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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558 건 검색)

헌재 “윤석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국가긴급권 남용 역사 재현”
헌재 “윤석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국가긴급권 남용 역사 재현”
2025. 04. 04 15:54정치
...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윤석열 파면 이후
“윤, 만장일치 파면 확신…기각되면 박정희·전두환 시대 회귀”
“윤, 만장일치 파면 확신…기각되면 박정희·전두환 시대 회귀”
2025. 04. 01 21:03정치
... 명명백백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헌법이 명목 규범 혹은 장식 규범으로 전락했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윤석열 파면 이후
전두환 장남 아들 출판 도매업체 북플러스, 결국 파산
전두환 장남 아들 출판 도매업체 북플러스, 결국 파산
2025. 04. 01 17:41문화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씨가 2013년 6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씨 장남 전재국씨(66)가 설립한 출판 도매업체 북플러스가 결국 파산했다. 1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전두환 장남 출판도매업체 북플러스 결국 파산신청···출판계 피해 우려
전두환 장남 출판도매업체 북플러스 결국 파산신청···출판계 피해 우려
2025. 02. 25 11:35문화
... 전재국씨가 국세청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씨 장남 전재국씨가 설립한 출판도매업체 북플러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던 끝에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1998년 설립된 북플러스는...

스포츠경향(총 148 건 검색)

그 사고를 치고도 징계를 안받아?···AFC ‘전두환 사진+경기 2시간전 기권’ 산둥에 징계 안내려 논란
그 사고를 치고도 징계를 안받아?···AFC ‘전두환 사진+경기 2시간전 기권’ 산둥에 징계 안내려 논란
2025. 03. 19 11:30 축구
전두환과 북한 김정은 사진을 들고 광주를 도발하며 응원하고 있는 산둥 관중들. 온라인 커뮤니티 그 사고를 치고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중국 프로축구 산둥 타이산이 2024-25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지만 징계 없이 사건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당초 벌금은 물론 1년간 자격 정지 등 중징계가 예상됐으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다행스럽게 잘 넘어간 것 같다”며 반기고 있다. 중국 포털 소후닷컴은 19일 “산둥이 AFC의 징계를 받지 않아 앞으로도 챔피언스리그에 계속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축구협회도 확정 발표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산둥은 아직까지 AFC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았다. AFC 공식 웹사이트에는 대회 규정을 위반한 팀에 대한 벌금 징계가 올라와 있는데, 여기에 산둥의 이름은 없다. 이 매체는 “산둥은 AFC 챔피언스리그에 계속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심할 여지 없이 산둥에게는 큰 혜택이며, 축구협회의 최근 공식 발표는 이를 확인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축구협회는 최근 2025-26 AFC 챔피언스리그 참가에 대한 공지를 발표했는데, 중국의 쿼터는 ‘2+1+1’이라고 전했다. ACLE 본선 진출권 2장, ACLE 예선 진출권 1장, ACL2 본선 진출권 1장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소후닷컴은 “협회는 산둥이 격결 사유가 있다는 등 설명이 없어 출전에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산둥이 지난달 19일 ACLE 울산 HD전을 앞두고 기권하면서 경기가 취소됐다는 안내 문구가 울산 문수축구장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산둥은 이번 시즌 ACLE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달 11일 홈에서 열린 광주FC전에서 일부 관중이 전두환 사진과 북한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내걸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광주가 산둥 구단과 AFC에 항의하며 사건은 커졌다. 산둥이 해당 관중을 제재하고 사과하는 등 빠르게 진화에 나섰으나 한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했다. 산둥은 이어 지난달 19일 울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ACLE 울산 HD전을 불과 2시간 남겨두고 기권을 선언했다. 산둥은 다수의 선수가 건강 이상을 보였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배경에는 정치·외교적 이유가 있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광주전 여파로 울산 원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하하는 사진이 걸리는 것 등을 우려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주석 비하 사진 등이 중계방송이나 축구 기사 사진 등에 나오는 것을 걱정해 산둥이 고심 끝에 경기 직전 기권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산둥이 갑작스레 기권으로 대회 중간에 빠지게 되면서 16강 진출팀이 재조정되는 등 대회 운영도 큰 혼란을 겪었다. 이에 산둥은 AFC의 징계를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벌금은 물론 1년간 AFC 대회 출장 정지 등까지도 처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산둥 선수들이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요코하마전에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Getty Images코리아 그러나 AFC는 한달이 넘도록 징계 소식이 없다. 중국은 산둥이 징계 대상에서 빠져 사건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AFC의 이해못할 사건 처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사진으로 광주 FC 도발…서경덕 “중국을 ‘고립국’ 만들 것” 경고
전두환 사진으로 광주 FC 도발…서경덕 “중국을 ‘고립국’ 만들 것” 경고
2025. 02. 25 10:04 축구
광주 FC와 산둥 타이산의 축구 경기에서 일부 중국 관중이 전두환, 김정은 사진을 든 모습 중국 관중이 전두환 사진으로 광주 FC를 도발하며 논란이 되는 가운데 서경덕 교수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11일 광주 FC와 중국 산둥 타이산의 아시아축구연맹(이하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경기 중 일부 중국 관중이 전두환, 김정은 사진을 든 모습이 포착됐다. 해당 관중들은 전두환, 김정은 사진을 들고 광주 팬들을 향해 도발하는 제스쳐를 취했고 국내에서 많은 논란이 됐다. 경기 이후 광주 FC는 “대한민국 전체를 조롱하는 행위”라며 AFC에 공식 조사와 징계를 강하게 요구했다. 산둥 역시 “구단도 관중의 불법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관련자들은 산둥 홈 경기를 영구적으로 관람할 수 없다. 개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광주에 피해를 끼쳐 사과드린다”고 해당 관중을 영구 제명했다며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전두환 흉내를 내며 광주를 조롱한 중국인 22일에는 중국의 한 남성이 소셜미디어(SNS)에 광주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흉내를 내며 찍은 영상을 업로드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남성은 ‘폭설과 함께 광주에 전두환이 돌아왔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며 광주 시민을 조롱했다. 점퍼 차림에 군화를 신고 이마를 훤히 드러낸 이 남성은 국립광주박물관 앞에서 붉은 막대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정말로 기가 찰 노릇”이라며 “어떻게 남의 나라의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하여 영상을 제작할 생각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 교수는 “중국인들의 이러한 어이없는 행위들은 전 세계에서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며 “중국인들은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K리그를 뭘로 보는 것인가···‘전두환 도발’ 산둥, 한국까지 와서 경기 당일 ‘대회 포기’ 촌극, 울산전 취소, 포항 16강 가능성은?
K리그를 뭘로 보는 것인가···‘전두환 도발’ 산둥, 한국까지 와서 경기 당일 ‘대회 포기’ 촌극, 울산전 취소, 포항 16강 가능성은?
