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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39 건 검색)

김형수 거제조선하청지회장, 21일 만에 단식 중단
2024. 12. 11 13:56 사회
...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화오션이 당장 직접 교섭에 나설 리 만무하다. 그러나 직접 교섭이든 하청업체와의 대표교섭이든 모든 것은 한화오션 결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냐”고 외쳤지만 “이대로 살고 있는” 하청노동자
2024. 12. 02 16:31 사회
... 등 지회 간부 2명은 지난달 20일부터 단식농성도 시작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2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상경 단식투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하청 노동자들 농성에, 한화오션 원청 노동자들 “하퀴벌레 치우자” 혐오 글
2024. 11. 20 14:32 사회
... 2명은 노조활동 보장과 혐오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20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서문 앞에서 단식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김형수 지회장과...
전남지노위, 하청노조 간부 ‘표적해고’는 “부당노동행위”
2024. 11. 18 11:00 사회
... 하는 노동자다. 신안산업은 지난 5월10일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 및 해고 예고 통보를 했다. 지회는 하청업체가 바뀌더라도 하청 노동자는 새 하청업체로 고용승계되는 관행을 고려할 때 지회 간부 2명도...

스포츠경향(총 18 건 검색)

하청업체 갑질’ 엔에스건설 공정위 제재
2021. 09. 01 08:28 생활
중견 건설사인 엔에스건설(NS건설)이 하청업체에 ‘갑질’을 일삼다 공정거래위원회에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하청업체에 맡긴 건설 공사를 임의로 취소한 NS건설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2억5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NS건설은 지난 2017년 6월 서울 동대문구에 지하 2층·지상 16층 규모의 도시형 생활 주택을 새로 짓는 공사를 수주한 뒤 하청업체에 철근 콘크리트 공사를 맡겼다. 하지만 2018년 NS건설은 “공사 진행이 늦어졌다”며 하청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NS건설은 “하청업체의 공사 진행률이 18%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 감정 결과 공정율은 30% 이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대금 역시 NS 건설은 발주사로부터 선급금을 받았으면서도, 하청업체의 몫 1억285만원은 내어 주지 않았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는) 모두 하도급법(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지방 소재 중소 건설사의 부당한 위탁 취소 등 위법 행위를 엄격하게 제재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어 하도급계약 및 법 위반 행위 당시의 사업자는 송원건설이지만, NS건설이 송원건설로부터 건설사업을 포괄 승계한 점 등을 고려해 NS건설에 시정조치와 과징금 납부 명령을 부과했다고 덧붙였다.
엔에스건설
[스경X캠프 현장] ‘거제 이글스파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한화 스태프에게 듣는 하청야구장 리모델링
2021. 02. 09 08:00 야구
한화의 2021시즌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는 경남 거제 하청스포츠타운 메인 야구장에 한화 구단 깃발이 내걸려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바로 앞에 남해바다가 굽어보이는 경남 거제시 하청하청리. 멀리서부터 한화의 상징인 주황색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이 보인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4일까지 2주 동안 이곳은 한화의 2021시즌 모든 전력이 움트는 요람과 같다. 코로나19로 KBO 리그 모든 구단이 국내 스프링캠프를 차린 지금, 한화는 이곳 거제 하청스포츠타운을 골랐다. 단순히 입지만 고른 것이 아니다. 대전 이글스파크의 흙과 자재를 공수해왔고, 이곳의 시설을 프로수준 훈련이 가능할 정도로 고쳐놨다. 가히 ‘거제 이글스파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7월 개장한 하청스포츠타운은 개장 당시부터 한화 구단의 주목을 받았다. 투수출신인 정민철 단장은 스프링캠프 따뜻한 곳에서의 훈련을 특히 강조했고, ‘하청돔’이라 불릴 정도로 연 강수량이 주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고, 기온이 높은 이곳이 급부상했다. 차로 25분 거리 최고급 시설의 계열사 운영 벨버디어 리조트가 있는 점도 고려됐다. 당초 훈련이 예정됐던 고교팀의 캠프가 취소되자 구단은 지난해 11월 재빨리 이곳을 계약하고 12월부터 답사를 이어가며 시설을 점검했다. 한화가 대전 이글스파크의 흙을 공수해 조성한 거제 하청스포츠타운 메인 야구장의 내야 모습. 한화 이글스 제공주변이 한적하고 시설이 새 것인 점은 호평을 받았지만 프로구단이 훈련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메인 경기장의 내야와 마운드가 입자가 상대적으로 굵은 마사토로 구성됐으며 1, 3루 옆에 있는 각 2사로 씩 두 개의 불펜은 마운드 시설이 없었다. 홈구장을 훈련장으로 택하거나 이미 검증된 연습구장을 쓰는 다른 구단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훈련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한화는 곧바로 메인구장의 개보수 계획을 세우고 1월부터 공사에 나섰다. 내야에 쓰이는 인필드 믹스가 25톤, 마운드와 타석 쪽에 쓰이는 마운드 클레이가 5톤, 습도를 조절하기 위한 컨디셔너가 5톤 공수됐다. 또한 불펜 마운드 높이를 11인치(약 29.94㎝)로 맞췄고 투수들의 집중력을 위해 마운드 주변을 검은 통천으로 감쌌다. 이 모든 작업에 약 4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운영팀 캠프담당 구현준 대리는 “저와 구장관리팀 직원 두 분이 캠프에 상주하며 구장 컨디션을 점검하고 있다”면서 “해외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는 경우에는 이 정도의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대전구장에서 쓰던 방수포도 가져와 비 예보가 있을 경우 깔고 있다”고 말했다. 구장 관리주체인 거제시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했다. 구단은 거제시 소재 유소년팀인 외포중과 거제리틀야구단에 1000만원 상당의 장비를 최근 전달했고, 선수들이 캠프 기간에 쓴 훈련구 역시 모두 남겨두고 갈 예정이다. 한화가 대전 이글스파크의 자재를 공수해 조성한 거제 하청스포츠타운 메인 야구장의 불펜 모습. 한화 이글스 제공개보수만으로는 ‘거제 이글스파크’가 됐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구장관리팀 직원들도 밤낮으로 구장에 붙어 대전 이글스파크와 똑같은 상태로 구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구장관리팀 그라운드 담당 김연오 주임은 “선발대가 1월20일 내려와 구장 개선공사를 총괄했고, 한 명이 캠프시작과 함께 내려와 함께 구장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 구장 훈련에 앞서 오전 7시30분에 먼저 도착해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게 이들의 몫이다. 물론 컨디셔너를 뿌릴 때 쓰는 호스의 위치나 수압이 대전구장과 같지 않지만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 구장을 다듬는다. 훈련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남아 작업을 하는데 보통 하루 평균 4시간이 걸린다. 구장관리팀 김영웅 주임은 “아무래도 대전구장과는 기후와 습도가 달라 관리방법도 달라진다. 낮에는 햇빛이 강해 흙이 금방 마르고, 저녁에는 인근 해안의 영향으로 습기가 올라와 방수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면서 “연습구장이라도 최적의 컨디션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화 구장관리팀 직원이 8일 스프링캠프 훈련 후 거제 하청스포츠타운 메인 야구장 내야에 습기를 조절하는 컨디셔닝 작업을 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구장관리팀 두 명의 직원은 캠프지에 동행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대단위의 장비를 공수해서 캠프지로 향하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코로나19로 급변한 국내 훈련환경의 여파였다.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국내라 편한 점도 있지만 아직은 추운 날씨, 해외에 비해서는 열악한 환경 등은 이들에게 여전한 도전이다. 하지만 한화는 이러한 환경에서도 캠프지 지자체와의 밀접한 소통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구현준 대리는 “단 2주 훈련하는 기간이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지역 야구팀에 장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훈련시설은 구단이 캠프에서 철수하더라도 그대로 남겨놓을 계획”이라며 “앞으로의 상황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국내 캠프지의 환경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훈련을 하게 됐으니 최대한 그 이점을 취하는 방향으로 모든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자로 해촉 통보받은 전원책 “2월말 전대, 나를 하청업체 취급하는 것”
