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749 건 검색)
- ‘내란 방조’ 혐의···시민단체, 정진석 비서실장 고발
- 2024. 12. 17 17:47 정치|정치|정치|사회|사회
-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도한 12·3 비상계엄...
- 탄핵, 국내외 영향
- 정진석, 여당 의원 40여명과 오찬…김건희 특검 표단속?
- 2024. 11. 25 20:52 정치
- ... 특검법 재표결 앞두고 최근 당내 분열 의식한 듯 당정 “화합” “뭉치자” 강조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5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과 오찬을 위해 여의도의 한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김건희 특검 재표결 앞두고 정진석·국민의힘 오찬···“똘똘 뭉치자”
- 2024. 11. 25 15:56 정치|정치|정치
-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5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과 오찬을 위해 여의도의 한 호텔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5일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 40여명과 오찬...
- “윤 대통령 부부, 정진석 통해 공천개입했을 수도”
- 2024. 11. 20 21:25 정치
- ...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사진)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공천에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은 가능하다”고 20일...
- 이준석정진석공천개입지방선거
스포츠경향(총 55 건 검색)
- “조선이 日침략에 망했나?” 정진석 발언 파문
- 2022. 10. 11 14:23 사회
-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구한말 국제정세를 설명하면서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고 말하는 등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에서 조선왕조를 비하해 파문이 일고있다. 정 비대위원장은 11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반대한 데 대해 “경박한 역사인식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정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왕조를 집어삼켰다.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 비대위원장의 주장은 이재명 대표가 전날 유튜브 방송에서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자는 것이 일본의 목표”라며 “미 동맹과 자체 군사력 국방력으로 충분히 안보를 지킬 수 잇는데 왜 일본을 끌어들이려고 하느냐.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을 우리는 상상수 없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한 반론이다. 정 비대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친일 앞잡이”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안보대책회의를 열고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해 “한반도에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결과를 내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정부 여당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와 색깔론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했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 위원장은 야당 대표를 공격하려고 조선이 일본군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며 일제가 조신 침략 명분으로 삼은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드러냈다”며 “귀를 의심케 하는 천박한 친일 역사 인식이며, 집권여당 인사의 역대급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 힘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이게 우리 당 비대위원장의 말이 맞나?”라며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당장 망언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비대위원장 직에서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이 日침략에 망했나?” 장진석 발언 파문
- 정진석 추기경 선종…5월1일 장례미사
- 2021. 04. 28 10:46 생활
-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 지 하루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1970년 주교품을 받고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됐으며 1998∼2012년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로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 머물며 집필활동에 매진해왔다. 정 추기경의 장례는 5월 1일까지 5일장으로 진행된다. 조문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가운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할 수 있다.
- 정진석 추기경 선종…5월1일 장례미사
- “행복하세요” 정진석 추기경 선종
- 2021. 04. 28 08:58 생활
- 정진석 추기경이 만 90세로 선종했다. 연합뉴스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만 90세로 선종(善終)했다. 27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정진석 추기경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이날 오후 10시 15분쯤 선종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최근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과거 지병으로 몇차례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고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지난 2018년 9월 27일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서명했다. 또 2006년에는 자신이 서약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이 실시될 수 있도록 의료진에게 부탁했다. 장기기증 효과가 없다면 연구용으로 사용해줄 것도 덧붙여 청원했다. 