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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786 건 검색)

‘탄핵’ 표결을 기다리며···‘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해병대, 장갑 끼고 과제 하는 학생
2024. 12. 07 19:48 사회|정치|정치|사회
... 참석해 임을 향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이홍근 기자 붉은색 해병대 모자를 눌러쓴 해병대 예비역들이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표결 중인 국회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12·3 비상계엄 사태]“국민의힘이 윤석열 탄핵 앞장서야” 해병대예비역연대 삭발로 촉구
2024. 12. 05 14:24 사회|정치|정치
... 피하려 한다면 누구보다 앞서 윤석열의 탄핵과 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데 대해 “국민의 뜻을...
탄핵, 국내외 영향윤석열 탄핵 정국
‘채 상병 사건’ 해병대 여단장·대대장 엇갈린 진술에…검찰, 대질조사한다
2024. 12. 03 21:11 사회
... 채 상병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유도윤 1차장검사)은 채 상병 사망 당시 현장 지휘관이던 박모 전 해병대 7여단장과 현장 대대장 중 선임이던 최진규 전 해병대 포11대대장에 대한 대질조사를 하기 위해...
김병주 “윤 대통령, 9월5일 평일에도 해병대서 골프했다는 제보”
2024. 11. 29 10:08 정치
.... 연합뉴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9일 “제보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5일에도 해병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은...

스포츠경향(총 227 건 검색)

[종합] 해병대, 우승 새 역사 쐈다···뜨거운 눈물 (강철부대W)
2024. 12. 18 07:56 연예
채널A ‘강철부대W’ ‘강철부대W’가 해병대의 우승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시청자들에게 벅찬 감동과 여운을 안기며 대장정을 마쳤다. 17일 방송된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는 특전사와 해병대의 결승 1,2차전이 펼쳐진 가운데, 사전 미션과 결승 1차전에서 뒤진 해병대가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거두면서 최종 우승 부대의 영광을 차지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해병대는 최종 우승 부대로 호명된 직후 환호 대신 먹먹한 눈물을 흘려, 지켜보는 이들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또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특전사를 비롯해, 시즌 최초 여군 특집인 ‘강철부대W’를 빛내줬던 707, 육군, 해군, 특임대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마지막 소회와 함께 도열 경례를 해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 방송분은 분당 최고 시청률 2.7%(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했으며,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이 집계하는 12월 2주 차 ‘비드라마 TV-OTT 검색 반응 TOP10’에서도 8위에 오르는 등 무려 12주 연속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또한 방송 직후 각종 포털사이트 및 유튜브 등에는 수천개가 넘는 응원 댓글들이 폭주해 무서운 팬덤을 실감케 했다. 시청자들은 “전 시즌 통틀어서 가장 재밌는 시즌이었습니다. 역대급 감동과 충격을 안긴 마지막 회였습니다”, “남군들 시즌 보다가 여군 보니 약해 보여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그 편견 너무나 미안합니다. 모든 대원들 존경합니다”, “해병대의 결승전 돌격작전은 맥아더 장군 인천상륙작전 이후 최고입니다!”, “해병대 정신이 우승한 것 같습니다. 특전사도 정말 잘 했습니다. 여군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참가한 대원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모든 군인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부대들의 끈기, 군인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등의 댓글로 ‘강철부대W’를 뜨겁게 응원했다. 앞서, 특전사가 결승 사전미션에서 승리해 ‘총상 제거권’과 ‘대항군 위치 정보’를 베네핏으로 얻은 가운데, 이날 양 부대는 3000톤 급 함정이 정박해있는 해안에 집결했다. 먼저, 결승 1차전 ‘함정 수색 구출 작전’이 진행됐고, 특전사와 해병대는 각각 양해주, 윤재인을 인질로 결정한 뒤 미션을 시작했다. 양 부대가 폭우와 파도가 거센 데다, 세 명이서 IBS를 운용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대결한 가운데, 해병대는 ‘풀 파워’ 패들링으로 치고 나가는가 하면, 급류까지 예상해 미리 짜둔 방향으로 선회해 “역시 해병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이수연은 “물 잡아!”라며 패들링 브레이크를 잡는 등 해상에서 전두 지휘하는 모습으로 ‘이장군’의 위엄을 발산했다. 특전사 역시 완벽한 호흡으로 패들링 해, 먼저 함정에 도착한 해병대와 거리 차를 바짝 좁혔다. 특히 특전사는 함정에서 CQB(대테러) 작전이 시작되자, 자신들의 무대가 펼쳐진 듯 프로답게 미션을 수행해 ‘스튜디오 MC 군단’ 김성주, 김희철, 김동현, 츄, 장은실의 소름을 유발했다. 결국 함정 위에서 역전에 성공한 특전사는 먼저 인질 양해주에게 도착해 ‘첩보 영상’을 획득했다. 해병대 역시 간발의 차로 인질 윤재인에게 도착해 ‘첩보 영상’을 가지고 함정에서 탈출했다. 이때, 양 부대 8명의 대원들이 모두 결승점까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윤재인이 우사인볼트 급 스피드로 치고 나가 짜릿한 쾌감을 안겼다. 모두가 결승점을 통과해 결승 1차전 미션이 종료된 뒤, 최영재 마스터는 “두 부대의 작전 완료 기록은 6초 차이고, 총상은 각각 2발 씩”이라며 특전사가 승리했음을 발표했다. 이에 해병대 대원들은 “2차전은 속도전으로 무조건 뛰어야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직후, 양 부대는 ‘첩보 영상’을 보면서 작전 회의에 들어갔고, 특전사는 베네핏인 ‘대항군 위치 정보’로 핵심 지역까지 모두 파악했다. 먼저 미션에 임한 특전사는 “전술적인 부분으로 총상을 최소화하자”는 전략을 내세워 시작부터 차분하게 전진해나갔다. 또한 특전사는 베네핏을 토대로 핵심 지역인 제어실을 손쉽게 ‘클리어’했고, ‘대항군 보스’로 출격한 ‘강철부대’ 1호 저격수 HID 이동규와 맞붙었을 때도 침착하게 제거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다음으로, 100kg 살상 무기를 광차에 실은 특전사는 1톤 광차를 밀며 갱구 밖으로 나갔는데, 이때 ‘대항군 보스’ HID 박지윤이 가세한 대항군이 기습 총공세를 펼쳐 위기를 맞았다. 양해주는 즉각 광차에 몸을 숨겨가며 저격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대항군 보스’를 제압했다. 그 길로 결승점까지 전력 질주한 특전사는 부대 깃발을 뽑으며 결승 2차전을 마무리했다. 뒤이어 미션에 돌입한 해병대는 “무조건 돌격해 대항군을 제압하자”는 전략으로 초반부터 미친 ‘속도전’을 펼쳤다. 이를 본 스튜디오 MC 김희철은 “너무 내 스타일!”이라며 ‘엄지 척’을 했고, 순식간에 제어실에 도착한 해병대는 좁은 문 틈으로 사격해 대항군을 제압하는 영리함도 보여줬다. 또한, 해병대는 ‘대항군 보스’ 이동규를 제거한 뒤, 100kg 살상 무기를 적재해 광차를 밀며 갱구를 탈출했다. 이때 윤재인은 대항군이 쏟아져 나온 것을 알고도, “그냥 가!”라며 계속 밀어붙여 ‘스튜디오 MC군단’의 도파민을 폭발시켰고, 이수연은 ‘대항군 보스’ 박지윤이 몸을 숨긴 차량으로 돌격하는 놀라운 기개로 미션을 화끈하게 끝냈다. 양 부대가 미션을 마치자, 최영재 마스터를 비롯해 모든 부대가 한 자리에 집결했다.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최영재 마스터는 “해병대가 4분이 넘는 차이로 특전사를 누르고 최종 우승했다”고 발표했다. ‘강철부대’ 시즌 사상 최초로 해병대가 우승을 거뒀다는 소식에 ‘해병대 출신’ MC 김동현은 “대박이다!”라며 울컥했고, 해병대 대원들은 환호 대신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특히 어깨부상으로 남모를 고충을 겪었던 윤재인은 “저희 ‘강철부대W’ 24인은 부대의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단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는 소감을 전해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준우승을 차지한 특전사 김지은 팀장 역시, “다사다난 했다. 훌륭한 대원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덤덤히 밝혔고, 특전사 대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절도 넘치는 도열 경례로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이에 MC 김성주는 “대한민국 여군의 강인함과 포기하지 않는 군인정신을 보여줘서 감사하다”면서 존경의 경례를 올리며 안방 시청자들에게도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감동과 반전 가득한 우승으로 ‘강철부대’의 역사를 새롭게 쓴 해병대의 후일담이 궁금해지는 가운데, 지난 3개월간 안방 시청자들을 웃고 울린 ‘강철부대W’ 여섯 부대의 못다 한 이야기와 이들의 다양한 매력은 24일(밤) 밤 10시 방송되는 강철부대W-전우회’에서 만날 수 있다.
