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234 건 검색)
- [속보]경찰, 한덕수 등 ‘비상계엄’ 국무회의 참석자 9명 조사···통일부 장관은 ‘불응’ 후 검찰로
- 2024. 12. 20 10:54 사회
- ...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조사도 진행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경찰이 거듭 출석하라고 요구했으나,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 윤석열 탄핵 정국
- 통일부, 대북전단 “국민·생명 안전 최우선 고려해 접근”…태도 돌변
- 2024. 12. 16 13:50 정치|정치
- ... 앞서 2023년 9월 남북관계발전법상 대북전단 살포 금지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통일부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북한이...
- 통일부, 비상계엄 관련 간부회의 개최…“북한 동향 등 점검”
- 2024. 12. 04 08:57 정치|정치
- ... 시민들이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계엄철폐’ 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통일부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와 관련해 장관 주재 회의를 개최하고 북한 동향 등을...
- [단독]통일부, “법 지켜야” 장관 발언 후에도 대북전단 단체 접촉 ‘0건’
- 2024. 11. 27 15:08 정치|정치
- ... 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 이를 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장관의 발언 이후 한 달 넘게 통일부의 대북전단 살포 단체 대면·유선 접촉은 없었다. 전단 살포의 위법성을 단체들에 주지시키기 위한...
스포츠경향(총 60 건 검색)
- BTS 뷔가 통일부에? 무더위 속 훈련 받는 근황 포착
- 2024. 09. 02 10:32 연예|연예|연예
- BTS 뷔. 방송 캡처 무더위 속에서 훈련받는 BTS 뷔의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달 26일 통일부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윤석열 대통령 8.15 통일 독트린 발표’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날 통일부는 영상 말미에 ‘통일부 2024 을지 연습 실시’라는 자막과 함께 BTS 뷔가 훈련 중에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뷔의 이름이 나오진 않았고 짧은 머리에 마스크를 코까지 가렸음에도 눈길이 가는 선명한 눈매와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팬들은 그가 BTS 뷔임을 바로 알아챘다. 팬들은 아미(BTS 팬덤명)의 상징적인 색깔인 보라색 하트를 댓글에 달며 그를 응원했다. 한편 BTS 뷔는 지난해 12월 11일에 입대해 군사경찰단 SDT 소속으로 복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음 해 6월 10일에 전역 예정이다.
- 상지대 군사학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특강 개최
- 2023. 12. 07 13:59 생활
- 상지대학교(총장직무대행 유만희)는 지난 6일 대학본부 5층 강당에서 군사학과 학부 및 대학원 안보학전공 석사과정 재학생을 대상으로 특별 안보 초청강연 및 세미나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특별 강연자로 초청된 연사는 제32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종석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으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초대 상임위원장 및 사무차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 수행원 등을 지냈다. 상지대학 군사학과 재학생들의 직업 진로 탐색 및 대학원 안보학전공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의 안보의식 수준을 고취하기 위한 프로그램 일환으로 계획된 강연에서 ‘한반도 평화 시대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통일 대한민국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 특별강연에 이어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의 진행으로 종합토론이 실시됐다. 종합토론 패널로는 노영구 교수(국방대 군사전략학과), 정한범 교수(국방대 안보정책학과), 조용만 초빙교수(상지대 평화안보·상담심리대학원 안보학전공)가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더불어 장기화 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 등을 통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의 안보 현안 등을 함께 진단했다. 군사학과 재학생들은 제복을 착용함으로써 군인 기본자세를 함양할 뿐만 아니라 복수전공 시행 외에도 각종 무도 및 어학, 자격증 취득 등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군 가산복무지원금 지급대상 선발과정에 응시하여 선발될 경우에 대학 4년 등록금 실비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개인 희망에 따라 육/해/공군 장교 선발과정에 모두 응시할 수 있다. 특히, 군무원 채용 대비반, 방산업체 취업 대비반을 통해 다양한 군 관련 분야에도 진출하게 된다. 상지대학교 군사학과는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1기생 전원이 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교 선발과정에 전원 합격해 임관할 예정인 가운데, 내년 하반기에는 국방안보융합학과 안보정책학 및 방위사업학 전공트랙 대학원 석/박사과정도 개설될 예정이다.