그는 지난 2월 25일 자신의 통장에 있는 잔액 모두 두 명동밥집, 아동 신앙 교육 등 본인이 직접 지정해 봉헌하도록 조치했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재학 중 6·25 전쟁을 겪고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해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0년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정 추기경은 이후 1970년부터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낸 뒤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 서울대교구장(대주교)에 임명돼 서울로 돌아와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추기경에 임명하면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교회법 전문가’로 불리우며 그동안 50권의 책을 번역·저술한 정 추기경은 지난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서 지내며 매년 1권씩 책을 번역·저술하면서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 추기경 장례는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며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 정진석추기경
- [종합] ‘교회법 권위자’ 정진석 추기경 선종…향년 90세
- 2021. 04. 27 23:59 생활
-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며 “현재 장기기증 의사에 따라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자신이 고령이고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오래전 부터 노환으로 맞게 되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며 2018년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바 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도 서명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7일 서울 중구 수표동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고,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서울 성신고 교사(1961∼6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1964∼65), 성신고 부교장(1967∼68)을 지냈다. 1968년에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1970년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교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 추기경은 만 39세 때인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그는 재단법인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학교법인 청주가톨릭 학원 이사장(1970∼1998),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1978∼1984)·교회법위원회 위원장(1983∼2007)·총무(1987∼1993)를 지냈다. 1996년부터 3년간 주교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며 대주교로 승품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게 된 그는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사임하기까지 14년간 교구를 대표했다. 그는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정 추기경은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7년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고,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본이 교황청 승인을 받아 처음 출간됐다. 정 추기경은 이후 교회법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설서 첫 권을 펴낸 데 이어 2002년까지 총 15권의 교회법 해설서 편찬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는 많은 역서와 저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 선종 후 본격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정진석 “윤 대통령, 명태균 매몰차게 끊었다”···“여사는 그렇게 못해”(2024. 11. 01 15:09)
- 2024. 11. 01 15:09 정치
-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왼쪽)이 11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처 대상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1일 1일 윤석열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명태균씨에 대해 “(윤 대통령이) 초반에는 조언을 들었지만 지내고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매정하게 끊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대통령 출마를 하게 됐는데 유명한 정치인을 많이 아는 사람이 이런 관점으로 이야기하면 솔깃하지 않았겠는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실장은 “본질은 명태균 씨의 조력을 중간에 끊었다는 것”이라며 “사실 매몰차게 끊으셨다고 한다. 경선룰에 이런저런 간섭을 해서 ‘앞으로 나한테도 전화하지 말고 집사람한테도 전화하지 마’하고 딱 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매몰차게 명태균씨를 끊었지만 배우자인 김 여사는 그렇게 못하는 것”이라며 “어떻게든 남편 몰래 명태균 씨를 달래고 좋게 좋게 얘기해서 선거를 끝까지 끌고 가고 싶은 게 가족의 심리 상태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은) 그래 놓고 연락을 안 하다가 취임식 전날 전화가 와서 그 사람도 초반에는 조언도 하고 도왔으니 전화 받은 것”이라며 “전화 받아서 덕담은 건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선택적으로 발췌해서 공천개입이라고 규정짓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도한 정치 공세”라며 “지난 2년 동안 계속돼 온 대통령 죽여서 당 대표 살리자는 야권의 정치 캠페인의 지속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과 명씨와의 통화 내용을 두고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이런 정도의 누구누구를 공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 개진은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이 불법 선거 개입을 했다’, ‘불법으로 공천 개입을 했다’는 이야기는 당의 권한. 