특전사 vs 해병대, 오늘 최후의 일전···쏟아진 눈물 (강철부대W)
2024. 12. 17 08:55 연예
채널A ‘강철부대W’ ‘강철부대W’ 특전사와 해병대가 베일에 싸인 ‘대항군 보스’의 습격까지 도사리고 있는 ‘최후의 전투’에 나선다. 17일(오늘) 오후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는 특전사와 해병대의 ‘최후의 전투’인 결승 2차전 ‘대량 살상 무기 탈환전’이 펼쳐져 시청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든다. 이날 특전사와 해병대는 해상 미션으로 치러진 결승 1차전 ‘함정 수색 구출 작전’을 마무리한 뒤 재집결한다. 이때 최영재 마스터는 두 부대의 결승 1차전 기록을 발표한 뒤, “‘강철부대W’의 최종 미션은 ‘대량 살상 무기 탈환전’”이라며 결승 2차전의 작전명을 알린다. 직후, 작전 회의에 돌입한 특전사는 앞서 사전 미션을 통해 획득한 베네핏을 토대로 “전술적인 부분으로 총상을 최소화 하자”는 전략을 짜고, 해병대는 “빠르게 돌격해서 대항군을 제거하자”고 180도 다른 전략을 내세운다. 드디어, 특전사가 먼저 ‘강철부대W’ 최종 결승 미션에 돌입한다. 특전사는 숨 쉴 틈 없는 위험이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빠르고 침착하게 대항군을 제거하며 나아간다. 그러던 중, 핵심 포인트에서 ‘대항군 보스’가 기습 공격을 하는데, 대항군 보스의 정체를 확인한 ‘스튜디오 MC군단’은 뜻밖의 반가움을 표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반면, ‘저격수’ 양해주는 “대항군 보스의 사격술이 너무 좋아서 힘들다”고 토로하는데, 대항군 보스와 맞선 특전사가 어떻게 위기를 넘길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전사에 이어 해병대도 마지막 결승 미션을 수행한다. ‘상륙 돌격’이 주특기인 부대인 만큼 이들은 역대급 ‘속도전’을 시도해 특전사와는 완전히 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해병대 출신’ MC 김동현마저 “잠깐만요!”라며 당황하는 상황이 속출하는 가운데, 해병대는 마지막 구간에서 철로에 놓인 광차를 함께 밀면서 “밀어! 끝까지 밀어!”라고 악바리 근성을 내뿜는다. 우승을 향한 진정성으로, 온 사력을 다한 특전사와 해병대 중, 과연 누가 최종 승리 부대가 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미션 종료 후 ‘강철부대W’를 빛낸 여섯 부대(특전사, 해병대, 707, 육군, 해군, 특임대)는 모두 한 자리에 집결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 최영재 마스터는 결승 2차전의 기록을 발표하면서 최종 우승 부대를 호명한다. 이후 우승 부대의 소감을 필두로, 나머지 부대들도 차례로 소회를 차례로 밝히면서 ‘스튜디오 MC 군단’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과연 특전사와 해병대 중 최종 우승을 차지할 부대가 누구일지, 그리고 다시 모인 여섯 부대들의 마지막 소감은 17일(오늘) 오후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철부대W’ 특전사vs해병대, 최강 여군 차지할 마지막 전투
2024. 12. 16 15:36 연예
채널A ‘강철부대W’ ‘강철부대W’ 최종 우승을 향한 특전사와 해병대의 마지막 전투가 펼쳐진다. 17일 오후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는 결승 1차전 ‘함정 수색 구출 작전’에서 맞붙은 특전사와 해병대가 180도 다른 전략으로 격전을 벌인다. 이날 특전사와 해병대는 거센 비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궂은 날씨 속, 무려 3천톤 급의 거대한 함정이 정박돼 있는 해안에 집결한다. 최영재 마스터는 “결승 1차전의 작전명은 ‘함정 수색 구출 작전’”이라고 발표하고, 양 부대는 전략 회의를 거쳐 미션에 돌입한다. 그런데, ‘강철부대’ 사상 최초로 각 부대의 IBS에 세 명씩만 탑승해 패들링 하는 모습을 보여 ‘스튜디오 MC군단’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 명의 대원들은 균형이 맞지 않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거친 파도를 이겨내면서 바다를 가로지른다. 특히 해병대는 “해상에서 압도하겠다”는 전략대로 IBS에서 촘촘하고 계획적인 수행력을 선보여 놀라움을 안긴다. 그러던 중, 이수연 대원은 긴급하게 “물 잡아!”라고 외치고, 이후 충격적인 전략을 구사해 ‘스튜디오 MC군단’을 소름 돋게 만든다. 반면, 특전사는 “함정에서 신속하게 (대항군을) 제압하겠다”는 전략에 따라 함정 내에서 펼쳐지는 ‘CQB(대테러) 작전’에 힘을 쏟는다. 함정 위에서도 막상막하의 승부가 계속되고, 급기야 양 부대의 여덟 대원이 결승점을 앞두고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펼쳐져 ‘MC군단’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그러던 중, 한 대원이 모터를 단 듯 앞으로 치고 나오고, 이를 본 MC 김희철은 “왜 저렇게 빨라?”라며 충격을 금치 못한다. 김동현 역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깜놀’하고, 장은실은 “덱스 아니야?”라고 감탄한다. ‘MC군단’을 단체로 경악케 한 한 ‘우사인 볼트’급 달리기 실력의 주인공이 누구일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지난 10일 방송된 ‘강철부대W’는 분당 최고 시청률 3.3%(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전국)를 기록하며 탄탄한 인기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전사와 해병대의 결승 1,2차전 현장과, 최강의 여군 타이틀을 차지할 최종 우승 부대의 정체는 17일 오후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병대vs특전사가 바다에서 붙었다, 비바람 투혼(강철부대W)
2024. 12. 15 16:30 연예
채널A ‘강철부대W’ ‘강철부대W’ 특전사와 해병대가 강력한 비바람과 파도를 뚫고 결승 1차전에 돌입한다. 17일(화) 밤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는 앞서 결승전 사전 미션에서 강력한 베네핏 2개를 모두 획득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특전사와, ‘강철부대’ 전 시즌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새로운 역사를 쓴 해병대가 최강의 타이틀을 놓고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 현장이 공개된다. 이날 특전사와 해병대는 부대 별로 차를 타고 결승전 미션 장소로 향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특전사 정유리는 “(우리가 베네핏을 획득했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라며 입을 열고, 김지은 팀장은 “안도하지 말고, 이건(베네핏) ‘킵’해두자”라고 결의를 다진다. 우희준과 양해주는 “베네핏이 없는 것처럼 집중해서 임할 것”이라며, 역대급 베네핏인 ‘총상 제거권’과 ‘대항군 위치 정보’ 영상 획득에도 자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해병대는 사전 미션의 패배로 무거운 침묵을 지킨다. 이에 스튜디오 MC 김동현은 “해병대가 결승까지 온 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다”라고 같은 해병대 출신으로서 따뜻하게 격려한다. 그러던 중, 해병대는 미션 장소가 바닷가임을 알게 되자 조금씩 미소를 되찾는다. 해병대 박민희 팀장은 “바닷가에 온 거 보니까 IBS 미션을 할 것 같은데?”라며 활기를 띠고, 이수연은 “만약 IBS가 나온다면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의욕을 내뿜는다. 해병대가 다시 한 번 불꽃 전의를 드러낸 가운데, 양 부대가 도착한 미션 장소는 무려 3천톤 급의 거대한 함정이 정박해 있는 바닷가여서 ‘스튜디오 MC군단’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김희철과 츄는 동시에 “스케일이 엄청나다”라며 ‘동공확장’을 일으키고, 미션 장소에서 양 부대를 맞이한 최영재 마스터는 곧장 최종 결승 미션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최종 결승은 1차전, 2차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먼저, 1차전의 작전명은 ‘함정 수색 구출 작전’이다”라고 발표한다. 이에 두 부대는 놀라워하면서도 신중하게 전략 회의에 돌입한다. 드디어 거친 비바람과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결승 1차전이 시작된다. 대결에 앞서 해병대 이수연은 “해상 작전은 해병대 아니냐. 반드시 이기겠다”라고 외치고, 이에 MC 김희철은 “해병대가 ‘강철부대W’에서 IBS 미션을 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라 기대된다”며 응원한다. 특전사 우희준 역시 이에 질세라 “저희가 육지나 해상 모두 강하다는 걸 보여드리겠다”며 선전포고한다. 과연 특전사와 해병대의 결승 1차전 ‘함정 수색 구출 작전’에서 어떤 부대가 승리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한편 지난 10일 방송된 ‘강철부대W’는 분당 최고 시청률 3.3%(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전국)를 기록하며 탄탄한 인기를 과시했으며,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이 집계하는 펀덱스 차트(12월 10일 발표) ‘TV 비드라마 화제성’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TV-OTT 비드라마 화제성’에서 3위, ‘TV 통합 화제성’에서 6위, ‘TV-OTT 통합 화제성’에서 10위를 휩쓸었다. 특전사와 해병대의 결승 1, 2차전 현장과 이를 종합한 최종 우승 부대의 정체는 17일(화) 밤 10시 방송하는 채널A ‘강철부대W’ 12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간경향(총 4 건 검색)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원칙·소신 지킨 사람이 승리해야”(2024. 10. 29 10:51)
2024. 10. 29 10:51 사회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가운데)이 10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항명 혐의로 재판 중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원칙과 소신을 지킨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는 사건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항명 재판 9차 공판 직전 기자회견에서 변호인인 정구승 변호사가 대독한 메시지에서 “작게는 박정훈 개인과 해병대 수사단의 명예와 인생이 걸린 사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령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자리에서 소신과 원칙을 지킨 정의로운 사람이 승리하는 모습을, 그리고 당장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원칙과 법령을 저버린 사람들이 처벌받는 모습을 통해 이 사회에 제2의, 제3의 박정훈이 나와 대한민국이 조금 더 정의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며칠 전 박 대령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이같이 전했다. 박 대령은 기자회견에 참석했지만 공판을 앞둔 피고인 신분이라며 발언하지 않았다. 박 대령은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결과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상관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 변호사는 “이미 법정 및 청문회에서 적법한 명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충분히 소명됐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오늘 출석하는 3명의) 증인에 대한 신문 이후 변호인단은 이번 공판을 끝으로 변론을 종결해달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개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본 항명 사건에서 (박 대령에 대한) 무죄 판결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의 외압과 그 이후 벌어진 수많은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까지 이루어져야 원칙과 소신을 지킨 박정훈 대령 및 해병대 수사단의 명예가 진정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훈 대령 뒷배,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2024. 01. 12 16:15)
2024. 01. 12 16:15 사회
