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748 건 검색)
- ‘세계적 조각가’라며 중국산 미술품 판 70대…청도군 “3억 돌려달라” 소송
- 2025. 02. 26 11:13사회
- ... 드러났다. 신안군 제공 자신이 세계적인 조각가라며 경력을 속여 중국산 미술품을 수억원에 판매한 조각가 A씨(71)를 상대로 경북 청도군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6일 청도군에 따르면, 청도군은...
- 전남신안경북천주교파리천사
- 세계적 조각가가 만들었다던 DJ섬 ‘천사상’, 알고보니 ‘중국산’
- 2025. 02. 25 09:54사회
- ...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 판결문을 보면 강원 영월에서 미술박물관을 운영하는 A씨는 두 지자체에 조각 작품을 납품하면서 ‘세계 유명 조각가’로 행세했다. 그가 지자체에 보낸 이력은 황당했다. A씨는...
- [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윤석열의 청년팔이
- 2025. 02. 16 21:25오피니언
- 윤, 청년들 향한 메시지 발신 계속 2030 여론조사는 ‘탄핵 찬성’ 우세 윤 정부, 여가부 폐지·채 상병 사건 청년층 ‘정치적 동원’ 위험 알려야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 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 마린스키행 앞둔 전민철의 소원은···조각이 된 발레리노의 다리
- 2025. 02. 05 11:31문화
- ..., 그 자체만으로)’다. 전민철이 연습을 수없이 해도 무대에서 실수할 수 있는 발레와 달리, 조각은 리허설이 완벽히 끝난 상태에서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한 말에서 착안했다. “충분한...
- 전민철
스포츠경향(총 495 건 검색)
- [오피셜]강원FC, 박용호 수석·오범석 코치 등 조각 완료 ‘단일팀 최대 규모’
- 2025. 01. 08 14:21 축구
- 2025 강원FC 코칭스태프 코치진 선임을 완료한 강원FC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강원은 8일 코치진 선임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정경호 감독을 비롯해 박용호 수석코치, 최효진 코치, 송창호 코치, 전상욱 GK코치, 장영훈 전술코치, 장석민 피지컬코치, 오범석 코치, 김민식 GK코치, 변주원 피지컬코치 등 10인의 코치진과 2025시즌을 맞이한다. B팀을 운영하지 않는 단일팀 규모로는 K리그 구단 최대다. 정경호 감독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코치진과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겠다. 1년 뒤에도 다 함께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2000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용호 수석코치는 2015년~2016년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뒤 2017년에는 전업 코치로 전환했다. 이후 FC서울,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를 거쳐 다시 강원으로 돌아왔다. 박용호 수석코치는 “지도자를 처음 시작한 팀이다. 좋은 기억과 추억들이 많다. 초심으로 돌아가 더 큰 열정을 갖고 노력하겠다”며 “과거와 팀의 위상이 크게 달라진 만큼 디테일하게 잘 준비해서 팬들에게 큰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효진 코치, 송창호 코치, 전상욱 코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원FC와 동행을 이어간다. 강원은 구단 방향성에 맞춰 유망주 육성에 집중하기 위해 육성군 코치진을 강화했다. 오범석 코치, 김민식 GK코치, 변주원 피지컬코치, 총 3명의 지도자가 집중적으로 유망주 육성을 전담한다. GK코치와 피지컬코치를 별도로 두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오범석 코치는 지난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약 3년 6개월 동안 강원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다. 특히 2019년부터 팀을 떠나기 전까지 주장을 맡아 헌신했다. 지난해 파주시민축구단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오범석 코치는 “주장을 맡았던 팀에 다시 돌아와 기쁘다.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원석이 다이아몬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유망주 육성에 전념하겠다. 감독님을 비롯해 코치진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은 지난 1일 전지훈련을 위해 튀르키예 안탈리아로 출국해 2025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다니엘 헤니, 깍아놓은 조각의 특별한 일상
- 2024. 12. 23 10:23 연예
- 배우 다니엘 헤니 화보. 아레나 옴므 플러즈 제공 배우 다니엘 헤니가 조각 같은 비주얼을 드러냈다. 패션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는 제 13회 해밀턴 비하인드 더 카메라 어워드를 개최한 해밀턴의 앰버서더 다니엘 헤니의 화보를 23일 공개했다. 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출동한 다니엘 헤니는 미국 LA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 패서디나의 한 저택에서 해밀턴의 시계들을 소화하며 댄디한 매력을 뽐냈다. 배우 다니엘 헤니 화보. 아레나 옴므 플러즈 제공 배우 다니엘 헤니 화보. 아레나 옴므 플러즈 제공 배우 다니엘 헤니 화보. 아레나 옴므 플러즈 제공 이번 화보에서 다니엘 헤니는 모닝 커피를 즐기고, 정운을 가꾸는 모습, 자전거를 타거나 빈티지 카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등 편안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표현했다. 다니엘 헤니가 사랑하는 반려견 줄리와 함께 따뜻한 모습까지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다니엘 헤니는 “오랜 인연인 해밀턴과 촬영은 언제나 즐겁다. 어떠한 착장에도 편안하고 감각적으로 스타일링되는 해밀턴의 여러 모델을 만나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했다. 다니엘 헤니의 매력이 담긴 이번 화보는 아레나 옴므 플러스 1월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실린다.
- [화보] 배진영, 조각 비주얼 새 프로필
- 2024. 12. 20 09:23 연예
- 아우라엔터테인먼트 가수 배진영이 새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다. 배진영은 20일 비스테이지(공식 팬 커뮤니티)를 오픈하고 프로필 사진을 공개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사진 속 배진영은 올블랙 의상을 입고 모델 같은 아우라를 발산했다. 또 흑백 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짙은 카리스마를 선보였고, 깊은 눈빛과 시크한 분위기로 조각 같은 비주얼을 완성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아우라엔터테인먼트 배진영은 비스테이지 오픈과 동시에 공식 SNS 계정을 오픈하며 국내외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예고했다. 최근 아우라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배진영은 새 프로필 사진과 공식 SNS 채널 및 플랫폼을 오픈하며 팬들의 반가움을 자아냈다. 아이돌 그룹워너원(Wanna One)으로 데뷔한 뒤 씨아이엑스(CIX) 멤버로 활동은 물론, 웹드라마와 영화 등에 출연하며 다재다능한 매력을 발휘했던 배진영이 아우라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예고해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아우라엔터테인먼트에는 배진영을 비롯해 가수 제아, 이수호, 김영흠이 소속돼 있으며, 최근에는 가수 한승우를 영입했다. 아우라엔터테인먼트
- [오피셜] KIA, 드디어 2연패 위한 퍼즐 한 조각을 채웠다···‘한국 바라기’ 에이스 네일과 총액 180만달러 재계약 “내년에도 우승!”
