되고 이상을 손에 쥐면 그걸 성공이라고 하죠. ‘세상을 다 아는 것 그것을 성공이라고 본다’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린 뭐든 꼭 눈으로 봐야 성공이고 올라가야 성공이라고 보는데, 세상을 아는 삶 그것이 행복이죠. 장기자 - ‘이대근, 이댁은’은 몇 번 보셨나요? 영화인협회 일과 전주영화제 참석 건 때문에 바빠서 시사회 때 한 번밖에 못 봤어요. 일년에 17~18편씩 찍을 때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왜 그리 긴장이 되던지(웃음). 후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작품의 철학, 작가의 사상, 인생관을 내가 깊이 있게 연기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부담도 있었어요. 정기자 - 처음 영화를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영화 초반 20분 정도가 잘려나갔더군요. 감독이 흥행에 대한 고민을 한 거죠. 이미 검증된 작품인데도 관객들은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안 본다고 하고 사람들은 새콤하거나 싸우고 울고 짜고 그런 것만 찾으니 제작 관계자들이 자꾸 고치라고 그랬나 봐요. 감독이 편집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죠. 너무 아까운 장면들이 많이 잘려나갔어요. 결국 영화는 감독예술이니 (배우가) 뭐랄 수 없잖아요. 정기자 - 감정이 터지려다 말고, 눈물이 나려다 말고 했죠. 그게 얼마든지 터트릴 수 있는 거였는데 말이죠. 감독은 굉장히 절제했죠. 설사 흥행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로부터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보자는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장기자 - 공교롭게도 ‘스파이더맨3’와 극장에서 맞붙었는데, 그건 알고 있었나요? 전혀요. 전 극장에 우리 스태프와 관객 한 명만 있어도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해왔어요. ‘내가 이 작품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흥행은 되려면 되고 아니면 말고…. 10년 뒤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예술이잖아요. ‘이대근, 이댁은’은 여느 흥행작품과 확실히 달랐어요. 정기자 - 여유가 있어 보이네요. 이름을 걸고 한두 번째 작품(첫 번째는 1979년작 ‘대근이가 왔소’)이자, 오랜만의 출연이라 긴장하셨을 줄 알았는데. 흥행은 별로 개의치 않으시나 봐요. 흥행은 문제가 안 됩니다. 저는 모든 인간의 삶을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주라는 공간에, 지구라는 무대에서, 해와 달이라는 조명 아래, 사랑을 테마로 불철주야 행복하게 살고자 홈드라마를 하는 연기자입니다. “영화를 많이 하다 보니, 내가 병신이 됐어” 영화배우 이대근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일 년에 열여덟 작품을 찍었다. 쉴 틈이 없었다. 술집을 전세 내고 술값을 ‘쏘는’ 치기도 부려봤다. 하지만 스타라는 타이틀은 맨몸으로 부딪치며 ‘삶’을 배울 기회에 대한 기회비용이었다. 영화 속에서만 살아온 그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 ‘모래알’처럼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 비로소 나온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정기자 - 다시 태어나면 영화배우 안 하신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제가 3백여 편에 출연했어요. 너무 빠른 시간에 많은 작품을 하다 보니 지쳤어요. 일 년에 열여덟 작품을 하면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서 드라마랑 연극도 했지. 한 25년간을 최고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리고 무대 위에서만 사니까 이 분야에 관련한 사람만 만났어요. 만날 보는 사람이 기자, 작가, 감독, 연기자, 식당아줌마…. 순전히 그렇게 살아오다가 딱 그만두니까 그제야 세상 사람들이 마치 바닷가 모래알처럼 하나하나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난 늘 만들어놓은 세상에서만 살았는데 이렇게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았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게 됐어요. 정기자 - 의외네요. 