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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아베 피격’ 현지 경찰 “왼쪽 가슴·목 두 발 명중했다”
- 2022. 07. 08 15:00 화제
- 8일 오전 일본 아베 전 총리가 총격 피습을 당했다. 살인 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 해상자위대원 출신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제공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선거 연설 중 총격 피습을 당했다. 8일 오전 11시 반경 일본 나라현 나라 시내에서 이틀 앞둔 참위원 선거 지원 연설을 하던 아베 전 총리가 산탄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다. 일본 매체 MBS뉴스에 따르면 당일 오전 11시 반경 총탄 발포 소리가 두 발 울린 후 현장에서는 아베 전 총리가 갑자기 쓰러졌고 목 부위에서 피가 흘렀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남성이 두 발의 총격을 가했고 이 두 발은 아베 전 총리의 왼쪽 가슴과 목에 명중했다. 살인미수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용의자는 나라시에 거주하는 야마가미 데쓰야(41)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그는 전 해상자위대원 출신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그는 마스크와 안경을 끼고 검은 통을 비닐로 둘둘 감은 피습에 사용된 총을 들고 있었다. 붙잡힐 때는 다소 저항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는 연설을 듣기위해 3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있었다. 현장에 있던 자민당 관계자는 “11시 반 넘은 시각 아베 전 총리가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3분 즈음 지나서 뒤에서 두 발 총성 울렸다. (용의자가) 뒤에서 총을 쏜 듯 했다. 5미터 뒤 도로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고 SP에게 곧 제압되어 붙잡혔다”며 긴급했던 상황을 전했다. TBS 뉴스에 따르면 피습 당한 아베 전 총리는 닥터헬기로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또한 총격을 당한 아베 전 총리의 상태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의식이 없으며 상당히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 사관학교·경찰대 제대로 알고 준비하기
- 2015. 06. 05 10:24 육아/교육
-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사관학교와 경찰대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평소 군이나 경찰에 관심을 보였다면 6월부터 시작되는 사관학교 입시를 미리 주목해보자. 대학등록금이 수백 만원에 이르는 한국 사회에서 재학 중 학비를 면제해주고 모든 교재에다 노트북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학교가 있다. 게다가 매달 품위 유지비까지 주는 이곳은 바로 사관학교와 경찰대.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오늘날, 졸업 뒤 바로 취업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적성과 일치하기만 한다면 한 번쯤 욕심내볼 만한 학교들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점이 있는 만큼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매우 좁다. 미래의 생도가 될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를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살펴본다. 쉽지 않은 전형 사관학교와 경찰대 입시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 3개 과목의 필기시험을 실시하며 2차에서는 1박 2일간 신체검사, 체력검정, 면접이 진행된다. 최종적으로 1·2차 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학생부 성적을 합산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수능 성적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므로 국어, 수학, 영어, 탐구 4개 영역에 대해 꾸준히 대비하는 것이 좋다. 2015학년도 합격자의 수능 평균 등급은 사관학교의 경우 1.5~2등급, 경찰대학은 1등급 내외였다. 1차 시험이 중요 1차 통과자에 한해 2차 시험이 실시되고, 최종 선발에서도 1차 성적이 반영되므로 1차 시험을 잘 준비해야 한다. 각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출문제를 참고하는 게 효과적. 시험 범위와 문제 유형이 수능과 많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수능 대비와 병행할 수 있다. 각 과목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실제 시험을 보듯 시간을 맞춰 문제 푸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국사 능력은 플러스 사관학교의 경우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중급 이상의 자격을 갖췄을 경우 가산점이 부여된다. 지난해에는 공군사관학교에서만 한국사 자격증을 입시에 반영했지만 올해부터는 4개 사관학교 모두 가산점을 부여한다. 2차 시험 면접에서는 역사관 분야의 평가가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꾸준한 역사 학습을 통해 역사관, 국가관, 안보관 등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복수 지원도 가능 일반 대학의 경우 수시모집 6회, 정시 3회까지만 지원할 수 있지만 사관학교와 경찰대는 특수대학이기 때문에 복수 지원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사관학교에 지원했다가 실패해도 일반 대학 지원 횟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합격시 무조건 입학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사관학교와 일반 대학에 동시 합격했을 경우 수험생이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관학교 간에는 문제를 공통으로 출제하고 시험 날짜가 겹치기 때문에 중복 지원할 수 없다. 육군사관학교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는 의외로 다양한 전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국어과, 철학과, 수학과, 컴퓨터과학과, 정치사회학과 등 총 14개 과정이 있으며 2학년에 올라갈 때 선택하게 된다. 졸업 후엔 개별 전공과 군사학 이중 학위를 취득하게 되며 이는 모든 사관학교가 동일하다. 또 육·해·공 3군 사관학교는 여생도를 10% 정도 선발한다. 2016학년도 모집 인원은 남자 280명, 여자 30명으로 총 310명이다. 작년 전체 경쟁률은 18.6:1로 남자는 16.2:1, 여자는 40.4:1이었다. 4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임관 뒤에는 계급별 군사 교육을 수료하고 야전 부대에서 각급 제대 지휘관 및 참모 직책을 수행한다.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며 본인 희망에 따라 5년 차에 전역할 수 있다. 문의 02-2197-0114, www.kma.ac.kr 해군사관학교 해군 및 해병대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경남 창원에 있다. 1학년 땐 공통과목을 수강하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선택하는데, 바다와 관련된 만큼 기계·조선공학과와 해양학과가 눈에 띈다. 올해는 남자 153명, 여자 17명으로 총 170명을 선발한다. 남자의 경우 문과와 이과 비율이 비슷하나, 여자의 경우 70%의 비율로 문과 학생을 더 많이 뽑는다. 2015학년도 전체 경쟁률은 23.1이었다. 세부적으로는 남자가 20.2:1, 여자가 46.2:1이었는데, 여자의 경쟁률이 높았던 건 육사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10%밖에 뽑지 않기 때문. 졸업 뒤에는 해군 장교(소위)로 임관하며 선택한 병과에 따라 항해사, 기관사 및 항공기 조종사 등의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고 졸업 뒤 5년째 되는 해에 전역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문의 055-549-1367, www.navy.ac.kr 국군간호사관학교 군대에 소속돼 군병원 등에서 간호 업무를 맡는 ‘간호장교’ 양성기관으로 3군 통합 군사 교육·훈련 시설인 대전의 자운대 내에 있다. 간호장교가 대한민국 여군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여자를 더 많이 선발한다. 2016학년도 모집 인원 85명 중 남자는 8명, 여자는 77명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을 구분하지 않다는 것. 따라서 1차 시험에서 모두 국어·수학 A형을 응시한다. 하지만 수능에서 국어B, 수학B 과학탐구를 응시할 경우 5~15%의 가산점이 주어진다. 2015학년도 전체 경쟁률은 36.4:1이며 남자 49.5:1, 여자는 35:1이었다. 생도들은 4년간 교육받은 뒤 국가고시를 치른 다음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게 된다. 졸업과 동시에 간호학사 학위를 수여받고, 육·해·공군의 간호장교 소위로 임관한다. 정원의 10%는 보건교사 2급 자격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다. 의무 복무 기간은 6년이다. 문의 1688-9171, www.afna.ac.kr 공군사관학교 충북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의 입학 전형은 크게 조종 분야를 선발하는 일반 전형과, 공중근무를 지원하는 분야를 선발하는 특별 전형으로 나뉜다. 2016학년도 모집 인원은 175명. 남자의 90%(약 142명), 여자의 50%(약 9명)를 조종 분야로 선발한다. 공중에서 근무한다는 특성 때문에 시력 제한이 있다. 조종 분야의 경우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지 않고 측정한 시력이 양쪽 모두 0.5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시력이 낮아도 교정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전형에 합격할 수 있다. 2015학년도 전체 경쟁률은 25.6:1이었으며 남자는 23.5:1, 여자는 44.6:1로 나타났다. 졸업과 동시에 공군 장교로 임관하며 항공 작전 및 기타 지원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비행 훈련을 마친 조종사는 공인 민간 항공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며 전역 뒤 민간 항공사에 취업할 수 있다. 의무 복무 기간은 일반 장교 10년, 조종 장교 15년이며 5년이 되는 해에 전역을 지원할 수 있다. 문의 043-290-6114, www.afa.ac.kr 경찰대학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찰대학은 특수 대학 중 가장 인기가 좋다. 2015학년도 경쟁률은 전체 66.6:1. 남자는 56.4:1, 여자는 141.2:1로 매우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경찰대학에는 법학과, 행정학과 2개 과가 있으며 전공은 2학년에 진학할 때 결정된다. 2016학년도 모집 인원은 남자 88명, 여자 12명으로 총 100명이다. 2차 시험에서 PAI 인성검사가 실시되는데, 결과는 점수화되지 않고 면접 자료로만 쓰인다. 체력 시험 종목은 100m·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악력, 팔굽혀펴기 등 경찰관 일반 공채 전형과 동일하다. 수능에서 국어와 수학 중 최소 한 과목 이상을 B형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점도 알아둘 것. 졸업 뒤 경위(6급 상당, 파출소장·경찰서 반장급)로 임용되며 의무 복무 기간은 6년이다.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순환보직 근무를 거쳐 다양한 경과에서 근무하게 된다. 여생도들은 경찰교육원에서 전술 지휘 과정을 이수한 후 순환보직 근무를 시작한다. 문의 031-620-2114, www.police.ac.kr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해군사관학교 자료 제공 각 학교, 종로학원>
-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5) 경찰관 손정화 경사와 딸 서영이의 동반 출동!