상명하복보다 정의와 자유가 우선…예비역까지 “진상규명” 촉구 해병대 예비역들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 부근에서 해병대 군가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전날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출발해 국방부청사까지 50㎞를 행군했다. 행군 도중 시민들로부터 메모지에 지지 서명을 받아 채 해병과 박정훈 대령의 이름을 쓴 펼침막을 만들었다. 김창길기자 이런 전개가 또 있을까. 해병대 장병의 사망 사고가 벌어졌고, 수사책임자는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려 했다. 일단 사건이 있으면 덮기 급급하던 군에서는 못 보던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수사책임자가 항명죄로 입건되자 그 부하들이 직을 걸고 상관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급기야 전역한 예비역 해병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엔 지난해 전역한 MZ세대 해병 장교도 있고, 28년 전 3개월간 수사책임자와 동고동락한 동기들도 있으며, 군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월남전 참전 노병도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름은 해병뿐이다. 조사를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는데도, 그 반대편에 선 예비역의 대오는 흔들림이 없다. “진상규명”이라는 요구 아래 사람들을 모으고, 집회 등 행사를 기획하고, 1박2일 행군에 나서는 일은 생업을 가진 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비역 해병은 “역시 해병대라는 말을 듣고 싶다(905기 해병 안신현)”고 했다. 세대도, 정치색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 해병이란,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티셔츠를 입은 예비역 해병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세훈 기자 “저는 사실 해병대 정신 때문이 아니에요.” 해병대 1158기 정원철 해병은 지난해 8월 중순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그는 전역 후 전우회 활동을 하거나 ‘해부심(해병대라는 자부심)’을 부리던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병대 예비역들 모여 있으면 서로 ‘내가 더 힘들었다’ 자랑하는데 내가 당한 악습이 무슨 자랑거리예요. 북한을 덜덜 떨게 하는 게 멋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오픈채팅방을 만든 건 채 상병 때문이다. 정 해병은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수차례 시험관 시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채 상병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는 “우리 집에 대입해 봤는데, 제가 없다면 우리 집도 초상집이죠. 그 마음이 컸어요”라고 했다. 해병대 예비역을 대표하는 공식단체 해병대전우회가 지난해 8월 낸 성명이 행동에 나서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채수근 상병의 사고를 조사하던 박정훈 대령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이첩했다가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됐다. 국방부 장관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넘기겠다는 내용이 담긴 박 대령의 수사보고서에 사인했다가, 이틀날 돌연 이를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장관보다도 윗선의 수사 외압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해병대전우회는 “외부개입 없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군이 명확한 결과를 도출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점잖은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을 예비역 해병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전우회 홈페이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관망하는 제 3자의 입장문처럼 보인다” “해병대 전 가족들이 분개하고 있는 게 안보이느냐”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정 해병은 “전우회가 밖에 나가서는 봉사활동도 참 많이 하는 가장인데 집 안에 제 자식은 안돌본다”고 느꼈다. 해병대 정신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얼굴도 모르는 채 상병의 죽음도, 개인적 연이 없는 박 대령의 고난도 제 가족의 일처럼 바라봤다. 정원철 해병이 지난 1월 2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채 상병에 대한 참배를 요구했을 때, 최병태 해병(76)도 그 곁에 있었다. 그사이 정 해병이 개설한 오픈채팅방은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라는 이름의 단체가 됐다. 600여명의 해병이 가입했다. 해병대 부사관 78기로 전역한 지 반세기가 다 돼가는 최 해병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인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최 해병은 채 상병의 생일이던 이날 가게 문을 닫고 대전을 찾았다. 그는 “우리 후배가 억울하게 사망한 일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날 정원철 해병의 참배 요구에 한동훈 위원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 해병은 “한 위원장이 그날 거기 오는 줄도 몰랐다. 기왕 왔으면 몇 발짝만 가면 되는데 못 들은 체하고 가더라. 채 해병 사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최 해병은 1970년대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병돼 분대장으로서 대원들과 몇차례 전투를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하를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대원 잘못도 책임지는 게 해병 지휘관이다. 아랫사람 책임으로 미룬다면 지휘관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번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에는 채 상병 소속 부대의 최고 책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이 있다. 박 대령은 당초 임 사단장 등 지휘관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있다고 봤다. 그를 보직해임하고 이 사건을 재조사한 국방부는 그러나 임 사단장의 이름을 빼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을 적시한 수사기록을 경찰에 넘겼다. 외압이 있었다면, 그 목적은 ‘임성근 구하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에 입건된 대대장은 채 상병 사고의 원인인 수중수색이 임 사단장의 지시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임 사단장은 ‘수중수색 중인 걸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해병 장교로 전역한 20대 A해병은 임성근 당시 1사단장 휘하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해병대 1사단이 경북 예천의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경북 예천에는 육군 부대가 이미 주둔하고 있는 데다, 해병대 1사단이 있는 포항에서 예천까지의 거리도 그리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관은 ‘지난해 1사단이 성공적으로 작전을 했기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대민지원을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2022년 태풍으로 인해 포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하자, 해병대 1사단은 상륙장갑차를 투입해 성공적으로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상륙장갑차가 포항에서 예천까지 이동했지만, 급류로 인해 작전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A 해병은 “사단장 지시 없이 부대가 타 도시로 이동해서 대민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대대장들 잘못도 있겠지만 부대가 예천에 투입되게 한 사단장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해 9월 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박 대령의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들도 이날 동행해 박 대령을 응원했다. 연합뉴스 해병대는 군기가 강한 부대다. 전역 후에도 기수로 선후배를 가린다. 군기의 핵심을 상명하복이라 할 때, 박 대령은 상부 지시를 불이행한 군인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해병들은 하나 같이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를 얘기했다. 이 문구는 금색 닻 위에 은빛 독수리가 앉아 있는 해병대 마크에도 담긴 문구로, 해병대가 존재하는 목적을 의미한다. 정원철 해병은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구전되는 부마항쟁 진압작전 이야기를 꺼냈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시위진압을 위해 부산에 투입된 박구일 해병대 7연대장은 대원들에게 ‘시민들이 때려도 맞아라. 총기만 빼앗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 해병은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지시 불이행이거든요. 그렇지만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라는 해병대 정신에 부합하는 거죠. 잘못된 지시는 따르지 않는 게 상식이죠”라고 했다. 김태성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회장(50)은 “윗사람의 잘못을 덮으라는 명령을 따르라는 건 해병대 정신이 아니다. 해병대 정신은 정의와 자유를 위한 정신이지, 맹목적 충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대령과는 해병대 사관 동기인 김태성 회장은 해병대 예비역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도록 가슴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지난해 8월11일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할 때 동행해 우산을 받쳐준 것을 시작으로 이 일에 발을 들였다. 이후 동기들과 함께 성명서를 내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박정훈 대령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군사법정에 출석할 때는 동기들과 함께 찾아가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고, 지난해 11월에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박2일간 50km를 행군했다. 박 대령과는 별 친분도 없었다. 1996년 3개월간 훈련을 같이 받은게 인연의 전부다. 그 스스로 말하듯 처음엔 단순히 “오지랖”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속 밝혀지는 사실관계는 박 대령이 잘못한게 없다는 확신을 줬다. 박 대령 휘하의 중앙수사대장(중령), 1광역수사대장(중령), 수사지도관(준위) 등은 모두 군검찰 조사에서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김태성 회장은 “잘못되면 군생활이 끝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증언을 했다. 자기 목을 건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3%가 나왔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 상식선을 넘어서 있기에 국민들이 화가 난 것이다”라고 했다. 전국연대에서 각종 행사의 물품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905기 안신현 해병(44)은 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기 전에 채 상병 사건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되길 원한다. 군 장병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회사일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전국연대 집행부 회의를 이어가야 하는 그로서는 “얼른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도 있다. 그는 “해병대의 명예가 무너져 가는 게 싫어 나서기도 했지만, 제 자식이 가야하는 군대일 수 있다는 생각도 컸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태성 회장은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오랫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예정이다. 올해에는 해병대 2사단이 있는 김포 애기봉에서 출발해 대전 현충원과 예천 사고 지점을 거쳐 포항까지 가는 행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1박2일 행군을 진행한다면, 약 2년만에 포항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예비역 해병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의 폭도 넓힐 계획이다. 그는 “해병대의 모토는 ‘안 되면 될 때까지’다. 전시에 총알이 빗발치는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대는 무모한 도전이 그 근간에 깔려 있다. 이 사건이 올바르게 끝날 때까지 행군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동기들에게 연신 미안해하는 박정훈 대령에게 김태성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다소 오글거리고 촌스러울 수 있지만, 예비역 해병들을 움직인 것은 이런 마음일 수도 있다. “너만 해병이냐, 나도 해병이다.”
