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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950 건 검색)

이젠 부동산 개발도 한류…정부, ‘K신도시’ 수출 적극 육성
2024. 07. 23 20:06 경제
기획·투자·건설·운영까지 턴키 수주…1조원 펀드·정책 금융도 지원 정부가 ‘한국형 신도시’ 수출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기존의 단순 도급 사업에서 나아가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수주할 수 있는...
신도시수출해외투자개발부동산 시장은 지금
‘일본 한류’ 기반 닦은 문화기획자 사노 료이치 별세
2024. 07. 16 19:55 문화
한류’ 이전부터 한국의 가수와 음식 또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을 일본에 소개한 문화기획자 사노 료이치가 13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사노의 제자인 한국 음식문화 전문 작가 핫타 야스시는...
K콘텐츠 후광 효과…6년 뒤엔 한류 시장 ‘273조원’ 내다본다
2024. 07. 15 20:19 경제
... 수 있다는 분석이다.틱톡은 마케팅 데이터·분석기업 칸타와 15일 공동 발표한 ‘숏폼 시대의 한류: 짧고 강력한 콘텐츠로 승부하다’ 백서를 통해 한류 관련 지출 규모가 올해 760억달러에서 2030년...
한류 시장 규모 2030년 273조원 전망···‘K-후광 효과’ 덕분
2024. 07. 15 14:28 경제|IT
... 것이라는 분석이다. 틱톡은 마케팅 데이터·분석 기업 칸타와 15일 공동 발표한 ‘숏폼 시대의 한류: 짧고 강력한 콘텐츠로 승부하다’ 백서를 통해 식음료, 뷰티,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영역 등에서...

스포츠경향(총 1,273 건 검색)

영국 가디언“계엄사태, K팝·한류 나라 ‘두 얼굴’ 들춰”
2024. 12. 07 14:05 연예|연예|연예|생활|생활
방송화면 캡처 “K팝 긍정적인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전 세계 관중들은 그동안 몰랐던 한국의 다른 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정론지 가디언은 “K팝과 독재자들: 민주주의에 가해진 충격이 한국의 양면을 드러냈다”는 기사에서 한류 열기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던 한국 군사 독재 등 ‘어두운 면’을 조명했다. 이 매체는 수십 년 만에 한국에서 계엄이 선포된 이번 사태가 군사 독재 체제의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국내외 젊은 세대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줬다고 관측했다. 가디언은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소프트 파워’(문화적 영향력) 패권을 둘러싼 국제적 경쟁에서 분명한 승자였다”며 BTS(방탄소년단)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던 이 나라를 ‘문화적 거물’로 변모시켰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또 다른 한류 열풍의 주역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 공개를 둘러싼 기대가 커지고 있던 불과 며칠 전, 난데없이 벌어진 계엄 사태로 “‘현실판 디스토피아’가 여기에 불쑥 끼어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류 열기와 최근의 혼란상 간의 가장 충격적인 대비는 화요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 밖에서 의원들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고, 군용 헬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와중에 자신들의 대통령이 중단시킨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무장 군인들에 맞서는 현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계엄 선포는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한국이 사실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룬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점도 주목했다. 이 매체는 한국이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사 독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공표한 것은 불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였다면서 그전까지 한국의 지도자들은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군인들과 계엄 선포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이 일궈낸 눈부신 경제, 문화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 남은 권위주의적 문화의 잔재는 이번 계엄 선포 사태에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풀이했다. 가디언은 한국의 “경제,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여전히 제도들 깊이 뿌리내린 권위주의적 경향과 씨름하고 있다”며 “이러한 것들은 종종 전통적인 위계 구조와 네트워크들에 의해 방조되고 더 커지는데, 이는 이번 계엄 사태에서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 연줄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혹에서도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번 일을 두고 한국 내에서는 그동안 쌓아 올린 국가적 위상과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비판과 함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함께 나온다고 전했다.
‘K-커뮤니티 페스티벌’ 전 세계 한류 동호회 주목 받아
2024. 11. 08 13:43 생활
예스 24 라이브홀(서울 광진구)에서 ‘2024 K-커뮤니티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지난 2일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후원으로 진행됐다. 10월 29일, 서울의 경복궁 앞에서 ‘2024 K-커뮤니티 챌린지’ 우승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K-커뮤니티 페스티벌에는 SF9, BEBE, EPEX 등 인기 케이팝 아티스트를 필두로 한국을 찾은 K-커뮤니티 챌린지 우승팀들과 멘토단(악단광칠, 태권크리, 비슬무용단)이 꾸민 열띤 공연이 펼쳐졌다. 전 세계 한류 팬도 K-커뮤니티 페스티벌과 코리아넷 유튜브 채널 생중계를 통해 공연을 즐겼다. 진흥원은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27일까지‘한류 동호회와 함께하는 한국 문화 함께 잇기’(이하 K-커뮤니티 챌린지)를 개최해, 전 세계 한류 팬들이 한국 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K-커뮤니티 챌린지는 조선팝, 태권무, 소고춤, 한식 등 4개 분야로 공모전을 진행했다. 유럽, 미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47개국의 한류 동호회가 참여해 관심을 받았다. 아르헨티나의 조선팝 우승팀 엑스플로드(XPLODE)는 공모전 영상에서 한국의 전통 모자를 직접 제작하고 부채를 활용하여 조선팝을 재해석하는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나이지리아 셀레스티얼스테퍼스(Celestialsteppers)팀은 나이지리아만의 독창적인 스토리를 태권무와 결합해 개성 있는 공연을 영상으로 표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스페인의 더 무빙 스톤즈(The Moving Stones)팀은 현지 주요 명소에서 한복과 소고춤을 접목하여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했고, 소고에 한국 전통 문양 그림을 그려 직접 꾸미고 전구를 장식해 독창성을 더했다. 한식 우승팀인 필리핀의 저고릴스(JeogoREELS)팀은 직접 만든 떡과 한국 고추장을 사용해 로제떡볶이를 선보이며 한국 음식의 매력을 재해석하는 영상을 제작해 감동을 자아냈다. 11월 2일, 서울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2024 K-커뮤니티 페스티벌’에서 케이팝 그룹 SF9 (에스에프나인)이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모전에서 선발된 최우수상 4개 팀은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국내에 초청을 받았다. 한국 체류 기간 동안 경복궁과 익선동 한옥마을 탐방, 한국 음식 체험, 김치 만들기 등 한국 문화를 깊이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멘토단(악단광칠, 태권크리, 비슬무용단)의 특별 강습을 통해 실력을 다지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고, 마침내 11월 2일 K-커뮤니티 페스티벌에서 SF9, EPEX, BEBE와 함께 꿈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번‘K-커뮤니티 페스티벌’은 현장 관객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한층 더 풍성한 무대로 꾸며졌으며,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동호회와 K-아티스트가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흥원 박창식 원장은 “이번 행사가 전 세계 한국문화 동호회들에게 소통하는 기회가 되고, 대중문화를 비롯, 전통예술, 생활문화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계기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진흥원은 앞으로도 한류 동호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한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해외 한류 동호회와 K-POP 스타가 함께한 꿈의 무대 ‘2024 K-커뮤니티 페스티벌’은 ‘K-크리에이터스 어워즈’와 공동으로 ‘2024 K-Wave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다. ‘K-커뮤니티 페스티벌’은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배인혁, 일본 첫 단독 팬미팅 성료…‘나도야 한류스타’
2024. 10. 29 08:41 연예