- 2014. 05. 02 16:51 육아/교육
- 전체 경찰관의 7.6%를 차지하는 7천8백여 명의 여성 경찰관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 안에는 손정화 경사도 있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그녀의 일상을 딸 고서영양이 함께하는 날, 모녀는 나란히 서서 거수경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부부 경찰관으로 산다는 것 여리여리한 몸,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올린 손정화(37) 경사의 첫인상은 경찰보단 스튜어디스라고 착각할 만큼 매무새가 깔끔하고 여성스러웠다.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벗자 경찰 제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풍당당한 면모를 빛내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딸 고서영양(8)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경찰이라서 정말 좋아요. 경찰 옷을 입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매일매일 이 옷을 입었으면 좋겠어요. (제복에 달린 배지를 가리키며) 이건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받은 거예요.” 서영이의 짧은 대답에서 엄마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단순히 제복이 멋있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경찰이란 직업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있었다. 손 경사는 현재 성북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여성보호계에서 근무 중이다. 특히 4대악 중 하나로 꼽히는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으로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같은 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사과 형사팀 고준길 경사다. 그녀가 형사와 경찰이라고 따로 분류해서 설명하자 ‘형사와 경찰이 달랐던가?’라는 혼동이 왔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형사는 시험을 따로 보나요?”라고 질문하자 익숙한 듯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경찰이 하는 업무가 많아요. 생활 안전, 교통, 정보, 경무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수사 업무를 전담하는 사람을 형사라고 해요. 물론 따로 뽑는 것은 아니고요. 형사도 경찰에 포함돼요. 남편은 수사 업무를 하고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전담하고 있어요.” 보통 경찰 하면 범인이나 가해자를 검거하는 수사 업무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경찰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특히 손 경사가 맡은 업무는 얼핏 경찰보단 사회복지사에 더 가까워 보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밤새 가정폭력으로 접수된 사건이 있는지부터 본다. 그 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고된 내용과 실제 피해 여부를 확인한다. 앞으로 가해자가 받게 될 형사 절차를 설명한 뒤 피해 여부에 따라 전문 상담소를 연계해주기도 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피해 사실을 감추려고만 하세요. 하지만 제가 전화를 드리면 숨김없이 다 말씀하세요.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다’라며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 분도 계시고요. 그만큼 경찰을 신뢰한다는 말이니까 제가 맡은 일에 더욱 책임을 느껴요.” 같은 경찰이라도 하는 업무가 다르다 보니 부부는 서로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돕고 있었다. 가령 고 경사가 성폭력 관련 수사를 하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손 경사에게 묻기도 하고 반대로 가정폭력 가해자 수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고 경사에게 물어보는 등 부부 사이에 업무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 경찰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가장 곤란할 때가 부부가 동시에 당직을 할 경우다. 두 아이는 근처에 있는 시댁에 맡기는데, 이때는 본의 아니게 온 가족이 당직을 서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서영이가 물어보더라고요. ‘친구들 엄마, 아빠는 밤이 되면 집에 들어오는데 왜 엄마, 아빠는 안 오느냐’라고요.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경찰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밤에 잘 잘 수 있도록 살펴보고 지켜줘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그 후로는 저희가 당직을 서도 별다른 말없이 작별 인사를 하더라고요. 나름대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가끔은 엄마와 아빠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 섭섭할 수도 있다. 아직은 밤에 부모 품에서 잠드는 것이 익숙한 나이지만 서영이는 씩씩했다. 역시 부부 경찰관의 아이다운 면모였다. 건강하고 밝게만 자라다오 손 경사에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경찰박물관은 익숙한 곳이다. 명예 경찰소년단과 함께 몇 차례 방문했다. 그동안 경찰로서 여러 번 온 곳이었지만 막상 딸 서영이와는 처음이다. 딸과 함께 관람을 하는 그녀를 통해 교육법을 엿볼 수 있었다. 총 6층으로 이뤄진 경찰박물관 전시관 중 서영이가 가장 좋아한 곳은 2층 체험의 장이다. 추리 게임부터 몽타주 그리기, 교통 수신호 게임 등 경찰 업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체험 게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 증거를 모아서 범인을 찾는 ‘범인 잡기’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하지만 여덟 살 서영이에게는 결코 쉬운 게임이 아니었다. 게임을 하다가 막힐 때면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도와달라는 듯 신호를 보내도 손 경사는 답을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대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영이가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마침내 범인을 잡았을 때는 “아빠보다 더 훌륭한 형사가 되겠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사실 교육법이라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요. 발레, 피아노, 미술 이렇게 3개를 배우는데 모두 서영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제가 원한 건 피아노 정도? 인생을 살면서 여유를 즐기려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서영이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요.” 매일 남편은 범죄자와 마주하고 아내는 큰 상처를 안고 사는 피해자를 상대하다 보니 두 사람의 교육관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청소년과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이 삐뚤어진 아이를 종종 본다. 경찰 생활 14년 동안 그녀는 건전한 도덕적 가치와 성적은 별개임을 숱하게 봐왔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정말로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공부는 전혀 상관없어요. 대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갖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해요. 또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길 바라고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엄마들은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런 희망적인 말을 한다고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요(웃음). 아직까지 저희 부부의 바람은 그래요.” 물론 그녀도 엄마이기 때문에 흔들린 적도 있었다. 누구는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녀서 벌써 회화를 한다더라, 누구는 선행 학습을 한다더라 등 다른 부모의 사교육 이야기를 들을 때면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손 경사의 마음을 잡아주는 사람이 남편 고 경사였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님을 부부는 서로를 통해 확인했다. 그녀는 이럴 때 남편이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슬쩍 귀띔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대신 손정화 경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성폭력 예방이다. 어린 딸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최근 아동 성폭력 피해자 연령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큰 걱정거리다. 특히 서영이 또래 아이가 피해를 당한 사건을 접할 때면 가슴이 무너진다. ‘만약에’라는 단어로도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에는 왜 부모들이 예방 교육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부모가 되고 보니 참 막연하더라고요. ‘나쁜 아저씨를 따라가면 안 돼’라는 식의 예방법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요. ‘너의 소중한 곳은 어디니?’, ‘누가 거길 만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너를 안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자세하게 물어봐요.” 함께 목욕을 할 때마다 그녀는 서영이와 동생 유주에게 반복적으로 물었다. 아이들의 인지 능력은 어른보다 미숙하다.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예방 교육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야 한다. 또 아이가 어른들의 말을 거부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쁜 행동에 대응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반복적인 학습과 상황 연습을 통해 아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외에 기본 예절 교육도 꼭 시키고 있어요. 같은 공무원이라고 해도 경찰은 높은 도덕적 가치관이 요구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고 아이에게도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가르쳐요. 