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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후]누가 경제위기를 키우는가(2023. 10. 27 11:20)
- 2023. 10. 27 11:20 경제
- “가계와 기업이 힘들면 정부가 지출을 늘려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데, 곳간을 닫아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안광호 기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지난 10월 18일 내놓은 ‘정부지출 감소가 경제위기의 진앙지’ 보고서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경제의 핵심 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정부가 나서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건전재정’이라는 명분 아래 되레 지출을 줄이며 경제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그나마 0.6% 성장했지만, 정부지출 기여도는 마이너스(-)0.5%포인트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수 부족 사태와 관련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연일 강조한다. 증세를 통한 안정적인 세수확보나 적극적인 재정운용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세수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예산 불용(미집행)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강제 (예산) 불용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일선 현장에서 순탄하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취약계층 대상 복지지출이 우선 삭감될 여지가 크다. 조세지출은 오히려 늘었다. 검증된 적 없는 ‘낙수효과’를 믿고 세 부담을 줄이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리란 기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자린고비 재정’으로 일관하는 동안 가계와 기업 등 민간의 부담은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명목 GDP 대비 가계와 기업의 빚은 올해 1분기 224.5%에서 2분기 225.7%로 늘었다. 역대 최고치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특히 가파르다.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10월 19일 기준)에서만 9월 말 대비 약 3조4000억원이나 늘었다. 계속된 고금리 상황에서 민간의 빚이 늘면 소비와 투자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째 감소세다. 이러니 소비, 투자, 수출 등이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위기’의 발생 책임이 지출을 줄인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취재 후
- “협동조합 민주적이고 경제위기에 더 강해”(2021. 12. 10 14:35)
- 2021. 12. 10 14:35 사회
- ㆍ한국서 열린 세계협동조합대회 참석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 금전적 영리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진다면 어떨까.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회적경제는 ‘구성원 간 협력·자조를 바탕으로 재화·용역의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한국사회적경제진흥원)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100대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관련 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년 만에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기업이 2만개에서 3만1000개로 증가했다”며 “한국은 농번기에 서로 일손을 덜어주던 두레·품앗이 같은 협동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온 전통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 이준헌 기자 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마리 J. 부샤 교수를 지난 12월 3일 만났다. 그는 캐나다 퀘벡대학 몬트리올 캠퍼스 교수로, 사회적경제 분야를 통계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연구해왔다. 사회적경제를 통계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연구서 <사회적경제의 힘: 통계 방법론과 해외 사례들>(공저)도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퀘벡은 사회적경제가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활동가나 연구자들의 단골 견학지역이기도 하다. 그에게 사회적경제 통계의 의의와 필요성과 더불어 사회적경제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에 관해 들었다. 마리 부샤 교수는 “한국과 퀘벡이 상호협력해 서로 배우고 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에 관한 통계는 왜 필요한가. 어디에 사용되는가. “정책 계획을 더 잘하기 위해선 숫자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통계라는 것이 왜 필요하냐면, 사회적경제 분야가 얼마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지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공공의 자원, 세금으로 집행이 되는 부분도 있다. 공공영역에서는 어떤 자원이 얼마나 투입돼 얼마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측정해야지만 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에 대한 통계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의 통계를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 통계, 경제 통계를 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경제 통계가 다른 영역과 다른 점은, 일반 경제(기업) 통계는 대부분 수익 본위다. 특히 투자자를 위해 그렇다. 사회적경제나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사람중심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단순히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계지표도 사람 중심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협동조합을 통해 얼마나 자기효능감이 높아졌느냐와 같은 감정적인 지표도 본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투자 대비 효용 같은 것을 보겠지만 사회적경제 통계에서는 사회복지적인 것도 다룬다.” -사회적경제 통계를 낼 때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통계를 위한 기준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그 자체를 정의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 부문 통계가 따로 없기 때문에 국가 통계에서 사회적경제 부분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점이 힘들다. 어떤 조직이 진짜로 사회적경제 조직인지 알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자체가 굉장히 다양하고 다양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지표로서 뭔가를 콕 집어 표준화하는 일이 어려운 편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일반 통계는 얼마나 많은 돈과 가치가 생산되는가, 얼마나 많은 직원이 있는가를 다루지만, 사회적경제를 위한 통계는 또 다른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존엄성, 사회적 안정성, 지역사회와의 결합 등은 기존의 통계에서 잘 측정이 안 된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했는가’처럼 더 정교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제도적으로 사회적경제 통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뒷받침할 방법은 없나. “조직 분류 차원에서 보자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비영리NGO 등을 별도의 분류를 통해 등록하는 것이다. 또한 직업설문이나 가계조사에서도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가’란 질문을 넣는다면 유용하다. 즉 우선 사회적경제 부문을 정의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질문지를 보내 구체적인 걸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정의와 범위가 법안에 있어야 우리가 알 수 있다. 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퀘벡을 예로 들면, 퀘벡에는 사회적경제 관련 법이 있고 어떻게 그 분야를 통계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의 강점은 무엇인가. “협동조합은 기본적인 철학이 사람 중심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일반 기업과 달리 투자자에 의해 결정이 되지도 않으며, 배당금을 줄 필요도 없다. 자본이 조합원의 소유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들은 지분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아닌 자가 이익을 가져갈 우려도 없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면 2008년에 많은 사업체가 무너졌지만 같은 규모라면 협동조합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컸다. 재정구조가 이익중심적이 아니고 내부지향적이기 때문에 더 탄력성이 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사회적경제가 도움이 된 사례를 소개해달라. “내가 속한 대학에 학생조합 네트워크가 있다. 