지난 27일 일본 도쿄 유라쿠초 요미우리홀에서 팬미팅 ‘모멘츠 오브 스타팅’을 연 배우 배인혁. 사진 YY엔터테인먼트 배우 배인혁이 첫 일본 단독 팬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배인혁은 지난 27일 일본 도쿄 유라쿠초 요미우리홀에서 열린 팬미팅 ‘모멘츠 오브 스타팅(Moments of Starting)’을 열고 팬들을 만났다. 이 행사는 배인혁이 데뷔 후 처음으로 개최한 단독 팬미팅이자 첫 일본 팬미팅으로, 아티스트와 팬들에게 더욱 뜻깊은 시간으로 꾸며졌다. 배인혁과의 만남을 위해 일본은 물로 아시아 전역의 많은 팬들이 발걸음을 했고, 배인혁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 지난 27일 일본 도쿄 유라쿠초 요미우리홀에서 팬미팅 ‘모멘츠 오브 스타팅’을 연 배우 배인혁. 사진 YY엔터테인먼트 배인혁은 먼저 데뷔 전 모습과 그동안의 작품을 되짚는 코너를 마련했다. 또한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모닝콜 녹음 등 평소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공개했다. 특히 팬들을 위해 직접 선곡한 노래들까지 선보이며 풍성한 무대를 완성했다. 팬미팅을 마친 배인혁은 소속사를 통해 “데뷔 후 첫 단독 팬미팅이라 제게도 팬들에게도 너무 소중한 시간인데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 주신 팬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배인혁은 2019년 데뷔 후 tvN 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 KBS2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에 출연했다. 2022년에는 MBC ‘왜 오수재인가’, tvN ‘슈룹’, SBS ‘치얼업’ 등에 출연했고, ‘2022 SBS 연기대상’에서 남자 신인 연기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MBC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 출연해 ‘2023 MBC 연기대상’에서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팬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일본에서 첫 단독 팬미팅을 열고 글로벌 인기를 증명했다. 배인혁은 올 하반기 기대작인 채널A 드라마 ‘체크인 한양’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박민영, 일본 가수 니시 뮤비 출연···한류여왕 인기 잇는다
2024. 10. 16 17:31 연예
배우 박민영이 출연한 Nissy 뮤직비디오 출연 장면.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박민영이 일본 가수 겸 배우 Nissy(니시지마 타카히로)의 신곡 뮤직 드라마에 여주인공으로 나서며, 일본에서 ‘新 한류 여왕’의 인기를 이어간다.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박민영의 출연은 16일(오늘) 일본에서 공개된 Nissy의 전국 6대 돔 투어 신곡 뮤직 드라마 트레일러 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박민영은 뮤직 비디오 트레일러 영상에서 때로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눈물을 쏟아내는 등 열연을 펼쳐 시선을 강탈했다. 또한 박민영은 극중 Nissy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 “당신과 이대로 함께할 수 있는 마법이 어딘가에 있을까요?” 등 한국어로 연기를 펼치며, 일본 내 한국어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박민영과 Nissy의 만남은 Nissy의 제안으로 전격 성사돼 의미를 더한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언어가 다름에도 첫 촬영부터 서로를 배려하며 몰입감 넘치는 연기 호흡을 맞췄다. Nissy는 2005년 데뷔한 후 일본 내 각종 시상식의 신인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낸 가수이자 배우이다. 2013년 그룹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 후 2019년에는 일본인 남자 솔로 아티스트 사상 최연소로 매진을 기록하며 전국 4대 돔 투어를 완료했고, 2022년에는 솔로 아티스트 사상 두 번째 6대 돔 투어 전석매진을 기록하고 2024년 11월부터 일본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2번째 전국 6대 돔 투어에 나서며 박민영과 함께한 뮤직 드라마의 풀스토리를 공개한다. 박민영과 함께 호흡을 맞춘 신곡 뮤직 드라마는 EXILE, 아무로 나미에, DREAMS COME TRUE 등 수많은 아티스트의 작품과 영화를 연출한 걸로 유명한 쿠보 시게아키가 감독을 맡았다. 박민영은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종영 후 지난 3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팬미팅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입증했다. 이번 뮤직비디오 출연과 더불어 오는 11월 8일에는 도쿄 NHK홀에서 일본 팬클럽 창단식 ‘Hello Japan Beans’ 개최한다. 현재 일본에서 진행 중인 팬클럽 모집에 신청한 팬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후크엔터테인먼트는 “‘내남결’ 이후 박민영의 일본 내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팬클럽 모집에도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며 “신곡 뮤직 비디오 출연이 트레일러를 통해 깜짝 공개된 후 반응이 뜨겁다. 앞으로 박민영의 다양한 활동을 많이 응원해달라”라고 전했다.

주간경향(총 54 건 검색)

[가깝고도 먼 아세안] (31) 한류가 만능은 아니다(2024. 06. 14 16:00)
2024. 06. 14 16:00 국제
베트남에서 BTS(방탄소년단)가 광고한 콜드 브루 커피 홍보물/유영국 제공 2018년 12월 아세안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했다. 베트남 전체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승승장구했고, 스즈키컵 우승으로 명실상부 아세안 최고 축구팀이 됐다. 마침 스즈키컵 결승전이 있던 날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기획한 한국 소비재 판촉전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그런데 국내 한 언론사가 ‘베트남 K뷰티에도 ‘박항서 매직’’이라는 제목으로 코트라 행사 소식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감독 덕분에 코트라 행사장에 사람들이 몰렸고, 특히 ‘한국산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이 인기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장품 기업의 법인장으로서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쓴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으나 당시 기획전은 스즈키컵의 우승과 상관없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항서 감독의 인기와 K뷰티는 전혀 무관했다. 그래도 혹시 ‘박항서 매직’이 K뷰티 인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베트남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한류 만능’ 맹신과 현실은 달라 아세안 한류 열풍에 한국 제품이라면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뿐 아니라 대기업마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따금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한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면 ‘베트남에서 팔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문의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들의 질문에는 ‘동남아는 못사는 나라이니까 하자가 있더라도 한국 제품이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세안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류를 해외사업의 만능’이라고 맹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22년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세계적인 한류 스타 BTS 멤버들의 사진을 넣어 판매한 콜드브루 커피는 세계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반응이 좋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BTS 커피를 독점 유통한 업체의 대표는 베트남에서 유명하고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BTS 커피 출시 당시 베트남 주요 언론에 광고하고, 베트남 연예인들을 불러 BTS 커피 출시 토크쇼까지 진행했지만, 베트남에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베트남은 2019년 전 세계에서 BTS 팬이 2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팬덤연구소 블립(Blip)의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K팝 세계지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BTS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전 세계에서 BTS 인기가 3번째로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도 BTS 커피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언론 매체 모조크(Mojok)는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범하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기에는 BTS 커피의 가격이 높아서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모두 270㎖ 용량의 BTS 커피를 현지 한 끼 식사가격인 2800원가량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판이다. 베트남에서 블랙핑크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펩시콜라/유영국 제공 K팝 열풍의 중심에 있는 베트남 10대와 20대 초반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직장인들은 졸음을 방지하고 일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카페인을 섭취한다. 특히 야외 노동자들은 카페인 함량이 높고 단기적인 에너지 보충을 해주는 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를 선호한다. 당시 베트남에 판매된 BTS 커피는 모카라떼, 바닐라라떼로 베트남 소비자들 취향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주요 타깃인 10대와 20대는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류 앞세운 ‘문화 식민화’ 경계해야 또 다른 사례도 있다. BTS 커피 출시에 앞서 세계적인 음료 기업 펩시는 2021년 블랙핑크 멤버들 사진이 들어간 펩시콜라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베트남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블랙핑크 스페셜 에디션 펩시콜라의 가격은 기존 펩시와 차이가 없는 9000동(450원)이었다. 