특집
[오늘을 생각한다]해병대의 몫(2023. 10. 06 11:05)
2023. 10. 06 11:05 오피니언
7월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던 병사가 있다. 한참을 떠내려가던 그는 가까스로 물에서 건져지자마자 강둑을 따라 하류로 뛰었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전우를 찾아야겠다는 급한 마음. 사고 이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남긴 첫 마디는 그랬다. “엄마, 내가 수근이를 못 구했어.” 사고가 발생한 것도, 끝내 동료를 잃은 것도 그가 감당할 몫이 아니지만 자꾸 몫을 찾아 헤맨다. 사고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물에 빠졌던 부대원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예천에서 채 상병이 실종됐을 때도 인근에서 수색 작업을 시찰 중이던 사단장은 사고 현장에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부하들이 까닭 없이 만난 생사의 갈림길에 자기 몫은 없다고 여긴 것일까. 혹여나 그 자리에 서면 부정할 수 없는 몫이 생길까 두려웠던 것일까. 사고가 발생한 것도, 끝내 부하를 잃은 것도 지휘관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여전히 사단장 자리를 지키고 앉은 그는 자꾸 몫을 피해 숨는다. 박정훈 대령에게 항명죄를 덮어씌워 요란스레 수사를 시작한 지도 한 달 반이 지났다. 수사하는 사람도 한평생을 군인으로 산 박 대령이 징역을 살고 연금수급권도 날아갈 항명죄를 범할 동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아마 알면서도 얘기를 못 하는 것일 터다. 부당한 수사개입의 공범이 되길 거부한 것. 그 선택이 상관인 해병대 사령관과 부하들을 모두 살렸다. 그렇게 그는 자기 몫의 안위를 버리고, 자기 몫의 책임을 지켰다. 며칠 전엔 사령관이 항명죄 수사 개시 직후 박 대령 휘하의 중앙수사대장과 나눈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사령관은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며 부하의 무고함을 인정하면서 “나중엔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며 겪게 될 고초도 예견한다.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임 사단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민간에 이첩하는 것을 중단하라 지시했고, 부적절한 지시로 인해 부하는 곤경에 처하고 자신은 권력의 노여움을 비껴갈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기 몫의 안위를 지키고, 자기 몫의 책임은 버렸다. 9월 23일, 서울시청광장에서 해병대 한국전쟁 서울수복기념행사가 열렸다. 해병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례행사다. 그 자리에 사령관은 검은 옷을 빼입은 경호원들을 잔뜩 대동하고 나타났다. 같은 날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선 예비역 해병대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박 대령의 복직과 채 상병 사망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곳엔 박 대령, 채 상병과의 공통점이 ‘해병대’뿐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다들 저마다의 몫을 맴돌며 산다. 부끄러운 삶과 부끄러움을 걱정하는 삶,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을 생각한다
[사회]해병대캠프 참사 ‘대책 불감증’(2013. 12. 17 16:07)
2013. 12. 17 16:07 사회
ㆍ유가족이 1인시위에 나선 까닭, “책임자들 빠져나가고 하청업체만 처벌” 폭설이 내리던 12월 12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 한 여인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옷을 대여섯겹 껴입은 채로 마스크까지 썼다. 바람이 심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담긴 팻말이 쓰러지지 않게 간신히 붙든 상태로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청와대 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 5명이 숨진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를 언급하며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유족들이었다. 지난 12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태안 해병대 캠프 유가족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백철 기자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유족 대표 이후식씨(48)·ㄱ씨(47) 부부와 이상민씨(53)·ㄴ씨(47) 부부를 만났다. 이상민씨는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손에서 약봉지를 놓지 못했다. 약이 없으면 제대로 잠이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지난 12월 3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 전날 검찰은 4개월여의 수사를 마치고 해병대 캠프 관련자들에게 1년에서 5년 사이의 금고형을 구형했다. 일부 언론은 업무상 과실치사의 법정 최고형이 5년이라는 점을 들어 “검찰이 최고 형량으로 구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허탈했다. 해병대 캠프 업체에 하청을 준 유스호스텔 대표 오모씨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사고 현장검증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검찰은 이미 피의자들이 혐의를 인정한 상황에서 굳이 현장을 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생업 접고 청와대 사랑채로 출퇴근 검찰은 해당 유스호스텔의 실질적 주인인 H기업에 대해서도 수사하지 않았다. 해병대 캠프 운영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태안군, 충남교육청, 해경 중 그 누구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참사 유족들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과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이 역시 5개월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3일부터 유족들은 무기한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로 하고 청와대 앞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충남 공주시에서 첫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서울 효자동에 위치한 청와대 사랑채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1인 시위를 진행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족들의 일상이 됐다. 이상민씨 가족은 아예 자가 주택을 팔고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생업을 접고 청와대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 이사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겠다는 의지였다. ㄴ씨는 “어차피 우리 아이들을 나라에서 데려간 거잖아요. 그럴 바에야 우리 부모들도 다 데려가라, 이런 각오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1인 시위에 참여하는 유족들은 숨진 학생들의 부모들이다. 이후식씨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한 달여쯤, 이씨의 부친이 갑자기 쓰러졌다.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잃은 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씨의 아들 고 이병학군은 집안에서 촉망받는 아이었다. 장손이었던 이군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너는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씨가 말했다. “그렇게 아끼던 손자한테 사고가 나서인지 아버님께서 계속 식사도 못하시다가 쓰러지신 거죠. 일주일 정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시다가 겨우 건강을 되찾으셨어요. 하지만 지금 아버님의 모습은 사고 전의 반도 안 될 정도로 몰라보게 변하셨어요. 아버님만 생각하면 또 제 가슴이 답답합니다….” 공주사대부고는 전교생의 절반을 전국의 중학교에서 선발하고, 나머지 절반은 인근 중학교에서 뽑는다. 그렇게 모인 학생들이 하루종일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경쟁은 치열하고 부모와 함께할 시간은 적은 셈이다. 고 이준형군의 모친 ㄴ씨는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제 아들도 그렇고 다들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놀지 못하고 자라서 공주사대부고로 진학을 했어요. 여기가 기숙사 학교다 보니 부모와 보낼 시간도 거의 없고, 방학 때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밥 한끼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는데….” 이후식씨와 유족들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직접 현장을 다녔다. 검찰이 가지 않은 사고현장도 직접 살펴보고, 기소된 유스호스텔 대표 뒤에 H기업이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인권문제로 봐달라” 유족들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전지검 서산지청도 방문했다. 유족들은 “교관들의 행위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볼 순 없느냐고 물었지만 부정적인 답변만 받았다”고 전했다. 시간만 지나고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자 유족들은 돈을 모아 지역의 유명 변호사를 섭외하려고도 시도했다. 대검과 교육부를 찾아 정확한 진실을 규명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청와대 앞 사랑채였다. 지난 7월 19일 한 공주사대부고 학생이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씨와 유족들이 정부 기관의 무관심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보상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이씨는 “이 사건은 인권문제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사지로 내몰린 것만큼 인권이 유린된 일이 없죠. 