배우, 특히 연륜이 있는 배우라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을 줄 알았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간접 체험도 어려웠죠. 정기자 - 그야말로 작품 안에서만 살아오신 거네요. 그렇죠.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게 영화 아닙니까. 안 되는 게 없었다고. 장기자 - 언제 그렇게 현실 사회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건가요? 요 몇 년 전부터 그랬다니까. 오늘 보십시오, 저 혼자 운전하고 왔잖아요. 세상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어저께까지 전 자장면 한 그릇 남한테 얻어먹어본 적이 없어요. 50명이든 1백 명이든 내가 다 샀어요. 충무로 다방에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시면, 거기 손님이 다 선후배니까 전부 계산하고 나왔어요. 한번은 하얏트 호텔에서 친구들 20여 명하고 있다가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보게 나이트클럽 문을 닫고 제대로 놀아보자고 했어요. 부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해보자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또 내가 영화 속에서 부자 역할을 많이 했어요. 왕부터 거지, 가파치 역할까지 다 해봤으니. 어쨌든 그때가 여자 팁이 만원이던 시절이었는데, 하루저녁에 천오백만원이 나왔더라고. 그걸 내가 다 냈죠. 정기자 - 다른 손님들 것도요? 골든벨을 울리셨네요. 지금 말로 하면 그렇죠. 그러고는 동이 터오는데 차비가 없어(웃음). 일단 호텔 주차장에 앉아서 숨을 고른 뒤 북아현동 집까지 걸어갔어요. 이십 리를 새벽 4시에 걸어가면서 느껴보는 거지, 절대적인 가난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고. 체험이라는 게 중요하거든. 정기자 - 아니, 그런 체험을 통해서 가난 체험을 하셨다고요? 그렇죠. 가난이라는 것도 그냥 가난과 절대적인 가난은 달라요. 우린 가난이라고 하면 돈만 따지는데, 우리같이 ‘정신 사업’하는 사람들은 우정의 가난, 효의 가난, 사랑의 가난, 정의 가난…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캐릭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장기자 - 아가씨 팁이 만원이었다면, 대체 그때가 언제인가요? 몇십 년 전. 그런 바보짓도 해봤다니까요. 정기자 -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다시 못할 바보짓 혹은 나만 해봤을 바보짓이 있다면요? 나만큼 못해본 사람도 없더라고요. (일반인) 친구들 보니까 연예계에서 쉬쉬했던 연애도 하고 살았더라고. 우리는 누구네 집 아파트 두 번만 올라가면 ‘둘이 살림한다’ 그러잖아요. 우린 주지승처럼 살아야 해.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정기자 - 그런 생각을 항상 하면서 사신 건가요? 이렇게 앉아 있으면서도 난 병신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 양반(사진기자)은 자꾸 카메라로 찍어 버릇하잖아. 저 사람도 병신 된 거야. 왜냐하면 어딜 가도 뭘 봐도 전부 카메라 렌즈로 보듯이 보이는 거야. 이 양반도 나중에 나처럼 병신 된다고. 나도 만날 카메라 앞에만 서서 살았으니 병신이 된 거야. 정기자 - 늘 카메라 앞에 있는 느낌으로 사신다고요? 그렇지. 관객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이런 게 ‘오로매릭(Automatic)’으로 보인다고. 어딜 가더라도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야지 아파트, 돈 , 명예 얘기하는 사람과는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어요. 장기자 - 이대근 선생 하면 왠지 풍류를 즐기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해를 많이 해요. 술도 무지하게 먹을 거 같다고 그러죠. 그런데 난 맥주 3분의 2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확 달아올라요.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으면 하는 게 소원이에요.“우리 때 액션은 ‘작품’이었어” 이대근을 인터뷰하면서 그에 대한 선입견이 두 번 깨졌다. 첫 번째는 나이에 비해 젊은 얼굴. ‘이대근, 이댁은’의 노인 분장 탓일 수도 있다. 영화를 차치하고라도, 그의 얼굴은 붉은 기운이 도는 청년의 혈색이었다. 두 번째가 바로 술이다. 맙소사, 천하의 이대근이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는 게 소원이라니. 