특히 공중도덕과 인사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죠.” 가끔은 너무 엄격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사를 가장 잘하는 어린이로 뽑혔고, 학교는 물론 동네에서도 서영이와 유주 자매는 ‘예의 바른 아이들’로 통할 정도다. 그녀의 예절 교육법을 지켜보자면, 조선시대 훈장처럼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대화를 통해 잘못된 점을 아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 서영이가 먹다가 흘린 케이크 부스러기 하나까지 말끔하게 치우며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했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마신 음료 잔조차 치우지 않은 누군가의 자리와 여러모로 비교됐다. “제 주위 동료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찰들은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어요. 재밌게도 대를 이어 경찰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경찰서에도 쌍둥이 자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근무 중이고요. 아마도 경찰 부모의 긍정적인 직업관을 보고 자라서가 아닐까 싶어요. 서영이가 나중에 커서 경찰이 된다고 하면 저 역시 적극 찬성이에요(웃음).” 10개도 넘는 서영이의 장래희망 중에는 경찰도 있다. 남편과 자신을 이어 서영이도 경찰이 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 뛴다고 슬쩍 자신의 속마음을 전했지만 손 경사는 딸에게 경찰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대신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리고 경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녀의 자긍심과 자부심이 딸 서영이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경찰관 엄마가 알려주는 아동 성폭력 예방 교육법 1 아무리 무서워도 “싫어요”, “안 돼요”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배운다. 설사 어른이 잘못된 요구를 하더라도 말이다. 아이의 소중하고 은밀한 신체 부분을 만지려고 할 땐 상대방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싫어요”. “안 돼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그 상황을 피하거나 도망쳐서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2 좋은 접촉과 나쁜 접촉을 구분 예방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나쁜 접촉을 애정 표현이나 애정의 증거로 오해하기도 한다. 성폭력 행동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때 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해 “너를 예뻐해준 거야”라고 아이를 속이기도 한다. 소중한 곳을 만진다거나 억지로 뽀뽀를 하려고 하는 경우, 몸을 더듬거나 만지는 것은 모두 나쁜 접촉이라고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 3 아는 사람, 친척일지라도 조심 아동 성폭력 가해자 중 상당수는 친인척이나 이웃집 아저씨 등 피해 아동과 아는 사이였다. 따라서 아이에게 아는 사람일지라도 이상한 행동을 요구할 때는 단호하게 거절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자칫 예방 교육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무조건적으로 조심하라는 것보단 어떤 행동을 할 때 주의해야 하는지 일러두어야 한다. 4 “~하면 큰일 난다”라는 식의 예방 교육 금물 지나치게 예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특히 “~에 가지 마라”, “~하면 큰일 난다”라는 식의 교육을 하게 될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오히려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중시킨다. “부모님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벌 받는 게 당연해”라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하게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5 신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일 때 성교육 시작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성적 용어를 알게 되고 자위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가 성에 관련된 질문을 할 때 대답을 회피하면 안 된다. 대신 아이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 또 TV나 영화를 통해 성에 먼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성폭력에 대한 내용도 직접적인 이야기보단 관련 교육 영상을 보여주거나 동화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서영이의 경찰관 일일 체험 후기 엄마, 아빠처럼 오늘은 저도 경찰관이에요! “경찰박물관은 처음 왔는데요. 정말 재밌어요. 지문 탐지기로 제 열 손가락 지문도 알아봤고요. 박물관 안에 있는 감옥에도 들어가봤는데, 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하지만 제일 재밌었던 건 범인 잡기 게임이에요. 증거를 모아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자꾸 틀려서 속상했어요. 처음엔 너무 어려웠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깐 나중엔 범인을 잡을 수 있었어요. 오늘 제가 한 게임이 아빠가 하는 일이래요. 나쁜 사람을 잡아서 착한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요. 지문이랑 발자국 같은 증거를 찾는 것도 아빠가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제일 신났던 것은 엄마처럼 경찰복을 입었던 거예요. 처음엔 하얀색 옷을 입으려고 했는데 그건 교통경찰 옷이래요. 엄마와 같은 경찰은 회색 옷을 입는다고 해서 저도 똑같은 옷을 입었어요. 엄마한테 ‘경례’하는 법도 배웠고, 경찰청장 의자에도 앉아보았어요. 엄마가 오늘은 저도 경찰관이래요. 다음에 또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Tip 스마트폰 앱으로 성폭력 안전 의식 점검하기 여성가족부는 아동 성폭력 예방을 위해 ‘우리 아이 지킴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아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는 ‘보호자 대처 요령’, 아이와 함께 보고 배우는 ‘성폭력 예방 교육 동영상’ 등을 제공한다. 특히 ‘우리 아이 안전 의식 테스트’를 통해 위험 상황에 따른 아이의 안전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보기를 추천한다. PROFILE 손정화 경사는… 어릴 때는 멋있는 제복을 입고 싶어서 경찰의 꿈을 꾸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경찰 시험에 도전했다. 대학교 3학년 때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해 어느덧 14년 차 중견 경찰이 됐다. 지금은 성북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여성보호계에서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다. 낮에는 경찰관으로, 밤에는 서영, 유주의 엄마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글 / 이선희(프리랜서) ■사진 / 박종민 ■촬영 협조 / 경찰박물관(02-3150-3681) ■도움말 /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www.child1375.or.kr)>
-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날
- 달리는 차에 매달려 범인 추격! ‘다이하드 경찰관’ 김현철 경사
- 2012. 09. 26 17:17 화제
- 질주하는 차에 매달려 25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범인을 잡은 경찰관이 세간에 화제가 됐다. 영화 같은 사건의 주인공은 부산 연제경찰서 교통안전과 소속 김현철 경사(34). 유튜브와 SNS를 통해 검거 과정이 찍힌 영상이 공개되며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김 경사는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에 ‘다이하드 경찰관’으로 소개되며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은 지난 8월 26일 밤 9시경, 부산 연산동 교보생명 앞 도로에서였다. 중앙선을 침범해 유턴하는 차량을 목격한 그는 해당 차량을 세우고 면허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운전자가 창문을 5cm 정도 열더니 얼굴을 숨기고 면허증도 보여주지 않더군요. 면허증 제시를 거듭 요구하자 갑자기 차를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어요. 50m 정도 뛰어가 차 앞을 가로막고 차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는데 내리지 않고 굉장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보통 음주 운전자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포기하고 경찰의 말에 따르거든요. 순간 ‘수배자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죠.” 지원 요청을 하고 손에서 무전기를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차가 김 경사를 향해 돌진했고 그는 본능적으로 차에 올라타 보닛 위에 엎드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범인은 그 상태로 김 경사를 매단 채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범인이 김 경사를 떨어뜨리기 위해 시속 70, 80km의 속도로 지그재그 운행을 하며 급가속과 급정거, 역주행을 반복한 시간은 무려 25분여. 김 경사에겐 생사를 오가던 시간이었다. “처음엔 범인이 금방 속도를 줄이고 차를 세울 줄 알았어요. 10분 정도 지나자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가 엄습하더군요. 아내와 네 살 난 아들,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도 떠올랐고요. 좀 더 시간이 지나니까 기필코 잡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필사적으로 매달렸죠.” 동료들이 탄 경찰차가 범인의 차량을 바싹 추격해오던 상황이었다. 혹시나 떨어져 경찰차에 치이게 되면 동료들에게 해가 될까 더욱 바싹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렇게 15km를 달린 끝에 범인은 막다른 도로에서 차를 세웠고 차에서 내려 도주하는 범인을 추격한 김 경사는 동료들과 함께 범인 검거에 성공했다. 검거된 운전자는 마약 투약 혐의로 수배 중이던 용의자였다. 김 경사는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가슴 등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미국 CNN 뉴스채널에 소개된 방송 화면 캡쳐. 당시 사건 장면이 찍힌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화제를 모았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얼마 전 1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았다. 합기도와 태권도, 특공 무술 등 도합 14단의 무술 고수인 그는 특전사 출신으로 2003년 경찰 특공대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이 된 지 올해로 9년, 줄곧 특공대에서 근무해오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교통과에서 근무해왔다. “동료들도 함께 고생했는데 저만 상을 받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경찰이 범인을 쫓는 건 당연한 건데 크게 화제가 되고 보니 얼떨떨하기도 하고요. 이슈가 됐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평범한 경찰관입니다. 정말 밤잠 못 자가며 일하는 경찰관들이 많아요. 최근 일어난 성범죄 사건들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계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희를 믿어주시는 만큼 어떤 사건이든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제공 / 부산지방경찰청>