철저한 수사도 없이 실질적 책임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현재 태안 해병대 참사 유족들은 “사설 해병대 캠프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식씨는 확실한 자격을 갖춘 해병대 캠프만 유지가 된다면 해병대 캠프 자체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갖춘 교관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사건 당일에는 다른 캠프에 나가 있었다”며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사설 해병대 캠프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는 해병대 캠프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애초에 군대 갈 나이가 아닌 학생들에게 군대를 체험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식 창의적 교육과 거리가 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가 학생일 때는 교련과목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또래들과의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꼭 군대식 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 교육부에선 문화유적 답사 등 다른 여러 가지 창의적인 캠프는 생각하지 못할까요.” ㄴ씨의 남편 이상민씨는 해병대 캠프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심어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 전국적으로 고등학교 해병대 캠프를 실시하고 있는데, 거기서 학생들이 처음으로 군대문화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며 “부실하게 운영되는 해병대 캠프를 통해 학생들이 ‘군대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생각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상민씨는 또 태안 참사의 이면에는 안전불감증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하청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처럼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다 보면 좀 더 값이 싼 사람을 쓰게 되고,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잖아요. 대통령이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했음에도 하청을 받은 당사자들만 처벌하고 넘어간다면 과연 안전불감증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레이디경향(총 5 건 검색)

해병대 전문작가 김환기에게 듣는 스타 현빈, 해병 김태평
2011. 08. 29 17:05 화제
지난해 말 연평도 포격 사건을 시작으로 총기 난사 사건, 그리고 현빈의 해병대 입대까지. 근래만큼 해병대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없는 것 같다. 3년 동안 포항과 김포, 서해 5도를 돌며 해병대를 취재해온 김환기 작가와 함께 해병대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모두가 그리워하는 남자, 현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해병대에 대해 오해하는 것 보통의 20대 여자가 그렇듯 기자 역시 군대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특히나 해병대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던 와중 지난 7월 해병대 내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을 취재하며 해병대 관계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당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해병대가 나쁜 곳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연이어 발생한 해병대 내 사건사고로 해병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때였으니 해병대 출신으로서 억울할 만도 하겠다 싶었다. 비(非) 해병대 출신인 김환기 작가 역시 “해병대는 나쁜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3년간 해병대를 ‘들락거리며’ 수많은 해병대 젊은이들을 만나온 그는 사람들이 최근 일어난 단편적인 사건만으로 해병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꽤 많은 해병대 부대를 다녀봤지만 문제가 있어 보이는 병사나 이미 문제를 일으킨 병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물론 저는 외부 사람이었고 제가 보는 것만으로 해병대 전체를 규정지을 수 없지만 최근의 뉴스 보도나 인식은 분명 침소봉대된 면이 있다고 봐요.” 보통 막연하게 해병대는 힘든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원들이 얼마나 힘든 훈련을 받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해병대는 특수부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강도의 훈련을 받는다. 보통의 군대와는 다르게 병사들을 직업군인처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곳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굉장히 크다. 자원을 해서 온다고는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선택지 중에 골라서 온 의무병들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훈련병들이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것을 보면 기특할 때가 많다. “요즘 신세대들을 보고 정신력이 약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해병대에서 훈련하는걸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힘든 훈련을 받고도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지죠. 힘들 땐 힘들더라도 끝나면 금방 잊더라고요.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까지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전원을 지원병으로 모집하는 해병대의 특성상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로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무엇이든 익히고 배워서 스스로를 성숙시키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힘든 훈련을 기꺼이 참아 내는 건 스스로를 다잡는 의지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땀 흘리고, 더 많이 견뎌야겠다는 선택이자 스스로와 한 약속인 셈이죠.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해병대에 지원한다는 건 여전히 남다른 선택인 동시에 그 자체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적극적인 선택이에요.” 그가 지켜본 해병대 1137기 김태평 그런 남다른 선택지를 고른 사람들 중에는 그 자체로 남다른 인물도 있다. 바로 현빈이다. 현빈은 지난 3월 인기 절정의 순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의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해병대로 향해 있는 상태다. 해병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해병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그를 입대부터 훈련 과정까지 지켜본 김환기 작가에게 ‘현빈’은 ‘김태평’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본명을 사용하는 군대에서 그는 연예인의 이름을 버리고 서른 살의 청년 김태평으로 돌아갔다. “군대는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해요. 그에게는 곧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군 입대를 앞둔 많은 남자 연예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잖아요. 21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신이 대중으로부터 잊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편안해 보였어요. 군대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대 후 배우로서의 자기 인생이나 연기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골몰해 있더군요. 일반 군대보다 해병대가 인생 경험을 쌓기에 더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30대 배우로서 재도약을 준비하는 데 외부로부터의 과도한 관심을 차단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해병대가 나을 거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가 지켜본 현빈은 입대 이후 시종일관 모범적인 해병의 모습이었다. 동기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누구보다 잘 적응했고 훈련에도 열성적이었다. 나무랄 데 없는 훈련병이었고 맏형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냈다. 훈련 3주 차에 실시되는 사격 테스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둬 특등 사수가 되기도 했다. 일발필살을 강조하는 해병대에서 특등 사수가 된다는 것은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퇴소식 때는 별도의 포상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대가 있는 백령도에 간 뒤에도 7, 8세 아래 선임들을 깍듯이 대했고 발목 부상에도 모든 훈련에서 열외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타였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모범적이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다른 훈련병들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서른이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에요. 나이에 비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굉장히 진중했어요. 자기를 끊임없이 계발하고 좋은 쪽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형 인간이라는 게 느껴졌죠.” 그는 고된 훈련 속에서도 현빈이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해병대 훈련이다. 아무리 자기 포장에 능숙한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그 상황을 흐트러짐 없이 견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훈련을 받고 있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의식하는 시선이 느껴지면 믿을 수 없는 힘이 솟는 것 같아요. 얼굴 표정이나 눈빛, 자세, 이런 것들이 다른 훈련병들하고는 달라요. 체력이나 정신력이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오랜 연기자 생활로 그런 자세가 몸에 배어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런 자세는 분명 그가 가진 장점이에요.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유지해나갈 기본적인 자질이 엿보였어요.” 칭찬 일색인 듯해 겸연쩍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까이서 지켜본 해병대원 김태평의 모습이다. 그는 인상 깊었던 현빈과의 일화를 또 한 가지 소개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의 총 6주 차 훈련 중 5주 차에는 ‘극기주’ 훈련이 진행돼요. 식사량과 수면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훈련은 두 배로 늘리는 악명 높은 훈련이죠. 마지막 날 천자봉에 오르는데 그때쯤이면 거의 체력이 바닥난 상태가 돼요. 극한의 정신력으로 버티죠. 천자봉 등정을 마치고 나서 조금 무리해서 현빈씨와 3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며 일어나더니 화장실 가는 길에 현빈씨가 그만 기절을 했어요. 그 정도로 힘든데 전혀 티를 내지 않은 거예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틀림없이 앞으로의 군 생활도 훌륭하게 잘해낼 거예요.” 일부의 악습으로 해병대 전체 판단하지 말기를 김태평의 자대 사물함. 자대에 온 뒤로 그는 영어와 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해병대를 취재하며 그는 젊은 해병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이겨내고 밝게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내가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포스트 연평도 세대라는 게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는 걸 느꼈죠. 나라가 어려울 때 나 몰라라 도망갈 친구들은 아니구나 싶어서 취재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나이 든 세대가 요즘 군대 너무 편해졌다고 많이 욕하잖아요. 제가 25년 전에 군대에 다녀왔는데 나는 그때 이 친구들만큼 열심히 했나, 하고 뒤돌아보게 되더군요. 군대가 일정 부분 편해진 면은 있어요. 그렇다고 나약해지거나 해이해진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는 최근에 일어난 몇몇 사건으로 해병대 전체를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해병대는 가장 군대다운 군대이자 우리나라 현실에서 꼭 필요한 군대예요. 해병대 군인들이야말로 건강하고 진취적인 젊은이들이에요. 일부의 악습을 도려내려는 노력을 조금만 한다면 가장 모범적이면서 가장 필요한 군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해병대를 좀 더 입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원상희, 플래닛 미디어 ■참고서적 /「나는 해병이다」(김환기 저, 플래닛 미디어)>