가격도, 한류 스타도 판매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 펩시 입장에서는 블랙핑크 팬 한 명이 각 멤버 얼굴이 인쇄된 펩시 4개를 모두 구매해 집에 보관하길 원했겠지만, 베트남 팬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펩시콜라 자체가 베트남 10대들에게 인기 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던 BTS와 블랙핑크였지만, 베트남에서는 안 팔리는 제품을 잘 팔리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물론 한류의 영향으로 물건 판매가 잘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판매가 잘되는 것을 더욱 잘되게 하는 것이지 안 팔리는 제품을 팔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입장을 바꿔 설명해 보려 한다. 한국에 피자와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식당이 수천 곳이라는 걸 확인한 이탈리아 기업이 ‘한국은 이탈리아 문화 열풍이라 이탈리아 상품을 수출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라고 분석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또한 대한민국 베이커리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1·2위 기업의 이름을 모두 프랑스어로 돼 있고, 프랑스풍 베이커리를 추구하고 있으니 프랑스 제품이면 무조건 팔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리지만 그 외의 제품이나 두 나라 문화 상품은 인기가 없다. 이 사례를 한국 기업들이 생각해 본다면 한류가 해외 사업의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사업을 할 때 ‘한류 만능’도 경계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세안에서 한류를 앞세운 ‘문화 식민화’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에서 ‘한류’를 이용해 한국 제품을 잘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세안을 한류의 문화 식민지’로 보는 오만이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가깝고도 먼 아세안] (30) 베트남이 아세안 한류의 원류다(2024. 05. 24 16:00)
2024. 05. 24 16:00 국제
명나라를 방문한 조선 사신이 묘사한 베트남 사신의 모습. thethaovanhoa.vn “한류의 시작은 베트남이다.” 2003년 9월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의 한우창 홍보관은 ‘베트남의 한류 현상’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당시 베트남에서 선풍적이었던 한류 현상 소개와 그 원인을 분석했다. 이 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베트남 거주 한국인들은 베트남이야말로 한류의 원류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라는 부분이다. ‘한류’라는 단어는 1997년 대만 언론이 처음 만들어 썼다. 이를 중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사용하면서 ‘외국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광적인 선호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한류는 중화권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아세안, 중동까지 확산했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생성되기 이전부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친근함을 느꼈고, 베트남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동질감을 느꼈다. 당시 베트남 거주 한국인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지 않은 것이 베트남에서 한국 문화와 상품의 인기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상품의 인기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최병욱 인하대 교수의 ‘한국과 베트남 사신 북경에서 만나다’와 박희병 서울대 교수의 ‘조선 후기 지식인과 베트남’이라는 논문을 살펴보면 16세기 말 중국 명·청 시절 북경에서 만난 조선과 베트남 사신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같은 한자 문화권의 조선과 베트남 사신들은 필담을 통해 서로의 정세를 묻기도 하고 시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특히 조선 실학파의 선구자인 이수광은 1597년 명나라 사신으로 베이징에 다녀오면서 베트남 사신과 나눈 대화와 시문을 엮어 쓴 <안남국사신창와문답록>을 통해 베트남을 조선에 소개했다. 그리고 이수광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극찬받는 <지봉유설>에서 베트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남기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이수광과 친분을 쌓은 베트남 사신 풍극관(풍칵꽈안·Phung Khac Khoan)은 당대 베트남에서 추앙받는 위대한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지금도 하노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가 있을 정도다. 그런 인물이 베이징 사신으로 돌아와 이수광의 시를 베트남에 소개하니 베트남 상류 사회에서 대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3번이나 다녀온 조완벽이라는 사람을 통해 알려졌다. 조완벽이 베트남에 당도하니 베트남 관료들이 이수광의 시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이수광과 같은 조선 사람이라며 조완벽을 환대했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 지식인 사이에서 이수광이 조선의 ‘한류 스타’였던 셈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 베트남판 포스터. 유영국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 상품이 ‘인삼’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미 1500년 전 삼국시대부터 당나라에 인삼을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국제무역도시 벽란도를 통해 중동으로까지 수출했다. 최 교수의 또 다른 논문 ‘19세기 전반 베트남에서의 고려인삼’에서는 사신단에 의해 북경으로 간 인삼이 베트남에 유입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있다. 중국 황제에게 받은 선물과 중국에서 밀무역을 통해 베트남에 유입된 한국 인삼은 베트남 황제가 공신들에게 주는 특별 하사품으로 쓰였다. 1760년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강장환이 일기체 형식으로 작성한 <북원록>에는 베트남 사신이 선물을 보내며 간절히 인삼을 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로 베트남에서 인삼의 인기는 최고였다. 뉴욕대학교 인류학과 이혜민 박사의 ‘루이 14세의 인삼’이라는 논문에서는 1686년 프랑스를 방문한 시암(태국)의 사절단이 루이 14세에 인삼을 선물했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인삼이 재배되지 않으니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인삼을 들여와 프랑스까지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는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지역에서 인삼을 꾸준히 수집했고 동인도회사를 이용해 대량 매입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1910년대부터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인삼 무역을 하는 한국인들이 수십여명 있었다고 한다. 1938년 조선총독부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54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에 거주하는데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서 인삼 무역으로 거부가 된 한국 교민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에서 한류 상품 인삼의 인기는 대단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와 가요 인기 한국 드라마 <의가형제>의 베트남판 포스터/유영국 제공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한국 교민들이 대거 철수한 것도 잠시, 1980년대 말 베트남에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고 199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한국 드라마도 베트남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원은 한국 문화 보급 차원에서 한국 드라마 저작권을 사들여 베트남 방송국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한국 기업들도 무상 또는 매우 낮은 가격으로 드라마를 공급했는데 그 대가로 드라마 방영 시작과 끝에 자사 광고를 따내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1996년 HTV(호찌민 TV)에서 한국드라마로는 최초로 <금잔화>가 방영되면서 한국 드라마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2002년 이한우 서강대 교수의 ‘베트남에서의 “한류”, 그 형성과정과 사회경제적 효과’ 논문에 따르면 1997년 <느낌>, 1998년 <내 사랑 유미>·<의가형제>·<아들과 딸>이 인기리에 방영됐다. 다음 해 연이어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별은 내 가슴에> 등이 방영됐는데 베트남에서 방영된 한국드라마는 1999년 45편, 2000년 60편에 달했다. 베트남 TV를 틀 때마다 매일 여러 편의 한국 드라마가 나올 정도였다. 2000년에 들어서는 베이비복스, NRG, 젝스키스 등 한국 대중 가수들의 노래가 베트남 젊은 층에 폭발적 인기였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한국 가수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하는 젊은 층과 이를 반대하는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큰 사회적 이슈였다. 그 이후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들과 노래는 베트남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최고의 절정은 2023년 7월 예매사이트가 문을 열자마자 매진을 기록한 블랙핑크의 하노이 공연이었다. 이 정도면 한류는 베트남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말하는 한국 교민들의 말이 허언은 아닌 셈이다. 아세안 대부분 지역에서 70~80% 시장점유를 하는 일본 자동차들의 등쌀에 한국 자동차 시장점유율이 3~5%에 불과하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만 유일하게 현대차·기아가 35%를 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류 덕분에 한국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한류 열풍이 한국 상품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게 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적인 판매를 끌어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또 한류 열풍을 문화 식민지 건설로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룬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한류, 개 식용으로 타격 입을 것”(2023. 09. 15 10:59)
