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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5) ‘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떨까(2024. 06. 07 16:00)
- 2024. 06. 07 16:00 정치
- 2년 전 주간경향에 ‘정책과 딜레마’라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의 관점으로 정책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져서 생각해봐야 정책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역설적이게도 딜레마를 고려한 정책 결정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정책 조합(policy mix)’이었다. 하나의 정책이 가진 단점, 한계, 부작용 등을 보완하는 정책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으로 최근 현안인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바로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감세를 일부 철폐하고, 그 재원으로 추진하는 ‘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지난 5월 17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윤석열 정부의 감세 규모는 5년 90조원 규모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하는 정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추진 중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 시기인 지난 3월 24일 발표한 정책으로 이 대표가 5월 29일엔 “(소득계층별) 차등 지원도 수용”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반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 정책에 대해 여야의 표면적인 찬반 공방 이외에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을 왜 이 시점에, 왜 전 국민에게, 왜 25만원을, 왜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해야 하는지, 또 물가를 자극하지는 않을지에 대해 세심한 논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겠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지금 시점에 필요한 이유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고, 전체 경제 안에서도 내수 경제가 안 좋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자영업자들의 다수가 위기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1분기 경제성장률이 최근 2년 3개월 만에 최고치인 전 분기 대비 1.3% 성장했기 때문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요건 자체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제89조에서 재난과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중대한 변화를 추경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만 가지고 지금의 경제 상황을 파악해선 곤란하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35%로 한국경제사 70년 가운데 6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저조한 수치는 민간 경제가 침체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건전재정’을 내세운 소극적 재정 운용으로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2023년 0.2%포인트 수준으로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보수 정부와도 다른 행보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3%포인트로 끌어올렸다. 박근혜 정부도 2015년 전년보다 경기가 위축되자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014년 0.4%포인트에서 2015년 0.8%포인트로 증가시켰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경기가 위축될 땐 정부가 위기의 방패막이 돼주고, 경기가 과열될 땐 뜨거운 김을 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 운용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기본을 윤석열 정부는 지키지 않았다. ‘건전재정이 언제나 옳다’는 이념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감세로 재정조차 불건전해졌다는 점이다. 경기침체와 정부의 감세가 맞물리면서 2023년 국세 세수입(세입예산안 기준)은 정부가 애초 들어올 것이라 예상한 400.5조원에 56.4조원 못 미치는 344.1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은 여전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25.6조원으로 전년 동기간보다 8.4조원 줄었다. 애초 예산안에서 예상한 세수입에서 실제 들어온 금액을 의미하는 ‘세수 진도율’은 34.2%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한 작년(38.9%)보다 낮다. 이런 세 수입의 감소는 경기 위축과 정부 예측의 실패, 대규모 감세라는 세 가지 요인이 두루 작용한 탓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2022년과 2023년 세법 개정안으로 향후 5년간 총 77.8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을 감세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없다가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으로 추진된 반도체 세액공제율 인상만으로도 5년간 13조원(나라살림연구소·21대 국회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추계)을 감세했다. 합치면 5년간 90조원 이상을 감세한 것이다. 지난 5월 17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상가에 임대 안내 종이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자영업자들의 신음, 어디에서 비롯됐나 1분기 경제성장률로 인해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달리 내수 경기(내수의 성장기여율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원계열 기준)는 여전히 침체 상황이고, 지난 2년간 고물가 상황에서 가계의 실질소득은 감소(현 정부 기간 –1.1%포인트 감소)했고, 무엇보다 올해도 예상되는 대규모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추경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확정권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애초의 세수입 예측(세입예산안)과 지출 규모를 수정하는 세입경정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자영업 부문이 위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지표에서 드러난다. 한국은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 수가 557만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으로 집계되는, 자영업 과잉 공급 국가다. 문제는 과잉 공급을 줄일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은퇴 창업도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의 위기는 구조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방역에 협조한 대가로 빚을 떠안았다가 최근 경기 침체와 식재료 가격 인상 등이 겹친 탓이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폐업한 서울의 일반음식점은 2020년 1만1633곳에서 2023년 1만4642곳으로 늘었고, 올해 4월까지 벌써 5248곳이다. 자영업자의 채무 상황도 심각하다. 나이스평가정보가 양경숙 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 인원과 금액 규모가 2019년 말과 비교해 각각 60%, 51% 증가했다. 3개월 이상 상환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수도 작년 말 6만1474명에서 올 1분기 7만2815명으로 늘었고, 다중채무자도 증가했다. 노란우산공제 폐업 공제금도 최근 급증세다. 상황이 이렇게 된 시작점엔 정부의 미온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지출’에서 한국은 2021년 10월까지 GDP(국내총생산) 대비 6.4%를 지출했는데, 이는 선진국 10개국 평균(14.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때부터 시작된 문제가 켜켜이 쌓여 금리와 물가 인상으로 터진 셈이다. 그렇다면 자영업 지원 정책으로 민생회복지원금은 적절할까. 전 국민이 아닌, 취약계층이나 자영업자들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방안 모두 여러 장단점이 있고, 이미 코로나19 시기에 1차 재난지원금(전 국민 대상)과 5차 재난지원금(하위 88% 소득계층 대상), 코로나19 손실보상 등으로 경험해본 적도 있다. 전 국민 지원이 손쉽고 신속하지만, 재분배 효과가 약하다. 선별 지원은 소득 자료의 한계(과거 시점의 자료·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부과체계 차이 등)를 보완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에게 지원할 것인가, 자영업자를 지원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자영업자에게만 지원하면 상당 부분 부채 상환, 임대료 등에 쓰여 경기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비자와 자영업자, 양쪽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왜 25만원이냐고 물으신다면··· 각각의 방안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는 ‘전 국민 지원’과 ‘감세 축소’를 연계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간 18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고, 이중 일부를 철폐한다면 민생회복지원금의 재원 13조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감세 축소와 연계한다면 재분배 효과도 탁월하다. 5년간 총 73.6조원의 감세 효과가 있는 2022년 세법 개정안의 경우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감세 규모가 34.8조원이 넘는다(국회 예산정책처 추계). 세금 감면은 고소득층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 모두에게 지급하면 당연히 재분배 효과가 있고, 선별의 어려움도 없이 신속하게 전 국민에게 지급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1인당 25만원이냐는 질문에 답변해 보겠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빗대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25만원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규모라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한 나라가 모든 생산요소를 정상적으로 가동해 인플레이션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생산 수준이라는 ‘잠재 GDP’라는 개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계로는 한국의 잠재 GDP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질 GDP보다 큰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달성 가능한 생산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단 의미다.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수치가 지난해 -0.42, 올해 -0.25로 추산된다. 이는 국가 GDP에 견줘볼 때 지난해 10조원 이상, 올해엔 5조원 이상의 생산이 증가해도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기 위한 13조원의 재정이 새로 풀릴 경우 추가 소비승수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20~40%로 보고된다. 이 경우 2.6조~5.2조원의 추가 소비가 이뤄진다. 최근 물가의 여러 지표를 감안해도 한국 경제가 감당할 만한 추가 소비인 셈이다. 정치의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의 삶’(민생)을 개선하는 것이다. 심도 있는 정책 논의가 이어져 민생회복지원금이든, 혹은 같은 취지의 정책이 조속히 시행됐으면 한다. 아울러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지난 2년간 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해준 주간경향에 감사드린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 [뒤로 간 1년-경제]효과 없는 부자 감세···안보 치중도 ‘발목’(2023. 05. 05 12:21)
- 2023. 05. 05 12:21 경제
- ㆍ수출 부진에 미·중 패권 경쟁 영향 우려 ㆍ감세 탓 세수 줄어 경기부양 실탄도 없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민간·시장 중심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감세와 규제 완화로 기업과 시장이 살아나면 국가와 서민 경제가 활력을 찾으리라고 기대했다. 출범 1년이 지났다. 경제지표로 본 한국 경제는 정부 기대와는 달리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무역적자의 골은 깊어지고 세수 구멍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쌍둥이 적자(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 우려에 민생이나 경기를 돌볼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일각에선 시장과 공정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가 불공정한 특혜와 반시장적 정책들만 쏟아낸다고 비판한다. 친미 일변도 외교·안보 기조가 대중 무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1일 부산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밝힌 4월 수출액은 496억2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4.2% 감소했다. / 연합뉴스 최악으로 치닫는 수출 전선 한국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지난 4월(-26억2000만달러)까지 14개월째 적자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은 7개월째 마이너스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와 최대 교역국인 중국 등 수출 양대축의 부진이 역성장 요인이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연속 하락세다. 4월만 보면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41.0%나 줄었다. 4월 한국의 전체 수출 감소액인 82억달러의 절반(44억달러)이 반도체에서 줄었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대중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올 들어 최대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돌아선 중국과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4월만 보면 대중 무역적자는 22억7000만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적자(26억2000만달러)와 유사한 규모다. 정부는 우리의 주요 수풀품목인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품목에 대한 중국의 수입이 줄어들고, 이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파급 효과가 미미한 것도 한국의 대중 수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일각에선 안보가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중심의 가치 외교가 중국을 외교·안보·경제적으로 압박하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대중 무역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1일 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는 이를 두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최전선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뺄셈 외교’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 모바일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중국 세관이 한국발 화물 검사를 강화했다‘는 글이 올라오거나, 과거 ‘사드 보복’과 같은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같은 날 ‘4월 수출입 동향 브리핑’에서 이 같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그는 “(중국의) 경제 보복은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통관 검역이 지연되는 직접적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 분야 평가도 ‘얻어낸 것이 없다’가 중론이다. 중국과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요건(자료 제출과 초과이익 환수 등)을 제시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과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1년 유예조치 종료(10월)를 앞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해 의미 있는 구제책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미국 측의 “긴밀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원론적인 답만 들었을 뿐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중국이 그동안 자국산 비중을 늘리고 고위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의 대중 무역이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또 다른 대중 무역적자 요인은) 친미 일변도의 윤석열 정부의 가치 동맹 외교라 할 수 있다. 과거엔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미국과는 안보를, 중국과는 경제를 중시하는 실리외교를 펼쳐왔다. 