해병대 총기사고로 사촌동생 잃은 개그맨 임혁필
2011. 08. 01 18:28 연예
ㆍ“경호원 되고 싶어 했던 사촌동생 승렬이, ㆍ다시는 이런 비극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난 7월 4일, 강화도 해병대 2사단 내무반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로 네 명의 꽃다운 청춘이 세상을 등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그맨 임혁필(39)의 고종사촌동생인 이승렬 상병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가족이자 해병대 후배인 사촌동생을 잃은 그는 애써 슬픔을 다독이는 중이다. 휴가 때 술 한잔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며 가슴 아파하던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임혁필을 만난 건 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 그가 공연을 하고 있는 대학로 공연장에서였다. 그와는 지난해 가을, 가족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통해 만난 적이 있다. 딸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인터뷰 내내 웃음꽃을 피우던 그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슬픔과 피로가 가득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촌동생을 떠나보내야 했던 지난 일주일. 하루하루 더디게 가던 시간은 어느새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었다. 비보를 접한 건 사건 당일 오후, 아내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방송 녹화를 마치고 오후 4시 반 정도 됐을 때였어요. 아내가 전화로 사고 얘기를 하기에 처음엔 ‘아휴, 무슨 소리야’라고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뉴스에 사고 소식이 나오더라고요. 사망자에 이승렬 상병이 뜨는 걸 보고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은 거예요. 제가 해병대 출신이니까 군부대 쪽 아는 분께 연락을 드려서 상황을 확인했죠. 오전 11시 40분께 사고가 발생했고 그때 이미 승렬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승렬이의 부모님이신 고모와 고모부는 강화도 사고 현장에 계셨고 친척들은 병원으로 모이는 상황이었다. 그 역시 공연과 방송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저녁 8시쯤 시신을 태운 헬기가 병원에 도착했고 승렬이를 영안실에 들여보내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건강하게 웃으며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사촌동생을 하루아침에 저 세상으로 보내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그마저 넋을 잃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해병대 708기인 그는 다른 해병대원의 빈소에도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유가족의 입장을 해병대 측에 전달하고 유가족과 사령관의 면담을 주선하는 등 양쪽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가족이자 해병대 출신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저도 물론 충격이 컸지만 승렬이 부모님께서 받은 충격과는 비교가 안 되죠. 군대 간 자식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유가족들은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고 아무래도 이성적 판단이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은 네 아이 모두 제 후배들이잖아요. 아이들을 붙잡고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는 빨리 좋은 곳으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 상황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군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병대이기 전에 그도 유가족이기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생의 해병대 지원에 자신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가슴 아프고도 복잡한 심정이었다. “저희 아버님이 8남매세요. 승렬이는 막내고모의 아들이고요. 형제가 많다 보니 사촌들도 많은데 그중 저와 승렬이만 해병대에 갔어요.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마음이 갔죠. 승렬이가 해병대에 대해 묻기에 남자라면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고 했어요. 입대를 결정했을 때도 잘했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했던 게 후회가 돼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더라면 기필코 말렸을 거다. 비극은 예고 없이 날아들었고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무거운 마음을 벗을 길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해오던 대학로 소극장 공연도 미루고 모든 방송 스케줄도 올 스톱했다. 3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지키고 영결식과 안장식, 삼우제까지 대전 묘역과 서울을 오가며 동생의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승렬이에게 다섯 살 터울의 누나가 있는데 둘 사이가 각별했어요. 그런 동생을 보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고모도 그렇고, 승렬이 누나도 3일 내내 너무 울어서 이러다 또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승렬이가 제 사촌동생인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어요. 힘내라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는데 무척 감사하죠. 하지만 저의 슬픔은 친가족들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가족들에게도 많은 응원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수열외, 구타, 왕따… 자극적인 이야기에 커져가는 유가족들의 슬픔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는 승렬이는 아들 같은 사촌동생이었다. 마냥 아이 같았던 동생이 훤칠한 청년으로 자라 해병대에 간다고 했을 때 말릴 이유가 없었다. “고모부께서 태권도를 하셨고 승렬이도 태권도를 잘했어요. 경호학과에 다니며 경호원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해병대에 가면 꿈을 꼭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꿈이 사라지게 됐네요.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착한 녀석이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뭘 해도 이룰 수 있는 나이었는데, 멀쩡하던 녀석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동생을 회상하던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던 게 내내 가슴에 남는다. “제가 포항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너무 멀어서 가족도 면회를 잘 안 왔는데 그때 유일하게 고모부께서 면회를 오셨어요. 멀리서 고생 많다고 등도 두드려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승렬이가 입대할 때 꼭 면회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못 갔어요. 사고가 나기 3주 전쯤 고모부네랑 시간을 맞춰 가기로 했었는데 그때 제가 일이 생겨서 못 갔거든요. 한 번 보고 올걸…. 그때 면회를 못 간 게 미안하고 그렇게 마음에 걸려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거구나 싶어요. 그동안 이런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저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닥치고 보니 어이가 없더라고요. 전쟁 중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총 맞아 죽는다는 게 참 일어나기 힘든 일이잖아요. 사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의 말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고 그 결과 네 명의 안타까운 젊은이들이 세상을 등졌다. 군대 내에서 일어난 총기사고. 그것도 기강이 엄하기로 유명한 해병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크나큰 희생을 치른 사건인 만큼 문제점을 바로 찾아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수열외니, 구타니, 왕따니 하는 자극적인 내용들로만 관심이 모아지며 유가족들은 또 한 번의 상처를 받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 그에게 ‘기수열외’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똑같은 질문이 되돌아온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수열외가 뭐예요? 저한테 가르쳐주세요.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가슴이 무척 아파요. 기수열외니, 구타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포커스가 맞춰지다 보니 유가족들의 아픔은 사라지고 없어요. 물론 잘못된 것은 고치는 것이 맞지만 그런 말이 나올 때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상처받은 모든 분들 다시 힘내셨으면… 사실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사건을 일으킨 김 상병이 “구타와 기수열외는 없어져야 한다”라고 진술하며 마치 피해자가 왕따 문제와 기수열외의 가해자인 것처럼 지목되는 상황이었고, 해병대와 유가족 양쪽 모두에 속한 그의 말 한마디가 또 다른 기사가 되어 슬픔에 빠진 누군가에게 가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해병대가 아니면 해병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고 유가족이 아니면 유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해병대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세요. 해병대가 힘든 곳이라는 건 전 국민이 다 알아요. 그걸 알면서 지원을 했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선택한 거예요. 본인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죠.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에요. 아마 군대에 다녀오신 분이라면 다들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거예요. 해병대뿐만 아니라 육군도, 해군도, 공군도, 공익요원도, 면제받은 분들도 4주간의 훈련기간이 힘들 수 있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어요. 