2023. 09. 15 10:59 사회
ㆍ‘식용견 구출 활동’ 태미 조 저스만·다큐 케빈 브라이트 감독 한국의 개고기 산업과 개 식용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제작한 케빈 브라이트 감독(오른쪽)과 동물구호단체인 ‘도브 프로젝트’를 운영 중인 태미 조 저스만 대표가 한국에서 구조한 ‘HOPE(희망)’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태미 저스만 제공 개 식용에 대한 국내 인식이 변화하듯 해외에서 한국의 개 식용을 바라보는 눈 또한 달라지고 있다. 한국이 경제적인 성장을 이룰수록, ‘한류’가 더 많은 국가에 알려질수록 개 식용 문화 또한 널리 퍼질 수밖에 없다. 여기 8년 넘게 한국의 개 식용 문제를 고민하고, 변화를 촉구해온 2명의 외국인이 있다. 미국에서 동물구호활동단체인 ‘도브 프로젝트(DoVE Project)’를 운영하는 태미 조 저스만(Tami Cho Zussman) 대표와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제작한 케빈 브라이트(Kevin Bright) 감독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태미 저스만 대표는 모국에서 여전히 개 식용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돼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케빈 브라이트 감독은 아내(클라우디아 브라이트)가 태미 저스만과 함께 도브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개 식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태미 저스만 대표는 도브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식용견을 구출한 뒤 해외 입양하는 활동을 현재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케빈 브라이트 감독은 4년간의 제작 과정을 거쳐 한국의 개 식용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누렁이>를 2021년 국내 개봉해 큰 화제를 모았다. 올해 7월에도 한국을 찾아 개봉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열리지 못한 시사회를 뒤늦게 열고, 관객들과 대화에 나설 만큼 열정적이다. 개 식용 문제에 어쩌면 한국인보다 더 관심이 많을 이들과 e메일을 통해 대화했다. -한국의 개 식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을까요. 태미 저스만(이하 태미) “사실 저는 개 식용이 한국에서 불법인 줄 알았어요. 극히 소수의 노인만 보양으로 몰래 드시는 줄 알았죠. 그런데 미국 지인이 2016년에 갑자기 한국에서 나온 것이라며 개를 도살하는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것을 보고 너무 충격이 컸어요. 2016년이라는 현대 사회에서 세계 인류가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개를 내 나라, 모국인 한국에선 잡아먹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됐죠.” 케빈 브라이트(이하 케빈) “제 아내인 클라우디아 브라이트가 태미 저스만과 함께 ‘도브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설립했습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할 때 저는 한국의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국 중 하나, 최고의 교육제도를 갖춘 국가 중 하나, 그리고 미국의 파트너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일을 통해 한국의 개고기 산업과 개 식용 문제에 큰 호기심과 함께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은 ‘한류’를 주요 현안으로 여기고 확산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개 식용이 한류 확산과 한국의 대외 이미지 제고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까. 태미 “정확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이미지 훼손 문제가 매우 커요. 한국 안에서는 잘 못 느낄 거예요. 하지만 외국에선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다’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지인들도 한국의 개 식용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가 어딘가에서 듣고 온 뒤 저한테 확인하곤 합니다. 극소수의 개 식용 문제 때문에 한국이 통째로 세계로부터 조롱받는 일도 생긴다고 봅니다.” 케빈 “<기생충> 같은 영화와 <오징어게임> 같은 (넷플릭스) TV시리즈를 통해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존경받는 콘텐츠 제작국이 됐습니다. K팝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경기장 곳곳을 가득 메운 관중을 볼 수 있죠. 그럼에도 개 식용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아티스트가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굉장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한류를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의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이 잘 알려지게 된다면 (한류 팬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고, 한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요?” -한국에는 개 식용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습니다. 중국, 베트남 등 다른 개 식용 아시아 국가도 있습니다. 왜, 지금 시점에 한국에서 개 식용을 끝내야 한다고 보는지요. 다큐멘터리 영화 를 제작한 케빈 브라이트 감독(위). 미국에서 동물구호단체 ‘도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태미 조 저스만 대표 태미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좋은 시점이 될까요. 어렵고 힘들겠지만, 더욱 발전되고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 때는 항상 어려움의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여러 면에서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널리 알려지는 차원을 넘어 전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발전시키며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나라에서 개고기를 아직도 먹는다는 사실이 한국도 계속 먹어야 하는 이유가 될까요.” 케빈 “우선 이 문제는 제가 생각하는 바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개 식용에 대한 최종 결정은 한국 국민의 몫이니까요. 개 식용이 널리 퍼져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다큐멘터리 <누렁이>를 보고 개 식용의 미래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개 식용에 찬성하는 분들은 ‘왜 개 식용만 문제 삼는가’라고 주장합니다. 한국만 해도 소, 돼지, 닭, 말, 양 등 식용이 허용되는 동물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태미 “저도 한국에서 그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참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소나 돼지, 닭고기 등은 거의 모든 세계인이 주로 먹는 음식입니다. 그 고기를 먹는다고 문제 삼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개는 이런 동물과는 다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동물입니다. 또한 개는 사람을 도와주는 역할도 많이 하죠. 공항에서 폭탄이나 약물을 찾아내기도 하고, 군대에선 훈련을 받은 뒤 군인들을 보호합니다. 위험한 곳에 먼저 들어가 안전성을 확인하기도 하죠. 이외에도 맹인견이나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도우미견 등 개의 역할을 생각하면 다른 동물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케빈 “8년 전 처음 <누렁이>를 제작하려고 하던 때부터 반복적으로 받았던 질문이네요.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리의 집에 살고 있고, 우리의 반려자가 돼줍니다. 장애인·경찰과 함께 일하기도 합니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로 여겨지고 있죠. 소나 돼지, 닭 등과는 다릅니다.” -한국의 개 식용 문제를 끝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태미 “시민의 의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 개 식용 문제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식 변화가 많이 이뤄졌고, 진보적인 생각과 인식을 가진 분도 많다고 봅니다. 2016년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나 인식이 또 달랐습니다. 당시 개 식용 문제를 그다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은 분을 많이 봤는데 최근엔 큰 변화를 느꼈어요. 이제 더 중요한 진전이 필요합니다. 개 식용 문제를 해결할 법을 만드는 일입니다. 법치국가인 한국에서 개 식용을 불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빈 “영화 <누렁이>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한국 국민이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관점에서 개 식용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한국 국민이 개 식용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한국의 개고기 산업과 개 식육 실태를 조명한 영화 의 포스터(왼쪽). 강형욱 반려견훈련사가 영화 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
[골목 내시경]명동-한류로 번성했지만 코로나로 쇠퇴의 길(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사회