2025. 02. 19 21:30 축구
프로축구연맹 제공 광주FC를 대놓고 도발하더니, 이제는 경기 당일 석연찮은 ‘대회 포기’라는 촌극까지 벌였다. 산둥 타이산이 돌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를 포기하면서 19일 오후 예정된 K리그1 울산 HD와 경기가 취소됐다. AFC는 19일 홈페이지를 통해 “ACLE 대회 규정 5조 2항에 따라 산둥이 울산과 리그 스테이지에 출전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해당 클럽이 ACLE에서 기권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울산 구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산둥 타이산의 대회 포기로 경기가 취소됐다”며 “온라인 예매는 자동 취소 및 환불 처리될 예정이며 팬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해당 조항을 보면 경기 진행을 거부하거나 경기에 나설 의사가 없다고 사전에 고지하는 등의 행위를 한 클럽은 기권으로 간주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산둥은 AFC 측에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건강 문제로 이날 오후 7시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리는 2024~2025 ACLE 리그 스테이지 8차전을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AFC가 규정상 한 경기만 불참할 수 없으며, 대회 전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안내하자 산둥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게 연맹 측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 없이 입국해 울산까지 온 만큼, 산둥이 킥오프 약 2시간 전에 돌연 선수 건강 상태를 경기 불가 사유로 든 경위는 석연치 않다. 산둥은 최근 K리그1 광주FC와 경기 중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팬들의 도발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지난 11일 중국 지난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ACLE 7차전 홈 경기 도중 일부 홈팬들이 원정 팬 쪽을 향해 전두환 사진을 펼쳐 들어 광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일성과 김정은 사진을 내걸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으나 양쪽 구단은 경기 당일 전두환 사진을 봤다는 목격담만 우선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FC 측은 “광주광역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행위”라며 “AFC에 공식 항의 서한을 내고 철저한 조사와 징계를 요구하겠다”고 대응했다. 산둥은 지난 14일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으나 닷새 만에 K리그 팀과 관련해 또 한 번 논란의 상황을 연출했다. 광주FC 제공 한편 산둥의 뜬금없는 이탈로, 사라졌던 포항 스틸러스의 16강 가능성이 되살아났다. 포항은 8경기에서 3승5패로 승점 9점을 쌓아 최종 9위로 ACLE 리그 스테이지를 마쳤다. 상위 8개 팀에 돌아가는 16강행 티켓을 놓쳤다. 하지만 산둥(3승1무3패·승점 10점)이 남은 대회 일정을 포기하면서 16강행 티켓이 한 장이 남게 됐다. ACLE 경기 규정에 따르면 기권팀이 나올 경우 해당 클럽과 치른 공식전 결과가 모두 배제된 채로 전적이 새로 계산된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한 차례 산둥을 꺾고 승점 3점을 챙겼던 포항은 역시 9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산둥과 맞붙은 팀은 한 경기 기록이 사라져 총 7경기를, 나머지 팀은 한 경기 더 많은 8경기를 치러 성적이 산출되는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AFC가 이 같은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산둥보다 하위 팀들의 순위를 한 계단씩 끌어올리는 방법을 채택하면 포항에도 기회가 생긴다. AFC는 이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울산HD 제공
‘전두환 도발’ 산둥, 이번엔 ‘광주가 용서·제소 취하’ 언론 플레이 논란
전두환 도발’ 산둥, 이번엔 ‘광주가 용서·제소 취하’ 언론 플레이 논란
2025. 02. 19 19:34 축구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사진을 들고 광주를 도발하며 응원하고 있는 산둥 관중들. 온라인 커뮤니티 광주FC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 발생한 ‘전두환 사진 도발’에 대해 중국 산둥 구단에 강력히 항의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제소를 진행하는 가운데, 중국 언론에서는 광주가 산둥을 용서하고 제소를 취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광주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중국 포털 소후닷컴은 19일 “광주가 산둥의 사과를 수용했다. 유명 언론인 이평강에 따르면, 광주는 AFC에 제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산둥이 빠르게 대응해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냈고, 산둥 최강희 감독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광주가 제소를 취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발 보도에 광주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광주 구단 관계자는 스포츠경향과 통화에서 “처음 듣는 얘기다. 이 문제는 이렇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산둥이 사과문을 발표하긴 했지만, 구단은 산둥에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보냈고,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AFC에 제소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 김일성, 김정은의 사진을 압수당한 중국 산둥 관중. X(옛 트위터) 캡처 문제의 사건은 지난 11일 중국 산둥성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25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7차전 광주FC와 산둥 타이산의 경기 중 발생했다. 경기 도중 산둥 관중석에서 전두환과 북한의 김일성, 김정은 사진이 나부꼈다. 산둥 일부 팬이 해당 사진을 들고 흔들며 광주 측을 도발한 것이다. 전두환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학살한 책임자로 지목되는 인물로, 광주 시민들에게 크나큰 아픔과 상처를 남겨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AFC 등은 관중이 응원 도중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산둥 구단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한 사안이다. 문제가 커지자 산둥 구단은 사과 성명을 내고 “일부 관중들의 무례한 행동은 결코 산둥 타이산 클럽과 팬들을 대표할 수 없다”며 “광주FC 구단과 팬들에게 입힌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과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광주FC는 산둥의 사과와는 별개로 유감을 표명하는 서한을 산둥에 보냈으며,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AFC에 징계와 재발 방지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FC가 산둥 타이산과의 ACLE 7차전 원정 경기에서 발생한 산둥 팬의 도발과 관련해 강력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광주FC 제공 국내 축구계에서는 산둥이 AFC의 징계를 최소화하고 사건을 빨리 수습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펼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축구인은 “산둥이 이번 문제 말고도 여러 사안으로 AFC의 징계 위기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광주에 빨리 사과하고 사건을 조기에 매듭하려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광주 구단과 광주시민, K리그 팬들에 대한 무례를 범한 이번 사건을 이렇게 넘어가선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산둥은 이날 예정된 울산 HD와의 ACLE 경기를 포기해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산둥은 AFC에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건강 문제로 이날 오후 7시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리는 2024-2025 ACLE 리그 스테이지 8차전을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AFC가 규정상 한 경기만 불참할 수 없으며, 대회 전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안내하자 산둥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프로축구연맹이 설명했다.