해병대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이겨내지 못하면 힘든 거예요. 결국 본인의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만 돌리기엔 희생이 너무 크다. 그 역시 시대에 흐름에 맞춰 병영문화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군대의 격차가 급속도로 멀어지고 있어요. 바로 어제까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최첨단 시대를 살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밀폐된 사회에 구속돼요. 현실은 나날이 발전해가는데 군대는 여전히 1970, 80년대 시설을 이용하고 20세기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니 그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는 거죠. 병영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겠죠.” 군대 문제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이러한 비극으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일은 분명 줄어들 거라 믿는다. 승렬이의 삼우제를 마치고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빈소를 지키느라 빠졌던 공연에도 다시 합류했다. 그는 현재 대학로 소극장에서 직접 연출한 퍼포먼스 옴니버스 쇼 ‘펀타지쇼’를 공연 중이다. 아직도 길을 가다 승렬이 또래들을 보면 울컥 가슴이 아프지만,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승렬이를 위해서 힘을 내려고 한다.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 있을 수는 없잖아요. 승렬이네 가족도 다시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승렬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힘을 내 열심히 살다 보면 승렬이도 어딘가에서 좋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많은 분들께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주십사 당부드리고 싶어요.” 언제 슬픔이 가실지, 언제 눈물이 마를지 알 수 없지만 하루빨리 유가족들이 잃어버린 웃음을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애써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난 네 아들들의 명복을 빌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너무 놀란 가슴에 스케줄을 다 접고 국군수도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승렬이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친척 어르신과 기자들만이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헬기가 도착했고 싸늘한 시신만이 검정 비닐 백에 싸여 있는 모습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가 되어 고모가 강화도 사건 현장에서 수도병원으로 왔습니다. 고모 얼굴을 보니 다시 한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습니다. 마련된 빈소에는 승렬이의 영정 사진이 있더군요. 해병대 훈단에서 훈련을 마치면 자대 배치를 받고 자대에 가기 전에 정복사진을 찍는데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다니…. 그 해병 정복사진이… 영정사진이라니. 그 안에 있는 승렬이는 아주 잘생기고 멋진 해병대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또 한 시간이 흘러 고모부가 왔고 다른 때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거의 밤을 샜기 때문에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서늘한 그리고 어두컴컴한 반 평도 안 되는 냉동고 영안실에 있을 승렬이를 생각하면 나의 피곤함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슬슬 염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가기 전에 승렬이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한테 인사하려면 예쁜 모습으로 맞이 해야 하니까요. 우리는 승렬이의 멋진 모습을 보려고 다들 안 자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게 되면 이제는 승렬이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염이 끝났고 먼저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가 들어갔고 이제 친척들과 승렬이의 친구들이 들어가서 얼굴만 보고 나오면 되는데 줄이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마하고 누나가 승렬이를 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도 봐야지” 하며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모습에 고개 숙여 울고만 있을 뿐입니다. 근데 누나가 갑자기 쓰러집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누나를 부축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게 했습니다. 역시나 그 와중에도 아빠는 냉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그 누구보다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또 하루가 흐릅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고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합니다. 영결식을 하면서 승렬이는 난생처음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대통령이 꽃을 보내고 국방부 장관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고 해병대 사령관이 승렬이에게 칭찬을 하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국회의원도 승렬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합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승렬이는 그런 사람들한테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엄마랑 아빠랑 누나랑 함께 있고 싶을 뿐입니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이 먹고 싶고 아빠랑 목욕탕에도 가고 싶고 누나랑 영화 한 편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승렬이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바쁩니다. 영결식이 끝나면 부평에 갔다가 대전으로 가야 합니다. 이제 승렬이가 살아야 할 곳이 대전이니까요. 대전에 갈 일이 별로 없었던 승렬이는 대전이 낯설기만 합니다. 혼자서 그곳에서 이제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엄마 아빠 누나는 승렬이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이제 떠나야 합니다. 엄마 아빠 누나는 함께 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발걸음을 뗍니다. 세상에 살아오면서 제일 무거운 발걸음입니다. 이제 스물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대전에 두고 우리는 떠납니다. 마음도 무겁고 발걸음도 무겁지만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데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이면서 해병대 후배인 승렬아 좋은 데로 잘 가렴. 사랑한다. 해병대 708기 혁필 형이 2011년 7월 8일 임혁필의 트위터 멘션 中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아이돌 그룹 멤버, 현대무용수, 해병대 출신 탤런트 최필립의 모든 것
2006. 06. 01 연예
“남다른 이력도, 아쉬운 사랑도 제 연기의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MBC-TV 월요 시트콤 ‘소울 메이트’에서 이지적인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는 신인 탤런트 최필립은 할 얘기가 참 많은 친구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이제 오롯이 연기에 쏟아 붓고 싶다는 옹골찬 한 남자의 도전장. 인사를 나누고 마주 앉아서 커피까지 한잔 하며 제법 편안하게 얘기한다 싶었는데, 언뜻 그가 쥐고 있던 1회용 종이컵을 보니 가장자리에 잘근잘근 씹힌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남자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데뷔 2년 차, 미니시리즈 한 편에 이어 일명 시트콤 드림팀이 제작하는 작품의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어 선전하고 있는 신인 탤런트 최필립. 안정적인 톤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의 목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럼, 무명시절이 없었던 거네요?”라는 질문을 받은 뒤부터였다. 미소년 발레리노, 해병대 가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는 학교에서 소문난 춤꾼이었다. 얼굴도 작고 팔다리가 길었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중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 결코 이른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무난히 예고에 진학해 콩쿠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무대에 서면 무용수와 관객의 기 싸움이 치열합니다. 좀 과격하게 얘기하자면 그 순간은 관객들의 에너지를 내가 잡아먹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거죠. 하지만 무용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연예 활동이 금지된 학교에 다니던 그는 그 시절 춤 좀 춘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트리트 댄스를 단련했다. 그 무렵 사귄 친구 충재는 이후 그룹 신화의 멤버가 되어 전진이라는 예명을 얻었고 지금도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98년 성균관대 무용학과에 진학하기가 무섭게 최필립은 5인조 댄스그룹 ‘JR(주니어 리퍼블릭)’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가 굉장히 쑥스러워하며 ’장미 한다발‘이라는 노래를 불러줬는데, 어딘가 멜로디가 귀에 익다. 생각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탓에 이내 무대를 내려온 그는 1년 넘게 후유증에 시달렸다. 캠퍼스로 돌아와 다시 무용에 매진하던 그가 선택한 돌파구는 해병대 입대. 무용 콩쿠르 입상은 곧 군 면제 혜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남자 무용수는 오직 거기에 매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2년 동안 군대를 다녀오는 게 얻는 것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남자 무용수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선입관을 깨고 싶은 의지도 강했다. 하나 해병대 출신 하나 없는 집안의 아들, 심지어 방위 아버지를 둔 그는 집안의 걱정거리였다. 가입소 일주일 기간 중 체력 테스트를 통해 부적격자를 가려낸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분명 일주일 안에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에 훈련소 입소 날 담담하셨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그때부터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고. “눈이 좋지 않아서 신검 때 3급 판정을 받았거든요. 시력 때문에 해병대 떨어질까봐 콘택트렌즈를 끼고 시력 측정을 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합격했을 때는 정말이지 대학 붙었을 때보다 좋더라고요.” 한 번에 두 여자를? 실제론 엄두도 못 낼 일 어려서부터 소풍이니 운동회니 교내 행사 때마다 나서기 좋아하던 그는 군복무 시절에도 3군 노래자랑, 국군의 날 특집 행사, 국군방송 ‘위문열차’ 등등에 출연해 상을 휩쓸었고, 덕분에 포상 휴가도 넉넉하게 받았다. 공수 교육대 점프 마스터(조교)로 복무한 경험은 ‘소울 메이트’에서도 돋보였다. 