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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부채는 ‘관음증’ 환자의 ‘핫템’...겸재·단원·추사도 사랑한 화폭이었다
- 2024. 07. 09 05:00 문화
- ... ‘핫템’, 겸재·단원·추사도 사랑한 화폭이었다 부채는 ‘관음증’ 환자의 ‘핫템’…겸재·단원·추사도 사랑한 화폭이었다 ‘하나같이 근심되는 것이 천하의 더위인데(一念長憂...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 추사 김정희가 글 쓰듯 그린 난초 명작 ‘불이선란’, 보물 된다
- 2023. 06. 27 14:54 문화|문화
- ... 다른 문화유산 300여점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은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인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 비롯해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 추사 김정희불이선란세한도보물손창근난초불조삼경
- [임혜자의 내 인생의 책]⑤추사 김정희 - 유홍준
- 2021. 10. 14 21:10 문화
- ... 않을 때 제자 이상적만은 달랐다. 위험을 무릅쓰고 연경에 가서 방대한 분량의 책을 구해 추사에게 보내줬다. 고독한 추사에게 책은 버팀목이었으며 영혼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우주였으리라. 시류에...
- 김동현의 내 인생의 책
- 김정희 평전 펴낸 최열 “추사에 대한 신비화·신격화 걷어내고 오직 ‘사실’에 집중”
- 2021. 08. 24 21:48 문화
- ... 했다. “김정희는 신화·신앙이 되었어요. 김정희라는 존재와 그에 관한 사실은 하나인데, 연구자와 추사 애호가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추사 김정희’가 나와버린 거죠. 월인천강(月印千江, 하나의 달이...
- 추사 김정희 평전 최열
스포츠경향(총 346 건 검색)
- 추성훈, 추사랑-유토 보며 “나였으면 무조건 뽀뽀타임” (내생활)
- 2024. 10. 26 17:36 연예
- ENA 토요예능 프로그램 ‘내 아이의 사생활’ ‘내 아이의 사생활’ 사랑이와 유토의 11년 우정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10월 26일 방송되는 ENA 토요예능 프로그램 ‘내 아이의 사생활’(이하 ‘내생활’) 8회에서는 11년 절친 사랑이와 유토의 홍콩 여행 마지막 이야기가 그려진다. 스튜디오에서는 MC 도장부부 도경완-장윤정과 사랑이의 아빠 추성훈이 아이들의 사생활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사랑이와 유토의 11년 우정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추사랑과 전쟁’ 전말이 공개된다. 이는 ‘내생활’ 첫 방송 전 공개된 티저 예고에 담긴 사랑이와 유토의 갈등을 말하는 것으로, 언제나 순둥순둥한 유토가 소리를 지르고 밝은 사랑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랜선 이모-삼촌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공원을 찾은 사랑이와 유토. 아이들은 공원에서 축구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유토는 사랑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알려주고 싶어 적극적으로 나선다. ENA 토요예능 프로그램 ‘내 아이의 사생활’ 이런 가운데 갑자기 발생한 예기치 않은 사고에 분위기가 급변한다. 갑자기 유토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사랑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덩달아 눈물을 터뜨린다. 서로에게 가까이 갈 생각도 못 한 채 멀리 떨어져 울기만 하는 아이들.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사고가 생긴 건지, 사랑이와 유토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진다. 갈등을 겪었던 낮이 지나고 러브유에게 홍콩의 마지막 밤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관람차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며 여행의 소감을 나눈다는데. 이때 유토가 사랑이에게 하고 싶어 배워 온 한국어 한마디를 꺼내며 관람차 안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전언. 이를 보던 추성훈은 “나였으면 무조건 뽀뽀한다. 이거는 뽀뽀하는 타이밍”이라고 과몰입한다고 해 기대를 더한다. 한편 눈물, 웃음, 설렘, 갈등 등 다양한 색으로 가득 채워진 사랑이와 유토의 홍콩 여행의 마지막 이야기는 오늘(26일) 토요일 저녁 8시 30분 방송되는 ENA 토요예능 ‘내 아이의 사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추사랑, 벌써 이렇게 컸어? 추성훈과 홍콩 여행 중 폭풍성장 근황 (내 아이의 사생활)
- 2024. 10. 25 17:44 연예|연예