주간경향(총 22 건 검색)

전두환, 죽어서도 비자금 지켰다···법원 “사망으로 채권 소멸”
전두환, 죽어서도 비자금 지켰다···법원 “사망으로 채권 소멸”(2025. 02. 07 16:28)
2025. 02. 07 16:28 사회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서울 연희동 자택 모습. 연합뉴스 검찰이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겠다며 부인 이순자씨 등을 상대로 추진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소유권 이전 시도가 불발됐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김진영 부장판사)는 2월 7일 정부가 이씨와 옛 비서관 이택수씨, 장남 재국씨 등 연희동 주택 지분 소유주 11명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각하했다. 앞서 검찰은 연희동 자택 본채가 전씨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며 2021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전씨는 이 소송이 제기된 지 한 달 만에 사망했다. 재판부는 “전두환의 사망에 따라 판결에 따른 추징금 채권은 소멸했다”며 “형사사건의 각종 판결에 따른 채무는 원칙적으로 상속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씨는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받았으나 이 중 867억여원은 환수되지 않았다. 앞서 대법원도 2022년 연희동 자택의 별채에 대한 압류 처분 관련 소송에서 “재판을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판결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2·3 계엄, 처단받지 않은 전두환 쿠데타의 후과”
“12·3 계엄, 처단받지 않은 전두환 쿠데타의 후과”(2025. 01. 06 06:00)
2025. 01. 06 06:00 사회
전두환’ 파헤친 고 정아은 작가가 본 윤석열의 비상계엄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를 떠올렸습니다. ‘전두환’과 ‘전두환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을 분석한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2023년에 출간됐지만, 지금도 한국사회에 숙제를 던집니다. 주간경향은 지난해 12월 17일 이 책의 저자인 정아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정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그날 저녁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정 작가의 마지막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쓴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두환을 우상화하는 것은 가벼운 후과라고 봤어요. 그가 퇴임 후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했을까요? 윤 대통령의 경우엔 제대로 사법적 단죄가 이뤄져야 하죠.”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전두환의 그림자’를 현현하게 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벌인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그리고 시민에 총을 겨눈 군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윤 대통령의 계엄 모의 과정과 계엄 포고령, 군병력 투입 이유·과정 등을 볼 때, 그가 전씨의 쿠데타를 모방 혹은 답습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아은 작가가 쓴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2023. 5)은 문헌 자료와 관련 인물 인터뷰 등을 통해 12·12 쿠데타의 실행 과정과 그 이후 전씨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과정, 국정운영 방식, 퇴임 후 여생을 어떻게 보냈는지 등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전두환씨가 왜 군사반란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는지’란 질문에 답을 찾는다. 정 작가는 우리 사회가 그를 단죄하지 않아서 그의 파편이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정 작가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처단받지 않은 쿠데타의 후과”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물론 ‘내란’의 재현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정치적 담론을 만들고 이를 학교 등에서 교육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너무 비현실적이라 대부분 사람이 현실이라고 체감하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믿기지 않았지만 ‘윤석열’이라는 캐릭터(‘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를 생각하면 ‘진짜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25년 동안 검찰이라는 최강의 권력 집단에서 일했습니다. 검찰의 힘은 ‘수사’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보는데 검찰은 내부의 범죄를 향해서는 관대합니다. 모든 검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기소 권력을 휘둘러온 검사의 법의식은 시민들의 법의식과 굉장한 괴리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로 명성을 쌓았지만, 자신과 주변인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불투명한 검사의 세계에서 투명한 대통령의 세계로 넘어왔는데, 그걸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정치적 낭떠러지 상황에 내몰리자, 저는 ‘명태균씨의 핵심 증거폰’이라고 보는데, 자기가 휘두를 수 있는 극단적인 조치를 한 것이죠.”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역사적 사실로서 12·12 쿠데타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계엄을 오래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일단 국내외 환경을 보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쿠데타였다고 봅니다. 먼저 국제 정서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북·미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1979년은 한국전쟁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북한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지금보다 나았어요. 북한이 정말 쳐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또 미국은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비상계엄을 하려면 미국에 사전 통보를 하게 마련인데, 그런 절차도 없었어요. 지금 미국이 상당히 화가 난 상황인 걸로 보입니다. 국내 사회·문화적 환경도 많이 바뀌었죠. 1979년에는 유선전화 보급률이 9.2%밖에 안 됐어요. 1980년 5월에는 군부가 언론 통제부터 나서면서 광주가 고립되고 많은 피를 흘리는 일도 벌어졌죠. 지금은 1인 1미디어 시대예요. 이런 투명한 사회에서 쿠데타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군인 출신인 전씨가 군의 생리를 알았다면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자기 명령에 대해 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 작가는 “결국 실패했겠지만 다만 우려했던 건 우발적인 인명 피해 상황이었다”며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세련된 감각과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저력으로써 계엄을 막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과 달리 이번엔 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이 그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곧바로 국회로 모여서 군의 진입을 막아섰습니다. “계엄을 막은 것도,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도 시민들의 힘이죠. 비상계엄으로 국가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고 대외 이미지가 망가져 버렸죠. 미국 CNN 방송에서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는 장면이 송출될 때, 시민들이 이룬 경제·사회·문화적 성과들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는 것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최근에 CNN에서 ‘탄핵봉’(응원봉)을 들고 시민들이 집회를 여는 영상이 나와요. 거기에 있었던 시민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있는 거죠.” -전씨는 12·12 쿠데타가 나라를 위한 일,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선 ‘용공 세력’을 언급하며 자기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의 명분으로 ‘반국가 세력 척결’, ‘야당의 폭주에 대한 경고’, ‘부정선거 의혹’ 등을 이유로 대는 모습과 겹칩니다. “윤 대통령의 담화문 어디에서도 합법적인 항목은 없어요. 혹여 부정선거가 의심되더라도 다른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지요. 그가 얼마나 법에 대한 의식이 없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이죠. 제가 전씨의 쿠데타 관련 책을 쓴 걸 아는 지인들은 전씨와 윤 대통령이 똑같지 않으냐는 질문을 종종 합니다. 내면 깊게 들어가 사유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믿고 싶지 않은 건 안 믿고 끝까지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죠.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할 때보다 그 이후 담화 때 혈색이 더 나아요. ‘희망 회로’에 올라 타 버린 거예요. 책에서는 전씨의 이 같은 특징을 ‘특별한 가벼움’이라고 했는데, 윤 대통령도 그 부분이 비슷하죠.” -책에서는 전씨와 그 이후 대통령들의 기질, 성격, 국정운영 방식, 정치철학, 국내외 상황 등을 비교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씨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컸어요. 또 군인 출신이라서 자기가 모른다고 판단한 경제와 법 등의 영역에서는 인재를 등용했어요. 반대로 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법조인 출신이라서 그런 부분을 조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야당 대표를 한 번도 안 만난다든지 미국을 신경 쓰지 않는다든지 그런 걸 보면 ‘내가 말하는 건 법이야’의 태도로서, 자신은 뭘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전 대통령들과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대개 사적 이익을 우선하긴 해도 어느 정도는 공적 이익에 관심을 둡니다. 