- 헤어진 가족 찾아주는 경찰관 이건수 경사
- 2010. 02. 04 16:33 화제
- ㆍ“안타깝고 마음 아픈 사연을 보면 저도 함께 앓아요. ㆍ가족을 찾아주는 일은 앞으로도 쭉 해 나갈 제 사명입니다” 유난히 부모님의 너른 품이, 가족의 따스한 웃음이 생각나는 겨울. 가족이 함께 모이는 설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가족을 잃어버리거나 헤어진 사람이라면 이맘때쯤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가슴으로 전해지는 이산의 아픔 대한민국이 걸어온 질곡의 세월 속에서, 헤어짐의 순간은 곳곳에 존재했다. 역사의 길목을 통과할 때마다 수많은 가족은 서로를 잃어버리고 떠나보내고 흩어져야만 했다. 전쟁과 가난이 빚어낸 헤어짐의 아픔은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기는커녕 더욱 쓰리게 가슴에 남는다.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나고, 찢어지는 가난도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가슴을 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생이별한 가족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이건수 경사는 희망의 등불을 비추어주는 사람이다. 이제껏 그가 가족을 찾아준 사례만 해도 1천여 건이 넘는다. 사실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기 때문.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등 노력을 해봐도 혈육을 찾지 못해 애만 태우는 이들에게 이 경사는 마지막 ‘동아줄’ 같은 존재인 셈이다. 남양주경찰서 민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건수 경사는 올해로 8년째 ‘헤어진 가족 찾기’ 일을 전담하고 있다. 잃어버린 아이나 노인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 어릴 적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의 친부모를 찾는 일까지가 모두 그의 몫이다. 2002년 2월 민원실 발령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주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경찰이 되고 나서 처음에는 파출소에서 5년 정도 근무하다가 이곳 민원실로 오게 됐어요. 2, 3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업무’의 개념으로 가족 찾기 일을 했는데, 하다 보니 그들이 갖고 있는 이산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져 오더라고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나 입양자들은 혼자서 동사무소며 경찰서를 뛰어다니면서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 수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려움이 많죠. 저라도 열심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겁니다.” 일단 경찰서에 사람을 찾는다는 신청이 접수되면 해당 경찰서와 파출소로 그 신청서가 전해진다. ‘소재 수사’라고 하는 영역 정도가 원래는 정해진 그의 업무다. 하지만 이건수 경사는 이제껏 ‘소재 수사’에서 그쳐본 적이 없다. 자신의 이름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신청인들을 만나더라도 이름을 비롯한 정보를 근거로 ‘환경조사’에 들어간다. 태어난 지역, 살았던 주변 환경, 동명인 조사 등을 통해 가족일 확률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뽑아 다시 추적을 시작한다. 그리고 찾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을 법한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개인의 관련 정보를 얻어내기 힘들거나 후보 압축이 어려울 경우에는 그가 직접 동명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서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내는 편지만 해도 무려 일주일에 평균 600통 이상. 퇴근 시간도, 주말도 없다.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사랑하는 혈육과 헤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차츰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길을 잃어 가족과 헤어진 아이를 만나면 ‘낯선 곳에 남겨진 이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도 모르게 두렵고 아픈 심정을 함께 느끼게 되고,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 안타깝고 아픈 사연에 공감할 때마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족을 찾아줘야겠구나’ 하고 다짐해요.” 그가 상봉을 성사시킨 가족들의 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건수 경사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데 있어 국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다른 기관에 가족 찾기를 의뢰해둔 사람들이나 다른 경찰서에서조차 그를 찾아올 정도다. 지난 2007년부터는 KBS-1TV ‘그 사람이 보고 싶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잃어버린 가족과 입양아의 부모 등을 찾아주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비결이에요. 사연을 접하고 수사를 시작한 뒤 시간이 한참이 지나더라도 수사를 그만두지는 않아요. 가족을 찾지 못한 접수 건들은 계속 끌어안고 가요. 신청인들 한 명 한 명에게는 목숨처럼 중요한 일이잖아요.” 지난 시간 동안 그가 이뤄낸 수많은 가족의 만남 뒤에는 이 같은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진실 된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포트라이트 대신 평생 ‘내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어릴 적 이건수 경사의 꿈은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늘 훌륭하게 성장해서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학창 시절에는 굶는 게 일이었어요. 고향이 충청남도 당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인데, 어머니께서 미역을 찢는 일로 돈을 벌어 자식들 공부를 시키셨어요. 제가 막내인데 중학교 올라갈 때부터 형을 따라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거든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했죠. 늘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던 것 같아요. 밤마다 차디찬 방에서 옷을 몇 개씩 껴입고 형이랑 부둥켜안고 자면서 ‘나중에는 꼭 돈도 많이 벌고 어려운 사람도 돕자’고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때의 바람이 아직 100%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이 경사와 형 모두 현재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다짐을 이룬 셈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형은 장애아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나보다는 남을 위하며 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이건수 경사도 진작에 ‘헤어진 가족 찾기’ 일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일 자체의 어려움과 고단함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도 사람인데 늘 좋은 마음으로 일하는 건 아니에요. 가족 찾기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주어진 민원업무도 함께 열심히 수행해야 하니까 힘들기도 하고요. 일하다 보면 밤 10시, 11시를 넘기는 건 예사예요. 정신없이 일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창문 밖이 캄캄할 때, 솔직히 서러워서 눈물 흘린 적도 있어요. 사실 민원실은 일도 힘들고 잘 알아주지 않는 부서라 대부분 오래 남아 있지 않는 편이거든요. 어떨 때는 ‘내가 8년째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여기서 왜 죽어라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죠.” 법학과 졸업 후 젊은 나이에 금방 경사 직위를 얻은 그였다. 여러 부서를 돌며 경험도 쌓고 따로 공부도 해서 진급을 했다면 지금쯤 아마 더 좋은, 편안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측면에서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족을 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런 생각들이 다 사라져버린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승진해서 편안한 일을 하고 싶었다면 벌써 이 일을 놓아버렸을 거예요. 그런데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들을 보면서 평생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이 일이 제게 주어진 사명처럼 느껴져요.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매진하고 싶어요.” 잠깐이나마 느꼈던 힘듦도, 억울함도 모두 잊게 만드는 감격적인 가족 상봉의 순간. 이건수 경사 또한 이제껏 수없이 많은 가족 상봉의 장면을 봤건만, 그때마다 느끼는 감동은 매번 새롭고 거대하다고 말한다. “명절이 다가오니까 생각나는 사례가 있는데, 여섯 살 때 길을 잃고 미아로 발견된 여자 분이 계셨어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통해 고아원으로 보내져 평생 혼자 살아왔대요. 