- 통일부 “북한방송 먼저 개방 추진”
- 2022. 10. 07 16:39 스포츠종합|연예|생활|생활
- 권영세 통일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단기간내 남북 상호 개방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우리가 먼저 북한 방송 개방을 추진하면서 상호 개방과 소통을 위한 교류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권 장관은 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 서면 업무보고를 통해 북한 방송, 언론, 출판 등 소식을 전하는 사업의 단계적 개방 추진계획과 관련해 이같이 보고했다. 그러면서 “추진 과정에서 국회와 관계기관 협의와 사회 각계 의견 수렴을 통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지난 7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북한의 언론·출판·방송의 국내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방송 등을 먼저 개방하고 북한에 이에 상응하는 호응을 유도하는 쪽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권 장관은 북한의 최근 동향과 관련, “한미일 공조에 반발하며 연이어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속하면서 긴장 수위를 고조시키고 있다”며 “제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동향도 포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지난달 8일 핵무력 법령을 채택하며 핵 선제 사용 가능성을 표출했다며 “선제 핵포기 불가 입장을 명확히 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변화 없이는 협상을 거부하는 입장을 유지했다”고 보고했다. 권영세 장관은 문화·체육 교류 재개와 활성화를 위해 오는 12월 콜롬비아 세계역도선수권 대회와 내년 9월 2022 항저우아시아경기대회, 2024년 1월로 예정된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를 계기로 남북간 체육 교류도 모색하겠다고 보고했다.
- 유빈 with 통일부, ‘피-쓰: 내 소원은 평화’ MV 공개
- 2021. 04. 01 14:30 연예
- 통일부 유튜브 캡처가수 유빈이 통일부와 함께한 ‘피-쓰: 내 소원은 평화’ 프로젝트 뮤직비디오를 깜짝 공개했다. 유빈은 1일 오후 1시, 통일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피-쓰: 내 소원은 평화’ 프로젝트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싸이퍼(Cypher) 랩을 선보였다. ‘피-쓰: 내 소원은 평화’는 2030 일반인 참가자와 아이코닉한 힙합 아티스트가 ‘미래 통일 대한민국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젊고 쉬운 감각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로, 유빈과 치타, 래원이 참여해 2030을 대변했다. 공개된 뮤직비디오 속 유빈은 허스키한 보이스와 독보적인 랩 스킬로 듣는 이들의 귓가를 매료시켰다. 특히 ‘더는 아프지 말자 Have we already seen’이라는 가사는 평화에 대한 유빈의 솔직 담백한 생각을 담아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빈은 “이번 프로젝트가 너무 좋은 취지이고, 또 힙합 음악으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함께 하게 돼서 기쁩니다. 많은 분들이 평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한편, 유빈은 ‘향수(PERFUME)’로 음악방송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팬들과 꾸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 통일부
주간경향(총 17 건 검색)
- 이젠 통일‘포기’부? ‘계륵’이 된 통일부(2023. 07. 21 11:16)
- 2023. 07. 21 11:16 정치
- ㆍ정치기관 전락, 여야 자리 바뀔 때마다 ‘자기 부정’ ㆍ대통령도 장관 후보자도 역할 몰이해, 존폐론 키워 통일부의 역할과 위상에 큰 변화가 예견되는 가운데 지난 7월 6일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복도에서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통일부가 본격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정권교체 때마다 ‘존폐논란’에 휩싸였던 통일부 역사를 윤석열 정부는 ‘체질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갈 작정이다. 지난 7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며 개혁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와 신임 장관 후보자에게 주문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원칙의 확립이다. 김 후보자도 관료, 학자로 활동할 당시 해당 원칙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의 원칙 강조는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북한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받아들일 리 없으니 사실상 통일을 포기한 것’이라는 주장과 ‘대화를 제외한 수단을 활용해 북한의 정치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전쟁, 흡수통일로 이어질 수 있어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사실상 통일을 유예 혹은 포기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는 통일부가 폐지되지는 않겠지만 ‘식물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결론과도 이어진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 위상이 하락 조정되리라는 전망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 대선과정에서부터 윤석열 캠프를 중심으로 ‘통일부 폐지’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통일부 폐지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지만, 역량 강화는 필요해 보인다”며 변화를 예고했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획기적인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통일부는 북한문제가 아닌 국내정치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탈북어민 북송’ 사건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과거의 통일부와 현재의 통일부가 다투는 모습은 ‘통일부 존재 이유’에 대한 의구심만 키웠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은 집권 1년여가 훌쩍 지난 시점에서야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단순한 개각 명분, 통일부 폐지를 위한 준비작업, 국내정치적 활용 등의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모든 부정적 평가를 딛고, 통일부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입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는 어떻게 정치권의 ‘계륵’이 됐나 통일부는 1969년 3월 1일 문을 열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진행된 통일 논의를 제도적으로 흡수할 조직이 필요했다. 이에 당시 유신 정부는 국토통일원을 신설했다. 설립 초기인 1970년대는 정책 집행기관보다 연구기관으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당시 국토통일원이 자리 잡은 곳은 서울 장충동에 있던 한국반공연맹 건물이었다. 주요 업무는 북한의 사상 공세에 대한 대응 논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 방송, 간행물 등을 분석하거나 김일성 북한 주석에 대한 연구 등을 수행했다. 현재와 같은 남북대화, 교류가 기본 업무로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1989년 통일정책실을 신설했고, 남북대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남북고위급 회담 등으로 통일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1990년 국토통일원에서 통일원으로 개칭하고, 부총리 부서로 격상해 통일정책을 총괄하게 했다. 1997년 통일부로 명칭을 바꾸면서 장관급으로 위상이 하락했지만, 정책 수립 및 집행 권한은 계속해서 확대됐다.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통일부 역사의 변곡점이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정책 개발을 넘어 실무까지 추진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인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며 잠망경을 살펴보고 있다. / 미 해군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왼쪽)이 지난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 행사를 바라보고 있다. / 조선중앙TV|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이후, 통일부는 대북정책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실세형 ‘장관’들이 임명되며 영향력을 키웠다. 