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41 건 검색)
- “이러니 주변 사람들···” 사실상 ‘컷오프’된 이수진, 이재명 맹비난
- 2024. 02. 24 16:08정치
- ... 이수진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사실상 ‘컷오프’된 인사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난하고 있다. 이수진 의원은 24일...
- 민주당, 노웅래·이수진 컷오프…‘친명’은 대거 단수공천
- 2024. 02. 22 20:36정치
- ...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22일 노웅래(서울 마포갑)·이수진(서울 동작을)·김민철(경기 의정부을)·양기대(경기 광명을) 의원을 사실상 컷오프(공천배제)했다....
- 더불어민주당공천컷오프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 민주당, 노웅래·이수진·김민철·양기대 컷오프···친명계 단수공천
- 2024. 02. 22 17:17정치
- ...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22일 노웅래(서울 마포갑)·이수진(서울 동작을)·김민철(경기 의정부을)·양기대(경기 광명을) 의원을 사실상 공천 배제(컷오프)했다....
- 더불어민주당공천컷오프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 [속보] 노웅래·김민철·양기대·이수진 공천 탈락
- 2024. 02. 22 15:14정치
- ..., 충남 홍성예산군을 전략선거구로 추가 지정했다. 해당 지역구 현역인 노웅래(마포갑)·이수진(동작을)·김민철(의정부을)·양기대(광명을) 의원은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된 것이다. 임혁백...
- 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스포츠경향(총 80 건 검색)
- [전문] 이수진 “子 시안 우는데 험담…‘이동국 아들’ 맞냐고” 분노
- 2024. 10. 10 17:06 연예
- 이수진 SNS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의 아내 이수진 씨가 아들을 향한 시선에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10일 이수진은 자신의 SNS에 아들 시안 군의 골 세레머니가 담긴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수진은 “그동안 즐겁게만 했던 취미 축구에 임한지도 벌써 5개월이 됐다”며 “선수팀 입단 후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축구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구나. 한없이 부족하구나라는 걸 느끼고, 요즘은 지루한 기본기를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빠에게 물어보고 레슨 요청을 하는 걸 보니 축구를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수진은 경기장에서 아들을 향한 여러 말들을 들었다고. 그는 “PK실축 이후 엉엉 울면서 걸어 나가는 시안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동국 아들 대박이가 못 넣었다’, ‘이동국 아들이 맞냐’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수진은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들에 대해 “아직은 너무나도 어린 시안이가 축구를 하려면 엄청난 무게의 부담감을 이겨내야 하고 커다란 아빠의 이름을 뛰어넘어야만 하겠죠”라며 “그 길이 한참 멀고도 험난하다는걸 잘 알기에 시안이부터 우리 가족 모두가 더 단단해져야 하고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시안이의 꿈을 지지해 줄 수 있을 거 같다”며 응원을 당부했다. 한편 이동국과 이수진은 지난 2005년 결혼해 슬하에 1남 4녀를 두고 있다. 이동국은 아들 시안이와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하 이동국 아내 이수진 SNS 글 전문 아드레날린 폭발하던 극장골 순간 그동안 즐겁게만 했던 취미축구에서 선수팀 입단후 진지하게 축구에 임한지도 벌써 5개월이 되었네요. 선수팀 입단후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축구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구나… 한없이 부족하구나… 라는걸 느끼고 요즘은 지루한 기본기를 하나하나 해나가고있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빠에게 물어보고 레슨 요청을 하는걸보니 축구를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것같아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나씩 배워가면서 울고웃는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시안이가 과연 한국에서 이렇게 축구를 할수 있을지 걱정이되네요. PK실축 이후 엉엉 울면서 걸어나가는 시안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따라 걸어가고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수근대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어요 이동국 아들 대박이가 못넣었다 이동국 아들이 맞냐 시안아빠가 썬글라스를 쓰고 후드뒤집어 쓰고 걸어 나가고있는데 대회 관계자중 한 사람이 아무리 천재성이 있으면 뭐하냐? PK는 넣어야지 라고 말하는걸 듣고 속이 많이 상했던거 같아요 선수일때 온 국민들에게 욕을 먹었을때도 후배들이 아닌 자신이 욕을먹어서 괜찮다고 했던 사람인데 어린 아들이 앞으로 커가면서 이런것들을 어떻게 감당할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지 이래서 축구안시키려고 한건데…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와중에 초긍정의 엄마는 시안이가 천재였어?ㅋㅋ뒷말은 안들리고 앞에 천재성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더라구요ㅋㅋㅋ 이제 막 시작하는 첫 걸음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으로 신이나서 여기저기 축구장을 열심히 따라다니고있는 슈퍼맘인 저도 어제 오늘은 생각이 많아져서 자꾸 끄적끄적 적게되네요 아직은 너무나도 어린 시안이가 축구를 하려면 엄청난 무게의 부담감을 이계내야하고 커다란 아빠의 이름을 뛰어넘어야만 하겠죠… 그 길이 한참 멀고도 험란하다는걸 잘 알기에 시안이부터 우리가족 모두가 더 단단해져야하고 그래야 흔들리지않고 시안이의 꿈을 지지해 줄수있을거같아요 인친님들도 많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 이수진, 중국 대련을 홀린 아우라
- 2024. 09. 30 20:23 연예