명동은 서울에서 땅값과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으로 꼽힌다. 가장 번화하고 화려하며 최근까지 국내외 인파가 몰리던 곳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고 급격히 변한 곳을 들라면 단연 명동을 꼽을 수 있다. 곳곳에 관광객과 유람객으로 붐비던 골목과 가게는 모두가 버리고 떠나버린 도시의 모습으로 보였다. 명동의 모습은 사람이 버리고 간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나와 북쪽으로 뻗어 을지로까지 통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명동의 중심 골목이다. 화려하게 들어섰던 유명 상점들이 하나같이 철수해 빈 가게에 붙은 임대표지만이 눈에 띈다. 유리문 안으로 고지서와 급전 알선 광고들이 가득 쌓여 문을 닫은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골목 안 상점의 열에 일곱은 문을 닫았다. 유명 스포츠 의류매장이 건재한 채 있는데, 들고 나는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명동은 한류 때문에 엄청 번성했다가, 코로나로 망했다”는 것이 약국 주인의 이야기다. 예전에도 패션과 미용, 유행과 유통의 중심이었지만 최근 20년 이상 불어온 한류 열풍으로 명동은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약국 주인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처방전이 매출의 절반이 넘었는데, 지금은 인근 상가에서 철거 작업하는 인부들 파스가 제일 많이 팔린다”는 푸념도 곁들였다. 골목 군데군데 트럭이 서 있고 내부를 뜯는 철거 공사 현장이 흔하게 보인다. 명동은 철시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명동은 철시 중 19세기 말 명동성당이 들어서면서 중국대사관이 들어오고 청국인 거주지가 됐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주된 상업지역이 되면서 명동시대의 막이 열렸다. 일본인은 이곳에 혼마치(本町)란 이름을 붙였는데,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조선인 상권 명동일대는 일본인 상권이라는 암묵적인 선이 그어졌다. 명동이 본격적으로 커지고 시대의 중심이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피란에서 돌아와 명동 중심으로 금융과 상업지대가 자리 잡았다. 지금의 명동예술극장 자리에 있던 국립극장 인근에 문화예술인도 진을 치고 있었다. 명동의 황금시대가 시작됐다. 유네스코 회관 건너편 골목길 초입에 돌로 새긴 표석이 있다.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주점 터’ 예술인과 명동 이야기가 나올 때면 빠지지 않는 막걸릿집 은성이 있던 자리다.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하던 막걸릿집은 인심이 후해 누구라도 외상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걸리로 요기와 취기를 겸할 수 있었기에 세상에서 탈락하지 않으려 모진 애를 썼던 예술인들이 구김 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곳이다. 국내 최고 임대료를 자랑하는 매장도 손님의 발길이 없다. 은성을 거쳐간 인물과 당시의 사건은 수많은 후일담을 만들어냈다. 명동백작 이봉구를 중심으로 시인 김수영과 김관식 하며 박인환과 전혜린 등이 은성을 드나들었다. 이봉구의 별명인 명동백작은 문학과는 상관없이 박노식 주연의 활극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한동안 명동의 건달을 그린 액션영화가 줄을 이었다. 지금 명동파출소 옆 좁은 골목길 한편 지하에 명동백작이란 주점이 있고, 가파른 계단 너머 영화 <명동백작 명동에 나타나다>의 빛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은성뿐 아니라 명동 곳곳의 다방은 문인들이 글을 쓰거나 외상 커피를 마시며 죽치는 공간으로 유명했다. 대부분의 다방은 그들로부터 받지 못한 커피값이 쌓이고 밀려 문을 닫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현대문학 구성원들이 주로 진을 치던 문예살롱과 연극인 등이 드나들던 동방살롱 2곳이 유명했다. 그 밖에도 남대문로에서 국립극장을 거쳐 명동성당으로 이르는 긴 골목 주변에 있던 갈채, 모나리자 등이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김팔봉, 이봉구, 조연현, 조지훈, 천상병, 구상,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계용묵, 신석초, 오상원 등 유명 문인들을 골목과 다방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었다. 작가들은 골목을 명동 산맥이라 표현하고 다방은 토끼굴, 술집은 옹달샘이란 은어로 불렀다. 문화예술인들의 시대였던 50~60년대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교육방송(EBS) 제작 장편 드라마 <명동백작>은 그 시절 명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 정하연은 대학시절 명동을 드나들며 문학을 꿈꿨던 터라 생생히 당시 모습을 그렸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명동은 문학의 시대였다. 외국인 관광객 뿐 아니라 내국인의 발걸음도 끊겼다. 일본인이 들어서기 전 명동 일대가 중국인의 거리였던 흔적은 중국대사관과 한성 소학교에 남아 있다.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까지 중국대사관은 지금의 타이완, 자유중국으로 불렸던 중화민국 대사관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이 퇴장하면서 그 자리를 중국대사관이 차지했으나 자유중국의 흔적은 아직도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카페로 바뀐 고풍의 옛 화교 회관 건물 복판엔 아직도 자유중국을 상징하는 푸른 바탕 흰 태양의 청천백일 문양이 살아서 골목 넘어 중국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국민당 계열의 화교들이 돈을 모아 세운 도서관 건물은 유명 중국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어 미식가들의 순례지가 됐다. 그 아래 소학교 학생들에게 문구와 책을 파는 서점이 있다. 주인에게 근황을 묻자 “학생이 줄어 한류 상품 중심으로 바꿔봤는데 이젠 그나마도 안 될 일이다. 길이 열려야 살길도 생길 것 같다”라고 답한다. 책방 두곳 중 한곳은 아예 업종을 바꿨다. 그 옆 오향장육과 물만두로 이름난 중국집도 문을 닫았다. 대사관 앞 이름 높던 원조 중국요리 골목이 스산해졌다. 한성화교소학교 담을 따라 줄줄이 붙어 있던 노점은 말끔히 사라졌다. 국공내전 시절 산동성에서 건너왔다는 연로한 주인에게 엽차며 호랑이 연고 따위를 샀던 기억은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명동엔 화려한 상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동 길 사이사이에 샛골목이 숨어 있고 나름대로 명성을 쌓은 식당도 있다. 길 건너에서 이사와 명동에 터를 잡은 곰탕집은 문을 연 지 70년이 됐다 하나 여전히 유명하다. 그 앞으로 샛골목이 있는데 이곳엔 삼겹살을 두툼하게 썰어 끓인 김치찌갯집이 여럿 숨어 있다. 불황을 모를 듯 번성하던 모습은 가게 간판에 쌓인 먼지처럼 허망한 꼴이 됐다. 종업원에게 어떠냐 묻자 “근근이 문은 안 닫고 있는데, 한계가 온 것 같다”고 답했다. 은성이 있던 자리 윗길에도 골목 안 찌갯집들이 숨어 있다. 오징어나 해산물 등을 넣어 끓인 섞어찌개가 일품인 집이 여럿 있는데, 한가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명동교자 옆 사이 골목의 삼겹살집과 찌갯집은 점심시간에도 손님을 볼 수 없었다. “아예 사람이 안 보여요”라는 이야기가 실감 난다. 명동 전체 상권이 철시한 상태다. 길을 걷기 힘들 만큼 빽빽하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비단 중국과 일본, 동남아 각지에서 오던 관광객만 발이 끊긴 것이 아니라 국내 유람객도 자취를 감췄다. 명동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뒷골목에 철물과 잡화를 파는 오래된 가게가 있다. 그 안주인은 “아마도 명동이 생긴 이래 지금 같은 때는 없는 것 같다. 전쟁 때도 지금 보다 나았다고 한다”고 한숨을 쉰다. 명동성당 담을 따라 계성여고 뒷문이 있는 골목에 가톨릭 전진상회관이 있다. 명동은 문학의 시대가 끝난 후 70년대 정치의 소용돌이가 닥쳤는데, 전진상회관과 명동성당이 유신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중심지가 됐다. 함석헌은 만년까지 전진상회관에서 기독교 사상과 노자 등의 고전 강의를 했었다. 10·26사태 이후 삼엄한 계엄 치하 윤보선과 함석헌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 간선제에 반대했던 YWCA 회관 위장결혼식 사건은 명동이 또 한차례 세계의 이목을 끄는 계기가 됐다. 6월항쟁 기록 영상을 보면 명동 거리에 와이셔츠를 걷고 구호를 외치는 인근 직장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명동성당에서 살짝 비킨 샛골목 안에 지금은 떠난 향린교회가 있었다. 민주화 운동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명소였다. 민주화 열기가 높던 때 명동의 길목과 골목은 그 화로의 불길을 태우던 현장이 됐다. 향린교회 골목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80년대 젊은이들이 몰려 밤을 불태우던 ‘제3지대’ 등의 나이트클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명동 입구를 지키던 중앙극장도 오래전 폐업했다. 무엇을 해도 활황을 누리지 못했던 코스모스 백화점 자리에 쇼핑몰과 극장 체인이 들어왔다. 관광기념품 가게들이 특히 타격을 입었다. “전쟁 때도 지금보다 나았다” 전진상회관 뒷골목에는 오래된 흥미로운 가게들이 살아 있다. 골목 안 냉면집은 보기보다 오랜 연륜으로 건재하고, 식탁 서너개를 두고 라면과 백반을 파는 작은 밥집은 가게문 연 지 반백년은 넘었다고 한다. 근처 직장인들이 소리소문없이 드나드는 숨은 곳이라 힘겨운 시절에도 문을 열 여력이 남아 있었다.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곳은 아무래도 숙박시설인데, 한류 열풍이 불면서 상업용 건물을 작은 호텔로 바꾸는 일이 유행했다. 지금 그 호텔들은 문을 열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대형 호텔과 호텔 체인점들은 호캉스와 장기 이용권을 싼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보름권과 한달 숙박권은 인근 고시원만큼 싼 가격이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골목 깊숙한 곳에 오래된 맛집이 숨어 있다. 대연각 빌딩 뒤편으로 수십년 자리를 지켜온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있었다. 한류 덕분에 회생하는가 싶더니 음반보다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시절 저 가게를 언제까지 명동에서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명동성당 쪽 오래된 음반가게 ‘돌체’는 진즉 폐업을 했고 그후 들어온 가게들도 수없이 업종을 바꿨다가 이제는 빈 점포로 남아 있다. 얼마 전 명동 일대의 공실률이 60%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보도됐는데, 길가에 붙은 업소의 공실률은 그를 훌쩍 뛰어넘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질병 사태를 겪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관광객과 상관없이 칼국수 솜씨를 뽐내던 오래된 식당이며 콩나물국밥을 싸게 팔던 밥집도 함께 문을 닫았다. 다 같은 사정으로 명동이란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고난은 서민들의 설자리를 빼앗아갔다. 질병은 자연의 현상일 수 있지만 그 늪을 건널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길은 함께 찾아야 한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는 사실을 기억해 이 고난의 시기를 버티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골목 내시경