- ENA 토요예능 프로그램 ‘내 아이의 사생활’ 8회 방송분. 캡처 ‘내 아이의 사생활’ 사랑이와 유토가 홍콩 여행 중 추성훈과 만난다. 26일 방송되는 ENA 토요예능 프로그램 ‘내 아이의 사생활’(이하 ‘내생활’) 8회에서는 11년 절친 사랑이와 유토의 홍콩 여행 마지막 이야기가 그려진다. 스튜디오에서는 MC 도장부부 도경완-장윤정과 사랑이의 아빠 추성훈이 아이들의 사생활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날 추성훈은 일정 차 홍콩에 방문했다가, 단둘이 여행 중인 사랑이와 유토를 만난다. 추성훈은 아이들을 미슐랭 2스타 식당으로 초대한다. 돈이 없어서 아껴 쓸 생각만 하던 아이들은 모처럼의 만찬에 즐거워한다. 처음 추성훈의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아빠 돈 뺏으러 가자”고 다짐했던 사랑이는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슬슬 돈 이야기를 꺼낸다. 사랑이와 유토의 합동 공격에 추성훈은 “아버지가 은행이야?”라고 버럭했다고 전해져 그 현장을 궁금하게 한다. 추성훈은 아이들을 자기가 머무는 숙소로 초대해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좋은 호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시 사랑이가 자리를 비우자 추성훈과 유토 사이에 서먹한 기류가 형성됐다는데. 이 같은 어색한 분위에 대해 유토는 “사랑이 아빠가 날 의식하는 것 같다”라고 그 이유를 짐작한다고. 과연 유토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치솟는다. 또한 추성훈과 아이들은 호텔의 인피니티풀에서 물놀이도 즐긴다. 이때 추성훈과 유토가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수영 대결을 펼친다는 전언. 사랑이는 누구를 응원할지, 또 운동경력 46년의 추성훈과 태어난 지 13년인 유토 중 누가 승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추성훈과 함께한 사랑이와 유토의 홍콩 여행은 오는 26일 토요일 저녁 8시 30분 방송되는 ENA 토요예능 ‘내 아이의 사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종합] “마음 한편 감동 있다”…‘내생활’, 도도남매→추사랑의 첫 도전기
- 2024. 09. 06 12:10 연예
- ENA 제공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안길 ‘내 아이의 사생활’이 찾아온다.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ifc 서울 TWO빌딩 3층 ifc포럼 브룩필드 홀에서 ENA 새 토요 예능 ‘내 아이의 사생활(이하 ‘내생활’)’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강봉규 PD, 유창섭 PD, 가수 장윤정, 방송인 도경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배우 박정철이 참석했다. ‘내생활’은 품 안의 자식들의 생애 첫 도전을 통해 어른들은 몰랐던 아이들의 사생활을 지켜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신상출시 편스토랑’을 기획한 강 PD가 연출을 맡았다. 이날 강 PD는 ‘내생활’에 대해 “생애 첫 도전기로 봐주시면 될 것 같고 부모님이 모르던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부모님과 아이들이 소통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생활’에서는 특별히 뭔가를 보여주려 한 건 없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했을 때는 ‘집 나간 아빠들의 자발적 귀환’이라는 문구를 적었었다. 당시에는 아빠들이 아이가 태어나면 일을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과 함께하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공동육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경완은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일도 딱히 많이 없었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가끔씩 있는 일 감사하게 하고 있다가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또 저희 아이들이 엄마 쪽을 더 닮아서 방송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주 단위, 하루 단위로 바뀌는 모습을 느꼈다. 많이 배워야겠다는 걸 촬영하며 느꼈다”고 말했다. 도경완, 장윤정. ENA 제공 장윤정은 “아이들을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어릴 때 한번 공개를 했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선택한 일이라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시기였다. ‘도장TV’에서 아이들 노출을 줄여보자 하던 때에 연락이 왔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연우랑 하영이가 너무 좋아하더라. 또 제작진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촬영을 통해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며 “스튜디오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처음 봤는데 그냥 우리 동네에서 다니는 것처럼 너무 편하게 다니더라. 아이들은 늘 경험하는 게 낯선 거다. 그게 늘 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거더라. 이 아이들은 새로운 걸 흡수하는 게 아무 문제가 없었나 보다. 물어보니까 하나도 불편함이 없었다고 하더라. 하영이는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아이다. 미국에서는 자기를 잘 알아보지 않으니까 되게 편하게 다니더라. 그래서 우리끼리 ‘미국 체질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도경완은 “아이가 선천적인 건지 한국에서는 밖을 다니면서 좀 낯설어하는 게 있었다. 그런 게 미국 가서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서 한 달 있는 내내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까 좋아지더라”라고 말했다. 