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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25 건 검색)

‘압구정 롤스로이스’ 가해자 징역 10년 확정
‘압구정 롤스로이스’ 가해자 징역 10년 확정(2024. 11. 20 14:12)
2024. 11. 20 14:12 사회
대법원 전경. 경향신문자료사진 약에 취해 차를 몰다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의 운전자에게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1월 2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28)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2일 오후 8시 10분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 도로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다치게 하고 구호 조치 없이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뇌사에 빠진 피해자는 지난해 11월 25일 사망했고 신씨의 혐의는 도주치상에서 도주치사로 변경됐다. 1심은 신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2심에서는 운전자가 현장에서 고의로 도주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못했다며 도주치사·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위험운전치사·도로교통법상 약물운전 등 2가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면서 형이 절반으로 줄었다. 2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신씨가 현장을 3분 정도 이탈했다가 돌아왔지만, 약 기운에 취해 휴대전화가 차 안에 있는 것을 잊고 그것을 찾으러 갔다 온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과 돌아와서 사고를 인정한 점 등을 볼 때 도주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이 맞는다고 보고, 검찰과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신씨가 사고 이후 숨거나 도주하려는 행동을 한 바 없고 당시 사고 현장에는 경찰 차량이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던 점, 경찰관에 의해 체포될 당시 자신이 사고운전자임을 인정한 점 등을 들어 도주치사·사고 후 미조치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이 맞는다고 봤다. 신씨는 이와 별개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도 별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오늘을 생각한다]‘가해자 서사’라는 곤란함
[오늘을 생각한다]‘가해자 서사’라는 곤란함(2023. 08. 18 10:47)
2023. 08. 18 10:47 오피니언
지난 8월 11일 백화점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날 피해자의 유족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말에 주목해달라”고 호소했다. 가해자 서사의 과잉을 경계하라는 원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가해자에게 온정적 이입을 유발하는 묘사 혹은 특별한 존재로 악마화하는 묘사들은 사건을 가해자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피해자를 소외시킨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방식의 서술이 문제를 개인화시켜 범죄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은폐하고 재발 방지 의지를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라도 각자의 ‘이야기’는 존재한다. 범죄자에게 동기를 묻는 것은 현대 형법의 기초 원리이기도 하다. 범죄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해자의 이야기가 검토돼야 한다. 이러한 문명적 원칙은 얼핏 가해자 서사의 경계라는 또 다른 원칙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1963년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전 세계 유대인들의 격렬한 비난에 부딪혔다. 유대인 학살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해 법정에 세운 이스라엘 측 검사는 아이히만을 ‘도착적 가학적 음란증 환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아렌트의 눈에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얼간이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법정은 아이히만의 범죄를 유대 민족을 향한 범죄로 보았지만, 아렌트는 이 범죄를 유대인에 몸에 가해진 인류 보편에 대한 범죄로 보았다. 유대인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유대인들의 원한감정과 복수심을 곤경에 빠뜨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 입장에서 나치는 가장 사악한 악마의 현신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외국인이 나타나 나치는 악마가 아니며 아이히만은 여러분과 같이 근면 성실한 직장인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그들의 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 유대인 학자는 그런 아렌트를 향해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렌트-유대인 논쟁은 가해자의 서사를 둘러싼 난감함을 잘 보여준다. 아렌트 역시 아이히만이 괴물이라 믿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참혹한 범죄자의 이야기로부터 ‘악의 평범성’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이끌어냈다. 아렌트의 통찰은 인류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지만, 동시에 유대 세계와의 논쟁을 통해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큰 인간적 불편함을 가져다주는지도 함께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가해자 서사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 그 안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끔찍한 범죄자가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도감과 위로를 준다. 하지만 범죄의 타자화는 그 사건이 피해자에 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어떤 ‘이야기’에 주목하는가? 그것들의 사회적 의미를 외면한 채 가해자의 특징(얼굴)에 주목하는 사회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을까?
