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305 건 검색)
- 정부, 위험 작업 때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고민···캐나다선 모든 어선에서 의무화
- 2024. 11. 11 16:11사회
- ... 333건의 선박 사고 사망자 중 구명조끼를 착용한 사람의 익사율은 9%에 불과했다. 보온효과가 있는 구명조끼는 저체온증을 막아 생존시간을 늘려주는 역할도 한다. 구명조끼는 고체식과 팽창식 등이 있다....
-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공익 제보한 변호사, ‘명예훼손’ 경찰 조사
- 2024. 10. 01 21:37사회
- ... 의혹을 제기한 김규현 변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제기한 김 변호사를 지난달 30일 청사로 불러 2시간가량 조사했다고 1일 밝혔다. 구명
-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제보한 김규현 변호사, 경찰 피의자 조사
- 2024. 10. 01 18:31사회
- ... 의혹을 제기한 김규현 변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제기한 김 변호사를 지난달 30일 청사로 불러 2시간가량 조사했다고 1일 밝혔다. 구명
- ‘임성근 구명 의혹’ 제보자, 권성동 의원 고소
- 2024. 08. 26 21:23사회
- ... “권 의원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죄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이 제기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의 구성원으로, 지난 1일 단체대화방 대화와 녹취 등을 토대로...
- 채 상병 1주기
스포츠경향(총 48 건 검색)
- 영탁 “나는 행동파” 외쳤는데···구명조끼 펑! (푹다행)
- 2024. 09. 17 09:03 연예
- MBC 예능 프로그램 ‘푹 쉬면 다행이야’ 가수 영탁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가 터지는 불상사를 겪었다. 16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푹 쉬면 다행이야’에서는 영탁, 김준수, 토니안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붐은 평소 절친한 동료 영탁, 김준수, 토니안을 일꾼으로 불러 함께 요리 재료 구하기에 나섰다. 붐은 세 사람에게 “전복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영탁과 김준수, 토니안은 해루질에 도전장을 던졌다. MBC 예능 프로그램 ‘푹 쉬면 다행이야’ 하지만 김준수와 토니안이 실패를 거듭, 이번엔 영탁이 출격했다. 영탁은 “나는 행동파”라며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다에 입수했다. 그러나 영탁은 입수와 동시에 “뭐야. 뭐야”라며 당황했고, 물에 닿은 구명조끼가 순식간에 터졌다. 당황스러운 사고에 영탁은 “숨을 못 쉬겠다”고 토로했고, 붐은 “또 하나 해 먹었냐”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붐과 함께 전복 잡기에 열을 올렸다. 이후 토니안과 김준수도 소라를 잡았고, 영탁도 소라를 잡아 전화위복했다.
- [종합] ‘슈룹’ 김혜수, 왕자 구명→위로까지 참된 국모의 품격
- 2022. 11. 13 10:12 연예