2018. 11. 10 00:00 생활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이었으나 해촉 통보를 받은 전원책 변호사는 9일 “2월 말 전당대회를 하라는 것은 나를 하청업체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전 변호사는 이날 서울 마포구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 비대위와 갈등을 빚어온 전당대회 시점과 관련해 “나는 나의 프로그램이 있었고 조강특위 위원들과 수없는 회의를 해서 내부족으로 최종확정을 했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시행을 못한다”며 “여러분들은 내가 하청업체가 되면 좋겠느냐. 국민들도 그걸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2월 말로 해야한다는 비대위의 의견과 달리 7월 전당대회를 주장해 오다 이날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됐다.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된 전원책 변호사가 9일 서울 마포구 자택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그는 “2월말에 전당대회를 한다는 말은 12월 15일까지 현역 물갈이를 마치라는 말인데 가능하지 않다. 인적쇄신 하지 말란 말과 똑같다”며 “불가능한 걸 내놓은다면 전권을 준다는 말이 아니다. 전권이 국어사전에 ‘전례 없는 권한’이라고 하니까 더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김병준 위원장이 조강특위에 특정인물을 넣어달라고 해서 갈등이 시작됐다’는 기존의 언론인터뷰에 대한 질문에 “그때가 시작이었다. 처음 약속과 너무 달랐다. 그걸 제가 허용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자칫 잘못하면 인신공격을 하는 셈이 되고 한달이지만 먹던 물에 침을 뱉는 것밖에 안된다” “나를 소인배로 만들 작정이냐”며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말이 인적 청산이지 인적 청산이 이렇게 봉쇄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 보수정당의 재건이고 마음 둘 곳 없는 보수층이 기대하는 면모일신된 정당인데 그게 무너진 것 같아서 참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내가 들어와서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 그게 정말 답답하기도 하다”고도 했다. 문자로 해촉 통보를 받은 것과 관련해서는 “이슬람에서는 율법이 바뀌어 이혼하는 것도 문자메시지로 3번 ‘이혼한다’고 보내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하던데 한국에도 드디어 문자로 모든 걸 정리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그 시간대에는 전 변호사와 유선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문자로 사실을 알려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동부지법 신축 1억여원 건설사 비리’ 주장하던 하청업체 직원 숨져
2018. 07. 25 20:41 생활
지난해 준공한 서울동부지법의 시공을 맡은 건설사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해오던 하청업체 직원이 해당 건설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거듭 무혐의로 결론 나자 동부지법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건설 하청업체 직원 ㄱ씨(52)는 전날(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법 앞 대로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업음. 게티이미지 코리아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점과 인근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ㄱ씨는 유서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렇다. 대기업 권력 갑질, 적폐청산, 다 필요 없는 단어고 사치다. 다음에는 이렇게 바보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며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동부지법 신청사 건축 당시 시공 건설자 직원들이 1억여원 상당의 건설 자재를 빼돌렸다는 의혹을 작년부터 제기해왔다. 또 동부지법을 시공한 건설사가 자신이 일하는 하청업체에 공사 비용 일부를 떠넘기는 등 ‘갑질’ 비리를 저질렀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2017년 7월 관련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4개월 뒤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ㄱ씨는 항고했고 지난 2월 서울고검이 사건 재수사를 지시했다. 동부지검은 6월 26일 재차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재수사 결과는 고검 승인을 거치게 돼 있다”면서 “충분히 확인한 다음 이중으로 절차를 거쳐서 수사가 마무리된 것”이라며 부실수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주간경향(총 17 건 검색)

조선업 하청업체 두 사장은 왜 거리에 나섰을까(2024. 09. 16 06:00)
2024. 09. 16 06:00 사회
“여기는 역대급” 갑질·불공정 거래 억울함 호소…성동조선은 “억지” “조선업 부가가치 낮아 불공정 거래 반복…건설처럼 기준 마련해야” HSG성동조선의 하청업체로 일했던 신일류기업 김동환 대표(왼쪽)와 건우 김동근 대표를 지난 9월 10일 경남 통영 광도면 성동조선 인근에서 만났다. 이들은 성동조선의 불공정 계약으로 수억원대 손해를 입었다며 지난 8월 28일부터 조업을 중단하고 성동조선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효상 기자 “제가 조선업 30년 넘게 했지만…. 여그는 역대급입니다.” HSG성동조선(이하 성동조선)의 하청업체 ‘건우’의 김동근 대표(50)는 지난 9월 10일 경남 통영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용접일을 시작한 이래 인생 대부분을 조선소에서 보냈다.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가 급증한 2000년대에는 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청업체를 차렸다. 7~8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조선업 특유의 파고를 어떻게든 넘어왔다. 그러나 지금 한계에 부딪혔다. 건우는 2022년 8월부터 성동조선의 일감을 받아 일했다. 그러다 2년을 꼬박 채운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김 대표는 “돈이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23개월(아직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올해 8월 제외)간 건우의 수입·지출 내역을 보여줬다. 월별로 봤을 때 건우가 성동조선의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낸 것은 단 2개월에 불과했다. 나머지 21개월은 모두 적자였고, 누적 적자는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 6월부터는 직원들 임금도 다 주지 못했다. 이 손해가 사실이라면 이 일은 진즉 그만뒀어야 한다. 그는 “일을 시작할 때 (성동조선과) 추후 단가를 조정하기로 하고 저단가에 일을 시작했다. 그 말 믿고 고마 도장 찍고 일했다. 나중에 단가 올려 달라고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성동조선은) 묵살로 일관했다. 야간 돌려가면서 밤낮으로 일했는데 10몇억원 빚만 남았다. 이런 경우 자체가 처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직원들과 ‘업체가 흘린 피로 성장하는 성동 각성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하고 있다. 성동조선의 또 다른 하청업체인 ‘신일류기업’의 임직원들도 집회를 함께하고 있다. 신일류기업은 2022년 7월부터 성동조선의 일을 해왔는데 건우와 같은 이유로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조선업계에서 원청의 일감을 받아 살아가는 하청업체가 원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다시는 업계에 발을 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신일류기업의 김동환 대표(55)는 “원통하고 억울해서 나왔다. 접는 그날까지도 24시간 맞교대로 업을 이끌어왔다. 그랬는데도 올해만 적자가 8억원을 넘는다. 단가 안 맞는다고 수없이 공문을 보냈다. 원청 찾아가 호소도 많이 했다. 그런데 (원청에서는) ‘그러면 (하청업체를) 정리하라’고 한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라고 했다. 성동조선의 입장은 판이하다. 하청업체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성동조선은 지난 9월 4일 입장문을 통해 “사내하도급 협력사와 적법한 계약을 통해 정상적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협력사가 주장하는 불공정한 거래는 사실이 아니며, 기업 운영에 충분한 공사대금을 책정 및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두 하청업체가 거리로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성동조선의 주장과는 달리 계약서도 쓰기 전에 하청업체가 공사에 투입되는 등 하도급법이 금지하는 불공정 행위도 있었다. 또 다단계 하도급에 의존하는 생산 구조, 원·하청 간 정보 및 협상력의 불균형 등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자리했다. 이는 조선업계에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논란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청업체의 끝은 임금체불 한국의 조선소에서 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원청은 만들어야 할 배를 여러 덩어리로 나눠 각각을 하청업체들에 맡긴다. 하청업체는 자체적으로 노동자들을 모아서 덩어리를 완성한 후 원청으로부터 기성금(도급비)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사업자’인 ‘물량팀’에 일감 일부를 재하청한다. 이렇게 완성된 각각의 덩어리를 이어 붙여 배 한 척이 건조된다. 