- 2024. 11. 27 13:26 야구
- 제임스 네일이 27일 KIA와 총액 180만달러에 재계약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올해 KBO리그 챔피언 KIA가 2연패 도전에 필요한 퍼즐 한 조각을 채웠다. ‘에이스’ 제임스 네일(31)이 내년에도 KIA에서 활약하게 됐다. KIA는 27일 “네일과 계약금 40만 달러, 연봉 120만 달러, 옵션 20만 달러를 합쳐 총액 18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KIA와 계약해 KBO리그에 데뷔한 네일은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35만 달러, 옵션 15만 달러를 포함해 총액 70만 달러를 받았다. 보장 금액은 1년 사이 55만 달러에서 160만 달러로 2.9배나 치솟았다. 다시 말하면 KIA가 에이스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해준 셈이다. 올해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데 있어 타자 쪽에서 김도영의 공이 가장 컸다면, 투수 쪽에서는 단연 네일이었다. 네일은 올해 26경기에 선발 등판, 149.1이닝을 던져 12승5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 리그 최고 투수로 군림했다. KIA 제임스 네일. KIA 타이거즈 제공 불행히도 지난 8월24일 경기 중 타구에 맞아 턱관절 골절 부상으로 쓰러져 복귀가 불가능해보였으나, 기적같은 회복력으로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에 복귀해 2경기에서 1승, 평균자책점 2.53을 올리고 KIA의 우승에 기여했다. 당초 네일은 2024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MLB) 복수의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KIA는 끝내 네일과 재계약에 성공하며 마운드 높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KIA는 네일과 재계약을 끌어내며 전력 누수를 막았다. 네일은 구단을 통해 “긴 시간 재활하는 동안 구단의 지원과 팬들의 성원으로 힘을 낼 수 있었다”며 “내년에도 KIA와 동행하게 돼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비시즌 기간 몸을 잘 만들어서 내년에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KIA 제임스 네일. KIA 타이거즈 제공
주간경향(총 25 건 검색)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36) 조각난 꿈에 대한 애도와 위로(2024. 11. 22 15:30)
- 2024. 11. 22 15:30 문화/과학
- 연극 <붉은 웃음>·<전시의 공무원>, 뮤지컬 <홀리 이노센트> 등 연극 <붉은 웃음>의 120년 시공간이 융합된 무대 위에서 1인다역 중인 윤성원 배우. 더줌아트센터 ‘청운(靑雲)’은 ‘이상(理想)’을 의미한다. ‘청운의 꿈’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기의 보석 같은 가능성이다. 누구나 한번은 큰 포부를 품고 나아간다. 그러나 한국 청년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청년 세대(19∼34세)의 5%인 54만여명이 고립·은둔자(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연구, 2021)에 속한다. 1인 가구 급증과 만연한 전세사기, 주식과 비트코인 급등락 등 불안정한 경제·사회 속 장기화한 고용불안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들 중 ‘청년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매년 늘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청운의 꿈’을 꾸어야 할 청년세대가 도대체 왜 고독사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창작 초연 연극 <붉은 웃음>(김정 연출·하수민 재창작·남경식 무대)은 2024년 11월 은둔·고립 청년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시작한다. <붉은 웃음>은 전쟁의 참상을 세밀하게 느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1871~1919)의 소설을 2024년 한국에 빗대어 재창작한 1인극이다. 흙이 가득 채워진, 원초적이고 회화적인 무대는 두 개의 시공간으로 나뉜다. 왼쪽은 2024년 한국 청년의 고독사 현장으로 검은 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다. 오른쪽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고 생환한 러시아 장교의 고독사 현장으로 백지 원고가 쌓여 있다. 12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배우 윤성원은 과거와 현재 청년들의 심연을 여러 캐릭터로 대변한다. 극단적 개인화의 늪과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의 광기가 폭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감각적으로 파고든다. 마치 그 시대, 그 캐릭터에 접신한 듯 냉철하고 광적이다. 새로운 양식의 예술적 씻김 2024년 유품 관리사로 분한 윤성원 배우는 흙더미 깊숙이 파묻힌 고인의 유품을 발굴하며 그의 고독과 공포를 되새긴다. 무대 뒤 가득 ‘내가 없어지면 누가 날 찾을까, 지금 보고 싶은 사람 없음, 먹고 싶은 것 던킨도너츠’ 등 고독사한 청년들의 파편이 여러 필체로 영사된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버스 타고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라는 속내가 드러나자 관객들은 비애를 삼킨다. 러·일전쟁에서 아군끼리 싸워 두 다리를 잃고 말라 죽어간 장교의 동생으로 분한 윤성원 배우는 잉크 없는 펜으로 수십장 기록한 형의 ‘백지 절규’를 흡입한다. 각 시공간의 폭력적 현실에 자아를 놓아버린 청년들의 심연은 윤성원 배우를 매개로 강렬한 신체 움직임과 발성을 통해 관객들의 심연과 맞닿는다. 흙더미를 파헤치며 구르거나 박차고 뛰어오르는 현대무용처럼, 혹은 발작처럼 반복되는 움직임은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속에서 전환기를 맞는다. 관객과 상호작용을 통해 매회 조금씩 다르게 재해석되는 (이승에 맺힌 원한을 씻고 극락에 가도록 이끄는) ‘예술적 씻김’이다. 연극 <전시의 공무원>에서 본분에 충실하려는 말단공무원 갑순(김려은 분)과 갑돌(김시유 분). ㈜파인플레이 연극 <전시의 공무원>(오세혁 작·변영진 연출·박성민 무대)에도 특별한 씻김이 등장한다. 여기서 애도하는 대상은 국가가 학살한 민간인과 위선 속에서 꿈을 상실한 주인공이다. 해방된 한반도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갑돌(김시유 분)과 갑순(김려은 분)은 일제강점기 공무원으로 살며 회한만 남긴 부모 세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대통령 포함 고위 공직자들이 탄 피란 열차에 탑승해 위선으로 가득한 그들의 지시에 따르던 갑돌과 갑순은 보도연맹 명단에 있는 농부들을 학살하라는 지시에 고민하던 중 그들의 무고함을 깨닫는다. 성실하고 순박한 갑순과 갑돌은 장애가 있는 양민들을 부축하고 서로 부족한 것을 메꾸며 온기 가득한 피란 행렬을 이끌던 중 연합군의 경북 칠곡 다리 폭파 작전에 휩쓸린다. 민간인들이 모두 연합군과 국군에게 학살되는 현장을 목도해야 했던 갑순과 갑돌은 이들을 대신하는 무명천 인형들의 조각난 신체를 이어붙이며 통곡의 씻김을 수행한다. 기밀문서를 보관해 위정자의 기만을 폭로하려 한 갑순에게 위에서 시키는 대로 총구를 겨눈 갑돌의 딜레마도 잠깐, 결국 모두 죽음에 이른다. 출연진들이 관객과 무릎을 맞대며 격렬한 신체 연극으로 풀어낸 비애의 마당극은 모든 악기가 총동원되는 장엄한 한판으로 애도의 퍼포먼스를 마무리한다. 스크린으로 확장된 청춘의 비애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최양현 작·영상, 이태린 연출)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전북 남원 서도리 출신 스무 살 소년의 꿈이 어떻게 상실되는지 ‘극중극’으로 담아낸다. 첫 장면은 2023년 북 토크 현장이다. 