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 건 검색)
- ‘제2 장미란’ 듀오 이선미·박혜정, ‘금’ 싹쓸이로 평양서 애국가 릴레이
- 2019. 10. 27 20:43스포츠
- ... 주니어 109㎏급 황상운(19·한국체대)이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어 금빛 합창에 동참했다. 이선미와 박혜정은 27일 평양 청춘가역도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
- ‘제2의 장미란’ 이선미·박혜정 평양 입성
- 2019. 10. 21 22:50스포츠
- ... 마찬가지로 이날 오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한 뒤 평양 순안공항에 닿았다 이선미는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 박혜정은 유소년 여자 최중량급에 각각 출전할 예정이다. 이선미는...
- 장미란
- 가수 김건모 어머니 이선미씨 등 7명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 2017. 04. 27 09:46인물
- ... 모친 이선미씨. 연합뉴스 올해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로 가수 김건모씨의 어머니 이선미씨(73)와 요절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씨의 어머니 이춘영씨(59) 등 7명이 선정됐다....
- 예술가의장한어머니상
- [부고]이선미(스포츠조선 총무팀 과장)씨 시모상
- 2013. 03. 19 14:12인물
- 이선미(스포츠조선 총무팀 과장)씨 시모상=19일, 을지병원장례식장 3호실, 발인 21일 오전 6시 (02)970-8444
스포츠경향(총 9 건 검색)
- [인터뷰] ‘솔직당당’ 여자역도 이선미 “슈가 팬이라 외치고 싶어 파리 시상대 오를 것”
- 2021. 08. 23 17:10 스포츠종합
-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87kg 이상급 4위를 한 강원도청 소속 이선미 선수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도쿄올림픽 폐막 보름, 이선미(21·강원도청)는 다시 바벨 앞에 서 있었다. 지난 4일 귀국해서 나흘만을 쉬고 일요일부터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체육회 훈련장에 돌아왔다. 다음 대회는 10월 전국체전으로 조금 여유가 있지만 역도 종목 특성상 무작정 쉬면 근육이 풀려버려 다시 몸을 만들기까지 배 이상 공을 들여야하기에 휴식 기간을 최소화했다. 지난 20일 춘천 강원체육회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선미는 “출퇴근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며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엄청난 모험을 하고 돌아온 판타지 소설 주인공처럼 다시 돌아온 일상의 느낌은 예전과 다르다. 이선미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87㎏ 이상급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인상 125㎏, 용상 152㎏로 합계 277㎏를 들었다. 동메달을 딴 미국의 사라 로블레스의 합계 282㎏(인상 128㎏·용상 154㎏)에 5㎏만 모자랐다. 인상을 3위로 마쳤지만 용상 3차시기에서 155㎏을 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155㎏를 들었다면 순위는 어떻게 바뀔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이선미는 승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4위까지 온 자신 또한 대견하게 여겼다. 이번 올림픽은 4위들이 특별히 조명받은 무대였다. 이들은 패배자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자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새삼 공감했다. 이선미도 그랬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허리 부상으로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재활에도 열을 올렸지만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선미는 “개인기록이 인상 127㎏, 용상이 155㎏이었지만, 이번 훈련 때는 인상 115㎏도 놓치고, 용상 145㎏도 겨우 들었다. 첫 올림픽인데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실전에 강한 편이어서 이 만큼의 성과를 냈다”고 웃었다. 그래도 용상 3차시기는 너무 아쉬웠다. 이선미는 “무게는 괜찮았지만 바벨을 들고 구르기 자세를 할 때 (리듬이) 잘 안 맞았다. 실수였다. 만일 155㎏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 눈물이 좀 났다”며 쑥스러워 했다. 이선미의 체급은 뉴질랜드의 성전환 선수였던 로렐 허버드의 출전종목으로도 유명했다. “똑같은 선수라고 생각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고 덤덤해 한 이선미는 “그래도 앞으로 비슷한 선수들이 많이 나오면 좀 불공평해지지 않나 싶었다”면서도 “ 원래 국제대회에 나가면 라이벌도 롤모델도 없다. 다른 선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산에서 초등학교 재학 시절 남자 아이들을 휘어잡던 힘 센 소녀였던 이선미는 선생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역도장의 기구소리와 언니들의 얼굴이 무서워 역도장에 연습간다고 해놓고, 두 달 동안 딴 곳으로 새며 도망도 다녔다. 하지만 주니어 무대에 데뷔해 기록을 점령해가는 희열을 느끼며 역도선수로 급성장했다. MZ세대답게 이선미도 솔직하고 당당했다. 그는 “생각이 그렇게 많지 않다. 생각해보면 역도를 하라고 해서 했고, 대회를 나가라고 해서 나갔고, 선수가 되라고 해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은 그의 역도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이선미는 “올림픽에 나가보니 다음에는 더욱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응원과 격려를 처음 경험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한 동기를 갖고 역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87kg 이상급 4위를 한 강원도청 소속 이선미 선수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아름다운 4위’라는 표현, 이선미에게는 어땠을까. “아쉽기는 아쉽다”고 말한 그는“아쉬울 수도 있는 성적을 그렇게 예쁘게 포장해주시니까 기분이 훨씬 좋았다. 4위도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2의 장미란’을 이야기하면서도 솔직함이 드러났다. 한국 여자 역도의 큰 별인 장미란 현 용인대교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 75㎏ 이상급에서 인상 140㎏, 용상 186㎏에 합계 326㎏으로 우승했다. 이선미 역시 최중량급 샛별로 장미란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선미는 “장미란 언니의 기록은 정말 엄청나다. 그 기록과 비교하면 저는 ‘아기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제2의 장미란’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맞지 않다”면서 “그냥 이선미로 불렸으면 한다. 가까운 목표는 인상 130㎏, 용상 160~165㎏ 정도다. 열심히 해서 다음 파리대회 때는 꼭 시상대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수줍은 표정으로 또 다른 목표를 꺼냈다. 시상대에 오른 후 “방탄소년단 슈가의 팬이라고 꼭 말하는 것”이다.