- 이수진. 케이플러스 ‘2024 대련 패션위크’ 글로벌 시선 한몸에 모델 이수진이 ‘2024 대련 패션위크’ 런웨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시니어 모델의 위력을 보여줬다. 지난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대련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2024 대련 패션위크’. 이수진은 유지영 디자이너 쇼에 올라 세계 각국 셀럽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패턴이 프린트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이수진은 다수의 경험을 통해 다져진 프로페셔널한 워킹 실력과 포즈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자신의 탄탄하고 투명한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다크한 드레스에 헤어 포인트 장식을 완벽 소화한 이수진은 무대에서 더욱 유니크한 매력을 발산했다. 이수진. 케이플러스 지난 3월에 열린 상해 패션위크에 이어, 대련에서도 당당하게 런웨이 무대를 누빈 이수진은 세계 미인대회로 손꼽히는 ‘2023 미시즈글로브 월드파이널’에서 3관왕을 달성하는 등 모델로서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이수진은 타고난 비율과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 비주얼로 런웨이, 화보, 방송 등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tvN STORY ‘슈퍼푸드의 힘’을 통해 탱탱한 동안 피부와 수려한 비주얼을 갖춘 그의 인생 2막 스토리와 동안 비법이 전파를 타며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런웨이, 광고, 방송 등 세계 무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케이플러스의 시니어 모델 이수진의 행보에 패션 관계자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 이동국 아내 이수진 ‘사기미수 피소’ 심경 “이젠 싸우겠다”
- 2024. 01. 05 13:02 축구
-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사진) 아내 이수진씨가 사기미수 혐의로 피소된 것과 관련해 심경을 밝혔다. 연합뉴스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의 아내 이수진씨가 사기미수 혐의로 피소된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수진씨는 4일 인스타그램에 “도대체 왜 이렇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언론을 이용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사진을 그만 사용하라고 여러 번 얘기를 했음에도 계속 사용을 했고 그에 따른 조정 신청이 들어갔던 것을 마치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기사화하며 악의적으로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진씨는 그간 여러 금전적 피해가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두 건의 금전적 사기를 당했지만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 그냥 조용히 있었는데 그런 입장을 너무나 잘하는 사람들은 이를 악용해 오히려 더 큰 소리를 내 거나 잠수를 타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지 않고 법의 도움을 받아 맞서 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타인의 명예와 돈을 갈취하고도 미안함이 없이 당당한 사람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법이 알고 진실은 언제나 이기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경기 성남 A여성병원 원장 B씨는 지난달 15일 인천연수경찰서에 이동국·이수진 부부를 사기 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이동국 부부가 2022년 10월 법원에 허위주장을 제기해 1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챙기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동국 부부는 지난 2013년 7월 쌍둥이 자매 설아·수아, 2014년 11월 아들 시안이를 A병원에서 출산했다. 이동국 부부는 B씨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자녀 출산 사실을 병원 홍보용으로 이용했다며 초상권 침해를 주장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신청서를 제기했다. 법원은 해당 신청을 기각했고 이후 이동국 부부는 추가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 B씨는 이동국 부부가 모델료를 요구하는 조정을 법원에 신청한 것이 사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이동국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생각엔터)는 지난해 12월 22일 입장을 내고 “지난달 22일 이동국 부부를 고소했던 B씨가 소송 취하 의사를 전해왔다”며 사건이 일단락됐음을 알렸다. 이동국과 B씨의 법적 분쟁은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B씨가 경찰에 이동국 부부 관련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B씨 측은 이동국 부부가 A병원에서 진료비 협찬을 받고 그 대가로 홍보에 동의했다는 관련자 진술 내역 등이 담긴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생각엔터는 4일 입장을 내고 “B씨가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사로 알았다. 현재 이동국 부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당사는 B씨에게 언론을 이용한 명예훼손 행위와 더불어 이동국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악의적 행위를 당장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 ‘급발진 사고’ 설운도♥이수진 “이건 간접 살인” (한블리)
- 2023. 12. 06 09:00 연예
- JTBC 제공 트로트 가수 설운도의 ‘한남동 급발진 의심 사고’ 대면 인터뷰가 공개됐다. 어제(5일) 방송된 JTBC 교통 공익 버라이어티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는 게스트로 출격한 오마이걸의 리더 효정과 함께 다양한 도로 위의 이야기들을 살펴봤다. 특히 장롱면허 10년 차 임을 고백한 효정은 아찔한 사건, 사고에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를 내려놓고 ‘앵그리 효정’으로 돌변해 격분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이날 한문철 변호사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남동 급발진 의심 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했다. 가수 설운도의 아내가 운전하던 차량이 한남동 골목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택시와 충돌한 후 건물으로 돌진한 것.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차량이 행인도 많은 좁은 골목길을 질주한 영상에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에 설운도와 아내 이수진은 ‘한블리’와의 단독 대면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들은 브레이크 상태 이상, 에어백 미전개, 자동 긴급 제동 장치 결함 등 여러 이유로 차량 기능 오작동을 주장, “전 이거 간접 살인이라고 본다”며 심각성을 강조했다. 건물 충돌 직전 부딪힌 택시 기사 역시 사고 발생 전부터 엔진음에서 쇳소리가 났다고 증언하며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자동차 제조사 측에서는 현재까지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JTBC 교통 공익 버라이어티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는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50분 방송된다.
레이디경향(총 3 건 검색)
- ‘57세’ 시니어 모델 이수진이 알려온 5가지 ‘동안 루틴’은?