즉,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 마지막 의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라며 “공천관리위원장인 윤상현 의원과 당시 당 대표인 이준석 대표도 김영선 후보를 공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이어 “녹취에 등장하는 명태균씨도 전혀 공천 개입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 녹취는 모든 내용이 아니라 잘린 것 같다’, ‘당에서 다 알아서 하겠다’는 워딩이 잘렸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공천에 개입했다고 야당 위원들이 주장하지만, (취임식 전날인 2022년)5월 9일 통화는 대통령이 민간인인 당선인 시절이었다”며 “공무원 직위에 없던 시점에서의 워딩으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도 없는 것이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어떤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한 법률은 없다”며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견강부회라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37년 만에 대한민국 두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진석 추기경
- 2006. 04. 01 화제
- “두번째 추기경 탄생은 명실상부한 국가 성장, 국가 위상에 걸맞는 선교 활동을 펼쳐나갈 터” 지난 2월 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새로 탄생하는 15명의 추기경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정진석 대주교를 그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임명된 이후 37년 만에 두 명의 추기경을 보유한 세계 30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우리 사회가 믿고 따를 또 한 분의 ‘어른’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은 경사이기도 하다. 한국 최연소 주교 출신 교회법 권위자 정진석 서울대교구 교구장(75)이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지난 2월 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대주교를 신임 추기경에 임명했다는 로마 교황청의 공식 발표 이후 천주교계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영광스런 소식에 들떴다. 정 추기경은 이날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천주교계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과 정부가 지원해준 덕분에 추기경이 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정 추기경은 이어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내가 선택된 것은 우리나라와 한국 천주교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게 참작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도 “그동안 새 추기경이 임명되지 않아 자책과 불안이 많았는데 이번에 새 추기경이 탄생해서 너무나 기쁘다”며 “하느님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감사한다”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정 추기경은 아직 80세가 안됐기 때문에, 고령인 탓에 투표권이 없는 김수환 추기경(84)과는 달리 교황이 서거하면 새 교황을 뽑는 추기경회의인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있다. 즉,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다. 당초 정 추기경은 많은 나이 때문에 새 추기경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공산권과 아시아 선교에 관심이 많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국 최대 교구의 교구장이자 평양 교구장 서리도 겸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 추기경은 한국 최연소 주교 기록을 갖고 있는 등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사제로 평가받아온 인물이다. 특히 교회법의 권위자로 알려진 그는 소탈하며 후덕한 인품으로 교회 안팎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의 친가, 외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주교가 되는 태몽을 꾸었을 정도. 정 추기경의 어머니 이복순(1996년 작고) 여사가 정 추기경을 임신했을 당시 천주교 주교의 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청년이 나타나 “어머니, 저 주교 됐어요” 하고 말하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45년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유물론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47년 명동성당에서 윤형준 신부의 사순절 특강을 듣고 사제의 삶을 생각하게 됐다는 것. 이후 그는 50년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합격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 중퇴하고 성신대(지금의 가톨릭대)에 재입학, 6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1970년 39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연소 주교가 되면서 청주 교구장으로 부임한 그는 1998년 서울대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동시에 평양 교구장 서리까지 겸임하게 됐다. 성신고등학교 교사와 부교장을 지내고 로마 우르바노 대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은 학자형 사제인 정 추기경은 수십 권의 저서와 역서도 갖고 있다. 교회법의 권위자답게 총 15권의 ‘교회법 해설’을 출간했고 「장미꽃다발」 등 수필집도 다수 냈다. 지난해에는 모세의 한평생을 그린 「민족해방의 영도자 모세」를 집필하기도 했다. 사회복지단체인 꽃동네 설립에도 큰 도움을 준 정 추기경은 1996년 어머니가 안구 기증의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뜨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 현장을 끝까지 지켜 마지막 효심을 다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부친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한 월북 인사 한편 정진석 추기경의 서임 즈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남다른 가족사가 알려져 화제가 됐다. 