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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10 건 검색)

광주요&화요 팝업스토어 ‘화요만찬’ 열린다
광주요&화요 팝업스토어 ‘화요만찬’ 열린다
2023. 12. 11 10:14 리빙
도자 브랜드 광주요와 프리미엄 증류주 화요가 함께 하는 ‘화요만찬’ 팝업스토어가 오는 15일부터 서울 한남동에서 열린다. 광주요와 화요의 창립 60주년,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팝업스토어에서는 두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다양한 제품을 둘러볼 수 있다. 또 브랜드 성장 과정에 담겨 있는 서사도 살펴볼 수 있다. 팝업스토어 공간도 감각적으로 꾸몄다. 패브릭을 활용한 병풍과 조명을 설치했으며 한옥 자재를 사용해 만든 평상, 소반을 활용한 주안상, 책가도 등 전통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팝업스토어는 28일까지 한남동 데일리패션뉴스 1층에서 운영된다.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화요만찬
광주요, 최대 반값까지 할인 판매
광주요, 최대 반값까지 할인 판매
2023. 11. 29 16:31 리빙
도자 브랜드 광주요가 창립기념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12월 1일 광주요 창립일을 기념해 이날부터 3일간 전국 광주요 직영점, 백화점 매장에서 최대 50%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던 미각시리즈, 월백시리즈, 백합시리즈, 담시리즈 등이 대거 포함된다. 또 크리스마스를 맞아 광주요 온라인몰에서는 광주요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펼친다. 연말 파티에 포인트 접시로 활용하기 좋은 백합시리즈 케익스탠드, 미각시리즈 설백사과형 합, 소리잔 세트, 미각 색시리즈 머그 세트 등 다양한 세트 제품을 최대 25% 할인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몰 이벤트는 1일부터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까지 이어진다. 광주요 브랜드 데이
치우치과 광주상무점 ‘아동 구강관리교육·검진 및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
치우치과 광주상무점 ‘아동 구강관리교육·검진 및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
2022. 12. 26 15:28 건강
치우치과 광주상무점(대표원장 진세식)은 지난 20일 ‘광주애육원(원장 윤경선)’을 찾아 구강건강교육과 구강검진을 시행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이번 행사는 광주애육원의 미취학아동 및 초등학생 어린이 3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구강관리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올바른 양치질 교육’을 하고 치아 구조를 익힐 수 있는 ‘치아모형 만들기’ 체험학습, 무료 구강검진 등을 실시했으며 소정의 크리스마스선물과 함께 아동 구강용품을 증정했다. 광주애육원은 1957년 설립, 사랑과 봉사·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바탕으로 보호아동 모두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한다. 보호아동들의 건강은 물론 마음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있다.진세식 원장은 ”보통 6세에 첫 영구치가 자라고, 초등학교 졸업 시기까지 모든 영구치가 자라기에 이 시기 올바른 구강관리 습관을 키워야 평생 건강한 치아를 가질 수 있다”며 ”다양한 캠페인 등의 행사를 주기적으로 진행해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치우치과 광주상무점 ‘아동 구강관리교육·검진 및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
김연자, 광주 단독 콘서트 성료…다음은 '부산행'
김연자, 광주 단독 콘서트 성료…다음은 '부산행'
2022. 08. 16 13:33 문화/생활
가수 김연자가 지난 13일에 광주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상연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김연자가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13일 김연자는 광주에서 열린 ‘2022 김연자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특유의 무대 매너가 가미된 화려한 무대는 물론 악극 등 색다른 연출로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김연자의 이번 무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열린 콘서트다. 그는 지난 5월 수원에서 ‘2022 김연자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며 전국 콘서트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6월에는 경기 고양시, 8월은 광주 무대를 성료했으며 오는 9월은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상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연자는 콘서트 재개에 대해 “콘서트를 시작하고 내 얼굴 빛이 달라졌다. 이제 설 수 있는 무대가 생겼다”며 기쁨을 전했고 “콘서트에 오신 분들의 에너지가 전해져서 너무 행복했다”고 밝혔다. ‘라이브 여왕’ 김연자의 콘서트는 매회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김연자도 관객들의 호응의 화답하듯 2시간으로 정해진 공연 시간에 흥을 더해 2시간 30분에서 3시간까지 무대를 이끌며 넘치는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연자의 단독 콘서트는 매회 매진 행렬을 이루며 팬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상연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음 콘서트 장소는 부산이다. 그는 오는 9월 24일(토) 부산 KBS홀에서 화려한 무대의 막을 올릴 채비에 분주하다. 김연자는 1974년 노래 ‘말해줘요’로 데뷔해 ‘수은등’, ‘아침의 나라에서’ 등 많은 히트곡으로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일본에 진출해 ‘트로트 한류’를 이끈 1세대로 활약했다. 또한 지난 2016년 고국으로 돌아와 발표한 ‘아모르파티’가 국내에서 역주행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트로트 전성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광주에서 만나는 이케아 '픽업 포인트'
광주에서 만나는 이케아 '픽업 포인트'
2022. 05. 31 10:04 리빙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 이케아 코리아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 집에 대한 영감과 편리한 옴니채널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를 31일 오픈한다. 총 162㎡ 규모의 단독 2층 건물에서 6개월간 운영되는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는 1층 픽업 공간과 2층 이케아홈으로 구성됐다. 1층 픽업 공간에서는 공식 온라인 몰, 모바일 앱, 전화 또는 채팅 등 다양한 이케아 온라인 채널에서 구매한 제품을 수령할 수 있다. 픽업 서비스 비용은 9천원이며 한 변의 길이가 180㎝를 넘지 않고 부피가 0.5CBM 미만인 제품을 대상으로 이용 가능하다. 집으로 꾸며진 2층 이케아홈은 거실, 침실, 주방, 다이닝, 아이방, 업무 공간 등 매일 사용하는 공간을 이케아의 영감 넘치는 홈퍼니싱 아이디어와 솔루션으로 구현했다. 특히 이케아의 베스트셀러 제품인 발레보그 포켓스프링매트리스, 쇠데르함 소파, 칼락스 선반유닛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픽업 포인트는 수도권 중심에 배치된 매장을 방문하기 어려웠던 광주 지역 고객들이 이케아의 홈퍼니싱 제품과 솔루션을 직접 접하고 낮은 가격의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 접점이다. 이케아는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인 온라인 쇼핑 경험과 오프라인 홈퍼니싱 체험 기회를 선보여 옴니채널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전문적인 상담부터 제품 구매까지 가능한 비대면 실시간 서비스를 비롯해 홈퍼니싱 플래너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화상 플래닝 서비스, 나만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한 집과 가구를 설계할 수 있는 셀프 플래닝 등이 가능하다. 다채로운 오픈 기념 이벤트도 준비됐다. 오는 7월 31일까지 2개월간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 이용 시 서비스 비용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오는 6월 14일까지 홈퍼니싱 전문가와 함께하는 이케아홈 투어, 선물 증정 등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 방문 고객 대상 행사도 진행된다. 프레드릭 요한손 이케아 코리아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케아 광주 픽업 포인트에서 편리한 옴니채널 쇼핑을 즐기고 이케아와 함께 집을 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케아
광주 대인시장 ‘천원 밥상’, 김선자 할머니가 떠난 그 후
2015. 04. 29 17:20 화제
1,000원. 든든하게 밥 한 끼 먹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다. 광주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의 ‘천원 밥상’. 이 식당을 운영해오며 김선자 할머니가 받은 1,000원은 상처받을지 모르는 그들의 속내까지 생각한 깊은 배려였다. 김 할머니의 밥 한 공기는 그 이상의 따뜻한 온기로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3월, 할머니는 대장암 투병 중 향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할머니의 온기를 이어받은 이들이 ‘천원 밥상’을 지키고 있다. 취재 도중에도 도움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광주 대학생 연합 봉사단체 ‘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쌀을 기증해왔다. 김선자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과 온기는 여전히 식당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더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에 자리한 김선자 할머니 식당의 정식 이름은 ‘천원 밥상’이 아닌 ‘해 뜨는 식당’이었다. 1,000원이면 밥 한 공기와 소박한 반찬으로 어려운 이들의 빈속을 채워준 김 할머니의 미담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자연스레 식당 이름은 ‘천원 밥상’이 됐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시장에서 1식 3찬과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을 1,000원에 팔아왔다. 이 밥상은 주로 시장에 채소를 팔러 온 노점상 할머니나 끼니를 거르기 쉬운 독거노인들을 위해 차려졌다. 