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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1,033 건 검색)

여행비 털어 마련한 ‘키즈버스’, 500만원 통큰 선결제···14일 ‘탄핵 촛불집회’로 모이는 응원들
2024. 12. 12 06:00사회
오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집회를 앞두고 시민 권순영씨가 만든 ‘키즈버스’ 온라인 포스터. 권순영씨 제공 지난 7일 워킹맘 권순영씨(44)는 늦둥이 딸 지우를 안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쓰레기 붙여 만든 윤석열 대통령···학생들 ‘탄핵 염원’ 담았다
2024. 12. 10 16:39사회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 10일 서양화 전공 학생들(김수빈·권다현·석지우·신경민·윤정원)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사용한 손팻말 조각 등을 이어붙여 제작한 작품이...
탄핵, 국내외 영향
울산서 촛불집회 여성들 폭행한 10대 현행범 체포
2024. 12. 10 08:05사회
울산 촛불집회 현장 주변에서 인쇄물 등을 나눠주는 여성들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군(10대)을 검거해 조사하고 있다고...
10대체포탄핵, 국내외 영향
경찰,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서 시민 폭행 혐의 70대 여성 입건
2024. 12. 04 22:15사회
... 동화면세점 앞에서 20대 여성 B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 ‘B씨가 길을 막고 있어서...

스포츠경향(총 319 건 검색)

배우 정찬 “병원에 가 보시라”···‘탄핵 촛불집회’ 관련 가짜 뉴스에 일침
2024. 12. 11 21:16 연예
SNS 캡처 배우 정찬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후 자신을 둘러싼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는 것에 분노를 표했다. 10일 SNS에 한 누리꾼이 쓴 글을 캡처해서 공유하고 “내 인스타 어디에도 저따위 글은 없다. 거짓말이고 루머이자 유언비어다”라고 밝혔다. 캡처가 된 사진엔 한 누리꾼이 “정찬이라는 탤런트가 올린 인스타그램 글에 여의도 집회 때 3분의 1이 외국인(중국인)이라고 썼던 것도 보셨나요? 무섭네요 이 나라”라고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담겼다. 정찬은 “저 글을 쓰고 유포하신 분은 매우 아픈 분 같다”며 “병원에 어서 가 보시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거짓말쟁이 #유언비어 #비양심 #탄핵 #위헌 #국가의주인은국민 이라는 해쉬태그도 함께 달았다. 정찬은 앞서 지난 7일 “여의도에 아이와 전시회를 보러 왔다”며 “오늘 여의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여기는 외국인이 1/3이다. K-컬처 무섭다”며 K-콘텐츠 위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여의도에 왔으니 전시회만 보고 갈 수는 없다. 오늘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날이 되길 바란다”며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실도 전했다. 가짜뉴스에 언급된 ‘1/3이 외국인’이라는 말은 전시회를 일컫는 말로, 집회 현장과는 무관한 긍을 짜집기한 악의적인 편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대철, 음악인 시국선언 독려···이승환은 촛불집회 무대서 재능기부
2024. 12. 11 16:25 연예
기타리스트 신대철.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음악인들의 시국선언 참여를 촉구했다. 신대철은 10일 음악인시국선언과 함께 시국선언 독려를 알리며 “지난 3일 윤석열은 명분 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을 획책, 실행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힘’은 국민의 이익이 아닌 당의 이익을 위해 투표 불성립을 만드는 방식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내던졌다”며 “이에 내란 공모자인 총리와 국정에 관해 아무런 헌법적 권한이 없는 여당 대표가 국정운영을 한다는 2차 내란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혼을 갈아 넣은 K팝의 나라가 정치 후진국의 나라로 해외의 비치고 있다”며 “K팝의 나라가 계엄과 내란의 나라가 되면서 두 얼굴을 가진 나라로 불리고 있다. 우리가 애써 만든 음악이 폄훼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가수 이승환. SNS캡처 그러면서 신대철은 “나라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때 우리는 건강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며 “이에 윤석열 즉각 퇴진, 탄핵 결의를 촉구하는 음악인들의 시국 선언을 제안한다. 우리 후배들은 지금보다 나은 대한민국에서 음악 할 수 있도록 꼭 함께해달라”고 했다. 음악인 시국선언은 작곡가 윤일상과 그룹 더 크로스의 이시하가 직접 초안을 작성하고, 작사가 한경혜가 초안을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대철은 국회의 탄핵안 표결이 예정된 14일 오전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때도 앞장서 시위에 나섰던 그는 이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 2.0의 시작인 것 같다. 새롭게(시위 문화가) 진화하고 있고 정말 놀라운 사실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K팝이 울려 퍼지는 달라진 시위 현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가수 이승환은 1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무대에 설 예정이다. 가수 이승환. SNS캡처 이승환은 10일 SNS에 “금요일, 윤석열 탄핵 집회에 이승환 밴드 출동하는 썰 푼다” 면서 “덩크슛(탄핵하라 윤석열로 개사),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돈의 신(돈의 힘으로 개사), 사랑하나요?!, 물어본다, 슈퍼히어로 부를 거다. 따뜻하게 하고 와라”라고 덧붙였다. 이승환은 전날 탄핵 집회 무대 출연 관련 물음에 “개런티도 다 필요없다. 제 기준에서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음향 시스템만 있으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승환, 촛불집회에 1213만 원 기부 “탄핵되길 바라며”
2024. 12. 09 15:57 연예
이승환 SNS 캡처 가수 이승환이 촛불집회를 위해 1213만 원을 기부했다. 이승환은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촛불집회 주최 측인 촛불행동에 1213만원을 송금한 인증사진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이승환은 “올해도 드팩민들의 연례행사, 백혈병 환아들을 위한 ‘환탄절’ 기부 릴레이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저는 여러분의 차칸 마음씨에 감복하여 그 행렬에 참여했다, 다만 기부처를 달리했다”고 했다. 그간 이승환은 ‘환탄절’이라 칭한 자신의 생일을 맞이해 백혈병 환아들을 위한 기부를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승환은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꼭 탄핵이 되길 바란다”면서도 “여러분께서는 늘 그렇든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으로 후원해주시면 된다”는 당부를 전했다. 한편 지난 주말에는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1인 시위 등이 열렸다.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는 경찰 추산 16만 명, 신고 인원 21만 명에 달하는 구름 인파가 운집했다.