윤 대통령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캐릭터였다고 봐요. 그래서 아무 거짓말이나,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과 윤은 내면 깊게 들어가 사유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믿고 싶지 않은 건 안 믿고 끝까지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죠.” -책에서는 12·12 쿠데타가 가능했던 건 당시 최규하 대통령, 노재현 국방부 장관 등이 자신의 직무에 합당한 일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동의 선(線)’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나의 이익 또는 가까운 사람의 이익만 보죠. 그런데 더 발전한 사회라면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든 사람의 이익에 맞는다고 설정된 규약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2020년 미국에서 흑인 인권 시위가 한창일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폭동’ 진압을 위해 연방군 동원을 검토하겠다고 했을 때,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습니다. 나의 임명권자에 반기를 들어도 공동체 대다수가 나를 지지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회가 공동의 선이 있는 사회죠. 한국사회가 그런 선을 지키는 사회였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거나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항명했어야 맞죠.” -12·3 비상계엄 사태의 단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전씨가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우리가 왜 그를 단죄하지 못했는가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를 우상화하는 것은 가벼운 후과라고 봤어요. 그가 퇴임 후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했을까요? 그의 유령이, 잔상이 남은 거예요. 그의 후과가 가장 세게 나타난 게 이번 계엄이라고 봐요. 윤 대통령의 경우엔 제대로 사법적 단죄가 이뤄져야 하죠. 그후에 흐지부지 사면하면서 일종의 ‘후렴구’ 같은 게 그대로 울려 퍼지는 게 제일 안 좋죠. 정치적 반대파들을 잡아들이고 복수하고 그다음 또 복수하면, 코너에 몰린 누군가 이상한 일을 또 벌일지도 모르니 그런 상황도 안 좋죠.” -그다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에 깨달은 건 ‘폭력’이라는 것이 굉장히 가까이에 있구나라는 점이었어요. 폭력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이 폭력의 유혹을 우리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윤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다가 안 되니까, 폭력으로 가버린 거잖아요. 어떤 식으로 법을 만들어 폭력의 유혹을 막아낼지 토론해 나가야 하고, 전씨와 윤 대통령의 사례를 엮어서도 담론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현대사 교육에서도 많이 다뤄서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꼬다리]전두환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고
[꼬다리]전두환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고(2023. 12. 13 07:00)
2023. 12. 13 07:00 사회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다. 전두환은 1979년 12월 12일 육군 내부의 사적 조직인 ‘하나회’를 동원한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선 분노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결말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실제로 전두환을 비롯한 군인들이 반란에 성공한 뒤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현관에서 촬영한 단체사진을 가져왔다. 이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자리에 올라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이 결말 장면은 영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군사반란 주동자들을 역사에 박제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힘이 없는 고발이다. 이름을 한두 글자씩 바꾼 가명을 썼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배우 황정민의 얼굴에다 전두광이라는 이름으로 화면에 나온다.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의 본분을 버리고 권력에 발정한 자들의 실제 얼굴과 이름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알 수 없다. 김성수 감독은 지난 11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제 마음껏 (연출)하기 위해 (전두환 등의) 이름을 바꿨다”고 말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선 실명이 흔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선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를 은폐한 추기경 버나드 로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유명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이나 백악관 인턴과 불륜을 저지른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이야기를 모두 실명으로 다뤘다. 한국에선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표현물에 실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명 영화나 드라마는 손에 꼽을 만하고, 심지어 언론 기사도 A씨, B씨, C씨 등 온통 익명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한국처럼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드물다. 더구나 사실적시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한국은 형법 제310조에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예외 조항을 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나중 일이고, 당장에 소송을 당하는 일 자체가 심한 피해와 압박을 준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권력자가 감시와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이 된다. 기자도 2020년 유력 정치인과 그 가족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경찰서와 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불려가 몇 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결국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지만 상당히 피곤한 경험이었다. 기자도 이러한데 일반 시민이라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5 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포기할 수 없다”며 “형사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의 봄>을 보면서 오래된 의문을 다시 품었다. 진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당했다면, 과연 그 명예도 보호해야 하는 걸까. 법은 도대체 누구의 명예를 지켜주려는 것일까.
꼬다리
전두환 손자 덕분에 용서라는 선택지 생겼어요”(2023. 05. 19 11:25)
2023. 05. 19 11:25 정치
ㆍ 쓴 정아은 작가 사진/강윤중 기자 지난 5월 17일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3주년 추모식에 검은 양복 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 헌화를 마친 그는 5·18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뒤 취재진 앞에 섰다. “말을 할 자격도 없지만, 제 가족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죄의 말과 함께 눈을 떨군 청년의 이름은 전우원.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이자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다. 5·18 이후 전씨 일가가 추모식에 참석한 건 처음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전씨는 2021년 90세의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끝내 진실규명과 사과를 거부한 채 눈을 감았다. 우원씨의 사과를 누군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하고, 어떤 이는 “대리사과”라고 비판한다. 전씨는 사망했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은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여기 우원씨의 등장을 미리 짚어낸 사람이 있다. 최근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라는 책을 펴낸 정아은 작가다. 책은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부터 사망 시점까지 전씨 삶의 궤적을 추적한 전기르포다. 그가 어떻게 ‘악인’이 됐고, ‘악인’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책에서 정 작가는 우원씨를 가리켜 “한국사회라는 거대한 강에 들어온 새로운 미생물”이라고 표현했다. 우원씨의 등장이 5·18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진정 ‘단죄’하고, 화해와 용서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출간 시점을 보면 우원씨가 등장하기 전에 원고를 완성했을 듯한데요. “맞아요(웃음). 이미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전달한 뒤에 생긴 일이죠.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넣지 않을 수 없어서 원고를 돌려받아 여러 차례 수정했어요. 본래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전두환님의 가족과 후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얘기를 상당 부분 빼고 우원씨 이야기로 채웠어요.” -왜 호칭을 ‘전두환님’이라고 하나요. “사실 책을 내고 난 뒤 막상 호칭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맞겠죠. 