할머니는 한 달 평균 100만~200만원의 적자를 봤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자신도 어려웠던 시절, 남들에게 받은 도움을 여생을 통해 베풀고 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 누구한테 쌀 없다는 말을 못해서 굶어보기도 했거든요. 아, 세상 살다 보면 이렇게 ‘자존심 상해서 밥 한 끼를 못 먹는 사람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시작한 거예요.” (SBS-TV ‘궁금한 이야기 Y’ 중에서) 손님들에게 받는 1,000원의 온기 어린 의미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비록 어려운 처지이지만 밥을 얻어먹는다는 자괴감을 갖지 말고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할머니의 배려였다. 그렇게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던 김 할머니가 지난 2012년 5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 탓에 할머니의 ‘천원 밥상’도 잠시 중단의 위기에 놓였다. 식당을 자주 찾던 노인이나 어려운 이들도 갈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인시장의 상인들과 기업,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가게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할머니 역시 예전의 건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암 수술을 받은 뒤 매일 식당에 나와 오는 이들의 손을 잡고 반가운 미소를 건넸다. 그러나 2년 뒤 김 할머니는 “식당을 계속 운영해주길 바란다”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떠났지만… 금요일 오후 2시. 점심시간은 조금 지난 때였지만 꽉 찬 손님들로 식당은 활기가 넘쳐흘렀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은 주로 식당이 문을 막 여는 오전 시간에 찾는 경우가 많았고,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는 유명세를 찾아, 혹은 후원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는 발길들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한 다음에 자율 계산대에 놓인 통에 알아서 식사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취재차 왔지만 김 할머니의 나눔이 담겨 있는 밥 한 공기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 깔끔하고 깊은 맛의 된장국, 김치를 포함한 3가지 나물반찬 그리고 윤기 나는 흰쌀밥.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차지고 맛있는 쌀밥이었다. 보통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입 안에서 겉도는 찐쌀의 느낌이 아니었다. 집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 그대로였다. 식당을 대신 맡아 운영 중인 홍정희 대인시장 상인회 회장의 대답으로 이유를 쉽게 알았다. 식사비는 100% 자율적으로 지불하는데, 투명한 요금통에 돈을 넣는 방식이다. 천원 밥상에는 쌀밥과 된장국, 3가지의 나물 그리고 어르신의 단백질 보충을 고려한 생선 1가지가 늘 준비돼 있다. “쌀이 좋은 건 당연해요. 특히 쌀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이곳에 보내주시는 쌀은 주문하실 때 신경 써서 품질 좋은 쌀을 보내달라고 하신대요. 그러니 쌀이 좋지 않을 수 없죠.” 밥 한 그릇을 비울 때쯤 ‘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광주 지역 대학생 4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 단체의 남녀 대학생 둘이 쌀 한 포대를 들고 들어왔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그분의 나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광주 신세계백화점에서는 고가의 비용이 드는 식당의 시설 부분을 봐주시고, 겨울에는 꾸준히 난방 연료도 넣어주셨어요. 그래서 식당을 찾는 분들이 따뜻하게 한 끼 드실 수 있었고요. 또 2013년부터 매월 빼놓지 않고 쌀을 두세 포대씩 보내주시는 분이 계세요. 김설희씨라고, 이름도 예쁘시죠? ‘천원 밥상’ 덕분에 그런 분들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홍 회장은 일정 금액의 후원금이 들어오거나 물품을 기증받았을 때는 날짜, 기부자 이름, 받은 물품명 등 모든 사항을 기록해놓는다(기증품 전달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94번길 7-1 대인시장 천원 식당). 그녀는 2003년부터 김 할머니와 친분을 쌓았고, 할머니가 암 투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실질적으로 ‘천원 밥상’을 맡았다. 김선자 할머니의 뜻으로, 끝까지 김선자 할머니의 마지막 길. 홍 회장이 그 자리를 지켰지만 할머니가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뜨실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병상에 누워계셨어도 ‘금방 나아서 식당에 나오겠다’라고 하셨어요. 저랑 장난도 치시고 표정이 정말 밝으셨거든요. 하늘나라에 가게 되더라도 배고파서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이틀 만에 떠나시더라고요.” 김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식당에 매일 출근했다. 항암치료로 입 안이 다 헐어 음식을 먹지 못할 때도 이곳의 된장국은 맛있게 드셨단다. 그렇게 조금씩 웃음을 되찾는 김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할머니가 정말 아프다고 한 것이 마지막 1개월 반 정도였어요. 그리고 끝까지 걱정했던 한 가지는, 당신이 식당을 운영하며 낸 적자 때문에 생긴 남에게 갚지 못한 빚이었죠. 다행히 할머니의 자녀분들이 다 해결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떠나셨어요. 장례식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뜻을 기리며 슬퍼했죠.” 홍 회장은 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받으며 떠나는 김 할머니를 보면서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3명의 시장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홍정희(대인시장 상인회 회장) “저를 포함해 네 분이 도와주고 계세요. 백정자, 홍순자, 박연옥씨입니다. 모두 시장에서 각자 장사를 하시며 상인회 임원도 맡고 있죠.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아요. 특히 식당 앞에서 생선 가게를 하는 백정자씨는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가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해요(웃음). 대인시장 사람들은 정겹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앞으로 만약 후원이 좀 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천원 밥상’을 이끌어가겠다는 약속은 비단 김 할머니와의 약속이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 정도라면 내가 부담할 수 있는’ 정도의 기분 좋은 적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후원이 줄더라도 두렵지 않아요. 제 마음이 있는 곳에 이웃의 마음이 함께할 것이고, 부족하다면 하늘에서 채워주는 몫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저에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김 할머니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생전에는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던 김 할머니였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본 홍 회장은 할머니의 뜻을 이어나갈 적임자다.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몇 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아 빌딩을 샀다고 떠들기도 했고요. 할머니는 늘 ‘개의치 말자. 억울한 것은 밝혀질 테니 지금은 묻어두자’ 라고 하셨어요.” 홍 회장 역시 수많은 오해, 경제적 부담감 모두 견딜 수 있다고 다짐한다. 식당 문을 열기도 전에 비척비척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가깝지 않았을 거리를 걸어왔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난다. “식당에 오셔서 두 그릇이나 밥을 비우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저희가 조금 노력해서 그분들이 든든하게 식사하실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김선자 할머니의 뜻을 기리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천원 밥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고 있다. <■글·사진 / 이유진 기자>
‘꿈꾸는 문화 도시’ 광주광역시
‘꿈꾸는 문화 도시’ 광주광역시
2014. 10. 30 11:00 문화/생활
광주광역시가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하며 새로운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춤추는 ‘꿈꾸는 문화 도시’로의 디자인! 내년 개관을 앞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 예술, 관광이 융·복합된 도심 관광 벨트 구축이 그 시작점이다. 광주광역시는 ‘우리의 광주’를 넘어 ‘아시아의 광주’를 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민주화의 정신으로 새겨진 곳, 광주. 그 울림이 깊어서였을까. 가장 잘 알려진 도시 중 하나지만 실상 많은 부분을 알지 못했던 곳이 광주다. 빛 광(光), 고을 주(州) 자를 써서 ‘빛고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광주는 전라남도를 넘어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다. 단순히 규모나 인구수 때문만은 아니다. 광주는 전라 감영이 있던 전주와 더불어 호남 지방의 문화를 이끌어온 중심축이다. 예로부터 광주는 가사 문학, 남종화, 판소리 등 다양한 전통문화와 맛깔스러운 남도 음식 등 풍부한 문화 자산으로 예향(藝鄕), 미향(美鄕), 의향(義香)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그런 광주가 최근 새로운 문화 도시로 변모를 꾀하며 매력적인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젊은 문화의 도시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라는 비전을 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광주, 새로운 광주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에서부터 비롯한다. 5·18민주광장 옆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조성 사업의 핵심으로 금년 10월에 완공되어 내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광주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에 문화, 예술, 관광이 융·복합된 도심 관광 벨트가 구축되고 있다. 