- 2023. 06. 07 17:34 뷰티
- 시니어 모델 이수진이 tvN STORY <슈퍼푸드의 힘>에 출연해 건강한 동안 비법에 대해 밝혔다. 케이플러스 제공 시니어 모델 이수진이 건강 관리 비결과 동안을 위한 생활 루틴을 공개했다. 케이플러스 소속 시니어 모델로 활동 중인 이수진은 지난 4일 방송된 tvN STORY <슈퍼푸드의 힘>에서 탄탄한 몸매와 매끈한 피부 관리 비법, 꿈을 향한 그의 인생 2막 스토리를 전했다. 과거 승무원으로 활동한 모델 이수진은 결혼과 출산 이후, 가족들을 위해 사느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중년에 시니어 모델로 데뷔했다. 각종 광고와 런웨이를 섭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눈도장을 찍고 있는 그는 “육아 스트레스로 살이 많이 찐 몸매를 혹독한 식단과 체력 관리를 함께 병행해 무려 15kg 감량했다”라고 말하며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수진은 2023 F/W 서울패션위크 라이 서울컬렉션 VIP로 초청받는 등 워킹 실력을 인정받았다. 케이플러스 제공 방송 이후 이수진은 레이디경향에 5가지 생활 루틴이 자신의 건강 비결이라고 알려왔다. 첫 번째 동안 건강의 바탕은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며 노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인 만큼 이수진은 생활 속에서 늘 건강하고 밝은 생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두 번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복 상태에서 30분 자전거와 줄넘기로 운동하고 오후에는 근력 운동과 댄스로 몸매를 유지한다. 식단 역시 중요하다. 최대한 원재료 상태의 식단을 유지하고 다양한 채소로 영양소를 골고루 먹되 싱겁게 먹는다. 물은 의식적으로 2ℓ 이상 섭취한다. 피부 미용을 위해서는 미지근한 물로 세안한 후 마무리는 손이 시릴 정도로 찬물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는 스트레칭과 15분 반신욕 후 전신 괄사 마사지를 해준다. <슈퍼푸드의 힘> 방송에 출연한 시니어 모델 이수진. tvN 제공 <슈퍼푸드의 힘> 방송에서 이수진은 살이 많이 쪘을 때 입었던 바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는 이렇게 찌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기념으로 놔두었다”며 “과거에는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목표가 없는 인생이었는데, 지금은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저 자신이 자랑스럽다”라고 꿈을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프로 시니어 모델다운 비율과 비주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2023 F/W 서울패션위크 라이 서울컬렉션 VIP로 초청받는 등 탄탄한 워킹 실력을 바탕으로 모델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57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분위기와 에너지, 최강 동안 비법을 공개한 모델 이수진의 ‘열일 행보’에 패션계는 물론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우리나라 최초 가수&영화배우 커플 1호 설운도·이수진 부부
- 2012. 01. 05 17:06 연예
- 무명 가수에 불과했던 한 남자 앞에 어느 날 운명 같은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남자와는 ‘급’이 다른 잘나가는 영화배우였다. 남자는 용기를 냈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오죽 급했으면 사귀자는 말보다 결혼하자는 말을 먼저 했을까. 우리나라 최초 가수와 영화배우 공식 1호 커플인 설운도와 이수진의 러브 스토리다. 처음 만남부터 결혼까지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해온 설운도·이수진 부부. 이 부부에게 들어보는 행복한 부부 생활 비법과 위기 극복 노하우. 아내 손맛이 듬뿍 담긴 맛있는 레스토랑 독특하고 이색적인 가게들 구경하는 맛에 걷는 재미가 쏠쏠한 이태원. 그곳에서도 대로변 안쪽에 자리한 프로방스풍의 아담한 2층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빨간색 테라스 창문과 유럽풍 초록색 문의 이색적인 조합에 주인의 남다른 안목이 느껴진다. 설운도의 부인 이수진이 최근 오픈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ON 21’이다.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멋진 내부 인테리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요? 정말 예쁘고 멋진가요? 인사치레 말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줘요. 이 레스토랑에 제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거든요. 배우로, 디자이너로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긴장했던 적은 없었어요. 연예인이 하는 가게라는 유명세를 믿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그만큼 제대로 준비했으니 자신 있다는 뜻이겠죠.” 유명세를 믿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끝내주게 솜씨 좋은 셰프의 음식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지인을 따라나섰다가 그 맛에 반해 레스토랑 오픈을 꿈꾸게 됐기 때문이다. 맛으로 승부하고자 했기에 긴장하고 또 긴장할 수밖에.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그릇부터 가구, 색다른 모양의 조명까지 이수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컬러의 테이블을 찾지 못해 직접 테이블을 제작해 칠을 했을 정도라고 하니 보통 정성을 들인 게 아닌 것 같다. 좀처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수진은 모처럼 인터뷰에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단순 홍보의 목적은 아닌 듯 보였다. 유명세를 이용하려 했다면 이전에도 기회는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 설운도가 입을 열었다. “아내는 활동을 하던, 하지 않던 영원히 여배우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저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연기 열정을 포기하고 그저 바쁜 생활인으로 살아왔어요. 그런 아내가 이제야 자신을 드러내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그렇게 부부 동반으로 방송 출연도 하고, 잡지 인터뷰도 좀 해달라고 졸라대도 끄떡하지 않았거든요. 뭔가 아내도 마음의 정리가 됐나 보다 생각했어요. 설운도의 부인으로, 과거 영화배우였던 이수진으로, 그리고 이제는 가수 이유의 엄마로 말이죠.” 마음의 정리가 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부와 명예, 인기까지 누리며 남 보기에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으로 보이기만 하는데 말이다. 설운도의 부인으로만 산다는 것 가수 설운도는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쳤다. 인기를 얻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결혼하고 한참 지난 후였다. 누구보다 부인 이수진의 고충이 컸으리라 쉽게 짐작이 간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야한 영화니 어쩌니 해도, 제가 활동하던 당시 영화계는 에로티시즘이 대세였어요. 전 세계적으로 그랬죠. 그런데 운도씨를 만나 바로 큰아이를 임신하고, 연년생으로 둘째 아이까지 낳았어요. 예전엔 여배우가 결혼만 해도 은퇴하는 게 당연시되던 분위기였는데, 저는 결혼을 해서 애를 둘이나 낳은 상태였잖아요. 연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운도씨와의 결혼도, 아이들을 낳은 것도 모두 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강제로 연기를 그만두게 된 것 같아서 미련이 컸었어요.” 결혼 전에 비해 결혼 후의 생활은 자정이 지나 현실로 돌아온 신데렐라와 같았다. 화려하기만 했던 여배우에서 하루아침에 남편 뒷바라지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일까지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주부가 된 것이다. 