오늘을 생각한다
“성인지감수성 없는 판사와 제 역할 못 하는 검사, 가해자 온정주의 불러”(2023. 05. 12 14:56)
2023. 05. 12 14:56 사회
ㆍ성폭력 사건 방청연대 통해 사법시스템 피해자 소외 비판…‘연대자D’ 인터뷰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한 공판검사는 디지털 자료의 기본단위인 jpg, mp4, KB 등의 의미도 몰랐다. 한 1심 판사는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의 감형 이유로 ‘고도비만’을 들었다. ‘무슨 아줌마를 여자로 본다고…’ 경찰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러온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출간된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동녘)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현 사법시스템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책의 지은이인 ‘연대자D’는 지난 10년간 전국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사법시스템을 감시하고 비판해왔다. 그 자신 또한 성폭력 피해자이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힘든 고통의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지금의 사법시스템이 성폭력 피해자를 배제·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법시스템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법원도 인터뷰·강연 등을 요청하며 피해자로서 연대자로서 사법시스템을 비판해온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9일 화상으로 ‘연대자D’를 만났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 10년간 성폭력 피해자들 곁에서 연대 활동과 사법시스템 감시 활동을 해왔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사법 절차를 통해 본인의 피해를 인정받고 회복해 일상을 다시 만들어 나가려는 선택을 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법대로’라는 선택지는 많은 걸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당사자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배제되고 소외되는 경험이 고통스러웠다. 피해자인데도 당사자가 되지 못했고, 사법시스템에 대한 무지에서 생기는 억울함이 있었다. 혼자 그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내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다른 피해자들은 이러한 고통을 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어느 길로 가야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지 길 안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비판과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나. “피해자와 일 대 일 직접 연대를 할 때는 수사·재판 전 과정에 대해 조력을 하고 대응전략을 논의한다. 먼저 피해자가 ‘법대로’를 선택하면 준비 단계에서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준다. ‘지연 고소(피해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고소하는 것)를 할 때는 준비 없이 혼자 수사기관에 가지 말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세요’, ‘기록과 녹음을 생활화하세요’ 같은 것들이다. 단계별로 증거자료를 수집해야 할 때, 기관상담을 해야 할 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다. 변호사 선임 시 변호사와 어떻게 협업하면 좋을지, 고소장 작성과 제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술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하고 인권침해가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전 과정에 대한 대응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신뢰관계인으로 수사기관 및 법원에 동석한다.” -흔히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피해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성폭력 피해자가 증거를 찾고 검사를 설득하는 등 하나하나에 다 개입해야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개 피해자들은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가 사건과 피해자에 대해 충분히 알아본 후 재판에 임하리라고 기대한다. 실제 재판에서는 그러나 공판검사가 피해자의 상황이나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건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로 법정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사건은 물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건과 물적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로 가야 하는 사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컨대 디지털 성폭력은 물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은 범죄를 입증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조차 검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 내가 연대한 한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서 공판검사는 디지털 자료의 기본단위인 jpg, mp4, KB 등의 의미도 몰라 피해자들이 유죄 입증을 위해서 디지털 매체와 환경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한편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직접 증거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도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피해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검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물적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피해자의 개입 없이 온전히 피해를 인정받기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잘 알려진 안희정 성폭력 사건, 조덕제 성폭력 사건도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었다. 이 사건들은 피해자가 절차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그렇다면 공판검사나 재판부가 피해자들의 개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당사자도 아닌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에 판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판사 뒤에는 검사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이나 보완 수사 요구 등 범죄 입증을 위해 검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심지어 결과가 나와도 항소를 포기한다. 유사한 범죄인 n번방 사건과 박사방 사건의 형량을 비교해보자. n번방 사건 범죄자들의 평균 형량은 7.9년인데 박사방 사건 범죄자들의 평균 형량은 14.3~14.8년으로 2배 가까이 된다. 그나마 34년형을 받은 문형욱(n번방 운영자)이 검거되기 전에 재판이 진행됐던 5명의 공범은 실제로 성폭력을 저질렀음에도 평균형량은 3.2년밖에 안 된다. 이유는 검찰이 항소를 안 해서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제야 검찰이 항소하기 시작했다. n번방 사건 이후에 드러난 박사방 사건의 형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이유다. 성범죄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사례가 정말 많다. 그러면 불이익 변경금지 원칙에 의해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판사들이 정상참작 감경을 적용하면서 ‘고도비만’을 유리한 정상(감형 이유)으로 판결문에 적시해 논란이 됐던 사건이 있었다. 1심 판사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성착취물) 제작 배포 및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형량을 ‘고도비만 등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인터넷상에서 타인과 교류하던 중 경솔한 판단으로 사건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유로 감경했다. 이 사건 또한 피고인은 항소했는데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2심은 ‘피고인이 스스로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해서 경위에 참작할 바가 없다’고 1심 판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검사가 항고를 포기하면서 1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솜방망이 처벌에는 판사의 정상참작 감경 또한 문제로 보인다. “정상참작 감경의 작동 원리를 보자. 형은 법정형-처단형-권고형-선고형의 단계를 밟아 정해진다. 법정형은 법률 조항에 규정한 형벌이고 처단형은 법정형에서 형벌의 종류를 선택한 후 이를 토대로 법률상 가중, 법률상 감경, 재판상 감경을 적용한 형이다. 정상참작 감경은 처단형을 정할 때 활용하는 재판상 감경으로 재판부 ‘재량’으로 법정형 하한을 절반으로 깎을 수 있다. 권고형은 양형기준에 따른 형량이고, 선고형은 처단형과 권고형을 모두 고려해 최종적으로 피고인에게 선고하는 형이다. 일례로 2018년에 남자 대학생이 부산대 여자기숙사에 침입해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다 주먹을 휘둘러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법정형의 하한은 징역 10년이었다. 이 건의 경우 절반을 깎아내도 집행유예(징역 3년 이하)가 안 나온다. 그러자 재판부는 법률상 감경 요소인 심신미약(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감경을 먼저 적용한다. 절반이 깎여 5년이 나왔다. 여기에 다시 정상참작 감경을 적용해 2년 6개월이 나오게 됐다. 여기에 양형기준인 3~9년을 적용해 최종 선고형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돼 가해자는 풀려났다. n번방 사건에서 징역 3년이 나온 공범들도 100% 정상참작 감경이 적용됐다.