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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836 건 검색)

북한, 금강산 내 골프장 클럽하우스 철거 동향
2024. 12. 02 13:59 정치|정치
... 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상당 시설이 철거되거나 철거 중”이라며 “아난티 골프장 클럽하우스 건물도 철거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연 10만명 방문’ BMW 드라이빙센터 철거 위기
2024. 11. 25 20:11 경제
... 기로에 놓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25년 12월31일 계약이 종료되는 인천공항 BMW 드라이빙센터를 철거할지, 후속 사업자를 공모할지를 내년 상반기에 결정할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인천공항BMWBMW드라이빙센터스카이72골프장자동차테마파크임대료소유권BOT손해배상소송
부산 해운대구,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 37년 만에 철거
2024. 11. 20 10:31 사회|지역
.... 해운대구는 지난 15일 청사 내 정원에 설치돼 있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부부의 기념식수 표지석을 철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표지석은 1987년 3월 4일 전씨 내외가 구청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한 것을...
전두환기념식수표지석
서울 신규 고액·상습체납 1위는 ‘철거왕’…누구길래
2024. 11. 20 10:00 지역
... 중 체납액이 가장 많은 개인은 이금열씨로 체납액은 14억1100만원이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철거 용역업계에 뛰어들어 성공, ‘철거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씨는 적준환경의 회장 운전기사이자...
고액체납서울시철거이금열

스포츠경향(총 124 건 검색)

조국 딸 조민, 계엄령 당일 ‘사무실 철거’ 모습 공개
2024. 12. 05 17:56 연예
조국 조국신당 대표 자녀 조민.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국 조국신당 대표 딸이자 인플루언서 조민이 사업가로 성장하고 있다. 조민은 지난 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취향 가득 담은 사무실에 입주했습니다! 철거, 인테리어 과정’ 제목의 영상에서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사무실 오픈 과정을 알렸다. 조민은 최근 화장품 브랜드 ‘세로랩스’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나섰는데, 자신의 회사 설립 과정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공개한 것이다. 조민은 철거를 마치고 인테리어에 돌입한 사무실 모습을 공개했다. 철거 과정을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인테리어 하나 하나 관여한 섬세한 모습을 보였다. 조민의 사무실은 자신과 직원의 공간, 직원들 복지를 위한 별도의 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자신의 사무실 철거부터 인테리어 과정을 공개한 조민. 유튜브 방송화면 조민이 설립한 ‘세로랩스’는 ‘제로’의 뜻을 가진 CERO와 함께 다양한 피부타입에 자극과 독성을 최소화하는 순수한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조민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직원 공고를 알렸는데 “지속적인 성장과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며 “소비자에게 안전한 아름다움을 전하며 커리어 성장을 취해 함께하는 조직 문화를 나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복리후생으로는 ▲일과 나의 삶의 밸런스 ▲편안한 직장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나 등을 내세웠다. 조민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항소, 오는 18일 항소심 첫 공판이 진행된다.
법원 앞 ‘힘내라’ 응원에도··· 김호중 실형 선고에 김천시, ‘김호중 소리길’ 철거 검토
2024. 11. 13 11:47 연예
김호중 소리길 벽화. 김천시 제공 팬덤의 응원에도, 실형을 선고 받은 가수 김호중의 흔적은 차츰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위험운전치상) 등 혐의를 받는 김호중에게 13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음주운전을 하다 피해자의 택시를 충격해 인적, 물적 손해 발생시켰음에도 무책임하게 도주한 데서 나아가 허위로 수사기관에 자수하게 함으로써 수사에 혼선 초래하고 경찰 수사력도 상당히 낭비됐다”며 “CCTV에 의해 음주 영향으로 비틀거리는 게 보이는데도 납득 어려운 변명 하며 부인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뒤늦게나마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이 참작됐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와 접촉 사고를 낸 뒤 도주한 혐의(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 6개월여 만이다. 그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김호중은 지난 9월부터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고 결심 공판에서도 “똑바로 살겠다”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수 김호중. 2024.05.31 권도현 기자 음주운전 뺑소니 적발에 이어 사고 은폐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거셌으나, 김호중의 팬덤은 최종 선고일까지도 직접 법원을 찾아 김호중을 응원했다. 법원 주변에 ‘호중아 힘내라 우리가 있다’ 등이 적힌 푯말을 들고 몰려드는가 하면, 30여 명의 팬이 방청석을 메우기도 했다. 이들은 실형이 최종 선고되자 탄식을 내뱉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런 팬덤의 변함없는 지지에도 김호중의 고향인 경북 김천시도 ‘손절’에 나섰다. 김천시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이날 “소리길 철거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최종 결과가 나왔으니 내부적으로 방향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김호중의 구속 이후 방송, 광고계 등이 빠르게 손절을 이어갔던 것과 달리 김천시는 최종 판결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김호중 소리길’은 김천시가 지난 2021년 2억 원을 들여 김호중이 졸업한 김천예술고등학교에서부터 연화지까지의 골목에 조성한 관광 특화 거리다. 김호중 관련 조형물과 벽화, 포토존 등이 설치돼 있다. 소리길 조성 이후 지난해에만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으나, 김호중의 실형이 결정되면서 짧았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처벌법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논란···근현대문화유산 보존 해법은?