- 김혜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tvN ‘슈룹’ 화면 캡처 ‘슈룹’ 주연 김혜수가 국모의 품격을 보여주며 안방에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김혜수는 지난 12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슈룹’(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하우픽쳐스) 9회에서의 활약이 빛났다. 김혜수는 고귀인(우정원)과 심소군(문성헌)을 보듬는 따스한 말 한마디부터 대비(김해숙)와 영의정(김의성) 관계의 균열까지 자애로움과 정치적 혜안을 모두 보여주었다. 김혜수의 참된 어른의 품격이 통한 9화는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11.0%, 최고 12.2%를 기록했고 전국 가구 기준 평균 10.0%, 최고 11.1%를 기록했으며 수도권과 전국 기준 모두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김혜수는 대비가 벌인 그간의 일들을 국왕인 이호(최영원)에게 낱낱이 고했지만, 대비에게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독초인 천남성을 올린 일로 책잡혔다. 역공당한 김혜수는 제대로 된 반격을 도모, 그 첫 번째 작업으로 대비와 영의정의 사이를 갈라놓기로 했다. 김혜수는 영의정을 찾아가 대비가 성남대군(문상민 분)을 죽이고 영의정에게 덮어씌우려 한 것은 물론 최근 보검군(김민기 분)의 모친 태소용(김가은 분)의 잦은 대비전 출입을 전해 위기감과 불신을 싹 틔웠다. 영의정을 흔드는 데 성공한 김혜수는 다음으로 병조판서 윤수광(장현성)을 불러들였다. 자신은 대비의 사람이라며 선을 긋는 윤수광에게 화령은 폐비 윤씨(서이숙) 가문의 몰락으로 심중에 있던 불안감을 자극했다. 동시에 세자 경합을 앞두고 윤수광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까닭을 꿰뚫었다. 세자빈 자리를 약속받고 힘을 보탠 것일 테니 대군들을 마다할 이유도 없을 터. 중립을 지키라는 김혜수의 말은 윤수광이 변심할 가능성을 안겼다. 그런가 하면 서함덕(태원석)을 찾아 산에 있어야 할 심소군이 만신창이가 된 채 궐 앞에 나타났다. 남루한 아들의 행색을 본 고귀인은 몸도 마음도 지친 자식의 상태보다는 경합을 중도 포기하고 온 사실에 기함하며 바로 내쳤다. 이를 신상궁(박준면)이 길바닥에 쓰러진 심소군을 발견했다. 김혜수는 밥상을 심소군에게 내어주었고 밥상을 게눈 감추듯 먹는 심소군 앞에 나타난 고귀인은 냅다 밥상을 걷어차며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고귀인은 급기야 계성대군(유선호)의 비밀도 누설, 여인의 모습을 한 계성대군의 초상화를 황귀인(옥자연)에게 보여주며 분개했다. 하지만 고귀인이 분노로 이글거리던 시간, 심소군은 어머니가 준 노리개를 쥐고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 상처받았을 심소군이 걱정돼 아침부터 침소를 찾은 김혜수에 의해 다행히 죽음은 면했으나 왕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심소군의 소식을 듣고 버선발로 나타난 고귀인은 아들 곁을 지키겠다며 호소했지만, 김혜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식을 매정하게 뿌리친 고귀인에게 벌이라도 주려는 듯했으나 이는 어머니를 향한 죄송함에 아파할 심소군의 마음을 염려한 결정이었다. 더불어 김혜수는 자책할 고귀인의 마음도 보듬었다.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도, 그로 인해 가장 큰 벌을 받은 사람도 고귀인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때로는 제 욕심이 앞서기도 하지만 잘못을 뉘우칠 때 가장 괴로워할 사람은 엄마임을 김혜수는 잘 알고 있었다.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밑으로 흘러버리는 계영배(戒盈杯)에 술을 따라주며 술잔에 뚫린 구멍을 숨통에 비유한 김혜수의 위로는 늘 압박에 시달려온 심소군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심소군의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키고 어머니 고귀인의 사랑을 이해하도록 설명한 장면은 참된 어른의 품격을 몸소 보여준 대목이었다. 한편 예측 불가 세자 경합과 김혜수의 노력은 13일 오후 9시 10분 tvN 토일드라마 ‘슈룹’ 10회에서 계속된다.