- 인터뷰이선미
- [도쿄 라이브] 첫 올림픽 무사히 마친 이선미 “잘 끝낼 수 있어 다행”
- 2021. 08. 02 22:32 스포츠종합
- 이선미가 2일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용상 1차시기에 성공하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그래도 잘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첫 올림픽에서 향후 희망을 볼 수 있는 성적을 냈다. 이선미(21·강원도청)의 첫 올림픽 도전은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한 상태로 끝났다. 이선미는 2일 일본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87㎏ 이상)에서 4위에 올랐다. 첫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가까운 성적을 내며 3년 후 파리올림픽을 기대하게 했다. 이선미는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내가 조금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허리를 다치고 95% 정도 회복했는데 그래도 잘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이선미는 부상 여파의 탓인지 경기를 무리하지 않고 다소 안정적으로 끌고 갔다. 이선미는 “안정적으로 하면 동메달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생각보다 잘했다”며 “그래도 첫 올림픽에서 이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선미는 2017년과 2019년 주니어역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주니어선수권과 올림픽 무대는 주는 압박감이 차원이 다르다. 이선미도 이를 인정한다. 이선미는 “일반 시합보다 긴장도 많이 됐다. 올림픽은 응원 소리도 달라서 부담이 많이 됐다”고 했다. 이어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시니어인만큼 이번에 2~3등한 선수들과 붙어볼 수 있으니 그러면 긴장도 덜하지 않을까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경기의 모든 관심은 ‘성전환 선수’ 로럴 허버드(뉴질랜드)에게 쏠렸다. 이선미도 내심 허버드와의 대결을 기대했는데, 허버드가 인상 1~3차 시기를 연달아 실패하며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이선미는 “솔직히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했다”며 환히 웃었다. 올림픽이 코로나19로 1년 연기돼 열리는 바람에 원래면 2년 뒤였을 아시안게임이 1년 뒤로 다가왔다. 좀 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 이선미는 “한 달 정도 쉬고 싶었는데 계속 운동을 끌고 가야할 것 같다”며 “그래도 일단 올림픽이 끝난만큼 집에서 한 일주일 정도는 뒹굴뒹굴하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 이선미
- [도쿄 라이브] 한국 역도 기대주 이선미, 첫 올림픽 출전은 4위로 마무리
- 2021. 08. 02 22:10 스포츠종합
- 이선미가 2일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용상 1차시기에 성공한 뒤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이 역도 최강국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 대회에서 한국은 장미란과 사재혁이 금메달을 땄고 임정화와 윤진희가 은메달을 1개씩 보태며 한국 역도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이후 한국 역도는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었고 세계와의 격차는 멀어져갔다. 반대로 한편에서는 무럭무럭 새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장미란 키즈’ 이선미(21·강원도청)가 처음으로 밟은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희망의 신호탄을 쐈다. 이선미는 2일 일본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87㎏ 이상) 결승에서 인상 125㎏, 용상 152㎏를 들어 합계 277㎏로 4위에 올랐다. 3위를 차지한 사라 로블레스(미국)의 합계 기록은 282㎏(인상 128㎏, 용상 154㎏). 5㎏ 차이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가장 감명을 받은 선수와 롤모델로 주저없이 장미란을 꼽는 이선미는 한국 역도가 최중량급에서 차세대 간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선수다. 2018년 6월 중고역도연맹회장기 여고부 인상에서 121㎏을 들어 올려 장미란의 한국 주니어 기록(120㎏)을 15년만에 경신하며 주목받았다. 이어 같은해 8월 중고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인상과 용상 합계 276㎏을 들어올려 장미란의 주니어합산 기록(275㎏)마저 갈아치웠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2019년 2월 태국 국제역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최중량급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고, 2019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에서 인상 127㎏, 용상 150㎏, 합계 277㎏으로 금메달 3개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하지만 도쿄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에 전념하던 지난해 허리통증이 심해져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올림픽을 위해 훈련에 몰두해야 할 때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부상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4월 올림픽 출전을 위해 마지막 대회에 나섰다. 통증이 찾아왔지만 이를 악물고 견뎠다. 결국 2019년 기록과 합산으로 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허리 부상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아 이선미는 이날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인상 1차 시기에서 118㎏을 가볍게 들었고, 이후 122㎏과 125㎏를 차례대로 성공해 인상을 3위로 마쳤다. 이후 이어진 용상에서 2~3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역도 여자 최중량급 최강자인 리원원(중국)이 금메달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이선미는 로블레스, 에밀리 캠벨(영국)과 2~4위를 다퉜다. ‘성전환 선수’ 로럴 허버드(뉴질랜드)가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한 것도 이선미에게 호재로 다가왔다. 이선미는 용상에서도 1차 시기 148㎏, 2차 시기 152㎏를 연거푸 성공시켰다. 그러나 155㎏을 신청한 3차 시기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합계 283㎏(인상 122㎏, 용상 161㎏)을 든 캠벨이 2위를 차지하며 이선미의 최종 순위는 4위가 됐다. 한편 리원원은 인상 140㎏, 용상 160㎏, 합계 320㎏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 이선미
