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2,226 건 검색)
- 전주 ‘완산벙커’, 문화 가득한 체험시설 탈바꿈
- 2025. 01. 08 11:45문화
- ... 모습.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 완산칠봉에 있는 ‘완산벙커’가 문화 체험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전주시는 문화공간으로 바뀐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가 오는 2월 4일 개관식을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 완산벙커전주완산칠봉
- KTX전주역·고속터미널 인접 ‘더샵 라비온드’ 내년 1월 분양
- 2024. 12. 29 20:37경제
- ... 기존의 교육·교통·문화시설 등 풍부한 생활인프라를 그대로 누릴 수 있다. 단지 반경 300m 이내에 전주동초를 비롯해 신일중, 전주고교 등이 위치해 도보권 안심통학이 가능한 점도 강점이다. KTX전주역과...
- 10억4483만원···전주 얼굴 없는 천사 25년째 선행
- 2024. 12. 20 11:25인물
- ...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 전주시 제공 매년 돼지저금통과 함께 거액을 몰래 놓고 사라지는 전북 전주시의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천사의 선행은...
- 천사전주돼지저금통노송동
- “탄핵 인용 될 때까지”···전북 시민사회단체 “매주 토요일 전주서 집회”
- 2024. 12. 17 15:46사회
- .... 전북지역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퇴진 전북운동본부’는 오는 21일 오후 4시 전주 충경로 풍패지관에서 ‘1만 전북도민 촛불대행진’을 연다고 17일 밝혔다. 단체는 이날 오후...
- 전북탄핵윤석열헌법재판소탄핵, 국내외 영향
스포츠경향(총 617 건 검색)
- “전주성 함성 그리웠다” 송범근, 친정팀 전북 현대 복귀…거스 포옛과 명가 재건 나선다
- 2024. 12. 31 17:16 축구
- K리그 전북 현대로 복구한 송범근. 전북 현대 제공 K리그 전북 현대가 2년 만에 ‘특급 수문장’ 송범근(27)의 복귀를 알렸다. 전북은 31일 송범근과의 계약 체결을 공식 발표했다. 2022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J리그 쇼난 벨마레로 이적했던 송범근은 이번 복귀로 다시 전주성의 골문을 지키게 된다. 송범근은 2018년 전북에 신인으로 입단해 즉시 주전 자리를 꿰찼다. 196cm의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뛰어난 순발력, 선방 능력을 갖춘 그는 데뷔 시즌부터 K리그1 30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전북에서 보낸 5년 동안 K리그 167경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5경기, 코리아컵 9경기 등 총 201경기에 출전했으며, 4번의 K리그1 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에는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돼 금메달을 땄다. 빌드업 능력까지 갖춘 그는 차세대 국가대표 골키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쇼난 벨마레에서의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2023시즌 24경기 40실점을 기록했고, 무실점 경기는 단 2경기에 그쳤다. 2024시즌에는 실점이 줄었으나, 8월 이후 베테랑 골키퍼 가미후쿠모토 나오토(35)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면서 출전 기회가 줄었다. 이후 한국 대표팀 승선에도 영향을 미쳐 10월과 11월 A매치 명단에서 제외됐다. 전북은 이번 시즌 부진을 겪은 후 ‘명가 재건’을 위해 유럽 빅리그 경험이 풍부한 거스 포옛 감독을 영입했다. 포옛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전지훈련을 통해 서로 배우고 소통하며, 전술적, 기술적 훈련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송범근은 “전북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J리그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다”며 “항상 그리웠던 전주성의 함성을 다시 듣게 되어 기쁘다. 팬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그는 내년 1월 2일부터 시작되는 태국 전지훈련을 통해 2025시즌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 [오피셜]송범근, 전북 현대 복귀···“전주성 함성 그리워, 내년 우승 목표로 노력”
- 2024. 12. 31 10:07 축구
- 송범근. 전북 현대 제공 특급 수문장 출신 송범근(27)이 전주성에 복귀한다. 전북 현대는 31일 지난 2022년 시즌 종료 후 FA 신분으로 일본 J리그 쇼난 벨마레로 떠났던 송범근이 2년 만에 전북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전북 현대 신인으로 입단한 골키퍼 송범근은 데뷔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K리그 30경기에 출전해 팀의 우승 주역으로서 맹활약하고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으며 성장했다. 그해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입증한 송범근은 당시 김학범 감독이 이끌었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송범근은 이후에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으며 2022시즌까지 전북현대에서 201경기(K리그-167경기/ACL-25경기/코리아컵-9경기)에 출전해 5년간 4번의 K리그1 우승을 이끌었다. 196㎝의 큰 키에 순발력과 선방, 빌드업 능력까지 뛰어나 차세대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서도 촉망받는다. 전북은 송범근의 복귀로 “25시즌에는 수비의 마지막 관문인 골문을 더욱 견고하게 지켜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송범근은 “전북에서 선수로서 성장한 덕분에 J리그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항상 전주성의 함성이 그리웠고 반드시 다시 듣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며 “내년 시즌이 하루빨리 개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팬들의 뜨거운 열정 속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감을 전했다. 한편, 송범근은 오는 1월 2일 태국전지훈련을 시작으로 거스 포옛 사단과 함께 2025시즌에 돌입할 계획이다.
- ‘코트의 스리잡러’ 전주원 코치
- 2024. 12. 19 08:42 스포츠종합
- 亞쿼터 선수들에 작전 지시 통역 몸상태 체크·면담 주선 역할까지 모모나 수훈선수 인터뷰도 도와줘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은 ‘분노의 작전 타임’으로 유명하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선수들을 꾸짖기도, 격려하기도 하며 목 터져라 전술을 설명한다. 이번 시즌에는 전주원 수석코치도 작전 타임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에게 위 감독의 지시를 설명하는 통역사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전 코치는 이번 시즌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부터 WKBL에서 뛰는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위해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는 대신 일본어에 능통한 전 코치에게 통역 업무를 일임했다. 전 코치는 지난달에는 수훈선수로 선정된 미야사카 모모나(30)의 인터뷰를 통역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동석하기도 했다. 전 코치는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선수 시절 일본에서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뒤 두 달간 재활 훈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 코치의 표현에 따르면 현지에서의 소통을 위해 습득한 ‘막일어(막 뱉는 일본어)’였다. 생활 일본어 실력을 갖춘 전 코치이지만 현장에서의 통역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전문 농구 용어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전 코치는 “처음에는 일본인 선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일본 농구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일본인 선수 나츠키에게 작전 지시(가운데)를 하고, 모모나의 수훈선수 인터뷰를 통역해주는 전주원 코치. WKBL 제공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과 언어 이상의 소통을 주고받고 있다. 오히려 전문 통역사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거친 베테랑 농구인이 통역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 코치는 “저는 위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감독님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라며 “그래서 작전타임 때에도 감독님의 지시를 바로바로 통역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기 외적으로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선수의 몸 상태를 트레이너에게 전달하고 선수와 감독 사이의 면담을 돕는 등 초반에는 사실상의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만큼 선수들과의 유대감도 깊어졌다. 전 코치는 “생활이나 농구에 관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은 일본인 선수들이 제게 물어보고 선수들끼리는 통역 없이 대화한다”라며 “자기들끼리 핸드폰 번역기를 통해서 대화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서로 더 빨리 친해지고 일본인 선수들의 한국어도 조금씩 느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 리그에서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했던 모모나와 스나가와 나츠키(29)는 우리은행에서 주요한 득점 자원으로 기용되고 있다. 공격 면에서의 역할도 늘었다. 전 코치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부담이 훨씬 커져서 선수들이 어려워하긴 하지만 팀에 잘 흡수돼서 열심히 해주고 있다”라며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 때 고향에 다녀오면 많이 재충전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수부터 지도자, 그리고 현장 통역까지. 농구인 전주원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 수석코치가 외인 동시통역까지?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의 ‘투잡’ 도전기
- 2024. 12. 18 14:36 스포츠종합