레이디경향(총 24 건 검색)

그 드라마 여기서 찍은 거였어? 한류 관광의 모든 것
2023. 02. 21 18:16 레저/여행|문화/생활
한류위키’ 가이드북에 실린 한류관광코스.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관광공사는 전 세계 한류 팬들을 위해 주요 한류 테마 관광지를 코스 형태로 소개하는 ‘한류관광 대표코스 51선’을 선정했다. 선정된 코스는 K팝, 드라마, 영화 촬영지 등 6개의 테마로, 화려한 영상미로 두 눈을 사로잡는 K팝 뮤직비디오 촬영지,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등 인기 드라마 촬영지, 영화 속에 나왔던 로케이션 투어 등 한류 팬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장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기 예능 촬영지와 을지로 포차 거리 등 한류 팬들이 즐길만한 체험을 소개하고 있다. 51선에 포함된 관광지의 세부 정보와 이미지는 공사의 한국관광 콘텐츠랩(conlab.visitkorea.or.kr)에서 확인 및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공사는 코스 중 엄선한 14개 코스는 가이드북인 <한류위키>로 제작했다. 개별 관광객들을 위한 이 가이드북은 서울·수도권 편(7코스)과 지역 편(7코스)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국문 가이드북은 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korean.visitkorea.or.kr)과 앱에서 e-북으로 볼 수 있으며, 영문, 일문, 중문(간체, 번체) 등 3개 언어의 가이드북은 3월 중순 무렵 공개될 예정이다. 김동일 한류콘텐츠실장은 “하늘길이 정상화되면서 한국을 찾는 한류 팬들이 증가하는 추세로 한류 콘텐츠가 실제 방한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코스 발굴과 홍보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2년만, 유럽 최대 규모 한류 행사 열린다
2022. 05. 11 10:08 문화/생활
한국관광공사 제공 코로나19 이후 2년여 만에 유럽에서 최대 규모의 한류행사가 열린다.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14일부터 15일 이틀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치방크 파크에서 ‘2022 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주 프랑크푸르트총영사관이 함께 하는 이번 행사는 ‘미리 체험하는 한국, 한국에서 만나요!’를 주제로 펼쳐진다. 행사는 한류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엑소(EXO) 카이, NCT Dream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이 출연하는 K팝 콘서트 ‘KPOP.FLEX’와 연계한 무대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있는 약 8만여 명의 한류 팬을 대상으로 한국 홍보를 위한 적극적인 부스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야외중앙무대에서는 한복패션쇼, 국내 넌버벌 공연, 비보잉 등 한국을 대표하는 퍼포먼스 및 소비자 참여 특별 이벤트를 선보인다. 특히 행사 첫날 선보이는 K팝 커버댄스 최종 결선 무대는 유럽 전역 200여 팀 간의 예선을 거쳐 선발된 4개 팀이 한국 왕복항공권을 두고 뜨거운 경쟁을 펼친다. 한국관광홍보관에서는 부산시, 인천시,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국내 6개 지자체와 여행사가 공동으로 참가하여 현장 한류팬을 대상으로 방한상품 집중 판촉에 나선다. 한류 콘텐츠 체험부스를 조성해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은 한국 드라마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등을 활용한 포토존을 운영하고, 퀴즈 이벤트 등을 통해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의 장도 마련한다. 이외에도 한국기업홍보관에서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CJ푸드, 삼양식품 등 국내 기관 및 식품, 화장품 기업들과 협업해 치킨, 라면 등을 시식하고, 뷰티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유진호 관광상품실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급성장한 OTT 시장에 힘입어 K콘텐츠 수출액이 최근 5년간 연평균 18.7% 증가했다”며 “이런 한류 신드롬의 열기가 코로나19 이후 실제 한국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한류관광 홍보 마케팅 활동에 전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코리아페스티벌
K팝보다 먼저···우리의 흥·가락 ‘사물놀이’ 세계에 한류 알리다
2020. 09. 08 08:03 문화/생활
차만태 난장컬쳐스 대표가 4일 오후 레이디경향과 만나 코로나팬데믹 시기에 평화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공연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사물놀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문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옛날부터 있던 것이 맞지만, 지금의 형식이 갖춰진 것은 비교적 근래인 1978년의 일이다. 사물놀이가 하나의 형식을 갖추는 데는 현재 한국 사물놀이의 대표 상징이 돼 있는 김덕수씨와 그의 동료였던 이종대·김용배·최태현씨의 활약이 큰 힘이 됐다. 남사당패의 후예들로 알려진 이들은 1970년대 대학가에 분 탈춤부흥운동에 부응해 과거의 풍물가락을 살리면서 현대화하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농촌에서 농부들 사이에 행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풍물’을 현대인들이 접근하기 편하게 바꾸자는 것. 이에 이들은 풍물을 대폭 축소해 가장 중요한 악기 4개만 추려내어 실내, 즉 극장으로 끌어들여 1978년 2월 첫 무대를 열었다. 이후 사물놀이는 한국음악의 새로운 장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모으며, K팝보다 먼저 세계에 한류를 알리기도 했다. 그런 사물놀이가 또 한번의 비상을 꿈꾼다. 브로드웨이 상설전시장 마련 등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향한 날갯짓이다. 그 중심에 선 차만태 난장컬쳐스 대표(65)를 만나 사물놀이의 내일에 대해 들었다. -난장컬쳐스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01년에 만들어진 전통문화벤처기업이다. 특히 ‘김덕수 사물놀이’의 공연과 브랜드화 등을 총괄하기 위해 기획된 기업이다. 지금이야 K팝, K푸드 등 우리나라도 문화강국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20년 전만 해도 문화 선진국은커녕 문화 중진국도 못 되는 수준이었다. 당시 나는 부동산 개발로 돈을 벌어 여러 벤처기업에 투자했는데, 그때 만들어진 것이 난장컬쳐스다. ―벤처 하면 무슨 특허나 기술이 먼저 떠오르는데, 문화벤처라고 하니까 좀 낯설다. △‘벤처’는 기업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모험이 필요하지만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참신한 사업이나 투자의 대상”을 의미한다. 당연히 문화도, 그중에 전통문화도 상품이 될 수 있고 투자의 대상 또한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나 뮤지컬 등 투자 대상이 많은데, 왜 하필 사물놀이에 투자를 하게 됐나. △사실 젊은 시절부터 연극·그림·뮤지컬 같은 문화 분야에 관심이 많아 대학로를 기웃거렸다. 30여 년 전 김영철씨가 출연하기도 한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도 나다. 그런데 김덕수씨의 사물놀이를 보고, 단번에 ‘이거다’ 싶었다. 문화상품으로 가치가 있겠다는 감이 왔다. 그래서 먼저 김덕수씨를 찾아가 당시 5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어 모 은행을 찾아가 투자도 받아냈다. ―그런데 한동안 난장컬쳐스를 떠나 있지 않았나. △나는 벤처투자가다. 궁극적으로 난장컬쳐스가 성장해야 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당연히 사물놀이를 잘 아는 사람들이 공연 등 운영을 맡는 것이 맞다. ―그러면 최근 난장컬쳐스 대표로 돌아온 까닭은 뭔가. △대표는 예전부터 대표였다. 다만 김덕수 사물놀이의 상품 가치를 더할 계획이 있어 운영 면에서 조금 나서는 것뿐이다. 공연 등은 당연히 김덕수씨를 중심으로 한 공연단이 이끌어 간다. ―김덕수 사물놀이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란…. △김덕수 사물놀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가 된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냥 문화로서 정점에 머물러 있다. 김덕수 사물놀이는 이제 산업이 돼야 한다. BTS도 ‘그냥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이 화려한 젊은이들’로 머물러 있으면 가치가 없다. 노래와 춤을 통해 재화를 만들어야 한다. BTS는 그것에 성공했다. 김덕수 사물놀이도 그래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말해 주듯이 앞으로 공연문화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잘하는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일은 해 나갈 생각인가. △기본적으로는 서울과 제주에 상설공연장을 만들 요량이다. 작은 소극장이 아니라 뮤지컬이나 오케스트라와의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한 대극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궁극의 목표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세게 곳곳에 김덕수 사물놀이 전용 극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덕수 사물놀이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그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만 1000개의 동호회가 있고, 미국의 유명 대학들에도 사물놀이 동아리가 있을 정도다. 사물놀이는 언어가 필요없는 공연이다. 신명나는 소리와 흥겨운 몸짓에 이끌려 누구와도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 사물놀이다. 세계화를 이루는 데 사물놀이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음악은 없다고 본다. 