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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18 건 검색)

‘친일 논란’ 교과서 채택한 문명고에…학부모·시민단체 ‘취소 소송’
친일 논란’ 교과서 채택한 문명고에…학부모·시민단체 ‘취소 소송’
2025. 01. 09 16:01사회
... 지난해 전국 일반계고 중 유일하게 한국학력평가원이 펴낸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 교과서는 친일 인사를 두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미화논란경북
‘친일파’ 이해승 후손 땅 환수 나선 정부···대법 “이미 배제된 땅은 환수 안 돼”
친일파’ 이해승 후손 땅 환수 나선 정부···대법 “이미 배제된 땅은 환수 안 돼”
2024. 12. 19 15:40사회
...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옛 친일재산귀속법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0년 대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확정 지으면서...
친일그랜드힐튼이우영이해승
“‘친일 논란’ 한국사 교과서 채택 철회해야”…교육계·시민단체 반발 계속
“‘친일 논란’ 한국사 교과서 채택 철회해야”…교육계·시민단체 반발 계속
2024. 12. 17 16:01사회
... 펴낸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문명고 친일·독재 미화, 불량 한국사교과서 채택대응 대책위원회’는 17일 경북 경산 문명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친일 논란’ 한국사 교과서 택한 문명고 “보조교재 선정하겠다”…학부모 대상 교과서 공개행사는 연기
친일 논란’ 한국사 교과서 택한 문명고 “보조교재 선정하겠다”…학부모 대상 교과서 공개행사는 연기
2024. 12. 16 17:20사회
... 한국사 교과서 선정과 관련한 비판 집회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문명고 친일·독재 미화, 불량 한국사교과서 채택대응 대책위원회’는 공개 행사가 열리는 시각에 문명고 정문...

스포츠경향(총 87 건 검색)

KBS 박민 사장 “광복절 ‘기미가요’ 친일 의도 아니었다”
KBS 박민 사장 “광복절 ‘기미가요’ 친일 의도 아니었다”
2024. 08. 28 20:46 연예
연합뉴스 박민 KBS 사장이 28일 지난 광복절에 KBS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오페라가 방영된 것과 관련해 국회에서 공개 사과를 했다. 박 사장은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결산보고에 출석, 야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이유야 어쨌든 광복절 아침에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기모노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오페라를 편성한 것은 불찰”이라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다만 “친일하기 위해서 광복절에 의도적으로 그런 방송을 편성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이날 KBS의 ‘나비부인’ 방영을 비판하면서도 그 원인을 두고선 온도 차를 보였다. 여당 의원들은 제작진의 실수였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야당은 KBS가 ‘친일·매국 방송’이 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은 박 사장에게 “공영방송이 편성에 소홀했다는 부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노래를 한국인 단원이 한 것이고 길어봐야 9초, 6초였는데 친일 방송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억울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최수진 의원은 “2014년 JTBC, 2015년 MBC도 기미가요를 방송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고 처분을 받은 바 있다”며 “앞으로 공영방송에서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KBS 공영방송에 나온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국민의 방송 KBS가 ‘땡윤 방송’도 모자라 매국 방송, 독재 미화 방송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한민수 의원은 KBS가 광복절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시작’을 방송한 것도 독재 미화에 해당한다며 “영화에선 이 전 대통령 하야를 ‘위대한 결단’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러면 4·19 혁명으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전문] ‘최민식 비난’ 이병태 교수 “강남 좌파, 전형적인 사고” 색깔론도 등판?···“친일이 정상, 반일이 비정상” 발언도 다시 주목받아
[전문] ‘최민식 비난’ 이병태 교수 “강남 좌파, 전형적인 사고” 색깔론도 등판?···“친일이 정상, 반일이 비정상” 발언도 다시 주목받아
2024. 08. 23 00:38 연예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배우 최민식을 비난한 자신의 말에 대해 재차 입장을 밝히며 ‘강남 좌파’ 등 용어를 사용해 색깔론으로 이슈를 이동하려는 듯한 글을 공개한 후 과거 언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을 지냈으며 보수 유튜버로 활동한 바 있는 인물이다. 그는 그동안 ‘극우 성향’ 발언으로 수 차례 논란에 휩싸였고 지난 2019년 우리 정부가 반일 선동을 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당시 유튜브 ‘이병태TV’에서 “반일 경제 독립 선동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반일 선동을 계속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웃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노력을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2019년 최저임금 정책을 겨냥해 ‘치매’, ‘정신분열증’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같은 해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는 “친일이 정상, 반일이 비정상”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런 인상적인 발언들을 했던 이병태 교수는 22일 소셜미디어 등에 “나는 왜 최민식을 저격했나?”라며 글을 올리며 “강남 좌파들의 위선의 언어의 전형”이라는 주장을 했다. 앞서 최민식은 지난 17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영화의 위기, 배우의 길’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민식은 상승하는 극장 티켓값에 대해 “극장비 좀 내려라. 너무 비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코로나 때 죽다 살아난 업계니까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는데 한 편에 15,000원이다. 영화 보면서 하루 보내면 10만 원은 나온다. 그럼 집에서 편하게 OTT 보지 극장까지 가겠냐”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이병태 교수는 20일 SNS에 “세상에서 가장 값싼 소리”라며 “가격이 내려서 관객이 더 많 오고, 이익이 는다면 기업들은 내리지 말래도 내린다. 팬데믹 중에 영화관들은 부도 위기에 직면했었는데 최민식 배우는 출연료를 자신들의 영화를 상영해주는 극장을 위해 기부라도 했었나? 