재미있게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거점으로 방사형으로 다양한 도심 관광 코스가 형성돼 있다. 서쪽으로는 충장로, 금남로, 정율성 생가터, 북쪽으로는 대인예술시장, 궁동 예술의 거리, 동쪽으로는 동명동 카페 거리, 남쪽으로는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푸른길공원이 자리한다. 여행자들은 구획을 나눠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1 역동적인 젊음의 거리 충장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광주를 만끽하고 싶다면 우선 충장로를 둘러보자. 충장로는 광주의 중심지이자 젊음의 거리로 통한다. 이곳은 다양한 쇼핑과 문화 공간, 카페가 즐비해 트렌드세터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개성 있는 카페들이 모여 있는 황금동 카페 골목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에너지가 넘친다. 충장로 일대에 설치된 ‘광주 폴리’로 통칭되는 건축물들도 이색 볼거리 중 하나다. 광주 폴리는 도심 재생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원래는 도시를 상징하는 ‘Urban’과 장식용 건물을 뜻하는 ‘Folly’를 따 ‘어번 폴리(도시를 상징하는 건물이나 건축물)’라고 했으나 광주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광주 폴리’로 명칭을 바꿨다. 대표 작품으로는 구 시청사거리에 놓인 황금색 박스 구조물(The Open Box)이 있다. 프랑스 작가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으로, 한국 고전 건축물의 나무 기둥이나 누각, 처마에서 컨셉트를 가져왔다고 한다. 작가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이끌어낼 열린 공간의 의미를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 건축물은 이벤트나 문화 공연의 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2 별별 장터, 별난 일들이 벌어지는 문화 난장 대인예술시장 번화한 충장로 일대를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인예술시장이 나온다. 1959년 대인시장으로 출발한 이곳은 광주의 근현대 역사와 함께해왔다. 예전에는 역, 버스터미널과 잇닿아 있어 광주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항상 마주했던 ‘광주 관문’ 시장이었다. 그러나 역과 터미널, 전남도청 등이 이 일대에서 이전하면서 차츰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상권도 약해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역의 작가와 기획자들이 2008년 자발적으로 입주했고, 예술가와 시장 상인이 어우러진 시장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이후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추진단, 광주광역시 등의 응원 속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입점하며 문화예술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에는 정부로부터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받았다. 대인예술시장은 시장 상인과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장이다. 때문에 신구의 문화가 묘하게 어우러져 광주 특유의 따뜻함을 전한다. 과하지 않은 소박함으로 은근한 감흥을 준다. 이색 공간으로대인예술시장의 예술가와 상인들이 기증한 물품을 판매하는 리사이클 숍 ‘장깡’, 무형문화재 17호 남도의례음식장 최영자 선생의 전수자 고선자 선생이 운영하는 전통 한과 판매점 ‘마들’, 커피와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T 하우스’ 등을 둘러볼 만하다. 대인예술시장은 규모도 꽤 커서 볼거리도 많다. 예술품 판매점부터 카페,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 오픈 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예술인 작업실도 회화, 설치, 미디어, 도예, 푸드 스타일링, 목공방, 칠공예, 금속공예, 작가, 힙합 그룹, 먹 작업 등 다양하다. 시장 일대에 그려진 벽화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벽화 중에는 아이돌 그룹 슈퍼 주니어의 은혁과 신동이 참여한 대인시장 간판부터 태국의 유명 그라피티 아티스트,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대인예술시장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문화 공간은 ‘메이커스 스튜디오’다. 시장 곳곳을 둘러보면 ‘Makers’ Studio’라고 적힌 삼각형 모양의 나무 문패가 달린 곳들이 있다. 이곳은 시장 내 핸드메이드 작업자들을 통칭하는 ‘메이커스’의 공동 작업 공간을 가리킨다. 총 6개의 메이커스 스튜디오에서 13팀이 작업하고 있다. 작업 분야 또한 수제 베이킹, 실크 프린팅, 의류 리폼, 타투, 악기 제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메이커스 스튜디오는 때로 시장 상인과 시민들의 배움터가 되기도 한다. 작업자들에게 양해를 얻으면 일반인들도 메이커스 스튜디오를 둘러볼 수 있다. 대인예술시장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특히 대인예술시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야시장 ‘별장’이 열리는 날에 찾아야 한다. 별장은 ‘별별 장터’라 해 붙은 이름으로, 입주 예술가와 상인, 메이커스, 시민 셀러 등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난장이다. 다양한 아트 상품과 예술 작품을 판매하는 ‘만물 예술마차’, 상인들의 손맛을 만끽할 수 있는 ‘대인 맛 기행’,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낭만유랑단’ 공연 등이 펼쳐진다. 3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예술의 거리 서울에 인사동 거리가 있다면 광주에 궁동 예술의 거리가 있다. 예술의 거리는 호남 문화와 예향 광주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조성됐다. 광주 동부경찰서 앞에서 중앙로까지 대략 300m 구간에 이른다. 이 거리에는 갤러리와 화방, 표구점, 골동품점, 소극장, 고서점, 전통 찻집 등이 90여 개 모여 있다. 추억의 LP 레코드판 음악이 그리운 이들이라면 중앙초등학교 후문 건너편에 있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찾을 것. 아날로그 음악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칵테일, 차 등을 판매하는 카페이자 작은 갤러리로도 변신한다. 예스러운 가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춘들을 사로잡는 이색 카페들도 많다. 예술의 거리답게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파는 곳부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독특한 공예품 카페, 공연이 열리는 카페까지 다양한 테마의 카페들이 돋보인다. 또 골목 사이사이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술의 거리 중앙에 마련된 야외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2시~6시까지는 야외 경매가 열린다. 골동품, 민예품, 미술품 등 다양한 물품이 이곳에서 판매되며 경매 중간중간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4 동서양이 벗 삼아 나란히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양림동은 호남의 근대 문화 발상지로 광주의 근대사를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양림동 일대는 1900년 초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비롯해 의료봉사활동, 사회복지활동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광주 지역 최초의 기독교 전래지이자 개화기 근대 유적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양림동은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회자된다. 1911년 미국 스턴스 여사(Mrs. M.L.Sterns)가 세상을 떠난 친동생 제니 스피어(Jannie Speer)를 추모하기 위해 기증한 5천 달러로 세워진 수피아여고 수피아홀, 1백 년이 돼가는 우윌슨 선교사 사택, 오웬기념관 등 서양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양림동산에는 수십 명의 순교사와 가족들의 사연이 살아 숨 쉰다. 수령이 4백 년 이상 된 호랑가시나무가 있는 숲과 수백 년의 상수리나무와 도토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팽나무와 목백일홍, 왕벚나무 등이 있는 양림동산은 자연수목원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에 있는 두 곳의 옛 가옥도 꼭 들러보자. 하나는 1899년 당시 호남 갑부였던 정병호가 지은 이장우 가옥이다. 이장우 가옥은 호남 지방의 선각자이자 교육가였던 동강 이장우 선생이 구입해 사랑채와 행랑채, 곳간 등을 개축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보기엔 여느 양반가 가옥과 다를 바 없지만 안채가 ㄱ자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동·서향의 이장우 가옥은 호남의 진산인 무등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지은 것이라 한다. 이장우 가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웃한 곳에 최승효 가옥이 있다. 이 가옥은 1920년대 독립운동가 최상현이 지었으며, 1968년 광주 MBC 창업자 고 최승효씨가 인수했다. 여느 한옥에선 볼 수 없는 천장 아래 숨겨진 다락 공간이 독특한데, 이 다락은 최상현 선생이 쫓기던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던 곳이라 한다. 5 멋스러운 카페와 골목길의 만남 동명동 카페 거리 동명동은 한때 광주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였다. 광주의 중심인 동구, 그것도 한복판에 위치한 동명동은 광주 뭇사람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점차 활기를 잃어갔으나 최근 이색 카페들이 줄지어 입점하면서 문화 명소로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동명동 카페 거리는 서울 못지않은 감각적이고 개성 있는 카페들로 넘쳐난다. 앞서 언급한 황금동 카페 거리가 역동적이라면, 동명동 카페 거리는 고즈넉한 운치가 있다. 서울로 치면 황금동 카페 거리는 대학로, 동명동 카페 거리는 삼청동 분위기를 닮았다.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만점의 카페 인테리어는 물론 로스팅 카페부터 갤러리 카페, 북카페, 고양이 카페, 한옥 카페까지 다양한 컨셉트의 카페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한적하고 운치 있는 골목길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리다. 