- [간밤TV] ‘미우새’ 이선미 여사 귀환→김희철 성적표 공개까지…2049 시청률 주간 예능 1위
- 2019. 11. 04 08:28 연예
- ‘미운 우리 새끼’. SBS 제공‘미운 우리 새끼’가 20%대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세로 동시간대 1위, 일요 예능 1위, 주간 예능 1위를 기록, 3관왕에 올랐다. 3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는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가구 시청률 16.4%, 19.2%, 19.7%(이하 수도권 시청률 기준)를 기록했다. 경쟁력과 화제성 지표인 2049 타깃 시청률은 6.4%로 주간 예능 1위를 기록했다. 최고의 1분은 20.8%까지 치솟아 9월 이후 7주 만에 20%대를 찍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건모 어머니인 이선미 여사가 8개월 만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어머니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선미 여사는 서장훈과 티격태격하며 돌직구 입담을 펼치는가 하면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고 ‘미우새’ 아들들 영상을 보면서 “8개월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면서 친근한 모습을 선보여 반가움을 샀다. 이에 신동엽이 솔직하게 “김건모는 결혼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하자 “’건모는 장가간다’가 정답이다. 내 살아생전의 소원이니까”라고 아들의 결혼을 암시하는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미우새’는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면서 “컨디션 좋을 때 가끔 나오겠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미운 우리 새끼’. SBS 제공임원희는 정석용과 함께 무궁화호를 타고 정동진 해돋이 여행을 떠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절친 정석용은 “근데 왜 정동진을 나하고 가?”라며 ‘평소 커플들이 즐겨 가는 장소는 가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임원희는 삶은 달걀과 막걸리를 건네며 ‘아날로그 감성 여행’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들이 정동진에 도착하자 날씨가 흐린 탓에 해돋이 감상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원희는 “내년엔 같이 오지 말자”고 다짐했고 석용은 “우리가 덕을 못 쌓았나 봐”라며 “해 대신 회나 먹으러 가자”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박수홍은 술병이 나서 숙취로 고통받는 사연이 그려졌다. 전날 새벽 수홍으로부터 12통의 전화를 받은 윤정수는 걱정이 된 나머지 아침부터 수홍의 집에 방문했다. 정수는 숙취에 시달리는 수홍을 위해 약을 주고, 라면을 끓여주는가 하면 고양이까지 돌보는 등 온갖 수발을 들었다. 정수가 “고양이는 어디서 났냐?”고 묻자 수홍은 “친한 형이랑 낚시를 하러 갔는데 나를 계속 졸졸 따라왔다”면서 “옆구리에 혹까지 있는 아픈 고양이가 눈에 밟혀 집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수홍이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고 돌봤더니 너무 이뻐서 같이 살게 됐다”는 사연에서는 이날 20.8%까지 최고 시청률이 치솟으며 관심을 받았다. 숙취로 고생하는 아들 모습에 속이 타던 수홍 어머니도 고양이 입양 사연을 듣고는 “좋은 일 했네”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미운 우리 새끼’. SBS 제공김희철은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친구와 함께 원주에 있는 모교를 찾아갔다. 희철은 3학년 때 담임선생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울컥해 평소와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이어 두 사람은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와 성적표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희철의 친구는 체육에서 수가 1개 있었던 반면 희철은 1~3학년 통틀어 수가 하나도 없는 바람에 창피를 당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희철은 후배들하고 대화에서 “성적이 안 나온다면 분명 다른 걸 잘하는 게 있을 거예요”라며 “성적에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꿈을 찾아가는 학생이 돼라”고 조언해 후배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한편 ‘미운 우리 새끼’는 매주 일 오후 9시 5분에 방송된다.
- 간밤TV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김주하, 강수정 등 스타 아나운서 양성한 이선미 대표
- 2007. 06. 22 화제
- 김주하, 강수정, 이정민, 김범수, 김주희 등 스타 아나운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한 외모와 아나운싱을 구사했을까. 그들에게도 초보 연습생 시절이 있었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해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 사람. 바로 ‘이선미 스피치랩’의 이선미 대표다. 그를 만나 스타 아나운서들의 연습생 시절 이야기, 아나운서 연습생들의 불철주야 연습 과정을 들여다봤다. “안녕하십니까. ○○○ 뉴스입니다…” 마포 불교방송 건물에 자리 잡은 ‘이선미 스피치랩.’ 미니 스튜디오가 마련된 강의실에서는 아나운서 연습생들의 실습이 한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 뉴스입니다. 오늘 정부는…” 강의실 틈새로 실습생들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를 읽는 중간 터진 웃음을 듣지 못했다면, 방송국 아나운서가 와서 리포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들이었다. 이곳이 바로 김주하, 강수정, 김범수 등 스타 아나운서들을 탄생시킨 아나운서 아카데미. 지금은 방송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아나운서들이지만, 이들 역시 강의실의 연습생들처럼 ‘연습하다 틀려서 박장대소하던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발굴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키운 사람은 바로 이선미 선생. 그녀는 1970년 동아방송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KBS 라디오 전문 MC, 불교방송 아나운서 국장을 역임한 이후 EBS 시청자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한국 스피치 학회 이사, 이선미 스피치랩의 대표로 있다. 이선미 선생은 1980년대 후반 아나운서 스피치 강좌를 최초로 시작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불교방송 문화센터와 이화여자대학교 방송아카데미 등에서 꾸준히 아나운서 강의를 담당해왔다. 