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7,338 건 검색)
- 청와대 분수광장 차량 돌진 ‘꽝’…운전자는 10대
- 2024. 11. 21 09:20사회
- ... 사고가 발생해 화단과 울타리 등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0시15분쯤 서울 종로구의 청와대 분수광장으로 10대 후반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 한 대가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 영상
- 명태균 “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했다”…김건희에게 대통령실 이전 조언 정황
- 2024. 11. 08 10:38정치
- ... 취지의 이야기를 강조했다. 또 “김종인 위원장 사무실에서 보니까, 15층이라 산중턱에 있는 청와대가 딱 잘보이데”라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번 대화가 2022년 대선 직후 녹음된 것으로...
- 尹-명태균 통화 내용 파장
- 청와대 만찬주 영동의 ‘여포의 꿈 화이트와인’, 싱가포르 공략 나선다
- 2024. 10. 23 11:45경제
- ... 영동군은 설명했다. 이 와인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동군은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와인컨설팅...
- 와인싱가포르여포화이트와인영동
- “청와대 기생집” 양문석, “보선 원인 제공” 김영배···여당, 국회 윤리위 제소
- 2024. 10. 14 10:56정치
- ...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승판서 앞에서처럼 공짜 공연을 시키느냐. 이분들이 기생인가”라며 “(청와대를) 기생집을 만들어 놨나. 이 지X 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해병대 단체대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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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화 전 청와대 행정관, 남양주시 ‘교통을 묻다’
- 2023. 11. 29 15:53 생활
- 이인화 전 청와대 행정관이 출간한 ‘행복한 출퇴근길’ 포스터 이인화 전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실 행정관이 저서 ‘행복한 출퇴근길’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이번 출판기념회는 오는 12월 3일 오후 2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The늘봄 4층 아리아홀(진접읍 금강로 1845)에서 열린다. 저자인 이인화 전 청와대 행정관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주거교통전문가다.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 학사, 연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도시공학) 학위를 받았다. 국회 보좌관과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실 행정관 그리고 국토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거치며 우리나라 주거와 교통 분야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 박기춘 국회의원 비서관 시절, 지금의 남양주 주택·교통의 기반을 만드는데 함께 기여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 전 행정관은 저서 ‘행복한 출퇴근길’에 남양주 시민의 숙원인 ‘교통문제’에 대한 본인의 국정 참여 경험과 철학을 담았다. 이 책은 변화하는 교통과 주거정책의 핵심을 살펴보고, 남양주를 비롯한 대한민국 교통현안의 해결을 위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담았다. 특히, ‘교통이 최선의 복지다’, ‘선교통 후입주’라는 저자의 평소 생각과 소신을 바탕으로 편리한 교통이 ‘삶의 질’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에세이 형식으로 잘 표현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출판기념회에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참석해 무게감을 더할 예정이다. 전현희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비롯해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저자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과,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 정치인들의 성대모사로 유명한 개그맨 이상민씨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의 진행은 개그맨 김경식이 맡는다. 이 전 행정관과는 라디오 방송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 옥주현 청와대 무대, 감동 두배
- 2023. 10. 03 09:22 연예
- TOI 엔터테인먼트 옥주현이 가을 정취를 품은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을 마무리했다. 옥주현은 지난달 30일까지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마무리,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무대들로 존재감을 빛냈다. ‘화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에서 옥주현은 모두가 기다려온 솔로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귀를 매료시켰다. 옥주현은 패티 김의 ‘사랑은 생명의 꽃’을 부르며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가 하면, 풍부한 성량으로 생동감 있는 무대를 완성해 감탄을 샀다. 여기에 ‘뮤지컬 여신’ 옥주현의 음색이 빛났던 듀엣 무대도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옥주현은 길병민과 함께 ‘Beauty and the Beast’(뷰티 앤 더 비스트)를 불러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TOI 엔터테인먼트 옥주현은 클래식한 선율과 어울리는 맑은 고음을 들려주는가 하면, 길병민과 화음을 쌓아가며 듣는 감동을 배가시켰다. 듀엣 무대로 화합의 장을 꾸민 옥주현은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하며 자리를 빛냈다. 옥주현이 무대를 꾸민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은 국악방송이 추석연휴를 맞아 개최한 공연으로 국악, 클래식, 재즈, K-POP 등 다양한 장르의 K-뮤직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을 성료한 옥주현은 현재 뮤지컬 ‘레베카’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10월 17일 열리는 ‘브랜든리 OST 콘서트’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 옥주현, 한가위 청와대 무대
- 2023. 09. 20 16:39 연예
- TOI 엔터테인먼트, 국악방송, 마틴엔터테인먼트 옥주현이 추석부터 풍성한 볼거리로 공연계에 훈풍을 몰고 온다. 옥주현은 오는 29일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과 10월 17일 열리는 ‘브랜든리 심포니 OST 콘서트’ 라인업에 합류, ‘최정상 보컬’다운 무대를 보여줄 예정이다. 추석 명절을 맞아 청와대 대정원에서 펼쳐지는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에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아티스트들이 공연에 참여한다. 29일로 공연을 확정지은 옥주현은 솔로 무대를 준비, K-뮤직의 대중적 확산에 의미깊은 발자취를 남길 예정이다. 옥주현이 무대를 꾸밀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은 공식사이트 접속자 수 폭증으로 인해 관람 신청 기간이 오는 21일 오후 6시까지 연장됐다. 화려한 라인업뿐만 아니라 옥주현의 화려한 무대가 예고되면서 관람 신청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10월 역시 옥주현의 활약이 기대된다. 옥주현은 10월 17일 ‘브랜든리 심포니 OST 콘서트’ 무대에 올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주요 넘버를 부른다. 옥주현의 보이스로 재탄생될 ‘프랑켄슈타인’이 기대되는 가운데, 지난 15일 ‘브랜든리 심포니 OST 콘서트’ 티켓팅 후 팬들은 “새로운 시도가 너무 기대돼요”, “옥엘렌, 옥에바 각인가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추후 국악방송을 통해 송출될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과 뮤지컬 넘버 무대가 펼쳐질 ‘브랜든리 심포니 OST 콘서트’까지 풍요로운 가을을 예고한 옥주현은 현재 뮤지컬 ‘레베카’로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옥주현은 뮤지컬 ‘레베카’에 서스펜스를 심어준 인물,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며 첫 관람인 관객부터 재관람객들의 극찬을 얻는 중이다. 이처럼 옥주현은 10월 중 방송될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을 비롯해 ‘브랜든리 OST 콘서트’로 관객들을 만날 계획이다. ‘2023 청와대 K-뮤직 페스티벌’의 관람 신청은 21일 오후 6시까지 공식 사이트를 통해서 가능하다.