하지만 저와 연배가 많이 차이 나는 사람이고, 왜인지 전두환씨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전두환님’이라고 부를게요.” 고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지난 5월 17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헌화 뒤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책은 전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발탁된 다음 ‘12·12 군사반란’을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1부 ‘영광’, 전씨의 재임 중 치세와 사회상을 묘사한 2부 ‘모순’, 재임이 끝난 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백담사에 유폐되는 등의 말년을 추적한 3부 ‘몰락’, 전씨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후폭풍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4부 ‘악의 기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씨 일가와 그 후손의 이야기는 4부에서 나온다. -4부에서 보면 전씨의 후손들이 결국은 가책을 느낄 것이라는 취지의 서술이 있습니다. 우원씨의 등장을 예상했던 것인지요. “저도 원고를 넘긴 뒤 우원씨가 나온 것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전두환님이 끝내 사과를 거부하고 ‘악인’으로 죽은 탓에 가족들의 무의식 속에 그들의 부(富)의 ‘출처’를 놓고 정신적으로 괴로울 거다, 정말 많이 불행할 거다, 생각하고 쓴 내용인데 실제로 우원씨가 나타난 거죠. 예견까지 한 건 아니었지만, 작가로서 내가 그들의 심리를 제대로 읽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원씨의 행보를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물론 우원씨를 통한 ‘대리사과’가 의미가 없다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는 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 쪽에 영향을 준다고 봐요. 이전까지는 전두환님이 보여준 부당한 폭력, 부인, 안하무인 등에 대한 사회적 분노, 복수심이 주류였다면 우원씨가 사과를 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화해와 용서’의 여지가 생겼다고 봅니다. 이런 효과는 아직 남아 있는 당시의 신군부 세력,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거예요. 피해자 입장에서도 ‘용서’라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대상조차 없다는 것, 분노와 미움을 품고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우원씨가 한 일이 굉장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은 전두환 시대의 공과(功過)를 집중 조명한 학술서가 아니다. 전기르포답게 전두환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어떻게 몰락해갔는지 여러 객관적인 사실과 정치·사회적 환경을 보여준 뒤 작가 나름대로 상황별 분석과 평가를 제시한다. 마치 1980년대 이후 근·현대 정치사의 통서를 읽는 기분이 든다. 정 작가는 2013년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해 10년째 소설과 에세이 등을 펴내며 활동 중인 중견 작가다. 국내 문단에선 작가가 한 정치인을 소재로 전기르포를 쓰는 일도 드문 편이다. -어떻게 전씨를 주제로 책을 쓸 생각을 했나요. “처음부터 전두환님만을 쓰자고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예전부터 대하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대하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구상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전두환-노태우’, ‘노무현-문재인’이라는 구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양쪽 모두 절친 사이이고, 친구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어요. 아마 세계적으로도 이런 일은 극히 드물 거예요. 반면 이들은 인물상이 정말 극과 극이기도 하죠. 그래서 대하소설을 쓰기 전에 연습삼아 ‘전-노’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준비를 하던 도중 전두환님 개인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주제로 삼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책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텐데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스러웠죠. ‘전두환’이라는 인물 자체가 저한테는 어릴 적부터 무섭기도 하고 ‘금기’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책에 대해 악플이 달리고 그러면 무섭거든요. 좌파 작가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웃음). 고민도 있었지만 어차피 모든 책은 작가의 주관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책도 제 주관인 거죠. 결국은 설득력을 갖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책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사도 많이 했고, 인터뷰도 많이 하고, 주석도 많이 달고, 최대한 논거를 대려고 노력했습니다. 최대한 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쓰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요.” -작중 내내 전씨의 내면이나 심리에 대한 주관적 묘사가 자세하고 두드러집니다. 특히 전씨의 ‘가벼움’에 대한 서술이 눈에 띕니다. “쓰면서 전두환님에게 이입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이 분이 사이코패스인가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너무 금방 답이 나왔어요.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잘해줬고, 가정도 대단히 아끼고, 눈물도 흘릴 줄 알고. 가까이 지낸 사람들 평으로도 친화력 있고 소탈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5·18 학살을 저지르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었으며, 학원안정화법 제정을 시도하는 등 한편으론 다른 사람의 인신을 함부로 구속하고 죽일 수 있는 행동을 너무 쉽게 했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됐습니다. 결국은 전두환님이 자신의 잘못과 스스로 대면하는 부분에서 이를 인정하고 소통, 행동하는 과정이 결여됐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자아성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선 굉장히 아이같이 반응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가벼움’으로 표현한 겁니다.” 정아은 작가가 출간한 . 표지는 전두환의 재임 당시 사진과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을 때 사진의 윤곽을 따서 디자인했다. / 사이드웨이 -전씨 이후 대통령 중에 그와 비슷한 성향의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지요. “비슷한 성향은 정치인이나 기업가 중 많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해’, ‘일단 해’ 이런 거요. 특히 한국남성에게 추동되고 권장되는 ‘미덕’처럼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카리스마 있지만, 자기성찰 능력은 굉장히 결여돼 있는 사람이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기성찰이 결여된 케이스는 흔치 않다고 봅니다.” 전씨는 퇴임 후 내란죄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2년만 복역한 뒤 사면돼 90세까지 부와 천수를 누렸다. 정 작가는 ‘악인’인 전씨를 왜 우리 사회가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분석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 미완된 단죄의 결과가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전씨를 왜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전두환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이 두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법과 시스템으로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대통령이 검찰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죠. 전두환님 재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이 12·12나 5·18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 의지로 4개월 뒤 재판이 시작됐어요. 당시 자신(김영삼) 선거자금에 대한 국면회피용 성격이 굉장히 강했죠. 대통령 한 사람의 개인적 결정으로 전두환님이 감옥에 간 거예요.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때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청원해서 나오는 방식이었어요.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내걸었던 게 용서, 영호남의 화합, 이런 명분인데 이것도 상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해요. 끝까지 공동체가 단죄를 내리는 게 맞았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놓고 생각한 나머지 단죄할 기회를 놓친 거예요.” -그래서인지 전씨는 사후에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여전한 건 단죄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죠. 제대로 됐다면 당시 기득권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마땅한 자리’로 갔을 겁니다. 전두환님하고 엮여 있는 세력이 너무 많아요.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이 정말 많았죠. 사회 곳곳에서 결정권을 쥐고 부와 권력을 가졌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5·18을 놓고 ‘300명이 북한에서 내려왔다’는 식의 괴담과 비방이 퍼질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단죄를 해서 그들이 감옥에 갔다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정아은 작가가 지난 5월 16일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5·18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단죄를 해야 할까요. “쉽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산추징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진 않겠죠. 