철판을 잘라서 접고 굽히고 이어 붙이는 일이 대부분이고 자동화도 까다롭기에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생산공정을 맡는 노동력의 대부분은 하청업체에서 나온다. 2022년 기준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9만3000명인데, 원청이 4만1000명, 하청이 5만2000명이었다. 생산직만 보면 원청이 2만3000명, 하청이 4만8000명으로 하청 비중이 67.6%였고, 직접 생산인력으로 좁히면 전체 5만1000명 중 하청업체 소속이 4만명(78.4%)이었다. 조선업은 모든 업종 중 하청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일한 대가로 하청업체가 받는 기성금의 90% 이상은 소속 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쓰인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릴 때 하청업체의 지상 과제는 인건비를 밀리지 않고 지불하는 것이 된다. 20년간 조선업에 종사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끝은 임금체불”이라며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분 중에 자기 명의로 하청업체 운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성금이 부족하면 원청에서 가불을 받거나 대출을 받으면서 버티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노동자들) 4대 보험을 체납하고, 세금을 체납하고, 결국에는 임금을 체불한다. 계속 일을 하려면 사업자 명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건비를 줘야 하는 하청은 기성금을 쥐고 있는 원청에 끌려다닐 공산이 크다. 건우와 신일류기업은 물량팀을 포함해 각각 120여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우는 지난 6월부터, 신일류기업은 지난 7월부터 임금을 다 지급하지 못했다. 성동조선의 기성금 지급일은 매달 20일. 건우는 지난 7월 기성금을 다른 하청업체들보다 늦은 25일에야 받았다. 기성금 지급일 며칠 전부터 원청의 관계자가 건우와 건우의 하청을 받는 물량팀의 출금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동근 대표는 “내가 내건 줄 수 있는데, 물량팀은 다른 사업자인데 어떻게 주냐고 했다. 그랬더니 안 가져오면 돈을 못 준다는 거다. 진짜 우리만 돈이 안 나왔다. 당장 (소속 노동자들) 임금 나가야 하는데 난리가 났다. 물량팀에 부탁해서 내역 받은 거 주고, 무릎 꿇다시피 했다. 그런데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 하도 적자를 보니까 그때 성동조선에서 가불을 받은 게 3억2000만원 정도 남아 있었는데 ‘12월 말일까지 다 갚는다, 못 갚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각서에 지장 찍고 나왔다.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건우는 협박, 강요,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로 성동조선 측을 경찰에 고발했다. HSG성동조선의 하청업체 건우와 신일류기업 임직원들이 지난 9월 10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성동조선 앞에서 불공정 거래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효상 기자 결론만 있고 계산식은 없다 일반적으로 하청업체는 단가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없다. 건설업과 달리 조선업은 표준품셈과 같은 공통된 기준이 없고, 원청사는 단가를 책정하는 기준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단가를 산정하는 계산식이 없는 셈이다. 통상 현장에서는 원·하청 간 협의로 인건비와 기성금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예컨대 인력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 작업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일단 작업을 시작해 투입된 시수(해당 작업을 완료하는 데 투입된 시간으로 여기에 인건비를 곱해 기성금이 정해진다)를 반영해 추후 단가를 조정한다. 그런데 그 균형이 현저히 무너졌다는 게 두 대표의 주장이다. 건우의 김동근 대표는 센터코밍(안쪽으로 물이나 기름이 들어오지 못하게 볼록하게 솟아 있는 테두리 구조물) 작업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8월 건우는 센터코밍 블록을 만들고 성동조선에 33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며 실제 쓴 돈은 1395만원에 달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철판을 설계대로 구부리거나 펴는 곡직이 필요한데, 숙련된 곡직사를 부르는 데만 120만원가량이 들었다. 매번 1000만원가량의 손해를 보면서 지난해 6월까지 이 작업을 6차례 했다. 건우는 지난 8월 성동조선에 “투입된 인건비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저단가로 인해 인건비에 대한 어려움으로 성동조선 ○○○과 미팅을 해 투입시수로 계산을 하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성동조선 ○○○에게 투입된 블록시수 자료를 드리고 블록에 투입된 시수를 계산하여 정산하여 줄 것을 요청했으나 지금 현재까지도 지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성동조선은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청업체라면 쉽게 끝낼 일에도 많은 인력을 오랜 시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 손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두 업체만의 문제라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동조선에서 못 버티고 나간 업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성동조선은 하도급 불공정 거래 혐의로 이미 2건의 신고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됐다. 지난 8월에 건우와 신일류기업이 철수한 데 이어, 9월에는 2개 업체가 더 철수할 예정이다. 30여개에 달했던 성동조선의 사내하청업체 수는 9월 말 기준으로 22~23개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성동조선의 하청업체로 일했던 A업체도 조만간 성동조선을 공정위에 신고할 계획이다. A업체의 관계자 B씨는 “1년을 다 못 채우고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돼서 나왔다. 그때까지 6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A업체의 정산 내역을 보면, 과연 업체의 생산성만이 문제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상 조선업 원청은 목표를 제시하고 하청업체가 달성한 실적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하청업체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A업체는 월별로 두 차례 목표치 이상의 실적을 내고도 수천만원대 적자를 면치 못했다. B씨는 “하청업체가 다 잘했다는 것 아니다. 10시간 들어갈 일을 (우리가) 12시간 했을 수도 있고, 세 사람 할 일을 네 사람이 했을 수도 있다. 그걸 감안해도 월에 1000만~2000만원 펑크가 나야 이해라도 하지 어떻게 1억원 넘게 구멍이 나냐”고 했다. 애초 단가 설정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얘기다. A업체는 계속되는 적자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성동조선에 요청했다. A업체가 맡은 작업장에 방치된 설비를 정리해 공간활용도를 높이고, 최소 2개월 전에 물량을 확정해주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성동조선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원·하청 협력은 없었던 셈이다. 고용 부담은 하청업체 몫 인건비 상승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업 원·하청의 불공정 거래 사례를 보면, 이 문제는 특정 시점에 집중적으로 불거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 때다. 일감이 줄어든 원청은 호황기에 늘렸던 유연한 노동력인 하청을 빠르게 줄여나간다. 갑작스러운 허리띠 졸라매기에 도산하는 하청업체가 늘어나고 불공정 거래 신고도 늘어난다. 또 다른 시기는 불황기에서 호황기로 접어들 때다. 갑자기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는데 불황에 조선소를 떠난 인력을 복귀시키기 위해 인건비가 상승한다. 원청이 기성금에 인건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일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 불공정 거래의 이면에는 고용 부담의 상당 부분을 하청업체가 지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새로 건조하는 선박의 가격은 2008년 말부터 하향세를 보이다가 2021년 상승세로 전환했다. 현재는 불황에서 호황으로 접어든 국면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다. 김동환 신일류기업 대표는 “떠난 숙련공을 데려오자니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성동조선 일을 처음 시작하려고 사람을 모을 때는 한 달 치 월급을 선불로 주고 데려오기까지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시간당 3만원은 넘는다고 본다. 우리도 살아보려고 (노동자들 인건비를) 낮추는 부분이 있지만, 업체는 (우리보다 인건비를) 더 낮게 책정한다. 거의 2만4000~2만5000원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본다”고 했다. 성동조선 측은 현재의 기성금에 인건비 인상분도 충분히 반영됐다고 주장한다. 성동조선은 공식입장문에서 “특히 해당 협력사는 1인당 월매출액(월인당 기성)이 600만~700만원 수준으로 상당한 기업이윤이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근로자들은 임금 체불로 인해 노동부 신고까지 발생되고 있다”고 했다. 비교적 명백한 법 위반 사례도 엿보인다. 