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94 건 검색)
- 용인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총파업…“정년 단축에 9명 해고 위기”
- 2024. 12. 17 13:04지역
- ... 고수했다”면서 “현재 청소노동자 9명이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용인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임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용인시청부터 용인대까지 2.3...
- [정동칼럼]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지상으로
- 2024. 11. 06 20:23오피니언
- ... 휴게시설에서 제대로 쉬고 있을까? 상당수 청소노동자들이 그러하지 못하다. 나는 근래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렇게 휴게시설이 열악할 줄은 몰랐다. 올해 청소 일을 시작한...
- 정동칼럼오건호
-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 2024. 11. 03 16:22사회
- ... 마련돼 있어도 공동주택 노동자들의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노동자 휴게권이 주목을 받은 것은 2019년 8월9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다. 당시 67세...
- 숭례문 지하차도 살인사건…60대 여성 청소노동자는 새벽 5시, 나홀로 일했다 [플랫]
- 2024. 08. 05 11:10사회
- ... 피습당한 60대 청소노동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가 놓여 있다. 서울 중구청 소속 용역업체의 청소노동자인 60대 A씨는 지난 2일 오전 5시경 7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병원에 이송됐으나...
- 플랫
스포츠경향(총 10 건 검색)
- KBS 청소노동자 계약기간, 기존 1년에서 3년 단위로 연장
- 2020. 11. 26 16:46 연예
- KBS 전경. 권호욱 선임기자KBS 청소노동자들의 근로 계약 기간이 기존 1년에서 3년 단위로 연장됐다. KBS비즈니스와 민주노총 공공연대 노조는 26일 노사 단체교섭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0년 임금 및 단체 협약에 관한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KBS 청소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계속 투쟁을 벌여왔다. 합의에 따라 회사는 내년부터 환경직 근로 계약을 갱신할 경우 계약기간을 3년 단위로 하기로 했다. 갱신되는 계약 기간은 만 68세가 되는 해의 12월 말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사측은 “근무 태도와 건강 등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만 68세까지는 고용계약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 정규직과 동일하게 병가를 연간 최대 60일 범위에서 보장하기로 했다. 또 월 2시간 내로 노조 조합원 교육 시간을 보장하고 조합 간부에 대해서는 근로시간을 면제한다. 임금 협약에 대해서는 경영상 어려움을 고려해 현행 유지하기로 했다.
- KBS 청소노동자들 “정규직 전환 안 되면 파업 불사”
- 2020. 11. 11 17:36 연예
-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서경지부 KBS 비즈니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달 6일 서울 영등포 KBS 신관 앞에서 진행된 삭발식에서 병가 실시 및 1년짜리 근로계약서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KBS 청소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총력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KBS비즈니스지회는 11일 여의도 KBS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없으면 뉴스도 콘서트도 드라마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며 “1년짜리 계약서를 없애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KBS 청소노동자는 자회사인 KBS비즈니스에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돼 있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사측은 노조와 교섭에서 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근로계약은 1년이나 3년이나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세”라며 “우리는 고용과 병가 등을 보장하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반박했다. 노조 측은 조합원 98%가 파업에 찬성한 만큼 회사가 개선안을 내놓지 않으면 파업 등 총력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 고 노회찬 의원 떠나던 날, 국회 청소노동자들도 오열했다
- 2018. 07. 27 15:07 생활
- 27일 국회에서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영결식이 진행되던 중 국회 청소노동자들도 고인을 애도했다. 민주노총 페이스북 갈무리민주노총은 27일 오전 페이스북에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고인을 추도하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면 작업복 차림의 청소노동자들이 나란히 서서 손을 모은 채 묵념을 하고 있다. 이 게시물에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오열하는 청소노동자를 위로하는 사진도 함께 실렸다. 고인은 지난 2016년 국회사무처가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하자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라면서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 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린다”면서 “노회찬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페이스북 갈무리
- “2017년 맞아?” 청소노동자에게 시급 3천750원 주는 빌딩
- 2017. 08. 30 10:15 생활
- 청소노동자에게 시급 3천750원을 지급하는 빌딩이 있다. 3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친 빌딩 청소 아주머니 시급’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발견한 공지문을 사진으로 찍어 게시물에 첨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 화면 캡처 사진 속 ‘××빌딩 상가 번영회의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지문에는 “청소 직원 아주머니 그동안 급여 90만 원, 시급 3천750원이었으나 정부 정책에 의하면 2018년부터 시급 7천5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며 “ ××빌딩 직원 급여도 인상이 불가피하여 여러분 상의코자 번영회를 소집한다. 바쁘시더라도 많은 참석 바라며 회의에 불참시 참석자의 결정에 동의하시는 걸로 결정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 당연히 올려드려야지 세상에” “2017년에도 이런 일이” “오타라고 믿고싶다” “완전 충격이다...” “노예 계약...?” “미치겠다 급여가 90만원이라니” “헐? 미쳤다” “사람이 일한 댓가는 줘야죠... 대체 무슨” 등의 반응을 보였다. 2017년 현재 최저 임금은 6470원이며, 2018년 최저임금안은 전년도보다 16.4% 인상된 7,530원이다.