참여정부에서는 통일부 장관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까지 겸임하며 외교·안보 분야까지 총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영향력이 극대화된 시점은 곧 위기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여야가 정권을 주고받기 시작하며 통일부는 정치기관으로 전락했다. 진보를 표방한 정부가 통일부를 내세워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면 이어서 집권한 보수 정부는 역시 통일부를 앞세워 뒤집기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논란이 대표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는 중앙 행정조직 개편을 예고했다. 이중 핵심이 통일부를 없애고 담당 업무는 외교부 등에 분담시키는 방안이었다. 통일부 폐지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의 실질적 난관에 부딪히며 현실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통일부 폐지 추진은 정권교체, 진보정권과 차별화의 상징이 됐다. 또 보수 정권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프로파간다’로서 효과가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그 결과, 통일부는 빠르면 5년에 한 번 ‘자기 부정’을 하는 운명을 떠안게 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해당 구도 위에서 출발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남북교류·협력을 뒤집는 데 통일부가 선두에 섰다. 대선과정, 윤석열 정부 인수위 시절 동안 빼놓지 않고 등장한 것이 ‘통일부 폐지’론이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한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전임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응축하는 도구로서 통일부 폐지 주장은 효용이 있었다. 어수선한 집권 초기 지지층을 결집하고,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통일부가 등장했다.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두고 통일부는 2019년에는 “(탈북어민의)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추방을 결정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3년여 만에 “탈북어민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판단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를 가르는 이념 논쟁에 통일부가 뛰어든 셈이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통일부는 ‘정치기관’으로 전락했다. 정책성과가 아닌 정부 간 이념 차이, 대통령의 개인적 관심, 통일에 대한 여론에 따라 조직의 위상이 달라졌다. 그 결과 여야 모두에게 통일부는 유지하기도, 그렇다고 없애기도 애매한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보세력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이라는 정책적 측면에서 통일부를 필요로 하지만 정권교체 시, 정치적 공세의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 반면 보수세력은 통일부의 정책적 활용방안이 불투명하지만 향후 정치적 공격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없애기엔 아쉬운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통일부 활용 방안을 묘한 방식으로 찾았다. 대북 강경론자 통일부 장관의 등장이다. 통일부는 왜 존재하나 “대통령이나 장관 후보자가 통일부의 기본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19일 전직 통일부 출신 관료 A씨가 기자와의 통화를 끝내며 한 말이다. A씨는 그러면서 “꼭 한 번 통일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임무를 확인해 보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통일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임무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 있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 개혁을 주문하며 “통일부가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기관이 공식적으로 밝힌 업무에 비춰보면, 통일부의 주요 업무는 대북지원이 맞다. 즉 윤 대통령의 비판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통일부를 지적한 셈이 된다. 대통령의 의도가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이었다면 “지나치게 대북지원에 매몰돼 북한 정세분석, 통일교육·홍보 등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넘어 대북지원 업무 자체를 문제삼는 바람에 대통령이 통일부의 설립 취지와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샀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서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들은 주요 정책결정자의 업무 이해도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키운다. 김 후보자는 지난 7월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요구자료에서 “북한이 대화에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강력한 억제와 제재를 통해 우선 북한이 협상의 장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은 총체적 접근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은 억제하고, 핵 개발은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북한 스스로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발언은 각 부처가 나눠 맡고 있는 역할 측면에서 혼동을 만든다. 남북관계를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곳은 외교부다. 대북 적대관계 문제는 국방부 소관이다. 기밀, 첩보 활동 등은 국정원이 담당한다. 김 후보자가 밝힌 ‘강력한 억제와 제재’는 외교부나 국방부의 역할이다. 통일부가 ‘억제와 제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통일부 조직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통일정책실, 인권인도실, 정세분석국, 교류협력국, 남북협력지구 발전기획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 조직의 명칭만으로도 협력, 지원, 분석 등의 업무에 특화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담당 업무를 뛰어넘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김 후보자의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를 두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통일부의 역할과 임무는 헌법 정신에 입각해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인데, 대화와 교류·협력을 포기하면 스스로 ‘통일부 무용론’을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된다”며 “통일부 장관이 제대로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의 B씨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압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상황 아니냐”며 “남북관계에서 원칙이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일은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역할인데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마치 본인이 외교부나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김 후보자가 함께 강조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 역시 구체성이 결여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가지 가능성 때문이다. 첫째는 헌법 제4조 조문을 아무 의미 없이 그대로 읽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은 평화,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수용되는 방식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갖는데 윤석열 정부는 분단이라는 특수성보다 자유 등의 보편성을 기반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분단의 특수성을 배제하면 남북관계는 즉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통일은 한 발 더 멀어지게 된다. 해당 발언을 ‘체제통일’, ‘흡수통일’로 해석하는 두 번째 경우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은 북한의 정치체제를 붕괴시키고 한국의 정치체제로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남북 간의 합의,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등이 모두 부정된다. 