조선업이 불황에 직면한 2010년대에 들어, 공정위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조선업 원청사들에 줄줄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문제라고 본 건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원청의 일방적인 하도급 대금 책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사를 먼저 시키고 계약은 나중에 체결하는 ‘선공사 후계약 관행’이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하도급법 위반 사항으로 좀처럼 인정되지 않았다. 상호 협의하에 하청의 생산성 향상분을 기성금에서 제외했다는 원청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등 양측의 협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선공사 후계약은 법 위반 사항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청업체들은 성동조선에서도 ‘선공사 후계약’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신일류기업은 2023년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지만, 해당 공사에 대한 계약은 시작 후 1년 만에 체결했다고 했다. 건우 측은 10개월가량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공사를 진행한 건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들이 생산에 착수한 초기에 책정된 1t당 단가가 장기간 유지되는 상황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뜻으로, 단가 조정이 없었다는 업체 측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도급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조선업 원·하청에서 불공정 거래가 반복되는 원인은 조선업 자체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임금을 쥐어짜야 이윤이 생긴다. 원·하청이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데다, 표준품셈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하청업체에는 대금이라는 결론만 알려주고, 그 결과가 나오는 공식은 알려주지 않는다”며 “건설업처럼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엄격히 처벌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박주연의 메타뷰](21)“거둬주세요, 하청공장 노동자 향한 연민의 시선을”(2022. 09. 16 14:50)
2022. 09. 16 14:50 사회
ㆍ청년 노동자 목소리 담은 펴낸 천현우 청년 용접노동자 천현우씨(32)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한 출판사 대표가 공유한 그의 페이스북 글을 읽으면서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대녀(20대 여성)·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엇갈리면서 그것과 관련한 논쟁이 뜨거울 때였다. ‘대한민국 최하층에서 바라본 20대 남성들의 이반 투표’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존재하는지조차 잊고 있던 변방에서 날아온 통렬한 ‘비수’ 같았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그가 얼마전 자신의 이름으로 첫 에세이를 펴냈다. <쇳밥일지>(문학동네)다. 용접노동자로 일하면서 주간경향에 연재한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에 전사(前事)를 더하고 개고해 묶은 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서둘러 소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고 추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생한 날것의 흙수저 삶과 현장 이야기가 깊고 묵직한 여운과 고민을 안겨준다. 지난 9월 13일 천현우씨를 만났다. 그는 노키아부터 ISO 탱크 컨테이너 정비업체, 현대로템 하청업체, SNT중공업 하청업체, 볼보 하청업체에 이르기까지 지난 12년 동안 수많은 공장을 전전했다. 그중 후반 6년은 용접노동자로 살았다. 올해 3월부터는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에 합류해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다. 천씨는 “서울생활도, 취재도 아직은 낯설어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책은 어떻게 내게 됐나요. “주간경향을 보고 문학동네에서 작년 8월에 연락을 주셨어요. 주간경향 연재글은 제 이야기지만 노동 르포에 가까워요. 노키아부터 볼보 하청업체까지 제가 공장에서 일했던 12년과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자 생산직 노동자였던 3명의 인터뷰로 구성된 글이었어요. 문학동네는 주간경향 연재글에 앞뒤 맥락을 추가하면 왜 제가 용접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케 하는 좋은 에세이가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과거의 얘기는 어떻게 기술했습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집에 돌아오면 혼자여서 딱히 할 일이 없었거든요. 장난감도 없었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으니까요. 일기는 성인이 돼서도 계속 썼는데, 과거의 일기장이 글쓰기에 참고가 많이 됐어요.” -<쇳밥일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궁극적 메시지는 뭔가요. “제가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사람들은 ‘나는 그런 곳(저임금의 열악한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현장)에서 못 산다’, ‘지옥이다’라며 동정하듯 말했어요. 마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처럼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의 파편적인 12년의 경험담을 서술한 내용이 본의 아니게 노동 현실 고발로만 읽히는 게 조금 아쉬워요. 무엇보다 지방 하청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해요.” 천현우라는 청년 용접노동자가 처음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그가 2021년 4월 11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다. 직전 4·7 재보궐선거는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 등 국민의힘 압승과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특히 오세훈 시장은 20대 남성에게 72.5%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언론과 SNS,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앞다퉈 원인 분석에 나섰다. 거기에 지방 현장의 2030 청년노동자 목소리는 없었다. 천씨는 페이스북에 2030 공장노동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왜 절망과 냉소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썼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글은 하룻밤 새 수없이 공유됐다. 당시 페북 글과 관련해 천씨는 <쇳밥일지>에서 “이십대 남성은 공정론, 한탕주의, 일베와 펨코, 안티 페미니즘이란 문자의 감옥 안에 갇혔다. 젊은 친구들 말 좀 들어보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결국 수도권 대학생들만 예시로 들 뿐, 지금껏 내 삶에서 함께해왔던 동료의 목소리는 바깥으로 가닿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좀 과장하자면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거네요. “페이스북 메신저가 엄청 많이 오고, 휴대폰도 하루종일 울렸어요. 언론사로부터도 출연과 칼럼 제안이 들어왔고요. 150명 수준이던 페북 친구는 하루 동안 400여명이나 증가했어요.” -당시 어떤 심정으로 그 글을 쓴 건가요. “진보진영의 많은 분들은 2030 남성들이 뭘 몰라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는 식으로 주장했어요. 그래서 제가 처한 현실에서 20대 남성이 느꼈던 불안감과 박탈감의 지점을 입시·취업 과정, 노동소득과 고용불안, 남녀 간 깊어지는 갈등 이 세가지로 압축하고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은 거예요. 공정을 말하면서 종종 들먹이는 능력주의는 공평하지 않으니까요.” 문학동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요. “가난하면 명문대 들어가기가 훨씬 힘드니까요. 극소수의 ‘개천용’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을 쥔 쪽이 무조건 유리하죠. 입시는 곧 취업으로 연결돼요. 대기업은 명문대 등 수도권 4년제 대졸자가 차지하고, 지방의 고졸이나 속칭 ‘지잡대’ 출신 다수는 임금을 비롯한 모든 게 열악한 중소기업으로 가게 되죠. 특히 생산직 분야는 취업시장 최하층에 위치해 있어요. 중장년 꼰대들의 폭언과 산재 위기에 항상 노출돼 있죠. 직급이 올라도 임금이 거의 안 오르니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도 어려워요.” -이른바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린 ‘이대남, 이대녀’ 논쟁과 갈등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겠군요. “저로선 잘 와닿지 않았어요.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끼리 저렇게까지 더 달라고 싸워야 하나?’, ‘대학에 갈 수 있으면 나머지는 다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죠.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제일 놀란 것은 워크넷에 용접 구직을 했을 때였어요. 제가 살던 마산에서는 진짜 별로 답이 안 오는데 서울에서는 거의 사흘에 한 번꼴로 서류 넣어보겠냐는 문자가 왔어요. 그만큼 일자리가 많고 시급도 훨씬 높더라고요. 수도권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구나 싶었어요.” -페이스북 글을 계기로 신문과 잡지 칼럼을 쓰고 방송 출연에 이어 이렇게 에세이까지 냈는데, 2030 공장노동자들의 반응도 접합니까. “별로 없어요. 