때문에 2001년 본인의 이름을 딴 ‘이선미 스피치랩’을 개설한 것은 그녀의 인생 족적을 살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불교방송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게 됐고, 직장이 없어지면서 외부에서 스피치 강좌를 같이해보자는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당시 사회 분위기상 스피치가 하나의 붐처럼 형성이 되고 있었죠. 제가 원래 사업가 체질은 아니에요. 그런데 기왕에 할 거면 내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아나운서와 방송기자 과정을 전문으로 시작한 스피치 아카데미. 반응은 이외로 좋았다. 학생들의 수는 해가 바뀔수록 늘었고,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아나운서와 기자의 수도 갈수록 늘어났다. 특히 아나운서는 과거와는 달리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호 직업 1위로 꼽히고, ‘준연예인’으로 분류될 만큼 인기가 높아졌다. 이선미 선생은 이렇게 아나운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은 이유에 대해 “매력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아나운서는 참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늘 새롭고, 신선하고, 긴장하게 만들어요. 또 늘 공부하게 만들고, 그만큼 성취욕도 있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MC, DJ… 김주하는 뭘 해도 뉴스처럼 했어요. 하하” 아나운서를 양성하기 시작한 지 벌써 20여 년째. 처음 방송 활동을 할 때는 방송에 미쳐서 살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인재 양성으로 보람과 즐거움을 얻었다. 특히 방송 3사에 아나운서 합격생이 나오면, 그 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이선미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당당히 아나운서와 기자로 거듭난 이들은 지금까지 4백여 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김주하, 강수정, 서현진, 김주희, 김범수 아나운서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생이 기억하는 그들의 과거는 어땠을까. 선생이 김주하 앵커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도 이화방송아카데미에서다. 당시 이화방송아카데미에 출강하던 선생은 처음 강의실에서 김주하 아나운서를 발견하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고 회상했다. “강의실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김주하 앵커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눈이 번쩍 뜨였죠.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아나운서감이었어요. 아주 확실했어요.” 강의실에서 단연 돋보였던 시원시원한 외모와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김주하 앵커. 이화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한 이후에 김주하는 이선미 선생이 강의하던 불교방송 문화센터에서 1년여가량 계속 아나운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작은 케이블 TV에서 6개월간의 방송 경험을 쌓고는 MBC 아나운서 시험을 치러 보란 듯이 합격하더라는 것.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이선미 선생이 한눈에 알아봤던 김주하의 재능은 그렇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MBC 9시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고, 기자로 전향해 기자와 앵커로서의 역량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 그녀.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김주하 앵커에게 단점은 없었을까. “김주하 앵커의 한계는 바로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에 있었죠. 뉴스 리포팅은 무척 잘했어요. 그런데 교양 프로그램의 MC나 라디오 DJ, 쇼프로그램의 리포터 등은 너무 안 어울리는 거예요. 뉴스 앵커처럼 해버리니까 뭘 해도 뉴스 같았어요. 하하하.” 아나운서가 된 이후에도 김주하 앵커의 노력은 끝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아침 7시 뉴스를 진행하기 전날에도 선생을 찾아와 새벽까지 뉴스 연습을 하고 돌아갔을 정도. 연습생 시절도 돋보이는 실력을 자랑하더니 현재 MBC의 주말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하는 김주하 앵커를 보고 있으면 선생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든든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이 똑같아요. 그런데 위치와 역할이 많이 높아졌죠. 정말 장하고, 대견해요.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본인이 정말 많이 노력했을 거예요.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출산하고, 다시 돌아와서 앵커와 기자를 겸하고 있는 거 보면 진짜 대단해요. 아주 멋진 친구죠.” 바쁜 일상 때문에 김주하 앵커 얼굴을 본 건 그녀의 결혼식이 마지막이었다. 결혼식 전날 신랑과 함께 청첩장을 들고 선생을 찾아왔던 것. “결혼식 전날 신랑과 함께 찾아 왔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그렇게 결혼식 때 보고, 아기 낳았을 때 연락하고 정도 참 많은 친구죠.”“강수정은 SBS를 두 번 떨어지고 어찌나 펑펑 울던지…” ‘연예인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많은 MC 강수정 역시 이선미 선생이 아끼는 제자다. 이 선생은 강수정에 대해 “수정이는 성격이 참 밝고 좋았다”고 회고했다. “수정이는 참 예쁘고 잘 웃는 스타일이었죠. 특히 피부가 정말 아기처럼 예쁜 피부 미인이었어요. 또 의지가 강하고, 욕심도 많았어요. 욕심이 많은 친구들이 결국 아나운서가 되더라고요(웃음).” 강수정은 SBS 아나운서 시험 최종에서 두 번이나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선미 선생은 당시 강수정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SBS 최종에서 두 번 떨어지고, 진짜 펑펑 울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 뒤 MBC와 KBS 지원이 남아 있었는데, MBC는 과감하게 지원을 안 하고 KBS 한 곳만 시험을 보겠다고 하더군요. 1차, 2차 발표가 날 때마다 애간장이 녹아서 한 군데만 보겠다는 의지였죠. 그렇게 한 군데만 집중한 덕인지 그해 KBS에 합격을 했죠.” 지금은 KBS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해 전문 MC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수정. 그녀의 연습생 시절 단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어미 ‘…다’였다. “수정이는 어미 ‘다’가 그렇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뉴스 진행을 잘 못했는데, 나중에는 잘하더라고요. 그런데 KBS 입사 이후에는 결국 뉴스를 안 하고 MC 쪽으로 빠지더군요.” 