처음 가족을 찾고 싶다며 저를 찾아왔을 때가 쉰이 훨씬 넘은 나이였는데 그분 기억 속 정보들을 토대로 아무리 조사를 해도 찾아지질 않는 거예요. 3년 넘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찾았어요. 결국 방송에 출연한 후 들어온 제보에 힘입어 가족과 만나게 됐지요. 오빠, 언니에 동생들까지 형제자매는 물론 친척들까지 무척 다복한 집안이더라고요. 명절 때마다 저한테 안부 전화를 하시는데, 무엇보다 설 같은 때 가족과 만나 함께 웃고 떠들썩하게 지내서 무척나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어렵게 찾은 가족들이 상봉 후에도 자주 만나며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크나큰 보람을 느낀다는 이건수 경사. 하지만 가끔씩 아쉽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됐다가 성인이 된 후 친부모를 만나보고 싶어 한국을 찾아온 입양인들의 경우, 힘들게 가족을 찾았는데도 그 부모가 만나기를 거부할 때 허탈하기도 하고 조금은 야속한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입양인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버려졌다’는 생각 때문에 가족을 찾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데까지도 무척 고통스러워해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들은 평생 부모와 붙어 있고자 한다거나 ‘왜 그랬냐’고 원망하려고 가족을 찾는 게 아니에요. 그저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 이들이 두 번씩 힘들지 않도록 꼭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최근 들어 치매 노인의 실종이 늘어나는 것도 걱정이다. 사실 노인들은 지문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신고만 된다면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데도 발견됐을 때 바로 보호시설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보완하기 위해 이건수 경사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헤어진 가족 찾기 전문 센터’의 건립이다. 국가 차원에서 통합적이고 전문적인 센터를 세워 미아, 실종자, 치매 노인 등은 물론 해외 입양자들까지 좀 더 빠르고 쉽게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수사를 맡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져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상처 입지 않도록, 입양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과거와 화해할 수 있도록,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이 고통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할 때라는 생각에서 나온 제안이다. “저 또한 지금까지 가족 찾기 업무를 담당하며 쌓아온 노하우와 지식 등을 발전시켜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실 좀 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 요즘 공부를 하고 있어요. 비록 몸도 힘들고 개인적인 생활은 더 빡빡해지겠지만 더욱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야죠. 경찰관으로서 제가 맡은 민원업무 등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거고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는 이건수 경사. 그를 보며 또 한번 가족의 따스함을, 세상의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헤어진 가족을 찾고 있거나 주변에 헤어진 가족을 알고 있는 분은 이건수 경사에게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031-563-5304,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전문 센터 http://lostfamily.sm.to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
- 헤어진 가족 찾아주는 이색 경찰관 이건수 경사
- 2007. 02. 15 화제
- 유달리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리고, 고향생각이 간절해지는 2월,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을 잃어버렸거나 어린 시절 부모님과 헤어진 사람이라면 매년 찾아오는 ‘이 놈의 설’이 반가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도 희망이 보인다. 헤어진 가족 찾기에 발 벗고 나서는 마음 착한 경찰관, 이건수 경사가 있으니.한겨울의 매서운 바람도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1월 중순 어느 날, 경기도 남양주경찰서 2층 소회의실. ‘이산가족 상봉소’로 즉석에서 옷을 갈아 입은 그곳에선 뜻깊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김지빈(33·가명)씨가 30여 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와 만나는 시간. 약속 시간 훨씬 전에 도착한 그는 자리에 앉을 생각도 잊은 채 멀끄러미 창밖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어머니 원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가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약속 시간을 30여 분 넘긴 시각, 드디어 모자(母子) 상봉이 이루어졌다. 서로를 보자마자 와락 껴안고 우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울기만 했다. 어머니를 찾고픈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그럴 수 없었다는 아들. 죄인이기 때문에 자식 앞에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한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지냈다는 한 많은 어머니.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순전히 남양주경찰서 이건수 경사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잃어버린 가족 찾기 전문가 이건수 경사는 남양주경찰서 민원실의 ‘헤어진 가족 찾기’ 부서 전담자다.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던 중 2002년 2월 14일 민원실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터 이경수 경사의 ‘잃어버린 가족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지난 5년 동안 이산의 아픔을 가진 수많은 가족을 상봉시켰다. 숫자로 헤아리자면 무려 1백8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말 이런 그의 사연은 방송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후로도 현재까지 30여건의 이산가족을 더 만나게 해주었다니 과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멋모르고 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 더 많은 가족을 상봉시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경찰서에 사람을 찾는다는 신청서가 접수되면 대개는 관할 경찰서로, 거기서 또 관할 파출소로 신청서를 전달합니다. 이런 걸 소재수사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지난 5년 동안 소재수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신청인의 사연을 공감하지 못하면 끝까지 찾아줄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나서는 겁니다.” 이건수 경사는 헤어진 가족을 찾을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우선 신청 내용을 꼼꼼히 기록한다. 그후 찾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한다. 이장, 지역연구가, 동사무소와 시청 직원, 지역 유지에게도 도움을 구한다. 그래도 결정적인 단서가 안 나올 경우에는 마지막 수단으로 편지를 띄운다. 찾고자 하는 사람과 이름이 같은 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워 그 가운데 연락을 준 사람들 위주로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는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헤어진 가족 찾기’에 관한한 베테랑 수사관이다. 찾는 사람이 사망을 했다거나, 만나기를 거부한 경우, 장기 실종자를 제외하고는 신청, 접수된 모든 건을 해결해냈다. 그 배경에는 이건수 경사의 사람을 대하는 예의 진실된 마음과 성실함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열정파다. 수당이 없어 해마다 바뀌기 일쑤인 민원실 근무를 6년째 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5년 넘게 헤어진 가족을 찾다 보니 저절로 세상 보는 눈이 트인 것 같다 말하는 그. 지난해 말에는 ‘헤어진 가족 찾기 전문센터 건립’을 경찰청에 정식으로 건의하기도 했다. “외국과 비교하며 전문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전쟁고아나 해외입양자가 좀 많아야죠. 가족과 헤어져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헤어진 가족 찾기 전문센터 건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센터를 만들어 단기처리반에서는 실종자를, 장기처리반에서는 고아나 해외입양자를 찾아주는 겁니다.”이산가족의 한 풀어주고파 고아들의 사연을 접할 때 특히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는 이건수 경사. 자라는 동안 자신의 부모를 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이란다. 잊혀지지 않는 상봉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건수 경사는 양녀로 들어간 누나와 고아원에 간 동생이 만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동생의 부인이 신청을 해 누나를 찾았으나 둘은 만나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동생은 ‘우리 누나가 아닐 것’이라고, 누나는 ‘내 동생이 아닐 것’이라며 서로를 부정했다. “오랜 설득 끝에 마침내 누나와 동생이 상봉하던 날이었어요. 누나 분이 10년 전에 찾은 또 다른 동생과 많이 닮았다며 ‘너는 내 동생 맞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헤어진 가족의 상봉을 주선하다 보면 간혹 재회시 침묵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수록 그런 경우가 많죠. 수년에서 수십년이란 세월의 장벽이 그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벽을 쌓은 탓일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답니다.” 3년에 걸쳐 가족을 찾아준 일도 이건수 경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여섯 살 때 다른 집에 양녀로 들어간 딸이 어머니를 찾는 사연이었다. 