힘든 액션 연기 이후 맥주 원샷의 ‘영화 같은’ 로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액션은 진짜였다. 목숨을 걸었다.정기자 - 통유리를 깨고 뛰쳐나오는 액션 연기를 하고 나서 맥주 한 잔 좍 마시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말이죠. 맞아요, 김효천 감독과 작품 할 때 유리를 깨고 뛰어나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이 유리가 두꺼워요. 액션 한다 하는 선배들에게 “이거 뚫고 나가면 다치지 않습니까” 했더니 “왕년에 이거 한번 안 해본 사람 없다”는 거예요. “오케이, 그럼 하겠다”하고 ‘그으냥’ 뚫었죠. 액션 하는 사람들은 ‘오늘 나가서 다칠 수도 있다, 죽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요. 저 한창 때는 합이 엄청 많았어요. 딱 때리면 막고 때리는 걸 하나의 합이라고 하는데, 보통 10초에 열세 합까지 했어요. 게다가 나는 왕초 역할을 많이 했으니 주먹이 (코앞에 주먹을 갖다대며) 이만큼 가까이 왔을 때 ‘샥’ 피하고 때려야 하거든요. 그래야 그림이 예쁘게 나오니까. 요즘처럼 마구잡이로 잔인한 거만 보여준다고 액션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다 가짜인데, 액션도 작품을 만들어야지. 정기자 - 죽을 고비도 넘기셨겠어요? 진짜 몸이 분해가 됐구나 하는 작품이 있었어요. ‘오륙도 이무기(1978)’ 때 폭파 직전의 배에서 뛰어내리는 신이 있었는데, 그것도 미리 움직이면 그림이 안 나오잖아요. 딱 아슬아슬한 순간에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꽝하고 배가 폭파하는 거예요. 그 큰 배를 터뜨리려니 다이너마이트를 얼마나 많이 심었겠느냐고. 그 충격파가 얼마나 컸는지 난 내 몸 작은 뼈까지 다 분해가 되는 줄 알았어요. 스태프들이 물고기가 죽어서 둥둥 떠 있는 바다 가운데서 나를 건져냈대요.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의식은 있는데 몸은 꼼짝도 못하겠더라고. 그 정도 상황이면 고막이고 뭐고 다 나가야 정상이라는데 난 멀쩡하게 살았으니 천만다행이지. 장기자 - 그러고 나서도 또 액션 영화를 찍으셨죠? 그럼요. 멋진 그림 만들겠다고 제주도 일출봉 낭떠러지에서 치고 받고(웃음). 그렇게 촬영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혼자 힘으로 일어나질 못했어요. 맞는 연기할 때 목을 팍팍 돌려야 하니까 근육이 늘어나서 스스로 목을 못 들어 올리는 거죠. 파스를 붙이는 게 아니라 아예 온몸에 발랐어요. 그래도 ‘김두한 1·2·3·4·5’편 ‘거지왕 김춘삼(1975)’ ‘시라소니(1979)’ 등 일단 한국의 ‘오야붕’ 역할은 다 했다고요(일동 웃음). 그러다 향토물이 유행하니까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작)’를 했고, 이어 사극이 붐을 이룰 때는 ‘연산군(1987)’을 했죠. 케이블 TV에서 ‘뽕(1985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보여주니까 이대근은 그런 작품만 한 줄로 알고 있지만, 시대가 원하는 걸 한 거예요. 지금도 액션이 유행이라고 하면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겠죠. 장르를 넘나들지 못하면 한국에서 배우하기 어려워요. 한창 액션 영화 할 때는 내가 길을 가면 진짜 싸움 잘하는 줄 알고 “야 김두한 간다, 한번 붙어보자” 그랬다고. 정기자 - 진짜 싸움을 잘하세요? 진짜 잘하진 않고요(웃음). 태권도 초단에 기계체조, 복싱, 아마추어 레슬링을 했으니 맞지는 않죠. 상대는 한 가지 운동밖에 안 했으니 내가 약점을 다 아니까. 어릴 때는 날아다녔어요. 배 밟고 점프하고 그런 거 내가 다 했잖아.“정지하면, 사랑은 죽어요” 이대근은 신께 감사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다 쓰게(돈?) 해주셔서 감사하고, 딸 둘이 박사가 되고 막내딸은 교사가 되어 감사하고, 공부만 하던 둘째딸까지 결혼을 해 세 딸 모두 좋은 임자를 찾았으니 감사하고, 미국에 아내가 있는 집이 있고 한국에도 조그맣지만 혼자 살기 불편함 없는 아파트가 있으니 감사하다고. 장기자 - 말씀을 듣다 보니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지금도 저는 맘속에 남존여비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개인적으로 여자들의 최고의 행복을 말하자면, 동물의 왕국에서 다리 좍 벌리고 대낮에 낮잠 자는 암사자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수사자들은 눈알이 빨개요. 언제 어떻게 잡혀먹을 줄 모르니 보초 서느라고. 여자들은 그런 수놈을 만나 암사자 팔자가 돼라 이겁니다(일동 웃음). 