노년의 최영우가 남긴 육필 원고를 다듬어 출간한 현재의 작가이며 최영우 외손자 이경현(김세환 분)이 최영우(김세환 1인2역)의 파란만장한 삶을 전하며 본격적인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공간으로 전환된다. 사방에 라이브 캠을 들고 있는 카메라맨이 돌아다니고 배우들과 건물 및 인체 모형을 섬세하게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와 무대 위 등장인물, 자료화면이 스크린에 실시간 상연된다. 일반 연극과 달리 등장인물의 감정이 시시각각 클로즈업돼 80여년 전 인도네시아 포로수용소와 재판정, 태평양 함선이 생동감 있게 와닿는다. 일본 패망과 함께 일본인으로 취급돼 전범 재판을 받고 인도네시아 형무소에 수감된 청년 최영우의 삶은 고향을 떠난 지 5년 만에 피골이 상접해 귀향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창작 초연 뮤지컬 <홀리 이노센트>(천유정·한재림 대본, 천유정 연출, 이나오 작곡, 김장연 영상)는 길버트 아데어의 동명 소설 원작 영화 <몽상가들>(2005)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1968년 프랑스 68혁명을 배경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영화관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영화 마니아이자 자유로운 영혼인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 미국 유학생 매튜의 자아 찾기 탐색전이 시작이다. 혁명의 물결 속 폭력과 학살을 목도하며 침잠한 그들은 서로를 탐닉하고 방탕에 빠지지만 결국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것을 택한다. 일련의 갈등과 화합, 성찰의 미장센(화면구성)은 무대 전체를 감싼 하얀색 커튼에 영사되는, 시네필(영화광)이 사랑하는 영화들이다. 창작진들은 원작 소설에 언급된 영화의 편집 영상을 이용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청년의 방황을 그렸다. 마지막 바리케이드에서 부조리에 저항하는 시위 중 스러진 매튜가 미국인 유학생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원작 소설, 영화와 다른 뮤지컬 창작진들의 재해석이기도 하다. <붉은 웃음>의 ‘붉은 웃음’은 광기와 허상이 점철된 기괴함이다. 죽은 자 위의 산 자, 산 자 위의 죽은 자가 뒤엉켜 공존하는 인간사에서 <전시의 공무원> 갑순과 갑돌이 반복해서 되뇌며 울부짖는 “밟지 마세요. 아버지가 밟히고 있네. 죽어서도 밟히고 있네”에 담긴 염원은 무엇일까. 나의 선의와 작은 꿈에 대한 바람을 알아달라는 아우성은 아닐까.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외치는 <홀리 이노센트>의 청년들과 꿈에서도 그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 시간을 뇌리에 새기며 사는 조선인 최영우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희망은 오로지 꿈을 향한 자유가 보장된 삶이다. 2024년 11월 현재 한국은 청년들의 소박한 바람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청운의 꿈’에는 짝꿍처럼 따라붙는 요건이 있다. 바로 ‘자중자애(自重自愛)’다. 자기의 몸을 소중히 해 스스로 아끼고 가꾼다는 의미다. <붉은 웃음>·<전시의 공무원>·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오는 12월 1일, <홀리 이노센트>는 12월 8일까지 상연한다.
-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
- [이기환의 Hi-story](100)‘七’ 자 기왓조각에 ‘묻지마’ 사적지정 왜? 2000년 전쟁터니까(2023. 09. 08 11:24)
- 2023. 09. 08 11:24 문화/과학
- 2000년 경기 파주 칠중성의 지표조사에서 출토된 ‘칠(七)’ 자 명문 기왓조각. 등에 등장하는 칠중성의 ‘칠(七)’ 자를 가리키는 증거로 보았다. 이 덕분에 칠중성은 본격적인 발굴조사 없이 2002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 한백문화재연구원 제공 겨우 ‘칠(七)’이라고 찍힌 명문 기왓조각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2002년 1월) 산성이 있습니다. 경기 파주 적성 중성산(해발 148m)에 조성된 칠중성입니다. 변변한 발굴조사 한번 없었습니다. 1982~2000년 사이 5차례에 걸쳐 지표 및 정밀지표조사를 벌이는 데 그쳤습니다. 다만 2000년 정밀지표조사 때 성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 중 ‘칠(七)’ 자 명문 기왓조각이 나온 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데 문화재위원회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곧바로 사적으로 지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칠’ 자 명문 기왓조각 1점 나왔다고 ‘묻지마 지정’이라는 얘기인가요. 경솔한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수백·수천 년된 삶의 흔적을 파헤치는 ‘발굴조사’는 원칙적으로 ‘유적 파괴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유적의 성격이 파악되면 더 이상의 발굴을 자제하는 게 옳은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칠(七)’ 자 명문 기와의 수습으로 칠중성의 전모를 밝혀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산성의 나라’지만 사실 ‘한국=산성의 나라’입니다. 한반도에서 확인된 산성만 1200곳 정도로 추산되거든요. 산성이 대유행했던 시기가 삼국시대인 4~7세기였는데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 등장하는 산성의 절대다수가 그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중 위치와 역사적인 맥락이 일관성 있게 파악된 산성이 몇 안 되는데요. 그중 하나가 칠중성입니다. “638년(선덕여왕 7) 고구려가 칠중성을 침공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시작으로 고구려-신라, 신라-당나라 간의 전투 기록이 이어집니다. ‘칠중성’으로 못 박은 기록만 그렇고요. 백제 창업주 온조왕(기원전 18~기원후 28)의 일화가 있습니다. “기원전 1년 온조가 칠중하에서 말갈의 추장을 잡아~나머지 적들을 모두 구덩이에 묻었다”(<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칠중하’는 칠중성 앞을 흐르는 임진강의 별칭입니다. 수풀이 우거진 칠중성(사적). 칠중성 가는 길도 정비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발굴조사와 함께 정비복원이 필요하다. / 이기환 제공 칠중성은 5세기 후반까지는 백제의 영역이었는데요. 475년 고구려의 한성 함락 이후 고구려 땅이 됐다가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553) 6세기 후반에는 신라의 영역이 됐습니다. “칠중성을 사수하라” 칠중성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국제 화약고가 됩니다. 사실 칠중성은 해발 148m에 불과한 중성산에 조성됐습니다. 산이라고 하기에도 남세스럽죠. 하지만 절대 ‘띄엄띄엄’ 볼 수 없습니다. 칠중성 정상에 서면 구불구불한 임진강 북쪽으로 황해도가 손에 잡힙니다. 뒤에는 감악산(해발 675m)이 받쳐줍니다. 설마리 계곡을 따라가면 의정부와 서울이 지호지간(指呼之間)입니다.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뜻입니다. <삼국사기>의 638년 신라-고구려 간 접전은 ‘칠중성’ 이름 석 자를 두고 벌어진 첫 번째 전투입니다. “638년(선덕여왕 7) 10월 고구려군이 칠중성을 침범하자 백성이 놀라고 동요해 산골짜기로 피란했다”는 겁니다. 선덕여왕은 대장군 알천(생몰년 미상)을 급파합니다. 알천은 선덕여왕의 기대에 부응합니다. “11월 알천이 칠중성 밖에서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알천이 누구입니까. 진덕여왕의 사후인 654년 ‘섭정(대리청정)’을 위임받았지만, 김춘추(태종무열왕·재임 654~661)에게 양보한 핵심인사입니다. 선덕여왕은 그런 거물을 파견할 만큼 고구려와의 국경에 있는 칠중성 방어에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였던 겁니다. ‘필부의 순국’ 22년 뒤인 660년 7월 한반도가 격변의 시기를 겪게 됩니다. 