일부러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학원가 밀집 지역이기도 한 동명동 카페 거리는 저녁이면 더욱 활기를 띠며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 10월에는 ‘동명동 골목길 페스티벌’이 열렸다. 다양한 골목 퍼포먼스, 연극 상영, 거리 아트 프리마켓 등이 열리며 또 한 번 이 일대가 들썩거렸다. 6 도심 속 작은 휴양지 푸른길공원 푸른길공원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 철도 광주 구간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폐선 부지에 조성된 공원이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에 길이 10.8km, 넓이 4만8천 평의 선형 녹지 공간이 조성돼 있다. 인구 1백40만 명의 대도시에 이처럼 큰 규모의 녹지 공간이 조성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자연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푸른길공원을 찾아도 좋다. 푸른길공원은 동구와 남구 일원에 이르는데, 크게 다섯 구간의 ‘푸른길’ 코스로 즐길 수 있다. 필문로 구간(조선대학교 정문~전남대학교 병원), 대남로 구간(광주천변~백운광장), 주월~진월 구간(백운광장~동성중), 동구 구간(광주역~조선대학교 정문), 남광주 구간(옛 남광주역 플랫폼)이다. 7 멋, 맛, 흥이 넘치는 광주의 축제 멋과 맛, 흥이 넘치는 고장답게 광주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세계김치문화축제에서는 맛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멋을, 추억의 7080 충장축제와 물총축제에서는 흥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세계김치문화축제 매년 10월 광주 중외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광주의 대표 축제다. 전국의 모든 김치를 맛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다양한 김치 체험 행사를 비롯해 전시, 세미나, 먹을거리 장터, 문화 공연 등이 펼쳐진다. 광주는 세계김치문화축제를 통해 김치의 세계화, 산업화를 모색하고, 이를 계기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로 21회째를 맞는다.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성공적인 성장으로 국내 최고의 예술 축제를 넘어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선도하는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다. 이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인정받는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예향’ 광주의 맥을 더욱 튼실하게 이어주고 있다. 짝수 해에 광주비엔날레, 홀수 해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번갈아 열린다. ●추억의 7080 충장축제 광주의 대표적 도심 거리 축제이자,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거리 축제다. 매년 10월 동구의 중심 거리인 충장로를 비롯해 황금로, 금남로, 예술의 거리 일원에서 5, 6일 동안 열린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제로 해 당시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공연, 경연, 전시, 체험 프로그램, 부대행사 등으로 꾸며진다. 축제 기간 동안 거리 곳곳에는 1970, 80년대 모습을 재현한 추억의 거리가 조성된다. 올해로 11회째다. ●물총축제 올해 7월 광주에서 처음 열린 따끈따끈한 축제다. 지난해 서울 ‘신촌 물총축제’를 계기로 열리게 됐다. 신촌 물총축제에서 메인 MC를 맡았던 광주대학교 장초롱 학생이 전국으로 확대해보자고 제안한 데서 시작된 것. 준비위원부터 자원봉사자, 참가자 등 대부분이 SNS를 통해 소통하는 소셜 페스티벌로 이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8 맛의 고장, 광주의 5미 ●한정식 남도의 맛과 멋, 인심이 집약된 상차림. 산과 들, 인근 바다에서 나는 모든 먹을거리가 한데 모여 있다. 광주 한정식의 핵심은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젓갈이다. ●보리밥 제철 채소로 만든 신선한 나물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 보리밥은 입맛을 돋운다. 동구 지산동 지산유원지 일대에 ‘무등산 보리밥 거리’가 형성돼 있다. 무등산 등반 후 시원한 동동주와 함께하노라면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김치 다양한 젓갈을 활용한 맛이 일픔이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남도 김치는 각종 양념을 듬뿍 넣어 매콤하고 맛있기로 정평이 났다. ●오리탕 오리와 들깨가루, 신선한 미나리를 듬뿍 넣어 맛이 개운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며, 광주의 으뜸 보양식이다. 광주역 근처에 유명한 ‘유동 오리탕 거리’가 있다. ●떡갈비 광산구청 주변은 30여 년 전부터 떡갈비 거리로 유명했다. 이곳이 송정동 향토 떡갈비 거리다. 갈빗살에 여러 부위의 고기를 섞어 다진 다음 갖은 양념을 발라 구워낸 떡갈비의 냄새가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Mini Interview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말하는 광주의 변화 “젊은 문화의 도시에서 아시아의 광주로” 민주화 역사의 산실이었던 광주가 젊은 문화의 도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과 함께 앞으로의 광주가 궁금합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가 프랑스 혁명의 중심이었듯,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광주의 정신은 젊은이들의 역동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발현될 수 있는 광주를 만들고자 합니다. 민선 6기 공약 실천 계획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에 문화 예술 기반의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문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꿈꾸는 문화 도시’에 역점을 기울여 추진할 계획입니다. 예부터 광주는 예향의 고장이라 했습니다. 문화, 예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 지금 변화하는 광주의 모습과도 연결점이 있는 듯합니다. 한국화의 허백련, 서양화의 오지호, 판소리의 임방울, 서정시인 박용철 등 광주는 유수한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러한 예향의 맥은 광주비엔날레의 성공과 함께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라는 비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광주는 건국 이래 국가 최대 문화 프로젝트인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앞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자율성, 개방성을 토대로 아시아 문화와 자원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아시아 문화 허브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내년 개관을 앞둔 국립아시문화전당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조성 사업의 핵심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입니다. 2015년 9월 개관하면 아시아 각국의 문화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 발전소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 연간 1백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관람할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광주의 문화 관광산업이 획기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 일대에 문화, 예술, 관광이 융·복합된 도심 관광 벨트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시장님이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민선 6기에 들어 문화예술 관광 분야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역점 사업이 ‘중국과 친해지기’입니다. 정율성 선생님의 생가터로 인해 많은 요우커가 광주를 찾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료 관광, 남도 정율성 브랜드 등을 활용한 ‘대중국 한류관광 기반 구축’, 중국 특화거리 조성 등 ‘차이나 프랜들리 도시 환경 구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행지로서의 광주, 무엇을 준비 중입니까? 가깝게는 내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관광객의 즐길 거리, 먹을거리, 볼거리 확충 등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한 오감만족관광, 광주 도심도보관광, 무등산 생태체험관광, 인접 시군과 연계한 테마관광 등 다양한 관광 상품을 통해 광주와 남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통합 관광 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도시 뒤에 정신이 붙는, ‘광주 정신’에 빛나는 자랑스러운 도시입니다. 여행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곳이 광주라고 생각합니다. 광주만의 문화 자산과 풍부한 먹을거리를 즐기면서 예향의 참 정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Tip 여행자를 위한 ‘깨알’ 정보 대인예술시장 제대로 즐기기! 문화 프로그램 ▶야시장 ‘별장’ 시장 상인과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문화 야시장. 매월 둘째 주 금·토요일, 오후 7시~자정까지 열린다. 작가들의 소품, 아트 상품, 핸드메이드·리사이클 제품 등이 판매되며 다양한 체험거리와 먹을거리, 공연 등이 펼쳐진다. ▶소풍유락 벽화 그리기, 상인들의 삶 알아보기, 시장 속 장보기, 메이커스 스튜디오 체험하기, 오픈 스튜디오 방문 등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참여를 원하는 청소년과 아동, 관련 전문가, 일반 시민들과 함께한다. ▶대인예술시장 투어 대인예술시장의 속살을 전문 기획자들과 함께 탐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1회, 사전 예약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예약 문의 blog.naver.com/byeoljang * 상기 프로그램과 일정은 변경될 수 있으니 사전 문의(062-233-1420)하도록 한다. 문화 공간 ▶웰컴센터 대인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에서 만든 손님맞이 공간. 간판에는 큰 글씨로 ‘다다’라고 쓰여 있는데, 다다는 대인예술시장의 상주 작가 연합체를 뜻한다. 