보수 정부가 체결한 합의 사항도 마찬가지다. 1972년 박정희 정부가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국 통일 원칙으로 세 가지 합의가 체결됐다. 그중 하나가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였다.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역시 유사하다. 해당 합의의 제1장 제1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이다. 역대 보수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의 특수성을 이해했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냉전 시기 체제경쟁이라는 방식을 탈피해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다. 반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을 부정하고, 다시 냉전 시기의 체제경쟁에 돌입하려는 걸로 들린다.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에 따라 무력 사용은 배제된다.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체제경쟁을 할 방법도 없다. 결국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은 “남은 임기 동안 통일과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의 통일정책을 논리적 정합성이나 일관성·연속성 측면에서 해석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결국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각종 제재와 압박을 구사해도 북한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근거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홈페이지에 밝힌 설립목적 및 임무 / 통일부 홈페이지 갈무리 통일부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하청기관이 될 것인가 결국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통일부의 역할은 국방부, 외교부의 하청기관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통일부 무용론, 존폐논란 역시 더욱 확산할 수밖에 없다. 양 교수는 “통일부가 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 제재라는 것이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전단지를 날리거나 자체 확성기를 틀겠다는 정도인데, 이는 북한에 대한 파급력보다 국내정치적 파급력이 더욱 커 보인다”며 “통일부 장관 후보의 정책관까지 이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결국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통일부는 외교부에 합병되거나 통일청으로 추락하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남북대화, 교류협력이 배제된 상황에서 통일부가 수행 가능한 업무는 북한에 대한 정세분석이나 탈북민 지원, 통일 교육 정도에 맞춰진다. 장관급 부서로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통일부 역할에 대한 재정립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홍 실장은 “2000년의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부 업무가 북한과의 대화, 교류협력 측면에만 맞춰졌는데, 이는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통일부 존폐론이 나오는 이유가 됐다”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가장 활발했던 기간을 평가 기준점으로 잡고 통일부 역할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통일정책을 구상하고 논리를 개발하는 시간이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부를 북한과의 대화, 교류협력으로만 평가하는 단기적 시각에서 탈피해 통일정책을 가다듬고, 북한의 실태를 알리는 등에 대한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의가 무엇이든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통일부 개혁은 닻을 올렸다. 다수의 전문가는 해당 개혁이 통일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아닌, 내년 총선을 대비한 수단이 될까봐 우려한다. 북·미, 북·일 대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통일부마저 대북 제재, 압박을 말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북아 질서가 북한과의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를 대비해 통일부만큼은 대화를 추진할 수 있게 남겨둬야 한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 후보자의 인식은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 특집
- [한기홍이 만난 사람](15)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다시, 7·4 공동성명의 정신으로”(2022. 10. 14 14:51)
- 2022. 10. 14 14:51 정치
-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78)의 올해는 특별하다. 경기도교육감 3선 출마를 접고 야인으로 돌아왔다. 1972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돼 공직을 맡은 이후 꼭 50년이 되는 해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종교계를 대표하는 진보 정치인으로 동분서주의 나날을 보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일본에게 우리 외교안보의 주도권을 내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공직 생활 내내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인 성품에 조직을 꾸리고 관리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정부 시절 16대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웠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아달라고 했지만 고사했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과 통일부 장관을 잇달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당사자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의 회담 전 과정을 준비하고 조율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총괄했다는 것은 공인으로서 분명 커다란 행운이었다. 역사의 참여자로서, 또 관찰자로서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평화로 가는 길의 어려움을 두루 통찰하는 기회를 얻었다. 2014년부터 8년간 민선 3기와 4기 경기도교육감을 지내고, 올해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안식 휴가를 얻게 됐다. 2차례 인터뷰를 통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핵 위기의 본질, 초고도로 경직된 남북관계를 타개할 그의 해법을 들어봤다. 한반도 긴장… 민간 참여로 위기관리 필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최근 한·미·일의 합동군사훈련이 (동해) 독도 근해에서 이뤄지면서 남북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 상황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위대가 일본의 방위만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는 점을 과시라도 하는 것 같은 상황인데요. 한반도 정세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해상훈련을 동해에서 실시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북한이나 중국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자극받은 북한이 핵무력 강화의 길을 더욱 치열하게 걷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조만간 7차 핵실험 강행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제재와 압박, 군사적 위협과 이에 따르는 군비 확장은 결코 한반도 평화의 길이 아닙니다. 평화의 방안을 새로운 문법으로 써야 합니다. 아주 엄중한 시점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전술핵 운용을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지난 9월 28일 전술핵탄두를 모의 탑재한 2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발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7차례에 걸친 대규모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10월 8일 사상 처음으로 150여대의 각종 전투기를 동시에 출격시킨 항공 훈련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민간 차원의 노력을 하나의 물꼬로 제시했다. 