추성훈. ENA 제공 추성훈은 “제가 ‘슈돌’ 처음 시작할 때 ‘내 아이의 사생활’ 제작진과 함께 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우리 사랑이를 사랑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랑이가 더 하고 싶어 하더라. 마음이 바뀌었다. 물론 저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사랑이가 확실히 다녀오고 많이 변했다. 한국 나이로 사랑이가 14살이다. 우리 아파트가 20층에 있는데, 그동안 사랑이가 아파트 앞에 편의점도 혼자 못 갔다. 가야 되면 저랑 같이 가고, 혼자서 집 앞에 어디 가라고 해도 ‘못 간다’고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다녀오고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태까지 혼자 친구들이랑 어디 가서 놀지도 못했다. 우리가 데려다주고 시간마다 픽업했는데, 이제 혼자 택시 타고 돈도 내게 됐다. 확실히 좋은 경험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만 슬펐다”고 덧붙였다. 한편 ‘내생활’에는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총출동한다. 도경완-장윤정의 자녀 연우와 하영이, 귀여움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추성훈 딸 사랑이 등 매회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화제의 아이들도 출연할 예정이다. 오는 7일(토) 오후 8시 30분 첫 방송.
- ‘내생활’ 추성훈 “딸 추사랑, 집 앞 편의점 혼자 못 갔는데…방송 후 달라져”
- 2024. 09. 06 12:06 연예
- 추성훈. ENA 제공 ‘내 아이의 사생활’ 추성훈이 딸 추사랑을 언급했다.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ifc 서울 TWO빌딩 3층 ifc포럼 브룩필드 홀에서 ENA 새 토요 예능 ‘내 아이의 사생활(이하 ‘내생활’)’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강봉규 PD, 유창섭 PD, 가수 장윤정, 방송인 도경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배우 박정철이 참석했다. ‘내생활’은 품 안의 자식들의 생애 첫 도전을 통해 어른들은 몰랐던 아이들의 사생활을 지켜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신상출시 편스토랑’을 기획한 강 PD가 연출을 맡았다. 이날 추성훈은 “제가 ‘슈돌’ 처음 시작할 때 ‘내 아이의 사생활’ 제작진과 함께 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우리 사랑이를 사랑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랑이가 더 하고 싶어 하더라. 마음이 바뀌었다. 물론 저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사랑이가 확실히 다녀오고 많이 변했다. 한국 나이로 사랑이가 14살이다. 우리 아파트가 20층에 있는데, 그동안 사랑이가 아파트 앞에 편의점도 혼자 못 갔다. 가야 되면 저랑 같이 가고, 혼자서 집 앞에 어디 가라고 해도 ‘못 간다’고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다녀오고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태까지 혼자 친구들이랑 어디 가서 놀지도 못했다. 우리가 데려다주고 시간마다 픽업했는데, 이제 혼자 택시 타고 돈도 내게 됐다. 확실히 좋은 경험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만 슬펐다”고 덧붙였다. 한편 ‘내생활’에는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총출동한다. 도경완-장윤정의 자녀 연우와 하영이, 귀여움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추성훈 딸 사랑이 등 매회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화제의 아이들도 출연할 예정이다. 오는 7일(토) 오후 8시 30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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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추사의 세한도는 ‘연행의 산물’(2010. 01. 20 10:46)
- 2010. 01. 20 10:46 문화/과학
- ㆍ사신으로 청나라 수도 연경 방문 통해 학문적·예술적 업적 이룩 올해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연행(燕行) 200주년이 되는 해다. 연행은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 사신이나 사신의 수행원 자격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추사의 연행을 기념하기 위해 필자는 ‘추사를 보는 열 개의 눈’(3월 1일까지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이란 전시회를 기획했고, 추사의 명작을 연구한 (문학동네)를 펴냈다. 그런데 왜 추사의 연행을 기념하는 것일까. 추사에게 있어 연행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김정희의 . 연행은 보통 세 사람의 사신과 그들을 수행하는 수행원, 역관 등 여러 관리로 구성돼 있었다. 정조 이전만 해도 연경에 간 조선 사신들은 대부분 청나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청나라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서적을 수입해 지식을 쌓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 지식인들에게 있어 청나라는 복수의 대상이었다. 