백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죠. 백제 부흥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신라는 백제부흥군과 맞서느라 고구려와의 국경지역인 칠중성 방어에 소홀해집니다. 이를 걱정한 태종무열왕은 ‘충성스럽고 용맹한’ 필부를 현령으로 임명합니다. 과연 고구려가 660년 11월 1일 칠중성 공략에 나섭니다. “고구려군이 칠중성에 쳐들어왔다. 필부가 20일이나 성을 사수했다. 고구려 장수가 포기하고 퇴각하려 했다. 이때 반역자 대사마 비삽이 은밀히 고구려군에 사람을 보내 ‘성안에 양식이 떨어졌으니 치라’고 알렸다.”(<삼국사기> ‘열전·필부’조) 칠중성 남쪽에는 감악산이 있다. 감악산 정상에는 진흥왕 순수비로 추정되는 비석이 서 있다. / 이기환 제공 이 사실을 알아차린 필부는 비삽의 목을 친 뒤 휘하 장수들과 함께 군사들을 독려합니다. 신라군의 약점을 알게 된 고구려군은 바람을 이용한 화공(火功)으로 핍박했습니다. 신라군은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필부는 빗발치는 고구려군의 화살에 맞아 몸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릴 때까지 싸우다 죽었다. 왕(태종무열왕)이 필부의 전사 소식을 듣고 구슬피 울었다.”(<삼국사기> ‘열전·필부’조) ‘보급품 보내라고 아우성친 당군’ 칠중성을 획득한 고구려지만 군대를 오래 주둔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가 임진강~한강 사이를 안정적으로 차지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 마당에 칠중성을 고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임진강 남쪽에 자리 잡은 칠중성은 배수의 진을 친 셈이 되겠죠. 고구려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661년 12월 칠중성 앞을 흐르는 칠중하가 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 또한 드라마 한편 거리가 너끈합니다. 평양성을 공격하던 당나라 소정방(592~667)이 “군량미는 왜 보내지 않는 거냐”고 아우성칩니다. 칠중성에는 삼국시대 성벽의 흔적은 물론 한국전쟁 이후 설치된 군 시설이 중첩돼 있다. / 이기환·한백문화재연구원 제공 문무왕은 진퇴양난에 빠집니다. 신료들은 “적진(고구려) 한복판까지 군량미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때 67세의 노장 김유신(595~673)이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손을 들고 나섭니다. 김유신은 9명의 장군과 군사를 이끌고 평양으로 떠납니다. 당나라군에게 보낼 군량미는 쌀 4000석과 조 2만2000석이었습니다. 은 5700푼, ‘가늘게 짠 베(細布)’ 30필, 머리카락(30냥), 우황 19냥 등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자그마치 수레 2000대에 실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신라의 국고를 탈탈 털어간 겁니다. 김유신의 보급부대는 이듬해(662) 1월 23일 칠중하에 도달했습니다. 칠중하를 건너면 명실상부한 고구려 땅이었죠. 모두 두려워 배에 오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김유신이 “만약 죽기를 두려워한다면 어찌 여기에 왔느냐”고 독려하며 먼저 배를 탔습니다. 그제야 여러 장수와 병졸들이 쫓아왔습니다. 고구려 땅에 진입한 김유신군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했습니다. 강추위에 소와 말은 물론 군사들까지 얼어 죽어나갔습니다. 도중에 고구려군을 만나 악전고투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평양 인근에 도착한 신라군은 당나라군에게 보급품을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662년 2월 6일). 신라를 ‘뺑뺑이 돌린’ 당나라 그런데 당나라군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은 “군량미를 받은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곧바로 철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지난 1951년 4월 22일 중국군이 임진강을 건너 인해전술로 캐슬고지(칠중성)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 중국 해방군화보사 , 2005, 눈빛출판사 당나라군의 철군 소식에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온 김유신군도 기겁을 하고 군사를 돌렸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임진강에 닿은 신라군은 표하(칠중하~호로고루 쪽 호로하)를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대군이 추격해왔습니다. 이때 김유신은 군사를 돌려 고구려 장수 아달혜를 생포하고 고구려군 1만명의 목을 벴답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칠중성의 성격이 바뀝니다. “675년(문무왕15) (당나라) 유인궤가 우리 군사를 칠중성에서 깨뜨리고 돌아갔다. …당군이 거란·말갈 군사와 함께 와서 칠중성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삼국사기> ‘신라본기·문무왕’조) 칠중성이 신라와 당나라가 뺏고 빼앗는 치열한 전쟁터로 변한 겁니다. 인해전술의 무대가 된 칠중성 유인궤의 당나라군이 쳐들어온 지 정확히 1276년이 흐른 1951년 4월이었습니다. 칠중성은 남북 분단과 동서 냉전의 이른바 ‘칼날의 끝’이 되어 또 한 번 역사의 전면에 나옵니다. 이번엔 외국군대끼리, 즉 영국군과 중국군이 혈투를 벌이죠. 한국전쟁 때 칠중성을 지킨 부대는 영연방 29여단 휘하의 글로스터 대대였는데요. 그들은 칠중성에 ‘캐슬고지’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전투에 참전했던 당시 영국군 대위 안소니 파라 호커리(1924~2006)의 회고를 들어볼까요. 4월 22일 밤 10시 중국군 3개 사단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총을 쏘면서 임진강(칠중하)을 도하하기 시작했답니다. 설마리 계곡에 새겨진 영국군 참전비.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캐슬고지(칠중성)가 6시간 만에 함락됐지만, 영국군은 설마리 계곡 등에서 중국군의 공세를 3일이나 저지했다. 이로써 중국군의 서울 재점령을 막아낼 수 있었다. / 이기환 제공 “습격자들이 등장했다. 연카키색 군복에 허름한 면 모자와 고무창 댄 신발 차림으로, 가슴과 등에는 탄띠를 교차해서 맨 수백명의 중공군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영국군이 발포를 시작했지만, 온 들판과 고지 기슭이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이 불어대는 뿔피리와 꽹과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고함 같았습니다. 인해전술이었습니다. 고지는 불과 6시간 만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영국군이 ‘낫으로 풀을 베듯’ 기관총을 쏘아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후퇴한 영국군은 감악산 설마리 계곡, 즉 서울행 계곡 쪽으로 빠졌습니다. 중국군은 순식간에 계곡의 양쪽을 점령한 뒤 계곡을 따라가는 영국군을 공격했습니다. 중국은 이 전투를 대단한 전과로 여겼습니다. 아편전쟁(제1차 1840~1842·제2차 1856~1860) 때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당한 치욕을 갚은 셈이니까요. “중국군의 서울 재점령을 막았다” 3일간의 격전 끝에 글로스터 부대 800여명 중 3분의 1 정도의 병력이 손실을 입었고요. 40여명만이 무사 귀환했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포로가 됐습니다. 전투 결과로만 보면 영국군의 궤멸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스터 부대원들은 영웅이 됐습니다. 7만여 중국군의 제5차 공세를 3일이나 지연시켜 서울의 재점령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글로스터 부대가 속한 영국군 29여단에는 벨기에-룩셈부르크 병사들도 배속돼 있었는데요. 