제 이야기가 정작 우리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없으니 안타깝죠. 제 글이 우리의 현실을 먹물들에게 전달하는 데 포커싱돼 있기 때문이에요. 포터 아저씨(천현우씨에게 용접의 세계를 알게 해주고, 편입 실패와 학벌 콤플렉스에 빠진 그에게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라며 늘 용기를 북돋아준 은인)가 그랬어요. 우리 판때기에서 쓰는 말들이 있는데,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 다 그대로 실을 순 없잖냐고.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라고.” -지난 정부에서 1년간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활동했는데, 그렇게 다양한 외부활동을 하며 터득한 게 있다면 뭔가요. “한국 정치 지형이 약자한테 너무 무관심하다고 느껴요. 출근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나 사방 0.3평 철창 안에 몸을 구겨넣은 채 31일간 농성을 벌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에서 보듯, 소수자는 진짜 목숨 걸고 극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알아봐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방 공장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아무리 열심히 전달해도 잠시 관심을 둘지는 모르지만 금세 풍화되고 말 거라는 서운함이 있어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우리를 모른 척하며 살아가겠죠.” 이전 그의 삶은 수많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거쳐온 삶의 거울일지 모른다. 그래서 용접노동자 천현우가 살아온 이야기는 무엇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지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그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는 “바람둥이 날건달”이었다. 바람을 피우다 집을 통째로 날린 아버지와 이혼한 심 여사는 생모는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고 기른 여덟 살 된 그를 데리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여관방을 전전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심 여사는 식당일을 하며 혼자 그를 키웠다. 하지만 심 여사가 아프면서 아버지와 살게 된 그는 급기야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그때 처음 나타난 생모는 1년을 같이 사는 동안 툭하면 어린 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낙상해 발목뼈가 으스러지고 나서야 그는 바람대로 다시 심 여사와 살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뻐했지만 가난은 늘 모자의 삶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초등학생 때 여관방에서 살았던 기억은 어떤 건가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심 여사)는 일하러 나가시고 저는 혼자였어요. 서울말 쓰는 저와 놀아주는 친구는 없었어요. 그래서 일기를 썼고, 저녁에는 TV로 만화영화를 봤어요. 점심식사는 학교에서, 저녁밥은 어머니가 출근 전 차려놓은 것을 먹었어요. 아침은 굶었고요. 어머니의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아침까지 주무셨거든요.” -여관방에서는 언제 벗어날 수 있었나요. “제가 생모라는 사람의 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원룸에 살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저 때문에 재혼도 안 하셨어요. 제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크다 보니 자극하기 싫었다고 하세요.” -어떤 트라우마요. “아버지는 생계를 책임지기는커녕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했어요.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다반사였고, 어쩌다 집에 돌아와도 데리고 온 여자와 자며 저는 침대 밑 바닥에서 자게 했어요. 방치된 시간이 길다 보니 제가 영양실조에 걸린 거고요.” -어릴 때 꿈은 뭐였습니까. “매달 2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천현우씨가 중장비 용접을 하고 있다. / 천현우씨 제공 “월세가 밀리는 달이 많았거든요. 특히 중학교에 입학한 후 교복을 사고 나니까 어머니가 되게 힘들어하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귀가 시간도 점점 늦어지시고.” -웹소설로 잠깐 돈을 벌기도 했고, 신춘문예에 도전도 한 것을 보면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중학생 때부터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쓴 것은 공장에 다니던 스물두 살 때부터였어요. 온갖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어요(웃음).” -한국에서 그나마 계층 사다리가 되는 것은 명문대 졸업 후 의사나 판·검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거예요. 공부에는 뜻이 없었습니까. “어릴 때는 공부가 재미없었어요. 우리는 ‘공부 못하면 기술 배워라. 그러면 가정도 꾸리고 어엿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실업계고(경남전자고)를 간 거예요. 그런데 아니었던 거죠. 그 말을 믿고 10년을 뼈를 갈아넣었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좌절감과 당혹감을 느꼈어요. 무슨 짓을 해도 혼자 벌어선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지방은 아직도 가족주의가 굉장히 강한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아요. 젊은 여성이 별로 없거든요.” -실업계 고교 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없습니까. “MB가 ‘기술강국 코리아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한다며 마이스터고를 만들었는데 장단점이 있어요. 2017년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이 기계에 몸이 끼이는 협착사고로 사망했잖아요. 현장에 맞춰 안전교육을 사전에 철저히 해야 했음에도 안 했던 거죠. 또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겪는 부조리를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거예요.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위험한 것 같은데요.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옳은 행위, 합법적 행위임을 가르쳐줘야 해요.” -산업현장에 생산직 노동자로 바로 투입될 학생들인 만큼 실업계고에서는 노동법 관련 교육이 선행돼야겠군요. “꼭 알아야 할 노동법 내용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해야 해요. 산업재해를 당해도 노동법을 모르면 권리를 찾지 못하잖아요. 또 거듭 말하지만 ‘절대 쫄면 안 된다, 위험한 일은 못 하겠다고 말하라’고 지나칠 정도로 얘기해줘야 해요. 현장실습 사망 사건 대부분이 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거거든요. 저는 이런 교육이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각자도생만 가르치는 이 사회에서 과연 힘을 합쳐 돌파하라는 교육이 가능할까요?” 그도 2년제 기능대학인 폴리텍 전자과 졸업반 때 창원 신촌 공단에 있는 효성 하청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고온에서 액체 상태였다가 실온에서 고체가 되는 에폭시수지를 온장고에서 꺼내 금형에 붓는 작업이었다. 출근 첫날 섭씨 400도 온장고에서 갓 나온 에폭시수지가 담긴 40㎏이 넘는 통을 50㎏을 겨우 넘긴 체중의 그가 들고 옮기다 떨어뜨렸다. 그의 발등에 수지가 쏟아졌다. 현장은 우왕좌왕했고, 초기 냉각이 중요한 화상은 1시간이 넘도록 방치됐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장은 그를 동네 의원에 데려가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만 맞혔다. 결국 어머니와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의사는 “딱 1㎝만 더 들어갔으면 발목 자를 뻔했다, 산재 처리 안 해주더냐”면서 “입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천씨는 출근 첫날 회사를 관뒀을 때 생길 불이익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발등에 화상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천씨는 “그때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을 알았더라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쇳밥일지> 본문과 표지띠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도대체 누가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뇨. 할 말을 잃어서 할 말이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소리였지만 2018년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SNT중공업 사외 협력업체인 창원의 작은 정밀공업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크레인으로 옮기던 10t 중량의 거대한 철판이 과장님의 다리를 덮치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어요.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온갖 나쁜 미래상이 그려졌어요. 하지만 숱하게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가잖아요. 