정 추기경의 부친이 일제시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했던 점, 그리고 월북해 부상(차관)까지 지낸 사실 등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 정 추기경의 부친으로 밝혀진 사회주의 계열 인사 정원모씨는 독립운동을 하다 3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뒤 월북해 북한의 공업성 부상(차관급)까지 지내다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 추기경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주장이 사실임을 직접 밝혔다. 정 추기경 자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서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 그가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은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을 당시로, 호적초본을 떼본 뒤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부친의 얼굴을 모 일간지에 게재된 당시 기사를 통해 처음 보았다는 정 추기경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얼굴을 이제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비극이기도 하다”면서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소중한 가족들의 얼굴을 잃어버린 유일한 민족일 것이다. 언젠가는 그 잃어버린 얼굴들을 만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부친이 월북 뒤 재혼해서 낳은 이복형제들과의 만남 추진 건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평양을) 방문해 만나게 되겠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예식 참석을 위해 지난 3월 5일 로마로 출국했다. 정 추기경은 3월 9일부터 11일까지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열리는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반포 40주년 심포지엄에서 아시아 대표 발제를 맡았다. 특히 11일에는 서임 후 처음으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3월 12일에서 22일까지 추기경 서임 준비 피정에 들어간 뒤 24일 추기경 서임 예식에서 추기경에 공식 서임되고 이어 25일 추기경 서임 축하 미사, 27일 새 추기경들과 교황 알현 등의 일정을 마치고 30일 오후(한국시각)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두 명 이상 추기경 배출한 나라로 국위선양 추기경이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인 만큼 서임식 또한 웅장함과 경건함이 함께하는 수백 년 전통의 최고 예식이다. 교황이 임의로 추기경을 임명할 때마다 열리기 때문에 매년 볼 수 있는 행사도 아니다. 이번 서임식도 2003년 10월에 이어 2년 반 만에 열리는 것이다. 정 추기경을 비롯해 새로 임명된 15명의 각국 추기경들은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진홍색 수단 위에 하얀 중백의(사제들이 성사 집행 때 입는 백색의 긴 옷인 장백의를 조금 짧게 변형한 옷)를 입고 서임식에 참석한다. 서임식이 시작되면 교황은 추기경 임명장을 낭독하고 새 추기경들의 이름을 선포한다. 이어 새 추기경 대표가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교황의 강론이 이어진다. 다음에 새 추기경들은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서약, 순명선서를 하고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라틴어로 “자신을 용맹하게 헌신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 하나님의 백성,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를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하라”는 훈화를 한다. 끝으로 교황이 새 추기경들에게 진홍색 주케토(사제들이 머리에 쓰는 작은 모자로 교황은 흰색, 추기경은 진홍색, 주교는 자색, 사제는 검은색)와 비레타(주케토 위에 쓰는 삼각 모양의 모자로 색깔은 주케토와 동일)를 직접 씌워주고 포옹하면서 서임식은 장엄하게 막을 내린다. 서임 축하 미사는 25일 오전 10시 30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과 새 추기경들의 공동 집전으로 열린다. 정 추기경을 비롯한 새 추기경들은 진홍색 수단과 장백의 위에 흰색 제의를 입고 머리에는 전날 서임식에서 받은 주케토 위에 주교관을 쓴다. 흰색 제의는 기쁨과 영광, 결백을 상징한다. 축하 미사에서는 교황이 새 추기경들에게 추기경 반지를 수여한다. 추기경 반지는 존엄성의 상징이며 교황과 갖는 특별한 친교를 의미한다. 정 추기경은 이날 오후 5시 로마 한인식학원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한국인 사제 및 경축 순례단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인을 위한 별도의 미사를 집전한다. 전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천주교도는 약 10억 3천 명에 이른다. 천주교는 이슬람이나 힌두교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종교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다. 이런 가운데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 추기경을 두 명이나 배출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각별하다. 그 자리가 교황을 직접 보필하면서 전 세계 10억이 넘는 신자를 직접 통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천주교 신자 여부를 떠나서 두번째 추기경의 탄생을 국가적 경사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신임 정진석 추기경이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리더로서 사회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에게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한마음으로 경축할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진석 추기경 일문일답 평양 교구장을 함께 맡고 있는데, 앞으로 북한 선교에 대한 구상은. 남북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북한에는 해방 직후 58개의 성당과 약 5만5천 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성당도, 성직자도 없다. 