과연 북한이 그런 제안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아마도 여러 전제가 충족돼야 가능할 터인데, 그 전망이 아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민간 베이스의 참여와 노력을 여러 번 강조했다. 위기관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면 충돌은 취약한 대북 억제력보다는 위기관리의 실패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관계는 2019년 하노이회담의 결렬 이후 계속 증폭됐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인도적 지원까지도 길이 막혀버렸어요. 정부 차원의 남북교류 통로가 막혔을 때는 민간이 역할을 맡아 소통의 맥을 이어갈 수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남북교류협력기금도 민간을 통해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농업과 문화 예술, 학술 분야 등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루트와 접촉면을 새로 개척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비군사적 분야에서 대화의 길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려면 남북관계의 기본 환경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요. 우선 극단적인 적대 관계의 해소가 필요합니다. 해묵은 숙제이지만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거나 유보하는 것, 국가보안법을 전향적으로 폐지하는 것 등은 상징성이 매우 커서 북한의 태도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치로 판단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10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나라의 전쟁억제력과 핵반격능력을 검증 판정하며 적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의 군사훈련이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 경향자료·뉴스1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우리는 방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북한은 매우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국이 여전히 전제하고 있는 선제공격 가능성, 유사시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 개념이 한미 합동훈련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일본과의 군사적 동맹은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합니다.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평화롭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사태입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에 덜컥 수를 두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위대한 3원칙’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독일 분단과 통일의 과정, 그 이전 2차례 세계대전의 중심에 섰던 나라 독일에 주목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독일어 작가 프란츠 카프카(체코 태생이지만 독일어로 썼다)의 작품이 자신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그는 고백했다. 오직 ‘쓸모’만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식 인간관과 광범위한 인간 소외의 현실에 카프카는 절망했는데, 자신도 그의 절망에 깊이 공감했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히틀러의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전쟁 범죄를 깊이 들여다보기도 했다. 4·19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지역 30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향진회’라는 역사와 사회연구 클럽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에 참여해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도 토로했다. 당시에는 고등학생도 민족문제, 국가와 사회의 현실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는 회고다. 향진회는 전국적 조직으로 확장할 계획이었는데, 5·16으로 그 열기가 된서리를 맞았다. 1970년대 그가 유신을 반대하는 운동에 투신하면서 알게 된 것이 남북 평화공존의 가치다. 남북이 무력으로 대치하는 한 민주화 운동은 제대로 진전되기 어렵다는 깨달음이다.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통일부 장관을 맡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까지, 전쟁을 막고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됐다. 이재정 전 장관은 “한반도에서의 전면 충돌은 취약한 대북 억제력보다 위기관리의 실패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주미영 작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높이 평가합니다. 당시 성명에서 밝힌 통일의 원칙은 지금 읽어봐도 통일의 대장전입니다. 통일은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토대 위에서 도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을 받지 말자는 것이고, 상호 무력을 행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상과 이념, 제도적 차이를 초월하자는 호방하고도 과감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으로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돼 분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대화의 통로가 마련됐습니다.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은 이후 남북한 모든 접촉과 대화의 기본지침이 됐고요. 1990년 9월 시작한 남북 고위급회담도 이 원칙에 따라 이뤄졌고,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도 3대 원칙이 언급됐습니다. 10월 유신 단행을 위한 정치적 계략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7·4 공동)성명이 담고 있는 방향과 가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지금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위대한 원칙입니다.” 그는 1994년 8월로 예정됐던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의 무산에도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한반도 정세와 분위기에는 훈풍이 불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발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등으로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했다. 1994년 북미 간에 이뤄진 제네바 합의도 호재였다. 핵무기 개발 동결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 후 수교를 골자로 북에 1000MWe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2003년까지 완공한다는 사업계획이 확정돼 한반도는 일순 평화 무드에 휩싸였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그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 2002년 고이즈미·김정일 간의 ‘평양 북일 선언’ 등 새로운 역사의 진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와 동시에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하고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경수로 사업이 2002년 완전 중단되면서 한반도 문제는 다시 불안과 공포의 상황으로 변화됐습니다. 2005년 6자회담으로 비핵화의 새로운 방안을 합의한 9·19 선언을 채택했지만, 놀랍게도 바로 이튿날 미국의 엄청난 대북제재가 시작됐습니다. 북한 핵개발 저지의 명목으로 미국이 북한 돈줄 죄기에 나선 것입니다. 방코델타아시아(마카오에 있는 중국계 은행)의 북한 관련 계좌 동결 조치로 이후 6자 회담은 장기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9·19 선언이야말로 북핵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자 기회였는데, 그 계기를 상실했습니다. 큰 손실이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의 길이 열리기 직전이었는데 말이죠. 방코델타아시아에서의 북한 돈세탁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윤 대통령 ‘담대한 제안’ 안 먹히는 까닭 분단이 고착된 지 내년이면 70년이다. 