-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수석코치가 지난 10월 28일 인천 신한은행과의 경기 도중 미야사카 모모나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WKBL 제공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은 ‘분노의 작전 타임’으로 유명하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선수들을 꾸짖기도, 격려하기도 하며 목 터져라 전술을 설명한다. 이번 시즌에는 전주원 수석코치도 작전 타임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에게 위 감독의 지시를 설명하는 통역사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전 코치는 이번 시즌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부터 WKBL에서 뛰는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위해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는 대신 일본어에 능통한 전 코치에게 통역 업무를 일임했다. 전 코치는 지난달에는 수훈선수로 선정된 미야사카 모모나(30)의 인터뷰를 통역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동석하기도 했다. 전 코치는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선수 시절 일본에서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뒤 두 달간 재활 훈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 코치의 표현에 따르면 현지에서의 소통을 위해 습득한 ‘막일어(막 뱉는 일본어)’였다.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수석코치가 지난 13일 청주 KB와의 경기 도중 스나가와 나츠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WKBL 제공 생활 일본어 실력을 갖춘 전 코치이지만 현장에서의 통역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전문 농구 용어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전 코치는 “처음에는 일본인 선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일본 농구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과 언어 이상의 소통을 주고받고 있다. 오히려 전문 통역사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거친 베테랑 농구인이 통역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 코치는 “저는 위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감독님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라며 “그래서 작전타임 때에도 감독님의 지시를 바로바로 통역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기 외적으로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선수의 몸 상태를 트레이너에게 전달하고 선수와 감독 사이의 면담을 돕는 등 초반에는 사실상의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만큼 선수들과의 유대감도 깊어졌다. 전 코치는 “생활이나 농구에 관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은 일본인 선수들이 제게 물어보고 선수들끼리는 통역 없이 대화한다”라며 “자기들끼리 핸드폰 번역기를 통해서 대화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서로 더 빨리 친해지고 일본인 선수들의 한국어도 조금씩 느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 리그에서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했던 모모나와 스나가와 나츠키(29)는 우리은행에서 주요한 득점 자원으로 기용되고 있다. 공격 면에서의 역할도 늘었다. 전 코치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부담이 훨씬 커져서 선수들이 어려워하긴 하지만 팀에 잘 흡수돼서 열심히 해주고 있다”라며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 때 고향에 다녀오면 많이 재충전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수부터 지도자, 그리고 현장 통역까지. 농구인 전주원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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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폭발 사고 20대 “몸 곳곳에 흉터…앞으로 어떻게 사나 막막”(2024. 08. 12 06:00)
- 2024. 08. 12 06:00 사회
- 지난 5월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5명 사상 “본래 업무 아닌 일 시켜, 안전관리자 못 봤다” 증언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피해를 입은 A씨(26)가 지난 8월 4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산재 사고는 순간이지만 노동자의 피해는 오랫동안 지속한다. A씨(26)의 경우가 그렇다. A씨는 지난 5월 2일 오후 6시42분 전북 전주시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인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메탄가스 폭발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있었다. 사고로 A씨를 포함해 4명의 노동자가 다쳤고, 1명이 사망했다. 이곳은 ‘지하 처리장’이다. 폭발 사고가 난 곳도 지하 1층이었다. 지난 8월 4일 오후 대전시의 한 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A씨는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A씨는 실험실 업무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음식물 파쇄, 유기물 분해,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친다. A씨는 소화조에서 시료를 가져와 질소와 인 등이 얼마나 함유돼있는지를 측정해 공정이 잘 되고 있는지, 음식물 투입량이 적절한지를 확인하는 업무 담당이었다. A씨는 올해 들어 빈번하게 다른 업무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A씨가 실험실 업무를 하고 있으면 불러 나무 자르기나 청소, 다른 노동자 보조를 시켰다. A씨가 ‘하던 일을 끝내고 가겠다’며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나이가 어린 축인 A씨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엔 일주일의 절반을 실험실 업무, 절반은 다른 업무를 할 정도였다. 사고 당일에도 팀장으로부터 ‘작업을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갑작스럽게 지하 1층으로 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이 작업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안전을 위해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예상치 못했다. A씨는 “폭발이 나고 본능적으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다리에서부터 얼굴까지 불이 붙었다”고 했다. A씨는 얼굴, 팔, 등, 배, 다리 등 몸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지난 6월 26일 전주시청 앞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 지원 다 해준다던 회사, 이젠 연락 없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폭발로 이어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음폐수의 과도한 투입, 환기시설 미비 등 회사가 안전을 확보하지 않아 발생한 산재 사고라고 본다. 이들은 또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시설이 전주시 소유이고 시설 운영의 주요 결정사항이 전주시 허가를 통해 이뤄졌을 것이라며 운영사인 성우건설 외에 전주시장도 형사책임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사업주뿐 아니라 원청기업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A씨는 지난 3개월간 매일 레이저 치료와 소독을 반복하면서 “너무 아파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굴을 포함해 몸 곳곳에 흉터가 남았고 햇볕도 제대로 쬘 수 없다. 언제까지 치료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A씨는 사고 때 생각을 안 하려고 하다가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고, 트라우마 때문에 나중에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나아도 나은 것 같지가 않다.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막막하고 힘들다”고 했다. A씨에게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은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이었다. 성우건설 측은 사고 직후 “본인들이 애사심이라든지, 사명감 때문에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회사가 피해에 대해 다 지원해 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전주시든, 회사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피해자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치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성우건설에 여러 차례 전화 등으로 연락했지만 책임있는 관계자와 통화하지 못했다. 시민에 감춰진 쓰레기장…노동자 안전과 고용 방치음식물, 플라스틱·캔·유리병, 비닐, 오·폐수…. 우리는 매일 쓰레기를 만들고 버린다.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거나 분리 배출해 집 바깥 정해진 위치에 갖다 놓는다. 환경미...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8121036001 지하로 가는 쓰레기 처리장…노동환경도 지하화된다그저 도심 속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잘 관리된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유아차를 끈 여성은 유유히 산책했다. 지난 7월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8120600011
- [8인8색 여행특집]힐링하시개! 반려견과 김제·익산·전주 여행(2022. 06. 17 11:21)
- 2022. 06. 17 11:21 문화/과학