- 청소노동자
주간경향(총 3 건 검색)
-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11)홍대 청소노동자들에겐 ‘학생들의 연대’가 있었다(2021. 07. 23 15:03)
- 2021. 07. 23 15:03 사회
-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가 2007년 7월에 출범하면서 대학 비정규직 용역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본격 시작됐다. 대학교 청소노동자 조직 1호는 고려대학교 분회다. 2002년 시도는 실패했지만, 2004년 용역 재계약과 맞물린 노동자들의 불만이 노조 결성의 불을 댕겼다. 2007년 성신여대, 2008년 연세대, 2010년에는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이화여대의 어느 청소노동자는 밥을 사먹기 힘들어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화재위험이 있다고 학교가 유난을 부리는 바람에 밥과 국을 데워먹기 힘들어 겨울이면 찬밥을 먹었다고 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가 2009년 9월부터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파악하면서 듣게 된 얘기다. 어느 학교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일하는 사람에 비해 턱없이 좁았고, 또 다른 학교는 남자 화장실을 개조해 휴게실을 만든 탓에 화장실 냄새가 지독했다. 2012년 6월 청소노동자들이 홍익대학교 앞에서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라는 주제로 행진 행사를 열었다. 빗자루 등 청소 도구를 피켓 삼아 80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홍익대 일대에서 최저임금 보장 및 비정규직 철폐등을 외쳤다. / 김기남 기자 2010년 3월 3일, 신촌에서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1차 거리 캠페인이 있었다. 밥 한끼 따뜻하게 챙겨먹기 어려운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박탈당한 권리를 알리기 위해 공공노조와 사회단체가 진행한 캠페인이다. 노조 만들자 집단해고 2010년 당시 홍익대학교에는 170여명의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이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었다. 용역회사는 향우종합관리와 ㈜인광엔지니어링 두 업체였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있는 인근 학교들과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견주며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했다. 주변 다른 대학들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과 비교하면 2시간이나 더 일한 셈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의 임금(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 주40시간 근무한다면 월급은 약 86만원은 넘어야 한다)과 한달 9000원(하루 300원×30일)의 식대를 받았다. 언제든 쓰레기가 생긴 곳에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휴게시간은 사실상 ‘대기시간’이었다. 근무지 외 청소노동 등 부당한 업무도 요구받았지만,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가 있는 대기실을 (학생) 두세명이 세 번씩 방문했어요. 처음엔 노조 얘기 안 하고 설문조사만 하다 두 번째 왔을 때 노조 얘기하는데 귀가 솔깃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도와주면 노조를 만들겠다 했죠.”(<나는 청소노동자다_홍익대 청소노동자, 김금옥 씨> 작은책) 2011년 배우 김여진씨가 주축이 된 트위터 모임 ‘김여진과 날나리 외부세력’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농성을 지지하며 조선일보에 낸 지면 광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른 학교에 비해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이화여대는 노동조합 결성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홍익대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만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10년 1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사항은 ▲최저임금을 넘어선 생활임금 보장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 ▲용역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 해결 ▲제대로 된 쉴 곳, 밥 먹을 곳 보장 ▲이 모든 문제를 진짜 사장, 대학총장이 책임질 것 등이다. 그러나 학교는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설 연휴가 끝나기 전날인 2011년 1월 2일 새벽에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조건으로 3개월 연장하자는 제안을 용역회사가 거절했다고 했다. 용역회사가 바뀌어도 그대로 일했던 관례가 있었으므로, 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노동자들이 출근 도장 찍으려는데 출근 카드가 없었다. 학교는 “용역업체 측의 계약 포기가 주원인”이라고만 했고, 결국 노동자 170명 모두를 해고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장기간 농성에 들어갔다. 2011년 2월 20일, 농성 49일 만에 학교 측은 새로 계약한 용역업체들, 공공노조 서경지부와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한 잠정적인 합의안에 서명했다. 2011년과 2021년 홍익대분회 조합원들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보여준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신감도 얻었다. 배우 김여진씨가 1월 7일 농성장을 방문해 조합원들과 함께 밥을 차려먹고 농성장 분위기를 전하는 글을 쓰면서 트위터 이용자들과 만든 모임이었다. 이들은 조선일보 광고 게재, 우당탕탕 바자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덕분에 학생들과 시민의 연대가 이어졌다. 2011년 9월 경희대,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시립대, 인덕대, 2013년 이후 중앙대·광운대·서울여대·카이스트까지 노동조합 결성 분위기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는 학생들의 연대가 큰 원동력이 됐다. 2010년 3월 서울 신촌역 앞에서 열린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에 참가한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밥 한끼’의 의미 등을 적어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한창이던 올해 2월 2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공공서비스지부는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고용승계합의 10주년 맞이 LG트윈타워 고용승계 촉구 토론회’를 열었다. 2011년 2월 20일 홍익대분회의 투쟁이 마무리된 날에 맞춰 열린 이 토론회 참가자들은 10년 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아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홍대와 LG 측의 태도, 집단해고 정황과 논리는 정말 판박이다. 