- [화제의 책] 문재인 정부 1826일의 생생한 기록 ‘나의 청와대 일기’ 눈길
- 2023. 07. 30 12:53 생활
- ‘나의 청와대 일기’ 표지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일한 윤재관이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쌓은 기억을 세상 밖으로 풀어놓는다. ‘나의 청와대 일기’(한길사)를 통해서다. 저자는 ‘남북의 역사적 만남’으로 불리는 판문점 도보다리 일정 아이디어를 낸 인물이다. 2017년 대선 개표일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는 날까지 1,826일 동안 누구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문재인 정부를 지켜봤다. 청와대 사람들의 출퇴근부터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실생활 이야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과 엄격함,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치밀한 물밑 작업, 그리고 세월을 돌려 되돌리고 싶은 후회의 순간까지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상황이 일기 속에 생생히 담겼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청와대 본관과 여민 1·2·3관을 모두 거치며 수많은 동료와 함께한 저자는 전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로 인수위도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일했다.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서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국민에게 전하는 일을 했다. 그런 저자가 풀어놓는 청와대 뒷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와대라는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내 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무급 국회의원 인턴으로 시작해 뚜벅뚜벅 한 계단씩 올라 청와대 1급 비서관까지 지냈다. 24년 전 처절한 고립의 5·18에 연대의 손길을 건네준 비호남 출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국회를 찾아간 것이 오늘까지 이르게 했다. 2012년부터 이어진 ‘문재인’과의 동행 역시 그런 측면에서 운명이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경영대 겸임교수와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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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의 국방 B컷](7) 장군들 믿지 못한 청와대와 ‘오뚝이’ 방첩사(2024. 05. 17 16:00)
- 2024. 05. 17 16:00 정치
- 군사안보지원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정문에 부대 마크가 붙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는 군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전의 정부처럼 정권의 말을 잘 듣고 충성하는 장군들이 필요했다. 청와대는 장군들의 동향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주장했던 국군기무사령부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 정부가 ‘해편(해체 수준의 개편)’이라는 어려운 용어까지 사용해가면서 창설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지사)는 정권이 바뀌자 사라졌다. 대신 국군기무사령부는 국군방첩사령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조직을 더 탄탄하게 키우며 오뚝이처럼 군내 권력기관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첩사(기무사)를 대통령의 군 통치에 유용한 중요 기관으로 인식한 결과다. 방첩사 변천사 기무사, 안지사, 방첩사 모두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장교들의 동향을 관찰해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것이다. 명목은 ‘대통령 통수에 대한 보좌 기능’으로 군의 쿠데타와 부패 방지를 내세운다. 12·12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국군보안사령부는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가 계기였다.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 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通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국가안보와 군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고 기밀한 업무를 행하는 부대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기무사 촛불 계엄 문건을 빌미로 기무사를 2018년 9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했다. 군사안보를 통해 군 내 작전부대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무사 축소 수준과 부대 성격을 놓고 부딪쳤다. 송 장관은 기무사 해체를 주장했다. 그게 안 된다면 조직을 대폭 축소하려 했다. 송 장관은 기무사령관 계급을 중장에서 소장으로, 참모장을 소장에서 준장으로 낮추려 했다. 조 민정수석은 기무사는 군 사정기관이니만큼 민정수석실 소관이라면서 고위 군 간부들의 동향 파악을 더 강화하려 했다. 기무사 개혁을 할 청와대 주무부서는 국가안보실이지만, 실제로는 조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주도했다. 그 결과 탄생한 안지사는 이전까지 관행으로 해왔던 대령급 이상 진급 대상자의 인사자료, 소위 ‘세평’ 수집을 훈령으로 보장받았다. 또 그동안 없었던 국방부 담당 기무부대의 설치 근거도 안보지원사령부령에 포함됐다. 군 안팎에서는 되레 안지사가 기무사 시절보다 영향력을 더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군내에서 안지사로 간판만 바꿔 단 ‘도로 기무사’란 말이 돌 정도였다. 안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을 배제하고 (군 수뇌부 비리사항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에 직보할 개연성도 남겨두었다. 문 정부는 감사·검열, 직무감찰, 비위사항 조사·처리 등의 지속적인 감시 절차를 통해 군 조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해 검사 출신 인사를 안지사 감찰실장으로 임명했다. 안지사 역시 기무사처럼 정보기관이면서 수사권까지 가졌다. 안지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2022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정권의 첨병 대통령에게 직보까지 할 수 있는 방첩사령관(기무사령관·안지사령관)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중립’이 불가능한 자리다. 정권이 군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방첩사령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군 내에서는 야전군인 출신이라 하더라도 방첩사령관이 되면 ‘힘이 센 정치군인’으로 평가한다. 방첩사령관이 4성 장군으로 진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초창기 기무사령관이 대부분 임기제로 진급한 것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문 정부 시절 기무사 공군 부대장 출신인 전제용 안지사령관(공사 36기)은 이례적으로 임기제 진급을 두 차례나 하면서 조종사 출신 동기생보다 1년 3개월이나 빨리 중장으로 진급했다. 특혜 진급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장경욱 기무사령관(육사 36기)이 군 수뇌부 관련 보고로 청와대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려 취임 6개월 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쫓겨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결과가 극과 극이었다. 장 기무사령관은 전역 후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정권이 바뀌자 주이라크 대사로 임명됐다. 문 정부의 마지막 안지사령관은 이상철 중장(학군 28기)이었다. 그는 육군 제5사단장으로 당시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였던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을 잘 마무리한 공적을 인정받아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육군의 주류인 육사 출신이 아닌 점이 고려됐다. 그러나 그는 정권이 바뀌자 22대 총선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받았다. 문 정부 핵심 인사들 입장에서는 ‘배신’을 당한 셈이다. 어찌 보면 그의 변신은 예고됐던 것인지 모른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육사 41기)은 남영신 안지사령관(학군 23기)의 후임 장군을 두 차례 청와대에 건의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방부 장관 동향도 감시해야 하는 게 안지사령관의 임무인데, 장관이 추천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서 한양대학교 학군(ROTC) 출신인 이상철 5사단장을 안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현재 방첩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9년 후배인 여인형 육군 중장(육사 48기)이다.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육사 38기)의 육사와 고교 10년 후배이기도 하다. 정권의 최측근 사령관이라는 의미다. 군인들은 ‘방첩사의 힘은 동향 파악과 대통령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방첩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뇌부가 숙청당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조직을 지키는 나름대로 대응책을 발전시켜왔다. 대표적인 것이 정권 교체기에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를테면 여당이 계속 집권할 때와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를 각각 대비해 보고서를 두 가지로 만든다. 보수정권용 보고서와 진보정권용 보고서를 다 만들어놓고 준비하는 조직이 방첩사다. 군 인사를 해온 정권이 군부를 기회주의 집단으로 만든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다. 문 정부의 정치적 잣대에 따른 인사는 기무사 계엄문건 처리 과정에서도 불거진다. 문건에서 계엄령에 동원되는 것으로 기술됐던 주요 부대의 지휘관 출신 상당수가 진급 대상자에서 배제됐다. 계엄 문건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을 장군들까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정부가 충성을 기대했던 군 고위인사 상당수는 전역 후 등을 돌렸다.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39기)과 이왕근 전 공군참모총장(공사 31기), 최병혁 전 한미연합사령관(육사 41기) 등 예비역 대장들은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이 전 총장은 주콜롬비아 대사로, 최 전 사령관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임명됐다.