- ㆍ김제 벽골제·전주 한옥마을, 보고 즐기는 코스로 안성맞춤 ㆍ음식·숙박은 기대치 낮추고 사전 확인 필수 “방 하나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침대방이나 온돌방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크지 않아도 되고요. 혹시 반려견도 동반 입실 가능할까요. 조그만 소형견이고 짖지도 않습니다만….” 김제 만경낙조전망대 전경 / 안광호 기자 숙소 예약부터 쉽지 않다. 홈페이지에는 ‘반려견 동반 가능’으로 돼 있고, 객실 현황에서도 빈방이 있다고 나오지만 숙소 주인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또다시 다른 곳에 전화를 돌려야 한다. 수화기 너머 “가능한데 ‘세탁비’가 추가됩니다”라고 한다. 동반 입실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반려견과 함께 여행해본 반려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경험이다. 귀찮다 싶으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반려견 동반 호텔(펫캉스) 또는 전용 펜션을 예약하거나 애견호텔에 반려동물을 맡겨야 한다. 그마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여의치 않긴 하지만…. 어렵사리 숙소를 해결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목적지의 관광지를 검색하고 시설 이용료, 주변 맛집, 카페 등을 검색해본다. 가능한 몇 곳을 골랐으나 안심은 되지 않는다. 막상 가보면 또 다를 수 있어서다. 반려견 동반 입실이나 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성수기에는 이런 사례가 더 많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2092만7000가구)의 약 15%인 312만9000가구(통계청·2021년 조사)다.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0년 3조4000억원 수준에서 2027년 약 6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반려동물과의 동반여행은 곳곳에 높은 문턱이 여전함을 실감하게 한다. 업주만 탓할 수도 없다. 반려인 스스로 ‘펫티켓(펫+에티켓)’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려견과 함께 가볼 만한 곳 이번 여행 콘셉트는 ‘전북+반려견 동반+알뜰’로 잡았다. 3요소의 조합이니 꽤 까다로운 조건을 설정한 셈이다. 전북지역은 제주나 강원, 수도권 등에 비해 반려견과 함께할 만한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전북도와 관광공사 홈페이지, 관계자 추천 등을 참고해 김제→익산→전주 코스로 일정을 짰다. ‘반려견과 2박3일 동반여행’의 첫 여행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였다. 벽골제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제방 길이만 1800보 규모로 처음 축조했다. 제방 축조 등에 연인원 32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규모가 큰 국가사업이었다. 1420년(세종 2) 큰비로 유실된 후 지금은 약 3㎞ 길이의 둑만 남아 있다. 김제 벽골제 쌍룡조형물 / 안광호 기자 벽골제는 반려견 동반여행 콘셉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명소다. 벽골제 관광안내소를 지나 단지 정문에 들어서니 왼쪽으로 메인 건물인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이 나온다. 우리 농경문화의 전통과 역사를 전시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2층 카페에서 음료를 사들고 3층 전망대로 향했다. 강아지를 안고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제를 ‘지평선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된다. 단지 안은 산책로를 잘 갖춰 놓았다. 소나무동산과 생태연못 사이로 산책하기 좋게 데크가 깔려 있다. 곳곳에 버드나무와 푸른 잔디 사이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제법 많다. 벽골제의 상징이자 최고 인기 포토존은 잔디광장에 높게 세운 쌍룡조형물(높이 15m·폭 54m·몸통 직경 2m)이다. 이 지역의 전설에 착안해 2007년 대나무로 만든 쌍룡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형태로 마주 보고 있다. 바로 옆 그네타기와 디딜방앗간에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쌍룡조형물을 지나 단여광장과 중앙광장까지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여유롭게 단지를 돌아볼 수 있다. 휴일이지만 비교적 한적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단지 맞은편과 옆에 조성해놓은 주차장의 공간도 널찍하다. 주말에는 한복과 도자기 체험, 매듭 공예 등 가족단위의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오는 9월에는 이곳에서 지평선 축제(9월 29일~10월 3일)를 연다. 글로벌, 전통, 문화, 야간, 부대 체험 등 5개 분야 59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제 벽골제 단지는 입장료가 성인 기준 1인당 3000원이다. 김제시민과 6세 이하 영유아, 65세 이상 고령자는 입장료가 무료다.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700여개의 한옥이 군집한 전주한옥마을도 반려견과 함께 가볼 만한 장소다.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으로, 강아지와 마을 골목길을 산책하기 좋다. 다만 주말이나 휴일, 휴가철 등 관광객이 몰릴 때는 반려동물을 이동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서로 편할 듯싶다. 산책코스도 사람들이 붐비는 마을 주도로가 아닌 샛길을 권한다. 마을 내에서 강아지 동반 입장이 가능한 문화재는 전주향교(입장료 무료)가 유일하다. 전주향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을 제사 지내는 곳으로,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 있다. 가을에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영화 <YMCA 야구단>이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한옥마을에서 큰길을 건너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자만벽화마을과 옥류벽화마을도 강아지와 함께 가볼 만한 코스 중 하나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언덕에 자리한 자만벽화마을에서 한옥마을을 내려다보면 발아래 전주향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곳곳에 카페와 쉼터가 있다. 강아지들이 짖거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다는 민원도 있어 이곳을 찾는 반려인들의 주의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익산 성동포구마을에서는 반려견을 동반한 가족단위 체험이 가능하다. 자연 생태습지와 5㎞ 구간의 바람개비길을 걷거나 자전거 투어를 할 수 있다. 금강과 아름다운 생태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익산 용안생태습지공원 전경 / 한국관광공사 제공 편하게 먹고 마실 만한 곳 반려견과의 동반여행 일정을 짤 때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가 애견카페다. 김제 벽골제에서 차로 10분가량 거리에 있는 한 애견카페를 들렀다. 잔디가 깔린 마당 주변으로 4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파라솔을 갖춘 탁자와 의자들이 10개가량 놓여 있다. 마당 크기는 아이들과 대형견을 포함한 반려견들이 뛰놀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대형견 2마리를 포함해 15마리 정도의 강아지가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평소 휴일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마당 주변에서는 견주들이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들을 보며 여유롭게 커피와 간식을 즐긴다. 실내에서도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마실 수 있게 좌석을 마련해 놓았다. 가격대는 아이스아메리카노 6000원, 자동조리기에서 끓인 라면 3000원 정도다. 돈가스와 김치볶음밥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들도 있다. 한끼 식사하기에는 양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야외 마당 옆으로는 수영장이 있다.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소형견은 1만원, 대형견은 3만원이다. 시설 운영이나 가격은 휴가철에도 동일하다. 카페 맞은편에는 차량 7~8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애견카페 이용에 제한은 없다. 기본적인 펫티켓만 알고 가면 된다. 목줄과 배설봉투, 입마개(대형견) 등이 필수다. 수컷의 경우 실내에서는 ‘매너 벨트’로 불리는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마킹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간혹 배변을 수거하지 않는 견주들도 있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업주가 가장 걱정하는 상황은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들이 일반 강아지들과 섞이는 경우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강아지들은 처음엔 다른 강아지들을 피해다니거나 견주 주변에서만 맴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강아지들과 곧잘 어울린다. 하지만 공격성이 강한 강아지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카페 업주는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생각 없이 다른 강아지와 섞이게 하는 견주들이 간혹 있다. 방문하기 전 전화로 카페 동반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방문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상 반려견과 여행할 때는 먹거리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우선 실내에서 반려견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많지 않다. 선택지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려견 놀이와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음식 맛과 가격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비교적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한옥마을의 많은 식당과 카페가 야외석을 따로 두고 있어서다.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으로도 잘 알려진 B식당은 별관에 따로 켄넬(반려동물 이동가방)을 갖추고 있다. 중형견까지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다. 한옥마을을 찾는 반려인들에게 인기가 많아 주말이나 휴일엔 항상 긴 대기 줄이 만들어진다. 이날은 평일 오후 1시를 넘긴 터라 예약을 따로 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면 종류(2인 1만7000원)만 팔기 때문에 회전율이 빠르다. 전주 자만벽화마을 전경 / 안광호 기자 한정식집인 T식당도 반려인들이 한 번은 가볼 만하다. 오전에는 한정식(2인 기준 3만원) 단일 메뉴만 주문할 수 있다. 이곳도 반려견 동반 손님들은 별채로 안내한다. 사람에 따라 양념이 자극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오는 반찬들이 깔끔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한옥마을에 있는 카페들도 야외석을 마련한 곳이 많다. 반려견 동반 입장은 가능하지만 실내 출입은 불가하다. 카페 주인이 직접 야외석으로 나와 주문을 받고 카드로 계산한 후 주문한 음료와 영수증을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김제에서는 반려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M카페를 찾았다. 만경읍 골목에 있다. 200년 된 느티나무에 버려진 나무와 자재들로 식당 입구를 멋스럽게 꾸몄다. 전체적으로 한옥과 나무 자재를 엮은 구조다. 사다리를 타고 3층 다락방 형태의 트리하우스에 오르면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애견 전문 카페는 아니지만 야외석에서 반려견과 동반 식사할 수 있다. 대형견은 들어갈 수 없다. 식사 메뉴는 새우볶음밥 등 모두 3가지다.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며, 식당 맞은편에 5~6대 주차가 가능한 공간이 있다. 걷기 좋은 곳과 쉴 만한 곳 전북에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맘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한 ‘눈치보지마시개 길’ 10곳이 있다. 