어려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란 이수진에게 가정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정을 꾸린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영화배우 이수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여배우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음을 남편 설운도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잘나가는 여배우였죠. 지금도 아내를 기억하는 마니아 팬들이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저를 만나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 거죠. 내 뒷바라지해야지, 연년생 아들들 키워야지, 양가 부모님들 챙겨야지…. 정말 세수하고 화장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그러니 어디 ‘나 왕년의 여배우 누구요’ 할 수가 있었겠어요? 속으로 많이 힘들었으리라 짐작이 가요. 자신이 영화배우였다는 사실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나 설운도 부인이요’ 라는 말도 안 해요. 그 정도로 철저히 보통 사람으로 살더라고요. 그 부분은 제가 참 미안해요.” 이수진의 화려한 외모를 보면 값비싼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혹여 그렇다손 치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이상하게 볼 위치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의외로 매우 검소하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평이다. 명품 백 사달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설운도의 말도 이어진다. 또 그런 곳에 관심도 없단다. 의외다. “살기 바빴어요. 운도씨가 주목받기 전까지는 고생도 해야 했고요. 막둥이 딸까지 세 아이 잘 키우고 싶어 열심히 일했어요. 전 결혼하고 지금까지 일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연기에 대한 미련과 여배우로서의 로망에 마음 한쪽이 아렸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제가 맞추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여배우 이수진’으로부터는 숨을 수 있었지만 ‘설운도 부인’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더라고요. 더구나 요즘엔 가수 활동을 시작한 아들 때문에 ‘이유 엄마’라는 이름까지 붙어버렸어요. 설운도 부인, 이유 엄마로서의 역할 또한 저의 현실임을 요즘 와서야 느껴요.” 다짜고짜 프러포즈부터 설운도와 이수진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다. 가수와 여배우의 조합도 처음이었거니와 당시엔 이수진이 훨씬 유명한 영화배우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설운도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랬을까? 두 사람의 결혼을 놓고 ‘알고 보니 일본에 있는 설운도 할아버지가 갑부여서 결혼한다’라는 등 숱한 루머가 쏟아졌었다고. “진짜 첫눈에 ‘뿅’ 갔다니까요(웃음). 아내는 제 이상형 그 자체예요. 아부성 멘트 아니고요. 이렇게 눈도 크고, 코도 높고, 전체적으로 선이 굵은 글래머 스타일 말이에요. 거기다 경상도 여자답지 않게 어찌나 친절하고 애교가 넘치던지 정말이지 혼이 쏙 빠졌다니까요. 제 처지 생각하며 주저할 틈도 없었어요. ‘무조건 붙잡아서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 이 생각밖에 없었다니까. 말 그대로 맛이 갔지요. 이 사람한테(웃음).” 1987년 어느 날이었다. 한 드라마 종방연에 자리를 잡고 있던 설운도 일행의 테이블에 이수진의 일행이 합석을 하게 됐는데, 마침 이수진이 설운도의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설운도는 말 그대로 억지에 가까운 구애 작전을 펼치게 된다. “운도씨가 제게 처음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초면에 실례인 줄 알지만 정말 미인이십니다’였어요(웃음). 그 다음 말이 ‘고향이 어디세요? 아이고, 저랑 같은 부산이군요. 제 신곡 나오면 들어주세요’였어요.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수진씨, 우리 결혼합시다’였고요. 세 번 만나니 결혼해달라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죠. 더구나 운도 씨는 제 이상형도 아니었어요(웃음).” 설운도가 단단히 마음을 빼앗겼던 모양이다. 아니면 인연임을 강하게 느꼈던지 말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일 가능성이 높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동안 여러 번 밝혔던 것처럼 ‘청평’에서 확실히 맺어진다. “청평으로 드라이브 가자고 유인을 했죠(웃음). 2월인데 웬일인지 눈이 많이 왔어요. 또 하늘이 도우셨는지 차도 고장이 나고. 근처에 파전집이 보이기에 차 고칠 때까지 동동주나 마시자고 했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었을 때 ‘결혼하자. 결혼 안 해주면 여기서 죽을 거다’라고 다짜고짜 떼를 썼죠. 그랬더니 ‘당신은 상습범! 몇 명의 여자에게 이런 식으로 했느냐’라며 화를 내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더라고요. 그래도 전 느긋했죠. 왜? 차가 없잖아(웃음).” 조금 뒤 설운도가 밖에 나가보니 이수진이 파전집 문 앞에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더란다. ‘추운데 몸이나 녹이자’라며 들어간 곳이 근처 모텔 1층의 레스토랑. 1차로 동동주를 마신데다가 몸이나 녹이자며(?) 마신 와인 탓에 이수진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취해버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뒤의 상황은 상상에 맡긴다. 다만 그날 ‘청평 사건’의 결과에 대해 작은 힌트를 준다면 한 방송에서 설운도가 “‘청평의 기운’을 받은 탓인지 큰아들 이유가 청평을 무척 좋아한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는 정도!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이 연분은 연분이었나 보다. 부부에게 찾아온 위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저 여자와 함께라면, 저 남자와 함께라면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사람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해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여느 부부처럼 이 부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더욱이 어려움은 결혼 초부터 닥쳐왔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큰아이 낳고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하루는 제 어머니가 종로에 있는 다방을 운영해보시겠다며 인수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지인이 하던 건데 아마 어머니께 ‘아주 잘되는 것이니 인수해서 운영하면 생활에 보탬이 될 거’다라며 꾀었던 모양이에요. 어머니는 본인께서도 돈벌이를 해서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셨는데, 제가 반대를 했어요. ‘세상 천지에 잘되는 것 넘기는 법은 없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어머니가 서운해하면서 좀처럼 마음을 바꾸지 않는 거예요.” 결국 설운도는 어머니의 고집에 지고 말았다. 다방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드렸다. 그러나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듯 다방 인수 건은 사기로 드러났다. 지인의 감언이설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인은 어머니 명의로 가계수표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혔다. 순식간에 큰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것이다. 