- 박성진의 국방 B컷
- “청와대 미술품, 이번 기회에 싹 정리해야”(2022. 05. 13 14:18)
- 2022. 05. 13 14:18 문화/과학
- ㆍ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청와대가 소장했던 미술품들의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지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여전히 종로구 청와대에 남아 있는 것으로 5월 12일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청와대 미술품의 용산청사 이전이나 관리 문제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새 청사로 미술품들을 옮겨오지 않더라도 앞으로 들어올 미술품들을 고려해 용산청사 내에 수장고는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실·대통령경호처에 확인한 결과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모두 700여점(대통령비서실 606점·대통령경호처 135점)에 달한다. 이중 190여점만 정부 공식 관리 미술품으로 등록돼 있다. 청와대 미술품을 처음 전수 조사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이고, 그 일부가 2018년 처음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년에 맞춰 31점을 골라 청와대 사랑채에서 ‘함께, 보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하지만 소장 미술품의 도록이 제작됐거나 공개된 적은 없다. 지난 4월 말 문재인 정부의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총무비서관실에 확인한 결과 5월 초 정부 공식 관리 미술품으로 등록돼 있는 190여점의 도록을 처음 공개한다”고 밝혔지만 도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를 통해 청와대 소장 미술품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미술품 목록 작성에 참여하고 수시로 청와대 장식 등을 조언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는 소장 미술품들에 대한 전문기관의 평가에 참여했다. -청와대 미술품을 언제 직접 확인했나.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 청와대에 처음 들어가 미술품과 각종 집기 등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예술품 재배치와 정리를 위해 많을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적을 때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총무비서관실 부름을 받아 들어갔다.” -당시 청와대에선 어떤 조언을 구한 건가. “이 그림을 어디에 걸까, 이 빈 벽에는 어떤 그림을 걸면 좋을까, 향후 미술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해줬다. 청와대의 상당수 벽은 중간중간 구분이 돼 있어 그림 크기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김학수 ‘능행도’ -청와대가 소장한 미술품 상당수는 베일에 싸여 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처음으로 물품 재고 조사를 했다. 이때 미술품들이 사무 집기, 비품과 함께 처음으로 목록화가 됐고, 이후 조달청의 물자관리법에 미술품을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전수조사해 엑셀로 정리했다. 작가명·작품명·제작연도는 물론 취득일조차 알 수 없는 작품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물품 재고 조사 때 처음 대장에 올리면서 구입 일자를 이때로 적는 바람에 1994년에 구입한 작품이 제일 많은 것처럼 됐다.” -좋은 작품이 있었나. “당시 경호처가 소장했던 작품 중 괜찮은 작품 3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해 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에 대해 전문기관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나도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나마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2014년 도자 1점과 사진 1점, 2017년 도자기 16점은 손·망실 처리했다. 너무 수준이 떨어져서였다.” -나머지는 괜찮은 작품이었나. “감정 시 감정의뢰인과 비밀유지 조항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쓸 만한 작품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쓸 만하다는 것은 미술관에 소장할 만한 미술사적·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 그나마 노태우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본관을 새로 지으면서 새 건물에 맞춰 주문 제작했거나 구입한 작품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정은영 ‘초하’(1969) -어떤 작품이길래. “본관 1층 왼쪽에 걸려 있던 유양옥의 ‘행차도’와 오른쪽에 걸려 있던 김식의 ‘수렵도’, 대회의실 입구에 걸려 있던 월전 장우성의 ‘군학도’, 그리고 송규태의 ‘일월곤륜도’와 ‘연화도’, 나정태의 ‘십장생문양도’ 등이다. 장우성의 작품은 청와대가 20여점 정도 소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교적 소품이었고 당시 인기 있었던 장미를 그린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청와대 소장 작품 중 최고가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에 구입해 춘추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설치한 백남준의 ‘비디오 산조’다. 2014년 당시 평가 가액이 3억원 정도였다.” -그외에 기억하는 미술품은 어떤 건가. “서세옥의 ‘백두산 천지도’, 김기창의 ‘아악’과 ‘산수’, 민경갑의 ‘설경’, 천칠봉의 ‘풍경화 계곡’, 박광진의 ‘풍경화 계류’와 ‘가을풍경’, 오승우의 ‘풍경화 망’ 등이다. 김형근의 ‘과녁’을 비롯해 국전에서 수상한 작품도 여러점 소장하고 있다.” 박광진 ‘불국사의 가을’(1978, 유화, 182x132.4cm) -청와대 소장 작품 중 뛰어난 작품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뭔가.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호남지역 작가 20여명이 대통령 생가터만 남아 있던 신안군 하의도의 풍경을 그려 전시를 한 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걸 대통령이 요구했겠나. 그런 식으로 청와대에 무조건 보내진 작품들도 꽤 있더라. 그런데 청와대는 항온·항습이 안 돼 작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북악산 기슭에 있어 습도가 높아 오래전 바른 벽지는 우글우글해지고 곰팡이도 피었다.” -청와대에 수장고가 없나. “노무현 대통령 때 항온·항습기를 사서 달자고 해서 임시로 수장고를 만든 것으로 안다. 하지만 미술관 수장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청와대 임시 수장고 수준이었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주로 어느 정부에서 수집한 건가. “작품의 제작연도를 보면 박정희 정부 때 구입한 게 제일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권 기간도 길었고 박 대통령이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붓글씨도 잘 썼다. 김종필 총리도 그림을 잘 그려 <JP화첩>이란 개인화집을 낼 정도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 미술품 상당수가 김원, 박득순, 박광진, 천칠봉 등 일요화가회 회원 작품인 이유가 김종필이 일요화가회 회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풍경화나 조국 근대화와 관련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박정희 집권기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위부터 박수학 ‘책거리’(한지에 채색 182x281cm). 서세옥 ‘백두산 천지도’ (1990, 한지에 수묵담채, 119.8x159.2cm) -소장 작품에 대통령의 취향이나 의지가 반영되나. “글쎄…. 대통령 취향이 반영돼 구입으로 이어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혁림의 ‘통영항’이 유일하지 않을까? 대개는 당시 작가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국전 수장작들을 구입했는데 이영찬의 1973년작 ‘풍악(風岳)’은 내가 알기로 박정희 정부의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이 권상능 대표가 운영하던 조선화랑을 통해 구입한 것이다.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손수택 ‘7월 계림’ (1973, 유화, 130.2x161cm) -청와대 인왕실에 걸려 있던 ‘통영항’은 이명박 정부 때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해 구입한 그림인데, 대통령이 세금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구매하는 게 옳으냐 하는 문제가 있다. 좋으면 자기 돈으로 사서 퇴임할 때 가져가는 게 맞다. ‘통영항’의 감정가는 1억원이 넘는다. 소문에 의하면 벽이 좁아 그림을 좀 잘랐다고 한다. 그림이 벽에 맞지 않으면 자르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렘브란트의 1642년 걸작 ‘야경’도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에 걸릴 당시 크기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좌우와 위아래를 조금씩 잘라냈다. 그러다가 지난해 약 300년 만에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해 원상을 회복했다.” 1966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강태성의 ‘해율’ -분실된 소장품도 있다. 1972년 8월 16일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과는 함께 논의할 수 없다)’는 문화재청 대장에 의하면 국가 소유로 청와대가 관리자로 명시돼 있지만 2011년 ‘도난 유물’로 등록됐다. “안 의사의 유묵은 1976년 3월 17일 당시 소유자인 이도영 홍익대 이사장이 청와대에 기증했다. 하지만 1997년 물자관리법이 개정되고,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조사해 처음 정리한 목록에 안중근 유묵은 없었다. 문화재청은 2009년 9월 청와대로부터 ‘안중근 유묵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나 1980년대에 누군가가 가져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문화재 사범 단속반이 1980년대에 이 사건을 내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전혁림 ‘통영항’ (2006, 유화, 255.6x602.6cm) -어떻게 도난이 가능한가.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비품으로 처리됐다. 비품의 감가상각은 5년이어서 5년이 되면 장부상에서 사라진다. 안중근 유묵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예전에는 비품대장에서 내구연한이 지난 빠진 작품들이 창고에 있어, 비품 담당 부서장이 직원의 집들이 가는데 선물로 가져가자고 하면 창고 가서 하나 가져다 선물로 줬을 정도다.” -청와대에서 미술관으로부터 그림을 대여하기도 했다던데. “예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을 대여해갔는데 미술관 소장품을 온·습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에 오래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회수해야겠다고 건의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런 관습이 사라졌다. 물론 이후에 청와대에 잘 보이려 작품도 내주고, 학예직도 나서서 파견한 분도 있었다. 아무튼 이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작품값의 2%를 주는 조건으로 일반 화랑에서 대여를 했다. 그 전통이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어졌다.” 김기창의 ‘농악’. 청와대 영빈관에 걸려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사에는 국빈이 많이 방문하므로, 어떤 그림을 걸었는가도 국격을 대변할 것 같다. “옷도 상갓집에 갈 때는 상복을 입고 파티에 갈 때는 파티복을 입어야 하지 않나. 다시 말해 그림도 맞이하는 손님이 어떤 취향인지, 어떤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또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등을 고려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바꿔 걸어야 한다. 그게 문화 외교다. 또한 작품들이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맥락을 갖춰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무조건 비싸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 건다고 좋은 게 아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대가 열렸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좋은 작품을 엄선해 활용하되, 상당수 미술품은 오히려 관리하는 데 비용이 더 든다. 이번 기회에 등급을 매겨 싹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춘추관에 걸려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산조’. 청와대 소장 작품 중 최고가로, 2014년 당시 평가액은 3억원 정도였다. -미국은 백악관이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내부에 백악관의 예술품과 장식을 책임지는 큐레이터가 있어 소장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전문인력을 채용하면 좋지 않을까. “전담할 전문인력을 임기제나 별정직으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작품을 구입하는 일도 이 사람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스템 자체를 미국이나 영국처럼 바꿔야 한다. 접시는 주방에서 수년간 접시 닦아본 사람이 가장 잘 닦는다. 전문인력을 채용하면 그 사람의 판단을 100% 존중하고 따라야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겠지만 함부로 간섭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백악관엔 예술품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벽난로 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걸어놓았던 자리다. 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백악관을 장식하는 그림은 백악관 자체 컬렉션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미술관에서 대여한다. 1945년 이후 수많은 미술관이 백악관에 다양한 작품을 대여해주고 있다. 대부분 대통령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상징하는 작품들이다. 백악관에는 백악관의 예술품과 가구, 식기 등 모든 장식을 책임지는 큐레이터가 있다. 백악관의 예술 및 유물의 수집 및 보존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61년 역사의 백악관역사협회도 존재한다. 백악관 큐레이터 직제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만들었다. 리엄 G. 올먼은 1976년부터 백악관 큐레이터 사무실에서 일했고, 2002년부터 수석 큐레이터를 맡았다. 역대 7번째 백악관 수석 큐레이터다. 그는 2011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대해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백악관이기도 하고, 그래서 일하는 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워싱턴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뜨거운 텔레비전 조명을 켤 수 없습니다!’라고 소리치며 달릴 때 누군가는 술을 쏟을까봐 걱정한다. 가끔 누군가는 가구를 부러뜨린다. (백악관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단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사적 공간’인 2층과 3층은 백악관 큐레이터가 예술과 장식을 조언해줘도, 그에게 관리책임이 있는 영역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 중에 누구를 어디에 거느냐도 중요하다. 현직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 벽난로 바로 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을 걸었다. 대통령이 앉아서 회의하는 사진이 자주 언론을 통해 공개돼 가장 중요한 위치다. 루스벨트는 경제 대공황기에 취임해 뉴딜 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재건했다. 바이든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자신의 취임 환경을 루스벨트의 취임 당시와 비교하며 자주 인용해 왔다. 바이든 이전의 대통령 9명은 모두 이 자리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초상을 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각실에 있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초상화를 트루먼의 초상화로 바꿨다. 당시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고 있었다.