기존 둘레길과 공원, 호수길 중에서 주차 공간이나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성, 탐방객 수 등을 따져 전북도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김제와 익산, 전주 등 3곳을 둘러봤다. 김제 만경읍 화포리 새만금광역탐방로는 토정마을에서 진봉면사무소까지 이어진 편도 6.5㎞ 구간이다. 만경강 제방길을 따라 간척지와 들판, 바람, 갈대가 있는 생태환경을 반려견과 함께 체험하며 걸을 수 있다. 시작점인 만경낙조전망대에서 만경 8경 중 1경으로 꼽는 만경낙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전망대 주차장에 야외 공용화장실이 있긴 하나 코스 중간에는 화장실과 쉼터가 없다. 익산 성당포구 바람개비길은 성당포구 금강체험관 뒤에 있다. 성당포구 마을에서 출발해 바람개비길과 용안생태습지공원을 거쳐 다시 성당포구 마을로 돌아오는 4.8㎞ 구간이다.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들이 춤을 추며 방문객을 반긴다. 쭉 뻗은 길을 반려견과 함께 걸으며 사계절 내내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여행지다. 바람개비길 주위엔 약 67만㎡ 규모의 용안생태습지공원이 있다. 이곳에선 나비광장, 풍뎅이광장, 조류전망대 등 다양한 습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또 느릿하게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반려견과 쉬어갈 수 있는 조망 쉼터도 잘 갖춰져 있다. 반려동물 동반 식사가 가능한 전주한옥마을 식당의 한정식 상차림 / 안광호 기자 전주 바람쐬는길은 전주자연생태박물관에서 출발해 슬로길 쉼터(반환점)를 거쳐 다시 전주자연생태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약 4㎞ 구간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걸어서 5분이면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다. 길 오른편으로 맑은 전주천이 흐른다. 왼편으로 승암사, 치명자산 성지, 세계평화의전당 등을 지난다. 코스 내내 나무 그늘이 있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반려견과 함께 느릿느릿 산책하기 좋다. 바람쐬는길을 포함해 지난 5월 눈치보지마시개 길로 추가 선정한 4곳(전주·군산·익산·고창)은 길을 알리는 이정표나 상징물이 아직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처음 이 길을 찾는 방문객들이라면 길의 시작점과 코스, 종착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전북도와 관광공사는 오는 7월 중순까지 코스 주요 지점에 안내판을 설치 완료할 계획이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면서 비용까지 저렴한 숙소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여행 콘셉트에 따라 반려견 전용 펜션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려견 동반 숙소들은 통상 ‘세탁비’ 명목으로 최소 1만~2만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결국 김제와 익산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전주에서 2박을 했다. 두 군데 모두 가격은 7만원으로 동일했다. 비성수기이면서 조식 없이 일요일과 월요일에 숙박했기에 이 가격대가 가능했다. 전주한옥마을 내 B한옥체험 숙소에서 첫 1박을 했다. 한옥마을의 감성을 느끼면서 시간에 구애없이 반려견과 산책이 가능하다. 도보로 한옥마을 내 식당이나 카페, 관광지 방문도 할 수 있다. 한옥마을 변두리에 있다. 상가와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중심지에 비해 여유롭고 조용한 편이다. 주차장도 무료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대에서 알 수 있듯 시설 수준이 아주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방과 화장실이 좁고 냉장고 등 숙소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가전설비가 없다. 전주 구도심에 있는 D숙소의 경우 시설 수준에선 조금 나은 편이나 근처에 편의시설이 없고 한옥마을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게 단점이다. 두 군데 모두 원룸 형태인데다 조리시설이 없어 가족단위의 반려여행객들에게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숙소를 예약할 때 보통 홈페이지나 블로그 후기를 참고한다.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당일이라도 사전에 방 상태와 추가 요금 등을 유선으로 확인하는 게 좋다.
- 특집
- [취재 후]‘전주형 모델’이 지방도시 되살릴 해법될까(2020. 05. 22 14:42)
- 2020. 05. 22 14:42 경제
-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은 ‘한국의 지방소멸’ 보고서에서 전국 시·군·구의 40%가량이 ‘소멸위험지역’으로 30년 뒤에는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소멸위험지역은 65세 이상 인구수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2배 많은 지역을 뜻합니다. 서울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도시는 소멸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지방자치단체가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흔히 택하는 방법은 신도심 개발입니다. 택지를 개발하고 신도심을 만들면 인구가 유입된다고 믿습니다. 중소도시 외곽마다 ‘OO도시·OO시티’라는 이름의 개발사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구수는 적지만 도시의 꼴을 갖추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 각종 공동생활시설과 학교와 같은 필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신도심 아파트에는 기존 원도심 사람들이 이전해 갑니다. 타 지역에서 유입되는 인구수는 미미합니다. 사람이 빠져나간 원도심은 급속히 쇠락합니다. 슬럼화·공동화를 막기 위해 지방정부는 원도심에 예산을 책정해 재생사업 혹은 개발사업을 벌입니다. 예산은 예산대로 투입하고 인구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원도심과 신도심 모두 활기를 잃은 죽은 도시가 됩니다. 개발사업이 답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도시가 있습니다. 전북 전주입니다. 무차별적인 팽창 대신 도시 내부 효율성을 높이는 압축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민사회연대를 통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연대는 코로나 국면에서 착한 임대료, 해고 없는 도시,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전주형 모델’을 만들어낸 토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주형 모델이 죽어가는 지방도시를 되살릴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봅시다.
- 취재 후
- [표지 이야기]전주의 새 명물, 사회적 연대 ‘전주형 모델’(2020. 05. 15 16:55)
- 2020. 05. 15 16:55 사회
-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소재 ㅁ실업은 직원 48명 규모의 세탁업체다. 전주 시내 병원에서 나온 환자복과 시트, 담요를 수거해 세탁하는 일을 한다. 임직원 절반 이상(25명)은 장애인 노동자다. 평균 근속연수는 18년. 임직원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이다. 1995년 설립한 이 회사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2015년 메르스 사태도 무사히 넘겼다. 전주 한옥마을 / unsplash 그런데 코로나19는 달랐다. 회사의 주 거래처인 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일감이 끊겼다. 일반 환자가 입원하지 않아 세탁물이 나오지 않은 탓이다. 지난 2월을 기점으로 매출이 감소하더니 3월에는 전년 대비 10분의 1수준까지 떨어졌다. 전 임직원 임금을 10%가량 삭감했다. ㅁ실업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는 김진숙씨(가명)는 “어렵다고 해도 이번처럼 월급을 깎은 것은 처음”이라며 “직원들이 월급을 적게 줘도 좋으니 자르지 말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1일 전주시가 ‘해고 없는 도시’ 상생 선언을 한 다음 날 ㅁ실업은 전주시에 고용 유지 지원 신청을 했다. ㅁ실업 측은 “해고 없는 도시 뉴스를 보고 절박한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며 “공과금 지원이라도 받아서 사람을 내보내지 않고 버텨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4월 22일 전주시의 <해고 없는 도시 상담일지>에는 ‘ㅁ실업 지원 요청, 인원 감축 위험 직전, 작업 능률상 감원해야 하지만 인정상 고용 유지할 의향이 있다고 함’이라고 적혔다. 해고 원치 않는 기업 지원망으로 유도 전주의 ‘해고 없는 도시’ 선언은 구속력이 없다. 지역 노·사·정이 합의했지만 강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고 없는 도시는 큰 틀에서 보면 지원 사업의 일종이다.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경우 6개월간 보험료를 지원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의 기업체 부담금은 3개월 동안 전액 지원한다. 해고 없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는 특별지원금(500억원)을 통해 0.1% 저금리 대출도 해준다. 물론 지역 내 사업장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아니다. 심사를 거쳐 지원 요건에 맞는 기업에 한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주 덕진구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는 이한영씨(가명·49)는 “해고 없는 도시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나처럼 직원 3명을 두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다른 대책처럼 말만 그럴듯하게 해놓고 실속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고 없는 도시’는 변화를 기대해볼 만한 시도다. ㅁ실업처럼 ‘해고를 원치 않는 기업’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찾아내 지원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지역사회에 ‘해고 도미노’를 막는 분위기를 만들어 사업주로 하여금 해고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뿐 아니라 지방세 유예·공공요금 감면과 같은 지원책도 고용 안전망을 두텁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 황택수 전주시 중소기업과 주무관은 “주로 영세한 기업들이 가족 같은 직원들을 자를 수 없다며 상담 신청을 해온다”며 “도움을 청한 기업이 해고 없는 대상 요건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전문 컨설팅을 통해 지원 방안을 찾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첫 시도인 만큼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역의 경제 주체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선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해고 없는 도시는 재난 상황에서 등장한 세 번째 ‘전주형’ 모델이다. 