빚쟁이들은 어머니가 아닌 설운도를 찾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와서 “설운도가 돈 떼먹고 안 준다”라며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다시 떠올리기도 힘겨울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제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구체적인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갚았을 정도니까요. 어머니는 충격에 쓰러져서 몸져누우셨지, 아내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 애는 어리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빚을 갚아야 하니 집에는 최소한의 생활비 이상은 줄 수가 없었죠. ‘당분간 생활비밖에 못 준다’라고 말을 했어요. 정말 이 사람 볼 면목이 없더라고요. 너무 미안해서 눈을 못 맞췄어요.”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이혼 사유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사치나 호강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이제 첫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기 시작한 부부에게 크나큰 시련임은 분명했다. “어려웠던 때인 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힘들었더라도 운도씨가 더 힘들었지 제가 더 힘들었겠어요. 제가 좀 고지식한 건지, 보수적인 건지(웃음)…, 제 사전엔 이혼이란 없었어요. 힘든 때니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생각만 했지. 그 일 때문에 사네, 마네 이런 생각은 아예 안 했거든요. 부부가 뭔가요. 어렵고 힘든 일 함께 나누는 사이잖아요.” 친정아버지 마지막을 꽃길로 만들어준 남편 이수진에게 있어 부부란 좋을 때만 함께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힘들 때, 어려울 때 함께해주는 것이 진짜 부부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숱한 위기의 순간들도 잘 견디고 이겨내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진은 남편 설운도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을 갖게 된 일이 있다. 어찌나 감동을 받았는지 웬만한 잘못은 눈감아주고, 넘어가 줄 정도라고. 대체 어떤 사연이기에 그럴까? “친정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당시 살고 계시던 경상도 시골에서 장례를 치러야 했거든요. 누구 한 사람 의지할 데도 없어서 제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는데,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사위인 운도씨가 나서서 일을 도맡아 했는데, 대단했어요. 손님도 많이 오시고, 유명한 스님들도 와주셨어요. 더구나 발인하는 날 제가 깜짝 놀란 건, 친정집에서 운구차가 있는 200m 골목길 양쪽이 전부 하얀 국화 화환으로 채워져 있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은 꽃길이었어요.” 하얀 국화 꽃길은 설운도와 이수진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처가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헌신을 다하는 남편의 모습은 아내 이수진에게 큰 신뢰감을 주었다. “장인어른께서 저를 ‘설 서방’이라고 부르며 참 많이 아껴주셨어요. 제 팬이기도 하셨고요. 노래도 얼마나 잘하셨는지 ‘잃어버린 30년’을 부르면 가수인 제가 다 콧등이 시큰해질 정도였다니까요. 당시에는 처가에 큰일이 났으니 사위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별것 있습니까. 내가 처가에 잘해야 아내도 우리 집에 잘하는 거고 그렇죠. 부부라도 다 주고 받고 하는 거예요. 이기적이면 안 돼요.” 또 하나의 ‘미담’이 있다. 장인의 부고를 전해 듣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경상도 처가로 가는 길이었다. 때마침 새 음반 녹음 작업 중이어서 데모 테이프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가수인 자신을 알아보는 택시기사에게 그 테이프를 선물로 주며 사람들이 어떤 곡을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장모님마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설운도는 그때처럼 급히 택시를 탔는데, 우연히 잡아탄 택시의 기사가 바로 1년 전 바로 그 기사였다. 그가 설운도를 알아보며 테이프 얘기를 꺼낼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었다. “타이틀곡을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그 택시기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택시에 탄 손님들마다 다 들려줬는데요.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제일 좋다고 모두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아! 이거구나’ 딱, 예감이 들더라고요. 그 노래 히트했잖아요.” 제일 마지막에 있어 묻힐 뻔한 노래가 묘한 인연과 얽혀 ‘누이’라는 히트송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설운도는 지금까지 그 모든 게 장인, 장모님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두 분의 기제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설 그랜트&드류 수진 부부에게는 ‘설 그랜트, 드류 수진’이라는 별명이 있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작곡하는 남자로 출연한 휴 그랜트, 작사하는 여자 드류 베리모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설운도의 노래 80%를 아내 이수진이 작사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부부 싸움을 했는데 너무 속이 상해서 일기 쓰듯 내 감정을 몇 자 적어봤어요. 나중에 보니 운도씨가 그 글을 보고 곡으로 만들었더라고요. 그 노래가 ‘여자 여자 여자’예요. 작사가라고 불리는 것이 아직도 어색해요. 프로도 아니고요. 그냥 연기를 했던 열정이 작사라는 통로로 분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곡을 만드는 남편 덕에 빛도 보는 거지만요.” 이 부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가는 단순한 부부의 관계를 넘어섰다는 인상마저 받는다. 서로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주며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설운도는 이수진이 만든 거예요. 가수로서도 이 사람 만나서 빛을 보기 시작했고, 히트곡마다 이 사람과 연결되지 않은 게 없어요. 그뿐인가요. 디자이너로 제 의상이며 스타일링까지 다 책임졌죠. 온갖 유혹에 휩쓸리기 쉬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가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지금껏 별다른 스캔들이나 구설 없이 활동할 수 있었죠.” 설운도는 아내 이수진을 “자신을 지켜주는 하나의 회초리”라고 표현했다. “아내는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이에요. 겉은 강해 보이지만 속이 아주 여린 사람이죠. 나란 사람과 살면서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참아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아내를 보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요.” 그 미안함은 영화배우 이수진의 삶을 포기하고 온전히 ‘설운도의 부인’으로만 살아온 아내의 희생 때문이리라. 또 설운도는 아내가 가지고 있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결혼하면서 은퇴 아닌 은퇴를 했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만큼은 언제나 제 마음속에 살아 있어요. 그 뜨거운 덩어리를 풀기 위해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작사 작업도 하면서 레스토랑을 열었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라도 좋아요. 