- 표지 이야기
- [렌즈로 본 세상]‘청와대 시대’의 마지막 기자간담회(2022. 04. 29 15:35)
- 2022. 04. 29 15:35 정치
- “앞으로 ‘청와대 시대’라는 말이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날 ‘청와대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과 출입기자들의 간담회가 청와대 내 녹지원에서 열렸다. 문 대통령은 “우리 역사, 또는 청와대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뭔가 청산한다는 의미로 청와대의 시간을 끝낸다는 건 다분히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성취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후의 삶에 대해 “잊힌 삶을 살고 싶다”고 앞서 여러차례 밝힌 데 대해 “은둔생활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별히 주목을 끄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냥 평범한 시민,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질의응답을 마친 문 대통령은 테이블을 돌며 출입기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기자 대표의 답사를 들은 뒤 같은 테이블에 있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막걸리를 따라주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5월 9일 오후 6시 청와대에서 ‘퇴근’할 예정이다.
- 렌즈로 본 세상
-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청와대 이전보다 가치 있죠”(2022. 03. 28 11:39)
- 2022. 03. 28 11:39 사회
- ㆍ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인터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왜 하필 출근 시간대에 하느냐고 묻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봤기 때문입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3월 22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62)를 비롯한 장애인들이 지난 3월 24일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재개했다. 이날 오전 8시 20분 3호선 경복궁역을 출발해 4호선 혜화역으로 이동했다. 장애인 10명가량이 차량 한대를 가득 채웠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함께했다. 이들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과 정책 반영을 촉구했다. 지하철이 연착되자 몇몇 비장애인들이 불만을 나타내며 항의했다. 큰 소란은 없었다. 박 대표 등은 지난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이런 방식의 시위를 시작했다. 대선 전인 3월 초까지 모두 22번 했다. 지난 3월 14일과 22일에는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에 예산과 정책 요구안을 전달하며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인수위는 23일 “당연히 중점 과제로 다루고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그러나 “원론적인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검토하겠다’는 말은 21년째 듣고 있다”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갔다.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기를 원한다. 기본적으로 교육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처럼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활동 등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활동지원사도 필수다. 탈(脫)시설을 통해 비장애인과 어울려 인간답게 살려면 이동수단, 교육,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탈시설 권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한국 2008년 비준)와 이 협약의 시행령 격인 일반논평 5호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권 단체들은 “예산 없이는 권리도 없다”며 예산 보장을 통해 이런 정책들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한다. 박 대표는 3월 22일과 24일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때인 1983년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절망감에 5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노들장애인야학(1993년 설립)에서 1994년부터 교사로 일했다. 1997~2021년의 24년 동안 교장을 맡았다. 이동권 등 각종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뛰었다. -출근 시간대 시위는 처음인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2002년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사망했다. 이후 천천히 지하철에 탑승하는 ‘연착 투쟁’을 했다. 2017년 신길역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사망했을 때는 지하철 안에서 관까지 들었다. 다만 모두 비교적 한산한 낮 시간대에 했다. 출근길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장애인들에게 맞아 죽을까봐 두려워 감히 생각도 못 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장애인들이 3월 24일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서 하차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출근길을 선택한 이유는. “이동권 문제만 놓고 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 일각에서 청와대나 국회, 정부부처에 가서 항의하라고 말한다. 수없이 갔다. 집회를 하다 벌금도 많이 맞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안에서도 기습 시위를 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서명할 때 초대를 받았는데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하라’ 등의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펼쳤다. 도로에서 버스도 막아봤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비장애인들이 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욕을 100번 한다면 1번만이라도 윤석열 당선인에게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고 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장애인 시위에 시민들이 이렇게 대놓고 욕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잊힌 채 죽고 싶지 않다. 뒤에서 하는 욕은 더 심각하다. 저주, 편견, 시혜, 동정의 시선 등이다.” 지난 3월 17일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직원이 작성한 문건 하나가 공개돼 논란이 됐다.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PPT 문건에는 전장연의 약점을 계속 찾아 여론전에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공사 측은 “직원이 내부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 올린 문건으로,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문건을 보고 어땠나. “놀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하려 했다. 우리 사회의 슬픈 모습이 아닌가 싶다.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공사의 태도도 비겁하다고 본다.” -이동권이 중요한 이유는. “이동권은 다른 권리와 연결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가령 교육을 받으려면 이동을 해야 한다. 물리적인 이동 수단이 끊겨 있는데 삶의 질, 철학, 가치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나. 교통을 넘어 삶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이 코로나19로 인해 격리된 채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이동권이 보장 안 되면 장애인의 이런 격리 상태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지난 2월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326개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엘리베이터) 설치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올 2월 기준 93.6%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나머지 21개 역사는 단계적으로 공사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24년까지 설치 완료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한다. “2001년 오이도역 사망 사고 이후 서울시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도입을 요구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2002년 발산역 사망 사고 이후에는 단식을 했다. 39일 동안이다. 그제야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키지 않았다. 2015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2022년까지 100% 설치를 약속했지만 미뤘다. 그사이 장애인들은 또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거나 다쳤다.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를 넘기까지 무려 21년이 걸렸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3월 22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에서 개최한 ‘장애인 권리 예산 및 정책’ 반영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저상버스 의무 도입과 이동지원센터 의무 설치 등을 핵심으로 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시외·고속버스는 저상버스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안전벨트 관련 기술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기술 개발에 5년이 걸린다고 한다. 20년 동안 뭘 했나.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의무화도 긍정적이긴 하다. 이동지원센터는 특별교통수단의 차량과 인력 등을 관리하고 장애인과 교통수단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특별교통수단을 타고는 다른 시·군으로 갈 수가 없다.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시외버스는 장애인들이 아예 타지도 못한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는 불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끼리 연결하는 광역이동지원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지자체 예산으로 해결한다. 어느 지자체가 장애인 이동권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려 들겠나. 전국을 연결하려면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개정안은 국비 지원을 두고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의무가 아니라 임의 조항이다. 안 하면 그만인 셈이다. 기획재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은 무엇인가. “교통약자법 개정에 따른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포함한다. 이동지원센터 설치·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중앙정부가 서울 50%, 지방 70%를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탈시설, 평생교육시설, 활동지원 예산 등의 내용도 담았다. 이 요구안은 지난해부터 기재부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에 제출했다. 대선 기간 후보였던 윤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도 전달했다.” -탈시설 예산은 얼마나 요구하나. “올해 장애인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원이다. 반면 탈시설 예산은 24억원에 그친다. 2023년에는 탈시설 예산을 788억원까지 책정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2021년 ‘탈시설 장애인 로드맵’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3년 동안 시범사업을 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고 했다. 2041년에 마무리한다고 한다. 탈시설 대책 마련 초기에 안정적인 예산을 구축하려는 게 우리의 목표다.” -탈시설이 필요한 이유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집단적으로 수용한다. 혹독한 배제와 격리의 공간이다. 동토(凍土)다. 이들이 일상으로 나와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시설에 가둬두는 것이다.” -교육 분야 요구사항은.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의 운영비를 국비(서울 50%·지방 70%)로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지자체가 일부 지원한다.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다.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성인이 돼 야학이라는 공간에서 배움과 권리, 자립을 알게 된다. 평생교육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삶의 여백을 써내려간다. 지역 간 편차를 최소화해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활동지원 시간 확대도 주장하는데. “활동지원은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활동지원사들이 장애인의 일상 활동과 이동 등을 돕는다. 2007년 제도 시행 이후 정부는 ‘24시간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하루 최대 16.16시간이다. 이 시간만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장애인들도 2021년 7월 기준으로 5명(활동지원을 받고 있는 전체 장애인 숫자의 0.006%)에 불과하다. 최중증장애인 등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들도 많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난 1월 펴낸 ‘2021 장애통계연보’를 보면 201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예산 비율은 0.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2%)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최하위권이다. 박 대표는 “장애인 몸과 마음을 낱낱이 해부해 지원 규모를 책정하는 방식의 정책 설계는 그만했으면 한다”며 “OECD 평균 수준의 예산을 보장하고 각종 제도를 다시 설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특집