그들 역시 중국군의 공세에 고립된 뒤 가까스로 전곡으로 탈출했습니다. 캐슬고지(칠중성)는 이렇게 4개국 젊은이들의 피가 서린 곳입니다. 제임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1892 ~1992)은 “현대전에 있어서 단위 부대의 용기를 과시한 가장 뛰어난 귀감”이라고 극찬했답니다. 특히 영국인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전투였죠. 얼마 전 끝난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 200여명이 설마리 영국군 추모공원을 찾아왔습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표단이 경기 파주 적성 설마리 영국군 추모공원에서 추모비에 헌화 후 추모기념물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해마다 4월이면 캐슬고지와 설마리 전투에 참전한 글로스터 부대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리고 있고요. 2001년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1926~2022·재위 1952~2022)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요코 공작)가 추모공원을 찾아 참배하기도 했죠. 특히 당시 포로가 된 안소니 파라 호커리 대위는 7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는데요. 호커리는 전쟁 후 <대검의 칼날(The edge of the sword)>이라는 회고록(번역판은 <한국인만 몰랐던 파란 아리랑>·한국언론인협회 간)을 펴냈습니다. ‘대검의 칼날’은 바로 캐슬고지(칠중성)와 그곳에서 불가능한 싸움을 벌였던 영국군의 운명을 표현한 건데요. 아닌 게 아니라 칠중성은 2000년 전부터 백제-말갈-고구려-신라-당나라-영국-중국 젊은이들의 피가 서린 ‘대검의 칼날’입니다. 지난 9월 8일 칠중성의 정비복원계획을 준비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렸는데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2000년 가까이 국제전쟁터였던 칠중성의 성격과 가치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정비복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삼국시대 유구는 물론 한국전쟁 때 영국군의 자취도 남아 있고, 또 이후 군부대가 설치한 참호와 교통로 등이 중첩돼 있는데요. 이름 그대로 일곱 겹의 성인 칠중성이 됐네요. 이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기환의 Hi-story
- [문화캘린더]한국 구상조각 두 거장을 만나다(2023. 06. 23 11:17)
- 2023. 06. 23 11:17 문화/과학
- ㆍ전시 : 민복진과 전뢰진 ▲전시 | 민복진과 전뢰진 일시 6월 20일~2024년 1월 21일 장소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관람료 5000원 한국 구상조각의 거장들이 한 전시에서 만났다. 한국 현대조각 1세대이기도 한 민복진(1927~2016)과 전뢰진(1929~ )은 해방 이후 현대화를 모색하던 국내 조각계에 수준 높은 인체조각을 선보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동시대에 활동한 두 사람은 홍대 미술학부 조각과 졸업 동기이자 평생의 친구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작품만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이번 <민복진과 전뢰진> 전시가 처음이다.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민복진은 1952년 홍대 회화과에 입학했다가 1년 뒤 조각과로 전과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 가족,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제로 다뤘다. 이를 추상과 구상(현실세계, 특히 인간 형태의 표현에 주목하는 미술의 한 형태)을 절충한 독특한 형태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대표작인 ‘얼굴’, ‘모자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모두 인간, 가족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전뢰진은 1949년 서울대 미술학부에 입학했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뒤늦게 조각에 관심을 가져 홍대 조각과로 편입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교직과 작업을 병행했던 전뢰진은 사람, 가족, 사랑 등을 주제로 서정성 짙고 동화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전뢰진의 대표작은 ‘추석’, ‘항아리 가족’ 등이다. 두 작가 모두 평생 사람, 가족, 화합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이끄는 전시다. 031-8082-4255 ▲연극 | 라스트 세션 일시 7월 8일~9월 10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1관 관람료 R석 6만6000원, S석 4만4000원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 S 루이스의 대담을 연극으로 만나볼 수 있다. 위대한 학자들의 대담은 신과 종교,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등을 넘나든다. 02-6925-0419 ▲국악 | 무풍-전북 일시 7월 15일 장소 춘향문화예술회관 관람료 R석 3만원, S석 2만원, A석 1만원 옛 여성농악단을 복원 계승한 작품이다. 춤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춤이 보이는 공연을 목표로 한다. 소리꾼 장사익이 참여해 춤과 함께 어우러질 전망이다. 1544-8363 ▲콘서트 | 2023 사운드베리 페스타 일시 7월 22~23일 장소 KBS아레나 일대 관람료 1일권 9만9000원, 2일권 13만2000원 무더운 여름날, 청량한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찾아온다. 10CM, 로이킴, 이무진, 카더가든, 박재정, 선우정아, 적재, 스텔라장 등 국내 정상급 가수가 참여한다. 1544-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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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환의 Hi-story](69)불화 조각내 훔친 범인은…미군 사진에 힌트 있었다(2023. 02. 03 11:25)
- 2023. 02. 03 11:25 문화/과학
- 1954년 5~6월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가 찍은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왼쪽)과 같은해 10~11월 미 해병 중위인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찍은 극락보전 내부 모습. 팬처의 사진에는 분명히 보이는 아미타여래삼존불 뒤의 ‘영산회상도’가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흥사를 비롯한 설악산과 속초지역은 미 군정 관할 아래 1954년 11월까지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이곳을 관할한 미군 병사가 뜯어간 것이 분명하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2006년 3월이었습니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 아시아미술실에 부임한 김현정 큐레이터는 소장품 중 한국 유물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중 눈에 밟힌 불화가 한 점 있었습니다. ‘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라 기록된 불화였습니다.