영화관 사업은 땅파서 하나 아니면 자선사업으로 알고 있나? 시장 가격을 소비자 원대로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사업은 없고,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배우라는 직업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영화관은 티켓으로 돈 버는 사업이 아니다. 싼 티켓으로 관객을 유인해서 팝콘과 음료수 팔아서 돈 버는 사업이다. 영화 티켓은 미끼 상품이다. 대출 금리가 올라 임대료가 오른다. 최저 임금이 올라 하다못해 극장 청소 인력의 인건비도 올랐다. 영화 판권도 있다”며 “당신들이 혜택받는 영화진흥기금이라는 준조세까지 다 포함해서 당신은 1,5000원 이하로 사업할 수 있으면 주주가 있는 다른 기업의 극장에게 요구하지 말고 당신이 극장 하나 세워서 싸게 사업해라”고 비난을 추가했다. 이 글이 주목을 받자 이병태 교수는 “어느 분이 내 비판이 많이 불편했는지 개인 이메일을 보냈다. 너는 카이스트에 기부했냐? 너는 영화관 가봤냐? 영화배우는 소신 발언도 못하냐? 이게 이메일의 내용이다. 이런 일방적 개인 메일 노땡큐다”며 “내가 카이스트에 기부하든 안 하든 영화관을 가든 말든 그것이 내 비판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가지 내가 답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나는 그의 소신 발언의 자유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며 “그의 소신 발언은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것은 그의 발언이 공론의 장에 나온 것이고, 그는 그 메시지가 들려지고 싶어서 이야기를 한 것일 것이다. 공론의 장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그런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고 전했다. 이병태 교수는 “한국 영화가 이처럼 커지고 배우들이 지금처럼 대접받는 시절이 온 것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들이 국민의 소득 수준에 걸맞은 극장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또 “넷플릭스와 같은 기술 기업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들이 영화를 보게 유인하는 그런 플랫폼 기업들이 없다면 영화 산업도 배우의 고수입도 한류 열풍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가 비판한 것은 가격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다. 영화 관람료를 비싸다고 내지르기 전에 지금 극장 사업을 하는 그 기업들의 재무제표라도 한 번 살펴봤나? 그들의 수익성이 얼마나 된다고 영화표 가격 올려서 독과점 초과 이익을 내는 양 주장하는 것인지 한심해서 한 소리다. 재무제표는 볼 줄 모른다고 치자. 그럼 자기가 일하는 산업에 중요한 기업이고, 영화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CJ CGV의 주가에는 관심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주가를 보라”며 최민식이 ‘남의 돈으로 선심 쓰는 발언을 했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이병태 교수 글 전문 나는 왜 최민식을 저격했나? 내 페북 글이 또 신문 기사가 되었다. 물론 내가 부탁한 일도, 의도한 일도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 분이 뉴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전제했을 것이다. 어느 분이 내 비판이 많이 불편했는지 개인 이메일을 보냈다. 너는 KAIST에 기부했냐? 너는 영화관 가 봤냐? 영화배우는 소신 발언도 못하냐? 이게 이메일의 내용이다. (이런 일방적 개인 메일 노 땡큐다) 내가 KAIST에 기부하든 안하든, 영화관을 가든 말든 그것이 내 비판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가지 내가 답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나는 그의 “소신” 발언의 자유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누구보다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다. 그의 “소신” 발언은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것은 그의 발언이 공론의 장에 나온 것이고 그는 그 메세지가 들려지고 싶어서 이야기를 한 것일 것이다. 공론의 장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그런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내가 그의 발언,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의 발언에 늘 불편해 하는 사실은 반기업 선동이다. 기업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이처럼 커지고 배우들이 지금처럼 대접 받는 시절이 온 것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들이 국민의 소득 수준에 걸맞는 극장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플릭스와 같은 기술 기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영화를 보게 유인하는 그런 플랫폼 기업들 (영화관과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이 없다면 영화산업도 배우의 고수입도 한류 열풍도 없다. 미국에도 한국의 영화관처럼 청결하고 좋은 영화관은 잘 없다. 우리는 대기업들이 업그레이드한 영화관이 얼마나 수준이 높은 것인지 나는 감탄하며 이용한다. 그리고 내가 비판한 것은 가격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다. 영화 관람료를 비싸다고 내지르기 전에 지금 극장 사업을 하는 그 기업들의 재무제표라도 한번 살펴 보았나? 그들의 수익성이 얼마나 된다고 영화표 가격 올려서 독과점 초과 이익을 내는 양 주장하는 것인지 한심해서 한 소리다. 제무재표는 볼 줄 모른다고 치자. 그럼 자기가 일하는 산업에 중요한 기업이고 영화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CJ CGV의 주가에는 관심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주가를 보라. 그간 영화관 사업이 판데믹과 온리인 스트리밍 서비스 경쟁업체의 부상, 최저임금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는 일반 시민보다 본인이 더 잘 알것 아닌가? 내가 빈정된 반기업 선동도 선동이지만 “소신” 발언의 성격이다. 우리가 강남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사고 체계다. 남의 돈으로 선심쓰는 발언을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박수받고 주목 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극장 회사가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그 회사 주주들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심은 본인이 쓴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공치사이고 강남 좌파들의 위선의 언어의 전형이다. 비판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공론화된 이슈를 토론되는 것이 다. 그의 발언은 한국이 시장경제가 왜 어려운지를 시사하는 발언이기에 내가 의견을 단 것이다. 그것은 경제와 경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나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하다. P.S. 나는 최민식의 연기를 좋아한다. 개인을 저격한게 아니라 그의 발언의 비논리성을 지적한 것이다.