이 전 장관은 “분단은 공존과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형벌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분단체제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사회를 대립과 증오의 구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7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환송오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과 건배하고 있다. / 경향자료·청와대사진기자단 “분단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몰아세우는 도구로 이용됐고요. 수구세력은 전쟁을 부추기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힘의 논리로 분단체제를 활용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분단에 따른 이념논쟁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그 갈등과 대결 구도로 정치적 이득을 챙겼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합니다.” 그는 “북한 체제는 가만히 놔둬도 무너지고 말 것”이란 미국 네오콘의 전통적 논리와 정세관을 경계했다. 경수로 사업의 좌절, 9·19선언의 무효화는 미국 네오콘 세력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고 파악한다. 이 전 장관이 보기에 북한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극복하며 끈질긴 생존력을 이미 입증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이 반러, 반중 노선을 걸으면서 형성된 신냉전 체제하에서 북한의 체질은 더 강화됐습니다. 인도적 지원까지 막아버린 제재와 압박, 북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핵능력 강화로 귀결됐습니다. 북한은 ‘핵무력 사용 법제화’까지 선포했습니다.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넘어서겠다는 선언입니다. ‘선제공격’이 가능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담대한 제안’을 북한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새로운 제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지금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특히 한·미·일 군사동맹의 방향이 그렇습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길은 한반도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위기관리마저 어렵게 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신뢰의 복원보다 위기관리가 급선무인지 모른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난 후 당시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이 했던 말이 현재 한반도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맥나마라는 “오늘날 군사전략이란 것은 더 이상 없다. 있다면 오직 위기관리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핵미사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오늘, 그의 말이 귀에 쏙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전술핵의 한국 배치, 심지어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론이 여권발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위기관리의 마인드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미국의 핵 정책에 대한 완벽한 무지가 드러난다. 이 전 장관은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는 혹세무민’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한국에 전술핵 배치를 용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핵무기가 반입되면 일본과 대만도 핵을 가지려 하겠지요. 핵 도미노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배치됩니다. 한·미·일이 군사동맹을 향해 나아가면, 북·중·러가 뭉쳐 대응하게 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한반도가 세계대전의 전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어야 합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우리 외교안보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내줘선 안 됩니다. 윤석열 정부의 독자적인 한반도 구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한기홍이 만난 사람
- ‘정쟁’에서 존재감 드러내는 통일부(2022. 07. 22 11:16)
- 2022. 07. 22 11:16 정치
- ㆍ‘남북관계’ 본업 아닌 ‘탈북어민 북송’ 사건 주도 치솟는 물가, 코로나19 재확산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국제질서 변동 역시 지정학적으로 ‘끼인’ 나라 한국을 압박하는 중이다. 대내외적 위기의 동시 발생은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도 위기 상황 속에 집중 대응할 대상을 찾았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물가도 코로나19도 아닌 ‘북한’이다.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탈북어민 북송 현장 모습.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하자 탈북어민이 저항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경제침체, 세계적인 질병보다 화급한 사안처럼 다뤄지는 ‘북한’ 문제는 3년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발생한 이른바 ‘탈북어민 북송’ 사건이다. 해당 사건을 두고 여야 모두 열을 올린다. 매일 새로운 논평을 내고, 정부 부처들까지 나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지만 사건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직’ 없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인권이냐’, ‘흉악범 추방이냐’는 해석만 바뀌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단순한 정쟁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시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는 점’,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 등까지 더해지면서 논란은 더욱 격화된다. “이슈로 이슈를 덮기 위해 3년이 지난 사건을 되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의혹 제기와 주장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부각되는 지점은 있다. 하나는 이번 정쟁을 주도하고 있는 통일부의 행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존폐논란’까지 일었던 통일부가 본업도 아닌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문이다. ‘대담한 계획’을 말하며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비침과 동시에 북한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 중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단순한 ‘수사’인지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의문이 커져만 간다. 통일부는 왜 존재할까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설립목적이다. 통일부는 남북관계가 갖는 양면성 때문에 존재한다. 북한 문제는 남북관계라는 측면에서 ‘특수성’이 있다. 동시에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있다는 측면에서 외교적 ‘일반성’도 갖는다. 정부가 외교부와 별도로 통일부를 두고 북한 관련 대화 및 협력 업무를 맡긴 건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표면적으로는 통일부의 업무를 존중하고 있다. 새 정부 대북정책인 ‘담대한 계획’은 아직 구체적 실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되, ‘대화와 타협’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통일부는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는 이른바 ‘이어달리기’ 원칙하에 ‘인도적 지원’ 방안 등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13일 “지난 정부들의 대북정책 성과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는 과거의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해당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 통일부의 행보는 이런 정책 기조나 설립목적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통일부는 지난 7월 12일 2019년 발생한 탈북어민의 북송 상황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방한계선을 넘어 내려온 북한 어선에 있던 선원 2명을 추방했다. 