단시간엔 힘들겠지만 그런 사례가 없진 않아요. 탄핵 사례도 있죠. 안타까운 건 단죄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일단 체념을 많이 한 것 같다는 겁니다. 이제 우원씨가 등장했으니 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끈기를 가지고 실행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계엄군이었던 분들이 양심 고백도 하고, 5·18 당시 광주에 전두환님이 왔다 간 사실도 증언으로 나왔습니다.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고 있어요. 단죄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뒤에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하는 작업은 가장 이른 시점에 단죄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깨어나게 하는 일이에요. 작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죠.” 정 작가가 ‘단죄’를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앞으로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가 한국사의 정확한 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의 행적을 우리 사회 발전의 불쏘시개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부분을 좀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지금 분위기가 되게 많은 것이 밑에서 끓고 있다고나 할까, 뭔가 변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봐요. 주변에서 많은 분이 책을 통해 국가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며 반색했어요. 너무 익숙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물음이죠. 전두환님의 시기에는 냉전의 기운이 이어지고 있었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귀속감이 더 컸습니다. 경제를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는 시대였죠. 지금은 행정부 수반이 다 쥐고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에요. 일부가 그리워하는 그런 시원시원하고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은 못 나온다는 거죠. 지금 해야 할 것은 소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근·현대사를 제대로 교육하는 일입니다. 선진국을 보면 역사에서 현대사 비중이 제일 높습니다. 우리는 비중이 작아요. 그렇다 보니 일각에선 과거 신군부 세력에 대한 미화 시도가 이뤄지고, 팬클럽도 생겼어요. 저는 이게 교육문제와도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을까요. “독립운동가 김규식님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여운형님이 등장하는 ‘대체역사소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좌파를 대표하는 분이 여운형님이었다면 우파에는 김규식님이 있었죠. 해방정국에서 미국·소련이라는 외부의 힘 때문에 한분(김규식)은 납북되고 한분(여운형)은 암살됐습니다. 보다 현대로 온다면 앞서 밝혔던 ‘전-노’, ‘노-문’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이번 책을 계기로 아무래도 현대사에 대해 더 쓸 게 많아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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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전우원 증언으로 ‘전두환家 은닉 재산’ 집중 취재했다
<PD수첩> 전우원 증언으로 ‘전두환家 은닉 재산’ 집중 취재했다
2023. 05. 09 06:52 화제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PD수첩> 나온다. MBC 제공 지난 2021년 11월 23일, 광주 5·18 학살의 주범이었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가 사망했다. 내란목적 살인,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지만, 그는 922억의 미납 추징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저지른 온갖 비리와 죄악, 미납된 추징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히는 듯했다. 지난 3월, 故 전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두환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며 전두환 일가의 비자금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MBC <PD수첩>은 전우원 씨와 전 씨 친모의 증언을 토대로 전두환 일가의 숨겨진 재산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전우원 씨는 당시 전두환 일가가 추징금을 내지 않은 채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고 연희동 자택 내부에는 비밀 금고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어린 시절, 돈 봉투가 많이 든 가방을 옮기던 사람들, 현금으로 가득 찬 방 하나 크기의 금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돈 세는 기계가 시아버지 서재에 있었어요. 100만 원씩 세서 신권과 구권을 섞어서 100만 원씩 묻고 그것을 다시 1천만 원 다발로 만드는 작업을 며느리 셋이 같이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전우원 씨 친모 최 모 씨 인터뷰 중 <PD수첩>이 전우원 씨의 폭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친모 최 모 씨를 만났다. MBC 제공 전우원 씨의 폭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작진은 그의 친모 최 모 씨를 어렵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두환 일가의 며느리로 지낸 최 모 씨는 연희동 자택에서 본 비밀금고의 위치를 직접 그림을 그려 보여주며 전두환 일가의 비밀을 공개했다. <PD수첩>은 전우원 씨가 비자금의 통로라고 지목했던 주식회사 웨어밸리를 집중 취재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전우원 씨의 지분이 7%가 존재했다. 더욱 이상한 건 2015년부터 현재까지 전우원 씨에게 지급된 약 1억6천만 원의 배당금이 전 씨의 계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는 것. 또한 전우원 씨에게는 약 1억 원의 취득세가 부과되었다. 전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오산 땅의 소유주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PD수첩> 제작진은 전우원 씨의 아버지 전재용 씨를 찾아가 이 모든 의문점에 대해 질문했다. 전우원 씨와 친모의 증언을 토대로 전두환 일가의 실체를 파헤친 MBC <PD수첩>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 전우원 모자(母子)의 고백’ 편은 오는 9일 밤 9시에 방송된다.​
#전우원#PD수첩#전두환은닉재산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류 미술품 경매장에 가다
2014. 01. 02 11:27 문화/생활
지난 12월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소장 미술품 경매가 서울 K옥션에서 열렸다. 이날 경매에 나온 미술품들은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이 압류한 것들이다. 총 6백여 점 중 80여 점이 1차로 K옥션에서 경매됐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다 팔렸다! 낙찰 총액 25억7천만원 지난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K옥션에는 일반 경매를 진행했던 때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인파로 북적였다. 이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천6백72억원의 환수를 위해 대대적으로 미술품을 압수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들이 공개되고 또 첫 경매가 이뤄지는 날이다. 경매장에는 직접 작품 구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경 온 사람들 그리고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온 보도진들까지 뒤엉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매장에 마련된 좌석 3백50석은 이미 예약 손님으로 꽉 찼다. 현장에서 경매에 참여하게 위해 급하게 회원 가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얼핏 본 뒤쪽 참가자의 응찰 패들번호가 7백 번대인 걸 확인했다. 직접 경매에 참여해 작품을 살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최소 7백 명은 넘는다는 뜻이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순간 침묵했다. 경매가 시작된 것.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작품에 1, 2분 이상을 넘기지 않고 빠르게 “낙찰! 낙찰!”이 진행되기 때문에 작품 구입을 원하는 이는 그 순간만큼은 제대로 숨 쉴 겨를이 없어 보였다. 다급하게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고 ‘회장님’을 찾는 단정한 차림의 젊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 구매를 나와서 회장님에게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듯 했다. “회장님 비행기 타신다고요? 이제 막 그 작품 경매가 시작되려는데요. 네, 얼마까지에 살까요? 알겠습니다.” 화랑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은 서로 작품 분석을 하며 가격을 평가하고 응찰 패들을 들었다 놨다 하느라 분주했다. “○○○ 작가? 3천까지는 해도 괜찮아. 더 들고 있어!”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가 미처 자신의 패들을 보지 못할까 봐 큰 소리로 “여기도 있어요. 여기!”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가격이 1백만원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도 자신의 번호를 든 채 여유롭게 눈을 감고 있는, 마치 ‘얼마가 되든 사겠소’라고 몸으로 말하는 듯한 노신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미리 서면 응찰이 돼 있는 상태였다. 서면 응찰이란 현장에서 직접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매 전에 서류로 응찰을 받는 경매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1백만원에 서면 응찰을 했다면 ‘나는 1백만원을 상한가로 작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라는 뜻이다. 