신청자가 기억하는 어머니 이름으로 전국을 샅샅이 훑었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이는 없었다 한다.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건수 경사는 신청자에게 “포기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했다. 이에 신청자는 “내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냐”고 되묻더라고. 그는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신청서를 접수한 지 3년, 오랜 기다림 끝에 신청자의 어머니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법. 재혼한 가족들이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며 어머니가 딸 만나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것이다. 이건수 경사는 ‘딸의 한을 풀어주자’고 어머니를 설득했고, 그의 진실된 마음에 감동받은 어머니는 결국 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헤어진 가족이 상봉한 후 그후로도 자주 연락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건수 경사. 경찰관으로서의 보람도 그때 느낀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30여년만에 만난 김지빈씨(가명)와 그의 어머니. 이날 상봉장에는 신청자의 외할머니와 이모도 함께 자리했다.문득 상봉한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지난 5년간 무수히 많은 일을 해결해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의 경우에도 가족간의 불화가 생겼다거나 하는 등의 좋지 않은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찾는 사람이 재혼한 경우 현재의 가정도 매우 중요하단 생각에 접촉시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헤어진 가족 찾기’를 채무관계 해결 또는 사기수법으로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다. 이건수 경사는 그런 경우라면 수사 과정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수사 과정에서 만나서는 안 될 가족이라는 판단이 서면 상봉시키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포기는 없다’고 외치는 집념의 경찰관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이건수 경사의 책상 위에는 현재 70~80건의 신청서가 쌓여 있다. 지난해 말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후 한 달에 4~5건이던 신청서가 하루에 4~5건으로 늘어난 결과다. 게다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경찰관으로 소문이 나 남양주경찰서 관할이 아닌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신청서를 놓고 가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이 정도면 급격히 늘어난 업무량에 불평할 만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마워했다. “텔레비전에 안 나갔으면 이렇게 많은 신청서를 받지 못했을 거예요. 저로서는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됐으니 영광이죠. 사실 한때 이 일을 하며 ‘언론 덕을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곧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깊이 반성하게 됐죠. 그 이후 개인적인 욕심은 전부 버렸습니다. 헤어진 가족들에게 상봉의 기쁨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걸 얻은 사람이에요. 가족의 소중함, 우리 가정의 행복, 아내와 자녀들의 존경심까지…. 차고도 넘칠 정도입니다.” 말을 잇던 이건수 경사는 정말 부끄럽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부끄러운 고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그런 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헤어진 가족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평생의 꿈’이라면 그의 마지막 꿈은 인권변호사다. “학창 시절 하도 못 먹어서 하늘이 항상 노랬어요. 말할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거죠. 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으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인권변호사가 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경찰관이 되었지만 인권변호사의 꿈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환하게 밝은 정해년 새해에도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일에 온 몸을 바칠 생각이라는 이건수 경사. 그의 건투가 계속되길 빌어본다. 이산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그의 가족 찾기는 계속되리라.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헤어진 가족이 있거나 주변에 헤어진 가족의 사연을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면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이경수 경사에게 연락 바랍니다. 남양주경찰서 민원실 031-563-5304 남양주경찰서 자유게시판 http://nyj.ggpolice.go.kr 이건수 경사 이메일 keonsu@naver.com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다룬 故 진영태 검사의 아내 시인 김혜정
- 2006. 03. 01 화제
- “16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시를 쓰게 했습니다” 지난 1989년 5월 어느 날 한 검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는 여러 몇 가지 의문점이 발견됐지만, 사건은 단순한 교통사고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허무하게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김혜정씨는 얼마 전 시집을 펴내 남편의 죽음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남편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파헤친 검사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내는 딸아이를 등에 업고,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7년 11개월을 함께 살았던 남편은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었다. 일본 연수 시험에서 일등을 한 기념으로 동료 검사들과 회식을 하고 돌아온다던 남편이었다. 그의 시신은 온몸에 타박상을 입어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였다. 1989년 5월 4일 고 진영태 검사는 그렇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여덟 살짜리 아들 현식이, 그리고 다섯 살 된 딸 유례를 남겨두고…. 시인 김혜정씨(49)는 그렇게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일본으로 연수를 떠난다고 그렇게 좋아했던 남편이었는데, 그가 당했다는 교통사고는 의문투성이였다. 남편을 친 차의 주인은 전과 13범이었고, 차 역시 대포차(무적 차량)였다. 술을 먹고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향했던 남편이 왜 갑자기 남부순환도로에서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술집에서 집까지는 자동차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사고 다음 날 남편의 차 키를 누군가 아파트 경비실에 놓고 갔다는 것도 수상쩍었다. 열쇠를 전해 받은 경비에게 누가 준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는 갑자기 일을 그만뒀다. 교통사고라고 하기에는 남편의 온몸에 남겨진 타박상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의문은 교통사고가 계획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의 태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성의가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친척들과 남편의 친구들은 남은 가족들도 위험할 수 있다며 그냥 덮어두자고 했다. 남편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졌다. “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실 겁니다. 지난 1985년 처음으로 인천지검 공안검사팀에서 일했어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두웠잖아요. 그런데 부천 성고문 사건을 파헤쳤으니 상부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죠. 집 전화가 도청을 당해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할 때도 있었죠. 홍성을 거쳐 서울지검에서 일할 때 검사들이 해외로 연수를 나가는 시험이 있었어요. 남편은 일본 연수 신청을 했고 시험에서 일등까지 했어요. 함께 일하던 상사,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그런 일을 당한 거죠.” 남편은 김혜정씨의 친오빠와 고등학교 동기였다. 남편이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소개를 받았고, “풍족하게 살게 해주지는 못한다” “나랑 결혼하려면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믿음이 생겨 결혼했다. 그와 함께 산 7년 11개월은 ‘청상과부’처럼 지냈던 시간이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큰 사건이 터지면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의 막막함이란….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 김혜정씨는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해서 언젠가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녀는 아이 둘과 함께 친정으로 들어갔다. 지검장까지 지냈던 친정 아버지 덕분에 큰 고생 않고 자란 그녀지만 온실의 꽃처럼 지내왔던 생활을 바꿔야만 했다. 남편 대신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기도 하고, 드라마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를 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남편의 10주기에 맞춰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나온 시집 「내게는 멀고 흐리다」(북@북스)는 김혜정씨가 눈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지난 16년 동안의 추억이다. 극작 전공 딸과 함께 영화 시나리오 쓰고 싶어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당시 8살이던 아들은 현재 군복무를 앞두고 있는 25세의 청년으로 컸다. 