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 여성 최초 청와대 행사기획비서실 김은경 비서관
- 2007. 08. 13 화제
- 대통령 내외가 머무는 청와대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반 사람들 상식으로는 쉽게 감이 오지 않는 게 사실. 청와대 여성 최초 행사기획비서실 김은경 비서관이 말하는 청와대의 ‘여성’ 파워. 약간의 두려움은 오히려 즐길 줄 알아야 흔히 청와대를 떠올릴 때면 여성보다 남성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청와대 내에는 남성들이 선점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그렇다. 과거 5공화국 때는 행정관 이상 여성 공무원이 1명, 6공화국 2명, 문민정부 4명, 국민의 정부 24명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참여정부에서는 여성 인력의 기용을 대폭 확대하면서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28%(1백38명)나 될 정도로 늘어났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위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그리고 남성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보다 더 ‘부드러운 힘’을 발휘해온 덕분이다. 김은경 행사기획 비서관은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여성이다. ‘행사기획’은 ‘반 깡패가 되어야 한다’는 속설이 나돌 만큼 힘들기로 유명하다. 그런 자리에 여성이 발탁된 것은 청와대 역사상 최초다. “행사기획은 많은 부서와 연계가 돼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깐깐하다고 욕을 먹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욕을 얻어먹더라도 강력하게 밀어 부쳐야 해요. 대통령의 행사이기 때문이죠. 작은 실수도 절대 용납이 안 돼요.” 지난 3월, 여성 최초 행사기획 비서관으로 발령을 받은 김 비서관. 주위에서는 ‘일이 힘들 것’이라고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을 즐겼다고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겁이 없었어요.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속으로는 분명히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은 일을 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두려움을 넘어서 그 일을 해냈을 때 기쁨은 정말 굉장하죠. 그리고 ‘자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녀가 하는 일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통령의 공식적인 행사를 ‘연출’하는 것이다. 보통 지방 각 부처의 공식적인 행사, 3·1절, 4·19 기념식 등이 그것. 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관련 부처와 행사 의전팀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다. “대통령의 동선, 무대 위치, 행정 관련 부처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보통 행사하기 한 달 전, 두 달 전부터 기획을 하고, 경호 쪽에서도 같이 움직이죠.” 기억에 남을 만한 3가지 에피소드 이렇게 대통령 내외의 행사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다 보면 잊지 못할 황당한 일들을 경험할 때가 많다. 에피소드 1 - 폭우 속 탱크 시범식 우리나라 차기 전차 출고식 날.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넓은 대지에서 달리는 전차의 실험을 하는 날이었다. 보통 이렇게 야외 일정이 있는 날은 ‘언제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비는 언제 얼마나 오는지’까지 일일이 다 체크한다. 밤새도록 준비한 행사. 하지만 행사 당일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졌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햇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게 된다. 행사 시작 1시간 전. 급기야는 5백여 명의 우비를 긴급 공수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안 된다는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 했다. 행사 준비 요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빗속에서 진행될 모든 상황을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 5분 전. 빗발이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비가 그치더라는 것. 특히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도착할 때 쯤에는 기적처럼 하늘이 맑게 개였다고 한다. 무사히 탱크 시범을 끝내고 나니, 아까의 정신없는 사투(?)가 마치 꿈속의 일 같더란다. 그래도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는 뿌듯함에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에피소드 2 - 잊을 수 없는 헬기의 공포 FTA 반대 축산 농가를 방문하기 위해 평창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대통령이 한우 농가를 방문해서 토의를 하기 위해 평창을 가게 됐다. 김 비서관은 헬기를 타고 평창에 간다는 생각에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헬기를 타면 냉난방이 안 되고, 공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헬기 타고 가는 동안 갑자기 얼굴이 노래지면서 속이 울렁거리고, 손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던 것. 돌아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리라 마음먹으며,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해내기 직전이 돼서야 겨우 헬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땅에 내리는 즉시, 모든 비서관들은 대통령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호흡을 돌릴 시간도 없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대통령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정신이 몽롱하면서, 속이 울렁거렸고, 몸을 비틀거렸지만 주춤할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한우 농가에 도착한 뒤에 김은경 비서관은 한 여기자를 만난 후 ‘헬기 공포증’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 헬기를 처음 탄다며, 무척 좋아하던 여기자가 있었어요. 그 여기자를 농가에서 만났는데, 노랗게 뜬 얼굴을 하고 ‘저 죽을 뻔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어제 방방 뛰며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왜 그렇게 웃기던지…. 호호호.”에피소드 3 - 중동 순방 그리고 카타르 왕비 3월 말에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중동은 여성 경시 문화 때문에 외국에서 영부인이 와도 궁에 입장시키지 않는다. 현지에서 영부인을 따라다니게 된 김 비서관은 카타르의 왕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입궁하기 전 카타르 왕비가 11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아줌마 왕비를 예상했다. 하지만 왕비를 직접 만난 그녀는 충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180cm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항아리 몸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은 미모의 여성이 그들을 맞이했던 것. 김 비서관은 ‘왕비가 저렇게 예쁠 리가 없잖아’라면서‘왕비를 옆에서 모시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카타르 왕비였던 것. 그렇게 고상하고 멋있는 카타르 왕비는 직접 내궁을 안내하면서 내궁 디자인을 직접 했다고 설명을 하더란다. 또 우리나라 교육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권양숙 여사와 한국의 교육 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기도 하더라는 것. 이에 9월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김 비서관은 아직도 대단한 열정을 지닌 미모의 왕비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퍼진다고 한다. “여성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어릴 적 그녀의 꿈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아역탤런트를 해봤는데, 무척 재미가 있더라는 것.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아나운서로 꿈을 돌리게 됐다. 김 비서관은 1985년 MBC에서 처음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결혼과 출산 등을 겪으면서도 항상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그녀. 연극을 할때는 연극에 푹 빠져 살았고, 방송을 할때는 또 방송의 매력에 푹 빠져서 행복하게 일을 했다. 이후 대학 강의를 나가면서는 어린이 재단, 여성의 전화, 부산 비엔날레 홍보위원 등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좀 더 큰물에서 뜻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권양숙여사의 지시로 만들어진 수유실과 여성휴게실 전경.“일을 하다 보니 이게 올바른 일인데도 내 힘이 너무 모자라서 뜻을 못 이루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진 뜻을 좀 더 큰 틀에서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때마침 지난해 5.31 지방선거 당시 오거돈 전 해양수상부 장관 캠프에 대변인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겼어요. 새로운 물로 뛰어들 기회가 생긴 거죠.” 그렇게 정치 쪽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지난해 7월 청와대 국내 언론비서관실 국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늘 그래왔듯이 청와대에서의 일은 무척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녀가 행사기획으로 발령받아 오면서 생각한 점은 ‘밝게 웃으면서 일하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행사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잖아요. 저는 그걸 탈피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주위에서 ‘비서관님이 오시고 나서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좋아요.” 청와대에서 여성의 입지가 어떤지, 그리고 청와대 내에서 여성들에 대한 배려는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뛰는 점은 참여정부 들어서 여성들을 뽑는 인원이 늘어났다는 거죠. 또한 여사님의 지시로 여성휴게실과 수유실을 두 군데나 만들었어요. 여사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세요. 여성의 발언이 많아져야지 앞으로 우리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청와대에서 지난 1년 동안의 생활은 김은경 비서관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은경 비서관의 꿈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것을 지역사회 내려가서 활용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것을 지역사회 내려가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데, 한 몫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좀더 욕심이 있다면 많은 여성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웃음)”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 청와대 비서관 사칭 사기 사건 겪은 백일섭
- 2006. 06. 01 연예