두곳 모두 노동조합을 만들자 용역계약을 종결하고 고용승계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집단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도 청소노동자들의 두 싸움이 이렇게 닮았다는 것은, 여전히 청소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울산과학대도 7년째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고, 신라대 청소노동자들도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42일 이어오던 싸움을 지난 6월 승리로 마무리했다. 도시 곳곳에서 지치지 않고 싸우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엄한 인간으로 일하고자 하는 모든 행보를 지지한다. 그리고 6월 26일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참고자료 <우리가 보이나요>(이승원, 정경원·2011·한내)
-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청소노동자 사망과 별점 테러(2021. 07. 23 15:03)
- 2021. 07. 23 15:03 사회
- 괴롭힘은 특수하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라 노동 통제의 일상적 수단이 됐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노동 규율 방식,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 그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사망했다. 노동사고는 끊이지 않고, 노동자들은 괴롭힘당하다 죽어간다. ‘괴롭힘’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고인에게 강요된 필기시험의 목적은 괴롭힘을 통해 노동자를 길들이는 것이고, 이런 광경은 한국사회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괴롭힘은 특수하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라 노동 통제의 일상적 수단이 됐다. 서울대 학생회관 1층 식권 판매소 옆에 마련된 청소노동자 추모공간/우철훈 선임기자 규율 혹은 훈육(discipline)은 현대 자본주의 노동의 핵심이다.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함을 의미한다. 규율된 노동의 등장은 인류사의 충격적 사건이었다.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미친 듯이 나사를 조이다가 기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컨베이어 벨트는 단순히 기계 부품을 옮기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을 기계의 리듬에 종속시키는 규율 장치다. 물론 규율은 공장 노동만의 특징이 아니다. 서비스 노동자는 매뉴얼에 따라 친절하게 인사하는 법을 연습한다. 지식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지만, 임금의 대가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괴롭힘이라는 노동 규율 노동에 대한 규율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노동이 사회적 활동인 이상, 규율은 필수 요소다. 특히 노동현장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통제와 지시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오로지 이윤과 효율적인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통제장치도 있다. 그중 가장 악랄한 것이 바로 괴롭힘이다. 도대체 왜 서울대는 청소노동자에게 업무와 상관없는 필기시험을 요구했을까? 괴롭힘을 통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자존감을 파괴한다. 취약한 노동자의 영혼에 ‘당신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으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 주입된다(물론 이런 식의 권력 행사가 노동현장만의 특징은 아니다.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사용자와 노동자는 노동계약의 두 당사자가 아니라,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 분리되고,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윗사람’의 명령이 노동을 규율한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노동자가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직장 갑질’을 검색해보라.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 괴롭힘이 있다. 그 수준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면, 그때서야 사회적 관심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괴롭힘이 이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과연 그것을 ‘예외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한때 체벌이 교육의 정상적 수단이었고, 뇌물이 사회적 관계의 정상 형태였던 것처럼) 괴롭힘은 오히려 일상적 노동 관리수단 중 하나가 아닌가? 노동자가 상급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지시에 순응하지 않을 때, 가장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응책이 괴롭힘이다. 가해자는 회사 조직일 수도, 특정 개인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성격 이상한 직장상사의 일탈행위’로 축소할 수는 없다. 괴롭힘은 노동 규율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폭력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의 별점 괴롭힘 플랫폼 노동은 노골적으로 괴롭힘을 활용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은 그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얼마 전 환불 문제로 고객과 논쟁하던 식당 운영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주간경향(1437호) 기사 ‘별점노동의 시대’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별점 앞의 노동자는 아무 보호장치 없이 괴롭힘에 노출된다. 플랫폼은 기업, 노동자, 고객의 역할을 뒤집는다. 노동자는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취급된다. 기업은 노동자와 고객을 연결할 뿐 서비스 제공 과정을 책임지지 않는다. 고객은 단순한 서비스 구매자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른다. 즉 사용자가 가지고 있던 노동 통제 권력이 고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고객의 취향과 요구는 절대적이다. 노동자가 그것에 맞설 방법은 없다. 