이 선생은 강수정을 연습생들에게 특강을 부탁하면 바로 달려와주는 겸손하고 착한 제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밖에 MBC 이정민 아나운서와 SBS 김범수 아나운서 역시 이선미 선생에게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제자들이다. 이정민 아나운서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나운서를 제의했을 때는 ‘기자’를 하겠다는 답변을 했단다. 그래서 iTV에 들어갔는데, 1년쯤 지난 뒤, 초췌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더라는 것. “정민이가 iTV에서 1년 동안 기자를 하고 난 뒤 저한테 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그때 선생님 말씀 들을 걸 그랬어요. 지금이라도 해보려고요’였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기자 경력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정말 열심히 한 친구였죠.” 지금도 연습생 시절 중국어로 DJ 개인기를 펼치던 게 생생하다고. 약간의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음에도 슬기롭고 지혜로운 친구로 기억했다. SBS 김범수 아나운서는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아나운서에 어렵게 입사했다. SBS가 나이 제한을 처음으로 푼 해에 아나운가 됐다는 것. 이선미 선생은 “김범수씨가 원래 목소리에 비음이 있어서 아나운서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미식 축구 현장을 생중계할 정도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자랑했다”면서 “SBS 합격하고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던 SBS 김주희 아나운서도 역시 ‘7전 8기’로 아나운서가 됐다. 선생은 김주희 아나운서를 ‘키 크고, 욕심 많은 당찬 친구’지만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꿈을 이룬 아나운서로 기억했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 논란, 그냥 트렌드일 뿐 김주희 아나운서가 7전 8기로 아나운서에 합격했다고 말했을 만큼, 아나운서의 관문은 뚫기가 어려운 것일까. 공중파 방송 3사에서는 한 해 2~3명 정도의 신입 아나운서를 채용한다. 때문에 2000대 1 이상의 높은 관문을 통과해야 공중파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 이선미 선생 역시 이 부분은 인정했다. “아나운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활동 영역이 공중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요즘 우리는 다채널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케이블 TV, 사내방송, 지역방송 등 인력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은 과거보다 더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더 기회가 많아진 거죠.” 최근 들어 강수정, 노현정 아나운서의 높은 인기로 인해 지적이고 단아함의 상징이었던 아나운서가 점점 연예인화되어간다는 지적이 많다. 스타 아나운서들을 양성한 이선미 선생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맡는다고 해서 다 연예인은 아니죠. 아나운서실에서도 뉴스 앵커, 연예 오락, 교양 등 분야를 세분화시켜서 진행을 맡기잖아요. 하나의 트렌드 같아요. 한번 아나운서는 끝까지 아나운서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금희, 정은아, 정지영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후 ‘방송인’이라 불리지 ‘연예인’으로 불리지는 않잖아요. 강수정 아나운서가 ‘여걸식스’ 때문에 ‘연예인’ 논란을 만들었지만, 아마 다시 교양 프로그램을 맡는다면 그런 소리는 안 나올 것 같아요.” 방송국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아나운서. 높아지는 인기만큼 치열해지는 경쟁 이외에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건 바로 ‘돈.’ 고가의 디자이너 의상, 스타가 다니는 유명 메이크업과 헤어숍, 피부 관리 등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돈’ 때문에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아나운서가 되려면 고액의 비용이 든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선미 선생 역시 ‘고액의 아나운서 준비 비용’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아나운서 준비 과정에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차가 많이 나요. 어떤 사람들은 시험을 볼 때마다 몇백 만원 상당의 의상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10만원 내외의 의상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죠. 김주하 앵커는 15만원짜리 정장 두 벌로, 모든 시험을 치렀어요. 간혹 1천만~2천만원까지 돈이 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몇십 만원이 드는 사람도 있어요.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검소하게 준비해도 얼마든지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아나운서요? 당연히 외모보다 성품이 중요하죠” 그렇다면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닌다고 모두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까. 김주하 아나운서, 강수정 아나운서처럼 연습생 시절부터 눈에 확 띄어야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선미 선생은 “아카데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바로 `자신이 아나운서가 될 자질이 있냐’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제 눈에는 아나운서가 될 만한 사람들이 들어오죠. 처음 보면 딱 알아요. 하지만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봐서 될 만한데도 본인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굉장히 평범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노력에 의해서 무섭게 변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미지나 화술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죠. 50%는 천부적으로 타고나지만, 50%는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요.” 선생은 최근 몇 년 동안 노력에 의해서 변화된 사람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MBC의 주말 앵커를 하던 서현진 아나운서도 굉장한 노력파였다. 미스코리아 출신, 무용학과 출신, 비쩍 마른 몸매, 불안정한 목소리 등 서현진 아나운서는 자신의 모든 상황을 콤플렉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현진 아나운서는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고, 결국 MBC에 합격, 9시 주말뉴스 앵커까지 맡았다. 마지막으로 이선미 선생에게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아나운서도 결국은 인간이에요. 사람이 좋아야 방송도 좋은 거죠. 예쁜 얼굴은 얼마 못 가요. 사람 됨됨이, 인간의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만이 좋은 방송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 지원자 여러분~ 아나운서보다 가슴 따뜻한 ‘인간’이 됩시다(웃음).”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경향신문 포토뱅크