친일파 득세 세상, 박제 뚫고 박해 넘어…28일 일산서 ‘훅’ 보낸다
친일파 득세 세상, 박제 뚫고 박해 넘어…28일 일산서 ‘훅’ 보낸다
2024. 08. 20 14:19 생활
고양지역 시민단체들이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명예훼손 소송 대응과 내년 광복80주년 기념전시 기금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을 오는 8월28일(수) 일산 라페스타에서 진행한다. 2020년부터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를 진행한 고양시민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고양평화청년회, 그리고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한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가 공동 주관하는 후원의 밤 행사는 작년 연말, 고양지역 대표적인 평화 조각가이며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가 친일보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패소 결정에 대한 대응과 내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자체적인 시민전시를 위한 기금마련을 목적으로 한다. 후원의 밤 행사를 준비하는 고양시민회 홍영표 대표는 “친일사관의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아무말 못하는 현정부의 친일적 역사관을 규탄하고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에 고양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후원의 밤을 준비” 했다며 지역의 많은 시민들과 단체의 관심을 바랐다.
독립운동단체들, 광복절 경축식 따로 개최···‘친일사관’ 강력 규탄
독립운동단체들, 광복절 경축식 따로 개최···‘친일사관’ 강력 규탄
2024. 08. 15 11:18 생활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이 광복절인 15일 정부 주최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개최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자체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한 것은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기념사를 하며 ‘국민을 위하는 후손이 되겠습니다’라고 적힌 소책자를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는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면서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 행사가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주최 기념식으로 쪼개진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독립운동단체 주최 기념식은 광복회를 포함해 37개 단체가 모인 독립운동단체연합과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이 함께 주관했다. 광복회원과 독립운동가 유족, 관련 기념사업회 및 단체 회원 등 약 350여명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박홍근 김용만 김병주 곽상언 이언주 황운하 황명선 이수진 천준호 김윤 서영교 의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김선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등 야권 인사 약 100명도 참석했다. 이 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면서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자체 기념식을 개최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과 소속의원들이 15일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앞에서 친일반민족 윤석열정부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그는 “우리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일환으로 광복회원들의 결기를 보여주어야 했다”며 “이것은 분열의 시작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진정한 통합의 이정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면서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정부의 김형석 관장 임명을 비판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은 김 관장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성향 인물로 지목했다. 이 회장은 “건국절을 만들면 얻은 것은 단 하나,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면류관을 씌어주는 일”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바로 일제강점을 합법화하게 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주간경향(총 29 건 검색)

[주간 舌전]“농업계장은 아니고, 백선엽은 친일파인가”
[주간 舌전]“농업계장은 아니고, 백선엽은 친일파인가”(2023. 09. 08 11:23)
2023. 09. 08 11:23 정치
“농업계장은 친일파가 아니고, 백선엽 만주군관학교 소위는 친일파인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 연합뉴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9월 6일 국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박 장관이 지적한 농업계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대인(先大人)인 문용형씨의 행보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날 논란은 박 장관이 “이종찬 광복회장이 백선엽 장군은 친일행위자가 아니라고 했다”는 발언 때문에 시작됐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광복회는 성명을 통해 “이 회장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으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백선엽 장군이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국군의 발전에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광복회의 반박을 두고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장관이 광복회장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고, 박 장관은 “사과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과 문 전 대통령 선대인의 행보를 비교하며 논란이 커졌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문 전 대통령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건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통령이 박 장관을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간 舌전