그런데 미국만 바라보는 현 정부는 스스로 종속 관계를 만들면서 미국이 만든 틀 안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과는 거래하지 말고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는) 그 틀은 중국의 반감을 살 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의 기반 자체를 공동화시킬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가운데)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초부자 감세 저지, 민생예산 확대 등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비상 걸린 곳간과 재정의 역할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민생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방미를 마친 후엔 여당을 중심으로 이제는 ‘민생 살리기’가 최우선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민생이 고달플 때 재정의 역할은 특히 더 강조된다. 문제는 정부의 곳간에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라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 줄었다. 세수 진도율은 21.7%다. 이는 지난해 3월(28.1%)은 물론이고, 최근 5년 평균 3월 진도율(26.4%)을 크게 밑돈다. 민생을 살리고 경기를 부양시키려면 재정을 써야 하는데 실탄이 없는 셈이다. 결국 지출을 줄이든 빚을 내야 한다. 감세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현 정부하에서 재정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서민 복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국가채무를 늘리는 문제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나서서 재정준칙 도입을 강조하는 등 줄곧 재정건전성을 강조한 정부 원칙과 배치된다. 세수가 줄어든 이유는 정부 분석대로 부동산시장 하락과 내수 침체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정부의 감세 정책과 연관이 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은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4%(정부안 25→22%)로 내리고, 금융투자소득과 가상자산 과세의 시행을 2025년으로 2년씩 미뤘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1가구 1주택자 과세 기준을 현행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다주택자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각각 완화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세액공제 추가 상향을 지시한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 공제율의 경우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 확대됐다. 여기에 투자 증가분의 10%를 추가 공제하는 임시투자 세액공제도 도입되면서 대기업은 최대 25%까지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 기준도 현행 4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최대 공제한도는 현행 5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확대됐다. 정부안은 각각 1조원 미만, 1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이었으나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서 확대폭이 축소됐다. 4·16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 13개 단체는 지난 5월 3일 ‘윤석열 정부 취임 1년 평가 대토론회’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재벌 특혜’와 ‘부자 감세’로 규정했다. 조세형평성 제고와 향후 늘어날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담세능력이 있는 재벌·대기업과 고소득, 고자산가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오히려 감세를 추진함에 따라 세수 부족 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의 5년간 세수감소 효과는 64조4000억원에 이른다. 세목별로는 법인세 세수 감소폭이 27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소득세가 19조4000억원, 증권거래세가 10조9000억원, 종부세가 5조70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 명동 상가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의 감세 기조가 지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4월 12일 주최한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연속토론회’에서 법인세 인하, 주식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10억→100억원), 종부세 완화 등을 ‘트리플 부자 감세’로 규정했다. 정부 국세 수입이 올해 6조원, 내년에 17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수도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저하고’ 전망도 지금으로선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의 4월 11일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를 보면 한 위원은 “주요국 통화 긴축 효과는 올 하반기에 더 클 것이고 화학·철강·기계 쪽 업황도 특별히 좋지 않다. 뚜렷한 상저하고 움직임을 보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는 줄곧 ‘공정’과 ‘민생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재벌과 대기업, 다주택자 등 고소득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된 정책을 펼쳐왔다. 재벌 특혜와 규제 완화, 부자 감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재벌 특혜와 부자 감세 기조를 버리고 공정경제와 조세정의, 민생경제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원준 교수는 조세재정 정책의 재검토를 강조하면서 “문제는 부자 감세와 재벌 감세에 따른 세수 결손이다. 자산 과세의 무력화로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이 더 보호되면서 조세 정의는 땅에 떨어졌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부자들의 보유세 부담을 낮췄으며 금융소득 과세와 상속 세제까지 완화해 부의 대물림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 재정정책을 보면 갈피를 잡기 힘든 수준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재정준칙 도입과 같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대규모 감세를 한다. 또는 시장을 중시한다면서 (정부가 개입해) 특정 산업을 콕 집어 막대한 세제지원을 한다. 이런 식이면 시장이 정부 정책에 신뢰를 갖기 힘들어진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예측가능성 저하는 돌발 상황에 대한 시장의 대응 능력 저하와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4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뾰족한 수 없는 민생대책 윤석열 정부 경제 분야에 대한 국민 평가는 박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분야별 ‘부정’ 평가에서 공직자 인사(63%) 다음으로 경제(61%)가 많았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국민 고통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주머니 사정은 더욱 궁핍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7~9월)에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고, 4분기(10~12월)에도 1.1% 감소했다.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 탓에 4분기 이자 비용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9% 급증하며 2006년 이래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2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월 경제고통지수(실업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한 값)는 8.8로 집계돼 1999년 6월 이후 가장 높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은 후 꺾이는 흐름이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라 지난해 2월(3.7%) 이후 처음 3%대로 내려앉았다. 석유류 가격이 1년 전보다 16.4% 내리며 전체 물가 상승세를 눌렀다. 지표상으로는 최근 들어 물가가 잡히는 모양새지만, 실제 시민들이 쉽게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우선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가 여전히 4%대 중반(4.6%)이다. 특히 지난해 치솟았던 국제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시차를 두고 외식 등 개인서비스에 전가되고 있다. 외식은 7.6% 올라 전월(7.4%)보다 상승 폭을 키웠고, 품목별로 햄버거(17.1%), 피자(12.2%), 치킨(6.8%) 등이 주로 큰 폭으로 올랐다. 서비스 품목은 한번 오르면 물가가 잡히더라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 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묶어둔 전기·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다. 물가상승 압박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1달러당 1340원 안팎까지 오른 환율도 물가 압박 요인이다. 환율 상승(원화 약세)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준다. 고금리 여파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이후 올 1월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지난 2월과 4월에 금리를 연 3.50%로 동결한 바 있다. 지난해 4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의 대출(가계대출+개인사업자대출)은 1019조8000억원이다. 특히 자영업 대출자 중 56.4%(173만명)는 가계대출을 받은 금융기관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다중채무자, 즉 한계차주였다. 한은이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자영업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 증가분을 추산(지난해 4분기 말 변동금리 비중 추정값 72.7% 바탕)한 값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높아지면 전체 이자액은 1조9000억원, 1인당 평균 연이자는 60만원 불어났다. 김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월급 빼곤 모든 게 올랐다. 고물가·고금리에 힘든 서민들과 소상공인 등 경제 주체들이 위기상황에서 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재정을 적극 투입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에 집중된 감세와 규제 완화로 세수 부족 사태를 야기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표지 이야기
- ‘깡통전세’ 경고 뜰 때 정부는 부자 감세했다(2023. 04. 28 10:56)
- 2023. 04. 28 10:56 경제
- 전세사기 ‘뒷북’ 대책, 지원 대상 인정 폭 좁아 “사회적 재난 인식, 현실적 정책 필요” 4월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그럼 내가 죽을까요? 또 죽어야 법이 바뀌나요?” 지난 4월 24일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장. 피해자 A씨가 발언을 이어가다 결국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일명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이다. 전세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2억원이 넘는 대출금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임대업자와 실소유주인 건축업자, 그리고 이들로부터 수당을 받아챙긴 공인중개사와 컨설팅업체까지 동원된 이 대규모 사기극의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피해자만 480여명, 피해금액은 380억원대에 달한다. 피해자들이 추산하는 피해금액은 1400억원대로 이보다 훨씬 크다. A씨가 죽음까지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28일부터 4월 17일까지 한 달여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명 모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에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남은 피해자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미추홀구 문제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유사한 형태의 ‘빌라왕’ 사건으로만 15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수도권에서는 화성과 구리 등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고 있고, 지방에선 부산에서도 전세사기 의심사례가 나왔다. 현재까지 얼마나 피해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또 얼마나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전세사기를 특정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기꾼 다음엔 경매꾼, ‘미추홀의 비극’ 건축왕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B씨가 전세사기를 직감한 건 지난해 2월이었다. 은행에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집이 곧 경매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임대인에게 전화했더니 “절대 경매에 넘어갈 일 없으니 걱정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도 같은 대답을 했다. 임대인이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업자’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실소유주인 건축업자를 알아내 전화를 하자 “왜 이런 일로 전화를 하냐”며 대뜸 화를 냈다. B씨의 집은 결국 경매로 넘어갔다. 집이 낙찰되자 퇴거 통보가 날아왔다. 보증금 5600만원을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듯 집을 나왔다. B씨는 그나마 나중에 보증금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그의 지인은 7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떼이고 신용불량자가 돼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순간 끝이라고 보면 됩니다. 앞이 안 보입니다”. B씨가 말했다. 자살을 택한 피해자들 역시 최우선변제를 받지 못하거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벼랑 끝에 몰린 사례였다.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세간의 시선이다. 피해자들을 향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나 댓글 등에서는 “신축을 선호하다 근저당이 잡힌 집에 들어간 것이 잘못”, “무지의 소치” 등의 조롱이 쏟아졌다. 미추홀구를 비롯해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대해선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전세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외한 임대인, 공인중개사 등 관련자들 모두가 ‘작정하고’ 사기를 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건축왕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계약 전 근저당 문제를 염려하면 이들은 “실거래가가 훨씬 높아 문제없다”, “곧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거다”, “집주인이 재력가다” 등의 말로 안심시켰다. 피해자 C씨의 경우 근저당이 해소된 것을 확인한 뒤 계약했는데도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주범인 건축업자가 거액의 국세를 체납 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이들 일당은 지난해 초부터 집이 하나둘씩 경매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감춘 채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추가로 돈을 뜯어낼 정도로 악랄하고 뻔뻔했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보통 임차인, 특히 사회경험이 적은 20~30대의 경우 임대차계약 체결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에게 상당부분 의존하는 게 현실”이라며 “공인중개사까지 작정하고 사기에 가담했다면 계약의 불법성이나 위험성을 임차인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사태의 책임을 피해자 개인에게만 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400 조직’ 전세사기 사건도 수법은 비슷했다. 이들은 2018년부터 전국의 오피스텔과 빌라 등 3400가구를 보유한 채 전세사기를 벌이다 붙잡혔다.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은 “2020년 전세계약을 하면서 근저당도 확인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전세대출도 무사히 나와 나라가 보기에도, 은행이 보기에도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는가 보다 하고 기뻐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공인중개사는 깡통전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감정평가사는 감정가를 부풀려 대출을 받게끔 유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빌라왕’ 사건도 세입자들이 피해를 예상할 수 없었거나 알아도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초 집주인(임대인)은 주택 가액에서 근저당 금액을 제외한 가격으로 전세를 내준 뒤 미리 포섭해둔 ‘바지 임대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보증금 반환 의무를 벗어났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번 전세사기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 무분별한 전세대출 확대 정책으로 인한 집값·전셋값의 폭등, 묻지마 보증 방치, 등록임대주택 관리 및 보증보험 관리 부실 등 정부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전세사기단이 휩쓸고 지나간 미추홀구엔 경매꾼들이 몰려들었다. 