학생조합이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마스크를 사와 멤버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이전에 학생이었던 사람들과 교수 등 수천명에게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그 노동자들은 할 일이 늘어나고 우리는 마스크를 구했다. 서로서로 네트워크로 연결이 됐던 덕에 마스크를 구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의 원칙 중 ‘조직 간의 협동’이 유용하게 작동한 사례다. 또 다른 예로, 공동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배달노동자협동조합이 와서 음식을 노숙인들에게 가져다줬다. 노숙인들이 코로나19 기간에 길에 사람이 없어 구걸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 정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때, 사회적경제가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관료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협동조합이 했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수요가 있을 때 가용한 자원을 즉시 동원할 수 있다는 민간의 강점이 있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단순히 멤버십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협동조합인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과 코스트코 회원과의 차이점은 협동조합의 경우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은 1인 1표, 매년 모여 위원회를 선출하고 투표로 중요한 것을 결정한다. 내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민주적 절차를 경험하고, 이전에 민주적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조합에서 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함으로써 배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지역기반 훈련인 것이다. 민주주의 철학을 가장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사진/ 이준헌 기자 경제의 관점에서 봐도 민주적이다. 협동조합에서는 나의 무지함을 이용하지도 않고 과다한 비용을 책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정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 일반 기업의 상품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가격이 책정됐는지 믿기가 어렵지만, 협동조합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믿을 수 있다. 나를 위한 경제, 나에 의한 경제란 점에서 경제민주주의, 민주적 경제다. 시민사회가 우리를 위한 경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정의롭다.” -사회적경제는 정부 정책에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비효율적이고 잘 작동하지 않는 반면 시민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조직화돼 있으면 정책을 펼치는 데도 효과적이다. 지역 단위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퀘벡에서는 한 부서가 주정부와 사회적경제 분야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각각의 사회적경제가 어떤 분야에 특화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아이 돌봄이 필요하다면 각각 다른 지역에 어떻게 돌봄을 지원할지 정부가 파악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코로나19로 시설이 폐쇄됐을 때 육아협동조합이 다 실패했어야 한다. 하지만 퀘벡 정부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유용성을 고려해 존속할 수 있도록 보조를 해준다. 정부가 모든 걸 다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육아협동조합을 존재하게 해주는 것,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주정부의 정책이다. 폭력 피해자 긴급 전화도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그 자체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전화가 오지 않더라도 폐쇄하지 않는다. 퀘벡에서는 이렇듯 정부와 조합이 협력해 사회문제를 보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 더 강하다.”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은 꽃이 피듯이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 인프라는 보통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사회적경제를 위해 필요한 인프라는 교육·훈련, 리서치·지식교환 그리고 재정이다. 이중 재정을 보면, 조합의 소유권이 조합원들에게 나눠져 있다는 것을 기존의 재정 제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담보를 잡아 대출을 해주는데, 협동조합은 민주적이다 보니까 누가 주인인지 몰라 누구를 대상으로 채무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 입장에선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사회적경제의 특성을 이해하는 특화된 재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단 사업을 하면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데, 시작을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다.”
- [주간 여적]경제위기(2017. 01. 03 16:48)
- 2017. 01. 03 16:48 오피니언
- / 연합뉴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경제학자들이 분석하는 경기순환의 주기는 짧게는 3~4년, 길게는 40~60년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이론을 귀담아 듣지 않더라도 경제생활을 꾸려나가는 일반 시민들 역시 체감적으로 경기가 돌고 돈다는 사실은 몸소 느끼고 있다. 문제는 침체기는 길어지고, 회복기는 영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듯한 체감이 계속 이어지는 데 있다. 한국 경제는 1997년의 외환위기에 이어 그 10년 뒤인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이제 다시 그 10년 뒤인 2017년 새해를 맞으며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오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것도 회복이 더디게 느껴지는 이 체감경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표현하면, ‘경기침체’와 ‘경제위기’는 다르다. 다만 만성적인 침체로 경제위기와 구분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문제다. 경제는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경기침체의 도래는 충분히 예상하고 일상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것이다. 침체가 끝나면 경제가 확장되는 회복국면이 뒤따른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보다 오랜 시간 동안 강력한 타격을 준다. 그래서 경제위기가 터진 뒤에는 회복이 더딜 뿐만 아니라 위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흐르듯이 지나가야 할 침체국면이 위기가 된 양 눌러앉은 모양새다. 시민들은 만성화된 위기에 적응해 나가기는 한다.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 기득권의 공고한 벽은 더욱 공고해지기만 하니, 뚫을 수 없다는 분노와 절망감은 주변의 대상을 향한 혐오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난 경제위기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시민들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위기를 꽁꽁 싸매고 수그린 채로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위기마저도 일상적인 행사가 되어버린 시대일수록 양극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추운 곳은 더 춥고 따뜻한 곳은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무수한 중산층들이 사라졌다. 아랫목을 떠나 온기가 닿지 않는 냉골에 웅크린 저소득층은 크게 늘었다. 20년이 지났으면 이제 바꿀 때도 되었다. 절절 끓는 아랫목 온기를 윗목으로 전해줄 공사가 필요하다. 당장은 이불을 덮어 온기를 함께 나누든, 전기장판을 깔아 차가운 바닥에도 앉을 수 있게 하든 대책이 필요하다. 2017년은 위기가 닥치더라도 함께 연대해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
- 주간 여적
- 유럽 경제위기, 문제는 유로화야!(2015. 01. 12 15:56)
- 2015. 01. 12 15:56 국제