친일파끼리 싸운 이순신 표준영정 제작
친일파끼리 싸운 이순신 표준영정 제작(2020. 07. 17 15:53)
2020. 07. 17 15:53 문화/과학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충무공 이순신의 표준영정을 지정할 당시 화가의 친일 전력(前歷)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록원이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1973년 문화공보부의 문서에 따르면, 표준영정 통일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은 월전 장우성과 이당 김은호 화백의 이순신 초상화를 놓고 고심하다 월전의 작품을 표준영정으로 결정했다. 경쟁 대상이던 두 화가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 행적 때문에 <친일인명사전>(2009년 발간)에 친일화가로 이름이 올라 있다. 당시 문서를 보면 표준영정 지정 당시에는 이들의 친일 행적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월전 장우성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경향신문 자료사진 월전 장우성의 작품은 1973년 지정된 이후 47년간 표준영정의 영광을 누려왔다. 하지만 곧 지정해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정감사의 지적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조만간 영정동상심의위원회를 소집해 표준영정 지정해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지난 6월 문체부에 충무공 표준영정 지정해제를 신청했다. 문체부가 김영주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제3차 회의(6월 12일)’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지정해제가 이뤄진 후 내년의 연구용역을 거쳐 2022년 작가 선정과 2023년 표준영정 지정 등의 절차가 보고됐다. 표준영정 해제의 이유로는 ‘복식 오류’와 ‘국정감사에서 친일화가 지적’이 나타나 있다. 지난해 10월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김영주 의원은 “충무공의 표준영정을 그린 장우성 화백은 일제를 찬양하는 그림을 다수 그렸고, 조선총독부가 주는 상까지 받은 사실까지 역사 기록에 나와 있다”면서 “항일의 상징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을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자체는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체부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충무공 초상화에 대한 현황이 파악돼 있다. 월전 장우성과 이당 김은호의 작품에는 ‘친일화가 작품’이라는 평가가 들어가 있다. 1973년 정부 문서에 들어가지 않았던 ‘친일’이라는 평가가 2020년 정부 문서에 포함된 것이다. 2023년 표준영정 새로 지정 계획 1973년 5월 문공부 문서를 보면 5월 17일 “사계 권위자 회의를 개최하여 현충사 봉안 영정으로 통일할 것을 합의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현충사 봉안 영정은 월전 장우성이 1953년 제작한 초상화를 말한다. 이날 회의 내용 가운데는 ‘이당본을 택하는 경우’에 대해 “월전본은 현충사에 봉안되어 성역화 이후 많은 국민에게 알려져 있으며 어느 영정보다도 기품이 있어 보이므로 이를 대체하기 어려움”이라고 적혀 있다.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가 충무공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이유다. ‘월전본을 택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당은 월전의 은사로서 월전보다 먼저 충무공 영정을 그려 봉안하였고 그동안 많이 보급되어 있어 이당 측의 강한 반발과 물의가 예상됨”이라고 적혀 있다. 월전 장우성에 앞서 스승인 이당 김은호는 1950년 이순신 초상화를 그렸다. 김은호의 작품은 당시 해남 우수영과 통영 제승당에 있었다. 장우성의 작품은 아산 현충사와 정읍 충열사에 걸려 있었다. 두 친일화가의 문화권력 다툼 때문인지 표준영정의 지정은 당시에 널리 공식화되지 않았다. 문공부 문서에는 “영정 통일에 따르는 사회적 물의를 가급적 줄이고, 새로 제작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이당 김은호의 기존 영정과 진해·광화문·부산의 동상은 존치시키고 기타 조잡한 것은 폐기, 철거함”이라고 적혀 있다. 또 이 문서에는 “영정 통일의 내용은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아니하고, 정부 및 공공단체에 1차 행정적으로 보급하며, 전 국민에게 단계적으로 확대시킴”이라고 적혀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1949년 반민특위가 해체됐고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됐다”며 “1973년 표준영정 통일 당시 독재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친일문제를 언급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표준영정을 놓고 다퉜던 월전과 이당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나란히 친일화가로 실려 있다. 장우성은 1944년 3월 결전미술전 일본화부에 <항마(降魔)>라는 작품을 응모해 입선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장우성의 1942년작 <부동명왕(不動明王·일본 군국주의의 호국불)>을 근거로, ‘항마’라는 작품에서 악마는 ‘귀축미영’, 즉 연합군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했다. 1943년 6월 16일 <매일신보>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 기사가 실렸다. 여기에는 “동양화의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銃後)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했다고 나와 있다. 장 화백의 후손들은 2009년 서울고법에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게재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기각됐다. “표준영정 제도 폐지해야” 견해도 김은호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대표적 친일화가다. 그는 1937년 일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내용의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렸다. 귀족이나 관료 부인이 금비녀를 조선군사령부 중장에게 바치는 내용의 그림이다. 김은호는 일왕을 위해 ‘화필보국’·‘회화봉공’하고자 결성한 조선미술가협회에 일본화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표준영정 지정 작업은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문공부의 1973년 5월 2일 ‘충무공 영정 통일’ 기안 자료에 따르면 영정 통일 사업이란 타자 글자 앞에 “대통령 각하의 지시에 따른”이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다. 이 문서는 사업 추진 경위를 일자별로 요약해 타자로 쳤다. 