애인인 민애가 뺑소니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 마침 해병대 출신 피해자를 만나서 “해병대의 한 기수는 하나님과 친구이며, 부처님과 동기동창이고…”라고 읊어대며 문제를 해결한 설정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소울 메이트’에 숨어 있는 최필립의 비하인드 스토리. 극중 연인 수경이 그에게 선물한 말티즈 강아지의 이름이 ‘필순이’인데, 이는 최필립의 본명이다. 도울 필(弼)에 순박할 순(淳), 외조부가 지어주신 이름은 뜻은 좋지만 어려서는 꽤 많은 스트레스를 줬다. “원래 제 본명으로 데뷔하려고 했어요. 정감 있고 좋잖아요? 오디션에서 저를 발탁한 MBC 이재갑 국장께서 당시 극중 이름이었던 필립을 권해주셨거든요.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개를 키운다는데, 어느 분의 개 이름이 필순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처음엔 재밌다가도 슬쩍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아니 소중한 내 이름을(웃음).”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유학 시절 만난 여자로 인해 약혼녀를 배신하는 펀드 매니저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의 이번 역할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5년 된 연인 수경이를 버리고 섹시하고 도발적인 매력의 민애를 택하고야 만다. 이러다가 선배 탤런트 이종원의 뒤를 잇는 ‘배신남 전문 배우’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데…. 그래도 그는 여자들에게는 ‘나쁜 놈’으로 찍혔지만, 남자들에게는 공감을 얻고 있다는 항변 아닌 항변을 했다. “저라면 수경이를 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설마 바람둥이 민애에게 끌렸겠어요? 남자는 결국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니까, 필립도 앞으로는 수경이에게 돌아가 진심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요.” 올 초 최필립은 1년 반가량 사귄 연인과 헤어졌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연인의 직업을 힘들어했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잔 마실 여유를 내지 못하는 그에게 아쉬움을 표시하는 그녀에게 최필립은 그만 “그런 것도 이해 못해줄 거면 나를 만나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당시 그는 막 새 작품을 앞두고 한창 예민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그날 편입시험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하러 나온 거였더라고요. 제가 편입을 권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하던 상황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헤어지자고 했으니….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죠. 수경과의 이별 장면을 촬영할 때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제 막 신인 딱지를 떼려는 그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직 연기력은 짧아서 답답하다”고 했다. 브라운관에 비치는 모습은 늘 아쉽기만 해서 “성형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왜 외모로 승부하려 하느냐, 연기력으로 승부해야지! 잘생긴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씀하셔서 한참을 웃었다는 최필립. 그의 목표는 한창 의욕에 불타던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되찾는 거다. 그의 소박한 소년다움이 신선하고 참 반갑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김이석(buri 스튜디오)
[독도는 우리땅]출생지가 독도인 최초의 한국인 해병대 조강현 일병
2005. 05. 01 화제
“전역을 하고 나서 독도에 관한 영화나 연극 만들려구요” 독도 출생지 한국인 1호로 기록되고 있는 조강현 일병. 그는 요즘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다. 지금은 군인 신분이기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말하는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못하지만, 전역 후에는 독도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독도 사랑을 실천할 계획이다. 아버지의 손에 46일간 이끌려 독도에서 살아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에 있는 작은 섬. 36개의 암도와 암초로 구성된 섬이다. 평균 기온은 영상이고 강수량이 연중 고루 분포하지만, 해풍이 심해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땅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인의 가슴속에 커다란 섬이 되었다. 그 작은 섬의 이름은 ‘독도’.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발표는 한국인의 가슴에 ‘독도 사랑’ 불을 질렀다. ‘독도는 우리 땅’은 이제는 아무리 외쳐도 지겹지 않는 구호가 되었다.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 가족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이었던 고 최종덕씨 일가. 1965년부터 어로채취권을 얻어 독도에서 생활해왔다. 5평짜리 움막을 짓고, 빗물을 받아서 생활해야 할 정도였다. 식수를 구할 수 없어 자연샘인 ‘몰골’을 직접 만들었고, 이곳까지 이어지는 998계단을 놓기도 했다. 독도에서 생활하기 위해 수중 창고를 마련하기도 하고, 전복 수정법과 특수 어망도 개발했다. 경운기 엔진으로 자가발전을 해서 생활을 할 정도로 고인은 독도에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87년 태풍으로 인해 생활 터전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독도는 또다시 무인도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한 사람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독도에 들어가 생활한 이는 사위 조준기씨(49)다. 울릉도에서 해병대 하사로 근무하다 고인의 딸과 결혼을 했고,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독도 사랑을 이어가기로 한 것. 제대 후 스물여섯 살이 되던 1985년 7월부터 1993년 8월까지 8년 동안 독도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조준기씨의 주소지는 독도로 되어 있었다. 아들 조강현 일병(21)은 울릉도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주소지를 따라서 출생지가 독도가 된 것. 독도출생지 한국인이 된 것이다. 독도가 많은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강현 일병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특히 아버지의 뒤를 따라 해병대에 근무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많은 매체에서 그를 취재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갑자기 ‘뉴스 메이커’가 된 사실 때문에 그는 어리둥절할 정도다. “아주 어렸을 때 독도에 살아서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나요. 요즘 인터뷰 요청이 많은데, 난감해서 아버지께 여쭤보기도 하고 그래요. 아버지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세요.” 사실상 조강현 일병이 독도에서 산 날은 46일 정도밖에 안 된다. 조 일병이 두세 살 때 조준기씨는 독도 출생으로 되어 있는 아들이니까 독도에서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데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 일병이 기억하는 독도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꽤 넓은 집이 5평짜리 움막이라는 것도 요즘 알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모르던 독도 생활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일기장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언뜻 본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나무도 심고, 토끼도 키우던’ 이야기들이 나왔다. 아버지는 계단 난간을 그물로 막고, 조강현 일병의 몸을 끈으로 묶어놓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독도에서 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곳, 독도에서 아버지가 삶의 터전을 만들어 살아낸 일에는 자부심을 느낀다. 학창 시절 ‘독도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수업 시간에 독도 이야기가 나오면 선생님들이 모두 저를 지목했죠. 아버지가 독도에서 생활하셨다는 것을 아셨거든요. 저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가 높았을 거예요.(웃음)” 어렸을 적부터 집 안에 수도 없이 붙어 있는 독도 사진들을 보면서 커왔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독도에 관한 애정은 많다. 하지만 군인 신분에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에게 말을 아끼고 있지만, 제대 후에는 독도에 관한 영화나 연극을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끼’ 물려받아 배우의 꿈 키우고 있어 조강현 일병은 동국대학교 연기전공 03학번이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에서 MC도 보고, 연극으로 대상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남들은 모두 힘들어서 기피하는 해병대에 자원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해병대 하사관 출신이잖아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해병대를 친숙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해병대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도 좋아하시던데요.(웃음) 군대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에요. 몸은 힘들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요.” 조 일병의 아버지 조준기씨는 ‘끼’가 많은 사람이다. 그 끼를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 ‘백지나무’라는 청소년 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영상학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니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수능을 마치고 실기시험을 위해서는 선배가 알려준 연기학원에 4일 동안 다닌 것이 유일한 준비였을 정도. 강원도에 살면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강현 일병은 요즘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고 한다. 독도 관련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조 일병이 나온 기사를 스크랩해놨을 정도다. 조 일병은 2006년 7월 제대하면 독도에 관한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연극이 될지, 영화가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독도 출생지 1호 한국인 조강현 일병이 제작할 독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백성우 독도에서 태어날 뻔(?)한 조강현 일병의 동생 한별이 조강현 일병의 동생 한별(16)은 독도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조준기씨는 한별이의 출생일에 맞춰 독도에 들어가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해놨다. 의료진은 출산일에 맞춰 울릉도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고, 방송국에서는 헬기도 마련해놨다. 하지만 독도에 들어가려던 날 기상 악화 때문에 배가 뜨지 못했다. 큰 이벤트가 됐을 법한 일이었지만, 독도에 들어가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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