앞서 지난 2월과 3월에 진행된 착한임대인운동과 재난기본소득은 해고 없는 도시에 앞서 전주형 모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3월 27일 전주시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재난기본소득 신청을 받았다. 모두 5만1626명이 신청했고, 4만125명에 대한 지급이 결정됐다. 4월부터는 선별된 인원을 대상(중위소득 100% 이하·건강보험료 지역 4만7260원, 직장 7만4670원 이하)으로 52만7000원을 지급했다. 신청도, 지급도 중앙정부보다 빨랐다.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한 최초 사례인 만큼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후 전주 신중앙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 반기웅 기자 그렇다면 전주시 재난기본소득은 어디에 쓰였을까. 전주시 재난기본소득 사용 내역(4월 3일~24일·선불카드 기준)을 살펴봤더니 상위 50개 업종 가운데 46개가 동네마트와 슈퍼마켓이었다. 나머지 4개 업종은 병원과 도시가스, 주유소, 정육점이었다. 결과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은 먹고 치료하고, 이동하고, 공과금을 내는 데 쓰였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급한 불’을 끄는 데 쓴 것이다. 선별 대상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급한 돈이지만 바닥 경기는 생기가 돌고 있다. “빨간카드로만 하루에 90만원어치를 판 적도 있어요. 빨간카드 아니면 여기 장사 안 됩니다. 그거 나오고 나서 돈이 돌고 있어요.” 5월 12일 전주 완산구에서 만난 유성배씨(62·의류 소매업)의 말이다. 유씨가 말하는 빨간카드는 재난기본소득을 쓸 수 있는 선불카드(전주함께하트카드)다. 유씨는 “빨간카드 손님이 많이 사가는 게 겨울 내복이에요. 의외죠. 저도 놀랐어요. 손님들에게 물어봤더니 먹을 거 사먹으면 사라지니까 아깝다고…. 지원금 남았을 때 겨울 준비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올해는 다들 먹고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전주에서 시작한 재난기본소득은 경기도를 비롯한 타 지자체와 중앙정부로 확산됐다. 현시점에서는 이른바 ‘대세’ 정책이 됐지만 전주에서 도입을 논의했던 시기만 해도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지자체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재난기본소득을 두고 갑론을박을 하던 사이 취약계층은 무너지고 있었다. 전주시가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동시에 진행한 ‘코로나가 경제활동에 미친 영향·응답자 3504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9%가 코로나 이후 월소득이 5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고 답했다. 코로나 이전(7%)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코로나 전 대비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는 15% 이상 증가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들의 88%는 ‘코로나19’를 원인으로 꼽았다. ‘올 들어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6%가 ‘그렇다’고 답했다. 생계 지원하고 지역 살리는 ‘빨간카드’ 지난 5월 4일 전주 완산구 한 공원 쉼터에서 ㄱ씨(63)가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는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자다. 4월 7일부터 21일까지 관내에서 재난기본소득 선불카드를 사용했다. 지출의 대부분 슈퍼마켓과 식당, 병원에서 이뤄졌다. 지급받은 재난기본소득을 모두 소진한 뒤 ㄱ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ㄱ씨는 유서를 통해 생활고를 호소했다. 재난기본소득은 임시 방파제 역할을 했지만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앙정부에서는 기본소득과 같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안전망을 짜고 지방정부는 지역 취약 계층에 대한 사례별 접근을 통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상호보완적인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2일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임대료 인하 운동(착한 임대료)도 처음에는 건물주 14명의 ‘선언’에 불과했다. 이후 전주 전역으로 퍼진 임대료 인하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뻗어나갔다. 5월 7일 기준 전주시에서만 900여 개 점포가 공식적으로 임대료 인하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주 지역 내 건물주뿐만 아니라 외지인 건물주들이 동참한 결과다. 임대료 인하 점포의 40%가 전체 임대료의 20%를 깎아주고 있다. 전주 덕진구 신중앙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안중근(49)씨는 지난 2월 임대료 한 달치 60만원을 면제받았다. 2월은 코로나19 여파로 시장에 이용객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시기다. 안씨는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월세를 아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며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빨간카드(재난기본소득)가 나왔고, 매출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기본소득 카드 사용이 가능한 전주 도심 매장 / 반기웅 기자 중·고생 수학전문학원(덕진구)을 운영하는 김진석(가명)씨도 지난 3월분 임대료 50만원을 면제받았다. 물리적 거리 두기로 임시 휴원을 하면서 수입이 끊겼던 때였다. 김씨는 “사정상 임대료를 일주일만 미뤄달라고 했더니 상가 임대인이 아예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가 가장 막막했던 시기였는데 덕분에 지금껏 학원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착한 임대료 운동은 어디에서 왔을까. 임대료 인하는 건물주의 자발적인 의지로 시작한 운동이다. 다만 이들이 신속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전주시의 ‘사회적부동산제도’와 같은 정책도 한몫했다. 사회적부동산제도는 지난해부터 전주시가 시행한 ‘착한 임대문화’ 유도 정책이다. 한옥마을과 전주 객사길(객리단길)의 급속한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사회적부동산중개업소 50곳을 지정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도록 했다. 전주 도심 건물주들은 사회적부동산제도를 통해 착한 임대료의 선행학습을 한 셈이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임대료를 인하한다는 발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현재 착한 임대료 건물은 전주시가 다져놓은 사회적 연대라는 토대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활성화기본조례’도 제정 사회적 연대는 착한 임대료뿐만 아니라 해고 없는 도시와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전주형 모델’을 만들어낸 토양이다. 전주시는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2014년 지방정부 최초로 국 단위의 사회적 경제 지원단을 신설했고,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경제활성화기본조례’도 제정했다. 사회적 경제는 전주형 독립경제시스템의 한 축이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될수록 사회적 연대의 고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전주시가 지원한 마을 공동체 가운데에는 협동조합과 같은 마을 기업, 나아가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곳도 있다. 예비 마을기업인 삼천도시대학협의회(협동조합)는 2011년 전주 삼천2동 주민 6명이 모여 만든 마을 공동체가 시초다. 2015년 온두레공동체 공모사업에 지원해 디딤-이음-희망 3단계 성장 코스를 밟았다. 단계별로 300만원에서 600만원, 1500만원까지의 사업비가 차등 지원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경쟁력 없는 공동체는 걸러진다. 1단계 디딤에 60곳의 공동체가 모였더라도 3단계 ‘희망’까지 가는 공동체는 4곳 정도에 불과하다. 동네 꽃심기로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삼천도시대학협의회는 수제 비누 제작을 거쳐 막걸리빵, 3D 작업을 통한 상품 제작을 통해 수익을 내는 예비 마을 기업으로 성장했다. 임정례 삼천도시대학협의회 기획실장은 “시가 성의 있는 태도로 마을 공동체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며 “공동체끼리 연대할 수 있는 창구도 생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의 소통이 활발해진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연대는 재난 상황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가 선도적 정책을 내놓으면 풀뿌리 공동체가 나서 시민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의 참여와 지지는 재정·행정역량이 부족한 지방정부에게 선도적 정책을 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전주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 표지 이야기
레이디경향(총 10 건 검색)
- 한옥 뷰 루프톱 수영장에서 유유자적…라한호텔 전주의 여름
- 2023. 08. 08 14:46 레저/여행
- ‘라한’은 우리말 ‘라온’과 한국의 ‘한’을 조합한 이름이다. 라한호텔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지역 특색에 맞게 기획, 설계됐다. 기와지붕 처마 사이에서 찾아낸 옛것의 흔적, 미로 같은 골목에서 발견하는 고수의 맛집. ‘아날로그’ 여행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유무형의 역사를 품은 전주 한옥마을을 더욱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둘러볼 수 있는 라한호텔 전주에 다녀왔다. 발길 닿는 곳곳에 여유가 있는 곳 지난 7월 26일, 열차 사고로 기차가 연착되면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기 애매한 시간에 전주역에 도착했다. 계획을 변경하고 호텔행을 택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찰나의 여유, 평소 ‘파워 J’의 성격대로라면 택시 안에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겠지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넘치도록 가득한 전주, 게다가 한옥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호텔이 아니던가. 라한호텔 전주 로비의 풍경 무엇이든 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불안감을 잠재웠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장르별’ 메뉴를 읊어주신 택시 기사님의 공도 컸다. 마침내 도착한 라한호텔 전주. 로비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조용하고 아늑하다’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호텔의 첫인상은 고즈넉했다. 