기회가 된다면 작은 역할이라도 꼭 한 번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도 싸운다, 그러나 설운도는 경상도 사나이다. 화가 나면 불같다. 돌려 말하는 법도 없다. 대신 뒤끝이 없고 금세 화를 푼다. 반면 이수진은 애교도 많고 상냥하며 친절하다. 부부는 있는 그대로 말한다. 지금껏 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태격하며 수없이 싸우며 살아왔다고. “세상에 안 싸우고 사는 부부가 있습니까? 안 싸우면 곪아서 터진다니까요.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일이 되는 거죠. 중요한 건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잘 싸워야 한다는 거죠. 극단적인 말 하지 말고, 자존심에 상처 주는 말 하지 말고… 소위 말하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해요. ‘부부 싸움’이라고 쓰고 ‘부부 대화’라고 읽을 수 있는 게 ‘잘 싸우는 법’입니다(웃음).” 25년 차 연예인 부부는 특히 후배 연예인 부부들에게 ‘믿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한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다른 직업보다 자기애도 강하고, 자존심도 세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고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좋다고. 뜻하지 않은 구설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배우자의 말을 신뢰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다만 집에 들어와서도 스타 노릇을 하려 하면 가족이 힘들어지는 법이라고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아내를 보면 막 설레요. 서로 많이 바쁘다 보니 주말 부부 못잖게 가끔 봐서 그런지(웃음), 묘한 긴장감이 지금도 있어요. 그래서 해외 공연이나 스케줄이 있을 때 저는 무조건 아내와 동행해요. 한국에서는 얼굴도 보기 힘든데 외국 체류 기간 동안은 하루 종일 붙어 있잖아요. 신혼여행 온 것 같다니까요.” 뜨겁고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또 살아가는 부부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남자 설운도는 의외로 지금껏 아내의 생일을 단 한 번도 잊거나 놓친 적이 없다. 결혼 15주년에는 장미꽃 1천 송이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여자 이수진도 일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사랑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그 사랑을 지켜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과정 자체만으로 감동이다. 설운도는 언제부턴가 아내 이수진이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도 기분 나쁘지 않고 되레 정겹게 느껴지고 예쁘게 보인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러는 것임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한다. 사랑하니까 고맙고, 고마우니까 사랑한다는 이 부부의 애정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흔하디흔한 주례사처럼 말이다. <■기획 / 윤현진 기자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이성원 ■헤어&메이크업 / W퓨리피(02-549-6282)>
- 제4호 프리미어리거 이동국과 아내 이수진씨의 행복한 시간
- 2007. 03. 28 연예
- 박지성을 필두로 이영표, 설기현에 이어 이동국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안착했다.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최초의 케이스를 만들어낸 것. 특히 두 번의 월드컵 대표팀 탈락과 수술을 이겨내고 이뤄낸 값진 결실이기에, 수많은 팬들이 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인천국제공항서 영국 미들즈브러 입단을 위해 출국하는 이동국과 남편 배웅차 나온 아내 이수진씨를 만났다. Success Point 1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 “팀이 UEFA컵에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K리그가 휴식기에 들어간 지난 1월 초부터 ‘라이온 킹’ 이동국(28)의 해외진출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지난 1월 7일 영국으로 건너가 미들즈브러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1월 15일에는 메디컬 테스트까지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팬들은 “이동국이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다”면서 힘을 실어줬다. 팬들의 격려 덕분이었을까? 미들즈브러는 이동국의 영입을 결정했고, 그 후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최근 2년간 한국대표팀 경기의 75%를 채우지 못해 프리미어리그 심사위원회에서 취업허가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취업허가서는 매우 빨리 나왔다. 대사관에서는 비자를 즉각 발급해줌으로써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이적에 걸림돌이 됐던 소속팀 포항과 미들즈브러의 이적료 문제는 포항이 이적료를 포기하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그렇게 이동국은 한국인 선수 중 네 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바로 프리미어리그에 합류한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도 남겼다. 미들즈브러 구단에서도 이동국의 정식 입단 전부터 그를 알리기 바빴다. 미들즈브러는 지난 1월 26일 홈페이지(mfc.premiumtv.co. uk)에서 ‘라이온 킹에 관한 10가지 진실’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이동국에 대한 여러 정보를 제공했다. 팬들의 격려를 등에 업고, 미들즈브러 구단의 세심한 배려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지난 1월 29일 인천공항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네 번째 프리미어리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국이 미들즈브러 입단을 위해 영국으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2006년 4월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 독일로 출국할 때의 시무룩한 표정과는 달리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그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는 일성을 날렸다.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처음 넘어가게 됐는데, 이제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커요. 이적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분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어요. 팬들이 저를 영국으로 보내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잘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의 목표는 팀을 UEFA컵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맨유, 첼시 등 상위 4개 팀이 출전하게 되는 챔피언스리그는 그들만의 잔치이기에 참가가 힘들지만, UEFA컵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미들즈브러도 이번 시즌 UEFA컵 출전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동국의 해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이동국은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임대되었다.