고객과 노동자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협상할 방법도 없고, 단체 행동도 불가능하다. 결국 노동자는 고객에게 완전히 종속된다. 고객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완전히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역할을 본인이 직접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사관계에서 다루어지던 문제가 노동자와 고객 사이의 갈등으로 전환된다(얼마 전 발생한 택배 노동자와 아파트 주민 사이의 갈등을 떠올려보자). 플랫폼이 고객 권력을 강화할수록 기업은 더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기업 권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의 명령은 플랫폼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그 작동 방식은 기업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고객의 이름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중간착취’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플랫폼 노동을 ‘통제 없는 자유로움’으로 묘사한다. 출퇴근 시간도 없고, 잔소리하는 직장 상사도 없이,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이윤의 수단인 이상, 규율 없는 노동은 불가능하다. 플랫폼 노동의 (표면적) 규율 권력은 고객으로 이동했고, 그들은 언제라도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실, 별점 평가의 작동 원리는 이미 괴롭힘의 가능성을 전제한다(고객 만족은 별점 5개의 칭찬, 불만족은 별점 1개의 모멸감). 고객과 노동자가 대립할 경우, 고객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은 별점 테러다. 고객 개인의 양심을 제외하면, 그런 식의 괴롭힘을 차단할 장치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향한 괴롭힘은 사회적 노동 통제의 한 부분이다. 한국의 위계적 사회관계, 노동시장의 심각한 불평등이 그것의 이상적 환경을 구성한다. 플랫폼 노동은 거기에 최악의 조건을 더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괴롭힘을 통해 가장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이들, 가장 취약하고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괴롭힘이라는 개별 행위를 규제하거나, 사후 조치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플랫폼 노동의 작동 방식을 손대지 않고, 별점 괴롭힘을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노동 규율 방식,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 그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박이대승은 정치철학자이자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이다. 프랑스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교에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소수화 전략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변화를 위한 소수자의 정치전략」,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를 썼다.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 [렌즈로 본 세상]청소노동자 아주머니에게 불어닥친 ‘비바람’(2016. 09. 06 11:40)
- 2016. 09. 06 11:40 사회
- 하루 종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김포공항 순환버스 정류장 앞에서 한 어머니가 공항공사 건물을 바라보며 삭발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인 손경희씨(51)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삭발하고 단식을 하며 요구하는 조건은 사용자들과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대화 대신 경고장이었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천막 설치도, 처지를 하소연 할 언론과의 만남도, 상급노조의 지원도 모두 안 된다는 협박이었습니다. 우리 사회 낮은 곳에서 하루 11시간 이상씩 쓸고 닦으며 삶을 이어온 이들이 정부 지침대로 시급 8200원에 상여금 400%를 요구하자 이들을 고용한 회사도 원청인 공항공사도 대화에 나서지 않고 이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하청회사 직원이라고 온갖 차별을 당하는 청소노동자들도 한 가정의 소중한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앞세워 약자를 괴롭히는 일은 멈추고 엄마들의 눈물을 닦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렌즈로 본 세상
레이디경향(총 1 건 검색)
-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후 다시 ‘청소노동자’로 돌아간 김순자씨
- 2012. 05. 04 18:29 화제
- 출근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커피도 마시고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합니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청소 노동자 맞지요? 많은 분들의 응원 참말로 고맙습니다. -김순자 트위터(@kimsunja0411)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19대 총선이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선거를 치른 만큼, 후보들의 당락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며 후폭풍도 거세다. 각 정당들은 선거 여파에 대한 수습과 함께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통을 치료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선자와 지자체 간에도 선거 과정 중 벌어진 갈등을 해소하고 하루빨리 술렁이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성과보다는 다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를 더 많이 도출한 채 막을 내린 4·11 총선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한국 정치와 사회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며 박수를 이끌어낸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가 바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선거에 나섰던 김순자씨(60)다. 