시장 방문시 알고 싶은 정보, 가보고 싶은 맛집, 시장의 오늘 소식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종합 정보 제공 센터다. ▶안테나숍 시장 내 입주한 메이커스와 예술가들의 생산품과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 상설 운영되지만 제품은 수시로 바뀐다. ▶한평갤러리 한 평이라는 작은 공간이 연달아 6개로 구분돼 있는 초미니 갤러리. 한 평 공간에 수용 가능하다면 작가가 상상하는 그 무엇도 담아낼 수 있는 실험적 공간이다. 매월 1회씩 작가 6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갤러리 대인 작은 도서관과 갤러리가 병합된 복합 문화 공간. ▶미테-우그로(Mite-Ugro), ZAZA 전라도 사투리로 ‘미테’는 아래를, ‘우그로’는 위를 뜻한다. 미테는 갤러리, 우그로는 커뮤니티 카페, ZAZA는 게스트 하우스다. 시장 내 유일한 비영리 대안 공간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실험적 활동과 교류가 이뤄지는 곳이다. 홈페이지 www.mite-ugro.org Tip 요우커의 필수 관광 코스 정율성 생가터 최근 중국인 관광객인 요우커들이 광주를 많이 찾고 있다. 그 배경에는 광주 출신으로 중국 혁명 음악가로 이름을 떨친 정율성 선생(1914~1976)이 있다. 광주를 방문한 요우커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정율성 생가터다. 정율성 선생은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지만 중국에서는 3대 작곡가로 칭송된다. 대표 작품으로는 ‘옌안송’, ‘생산의 노래’, ‘10월 행진곡’, ‘팔로군 대합창’ 등이 있다. 특히 ‘팔로군 대합창’ 중의 ‘팔로군 행진곡’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 불려오다가 1988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정식 군가로 비준을 받았다. 정율성 선생은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고, 끝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광주광역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정율성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 정율성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한류 관광 코스와 문화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 중이다. Tip 광주시티투어를 이용해보세요! 광주시티투어는 역사·문화 탐방 코스와 선비·문화 코스 2개 코스로 운영된다. 광주시티투어 버스 탑승 장소는 송정역, 광주종합터미널, 광주역 3곳이다. 역사·문화 탐방 코스 송정역(09:00) → 광주종합버스터미널(09:35) → 광주역(09:50) → 국립 5·18민주묘지 → 소쇄원(담양) → 광주호 호수생태원(점심) → 충장사(평촌도예공방) →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 광주역→ 광주종합버스터미널 → 송정역(17:00 이후 도착 예정) 선비·문화 코스 송정역(09:10) → 광주종합버스터미널(09:45) → 광주역(10:00) → 광주힐링가든센터(빛고을공예창작촌, 점심) → 만귀정 → 월계동 장고분 → 월봉서원 → 김봉호 가옥 → 송정역 → 광주종합버스터미널 → 광주역(17:00 이후 도착 예정) * 상기 운행시간 및 코스(체험 프로그램)는 향후 일정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다. 운행 기간 2014년 5월 24일~11월 30일(매주 토·일요일 각각 1회 운행) 이용 요금 1인당 2천원, 국가유공자 및 초등학생 이하 1천원 ※ 관광지 입장료, 체험비, 식비는 관광객 개인 부담. 운영 사전 예약제(필수 사항) 예약 및 문의 광주광역시관광협회(062-233-3399, utour.gwangju.go.kr) ※ 이용자는 반드시 탑승 1일 전 오후 4시까지 사전 예약해야 한다. ※ 예약 인원이 5명 미만인 경우(출발 3일 전 기준) 투어 버스 운행이 취소된다. <■글 / 신현화(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사진 제공 / 광주광역시>
광주에 외국인 학교 세운 로버트 할리 가족 인터뷰
광주에 외국인 학교 세운 로버트 할리 가족 인터뷰
2012. 09. 26 17:17 연예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운’이라는 수식어가 이제 식상할 만도 한데 여전히 로버트 할리는 예상치 못한 ‘한국스러움’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즐거운 에너지는 가만히 살펴보니 그의 가족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광주 외국인학교에서 로버트 할리의 가족, 아내 명현숙씨와 아들 재욱, 재익군을 만났다. 아내의 웃음소리에 반한 남자와 남편의 유머러스함에 반한 여자가 만나 이룬 가족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영도 하씨의 시조, 광주에 학교를 짓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막내 재익군이 대학 입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3일 전이었다. 첫째 재선군은 일찌감치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고, 마침 미국에서 2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둘째 재욱군도 동생과 함께 떠나게 돼 이제 집안이 아이들로 북적거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난히 막내아들과 ‘죽’이 잘 맞았던 할리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재익이랑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했던 일과 중 하나예요. 항상 아이들 주말 아침과 점심은 제가 챙겼는데 이제 아이들이 가고 나면 주말마다 굶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한식을 좋아하는 아내는 두 달에 한 번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며 울상이다.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된 아이처럼 풀이 죽은 할리를 바라보며 아내 명현숙씨는 ‘못 말린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사실 막내아들을 떠나보내면 더 적적할 사람은 엄마 현숙씨인데 말이다. 로버트 할리와 현숙씨는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주중에 방송활동을 하는 할리는 서울 성산동에서 ‘자취’ 중이고, 아내는 아이들과 광주에서 지낸다. 주중에는 서울, 주말에는 광주를 오간 지도 벌써 15년. 혼자 아들 셋을 돌보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지기도 했거니와, ‘남편이 바쁠수록 아내가 편하다’라는 주의인 현숙씨도 막내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마음이 영 쓸쓸하다. “큰애와 둘째가 먼저 미국으로 가고 저도 서울에 떨어져 있다 보니 재익이가 와이프 옆에서 아들 노릇 남편 노릇 다 했어요. 이제 재익이가 가면 와이프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줄까 고민이에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1997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로버트 할리는 부산 영도 하씨의 시조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나름 ‘귀화 외국인 부문’ 경상도 대표 인물인 그가 가족과 함께 전라도 광주에 터를 잡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15년 전 그가 부산에 첫 외국인학교를 지었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아이들 교육 문제예요. 한국 학교에 보내려니 적응하기가 힘들고 외국인학교에 보내기엔 학비가 너무 비싸죠. 아이들이 태어나고 저희도 똑같은 고민을 했어요. 1997년 당시 부산 외국인학교 1년 학비가 2천만원이었거든요.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저에게도 매우 큰돈이었죠. 아들 셋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나 고민하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외국인 친구 부부와 부산에 외국인 학교를 만들게 됐어요.”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던 일인데 생각보다 외국인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산 지역으로 이주하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로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전북 전주에 이어 전라도 광주 지자체로부터 외국인학교를 설립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아예 광주로 가족과 이사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락했어요. 오랫동안 부산에 살았고 아내의 고향도 부산이었기 때문에 떠나기가 쉽지 않았죠. 처음에는 부산에 살면서 광주에 왔다 갔다 할까도 했는데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에 우리 아이들이 다녀야지 다른 사람들도 믿고 아이를 보낼 수 있겠더라고요. 결국 이사를 하고 아이들도 광주로 오게 됐죠.” 그때가 1999년 무렵이었으니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영도 하씨의 시조가 전라도에 와 살며 힘들었던 점은 없었을까? “처음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영 익숙지 않아 못 알아듣는 말도 많았어요. 덕분에 아이들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죠. 금세 말끝에 ‘잉~’을 붙이더라고요. 역시 아이들은 배우는 속도가 빨라요(웃음)”. 영어학원 아닌 학교 지은 이유 10년 넘게 시 건물을 임대해 있던 광주외국인학교는 얼마 전 신축 공사를 끝내고 이사를 마쳤다. 현재 120명의 학생들이 새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사실 맨 처음 그가 광주에 외국인학교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정도 규모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학교에는 도서관과 체육관, 카페테리아와 농구장 등 웬만한 사립학교 못지않은 시설이 갖춰져 있다. 친구와 동업을 하거나 시의 지원을 받았던 전 학교들과는 달리 혼자 힘으로 학교를 짓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부족한 자금은 정부 지원과 민간 지원을 받았어요. 와이프가 아르바이트도 하고 저도 더 열심히 벌고요. 아내에게 물어보니 빚이 엄청나요(웃음)”. 빚 얘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남편을 보며 현숙씨도 함께 따라 웃었다. 현재 아내 현숙씨는 행정실장으로 학교 운영의 실무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아이들의 어린 시절 홈스쿨링으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학교를 일군 일등공신이다. ‘로버트 할리’라는 인지도와 그동안 쌓은 노하우라면 학원과 같은 영어 사업으로도 크게 성공했을 텐데 굳이 빚까지 쌓아가며 학교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뭘까. “우선 저희 부부가 외국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학교를 운영하며 아이들이 커나가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학생들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저희가 학교를 설립한 지 13년이 됐는데 올해 유치부부터 고3까지, 13년 동안 이 학교를 다닌 첫 번째 졸업생들이 나와요. 