경매로 나온 집을 저렴하게 낙찰받은 뒤 이를 되팔아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B씨가 살던 집도 그가 퇴거를 마치자마자 집 창문에 “매매합니다” 안내문이 붙었다. 낙찰을 받게 되면 한 달 내 잔금을 치러야 한다. 경매꾼들은 감정가의 60~70%로 낙찰받은 집을 수천만원가량 비싸게 되팔아 잔금을 내고 이익도 챙겼다. 어떤 경매꾼은 낙찰받은 집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또 다른 경매에 나서기도 했다. 미추홀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3명의 피해자는 모두 20~30대다. 하나같이 젊고,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전세사기로 사람이 죽고, 길거리로 내쫓기는 현장에서 누군가는 손쉽게 돈을 벌어갔다. 미추홀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깡통전세 대란 예고됐는데 정부는 뭘 했나 전세금 미반환이든 전세사기든 주택가격이 임대보증금 수준에 못 미치는 ‘깡통전세’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세사기의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주택가격이 유지되고 있으면 보증금을 일정부분 회수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깡통전세는 특히 집값의 급등·급락이 이어진 시기에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급등 시기에 높게 형성된 전세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급락하면 깡통전세로 이어진다. 이 같은 집값의 급등락이 대표적으로 나타난 곳이 인천이다. 인천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 기준 2021년에 34.5% 상승해 전국 1위였지만, 2022년에는 21.9% 하락해 이 역시 전국 1위였다. 인천 미추홀, 계양 등지에서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배경 중 하나다. 부동산시장에서 깡통전세의 경고음이 본격화된 건 2021년 하반기부터다. 전세가격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주택가격 상승이 둔화되고,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거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2022년 3월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는 ‘2021년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 본 주거 정책의 과제’ 보고서를 통해 전북·경북 등지의 아파트 전세가율이 평균 102.7%로 100%를 초과한 상태임을 분석한 뒤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대선 후인 같은해 4월 인수위원회에서 “임대차 3법을 축소 내지는 폐지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임대차법 폐지와 같은 퇴행적 방법이 아니라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참여연대), “세입자가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임대차시장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채 보증금을 떼이고 있다”(민달팽이유니온) 등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시기는 이미 ‘빌라왕’, ‘건축왕’ 등의 대형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가 구체화되던 시점이기도 하다. 지표상으로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변제한 보증금 규모가 2020년 4682억원에서 2022년 1조원을 넘어섰지만, 윤석열 정부에 깡통전세 문제나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은 ‘뒷전’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부동산 보유세를 감면하는 데 부동산 정책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여기에는 임대사업자 및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도 포함됐다. 보유세 완화 혜택은 부유층에 집중돼 ‘부자 감세’ 논란이 일었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변호사)은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주택 수요 위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주택공급 목표를 낮춰 민간 공급 위축을 감안한 공공주택의 공급 확대, 전세 피해 지원 대책 마련 등을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처음 마련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정부는 “임차인 재산보호와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대책 대부분이 피해 예방이나 전세사기 단속 강화 등에 집중돼 이미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을 보호하거나 지원하지 못했다. 예컨대 당시 대책에서 나온 ‘최우선 변제금액 상향’의 경우 근저당권 설정일을 기준으로 최우선 변제대상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에 따라 대책 이전에 전세계약을 한 피해자들 상당수가 변제대상에서 빠졌다. 11월에 나온 ‘전세사기 등 방지를 위한 임대차 제도개선’ 방안도 체납사실확인 청구권 신설 등 주로 예방책이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전세사기범 소탕을 중심으로 보고 애초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4월 2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죽어서야 주목받은 피해자들 정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지난해 12월 ‘빌라왕’ 사건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뒤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피해자 대면 간담회도 이때야 열렸다. 윤 정부 출범 후 국토부는 ‘전세사기’ 관련 대책 등이 담긴 보도자료를 모두 21건(국토부 홈페이지 기준) 배포했다. 이중 18건이 지난해 12월 이후 나왔다.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한 건 올해 2월 초다. 피해자들에 대한 대출완화 등 금융지원과 긴급거처 지원, 원스톱 법률서비스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구제방안 역시 이미 집이 경매에 넘어간 피해자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세상을 등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 모두 이 대책 발표 이후 나왔다. 첫 사망자인 D씨는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서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대응팀이 생긴 것도, 2년 전부터 발의된 ‘나쁜 임대인 공개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피해자와 정의당 등이 지난해부터 요구해온 경매 중단, 경매 시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공공매입지원 등의 방안도 최근 들어 구체화됐다. 야당 등 정치권서도 뒤늦게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지난 4월 27일 특별법 제정 등을 포함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특별법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들에게 해당 주택 우선매입을 위한 특례를 지원하고, 계속 거주 희망 시 공공 매입 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 피해자에게 긴급 자금 및 복지지원을 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특별법은 2년간 한시 적용된다. 특별법 시행 직전 2년 내 경·공매가 종료된 피해자에 한해선 소급적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 방안은 그러나 국토부 내 설치될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에 한해 특별법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주택이 반드시 경·공매에 들어가야 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폭넓은 지원을 바라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예컨대 ‘빌라왕’ 사건의 경우 바지 임대인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경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례가 많다. 공공기관의 보증금반환증권 인수를 통한 피해자 보증금 회수 지원 방안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피해자의 개별 보증금을 정부가 지급할 순 없다”는 논리를 반복 중이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은행권에서 부동산PF 부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나서서 매입해주겠다고 해놓곤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지원을 못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향후 피해를 막기 위해 전세가율(주택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집
- 공시가로 ‘부자 감세’하고 ‘국민 혜택’이라고?(2023. 03. 31 11:24)
- 2023. 03. 31 11:24 경제
- ㆍ공시가 인하 혜택 대부분 ‘부동산 부유층’에게 집중 “2022년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 산정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23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부동산 세제 정상화’ 공약 중 첫 번째 공약이다.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이 포함된 이 공약 발표 직후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들의 세금을 감면해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위험천만한 공약”(참여연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대선에서 약 25만표 차이로 당선됐다. 그해 종부세 고지 대상자는 전국 94만7000명이었다. 사실 이 공약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2022년 주택 공시가격은 윤 대통령 취임(2022년 5월) 전에 확정이 예정된 사안이었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 2022년 공시가 산정의 기준 시점인 2021년 말의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는 11억5100만원으로 2020년 공시가 기준 시점인 2019년 말(8억2700만원) 대비 3억원 이상 오른 상태였다. 2022년 공동주택 공시가는 전년 대비 전국 기준 17.20% 올랐다. 시간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이 공약을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냈다. 이미 확정된 2022년 공시가에 손을 대기 어려워지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내리고, 2021년 공시가격을 보유세 산정에 적용했다. 공시가 자체는 2020년 수준으로 못 내렸지만 보유세는 2020년 수준으로 기어이 되돌린 것이다. 올해는 공시가에 직접 손을 댔다. 정부가 지난 3월 22일 발표한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보면 올해 공시가는 전년 대비 18.61% 하락해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공시가를 대폭 내린 덕에 올해 보유세는 2020년보다 더 줄어들 예정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대선공약 실현”이라며 자화자찬하는 사이 ‘조세 정의’는 둘째치고 세수(稅收)에 ‘빨간불’이 켜졌다. 종부세 인하로만 감소가 예상되는 세수(국세)는 2조5000억원. 지방세인 재산세 감소분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시민단체 등은 보유세 인하로 줄어든 세수가 결국은 복지재정 축소, 서민 증세 등 서민들의 삶을 옥죄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집값 하락폭보다 더 가파른 공시가 하락 부동산 공시가격을 들여다보려면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공시가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산정되는지가 ‘비밀’이라는 점이다. 공시가격 산출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물론 공시가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약칭 부동산공시법)’에서 정하는 기준으로 산출된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전국의 수많은 주택 중 어떻게 표본을 추출해 조사하는지, 감정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어렵고 공개되지도 않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말 “전임 정권이 부동산 통계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감사원은 통계 조작 의혹을 밝힌다며 한국부동산원을 이 잡듯 뒤졌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공시가격은 조작 없이 제대로 산출돼야 마땅하다. 정부가 밝힌 ‘-18.61%’라는 공시가 하락폭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다만 추정해볼 수는 있다. 공시가격이 필연적으로 시세(매매가격)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당해 공시가격은 직전 연도의 연말 시세를 참고한다. 이를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가격 변동과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 상황을 살펴보면 올해 공시가 하락폭이 너무 가파르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019년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5.23% 올랐다. 시세 기준 시점인 2018년 12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은 3억2500만원으로 1년 전인 2017년 12월의 3억1300만원보다 3.7% 올랐다. 같은 방법으로 2020년 공시가격은 5.98%, 매매가 평균은 8.2% 상승했다. 2021년 공시가격은 19.05%, 매매가 평균은 12.7% 상승했다. 2022년 공시가격은 17.20%, 매매가 평균은 29.7% 올랐다. 2019~2022년간 4년을 종합하면 아파트 매매가가 58% 오르는 사이 공동주택 공시가는 47% 올랐다. 반면 올해는 공시가격이 18.61% 하락했고, 매매가는 9.0% 하락했다. 공시가와 매매가의 변동폭이 2배 이상 벌어져 최근 5년새 가장 높다. 과거 4년간 평균을 보면 매매가 변동폭(상승폭)보다 공시가 변동폭이 낮다. 올해는 반대로 매매가 변동폭(하락폭)보다 공시가 변동폭이 훨씬 크다. 국토부가 공시가 하락 참고자료로 공개한 공동주택 평균가격, 공동주택 중위가격 자료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공동주택은 아파트와 연립, 다세대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해당 기간 중 아파트만의 평균·중위가격, 연립만의 평균·중위가격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너무 크다. 예컨대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안)에서 서울 지역 공동주택 평균가격을 4억9700만원으로 산정해 2021년(5억2600만원)보다 낮게 책정했다. 반면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해당 기간 중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를 보면 2021년 공시가격(안) 발표 직전인 2021년 2월의 9억300만원보다 올 2월(10억300만원)이 오히려 1억원가량 높다. 연립 역시 올 2월 평균매매가가 3억4300만원으로 2021년 2월(2억6600만원)보다 8000만원가량 높다. 다세대 주택 평균매매가 역시 흐름이 비슷하다. 종합하면 올해 공시가 산출시점의 공동주택 평균가격이 2021년보다 낮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은 올해 초까지 호가가 다소 떨어졌고, 1억~2억원 하락 거래도 있었지만 그간 거래량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매매가 하락을 실제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근 아파트값이 다시 반등세를 보이는 추세라 연중 매매가가 상승할 여지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매매가와 공시가 괴리가 지나치게 큰 것 아니냐고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에 각각 문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산출은 한국부동산원에서 한다”면서도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작년보다 인하되는 등 영향으로 하락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공시가 최종 산출은 결국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보유세 완화 정책 모든 국민에게 적용된다고 믿고 있는 ‘조세 공평주의’가 예외인 곳이 있다. 바로 부동산 분야다. 전임 문재인 정부도 공시가가 급등해 보유세가 늘자 각종 특례를 만들어 세금을 깎아줬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법으로 허용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유세를 깎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보유세를 깎기 위해 국회를 열고 감면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시가를 산출하는 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인지,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서인지 헷갈릴 정도다.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 주변 아파트단지 / 연합뉴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월급이 오르는데 소득세를 깎아주거나, 자동차를 사놓고 세워만 둔다고 해서 자동차세를 깎아주는 일은 없다”면서도 “국민의 담세 능력을 고려해 과한 보유세 부담을 어느 정도 감경할 순 있겠지만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과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보유세 경감 혜택이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 등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은 윤석열 정부의 보유세 완화책이 갖는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정부가 산출한 1가구 1주택자 보유세 변동 추정치를 보면 지난해 공시가 5억원이던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공시가가 3억9000만원으로 줄면서 18만5000원의 재산세를 덜 내게 된다. 