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는 없고, 흑백폴라로이드 사진만 달랑 목록에 올라 있는 이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부설 수장고까지 샅샅이 뒤지던 중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던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이역만리 미술관 수장고에 놓여 있던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조, 정성왕후, 사도세자를 기린 불화 ‘영산회상도’는 영산, 즉 고대 인도의 영축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긴급 보존처리 후 불화를 살펴보니 끔찍했습니다. 예리한 칼로 그어진 채 무려 6개로 조각나 있었습니다. 김현정 큐레이터는 우선 ‘영산회상도’에 적힌 화기(畵記·그림의 내력 등을 쓴 기록)의 감정을 연구자(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의미심장한 내용이 읽혔습니다. ‘건륭 20년(1755·영조 31)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산해회(靈山海會)를 마치고 봉안한다’는 것과 ‘주상전하 이씨(영조·재위 1724~1776)와 왕비전하 서씨(정성왕후·1692~1757), 세자저하 이씨(사도세자·1735~1762)의 만수·천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하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불화가 왜 산산조각이 난 채, 그것도 미국의 미술관에까지 흘러 들어갔을까요. LA카운티미술관이 이 ‘영산회상도’를 소장하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답니다. 뉴햄프셔 홉킨튼 지역에서 살던 매리 S. 프렌치라는 인물이 대리인을 통해 “아들의 집 다락방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 같은 그림을 발견했다”며 구입을 의뢰했는데요. 미술관 측은 이때 이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 6점(1798년 작)까지 사들였습니다. 미술관 측은 두 유물의 ‘화기’ 등을 통해 원래 소장처가 ‘설악산 신흥사’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흥사 측에 ‘원소장처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두 번(1998·1999)이나 보냈습니다. 신흥사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56년 새로 제작된 불화를 50년 이상 극락보전에 걸어놓았기에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겁니다. 팬처와 락웰의 사진에서는 신흥사 명부전에 붙어 있던 ‘시왕도’의 도난 흔적도 확인됐다. 팬처의 사진(1954년 5~6월)에는 보였던 ‘시왕도’가 락웰의 사진(1954년 10~11월)에는 없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를 뜯어간 것이 틀림없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미국 현지에서의 특별한 복원 그래도 ‘시왕도’는 미술관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었는데요. ‘영산회상도’는 그나마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부설수장고 한편에 방치되다시피 한 겁니다. 뒤늦게 김현정 큐레이터의 눈에 든 ‘영산회상도’는 비로소 환골탈태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 불화 중 가장 크고(가로 406.4㎝·세로 335.2㎝) 화격이 높은 작품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박물관 차원에서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구상했습니다. 마침내 박지선 용인대 교수팀(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을 초청해 현지 복원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펼쳐나갔습니다. 복원팀은 한국에서 1t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장비를 가져갔습니다.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현지 복원은 박물관 전시장이었던 도자실에 마련된 공개 작업장에서 진행했습니다. 복원팀은 영하 10도 정도의 강추위 속에서 쑨 지 10년 이상 묵힌 풀을 썼고, 비단은 수백년 된 것처럼 광선을 쏘이고 염색해 사용했습니다. 오염 제거에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 드러난 오염만 제거할 뿐 세월의 흔적까지 지우면 안 됐기 때문입니다. 7겹이나 되는 배접지(비단 위 그림을 고정하기 위해 뒷면에 덧대는 종이)를 제거하고 새 배접지로 다시 7겹 붙이는 작업도 두 달 이상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복원팀이 신경 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미 밝혔듯이 누군가 그림을 가로로 크게 두 번 칼질해 세 조각 낸 다음 윗부분만 다시 세로로 세 번 베어냈죠.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잘라놓았습니다. 누군가 그 커다란 불화를 ‘돌돌말이’로 가져갈 생각만 했던 겁니다. 박지선 교수는 “여섯 조각으로 남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와 시련만큼은 지우고 싶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최초로 기획한 불화 복원공개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됐습니다. 2011년 12월 온전한 ‘영산회상도’가 공개됐습니다. 각종 불교 행사가 열렸고,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마냥 박수 칠 입장이 아니었던 불교계 한국불교계 입장에서 마냥 박수만 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명백한 ‘불법 반출 문화재’입니다. 무엇보다 불화는 예술품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예경의 대상인 ‘성보(聖寶)’라 할 수 있습니다. 여느 문화유산보다 더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라졌을까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에 편입됩니다.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되죠.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 민정으로 이양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때 비로소 복귀한 신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합니다. 극락보전의 ‘영산회상도’와 명부전의 ‘시왕도’ 등 사찰의 성보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용의자는 이곳에 주둔한 미군이나 한국군 중 한 명이겠네요. 그러나 한국군은 분명 아닐 겁니다. 서양에서 기독교 성화를 훼손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불화에 칼자국을 낼 강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뜯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으로 반출되지 않았습니까. 필시 미군 중 누군가가 뜯어갔겠죠. 만약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반환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미국 연방 도난품법은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고 규정했거든요. 1954년 사라진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44년이 지난 1998년 예리한 칼로 6조각 난 채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 팔렸다. 