저는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세상에 알리겠다는 심정으로요.” -이후 과장님 소식은 들었나요. “발목 절단 수술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어요.” 천현우씨가 지난 9월 13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한 인근 국토발전전시관 앞마당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노조가 결성돼 있다면 나았을 텐데, 중소기업은 노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규합해 노조를 결성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테고요. “찍히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저는 SNT중공업의 사내 하청업체인 정진테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노조의 개념조차 몰랐어요. SNT중공업과 정진테크 직원들이 한 공장에서 일했는데 하청직원이어서 겪은 차별이 컸어요. 여름 용접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에요. 하지만 현장에 냉방기는 없었어요. 선풍기를 쐬면 바람맞은 용접 부위에 구멍이 송송 뚫리기에 맨몸으로 버텨야 했고, 힘은 쭉쭉 빠져나갔죠. 그런 어느 날 낮잠을 잘 수 있는 에어컨이 구비된 휴게실이 있음을 알게 돼 이용했더니, SNT중공업 정직원 노조원 아저씨가 저를 막아서요. 하청직원은 노조가 투쟁으로 얻어낸 휴게실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서러웠겠군요. “샤워실도, 통근버스도 제공되지 않는 터라 잔업 후 땀에 찌든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버스를 타고 퇴근하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서럽고 착잡했어요.” -대우조선해양 하청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분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제가 당시 조선하청지회를 직접 방문했는데, 여성 파워공(선박의 표면을 전동 그라인더로 갈아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하청도 앞으론 점점 이렇게 서로 연대해 공론화할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가졌어요.” 그는 한때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했다. 온라인 게임으로 만나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난 친구의 전문대 비하 발언에 자존심을 크게 다쳤고, 전자과의 경우 2년제를 나와선 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편입 자금을 모으려 잔업과 특근에 주말이면 공사현장을 누볐다. 심 여사도 아들의 편입을 위해 빚이란 빚은 다 끌어다가 화투판에서 이자 장사를 하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심 여사가 믿던 동생에게 사기를 당해 8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기 때문이다. 천씨는 채권자들에게 심 여사의 빚을 자신이 갚겠다고 나섰다. 200만원 월급에서 다달이 140만원을 갚아나가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더욱 궁핍해졌다. -어머니의 빚은 다 갚았습니까. “아직 600만원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점은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다. 어머니 심 여사와 포터 아저씨를 비롯해 노키아공장에서 재회해 도움을 준 초등학교 동창 은주씨, 정진테크에서 만나 독서의 근육을 키우게 해준 초원씨, 그리고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이자 그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경청해준 양승훈 경남대 교수 등이다. 천씨는 삶의 터전을 옮겨 지난 3월부터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에서 기자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쇳밥꾼이 아닌 먹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걸었던 길 위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려고 한다. 책도 또 펴낼 생각이다. 그는 “아마도 다음 책은 산업재해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주연의 메타뷰
하청 착취 계속되면 조선업 경쟁력 잃어”(2022. 07. 29 14:17)
2022. 07. 29 14:17 사회
ㆍ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 인터뷰 “안 할 수가 없던 싸움이었다. 불이 났다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는데 집주인이라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우리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가운데)이 지난 7월 21일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하청업체와 비공개 협상을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51일간 스스로 지핀 불구덩이 한복판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었다. 유례없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도 불길이 꺾이긴커녕 전국적인 의제로 폭발했다. 이들의 요구가 하청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조선산업의 지속가능성과도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은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조선산업 생태계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인 하청노동자들이 산업의 미래를 염려하며 목소리를 냈다는 점, 원청인 대우조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 정부에 포위된 형국이었지만 대중은 외면하지 않아 고립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임금 4.5% 인상만 놓고 보면 하청노동자들의 패배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이제라도 근본 문제를 짚어보자’는 공감대를 이끌어낸 점을 주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선산업의 왜곡된 고용구조가 노동문제를 넘어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파업이기도 했다. 지난 7월 26일 경남 거제시 하청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형수 지회장은 “경영진과 정부의 나태함, 방만함, 비리로 인해서 조선소가 힘들어지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선소가 망해도 되겠지만, 인생을 갖다 바친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일단락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합의 직후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다 아쉽다.” -임금 30% 인상이라는 노조의 당초 요구에 훨씬 못 미치는 4.5% 인상에 합의했다. 애초 요구가 현실성이 없었던 건 아닌가.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물건을 1만원에 팔려고 부러 3만원을 부른 게 아니라 정말 30%를 올려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조선소의 가장 큰 문제이자 핵심이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20년차 숙련공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으면 하청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 3~4년치 일감이 들어왔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는 다른 곳보다 일이 위험하고 어렵고 더럽다. 숙련공이 그 돈 받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 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많을 때 산업의 경쟁력이 나오지 않겠나.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당사자들이 안 하니까 우리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합의를 왜 했나. “가장 큰 이유는 조합원들이었다. 무사하게, 안 다치길 바랐다. 빼앗긴 임금을 되찾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산업은행, 현 정부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어떻다는 것은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다.” 하청지회는 조선업 불황이 닥친 2015년 이후 삭감된 임금 30%의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지난 6월 2일부터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1도크 점거농성을 벌였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이 이어졌고, 유최안 부지회장은 스스로를 0.3평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원청인 대우조선은 “손해액이 8100억원에 달한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내비쳤고,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는 최후의 방법인 공권력 투입까지 언급했다. 파업은 51일 만인 지난 7월 22일 노사합의로 일단락됐다. 관건이었던 임금은 사측의 최초 제시안대로 4.5%만 인상하기로 했다. 하청노동자들의 패배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합의사항에는 주목할 조항들도 있다. ‘일시적 물량증가에 따른 재하도급은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하청업체의 ‘불법적 재하도급’을 금지하기로 했다.