- 유로존 국가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ECB가 각 국가를 대신해 통일된 금리를 결정하고 화폐 유통량을 정한다. 문제는 19개의 유로존 국가들이 모두 너무나 이질적이고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유로화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근본적 처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로화 탄생은 역사적 재앙(historic disaster)이 될 수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1월 3일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내린 평가다. 그는 “유럽연합(EU) 탄생은 성공적이지만 유로화는 사실상 실패작”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로화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1월 9일 유로화는 1유로당 1.18달러 아래로 떨어져 2005년 이후 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1월 첫 거래가인 1.1789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유로존 경제가 트리플딥(3중 침체)의 위기에 놓이고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CPI) 잠정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2% 하락하는 등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면서 유로화가 연일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유로화를 더 끌어내릴 악재들도 남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를 준비 중이다. 돈을 더 많이 찍어내 경기를 살릴 수만 있다면, 유로화가 좀 더 떨어지는 것쯤은 감내할 태세다. 최대 변수는 ‘그렉시트’(Greece와 Exit의 합성어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함)이다. 만약 오는 1월 25일 열리는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승리해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뛰어넘는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들이 제기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모습. | 위키백과 한 지붕 열아홉 가족, 예고된 위기 유로존은 유로화를 쓰고 있는 19개 국가를 말한다. 프랑스·독일·아일랜드·핀란드·네덜란드·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을 일컫는다. 유로존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로화가 ‘경제적’인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산물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주요 무역 파트너는 미국과 영국이다. 핀란드의 주요 수출입국은 러시아와 스웨덴이다. 경제적인 분석틀로는 아일랜드와 핀란드가 유로존에 가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유로화는 EU의 결속력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였다. 미 디지털 언론인 복스는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핀란드와 라트비아는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유로존 가입이 필요했다”면서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싶어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온전한 유럽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그리스 등도 비슷한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유로화 시스템은 ‘바보 같은 자해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유로존 국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통화정책 주권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ECB에 넘겨야 한다. 유로존 국가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ECB가 각 국가를 대신해 통일된 금리를 결정하고 화폐 유통량을 정한다. 문제는 19개의 유로존 국가들이 모두 너무나 이질적이고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19개 나라에게 통일된 금융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들 국가의 경제가 긴밀히 통합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스페인 노동자가 네덜란드로 이주해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도 불가능하다. 일단 두 나라는 언어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삶의 수준도 너무 다르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의 경제위기 때문에 유로화가 출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유로화 때문에 유럽의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지적한다. ECB로 금융통제권을 ‘아웃소싱’한 탓에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이 2008년 경제위기 당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복스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서서히 회복해 지금 ‘나홀로 활황’을 구가하고 있지만, 미국보다 빨리 위기에서 탈출한 듯 보였던 유로존이 다시 트리플딥의 위기에 놓인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로존’이라는 후광 효과를 믿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외화가 흘러넘치면서 거품경제가 시작됐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외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자산가격은 추락하고 실업률이 올라갔다. 현재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각각 40%와 50%를 웃도는 실정이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프랑스도 20%가 넘는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ECB의 해법은 ‘긴축’이었다. ECB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일은 “무작정 경기부양에 나서기 앞서 긴축과 구조조정에 먼저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긴축보다 오히려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맞섰다. 유로존 국가들은 해마다 다음해 예산안을 EU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긴축을 우선해야 한다는 ECB는 각 유로존 국가들에게 재정적자 감축 계획에 따른 예산안을 제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재정지출을 통해 인프라 투자를 확대, 일자리를 늘리고 싶은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는 청년 실업률이 10%를 훨씬 밑도는 독일과 실업률이 심각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처한 상황이 크게 다름에도 똑같은 금융정책 방향을 적용해야 하는 ECB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렉시트 핵폭탄, 유로존은 무사할까 최근 유로존의 위기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바로 그렉시트 논란이다. 총선을 앞둔 그리스에서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시리자는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을 반대하고 채권단에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자가 집권하면 결국 ECB와 그리스가 맺은 기존 협상이 파기되면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슈피겔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탈퇴해도 유로존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 시장의 공포를 부채질했다. 시리자는 “우리의 당선을 반대하는 쪽에서 시리자의 승리를 그렉시트라는 ‘테러리스트 시나리오’와 연결시키고 있다”면서 “그렉시트는 시리자의 선택지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 시리자가 집권하더라도 그리스가 즉각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슈피겔의 보도는 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를 겨냥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렉시트 우려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시리자가 집권한 후 구제금융 재협상이 난항에 빠질 경우 얼마든지 그렉시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상 첫 유로존 탈퇴라는 선례로 이어져, 이탈리아와 스페인 같은 나라들에서도 유로존 반대 정당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베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는 그렉시트가 발생할 경우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 등이 나타날 것이며 “단기적으로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능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의 정치인들은 그리스의 탈퇴를 막기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강구할 것”이라면서 “유로존 유지는 고통스럽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유로존 와해는 더 많은 비용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세계]유럽 경제위기로 기후에너지정책 ‘먹구름’(2014. 01. 28 15:08)
- 2014. 01. 28 15:08 국제