반면 공시가 10억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공시가가 8억원으로 떨어지면서 78만원의 보유세를, 공시가 15억 아파트 보유자는 올해 120만원의 보유세를 각각 덜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나마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고가아파트 거주자일수록 보유세 감면 혜택이 비약적으로 커진다. 일명 ‘아리팍’으로 알려진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의 보유세는 올해 1078만2744만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1447만6104원)보다 370만원가량 줄어드는 금액이다. 절감액 규모가 공시가 5억원 1주택자의 20배가 넘는다. 경향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에게 2023년 보유세 시뮬레이션을 의뢰한 결과를 보면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30억 이상 고가아파트는 최대 40%까지 보유세가 줄고, 고가 다주택자는 최대 70%까지 보유세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이 40~70%이지, 당초 부과되는 보유세가 높기 때문에 실제 절감되는 보유세 규모는 수천만원에 달한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와 은마아파트 전용 84㎡ 등 2가구를 보유한 다주택자의 올해 보유세는 지난해(5358만원)보다 3800여만원(71%)이나 줄어든 1526만원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1주택자라도 지방의 1억~2억원대 저가주택 소유주는 보유세 절감 혜택을 거의 체감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 나아가 보유세 절감 혜택 자체가 집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2021년 주택통계 기준 전체 인구의 44%를 차지하는 무주택자들에게 보유세 절감 혜택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3월 14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비서실 고위공직자 37명의 평균 부동산 자산은 31억4000만원으로, 일반 국민보다 7.5배나 많다. 정부는 올해 공시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큼지막하게 ‘국민 보유 부담 완화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 이행’이라고 부제목을 달았다. 공시가 하락이 ‘복지’인가, 세수 부족 어떻게 윤석열 정부의 보유세 완화 정책이 불러온 또 다른 문제점은 세수 감소다. 공시가 발표 이튿날이었던 3월 23일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해 주택분 종부세 세수는 약 4조원 수준인데 (윤 대통령 공약인) 2020년은 1조5000억원 수준이었다”라며 “차액인 2조5000억원 정도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부세 감세 혜택이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반면 그에 따른 세수 부족 문제는 온 국민이 겪어야 할 상황이 됐다. 정부는 “세수 감소폭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말 발표에서 “올 1월 국세 수입이 1년 전에 비해 7조원 가까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배경 설명에 나선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올해는 세수 여건이 상당히 타이트한 상황으로 세입 여건이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2분기 이후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3월 14일 발간한 재정추계 보고서에서 “법인세율 인하와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 등의 영향으로 향후 5년간 64조4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YTN라디오에 출연해 “금리 인상 후 주택의 거래량도 빠지다 보니까 양도세라든지 취득세, 이런 것들도 상당 부분 걷히지 않았다”며 “집주인들이나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반면에 정부 같은 경우는 ‘이거 큰일 났다’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3월 22일 배포한 2023년 공시가격(안) 보도자료 첫장. “윤 대통령 공약 이행” “국민 혜택 증가” 등이 적혀 있다. / 국토교통부 공시가 하락과 보유세 완화, 세수 부족 문제 등을 정부는 애써 ‘국민 혜택 확대’로 포장 중이다. 정부는 공시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공시가 인하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의 복지가 확대되는 등 국민 혜택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공시가가 내려 보유 주택의 자산 기준이 내려가니 정부가 주는 각종 지원금 등의 수혜자가 많아진다는 취지다. 보도자료의 절반가량을 이 설명에 할애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시가 인하로 부자 감세 비판이 나올 게 뻔하니 국민 혜택을 길게 설명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 주장과 달리 공시가 인하는 복지 확대 정책이 아니다. 수급자가 느는 건 공시가 인하에 따른 ‘결과’일 뿐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시가를 매년 큰 폭으로 올리면서 수급자 축소 등 의도치 않은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수급자 선정 시 공시가 기준 동결’ 등 각종 대책을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주장이 맞다면 공시가를 올릴 때마다 복지는 축소된다. 당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는 서민이 공시가 인하로 자산 기준이 바뀔 만큼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실련은 “걷어야 할 세금을 걷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세수 감소, 복지비용 증가 등이 훗날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감추고 있다”며 “부수적인 현상으로 발생한 복지 수혜 대상 증가를 국민 혜택이라고 포장하는 건 국민 기만”이라고 밝혔다.
- 고물가 지속···감세정책으로 괜찮을까?(2022. 11. 25 14:28)
- 2022. 11. 25 14:28 경제
- ㆍ정부, 균형재정만 강조… 유럽처럼 횡재세 등 검토해야 고물가 추세는 내년에도 상당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도 지속될 것이다. 금리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경기가 얼어붙고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투자는 위축되고 가계 형편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계층 간 양극화도 뚜렷해진다. 결국 재정과 조세정책이 따라줘야 한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지금의 복합위기를 헤쳐나가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세입 기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낙수효과를 노린 감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는 횡재세 등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 지원 대상과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일각에선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부유층 증세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0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올렸다. / 사진공동취재단 고물가·고금리, 끝은 어디일까 최근 국내외 기관들의 향후 물가 전망은 대체로 ‘정점 구간을 지나더라도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1월 1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보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2%다. 지난 5월 당시의 전망치(2.2%)보다 1.0%포인트 올랐다. 이는 정부(3.0%)보다는 높고 국제통화기금(IMF·3.8%) 등보다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1월 22일 경제전망에서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9%로 제시하면서 “서비스 물가의 오름세와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발 물가상승 압력으로 내년에도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11월 24일 물가 전망에서 올해 상승률 전망치를 당초 5.2%(8월 전망)에서 5.1%로, 내년 상승률 전망치를 3.7%에서 3.6%로 소폭 내렸지만, 물가상승 흐름 자체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 흐름은 공급 측 요인이 크다. 전쟁, 공급망 불안,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수요 측 요인도 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지난 10월 전년 동월보다 4.2% 오르면서 2008년 12월(4.5%)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국내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도 4.8% 올라 전월(4.5%)보다 상승세를 키웠다. 특히 10월 개인서비스 상승률은 전월(6.4%)과 같은 6.4%로 1998년 4월(6.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근원물가 중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물가 하락을 막는 지표로 평가된다. 당분간 고물가가 지속되리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기준금리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야 할까.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1월 24일 기준금리를 3.00%에서 3.25%로 0.25%포인트 높였다. 사상 첫 6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높고 미국과의 정책금리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미국 기준금리는 3.75∼4.00%로, 여전히 한국 기준금리(3.25%)보다 금리 상단이 0.75%포인트 높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내년 기준금리를 5%대까지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과의 격차는 일단 0.75%포인트로 좁혀졌지만 미 연준이 다음 달 13∼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최소 빅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만 밟아도 격차는 1.25%포인트로 다시 벌어진다. 미 연준의 잇따른 긴축으로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또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내년 최종금리 수준을 5.00∼5.25%까지 올린다면 한은이 내년 1월 금통위를 포함해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최종금리는 3.50∼3.75%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은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다중채무자, 20·30세대,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고 대출금리 상승 폭도 같다고 가정했을 때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약 3조3000억원 늘어난다. 지난해 8월 금통위가 0.25%포인트 올린 이후 지금까지 모두 2.75%포인트(0.25%포인트×11) 인상한 만큼 1년 3개월간 늘어난 이자만 36조3000억원(3조3000억원×11)으로 추산된다. 한은은 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가계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약 16만4000원 증가한다고 본다. 같은 기간 0.25%포인트의 11배인 2.75%포인트가 인상된 만큼 대출자 한 사람의 연간 이자도 180만4000원씩 불어난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대로 내년 기준금리가 최고 3.75%까지 오를 경우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현재 7%대 후반에서 연내 8%대를 넘어 9%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민간부채 늘고 분배는 악화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포용재정포럼 회장)는 “물가의 압박은 소득이 고정돼 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수준의 실질소득 감소를 의미한다”고 했다. 통계청이 11월 17일 발표한 ‘2022년 3/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6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3.0% 늘었다. 소비자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은 2.8% 감소했다. 소득 계층 간 분배 지표도 나빠졌다. 3분기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3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1.0% 감소했다. 지난해 9월 1인당 25만원씩 지급된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 효과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5분위(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41만3000원으로 3.7% 늘었다. 이에 따라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75배를 기록해 1년 전 5.34배보다 0.41배 포인트 커졌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눈 후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보는 지표다. 배율이 커진 것은 분배의 악화를 의미한다. 물가관리를 우선으로 하는 한은이 고강도 긴축에 나서기도 여건상 쉽지 않다. 바로 민간부채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11월 22일 발표한 ‘2022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을 보면 올 9월 말 기준 가계신용(빚) 잔액은 전 분기 대비 0.1%(2조2000억원) 늘어난 1870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 2분기 이후 38분기 연속 증가세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을 합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을 의미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해 2분기 말 이후 여전히 세계 1위다. 10월 30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를 보면 세계 35개 국가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에서 한국은 102.2%로 가장 높다.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한국은행이 11월 22일 발표한 ‘2022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0조6000억원으로 기존 최대 기록이었던 2분기(6월 말 기준 1868조4000억원)보다 0.1%(2조2000억원) 늘었다. / 연합뉴스 기업 부채도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GDP 대비 한국 비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은 2분기 현재 117.9%다. 홍콩(279.8%), 싱가포르(161.9%), 중국(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직전 1분기에는 116.8%로 7위였다. IIF는 보고서에서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많은 기업이 이미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낮은 금리 덕에 많은 기업이 싼값의 대출로 연명해왔으나 앞으로는 대출 비용(금리)이 오르면서 부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으로 시중은행들이 유동성 공급 역할을 하고 있어 기업의 은행 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부채의 경우 증가 속도는 비교적 가파른 편이나 현재 GDP 대비 비율(47.8%)은 24위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편은 아니다. 가계와 기업의 금융권 대출 규모가 크다는 것은 금리가 오를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11월 18일 발표한 ‘금리 인상에 따른 민간부채 상환 부담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의 이자 부담액이 내년 말까지 33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기업대출의 경우 연간 대출이자 부담액이 올해 9월 기준 33조7000억원에서 내년 12월 49조9000억원으로 16조2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의 연간 대출이자 부담액은 52조4000억원에서 69조8000억원으로 17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기업대출 연체율은 0.27%에서 내년 말 0.55%로, 가계대출 연체율은 0.56%에서 1.02%로 각각 높아질 것으로 봤다. ‘사회안전망 강화’ 재원 마련 어떻게 경제위기에서 재정지출 소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기에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재정과 세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영회복을 위한 정책자금 등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재원 확보가 중요하다. 정부는 24조원 규모 지출구조조정 등의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동시에 법인세와 종부세 등 감세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그 혜택이 가계와 기업에 돌아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위기에서 사회안전망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데, 감세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미 연준의 통화긴축에 맞춰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려야 하는지가 문제다. 