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오자 이들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박사방 공범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박사방 사건에서는 정상참작 감경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박사방 사건에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 등의 조직 같은 추가적인 범죄명이 적용된 점도 있지만, 유사하거나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렇게 형량의 차이가 나는 것은 정상참작 감경 때문이다. 부당 감형(꼼수 감형) 시도에 힘을 싣는 게 판사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꼼수를 판결문에 반영하면 가해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박사방 사건의 강훈이 왜 장기기증 서약을 한다고 했겠나. 2016년 한 건강검진센터의 대장내시경 센터장이 환자들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1심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이 깎였는데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3000만원을 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특별한 기준 없이 고도비만, 학업 스트레스, 코로나19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정상참작 감경 등이 적용돼 가해자들이 선처받고 있다.” -왜 이렇게 감경해주나. “흔히 ‘피해자의 눈물이 있어야 유죄’라는 말을 하는데, 성폭력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눈물로 무죄나 감형’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판사들이 피고인에게 과몰입하는 셈이다. 피해자는 법정에 보이지 않는데 피고인은 계속 눈에 보이고 볼 때마다 읍소를 하니까. 공판검사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피해자 변호사도 증인신문 이외에는 재판에서 보기 어렵고, 나온다 하더라도 공판 참여에 제한이 있다. 재판이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판사가 피고인 측에 라포(상호 신뢰)를 형성하기 훨씬 더 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양형조건이 피고인 위주로 구성돼 있다 보니 판사들은 ‘피고인의 반성’, ‘사회적 유대관계’ 등 피고인의 상황과 사정에 온정적 시각을 갖게 되고,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집착하게 된다.” -형사재판 절차의 문제인가. “형사재판에는 검사와 피고인의 당사자성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절차 참여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헌법상 재판 절차에 피해자의 참여가 권리로 보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제·소외되고 있다. 일본이나 독일은 강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나 유족들이 직접 나와 신문할 수 있고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자 변호사의 의견진술도 상당히 제약돼 있는데, 다른 국가는 원고에 준하는 위치로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스웨덴은 피해자가 원고의 위치에서 검사와 같이 있다.” -법원은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대로 법원은 피해자들이 왜 그렇게 예민한지 묻는다. “법원에서는 피해자들이 왜 죽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파악을 못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예민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들에게 수사·재판 경험이 없는 피해자, 수사 경험만 있는 피해자, 재판 경험까지 있는 피해자로 나눠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여줬다. 피해자들이 판사들 앞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알도록 했다. 법원에 증인지원절차가 만들어진 게 2012년이다. 2011년에 성폭력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거친 후 모멸감을 느껴 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나 역시 수사·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증후군(PTSD) 진단을 받았다. 지능지수가 30이나 떨어질 만큼 인지체계와 언어체계가 망가졌다. 판사들에게 피해자가 이런 단계를 거쳐야만 당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어떻게 예민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한다. 성인지감수성은 용어 자체가 감수성이라 감정으로 파악되는 지점이 있지만, 사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능력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사건마다 피해자가 놓여 있는 상황 상태 등을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한다. 관련 교육이나 훈련이 법원에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보니 상당수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은 처참한 수준이다. 제대로 된 판결은 판사 개인의 역량에 기대야 하는 형국이다.” -경찰수사 문제도 지적했다. “검경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까지 나는 지연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들에게 고소장 접수는 검찰에 하도록 권했다. 경찰은 접수 단계부터 다양한 이유를 들어 고소장을 반려·거부하면서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긴다. 반면 검찰에 접수하면 제출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추가 피해는 없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여성 대상의 폭력 및 살인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수사 종결을 할 수 있게 됐다.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경찰은 고소장 접수를 반려하거나 고소취하를 유도한다.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한다. ‘고소장 쪼개기’로 고소취하를 유도하거나 수사를 지연할 때도 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한명이더라도 연관된 범죄가 여럿인 경우가 많다. 고소장을 범죄별로 쪼개라고 하면서 여성청소년계에 가서는 성범죄 관련 진술을 하고 사이버수사대에 가서는 명예훼손 등을 진술하는 등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수차례 감당하게 한다. 어렵게 고소장이 접수된다고 해도 수사는 지연되고 경찰의 법리적 검토 능력도 떨어져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법리적인 검토나 보완 수사를 꼼꼼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수사와 공소 유지를 위해 검사와 경찰이 협력해야 하는데 협력이 안 되다 보니까 결국 유무죄에 대한 판단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성범죄 변호는 하나의 시장이 됐다. “전문 법인이 연결된 인터넷 카페 등에서 반성문, 기부자료 등 성범죄 감형 자료리스트를 공유하고 심지어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들은 그 같은 감형자료가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판결문에 유리한 정상(형을 감경하는 요소)에 반성문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게 되면 일반인들은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고 보게 된다. 이들 법인의 또 다른 세일즈 포인트는 피해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증인 신문이나 결심 공판 최후 변론 등에서 피해자를 난도질해 버린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의뢰인인 피고인의 입맛에 맞게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변론함으로써 만족감을 주면, 패소하더라도 피고인들이 불만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법리적인 검토 능력도 떨어지는 데다가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조를 제대로 안 하는 상황에서 가해자 측의 피해자 공격이 심해지다 보니 결국 피해자도 법률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방청연대 활동을 해왔다. 시민들의 감시로 달라질 수 있나. “단순히 인상비평을 하는 차원으로 모니터링을 하게 되면 재판부도 아무런 변화나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형사재판 절차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면서 방청연대 활동을 해오고 있다. 단순히 판사나 검사의 태도나 언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절차별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체크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다. 예를 들면, ‘모두 절차에서 공판검사가 공소장 요지를 낭독하기 전 재판부가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삼가라는 요구를 미리 합니까’ 같은 것이다. 절차별 체크리스트로 모니터링을 하면 재판 일시, 장소, 재판부, 공판검사 등에 대한 분석을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와서 재판을 보면서 뭔가를 적는 과정 자체가 감시 효과가 확실히 있다. 재판부도 방청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와 사법시스템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다가 ‘디’라는 닉네임으로 바꿨다. 연대자D라고 할 때의 D는 알파벳 D가 아니라 우리말 형용사의 연결어미다. ‘순하디순한’, ‘강하디강한’ 할 때의 ‘디’다. 처음에는 내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더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리까지 온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거쳐 닉네임에 걸맞은 형태의 연결과 가교역할까지 연대자로서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려고 한다.”