안예은, 촛불집회 동참 “너무 힘듭니다”
2024. 12. 08 18:57 연예
안예은. 알비더블유, DSP미디어 가수 안예은이 국회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에 동참한 인증샷을 공개했다. 안예은은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오타쿠들 그냥 집에서 덕질이나 하게 해주세요. 너무 힘듭니다. 진짜”라고 적고 현장 사진을 함께 올렸다. 전날(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법에 반대표를 던진 후 집단 퇴장했기 때문에 자동 폐기됐다. 안예은 SNS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소추안 폐기로 간신히 한숨을 돌렸지만,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다시 코너에 몰리는 모습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도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공동 담화를 통해 “윤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위법 논란에 휩싸였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오고 야당은 압박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여당과 대통령실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

주간경향(총 8 건 검색)

[표지이야기]촛불집회, 한국 정치의 근본을 바꾸다(2016. 12. 13 16:21)
2016. 12. 13 16:21 사회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이었다. 탄핵뿐만이 아니다. 6차에 걸친 촛불의 힘은 한국 정치의 기존 문법들을 바꿔가고 있다. 촛불민심의 승리였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날 국회는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열흘 전 박 대통령이 시도한 ‘11·29 반동’을 뒤집는 쾌거였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문을 발표할 때만 해도 탄핵의 흐름은 꺾이는 듯했다. 여야가 합의해 퇴진 시점과 방식을 정하면 이를 따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으로 당론을 정했다. 탄핵으로 기울던 비박계는 돌아섰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제안한 ‘4월 퇴진’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탄핵 찬성에서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무성 전 대표와 회담에서 ‘1월 퇴진’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로 정치권에서 탄핵 논의는 급속도로 식었다. 정치권은 각자의 유불리를 따지며 다음 국면에서 어떻게 하는 게 유리할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촛불민심은 정치권의 셈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232만명이 모였다. 사상 최다였다. 각 정파들은 각자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촛불의 뜻을 따라 탄핵으로 다시 입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이었다. 탄핵뿐만이 아니다. 6차에 걸친 촛불의 힘은 한국 정치의 기존 문법들을 바꿔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정치효능감 높아진 유권자들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김지영씨(가명·45)는 퇴근 후 촛불을 들고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비박계를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탄핵 표결에 이르기까지 비박계는 매번 말을 바꿨다. 지난주만 해도 김씨는 탄핵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깊이 실망했다. 정치권이 여론을 안 듣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화가 났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권력만 연장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분노와 우려가 뒤섞인 속에서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다.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내일 가결된다고 끝이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한 발짝은 나아갔다는 생각이다. 또 내가 집회에 참여하면서 바뀌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가 느낀 ‘자신감’은 곧 ‘정치효능감’이다. ‘정치효능감’은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을 뜻한다. ‘정치효능감’은 한국 사회에서 유권자들이 잃어버렸던 감각이다. ‘정치효능감’보다는 무관심과 정치혐오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분위기였다. 2015년 8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조선일보가 실시한 ‘광복 70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관심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66.3%,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33.7%의 두 배에 달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영향도 주기 어렵다’는 체념이 59.6%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12.0%에 비해 훨씬 높았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그간 한국 사회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로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을 꼽았다. “그간의 촛불집회를 분석해 보면 선거를 앞두고 있던 촛불집회와 그렇지 않은 촛불집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이후에는 16대 대선이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후에는 17대 총선이 있었다. 촛불이 자연스럽게 ‘선거’라는 제도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제도적으로 흡수할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100만명이 모인 2008년 촛불의 기억이 촛불집회 참여자들에게는 승리보다 실패의 느낌으로 남았다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정 교수는 “사실 그동안 촛불집회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 많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패배감의 영향으로 불꽃이 안 튀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모두 눌렸다가 이번에 폭발을 한 것이다.” 이번 탄핵 가결로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은 높아졌다. 정 교수는 “탄핵 가결로 거리로 분출된 에너지가 제도로 흡수됐다. 시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탄핵 가결로 이는 승리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가결로 촛불집회 에너지 제도로 흡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촛불집회 현장조사를 통해 참가자들의 정치효능감이 높아졌음을 분석했다. “5차 촛불집회 당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내일신문과 함께 집회현장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굉장히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물음에 75%가 넘는 사람이 그렇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는 게 가능했던 배경에는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라도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통해 승리를 경험하고 나면 이 승리감은 다음 단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높아진 정치효능감으로 이후에도 한국 정치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시민들이 늘었다. 8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권진영씨(56)의 말이다. “이제까지 동료들과 정치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서로 그런 얘기는 모르는 척했는데, 주위 동료들끼리 이제 터놓고 이야기한다. 울분에 차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인터넷에서 정치뉴스 등을 찾아보는 게 늘었는데, 앞으로도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가면 계속 압박할 것이다. 이 국면이 잘 마무리됐을 때 한국 정치도 많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조성호씨(39)는 “내일 탄핵 가결이 아슬아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면서 “아무래도 비박계가 돌아선 이유도 촛불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결이 될 때까지 국민이 원하는 바를 가르쳐줘야 저들이 알아들을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인 만큼 꾸준히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6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정치권의 셈법 앞지른 집단지성의 힘 달라진 유권자를 좇아 정치권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치권의 셈법은 유권자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11월 29일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와 12월 3일 6차 촛불집회 사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2월 3일 집회는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회에서 탄핵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들이 대통령 권력 회수에 이어 국회의 권력까지 회수한 것이다.” 시민들이 정치권의 셈법을 앞질러 이들을 돌려세울 수 있었던 것은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유승찬 대표는 “소셜미디어가 아랍 민주화 때는 단순히 소식을 퍼나르는 기능을 했다. 언론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언론이 통제되지 않은 한국 사회는 소식을 퍼나르는 데 그치지 않고 공론장 역할도 했다. 소셜미디어가 공론장 역할을 하고 집회 공간이 다시 공론장 역할을 한 셈이다. 전 세계에 없는 새로운 모델이다. 소셜미디어와 광장이 선순환하면서 집단지성이 최대한으로 발현하는 형태다.” 광장에서의 빠른 정보유통도 집단지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서복경 선임연구원은 “보통 때 뉴스가 전국단위를 도는 데 보름이 걸린다면 지금은 토요일마다 지역별로 광장에서 정보가 교환된다. 정보가 유통되는 사이클이 굉장히 빠르다. 일상적 시기에는 퇴진하고 탄핵하고 뭐가 다르냐고 하면 잘 모른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탄핵이 되면 대통령이 연금을 절반만 받고 퇴진하면 다 받는다는 이런 정보가 굉장히 빠르게 교환된다. 사실에 관한 정보와 해석에 관한 정보가 있는데 광장에서는 해석에 관한 정보가 빨리 교환된다. 광장에 다녀온 사람들이 또 일상의 공간에서 이를 계속 퍼뜨린다.” 민심보다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인의 전략이 더 이상 집단지성을 앞지를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6차 촛불집회가 있은 다음 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더 이상 기존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낫다’는 오만함과 폐쇄성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박근혜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입니다. 과거에 배우고 경험한 모든 ‘정치 네트워킹 기술’과 ‘정치 선동술’은 잊고 버리십시오. 