재익이도 그중 한 명이에요.”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할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학생들의 동기부여다. 부모가 아이들을 이끌고 푸시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만은 피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마음이다. 현숙씨 역시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의 교육체계에서 공부한 저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한국 학교의 분위기를 잘 알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위축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때문에 적어도 저희 학교에서 공부를 못해서 혼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커닝하거나 욕을 하거나 다른 아이를 따돌렸을 때 큰 벌을 받죠. 아이들이 학교에서 착하게 사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게 저희 부부의 바람이에요.” 웃음소리에 반한 남자, 유머러스함에 반한 여자 그럼에도 기존의 교육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데 대한 딜레마가 있었다는 것이 현숙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아이들 교육은 이제까지 남편과 끊임없이 충돌해온 문제였다.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가정적인 남편이 스트레스에 한몫을 했죠(웃음). 당장 다음주가 시험인데 드라이브 가자고 아이들을 꾀는 거예요. 제가 안 된다고 하면 남편은 ‘얘들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시켜서는 안 된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라고 해요. 시키니까 스스로 안 하는 거라고요. 지금까지 늘 티격태격했는데 이제 막내까지 졸업을 시켰으니 우리도 아이들 공부 때문에 싸우는 일에서 졸업해야지 싶어요.” 두 사람이 아이들 교육에서 일치를 본 것이 있다. 바로 예절교육이다. 어른들께 인사 예절은 기본이고 공공장소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아이들에게 강조했다. 지금은 한국 사람보다 더 예절을 중시하는 할리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현숙씨가 귀띔한다. “남편이 외국인이다 보니 더 신경이 쓰였어요.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친정에 갔는데 남편이 부모님께 인사를 안 하는 거예요. 항상 아버지가 먼저 ‘자네 왔는가’ 하고 물으시면 ‘네’ 하고 대답하고 말더라고요. 남편을 만나고 특별히 큰 문화 차이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때 이렇게 다르구나 느꼈어요. 아이들에게도 더욱 철저하게 가르치게 됐고요.” 1979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교활동으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할리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하다 1987년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 다시 한국에 와 정착했다. 선교사 시절 만난 아내와는 결혼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국제결혼은 흔치 않았고,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도 컸다. 할리는 맨 처음 처갓집에 결혼을 허락받으러 가 진땀을 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에서는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을 때 어떻게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어요. 일단은 장인어른 앞에 앉았는데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웃음), 쭈뼛거리며 따님과 결혼하고 싶은데 허락해달라고 말씀드리니까 장인어른은 제 얼굴도 보지 않으시고 담배만 피우시더라고요. 그러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가시는 거예요. 허락을 하신 건지 안 하신 건지 헷갈리더라고요(웃음). 다행히 장모님께서 밀어주셔서 결혼에 골인하게 됐죠.” 현숙씨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일찌감치 할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놓으셨단다. 할리가 선교사로 한국에 왔을 때 지냈던 곳이 바로 현숙씨네 옆집이었다. 오가며 눈도장을 찍기도 했고 착실하고 선한 인상의 할리를 보고 “하 서방”이라 부르며 살뜰히 챙겨주셨다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현숙씨는 외국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만 생각했지 할리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선교생활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던 할리를 몇 년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 걸 보면 두 사람이 인연이긴 인연이었나 보다. “저희 부모님뿐 아니라 시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하셨어요.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 섭섭했는데 저도 아들을 낳고 보니 이해가 가요. 아이들이 외국에서 외국 여자와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더라고요. 멀리 떨어져 살며 자주 못 보면 그립겠죠. 아이들이 결정해야 하는 몫이지만 은근슬쩍 한국 여자와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서로의 무엇에 반했는지 묻자 할리는 아내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현숙씨는 남편의 유머러스함을 꼽았다. “아직 결혼 안 하신 여자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유머 감각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세요. 생활에 활력이 되고 무엇보다 싸우더라도 웃으며 화해하게 돼요.” 30년 동안 받은 행복, 한국 사회에 돌려주고파 방송인, 연기자, 사업가, 학교 이사장 등 로버트 할리를 소개하는 여러 단어 중 그의 본업이었던 변호사는 이제 과거형이 됐다. 그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방송 일을 시작했을 때 아내로서 걱정이 많았다. “사실 저는 남편이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계속 능력을 키워갔으면 했어요. 그런데 저에게 자기는 방송이 좋다고, 변호사가 아닌 방송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니 말릴 수 없었죠.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저도 즐거웠고요.”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처음 ‘코미디 세상만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방송이 된 다음날 변호사 사무실의 사장이 그를 부르더니 “변호사가 채신없게 그게 뭐냐”라며 혼을 내더란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변호사는 웃기면 안 돼요?”였다. “‘변호사는 뒷짐 지고 점잖은 척만 해야 하느냐’라고 되물었어요. 직업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결국 제일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게 됐고요. 지금은 방송 일과 강연, 학교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사업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아내한테 물어보니 제 지팡이 살 돈도 없대요(웃음).” 항상 웃는 얼굴로 방송활동을 해온 아빠를 보고 자란 영향일까? 재욱군과 재익군도 방송에 관심이 많다. 재욱군은 몇 해 전 케이블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낸 적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따라 방송국을 오갔던 재익군은 SBS-TV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하며 ‘로버트 할리의 꽃미남 아들’로 화제를 모았었다. 아빠가 방송에서 자신을 ‘하바람’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모든 여자친구들 휴대폰에 자기 이름이 ‘하바람’으로 바뀌었다며 밉지 않게 볼멘소리를 하는 재익군이지만 때로는 아빠보다 더 살뜰히 가족을 챙기는 속 깊은 막내아들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물론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보낸 30년의 시간은 대부분 그에게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무척 감사하고, 우리 아이들도 착하게 잘 자라줬어요. 만약 제가 한국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행복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은 것들도 많아요. 계속 열심히 방송하며 즐거움을 드리는 것, 또 다른 분야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계속해서 도전할 거예요. 학교 빚 다 갚으면 제 이름을 내건 조금만 햄버거집도 내고 싶어요. 학생 때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빚 다 갚으면, 한 칠십 되려나?(웃음)” 웃는 모습이 닮은 유쾌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긍정의 에너지를 한 몸에 다 받은 기분이랄까. 마지막으로 그가 아내에게 사랑받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는 ‘확실한’ 방법을 귀띔했다. “아내와 싸우면 그냥 자지 말고 반드시 풀고 주무세요. 그게 아내에게 사랑받는 비결입니다. 전 26년째 사과하고 있어요(웃음).” “한국 사람으로 산 30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나요” 제 아들내미들입니더. 잘생겼지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도 착하게 잘 자라줬어요. 만약 제가 한국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은 것들도 많아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주석 ■사진 제공 / 로버트 할리>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볼거리 즐길거리 가득! 광주 비엔날레&담양 투어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볼거리 즐길거리 가득! 광주 비엔날레&담양 투어