특히 금리를 올렸음에도 물가는 안 잡히고 경기는 얼어붙으면서 가계와 기업의 이자비용 부담만 커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면서 금리 인상의 피해를 우회할 수 있는 조세정책의 전환을 강조했다.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면 취약계층 지원과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위기 국면에 감세는 긴축기조의 통화당국과 엇박자를 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른다. 김유찬 교수는 “재정지출(소요가)이 늘어나면 그만큼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재정이 통화정책의 긴축적 노력을 무력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9일(현지시간) 예상보다 선전한 민주당의 중간선거 결과에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10월 31일 백악관 연설에서 “석유 기업들이 주유소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초과 이익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횡재세로 불리는 새로운 과세 방안에 대한 검토 입장을 밝혔다. / 워싱턴 | AP연합뉴스 주요국들도 지출구조조정과 함께 증세카드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유럽연합(EU)은 12월부터 화석연료 사용 기업에 ‘연대 기여금’이라는 명칭의 일종의 ‘횡재세’를 걷어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횡재세는 시장 상황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얻은 기업에 추가로 물리는 초과이윤세를 말한다. 한때 세계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오명까지 썼던 영국은 최근 감세안을 버리고 증세 계획을 내놨다. 영국 정부가 11월 17일(현지시간) 발표한 ‘5년 중기 재정계획’은 증세와 지출삭감으로 550억파운드(88조원) 상당의 재원을 조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증세로 250억파운드, 지출 삭감으로 300억파운드 규모다. 영국에서는 내년부터 발전회사에 이익의 45%에 달하는 횡재세를 새로 임시 부과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시작점도 연 15만파운드에서 연 12만5000파운드로 낮췄다.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연금과 복지수당 등을 물가상승률(10%)에 맞춰서 인상하고, 생활임금은 현 9.5파운드에서 내년 4월부터 10.42파운드로 올린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발표에 앞서 11월 12일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세금을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 감세에 방점 지난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시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고소득자와 대기업 법인의 세율을 확대했다. IRA는 내년부터 3년 연속 이익이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최소 15%의 법인세 부과를 규정하고 있다. 개인 납세자의 경우 연간 총소득이 40만달러 이상인 경우에만 세금을 인상한다. 횡재세도 검토 대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31일 백악관 연설에서 “석유 기업들이 주유소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초과 이익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엄청난 수익을 올린 석유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11월 21일 350억유로(약 48조6836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초안을 의결하면서, 에너지 기업에서 횡재세를 걷어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영국 가디언과 프랑스 리베라시옹, 인도 더힌두 등 전 세계 30여 언론사는 11월 15일 공동 사설을 통해 “인류는 화석연료에 대한 중독을 끊어내야 한다. 횡재세로 거둬들인 세금을 취약국가에 재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 6일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막한 제27차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7)에서도 연료 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고 이를 개발도상국들에 나눠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홍기빈 소장은 “감세를 한다고 해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는 않는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지면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의 복합위기 상황에서) 감세와 균형재정만 강조할 게 아니라 늘어나는 재정지출 소요에 맞춰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양극화 부채질하는 정부의 부자 감세(2022. 08. 12 13:33)
- 2022. 08. 12 13:33 경제
- ㆍ경기둔화·인플레이션·금리 인상 겹치면서 계층 간 양극화 커져… “세제개편 땐 더 악화” 30대 초반의 직장인 윤희정씨(가명)는 최근 1개월 유급휴가를 다녀왔다. 3년을 근속한 후 받은 꿀맛 같은 재충전 시간이다. 캐나다 로키산맥 트래킹에 이어 쿠바여행까지 다녀왔다. 희정씨는 “한 달이란 기간을 쉬어본 적은 처음이라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기대감이 컸다”면서 “자연을 좋아해 짧은 휴가로 다녀오기 어려운 곳들, 도시와 단절된 곳들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팀원들의 배려로 휴가 동안 업무와는 철저히 단절될 수 있었다. 충분히 쉬니 복귀할 때도 마음이 가볍다. “휴가가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얼른 가서 팀원들이 진 짐을 내려주고 싶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고 했다. 서비스연맹 유통분과 소속 마트노동자들이 8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희정씨는 “길게 쉬면 생각하는 것도 바뀌고,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고 회사에 없던 애정도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함께 열심히 일한 시간을 마무리할 때 짧든 길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리프레시(재충전) 휴가가 정착되는 건 인재 영입을 위한 방편인 면이 크다”고 말했다. 희정씨가 일하는 ICT 분야의 대기업들은 3~5년 단위로 한 달의 유급휴가를 주는 곳이 많다. 최근에는 차별화를 위해 국내외 휴양지에서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을 제공하는 곳도 많다. 일례로 네이버는 지난 7월 4일부터 매주 직원 10명을 추첨해 강원도 춘천에서 4박5일간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7월부터 국내 워케이션을 허용한 네이버의 관계사 라인플러스는 올해 원격근무지를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확대했다. IT기업만이 아니라 CJ ENM이나 한화생명 같은 대기업도 워케이션을 도입했다. 의무휴업 폐지, 노동자·소상공인 위협 희정씨는 재충전 휴가, 쉴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가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장으로도 퍼지길 희망했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주 최대 12시간인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1개월 단위로 관리해 약 52시간(12시간×4.345주)의 총량만 지키면 되는 방향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을 검토 중이다. 이런 방향으로 근무시간이 조정되면 주 6일 동안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주 60시간 이상 일하다 숨지면 과로사로 인정하는데, 정부가 과로사 기준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셈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7월 21일 “국가가 국민의 일할 자유, 경제적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갖고 있는 ‘시간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정부 안(案)을 지지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추진도 노동자의 쉴 권리를 위협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자정부터 오전 10시)은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종사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오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2년 시행됐다. 이후 유통 대기업들은 의무휴업 등의 영업규제로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이 어렵다며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새 정부는 이에 호응해 지난 8월 4일 규제 개혁을 공언하며 신설한 규제심판회의의 첫 회의를 열고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폐지를 논의했다. 마트 노동자, 소상공인들은 제도 폐지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본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 직원인 이정민씨(가명)는 “휴일엔 손님이 많아 쉬겠다고 말하기 부담스러운데, 의무적으로 쉬는 날엔 눈치 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서 “의무휴업 폐지를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대표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책상머리에서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호연씨는 “우리 가게는 큰 차이가 없지만 대형마트에 인접한 곳에서 일하는 지인의 정육점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지 않은 일요일 매출이 150만원 정도라면, 문을 닫은 날은 200만원을 넘는다”면서 “한 달 100만원이면 소상공인에게는 큰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형마트는 차를 끌고 가 한 번에 쇼핑하고 가버리니 대형마트 근처 지상엔 다니는 사람이 없다”면서 “작은 과일가게나 식품점들이 살아야 거리에 유동인구도 많아지고 손님도 늘기 때문에 소상공인을 위해 문을 한 번씩 닫아주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주에는 미리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장을 보는 사람이 많아 일요일 의무휴업을 해도 매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면서 “직원들이 휴일에 쉴 수 있으면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하고, 손님 응대도 잘할 테니 차라리 그게(의무휴업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온라인 마켓의 비중이 커진 현실을 감안한다면 의무휴업제를 온라인 플랫폼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코스트코 노동자 약 1만명이 소속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은 지난 8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의무휴업 폐지를 논의하면서 노동자 건강권·휴식권 문제를 배제하고 있다”며 “의무휴업을 폐지할 게 아니라 쿠팡, 식자재마트, 이케아 등 유통산업 전반으로 영업 제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도, 개인도 양극화 심해진다 쉴 권리의 격차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기업 간·계층 간 양극화는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2분기 매출 35조9999억원, 영업이익 2조9798억원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순이익 추정치는 역대 최대치인 9조2086억원으로 추정된다. 기업 실적이 좋은 수출기업과 ICT 분야 대기업들은 휴양지 원격근무 등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늘리고 있다. 반면 고용의 대다수(1754만명·81.3%)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매출은 2019년 대비 2020년 0.7% 늘었을 뿐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 분야의 대기업들은 이미 고도로 로봇화·자동화돼 있어 코로나19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았고, 원격근무를 지원할 여력에서도 차이가 나면서 양극화를 더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업 양극화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원인(대기업의 갑질과 중소기업의 허약한 경쟁력)과 단기적 원인(코로나19 위기)이 겹친데다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 전환까지 겹쳐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각각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공정거래 이슈이고, 두 번째는 안전망의 이슈, 세 번째는 구조조정의 문제로, 공정거래 규제를 보다 철저히 하고 혁신적이지만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은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층 간의 빈부격차도 더 커지고 있다. 소득격차보다 자산격차가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6일 발표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2019년 0.404에서 2020년 0.405로 소폭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 정도를 0과 1 사이에서 나타내는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의미다.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2020년 0.339에서 2021년 0.331로 개선 양상을 보였다. 지난 정부에서 기초연금 확대,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재난지원금·소상공인 지원금 등 시장소득 격차를 줄이는 재정정책을 편 결과이다. 하지만 저금리·양적완화에 따른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자산격차는 크게 확대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부채에서 자산을 뺀 순자산 기준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까지 상승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공평한 분배를 실현하고,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추구하는 게 정부 재정이 해야 할 주된 역할이다. 전(前)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은 가처분소득 측면에선 개선을 이뤘지만, 자산에서의 불평등은 여전히 확대됐다”고 말했다. 전방위 부자 감세 택한 정부 기업 간·계층 간 양극화는 새 정부가 대기업·대자산가 위주로 큰 폭의 감세를 추진하면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7월 21일 발표한 ‘2022 세제개편안’에서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하는 초대형 법인에 적용하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전체 법인 수의 0.01%인 103개 대기업이 여기 해당한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는 이들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감세로 약 4조1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상속세도 인하했다. 가업승계제도 적용대상 중견기업의 범위를 매출액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상속공제 한도는 현행 500억원에서 최고 1000억원으로 높였다.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한도는 100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유 교수는 “과세특례 적용 한도액을 10배 인상한 사례는 금번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개편 이외에는 대한민국 세제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면서 “부의 무상이전이자 결과적으로 기회균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 막무가내로 풀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해외 자회사 유보소득의 국내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해외 자회사로부터 국내 모회사가 배당금을 수취하는 경우, 그 배당금 수익을 국내 모회사의 소득금액에 합산하지 않도록 개정했다. 적용대상이 되는 해외 자회사의 범위도 지분율 기준 현행 25%에서 10%로 인하해 적용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정부는 외국에 유보된 해외 자회사의 재원이 100조원 이상으로 이 돈이 국내로 송금되면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 효과를 개편의 이유로 들었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혜택은 국내 모회사를 지배하는 대주주(재벌의 경우 재벌일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유 교수는 “배당금을 국내로 송금할 때 한국에서 과세하지 않으니 일단 재정수입이 줄고, 두 번째로 세금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빼주니 국내 모회사 주주들의 배당이익이 굉장히 높아진다”면서 “해외 자회사를 가진 기업의 대부분이 재벌기업이라는 점에서 이중과세를 빼준다는 합리적 근거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재벌기업의 핵심 주주들, 재벌일가와 그 방계의 조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자회사를 이용한 조세 회피 우려도 나온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정책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려 일자리를 늘리려는 리쇼어링 정책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벌·고액 자산가를 위한 ‘맞춤형 감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와 관련해 법인 단위로 증여이익을 산출하는 방식을 사업부문별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수출목적의 국내 거래는 증여이익 계산에서 빼줬다. 