2024. 09. 08 20:10 생활|생활|생활|생활
옛 성병관리소건물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 주변에 있는 1996년에 폐쇄된 건물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건물은 미군 주둔지 주변 기지촌 여성들 성병 관리를 위해 1973년에 문을 연 ‘성병 관리소’였다. 이 건물 철거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시민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동두천시는 지난 6일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사업’ 관련 예산을 확보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제322회 임시회를 통해 2024년도 제2회 추경 예산안을 의결했다. 추경 예산안에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비용’ 2억 2000만원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시는 빠르면 다음 주부터 철거 업체 선정 등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에 앞서 지난 5일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등 63개 단체가 연대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철거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은 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을 빠뜨린 채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많이 분노하고 있다”며 “우리 안의 잘못과 슬프고 아픈 역사를 지우지 않고 함께 기억할 때, 바깥의 잘못과 정의롭지 못함을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옛 성병관리소 건물 내부 모습. 동두천시 제공 시민단체들은 “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을 핑계로 철거부터 밀어붙일 요량”이라며 “10여 년 동안 총 수천억 원 예산이 수반되는 개발사업에 아직껏 명확한 예산마련 방안 수립이 없으며, 옛 성병관리소가 속한 부지의 개발을 위한 설계용역 발주나 실시계획서 발표, 환경영향평가도 시행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근현대문화유산인 옛 성병관리소 철거 여부는 이러한 절차가 다 진행된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동두천시 측은 “해당 부지와 건물은 소요산 관광지 확대 사업을 위해 시에서 매입한 목적 재산”이라며 “목적에 맞게 철거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업체 선정과 철거 설계 작업 등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건물 철거 작업은 이르면 빠르면 10월쯤부터 진행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기지촌여성 생활실태 및 지원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병관리소는 한국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조물로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보고서는 또 “도가 구입해 경기도여성인권평화박물관으로 조성하라”라는 권고안도 제시한 바 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기자회견 연합뉴스
김호중 모교 ‘트바로티 집’ 계속 운영 “철거 계획 없어”
2024. 05. 27 17:42 연예
가수 김호중. 연합뉴스 ‘음주 뺑소니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의 별명인 ‘트바로티’를 내건 쉼터가 김호중의 출신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어 논란이다. 27일 김호중이 졸업한 모교인 김천예술고등학교에 따르면, 그를 기념한 ‘트바로티 집’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김호중 소리길’이 만들어지기 1년 전인 2020년 9월 준공됐다. ‘트바로티 집’은 김호중의 사진과 보도자료 등이 설치돼 있고 팬들이 방문하는 등 김호중 관련 명소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해당 쉼터는 김천시가 교육 여건 지원사업으로 학교 측에 2417만 원을 지원해 8.5평 규모로 만들어졌다. 김천시 관계자는 “학교 측의 학생 휴게시설 요청으로 지원된 것”이라며 “‘트바로티 집’이라는 명칭은 학교 측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 시민은 “학교 폭력도 모른 척, 겨우 일 년 반 다닌 학생을 내세운 학교가 문제 있다”고 비판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학교의 자랑이어서 홍보 차원에서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며 “학교 측이 전달해 온 바로는 공식적인 철거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주간경향(총 20 건 검색)

“세금 깎아줄 테니 빈집 철거해라”(2023. 11. 03 11:13)
2023. 11. 03 11:13 경제
ㆍ정부 ‘빈집 줄이기’ 당근책…지방 ‘유령 폐허’ 문제 해법 될까 충북 증평군 한 마을의 빈집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빈집이 늘수록 사회는 불안해진다. 흉물처럼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안전·범죄 사고 발생, 환경과 위생 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각종 민원과 재산권 침해 논란 등으로 강제 철거도 쉽지 않다. 당국은 고육책으로 ‘철거하면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세 부담 완화로 철거를 유도하되 고의로 빈집을 방치하는 경우엔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빈집의 정의 빈집의 법적 정의는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주택’이다. 1년 이상 전기와 상수도의 사용량 자료 등을 토대로 사전 조사와 현장 조사를 거쳐 빈집(미분양 주택·공공임대주택·별장 등 제외) 여부를 판단한다. 빈집은 그간 소관 부처와 적용되는 법령이 서로 달라 정책 시행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도시는 국토부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정비법)에 따라 관리하고, 농어촌 지역은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촌은 농식품부가, 어촌은 해수부가 각각 맡는 식이었다. 빈집 통계도 서로 달랐다. 법적 빈집은 13만 호를 넘는 수준이지만 통계청이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주택 총조사’ 결과에서의 빈집은 훨씬 많다. 지난 7월 발표된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 빈집은 145만2000호로, 전체 주택의 7.6%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0%(5만6000호), 5년 전인 2017년 대비 14.8%(18만7000호) 각각 늘었다. 다만 통계청 조사는 조사 시점(11월 1일)에 비어 있는 집을 기준으로 집계한다. 매매, 임대, 이사, 미분양, 수리 등 일시적으로 비어 있는 빈집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법률상 빈집의 정의와 다르다. 정부가 지난 6월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3개 중앙 부처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빈집실태조사의 추진 절차와 지방자치단체의 빈집관리 전담부서 지정 등을 담았다.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 산하기관별로 진행한 빈집 현황 조사 등도 주체를 최근 한국부동산원으로 일원화했다. 3개 부처가 이번에 처음으로 취합한 전국의 법적 빈집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3만2000호다. 도시 지역 4만2000호, 농어촌 지역 9만 호(농촌 6만6000호, 어촌 2만4000호)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7월 13일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의 빈 주택 건물이 무너져 있다. / 연합뉴스 도시와 농어촌의 특성과 차이 장기간 방치된 빈집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건물 붕괴와 화재 등 안전사고, 범죄 발생, 경관 훼손, 악취 발생, 주거환경 악화 등이다. 도시 지역은 지자체장이 빈집정비법에 의거해 노후, 불량, 위생 등 문제로 붕괴, 화재, 범죄 발생 우려가 큰 3∼4등급 판정을 받은 빈집에 대해 집주인에게 정비 또는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반발과 재산권 침해 논란으로 실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철거를 집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투기 목적으로 방치된 빈집들도 있지만, 집주인이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거나 저소득층인 경우도 많다. 이행강제금 부과 조치에 집주인들의 저항이 심하고, 지자체 입장에서도 체납이 되면 실적에 좋지 않기 때문에 집행을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 빈집은 도시 지역의 2배에 달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지난해 4월 펴낸 ‘빈집 정비를 위한 재산세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농어촌·지방 중소도시 지역들은 대도시 지역에 비해 법적 빈집 분포가 높다. 대도시 지역은 빈집 중 18.3%가 법적 빈집인 반면 농어촌·중소도시는 지역 내 빈집 중 33.1%가 법적 빈집이다. 농어촌 지역은 지역산업의 쇠퇴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령화, 저출생, 인구감소 등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 또 건축물대장이 없는 무허가 빈집은 실태 파악조차 어려워 관리가 더 어렵다. 대도시는 소유자가 재건축과 재개발 등을 기대하고 빈집으로 방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주택 상속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도시 지역은 이행강제금이라도 부과할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은 집주인들이 철거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 농촌 지역에서 빈집의 활용률과 철거율이 낮고, 흉물로 방치되는 폐가성 빈집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빈집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귀농·귀촌 유치지원 사업과 농촌공간정비사업 등을 통해 빈집을 최대한 활용하고, 철거가 필요한 빈집은 신속하게 정비하겠다고 밝혀왔으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병길 의원(국민의힘)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빈집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철거 필요 대상으로 파악된 농촌 빈집 중 실제 철거된 빈집의 비율은 2017년 17.2%, 2020년 23.5%, 2021년 18.8%, 2022년 18.5%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빈집 활용률은 2020년 0.81%, 2021년 0.94%, 2022년 0.74%로 1% 아래에 그친다. 