마지막 부분에는 “1973년 4월 28일 충무공 영정 및 동상 통일 문제 연구를 대통령 각하께서 지시”했다고 손글씨로 덧붙여 놓았다. 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당시 충 남 아산 현충사에서는 해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탄신일 행사가 개최됐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에는 “박 대통령은 온양관광호텔에서 있은 리셉션에 참석, ‘현재 전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충무공의 영정이 각기 다르므로 이를 통일하고 각지에서 난립되고 있는 동상 건립을 규제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윤주영 문공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나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일제 충성 혈서’를 쓰는 등의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1973년 표준영정 통일 작업을 지시한 정치지도자부터 초상화를 그린 화가까지 모두 친일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방학진 기획실장은 “표준영정 제도 자체가 역사적 인물의 영정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독재의 잔재”라면서 “영정 해제 이후에는 표준영정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친일청산페스티벌 프로그래머 김세환 “연극으로 오욕의 역사 고발한다”(2020. 03. 27 15:37)
2020. 03. 27 15:37 문화/과학
코로나19가 한창인 3월 20일 전국의 공연·전시 등 문화 활동은 거의 멈춰 섰다. 특히 작고 비좁은 소극장에서 장시간 공연하는 연극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 그래서 국립극장·서울시립극단·남산예술센터 등 공공기관의 상반기 연극 프로그램은 모두 중단·종료됐다. 민간도 마찬가지다. 연극의 메카인 서울 대학로의 극단 10곳 중 8~9곳이 공연을 중단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줄기차게’ 공연을 이어가는 극장이 있다.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혜화당에서 열리는 ‘2020년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이다. 3월 4일부터 29일까지 4편의 연극이 계속 공연되고 있다. 주제처럼 마치 독립운동하듯, 레지스탕스 활동하듯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친일청산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은 연출가 김세환 프로그래머(41)다. 프로그래머란 공연예술제를 기획하고 초대하는 작업을 한다. 보통 큰 규모 페스티벌에서는 예술감독이라고 하지만 그는 “내가 모든 것을 대표하지 않는다”면서 겸손하게 프로그래머라고 표기해주길 요청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공연 이어가 -코로나19 사태에도 공연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있나. “어제(3월 19일)는 관객이 많았다. 객석이 70석인데 40~50명씩 온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예술계 타격이 크다. 연극은 10편 중 1~2편만 간신히 공연하고 있다.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닌 것처럼 연극도 모두 내린 것은 아니다. 공연이 드문 요즘 오히려 우리 연극에 관객이 더 몰리기도 한다. 극장 앞에서 모든 관객의 체온을 재고, 신원을 파악해 유사시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극장을 매일 소독하면서 공연하고 있다.” -작년은 3·1운동 100주년으로 관련 행사가 많았다. 1년 지나 이 친일청산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소극장혜화당은 페스티벌 전용극장이다. 작년에는 우리 나름대로 사업계획이 있었다. 보통 페스티벌 5개월 전 이런 주제로 페스티벌을 연다고 공고하면 여러 극단이 신청한다. 우리가 ‘오욕의 역사를 고발하는, 100+1주년에 동참할 연극인 찾는다’고 공고했다.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이 1년 지났지만 친일청산 문제는 단지 100주년이라는 시간성이 아닌 지속적인 연극행위로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우소극장’에서 올 여름·가을에 추진하는 페스티벌 주제 역시 친일청산이다.” -3월부터 오른 4개 연극을 소개해 달라. 어떤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는가. “첫 공연 극단 민예의 <오늘, 식민지로 살다>(연출 김성환), 두 번째 연극집단 공외의 <아버지의 이름>(연출 방혜영), 극단 평행의 <역광>(연출 허윤영), 마지막 작품 극단프로젝트그룹 연희공방의 <청문>(연출 이지수) 모두 관통하는 주제는 친일청산이지만 방법은 각자 다르다. 극단 중에는 역사성 있는 중견극단도 있고, 신예극단도 있다. 연극인 중에는 20~30년 무대에 선 분도, 젊은 연극인도 있다. 이렇게 시니어팀과 신예팀이 같이 어우러지는 것이 페스티벌 의미인 것 같다.” “계속할 생각이 있지만 희망사항”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친일문제는 뿌리 깊은 현실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사문제는 일면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곳 대학로 젊은이들에게 별로 호응받지 못하는 주제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연극 메시지가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닌 어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이렇게나마 공연하는 것에 응원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관심 없는 주제라도 이런 페스티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사문제는 정치적 선호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연극인들의 역할이다.”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 포스터 이번 페스티벌에 출품된 연극 중 <오늘, 식민지로 살다>는 언어·역사·문화를 잃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임종국 선생을 소재로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청산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또 <역광>은 뜨거운 가슴으로 역사를 가르치던 역사 선생님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만들었다. 마지막 공연작 <청문>은 진정한 친일청산 문제에서 친일과 종북 문제 그리고 고결함과 명예로움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선택적 가치가 되는가를 다룬다. 티켓 구입 등 자세한 문의는 02-734-7744(화~금 오전 10시~오후 6시)로 하면 된다. 이번 행사가 ‘제1회 친일청산페스티벌’이다. 제1회라면 앞으로도 계속 연다는 의미다. 하지만 김 프로그래머는 “솔직히 희망사항이다. 