당시 다섯 살이던 딸은 문예창작을 전공한 후 극작을 전공하기 위해 올봄 다시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하는 예비 대학생이 됐다. 성장기에 아버지의 부재로 많이 힘들었을 테지만, 혼자 된 엄마 앞에서는 절대로 티를 안 내는 착한 아이들이다. “애들과는 친구처럼 지내요. 특히 딸아이가 문학공부를 하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잘 맞아요. 남들이 제 작품에 대해서 비평을 하면 참기 힘든데, 딸의 말에는 귀가 기울여져요.(웃음) 딸하고는 잘 지냈는데, 아들한테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남편에 대한 원망을 아들한테 푼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그래도 지금까지 제 말을 잘 들어준 게 너무나 고맙죠.” 김혜정씨는 아버지의 부재로 마음 아파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친구가 되고 싶었다. “공부해라” “이건 하지마라”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자신 있는 것을 하도록 배려했다. 문학이 얼마나 배가 고픈 직업인지를 알고 있지만, 딸이 문학에 재능을 보여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아들도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이 저와 엄마 관계를 무척 부러워해요. 마치 자매처럼 장난치고 이야기하고 그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요. 자라면서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게 힘들 때도 많았어요. 학원에서 밤늦게 끝나면 다른 애들은 아버지가 데리러 오는 걸 볼 때 많이 부러웠죠. 학교에서 가족 사진 내라고 할 때도 그렇고. 그냥 친구들한테는 아버지가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셨다고 했어요.”(딸 진유례) 김혜정씨는 극작과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녀 자신이 아직 이루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꿈 때문이다. 딸과 함께라면 그동안 가슴에 꽁꽁 묻어두었던 남편의 죽음고 관련된 사건을 시나리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딸 역시 엄마와 함께 팀을 이뤄서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예전에 한 번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입봉하는 감독에게 줬는데, 부담이 됐는지 영화로 만들지 못했거든요. 딸이 졸업할 때 함께 좋은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딸이 제 작품의 부족한 점을 잘 채워주거든요.” 김혜정씨의 요즘 고민은 경제적인 자립에 관한 것. 2년 전 친정살이를 청산하고 세 식구가 함께 살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다. 친정에서 살 때는 자신이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도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 먹는 것, 자는 것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진짜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 그녀는 ‘시인으로 사는 한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평생 시는 놓지 못하겠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화 시나리오였다. 얼마 전까지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먹고 사는 문제가 ‘발등의 불’처럼 느껴진다. “평생 어려움 없이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죽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했죠. 다행히 얼마 전까지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헤쳐나가려구요. 시가 없었으면 버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인생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견딜 만한 것 같아요. 이왕 주어진 삶이니까 무엇인가 밝고 환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겠죠. 그것이 인생의 의미 아닐까요?” 인생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살았던 김혜정씨. 남들처럼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그녀는 인생의 어두움을 알게 됐다.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를 잘 이겨내준 아이들이 있고,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시가 있기 때문이다. 2년 후 딸과 함께 만들 영화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혜정씨가 남편을 기억하며 써내려간 시 원통을 찾아가 여긴, 여전하군요. 십사 년이 흘러도 저 먼지 쌓인 새우깡이랑 매달아놓은 비닐 봉다리 속 오징어랑 뿌연 유리창 너머로 군인 신랑 기다리며 새댁이 바라보던 눈 덮인 저 산의 능선도…… 어쩜, 그대로예요. 그이 땅에 묻고 어느새 칠 년 함박눈 쌓이는 겨울이면 신랑각시 시절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곳을 한번 찾아오자고 했는데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세월에 닳고 깎인 저 여자, 애절하게 흐느끼는 노랫소리가 날 기댈 데 없이 만드네요. 그때 그 새댁 시절엔 한밤에 신랑 손 잡고 저 언덕길 내려와 서울 친정에 전화하고 눈물 핑 돌아 돌아섰는데 이미, 한 세월을 받아냈는지 홀로 남겨져 무심해졌는지 저 여자의 쉰 목소리가 왜 이렇게 편안해 어둠의 그늘에 들어가 주저앉아 그만 쉬고 싶어지네요. 경계를 다 허물어버린 허공뿐인 마음인데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자꾸 와르르 무너져 내려 그때 그 기다리던 언덕길 어렵게 어렵게 찾아왔더니 끝내, 그 환한 자리 쓰리고 아파…… 또…… 눈발이…… 흩날리네요.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이상민
- 여경찰로 변신, 화려한 액션 선보인‘코믹 퀸’ 김선아
- 2005. 04. 01 연예
- “점프하면서 다리 찢어야 하는 액션의 고통을 아시나요?” 코믹하고 털털한 이미지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배우 김선아가 이번엔 경찰로 변신, ‘고딩’으로 위장해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영화 ‘잠복근무’에서 ‘코믹 퀸’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준 그녀의 화려한 액션과 촬영 뒷얘기들에 관한 유쾌한 수다. “즐겁게 촬영했고 액션 장면은 특히 만족스러워요” 김선아(31)는 꾸밈없는 배우다. 여배우 특유의 콧대 높은 까탈스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내숭도 없다. 그렇다고 ‘선머슴과’도 아니다. 마냥 털털할 것 같지만 가끔은 새침한 모습도 엿보인다. 그래서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여성스럽다’고 평한다. 김선아가 다른 여배우들과 구별되는 또다른 점은 ‘다작’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출연한 작품들이 대부분 코믹물이다. ‘몽정기’에서 사랑스러운 푼수의 진수를 보여준 교생, ‘황산벌’에서 단 한 장면으로도 강렬한 웃음 효과를 이끌어낸 계백장군의 아내, ‘위대한 유산’에서 애드립의 귀재 임창정을 능가하는 폭소탄을 선사한 백조, 그리고 여배우 원톱 영화로서 개봉 첫 주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S다이어리’까지, 꾸준히 코믹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애절한 멜로영화의 여주인공도 한번쯤 해보고 싶었을 텐데, 코미디 영화에 대한 애정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새 영화 ‘잠복근무’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시종 유쾌하다. ‘김선아표’라고 할 만한 천연덕스러움에 화려한 액션이 더해졌다. ‘코믹 액션’이라는 조어가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그런 장르가 있다고 한다면 역시 그녀만큼의 적역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상업 영화예요. 재밌으면 되는 거고,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했습니다. 시사회 때 다시 보니까 자꾸만 몸이 슬슬 아파지는 것이, 액션 연기할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는 거 있죠.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물론 액션 연기가 힘들 거란 각오는 했어요. 하지만 인대 늘어나고, 뼈 다치는 게 기본일 줄은 몰랐죠. 유도를 처음 해봤는데 그것도 남자랑 했어요. 너무 힘들더라구요. 하긴, 몸으로 하는 건 다 힘들어요. 체력도 달리고… 무술팀들이 저한테 많이 맞았어요. 한 번에 끝내려고 하다 보니까 할퀴고 때리고… 코미디지만 액션만큼은 리얼하게 하려고 애썼거든요. 아쉬움은 있지만 액션에는 대체로 만족합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에서 김선아는 여경찰로 분했다. 조폭들의 복수를 피해 종적을 감춘 증인. 그 증인만이 유일한 단서를 제시해줄 수 있는 사건에서 경찰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마침내 증인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의 숨겨진 딸 차승희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여형사 천재인이 고교생 신분을 위장해 전학을 가면서 ‘잠복근무’가 시작된다. 하지만 경찰과 폭력조직이 동시에 학교를 주시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적 때문에 수사 기밀이 노출된다. 그 와중에 천재인은 신분을 들키지 않아야 함은 물론, 증인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하는 이중, 삼중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교 1등 승희의 친구가 되기 위해 모의고사 전교 1등이라는 과업이 주어지고,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파란만장한 임무 속에 심지어 완벽한 고딩 킹카 강노영(공유)의 대시까지 감당해야 한다. “연속 두 작품 함께 한 공유는 이제 동성 같은 느낌” “‘S다이어리’는 연애에 관한 영화인 만큼 공유씨를 비롯해서 김수로씨, 이현우씨 등 상대역들에게 연애 감정을 갖고 연기하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땐 공유씨에 대한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그땐 둘이 함께 찍는 장면이 많아서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었는데, 이 영화는 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거라서 공유씨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거든요.(웃음) ‘S다이어리’의 유인이를 잊어야 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일부러 더 차갑게 대하기도 했는데 감정 조절이 쉽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이제 공유씨는 이성이라기보다는 동성 같은 느낌이 들어요.