정부 관계자는 “도시 지역의 이행강제금 부과처럼 농어촌 지역에서도 철거 명령을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있도록 법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재산세 부담 완화, 배경은 집주인들이 빈집을 방치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철거 후 불어나는 세금 부담 때문이다. 빈집이 철거되면 일정기간 후엔 주택세가 아닌 토지세를 적용받게 되는데, 토지세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주택 세율은 0.05~0.4%이고, 토지(나대지) 세율은 0.2~0.5%이다. 지방세연구원이 예로 든 사례를 보면, 1944년 지어진 노후 주택에 2020년 부과된 재산세가 2만8940원이라고 했을 때, 현행대로라면 이 주택이 철거된 후 소유주에게 부과되는 재산세는 7만6800원으로 인상된다. 여기에 ‘비사업용 토지’로 분류되면서 양도소득세 부담액이 늘고 경우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빈집 철거를 결정한 집주인에게 재산세 완화 등 세금 감면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25일 밝힌 ‘세 부담 경감’ 주요 내용을 보면, 빈집 철거 후 이를 토지세액이 아니라 철거 전 납부하던 주택세액으로 인정해 주는 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빈집 철거 후에 토지세액의 부과 기준이 되는 기존 주택세액의 연 증가 비율도 기존 30%에서 5%로 내리기로 했다. 이 같은 혜택은 도시 지역에서 읍·면 농어촌 지역까지 확대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11월 중 입법예고하고, 내년에 부과되는 재산세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행안부가 추정한 재산세 내역을 보면, 공시지가가 매년 5%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도시 지역은 2025년 2만3000원, 2028년 17만7000원의 재산세가 각각 줄고, 농어촌은 2024년 8만6000원, 2028년 17만7000원의 재산세가 각각 줄어든다. 현장의 빈집 현황 파악 등 체계적 관리를 위한 인력과 예산의 충원 대책이 추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의 ‘지방정부의 빈집 관리 정책역량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전체 228개 조사대상 지역의 약 24%인 54개 지역이 빈집 관련 조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빈집 업무를 건축, 주택, 도시재생 등 여러 부서에서 혼재해 맡는 등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도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조사에 응답한 200개 시·군·구는 2022년 기준 평균적으로 약 2억8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빈집 한 채를 철거하는 데 소요되는 평균 비용을 2500만원 정도라고 봤을 때 이러한 지자체 예산은 지역 내 전체 빈집 전체를 철거하는 데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의 3.5%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정문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빈집을 철거하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장기간 방치로 공공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당국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빈집 발생 배경과 피해 양상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역할의 재정립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다. 허원제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불가피하게 발생한 빈집에는 인센티브를 통해 철거와 정비를 유도하되, 투기 등 목적의 고의로 방치되는 빈집 소유주들에게는 이행강제금 부과와 같은 패널티를 제대로 부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불가피한 빈집인지, 투기 목적의 빈집인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의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최근 지방세법 개정 등과 같은 조세정책 추진과 더불어 재정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어이 철거로 가는 부평 일본군 조병창(2023. 03. 03 11:29)
2023. 03. 03 11:29 사회
인천시·국방부·문화재청 복마전에 강제동원 등 근현대사 품은 건물 잃나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449. 행정구역상 분명한 한국 영토다. 그런데 이 부지 전체를 보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인 중 누구도 이 구역을 완벽히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수수께끼 같은 구역은 심지어 명칭도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2020년 이후 이곳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부평공원 앞 공원’이다. 195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미군기지 ‘캠프마켓’(또는 애스컴·ASCOM)이다. 그보다 조금 더 올라가 보면 독특한 이름 하나가 더 나온다. 193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 ‘일본군 조병창’이다. 지난 2월 27일 방문한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캠프마켓(옛 일본군 조병창) 정문 옆 천막 농성장 모습 / 김찬호 기자 이처럼 한 공간에 다양한 역사가 서린 곳은 희귀하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산곡동 449만의 특징은 따로 있다. 일본군 조병창, 미군기지 등을 거치며 한국인의 접근이 차단됐고 개발 바람도 비껴갔다. 쉽게 말해, 그게 어떤 역사든 과거 흔적이 그대로 남은 일종의 ‘타임캡슐’이 됐다는 말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단순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넘어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 개항지, 근현대 건물들이 남은 군산, 목포처럼 관광지로 도약할 수도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건물이 남아 있을 때 얘기다. 주간경향은 2021년 10월, 일본군 조병창 철거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흔적으로서 조병창의 가치를 밝히고, 철거하더라도 ‘조사 및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결과를 맺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여가 지났다. 결과적으로 조병창 주요 건물은 철거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거를 결정한 주체는 여전히 없다. 이 문제와 관련된 인천시, 국방부, 문화재청 모두 “우리가 철거를 결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게 가능하다. 관련법에 맹점이 있는 상황에서 A기관은 B탓, B기관은 C탓, C기관은 다시 A탓을 하면 된다.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남 탓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건물 철거가 가능하다. 법은 미군기지로 활용된 땅을 국방부가 정화해 지자체에 반환할 것을 규정했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서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의가 없다. 이 한계를 이용해 ‘부작위’, 즉 ‘건물을 보존해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명시적으로 ‘철거하라’는 말 대신 “우리는 저쪽 기관 방침에 동의를 표했다”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거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어떤 일이 발생하든 책임도 없다’는 뜻이다. 조병창 내에 있는 이른바 ‘1780’ 건물(옛 병원건물)부터 이 방식으로 헐릴 예정이다. 많은 연구자가 보존 필요성을 지적했고 일제강점기, 미군기지 시절 사진에도 상징처럼 찍혀 있던 바로 그 건물이다. 정확한 철거일정을 묻는 질문에 국방부는 인천시에, 인천시는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했다. 철거 결정자도 책임자도 향후 일정까지도 없는 다른 의미의 깔끔한 일처리다. 유일하게 있는 것은 향후 밀어버린 지역을 개발해 얻을 이득뿐이다. 사실 이 지역에 아파트를 짓든, 호수공원을 만들든 눈 한 번 질끈 감아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실제로 주변 집값이 상승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장의 갈등은 피할 수 있다. 문제는 본인들에게 특별한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건물을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겨울 캠프마켓 정문 옆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조병창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기만과 조롱을 감내하며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이들이 개발을 외치는 사람들보다 미련해서가 아니다. 협의마저 막혀버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소란’뿐이기 때문이다. 다툼이 발생하면 관련 ‘기록’이 남는다. 지금 없애 버리려는 것이 일제강점기 조병창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억울함’이라는 바로 그 기록이다. 1년 넘게 논의하고 원안대로 철거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지키고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같은 시각 ‘캠프마켓’(조병창) 앞에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은 “강제동원의 증거 부평 캠프마켓 내 일본조병창 병원건물을 지켜주세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이날 대통령과 시민들은 같은 의미의 말을 했다. 다만 대통령의 당부와 달리 현실에서는 정부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없애는 주체가 돼 있을 뿐이다. 