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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눈]영국 자유당의 몰락을 기억하라(2015. 05. 04 16:50)

2015. 05. 04 16:50 오피니언

“2020년 11월 3일, 새로 창당된 (미국) 독립당의 대선 후보 마거릿 존스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 모두에서 지지층을 골고루 빼앗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과반수 득표를 확보하고 선거인단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침내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공상과학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오바마 정부에서도 경제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걸출한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가 라는 책에서 정리한 ‘2020년 미국 대선 시나리오’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체제가 붕괴되는 상상이 가능할 정도로 세계가 대전환기에 돌입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로버트 라이시가 말하는 위기의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수가 부와 소득을 독점하고 다수가 그 나머지를 나눠 갖는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날실과 씨실을 가르고 찢어버린다.” 길은 두 갈래이고 옳은 길은 하나다. 반동과 개혁의 길이 있고 “개혁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법”이다. 4·29 재·보선 이후 네 곳 모두에서 참패한 새정치연합 내부가 예상했던 것과 단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어수선하다. 문재인 대표는 “건드리지 마라”는 취지의 패배 기자회견을 했고, 주승용 최고위원은 사퇴를 선언했다가 의원들의 만류로 주저앉았다. 당의 주류인 친노들은 단결을 강조하고 있고, 비노 세력은 이참에 지도부를 흔들어 20대 총선 공천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회동을 갖고 단결을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조국 교수는 4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두 정치지도자의 만남을 환영하며 “단결 후 해야 할 일은 고강도 혁신이며, 이것 없는 단결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당대포’를 자임한 정청래 의원도 문재인 대표 흔들기를 비판하며 단결을 강조했다. 두 개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로버트 라이시의 저 섬뜩한(?) 상상력과 새정치연합의 추레한 자기반성이 그것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공통분모를 굳이 찾아내자면 로버트 라이시의 ‘개혁’과 조국 교수의 ‘혁신’이라는 키워드 정도일 것이다. 공천 실패, 야권 분열, 리더십 문제 등 미시적인 평가는 대체로 지루한 반복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졌고 총선 때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뒤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공천을 둘러싼 계파 힘겨루기로 시간을 허송할 확률이 가장 높지 않을까. 너무 비관적인가. 재·보선 패배 이후 새정치연합이 깨달아야 할 것은 결과론적 책임공방이 아니다. 자신들의 정당이 국민들로부터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소 생뚱맞게 로버트 라이시의 말을 인용한 이유다. 우리는 거대한 시대적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재벌 개혁 등 근본적인 혁신전략 없이 성장을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한 이야기인지를 깨닫지 않는 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에 나타난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성찰하고 공감하지 않는 한, 혁신은 레토릭으로 끝날 것이고 총선도 ‘노답’일 가능성이 많다. 새정치연합은 영국 보수당과 쌍벽을 이루던 자유당의 몰락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에 따르면 자유당은 “새로운 비전 제시를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노동당에 자리를 내주고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새누리당 역시 작고 뻔한 재·보선 승리에 취해 시대적 변화 요구를 외면한다면 역풍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재·보선 승리는 그들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어쨌거나 공화당과 민주당이 무너진 미국을 상상하는 것은 상큼한 일 아닌가.

금주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