- 드라마‘무적의 낙하산 요원’의 작가 이선미·김기호 부부
- 2006. 12. 01 화제
- 부부 작가로 유명한 이선미(42)·김기호(45) 부부. 두 사람이 대사 하나하나를 함께 쓰고, 함께 연기하며 작품을 완성시키는 작업 방식은 ‘일심동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여성지 사상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한 모습을 담았다. 양평 자택에서 수더분한 성격의 부부가 털어놓는 유쾌·상쾌·통쾌한 이야기 한 판. Episode 1 아쉬움 남는 ‘무적의 낙하산 요원’ “쉬면서도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걸리게 만든 작품” “‘천년지애 2’ 기획 중” 지난 11월 초에 종영된 SBS-TV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의 시청률과 평이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에릭의 출연과 두 작가의 작품이었기에 기대가 컸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덤에 묻은 자식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속내를 드러낼 정도로, 부부에게도 큰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적의 낙하산 요원’에는 시청자들이 모르는 아픔(?)이 숨어 있었다.Q 기대만큼 재미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선미(이하 이) 그러니까요(웃음). 김기호(이하 김) 역량 부족이죠. 같은 느낌을 주는 드라마면 전편을 능가하는 것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할말이 없죠. 이 극본 공모를 통해 뽑힌 신인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원래는 1년 정도 준비기간을 가지려고 했어요. 갑자기 방송국 사정으로 시작하게 돼서…. 김 ‘신입사원 2’를 기획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작가를 공모했어요. 대본 심사를 하는데, 박성희 작가 작품이 눈에 띄었죠. 당선작으로 뽑혔고, 약속대로 같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 박성희 작가랑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부족했던 옛날 생각도 많이 났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검열이 심해져 쭉쭉 밀고나가지 못하는데, 그 친구는 밀어 부치는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부족한 상황인데, 용기 있게 밀고 나가요.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있더라구요. 그 친구의 장점을 살려주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워요. 우리 생각대로 조금씩 작품을 손보니, 그 친구의 장점이 잘 살아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8부까지 함께하다가, 우리가 손을 뗐어요. 김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이 그 친구에게 우리집을 작업실로 빌려주고, 우리는 한 달 동안 나가서 살았어요. 쉬면서 위궤양이랑 신경쇠약 걸린 게 처음이에요(웃음). 대본을 받으면 확 달라져 있으니까, 배우들이 우리가 손을 뗐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다 알더라구요. 김 그 친구의 원래 의도와 장점을 잘 살려줬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쉽네요. 이 결과가 어찌됐던 그 친구의 실력은 인정해주고 싶어요. 시간이 텃없이 부족했는데도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그것도 입봉 작가가 말이에요. Q 다음 작품 구상은 하고 있나? 이 그럼요. 한 달 동안 고통 속에서 지내다보니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웃음). 우리가 쓰고 있는 작품은 ‘불감증’(가제)인데요, 이 사회의 도덕적인 불감증을 이야기하려구요. 드라마가 될지 영화가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김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LK제작단’에서도 몇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이 박상희 작가에게 프로젝트 하나를 맡겼고, 사무실에 있는 다른 작가에게도 맡겼어요. 그리고 또 한 사람에게는 ‘천년지애 2’ 준비를 맡겼습니다. 소지섭이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이에요. 김 방송은 내년 하반기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는 모두 스타가 돼서 캐스팅이 어려울 것 같아요(웃음). 배우는 그대로 가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요. 이 사람들은 우리가 스타하고만 일하는 줄 아는데, 우리는 모두 신인과 일했어요. 이번에 에릭과 함께 일한 것이 처음 스타와 작업을 한 거예요. Q 함께 작업을 하면서 발굴해낸 배우들이 많은데, 기억에 남는 배우는? 이지섭이는 ‘천년지애’를 했을 때 실패했어요. 지섭이에게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발리에서 생긴 일’ 준비 할 때 강인욱이라는 배역은 지섭이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죠. 그리고 조인성도 반응이 좋았고. 김 남들이 우리 보고 캐스팅 힘이 좋다고 하는데, 사실 힘들어요(웃음). 힘 있는 작가가 있나요? 드라마가 권력화되다 보니까 캐스팅이 힘들어졌어요. 예전에는 배우가 드라마를 먼저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비즈니스를 먼저 생각하더라구요. 배우가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의 힘이 막강해졌어요.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이 1억원을 받는다던데, 우리는 이해해요. 그 친구는 펀딩으로 그만한 돈을 가지고 들어오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 이제는 비즈니스를 잘하는 작가들이 좋은 배우와 일하게 됐어요. Episode 2 극단 연우무대의 신화적인 두 사람 “그놈의 ‘술’ 때문에 결혼까지?” “남편은 연우무대의 ‘마흥식’으로 불리던 연기파 배우” 극단 연우무대에는 신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 이·김 부부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사람은 하루만에 완성한 대본으로 연우무대 사람들을 웃음으로 뒤집어놨고, 또 한 사람은 연기력으로 연우무대의 신화가 됐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했을 정도였으니까. Q 두 분이 모두 연우무대 출신인데, 왜 연극을 택했나요? 