지난 2월 27일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 회원들이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캠프마켓(옛 일본군 조병창) 정문 옆에 천막을 치고, 조병창 건물 철거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명식, 이민우, 김형회 공동대표 / 김찬호 기자 무기 및 전쟁 관련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의미하는 ‘조병창’은 명칭부터 낯설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천 조병창’은 전범국 일제가 열도 밖에 설치한 유이한 군수공장이었다. 사람들이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일본국 영토 밖에 흔치 않은 전쟁범죄의 증거가 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제는 1939년 인천 부평에 조병창을 만들고 당시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일제가 작성한 극비문서에 따르면 1945년 3월 1일, 부평 조병창에 소속된 전체 노동자 수는 총 1만1300명이었다. 이중 약 9000명이 조선인이었다. 이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인천 및 경성의 주요 중등학교에서 끌려온 약 930명이었다. 이중 몇 명이나 작업 중 상해를 입거나 목숨을 잃었는지는 가늠이 어렵다. 다만 얼마나 위험한 곳이었는지 추론해볼 수는 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철거 1순위로 꼽히는 1780 건물, ‘병원’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병원은 수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상징이다. 죽지 않았다면, 치료해서 다시 착취하는 방식이다. 얼마나 위험한 일에 사람들을 강제동원했는지, 그 일이 상해를 입지 않고 과연 가능한 작업이었는지를 추적하는 시작점이자 상징적인 장소가 병원이다. 그럼에도 병원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는 있다. 건물 밑 토양이 오염됐고, 정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군기지로 활용됐던 땅 전반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 문제다. 이에 대한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토양에 어떤 오염이 있느냐, 둘째는 해당 오염의 정화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느냐다. 이 논의가 1년이 넘도록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다 결국, 건물 철거 후 토양정화를 하는 원안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 3월 1일 3·1절 기념 조병창 지키기 행진을 하기 위해 시민들이 캠프마켓(옛 일본군 조병창) 옆 천막 농성장으로 모이고 있다. / 김찬호 기자 누가 문제인가 사실 1780 병원건물 철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논의가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인천시와 조병창 문제를 두고 협의에 참석했던 김형회 전 인천시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은 “아무리 문제와 대안을 설명해도 ‘철거’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안이 복잡해지는 것은 결국, 누군가 진의를 드러내지 않아서다. 논의 과정에서 누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살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토양에 어떤 오염이 있느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거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발암물질’ 가능성을 주장한다. 토양오염 정화의 주체인 국방부에 다시 문의했다. “유류(기름)오염 그 이상은 없다. 지금까지 발암물질은 일체 나온 것이 없다”는 종전 대답이 그대로 나왔다. 토양에 접근해 오염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국방부가 유일하다. 공포감 조성 목적이 아니라면 “발암물질이 있다”는 식의 주장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정화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다. 1780 건물의 철거 후 토지정화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크게 ‘비용’과 ‘기한’ 문제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것은 비용 문제다.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토양을 정화하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 철거 측 논리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얼마가 드는지 사용 공법에 따라 천양지차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일단 철거로 방침이 정해지면 어떤 방법을 가져오든 “불가능하다. 추가 비용이 든다”는 식으로 논의를 끝내 버릴 수 있다. 실제로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문화재청이 작성한 ‘캠프마켓 1780번 건물 보존을 위한 기술적 방안 검토’라는 문서가 있다. 해당 문서의 결론인 ‘검토의견’을 보면 “1780 건물의 원위치 보존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판단돼 해체하지 않고 건물기초를 보강한 후 오염 토양 정화 공사를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나온다. 이를 위한 공사 방식까지 포함돼 있다. “압입말뚝을 사용해 상부건물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내력확보 지반까지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소요 예산도 있었다. 약 5억원이다. 왜 이 방안을 도입하지 않았는지 인천시에 물었다. 관계자는 “개략적으로 업체에 자문을 구해보니 이 방식만으로는 불안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답했다. ‘개략적·자문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인천시 차원에서 전문업체에 물은 것이라면 해당 업체와 구체적 내용을 밝힐 수 있는지’ 다시 물었다. 이 관계자는 “용역을 발주해 구체적 문서로 남긴 것이 아니다. 어느 회사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한 것인지도 말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5억이든 50억이든 정화를 해야 하는 것은 국방부다. 국방부는 정화 방침 자체가 건물을 다 철거하고 토양을 정화하는 것이지 건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건 아니다. 국방부는 이에 필요한 돈을 낼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1948년 미군이 촬영한 382 위수병원(위). 철거 예정인 이른바 1780 건물이다. 지난 2월 27일 촬영한 철거 예정인 328 위수병원(1780 건물) 모습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김찬호 기자 국방부에 똑같이 물었다. “국방부는 만약 인천시가 1780 건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토지정화를 원한다면 협조할 것”이라며 “다만 토양오염 정화는 국방부 예산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위의 건물 보전은 인천시 예산으로 하는 것이다. 문화재청 제안은 인천시가 5억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핵심은 이렇다. 오염된 토지정화에 소요되는 비용까지만 국방부가 부담한다. 즉 만약 건물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 비용은 인천시 부담이다. 국방부는 만약 인천시가 건물 유지를 원하면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자체 검토를 통해 건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토지정화를 할 수 있는 공법을 제안했다. 5억원 예산이다. 인천시가 관련 업체에 자문을 구해보니, 5억원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 거절했다. 이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천시가 이 업체가 어디인지, 문화재청이 제안한 공법의 어디가 문제였는지 등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면, 1780 건물의 철거는 돈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시 관계자는 “비용 문제가 아니다”고 거듭 밝혔다. 그렇다면 ‘기한’ 문제를 따져볼 수 있다. 토양환경보전법 등에 따르면, 국방부의 토지정화 의무 기한은 2023년 12월까지다. 국방부는 그 전에 토지정화를 완료해 인천시에 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건물을 부수고 정화하는 것 외에 정해진 기한 내에 가능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대안이 있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위해성 평가 대상을 신청해 인정을 받는 방법이다. 위해성 저감 대상이 되면 토양정화의 범위, 시기 및 수준 등 조정이 가능하다. 2023년 12월이라는 기한 제약을 풀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방부와 인천시의 협의가 필요하다. ‘국방부와 정화 기한을 늘리는 부분에 대해 협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천시 관계자는 “올해 12월 31일을 넘기면 부평구가 국방부를 행정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해성 평가 신청도 어렵다고 했다. “2021년 구두로 환경부에 문의해보니 문화재 상당의 가치가 정해져야 위해성 평가 인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민들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환경부에 문의한 결과, “토양환경보전법상 문화재 지정 여부와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는 서면 답변을 받았다. 양측의 말이 다르다.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에 직접 문의해봤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인천시가 자꾸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인천시에 문화재 지정을 해야 위해성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시 관계자가 나와 통화한 것 같은데 그 당시 인천시가 건물을 보존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위해성 평가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문화재 지정을 해두면 좋다’고 말한 것이다. 