창밖 너머 한옥 지붕과 맞닿은 하늘,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왔을 나무들이 채운 여백, 마치 한편의 수채화가 떠올랐다. 호텔 1층에 자리한 북스토어 ‘전주 산책’에는 북 큐레이터가 추천한 여행, 음식, 문학, 키즈 등 주제별로 엮은 도서 1만여 권이 준비돼 있다. 호텔 투숙객이라면 ‘전주 산책’의 도서와 장난감을 1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호텔 1층에 자리한 북스토어 ‘전주 산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럽 여행에서 마주했던 시골 도서관이 떠오르는 이곳에는 전주를 테마로 한 이색 서가를 비롯해 북 큐레이터가 추천한 여행, 음식, 문학, 키즈 등 주제별로 엮은 도서 1만여 권이 진열돼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 창밖을 내다봤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한 한옥 앞에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옷 소매 붉은 끝동>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스펙터클한 드라마 한편을 내 멋대로 찍고 나니 ‘체크인’ 알림이 울렸다. 창 한가운데에 적힌 ‘전주, 오길 잘했지?’라는 문구에 괜히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객실에서 바라본 해 질 무렵의 한옥마을 뷰. 한옥마을을 품은 호텔 체크인 후 객실에서 본 한옥마을 뷰는 로비에서 봤던 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한복을 입고 곳곳의 포토존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이들부터 부채 만들기와 에코백 그리기 같은 체험 행사를 즐기는 이들까지 저마다 취향을 반영해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2020년 4월 오픈한 라한호텔 전주는 한옥 위주의 숙박시설이 즐비하던 이 도시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팬데믹이라는 악재에도 세련된 감각이 반영된 인테리어, 다채로운 편의시설이 더해진 호텔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MZ 세대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성지가 됐다. 한 누리꾼은 ‘5성급 같은 4성급’이라는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객실 내부는 정갈했다. 우리말 ‘라온’과 한국의 ‘한’을 조합한 이름처럼 문화예술의 도시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흔적이 액자 하나, 소품 하나에서도 전해졌다. 전주의 특색을 살린 부채 선물도 인상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맛집’ 투어 생각에 발걸음이 급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후문, 한옥마을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됐다. 라한호텔 전주 루프톱 수영장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 노을 질 무렵의 물속에서 바라본 한옥 뷰는 색다른 경험이자 힐링을 선사한다. ‘호캉스’의 꽃, 루프톱 수영장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다시 호텔이 그리워졌다. 더 정확히는 루프톱 수영장이 궁금했다. 라한호텔 전주, 하면 루프톱 수영장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소셜미디어의 ‘전주여행’ 해시태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핫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천편일률적인 여행의 틀에서 벗어나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곳, 독특하고 깊이 있는 경험과 색다른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호텔 지향점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3층에 위치한 수영장은 높이 약 1.2m의 성인 풀과 0.5m의 키즈 풀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어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또한 구명조끼와 튜브 등이 준비돼 있어 여행 짐 부담을 덜어준다. 대형 호텔 수영장과 비교해 상대적 아담한 크기였지만 물놀이를 하기엔 충분한 규모였다. 이곳에서도 ‘한옥마을 뷰’는 이어진다. 특히 노을 질 무렵의 물속에서 바라본 한옥 뷰는 색다른 경험이자 힐링을 선사했다. 반대편 방향에는 나지막한 산 하나가 자리해 시야를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언젠가 전주를 생각하면 초록과 파랑이 떠오를 것 같다는 아이의 표현에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오락가락 빗줄기에 행여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30도를 오가는 수온 덕에 추위를 느낄 틈이 없었다. 사이드바에서 주문 가능한 주전부리 역시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일행이 많았다면 널찍한 카바나를 예약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장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한옥마을의 전망을 통창으로 담아낸 카페 ‘하녹당’의 대표메뉴 모나카 세트. 뷰 맛집 찍고 곰탕 맛집 받고 총 195의 객실로 구성된 라한호텔 전주는 고층은 고층대로, 저층은 저층대로 한옥마을의 각기 다른 매력을 선물한다. 특히 한옥마을의 전망을 통창으로 담아낸 카페 ‘하녹당’에서는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을 찍듯 한옥마을을 감상할 수 있다. 변덕 심한 여름 날씨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성의 공간이다. 전통적인 문양의 과자 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녹차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모나카’ 세트와 치킨 세트가 이곳의 대표 메뉴다. ‘더 플레이스’의 셰프가 3일간 정성껏 끓인 가마솥 곰탕. 호캉스의 마무리는 조식이다. ‘더 플레이스’의 셰프가 3일간 정성껏 끓인 가마솥 곰탕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국이다. ‘리필’까지 하고 나니 하루의 에너지가 모두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평범한 일상과 다르게 특별한 추억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일상이 쌓여 만들어지는 삶, 그 어느 지점을 관통하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푹 쉬고 잘 먹고 즐거운 시간으로 꾹꾹 눌러 적은 일상의 기록, 라한호텔 전주에서의 여정이 그랬다.
- [정원 여행자] 전북 전주 - 따끈한 구들 위로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 2015. 12. 02 17:18 레저/여행
- 잘생긴 기와지붕을 얹은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 위풍당당한 ‘호남제일문’을 통과하는 짧은 찰나, 전주 사람도 아니거늘 고개가 빳빳해졌다.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오목대에 올라 검푸른 기와의 도도한 물결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러했다. 전주 땅을 밟는 순간,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이야기한 ‘꽃심’이라도 지핀 것일까. 이 고장의 근거 있는 자부심에 동화된 채 종내 식지 않는 흥으로 걷고, 마시고, 기웃거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고속도로를 통한 여행길이라면 톨게이트는 해당 여행지의 첫인상이 된다. 사실, 그 첫인상이 강렬한 도시는 많지 않다. 운전자가 아닌 이상 졸다 지나치기 십상이며, 모든 톨게이트가 해당 도시의 상징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주는 다르다. 한옥 기와지붕을 맵시 있게 올린 톨게이트가 보일 때쯤 여행객은 비로소 전주에 왔음을 실감한다. 현판의 힘찬 서체도 근사하다. 한글이 반포된 이후 서민들이 쓰던 글씨체라 하여 ‘민체’라 이르는 서예가 여태명씨의 글씨다. ‘전주’ 현판은 입구와 출구의 글씨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입구 현판은 ‘전주’의 자음을 작게, 모음을 크게 쓰고, 출구 현판은 자음을 크게, 모음을 작게 썼다는 것. ‘자음은 아들을, 모음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고향으로 들어올 때는 어머니의 큰 사랑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나갈 때는 자식들이 크게 돼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면 전주시의 관문인 ‘湖南第一門(호남제일문)’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으로 유명하며, 현판의 한자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글씨다. 호남제일문이란 이름은 전주가 전라감영의 문, 호남평야의 첫 관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 전주에 설치된 전라감영은 1896년까지 전라남북도를 포함해 제주도까지 통할하는 관청이었다.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시조인 전주 이(李)씨의 고장으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옹골찬 도시다. 왕복 5차선 대로를 가로지른 위풍당당 호남제일문은 그 유서 깊은 자부심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육교의 기능도 겸하니 한번 올라가볼 만하다. 느릿느릿 걸으며 산책하기에 좋은 운치 있는 전주 한옥마을 풍경.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자 오목대로 향했다.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성계가 귀경길에 들러 잔치를 벌였다는 이 언덕은, 그가 개국의 꿈을 내비침으로써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700여 채의 한옥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룬 풍경 앞에 감탄을 삼킨다. 때론 침묵으로 감탄사를 대신해야 할 때가 있다. 깊고 푸른 바다를 만났을 때가 그렇고, 도도한 검은 기와의 물결을 마주할 때도 그러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는 1990년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반발했던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지금의 한옥마을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1 호남 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전동성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2 전동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3 대하소설 「혼불」을 남긴 전주 출신 최명희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 4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완판본문화관. 꽃담 너머 이야기를 기웃거리며 「삼국사기」 중 백제 위례성의 새 궁실을 묘사한 문구인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전주의 문화와 전통, 의식주를 아우르는 미학이다. 톨게이트부터 시작된 ‘전주다움’은 발길 닿고 눈길 닿는 족족 온전히 그러했다. 