- MBC-TV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에서 엄하고 고지식한 아버지 역으로 든든한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탤런트 백일섭. 오랫동안 좋아하던 초로의 배우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마주하게 되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그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사실이었다. “워낙 사연이 드라마틱해서 의심 한번 하지 않고 완벽하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 4월 말 청와대 비서관과 국정원 기조실장을 사칭해 돈을 가로챈 50대 남자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번듯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주로 부유한 미망인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그는 강남의 한 골프 모임에서 만난 미망인 이모씨를 상대로 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그가 한 중견 탤런트에게 5억원을 받아낸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탤런트 백일섭이었다. 완벽한 사기 행각에 의심 한번 없이 돈 건네 호인(好人) 소리를 듣는 이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쉽게 사기꾼의 표적이 된다는 게 현실이다. 백일섭은 술 좋아하고 사람 밝히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느니 그냥 내가 손해보고 마는 사람이다. 천성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법. 인터뷰가 있기 전날 밤 그는 경찰에 최씨의 기소를 원치 않는다는 최후의 진술을 전했다. 백일섭이 최씨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였다. 우연히 함께 라운딩을 하게 된 인연으로 얼굴을 익힌 두 사람은 집이 같은 분당인데다가 취미가 골프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인근 골프 연습장에서 간간이 만남을 이어갔다. “1967년도쯤인가, 내가 청와대 초청을 받았는데 그때는 초청객들의 신원 조회를 했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당시 내 신원조회 작업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청와대에서 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면서요.” 최씨의 연배로 미루어봤을 때 당시에 그 일을 했을 거 같지 않다고 하자, 그는 “남들보다 일찍 법조계에 입문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백일섭은 의심의 시선을 쉽게 거뒀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67년 당시 최씨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경찰서에서 이를 전해들은 백일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최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한 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근무했다고 피해자들을 속여왔다. 그는 국정원 고위 간부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는데, 공교롭게도 실제 고위 간부와 최씨는 외모마저 흡사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사기 행각은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했다. “국정원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한때는 수감 생활을 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며 아내까지 잃고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는데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디다. 얘기가 굉장히 드라마틱하잖아요? 일일이 사실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최씨에게는 멀쩡히 아내가 있었고, 부산지검 검사라던 아들, 모 회사 창업주라는 할아버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 아직도 정확하게 확인한 바가 없다는 백일섭은 “그는 마치 지금껏 거짓말을 참말 하듯 하고 살아온 사람 같았다”고 했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법조계에 몸담고 있다는 주장에 걸맞게 법에 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사건의 발단은 현재 유명 법무법인의 고문 변호사라고 소속을 밝힌 최씨가 “인천 검단 지구 상가와 경기 용인 아파트에 투자하면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유도해 백일섭으로부터 2억원 두 번, 1억원 한번, 합이 5억원의 자금을 갈취한 것. “사업 투자를 제의하기에 ‘어디 한번 해봅시다’ 하고 돈을 건넸지요. 저희 같은 사람들(연예인)은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가 변호사는 사회 공인으로서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사기를 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2년의 세월 동안 골프 연습장도 함께 다니고, 술자리가 있을 때는 부담 없이 불러내기도 하면서 친분을 쌓아온 사이라 백일섭은 돈을 내줄 때도 그 흔한 차용증 하나 받지 않았다. 설마는커녕 추호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아간 돈 5억원을 최씨는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배신감은 크지만 손해 본 거 없다치고 잊으려 4월 말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백일섭은 그때까지도 최씨로부터 사기당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3억원을 날린 이씨의 고소로 조사를 시작한 경찰이 백일섭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는 이미 최씨로부터 변제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가 그 사람이 ‘가짜’라고 하기에, 확인을 해봤더니 돈을 받아가서 투자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래서 현금 5억원 대신 그에 상응하는 가치의 부동산을 변제받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를 지었어요. 향후 부동산 시세만 괜찮으면 난 손해 보는 거 없어요. 그냥 부업한 셈 쳐야지요.” 이번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백일섭은 “별일 아니고, 이미 해결되었으니 기사 쓸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이 사기를 당했으면 이 참에 화풀이라도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의 거짓말에 속은 건 분하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거고.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다 철저하게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어쩜 그렇게 완벽하게 꾸며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불쌍하더만요. 어쨌든 난 내가 준 것 이상으로 변제를 받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한 것은 없으니까 하루빨리 털어내야죠.” 차용증을 받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최씨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했으면 일이 곤란하게 되었을 텐데, 그나마 5억원을 받아간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백일섭은 다행이라 여기는 듯했다. 40년 연기 베테랑이 속을 만큼 최씨의 연기가 완벽했느냐고 묻자, 그는 “애초부터 의심을 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답했다. “참고인 진술차 경찰서 갔다가 그 사람을 만났는데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포승줄에 묶인걸 보니 참 안됐습디다. 어차피 (이씨 고소 건으로) 죄값은 치르겠기에, 나로 인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혼자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고, 지방 촬영이 있으면 일찌감치 출발해 생각할 여유를 갖는 것이 좋아서 지금도 매니저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백일섭. 그는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의 대본 리딩이 있던 날에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대본을 펼쳐들었다. 어쩌다 보니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되어 아내로부터 꽤나 염려 섞인 잔소리를 들은 모양이지만 그는 “즐겁게 술 마시고 운동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낙천적으로 살다 보니 건강이 따라오더라”고 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전문배우 시리즈 중 그가 ‘깜짝 놀라는 아버지 전문배우’로 꼽혔다는 얘기를 들려주자 “허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상민
- [Talk TheCheongwadae]눈이 즐겁고 귀가 흥겨운 청와대 산책로
- 2006. 05. 01 재테크
- 청와대 앞길이 새로 피어난 봄꽃들과 함께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산책로로 거듭났다. 대통령 경호실은 지난 4월 10일부터 매주 토~목요일 군경의 협조를 얻어 왕복 1.2km에 이르는 청와대 주변 도로에서 기마대,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활용한 순찰을 실시하고 있다. 또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의장 행사도 펼쳐진다. 활짝 핀 봄꽃을 따라 눈이 즐겁고 귀가 흥겨운 청와대 산책로를 걸어보자.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 앞 광장의 왕실 근위대 교대식, 미국 백악관 주변의 기마 순찰대 등은 그 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청와대 경내 개방과 앞길 통행시간 확대, 북악산길 개방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왔다. 현재 청와대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은 말을 탄 경찰을 비롯해, 나팔을 부는 군악대, 깃발을 흔드는 여군 의장대를 만날 수 있다. 경찰 순찰대 4월부터 10월까지 매일(금요일 제외) 4시간 동안 청와대를 찾는 관광객과 통행인은 기마대, 사이드카, 인라인 스케이트, 사이클 등을 만나게 된다. 기마 순찰은 경찰 기마대 소속 말 4필을 2개조(2필 : 정복, 2필 : 전통복)로 나눠 매주 토요일 오후 2시~4시 분수대에서 신무문까지 실시한다(7~8월 제외). 사이드카 순찰대는 4명이 2인 1조로 토~목요일 오전 11시~12시, 오후 3시~4시에 분수대~춘추관 사잇길을 순찰한다. 또 인라인 스케이트와 사이클 순찰은 각각 8명이 4인 1조로 나뉘어 토~목요일 오전 10시~12시, 오후 2시~4시에 실시한다. 이와 함께 5인조 경찰악대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3시에 사랑방, 무궁화 동산 주변에서 실외 금관5중주를 들려준다. 군 의장 행사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군 의장 행사를 실시한다. 혹서기를 제외한 4~6월과 10~11월 등 5개월간 실시하는 이번 행사는 총 2백여 명의 인원이 투입된다. 군 의장 행사는 1부 군악 연주(10분)를 시작으로 2부 의장대 시범(35분), 3부 퍼레이드(15분) 순으로 진행된다. 군악 연주에서는 국악과 양악이 연주되고, 의장대 시범에서는 창과 검을 든 전통의장과 여군 집총, 깃발 동작, 육·해·공군 통합의장 등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70여 명(전통의장 43명, 군악대 27명)이 참가하는 의장대 퍼레이드는 분수대와 신무문 사이에서 진행된다. 단, 악천후에는 행사가 열리지 않는다. 글/김성욱기자 사진/박원태
- 청와대 생활 3년 만에 언론 최초 인터뷰 영부인 권양숙 여사
- 2006. 03. 01 화제
-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대통령 직무정지… 당시 촛불 집회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해온 참여정부는 출범 후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고 급기야 2004년 여름에는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전무후무한 상황까지 겪어야 했다. 본지는 2006년 2월 25일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영부인 권양숙 여사를 인터뷰했다. 청와대 안주인으로 살아오면서 행한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였다. 이하늘이 주신다는 이 땅의 지도자를 내조하고,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세계 각국에 한민족의 정신을 알리면서 바삐 지내온 3년. 청와대에서 지난 3년 동안 보듬어온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의 기억들을 공개한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입춘 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더니 전국은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의 물결이다. 지난 2월 25일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우리 사회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보냈고 그런 만큼 발전과 변화의 시간도 가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의 시간을 청와대 안주인으로 지낸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무궁화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의 무궁화실은 권양숙 여사가 가장 아끼는 청와대 공간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손수 고른 분홍빛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이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한 권양숙 여사는 지난 3년 동안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진솔하고 편안하게 술회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손녀는 아들을 닮았고 외손녀는 사위를 닮았습니다. 손녀가 아들을 닮아서인지 손녀의 모습에서 언뜻 제 모습도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손녀 자랑을 하는 데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 손녀 모두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Part 1 지난 3년간의 청와대 생활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이 되었습니다. 청와대 생활에 대한 감회가 어떠신지요?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어려웠던 일도 많았지만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나아지고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청와대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조금씩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청와대에서 생활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제약 받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무래도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두 달여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관저에서 보냈습니다. 