문화재 상당의 가치가 있어야만 신청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에서 환경부에 문의한 위해성 평가 대상 조건 /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 문화재청의 자기기만 이제 이 복마전을 끝내야 할 때다. 결국 돌고 돌아 핵심은 1780 건물을 포함해 ‘일본군 조병창’ 건물이 보존할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로 모아진다. 우선 인천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1780 건물이) 원형보존이 안 돼 근대문화재로 등록하기 곤란하니, 토양정화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남겨달라고 해서 그렇게 정리했다. 인천시는 철거를 요청한 것이 아닌 문화재청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이 의견이다’는 주장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발언대로라면 1780 건물의 철거는 전적으로 문화재청의 판단 때문이다. 문화재청에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답변을 거부했다. 다시 인천시가 전한 내용을 보자. “원형보존이 안 됐다”가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기 어렵다고 밝힌 이유다. 이상의 인천대 교수는 “1780 건물에는 일제의 침략전쟁 역사가 있고, 그다음에는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건물 가운데가 끊어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그다음에는 미군이 들어와 본래 구조를 둔 상태에서 그 위에 보수한 흔적까지 남았다. 건물 하나에 한국 근현대사가 그대로 다 남은 보기 드문 사례”라며 “무엇보다 이 건물 안에 머물렀던 것이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작성한 ‘캠프마켓 1780번 건물 보존을 위한 기술적 방안 검토’ 문서(위) 문화재청이 작성한 ‘부평 캠프마켓 내 근대건축물 보존 관련 조사의견서’ /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 제공 그러고 보면 1780 건물에 대한 문화재청의 검토의견서, 조사의견서 등과 인천시가 전한 문화재청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1780 건물의 원위치 보존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판단돼 해체하지 않고…”가 검토 의견이었다. 조사 의견에는 “1776~1780 건물인 조병창 병원은 강제동원자들을 비롯한 인원들의 부상 및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설로서… 해방 이후 조병창 병원건물은 미군 382 병원으로 사용됐다…. 1780 건물은 일본육군조병창 병원뿐만 아니라 미군기지 시기의 의미 역시 가진다고 할 수 있어 그 다양한 역사적 층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원형보존이 안 됐다”는 결격사유는 문화재청이 스스로 밝힌 “다양한 역사적 층위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자연스레 반박된다. 인천시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화재청은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기자가 만난 한 문화재위원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원형보존이 안 돼 가치가 없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공식 입장이면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해당 안건을 상정해 심의를 거치거나 문화재위원회에서 공식 의견으로 결정한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전혀 없다”며 “심의나 자문 안건으로 상정도 하지 않고 공식 입장을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시가 주장하는 문화재청의 의견이라는 것이 가결/부결이 표시된 문서로 제시된 것도 아니고, 결국 문화재위원 한두 명의 의견이거나 문화재청 직원의 의견을 공식 입장인 것처럼 왜곡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학계 전문가는 “조병창 내 많은 건물이 밀집한 D구역이 있는데 문화재청 내부에서 1780 건물은 내주고 D구역을 살리자고 논의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D구역은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1948년 9월 13일 인천 캠프마켓 내에 있던 382 위수병원의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4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인 이창(장)화씨가 간호대대장 D. P. Lauer 소령에게 학위를 수여받는 장면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정말 가치가 없나 유물·유적의 철거는 신중해야 한다. 지금 당장 폐건물처럼 보여도 연구해 보지 않으면 그 가치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술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관광 등의 실질적 경제 활성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당장 1780 건물이 쓸모없어 보여도 어쩌면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해당 건물은 제대로 된 연구가 한 번도 진행된 적이 없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13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수집한 사진들이 있다. 미군 통신대(Signal Corps)는 별도의 사진 부대를 운영했는데, 이들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 한국과 관련한 사진을 다수 남겼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보관소(NARA)에 잠들어 있다가 국사편찬위원회가 기록 수집 차원에서 국내로 들여와 공개했다.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료지만 이 사진의 의미를 대부분 잘 모른다. 다행히 미군 통신대는 사진 뒷면에 촬영 대상이 누구이고, 언제, 어디서 촬영했고, 어떤 상황인지 등을 개략적으로 남겼다. 이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1948년 9월 13일에 촬영됐다. 오른쪽 웃고 있는 여성은 이창(장)화씨다. 왼쪽에 손을 뻗고 있는 남성은 간호대대장 라우어 소령이다. 사진 설명에 따르면 382 위수병원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4명의 간호사 중 한명인 이창(장)화씨가 학위를 수여받는 모습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장소다. 에스컴 시티, 캠프마켓이다. 즉 캠프마켓에 설치된 382 위수병원에서 한국인 간호사들이 배출됐다. 병원의 과거 이름은 일본군 조병창 병원, 즉 철거 예정인 1780 건물이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허광무 박사는 “382 위수병원에서 배출된 간호사들은 한국군 최초의 간호장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51년 창설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작은 부분이지만 연구결과에 따라 역사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간호장교 역사가 뭐가 중요하냐, 철거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떤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를 꼽으라면 대표적인 사람이 김중업이다. 조병창을 접수한 미군은 용도에 맞게 건물 개·보수가 필요했는데 여기에 한국인 건축 설계사들을 모집했다는 증언이 있다. 당시 한국인 12명, 미국인 12명이 모였는데, 당시 이창호라는 건축사 역시 이 12명 안에 포함돼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씨의 아들 홍필씨는 2021년 12월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술로 남겼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게 있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한국인 12명을 이끌었던 팀장이 김중업이었다고 한다. 1948년 7월 2일 인천 캠프마켓 내에 있던 382 위수병원 학위과정을 졸업한 8명의 간호사들. 앞줄 왼쪽부터 엄금례, 신영숙, 김선(순)태, 정정(청)화, 이충실, 김감음, 뒷줄 왼쪽부터 수간호사 Evelyn M. Patterson 대위, 이운(은)산, 이해자, 오른쪽 남성은 한국인 통역관 실제로 김중업의 일대기를 다룬 책과 기사를 보면, 그가 1946년 ‘경기도 부평에 소재하고 있던 미군 24군단 사령부에서 설계일을 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씨가 아버지로부터 듣고 구술한 이야기 중에는 김중업이 미군기지에서 설계일을 그만두게 된 과정도 있다. ‘미군 군속과의 불화’로 알려져 있는데 이씨는 해당 부분의 상세한 내용을 구술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지금부터다. “어느 날 김중업이 건물 내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 사람 이름이 ‘이중섭’이었다. 설계일보다는 제도판 모퉁이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시 미국인 팀장이 그걸 보고도 지적 한 번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하더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김중업은 이중섭과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허무맹랑하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다. 현재로서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한국인 중 누구도 조병창 안에 정확히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중섭의 흔적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들어가서 조사한 적도 없고, 제대로 연구한 적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을까. 역시 모를 확률이 높다.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몰라도 밀고 개발을 해야 하니까. 지난 3월 1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는 일장기가 나부꼈다. “집값이 오르는데 역사가 대수냐”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종종 보게 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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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습니다](11)충정아파트 철거, ‘용적률 사기극’ 돼선 안 된다(2022. 06. 24 17:14)