이들이 선장과 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넘어온 만큼 ‘귀순’의사가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해당 사안을 3년여 만에 쟁점화했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6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이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도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21일, 윤 대통령이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많은 국민이 의아해한다”며 진상규명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7월 6일 국가정보원은 당시 탈북어민 조사를 강제로 일찍 끝냈다며 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국민의힘→대통령→국정원→통일부→다시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순환과정은 의혹 제기→폭로→입장번복→정치 쟁점화의 순서를 동반한다. 특히 통일부는 현장 사진 공개에 이어 지난 7월 18일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도 공개했다. 앞서 공개했던 사진 속에 북송 장면을 촬영 중인 인물이 있었고, 이를 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영상 제출을 요구하며 존재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통일부 스스로 만드는 ‘존폐위기’ 통일부발(發) 자료가 의혹 제기의 핵심이 되면서 통일부는 정쟁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동시에 ‘통일부가 왜 존재하느냐’는 비판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스스로 모순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사건이 발생한 2019년 당시 “(탈북어민의)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추방을 결정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지난 7월 11일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탈북어민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그러면서도 판단을 뒤집을 만한 사실관계의 변화, 책임, 쇄신안 등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지 않겠다”는 권 장관의 발언과도 엇박자가 생겼다. 오히려 통일부가 ‘전임 정부와의 단절’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는 장관의 능력 부재이거나 장관이 애초에 진의와 다른 말을 한 셈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통일부가 정쟁에 뛰어든 상황은 존재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북정책 주관부서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폭로하는 상황은 향후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통일부는 정부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까지 평가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한민국 통일부는 없고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만 있는 것 같다”며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는 정신은 외면한 채 남남갈등, 남북갈등만 유발하면서 통일부 스스로 폐지나 축소를 향해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부 부처가 정쟁에 휘말리면 기관의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입장번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통일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통일부지부’는 지난 7월 19일 통일부 내부 게시판에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는 “지금에 와서 기존의 의사결정을 돌이킬 만한 상황변화가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것은 단순히 입장번복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일관되고 신뢰성 있는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데 악영향을 줄 것이다. 통일부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핵심부서로서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결국 통일부가 힘이 없으니 이런 식의 자충수를 두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 역시 통일부의 자체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더 높은 곳에서 결정하고 통일부는 단순히 집행하는 역할만 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통일부를 해체하지는 않더라도 껍데기만 남는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통일부 폐지론’이 나오고,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통일부 패싱’ 이야기가 나온다. 통일부의 정쟁 개입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대담한 계획’은 실효성이 있을까 ‘ 탈북어민 북송’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이미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전제’가 비틀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비핵화 단계에 따른 동시적이고 단계적인 상응 조치’다. 북한과의 ‘대화와 타협’은 이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권 장관 주장대로 ‘선 비핵화’가 핵심 요소가 아니라면 ‘대화의 장’ 조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가 아닌 ‘대립’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두고서도 정부는 지금 모순을 만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영역에서 “법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외교의 영역에서도 사법적 원칙을 앞세운다면 일본과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 출범, 외교적 해법 모색 등은 모순이다.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배상 확정판결이 났고,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앞두고 있다. 외교적·정치적 해결법 모색은 그 자체로 꼼수가 된다. 남북관계를 사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느냐 역시 논란이다. 남북을 아우르는 법적 체계가 미비하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은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윤석열 정부 역시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결정적 기회를 잡더라도 스스로 들이댄 사법적 잣대에 가로막힐 수가 있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총체적 모순”이라며 “정부 부처 간에도 안보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이야기가 다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번 탈북어민 북송 문제만 봐도 통일부가 부처의 법적·역사적·업무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나서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어민 북송’ 사태가 향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 교수는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도 없다 보니 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 남북관계를 복원할 시점이 오면 이번 사태가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북한은 5년마다 바뀌는 한국 정부를 더욱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대담한 계획’을 통해 비핵화를 이끌려면 국민통합, 국회의 초당적 협력 등이 필요한데 전(前) 정부와 싸우는 상황에선 그런 게 가능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특집
- [특집]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비핵화는 북·미가 하도록 놔둬야”(2018. 04. 23 14:48)