남편은 언제 어딜 가더라도 아내를 책임, 보호, 관리할 수 있어야 해요. 정기자 - 책임, 보호는 좋은데요, 관리가 좀 마음에 걸리네요. 남자한테 관리받고 싶은 여성분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보살핌이란 말씀이시죠? 보살피는 정도가 아니라, 홈드라마 전체의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죠. 장기자 - 세 분의 사위는 세 가지 요건에 부합하는 분을 맞이하셨는지요? 절대로 내 딸을 배신하지 마라. 그리고 책임져라. 보호 관리해라. 그 세 가지 중 하나만 빠져도 남편 자격이 없다고 했죠. 나는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미국 아내에게 전화합니다. 26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지금도 내가 간다고 하면 내가 먹고 싶은 거 좍 차려놓고 기다릴 정도로 와이프가 잘합니다. 아침저녁으로 통화하니까 떨어져 사는 거 같지 않아요. 정기자 - 그래도 같이 있고 싶으시죠? 그동안 미국을 240번 다녔어요. 가면 일주일, 길어야 보름 머물고, 어쩌다 하룻밤 자고 오는 날도 있었어요. 우리 배우들은 감성이 좋잖아요. 아침에 그냥 문득 생각나면 바로 미국 가기도 했죠. 제가 비행기를 얼마나 많이 탔겠어요. 그런데 하늘 꼭대기에서 보면 참 웃겨. 사는 게. 중공이다 이북이다 한국이다 이런 것이 어리석기가 기가 막히고. 인간의 행복과 삶 자체가 말예요. 어차피 다 죽어버리는데. 아침서부터 저녁까지 자기 아내한테 죽을 때까지 매일 뽀뽀하고 매일같이 먹으러 다녀도 결국 1백 년도 못 살고 죽어버리는 시대에 뭐가 어쩌고 말이 많은데 나는 아주 싫은 거야. 아, 내가 오늘 이 세 사람에게 기가 막힌 걸 하나 가르쳐드려야겠네(일동 웃음). 이걸 알면 절대 사랑에서 실패하거나 후회하지 않아요. 사랑의 약점이 뭐야? 그걸 한번 대답해봐요. 장기자, 정기자 - 글쎄요. 사랑에 약점이 있다고. 그걸 모르면 사랑하기 힘들어. 오늘 인터뷰하면서 내가 사과장사라면 내가 사과를 한 상자씩 드리는데, 난 이런 거만 했으니 답을 선물로 드릴게. 사랑은 정지하면 썩습니다. 처음에 사랑할 때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마에 뽀뽀하고 그러더니 나중에 물이나 떠오라고 하는 게 다 사랑이 정지되어 있어서 그래. 가족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정지하면, 사랑은 죽어요. “이 세상이 의리는 없어도 우정은 있어요” 마음의 가난, 사랑을 말하던 이대근은 우정도 언급했다. 영화 속에서만 살아와 세상을 모른다는 자조적인 그의 말처럼, 그가 말하는 우정도 ‘영화’같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더라도 사랑과 우정은 영화처럼 환상적이어도 괜찮지 않은가.정기자 - 배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언제인가요? 제가 담배를 무진장 피웠는데,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나 하나 담배 피우게 허가했던 거. 항상 이렇게 담배를 들고 있었죠. 내가 열한 살부터 담배를 했거든요. (일동 ‘헉’) 그때는 우리가 못살 때라 거위배가 있어서 다들 폈어요. 담배 끊은 지는 5년 됐고. 정기자 - 거위배요? 아, 회충 회충. 약도 없고 해서 담배를 피웠지. 장기자 - 담배는 어떻게 끊으셨어요?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다 싶은 게(웃음). 워싱턴에 40년 된 후배가 있는데 하루는 걔가 자기가 살면서 제일 잘한 게 담배를 끊은 거라며 같이 담배를 끊재. 그동안 남자들 간에 일이 있으면 같이 했는데 이걸 안 하겠다고 하면 여직까지의 우정이 가짜가 되는 거 같아서 그러자고 했죠. 정기자 - 같이 가야 하는 우정이기 때문에 담배도 같이? 형이라는 놈이 가짜가 되기는 싫더라고. 술도 못 먹지, 노름도 못하지, 골프도 못 치지. 무슨 재미로 사나 싶을 땐 그놈이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결국 끊어지더라고. 정기자 - 담배보다 더 큰 게 있었으니까 끊을 수 있었군요. 우정 때문이지. 아무리 술 먹고 난리를 쳤어도 내 전화 한 통이면 새벽 6시에 차 타고 두 시간 공항까지 달려오는 친구예요. 걔하고 나의 드라마는 아주 말할 수 없이 많아요. 담배는 문제도 아니지. 세상에 의리는 없을지 몰라도 우정은 있어요. 장기자 - 결혼한 지 40년이 넘으셨죠, 두 분의 사랑은 지금도 진행형인가요? 일어나자마자 전화하고 잘 때 전화하고. 장기자 - 매일 무슨 얘기를 하세요? 오늘 별일 없었나? 나는 별일 없었다, 오케이. 애들 전화 왔나? 오케이.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장기자 - 아내분께서는 남편에 대해 어떤 불만이 있을지 생각해보셨어요? 와이프는 내가 모자라는 게 많다고 해요. 나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난 세상을 전혀 모르거든요. 