- 유럽연합의 새 기후에너지정책은 이전 계획보다 목표치가 상향되어 겉으로는 일견 진전되어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 보면 후퇴로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유럽이 에너지 정책의 초점을 경제성장과 산업 경쟁력에 맞추면서 재생에너지 정책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2일 브뤼셀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시행할 정책들을 하나로 정리한 ‘2030 기후에너지정책’을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새로운 국제 협약을 마련하는 2015년 파리 유엔기후변화회의를 앞두고 가장 먼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했지만 과거처럼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책을 주도했던 자신감을 찾기는 어려웠다. 재생가능에너지 목표치 구속력 실패 유럽연합의 ‘2030 기후에너지정책’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0% 감축하고,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7%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셰일가스 채굴에 관한 최소한의 환경 기준도 마련키로 했다. 22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앞에서 ‘지구의 친구들’ 회원들이 ‘2030 기후에너지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이번 ‘2030’안은 유럽연합이 지난 2007년 발표한 ‘기후에너지정책 2020’에서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20%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율과 에너지효율을 각각 20%씩 증가시킨다는 ‘20-20-20’ 계획의 뒤를 잇는 것으로, 오는 3월 20~21일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논의한 후 유럽의회의 토론과 승인을 거쳐 시행된다. 유럽연합은 ‘2030’ 계획이 경쟁력 확보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대책은 지구의 미래를 위한 중심 과제이며, 유럽의 에너지 정책은 경쟁력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이 계획이 야심차면서도 현실적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새 기후에너지정책은 이전 계획보다 목표치가 상향되어 겉으로는 일견 진전되어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 보면 후퇴로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가장 큰 후퇴는 재생에너지 분야이다. 집행위원회는 재생에너지 비율 목표치를 회원국 차원이 아닌 유럽연합 차원에서 구속력이 있는 형태로 도입했다. 국가별 구속력 부여 여부는 협상 당시 가장 첨예하게 이해가 갈렸던 지점이다. 국가별 자율에 맡기면 독일과 같은 일부 재생에너지 분야 선도 국가들에 무임승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이 집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한 방식이기도 하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재생에너지 비율 목표를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설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과 스페인은 2007년 제안된 20% 외에 새로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설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은 재생에너지 도입에 돈을 쓰기보다 값싼 원자력과 셰일가스에 투자하길 원하고 있다. 영국은 중부 링컨셔 지역에서 셰일가스 채굴사업을 시작해 내년부터 상업채굴에 들어가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처음으로 남서부 서머셋주에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기하고, 205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이 있는 한 유럽 차원의 재생에너지 목표치는 손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별 구속력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다른 국가들은 재생에너지를 도입할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때문에 이미 200억 유로가 넘는 보조금을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입한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늘리자고 주장해 왔다. 양측간의 의견대립이 치열해 계획안 합의는 협상 시한인 22일 오전 11시를 40분을 넘겨서야 타결됐고, 결국 타협책으로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27%로 설정하되 국가별 구속력은 없는 방식을 택했다. 에너지효율은 2030년까지 25% 증가시키기로 했다. 이는 ‘2020 계획’에서 명시한 20%보다는 높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지침으로 바뀌었다. 2030 계획은 셰일가스 개발 시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셰일가스 개발을 허용했지만 안전기준은 강제적이지 않다. 40%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도 환경단체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2020년까지 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25%까지 감축할 수 있어 40% 이상을 설정할 여력이 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입장이다. 에너지정책 후퇴로 ‘그린 유럽’ 위기 유럽연합의 새 기후에너지정책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영국과 산업계 쪽은 만족하는 분위기다. 에드워드 데이비 영국 에너지기후변화 장관은 “유럽이 탄소 감축으로 향하는 올바른 길로 일보 전진한 것”이라며 “가장 비용효율적인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환영했다. 반면 환경단체와 재생에너지 산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절약유럽연맹의 회장 모니카 프라소니는 “유럽에 슬픈 날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거대 에너지 회사와 에너지 집약산업의 집요한 로비에 굴복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실무대표 마히 시데리도는 “2030 계획은 재생에너지 산업 부흥의 바람을 잠재웠다”며 “유럽 시민들은 녹색 일자리가 더 줄어들고, 비싼 화석연료를 더 많이 수입하면서 수명이 더 짧아지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기후에너지정책이 후퇴한 이유는 경제위기라는 변화된 상황 때문이다. 유럽의 실질 GDP는 2007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면서 정부나 민간 모두 재생에너지 도입 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된다. 특히 비싼 에너지 비용으로 산업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기후에너지대책과 함께 발표한 ‘유럽 산업 부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에너지 비용을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에너지 비용을 분석한 보고서는 유럽연합과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경쟁 산업국 간의 에너지 가격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유럽의 산업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보다 2배 이상 비싸며 중국보다는 20%가량 높은 수준이고, 산업용 가스 가격은 미국과 러시아의 3∼4배, 중국보다는 약 12%가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국과의 에너지 비용 격차가 위험수준에 달하자 유럽이 탄소배출 감축을 선도해선 안 되며 값싼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2일 사설에서 “유럽의 비싼 에너지 비용이 경제성장에 심각한 부담”이라며 “유럽이 여타 국가보다 더 높은 탄소배출 감축량을 목표로 세워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사실상 붕괴한 것도 유럽의 그린 정책 위기를 보여준다. 경제위기로 탄소배출권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의 배출권 가격은 톤당 18유로에서 5유로로 떨어져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줄일 유인이 없어진 상태이다. 이 때문에 ‘2030’ 계획은 탄소배출권거래제도(ETS)에 2021년부터 배출권 가격 자동안정화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도입을 주도하던 독일도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줄이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21일 “유럽의 기후변화 목표치가 산업에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며 풍력발전 분야에 지급해온 보조금을 kwh(킬로와트아워)당 0.09유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의 신규 건설도 연간 2500㎿로 제한하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보조금을 주기 위해 에너지세를 걷으면서 전기료가 비싸져 기업 부담이 커졌다.
- [세계]유럽 경제위기 “네덜란드마저도∼”(2013. 04. 09 10:32)
- 2013. 04. 09 10:32 국제