청나라는 임진왜란에 도움을 준 형제국 명나라를 멸망시킨 원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이 같은 인식은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청나라를 바라보는 조선 지식인들의 시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젊은 지식인들의 연행이었다. 부친 김노경 따라 첫 연행 나서 그들은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를 시작했다. 함께 시를 짓고, 저술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조선 지식인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던 청나라 지식인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었다. 송영방의 .이후 정조가 등극하면서 청나라 문물 수용이 본격화됐다. 청나라는 이미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북학(北學)의 등장이다. 정조는 재위기간(1776~1800) 동안 청나라 문물을 수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나라 문물의 무작정 유입은 반대했다. 철저히 준비된 상황에서 조선에 필요한 부분만 제한적으로 들여왔다. 그런데 정조가 사망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청나라 문물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연행은 지식인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경화세족(京華世族)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요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또한 연행이 중시되면서 역관이 문화 매개자로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추사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이다. 각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여항(閭巷·중인 출신의 문예인) 지식인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추사의 제자 조희룡(趙熙龍)이 쓴 는 바로 그런 당시 상황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추사의 일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추사를 추사답게 만든 학문과 예술의 토양이었다. 옹방강 등 청나라 학자와 교류 추사의 연행은 1809년 10월에 시작됐다. 생원시에 막 합격한 김정희는 사신으로 연경에 가게 된 부친 김노경(金魯敬, 1766~ 1837)을 따라나섰다. 어쩌면 추사의 연행은 과거 합격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추사는 젊을 때부터 과거 공부에 크게 힘을 쏟지 않았다. 그 대신 청나라에서 들어온 최신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김노경은 그런 추사를 마뜩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과거에 합격했으니 김노경의 입장에선 한 시름 놓은 셈이었다. 그해 12월 하순 연경에 여장을 푼 추사는 연경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인물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고 의문점들을 해소했다. 그러나 귀국할 날짜가 다 되도록 옹방강(翁方綱, 1733-1818)만은 만날 수 없었다. 옹방강은 추사가 꿈에도 그리던 인물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10년을 준비한 추사였다. 자신의 서재에 옹방강의 글씨를 수집해 놓고, 옹방강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보담재(寶覃齋)’란 당호까지 건 추사였다. 당시 옹방강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 외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다. 추사는 너무도 초조했다. 추사는 부친 김노경에게 부탁도 하고 연경에서 사귄 친구들도 동원해 가까스로 옹방강을 만나게 됐다. 귀국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만남은 옹방강의 서재인 소재(蘇齋)에서 이뤄졌다. 그날의 역사적인 만남을 추사는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옹방강은 소동파를 존경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서재를 소재라 했으며, 그곳에는 소동파와 관련한 보물들로 가득했다. 나막신을 신은 소동파의 모습을 그린 , 나양봉이 그린 , 소동파가 쓴 진적(眞跡), 의 찬문(贊文) 글씨, 송판본 등 너무도 진귀한 자료들이었다. 이때 추사가 본 소재의 보물들은 하나하나가 추사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편지의 영인본 .귀국한 추사는 편지를 통해 옹방강을 비롯한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를 시작했다. 1818년 옹방강이 사망할 때까지 추사는 9년이란 세월을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추사는 이처럼 ‘연행을 통한 북학의 수용’이라는 틀 속에서 탄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추사는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서·화에서부터 감상·금석학·경학·고증학에 이르기까지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함으로써 ‘19세기 조선 학예의 관문이자 북학의 종장’으로 군림한 것이다. 