한쪽 코너에서는 경매회사 직원들이 열심히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로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팔딱팔딱 생생한 경매 현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 경매에서는 한 사람이 한 번의 응찰로 작품을 손쉽게 낙찰받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출품작들이 ‘핫’한 작가들의 작품일 뿐 아니라 ‘전두환’이라는 전 소유자의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또 K옥션 측은 이번 경매가 체계적인 추징금 환수 목적이므로 ‘컬렉션 프리미엄’을 붙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컬렉션치고는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시작했다. 한 작품당 두세 명의 경쟁자들이 경합을 벌여 낙찰을 받았다. 1시간 30분간의 치열했던 경매가 끝이 났다. 결과는 한 작품의 유찰도 없는 100% 낙찰이다. 출품된 미술품 80점이 다 팔렸다. 특히 김환기, 김종학, 오치균 등 일부 근현대 작가의 작품은 치열한 경쟁 끝에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낙찰 총액은 25억7천만원으로 경매 전, 추정가였던 17억원을 훨씬 웃도는 결과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경매였다. 미술을 전공한 딸과 함께 구경하러 왔다는 최 모씨는 “전두환 일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일부러 왔다”라고 전했다. “검찰 압수품이긴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가 모은 작품이라고 해서 한 번 와봤습니다. 작품의 면면을 보니 미술에 대해 조예가 깊어 보이네요.”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인사동)에서 개인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모씨는 1차 구매에서는 낙찰받지 못했지만 온라인 경매나 2차 경매 때는 반드시 맘에 드는 물건을 낙찰받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그들이 그리 존경받을 만한 컬렉터는 아니지만 어쨌든 유명인이 갖고 있었다는 스토리만으로 10년, 20년 후에는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해요.” 이번 ‘완판’이 어느 명망 높은 미술품 컬렉터의 자선 경매였다면 존경 어린 박수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자금에 연루된 전(前)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목적의 경매라는 점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부분이다. Mini Interview K옥션 이상규 대표 경매를 주최하게 된 동기는요? 검찰에서 경매회사들에 입찰을 부쳤습니다. 자격 심사를 거쳐 저희 K옥션과 서울옥션이 결정됐고 지난 11월 중순에 작품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감정을 하고 촬영, 도록 등을 만들어 신속하게 경매 진행을 준비했습니다. 감정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면? 감정에서 특별히 문제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가장 고가인 김환기 작가의 ‘24-Ⅷ-65 South East’ 작품이 저희가 받은 리스트에는 1966년 제작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에 1965년에 제작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같은 작가의 ‘무제’라는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종이에 과슈(수채 물감)’인 걸 새롭게 밝혔습니다. 작품을 실제로 보니 어땠나요? 컬렉터의 취향이 느껴지나요? 컬렉터가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작품성이 모두 좋은 작품으로 구성됐다는 점과 대작이 많다는 점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좋아서 한다고 치면 특정 작가의 어떤 작품만을 모으는 것이 패턴이지만 이 컬렉션은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해요. 작품을 두 차례로 나눠서 경매하는 이유는 뭔가요? 작품을 받으면서 검찰에서 부탁받은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미술 시장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 환수금을 체계적으로 거둬들였으면 좋겠다’였어요. 그런 이유로 작품을 잘 팔아야 하는 것도 목적이라 2013년에 매매할 부분, 2014년 초에 매매할 부분 그리고 온라인에서 경매할 부분을 적절히 나눠 구성했습니다. 혹시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었나요? 외국의 경우 이름 있는 누군가의 컬렉션이라고 하면 소장자의 스토리가 더해져 일반 경매보다 가격 프리미엄이 붙고 호응도 좋지요. 그러나 이번 경매는 여러 사정상 비싸게도 싸게도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경매 시장 상황에 맞게 객관적인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단골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단골 고객들뿐 아니라 경매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새로운 고객들의 문의도 많았어요. 경매하는 법 등 기초적인 질문에서 그림의 시세까지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이번 경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은 없었나요? 그동안 미술품들이 비자금 등에 이용된 뉴스가 많아서 그런지 미술품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분들이 많았지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미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때로는 희열을 느끼게도 하지요. 그런 순수한 측면으로도 작품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경매에서 주목받은 작품들 1·2 오치균·변종하 작가의 작품들 이번 압류 미술품 중에는 유독 두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주제와 재료,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해 이를 수집한 전재국씨의 개인 취향에 따른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오치균 작가의 ‘인왕추경’은 2억2천만원에 낙찰됐다. 3 김환기 ‘24-Ⅷ-65 South East’ 이번 경매에서 최고액으로 낙찰된 작품이다. 4억5천만원에서 시작해 최종 5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현장과 서면 그리고 전화를 통한 치열한 경합 끝에 전화 응찰로 참여한 이에게 최종 낙찰됐다. 4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이번 경매 중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인 작품이다. 전화 응찰자와 현장 응찰자의 가격 경쟁으로 1백80만원에서 시작한 가격이 오르고 올라 2천3백만원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김 전 대통령이 서산대사의 시를 적은 것으로, 전재국씨가 1992년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내용이다. 5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전 전 대통령이 1999년 추석, 수능을 앞둔 처조카 이원근씨에게 선물한 친필 휘호도 경매에 나왔다.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적은 것으로 80만원으로 시작한 경매가가 3명의 치열한 경합 끝에 1천1백만원에 낙찰됐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정혜림 ■사진 제공 / K옥션>
전 재산 29만원, 전두환 전 대통령 손녀딸 결혼하던 날
전 재산 29만원, 전두환 전 대통령 손녀딸 결혼하던 날
2012. 06. 29 18:15 화제
ㆍ축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녀 전수현씨가 지난 6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웨딩마치를 울렸다. 앞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알려진 신랑 김씨는 교육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듬직한 외모의 소유자. 철통 보완 속에 치러진 두 사람의 초호화 결혼식을 취재했다. 초대장 없으면 출입금지 지난 6월 5일, 전두환(81) 전 대통령의 손녀딸 전수현씨(27)의 결혼식이 치러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은 예식 시간 두 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분주했다. 웨이터들은 테이블 세팅을 비롯한 사전 준비로 바빴고 곳곳에 배치된 경호원들은 일일이 하객들의 초대장을 확인한 후에 입장하도록 했다. 오후 5시 10분쯤, 10여 명의 중년 남성들이 호텔 로비로 모여들었다. 2층에 위치한 결혼식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앞과 계단에 서 있던 경호원들도 이전보다 긴장했다. 잠시 후 검은색 고급 세단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73)가 내렸다. 수행비서 몇 명만을 대동한 내외는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지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호텔 1층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별도의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5시 30분을 전후로 하객 수가 늘었다. 그 틈에는 전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인 배우 박상아(40)도 있었다. 연보라색 저고리와 노란색 한복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감사하다”라는 짧은 인사로 시조카의 결혼식을 찾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6시 정각이 되자 이전까지 취재가 가능하던 2층의 식장 외부 출입이 제한됐다. 호텔 보안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혼주 측에서 모든 취재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설명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결혼식은 개신교식으로 치러졌다. 극동방송의 김장환 이사장이 주례를, KBS 윤인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으며, 5인조 남성 중창단 ‘유엔젤보이스’가 축가를 불렀다. 전 전 대통령 내외와 가족들은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앞쪽 테이블에 앉아 결혼식을 지켜봤고, 대부분의 하객들이 돌아간 오후 8시 30분께 식장을 빠져나갔다. 억대의 초호화 결혼식 “신부가 예쁘더군요. 