솔직하고 진지하게 있는 그대로의 의도와 생각을 밝히십시오.” 표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 3차 담화 후, 정치권이 탄핵이 아닌 퇴진으로 기울어졌던 상황들이 ‘야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측면이 있다. 나 자신도 국회의원이지만, 국회의 핵심에는 못들어가 있다. 주변인으로 바라봤을 때도 한국 정치가 흘러가는 모습이 국가적 위기상황임에도 관성적으로 밀실야합에 의해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권력자에 의존한 정치로는 유권자들 따라잡지 못해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정치권이 여론을 읽는 방식이 실제 여론과는 괴리가 있다. 정치권은 대통령이 퇴진하겠다고 하면 촛불이 약해질 것이라고 읽었다. 정치권이 읽는 민심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유불리를 개입시켜 보기 때문에 실제 여론보다 낮게 본 것이다.” 정치권이 여론의 본질을 읽지 못하는 현상을 분석한 책 를 쓴 김헌태 상상정치센터 센터장은 정치권이 촛불민심을 기술적으로 읽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촛불민심을 오히려 야당에서 못 읽는 측면이 있다. 야당은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분노한 민심을 기술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오히려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촛불여론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유권자층이 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촛불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분노 자체가 보수 쪽에서도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야당의 시각에서는 전반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정파 간 이해득실 때문에 여론을 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 어느 정파든 정략적인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국면을 장악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수싸움이다. 그러나 여론 자체는 여론이 항상 그런 측면을 가지는 경향이 있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정치권과 어긋난다. 이러한 수싸움이 탄핵 가결 이후 여론과 어떻게 부딪힐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 12월 1일 야 3당 대표 회동을 위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만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표창원 의원은 유권자가 달라진 만큼 정치권도 기존의 ‘네트워크에 의존한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어떤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있느냐가 정치를 하는 데 있어 관건이 됐다. 당내 어떤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있는지가 중요했다. 여당은 대통령과의 거리, 야당은 야당 지지세력인 노조나 시민단체와의 관계, 또는 언론과의 관계 혹은 대기업과 관계를 잘 맺어야 유력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각 상임위 위원장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치공학적인 구도 하에서 그들만의 합의를 보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국민들이 주시하고 하나하나 평가하고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현재 유력 정치인들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친박은 오직 권력자와의 의존관계로 정치를 하는 네트워크에 의존한 대표적인 정치인들이다. 표창원 의원은 유권자들의 변화가 단순히 이번 탄핵국면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국회의원들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하던 사람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던 유권자의 모습이 아니다. 당내에서도 권리당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대투표, 지역투표에 의존한 콘크리트 지지율 붕괴 6차에 걸친 촛불집회는 정치환경 자체를 바꿨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세대투표, 지역투표에 기댄 콘크리트 지지율의 붕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교수의 말이다. “이번에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생각보다 이탈이 크다. 쉽게 안 돌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50대와 PK(부산·경남)가 스윙보터(부동층)라고 이야기됐는데, 촛불집회 이후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렸던 TK(대구·경북)와 60대가 스윙보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11월 26일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15.4%, 60세 이상은 31.5%였다. 정한울 교수는 “이미 지난 20대 총선에서 상당수가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이탈했다. 한 번 이탈해 본 사람들과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다시 모으는 게 중요했던 시점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새누리당은 예전과 같은 콘크리트 지지율을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하고 새누리당이 당 해체를 포함해 전면적인 쇄신을 한다면, 새누리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50대 유권자들은 69.4%가 ‘없다’고 응답했다. 60세 이상은 41.8%가 ‘없다’고 응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구·경북의 55.8% 응답자가 ‘없다’고 응답했고, 34.2%가 ‘있다’고 응답했다. 정한울 교수는 “정당 지지층의 재편이 이루어질 여건은 충분히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도 위기의식을 말했다. “여론이 안 좋더라도 대구·경북은 새누리당을 믿고 따랐는데, 이제 여론 추이가 많이 돌아섰다. TK도 전국 여론과 비슷한 흐름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TK의 구심점이었는데, 구심점 자체가 무너졌다.” 콘크리트 지지율의 붕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패배의 ‘알리바이’로 삼았던 야당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태섭 의원은 는 글에서 “정권 초기를 제외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집권 중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우세한 시기가 오히려 더 길었다. 지난 대선기간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꾸준히 60%를 웃돌았다. 야당은 이런 여론을 현실화하는 데 실패해서 진 것이다…‘기울어진 운동장론’의 근본적인 오류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야당이 매번 지는 이유는 야당에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심각하게 헤매서 사람들이 염증을 느낄 때도 표는 야당으로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변화한 유권자,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 동력 이번 국면에서 야당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이탈한 새누리당 지지층을 야당은 흡수하지 못했다. 정한울 교수의 말이다. “야당에서 강하게 친박에게 책임을 묻거나 친박을 공격하지 않았다. 야당끼리 싸우는 게 부각될 뿐 공범인 친박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크게 비판받지 못했다. 야당은 협상 대상으로 애초에 친박 지도부는 배제해놨어야 한다. 이번에도 야당은 전형적인 2등 싸움을 반복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전멸 수준으로 망해야 할 세력으로 낙인 찍혔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대안은 아니라는 상당수 유동적인 유권자층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을 어떤 세력이 잡아챌지는 향후 민심의 농도를 누가 더 잘 읽고 추진하느냐에 달렸다. 6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냈다. 그간의 경험은 유권자들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유권자들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 가결 이후 정치권은 빠르게 대선국면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셈법에 따라 지금의 국면을 장악하기 위한 수싸움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든 촛불을 경험한 유권자들의 여론에 따라 변화하지 못한다면, 변화하는 유권자의 큰 줄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인터뷰 “촛불집회, 집단지성이 최대한 발현된 것” / 경향신문 자료사진 12월 3일 집회는 ‘퇴진’을 이야기한 정치권과 ‘탄핵’을 이야기한 촛불민심의 격차를 보여줬다 “국민들은 행정권력을 접수한 상태였다. 그러나 대통령도 그렇고 여당도 그렇고 아직도 자신들에게 권력이 있다고 착각을 한다. 지금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력들은 계속 무너지고 있다. 12월 3일 집회는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회에서 탄핵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들이 대통령 권력 회수에 이어 국회의 권력까지 회수한 것이다. 이제 헌재로 가는데, 헌재가 제대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국민들은 또 사법권력을 회수할 것이다.” 6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소셜미디어가 있기 때문에 집회의 구심점이 되는 아주 강력한 조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집회 참여 인원이 늘어났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함에도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주장과 구호가 일치하고 단결할 수 있었던 것도 소셜미디어가 이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민혁명은 소셜미디어와 결합되면서 단지 대통령의 문제만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부패기득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강한 요구를 한 항쟁이었다.” 소셜미디어가 집회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은 과거에도 있었다 “소셜미디어 초창기에는 과도적인 양상을 보였는데, 이제 소셜미디어에 중심이 하나 생겼다. 페이스북이다. 1700만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 소셜미디어가 언론이 통제된 아랍 민주화 시위 때는 소식을 퍼나르는 기능을 했다. 우리 사회는 언론이 통제가 안 됐다. 그러다보니 소식을 퍼나르는 데 그치지 않고 공론장 역할까지 한다. 소셜미디어가 공론장 역할을 하고 집회공간이 또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없던 새로운 모델이다. 세계사적으로 이런 유례가 없었다. 소셜미디어와 광장이 선순환하면서 집단지성이 최대한으로 발현하는 형태다.” 이후 촛불집회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우려스러운 것은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공간이 열리고 수평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은 굉장히 긴 싸움이다. 컨트롤타워 없이 어떻게 정치세력의 중심을 만드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지, 이런 것이 굉장히 궁금하다. 탄핵이 가결되고 나면 광장의 흐름은 주춤할 것이다. 지금 광장 자체가 플랫폼인데, 광장이 주춤하면서 플랫폼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일지가 우려스럽다.”