- 모범생이었던 네덜란드가 유럽위기의 또 다른 진앙이 될 수 있다는 걱정거리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거품이다. 요즘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잠자리가 편치 않다. 지난 3월에는 키프로스 사태로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모임인 유로존의 재무장관 회의 유로그룹의 좌장으로 키프로스의 구제금융을 둘러싼 이견을 중재하는 중책을 맡았다. 키프로스 사태는 봉합됐지만, 발 뻗고 잘 처지가 아니다. 유럽연합을 뒤덮고 있는 경제위기의 먹구름에 대한 오지랖 넓은 걱정 때문만도 아니다. 데이셀블룸 장관은 ‘내 코가 석자’다. 네덜란드 경제가 위태위태한 까닭이다.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이 2월 1일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실자산의 구제금융 대책으로 네덜란드 4위 은행인 SNS의 국유화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 브뤼셀/AP연합 데이셀블룸은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과 만나 “경제에 더 깊이 칼을 들이대는 것은 너무나도 비이성적이다”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로 강력한 긴축을 강요당하는 유럽 남부 나라들을 걱정해서 한 말이 아니다. 네덜란드야말로 고강도 긴축이 요구되고 있기는 하지만, 더 졸라맬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푸념처럼 털어놓은 것이다. 네덜란드 경제에 올들어 잇달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AAA’라는 최고 국가신용등급도 여전히 유지하는 유럽 5위의 강소국이다. 그러나 유력 언론들은 네덜란드의 ‘침몰’을 심심치 않게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한테 물에 잠긴다는 표현은 여간 치명적인 게 아니다. 각종 경제지표들은 네덜란드가 사실상 물에 잠겼다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3월 네덜란드에 추가 재정긴축과 민간부문의 강력한 재무구조조정을 촉구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새로운 우환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네덜란드 경제는 4분기 연속 감소세다. 지난해 경제가 1% 마이너스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0.5% 뒷걸음질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가계소비 지출은 18개월째 하락세다. 지난 2월 소비자신뢰지수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월 기업 부도율 역시 1981년 이래 가장 낮았다. 모범생이었던 네덜란드가 유럽 위기의 또 다른 진앙이 될 수 있다는 걱정거리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거품이다. 집값이 오르고 주택구입 대출이 늘면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고, 마침내 그 거품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에 가계소비 지출 하락세 네덜란드 ING은행에서 에너지 시장 분석가로 일하는 미셀 쉬펀스(41)의 사례는 네덜란드에서 흔한 일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쉬펀스는 6년 전 북해 연안의 신도시에서 43만 유로(55만2000 달러)를 주고 아파트를 샀다. 주택 구입에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은행이 주택구입 용도로 무려 50만 유로를 대출해줬다. 집값으로 지불하고 남은 7만 유로로 집수리도 하고 등기비용도 냈다. 대출이자도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전액 소득공제된다. 중산층 세율이 52%이다 보니 소득공제를 위해 너도나도 은행에 손 벌려 주택에 투자했다. 은행권은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내는 상품 개발로 부동산투자를 부추겼다. 쉬펀스는 남들 하는 대로 집을 샀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대는 후회로 바뀌었다.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집값이 떨어졌다. 지난해 주택 가격은 6%나 하락했다. 고점 대비 16.6%나 빠진 것이다. 지금 쉬펀스가 집을 팔려면 6만 유로를 밑지고 내놓아야 한다. 쉬펀스는 ‘그의 집(값)이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한다. 우리말로 바꾸면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이 된 것이다. 묻지마 주택담보대출로 네덜란드의 가계부채 수준은 유로존 가운데 가장 높이 치솟았다. 네덜란드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6500억 유로에 달한다. 금융권 전체 자산(대출)은 네덜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5배에 이른다. 여기에 가계부채는 가계소득의 250%나 된다. 이는 2011년 재정위기 당시 스페인 가계부채가 소득 대비 125%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에 발목이 잡힌 경제가 뒷걸음질치면서 실업률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식 실업률은 7.7%이지만, 실상은 더 고약하다. 이른바 ‘자기 고용(ZZP)’으로 분류되는 사실상의 실업자군이 통계에는 빠져 있다.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채 도급을 받아 나홀로 일하는 네덜란드의 자기 고용 인구가 80만명을 헤아린다. 경제위기의 진앙지는 부동산 거품 롭 하이스만(47)도 자기 고용으로 분류된다. 정보기술 전문가인 그는 2006년 컨설팅 대기업의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벌이가 좋았다. 시간당 100유로(약 14만6000원)를 벌었다. 호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정부나 민간기업이나 할 것 없이 보수를 깎았다. 일할 기회도 덩달아 줄었다.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려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거나 외부 도급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자기 고용자들 사이에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하이스만은 퇴직연금도 내지 못할 형편이 됐다. 빚더미에 소득까지 줄어들면서 소비가 급격하게 둔화하고 있다. 네덜란드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 10% 줄어든 데 이어 올들어 16%나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저축률이 높은 네덜란드인의 검소함이 소비를 얼어붙게 하는 경제의 독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가 악순환에 빠졌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10여년 전부터 부동산 거품에 대해 경고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난해 마크 뤼트 총리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기도 늦었고, 구조조정의 강도도 기대에 못미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네덜란드는 460억 유로를 긴축 목표로 삼았다. 모자라는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부가가치 세율을 지난해 9월 19%에서 21%로 2%포인트 올렸다. 주택담보대출의 세금 공제도 재검토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렇게 줄여도 재정적자를 GDP 대비 3%로 억제하는 유럽연합의 기준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이다. 긴축 압박에도 불구하고 올해 더 줄여야 할 43억 유로를 내년으로 미뤘다.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를 GDP 대비 3.3%, 내년에는 3.4%로 전망했다. 독일 재무장관 자문위원이자 경제학자인 요르크 로숄은 “네덜란드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에 말했다. 가계는 빚더미에 눌려 있고, 은행은 가계부채에 발목이 잡혀 있으며, 재정긴축과 소비 감소, 경기 하강이 겹치면서 소득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독일과 더불어 유럽연합 재정위기의 구원투수로 꼽히는 나라다. 그런 네덜란드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거품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역설적이다. 더구나 남부 유럽에 고강도 재정긴축을 밀어붙인 네덜란드는 정작 제 머리는 깎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네덜란드의 위기로 독일의 부담이 더 커졌다. 남부 유럽의 위기에 쏠려 있던 이목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 [북리뷰]새로운 이상주의로 무장한 경제위기 책임 당사자들(2013. 03. 25 17:28)
- 2013. 03. 25 17:28 문화/과학
- 대선 이후에 쏟아진 많은 이야기에서 ‘패배’의 서사는 많았지만, 정작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부족했던 것 같다. 는 미국의 정치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토마스 프랭크 지음·함규진 임도영 옮김·갈라파고스·1만2800원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가들까지 나서서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소리 높여 외쳤던 모습이 무색한 지경이 왜 펼쳐진 것인지 그 원인을 이 책은 파헤치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매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라는 단언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실업과 빈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확실히 우파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토마스 프랭크가 보기에 우파는 “국가적 괴로움을 이용해 사실상 이 괴로움을 더욱 무겁게 만들 뿐인 저항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사기극을 벌이는 한편으로 우파는 “이상주의를 매우 강력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주의가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지지자들에게 불투명한 인식을 제공함으로써 상황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자신들의 정치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상주의를 내세워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이상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 여하튼 경제위기의 책임 당사자인 이들은 다시 부활했다. 정치에서 추방당하기는커녕 새로운 이상주의로 무장하고 재등장한 것이다. 망가진 경제를 되돌릴 수 있다는 이상주의 말이다.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음에도 우파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보수는 진보와 진배없이 자신을 포장했고, 공약을 내세웠다. 