표지 이야기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4)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2023. 03. 24 12:50)
2023. 03. 24 12:50 사회
한국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전체가 ‘가해자 vs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환원된다. 이 도식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학교 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아동 학대같이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직접적 폭력은 물론 노동 사고, 대규모 참사, 전쟁 범죄, 식민주의적 착취같이 개인적 수준을 벗어난 사건에도 적용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객관적 구조의 실종 폭력 사건에는 당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사건 전체를 이 두 행위자 사이의 상호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건은 폭력을 용인하거나 방조하는 객관적 구조와 환경 아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학교라는 폐쇄적 사회관계, 교육 제도가 만든 폭력적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 괴롭힘과 학대를 사회적 관계의 하나로 활용하는 가학적 문화 등이 개입된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사람의 형태로 구현된 요소에만 집중한다. 즉 비인격적 구조와 환경을 시야에서 지우고, 사건의 모든 요소를 인격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도식에서 정의(justice)는 두 행위자 간의 부채 관계를 청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보상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에 상응하는 고통을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정의 구현은 늘 복수극의 형식으로 실현된다. 폭력의 구조나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는 핵심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형태가 아니고, 그 자체로 처벌이나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복수극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는 인격적 요소만을 다룬다. 이 도식은 복수극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폭력 역시 그에 따라 처리된다. 학교 폭력의 대응책은 폭력적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폭 가해자가 되면 대학에 못 간다’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이 발생하면, 조직의 문제는 그대로 두고 가해자만 적당히 잘라낸다. 물론 이런 식의 제재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고, 설사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했다고 해도 폭력적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결국 폭력은 재생산되고, 또 다른 사건이 뒤를 잇는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사이다 복수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규모 참사는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 있는 사건이다. 피해자가 죽고 다친 원인은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책임자와 조직,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 안전 시스템에 있지만, 이것들을 가해자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도식으로 접근하면 엉뚱한 결과가 초래된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없으니 피해자도 없다고 주장한다. 죽은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운 없이 사고를 당한 개인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안전 담당자들을 가해자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한다. 두 경우 모두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규모 참사의 핵심은 구조, 시스템, 환경 같은 비인격적 실체 때문에 죽음의 위험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담당자의 과실은 단순히 인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안전 시스템의 구성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 놀랍게도 한국은 한일관계 역시 이러한 도식으로 접근해왔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단순히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했는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전후 유럽의 문제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탈나치화(denazification)를 실현하고 파시즘과 결별한 새로운 유럽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전쟁 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사과와 배상은 이러한 질서를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다. 일본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 및 제국주의와 결정적으로 결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한국은 어떻게 반파시즘적, 반제국주의적, 평화적 동아시아 질서를 수립할 것인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가해국과 피해국의 상호관계에만 집중한다. 반성, 사죄, 배상은 일본에 요구해야 할 최소치다. 최대치의 요구를 위해서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에서 벗어나 객관적 국제 질서를 사고해야 한다. 공동체의 실종 누군가는 이 칼럼을 보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실제로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 칼럼이 반가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좋아하든 말든,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에 갇힌 사람의 눈에는 오로지 행위자들만 보인다. 폭력을 용인하는 구조와 환경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사건 처리를 위한 제도와 공동체의 역할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폭력적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문제를 가해자 진영과 피해자 진영의 대결로 몰고 간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처벌을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피해자 진영이 가해자 진영을 압도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 이것이 실제로 학교 폭력이 다뤄지는 방식 아닌가? 유명인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것이 밝혀져 대중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해자에게 반성과 사죄를 요구할 다른 방법이 있는가? 인간을 향한 폭력은 공동체의 규범을 위반한 것이므로 모든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개입할 의무가 있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에는 이러한 공동체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3자는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 관전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를 비난할 뿐이다. 이러한 도식은 가해자에게 불리하고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침묵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피해자는 자신을 지지해 줄 제3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피해 사실 자체를 폭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지지자들은 변덕이 매우 심해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공격의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 아닌가?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국가기구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며,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정당한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가해자의 죗값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위자들이 놓여 있는 구조와 환경을 문제 삼고 객관적 규범에 따라 폭력을 다루지 않는 한, 그 죗값을 받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학폭 가해자’를 더 망치게 하는 최악의 부모(2023. 03. 10 11:13)