표지 이야기
[주목! 이 사람]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박근혜 하야 한인 촛불집회 연 김민철씨 “대통령 퇴진이 우리 생존권 문제”(2016. 12. 06 18:52)
2016. 12. 06 18:52 사회
김민철씨 제공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은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켜졌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한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 각국의 도시 곳곳에서도 서울 광화문이나 부산 서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심이 촛불로 밝혀졌다. 유럽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도 두 차례 촛불집회가 열렸다. 프랑스의 동쪽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의 ‘스트라스부르 한인 시대정신 회의’는 11월 11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촛불집회를 열었다. 시내 중심지인 레퓌블릭 광장을 채운 100여명의 한인은 각자 준비한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알렸다. 교수, 목사, 성악가, 취업준비생, 유학생, 주부 등 여러 직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기획했다. 처음 집회를 계획한 건축학 석사 출신의 교민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으면서 한인들을 일일이 만나고 참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유학생인 김민철씨(31)는 2차 촛불집회의 사회를 맡았다. 2015년 9월에 스트라스부르에 온 김씨는 프랑스어 연수를 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백남기 농민이 작년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지신 이후부터, 세상을 떠난 이후 경찰들이 시신 탈취를 시도하는 행위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곧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퇴진정국이 시작되면서 함께 뜻을 모아 행동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에서는 필리버스터 형식으로 진행된 자유발언이 이어져 다양한 교민과 유학생들이 발언대에 올랐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의경으로 복무하며 ‘명박산성’을 지켰던 학생은 “지금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고백했고, 경기 안산시 출신 유학생은 세월호 희생자와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며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지인들에게 사태를 고발하는 프랑스어 자료도 별도로 준비해 많은 프랑스인들의 관심도 받았다. 김씨는 “이곳에선 집회가 열리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항상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한다”며 “현지 뉴스로 이미 이 사실을 접한 이들도 많았고, 내용을 알게 된 현지인들도 대부분 우리의 활동을 응원하며 40여명이 서명까지 참여해줬다”고 밝혔다. 두 차례의 집회를 마친 김씨는 내심 다음 집회는 하지 않아도 되길 바랐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하야를 하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접한 한인들이 다음 집회는 언제냐고 물어오고 있다. 계속되는 집회가 피로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때문에 규모와 형식에 관계없이 작은 행동이라도 또 한 번 준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전부터 진행해오던 릴레이 1인시위도 매일 진행 중이다. 김씨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치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국민들이 광장에 나왔다는 건 지금 당장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이 생존권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물론 스트라스부르와 해외 곳곳에서 고국을 생각하는 교민들의 마음은 하나다. “국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모든 정치적 셈법과 이권을 배제하고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제시해주기 바랍니다.”
주목! 이 사람
촛불집회 참가자 ‘7년 만의 무죄’(2015. 06. 23 10:44)
2015. 06. 23 10:44 사회
ㆍ경찰, 물증 없이 마구잡이 체포… 떳떳한 부모로 살고 싶어 정식 재판 신청 6월 11일 오전 10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318호 법정. 변호인과 다른 피고인들도 출석하지 않은 법정에 검사와 피고인 김지성씨(33)만 서 있었다. 2심 재판장은 김씨에게 씌워진 집시법 위반 혐의와 일반교통방해죄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김씨는 잠시 재판정에 앉아 있다가 법정을 나섰다. 7년 만에 받아낸 무죄였다. 김씨는 12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촛불 재판’ 피의자 중 하나다. 7년 전인 2008년 6월 1일 일요일 아침 7시50분쯤 김씨는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체포됐다. 경찰과 검찰은 그가 밤새도록 불법집회에 참여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약식재판과 1심에서 그는 벌금형을 받았다. 집시법·일반교통방해죄 위반 혐의 6월 17일 저녁 경기도 광명시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과거 잘나가던 프리랜서 웹 기획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못해도 월 500만원을 벌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재판을 준비하면서 김씨의 모습은 달라졌다. 뜻하지 않게 약식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이후 김씨는 인생에 ‘빨간 줄’이 들어간다는 생각에 불면증을 앓았다. 잠들기 전에 한두 잔 마시던 술 때문인지 주량도 매우 늘었다. 기자와 만났을 때 김씨는 홀로 소주 2병 반을 비웠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아이가 생긴 이후 ‘그냥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완전히 떨쳐냈다. “‘똥 밟았다’는 심정으로 벌금만 내고 끝낼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딸에게 ‘범죄자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떳떳한 부모로 살고 싶었다.” 7년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8년 6월 1일 김씨는 주말을 맞아 밤새도록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또 다른 인터넷 창으로는 촛불집회 생중계 방송을 듣고 있었다. 2008년 6월 1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전경버스로 차벽을 쌓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6월 1일 새벽 4시30분쯤, 김씨의 귀에 촛불 생중계 사회자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여중생을 폭행한다는 소리였다. 게임 창에서 방송 창으로 옮겨간 김씨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머리 위로 경찰의 물대포가 쏟아지는 광경이었다. 다음 아고라에 들어가 경찰의 강경진압이 시작됐다는 글을 본 김씨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회현장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잠시 일을 쉬고 있던 김씨의 주머니에는 현금이 없었다. 그는 새벽 5시50분쯤 지하철 첫차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에 도착한 뒤 집회현장이었던 서울 지하철 안국역 인근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이미 촛불집회는 종료되는 분위기였다. 경찰의 진압에 휘말릴 것을 걱정한 김씨는 서울 지하철 종각역 방향으로 돌아나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경찰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시위하던 본대는 이미 어디론가 가버렸고, 해산하는 분위기여서 나도 김밥을 먹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보신각 인근에서 갑자기 경찰이 인도를 막으려고 하는 거였다. 길이 막히기 전에 얼른 지나가려는데 전경들이 나타나 날 쓰러뜨리더니 2~3분 정도 정신없이 때렸다. 그리고 다른 몇 사람이랑 같이 체포된 거다.” 20대 초반 김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정을 지켜보고 열린우리당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하지만 2004년 김선일씨 사망사건 등에 실망해 그 이후에는 집회 참여보다는 개인생활에 집중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집회 참여를 결심했지만, 구호 한 번 외쳐보기도 전에 체포된 것이다. “또래에 비해 수입이 높은 편이었고, 법만 잘 지키면 앞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집회에 참여해보지도 못했는데 약식재판에서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받은 거다. 유죄가 나온 이후로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물론 200만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그냥 조용히 게임이나 할 걸’ 후회도 했지만 그보다 하지도 않은 일로 내 인생에 ‘빨간 줄’이 쳐져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김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08년 12월 정식 재판에 나섰다. 