일본에 가부키가 있고 중국에 경극이 있다면, 한국에는 사물놀이가 있다는 소리가 나오게 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잖은 자금이 필요할 텐데, 재원 마련은 가능한가. △다방면으로 투자를 받을 것이어서 충분히 가능하다. 난장컬쳐스의 상장도 고려 중이다. 또 지자체와 손을 잡는 방법도 찾고 있다. ―지자체와 손을 잡는다는 얘기는…. △사물놀이 체험학습장과 교육장, 악기 공방 등을 두루 갖춘 ‘사물놀이원’을 지어 지역 관광과 경제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사물놀이는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배우고 있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공간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 많은 시·군 중에는 나날이 인구가 줄어 소멸될 위기를 맞은 곳이 많다. 만약 이들 지역에 사물놀이원이 들어서서 교육과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모이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교육과 체험은 교육자들이 일정 기간 머물러야 하는 만큼 호텔이 필요하고 식당도 있어야 한다. 그들이 여가를 보낼 공간도 필요하다. 자연스레 그 지역의 상권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물놀이에 쓰이는 악기나 의상 등은 모두 소모품이다. 이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어야 하고, 이를 판매하는 ‘가게’도 필요하다. 사물놀이로 하나의 ‘산업단지’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생각은 좋은데, 지자체가 비용을 모두 대기에는 부담이 되지 않겠나. △그래서 사물놀이진흥법이 제정되도록 오래전부터 애쓰고 있다.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적 지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콕 집어서 사물놀이를 진흥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풍물을 진흥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을 살려 오늘의 문화를 입히고 이를 세계로 수출하자는 일에 정부나 국민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난장컬쳐스가 지원해 세계사물놀이연맹을 발족한 계획이다. 사물놀이진흥법 추진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물놀이원 설립이든 사물놀이진흥법 제정이든, 이것들은 순전히 공적인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놀이를 아끼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연맹을 만들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꾸려 가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쉽겠나.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미 국내에는 전국에 탄탄한 조직이 있고, 김덕수 사물놀이가 워낙 유명해 기본적으로 당장이라도 세계 30여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연맹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우리 전통의 씨름을 전승하려는 진흥법이 제정돼 있고, 종주국은 중국이지만 한국이 강국인 바둑을 발전·보급하자는 진흥법도 마련돼 있다. 그런데 우리 전통의 것이며 우리가 가장 잘하는 우리의 음악을 진흥하자는 일을 가로막고 나설 사람은 없다고 본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도 있다. ―맞는 소리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디경향 같은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고 홍보도 해 주면,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얘기들이지만, 이것들은 시간이 걸릴 일들이고, 당장 준비하고 있는 일은 없나.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멈춰 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특히 사물놀이는 굳이 객석이 아니더라도 영상을 통해 흥을 전달할 수 있어 비대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내년 봄이면 대면공연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그동안 힘겨운 ‘코로나 터널’을 지나온 국민들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어 줄 야외공연도 준비 중이다. 그때도 많이 홍보해 주기 바란다. ―열심히 응원하겠다. 차만태 난장컬쳐스 대표.  |박민규 선임기자■차만태 대표는 누구? 차만태 난장컬쳐스 대표이사는 문화계보다는 부동산·건설 업계 쪽에서 더 유명하다. 리조트·전원주택 개발 전문업체 ㈜킹스필드의 회장이기도 하다. 차 회장은 평창에 국내 최초의 펜션단지 131가구를 건설·분양했으며 현재 강원도 횡성 치악산 끝자락에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전원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주천강변에 450m 규모의 옹벽을 치고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내년 봄 준공을 목표로 한다. 과거에는 국민생활체육 전국바둑연합회를 창립해 1·2대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이세돌 9단과 ‘이세돌 브랜드 사용권’ 계약을 체결하고 이세돌 브랜드 관리와 함께 자서전 발행, 이세돌 어린이바둑교육 프랜차이즈사업, 횡성바둑수련원 운영사업, 온라인 대국사이트 운영 등을 하기도 했다. 또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젊은 작가의 인큐베이팅과 큐레이팅에 나서고 있으며, 갤리러 사업 또한 준비 중이다.
김덕수풍물
일본 골프계의 한류 스타 ‘스마일 캔디’ 이보미 선수
2015. 07. 29 11:43 화제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아사히 신문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에 대한 여론 조사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 배용준, 김연아에 이어 조금은 낯선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누구지? 유심히 봤더니 일본 JLPGA에 진출한 프로골퍼 이보미 선수다. 그녀는 출중한 실력과 함께 미모, 친절한 팬 서비스로 ‘스마일 캔디’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일본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팬 서비스, 한류 스타에게 배웠다 일본에서 2015년도 전반기 시합을 모두 마친 이보미(27) 선수가 2주간의 휴식을 얻고 잠시 한국에 왔다. 전반기 마지막 대회였던 JLPGA 투어 어스 몬다민컵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니 화려한 귀국이다. 이 선수는 현재 일본에서 여성 골퍼 상금 랭킹 1위며 2014 일본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에서 올해의 골프선수상을 수상했고, 「골프 다이제스트」에서 일본 팬들이 선정한 여자 골프선수 인기 투표 1위를 차지했다. 이 선수가 해외 진출 선수 중 ‘현지화에 가장 성공한 골퍼’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녀의 일본 팬들은 자국 경기에 출전한 외국인에게 아낌없이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셈이다. 왜? 무엇이? 국적의 벽을 넘어 그녀에게 열광하게 하는 걸까? 한국에는 얼마나 자주 오나요? 일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합이 있어요. 시합을 마치고 나면 짧게 한국에 한 번씩 들어와서 쉬죠. 전반기 시합을 모두 끝낸 덕분에 2주간 한국 집에서 푹 쉴 수 있게 됐어요. 뭘 하고 지내나요? 처음으로 긴 휴가를 받았어요. 첫 일주일 동안은 한 번도 클럽을 잡지 않았어요. 골프를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에요. 길어봐야 3일 정도였거든요. 후반기 시합에 지치지 않도록 후회 없이 놀고 싶었죠. 그런데 일주일이 참 짧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렸어요. 그렇게 놀면서 체중이 늘거나 하지 않나요? 클럽만 잡지 않았을 뿐, 일본에서 개인 트레이너가 와주셔서 규칙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은 해야 돼요. 며칠만 쉬어도 근육이 풀어져버리거든요. 당장 8월에 대회가 있고, 9월에도 아주 중요한 대회가 있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게을리하면 체력이 달려서 안 돼요. 체력은 정신력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휴가 온 이보미 선수를 따라 일본에서 개인 트레이너가 왔다고요? 감사한 일이죠. 일본 에이전시에서 많이 신경을 써주세요. 원래 스포츠 에이전시가 아닌 다른 분야의 기업체인데 저를 영입하기 위해 에이전시 회사를 만들어주셨어요. 특히 재일교포 3세이신 회장님께서는 아버지처럼 잘해주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하셨는데, 일본에서 고칠 수 있는지 알아봐주시고 또 돌아가셨을 때는 직접 문상도 오셨어요. 진심으로 응원해주세요. 일본에 있으면 제가 인복이 참 많다는 걸 느껴요.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요? 겸손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저는 시합 중에는 골퍼, 그 외에는 평범한 이보미로 살고 싶어요. 운동선수가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나 자신을 과도하게 내세우면 보는 사람도 불편할 거라 생각해요. 운동할 때는 열심히 하고 평소에는 소탈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그 균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번에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여론 조사한 결과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으로도 뽑혔잖아요? 알고 있었어요? 저는 몰랐어요. 일본 미즈호 은행의 회장님과 라운딩을 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신문을 건네시는 거예요. 펴봤더니 그 기사더라고요. 그러시면서 “외국인이라고 기죽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자부심을 가져요”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사실은 그런 부담감이 있어요. ‘외국인인데 너무 잘 치면 이 사람들이 반감을 갖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 것이 아무래도 경기에 영향을 끼치지요. 하지만 많은 분들의 이런 응원 덕분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는 이곳에 한국 사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 골퍼로 온 거니까 최고의 성적과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팬 서비스도 굉장히 좋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그분들을 향해 웃어주는 게 다예요. 