이 저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출신이에요. 카메라 기자는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그 과를 들어갔는데, 그런 곳이 아니더군요. 탤런트가 되기 위해 들어오는 과라는 것을 몰랐어요. 학교에 가니까 여자애들이 다들 꽃(?)을 달고 다니는데, 얼마나 당황스럽던지(웃음). 그러다가 연극개론 수업을 했던 김석만 교수가 ‘자신이 연극을 하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연우무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죠. 김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연우무대에 간 것은 아니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녔는데,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구요.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싫고, 내 자신도 막 싫어지고.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연극반(서강대극회) 선배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선배가 ‘(문)성근이가 연극한다고 하니까 한번 찾아가보라고’해서 찾아간 거죠. 이 이 사람이 처음 찾아왔을 때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성근이형의 표정이 아주 죽여줬죠.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어요(웃음). 김 이 사람은 85년도에 입단했고, 저는 1년 후에 연우무대에 들어간 셈이죠. 이 저는 매표 담당이었어요(웃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냥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에 여배우들이 정말 예뻐서 배우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웃음). 저는 디자인 일을 많이 했어요. 포스터나 플래카드 만드는 작업이요. 하지만 남편은 연우무대의 간판 배우였어요. 연우무대의 ‘마흥식’으로 불릴 정도였어요(마흥식은 80년대 영화계를 휩쓸었던 남자 배우로 당시 여배우 트로이카 작품에는 대부분 출연했다. 대표작으로 매춘, 산딸기, 불꽃여자 등 성인영화가 대부분이다). 김 (웃음) 저보다는 이 사람이 대학로의 전설이었어요. ‘칠수와 만수때’ 1인 4역을 했는데, 아직까지 이 사람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이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여자 배우가 없어서 했어요. 김석만 연출가가 자기 프로젝트에 예쁜 여배우들을 모두 끌고 갔으니, 여배우라고는 나 혼자 남아 있는 거예요. ‘칠수와 만수’ 연출이 저를 쓰고 싶어서 썼겠어요. 어쩔 수 없이 저를 쓴 거죠(웃음). 이 작품만 3년을 했어요. 만일 내가 다른 작품을 했으면 신화로 남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김 저는 여러 작품을 했어요. 첫 작품이 ‘꿈꾸러기’였고, 마지막이 ‘늙은 도둑 이야기’였죠(김기호는 아내의 드라마에 연기자로 단 두 번 출연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신애라의 오빠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잠깐 출연했다. 이후로는 더 이상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이 남편이 연우무대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구희서씨(연극 평론가)가 아쉬움으로 통탄(?)의 글을 쓸 정도였어요. 그만큼 연기를 너무 잘했어요. 임권택 감독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극장에 찾아올 정도였는데, 이 사람이 고사했어요. 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연극 때문에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했어요(웃음). 아내가 워크숍으로 올린 ‘개꿈’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도 연우의 신화로 남아 있어요. 그때 제가 조명을 맡았는데,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웃겨서 객석에 뒤집어졌죠. 이 90년에 썼는데, 저의 총기는 그때가 최고였던 것 같아요(웃음). ‘개꿈’은 하루 만에 써서, 배우들이랑 3일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린 작품이에요. 반응이 너무 좋았는데, 대본이나 뭐 이런 게 하나도 안 남아 있어요. 누가 그 연극을 촬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화면이 온통 다 시커멓더라구요(웃음). 김 그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데, 풍자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운동권, 성차별 문제 등을 엮어서 썼는데, 정말 재미있었죠. Q 두 분은 어떻게 사귀게 됐나요? 이 그놈의 술 때문에…(웃음). 근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몰라? 우리 술 먹다가 만나서 이 모양 이 꼴이 됐어요(웃음). 이 사람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어요. 김 술을 같이 먹다가 취해서 그만(웃음). 이 결혼은 91년에 했죠(두 사람은 1남 1녀를 뒀다.). 김 저는 89년에 연우무대를 그만두고 가방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공장 자재과에서 일했는데, 인도네시아에 현지공장 만든다고 해서 갔어요. ‘발리에서 생긴 일’은 그때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쓴 작품이죠. 이 저도 90년에 ‘개꿈’으로 워크숍을 하고, 연우무대를 나왔어요. 김민기씨랑 함께 학전극장 창단 멤버로 일했죠. 그러다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오라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월급도 많고 해서 수락했죠. 그때 배신자라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그런데 그 회사가 1년 만에 부도가 난 거예요. 그때 양희은씨가 방송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드라마 작가를 시작하게 된 거죠. 저의 첫 데뷔 작품이 ‘파일럿’(1993년)이에요. 저 사람은 그때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Episode 3 부부 작가의 탄생 “나 혼자만 방송일 하는 게 억울해서” “여전히 글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혼자 노는 게 미안해서”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은 특이하다. 대사 하나하나를 함께 쓰고, 대본을 가지고 둘이서 직접 연기를 해본다. 배우들 사이에서 부부의 대사는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고 소문이 나 있다. 두 사람의 공동작업 덕분이다. Q 그럼 언제부터 부부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이 ‘파일럿’ 이후 ‘사랑을 그대 품안에’ ‘호텔’까지 쓴 후에 방송에 대해 환멸을 느꼈어요. 