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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런 소위 계급장 단 공군사관학교 53기 위탁생도 태국청년 다이텝 게씬
2005. 04. 01 화제
“한국 양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 덕에 좋은 추억만 안고 갑니다” 2001년 태국 공군사관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공군사관학교 제53기 위탁교육생으로 입교한 태국의 다이텝 게씬 생도가 한국의 동기생들과 나란히 졸업해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그의 한국 생활에는 친가족처럼 따뜻한 후견인 가족이 함께 했다. “제겐 두 분의 아버지와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지난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선 한 태국인 청년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태국 공군사관학교에서 1학년 과정을 마치고 지난 2001년 공군사관학교 제53기 위탁교육생으로 입교한 태국의 다이텝 게씬 생도(25)가 그 주인공. 공군은 군사 외교 차원에서 1994년부터 매년 태국 공사생도 한 명을 한국 공사생도 정규 교육 과정에 편입시켜 교육해왔다. 이번에 한국의 동기생들과 나란히 졸업하며 소위에 임관한 다이텝 소위는, 자신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며 한국의 양부모께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4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태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 태국 무관 관저에서 만난 다이텝 소위는 절도 있는 태도가 몸에 밴 인상 좋은 청년이었다. 이날 저녁에는 무관 내외가 특별히 마련한 송별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다이텝 소위처럼 현재 한국에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는 후배 생도들과 다이텝의 친가족, 그리고 그의 한국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양부모 박종관(49·다우산업 대표)·김미경씨(46) 가족도 함께 했다. 청주에서 사업을 하는 박씨 부부가 다이텝 소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공사에서 위탁교육생 후견인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집을 떠나 생활하는 외국인 생도들에게 따뜻한 한국 가정을 체험하게 하자는 취지의 제도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공군 중위(사관후보생 75기)로 공군 대선배이기도 한 박씨는 더욱 각별한 마음으로 다이텝 소위를 친자식처럼 돌봤고, 다이텝 역시 이들 부부를 친부모처럼 잘 따랐다. “한창 피가 뜨거운 시절을 공군에서 보내서 그런지 공군에 남다른 정이 있어요. 좋은 추억도 많구요. 다이텝을 보면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웃음)” 이들 부부의 딸(고3)과 아들(고1)도 다이텝을 친오빠, 친형처럼 따르며 우애 있게 지냈다. 다이텝을 포함한 온 가족이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고, 여름철엔 캐러비안 베이 등도 함께 다니며 가족애를 키웠다. 지난 4년간 다이텝이 집 안의 활력소가 됐다는 것이 박씨 부부의 말이다. 양어머니 김미경씨는 예의 바르고 반듯한데다 유머 감각까지 갖춘 다이텝을 친아들 이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다이텝은 가정교육을 아주 잘 받은 청년이에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격 탓에 처음에는 가족들과 친해지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허물없이 편안한 관계가 됐죠. 의외로 유머 감각도 있어요. 한번은 아들아이가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그럼 국어여행이나 영어여행은 언제 가냐고 해서 온 가족이 웃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우리말을 금세 응용하더라구요.(웃음)”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러 좌향좌 우향우도 헷갈렸죠” 태국 공사 생도중에 우리나라 공사로 위탁교육을 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 자격 조건도 만만찮게 까다롭다. 먼저 외국 위탁교육생으로 지원하려면 1학년 1학기 평점이 전교 30등 안에 들어야 한다. 이 30명에게만 필기시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시험을 통과한 10~12명이 미국이나 한국 등 위탁교육제가 운영되고 있는 우방국으로 떠난다. 사실 다이텝 소위는 한국에 못 올 뻔했다. 1학년 1학기 성적이 31등에 머물러서 아깝게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없었던 것. 그런데 한국행을 지원한 생도 하나가 한국의 공군사관학교 훈련이 ‘빡세다’는 소문을 듣고 응시를 포기하는 바람에 31등이던 그가 추가로 응시 자격을 얻었다. 지금에 와서도 그것이 다 ‘인연’이지 싶단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스포츠 선수들이 맹활약하는 것을 보며 스포츠 강국이라는 인상 정도가 남아 있었죠. 직접 와서 생활해보니 한국 사람들은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근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질주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 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구요.” 다이텝 소위가 공사에 첫 입교했을 때만 해도 우리말 실력이 신통치 않아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교수나 교관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으로 동기생들을 웃기곤 했던 것. 