이듬해 3월부터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됐다. 한때 벌금만 내고 포기할까 생각도 이후 2년 8개월간 두세 달 간격으로 공판이 진행됐다. 검사는 당시 김씨 등을 체포한 전경들을 증인으로 세웠다. 한 전경은 법정에서 “(김지성씨가) 얼핏 봐서 생각이 난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하지만 그는 김씨를 체포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증인들은 체포 당시 상황을 증언했지만 김씨가 실제로 밤샘 집회를 했다는 물증은 재판정에 제출되지 않았다. 김씨는 항소과정에서 얻은 경찰의 기소의견서를 처음 읽었을 때 무척이나 황당했다고 한다. 첨부된 채증 사진 하나 없이 자신을 범죄자로 단정짓는 내용이었다. 2008년 7월 작성된 서울서부경찰서의 의견서에 따르면 김씨는 전날 저녁부터 12시간가량 집회를 하다가 “현장에서 도주하다 검거된 피의자들” 중 하나였다. 김씨 등이 호송과정에서 경찰에 적대적 언사를 한 점은 “전형적 시위사범의 형태”로 지적됐다. 심지어 김씨가 하루종일 휴대폰을 쓰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경찰은 “지능적인 시위사범이 수사당국의 휴대폰 기지국 수사를 피한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진짜 내가 죄를 저질렀으면 물증으로 내 죄를 증명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증거는 하나도 없이 ‘촛불시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질문만 하니까 답답한 거다.” 결국 김씨는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로 결심한다. 재판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이 새벽 6시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는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리고 야간시위 헌법소원 때문에 재판은 2014년 8월까지 일시 중지됐다. 김씨의 삶도 원래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결혼도 하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도 얻었다. 2014년 7월부터 재판을 준비하라는 서류가 날아왔지만 자신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물증을 제출했기에 안심했다. 2014년 8월, 4년 만에 재개된 재판에서 김씨는 불안함을 느꼈다. 애초 재판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유죄, 벌금 70만원이었다. “재판이 하도 오래 끌다 보니까 판사도 검사도 서너 번씩 바뀌었다. 내 사건기록이 600페이지 정도 되는데 과연 마지막으로 재판을 한 판사가 제대로 읽었는지, 내가 물증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공판중심주의가 맞느냐고 묻고 싶다.” 촛불 재판 관련자들 중 김씨처럼 물증 없이 기소되고 유죄를 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 출판사 직원이었던 이학범씨(60)도 그 중 하나다. 이씨는 2008년 8월 5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체포됐다. 이씨는 집회에 참여한 게 아니라 멀찍이 구경만 하던 중이었다고 주장했으나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판사도 검사도 서너 번씩 바뀌어 “집회를 구경하다가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나오려는데 경찰이 길을 막고 포위해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잡혀간 사람들끼리 총 7명이 같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1명 말고는 아는 사이도 아니고 사는 곳도 다 다르다. 그런데 1심 재판에서 내가 다른 피의자들과 암묵적으로 공모해 교통을 방해했다고 유죄를 선고한 거다. 증거라는 것도 경찰 호송버스 앞에서 찍히 사진밖에 없었는데…. ‘정말 집회 참여한 게 아니면 아니라는 걸 증명해봐라’라는 느낌을 재판 기간 내내 받았다.” 이씨는 김씨와 마찬가지로 올해 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씨는 “내가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때 난 운동권이 아니었고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 그때 싸우지 않고 있었더니 이렇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건지…. 재판과정에서 오히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김지성씨는 기자와 헤어지며 “애가 3살이 될 때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이쯤에서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틀 뒤인 6월 19일, 김지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검찰에서 전날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법원까지 끌고갈 거라 생각했기에 특별히 놀라진 않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증거도 없이 한 사람을 범법자로 몰아간 것 아니냐. 법정에서 진실은 계속 다툴 것이지만 나를 죄인으로 몰아갔던 사람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듣고 싶다.” 2008년 ‘촛불 재판’ 219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2008년 촛불시위가 끝난 뒤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이어졌다. 2010년 말까지 이어지던 재판은 야간시위 금지에 대한 헌법소원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8월까지 중단됐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자정 이전 야간시위가 전면 허용되면서 지난해 8월부터 재판이 재개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촛불 재판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료되지 않았다. 촛불 재판의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집회 참여로 기소된 피의자 중 총 945명(306건)의 변론을 맡았다. 김지성씨처럼 민변의 도움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2008년 국정감사에서 경찰과 검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촛불시위와 관련해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총 3609명이었고, 이 중 기소로 이어진 사람은 1270명이었다. 민변에 따르면 올해 5월 14일 기준으로 306건 중 형이 확정된 건은 87건이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219건 중 2심이 진행 중이거나 선고를 기다리는 건이 100건으로 가장 많았다. 3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총 40건이며, 아직 1심도 채 마치지 못한 건도 67건에 달했다. 대부분의 촛불 참가자들은 집시법 위반이나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지난해 3월 야간시위를 불허하는 집시법 조항이 한정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일몰 이후부터 자정까지의 시위가 전면 허용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검찰도 자정 이전에 촛불집회에 참여한 부분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했다. 그러나 자정 이후의 집회 참여와 일반교통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를 유지하고 있다. 촛불집회의 유무죄는 어떻게 됐을까. 민변 측은 “피고인이 900명을 넘는 데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이 많아 구체적인 유무죄 여부를 다 정리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2심까지 진행된 사건의 경우 대체로 50만~100만원 사이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실제 재판을 담당한 변호사들은 유죄 비율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동안의 이광철 변호사는 40명 정도가 연루된 15건의 촛불 재판을 변론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촛불 재판 중 전부 무죄를 받은 건은 정말 드문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담당한 사건에서도 3건 정도만 무죄를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촛불 재판에서 유죄가 난 경우, 집시법보다도 형법 185조인 일반교통방해죄 위반 혐의가 많다는 것이 민변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서선영 희망법 변호사는 “제가 맡은 사건 중에도 야간집회 참가는 무죄가 났는데 일반교통방해에서 유죄를 받은 경우가 있다. 최근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1심 재판에서도 이미 경찰이 차벽을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교통방해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났다”고 설명했다. 민변이 조사한 촛불 재판 현황에서도 안 사무처장과 비슷한 사례가 여러 건 있다. 2008년 5월 31일, 경기도 안양이 거주지인 강모씨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뒤 자정 이전에 귀가하려 했다. 하지만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인근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첫차를 타고 귀가하려다가 이튿날 새벽 4시30분쯤 집회현장 인근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9월 1심 판결에서 강씨는 야간집회 참여 부분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8년 5월 28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정모씨는 자정을 25분 정도 넘긴 시간에 경찰에 연행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집시법, 일반교통방해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정씨는 2심에서 야간시위는 무죄를 받은 반면, 일반교통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선고유예)를 받았다. 이호중 서강대 법대 교수는 “2008년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일반교통방해죄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최근 대법원에서 노동자 파업에 있어 업무방해죄 적용을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파업이 기본권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법원도 집회·시위가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촛불집회 백서 ‘자의적·편파적 해석’(2009. 09. 10 14:06)