2023. 03. 10 11:13 사회
ㆍ정순신 국수본부장 사퇴를 보며…‘폭력 부인’이 악화 원인 서울 한 중학교의 빈 교실 밖에 하얀 목련과 살구꽃이 피어 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과거 학교폭력(학폭) 논란이 뜨거웠다. 정순신 변호사는 검사였던 당시 학폭 조사단계부터 개입해 아들의 진술서를 두 번이나 번복해 쓰게 하고, 언어폭력은 폭력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들을 두둔했다. 전학 처분이 나왔음에도 1심, 2심,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면서 전학을 지연시켰다. 이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조기에 해결하고, 아버지의 공직생활에까지 타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을 사안이었다. 학폭위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내린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가 낮고, 피해학생 측과의 화해 정도가 없다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신고 초기에 곧바로 사과하고 피해학생에게 용서를 구했더라면 강제전학 처분까지는 내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가해학생은 2명이었는데, 다른 가해학생은 곧바로 사과했다. 반면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다가 징계가 내려지고 나서야 사과했다. 또 전학 처분이 나왔을 때 겸허히 수용하고 전학을 이행했더라면 이처럼 소송 전력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가해학생 측은 스스로 이러한 기회를 저버렸다. 피해학생과 학교에 책임 전가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이 정순신 변호사만의 특별한 모습인 걸까. 고위공직자라는 직위 등 배경을 모두 배제한다면 정순신 변호사의 모습은 학교폭력 가해자 학부모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라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본 글에서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됐을 때 학부모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의 자녀가 혹시나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됐을 때, 자녀를 망치는 최악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먼저 학교폭력 신고 및 학교 조사단계다. 가해학생 보호자들은 자녀가 학폭에 연루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당연히 놀라고,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자녀의 모습과 너무 다른 내용에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내 자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자녀가 자필로 쓴 진술서에 가해행위를 인정한 내용이 있음에도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자기 아이를 윽박지르고 기를 죽여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썼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이렇게 쓰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목격학생들의 진술이 나왔다고 설명하면 “목격학생들이 피해학생과 친할 것이다.”, “피해학생 측 보호자가 목격학생들을 매수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모두가 자녀가 학폭 가해행위를 했다고 하고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하는데도 부모들만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러다 보면 보호자는 가해학생에게 진술서를 다시 쓰라 하거나 거짓말까지 가르친다. 학교를 적으로 돌리는 보호자들도 있다. 자녀가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서일까. “우리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도대체 뭐 했냐”며 학교에 책임을 묻는다. 학교폭력 책임 교사가 자녀에게 윽박지르며 사안조사를 했다고 민원을 넣기도 한다. 또 담임선생님과 학교폭력 책임 교사는 원만히 해결하고자 교육적 차원에서 가해학생에게 반성할 것을 지도하고 피해학생에게 사과하라고 권유했는데, 보호자는 “왜 학폭위에 가기도 전에 가해학생 취급하느냐”, “왜 사과를 강요하느냐” 등 항의를 하고, 심지어 아동학대라며 형사고소를 하는 보호자도 있다. 사과와 반성은 뒷전이 돼버린다. 화해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학폭 60%는 사과로 원만히 해결 가해학생 보호자들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출석해 보이는 모습도 다양하다. 자녀가 사건을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에 대한 진술은 온데간데없고 피해학생 측을 비난하기 바쁜 보호자들이 있다. “피해학생이 원래 친구가 없다”, “피해학생이 실은 정신과 질환이 있던 것 아니냐”, “피해학생 보호자가 돈을 바라고 신고를 한 것 같다”는 등의 발언은 위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애들끼리 크면서 싸울 수도 있지 않느냐”, “피해학생이 원인 제공을 했으니 우리 아이가 그런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심의위원회의 징계 판단 기준은 ‘고의성, 지속성, 심각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이다. 기준별로 0~4점까지 점수를 산정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징계는 올라가고, 16~20점은 전학·퇴학이다. 그런데 보호자의 이런 태도로 인해 반성 정도, 화해 정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면 징계 수위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실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 판결문을 보면 학폭위에서 내렸던 점수는 16점으로, 그중 반성 정도 ‘낮음 3점’, 화해 정도 ‘없음 4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학폭위 이후의 불복절차에서 가해학생 보호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불복절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학폭위도 100% 옳은 결정을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줄곧 자녀의 학폭을 인정하지 않는 보호자들은 불복절차를 진행하면서 집행정지를 통해 징계를 정지시키고 미뤄보려 한다. 이러한 소위 ‘법적 꼼수’는 통하지 않음을 말씀드린다. 교육지원청과 법원이 징계 회피를 막기 위해 상급학교로 진학하더라도 행정심판, 행정소송에서 기각됐을 시 반드시 징계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급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되는 셈이라 자칫 학생에게는 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모든 학폭 가해학생의 부모가 이런 건 아니다. 많은 가해학생 학부모는 진심 어린 사과와 자녀에 대한 지도,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한다. 전체 학폭 사건의 60%가량이 학폭위로 가지 않고 학교장 자체해결로 원만히 해결된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누구나 학폭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일시적인 징계 모면, 책임 전가, 피해학생에 대한 외면은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고 또 다른 학폭을 저지를 수 있다. 결국 책임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내 자녀를 위하는 진정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노윤호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로 서울동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위원,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자문, 강의 등의 활동을 했다. 푸른나무재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주간 舌전]“피해자다움도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간 舌전]“피해자다움도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2021. 01. 29 17:02)
2021. 01. 29 17:02 정치