우리말이 서투르다 보니 ‘좌로 가!’라고 하면 우로 가고, ‘우로 가!’라고 하면 좌로 가는 등 실수 연발이었다. 그의 우리말 실력이 쌓이기까지 제일 고생한 사람은 같은 내무반을 썼던 동기생 김진수 소위. 보통 1학년 생도들이 선배들의 제복을 다려주는 것이 관례인데, 어눌한 자신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로 바빴던 김진수 생도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의 제복만은 매일 다려주곤 했단다. 물론 그후로 그의 우리말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4학년 1학기에는 학업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다. “한국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다이텝 소위는 또, 공사 홍보용 화보와 달력 모델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졸업식에서 공로상도 받았다. 큰 키에 잘생긴 외모 덕분에 ‘얼짱’이라는 별명도 붙었지만 본인은 한사코 그 별명을 부인한다. “사실 달력 모델도 우연히 한 거였거든요. 같은 내무실에 있던 생도가 공사 홍보 책자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다들 훈련 나가고 마침 저만 남아 있어서 한 번 도와달라고 하기에 모델 노릇을 한 거죠. 저 얼짱 아니에요.” 한국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그에게 미팅 경험이 있냐고 묻자 4학년 때 딱 한 번 해봤다며 웃는다. 휴일에 할 일이 없어서 친구 네 명이 함께 미팅에 나갔단다. “그때 함께 나간 친구 중에 한 명이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딱 태국 사람처럼 생겼어요.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친구를 태국 생도로 소개하고 저는 한국 사람인 척하기로 했죠. 말하면 티 날까 봐 일부러 과묵하게 앉아 있었어요. 그랬더니 상대 여학생들이 정말 아무도 의심하지 않더라구요.(웃음)” 그동안 한국 여학생과 연애해본 적도 한 번 없단다. 처음에는 한국말이 안 돼서 못 사귀었고, 말이 어느 정도 되니까 떠날 때가 됐다는 것. 옆에서 다이텝의 말을 듣고 있던 양어머니가 한마니 거든다. “태국에서는 곧 한국으로 떠날 거니까 여자친구 마음 아플까 봐 안 사귀고, 한국에서는 4년 있다 떠날 거니까 또 그 여자친구 맘 아플까 봐 안 사귀는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 다이텝 정말 좋은 남자 아닙니까?(웃음)” 이때 다이텝 소위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더니 이내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사실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두어 달 전에 대전통합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국군간호사관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만났단다. 그때 다이텝 소위는 마침 공사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공사에 친한 친구가 있다면서 말을 건네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그뒤 그 여학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그 여학생 참 멋지다!”고 했더니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떠나게 돼서 마음 아프겠다고 하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밤인데 전화 통화라도 해야겠다”면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잠시 시계를 쳐다보기도 했다. 자신의 꿈인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태국에 돌아가서도 2년간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물론 그후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에 합격해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이텝이라면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양부모의 바람이자 믿음이다. “돌아보면 4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났네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이 공감대를 갖고 함께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다이텝에게서 끈끈한 정도 느꼈구요. 절도 있는 다이텝의 행동거지가 항상 맘에 들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다이텝이 형, 오빠로서 그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주어서 고맙기도 합니다. 가서도 훌륭히 장성할 것이라 믿고, 태국과는 거리도 멀지 않으니 자주 왕래하고 지내야지요.” 양아버지의 덕담에 다이텝 소위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매주 토요일 정오에 모든 생도들이 내무반을 나와 자유 시간을 가져요. 학교에서 후견인을 연결해주었을 때 처음에는 주말의 자유를 뺏기는 것 같아 꾀가 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후견인 제도의 목적이 외로운 외국인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고, 그로 하여금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갖게 해주는 일이라면 그 목적은 제게 훌륭히 달성됐습니다. 저는 지금 충분히 그런 상태이니까요.(웃음)”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최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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