2009. 09. 10 14:06 사회
ㆍ‘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시위’ 발간 검찰의 ‘항변’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8월30일 촛불집회 수사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시위라고 규정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검. 지난 8월30일 검찰이 378쪽짜리 백서를 내놨다. 백서 제목은 ‘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시위사건’, 발행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제2부’다. ‘불법폭력시위사건’은 지난해 촛불집회를 가리킨다. ‘촛불집회=불법폭력 시위’라는 등식은 백서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전제다. 백서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촛불집회의 기억이 공안 검찰의 프리즘을 거칠 때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는지를 증언한다. 검찰은 촛불집회를 4기로 구분했다. 1기는 5월2일부터 5월23일까지, 2기는 5월24일부터 6월19일까지, 3기는 6월20일부터 6월29일까지, 4기는 6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다. 5월24일은 집회 참가자들이 처음 거리로 진출한 날이다. 6월20일은 정부가 쇠고기 수입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한 날이고, 6월30일은 검찰이 ‘전국부장검사회의’를 열고 엄단 방침을 밝힌 날이다. “왜곡보도와 허위정보 확산이 원인” 검찰 구분에 따르면 1기는 집회가 ‘폭력 과격 양상 없이 대체로 평화적인 형태로 진행된’ 시기다. 2기는 ‘도로점거 및 폭력시위로 변질되기 시작한 시기’, 3기는 ‘상습시위꾼 중심으로 과격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기간’이다. 4기는 ‘엄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이 추진돼 실질적으로 촛불시위가 소멸’한 기간이다. 검찰은 “촛불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 폭력시위는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등 국가적으로 큰 폐해를 야기하였는 바, 앞으로 이와 같은 불법 폭력시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고 적법절차에 따른 평화적인 집회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본 백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도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탓인지 백서 곳곳에서 ‘자의적 해석’, ‘편파적 해석’, ‘음모론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어떤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공권력은 소통과 설득보다 진압과 기소를 통한 공포 분위기 조성에 매달렸다. 백서를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검찰은 촛불집회의 원인을 ‘일부 언론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왜곡보도’, ‘광우병에 대한 허위정보의 확산’, ‘촛불시위에 대한 위법성 인식 희박’, ‘국민대책회의의 조직적인 시위 주도’라고 규정했다. 언론의 왜곡보도와 인터넷을 통한 허위정보 확산이 시민들을 선동했고, 그 배후에는 준법의식이 희박한 시민들을 부추긴 국민대책회의가 있었다는 논리다. 사태의 도화선을 제공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도 원인에 포함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문제를 경시했다는 점은 빼놓았다. 지난해 6월2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밤 11시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검찰은 ‘일부 언론 왜곡보도’의 첫머리에 MBC ‘PD수첩’을 거명했다. “미국 도축장의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명확하지 않은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인간 광우병인 것처럼 보도하는 등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각주를 통해 ‘PD수첩’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 및 재판정에서 반론보도 및 정정보도 결정이 나왔다고 쓰고 따로 부록까지 할애해 ‘PD수첩’ 수사 결과를 자세하게 적시했지만 반대 의견은 다루지 않았다. 문제는 ‘PD수첩’ 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이 백서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 판단을 드러내는 것은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일부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증폭의 태도를 취했다는 견해도 제시”됐고 “일부 신문사의 경우… 대안 제시 없이 불안감만 심각하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면서 사태 확산의 책임을 언론보도 탓으로 돌렸다. 검찰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집시법상 야간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백서는 “서울중앙지법의 일부 재판부가 야간옥외집회 관련 위헌심판제청을 이유로… 재판진행을 지연하고 있음”이라면서 “사실 위헌심판제청된 부분은… 피고인들의 형량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임에도 장기간이 소요되는 헌법재판소 결정시까지 기일을 추정하여 공판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였음”이라고 적고 있다. 검찰은 이어 “개인적으로 법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시위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7단독 판사의 발언을 소개했다. 위헌심판 제청이 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뤄져 공연히 재판 진행을 지연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자의적인 해석이다. 검찰은 또 “반면, 다른 재판부는 위헌심판 제청과 무관하게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현행 법률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고 썼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해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이메일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17개 법원 판사들이 판사회의를 열어 재판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야간집회 위헌심판제청 강한 불만 편파적인 해석도 두드러진다. 특히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폭력 사례를 다루는 대목에서 그렇다. 검찰은 “촛불시위는 초기에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갔음”이라고 지적하고 “시위대의 폭력은 6월 하순부터 최고조에 달하였고…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 행위도 서슴지 않는 양상에 이르렀음”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여경 폭행’, ‘까나리 액젓 분사’, ‘쇠구슬 새총 발사’, ‘경찰관 납치 폭행’, ‘염산 투척’, ‘경찰 버스 손괴 및 탈취’, ‘코리아나 호텔 난입’ 등을 주요 수사 사례로 꼽았다. 물론 이 사건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전경들의 폭력을 피해 버스 아래로 피한 20대 여성을 또다시 폭행한 사건 등 경찰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행사한 폭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6·10 촛불집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줄 김밥을 운반하고 있다. 검찰은 백서 내용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인용하는 데서도 편파적인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일부 언론이 촛불집회 때 폭력 행사자들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했다”고 지적하면서 각주를 통해 조선일보 3월11일자 기사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해당 기사의 결론은 “촛불시위를 전후해 정부는 ‘법질서 확립’을 외쳤지만 정작 불법을 단죄해야 할 사법부는 관대한 처벌로 일관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는 것이다. 진보매체의 기록은 편의적으로 인용했다. 검찰은 허위정보 확산이 촛불집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분석하고 “자극적인 구호와 주장이 시위현장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음”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자극적인 구호와 주장’의 사례로 ‘뇌송송 구멍탁’, ‘미친소 너나 먹어’ 같은 구호들을 지목하면서 경향신문사가 발간한 에서 참조했다고 각주에서 밝혔다. 