성추행 피해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남긴 메시지다. 장 의원은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제가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며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DB 장혜영 정의당 의원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개한 장 의원에 대해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소셜미디어에서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준 장 의원에게 깊은 위로와 굳건한 연대의 뜻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1월 26일 민주당 원내대책회 의에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건을 당당히 밝히고 ‘피해자다움’, ‘가해자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질문을 던졌다”며 “위로와 존중,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고 밝혔다. 반면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서면 논평에서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정의당은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를 취하라”는 입장을 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 “민주당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충격과 경악이라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주간 舌전
[김사강의 눈]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
[김사강의 눈]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2020. 08. 07 15:24)
2020. 08. 07 15:24 오피니언
지난달 서해의 한 섬에 다녀왔다. 겨울에는 김 양식을 하고, 봄가을에는 꽃게와 주꾸미를, 여름에는 멸치를 잡는다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휴일 없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 그 와중에 발생하는 임금체불과 폭언, 폭행은 어업 이주노동자들에게 워낙 숱하게 들은 터라 심각한 사안임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요.” 이주노동자가 육지에 가려고 여객선 매표소에 가면, 매표소 직원이 선주한테 전화를 해서 허락을 해줬는지 확인을 하고, 만약 허락을 안 해줬다고 하면 표를 팔지 않는단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섬이라 다치거나 아프면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하는데, 선주가 데리고 가주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한다. “월급은 없고, 가불만 있어요.” 섬에는 은행도 없고 ATM 기계만 하나 있는데, 월급 통장과 카드는 선주가 가지고 있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선주가 돈을 찾아다 주면서 가불이라고 한단다. 내 월급 내가 찾아 쓰겠다는데 가불이라니? “일할 때 너무 배가 고파요.” 새벽에 출항해서 오후 서너 시에 돌아오는데 일하는 동안 밥을 주지 않는단다. 빵 하나를 받는다는 사람, 초코파이 두 개를 받는다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사람은 나은 편이었다. 함께 실태조사를 갔던 활동가들과 밤마다 모여 앉아 노동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건 누가 봐도 인권침해이고 노동착취 인신매매였다. 섬에서 나오자마자 관할 관계기관 담당자들을 만났다. 당장에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문제의 심각성은 공감해줄 거라 기대했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피해자를 못 믿겠다며 가해자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말이 잘 안 통하니 오해가 있었을 거다, 출도를 못 하게 하는 게 실제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통장은 잃어버릴까봐 선주가 보관해주고 있는 거다, 원래 그쪽 사람들은 무슬림이라 할랄 음식만 먹기 때문에 밥을 줬는데도 안 먹었을 거다…. 맥이 빠져서 반박할 힘도 나지 않았다. 그 섬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다는 말은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뒤에 들었다. 크든 작든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한 가해자로 지목받을 때, 가해자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면서 그를 위해 변명하고 두둔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으며 피해자가 받은 상처는 외면한다.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가해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 가해자의 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그 속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노동자들도, 노동착취 인신매매를 당한 이주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빼앗긴다. 다음 주에 다시 그 섬에 가려고 한다. 어차피 한국 사람들은 선주 말만 믿고 우리 말은 안 믿는다며 체념하던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전하기 위해. 극단적인 사례만 가지고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 인권단체들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그분들이, 가해자에게 먼저 감정이입 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상처를 들여다봐 주기를 바라면서.
“관전자도 공범자고 가해자다”(2020. 04. 06 15:14)
2020. 04. 06 15:14 사회
ㆍ디지털 성범죄 피해구제 일 대 일 지원서비스 ‘지지동반자’ 김영서·이희정씨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상담·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먼 길을 돌고 돈다. 내 신상정보가 알려질 수 있다는 공포, “피해자도 잘못”이라는 2차 가해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 텔레그램 ‘박사방’의 성착취물 피해자는 최소 75명이지만 신원이 파악된 피해자는 20여 명뿐이다. ‘피해자 지원’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한 축이다.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구제 일 대 일 지원서비스인 ‘지지동반자’다. 젠더폭력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전문가들로,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며 ‘밀착’ 지원한다. 함께 고소장을 쓰고, 경찰 조사·재판에도 동행한다. 피해 증거를 찾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관련 기관과 연계해 심리치료, 피해물 삭제도 돕는다. 박사방 피해자인 중학생 ㄱ양도 이들의 도움으로 소송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지지동반자’ 김영서씨와 이희정씨를 서울 중구 상담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다. 이들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어서다. 인터뷰 중 구체적인 사례를 물을 때면 내담자 보호를 위해 말을 아꼈다. -현장에서 느끼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은. 김영서(이하 김) “‘내가 이런 일로 고소하게 될지 몰랐어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많이 듣는다. ‘지인능욕(지인 여성들의 얼굴을 나체사진이나 불법 촬영물에 합성해 유포)’처럼 피해자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가해자 의도에 의해서 마음대로 벌어질 수 있는 게 디지털 성범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피해를 겪으면서 피해자가 되고 패닉에 빠진다. 디지털 성범죄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보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대부분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된다. 피해물을 찾아본 지인에게 ‘근데, 너 무슨 일 있어? 이런 게 돌더라’라는 말을 듣는 식이다. 시간이 가도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중요한 건 피해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자원이 충분히 제공된다면 자신들의 힘을 찾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다.” 이희정(이하 이) “디지털 성범죄에선 흔히 얘기하는 ‘관전자’들이 등장한다. 이들도 공범자 내지는 똑같은 가해자다. 피해물이 유포된다는 건 피해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재노출되고 피해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클릭수대로 피해가 발생한다. 피해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전문가를 만나지 못한 채 절망적인 얘기만 듣는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전에 ‘어렵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피해자 지원의 핵심은 피해자가 어제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피해자들도 문제가 있다는 시선도 만연하다. 