조용하고 경건하게 치러졌습니다.” “신랑 측 하객이라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여느 결혼식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다소 높았던 이날 하객 명단에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비롯한 5공화국 실세들의 이름이 있었고, 농구선수 서장훈 등 익숙한 얼굴도 눈에 띄었다. 일반인 하객들은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결혼식장 내 상황에 대해 말을 아꼈는데, 특히 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질문에는 유난히 함구했다. 전수현씨의 아버지이자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53)는 온라인 서점인 리브로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국내 최대 출판 그룹 시공사의 대표다. 전수현씨 역시 12.35%의 주식을 보유한 3대 주주. 이처럼 정재계의 ‘큰손’ 가족들의 행사이기도 했던 전씨의 결혼식은 예상했던 것처럼 평범하지 않았다. 특히 비용적인 면에서는 초호화 결혼식에 가까웠다. 먼저 성스러우면서도 사생활이 보장된다는 이점 때문에 재벌가나 연예인들이 많이 예식을 치르는 신라호텔 예식장은 웨딩 업계에서도 고가의 비용이 드는 곳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중 국내 호텔 중 천장이 가장 높아 웅장하면서도 럭셔리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다이너스티홀은 최대 85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전씨 결혼식의 하객 수는 650명 전후라고 했다. “다이너스티홀의 경우 평균적으로 1인당 식대가 7만5천원부터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필수로 들어가는 꽃 장식이 종류에 따라 1천만원에서 1천200만원에 이르고 폐백실 사용료 100만원, 무대 설치비 350만원, 현장 중계 카메라 250만원, 빔 프로젝트 사용료 70만원 등이 별도입니다. 물론 봉사료와 세금이 각각 10%씩 부과됩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환 하나 없었고 축의금 역시 받지 않겠다는 공지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예식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계산했을 때도 1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전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녀딸이 억대의 호화 결혼식을 치른 것에 대한 여론이 한동안 사그러지지 않았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전두환 前대통령 경매물건 싹쓸이한 고미술품 수집가 김홍선
2003. 11. 01 화제
“저는 그분하고 상관 없고, 돌려줄 생각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사용했던 물건이 경매로 팔렸다. 경매 물품 49점 중 31점을 ‘싹쓸이’한 고미술품 수집가 김홍선씨. 전직 대통령이 사용했던 물건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전시회를 통해 이 물건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낙찰받은 물건 총액 1억원을 넘어 일순 경매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6백33만원으로 시작한 TV, 냉장고, 에어컨, 진돗개 등 20개 품목 가격이 1천5백만원과 1천8백만원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경매에 참여한 6명 중 4명은 포기했고, 나머지 2명은 한 번에 2백만원에서 8백만원까지 값을 올려 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사람이 7천8백만원을 부르자 경쟁자는 긴장한 얼굴로 포기를 했다. 순식간에 10배 이상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3백70만원에 시작된 서예작품 3점과 병품 3점은 2천만원에 낙찰됐다. 1백90만원으로 시작된 동양화 6점은 2천5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 10월 2일, 연희동에서 열렸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매물건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여느 경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실제 값어치는 얼마 안되지만, 경매장에 나온 물품들은 전직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희소성(?) 때문에 경매가가 높아졌다. 경매에 나온 물건 49점 중 31점은 고미술품 수집가인 김홍선씨(51)가 낙찰받았다. 그가 낙찰받은 물품의 총액은 1억1천8백50만원.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과 관계가 있어, 낙찰받은 물건을 다시 돌려주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저는 그분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돌려줄 생각은 없지만, 진돗개는 주인을 따르기 때문에 돌려 드렸습니다. 개까지 경매에 나온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매현장에는 제 대리인이 참가했어요. 경매장은 가격 때문에 눈치가 심하고, 경험이 없으면 금방 떨어지거든요. 현장에서 현금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긴장해서 손을 떨 정도죠.(웃음)” 김홍선씨는 이번 경매를 ‘해프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국가에서 사들여서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씨가 낙찰받은 물건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양도할 수 있다고. 이번 낙찰에서 지출한 돈은 김씨와 친구가 함께 마련한 돈이라고 한다. “제 대리인과 경쟁했던 사람은 전직 대통령과 아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낙찰받아서 돌려주려고 경매에 참가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김씨가 낙찰받은 물건은 대부분 오래됐고, 외제는 거의 없다. 양문형 냉장고는 미국 아마나(Amana) 제품이고, 소형 냉장고는 금성 냉장고로 거의 10년 이상 사용한 것이다. “은접시세트 2조, 장식장, 책상, 컴퓨터, 냉장고, 6인용 식탁, 그림 5점, 병품 3점, 진돗개 등을 낙찰받았어요. 외제는 거의 없고, 그림의 경우도 값어치가 없는 것들이죠. 일반인이 썼던 물건이라면 누가 사겠어요.(웃음) 전직 대통령의 물건이니까 경매에 참가한 거죠.” 현재 이 물건들은 친구네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김홍선씨는 이 물건을 가지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사용한 물건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수집한 물건으로 6번 전시회 열어 그의 집에 들어서면 마당에서부터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옹기와 예전 초등학교 시절에 앉던 앉은뱅이 걸상 등이 기분을 좋게 한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20여 년 동안 모았다는 물건들이 곳곳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집안의 인테리어가 모두 옛날 물건일 듯싶다. 그가 수집하고 있는 것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다. 전축과 LP 음반, 고가구, 고미술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집안 분위기를 차분하게 해주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창고에는 더 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물건들은 교실, 구멍가게, 이발소, 사진관 등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특히 김씨가 모아 놓은 사진기들은 사진기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우표와 동전 등을 즐겨 모으셨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첫직장이 인사동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옛날 물건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웃음)” 김홍선씨는 고미술품 수집가는 아니었다. 잘나가던 광고회사에서 국장까지 지내다 1998년 명예퇴직한 후에는 고미술품 수집을 업으로 하고 있다. 퇴직금과 그동안 벌어놨던 돈은 거의 물건 사는데 써버렸고, 지금은 약간의 빚도 있다. “결혼 직후부터 아내와 함께 인사동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젊은 부부가 그곳에 왔다갔다 하니까 신기하고 기특했겠죠. 가게 주인아저씨들이 아주 잘해줬어요.” 처음에는 수집 취미 때문에 수업료도 많이 내야 했다. 물건을 보는 안목도 별로 없고, 욕심나는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는 대로 사고 싶은 물건이면 어떻게든 구입했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전시회나 고미술품이 나왔다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안목도 많이 생겼고 자신의 관심분야가 정해졌다. 김씨는 언제부턴가 근대 물건에만 눈이 갔고, 아내는 옹기 모으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예전에는 물건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좋은 물건이 나왔다고 전화가 올 정도. “수집에 취미가 붙으니까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어요. 눈에 띄는 물건을 사지 못했을 때는 가슴이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일반 서민들이 썼던 물건에 정감이 가요. 나무필통같이 손으로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이 좋아요. 이번 경매물건처럼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있는 물건에는 관심이 없어요.” 요즘은 고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높아져서 물건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예전 가옥도 많이 사라져 가고 있고, 우리나라 골동품 대신 중국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수집에 어려움이 많다고 아쉬워한다. “물건이 많아져서 관리하기도 상당히 어려워요. 개인 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래서 지방자치단체 도움을 받아서 전시회를 많이 열려고 합니다. 지자체가 요즘 문화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거든요.” 김홍선씨는 이번 경매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관심으로 그가 수집한 물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장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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