2022. 06. 24 17:14 사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 김영준씨 제공 서울시는 2019년 4월 현존하는 최고(最古) 아파트 중 하나인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전면 보존(기부채납)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충정아파트가 포함된 서울 서대문구 마포로5구역 제2지구(이하 5-2지구)의 용적률 상한을 기존의 526%에서 595%로 대폭 상향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용적률에 1할 이상을 얹어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할 정도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보편화됐으나, 정작 원형이 된 초창기의 아파트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내린 결정이었다. 특히 서대문구라는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서 8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정아파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아파트가 가진 역사성과 보존의 당위성을 주장해 오고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인 충정아파트 1937년 일본인 도요타 다네마쓰가 지은 충정아파트는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수세식 변기와 가스·응접실, 거주민을 위한 식당 등을 갖춘 거주시설이었다. 당시로써는 ‘근대의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 화가 김환기가 머무르기도 했던 충정아파트는 뛰어난 입지와 시설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양한 주체에 의해 파란만장한 용도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해방 직후 적산(敵産)으로 간주된 충정아파트는 미 군정이 미군숙소(트레머호텔)로 이용했다. 한국 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한 이후엔 ‘6형제를 잃은 아버지’라는 거짓말로 정부를 속인 한 개인이 충정아파트를 호텔로 통째로 불하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에 다시 일반 아파트로 돌아온 충정아파트는 1979년 서울시의 충정로 확장 과정에서 전면부가 헐려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됐다. 충정아파트에 새겨진 이력은 단순히 오래된 아파트의 차원을 넘어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도시환경정비사업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의회 의견 청취·의결 과정에서도, 충정아파트의 가치와 보존의 당위성은 인정받았다. 2020년 9월 열린 서울 서대문구의회 재정건설위원회에서는 서울시가 제안하고 5-2지구 추진위가 수립한 정비계획 변경(안)에 대해 충정아파트 유지·보수 계획 구체화 등의 수정 의견 반영을 전제로 전원 찬성 의결이 내려졌다. 당시의 의사록에서는 충정아파트의 보존과 활용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확인된다. 하지만 충정아파트의 보존 계획은 마지막 관문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2021년 8월에 열린 도계위는 5-2지구의 정비계획 변경(안)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난 6월 15일 재상정이 이뤄졌으나 결과는 전면 보존이 아닌 완전 철거였다. 1962년 5월, 전면부가 헐려나가기 이전의 서울 충정아파트. 석지훈(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씨 제공 철거 결정을 담은 서울시 도계위의 심의 결과가 확정되자마자, 언론에서는 이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중에는 ‘박원순표 흔적 남기기 사업의 종말’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있는 한편, 충정아파트의 역사성을 재조명하는 보도도 관찰됐다. 5-2지구가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을 조건으로 기존 용적률의 1할을 상회하는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지난 6월 16일 서울시에 문의한 결과,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충정아파트의 철거 결정만을 내렸을 뿐이며 5-2지구 추진위가 추후 제시하는 정비계획 수정안에 충정아파트를 대신하는 면적의 문화시설 기부채납이 이뤄진다면 용적률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만약 5-2지구의 정비사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3년 전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기부채납)을 전제로 부여된 용적률 인센티브가 충정아파트의 전면 철거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건물을 남겨 활용하는 것과 제아무리 바닥에 표식을 남긴다 한들 철거해 공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도시와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후자를 전면 보존이라고 간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충정아파트와 같은 면적의 문화시설을 새로 지어서 기부채납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초 충정아파트의 전면 보존을 전제로 부여했던 용적률 인센티브를 서울시가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는 문화재를 인질로 삼은 ‘용적률 사기극’이라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오세훈 시정으로 넘어오면서 바뀐 태도 충정아파트가 이런 사례의 처음은 아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한 동 남기기’ 사업 또한 충정아파트와 유사한 용적률 인센티브 문제를 안고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재임기 동안 서울시에서는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2012), ‘2025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매뉴얼’(2015) 등의 수립을 통해 정비사업 추진 시 흔적 남기기 시설의 기부채납 인정, 용적률 인센티브 5% 부여 및 해당 기부채납 시설의 용적률 산입 제외와 같은 구체적인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제도화했다. 반포주공아파트와 개포주공아파트에서 이뤄진 ‘한 동 남기기’ 또한 해당 주거동을 상가·문화시설로 리뉴얼하는 대신,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를 부여받는 것은 이미 확정된 상황이었다. 오세훈 시정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서울시의 태도가 바뀌었다. 2021년 12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주거동의 완전 철거 안건이 상정됐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조합을 상대로 흔적 남기기 사업의 백지화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 내내 이미 부여된 용적률 인센티브에 대한 서울시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를 지적하는 보도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4월의 보궐선거 당선 직후부터 새로운 시정 슬로건으로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을 내걸었다. 문화재 보존과 용적률 인센티브를 둘러싸고 지금의 서울시가 보여주는 태도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만약 충정아파트와 반포·개포주공아파트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지금과 같이 계속한다면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도시사(史)에 길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것이 ‘공정도시 서울’이 추구하는 서울의 미래상이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할 말 있습니다
[기고]어두운 역사의 철거는 또 다른 어둠을 만든다(2021. 08. 30 11:04)
2021. 08. 30 11:04 사회
57년 전, 기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1901년생인 할아버지는 열네 살 무렵 인천시 부평구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7년간 한방을 썼던 저는 자연스레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부평의 역사였던 셈이죠. 부평과의 인연은 아버지 대에도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 아버지는 부평 미군부대를 다니셨습니다. 당시에는 미군부대인 캠프마켓을 ‘데포’ 또는 ‘55부대’라 불렀습니다. 저는 부평이 제공해준 것들로 먹고, 입으며 성장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저와 제 아이들, 손자들까지 부평에서 살고 있으니 5대째 부평에서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육군조병창이 있었던 인천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마켓’ 전경 / 이석우 기자 그런데 부평에 최근 논란이 생겼습니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로 밝혀졌는데 그 증거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서울 용산과 마찬가지로 부평에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불편한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가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부평2동의 미쓰비시 사택, 부평공원(미쓰비시 중공업 자리), 캠프마켓과 캠프그란트(일본육군조병창 자리)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캠프마켓이 반환되며 유적 중 일부가 철거될 위기라는 것입니다. 일본육군조병창 자리에 있는 병원 건물, 1780호 건물이 대표적입니다. 부모세대의 유산 ‘부평4공단’ 혹자는 이 유적을 철거하고 호수공원을 만들자고 합니다. 이를 통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부평에서 결혼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70~90%의 현금을 마련하고 비록 비싸기는 했지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오르며 32세가 넘은 우리 자식들은 안정적 주거생활 수단인 아파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이제는 아빠 찬스도 소용이 없습니다.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저 역시 아이들에게 아파트 한채 남겨주기 힘들겠습니다. 