김 “피해자에 대해 이 사람이 보호해야 할 피해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중잣대를 가지고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기존 성폭력 피해와 마찬가지로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시선들이 있다. 피해자에게 ‘고액 알바에 물리지 않으면 피해 안 입었을 거 아니야’라고 물을 권리는 없다. 내 피해물이 유포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거다. 성착취물을 유포한 가해행위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람을 노예화하는 것을 비난해야 한다. 가끔 증거를 채집할 때 피해물을 볼 때면 ‘이 친구도 피해자일 텐데 알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많은 곳에 피해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피해물이 엄청나게 많다. 그렇기에 n번방을 너무 특별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담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이 “조력을 하다보면 본인이 사건을 자신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역으로 제안할 때 가장 반갑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통과의례처럼 하는데, 어떤 피해자는 그 말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정말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느낀다.” 김 “최근 들은 말 중 가장 좋았던 게 ‘저도 이제 제 잘못이 아닌 거 알아요’라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했던 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가해자들은 영상물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관전평을 하고, 피해자 정보를 어떻게든 찾아내 공유한다. 피해자들은 영상이 유포됐다는 사실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그에 딸린 반응을 보며 또다시 절망한다. 나를 이렇게 문제적인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하찮은 물건으로 취급하는 상황에서 온전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망갈 데가 없는,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사건인 것이다. 사법부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명확해야 하는데, 직접 가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의 물리적 성폭력보다 훨씬 낮은 형량으로 처벌했다.” 김 “‘집단 성폭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나. 오프라인 사건은 중한 범죄로 다뤄지는데 디지털 성범죄는 ‘그냥 같이 봤을 뿐’이라고 한다. 그들은 몇 시간 본 게 전부인지는 모르지만, 피해는 그렇게 계속된다. 가해자들은 집단 성폭력에 준하는 범죄자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처벌 기준도 강화돼야 한다. 단순히 ‘짤’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격이 담긴 피해물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들에게 꼭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사(조주빈)’만 해도 돈 을 엄청 벌었다고 하지 않나. 이것이 피해자를 지원하고 피해물을 삭제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김 “한 발짝도 떼기 힘들다면 저희가 찾아갈 수 있고, 가까이에 도움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피해물 촬영에 동의했든 안 했든 디지털 성범죄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피해자라고 해서 음지로 숨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상을 회복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이 “‘지금 당장 전화 주세요’라 말하고 싶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함께해줄 사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본인의 사건이 지금은 숨어 있는, 또는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실제로 당신들을 지지한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만화로 본 세상]마스크걸-여성이 가해자가 될 때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2020. 03. 27 15:36)
2020. 03. 27 15:36 문화/과학
기쁨이든 슬픔이든, 쾌감이든 고통이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어한다. 내가 겪은 일을 해석하고 의미화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그래야만 그것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의 여러 맥락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그를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서사는 공감의 가능성을 넓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누구의 이야기가 서사화되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 사회가 누구의 이야기에 이입하는가, 혹은 이입하고자 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매미·희세 작가의 만화 중 한 장면 / 네이버웹툰 텔레그램을 이용해 여성들을 성착취해 이득을 챙긴 범인의 신상공개를 요청했을 때 여성들이 원했던 것은 ‘범인의 말’이 아니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지적했듯, 이것이 중대한 범죄임을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장면을 보기 원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우리 사회가 사소한 것처럼 취급했고, 그러한 문화 속에서 이러한 범죄가 발생하고 유지되었다.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범죄자 조주빈은 말할 기회를 얻었다. 조주빈과 같이 여성을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은 피해 여성들에게 사과하는 법이 없다.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연쇄살인범 유영철)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조주빈)며 자기연민을 표현한다.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근간에는 저열한 나르시시즘과 가부장적 지배 욕망의 전시가 있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처벌이 필요한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모욕하는 서사화까지 허락하는가. 홍대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을 불법 촬영한 여성을 포토라인에 세웠을 때 우리 사회는 그에게 어떠한 말을 허락했는가. 그가 말을 했던가? 기억이 나는가? 여성이 가해자가 될 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서사화하는 보도나 대중 서사를 접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여성 가해자의 구체적 서사화를 시도한 영화로는 <몬스터>·<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웹툰으로는 <마스크걸>이 있다. <마스크걸>은 몸매는 ‘완벽’하지만 얼굴은 ‘못생긴’ 여성 ‘모미’가 주인공이다. 모미는 자신을 모욕했거나 괴롭힌 남성들을 살해하기도 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여성을 궁지에 몰거나 음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매미’와 ‘희세’, 두 여성 작가는 모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럴 만했다’라는 게으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모미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가해자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모미의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모미가 욕망이 있는 존재(사람은 누구나 욕망이 있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임을 보여주며, 그 욕망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도 않는다. 조주빈은 철저히 자기 욕망을 위해 움직였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합리화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내뱉는 자기 서사가 우리 사회에게 어떠한 이득을 주는가? 이러한 범죄를 낳는 토대를 알게 되는가? 재발을 방지할 방법을 찾게 되는가? 그것은 오직 피해자, 그리고 이 문제와 싸워온 사람들의 서사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이러한 범죄가 어떠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옭아매는지, 피해자에게 구조의 손길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피해자가 취약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들이다.