이념적 편가르기 따위는 불투명해졌다. 너도 나도 같은 공약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더 낫다’고 약을 팔았다. 여기에서 ‘국민’이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일을 잘할 것 같은 인물이었다. 제2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자고 역설했다. 과연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따지고 묻는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시기 한국을 지배했던 경제환원주의는 여전히 새로운 정부에서도 득세할 것처럼 보였다. 성장주의라고 하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경제로 수렴시키는 입장을 이렇게 지칭하는 것뿐이었다. 경제가 살아야 민주주의도 있다는 생각이 새로운 정부를 지배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파는 ‘유능한 인재’라는 새 옷을 입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시나리오일 뿐, 새로운 정부는 인선과정과 인수위를 통과하면서 삐걱거리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파의 복귀는 이루어졌지만, 과연 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말을 실천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책은 상당히 격렬한 목소리로 미국 우파의 부도덕성을 논하고 있다. 그 비판의 날은 매섭고 표적은 명확하다. 그러나 우파의 양심문제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환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우파가 이상주의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면죄부를 받았는지, 그 사실은 단순하게 사기극이었다기보다 체제의 구조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자본가와 다른 욕망을 가진 주체들이 출현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에인 랜드 같은 우파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좌파의 안이함도 간과할 수가 없다. 자본가를 구조의 피해자로 그려내는 이런 시선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기보다 그 문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능력론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택광
- 북리뷰
- [특별대담 | 2013년 이후 자본주의]진보 경제학자 홍기빈 vs 보수 경제학자 김종석의 세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론(2012. 11. 06 17:07)
- 2012. 11. 06 17:07 경제
- ㆍ홍 “시장규제가 악이라는 명제 근본적으로 성찰할 때 왔다”ㆍ김 “시장개입은 역사적으로 볼 때 효율적이지도 정의롭지도 못했다” ■참석자 김종석 교수 홍기빈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왼쪽)과 김종석 홍익대 교수. 은 지령 1000호를 맞이해 ‘2013년 이후의 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전문가 대담을 기획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자본 중심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괜찮은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등으로 구체화됐다. 탐욕적 자본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도 ‘점령하라(Occupy)’ 운동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현재 한국 사회 역시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높아진 상황이다. 보다 폭넓은 안목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환을 짚어보기 위해 보수 경제학자인 김종석 홍익대 교수와 진보 경제학자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을 불러 자리를 마련했다. 경향신문사 인근 한 카페에서 열린 이 대담에서 대담자들은 2008년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경제위기의 성격을 진단하고, 앞으로 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모색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진행 우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 수정 논의에 대한 견해를 부탁한다. 홍기빈 소장(이하 홍) 자본주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최초의 논의는 2008년 2월 베어 스턴스가 망할 당시 독일 도이체방크 총재가 한 “나는 더 이상 시장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공격적인 투자은행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후 2008년 하반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자본주의의 미래’ 기획을 통해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로는 안 된다는 논의가 공론화되긴 했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상태가 이어졌다. 자본주의에 수정을 가하려면 현행 구조 전체를 제도적 측면에서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논의들은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등 비평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김종석 교수(이하 김)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는 고정된 이념이라기보다는 진화하는 게임규칙의 속성을 띠고 있다. 공산주의는 창시자도 있고 일종의 교범도 있는 이념이지만 자본주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진화해가는 질서다. 자본주의가 또 한 번 업그레이드를 할 것인지에 대해선 나는 적어도 5~10년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지금의 경제위기가 중장기적 경기순환 과정에서 나오는 반작용에 불과하다고 보는 반면, 다른 쪽에선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는 계기라고 주장하는 등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개념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 ‘자유’에 방점이 찍힌 반면, 2009년 이후 ‘점령하라(Occupy)’ 운동과 같이 자유보다는 ‘공정’에 관심을 갖고 시장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홍기빈 소장 홍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질서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현재의 상황이 자본주의의 근간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아님도 자명하다. 하지만 지금이 대공황 때와는 다르다는 의견에는 할 말이 있다. 20세기 중반부터 경제학이 여러 변수들의 계량적인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는데, 자본주의의 레짐이 변하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구조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지난 20~30년간 금융·자본시장이 모든 다른 부문들을 조정하는 경향은 이전까진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닷컴버블이 일어난 2000년대 초부터 이런 흐름도 한계를 보이며 불신을 낳기 시작했다. 지난 20~30년 동안의 자본주의를 ‘자본시장 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자본시장 자본주의라는 레짐이 2008년부터 분명히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김 자본시장 중심의 한계가 금융위기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 정부 역할을 강화하자는 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도 시장만큼이나 불완전하고 실패 가능한 조직이다.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고 전지전능한 정부를 전제한 나머지 자칫 시장 실패를 정부 실패로 대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두 메커니즘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장점을 취합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요즘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에 올라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조직 이익이나 영역 확장을 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홍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귀환, 케인즈주의의 귀환 같은 수사들이 많아지면서 진보좌파 진영 안에 나타난, 유럽의 60~70년대 국가 개입 모델을 도입하자거나 혹은 신자유주의 이전의 국가 모델로 복귀하자는 움직임은 위험하다고 본다. 유의할 점은 자본주의의 한 요소인 국가도 진화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국가와 정부는 뉴딜시대나 대처시대의 국가와는 다르고 또 산업구조도 완전히 바뀐 상황인데, 지금 옛날식의 국가 개입으로 문제를 풀자는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 변화된 산업구조와 시장질서에 맞게 국가와 정부 부문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에 관한 과제를 먼저 푼 다음에 비로소 정부 개입을 논의해야 한다. 진행 논의가 시장과 정부의 역할로 확장되고 있는데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김종석 교수 김 시장은 정부보다 자원 분배와 효율성 측면에서는 우월하다. 