국내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도 완화해 지분율 요건을 삭제하고, 보유 금액 기준은 종목당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확대했다. 부동산세제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을 주택 수에서 가액기준으로 바꿔 다주택자 중과세를 없앴고 세율도 낮췄다. 2023년부터 주택분 종부세 기본 공제 금액은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오른다. 재산세의 경우 1세대 1주택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45%로 낮췄다. 재산세, 종부세 등 보유세의 완화는 다주택 보유자가 집을 팔 유인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변호사)는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 서울의 경우 2022년 12.9로 과거 평균(8.6)보다 크게 뛴 상태”라면서 “세제 감면과 규제완화가 주택시장의 안전성, 국민의 부담 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호림 교수는 “총액기준을 가액기준으로 바꾼 건 정부가 부동산 임대업을 장려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양두구육’ 세제개편안 정부는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이는 구색맞추기에 가깝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에 따른 감면세액은 약 2조3000억원이지만 대상자인 중저소득 근로자가 약 1800만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1인당 감세액은 약 12만6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연봉 2000만~5000만원 근로자의 식대 비과세 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렸는데 이로 인한 혜택은 연간 22만원 정도다. 협력업체의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유지·강화해야 할 투자상생협력세제는 일몰 폐지됐다. 정세은 교수는 “상위 100대 기업 법인세 감세의 이익이 대주주에 집중되고,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의 대주주 범위를 줄여주는 것은 최상위 주식 부자들에게 유리한 세제 결정”이라면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보통 부자도 아닌 최상위 부자를 위한 감세”라고 규정했다. 정 교수는 이번 세제개편안이 명분은 물론 실리도 놓쳤다고 평가했다. “부자 감세라는 점에서 명분도 없지만,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해서 투자가 느는 것도, 투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고용이 느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리도 놓쳤다. 최근의 투자는 로봇화·자동화 투자이기 때문에 투자가 자연히 고용을 늘린다고 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정 교수는 “부자들의 늘어난 소득이 자산으로 축적되고, 자산에서 소득이 더 발생하므로 다시 소득양극화를 자극할 것”이라면서 “저소득층 내에서 저임금 경쟁이 일어나 저소득층 소득감소가 일어나고 부동산에서 더 높은 불로소득이 기대된다면 고소득, 고자산 계층의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상승, 임대료 상승 등의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7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안 평가와 제언 토론회에서 유호림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새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평가 및 제언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자들이 덜 낸 세금, 결국 서민 부담으로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세제를 합리적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세계적 흐름은 증세에 가깝다. 각국은 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유동성 회수를 목적으로 한 통화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경기침체와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증세를 추진 중이다. 대자산가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슈퍼리치세’나 에너지 위기 속에서 떼돈을 번 석유화학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이 검토되고, 법인세율 인상도 논의된다. 예컨대 미국 상원은 지난 8월 6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와 부자 증세 등의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479조원), 처방약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전(全)국민건강보험에 64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원 마련을 위해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영국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2023년부터 현행 19%인 법인세율을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대신 타격을 입은 실업자와 자영업자에게는 재정지출을 통해 평균 소득의 80%를 계속 보전해주기로 했다. 유호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19 위기상황을 4단계(위기·봉쇄·전환·포스트코로나)로 구분하고 전환과 포스트코로나 단계에서는 타격을 입은 경제 주체들, 즉 자영업자와 저소득자 계층에 재정지출을 늘리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증세로 조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면서 “지금 우린 경제적 타격을 입은 계층에는 그다지 큰 혜택을 주지 않고 증세 대상인 자산가와 고소득자에는 엄청난 감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낙수효과에 기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낙수효과는 감세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세수가 확충되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강 교수는 “선순환 논리가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재정준칙 등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경우 조세정책의 재분배 기능과 경제 안정화 기능이 약화되고, 그 결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 성장잠재력도 약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보수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안전성도 해칠 수 있다. 과거 MB 정부는 법인세율을 22%로 인하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약 4년간 26조7000억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감면했다. 같은 기간 기업 투자는 약 23조원으로 직전 4년간(2005~2008년)의 투자총액보다 10조원 이상 줄었다. 낙수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기업 사내유보금만 2009년 약 72조원에서 2011년 약 165조원으로 늘었다. 2012년 이후엔 세수가 줄어 2014년 약 11조원의 결손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부족한 세수와 재정적자를 보전하려 담배소비세와 주민세를 인상하는 대대적인 서민 증세를 단행했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5년간 누적 60조원 정도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병구 교수는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정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건 한계가 있고,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연세수 증가분을 언급했는데 최근 경제전망치가 하향조정되면서 그것도 상당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건 맞지만 윤 정부가 감세를 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자는 기조라는 점에서 재정운용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지상주의 벗어나 해결책 고민해야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부가 손을 떼면 공공성이 흔들린다는 걸 목격했다. 공공보건 인프라가 부족하면 간호사가 과로로 죽고, 상하수도 예산을 줄이면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는다. 부자 감세로 인한 복지지출 감소는 서민의 삶을 위협한다. 이미 정부는 노인일자리 제공 같은 복지 부문의 정부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도심 복합사업에서 공공에만 부여하던 용적률 상향과 토지 수용 등 도시 건축 특혜를 민간에도 적용하면 개발이익이 건설사나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민간사업자로 집중될 수 있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계획하던 공공주택 공급을 줄이는 대신 초고층 빌딩을 세우면 주거빈곤 문제의 해결은 한층 더 멀어진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부동산 개발을 장려하면서 민간업자에게 이익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호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에 자유주의 경제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자유주의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것”이라면서 “이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고 부동산 정책을 펴는 건 공공성의 위기이자, 정부 역할을 민간에 넘기는 정부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점차 가시화하는 탄소장벽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세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태일 교수는 “법인세 인하는 사실 초대기업만 상당한 이득을 보는 구조로, 굳이 법인세를 낮출 거면 하청기업과의 상생이나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과 연계해서 혜택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탄소세와 같은 새로운 세제 도입도 논의할 시점이 됐다.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겨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그 재원을 에너지전환과 취약계층에 지원하는 내용이다. 강병구 교수는 “탄소세 도입과 배출권거래제 활성화와 같은 세제 정책으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탄소세로 확보한 세원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재원으로 일부 쓰고, 한편으로 세수의 역진적 성격을 완화하는 탄소배당금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도 세제로 풀어야 할 과제다. 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고질인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에 대규모 감세를 제공해 주주와 대기업 노동자에게 이익을 집중시키기보다 적정한 수준에서 과세하고 그 재원을 중소기업과 그곳에서 종사하는 근로자 지원에 활용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김유찬의 실용재정](11)부자감세로 재정건전화? 정부의 난센스(2022. 07. 22 11:15)
- 2022. 07. 22 11:15 경제
- 윤석열 정부가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를 제약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고 실효성을 주기 위해 법적 근거를 두겠다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서 재정수지 증가와 국가채무 누적이 예상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종합적·체계적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양극화 등 중첩된 위기의 경제사회적 여건에서, 최후의 구원자인 정부의 재정지출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규범을 서둘러 도입하는 일이 과연 현실적으로 적합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제 손발을 묶는 행위다. 실사구시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정책당국자들의 사고 틀에서 나올 수 있는 해법인지 허탈하고 실망스럽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2022 세제 개편안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전임 정부가 확장재정을 통해 국가부채를 늘렸으므로 재정정책 기조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라는 예외적인 국면에 있었다. 코로나19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여건이라는 의미다.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매우 신중한 수준의 확장정책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코로나19 정점기인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의 경우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26.0%포인트 증가한 데 비해 한국은 7.6%포인트에 그쳤다. 주요국 재정준칙 운영성과 평가 1990년 5개국에 불과하던 재정준칙 도입 국가가 2012년 76개국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으나, 이들의 재정준칙 형태와 내용은 다양했으며 법제화의 수준도 상이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는 많은 나라에서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필요했고,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던 국가들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엄격한 준칙의 적용은 적극적 재정운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재정준칙은 더 이상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지 않고, 유연성과 강제성의 조화가 요구됐다. 준칙의 내용, 준칙 이탈 후의 복귀 방법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지면서 준칙의 운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관료 전문가들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인해 재정준칙을 이미 도입한 유럽국가들도 재정준칙을 완화하거나 효력을 정지시켰다. 유럽연합(EU)은 재정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을 도입해 엄격히 시행해 왔으나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재정준칙 준수를 일시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엄격한 재정준칙을 유지한 유로존 일부 국가들의 경우 경제의 근본역량 자체가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의 재정정책은 코로나19 이전과 매우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회복까지는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고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어떻게 정착되는지를 보면서 재정준칙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위기 시기에는 재정이 위기극복, 거시경제 안정화, 복지제공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은 경기 대응과 예기치 못한 국가적 위기의 재정 대응에 유효할까. 정부 역할의 적극성과 유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가부채 수준의 제한은 정부투자를 통한 국가경제의 위기극복을 어렵게 한다. 민간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켜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기침체 때 재정지출 확대 및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한 효과가 더욱 크다는 국제기구들의 최근 연구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경제위기 때 정부지출 확대를 통한 고용보험 등 ‘자동안정화장치’는 경기 변동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위기회복 과정에서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려 재정적자가 감소한다. 이러한 적자감소의 속도는 경제가 회복되는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보다 저금리와 저물가 기조에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존 재정균형론이 이를 간과한 것은 명백한 한계로 지적돼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주거권네트워크, 집걱정없는세상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주거대책과 감세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불확실성이 높은 현시점에서 재정준칙을 논의하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오히려 재정을 덜 쓰는, 잘못된 경기 대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진행되는 시기임에도 위기의 경중을 보는 시각에 따라 재정준칙 적용의 예외조항을 둘 것인지 그 자체를 놓고 논란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전문가 집단의 의견도 상이한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부자감세하면서 재정건전화라니 재정준칙 도입이 복지지출 증가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성장 및 양극화의 해결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재정준칙은 1990년대 이후 복지제도가 충분히 확충된 상태에서 과도한 복지지출 증가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는 복지를 더욱 확충해 나가야 할 한국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재정안정화 차원에서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재정지출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한 디지털 기술변화는 큰 폭의 정부투자를 필요로 한다. 재정준칙에서 더 나아가 고령인구의 사회적 교육 및 일자리 재교육 마련도 시급하다. 재정건전성을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시도 중인 부자감세를 중단해야 한다. 많은 정부가 경제위기에서 일반적으로 중저소득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매우 특별하게도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소득 최상위 계층에게만 유리한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은 결국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상위 1% 계층에게 귀속될 것이며, 부동산에 대한 감세는 고가주택 소유자들에게, 그리고 상속증여세 인하는 역시 자산 상위계층에게 혜택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들의 계좌에 소비로도 투자로도 사용되지 않고 고여 있는 여분의 자금을 더 늘려주는 건 국민경제에 어떤 형태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정건전성만 해친다. 부자감세를 하면서 재정건전성을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 김유찬의 실용재정