2008. 12. 09 재테크
연길과 백두산에 걸친 민족정기 탐방에 이은 필자의 다음 자전거 여행지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광주, 그리고 29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약 13km를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담양이다. 아시아 최대의 미술올림픽을 둘러봄과 더불어 담양의 가사문학 사적지를 답사하는 의미 있는 코스가 아닐 수 없다. (편집자 주) 비엔날레 전시장 밖 풍경(사진 위). 시장 주차장의 벽화 중 선동열을 그린 작품. (사진 아래) 작년 여름 독일 뮌스터에서 열린 조각 프로젝트(10년에 한 번씩 열림)를 투어할 때 많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덥고 다리가 피곤해질 때쯤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을 많이 후회했다. 아이호수를 끼고 있는 뮌스터는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관광이 되는 아름다운 도시다. 도심, 호수와 공원, 광장, 대학 캠퍼스 등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기가 도보로는 쉽지 않은 거리였다. 여유 있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조금 번거로워도 접을 수 있는 미니벨로라도 챙겼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집에 자전거가 3대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귀차니즘’을 후회하면서 다음에 맞이할 다른 기회를 벼르던 차 광주 비엔날레가 다가온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가 벌써 7회째 접어들었다. 아시아 최대의 미술올림픽이라 불리는 광주 비엔날레 역시 특별전이나 부대행사가 여러 곳에서 열리기에 자전거 투어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를 갈 때는 전시 그 자체도 볼거리지만 사실은 그 주변의 투어가 더 기대된다. 전시장 가까이에는 아름다운 전원의 교외가 있어 좋은 볼거리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중외공원 전시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대나무 숲 전원으로 유명한 담양이다. 담양은 대나무로도 유명하지만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요람이기도 하다. 사실 비엔날레라는 것이 조금은 힘겨운 고난의 투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담양의 가사문학 사적지 답사를 곁들인다면 아주 이상적인 조합이 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별미가 곁들여지는 푸짐한 호남의 밥상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비엔날레, 현대미술과 대중 간의 거리 좁히기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실은 차를 운전해 짙은 안개를 헤치고 달리기를 4시간. 8시쯤에야 드디어 광주 중외공원에 도착했다. 비엔날레 전시장 주차장에 자동차를 두고 자전거 투어를 할 요량이다. 개관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휴식을 취했다. 일단 자전거는 차에 그대로 두고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청소년 관람자들로 북적였다. 먼저 사무국 관계자들을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한 후, 전시장 촬영을 할 때 혹시 어떤 제지를 당할지 몰라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아 입장했다. 식영정 초입의 서하당(사진 위). 한스하케의 작품 ‘백색 물결’(사진 아래). 이번 전시 주제는 특이하게도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연례보고(Annual Report)’라 하여 전 세계에서 지난 1년간 있었던 전시들 중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비엔날레는 보통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유독 사진이나 영상 미디어, 전통적 방식이 아닌 전시 공간을 연출하는 설치, 잡다한 사물들이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오브제 등이 주종을 이룬다. 기존의 양식이나 표현 방법들이 아닌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경연장이다 보니 기존의 예술에 적응해온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역시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만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런 실험적이거나 충격적인 양식들의 색다른 언어로 소통을 하는 것들 일색이다. 이러한 경향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편하게 생각하고 보면 된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다양한 미의식과 감수성을 지니고 있구나.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나와는 다른 정서를 갖게 했을까’ 등의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도슨트들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도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내용을 알 수 있지만, 매개 없이 작품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경험이 될 듯하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경우는 이러한 경향이 더 치열하게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그들은 새로운 예술의 경향에 관심을 갖고 찾는 사람들만도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편하게 접근하는 쉽고도 친숙한 부류의 작품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는 일반 시민들이 관람의 주체이기에 무언가 소통이 용이한 작품들을 적절히 안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 대인시장 안에서 개최되는 ‘복덕방’이다. 본 전시관과 시립미술관 전시를 둘러보고 나니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났다. 주차장으로 가서 자전거를 꺼내 대인시장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오랜 시간 전시장 안에 서 있느라 경직된 다리를 풀어주는 데는 역시 페달링이 좋다. 안내도에 나오는 대인시장의 방향은 광주역 쪽으로 약 6km를 가야 한다. 가는 도중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시장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대인시장에서 만난 전시는 주차장 벽화 외에 비어 있는 점포들을 전시장으로 활용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직접 가게처럼 진열된 것이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시장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장면들도 그대로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용은 주로 광주의 역사를 회고하는 것인데 주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느 점포 벽에는 5·18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물들을 설치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며, 어느 주차장 벽에는 국보 투수 선동열이 피칭하는 장면 그리고 맞은편에는 롯데 타자가 스윙을 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하다. 이쯤 되면 현대미술이 오히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 민영순, 알랭 드수자, 압델라이 다로치의 작품 ‘마이다다’. 2 시장 점포가 전시장으로 변한 대인시장 내 복덕방 전경. 3 기존의 양식이나 표현 방법을 벗어난 참신한 작품이 관람객의 발길을 끈다. ‘면앙정가’의 고장에서 읊조리는 한 구절 전시 관람이 끝나자 벌써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담양으로 출발했다. 중외공원에서 29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약 13km를 달리자 담양읍이 나왔다. 더러 공사 구간이 있어 쉽지는 않았으나 자전거 주행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길이었다. 유산리에 당도하자 면앙정 안내판이 보인다. 887번 지방도로 빠져 약 3km 가다 보면 제월봉 아래에 자리 잡은 면앙정이 나온다. 퇴계 선생의 학문에 필적할 만한 송순 선생(1493~1582)이 낙향해 기대승, 고경명, 정철 등을 배출한 역사 현장이 바로 면앙정( 免仰亭)이다. 조선시대 지방의 균형 발전이 가능했던 것도 이처럼 선비가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것을 낙으로 여겼던 풍토 덕이라 생각된다. ‘… 강상풍월을 거느리고 / 내 백년(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의 이태백이 / 살아서 오는구나…’‘면앙정가’ 몇 구절을 읊조리며 다시 송순 선생의 제자 정철 선생이 머지않은 곳에 자리 잡은 송강정(松江亭)으로 발길을 돌린다. 면앙정에서 약 5km 29번 국도로 되돌아가는 길에 송강정이 나온다. 송강정은 영산강 지류인 승암천을 굽어보는 위치의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당쟁으로 말미암아 낙향한 정철 선생이 죽록정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4년간 창작생활을 한 곳이다. 정철 선생은 우리 조선의 가장 큰 폐해인 당쟁의 중심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적지를 답사한 결과, 느낄 수 있었던 것 하나는 조선의 정치가 적어도 요즘의 정치보다는 격이 높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점이다.아름다운 자연 속 문학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면앙정에서 나오는 지방도의 고서면 방향을 따라 산덕 후산마을에 자리 잡은 명옥헌(鳴玉軒)으로 향했다. 15년 전 시인 황지우의 명옥헌 글방을 찾은 이래 다시 찾게 된 것이다. 17세기 초 오희도가 세운 명옥헌은 건축과 연목, 식수 조경, 주변의 아름다운 원림 풍경과의 조화가 절묘한 곳으로 유명하다. 여름이면 연못 주위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배롱나무들의 자태가 참으로 아름답다. 이제 나무들이 더 커진 만큼 연못의 둘레는 더 좁아진 느낌이다. 정철 선생이 환벽당에서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러 내려오곤 했다는 개울.명옥헌을 뒤로하고 성월리로 와서 다시 지방도를 타고 소쇄원 방향으로 갔다. 중도에 맛있는 남도의 온갖 반찬으로 차려진 전통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광주호를 따라 업힐(Uphill)을 해야 한다. 