그러나 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자유방임 상태로 두면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개혁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월가의 탐욕이 세계적 경제위기를 불렀다는 말은 마치 비행기가 추락한 것은 중력 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맞는 지적이지만, 문제 해결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중력을 활용하는 것이 문제지, 중력을 부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듯 자연현상에 가까운 탐욕과 이윤추구 본능을 이롭게 활용하도록 시스템을 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시장 불신을 이유로 정부가 직접 자원 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정부 실패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기 때문에 정부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홍 시장은 개인의 탐욕으로 작동하는 것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지만, 중력만 있으면 비행기가 뜰 수 없는 것처럼 중력을 제어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탐욕은 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사회를 위태롭게 할 지경에 이르면 시장에 대한 개입과 규제도 필요해지는 것이다. 지난 20~30년간의 풍토는 이런 규제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이제는 사람들이 생활에서 느끼기에 부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졌는데도 왜 제어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규제와 개입이 악이란 명제부터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김 주류경제학도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진 않는다. 시장과 정부의 두 기능은 모두 필요하지만 또 안타깝게도 둘 다 완전하지 못해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각각의 비교우위가 달라서 시장은 자원 배분와 효율성에 우위가 있지만 결과적 공정성과 형평성 확보엔 취약하고, 정부는 자원 배분에는 취약하지만 시스템 디자인을 존재의의이자 고유기능으로 갖고 있다. 정부가 시장 실패를 빌미로 자원 배분에 개입하려 했던 역사적 경험들로부터 정부가 효율적이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정의롭지도 않았다는 결론을 찾을 수 있다. 홍 우리가 사회주의 실패 경험을 통해 정부가 자원 배분에 만능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번 위기를 통해 시장은 만능이라는 신화도 깨졌다. 장기적인 역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산업자본주의가 본격화된 19세기 초부터 자본가 계급은 사회적 분업과 생산을 조직하는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로 패권을 쥐었다. 그런데 대공황 때나 최근 위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제는 실업이다. 한 쪽에서 화폐적인 자본의 축적이 거대하게 이뤄지는 데 비해 다른 쪽에선 일자리가 없는 현상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용 없는 성장’ 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인데, 1930년대 스웨덴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식 국유화 방식이나 자본과 시장에 맡기는 방식 모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파악해 시장뿐 아니라 공공부문·협동조합·지자체 등의 경제조직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1970년대 이전 중앙계획식 국가가 아니라 대기업을 비롯해 여러 경제조직들이 다양하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질서를 짜는 것이 미래적인 국가의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진행 실업을 비롯해 민생경제 부문에서 절실하게 느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김 부가가치 창출 활동이 많아져야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인데 경제활동이 침체된 상황에서 억지로 일자리를 만들려 하다보니 세금을 써서 일자리를 만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을 쓰는 것이다. 결국 경제활성화가 관건인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므로 민간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활발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세금을 써서 만드는 일자리는 생산성이 낮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기업이 고용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 일자리의 질과 관련한 논의들이 있지만 경제원리상 질을 따지면 양을 희생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동시에 양과 질 모두를 만족하기란 힘들다. 현재는 일자리의 양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홍 김 교수 말 중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똑같은 관점을 기업에 적용하면 기업은 화폐적인 기대수익에 못미치는 경우 고용을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질 좋은 일자리로 대기업이 정규직 일자리를 늘릴 것을 기대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기대하는 목표이윤율에 차지 않으면 더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을 약속하는 분야가 아니면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에 와선 그런 독점 대기업이 많다보니 이 기업들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수가 너무 적다. 실제 국민의 입장에서 필요한 일자리는 큰 돈은 안돼도 꾸준히 자식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일자리인데, 독일 같은 나라엔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중소기업들의 일자리가 많다. 대기업에만 맡겨선 이런 일자리는 늘 수 없다. 화폐경제의 차원에서는 큰 액수를 받지 못해도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이 있는데, 대안적인 사회적 회계를 국민계정과 결합하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계측해 정부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한편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의 틀 안에서 임금격차 문제를 등한시해온 경향이 있는데, 노동계급 내부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균형을 맞추는 임무를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스웨덴에선 임금은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결정돼야 한다는 논리로 50·60년대부터 동일 직종만이 아니라 다른 직종들 간에도 임금수준을 동일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도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과제다. 주택비나 교육비 문제, 질병과 해고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동일 직종이라도 개별 기업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임금수준을 동일하게 강제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오히려 일자리 수를 줄이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진행 2013년 이후 다가올 자본주의와 한국 경제의 모습에 대한 그림이 있다면 전망해 달라. 홍 독일의 좀바르트라는 경제학자는 경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원칙으로 돈벌이와 살림살이를 대비시켰다. 신자유주의는 기업이나 조직의 조직원리만이 아니라 개인들의 행동원리도 화폐적 수익성의 관점에서 평가하도록 만들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것과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2008년 이후의 위기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의 조직원리, 돈벌이 논리만으로 사는 생활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자본주의의 레짐 변화는 대체로 40년을 주기로 반복됐는데 1970년대 이후 2010년에 이르러 또 다시 전환의 시기가 왔다고 본다. 이 시기의 경제원리는 사람들이 보다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살림살이의 논리가 될 것이다. 김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문제는 사실 답이 없는 문제다. 현재 진행 중인 진화의 방향을 섣불리 단정할 순 없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기저에 있던 세계화·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고통이 반영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 이번 위기는 과도한 부채와 신용위기로부터 왔으므로 그것이 회복되기까지 적어도 향후 5년 이상은 경제상황이 어려울 것이다.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닥쳐올 가능성이 큰 만큼 세계적 혼란으로부터 우리 사회와 경제를 지켜내기 위한 사회안전망 도입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위기에도 실용적인 태도를 지켜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야 복지도 가능하다.