국내 현존하는 향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보존된 전주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마당에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도 만날 수 있는데, 벌레가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이 반듯하게 자라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향교엔 꼭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주향교 앞의 완판본문화관은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곳이다.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판본을 이르는 ‘완판본’은 서울의 ‘경판’과 함께 조선시대 목판인쇄의 양대 산맥으로 통했다. 목판인쇄 및 제본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의 기법으로 책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야기를 품은 작은 골목길로 이어진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보폭으로 완성하는 여행지다.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발길 닿는 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 마음을 얹으면 족하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 여염집을,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최명희문학관 앞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전주를 ‘꽃심을 지닌 땅’이라 했다. ‘꽃심’은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꽃의 마음’, 혹은 ‘꽃의 힘’으로 풀어도 충분하리라. 아름다운 우리말로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그려낸 「혼불」은 그가 17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으로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라고.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간’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릴 수는 없는 일. 적어도 한 시절을 기울여 읽어야 할 소설이다. 최명희문학관까지 왔다면 바로 이웃해 있는 부채문화관과 교동아트센터를 함께 둘러볼 만하다. 경기전과 전동성당도 가깝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창건된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란 뜻을 담고 있다. 경기전에서 궁궐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전동성당은 매우 인상적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물감보다는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세월을 입은 건축물들은 동서양의 차이를 넘어 아름답게 낡아가는 속성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친김에 보폭에 탄력을 실어 남부시장까지 걸었다. 조선 3대 시장으로 통했을 만큼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 재래시장에 색다른 재미가 깃들었다는 소문을 들어온 터였다. 시장 2층에 형성된 ‘레알뉴타운’ 청년몰이 그것.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20여 곳의 이색 점포들은 전통의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1·3 남부시장 2층에 조성된 청년몰.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이색 점포가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 유수한 명창들의 판소리 공연이 열렸던 학인당 본채 거실. 일제강점기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기능했다. 4 한옥마을의 정신적 중심지인 전주향교의 대성전. 샘이 깊은 집에서의 하룻밤 여행객에게 해가 짧은 겨울은 언제나 아쉽다. 더욱이 전주처럼 볼 곳 많은 도시라면 뉘엿거리는 해가 입 속에서 닳아 없어지는 알사탕처럼 아깝기만 하다. 하지만 또한 다행인 것이, 전주에서의 한옥 숙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한옥마을엔 숙박이 가능한 한옥 체험관과 한옥 게스트하우스, 한옥 민박 시설이 100여 곳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학인당에 방을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고택 문화재이기도 한 학인당은 1905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연인원 4,280명이 참여해 지은 집으로, 한강 이남 민가 중 가장 화려한 고택으로 손꼽힌다.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 도입한 예로 본채 건물의 내부 구조는 창덕궁 희정당과 비슷하다. 건물 구조는 전통 한옥 양식을 취했지만 유리 여닫이문을 두르고 내부 생활공간을 서재,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 등 양옥 형태로 구성해 생활의 편리를 추구했다. 개량형 한옥의 모습을 지닌 학인당은 근대 한옥 구조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건축사 학술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인당은 국내 최초의 한옥 국악 공연장으로도 유명하다. 학인당의 건립자 인재 백낙중은 국악과 소리를 아꼈던 인물.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 경연이 조선 말 중단된 것을 안타까이 여긴 그는 본채의 넓은 대청을 판소리 연희장으로 제공, 국악인들을 초청해 꾸준히 공연을 열며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도록 후원했다. 그의 아들 백남혁 역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일제강점기 때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학인당을 제공했다. 임방울, 박녹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 등 유수한 소리꾼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소리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학인당은 광복 후, 김구 선생 등 정부 요인의 전주 방문시 영빈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본채 큰방의 명칭이 ‘백범지실’인 이유도 그 때문.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본채 큰방도 숙박 체험공간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학인당에서 또 하나 주목할 곳은 정원이다. 소나무와 돌과 연못을 배치한 정원은 여느 전통 한국식 정원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이면엔 비밀스러운 샘을 간직하고 있다. 연못 한쪽에 조성된 이끼 낀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만나게 되는 아담한 박우물이 그것. 땅 밑에 있다 하여 땅샘이라 부른다. 학인당 본채를 지을 당시 발견한 우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그와 같이 독특한 구조를 고안해냈다고. 기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 본채 뒤에 조성되는 데 반해 학인당은 본채 앞에 정원을 조성한 것이 특징인데, 이 오래된 우물을 지키기 위한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물은 흐르고 샘은 솟아야 조화로운 법. 먼저 자리 튼 물길을 위해 사람이 비켜 선 사려 깊은 조경 원칙과 마주하니, 정원이 꼭 인위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샘은 여름에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해 예부터 자연 냉장고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여름이면 수박 같은 과일을 띄워놓는 운치를 누린다 하니, 샘을 지킨 복록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듯싶다. 학인당의 종손은 초겨울이라 정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며 아쉬워했지만 샘솟는 이야기가 야윈 풍경을 충분히 갈음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잘생긴 한옥에서 머무는 하룻밤은 가만가만, 선비 걸음으로 깊어갔다. 잠들기 아쉬운 밤, 시간이 사위어드는 풍경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따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고 바스락거리는 홑청에 싸인 솜이불을 코까지 끌어다 덮으니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모처럼 꿈 없는 잠을 잤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 정원 여행자
- 전주 미니 ‘먹방’ 투어
- 2014. 11. 19 13:31 레저/여행
- 전주 한옥 마을에 다녀왔다. 예스러운 한옥의 정취를 느끼고자함은 빌미일 뿐, 실은 오로지 먹고 또 먹는 ‘먹방’ 투어가 목적이었다. 음식은 비빔밥이나 거한 한정식이 아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 종류로 엄선, 여자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미니 ‘먹방’ 투어를 즐겼다. 전주 한옥 마을과 처음 마주했을 때 서울의 북촌 한옥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줄줄이 먹거리 가게가 이어져 있다는 것. 군침 넘어가게 하는 다양한 비주얼의 음식을 둘러보다가 블로그를 통해 전주 한옥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 ‘길거리야’라는 정보를 입수, 곧바로 가게 위치를 추적했다. ‘길거리야’는 바게트 안에 돼지고기와 청양고추, 소스를 넣어 만든 바게트 버거로 빵의 바삭함과 매콤한 돼지고기, 소스가 어우러진 절묘한 맛이 일품이었다. 몇 개 안 먹었는데도 금세 배가 불러올 정도로 큼직한 사이즈도 만족스러웠다. 잠시 쉬었다 갈 겸 수제 초코파이로 유명한 풍년제과에 들러 카페라테 한 잔과 함께 초코파이를 즐겼다. 시중에서 먹던 초코파이와는 또 다른 맛으로, 진한 초콜릿과 안에 들어간 달콤한 딸기 시럽이 입맛을 당겼다. 아, 자꾸만 생각나는 중독성 강한 맛이로다! 또 다시 한옥 마을을 거닐며 그나마 양이 적은(?) 츄러스로 쉬지 않고 먹방 투어를 이어갔다. 놀이 공원에 가면 빠지지 않고 먹던 음식이 츄러스였는데, 이곳에서는 안에 치즈가 든 것, 초콜릿소스에 찍어 먹는 것 등 다양한 종류를 선보였다.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는 터라 초콜릿소스에 찍어먹는 것을 선택. 맛을 본 결과,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냥 오리지널이 더 맛있었다. 당일 여행을 계획했던 터라 음식 몇 가지를 먹고 나니 어느덧 버스에 탑승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타기 전까지도 새로운 음식을 놓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음식은 통통한 오징어를 그대로 튀겨 소스를 묻힌 ‘오징어 꽃다발’. 소스는 칠리, 치즈, 불고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그동안 먹은 음식의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칠리소스를 선택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왜 이 음식을 진작 먹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통통한 오징어와 고소한 튀김옷, 매콤한 칠리소스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룬 맛에 반해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특히 다리 부분이 씹는 식감이 더 좋은데, 다음에는 다리만 따로 사서 먹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들 정도다. <■글&사진 / 장인화 기자>