인간의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남편한테 농사나 지으러 가자고 했더니 좋데요. 다시는 방송 안 할 생각으로 홍천으로 내려갔죠. 남편 소원이 발가벗고 감자를 캐는 거였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웃음). 김 글쟁이들이 뭘 아나요. 홍천집은 동네 이장이 버려둔 집과 땅을 산 거예요. 산골짜기에 있는 곳인데, 대지만 1만 평이었죠. 당시 몇 천만원이면 됐을 텐데, 속아서 1억3천만원을 주고 샀죠. 당시 가지고 있는 돈이 3천만원 밖에 안 돼서 1억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어요. 1년에 2천5백만원이 이자로 나가더라구요. 이 순진했죠. 아름다운 설경에 반해서 샀거든요. 근데 눈이 녹으니까 이상해지더라구요(웃음). 4륜 구동이 아니면 차도 못 올라오는 곳이고. 첫애를 낳고 홍천에 들어갔는데, 10월이면 물이 방에서 얼어요. 마당 한가운데 천막 쳐놓고 샤워 해야 하고. 김 사람들은 홍천집을 별장 개념으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돈이 없어서 거의 자급자족하면서 살았어요. 밭에서 고추 따고 깻잎 따서 반찬 만들어 먹고, 물고기 잡아서 매운탕 끓여 먹으면서 생활했어요. 이 한 PD가 작업 때문에 홍천에 내려온 적이 있어요. 2박 3일 동안 기획회의 하러 내려왔는데, 뭐 해줄 게 있어야죠. 밭에 있는 고추로만 요리를 해줬죠. 볶아주고, 튀겨주고. 물고기 잡아서 매운탕 해주고. 그러니까 나중엔 PD가 울더라구요. 이렇게 사는 줄 몰랐다고. 별장인 줄 알았다면서(웃음). 홍천집에 김민기씨가 ‘아침이슬’을 작곡한 기타의 줄 하나가 끊어져 있었어요. PD가 우리 사는 모습이 너무 슬프다고, 슬픈 마음을 어쩌지 못했는지 그 기타로 로망스를 연주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그때는 빚만 없었으면 정말 행복했을 거예요. 저보다는 이 사람만 살판난 거죠. 홍천에 내려가자마자 트럭을 사서 끌고 다니고, 내 생일에 배달 온 것이 ‘엔진 톱’이었다니까요. 농사를 지었는데, 1년에 쓴 돈이 4백만원인데 수입은 70만원밖에 안 됐어요. 이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방송일을 시작했는데, 나 혼자 하는 게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을 살살 꼬셨죠. 같이하자고. 처음에는 죽어도 안 한다고 했어요. 김 지금까지도 글에 대한 욕심은 하나도 없어요. 글을 쓰는 것이 생계니까, 먹고사는 것 거들고 있는 거죠. 미안해서. 둘이 함께 쓴 첫 작품이 ‘별은 내 가슴에’예요. Q 글쟁이 작가 두 명이 함께 살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이 처음 5년간은 정말 많이 싸웠어요. 그것도 ‘밥’ 때문에.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꼭 밥을 챙겨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는 밥 때문에 이혼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밥’이에요. 김 지금은 싸우는 코드를 아니까 잘 안 싸우게 돼요. 이 첫째는 재워놓고, 둘째는 들쳐업고 일한 적도 있어요. 난 이 사람이 그렇게 ‘꼰대’인 줄은 몰랐어요. 남자 중의 남자였던 거죠.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고,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에는 큰 냄비에 김치찌개를 한 통 끓여서 끼니마다 김치찌개만 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이 사람은 까탈스럽게 가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잘 먹었어요(웃음). 5년쯤 지나니까 이 사람도 적응을 하더라구요. 김 예전에는 치열하게 싸웠는데, 지금은 싸울 일이 생기면 서로 피해요. 이 싸움을 하면 언제나 제가 져요. 제가 B형이고, 남편이 A형인데 정말 잘 삐쳐요. 저는 싸움을 하고 나면 속이 타서 먼저 사과를 하고, 이 사람은 그냥 가만히 꽁하게 있으니까요. 이제는 말싸움도 안해요. 젊을 때나 하는 거지, 뭐 지금도 싸우나요. 한 번 싸우면 3일 정도 가니까 그 시간도 아깝고. 집에 있으면 서로 할 이야기도 별로 없어요.Q 부부가 어떤 식으로 공동 작업을 하는지? 김 대사 하나하나 같이 써요. 이 지금은 서로 적응을 해서 별 어려움이 없어요. 하도 오래 같이 작업을 해서 그런지 대사가 동시에 나올 때도 있어요. 대부분 저는 누워서 모니터 보고 부르고,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죠. 그러다가 남편이 피곤하면 서로 자리를 바꾸고. 김 저희는 대본을 가지고 직접 연기도 해봐요. 드라마 중반 정도 지나면 배우들과 똑같이 연기를 하게 되요. 이 드라마를 나눠서 한다는 것이 이제는 이해가 안될 정도예요. 따로 하는 게 편한 작업이지만, 드라마의 색깔이 없어지거든요.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안 하면 드라마를 못 쓸걸요. 우리만 집에 있으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집에 사람이 오면 이렇게 떠들게 되네요. 김 LK 제작단의 목표요? 있죠.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거죠. 영화도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드라마 쪽으로 머리가 굳어졌나 봐요. 시나리오 작업을 해봤는데 드라마처럼 쓰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영화 쪽에 관심은 있어요. Epilogue 2개월 전 기자가 그들을 찾아갔을 때 ‘무적의 낙하산 요원’이 끝난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약속을 잡고 그들을 다시 찾았을 때, 두 작가는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작가들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형과 누나처럼 별다른 격식 없이 기자를 맞아줬다. 두 사람에게서 방송국에서 일어난 일, 부부에게 일어난 에피소드 등의 이야기가 끊임없이(특히 이선미 작가의 언변은 코미디언 저리가라다) 쏟아졌다. 특히 연우무대 시절과 홍천에서 살 때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이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녹아들어갈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소개할 때 이선미·김기호라고 하는 이유는 연극과 드라마 입문 시기가 아내가 더 빠르기 때문에 선배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이선미·김기호 부부는! 방송작가들 중 트렌드를 잘 잡아내고,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부부 작가로 손꼽힌다. 이들은 ‘LK 제작단’을 운영하면서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고, 영화 제작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쓴 드라마에 출연한 신인배우들은 큰 인기를 얻고 스타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조인성과 소지섭, 성유리다. 이들의 작품으로는 ‘파일럿’ ‘사랑을 그대 품안에’ ‘호텔’ ‘복수혈전’ ‘별은 내 가슴에’ ‘내일을 향해 쏴라’ ‘뜨거운 것이 좋아’ ‘위기의 남자’ ‘천년지애’ ‘발리에서 생긴 일’ ‘신입사원’ ‘달콤한 스파이’ ‘무적의 낙하산 요원’ 등이 있다. ■ 글 / 최영진 기자 ■ 사진 / 이명헌(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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