청소노동자 출신으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기성 정치판에 일침을 가한 김순자씨는 ‘말’이 아닌 일상 속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짜 ‘정치’임을 온몸으로 역설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TV 토론회 등에서 선보인 가감 없는 발언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순자 어록’이란 이름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선거일 다음날부터 바로 일터로 복귀한 김순자씨는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당선 뒤 국회의원 자격으로 낡은 관습과 잘못된 정책들을 직접 싹싹 쓸어내겠다는 다짐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의 이유를 발견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일이 쏟아진데다 여기저기서 그녀를 찾는 이들이 많아져 선거운동 기간만큼이나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2일 새벽에 출근해서 하던 대로 한 바퀴 돌며 청소를 끝내고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도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시간을 가졌죠. 당면한 노조 현안들도 하나 둘씩 처리하고, 이렇게 언론사 인터뷰도 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울산 지역을 비롯해 집회 현장 지원도 나가고 있고, 이곳저곳 와달라고 부탁하는 곳이 많아져서 쉴 틈이 없어요.” 선거운동 당시 김순자씨의 모습. 인터뷰가 이루어진 이날만 해도 오전 내내 학교 건물 청소를 끝낸 김순자씨는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측과의 임금 협상 교섭회의에 참여했다. 그러고는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뒤 서둘러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 자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 참석했다. 다음주만 해도 대학교 및 위원회 등 지원 요청이 들어온 각종 단체를 방문할 계획이 잡혀 있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실천과 행보를 거울삼아 연대의 원동력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연락을 해오고 있다.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고자 마음먹었던 김순자씨로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고마운’ 부름들이다. “2007년 우리가 학교 측과 투쟁할 때도 지역 노조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해주고 힘을 줬었거든요.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도 선거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도움을 얻었어요. 특히 ‘우리들의 바람을 대변해줘서 고맙다’라며 오히려 제게 더 큰 힘을 보내주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는 이제껏 제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고, 또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어요. 제가 거꾸로 그들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고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면 가능한 한 어디든 달려가서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안타깝게도 국회 입성은 좌절됐지만 김순자씨는 이번 선거 출마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데 대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결코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만든 것. 그리고 청소노동자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결국 그만큼 정치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는 점만으로도 금배지를 단 것 이상의 빛나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종종 이야기했던 게 국회에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 출신 의원이 세 명만 있었어도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 조건, 처우 문제가 지금과 같진 않을 거란 거였어요.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한없이 약했고 마치 세상에서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세상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노동자’로서 저와 같은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뜻을 대변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고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이에 대해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청소노동자의 인간 선언이 이루어졌다’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예전 같으면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청소노동자’가 사회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본인들 스스로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면, 이제는 들러리가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발맞춰 걸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다면 점차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지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희망도 품어보게 됐다. 상식과 약속이 통하는 사회 물론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입장에서나 개인으로서나 쉽지 않은 결심을 한 만큼, 선거 결과에 거는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만약 당선이 됐다면 ‘비정규직 악법’ 철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및 처우 개선 등에 큰 힘을 실을 수 있었을 테고, 따라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1 선거운동 중, 김순자씨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담아 빗자루로 쓸어 없애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와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주고받고 있다. “저는 제가 당선될 가능성이 딱 절반 정도라고 생각했었어요. 다만, 선거에 나설 결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까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바람에 준비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까지 20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유권자들은 만날 시간도 많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도 한정되더라고요. 