그때 ‘시왕도’ 6점도 함께 팔렸다. / 조계종 제공 그 때문에 LA카운티미술관이 1998 ·1999년 두 차례나 유물 구입과 관련해 신흥사에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신흥사 측에서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던 것도 ‘귀책사유’가 됩니다. 무엇보다 LA카운티미술관이 아낌없는 열정으로 그림의 제 모습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선뜻 “내가 주인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는 불법 반출품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참전 미군의 사진에 담긴 비밀 사실 비장의 카드는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 개관한 속초시립박물관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통신장교(폴 뷰포드 팬처)가 1953년 말에서 1954년 11월 사이 찍은 속초 일대의 사진 271점을 기증했는데요. 그중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극락보전의 불상(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뒷벽에 1755년 제작된 ‘영산회상도’가 떡하니 걸려 있었거든요. 그뿐이 아니고요. 명부전을 찍은 사진에서도 ‘시왕도’가 3점 남아 있었습니다. 팬처는 사진을 기증하면서 “1954년 5~6월에 신흥사를 방문했다”고 밝혔는데요. 속초지역의 미 군정이 그해(1954) 11월 끝난 뒤 스님들이 사찰로 복귀했다고 했죠. 그렇다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1954년 5~11월 사이에 반출됐다는 이야기가 되죠. 이렇게 팬처의 사진이 ‘미군=밀반출 자’임을 사실상 입증하는 자료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LA카운티미술관의 공을 무시하고 반환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저하던 그 와중에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1988년 대구 동화사 염불암에서 도난당한 19세기 불화(‘지장시왕도’) 1점이 다름 아닌 LA카운티미술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지장시왕도’는 도난신고된 유물이어서 논란의 여지 없이 반환대상이 됐습니다. 2015년 1월 조계종단과 신흥사 측은 동화사 불화건을 거론하면서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건도 조심스레 포함시켰습니다. 미군 통신장교인 폴 뷰포드 팬처의 사진 등을 근거로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요. 2017년 2월에는 공무원, 교사, 주부, 불자 등이 주축이 된 ‘속초시 문화재제자리찾기 위원회’가 창립됐습니다. 당초 우려와 달리 LA카운티미술관 측도 예상 밖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니만큼 공공 박물관의 명예를 중요시했던 겁니다. 또 한 장의 결정적인 사진 2019년 ‘결정적인 한 방’이 터졌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미 해병 중위로 속초에서 근무했던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 등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했는데요. 만약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의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조건 없이 반환해야 했다. 미국 연방법이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도난품법)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그 속에는 팬처가 촬영한 극락보전 사진에서는 보였던 ‘영산회상도’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역시 팬처의 사진에 남아 있었던 명부전 속 ‘시왕도’도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락웰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1954년 10~11월 사이”라고 밝혔습니다. 1954년 5~6월 팬처의 사진에는 보였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같은해 10~11월 락웰의 사진에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연히 미군이 1954년 7~11월 사이에 뜯어갔다는 이야기죠. 이 대목에서 첨언할 것은 있습니다. 신흥사 ‘시왕도’는 염라대왕 등 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각각 그린 작품인데요. LA카운티미술관이 그중 6점을 소장하고 있었고요. 나머지 4점도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6점을 한꺼번에 뜯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1998년 LA카운티미술관에 팔린 거고요. 어쨌든 불교계는 ‘영산회상도’와 함께 이 ‘시왕도’ 6점의 환수까지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4점의 환수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영희 교수의 젊을 적 ‘자랑 한마디’ 락웰은 사진뿐 아니라 신흥사에서 뜯어간 경판 1점(17세기 제작)까지 기증했습니다. ‘제반문’(諸般文·사찰에서 수행한 일상의 천도 의식과 상용의례를 기록한 것) 경판 중 87~88장에 해당합니다. 이 경판과 관련해서는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고 리영희 교수(1929~2010)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1996년 12월 4일 법보신문에 흥미로운 회고담(‘내가 젊었을 적 잘한 한가지’)을 털어놓았는데요. “(1951년 겨울) 11사단 9연대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신흥사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 돌과 도끼, 삽으로 빠갠 불경 목판 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 (장교였던) 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리영희 교수는 그때 불경판을 지킨 공로로 2000년 제4회 만해대상 ‘실천상’을 받았습니다. 락웰의 기증 사진에도 1954년 가을 신흥사에서 미군들이 불을 피우는 장면이 보입니다. 락웰은 이 무렵 신흥사 경판 1점을 전리품 삼아 들고 갔을 겁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 군정 치하로 편입된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된다. 미 군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진다. 민정 이양 후 신흥사로 복귀한 스님들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 성보 문화유산이 사라진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환지본처 본지풍광 각설하고 팬처와 락웰의 사진과 함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6점) 환수 협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이 미군에 의해 불법 반출된 전시 약탈문화재가 분명해진 만큼 반환은 시간문제가 됐습니다. 드디어 2020년 7월 29일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환수됐습니다. 여섯 조각으로 무참히 잘린 채 밀반출된 ‘성보 문화유산’이 66년 만에 귀환한 겁니다. 국내 보존상태 등의 점검이 끝난 8월 28일에는 성대한 이운식과 함께 본향인 신흥사로 돌아왔는데요. 새삼 불교에서 말하는 ‘환지본처 본지풍광(還至本處 本地風光)’의 구절이 떠오르네요. ‘환지본처’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본지풍광’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일컫는다죠. ‘영산회상도’의 환수야말로 ‘환지본처 본지풍광’의 정수라 할 수 있겠네요.