계속할 생각이 있지만 형편이 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사항이란 연극계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요즘 연극계는 지원 없이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어렵다. 아니 예전에도 그랬다. 열정으로 시나리오를 써도 극장을 빌리고 무대를 꾸미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객이 사는 ‘표’로 상쇄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우리 연극계 형편은 그러지 못한다. 그는 “서울시에서 대관료 50%를 지원하는 ‘서울형 창작극장’에 선정돼 이 페스티벌을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로의 부동산 임대료는 상상 이상이다. 극단이 극장을 대관해 공연하려면 뻔한 공연수익으로 한계가 있다. 다행히 페스티벌은 극단으로선 대관료 없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다. 극장은 서울시로부터 대관료의 50%를 지원받으니 그나마 연극 공연이 가능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기업은 물론 직장·소상공인까지 거의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거의 모든 연극이 막을 내렸다면 배우나 극단의 생계비 역시 끊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 프로그래머는 덤덤한 표정이다. 워낙 연극계의 어려움이 일상이 됐기 때문인가. 그는 “솔직히 연극 행위를 통해 최소한 생활이나 경제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차피 연극으로 최저생계도 안 됐으니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일종의 체념같이 들린다. 그는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년 전 연극 티켓 값이 1만5000원이었는데, 지금도 그 가격이다. 오히려 티몬이나 쿠팡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다. 이에 비해 물가나 극장 임대료는 3~4배 올랐다. 20년 전 대학로 극단은 30여 개로 서로 다 알고 지낼 정도였다. 지금은 극장만 150개, 프로젝트 극단까지 합하면 수백 개다. 그런데 정부 지원예산은 그때 그대로다. 과거 30개 극단에서 나눠 받던 지원을 놓고 지금 수백 개 극단이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대학로 극단이 위기에 처한 것은 역설적으로 2000년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면서부터다. 대학로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지구 지정제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독약’이 된 것이다. 그는 “문화지구로 지정되면 건축주나 토지주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고 건물 증축 혜택을 주니 부동산값만 폭등해 극장 임대로만 대폭 올랐다”면서 “예술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설픈 탁상행정이 대학로 연극의 메카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극장혜화당도 1991년 대학로 연극 1세대가 만든 ‘까망소극장’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4년 문을 닫자, 9명의 젊은 연극인이 인수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 창작극단에 선정돼 임대료와 전기료를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다”면서 “지금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극단 민예 의 한 장면 “대학로에서 소극장 유지만 해도 다행” 김 프로그래머는 1979년 부산 출신으로 경성대 연극영화과 98학번이다. 2002년 학군장교(ROTC)로 임관해 육군 대위로 2006년 제대했다. 제대 후 곧바로 연극계에 뛰어들어 부산시립극단 등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와 국립극장 등에서 연극 실무를 익혔다. 2008년 극단 ‘드라마팩토리’를 만들고, 그해 5월 <존경하는 옐레나 선생님>를 처음 발표하면서 <헛소동>·<몽타주>·<존 레논을 위하여>·<다시 뛴다>·<거짓말>·<라디오 잠시 길을 잃다>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연극계 ‘미투사건’의 장본인 이윤택 감독에게 2년간 연극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얘기”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이윤택 감독은 연극계 최대 극단을 이끌며 많은 연출가·극단이 그에게 배우고, 그의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옛날 연극계는 스킨십은 물론 언어·물리적 폭력도 그냥 넘어갔지만 미투를 계기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진행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공연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는 등 1년 중 300일을 공연하는 남다른 열정을 보인 연출가다. 그는 “그동안 만든 작품이 50여 편, 공연 회차로 치면 수천 회”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기획·희곡·무대·조명·음향까지 도맡는 스타일이다. 그는 “연극과 음향은 관객의 정서와 톤을 정하는 것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직접 찾는다”면서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 모두 맡아야 하는 이유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작품 제작 예산이 억 단위만 되면 음향전문 스태프와 같이할 수 있지만, 대학로 연극계에서는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한다. 그는 연기스터디 모임 ‘한걸음’을 운영하면서 2014년 소극장혜화당 운영위원 9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이곳에서 그는 SF 페스티벌, 미스터리 스릴러 페스티벌, 단막극 페스티벌,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페스티벌 등 소극장혜화당을 페스티벌 전문극장으로 키우고 있다. 그는 고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특히 그는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매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는 “체호프 단편에 등장하는 아이·여성·노인 등 일상의 섬세한 주제가 오늘날 우리가 얘기해야 할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호프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고전이든 현대이든 다양한 의미를 관객에게 쉽고 재미있게 보여줄까 고민하는 것이 연극 창작자의 임무”라면서 “친일청산페스티벌이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원희복의 인물탐구] 쓴 동국대 교수 황태연 “친일파는 왜에 빌붙은 노예다”(2020. 03. 06 14:33)
2020. 03. 06 14:33 사회