- [영화 속 경제]북촌방향 - 경제위기는 반복된다(2012. 06. 13 10:43)
- 2012. 06. 13 10:43 경제
- 사실 삶은 반복이다. 아침 출근길에 매번 같은 거리를 지나고, 점심때 찾는 식당은 거기가 거기다. 동네 슈퍼마켓과 미용실도 대개 가던 곳을 가게 된다. 처음 그곳을 어떻게 찾았을까? 한순간의 우연일까? 내가 그곳을 찾기 전 그곳에 굳이 상점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상인의 우연이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그곳에 건물을 세우겠다고 결심한 건물주의 우연도 있다. 홍상수 감독의 은 반복되는 인연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에 이은 홍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다. 그는 “무채색의 화면 위에 어떤 감정과 사색을 입힐지는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고민의 결과는 관객 스스로가 내라는 얘기다. 영화의 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이다. 전직 영화감독 성준(유준상 분)은 며칠째 북촌에서 맴돈다. 선배 영호(김상중 분)를 그제도, 어제도 만났는데 오늘 또 찾고 있다. 성준과 영호가 들른 곳은 ‘소설’이라는 술집이고 ‘다정’이라는 한정식 집이다. 그외 공간은 없다. 성준이 ‘소설’에서 만난 여주인은 전 여자친구와 닮았다. 그와 비슷한 사랑을 나누고, 비슷한 방법으로 헤어진다. 성준은 우연히 만난 여배우와도 반복해서 만난다. 그리고 그 여배우를 따르는 3명의 학생들도 또 만난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만남이다. 성준은 우연과 우연이 연결된 것, 그것이 인연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 컵을 내가 밀어서 깼다고 해요. 행동의 주체가 나라고 왜 그리 덤벙대느냐고 욕하겠죠. 하지만 이 순간 이 위치에 하필이면 내 팔이 왜 여기에 있었는지, 나는 왜 몸을 움직였는지. 수없이 많은 인연이 작동한 거죠. 실은 내가 이유가 아닌 것이죠.” 여교수인 보람(송선미 분)이 맞장구를 친다. “그렇죠. 그전의 우연들을 다 추적할 수는 없는 거죠. 그리고 그 우연 전의 우연이 있는 거죠.” 경제위기도 반복의 역사다. 1987년 블랙먼데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위기는 10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5년마다 위기가 반복된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채 위기,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13년 위기설이 나온다. 경제위기는 한 번의 우연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 이전에 각종 경제실패가 쌓인 결과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원인은 기업의 무리한 차입이었다. 2003년 카드채 위기는 과도한 카드소비가 문제였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경색 때문이다. 2013년 위기는 가계부채 부담이 진원지가 될 것으로 금융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루비니 교수는 “경제위기는 몇 가지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무수히 반복되어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경제위기를 예외적인 돌연변이로 봤다. 대비를 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블랙스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위기가 너무 잦았다. 대안으로 다윈의 진화론에 바탕을 둔 진화경제학으로 눈을 돌렸다. 진화경제학은 경제위기란 경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변화의 결과는 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에 경제위기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 결과 또다른 경제패러다임이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토스타인 베블렌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누적적 인과”라고 불렀다. 위기는 왜 발생할까? 진화경제학은 “경제주체와 주변환경, 기술경제 패러다임과 사회제도 등에 부조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경제주체들이 빠른 혁신을 해 진화하는데 규제환경이 못따라 간다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파생상품은 한없이 발전하는데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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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이야기]예견된 경제위기, 해법은 무엇인가(2011. 08. 16 20:01)
- 2011. 08. 16 20:01 국제
- ㆍ무리한 경기부양책 채무 증가… 증세 통한 국가재정 건전성 확보해야 “당분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급감한 민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정부 채무와 통화팽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길어봤자 2~3년 지속될 것이다.” 지난 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풍경. 전문가들은 상만 있고 벌은 없는 금융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가 2009년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조 교수는 당시 기고문에서 현재의 세계경제 체제를 ‘카지노 자본주의’로 정의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카지노 자본주의는 금융화의 과잉이자,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이미 생산된 부가가치를 빼앗아가기만 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경기부양책이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지금 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조 교수가 내세우는 것은 정부 정책의 변화다. 이미 2년 전 기고문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부자 감세, 금산분리 완화, 4대강 사업 등을 ‘위험한 도박’으로 진단한 바 있다. 실물경제의 침체로 인한 장기침체 국면에서의 철저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부동산 거품, 채무 폭증 등을 불러와 한국경제를 더욱 침체시킨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역대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의 정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허브를 추구했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으며, 금융 시장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줄인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켰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증권 규제를 포지티브 시스템(법규에 제시된 것만 허용)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제시된 것만 금지)으로 바꾸고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회사 간 겸영을 허용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기고문에서 내수 시장이 탄탄하고 저축률이 높은 독일의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흑자국들은 국내에서 민간 부문의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실물경제 회복 위해 미국 증세 필요 2년이 지난 지금 조 교수는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위기의 근원인 미국에서부터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이 절대로 증세를 할 수 없다고 버틴 결과 미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졌고, 그 결과 지금처럼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세계 경제가 경착륙한 것이다”라며 “사회보장을 줄여 빈곤층 가계가 몰락하면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재정긴축안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의 추락을 보여준다. 조 교수는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안에는 대규모 군비지출 삭감이 포함돼 있다”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기인하는 만큼,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원희 교수와 달리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일시적인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배선영 수출입은행 감사는 지난 2009년 “글로벌 더블딥(이중침체)은 오지 않을 것이며,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문제도 세계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지난 9일 <매일경제> 칼럼에서 배 감사는 자신의 진단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썼다. 다만 배 감사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새로운 변수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배 감사가 제시한 것은 핵심 국가들의 수축적 재정·통화정책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정부의 부채를 대폭 탕감해 주고, 미 정부는 3차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의 부채를 대거 매입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금의 경제위기가 더블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패치, 즉 경기가 상승하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라고 보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서도 “이것이 미국의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면 미국 경제가 다시 정상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과 달리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 교수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을 줄이는 식의 재정적자 감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장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주류적인 견해에 반대했다. 그는 칼럼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요인은 재정적자가 아니라 “금융위기 초기에 미 정부가 실행한 경기부양책이 끝난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리스, 아일랜드, 영국 등의 사례를 들어 재정지출 삭감과 경기 회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적다고 밝혔다. 또한 장 교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복지비의 삭감은 그리스와 같은 심각한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봤다. 복잡한 금융상품 강력히 규제해야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장 교수가 또 하나 제시하는 것은 강력한 금융 규제다. 그는 현재 금융 시스템이 “상만 있고 벌은 없는 보상체계”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의 <가디언> 기고문에는 구체적인 규제 방안이 나온다.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국제 신용평가사에 대해 장 교수는 “그들은 의뢰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는다”며, UN이 운영하는 중립적 신용평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복잡한 금융 상품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주장한다. 기고문에서 장 교수는 의약품처럼 자신의 안전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아니라면 모두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급진적인 전망과 해법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다. 장시복 목포대 경제학과 교수(금융경제 전공)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세계대공황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세계대공황이 “자본이 일으킨 엄청난 사건으로, 지금의 경제위기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위기가 결합된 장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장시복 교수는 2008년 위기 이후 금융개혁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개혁보다 주요 국가들이 지나치게 많은 공적자금을 투여해 금융자본들을 살린 반면,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손실과 고통을 안겨준 점을 보다 직접적 원인으로 제시했다. 장 교수의 비유에 따르면 “공적자금 투여라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국가부채와 재정위기라는 암이 서서히 퍼진 것”이다. 국가부채와 재정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장 교수가 내민 1차적인 해법은 부자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확보로, 조원희 교수의 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근본적인 고민을 제기했다. 그는 경제체제 자체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 국가의 행위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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