결국 내 집 마련을 못 한 아이들이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게 될까 걱정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인 부평에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평의 집값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귀중한 유적을 파괴하고 호수공원을 만들자고 합니다. 정말 부평에 터를 잡고 오래도록 살아갈 사람들이라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저의 아버지 세대 때에도 부평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미군 축소 내지 철수 이야기가 나오던 시점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인천시 북구(부평구·계양구·서구) 시절의 인구는 8만명 내외였습니다. 이중 4000~5000명은 미군부대 노무자로 취업해 먹거리를 해결했고, 또 일부는 미군부대 인근에서 장사를 했으니 부평 인구의 과반수가 미군부대 관련 생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던 것이죠. 미군 철수 위기 속에 동네 어른들은 매일같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부평에서 살아갈 우리 자식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 결과 추진된 것이 부평수출산업공단 유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구로에 있는 수출산업공단과 가좌동 경인지구에 밀려 부평수출공업단지 유치는 무산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 지역 주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부평 ‘수출산업공단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것이 부평4공단의 시작이었습니다. 50여년 동안 부평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던 부평4공단은 자식세대도 부평에서 살게 하려는 어른들의 결단이 만든 성과였습니다. 일본육군조병창에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입었던 작업복 / 이석우 기자 우리가 남길 유산은 일자리 창출 부평4공단도 더는 부평의 성장을 견인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더 이상 공장과 같은 생산시설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다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그 가능성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평이 품고 있는 강제동원과 전쟁 역사 유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크 투어리즘은 이미 관광의 한 형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와 연계한 다양한 일자리도 창출합니다. 부평이 품고 있는 일제강점기 유적은 유네스코 등재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어쩌면 부평이 품은 제2의 성장 동력으로 거듭날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역사 보존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부평의 유적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거나 국내 관광을 하는 이유는 그곳의 근린공원을 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민생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특색 없는 공원에 매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유적을 활용해 역사문화유적지가 있는 공원으로 거듭나자고 하면 무리한 생각일까요. 다행히 많은 사람이 이러한 생각에 호응해주었습니다. 지난 8월 23일 지역 사람들을 주축으로 ‘인천시장은 캠프마켓 1780 건물을 존치하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인천지역사회가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반대의 여론으로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국방부에 2022년 3월까지 1780호 건물의 철거 유예를 요청했습니다. 국방부가 문화재청의 요구를 인천시에 통보함에 따라 철거 여부와 시기는 향후 캠프마켓 부지와 시설물을 인수하게 될 인천시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인천시장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호응해야 합니다. 어릴 적 앞마당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계양산과 금마산은 아파트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굴포천에서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며 놀던 옛적 친구들은 이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평은 2021년에 법정문화도시가 됐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흔적을 없애는 부평이 아닌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부평으로 거듭나길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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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한옥 구해낸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의 한옥 사랑
2010. 10. 06 17:24 화제
4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삶의 터전으로 삼은 한옥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한 미국인이 최근 항소심에서 승소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웃 주민들과 함께 동소문동 한옥 밀집 지역을 고집스레 지켜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씨, 그의 특별한 한옥 사랑 이야기. 42년 전 처음 만난 한옥, 강릉 ‘선교장’에서 한옥과 맺은 인연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6가. 지하철역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상가 건물과 현대식 빌라들 사이에 고색창연한 한옥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1927년에 지어진 이 한옥은 피터 바돌로뮤씨(62)가 1974년 매입해 37년째 살고 있는 집이다. ‘ㄱ’자의 한옥인 그의 집은 살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라 팔기 위해 만들어진 ‘장사 집’이었다고 한다. 봄에는 볕이 들고, 여름이면 마당에 있는 8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는 이 한옥에서 바돌로뮤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서울시는 2004년 6월 바돌로뮤씨의 한옥을 비롯한 이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고, 성북구청은 2007년 10월 이 지역에 노후불량주택이 60.37%나 된다며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동소문동에 있는 한옥 43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고, 바돌로뮤씨는 전통가옥의 보존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비구역 지정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정비예정구역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노후하거나 불량한 건축물의 비율이 60% 이상 되어야 하는데 동소문동 일대는 노후 및 불량 건축물이 총 160동 가운데 94동인 58.75%로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서울시의 정비구역 지정 처분은 맞지 않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2004년 이 지역이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을 때만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다들 법에 무지한 서민들이다 보니 2007년 구청에서 복잡한 법률과 절차를 들이대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이 되었을 때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거예요. 의견이 맞는 사람들 20명 남짓 모아서 지정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죠. 2009년 6월에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를 받았고 2심에서도 승소하게 된 겁니다.” 긴 싸움 끝에 한옥 밀집지역 철거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재개발 추진위원회에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소문동6가와 7가를 재개발하는 새로운 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고단한 투쟁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른다. 현재 IRC 선박 컨설팅 업체의 부사장인 그는 거제도와 진해 등 잦은 지방출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한옥에 관련된 일이라면 열 일 마다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가 한옥에 매료된 것은 1968년 미 평화봉사단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오면서부터다. 나이아가라 시티에서 태어난 바돌로뮤씨는 큰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지점 발령을 받을 때마다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뉴욕 주, 미시건 주 등 여러 지역에서 거주했다. 어릴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당시 머물렀던 강원도 강릉 일대의 오래된 한옥과 정자, 누각 등 문화유적들을 찾아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택인 선교장(船橋莊)을 접하면서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었다. “강릉에 있는 선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약도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연못과 정자가 있는 99칸짜리 한옥이더군요. 자주 갔더니 주인 할머니와 친해져서 그곳에서 기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어요. 방마다 아궁이가 있는 큰 집이었는데 청소할 수만 있다면 마음껏 공간을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주저 없이 활래정(活來亭)을 찜했죠(웃음).” 당시 선교장이 있던 곳은 1970년대 초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원산발전소에서 전력을 끌어왔기 때문에 남북이 분단된 이후 전력이 끊긴 것. 