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후 2002년 월드컵까지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병역 문제까지 겹쳐 6개월 동안 8경기 출전 무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쓸쓸히 국내로 돌아와야만 했다. “2001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그때 잘못된 점을 생각하면서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때는 분명 실패였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진 않겠습니다. 지금은 결코 실패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동국의 앞길이 장밋빛 대로만은 아니다. 우선 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미들즈브러에는 야쿠부, 비두카와 같은 공격수가 좋은 활약을 벌이고 있다. 이동국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지난 2월 1일 영국 미들즈브러 훈련장에서 열린 이동국의 입단식에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 함께. 이동국은 18번을 배정받았다.“이 선수들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뛴데다 유럽 생활을 많이 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이에요. 지금 당장 주전 욕심은 없습니다. 우선은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입단 전에 미니 게임을 두 번 해봤는데, 상당히 빠르고 거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문전에서 집중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이 배울 만한 점이라고 느꼈어요. 수비 가담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내년 시즌에는 한번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이동국은 미들즈브러와 ‘1년 6개월 + 1년’ 계약을 맺었다. 1년은 옵션기간인데, 이때는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그의 프리미어리그 데뷔에 대해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스포츠칸」과의 인터뷰에서 “2월 14일 열리는 브리스톨 시티와의 FA컵 32강전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이동국을 18일 열리는 웨스트브로미치와의 16강전에 투입할 생각이다. 하지만 팀이 브리스톨 시티에 패할 경우 이동국은 2월 23일 레딩FC와의 프리미어십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동국 역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공식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그만큼 이동국은 데뷔전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축구선수 이동국, 그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 축구선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Success Point 2 위기를 기회로 “두 번이나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했지만, 최후에 웃는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했습니다”이동국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 원래 100m와 200m 육상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가능성을 본 축구부 코치가 축구입문을 권유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포철중학교를 거쳐 포철공고에 진학하면서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고 2때 전국대회 최우수선수와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제2의 황선홍’이 나타났다며 축구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포철공고에서 뛸 당시, 팀득점의 절반 이상은 이동국이 만들어낸 점수였다. 이동국은 “축구선수에게 대학졸업장은 필요없다”면서 고졸선수는 역대 최고의 계약금인 1억5천만원을 받으면서 포항에 입단한다. 2년 전 ‘앙팡 테리블’ 고종수가 받았던 최고 계약금 1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프로 데뷔 후 바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비록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무대였다. 또한 프로 데뷔 첫해 11골을 터트리며 고졸 신화를 기록했다. 1998년 열린 제31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19세 이하)에서는 5골을 기록해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동국은 K리그의 부흥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수많은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몰려왔다. 그의 활약은 빛을 발했지만, 골 에어리어 앞에서만 어슬렁거리는 모습 때문에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동국도 자신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들은 후부터 달라져갔다. 이동국은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을 가장 싫어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부동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에게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1년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 진출이 실패로 돌아갔고,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황선홍 선수도 “충격이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동국 자신에게도 그때가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토로한다. “저는 월드컵 대표팀에서 두 번이나 탈락했어요. 그때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후에 웃자’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준비한 만큼 운이 따라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2002년 월드컵 엔트리 탈락 후 그는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 항상 술에 쪄들어 “나 없이 잘 되나 보자!”라고 이를 갈 정도. 하지만 그 험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2002년 K리그에서 초반 다득점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혀 군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4강전에서 이란과 승부차기에서 패하게 됐고, 2003년 입대를 해 광주상무 소속으로 K리그에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동국은 상무에서 선수로 뛸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군대에 들어가면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좌절감을 맛봐야 했어요. 하지만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또 한 단계씩 올라가는 기쁨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상무시절 머리를 짧게 자른 그는 예전처럼 어슬렁거리지 않았고, 그라운드를 맹렬하게 뛰어다녔다. ‘라이온 킹’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그라운드에서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2006년 월드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몸을 사리지 않고 수비수와 몸싸움을 벌였고,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모습까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2005년 제대 후 포항에 돌아와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2006년 월드컵 출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2006년 독일월드컵을 2개월 앞둔 4월 5일.