차근차근 좀 더 전략적으로 준비해서 더 제대로 목소리를 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도 돼요.” 한동안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을 해보면서 그녀는 현실과 정치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또 평소 생각하고 말하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기존의 정치권이 서민들의 생활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왔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4월 9일에 열렸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가 끝난 이후 많은 지지와 주목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반응이었어요. 사실 제가 한 말들은 토론회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늘 하던 이야기들이었거든요. 당에서 토론회 일정이 잡히고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저임금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도둑질을 해야 합니까, 그냥 굶어야 합니까?’라든가 ‘있는 법도 안 지키는 판국에 무슨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와 같은 이야기를 했죠. 거기서 제가 좀 말투가 세다 보니(웃음) 당 관계자 분들이 예쁜 말로 다듬어주시기만 한 거예요. 사실 제가 자유 토론이 뭔지, 토론 규칙이 뭔지, 생전 그런 걸 해봤어야 알죠. 잘 모르니까 그냥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준비해온 자료만 수십 장이 되던데 오히려 핵심을 벗어나서 어렵게만 이야기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김순자씨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권이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결코 와 닿지 않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모아놓고 결론도 없이 주야장천 주고받고만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철에나 바짝 유권자들을 찾아다니고 평소에는 언제나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에게 질려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무관심해지면서 이렇게 모두가 어려운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2000년에 비정규직에 관한 공약을 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잖아요. 우리 삶을 돌아봐도 어느 것 하나 발전한 게 없고요. 처음 제가 진보신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더 이상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였어요. 저도 처음에는 돈 있고, 많이 배우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국회의원도 하고 정치를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고용승계 보장 투쟁을 통해 우리 노조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시켰던 것처럼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의 삶도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어요. 진보신당 동지들을 비롯해 지지를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김순자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조원들. 돌이켜보면 힘든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소노동자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희망을 전하기 위해 나선 그녀에게 용기와 힘을 준 건 오히려 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전국 곳곳을 돌며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급식조리원 등을 만나는 동안 “우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있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앞으로도 꾸준히 그들과 함께 연대하며 잘못된 것을 함께 고쳐나가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거란 다짐을 했었다. “선거운동 기간 만난 분들에게 만약 떨어지더라도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적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전국적으로 다녀보니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근무 시간 식사비를 안 주는 회사가 허다해요. 그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처지인데 밥까지 사서 먹으면 월급은 더 줄어드는 셈이고요. 그리고 그들에게도 차가운 지하 구석방이나 계단 한 구석이 아닌 식당에서 똑같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무작정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서 최소한 사람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당한 노동에 따른 보장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는 그날까지 제가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이에요.” 김순자씨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부디 선거운동 기간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후보가 앞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번만큼은 꼭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주길 바란다고. “정치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될 세상, 노동자들이 정치인들을 믿고 사회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도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 생각해요. 꼭 하나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평범한 아줌마였던 제가 노조를 만들고 격렬하게 투쟁을 하고 또 이렇게 선거에까지 나가게 된 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내 문제를 내가 부당하다고 먼저 말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스스로 소리 내고 싸울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거예요. 모두가 불합리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박동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