만화로 본 세상
[특집]“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재판을 받나요?”(2020. 01. 17 18:24)
2020. 01. 17 18:24 사회
ㆍ‘배드파더스’ 대표 구본창씨, 해코지 두려워하는 여성들 보호 역할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은 그는 재판 내내 눈물을 훔쳤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의 대표 구본창씨(57)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1월 14일 법정에 섰다. 구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사진 및 신상정보를 제공한 사람과 그 정보를 토대로 홈페이지에 게시한 운영진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 앞에서 침묵했다. 그것이 기소의 주된 사유였다. 법률용어로 그는 ‘공동정범’이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대표 구본창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앞둔 1월 14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앞에 섰다. / 권도현 기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부모의 정보를 제공하고,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그들은 소송을 당할 두려움보다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게 내 역할입니다.” 구 대표는 2018년 9~10월 배드파더스로 인해 정보가 공개된 부모 5명(남성 3명, 여성 2명)의 고소로 2019년 5월 기소됐다. 양육비를 줬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자신의 신상이 공개돼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 고소인들의 주장이었다. 그는 양육비를 받지 못해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비양육부모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사이트에 신상을 공개한 수백 명을 대신해 피고인이 됐다. <주간경향>은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1월 14일부터 무죄판결이 내려진 15일까지 이틀에 걸쳐 구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5명의 고소인은 ‘양육비를 일부라도 지급해왔기 때문에 게시방식에 문제가 있다’고도 했고, 명예훼손을 주장했죠. “거짓말이죠. 배드파더스에 제보하고,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법이 정한 절차대로 다 해봤는데도 법으로는 도저히 양육비를 받을 수 없어 신상정보를 올리는 케이스가 대부분입니다.” -판결문은 결국 버티는 사람 앞에서는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단 느낌도 받았습니다. “판결문 또는 양육비부담조서를 확인하고, 실제로 미지급됐는지를 확인하고 게시 여부를 결정해왔습니다. 그런데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들은 다 돈이 없다고 해요. 분명 이혼 전에는 재산이 있었는데 그사이 다 사라집니다.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거나 자영업자는 자신의 소득을 월 185만원 이하로 해놓습니다. 소득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해놓으면 소송을 해도 1원도 못 받아요. 재산 명의도 다 바꿔놓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숨긴 재산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사해행위 소송을 해야 하는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3~4년이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어가요. 거기다 판결문을 받아내도 또 비양육부모가 돈을 안 주면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명예훼손이라는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비용입니다.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반드시 양육부모에게 지급이 강제돼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단순히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로 봅니다. 비양육부모들은 한결같이 ‘양육비로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본인들 쓸 것 다 쓰고 남는 돈을 양육비로 지급하려 하니까 돈이 없는 거죠. 극단적으로 빈민가에 사는 코피노 아이는 양육비를 못 받으면 굶어요. 밥을 먹지 못해요. 그 아이들은 어쩌다 밥 한 끼를 제공받으면 토할 때까지 먹어요. 지금 이 밥을 먹으면 또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토할 때까지 먹는 거죠. 아이의 생존권과 아빠의 초상권 중 뭐가 더 중요한 건가요. 자기는 여유롭게 여행 다니고, 좋은 차 몰고 다니면서 양육비는 주지 않는 아빠의 명예와 아이의 생존권 중 뭐가 더 중요합니까.” -배드파더스 홈페이지에는 대표님의 연락처가 공개돼 있습니다. 고소 외에도 많은 공격을 받진 않나요. “엄청나게 연락이 옵니다. 한국 남성 특유의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연락을 합니다. 본인은 이 일과 관계가 없어도 발신자제한표시를 한 뒤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붓고 끊어버립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해요. 그래서 지금은 전화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전화는 안 받아요. 전화는 밤낮없이 지금도 와요.” -잘 때라도 전화기를 꺼놓으면 안 되나요. “꺼놓을 수가 없어요. 제보를 해서 사진이나 신상정보를 보내는 사람의 80%가 여성이에요. 본인이 제공했든 하지 않았든 혹시라도 전 남편이 해코지를 할까봐 그들은 늘 두려워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약속을 했어요. ‘혹시 사진을 올린 것 때문에 당신을 해코지하러 찾아오면 나에게 바로 연락해라. 내가 가겠다’라고요.” -경찰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경찰은 실제로 전 남편이 때린 뒤에나 출동하는 거지 그 전에는 안 오니까 제가 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전 남편의 가게나 실거주지 앞에서 시위를 한다고 하면 보호하러 가야 해서 전화기는 꺼놓을 수가 없어요. 몸으로 하는 건 제가 하기로 약속했어요.” -재판장이 무죄판결이 예상되는 주문낭독을 할 때 많이 우시는 걸 봤습니다. 어떤 마음이셨나요. “이렇게 말하면 한국의 양육비 피해자들이 섭섭해할 것 같긴 한데 사실은 재판이 있기 하루 이틀 전에 필리핀의 코피노 엄마들에게서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필리핀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버티는 이유는 필리핀을 떠나올 때 그들에게 약속했거든요. ‘아이들이 양육비를 받으려면 결국 한국의 법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법을 바꿔 선물로 들고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판결을 들을 때 그 코피노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굶고 있으니까….”(구 대표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아직 결정 못 했어요. 이제 재판이 끝났으니까요. 일단은 양육비해결총연합회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해요. 재판은 끝났어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이 통과돼야 하니까요. 그런데 법 통과에는 제가 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건 시민단체들과 양육비총연합회가 나설 일 아닐까요.” 구 대표는 인터뷰 내내 딱 한 번 욕설을 했다. 절대 기사에 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쩌면 이 한마디는 그가 처했던 상황과 앞으로 처할 상황, 그리고 양육비 문제를 국가적 문제로 취급하지 않는(국회에 계류된 양육비 지급 이행 관련 법안만 10개가 발의돼 있으나 임기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이었던 양육비 대지급 공약을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를 함축한 말일 것 같아 그대로 옮긴다. “가해자들은 저 사람들인데 왜 제가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됩니다. 정말 이 상황이 X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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