(웃음) 성격도 비슷한 면이 있고 현장에서 수다 떨다 보면 너무 많이 편해져서 오히려 걱정될 정도거든요.” 그렇다고는 해도 연속 두 작품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해서 감독에게 아예 키스신을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키스신 찍을 때 공유씨가 ‘S다이어리’ 때보다 더 떨린다고 하더라”는 김선아의 말에 “그날 날씨가 좀 추웠다”고 공유가 맞받아치자 목젖이 보일 정도로 깔깔 웃는다. ‘코믹 액션’을 표방한 만큼 고난도의 액션신이 난무하는 이 영화는 그만큼 그녀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른 여배우들은 촬영장에서 틈만 나면 거울을 찾는다는데, 그녀는 ‘컷!’ 소리가 나자마자 ‘파스!’ ‘빨간 약!’을 외치기 일쑤였단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멍 자국이 하나 둘 늘어, 급기야 다리가 온통 울긋불긋해졌을 정도. ‘이제 시집 다 갔다!’며 한숨 쉬는 나날이었지만 전문 스턴트맨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릴 정도로 그녀의 액션은 훌륭했다고 한다. 사건 현장을 누비는 형사처럼 질끈 묶은 생머리에 노 메이크업으로 카메라 앞을 종횡무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소탈한 성격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날라리 여학생들의 ‘도전’에 대처하는 천연덕스러운 ‘고딩’ 연기에 그녀의 여고 시절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십상이지만 “보기보다 소심한 편이라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안 하면서 졸지도 못하는 순둥이였다”며 억울한 표정이다. “편수가 늘어가면서 느끼는 건데, 코미디라는 장르가 점점 더 어려워져요. ‘위대한 유산’ 등 다른 코미디 작품들은 대개 여럿이 같이 했는데 이번에는 특히 혼자 뛰는 거라서 그랬는지 더욱 어렵더라구요. 코미디란 게 사람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그게 얼마나 어려워요. 즐겁게 촬영한 만큼 보시는 분들도 재밌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경기도 안 좋고 우울한데 두 시간 남짓 즐겁게 웃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정연진
- ‘엽기 경찰’로 돌아온 ‘내 여자친구’전지현
- 2003. 11. 01 연예
- “두번째 호흡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배우 생활하면서 나를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감독님을, 이렇게 일찍 만났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전지현이 자신의 출세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과 다시 만났다. 새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다시 한 번 그녀 특유의 ‘엽기적 카리스마’를 발산하게 된 것.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전지현을 보기 위해 제작 발표회 현장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최근작 ‘4인용 식탁’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부진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대중과 매체의 관심은 전혀 식지 않은 듯하다. 그녀를 CF 모델로 내세운 모 디지털 카메라는 ‘전지현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고, 모 의류 비주얼에서 보여준 탄력 있는 그녀의 몸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몸매’로 대중을 열광시키고 있다. 많은 남자들이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는다는 ‘얼굴은 청순, 몸매는 섹시’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그녀를 따라올 배우는 현재로선 별로 없어 보인다.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아직 캐릭터를 완전히 잡은 상태는 아니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감을 가지고 연기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엽기적인 그녀’ 이전, 혹은 이후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엽기적인 경찰’이다. 오지랖 넓은 순경 여경진은 귀여운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캐릭터. ‘오버된’ 사명감으로 자신이 마치 강력계 형사인 양 행동하고, 치안유지를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범인으로 의심되면 일단 체포부터 하고 본다. 범인이 혐의를 부인하면 협박도 불사한다. 결국 범인의 결백이 증명되면 쿨하게 없었던 일로 하기 일쑤. 연애 스타일도 이와 비슷하다. 일단 맘에 들면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자친구로 임명한다. 확실하게 그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자친구=일꾼’의 등식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 애정표현엔 서툴지만 영원한 사랑을 믿는 순수함 때문에 도저히 미워할 수는 없는 사랑스런 여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인 상대역 명우(장혁 분)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이 그랬듯이 그녀가 벌이는 온갖 사고의 뒷수습을 책임져야 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화제를 모으는 것은, 홍콩의 유력 영화 투자·배급사인 에드코 필름이 40억~5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전액 투자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애드코 필름은 홍콩에서 가장 큰 영화제작 및 배급사로 영화 ‘와호장룡’ ‘영웅’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제작 발표회에 함께 자리한 빌 콩 대표는 이번 투자 결정의 배경을 한마디로, ‘전지현의 힘’으로 설명한다. “전지현의 인기는 아시아 최고이며, 오직 전지현 때문에 전액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 또한 그는 한국 영화 최초로 한국과 중국 동시 개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 몇 년째 식지 않는 전지현 신드롬이 국내를 벗어나 아시아 전역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상당해 보인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황정욱
- 사위 고소한 최진실 모친 정씨 & 경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조성민
- 2003. 09. 01 연예
- 정씨 “1억은 사업자금으로 빌려준 것” 조성민 “차용이 아니라 회사에 투자한 것” 최진실 모친 정씨가 지난 7월 2일 사업자금으로 빌려간 1억원을 갚지 않는다며 가압류신청과 함께 사위인 조성민을 고소했다. 1억원은 지난해 조씨가 제빵사업을 시작하면서 장모 정씨로부터 빌린 것. 부부싸움으로 시작돼 민·형사 사건으로까지 이어진 소송 내막. 투자다, 차용한 것이다 쌍방간 다른 의견 소강상태를 보이던 조성민 최진실 부부의 갈등문제가 다시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월, 최진실의 어머니 정씨가 강남경찰서에 사위 조성민씨(30)를 사기혐의로 고소하면서 불거진 것. 장모가 사위를 고소하는 일은 국내 정서상 극히 드믄 일이다. 특히 조성민은 정씨말고도 처남인 탤런트 최진영에게도 고소을 당해 설상가상인 입장. 최진영이 올해 초까지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했지만 여의찮자 강남역 근처에 있는 조성민의 매장을 가압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최진실의 한 측근은 “정씨가 오죽하면 소송을 걸었겠냐면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또 이혼문제가 불거졌을때는 돈을 갚겠다고 하다가 지금에 와서 투자 운운하니 정씨 입장에서 볼 때 고소 외에 다른 방법이 어디 있겠냐며 반문했다. 한편 이런 내용을 접한 최진실은 “시집간 딸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줄 때는 가정을 잘 꾸리며 잘 살라는 뜻으로 빌려준 것이 아니겠냐”면서”여자문제까지 거론되는 사위에 대해 품는 장모의 마음은 채무 관계로 끝날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성민은 이들의 생각과 다르다. 조성민은 경찰 조사에서 장모인 정씨에게 빌린 1억원은 차용한 것이 아니라 투자개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빌린 돈은 회사 사정 때문에 속히 돌려주지 못한 것뿐인데 사기죄까지 적용한 것은 지나치다며 갚을 생각이었지만 그동안 신변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갚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성민은 8월 14일,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최진실과 조성민이 현재 부부임을 감안, 합의점을 찾아보라고 권유한 뒤 귀가시켰다. 대질심문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씨가 왜 현시점에서 조성민을 고소한 것일까? 최진실의 한 측근은 평소 조성민이 법대로 하라라는 말을 자주 해온데다 조성민에게 ‘여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S여인이 조성민 회사에 이사로 기용된 사실이 밝혀져 정씨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최진실은 고소건과 관련, 내용증명을 통해 통보한 것처럼 “고소장을 낸 것은 예정된 수순”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간 갈등문제에 대해서도,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봐서라도 이혼할 마음은 없다면서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후 아이들이 이혼하라고 한다면 그때 얘들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성민과의 이혼문제에 대해 “위자료 10억원을 요구한 일도 없고 10억원보다 적은 액수로 합의가 이뤄지기 직전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조성민은 파경 초기, 기자회견을 자청할 때와 달리 특별한 언급이 없다. 지난 18일 조성민과의 전화인터뷰에서도 그는 사적인 생활에 대해 언론에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그때 정식으로 인터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위를 고소한 장모 정씨, 장모는 물론 처남에게까지 고소당해 경찰서까지 다녀온 조성민. 아이들이 성장해서 판단할 나이가 들기까지 이혼은 안 된다고 말하는 최진실, 이들에게 화해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조성민, 최진실을 아끼는 팬들은 가족간에 번진 이들의 송사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글 / 연세영 기자 사진 / 경향신문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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