- 이기환의 Hi-story
레이디경향(총 10 건 검색)
- 뇌졸중 예방 위해 매일 아스피린 조각을 먹고 있다면…
- 2023. 08. 10 06:52 건강
- 저용량 아스피린은 노인의 뇌졸중을 막지 못한다는 새 연구가 발표됐다. 얼마 전 시니어 건강 기사 관련 취재 중 자신의 건강 비법으로 “매일 아스피린 반쪽씩 먹는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과거 일부 의료진이 노인들의 뇌졸중과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 복용을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다고 뇌졸중을 막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스피린 먹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호주 모나시대학교 존 믹네일 교수는 호주와 미국 출신 70세 이상의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 심장마비 병력이 없는 건강한 성인 1만9114명을 대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실험을 한 후 데이터를 작성했습니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9525명에게 매일 100㎎의 아스피린을 복용하게 하고 9589명에게는 위약을 복용하도록 했습니다. 이 연구는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 사용과 뇌출혈 사이의 연관성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평균 4.7년 동안 참가자들을 추적했습니다. 연구 결과 오히려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그룹에 비해 출혈이 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출혈성 뇌졸중과 뇌내출혈의 다른 원인의 조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아스피린의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성분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또한 아스피린은 기존에 허혈성 뇌졸중의 발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기 전에 의료 제공자에게 조언을 구할 것을 권장합니다. 아스피린은 답이 아니었다 믹네일 교수는 아스피린을 질병을 예방하는 보충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예방 건강 태스크 포스(USPSTF)도 지난해 70세 이상 사람들에게 뇌졸중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먹고 있다면 그것을 그만두라는 지침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아스피린은 혈류에서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여 혈전 형성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노인층 에게 심장마비와 뇌졸중 방지약으로 사용됐습니다. 이것이 혈전이 생기는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노인들은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고 혈관이 파열되기 쉬워 낙상으로 인한 외상 시 뇌출혈의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 호텔 안다즈 조각보 레스토랑, 1인 가격으로 2인 코스요리 제공
- 2023. 05. 23 10:10 화제
-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은 1인 가격으로 2인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호텔내 조각보 레스토랑이 선보이는 ‘조각보 코스 1+1 프로모션’으로, 2인이 코스 메뉴를 이용할 경우 1인 무료 혜택을 제공한다. 6월 30일까지 실시되며 주중에 한한다. 최대 4인(2인 무료)까지 적용된다. 조각보 코스에는 미트앤코 스테이크 하우스와 씨푸드 그릴의 시그니처 요리가 포함된다. 스테이크 하우스의 런치코스는 4코스로 전채요리, 물냉이 감자수프, 참숯 그릴에 구운 메인요리,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다. 씨푸드 그릴의 런치코스도 4코스이다. 토마토 부라타 샐러드, 문어구이, 해산물 탈리아텔레, 디저트로 이뤄져 있다. 두 레스토랑의 디너는 5가지 코스로 준비된다. 조각보 레스토랑 코스 요리
- [화보] ‘윰블리’ 정유미, 이번엔 조각상으로
- 2023. 03. 30 10:07 연예
-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가 공개됐다.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에 따르면 이번 화보는 ‘우아한 조각상(Modern Statue)’을 콘셉트로 진행됐다. 조각상이라는 정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콘셉트였지만 정유미는 특유의 포토제닉함과 우아함으로 화보를 완성했다.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 배우 정유미가 패션브랜드 발렌티노와 함께한 화보 정유미가 선보인 스타일링은 2023년 봄·여름 ‘언박싱 발렌티노’ 컬렉션으로, 아이코닉한 브이로고 패턴의 ‘트왈 이코노그라프룩’이다. 이외에도 정유미는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스몰 로코백을 비롯해 다양한 액세서리로 스타일링에 포인트를 줬다. 화보 속 선보인 아이템은 전국 발렌티노 부티크와 발렌티노 공식 온라인 부티크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정유미는 tvN ‘서진이네’에서 활약 중이다. 또한 어느 날부터 잠을 자면 이상 행동을 보이는 남편 현수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공포스릴러 ‘잠’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임영서의 창업 백서]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
- 2021. 12. 24 17:27 재테크
- 경영자들에게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라고 답한다.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 중에 하나가 ‘사람 관리’다. 필자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실수한 부분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해 필요 이상의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노나라 사람 재아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재주가 많았으나 게을러서 낮잠을 자느라 수업에 번번이 늦었다. 어느 날 공자는 재아가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5년 전쯤 K직원이 우리 회사에 대리로 입사했다. 그는 인사성이 매우 좋았고, 배려심도 많았다. 또 필자가 삶의 지혜를 얻으라고 역사 이야기를 해주면 그때마다 그는 “영광입니다”라며 허리를 조아렸다. 하루는 그에게 삼국지 얘기를 들려주면서 오나라의 대도독 여몽 같은 인물이 되라고 격려했다. 여몽은 위기에 처한 오나라 손권을 구했고, 번성전투에서 삼국지 최고의 영웅호걸 관우를 사로잡은 인물이다. 손권은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없는 여몽에게 “장차 나라에 큰일을 하려거든 학문을 열심히 닦으라”고 당부했고, 어느 날 오나라의 재상 노숙은 덕과 학식이 풍부해진 여몽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때부터 학문과 인품 등이 눈에 띄게 발전했을 때 ‘괄목상대’라는 말을 쓰게 됐다. 필자도 K대리를 우리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시키고 싶어 많은 관심을 주었다. 그런데 K대리는 심성이 유약해 작은 일에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그때마다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필자는 오나라의 기둥으로 성장한 여몽 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대하며 사표를 반려했고, 팀장이라는 직책까지 주었다. 그러나 감정 기복이 심한 K대리는 사건만 있으면 사표를 냈다. 필자는 K대리를 불러 “리더는 가슴속에 두 개의 발전기가 있어야 한다. 발전기 한 대가 꺼지면 바로 다른 발전기를 가동해야 한다”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필자는 K대리에게 “오늘 집을 나서기 전에 마음의 발전기를 두 개 장착하고 나오라”고 했고, 그는 “네, 마음속에 발전기 두 대를 준비했습니다”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틀 후 K대리는 또다시 사표를 내고 인사도 없이 퇴사했다.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신의는 결국 상처만 남겼다. 이런 사례가 필자에게 몇 차례 더 있었다. 아궁이의 땔감밖에 안 되는 인재를 대들보로 쓰려고 했다. 인재를 보는 안목이 없던 것이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탓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비단 경영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입이 가벼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입방아를 찧어 불란을 만들고, 나를 흉보고 뒷말을 한 사람에게 “다시는 나에 대해 말하지 말라”며 용서를 해도 또다시 나를 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임영서 대표는 누구? 임영서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장사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성장했다. 대학을 마치고 체계적인 장사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유학을 경험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난 25년간 1세대 창업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서경대학교 프랜차이즈학과 겸임교수, 연세대 상남경영대학원 프랜차이즈 과정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기업과 500명 이상의 자영업자 창업 컨설팅, 1000회 이상 창업 강의, TV·라디오방송과 신문·잡지 등의 창업 칼럼니스트 활동 외에 다수의 창업 저서를 출간했다. 현재 프랜차이즈 전문기업 ㈜죽이야기와 식품제조기업 ㈜대호가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 임영서창업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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