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근로계약기간은 1년 이상으로 하기로 했다. 또 하청업체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최우선으로 고용하기 위해 노사가 최대한 노력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하청노동자들이 22개 하청업체와 집단교섭을 벌여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의 내용에 의미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나. “의미나 성과라고 하기에는 초라하다. 어쨌든 단체협약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하게 돼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지금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근로계약서만 썼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문서화했다.” -기존에도 개별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하지 않았나. “노조 대 회사의 단협이 아니라 노동자 대표와 회사의 합의였다. 이렇게 개별 합의를 해도 업체가 폐업하면 휴짓조각이 돼서 노동 3권이 형해화됐다. 이번엔 22개 하청업체와 단협을 체결한 점이 다르다. 조선소의 문제를 하청노동자들에게 모두 전가하는 폐해가 사라지길 바란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은 교섭을 하겠다.” -주요 합의사항 대부분에 단서조항이 달렸다. 예컨대 고용보장은 폐업업체 노동자를 ‘고용한다’가 아니라 ‘최대한 노력한다’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근로계약기간을 1년 이상으로 맺으면 회사에 일이 없을 때 (하청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경향이 줄어들 수 있다. 이전에는 일당을 받는 하청노동자들이 한두 달짜리 계약서를 계속 갱신하면서 일했다. 회사가 언제든 내보낼 수 있어 노동자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또 폐업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노사가 최대한 노력하기로 한 만큼 하청업체가 고용을 100% 마음대로 할 수도 없게 됐다.” 지난 7월 21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왼쪽)와 정규직 노조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재하도급 금지’가 들어갔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래도 노조는 계속 이 문제를 알려가겠다. 사실 이 문제를 방치하면 회사에도 좋을 게 없다. 재하도급으로 일이 외주화되면 노동자가 품질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다.” -사회적으로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렇게까지 널리 회자한 적이 있나 싶다.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나. “아무도 상상 못 했다. ‘한번 보자, 절실하게 요구하면 누군가 우리의 소리를 들을 거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 보자’고만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다.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다. 도크 로테이션 기간(선박의 첫 번째 블록 탑재부터 완성된 선박을 진수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통상 45일인데 그렇게까지 파업하면 현장이 어떻게 될까 막연히 상상만 했다.” -파업기간 최대 고비를 꼽는다면 언제인가. 공권력 투입이 처음 거론됐을 때인가. “그 얘기 나왔을 때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정규직 노동자들 동원해 무력침탈할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현장에서 얼굴을 보던 분들도 있는데 속된 말로 개싸움 붙이는 것 같았다. 하청노동자 중에는 그때 몸이 다친 분들도 있다. 몸이 다친 거야 나으면 되는데, 마음이 다친 거는…. 유최안 부지회장이나 단식농성·고공농성하는 동지들을 보고 있는 것도 힘겨웠다. 유 부지회장은 먹고, 자고, 배변 활동까지 그 좁은 공간에서 했다.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우리 현실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대우조선해양의 2만5000여 노동자 중 하청노동자는 1만7000여명에 달한다. 이중 하청지회에 가입한 하청노동자는 600여명에 불과하다. 이중 이번 파업에 적극 참여한 조합원은 100명 남짓이다. 하청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직을 걸어야 하는 현장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다. 15년차 용접공으로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김형수 지회장도 2020년 1월 지회장 임기를 시작한 지 23일 만에 업체에서 해고됐다. 지금도 부당해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헌법이 정한 노동3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엄혹한 상황에서도 김 지회장 등 하청노동자들은 2017년 지회를 출범시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집행부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됐지만 수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7월 26일) 경찰에서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갔다. 지난해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워공 투쟁과 관련해서는 이미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손해배상 소장도 받았다.” -회사가 수천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감당이 되겠나. “1000만원만 돼도 물질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데 당연히 걱정은 된다. 그래도 노조 가입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대화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나. “안 할 수 없었던 싸움이다. 지난해 교섭할 때부터 임금 문제를 계속 얘기했다.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부나 원청이나 산업은행이나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정부부터 조선업을 포기할 건지 말 건지, 고민을 해야 한다. 조선업은 인력 중심 산업인데 지금과 같은 임금구조로는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수가 없다.” -파업 이후 정부가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 신속도입’ 제도를 추진한다고 한다. 원하청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 같더라. “조선업계가 한두 달 일한다고 숙련이 쌓이는 산업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늘린다고 해법이 될 수 없다. 근무조건이 위험하고 열악하다 보니 지금도 조선소를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밥 없으니 빵 먹으라는 얘기와 같다. 정규직 임금 삭감은 ‘노노갈등 2탄’으로 이어질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시장경제가 노동자 몫의 임금을 한정해 놓고 원하청이 나눠 가지는 것인가. 이건 시장경제도 아니고 총체적인 정치철학 부재다. 이번 파업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서로 입장이 달랐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하청노동자들도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겠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내일은 올까(2022. 02. 11 17:57)
2022. 02. 11 17:57 사회
ㆍ태안화력 1·2호기 운영 중단 땐 비정규직 누군가는 그만둬야 2016년 9월부터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2차 하청업체에서 전기 분야 정비를 맡고 있는 김영훈씨(29)는 소속 업체가 벌써 3번이나 바뀌었다. 담당하는 업무와 상주하는 사무실은 그대로인데 작업복에 적힌 업체명만 달라졌다.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경상정비 도급을 받은 공기업 한전KPS가 대개 1년 단위로 입찰공고를 내고 재하도급 업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전경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고용은 승계되지만 업체가 바뀌는 탓에 늘 ‘신입사원’이다. 호봉 상승이나 직급도 없고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2단계 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인건비 ‘중간착취’가 발생해 원청·1차 하청업체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다. 김씨는 “숙련도가 높아지면 임금도 올라야 하는데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2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건뿐 아니라 정부의 에너지전환 과정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도 발전사 정규직은 전원 재배치하지만 가장 ‘약한 고리’인 2차 하청노동자들은 벌써부터 일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2차 하청업체들은 노동조합이 잘 조직돼 있지 않은데다 지역 기반의 소규모 업체들이 많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목소리를 외부에 알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내일모레 우린 없어지겠구나.” 