문밖 출입은 딱 두 번, 저녁 무렵 본관에 내려간 것이 전부입니다. 마음 고생이 심하니 당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덕분에 미루어둔 책을 많이 읽었지요. 그때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대통령과 함께 관저 안 작은 뒤뜰이나 상춘재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촛불을 밝혀든 국민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늦은 밤, 잠시 바람을 쐬러 관저 앞마당을 거닐다 보면 멀리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평소 생활하시며 경호 상의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항상 가까이서 내외분을 경호하는 분들에 대한 영부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경호 방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대통령께서 뭐든지 과하게 대접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시라 경호실의 경호 방식도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청와대에 오기 전에는 ‘경호원’하면 왠지 권위적이고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경호원들의 수준은 요원들과 실력이나 전문성에서 세계 어느 나라 요원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경호실 직원들이 경호 시범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경호 무도의 목적이 사실은 죽는 훈련이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유사시 몸을 던져 국가원수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이 죽는 연습인 셈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여사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 5시에 기상해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대통령께서 출근하시는 것을 도와드립니다. 지난해 일간지에 출근하시는 대통령을 제가 배웅하는 사진이 게재됐었지요.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제 집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오찬 행사나 접견 자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성계와 문화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나 해외동포들을 주로 만납니다. 이외에도 소규모로 비공식적인 접견이나 간담회 행사들을 많이 갖습니다. 때때로 종교계 지도자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 분야의 현황이나 애로사항을 듣기도 합니다. 그만큼 느끼고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후 대통령님과 영부인께서 기념일(생일, 결혼기념일 등)에 주고받은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선물의 의미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우리 부부가 특별히 생일을 잘 챙기지는 못합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커플링을 맞춘 것이 유일합니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해서인지 대통령께서도 무슨 날이라고 해서 꽃다발 하나 사는 걸 쑥스럽게 여깁니다. 그래도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저녁 시간만은 잊지 않고 비워두십니다. 케이크 사다가 식구들과 둘러 앉아 노래도 해주십니다. 밖에서 받은 선물이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여성 장애인이 보내온 ‘무궁화 꽃등’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보내주신 작품인데 꽃잎을 말려서 일일이 전등에 붙여 문양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꽃 장식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배어 있는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Part 2 여성&사회 문제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향상됐다고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영부인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업주부로 3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만, 우리 주부들은 거의 만능인입니다. 아이들 교육에서 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아 실력이 남성들 못지않습니다. 때문에 사회참여도 그만큼 활발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우리 여성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토양도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서도 호주제 폐지 등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어려움은 많습니다. 여성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50% 수준에 이르고 있는 여성 경제활동인구도 한층 늘어나야 합니다. 특히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대폭 늘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출산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습니다. 보육 문제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국가에서 보육 정책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부인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대통령 선거 때 “아이를 많이 낳으십시오. 국가에서 다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저출산 문제는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습니다. 땅도 작고 인구폭발이 문제가 되는 시대였지요. 불과 20~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산아제한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겼다’는 곳이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보면 2004년 1.16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저출산 문제에 시달린다고 하는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나라보다도 적습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정말 걱정되는 문제입니다. 사실 참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보육정책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하여, 국가의 주요정책으로 다루게 했습니다. 지난 3년간 보육예산을 3배 이상 늘렸고, 지난 1월에는 앞으로 5년간 총 19조원을 투자하는 ‘저출산 종합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역시 보육입니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만 9조 7천억원 이상이 투자됩니다.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이상의 가정도 직접적인 보육료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육아시설이 더욱 많아지도록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저출산도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불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책도 있으신지요? 불임부부의 문제도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체 기혼여성의 13.5%가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형편이 어려운 불임부부들에 대해 시술비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올해에만 1만 4천 명, 2010년까지 24만 명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Part 3 영부인의 공식 활동 영부인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보람은 지난해 부산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꼽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국위 선양을 하는 것도 값진 일이지만 월드컵이나 APEC 같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APEC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정상들이 하나같이 부산 APEC에 대해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산 APEC의 성공은 부산 시민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힘을 모아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권양숙 여사께선 영부인으로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통령께서 마음 편히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겠지요. 가족이나 친·인척과 관련된 일 등 안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인터넷도 잘하시고 뉴스도 빠짐없이 보시기 때문에 대부분은 알고 계시지만, 보통 국민들의 입장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장애인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다 해도, 그분들께 위로가 되어주고 자그마한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언제든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의로운 선행을 베푼 의사상자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도 여전히 어렵게 살고 계신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국가유공자, 그리고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께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저의 몫입니다. 여사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시는지요? 각계 각층의 단체나 기관에서 행사 참석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때마다 마음은 앞서지만 일일이 참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이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행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석한 행사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사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여성 1호 초청 오찬’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각 분야에서 여성 최초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모신 행사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만나 그분들의 경험과 사연들을 들으니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께 “여러분의 사연을 책에 담아보시라”고 권했는데 나중에 정말로 책을 엮어냈더라구요. 우리 여성들의 변화된 위상을 엿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가슴 뿌듯했습니다. 또 사회복지사들을 청와대에 모신 일과 지난해 성탄절,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과 그 부모를 청와대로 초대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은 것과 국내 입양 가족들을 초청한 일도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 순방차 여러 나라를 다니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국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해외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높은 위상과 역량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나라도 작고 기름 한 방울 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도 어쩜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실제로 지난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 대통령이 한국이 발전한 까닭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교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공부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고민인데…”라고 몇 번씩이나 부러워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기러기 아빠도 있고 교육 과잉 문제도 있지만, 그만큼 배우려는 열의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순방 길에 느낀 또 한 가지는 우리 기업들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외국 도시 거리 곳곳에 우리 기업들의 간판이 걸려 있고, 대한민국 상품들이 명품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습니다. 물론 한류 열풍도 실감했습니다. 역시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동포들 정말 훌륭합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특유의 성실성과 부지런함으로 현지에서 뿌리내려 성공하고, 자손들도 유능한 인재로 잘 키워냈습니다.