제법 경사가 있고 갓길이 거의 없어 차량을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명옥헌으로부터 6km 정도를 달린 끝에 광주호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한 식영정(息影亭)을 만날 수 있다. 정철 선생의 성산별곡이 지어진 바로 그 현장은 초입(서하당)에서부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숲이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바로 그 아래에는 정철 선생의 당숙뻘 되는 김성원이 지은 서하당이 있는데, 이 모두가 선생의 ‘성산별곡’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이로부터 조금만 더 가면 우리나라 최대의 문학관이라 할 수 있는 가사문학관이 있다. 또 그 맞은편 언덕에는 정철 선생이 글공부를 하던 환벽당이 나오는데, 가는 곳마다 정철 선생의 시문 정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0월에만 왔어도 꽃무릇(일명 상사초)이 군락을 이루며 붉은 주단처럼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만추인 지금은 볼 수가 없어 아쉽다. 권하건대, 가사문학의 사적지에 와서 성산별곡을 한번 노래해보라. 노래방에서 흔하디흔한 유행가만 부르던 우리의 영혼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생기와 깊이를 느끼며 돌아갈 것이다. 그로부터 조금만 더 올라가면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소쇄원이 나온다. 여정의 마지막을 죽림에서 마무리 짓고 싶어 그곳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관리인의 말에 입구에 두고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소쇄원 입구에서. 하지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에서 명상의 산책을 꿈꾸었던 나의 꿈은 부서졌다. 어차피 광주로 돌아가서, 서울까지 운전을 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기웃거릴 여유도 없이 바로 나와야 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등산 자락을 넘어 시내로 가고자 했다. 높은 곳만 보이면 오르고자 하는 것이 라이더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더 이상의 업힐 할 힘도 없거니와 밤길 운전을 위해서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무엇보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게다. ▲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 ▲취재 협조 / 광주 비엔날레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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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File]2005 광주국제영화제
2005. 09. 01 문화/생활
올해로 다섯 돌을 맞는 광주국제영화제가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광주문화예술회관과 밀리오레시네마, 광주극장 등 광주 충장로 극장가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번 영화제에는 ‘영화제를 즐기자(Let’s Enjoy Film Festival)’라는 주제로 33개국 170여 편의 영화가 ‘영시네마’ ‘논픽션 시네마’ ‘한국영화 지금’ ‘페스티벌 오브 페스티벌즈’ ‘어린이 영화’ ‘시민영화광장’ 등 총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선보일 예정. 개막작으로는 중국의 최고 여배우로 손꼽히는 관즈린이 열연한 ‘헤어드레서’가, 폐막작은 일본 우치다 켄지 감독의 ‘내 마음의 이방인’이 각각 선정됐다. ‘유망 젊은 감독’의 데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광주영화제의 알맹이로 평가받는 ‘영시네마’ 섹션에서는 올해도 최신작을 중심으로 11개국 17편의 신작들이 경합을 벌인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구장웨이 감독의 ‘공작’과 중국 어우용 감독의 ‘모·리·화’, 독일의 SF영화 ‘바쿰’ 등의 각축전이 예상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여지는 ‘페스티벌 오브 페스티벌즈’ 섹션에선 세계 유수의 영화제 수상작 또는 초청작으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영화 팬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선보여지고, ‘어린이 영화’ 섹션에서는 스포츠영화인 ‘인 오렌지’와 ‘호두까기인형과 생쥐대왕’ ‘곤충나라의 에릭’ 등 애니메이션이 소개될 예정이다. 또 시민들의 호응을 받아온 ‘시민영화광장’ 섹션은 아시아 영화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논픽션 시네마’ 섹션은 다큐멘터리 및 개인영화, 실험영화들 위주로 선보여진다. ‘한국 영화 지금’ 섹션에선 ‘여자, 정혜’를 비롯,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일본에서 배우 겸 감독으로 활약하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리얼리즘적인 프롤레타리아 영화를 만들었던 일본 시대극의 거장 우치다 도무(內田吐夢. 1898~1970) 회고전이 마련돼 그의 작품세계가 집중 조명될 예정이다. 또 시에진(중국), 리싱(대만), 당나민(베트남), 야마다 요지(일본), 신상옥(한국) 등 아시아 5개국 거장들을 소개하는 ‘아시아 거장 특별전’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좀처럼 보기 드문 ‘미얀마 영화 특별전’이 열려 특별한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부문으로 4년만에 부활한 ‘한국단편선’에서는 예선을 통과한 40편의 신예 감독 작품이 소개되며, ‘해외단편 걸작선’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39편의 세계 단편영화들을 선보인다. 이 밖에도 영화제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중국영화의 조명’ ‘3D 입체영화’ 등을 주제로 포럼과 학술행사도 준비해놓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열흘간 충장로 극장가 일대에선 인디밴드들이 총출동하는 옥탑공연 ‘Fly To The Moon’ ‘영화음악과 이야기가 흐르는 노천카페’ ‘무비(舞斐) 프로젝트’ ‘영화관 옆 미술관’ 등 다양한 이벤트도 펼쳐질 예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광주에서의 ‘영화난장’ 2005 광주국제영화제. 빛고을 광주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의 광주국제영화제 사무국(www.giff.org, 062-228-9968) New Movie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잠복근무 땡땡이는 기본, 뇌물수수에 강력사건현장은 딸 현지를 핑계로 요리조리 피하는 대한민국 최강 불량 형사 이대로. 그에게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홀로 남을 현지를 위해 순직을 가장한 자살프로젝트를 감행하지만 온몸을 던져 뛰어드는 사건마다 죽기는커녕 사건을 해결하며 전국을 뒤흔드는 영웅경찰이 되어 가는데…. 과연, 이대로, 죽을 수 있을까? 형사 조정의 어지러움을 틈타 가짜 돈이 유통된다. 조선 최고의 여형사 남순은 용의자 병판대감과 그의 오른팔 슬픈눈을 끊임없이 추적한다. 남순과 슬픈눈이 마주할 때마다 둘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모를 꾀하는 자와 역모를 막으려는 자의 숙명적인 대결은 피할 수 없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갈등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애절해진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32개 국어로 출판되어 1370만권이 팔린 로알드 달의 책 을 팀버튼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일년에 딱 한번 생일에만 초콜릿을 먹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찰리 버켓의 집은 세계 최고의 초콜렛 메이커 윌리 웡카의 공장 이웃에 있다. 경품 투어에 기적처럼 당첨된 찰리는 목적을 숨긴 윌리 웡카 공장 견학에 다른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초대되어 잊지 못할 모험을 맛본다. 그녀는 요술쟁이 원하는 것은 뭐든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요술쟁이 이자벨. 하지만 그녀는 손짓하나로 사람의 마음까지 좌지우지 하는 요술쟁이의 삶은 가짜 인생이라며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 것을 선포한다. TV시트콤 여자 주인공으로 픽업된 그녀는 배우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혼자 튀어 보려는 상대배우 잭의 행각과 온갖 귀찮은 일상사는 마법과 인연을 끊어보려던 이자벨을 자극하기에 이르는데…. DVD 우리, 사랑일까요 뉴욕행 비행기에서 만나 서로가 어울릴 수 없는 최악의 상대임을 단언하는 올리버와 에밀리. 그 후 7년 동안 그들의 관계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언제나 타이밍은 좋지 않다. 불행으로 끝나버리지 않을 관계와 사랑을 찾아 나서면서, 올리버와 에밀리는 7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자신들이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사랑과 흡사한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안녕, 형아 9살 한이는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는 말썽천재. 학교 친구들과 가족들은 부하나 다름없다. 특히 가끔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형, 한별은 최고의 괴롭히기 연습상대다. 어느 날, 형아가 갑자기 뭔가 울컥 토하고는 쓰러졌다. 한이는 입원한 형 때문에 병원을 또 다른 놀이터로 삼아 힐리스를 타고 거침없이 병원복도를 질주한다. 하지만 모든 슬픈 사건은 한이가 모르는 채 진행되고 있었다. Video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화재로 부모님과 집을 한꺼번에 잃은 보들레어가(家)의 삼남매 바이올렛, 클라우스, 써니.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지만 그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 푼도 쓸 수 없다. 집을 잃은 아이들은 후견인이 되어줄 먼 친척 울라프 백작을 만나게 된다. 사실, 그는 유산을 노리는 사악한 인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삼남매는 위기의 순간마다 재능을 발휘해 울라프 백작의 마수로부터 빠져나가는데! 분홍신 선재는 지하철 선반에 주인이 없는 듯 놓여진 분홍신을 훔치듯 몰래 주워 들고 집에 온다. 그녀는 분홍신을 신은 자신의 모습을 도취된 듯 바라본다. 문 밖에는 선재가 신은 분홍신을 탐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딸이 있다. 분홍신에 집착하는 선재, 그녀에게서 분홍신을 빼앗으려는 딸, 태수. 두 사람이 떠난 욕실의 거울에는 피 묻은 분홍신을 움켜 쥔 한 소녀의 영상이 남아 있다. 담당/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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