김씨는 최근 동료들과 가끔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태안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이 불과 몇년 남지 않아서다. 정부는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 현재 60기인 석탄화력발전소를 2034년까지 30기로 줄이고, 이중 24기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2025년까지 1·2호기, 2028년까지 3호기, 2029년까지 4호기 운영을 중단한다. 올해 말 확정하는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선 폐쇄 일정을 더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당초 26.3%에서 40%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발전소 폐쇄는 ‘사망선고’ 김씨는 탈석탄 정책에 따른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동료들은 머지않아 눈 앞에 펼쳐질 현실이어서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도 없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밖으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다른 2차 하청업체에서 기계 분야 정비를 맡고 있는 최동식씨(36) 역시 막막한 심정이다. “잘린다고 생각하니 ‘어디 가서 뭐 먹고 살지’라는 고민이 든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다. 특히 태안은 발전소를 빼면 주로 관광업, 농·어업이라 일자리가 많지 않다.” 석탄화력발전소 내부 모습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송상표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장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시한부 선고’에 비유했다. “하청노동자들은 2025년까지 3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사망선고를 받아놓고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는데 고용보장 대책은 없다.” 금화PSC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발전소로부터 도급받는 1차 하청업체다. 2025년 1·2호기를 폐쇄하면 2차 하청노동자들 사이에서 ‘오징어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씨가 속해 있는 업체는 크게 3팀으로 나뉘어 있다. 1~4호기는 1팀(6명), 7~8호기는 2팀(3명), 9~10호기는 3팀(5명)이 맡고 있다. 1·2호기 운영을 중단하면 당장 14명 중 나가야 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김씨는 “14명은 서로 한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업체 변경 과정에서도 예전보다 도급비가 낮게 책정돼 한명이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월급이 깎여도 같이 가자’고 이야기가 돼서 14명 모두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대’의 정신이 이처럼 살아 있지만 1·2호기를 폐쇄하면 누군가는 짐을 쌀 수밖에 없다. 하청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온도 차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만5440명이다. 이중 정규직이 1만3846명, 비정규직(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설비 운전)이 1만1594명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온도 차 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지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은 칼바람을 피해갔지만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은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서천 1·2호기, 영동 1·2호기, 보령 1·2호기, 삼천포 1·2호기 등 이미 폐기한 석탄발전 8기에서 일하던 발전사 정규직 601명은 전원 재배치됐다. 하청업체 노동자들(667명)은 그러나 재배치 606명, 정년 22명, 감축 39명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폐쇄한 호남 1·2호기에선 12명, 올해 1월 31일 폐쇄한 울산 4~6호기에선 20명을 계약 해지했다. 이들은 모두 경상정비를 담당하던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최씨는 “원청이나 공기업인 한전KPS 노동자들은 폐쇄에 신경을 덜 쓴다. 전국에 사업장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거나 같은 사업장 내 다른 파트로 옮겨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기반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저렇게 옮겨가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지난해 10월 18일 경남 창원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당사 앞에서 발전소 폐쇄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공공운수노조 제공 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고용불안에서 계속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자회사나 2차 하청업체에서 인력 감축이 나타났지만 앞으로 폐쇄가 가속화·대규모화하면서 발전 공기업 정규직들의 고용보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석탄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바로 ‘고용보장’이다. 김씨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져도 LNG,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그 분야로 전환해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충남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누구도 일자리를 잃지 않고 새로운 시작에 함께할 수 있는 공정한 전환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직무전환 교육, 재취업 지원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실효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교육시켜 주겠다, 취업 알선해 주겠다’는 것뿐이지 고용보장이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최씨도 “평생 이 일을 하던 사람이 다른 분야나 지역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고용보장이 왜 중요할까. ‘일자리가 우선이냐, 환경이 우선이냐’는 그릇된 이분법을 해소하고, 노동자들의 탈석탄 전환 수용을 유도하려면 고용보장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발전소 폐쇄는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실직하는 노동자에게 국가가 책임을 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오는 배경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민간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쪼개진 발전 공기업 5개사를 통합한 뒤 재생에너지 분야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재생에너지 인력으로 우선 전환하면 된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석탄발전소 폐쇄와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사이 시간적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선고용-후교육’ 원칙 수립,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다른 지역으로 바뀔 경우 이주대책 마련 등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 이루려면 이정희 연구위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정부 대책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해 알음알음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며 “전직, 직업훈련 등을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정의로운 전환’의 최일선에 있는 산업이다. 여기서 어떻게 실질적 고용대책을 마련했는지가 자동차를 포함한 다른 산업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회적 대화, 산별교섭 등 중층적 논의 테이블을 통해 유의미한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자들의 심리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에서 일하던 30대 하청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노동자는 퇴근 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공기업으로의 이직 준비를 했다고 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4월 석탄화력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36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무려 92.3%였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발전소 폐쇄로 줄어드는 인력을 위한 대책 마련 과정에서 노동계는 배제되고 있다. 송상표 금화PSC지부장은 “정의로운 전환에 ‘정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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