- [김유찬의 실용재정](10)법인에 대한 감세가 더 필요한가(2022. 07. 01 14:51)
- 2022. 07. 01 14:51 경제
- 기획재정부가 지난 6월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법인세율 인하를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새로운 성장모델을 추구한다면서 핵심 정책수단이 법인세율 인하(최고세율 25→22%)란 말인가.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취임 후 지금까지 짧은 기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를 강조했다. 왜 그것이 경제위기 시기에 사람들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에는 인색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추 부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 사진 공동취재단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이 예사롭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과 원자재, 에너지 가격의 문제도 심각하다. 힘든 것은 서민들이다. 위기라면 국가와 국민의 위기이지 기업의 위기는 아니다. 정부는 2022년 세입전망을 53조원이나 늘려 잡았는데, 법인세 분야에서 실현될 세입 증가 비중이 크다. 법인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이를 위기의 징후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의 세 부담을 경감시켜주겠다면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4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법인 감세’ 부당한 여러 이유 우선 우리의 재정 상황이 감세를 허용하는지 여부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규모 국가적 투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소비자들의 에너지 사용 행태의 보정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정부는 미루고만 있었다.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는 더 두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올해 한전의 적자는 30조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소득지원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삶은 더 고단해질 것이다. 요컨대 높은 재정수요와 감세정책은 양립하기 어렵다. 국가부채를 크게 늘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법인에 대한 감세가 공정한지 생각해보자. 법인소득은 주주들에게 경제적으로 귀속된다. 법인에 대한 세금 감면은 다른 시민에 비해 기업의 대주주들을 가볍게 과세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인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서 지급되는 배당소득의 69.3%가 상위 1% 계층에 귀속된다. 대부분의 배당소득이 소수 특권층의 것이니 주식의 소유도 그렇다. 기업에 대한 낮은 법인세율은 결국 이들 소수 특권층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법인에 대한 감세는 불공정한 과세를 더 불공정하게 만든다. 기업은 과연 세금을 얼마나 부담하고 있을까. 우리 정부나 기업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고 강조하면서 국내 법인들이 충분하게 과세부담을 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2018년 기준 OECD 국가들을 보면, GDP에서 차지하는 법인세 평균 비중이 3.1%인데 비해 한국은 4.2%로 집계됐다. OECD 평균보다 한국 법인세 비중이 높은 이유는 법인에 대해 충분히 과세하기 때문이 아니라 GDP에서 차지하는 법인의 소득 비중이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한국 법인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5%로, 미국의 7%, 영국의 13.2%, 프랑스 5.5%, 독일 8.3% 그리고 일본의 13.2%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법인의 소득이 높은 이유는 법인에 대한 낮은 세율과 높은 조세감면,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비용 분담 그리고 기타 조세 외적인 특혜로 생긴 법인의 이익을 기업에 유보시키고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법인세율 인하가 문재인 정부에서 인상한 법인세율 3%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올린 최고세율 25%는 과세표준이 3000억원을 초과하는 수십개의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었다. 다른 99.9%의 기업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주목할 사안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에 통합투자세액공제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기재부가 슬그머니 도입한 제도로,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 제도의 효력은 강력했다. 기업의 실효세율을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해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효과를 상쇄했다. 국세통계자료에 기초한 계산에서 법인의 실효세율이 2019년 19% 수준에서 2020년 17%대로 오히려 낮아졌다. 통합투자세액공제제도는 2020년 12월 도입했으나 2020년 투자분에 대해 세액공제를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법인세율의 세 부담 증가 효과를 통합투자세액공제의 세 부담 경감 효과가 눌러버렸다.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기본공제와 추가공제를 제공하는데 대기업에 대한 기본공제율은 높지 않으나, 추가공제에서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과 구별하지 않고 ‘투자금액의 3%’라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한다. 추가공제의 조건은 과거 3개년도의 평균 투자금액을 넘는 규모의 투자를 이행하는 경우로, 기업으로서는 투자를 몇년에 한 번씩 모아서 하는 방식으로 추가공제 요건을 손쉽게 맞출 수 있다. 이번에 법인세율 인하를 강행한다면 정부는 이미 수조원대의 연수익을 누리는 소수의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추가적인 세금 감면을 선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인세를 낮추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느냐다. 특혜적 과세로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고, 기업이 이미 낮은 세 부담을 하고 있더라도 법인세율을 추가적으로 낮춰 투자와 고용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그렇게 할 필요도 있다. 법인세 감세가 투자를 늘리고 늘어난 투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학계의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법인세 감세의 투자 유인 효과, 경제성장 촉진 효과 그리고 외국자본 유인 효과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 많은 투자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성격의 자동화 설비투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법인세 감세의 명분은 더 허약해진다. 특혜적 과세, 경제에 해롭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는 또 해외법인이 국내 본사에 송금하는 경우 해외소득을 비과세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려 국내 일자리를 늘리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리쇼어링 정책에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해외법인의 국내 송금 비과세는 이와 정반대로 가는 정책이다. 기존의 정책과 역방향의 정책을 채택하려면 우선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려 국내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책이 어떤 면에서 잘못됐다는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특권계층에 대한 특혜적 과세를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와 기업단체들은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는 정부 정책으로 포장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면 이러한 과세는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일부 계층에 부를 누적시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력 감소, 내수 위축으로 이어지게 한다. 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롭고 비효율적이다.
- 김유찬의 실용재정
- 감세, 감세, 감세…종착역은 어디인가(2022. 06. 10 14:06)
- 2022. 06. 10 14:06 경제
- ㆍ감면 혜택, 대기업·부유층에 집중…서민 증세로 귀결될 가능성 친기업·친시장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감세’에 시동을 걸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낮추고,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와 상속·증여세의 납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다. 세 부담을 낮추면 시장과 민간 중심으로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부자 감세란 반론도 나온다. 감면 혜택이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될 것이란 의미다. 증세 없는 감세 추진은 ‘재정건전성 강화’라는 현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과거 노골적으로 감세정책을 추진한 이명박(MB)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잇따른 감세가 세수 부족을 불러오고 결국 서민 증세로 귀결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6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법인세와 가업 상속·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편 등을 통해 기업주도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법인세·보유세 등 얼마나 낮추나 법인세율 인하 방침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2일 경제단체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인세 및 가업 상속·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편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도 “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주요 경쟁국 대비 우리나라의 세율이 높고, 조세 경쟁력도 좋지 않다는 측면에서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했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기업이 제대로 경영하려면 정부가 나서 법인세율을 낮추고 승계와 관련한 세제 부담을 풀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추 부총리는 3년 전에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던 2019년 3월 자신이 주최한 ‘기업의 족쇄를 풀어라’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기업이 법을 어기고 잘못한다면 처벌해야겠지만 무차별적으로 기업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식의 반기업 정책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고 경제 활력을 저해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듬해 법인세 최고세율(25%)을 20%로 인하하고 과세표준 구간도 현행 4개에서 2개(2억원 이하·2억원 초과) 구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현재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회원국 38개국 평균(21.5%)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최고세율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MB 정부에서 25%에서 22%로 낮아졌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25%로 높아졌다. 추 부총리는 당시 “문재인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린다면 MB 정부 때인 22% 수준으로 낮아지고, 현재 4단계인 과세표준 구간도 단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구체적인 내용은 7월 마련될 세법 개정안을 통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개편은 재계의 숙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5월 15일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인세 세제 개선 7대 과제’에서 “2020년 기준 OECD 38개국 가운데 과세표준 구간이 4단계 이상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현행 법인세 과세체계를 2단계로 단순화하고, 최고세율을 25%에서 20%로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추 부총리가 발의한 법안과 내용이 유사하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더 나아가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이후 국내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2018년 마이너스(-)2.3%, 2019년 -7.5%로 두 해 연속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각각 전년보다 13.9%, 24.2% 늘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높은 세율 때문에 국내 투자를 줄인 반면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해외 투자를 늘렸다는 의미다. 현 정부는 1가구 1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도 낮출 예정이다. 종부세의 경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1주택자에 대해서는 올해에 한해 공시가격 대신 2021년 수준의 공시가격을 적용하고 현재 10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산세도 2020년 수준이나 그 이하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주택의 세 부담이 2020년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아울러 재산세와 종부세 통합을 국정과제로 추진한다. 아파트는 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상향 조정하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다. 상속세 인적 공제를 확대하고, 가업상속공제 요건은 완화될 전망이다. 현재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은 인적 공제 등을 통해 통상 재산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중소·중견기업이 가업을 상속할 때는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 혜택을 받는다. 증여세의 경우 공제 한도가 자녀 1인당 10년간 5000만원인데, 1억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추 부총리는 최근 “(중장기적 과제로) 상속세 공제 항목을 늘리고 세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주식·금융투자상품 등의 양도소득세는 올해 하반기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종목당 100억원 이상의 초고액 보유자 등만 부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수 줄고 부자 감세 논란 커지고 감세 규모가 커질수록 세수결손 우려도 커진다. 