또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생존해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선교라는 용어는 다소 어폐가 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10년간 1백억원에 달하는 물자를 원조했는데, 이는 선교 차원이 아니라 동족들을 위한 인류애적·동포애적 표현으로 보낸 것이다. 북한에 계신 분들이 하루 빨리 식량난을 해결하고 행복한 날을 사시기를 기원한다. 상황이 많이 나빠져 북한을 도와준다는 것이 전보다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은 계속할 것이다. 교황의 남북한 동시 방문에 대한 전망은. 교황님은 세계 여러 나라에 다니시는데, 여행 목적은 신자들을 만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에는 성직자가 한 명도 없어서 교황을 영접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교황의 북한 방문은 어렵다. 교황청과 내가 그동안 북한에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겠으니 신부를 한 사람만이라도 상주케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대답만 여러 해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교황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선교에 대한 계획은. 몇 년 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세계 30위권에 들었다는 것이다. 또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추기경이 있는 나라가 65개국인데, 이 가운데 복수의 추기경을 두고 있는 나라는 30개국이다. 우리나라에 두번째 추기경이 탄생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명실상부한 세계 30위 안에 드는 국가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이런 국가의 위상에 걸맞는 선교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는. 라틴어 속담에 ‘노인은 지혜롭다’라는 말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37년간 추기경의 임무를 수행해오셨다. 추기경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훤히 아는 분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김 추기경님을 스승이자 대선배, 큰 형님으로 모시고 지도를 받고자 한다. 추기경으로서 대사회적 활동에 대한 방향은.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고교 시절에 세계적인 지도자의 싹이 튼다. 하지만 세계 30위의 위상을 가진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수능시험의 노예가 된 고등학생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재능을 발산해야 할 나이에 왜 수능 점수 한두 점에 목을 매야 하는가. 우리나라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배출해야 하는데 지금의 교육제도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학법에 반대한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 빈부 격차, 지역 갈등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 통합을 강조해왔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한국인의 평균적인 얼굴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소개한 기사를 봤다. 평균적인 얼굴을 가진 한국인은 현실에는 없다. 그러나 어디엔가는 존재한다. 의견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다른 만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된 의견은 있을 수 있다. 자기 주장을 자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야 대화가 되고 비로소 타협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과 국내외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평균적인 의견이 국민의 다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수의 소망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지도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갖는 권위는?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과 교황에 선출될 자격을 함께 갖고 있는, 천주교에서 교황 다음 가는 고위 성직자다. 추기경(Cardinal)의 어원은 문을 여닫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쩌귀’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도(cardo)’다. ‘교회의 중추’라는 얘기다. 교황을 보필하는 핵심 참모인 추기경들은 교황을 의장으로 하는 추기경회의(Consistorium)를 구성하며 교황청 각 성성(聖省)과 관청의 장관 등 요직을 맡는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정진석 추기경 같은 지역 추기경들은 교황청에서 부정기적으로 소집하는 각종 회의에 참석, 전 세계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자문을 한다. 지역 추기경은 바티칸에 상주하지 않아도 바티칸 시민권을 갖는다. 다만 소속 국가에서는 ‘사목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미사를 집전할 수 없고 그 나라의 최고 가톨릭 지도자로서의 상징적 의미만 갖는다. 추기경의 임명은 어떤 경우든 교황의 개인적 선택에 달려 있다. 추기경 제도는 4세기 초반부터 시작돼 15세기까지 추기경의 수가 30명 이내로 일정치 않았다.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가 처음으로 정원제(70명)를 실시했고 이것이 4백년가량 지속됐다. 이후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 정원제를 폐지해 추기경 수는 증가하기 시작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는 최대 1백85명까지 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 선출권을 갖는 추기경의 연령을 80세 미만으로 제한했고 75년에는 그 숫자도 1백20명 이하로 정했다. 이들 추기경은 교황이 사망하면 사후 15일 이내에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출회의를 열어 새 교황을 뽑게 된다. 추기경의 수단(사제가 평소에 입는 겉옷)은 순교의 피를 상징하는 진홍색이며 바티칸시국이나 소속 국가에서 의전적으로 대우를 받는다. 가톨릭에서는 성직자의 품계에 따라 임명할 때 쓰는 용어도 다른데 부제·사제·주교는 ‘서품’되는 것이고, 주교 서품된 사제가 임명되는 대주교나 추기경에게는 ‘서임’이라는 용어를 쓴다. 정리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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