그는 평생 중국을 한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의 출발점은 바로 북학이었다. 역시 연행을 통해 시작돼 북학을 통해 완성됐으며, 다시 연행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1810년 소재에서 본 찬문 글씨는 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는 본래 소동파의 그림이었다. 소동파가 혜주(惠州)로 유배됐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소동파의 아들이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 소동파는 그런 아들이 너무도 기특했다. 누워 있는 소나무 그림을 그리고, 찬문을 지어 머릿병풍을 만들었다. 추사가 소재에서 본 것은 바로 소동파가 쓴 찬문 글씨였다. 옹방강은 1794년 겨울에 소동파의 찬문 글씨를 구했다. 52자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각이었지만 소동파의 다른 자료들과 함께 소재 안에 소중히 보관했다. 소동파의 ‘언송도’서 모티브 얻어 청대 화가들의 전기집인 에 찍힌 추사의 인장.옹방강의 친구와 제자들은 소동파가 그린 그림이 전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동파의 찬문을 바탕으로 를 그려 보기도 했다. 옹방강은 또 1796년 12월 19일 소동파의 생일에 시를 지으면서 찬문에 대해 ‘고송언개전기호(古松偃蓋全戶)’라는 싯귀를 읊었다. ‘고목이 된 소나무 비스듬히 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 있네’라는 의미이다. 바로 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집과 소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추사는 일찍이 이를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추사는 를 그릴 수가 없었다. 소동파가 멀리서 찾아온 아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를 그렸듯이 추사 자신은 소동파와 같은 상황에 있지도 않았고, 그런 절개에 비견할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추사는 억울하게 제주도에 유배됐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이상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잘나가던 때나 제주도에 유배돼 있을 때나 한결같았다. 청나라의 최신 정보를 전해 주었으며, 귀한 책들을 보내 주었다. 한번은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어렵게 구해 온 을 보내 왔다. 추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됐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추어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추사는 현실 속에서 체험한 것이다. 소동파의 에 비길 만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붓을 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에 실린 이상적의 초상화.추사는 붓을 들어 30년 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에 쏟아 부었다. 는 그렇게 탄생했다. 에서 시작된는 장경(張庚)의 을 통해 황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소치(小癡) 허련(許鍊)과의 만남 속에서 새롭게 터득한 먹 사용법이 적용됐다. 을 받은 추사는 참을 수 없는 그 고마움을 에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청나라 지식인은 그런를 위해 기꺼이 헌사를 바쳤다. ‘추사를 보는 열 개의 눈’ 전시는 바로 이런 추사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기획됐다. 지금까지 추사라 하면 으레 글씨와 그림만을 이야기했다. 추사는 서화나 경학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했다. 경학이 학문이듯이 서화도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학예일치가 뜻하는 바이다. 서화에 관한 추사의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학문적 성취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가 탄생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업적들의 역사적 맥락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추사 연구가 더 이상 추사 글씨의 진위나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사가 바라본 그곳을 우리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전시는 추사 연구자가 제시하는 추사 이해의 해법이라 할 것이다. 추사를 알면 조선의 19세기가 보인다. 조선의 19세기를 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조선의 19세기는 추사의 연행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추사의 연행을 기념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박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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