서울대 교수 출신 이영훈을 비롯한 낙성대연구소 필진이 쓴 <반일종족주의>가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다. 통계수치와 나름 그럴듯한 증거를 동원한 이 주장에 독자들이 현혹된 것이다. 이에 맞선 <일제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다. 필자는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비아냥거리려 단 책 제목”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매우 격렬한 표현으로 친일학자를 공박하고, 통계수치와 해외 사료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대표 집필자 황태연 동국대 교수(65)를 만났다. -이영훈 등 친일학자를 비롯한 친일파를 ‘부왜노(附倭奴)’, 즉 ‘왜에 빌붙은 노예’라고 표현했다. 너무 과격한 표현 아닌가. “오래전부터 목포·여수 등에 정착해 산 왜구를 ‘토왜’라 했고, 나중에 친일파를 토왜라 불렀다. 단재 신채호는 외국에 붙어 외국문화를 칭송하며 우리를 깔보는 자를 ‘부외노(附外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사전에 ‘부왜(附倭)’는 ‘왜국에 붙어서 나라를 해롭게 하는 사람’, ‘부왜역적’도 사전에 나오는 말로 과격한 표현이 아니다.” -그 ‘부왜’를 하는 이영훈을 비롯한 낙성대연구소 인사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과도해 보인다. “(허허)그들을 반국가단체로 잡아넣지 않는 검사X이 나쁜X이다. 반국가단체란 반헌법적단체다. 우리 헌법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잇는 반일독립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친일은 곧 반헌법적이고 반국가행위다.” <반일종족주의>에 맞선 <일제종족주의> 인터뷰 초반부터 매우 논쟁적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교역하는 것 역시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이란 말인가. 현직 대학교수 주장치고 비약이 크고 극단적이다. 마치 <반일종족주의>에 나오는 이영훈의 주장과 180도 차이만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만이 반국가단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 “역사적으로 북풍(대륙세력)은 한 번도 우리 민족을 말살한 적이 없지만 남풍(해양세력·일본)이 우리를 멸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수·당은 우리를 침략하다 망했고, 원은 고려와 37년 항쟁을 벌이다 왕조·영토·전통을 그대로 두는 조건으로 항복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원·청이 중국 한족에게 머리를 깎는 변발을 시켰지만 고려·조선인은 그대로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국권을 빼앗고, 단발령으로 머리까지 깎았다고 말했다.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이라는 책에서 갑오경장을 ‘갑오왜란’으로 을미사변을 ‘을미왜변’으로, 1904년 무단 군사 침략을 ‘갑진왜란’ 등으로 표현했다. “그 사건을 왜란으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친일이다. ‘경장’은 왜란을 감추려고 지어낸 말이다. 갑오경장은 통화를 바꿔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친일 괴뢰군대를 만드는 등 우리 조선 입장에서 반동적 행위다. 그게 어떻게 경장인가. 일본이 경장이니 사변이니 표현했던 것을 정신 나간 역사학자들이 해방 후에도 그냥 쓰는 것이다. 아관파천도 친일신문 <한성신문>만 파천이라 썼고, 당시 모두 ‘아관망명’이라 썼다. 파천이란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의미인데 고종이 한성에 있었는데 왜 파천인가. 일부 국사학계와 서울시도 아관파천길을 아관망명길로 바꿨다.” -책을 보면 대한제국을 너무 미화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국뽕’적 시각 아닐까. “일본 기준에 의하면 과대평가지만 정당한 평가다. 일본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강철교(1897년 착공, 1900년 준공)와 경의선 모두 고종이 놓은 것이다. 전철도 일본 도쿄보다 2년 먼저 부설했고, 전화는 일본과 같은 시기(1902년)에 가설했다. 나는 고종을 영조보다 뛰어난 군주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신식군대 3만 명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고 대한제국밖에 없었다. 국제법적 처음으로 독도를 우리 땅이라 선언한 사람도 고종이다.” -그럼 고종 독살설을 믿는 것인가. “당연하다. 고종은 북경으로 망명하려 했고, 헤이그에 이어 베르사유에 왕자 이강과 미국에서 공부한 최초의 여학사 ‘김란사’를 밀사로 또 보냈다. 그런데 이강은 안동에서 잡히고 하란사는 북경에서 독감에 걸려 죽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것은 지금 역사학계에서도 확인한 사항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이를 일련의 통사로 연결하지 못한다. 내가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에 자세한 사료를 기반으로 통사를 썼다.” 구한말 역사 상식에 반하는 주장 -한국 기록, 이를테면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종의 무능과 민비 일가의 부패, 이에 따른 기아와 수탈이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매천(황현)이 친일 박영효파로 <매천야록>은 아무 근거 없이 고종을 비난한다. 민비가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데, 그것은 당시 모든 왕비가 하던 행사다. 매천도 <매천야록>에 민비의 영민함을 많이 언급했다. 그런 부문은 안 보고 부정적 부문만 과장되게 알려졌다. <운현궁의 봄>을 쓴 정비석 등 친일작가들이 고종과 민비상을 어그러뜨렸다.” 그는 일반이 알고 있는 구한말 역사 상식을 정면으로 깬다. 그는 근거로 다양한 사료와 수치를 증거로 들고 있다. 그는 1901년 독일 <쾰른신문> 기자로 한국을 방문한 지그프리트 켄터의 연재물을 제시했다. 신문은 “북경도·동경도·상해도 서울처럼 전신과 전화, 전차와 전기조명을 동시에 가진 것을 자랑하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1886년 육영공원 영어교사로 초빙된 헐버트가 1906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 쓴 <한국의 독립투쟁>이라는 책에 “서울은 전등·전차·영화관이 있었다… 상류계급의 많은 한국인이 미국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고 귀국하고 있었다. 경찰은 신식복장을 갖추고 신식으로 훈련되고 있었고, 적지만 근대적인 군대가 출범했다”는 대목을 제시했다. 황 교수도 수치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제통계 책임자로 오래 근무했던 앵거스 매디슨이 산출한 한·중·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다. 매디슨은 1911년 조선경제는 일본 경제학자 미조구치 도시유키가 추계한 ‘1911~1938년 1인당 국민생산 추계’를 활용, 1990년 국제평균 달러로 환산했다. 이에 따르면 1911년 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815달러로 아시아 4위이고, 1915년에는 필리핀·인도를 제치고 일본에 이어 2위가 된다. 