하지만 전기 없이 생활하는 불편도 감수할 만큼 바돌로뮤씨에게 선교장은 전통 한옥의 미(美)를 배우고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는 가옥이었다. 특히 그가 생활하던 활래정은 인공 연못 위에 세워진 운치 있는 누각으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선교장은 수리를 거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실내장식품 중 일부는 유실되거나 도난당했다. 이곳에서 청년기를 보낸 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서 깊은 전통 한옥이 대대적으로 소실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때. 이후 새마을운동으로 다시 한번 상당수의 한옥이 철거되었고, 현재는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것들마저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1960년대에는 한옥이 아주 많았어요. 한옥이 특별한 가옥 형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사는 ‘집’이었던 거예요. 1970년대 중순까지 서울에 한옥은 80만 채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어 7000~8000채밖에 남지 않았죠. 지방의 경우 전라도나 강원도 영동 지방, 특히 명주군 주변을 제외하면 한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유럽에서는 단지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고 해서 철거하는 경우는 없다.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먼저 오래된 건물을 보물처럼 아끼고 지킨다.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지방의 정체성이고 국민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싫으면 팔고 다른 곳에서 살면 되지, 왜 굳이 부수고 새 집을 지으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재개발과 함께 사라지는 서울의 정체성, ‘한옥은 불편하다’라는 편견부터 버려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옥 보존에 둔감한 것에 대해 그는 ‘잘못된 교육’을 이유로 꼽는다. 모두가 문화재의 가치는 강조하면서도 정작 한옥이 전통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교육하는 데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옥이 불편하다며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한옥에 대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 “흔히들 한옥은 손이 많이 간다, 불편하다고 말해요. 한옥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건물이든 20년, 30년이 되면 보수 관리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미국 동부 지역에 가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예전에 지어진 집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유럽엔 중세시대의 고택들과 고성들도 많이 있죠. 그 건물들은 불편하기로 치면 한옥보다 더해요. 리모델링해서 건물의 외관은 형체를 보존하고 내부는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선조 때부터 살아왔던 집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래된 것은 구식이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업자들이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전통의 흔적을 우후죽순으로 없애는데도 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옥 고유의 형태와 기와, 돌, 나무 등 원자재는 그대로 살린 채 전선이나 배관 등 불편한 부분을 일부 수리하고 개조하면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바돌로뮤씨의 동소문동 한옥만 해도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그의 정성 어린 손길로 보수한 덕에 큰 문제없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단다. “부분적인 수리는 대개 손수 합니다. 20년 전 기와를 모두 내려서 수리를 한 후에 다시 올려놓은 후 지금까지 비가 새거나 하는 일 없이 튼튼하고, 지붕은 일 년에 두 번 올라가서 깨진 부분만 실리콘으로 붙여놔요. 열린 구조의 한옥이 갖고 있는 유일한 단점은 겨울에 춥다는 것인데 좀 보기 흉하긴 하지만 알루미늄으로 된 덧문을 만들어 온풍기와 함께 설치해놓으면 난방에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욕실이나 세탁실 등은 신식으로 만들어놓았지요.” 최근 한옥지킴이로 유명해진 그에게 어떻게 하면 한옥에 살 수 있는지 물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이미 때늦은 감이 있다. 전통가옥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한옥을 소개해주고 싶어도 남아 있는 한옥의 수가 적기도 하거니와 그마저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존폐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은 정체성이 없다고 해요. 한마디로 ‘서울은 재미없다’고 소문났어요. 옛 문화재 대신 빌딩숲과 현대식 건물들로 채워져 있잖아요. 보문동, 제기동, 효자동, 통인동, 옥인동, 낙원동, 안국동 쪽에는 아직도 한옥이 남아 있지만 반 이상이 도시개발계획 예정이랍니다. 종묘와 탑골공원, 인사동이 있는 종로거리를 재개발해 뉴타운을 만들겠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나마 정부가 지정한 한옥보호구역인 북촌한옥마을 역시 예전 한옥을 그대로 살린 것이 아니라 찍어내듯 새로 지어낸 한옥이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업자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한옥을 수리해 보존하기보다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길을 택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인이 한옥에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정부가 계획하고 지정하는 정책에 의해 고유의 주거형태마저 바뀌는 것은 그에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개발을 반대하며 한옥을 고집하는 그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왜 한국인이 하는 일에 외국인이 참견을 하냐는 것. 하지만 그는 우리의 문화를 우리 손으로 버리는 것이 씁쓸하고 안타깝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의 문화유산들이 뿌리 뽑혔다고들 많지만, 광복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새마을운동이다, 재개발이다 해서 전통문화를 쉽게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일본인이 하던 행동을 이제는 한국인들이 자행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한옥 관련 강의도 듣고 수많은 세미나, 심포지엄에 참가해보면 건축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기존의 한옥을 보존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한옥을 ‘새로 잘’ 지을 수 있을까만 궁리하지요.” 한옥에 살면서 오랫동안 연구한 덕에 그는 어떤 한국인보다 한옥의 가치를 제대로 알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한옥의 아름다움과 이로움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웃들을 초대해 한옥의 장점을 소개하고 2002년에는 집 뒤편에 붙어 있던 한옥 한 채를 더 사들여 해군의장대를 전역한 청년들의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다. 머물 곳이 없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 집을 나가면 다음 기수의 해군의장대 출신 학생들이 입주하는 형식이다. 가족이 없는 그에게 학생들은 든든한 가족이자 한옥의 관리자가 되어준다. 청소와 정원 관리를 도맡아 해준다고. 처음에는 한옥에 낯설어하던 젊은이들도 지금은 다채로운 한옥의 장점과 매력에 빠졌다. 한옥 알리기 발 벗고 나서, 한옥의 가치 함께 나누고파 한옥은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흙, 돌, 나무, 종이, 기와 등 자연 소재를 이용해 인체에 해롭지 않고 그 구조는 지형이나 위치, 계절을 고려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 심신이 편안하다고 한다. 한옥의 내부는 장식성과 심미성을 고려해 예술적으로 디자인되었다. 또 문살이나 창살, 병풍과 족자에 있는 글자와 문양들은 장수와 건강, 행복을 의미한다. “한옥의 난방 방식인 온돌은 또 어떻습니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면서 동시에 온 방이 뜨끈해지니 혁신적인 발명품이죠. 온돌은 세계 어떤 나라에도 없는 거예요. 풍수지리적인 요건은 물론이고 지반의 위치나 높이, 심지어 서까래의 각도와 길이까지 계산되어 있는 한옥은 예술과 철학, 과학, 역사성과 국민성이 응축된 완벽한 건축물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문화유산기금’이라는 단체의 명예이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문화유산기금은 기부금을 후원받아 오래된 한옥 등 전통 건축물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단체로 바돌로뮤씨는 각종 외부 강의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옥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 “가끔 한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옥응급수리센터’를 만들자고 제안을 해요. 한옥 고유의 형태는 살리고 지붕이나 문짝, 욕실 등 고장 나거나 불편한 부분들을 실비로 고쳐주는 거죠. 앞으로 정부는 재개발 부지나 구역을 지정하는 대신 한옥이 왜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한옥 살리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인보다 한국 문화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고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터 바돌로뮤씨. 유창한 한국어 실력 만큼이나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그의 한옥 사랑은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전통과 문화마저 쉽게 포기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곽도은(프리랜서)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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