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네 경기 연속 골을 넣었을 때였다. 후반 38분 패스를 받기 위해 방향을 바꾸다 오른쪽 무릎을 삐끗했다. 상대 선수와 몸싸움에 넘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부상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월드컵 출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독일에 있는 세계적인 재활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결과는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완전히 손상됐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 재활에 필요한 시간이 4개월 정도였기 때문에, 그는 또다시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힘겨운 재활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유럽 진출의 꿈을 접지 않았다. 보통의 선수 같으면 좌절감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 젊고 의지가 강했다. 결국 K리그 스타 선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법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실력으로 당당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선수로서 많은 위기의 순간을 겪었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되돌리는 현명함과 뚝심을 보여줬다. 그가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보다는 그라운드에서 맹렬히 뛰어다니는 ‘라이온 킹’이라는 별명이 지금의 그에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Success Point 3 피앙세 이수진 “태몽으로 뱀 꿈과 두꺼비 꿈을 꿨어요” 이동국이 미들즈브러 입단을 위해 출국할 때 아내 이수진(28)씨 역시 그의 곁에 있었다. 아내는 남편보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더 많이 받을 정도였다. 아내 이수진씨는 부상으로 좌절하고 있는 남편을 일으켜 세운 일등 공신이다. 2005년 12월 18일,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이동국과 이수진씨는 결혼식을 올렸다. 97년 미스코리아 하와이 출신인 이씨는 98년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동국은 “착하고 나한테 잘 해줍니다. 제가 운동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라며 신부 자랑을 늘어놨다. 그의 말처럼 이동국이 힘들 때마다 아내 이수진씨는 곁에서 항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2006년 부상으로 월드컵을 포기했을 때, 말없이 곁에 있어준 아내는 큰 힘이 됐다. 이동국이 힘든 수술과 지루한 재활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분이었다. “동국씨가 수술을 결정할 때까지 너무 힘들어 했어요. 제 앞에서는 항상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말했는데, 뒤에서는 힘들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래도 수술과 재활을 받으면 6개월 후에는 회복이 된다는 이야기를 믿었어요. 독일에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죠. 동국씨가 독일에서 축구 경기를 보면서 유럽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나 봐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확인하고 영어 공부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니지먼트사는 10월부터 이동국의 프로필과 경기장면을 담은 DVD를 보내면서 유럽 구단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개의 구단에서 연락이 왔고, 미들즈브러 입단을 확정한 것이다. “동국씨가 입단 테스트를 받을 때부터 마음이 너무 조마조마했어요. 이런 일에는 항상 변수가 있거든요. 남편도 마음을 비우고 떠났지만 조급해하는 것이 느껴졌죠. 저는 동국씨가 또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많이 됐는데, 모든 것이 잘 되어 다행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연이어 생겼다. 남편의 프리미어리그 진출과 함께 반가운 2세 소식도 접하게 된 것. 아내 이수진씨는 현재 임신 3개월이다. 장거리 비행을 견디기 힘든 시기여서 남편을 먼저 영국으로 보냈다. 아내는 다소 안정기에 접어드는 2월 말 남편이 있는 영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태몽요?(웃음) 남편이랑 제가 함께 꿨어요. 남편은 뱀이 엉덩이를 무는 꿈이었고, 저는 사람 크기만한 두꺼비를 꿈에서 봤죠. 알고 봤더니 남편이 태어날 때 시어머니께서 뱀이 엉덩이를 무는 꿈을 꾸셨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축구선수로 키워야 할 것 같아요(웃음). 남편도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축구를 시킨다고 했거든요. 아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자식도 알아야 한다고요(웃음).” 지금은 환하게 웃지만 이수진씨 역시 남편의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이동국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두 사람이 함께 웃는 날이 계속됐으면 한다. “이제는 동국씨가 부상 없이 뛰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남편이 큰일을 하러 가는 거니까, 제가 외로워도 참아야죠. 이제는 동국씨가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아내 이수진씨의 말처럼. Tip 이동국이 입단한 미들즈브러는 어떤 팀인가?축구의 본고장 유럽에는 세계 4대 축구리그가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전성기였지만,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가’를 합해서 세계 4대 리그라고 부른다. 각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팀은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세리에A의 ‘AC 밀란’,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팀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챔피언스리그는 가장 권위 있는 클럽 대항전이다. 참가 자격은 유럽 각국 리그의 우승팀 및 준우승팀에게 주어진다. UEFA컵 경기는 각 리그의 6위까지 차지한 상위팀들이 참가하는 축구대회다. 챔피언스리그에는 출전하지 못하지만, 상위 클럽팀이 참여하는 대회다. 미들즈브러(Middlesbrough)는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클럽팀이다. 1876년 창단했고, 클리블랜드 주 미들즈브러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홈구장은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을 사용하고 있고, 현 감독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다. 지난 2003~2004년 시즌에서 프리미어리그 팀부터 프로 4부 리그까지 참가하는 리그컵 우승을 빼놓고는 우승 경력이 없는 팀이다. 2006~2007 시즌 2월 11일 현재 뉴캐슬, 토튼햄에 이어 12위를 달리고 있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위고, 설기현이 소속된 레딩이 6위를 차지한 상태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원상희·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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