본래 맥락과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 것이다. 수사 성과에는 일부 납득하기 힘든 대목들이 있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 등을 통한 법질서 확립 의지 천명’ 부분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16건 중 정의관념에 현저히 반하고 법질서 확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3건에 대해서는 보완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하였고, 그중 2건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13건에 대해 재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사건들이 구속 사안이 아닌 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얘기다. 또한 검찰은 “엄격한 법집행의 영향 등으로 약 2개월간 연일 개최되어온 대규모 불법 폭력시위는 점차 하강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음”이라면서 촛불집회가 잦아든 원인을 성공적인 검찰 수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잦아든 것은 집회가 3개월 가량 이어지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탓이 크다. 공권력의 대응으로 집회 참가자 수가 줄어든 건은 맞지만 이 또한 공권력의 현명한 대응 때문이라기보다 공권력의 폭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시민사회의 시각이다. “불법·폭력 원인은 주도단체의 선동” 배후를 색출하고 일망타진하는 것은 과거 시국사건에서도 잘 드러난 공안 검찰의 특징이다. 이런 모습은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검찰의 태도에서도 여전하다. 검찰은 “촛불시위에서 시위대가 크게 증가하고 불법과 폭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집회 주도 단체의 지속적인 선동”이었다면서 “검찰은 불법 폭력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을 찾아내 불법시위의 동력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배후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그 결과 시위가 일반시민들에 의한 자생적 시위가 아니라 고도로 숙련되고 전문화된 시위관리 경험을 갖춘 세력에 의해 치밀하게 기획되고 조직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이 지목한 배후 조종 세력은 국민대책회의와 진보연대다. 그러나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집회 현장에서 혼란만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기존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다중’의 출현, 변화한 시민들의 감성을 쫓아가지 못하는 시민단체의 무능력 등은 이후 촛불집회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는 각종 토론회나 포럼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 주제였다. 이러한 자의적·편파적·음모론적 해석은 결국 ‘PD수첩’ 제작진 기소,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네티즌 기소, 경찰력을 동원한 진압 위주 대응,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 및 기소로 이어졌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당시 시민단체들은 배후가 될 능력도 없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면서 “정권 입장에서는 일부 언론과 배후 세력의 선동이라고 규정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었다는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두 차례 대국민 사과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다. 오 사무국장은 또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최소한 국가기구의 품격을 지켜달라. 수준이 너무 낮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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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료 민영화 등 촛불집회는 계속된다! 논객 진중권
2008. 08. 19 화제
아직까지 ‘진중권이 누구야?’라고 묻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혹시 그렇게 묻는다면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100일을 향해 달려가는 쇠고기 정국에서 진중권은 토론장과 집회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일명 ‘촛불 정국 최고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대중의 호불호를 떠나, ‘논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그만큼 어울리는 이도 없을 것이다. #1 비 오는 청계광장 청계광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어김없이 비가 왔고 시청광장을 가로지르는 길은 전경 버스에 막혀 있었으며 사람들은 무언가 들뜬 기분에 우왕좌왕했다. 진보신당의 인터넷 방송 ‘칼라TV’ 리포터로 벌써 두 달 넘게 현장에서 촛불집회를 생중계해온 진중권 교수는 “여성지에서 취재를 온다 하여 옷을 몇 벌 갈아입는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곧이어 쏟아지는 거침없는 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걸 어떻게 글로 옮기지?’ 벌써 두 달이 넘는 강행군이에요. 그동안 연행도 됐었고, 폭행도 당했는데 건강은 어떠신가요? 지금 바지가 안 맞아서 헐렁헐렁해요. 체중이 2kg 빠졌는데 저한테 2kg 빠진 건 정말 엄청난 거예요. 지난번 연행되면서 생긴 상처가 결국 흉터가 됐어요. 이거 안 없어질 것 같아요. 다른 건 괜찮은데 잘생긴 얼굴에 상처 낸 건 못 참겠더라구요(웃음).촛불집회가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동안 현장에서 느낀 변화가 있다면? 이제 서서히 장기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도 일이 있는 사람이고 다들 생업이 있는데 물리적으로 이렇게 매일 나와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 상황에 맞춰서 촛불집회가 진화해가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보면 평일에는 소수의 사람이 모이고 주말이나 특별한 이슈가 있는 날엔 좀 많이 모이는데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라도 규모는 줄어들 듯합니다. 아무래도 4년 내내 이래야 될 것 같거든요.4년 내내 촛불집회, 정말 그렇게 보고 계신 건가요? 왜냐하면 앞으로 쇠고기 사안뿐만 아니라 민영화 문제부터 줄줄이 걸려 있어요. 모두 국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들이에요. 수돗물, 전기세 민영화는 국민의 에너지권 문제고. 돈 없는 사람은 물 끊겠다는 거 아닙니까. 의료 민영화는 돈 없는 사람은 병원에 가지 말라는 얘기거든요. 이런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쇠고기는 도화선에 불과해요.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이 본능적으로 터져 나온 겁니다. 물론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저는 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촛불이 가라앉으면 정부는 또 다시 그런 정책을 시도하려고 할 겁니다.촛불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분들 계시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비폭력으로 가야 된다고 봐요.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여기 계신 상인 분들 장사 못하셨어요. 그분들은 죄가 없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책임을 느껴야 되거든요. 합법 시위를 하고 가능한 한 도로로 나가는 것을 피해야죠. 사람들이 한두 번이야 참아줬지만 몇 달씩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참아주기 힘들어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도 그렇잖아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예컨대 집회 끝나면 그동안 집회 때문에 피해봤던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든지, 최대한 매출을 올려줘야죠. 또 격렬한 시위가 끝난 후에 전경들에게 위문품을 보낸다든지, 그동안 다소 과격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너희들이 미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너희가 했던 행동도 다 용서하겠다’는 식의 마무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2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집회 현장의 여성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의 불안으로부터 100%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먹을거리 문제에 민감한 엄마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회에 나섰고 20, 30대 여성이 주회원인 인터넷 패션 카페 회원들은 신문에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광고를 냈다.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남자친구와 집회 현장을 찾는 여성들을 보고 진 교수도 처음엔 갸우뚱했다고 한다. 유난히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촛불집회였어요. 