그분들은 돈을 지불하고 경기를 보러 오시는 거잖아요. 입장료 가격이 4일에 2만 엔이고 또 교통비도 따로 들여서 오실 텐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그런 팬 서비스를 가르쳐준 사람은 따로 있어요. 바로 YG 엔터테인먼트예요. YG 엔터테인먼트요? 제가 Mnet에서 방송된 ‘Who is Next’라는 서버이벌 프로그램에 나왔던 iKON의 래퍼 바비를 좋아하거든요. 일본에서 열린 YG 패밀리 콘서트에 갔는데 바비의 이름을 크게 불렀더니 저를 보고 웃어주는 거예요. 끝나고 사진도 찍어줬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 팬들에게도 똑같이 해주면 좋아하시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바비라면 갓 스무 살 된 친구 아닌가요?(웃음) 막내 동생뻘이죠(웃음).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제가 예전에 운동 하던 때도 생각나고요. 그러다 보니 팬이 됐네요. ‘박세리 키즈’로 우연히 시작한 골프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난 이보미 선수는 12세에 골프를 시작했다. 그녀 역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던 박세리에게 영향을 받은 ‘박세리 키즈’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부모님 몰래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있었단다. 학원비가 필요했던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에게 들켰다. 그때 “여자가 무슨 태권도냐”라며 마침 골프를 하는 옆집 친구를 보고 “운동하고 싶으면 차라리 골프를 배워라”라고 하신 한마디가 지금의 이보미 선수를 만들었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골프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소질보다는 그냥 열심히 했어요.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 없다”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골프가 재미었었나요? 그저 잘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18세 때는 엄마와 단둘이 수원으로 와서 생활했어요. 부모님의 관심이 모두 저에게만 쏠려 있으니 다른 자매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죠. 지금도 미안함이 커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국내에서도 상금 랭킹 1위를 했었고 아직 전반기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도 현재 1위잖아요.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더군다나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제가 실질적인 가장이 됐잖아요.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또 저 때문에 희생했던 가족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수원에 스크린 골프장을 차려드려서 엄마가 운영하고 있고요. 그 옆에서는 언니와 막내가 미용실을 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아버지가 계신 곳에 다녀왔다고요. 가족과 함께 다녀왔어요. 그리고 가평 펜션에서 조카들을 데리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작년에는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갑자기 밀려든 책임감과 중압감 때문에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도 컸고, 세금 문제나 금전 관리를 모두 아버지가 해주셨는데 갑자기 막막하고 무섭더라고요. 엄마나 다른 가족의 건강도 걱정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약속한 것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우선 상금 랭킹 1위 하는 것이 첫 번째 약속이고요. 두 번째 약속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유언으로도 “보미가 한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세계 랭킹으로 한국 대표를 뽑는다고 하니 나이가 좀 있는 제게는 다소 불리한 조건이지만 아버지 유언인 만큼 최선을 다해봐야지요. 한국 대표 선수 뽑는 것도 참 치열하겠네요. 한국 여자 골퍼들이 정말 강하죠?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왜 그런 걸까요? 한국 여자 선수들은 기본기가 좋아요. 우리나라는 워낙 어릴 때 시작하고 일단 정확한 스윙자세를 가르치잖아요. 외국이나 일본은 일단 세게 치고 나중에 선생님을 만나서 자세를 고쳐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손 감각이나 창의력이 좋은 소수의 선수들만이 살아남는 거예요. 골프에서 창의력이 좋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A 지점까지 공을 쳐야 해요. 한국 선수들은 모두 똑같이 배운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죠. 그런데 A 지점으로 공을 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다양하거든요. 외국 선수들은 그런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생각해내요. 그런 점이 부러워요. 골프는 4일간 혼자 하는 경기인 만큼 정신력도 중요할 텐데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죠. 더불어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하고요. 자기 샷을 믿으면 돼요. 하느님도 보이지 않지만 믿잖아요? 그런 것처럼 일어나지 않는 상황도 믿고 해야 하는 게 골프예요. 그렇긴 하나 근소한 점수 차이의 라이벌 선수가 “오늘 잘 쳤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신경 쓰이지 않나요? 신경이 쓰이지만 인식하면 제 게임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우승해야지, 상금 타야지’ 하고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극하면 결국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골프예요. 그것보다는 ‘한 홀 한 홀 좋은 샷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후회하지 않는 게임이 돼요. 골프 하기 좋은 성격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맞아요. 좀 단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유리할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려요. 1분 1초라도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정신력이잖아요. 일본, 제2의 꿈의 무대 이 선수는 일본 무대로 진출한 지 5년 차다. 올해의 목표는 일본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상금왕’이다. 전반기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릴 것이다. 톱클래스의 여성 골퍼들만이 기록한 JLPGA 20승 달성이 그녀의 가장 큰 목표다. 일본에서 컨디션이 좋던데 자신에게 여건이 좀 맞는 것 같나요?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곳이라서 처음에는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그런 규칙에도 익숙해져서 편하고 좋아요.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거니까 한편 이해가 가요. 그러면서 이곳에서의 매너도 배우게 되고요. 일본 어디에 살고 있나요? 작년까지는 시합 일정에 맞춰서 호텔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점점 짐이 불어나니까 집을 구해야겠더라고요. 고베에 맨션을 얻었는데 아주 편해요. 조용하고 바다와 산도 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에요. 10분만 걸어 나가면 시내라서 쇼핑하기에도 좋고요. 골퍼로서 일본의 시장 상황이나 시스템은 어떤가요? 코스도 깨끗하고 어프로칭이나 퍼팅 연습장 환경도 좋아요. 일본에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시합이 있으면 선수들 백을 모두 택배로 골프장으로 이동시켜줘요. 시합이 끝나면 연습을 시작하는 화요일에 연습장에서 받을 수 있게 하고요. 이게 참 편해요. 우리나라는 각자 가지고 다녀야 해서 차가 꼭 필요하거든요. 제일 궁금한 질문을 이제 물어보네요. 일본에 남자친구는 없어요? 없어요(웃음). 참고로 한국에도 없어요. 지금은 경기하기 바빠서 만나도 만나는 것이 아니니 서른이 넘으면 주변에서 좋은 분들을 소개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게다가 골프선수일 때 저를 만나면 인간 이보미로 보지 않으실 거 같아요. 골퍼 이보미로 과대 포장해서 보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런 분들에게는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불편하더라고요. 서른 넘어서 결혼을 하겠다면 곧 그때 선수 생활을 은퇴하겠다는 말인가요? 저는 제가 우승할 수 있을 때까지만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그 이후에는 과감하게 은퇴할 거예요. 워낙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고 30대에는 또 그때의 인생이 있지 않을까요?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꼭 골프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결혼 상대자의 국적은 상관없나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문화가 다르더라고요. 일본은 연인 사이라고 해도 사생활을 지켜야 한대요. 전화 통화도 하루에 한 통 이상 하면 실례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연인 사이인데! 저는 그렇게 눈치 보면서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가깝게는 스폰서 대회인 마스터즈CG에서 우승을 하고 싶고, 더불어 후반기에 메이저 대회가 3개나 있어서 잘하고 싶어요. 현재 일본에서 10승을 했는데 앞으로 10승만 더하면 KLPGA에서 평생 시드(토너먼트 방식의 경기에서 우수한 선수 팀끼리 처음부터 대전하게 되지 않도록 강자를 특정한 대전 위치에 배정하는 것)를 줘요. 지금까지 시드를 받은 프로는 1세대 골퍼이신 구옥희 프로님을 비롯해 박세리, 신지애, 전미정 프로님 정도예요. 저도 꼭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재찬 ■의상 협찬 / 르꼬끄 골프(02-2007-8583) ■헤어&메이크업 / 서일주, 강보라(파크뷰 칼라빈, 02-515-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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