정부가 최근 초과세수분을 반영한 올해 법인세수 규모는 약 104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전체 국세수입의 26.2%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하면 세수가 수조원대 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9년 신고 법인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추 부총리가 과거 발의한 법안을 기준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0%로 인하하고 과표 구간을 단순화했을 때 법인세수는 연평균 5조7000억원, 5년간 28조5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또 1주택자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낮춰 적용할 경우 올해 주택분 보유세는 1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부자 감세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는 최근 성명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산과 소득불평등에 따른 심각한 양극화이며 이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수적인데도, 정부는 고소득 고자본 기업에 법인세를 인하해주겠다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기업의 부담이 늘었다는 재계 주장에 대해서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연구개발비 등 투자에 대한 공제가 확대되면서 실제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2019년 대비 2020년에 1.3%포인트 하락했다”고 반박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들을 보면 증세는 없고 감세만 늘어놓고 있다”며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 부동산 세제 완화와 주식양도세 폐지 등은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만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불만도 크다. 윤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반대하는 노동계와 주무장관의 만남에서도 노·정 간 갈등이 그대로 표출됐다. 지난 5월 24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민주노총을 찾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만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쓴소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직후인 3월 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 6단체장과 오찬 회동에 앞서 차를 마시고 있다. 당시 윤 당선인은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 국회사진기자단 정부의 최근 민생대책에 담긴 ‘보유세 부담, 2020년 수준 회귀’ 또한 부유층의 혜택이 훨씬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공시가·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적용하지 않고 정부안대로 ‘2020년 보유세 수준’을 적용할 경우 시가 10억원 미만 주택 보유자의 올해 보유세는 7만원가량 줄어드는 반면 시가 50억원대 고가 아파트는 1700만원 넘게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주식양도세 부과 대상을 100억원 이상 초고액 보유자로 축소할 경우 세수가 크게 감소하고, 부과 대상도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란 분석 결과도 있다. 현재 주식양도세는 종목당 10억원 또는 코스피 1% 이상(코스닥 2%·코넥스 4%)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부과한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주식양도세 과세 대상 축소 정책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최근 4년간 양도차익 100억원 이하에 해당하는 대상의 양도소득세를 제외할 경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의 50.7%인 약 2조5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수 있다”면서 “2020년 현재 상장주식 양도세 신고 건수는 2만7163건이고, 같은 해 개인투자자 수가 913만명에 이른 것을 고려했을 때 개인투자자 중 양도세 과세대상이 되는 비율은 0.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부자 감세의 경제적 효과는 어떨까. 영국 런던정경대 데이비드 호프 박사 등 연구진이 2020년에 한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일본 등 OECD 회원국 중 18개국이 1965∼2015년 사이 실시한 30번의 주요 부자 감세 정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자 감세 정책은 소득 기준 상위 1%의 세전 소득점유율을 감세 후 5년간 평균 0.8%포인트 높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나 실업률에 미친 영향은 통계적으로 0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균형적 시각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현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부동산 문제의 경우 집값 급등에 따른 중산층의 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데 여야가 공감하고 세제 완화에 합의한 사안”이라며 “다만 과거 문재인 정부처럼 다주택자를 무작정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징벌적 세금을 부과할 게 아니라 주택시장을 어지럽히는 투기의 대상과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해서 시장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부담은 누가 떠안나 세수는 줄어들지만 증세 논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5년간 약 209조원이 필요하다. 부족한 세수를 어디서 메울까. 윤석열 정부는 초과세수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부족한 세수는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기재부가 최근 정부 전 부처에 배포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을 위한 추가 지침’을 보면 모든 부처는 재량지출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10%가량을 의무적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 지난 3월 지침에서는 원점 재검토 사업 대상을 국고보조 사업에 한정했지만, 이번 추가 지침에서는 ‘모든 재량지출’로 확대했다. 대상은 인건비와 국고보조 사회간접시설(SOC) 사업비 등이다. 다만 지출의 특성상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2017년 7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날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법인세율 25% 상향 조정 등)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며,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말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세은 교수는 “감세정책으로 부족해진 세수는 다른 예산의 지출을 줄이는 식으로 메울 가능성이 높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친기업과 안보 강화를 표방한 현 정부에서 경제나 국방 분야 예산을 줄일 가능성은 낮다”면서 “결국 장애인 사업을 비롯한 복지 분야와 각종 기금 등 주목도가 낮은 사업의 예산을 줄이거나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세입 기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조치들이 낙수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을까.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주류가 됐던 보수적인 경제학, 즉 감세와 규제 완화로 기업과 부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성장이 촉진되고 그 이득이 모두에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낙수효과 주장은 이제 힘을 잃고 말았다”고 말한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지난해 발표한 2021년 재벌사내유보금 현황을 보면, 2020 회계연도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1045조1301억원으로 추산된다.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과 실증되지 않은 낙수효과, 과거 정부의 전례 등에 비춰 결국 서민 증세만 불러올 것이란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던 박원석 의원(정의당)은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MB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에서 22%로 3%포인트 줄어든 이후 법인세 실효세율은 3.58%포인트 감소한 반면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은 0.4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이 여윳돈으로 투자를 할 것으로 보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기업은 미래 전망에 따라 투자를 결정할 뿐이다. 감세로 기업의 성장기반을 만들겠다는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들이 제도권에 유입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박근혜 주택, 감세 혜택 줘야 하나(2020. 03. 13 15:12)
- 2020. 03. 13 15:12 정치
- ㆍ서초구 지난 1월 논란 끝 감세 조례안 통과… “지지자 감정 자극 우려” 이유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어디까지 해야 할까. 기초자치단체별로 혜택 여부가 갈린다면 정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매한 서초구 내곡동 주택 / 연합뉴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서초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내곡동 주택에 대한 재산세 감면 여부를 놓고 시끌시끌하다. 전직 대통령의 주택 재산세 감면 조항이 담긴 ‘서초구 구세 감면 조례안’은 서초구 의회에서 부결돼 일몰됐다가 지난 1월 서초구청이 발의해 논란 끝에 통과됐다. 2017년부터 재산세를 감면받아온 박 전 대통령은 올해에도 혜택을 받게 됐다. 서초구와 구의회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들은 ‘최소한의 예우’로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조세 형평성 위배’를 이유로 반대한다. 서초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 전 대통령 주택에 대한 지방세 감면 혜택의 근거는 서초구 구세 감면 조례 제7조(전직 대통령 주택에 대한 감면)다. 조례에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제1호에 해당하는 주택(경호안전상 제공한 별도주거지 혹은 본인이 마련한 별도주거지)에 대해서는 재산세를 면제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군의 감면 조례에 의한 재산세 감면은 종합부동산세법에 따라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종부세를 포함해 2017년부터 575만2800원의 보유세를 감면받았다. “탄핵 중엔 예우 박탈해야” 해석도 서초구 구세 감면 조례에 담긴 전직 대통령 주택 재산세 감면 규정의 역사는 4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1월 박정희 정권하에서 제정된 ‘서울특별시 전직 대통령의 주택에 대한 재산세 불균일 과세에 관한 조례’가 현재 감면 규정의 근간이다. 당시 서울시 자치구 전역에서 통용됐던 규정은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초·강남·송파·동작·마포 등 13개 구에만 남았다. 서울 13개 구를 제외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조례를 통해 전직 대통령의 세금 감면 규정이 있는 곳은 없다. 김정우 서초구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군사독재시절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만든 규정”이라며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는 조례이기 때문에 보편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해당 조례에 따라 감면 혜택을 받은 사례는 과거 서울 동작구 소재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주택을 제외하면 박 전 대통령뿐이다. 감면 조례가 있는 소재지에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주택과 마포구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택 등은 ‘고급주택’으로 분류돼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고급주택은 건축물 연면적 331㎡, 대지면적 662㎡를 초과하고 건축물 가액이 9000만원을 넘는 주거용 건축물과 부속토지를 뜻한다. 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주택은 건축물 연면적 313.64㎡(주차장 면적 제외), 대지면적 406㎡로 고급주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의 감세 혜택 문제가 불거진 배경 중 하나는 ‘탄핵’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기 중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도 박탈당한 상태다. 다만 경호·경비는 예외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임기 만료 전에 퇴임한 경우에도 5년(최대 10년) 동안 경비·경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역시 2027년 3월까지 경호 대상이 된다. 학계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 삭제해야”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초구는 예우가 박탈된 대통령도 경호·경비에 대한 예우를 받을 수 있다는 대통령경호법에 근거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산세 감면 혜택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제1호’는 경호의 일환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경호안전상 별도주거지’를 무상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경호에 대한 예우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주택을 제공받을 자격이 있다는 해석이다. 별도주거지는 본인이 마련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직접 주택을 구입했으니 주택 무상 제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소한 혜택’인 재산세 감면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여기에 특정시설 지원을 위해 지방세 감면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지자체가 세율경감과 세액감면, 세액공제를 할 수 있다는 지방세특례제한법 제4조를 끌어다가 법적 근거를 강화한다. 박 전 대통령의 주택을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특정시설로 판단한 것이다. 서초구 재산세과 관계자는 “다른 대통령이 받는 혜택과 비교하면 재산세 감면은 최소한의 예우에 해당한다”며 “감면 혜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서초구 집행부의 공통된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서초구의회 내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입장도 서초구와 다르지 않다. 최종배 서초구의원(미래통합당)은 “내곡동 주민들은 ‘해당 부분(박 전 대통령 주택) 때문에 주택가격이 올랐고 오른 부분만큼 재산세 납부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며 “주민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산세) 감면이 없기 때문에 못 산다고 하면 결국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고 역으로 묻는다”고 말했다.(1월 20일 서초구의회 249회 임시회 1차 재정건설위원회)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경호 지원은 본인이 구속돼 있는 동안에는 중단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경호 지원 이 중단된 만큼 경호 유지 규정을 근거로 부여하는 세제 혜택도 중단돼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자체가 지방세를 감면하려면 지방세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서초구는 심의과정 없이 유효기간 연장을 통해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김 의원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적용돼야 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법이 아닌 시행령을 상위 규정 삼아 만든 조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전 대통령 주택에 대한 세금 감면 규정은 법률에서 위임하는 조례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법적인 근거를 전면적으로 개정하거나 관련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 제85조는 ‘전직 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전직 대통령에 관한 법률이다. 이 때문에 아예 ‘헌법에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고 보아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헌법주석서, 법제처, 2010)는 의견도 나온다. 이경선 홍익대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전직 대통령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예우의 내용이 일반 서민의 삶을 기준으로 했을 때 너무나 과도하고 예우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 규모와 지출 내역도 매우 불투명하다”며 “해당 법은 낡고, 과잉적이며, 기득권 내지 특권적인 문제점을 다발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입법비평, 홍익법학 2019) 그럼에도 서초구는 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산세 감면 혜택 규정을 지키려고 하는 걸까. 이들은 해당 조례안 폐지가 정무적 판단의 영역에 있다고 본다. 지난해 10월 전직 대통령 주택에 대한 감면 규정을 삭제한 개정조례안이 발의되자 서초구 재산세과는 “해당 조항이 삭제될 경우 해당 감면대상자의 지지자들 감정을 자극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의회 전문위원 역시 의안검토 보고서에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명시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섣불리 폐지했다가 국론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서초구에 또 대규모 집회가 발생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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