- 2018. 04. 23 14:48 정치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역은 없다.”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두고 청와대는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오는 4월 2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차례 리허설을 가질 예정이다. 한때 대역을 세워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이 그렇다. 당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73)은 김용순 북한 대남담당비서 역할을 맡았다. 정 전 장관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초대 통일부 장관을 맡았다. 최근 정세를 두고 정 전 장관은 “예상보다 상황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전 두 대통령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하려고 해선 안 된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구체적인 것들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18일 진행됐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부터 이번 정상회담까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세 정상회담의 특징을 정리한다면? “2000년 정상회담의 시작은 북한이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북·미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거기에는 ‘페리 프로세스’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2007년 정상회담은 미국의 필요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강경 일변도로 나가다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전략을 바꾼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종전’을 언급했고 이 흐름이 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즉 미국이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한국을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소중한 기회이지.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 먼저 다리를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압박을 해서 북한이 나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북관계를 다시 풀어나가자’는 문재인 정부의 인식에서 시작된 거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말에 동조하도록 분위기를 잘 만들어갔다. 드디어 한국 정부가 운전석에 앉았다.” -그동안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가는 ‘다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인가. “청와대에서 ‘길잡이 회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을 확실히 설득해서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겨준다는 의미라고 본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의 길로 가기 위한 방법론이나 비핵화의 시간 등을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 이후,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가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그걸 문자화하는 게 가장 좋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하기는 어렵다. 북·미 정상 간에 이야기할 것을 남겨둬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말 정도만 나와도 괜찮다. 평화정착이라는 말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시간 등은 북·미가 하도록 놔둬야 한다. 한국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에서 4분의 1의 역할만 하는 모양새가 돼야 한다. 나머지는 북한, 미국, 중국의 몫이다.” -문 대통령의 자문그룹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문 대통령을 만나 각자 돌아가며 의견을 말하는 게 전부다. 21명의 조언을 모두 모아놓으면 도움이 되겠지. 나는 남북관계 특성상 국민들의 이념적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정상회담 자체도 중요하지만 홍보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미 정상회담 같은 경우 회담 후에 결과만 알려줘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지만 남북정상회담은 다르다. 미국에 대한 정서와 북한에 대한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 두 대통령은 ‘모의회담’이나 ‘집중 과외’ 등으로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의회담은 2000년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청와대에서 열렸다. 실제 현장에서 대응능력이나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내가 김용순 당시 북한의 대남담당비서 역할을 맡았고 김달술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할을 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김달술씨를 ‘위원장 동지’이라고 불렀고 ‘장군님’이라는 단어도 썼다. 김정일 위원장은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괴롭히는 발언들은 주로 내가 했다. 주한미군이나 국가보안법 등의 이슈를 꺼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격했는데 답변이 술술 나오더라. 참 공부가 많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 역할을 맡은 김달술씨의 평가는 어땠나. “김달술씨는 1961년도에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박정희 정부에서 국장급까지 지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쪽에 핵심인물인 셈이다. 애초 2시간으로 예상했던 모의회담은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회담이 끝나고 나오면서 김달술씨가 ‘김정일에게 안 당하겠다.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세 번째 정상회담인데 문 대통령은 이전 두 대통령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이전 두 대통령은 정치적인 연설에 아주 능했고 대중 설득력도 뛰어났다. 두 대통령에 비하면 문 대통령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오히려 회담 테이블에서 경쟁력이 있다. 변호사 출신답게 쉬우면서도 논리적으로 조근조근 상대를 잘 설득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가 잘될 것이라고 본다.” -문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문 대통령을 지켜본 결과, 참모들의 조언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만 지금 한국 정부가 운전자석에 앉아 있으니까 우리가 합의문 초안을 가지고 가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리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거는 좀 보완하자’ ‘이거는 못 받겠다’ 등 실질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보나.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2000년 정상회담 경험이 2007년 정상회담 준비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우리 대통령이 마주앉은 적이 없기 때문에 성격이나 화법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정부의 특사나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대한 것을 봤을 때, 이번 기회에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비핵화도 화끈하게 결정하고 북한의 정치·경제적 여건을 만들려는 의지는 확실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남북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북·미 정상회담도 원활하게 될 것이라 본다.” -‘화끈한 비핵화’가 가능할까.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준다고 약속하면 비핵화는 쉽다.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이 약속을 국제법으로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 평화협정과 동시에 정치수교를 해서 평양에 미국대사관이 들어가고 워싱턴에 북한대사관을 들인다고 생각해봐라. 따라서 비핵화의 속도는 미국이 군사대결 종식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해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중요하고 그 길잡이 역할을 할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하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