-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곳, 고택](4) 고귀함이 피어오르다 전주 학인당
- 2014. 04. 04 13:15 레저/여행
- 학인당의 품격과 향기가 남달라 앞마당을 거닐자면 고고한 양반가 규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햇빛 잘 드는 사랑채에 앉아 차를 우려 마시다 보면 저절로 등이 곧아 자세 또한 바르게 된다. 집의 좋은 기운이란 사람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바꾼다. 한옥의 근대적 발전 전주시 교동 학인당의 큰 솟을대문을 앞에 두고 그 위용에 잠시 주춤했다. 초인종도 없고 여느 고택처럼 늘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말이다. ‘똑똑똑’ 손기척으로는 기별도 안 갈 것 같았는데 어느새 알고 종손과 종부가 대문을 활짝 열어주며 반긴다. 앞마당에 한 발 들여놓았을 뿐인데 1백 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학인당은 수원 백씨 백낙중의 고택으로 올해로 1백6년이 됐다. 다른 고택들과 달리 비교적 머지않은 과거에 지어졌기 때문인지 현실과의 괴리감은 비교적 적게 든다. 그저 어디론가 멀리 떠나온 듯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윤이 반짝반짝 나는 정돈된 고택, 보존을 잘한 근대 물건들. 모두가 서화순(56) 종부의 정성에 빛을 발한다. “종택을 지을 당시 백미 4천 석에 해당하는 공사비를 들였다고 해요. 이 건축을 시작한 백진수 어른께서 흥선대원군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백두산 일대에서 금강송을 공수했고 궁궐 건축을 담당하는 도편수와 대목장이 공들여 지었다고 합니다.” 학인당은 궁궐의 모습이 곳곳에 묻어난다. ‘ㄱ’자 형태로 된 사랑채를 돌아다니려면 복도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이는 궁궐에서만 사용되던 양식이다. 모든 방문이 3중 처리된 점 역시 민가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전체적으로 사랑채 전면은 시원스럽게 창을 내어 채광과 환기가 용이하다. 한옥으로는 특이하게 다락방(조상들의 추억이 담긴 물품으로 진열해놓은 안락한 공간이다)에 창문을 낸 복층 구조로 아늑함을 준다. 정원에 파놓은 땅샘은 한여름에도 선선한 자연 냉장고가 된다. 지금도 땅샘에 수박과 참외를 띄워놓고 운치 있게 여름을 보낸다고 한다. 안방 한쪽 벽에 걸린 백범 김구 선생과 정부 요인들의 사진도 인상적이다. 광복 이후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의 영빈관으로 사용됐던 곳이라고 한다. 안방은 김구 선생과 해공 신익희 선생이 머물던 방이라 하여 ‘백범지실’, ‘해공지실’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다. 이렇게 기세등등했던 학인당은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됐다. 원래 2천 평이었던 집은 5백30평으로 줄었고 안채와 행랑채는 없어진 상태다. 이제는 과거 공연을 하거나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던 사랑채가 주된 생활공간이 됐다. “한때 이 사랑채마저도 모 재벌가 회장님이 욕심을 냈다고 해요. 1976년에 당시 매매가 3억원을 제시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부님은 사랑채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팔고 싶지 않아 하셨대요. 행여 후손들이 팔 것을 염려해 문화재로 묶어놓았다고 하더군요. 대신 종손이 살면서 집을 관리했기 때문에 유지돼 이렇게 공개될 수 있었겠지요.” 선조들은 수원에서 전주로 토착한 후 풍요로운 호남의 땅을 바탕으로 부를 일궈 만석꾼이 됐다. 그러나 ‘만석꾼 재산보다는 수백 년을 갈 집’을 후손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조상의 마음으로 큰 집을 지은 것이다. “수원 백씨인 선조께서 조선 시대 중종 때인 기묘사화에 연루돼 이곳 전주로 낙향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 전주 최씨와 혼인을 하고 이곳에 정착합니다. 토착 후 부를 일구다 보니 만석꾼이 되셨어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던 당시 만석꾼이던 고조부는 큰돈을 쾌척했다. 그것을 계기로 그야말로 대궐 같은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택보다 사람! 만석꾼이던 집안은 일제강점기, 6·25전쟁에 이은 토지 개혁 등을 겪으면서 재산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학인당만은 그 험난한 시기 속에서도 온전히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한옥 체험을 위해 오시는 분들 중에는 어린 시절 추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우리 집도 한옥이었는데 전쟁통에 파괴됐다’, ‘관리하기가 어려워 없애버렸다’ 등등 구구절절 사연이 있으시죠. 마지막에는 ‘어려운 고택 관리를 참 잘하고 있다’라는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시지요.” “아름다운 문화를 잘 지켜줘 고맙다”라며 종부에게 돈 봉투를 쥐어주는 재일교포도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쪽 외국인들이 학인당에 머물며 한옥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종부로서 그간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리고 보람을 느낀다. “집은 자고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잖아요. 저 하나 누울 공간만 있으면 그곳이 보금자리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집을 섬기며 살고 있어요. 완전히 주객전도가 된 모습이죠.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국의 고택을 다니면서 고택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도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전통에 대한 애착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은 그릇이 큰 사람을 잘도 알고 이곳으로 이끈 모양이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큰 집이 겁도 나고 정말 힘들었어요. 10년간은 제 삶은 없고 오로지 집을 위해 살았지요.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식구대로 따로따로 상을 차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어요. 제사도 시제까지 합쳐 1년에 열여섯 번을 지내야 했고요.” 지금은 고택 관리는 남편과 아들이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으며 제사도 많이 간소화했다. 이제는 외출하는 데 자유롭고 선산 휴지에 좋아하는 차 농사도 짓고 있다. 학인당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본인이 직접 만든 차를 대접하며 인연을 맺는 것. 고택에서 사는 그녀의 즐거움이다. 귀한 것을 알아주는 고마운 아들 한옥 체험 손님을 맞을 때 가장 철저하게 관리하는 부분은 잠자리다. 특히 외국인이 주로 머무는 학인당은 푹신하고 깨끗한 이부자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한옥에 오시면 이부자리 걱정을 많이 하세요. 옛날집이라고 이부자리마저 예스럽다면 머무는 분들이 불편하죠. 저 역시 먹는 것보다 잠자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전 주한미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씨가 업무차 전주에 들러 이곳에서 하루 숙박하신 적이 있어요. ‘외국인에게 온돌방이 너무 뜨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다음날 일어나서 ‘피로가 싹 풀렸다’라며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이후 개인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한 번 더 오시기도 했지요.” 한옥 체험으로 개방하기 시작하면서 학인당의 독특한 건축양식은 입소문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을 직접 보기 위해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그런 영향일까, 학인당을 이어갈 5대 종손인 그녀의 아들은 건축을 전공했다. “외지에 있던 아들이 지난해 결혼을 했고, 저희 부부를 도와주기 위해 학인당에 머물고 있어요. 자의 반 타의 반이겠지만 집에 대한 애착이 커요. 종부로서의 사명도 있겠지만 대를 이을 아들 덕분에 더 힘을 낼 수 있었죠.” 아들이 뜻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었다면, 학인당은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고풍스러운 자태를 지닐 수 있었을까. 후손에게 좋은 집을 지어주기 위해 공을 들였던 선조, 그 집을 제 손으로 쓸고 닦으며 아들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어머니. 모두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유산’이다. “아들 내외가 집을 관리하면서 우리 부부처럼 고생스럽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남아 있어요. 정부에서 수리 보수에 대한 지원을 해주긴 하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 보수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은 부분이 있거든요. 큰 사랑채 기와는 지원받을 수 있겠지만 뒤채 기와까지 해주실지는 모르겠어요. 고택을 수리하는 장인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인 실정이죠. 한 채의 기와를 가는 것만으로도 4천만~5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요.” 며느리도 가구 디자인을 전공해 고가구를 비롯한 옛 물건에 관심이 많고 좋아한다. 학인당에는 더할 나위 없는 새사람이다. “아이들이 고마운 것이 산소를 모시는 일도 ‘안 한다’라는 이야기를 안 해요. 그저 여기저기 퍼져 있는 산소들을 한곳으로 모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젊은 애들이라 밖에 나가는 것이 더 좋을 텐데 참 대견해요.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나 봐요.”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뒤늦게 고택의 소중함을 알았다.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지켜 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네 번째로 방문한 고택, 학인당에서 퍼지는 깊고 은은한 향기가 더욱 고결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고마운 것이 산소를 모시는 일도 ‘안 한다’라는 이야기를 안 해요. 그저 여기저기 퍼져 있는 산소들을 한곳으로 모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젊은 애들이라 밖에 나가는 것이 더 좋을 텐데 참 대견해요.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나 봐요” <■기획 / 이유진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촬영 협조 / 학인당(063-284-9929)>
-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곳,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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