황 교수는 “고종이 직접 통치했던 1897년부터 1903년까지는 경제적으로 최악이 아닌 고도성장기였다”면서 “낙성대연구소에서 이 통계를 수정했는데 고종재임 기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6%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구한말 경제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이론적 근거다. 최악의 경제 빈곤으로 조선이 망했고, 식민지화한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교수의 이런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 근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황태연 교수가 2018년 한 역사문화강좌에서 대한제국 시기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황 교수는 “역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촉탁 이병도 논문만 보거나 기껏해야 일본 측 자료만 본다”면서 “나는 영어·독일어·러시아어 사료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 역사학자들은 통계나 숫자에 약해 이영훈 같은 경제학자들이 내미는 엉터리 통계를 반박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경제학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1955년 동학혁명 본거지인 전북 정읍 출신으로 전주고를 나와 74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 법대 유명 이념서클인 농법학회에서 활동했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대학 3학년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보다 학문을 선택했다. 대학원(서울대)에서 헤겔로 석사학위를 받고, 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으로 유학했다. 그는 “당시 운동권에는 공산주의 이론만 난무하는 전환기 상황이었다”면서 “사회운동의 근본적 이론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DJ에게 ‘DJP연대’ 제안 우리가 잘 아는 유시민·진중권 등이 독일에 유학했지만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독일은 절대 학위를 대충 주지 않는다. 게다가 유학생 대부분 한국 정치 상황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실정에서 독일철학의 ‘종합판’격인 마르크스로 학위를 받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는 “매주 소논문을 제출하고 평가를 받아야 박사논문을 쓸 자격을 준다”면서 “마르크스의 지배와 노동’을 주제로 7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는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학부·석사·박사를 모두 마칠 기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4년 동국대에 정치사상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92년 대선에 실패해 영국 체류에서 돌아온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김종필의 충청지역과 연합이라는 소위 ‘DJP연대’를 제안했다. 황 교수는 “원래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적용된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이라며 “‘어떻게 유신잔당과 손을 잡나’라고 망설이던 DJ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DJP연대는 성사되고 그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막후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이 주장은 1997년 <지역패권의 나라>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정책자문위원을 맡았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DJ정부 막후 실세’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답방 문제가 거론됐다. 그는 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에서 “6·25전쟁과 KAL기 테러 등은 사과가 아닌 국제법적 사안”이라는 발언으로 보수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는 보수 언론의 종북몰이에 소송까지 벌이며 싸웠지만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기성 정치권에서 돌아온 그는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갑진왜란> <국민전쟁>·<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 등 한국 근대사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역사는 당시대 국민이 공감하는 ‘공감적 해석학’이 옳다”면서 “갑오왜란(경장) 이후 김홍집 내각에 당시 국민은 ‘왜당정부’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나 계급사관이 아닌 보통 국민사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일제 침략·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저항적 민족주의로 지금까지 자신이 친일파와 식민지근대화론자를 혹독히 비판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통일을 향한 통일민족주의다. 그는 “통일에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면 정복하자는 논리로 남북적대의 불씨가 된다”면서 “민족이 하나라는 감정적 동력인 통일민족주의는 분단이 계속되는 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통일을 남북이 공감하는 평화통일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지금 헌법 정신이고, 대통령의 의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요즘 ‘공자철학’에 매료됐다.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 기원>·<공자의 인식론과 역학> 등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구 계몽주의 기원이 공자사상에 있음을 규명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유튜브 ‘황태연 아카데미아’를 통해 이런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실용적 중도정치가 DJ 민주당 정치의 맥’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이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정치노선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내 이론을 안 대표가 좋아하는 것이지 DJ처럼 정치적 연결은 없다”고 밝혔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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