현장에서 느끼시나요? 처음에는 여고생, 그다음엔 어머니들이 나왔어요. 남녀가 다른 게 남자는 ‘미국산 쇠고기 먹어도 광우병 걸릴 확률 10억 분의 1밖에 안 된다며? 까짓 거 난 먹을 수 있어’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아이에게 그런 음식을 먹여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다른 거예요. 아이가 먹을 텐데 ‘병 걸릴 확률 몇 십억 분의 일밖에 안 되니까 그냥 먹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게다가 학생들은 급식 선택권이 없잖아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영어 몰입식 교육이다, 0교시 부활이다, 당장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쇠고기는 마음대로 협상하고 억지로 먹으라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긴 것 같아요. 여성들의 감성 있잖아요. 그게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그런 여성의 반응이 도화선이 된 거죠. 이번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여성은 굉장히 생산적인 역할을 했어요. 남성들도 ‘생각해보니 그러네’ 하며 동참할 수 있게 만든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현장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만난 시민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 있습니까? 많죠. 그동안 굉장히 많은 분들을 만나봤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거였어요. 경찰 앞에서 바로 팔짱을 딱 끼고 스크럼을 짜고 있는 분께 “데모 좀 해보셨느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아니, 오늘 처음 해보는데요”였어요. 시위 나오는데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신고 가슴 푹 파인 옷 입고 나오는 여성분들도 계세요. 예전에 데모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처음엔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파악이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게 촛불집회의 특징인 것 같아요. 한쪽에선 격렬히 부딪치고 한쪽에선 모여 앉아 노래 부르고. 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많은 단체들이 집회에서 대중들을 이끌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을 보고 운동권이 반성을 많이 했죠. 사람들은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불안이 있는데 그걸 과거의 낡은 생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거죠. 유모차를 끌고 집회 현장에 나온 주부들에게 아이를 방패 삼는다는 정부의 비난도 있었어요. 유모차 주부들은 위험한 현장에는 오지 않아요. 앞쪽에서 버스 끌어내고 있는데 유모차 끌고 가겠어요? 항상 시위 앞부분은 격렬해도 한 50m 뒤는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다른 세상이에요. 투쟁으로서의 정치, 놀이로서의 정치가 함께하는 거죠. 정부가 아이를 방패 삼는 거냐고 하잖아요.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아이를 진압할 의지가 있다는 거죠. 어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살의를 느꼈다고 해요. 자기는 운동권도 아니고 그저 애한테 미국산 쇠고기 먹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나온 건데 그런 식으로 매도를 당했다구요. 치사하게 자기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물고 늘어지는데 정말 참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진 교수님도 아이를 가진 아버지로서 그런 의견에 동감하나요? 물론 저도 애한테 위험한 걸 먹이고 싶진 않죠. 저는 남자니까 어머니 마음만큼은 아니겠지만 일단 위험이 있으면 피해야 되는 거잖아요. 피하고 싶은 건 거부하게 돼 있죠.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현재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진중권은 누구인가요? 정체성을 정의하신다면요. 첫째로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들의 의견에 동감하기 때문에 나온 거고, 둘째로 리포터로 나온 거고, 세 번째는 미디어 미학자로서 지금의 현상이 재밌으니까 나와요. 전 세계에서 이런 방식의 집회는 처음이잖아요. 촛불집회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아마 사태가 좀 진정되면 풀어낼 거예요. 일부는 칼라TV를 통해서 이미 풀어냈구요. 칼라TV가 집회 현장을 인터넷에 생중계하잖아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지시를 내리면 그 지시를 받고 인터뷰를 해요. 싸우는 사람들 말려달라고 하면 말려주고 중재해달라면 중재해주고. 현장에 없는 시민들도 원격 제어로 집회에 개입하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우리도 책상 갖다 놓고 카메라 고정시키고 하다가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고 뛰기 시작했어요. 노트북이니까 그게 됐죠. 사람들이 저를 ‘포로리(‘보노보노’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만화 캐릭터. 진 교수를 닮았다고 하여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편집자 주)’라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리잖아요.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거죠. 칼라TV 후원금을 게임 아이템 모으듯 ‘아이템을 모아 마련해주자’ 이런 식이에요. 제가 연행 당했을 때도, 게임하다 캐릭터가 죽으면 얼마나 열 받겠어요. 진지함과 놀이와 기대가 결합되어 있는 것. 굉장히 재밌는 미디어 현상이에요. #3 천하무적 진중권 작년 이맘때에도 진중권은 토론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 토론보다는 논란에 가까웠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 ‘디워’를 혹평해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던 것. 1년 후 전세는 역전(?)됐지만 여전히 진 교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거침없는 발언 뒤에 따라오는 수많은 비난과 협박은 무섭지 않다.촛불 역시 ‘냄비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정부는 식을 때까지 두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구요. 냄비가 두 달 동안 가는 거 봤어요? 이게 어떻게 냄빕니까. 저도 지겨워 죽겠는데(웃음). ‘선거 때 되면 까먹고 또 찍을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번엔 좀 다를 거예요. 시민들이 이제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촛불집회 했죠, 도로로 나갔죠, 불법이라고 해서 다시 들어왔죠. 이제는 수가 없는 거예요. 정부는 여전히 말 안 듣고. 시민들이 정치의식을 운동권식으로 습득한 게 아니거든요. 말이 안 된다는 걸 체험으로 깨닫고 스스로 경찰에 맞서고 연행됐단 말이죠. 이제는 구속되기까지 했죠. 이런 체험을 했다는 게 굉장히 큰 자산으로 남을 거예요. 교수님도 연행됐었고 폭행도 당했었고, 살해 협박에 그야말로 ‘갖은 고초’를 겪었는데 주위 분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이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를 해요. 집에 노모가 계시는데 제가 받으면 괜찮은데 어머니가 받으시면 좀 그렇더라구요. 전화 코드를 뽑아놨어요. 불만이 있으면 직접 와서 말을 하지 죽이러 온다고 협박하는데 오지는 않고 전화만 계속하니 짜증이 나죠. 온다고 온다고 말만 하고 안 오니 내가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그게 어떻게 보면 유명세의 부작용 아닌가요? 인기가 많은 만큼 안티도 늘어나는. 반짝 유명세라고 생각해요. 연예인들 인기와 마찬가지죠. 연예인도 처음엔 막 인기 있다가 1, 2년 지나면 잊혀지잖아요. 그 많은 가수들, 누가 이름 기억하나요? 지금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지식인한테 필요한 건 인기가 아니라 신뢰죠. 상처받고 그러면 ‘이런 짓’ 못하죠. 악플이나 협박에 상처 안 받아요. 대중이 저에게 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현장에 계실 건가요? 촛불집회가 끝날 때까지 있어야죠. 쇠고기 문제 때문에 묻힌 것들이 많아요. 비정규직, 이랜드, KTX 승무원 등등. 쇠고기 문제는 이 정도였지만 앞으로 터져 나올 이슈들, 예를 들어 의료 민영화 같은 사안은 또 다른 문제예요. 그때는 매우 격렬해질 겁니다. 어쨌든 집회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결합하면서 대응 방법을 찾아 나갈 겁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정치라는 게 삶과 이렇게 밀착되어 있구나’라고 느끼셨을 거예요. 이번 집회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힘이 굉장히 큽니다. 어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구요. 백화점에 가면 남편한테는 ‘고객님’이라고 부르고 자기한테는 ‘어머니’라고 부른다고요. 어머니와 모성애가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여성의 모든 정체성을 담는 건 아니잖아요. 어머니의 역할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가세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중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심 갖지 마세요. 먼저 책 읽고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그대로 따라 해요. 아이들은 스스로 자랄 때 가장 잘 큽니다(웃음). ■ 글 / 노정연 기자■사진 / 인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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