하다못해 자동차 오일 가는 것도 모르니 남편으로서는 틀렸지. 하지만 와이프는 제가 착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해요. 불만이라면 남에게 당하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게 불만이지. 장기자 - 당하고 살 분은 아닌 줄 알았는데. 정기자 - 저는 왠지 많이 당하셨을 것 같은 느낌이 와요. 모르는 거라니까요. 뭔 일이 있으면 조언을 구하는 동료나 선배가 있어요. 오늘도 기자 만난다고 얘기했더니 가서 이런저런 얘기는 하지 말고, 말 좀 잘하라고 하더라고. 그런 식으로 난 잘 몰라요. 지금 쓰는 돈도 다 옛날에 벌어놓은 걸로 살고 있고. 장기자 - 이민 간 지 올해로 25년째인가요? 대종상 부상으로 할리우드 20일 연수를 다녀왔거든요. 70년 전에 만들어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우리 딸들이 다섯 살, 열 살, 열세 살이었는데 이런 문화를 보여줘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이태원에서 사는 걸로 생각하라며 미국에 보냈어요.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좋은 일을 하라고 했는데 공부 마치고 나니 한국 하면 남산, 구멍가게, 집, 학교밖에 몰라서 못 오겠다더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적이 없었어요. 기껏해야 명동 가서 떡볶이나 먹였거든요. 그 큰 애들이 지금도 한국에 오면 명동으로 달려가 떡볶이랑 김밥을 먹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딸 셋과 마누라를 데리고 제주도부터 시작해 부산, 대구, 대전을 다 돌아다녔지(일동 웃음). 그랬더니 악 소리를 지르더라고.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였느냐고. 장기자 - 따님들을 하나같이 잘 키우셨어요. 큰 딸은 약학박사 학위를 딴 뒤 FDA 고위직에 근무하고 있어요. 작은 딸은 의대, 약대 거쳐 박사를 딴 뒤 역시 FDA에 있어요. 막내딸은 교사고. 큰 사위는 목사, 작은 사위는 박사고 막내 사위는 사업하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사’자가 여럿이네(웃음). 처음 미국에 가서 이것들을 어떻게 키울 거냐 고민하면서 와이프랑 한 열흘 울었어요. 장기자 - 아내의 똑똑함에 반해서 결혼하셨다면서요? 아내가 아주 엄하게 키웠어요. TV는 두드려야 나올 정도로 고물을 가져다놓고 그나마 하루에 1시간 이상 안 보여줬어요. 자명종 놓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고 행여 늦잠 자면 학교를 아예 안 보내더라고. 미국에서도 회초리 들고 아이들 키웠어요. 그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준 거죠. 하루 4시간 이상 자서 박사 학위 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4시간 이상 자면 끝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과정이 많았죠.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었더니 눈물로 키웠답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이대근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소년처럼 웃었다. 예술하는 사람은 쉬면 안 된다는 그의 말처럼, 다음 작품 ‘무림 여대생(곽재용 감독)’은 재미있는 흥행작이 될 거라는 그의 눈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액션도 있어. 다 내가 직접해.” 문득, 그의 근육을 확인하고 싶었다.정기자 - 선생님, 팔 만져봐도 돼요?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를 만져봐. 딴딴하지? 연기는 발가락 끝까지 계산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던 이대근은, 그 어느 때보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웠다. 마침 지나가던 한 운전자(여성)는 창문을 열고 “어머, 이대근씨 아니세요~ 반가워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적당한 데서 그림을 찾으세요. 어차피 배경은 잘 안 나오잖아요. 생활 속을 살아가는 이대근처럼 보였으면 좋겠어. 멋있고 그런 거보다.” ‘생활 속의 이대근’처럼 보이길 바란다며 그는 선글라스를 꼈다. 갑자기, 이대근씨를 바라보는 앵글이 영화가 됐다.■글 / 장회정·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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