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한글학교를 세워서 2세, 3세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우리의 문화도 열심히 배우고 있더군요. 저는 이런 우리 해외동포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4 요리&취미 그리고 여가 생활 영부인께서는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직접 요리할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또한 대통령의 건강관리를 위해 해드리는 특별 보양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는 청와대 조리사들이 차려준 식단대로 식사를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조리하시는 분들을 쉬게 해드리려고 직접 상을 차립니다.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등을 쪄서 먹는데, 그 맛이 참 별미입니다. 예전에는 쌀이 없을 때 먹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엔 웰빙시대라고, 오히려 이런 식단이 인기를 끌고 있다죠? 대통령께서는 특별히 가리시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양식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해외에서도 현지 음식들을 잘 드시는 편이라 특별히 챙겨드리는 건강식은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과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양식이나 중식보다는 한식이 입맛에 잘 맞습니다. 대통령께서 가끔 “출출하다”고 하실 때면 라면을 끓여드리기도 합니다. 음식 외에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차나 음료수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회의나 행사가 많아 말씀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목 관리 차원에서 오미자차를 해드립니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해서 드리면 좋아하십니다. 최근에는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을 간간이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공식일정 외에 공연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으신지요? 자주 즐기는 편이 못 됩니다. 한번 청와대 밖을 나서게 되면 비서진들과 경호실 직원들이 다 같이 움직이게 되니 괜한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이번 설에도 부속실이나 경호실 식구들, 꼭 필요한 경우 말고는 편히 쉬라고 했습니다. 굳이 나들이라고 한다면 등산을 꼽을 수 있는데 멀리는 못 가고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에 오릅니다. 그럴 때면 가끔씩 산 아래 있는 식당에 들러 식사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청와대에서 생활하면서 감동적인 공연을 여러 편 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한빛맹학교 자선공연입니다. 제가 초대받은 행사였는데 공연 전날 대통령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시간도 되는데 같이 가볼까” 하면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와서는 공연의 여운이 꽤 깊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어쩌면 그렇게 연주들을 잘하던지… 특히 마지막 난타 공연을 볼 때는 대통령도 저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무후무’라는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문화재이신 이매방 선생님을 비롯 한국무용계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공연이었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나오신 분도 정작 연주가 시작되니 신들린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시는데… 공연 내내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영부인께서는 건강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또 취미와 여가 활동은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국선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는데, 매일 아침 1시간씩 하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집니다. 요즘 우리나라 주부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배우는 분들이 많던데 국선도는 전통적인 ‘한국식 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특별한 게 없고 틈날 때마다 책읽기를 즐깁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관저에서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합니다. 가끔씩 대통령께서 일정이 없으실 때는 함께 청와대 뒷산을 오르는 것도 제가 누리는 여가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대통령님과 책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싹틔우셨을 정도로 여사님께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책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또한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다 그렇지만 취미생활이라는 게 별다른 게 없어서 그저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입니다. 스케일도 크지만 그 속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지금도 그 감동이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자가 여행과 봉사활동만 잘하는 분인 줄 알았더니 글을 엮어내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인류애와 같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더라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깨우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관심 깊게 읽은 책은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입니다. 이 책은 공공도서관의 인프라가 열악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대통령께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할 생각입니다. Part 5 소소한 일상&손녀 자랑 보통 할머니들은 손자나 손녀가 생기면 재롱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들 합니다. 손녀 자랑을 조금만 해주십시오. 요즘은 손녀 보는 게 큰 낙입니다. 일찍 손주 본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하도 자랑을 해서 왜 저러나 했는데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우리 손녀는 이제 갓 두 돌이 지났는데 말도 잘하고, 재롱도 보통이 아닙니다.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손녀가 음감이 우수한 것 같습니다. 한참 전에 눈이 내렸을 때 손녀를 등에 업고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면서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눈이 내렸는데 손녀가 “할머니,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하러 가자”고 하더라구요. 딱 한 번 불러준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녀를 보고 있으면 매일매일이 새롭고 경이로워요. 대통령께서도 손녀 재롱에 넋을 놓을 때가 많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엄마, 아빠가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 손녀도 사투리를 배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울말 쓰는 게 참 신기하더군요. 가끔씩 식구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니 어디 가노?” 하면서 사투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손녀가 제일 똑똑하고 예쁜 것 같습니다. 저도 손녀 자랑할 때는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게 없어요. 외손녀는 이제 18개월이 됐습니다. 딸 가족은 현재 외국에 있어서 외손녀 재롱은 요즘 못 보고 있습니다. 딸이 자주 전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경(외손녀)이는 잘 있냐?”고 물으면 “하루 종일 뭐라고 중얼중얼 하고 다녀요”라고 합니다. 이제 말을 배우려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특별한 분이라는 것을 아는지요? 아직 그런 것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함께 해외 순방을 가면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자료 화면이 방송되지 않습니까. 손녀는 아직 어려서 현실과 텔레비전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젼에 할아버지가 나오면 화면 앞으로 달려가 “할아버지, 빨리 나와요”라고 한답니다. 저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기특하고 예뻐보입니다. 아드님, 따님과는 자주 연락을 하시는지요? 자녀 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우리 아들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자주 찾아와서 관저에서 자고 가곤 합니다. 며느리랑 손녀도 그때 늘 같이 오구요. 딸아이는 유학 중인 남편과 함께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딸은 성격이 밝고 사려가 깊습니다. 아이 욕심이 많아서 셋쯤 낳겠다고 하네요. 전화도 자주 하고, 이메일로 외손녀 사진도 보내오는데 그래도 한국에 없으니까 좀 허전합니다. 대신 며느리가 요즘은 딸아이 몫까지 다 합니다. 며느리는 신세대답게 활달하고 생기가 넘쳐요. 며느리가 저나 대통령께 참 싹싹하게 잘합니다. 여사님께서는 ‘한복은 물론이고 양장까지 옷맵시가 상당히 좋다’는 말씀을 많이 들으십니다. 전속 코디네이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평상시와 공식행사시 코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전속 코디네이터는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나 한복을 입어야 할 때, 대통령 담당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거나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행사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고려해서 제가 직접 옷을 고릅니다. 옷을 입을 때, 특별한 취향이랄까 스타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감색이나 회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었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밝은 색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반듯한 정장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한복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입으려고 합니다. 한복만큼 예쁜 옷도 없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정상과 부인들이 한복에 대해 극찬합니다. 여담이지만, 재작년 칠레 APEC에 참석했을 때 참가국 정상 부인 중 가장 옷 잘 입는 영부인으로 뽑혀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맵시 나는 한복 덕분이었죠. 당시 초록 치마에 황금색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우리 한복 입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Part 6 새해 소망&퇴임 후 계획 요즘 대통령님께서는 퇴임 후 구상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십니다. 아직 임기가 2년 정도 남아 좀 이른 감이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사님의 꿈도 그러신지요?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치면, 함께 고향 김해나 부산에 내려가 살고 싶습니다. 실제로 가능할지 소망에 그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생각은 굴뚝같습니다. 고향에 가서 자그마한 정원을 만들어 나무도 가꾸고, 가끔씩 서울에서 손주들 내려오면 채소밭 상추도 같이 따고… 생각만 해도 그 재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퇴임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에 모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대통령님과 영부인, 두 분이 건강하셔야 나라도 튼튼합니다. 새해가 되면 어른들께서 덕담을 해주시는데 올해는 어느 가정이건 유독 건강에 대한 말씀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6년 새해 소망을 듣고 싶습니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가장 좋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새해의 바람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다행히 국민 여러분이 가장 염려하시는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좋은 정책들을 만들고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의 성원과 협조가 절실합니다. 서로 열린 마음을 갖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면서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살림살이가 더 나아져서 우리 국민 모두가 어깨를 펴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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