- 국제적 구명운동에도 이란 레슬링스타 결국 교수형
- 2020. 09. 12 23:45 스포츠종합
- 12일 사형이 집행된 이란 레슬링 선수 나비드 아프카리. 유엔워치 트위터이란 국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유명 레슬링 선수 나비드 아프카리(27)가 살인 혐의로 처형됐다고 이란 국영방송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영방송은 피해자의 유족이 확정된 사형을 집행해 달라고 사법부에 요청함에 따라 그가 종교적 관용을 받지 못하고 이날 오전 교수형이 집행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사법부는 아프카리가 남동생 2명과 공모해 공기업 경비원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됐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남동생 2명에겐 각각 징역 54년과 27년이 선고됐다. 그의 사형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의 네티즌들은 그가 2018년 1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누명을 씌워 보복성 판결을 내렸다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구명 운동을 벌였다. SNS에는 ‘#나비드를 살려달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확산했고 사형을 반대하는 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 외국의 유명 레슬링 선수들도 사형 선고가 부당하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석방을 요청했다. 그의 가족은 면회하면서 몰래 녹음한 음성파일을 근거로 이란 당국이 심하게 고문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3일 트윗을 통해 “이란의 지도자들에게. 이 젊은이(아프가리)의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준다면 대단히 고맙겠소”라고 거들었다. 미국 국무부도 3일 낸 성명에서 “미국은 아프카리에게 사형을 선고해버린 이란 정권에 대한 전 세계적 분노에 동참한다. 2018년 평화 시위에 참여한 그는 고문을 받은 끝에 허위로 자백했다”라고 비난했다. 이란 사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 뒤 9일 만에 사형을 집행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대해 이란 보수 성향 매체 타스님뉴스는 “트럼프는 가혹한 제재로 이란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목숨을 위험에 몰아놓고서 살인자의 생명을 걱정한다”라고 비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의 사형 집행 뒤 낸 성명에서 “매우 충격적이다‘라며 ”국제적으로 구명 운동을 벌였으나 처형을 막지 못해 깊이 실망한다“라고 밝혔다. 외부의 의혹 제기에 이란 사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사법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18년 8월 1일 밤 이란 중부 시라즈 시내에서 동생이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한 공무원을 쫓아가 뒤에서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2018년 8월에도 시라즈에서 반정부 시위가 소규모로 벌어졌다. 이 범행 후 장소를 옮겨 다른 이를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게 사법부의 설명이다. 살해 동기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사법부는 또 이들 형제가 2018년 1월 전국적으로 발발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경찰에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고 시위 중 벌어진 약탈에 가담했다고 덧붙였다.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변호인의 입회 아래 조사가 진행됐고, 아프카리가 고문 여부를 밝히는 법의학적 검증을 거부했다“라고 부인했다.
- ‘또 뚫렸나’ 태안에 정체불명 고무보트…구명조끼도 발견
- 2020. 06. 04 13:14 사회
- 태안 마도 인근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고무보트. 태안해경 제공=연합뉴스최근 중국인 8명이 몰래 타고 들어온 소형 보트 발견 지점에서 멀지 않은 충남 태안 해변에서 정체불명의 고무보트 1척이 또 발견돼 관계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태안해양경찰서는 4일 오전 8시 55분께 “태안군 근흥면 마도 방파제 인근에 5∼6일 전부터 정체불명의 고무보트가 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군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합동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무보트가 발견된 지점은 지난달 23일 중국인 8명이 밀입국용으로 사용한 소형 보트가 발견된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과 직선거리로 15㎞ 정도 떨어져 있다. 40마력의 선외기 엔진이 장착된 옅은 회색의 고무보트에서는 구명조끼 2벌, 1ℓ들이 엔진오일 3통, 니퍼를 비롯한 공구, 빵 봉지 등이 발견됐다. 현장의 한 주민은 “보트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며 “마도 방파제 주변에서 군인과 경찰 수십 명이 조사를 했다”고 전했다. 마도 방파제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소형 접안용 방파제이다. 군과 해경은 대공 용의점이 있는지, 중국인들이 또 밀입국용으로 사용했는지, 단순 유실된 것인지 등을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사회]‘석궁교수 구명’ 동료들 팔걷었다(2007. 02. 20)
- 2007. 02. 20 사회
- “이번 사건 계기 재임용제도·법문화 바꾸자” 김민수·김세균 교수 등 대책위 발족 교수재임용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서울고법 박홍우 부장판사를 석궁테러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지난 1월 16일 연구실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한 동료 교수로부터 이상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김명호 교수가 일을 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졌다. 사건은 놀라웠다. 교수지위확인 소송이 항소심에서 기각되자,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담당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았다는 것. 그날 저녁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를 통해 김명호 전 교수의 ‘복직투쟁’을 도와 온 김세균 교수에게 석궁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교수재임용 모순성 짚고 싶어” ‘사법테러’라는 언론의 표현이 부담됐지만 김세균 교수는 ‘피하지 말고 사건의 이면을 제대로 알리자’고 생각했다. 재임용이 거부돼 떠돌고 있는 ‘제2의 김명호 교수’들도 생각났다. 김세균 교수가 김 전 교수의 구명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석궁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 남짓. 이제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갈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법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으려는 이들이 속속 모이고 있다. 김세균 교수는 민교협을 통해 ‘김명호교수대책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지난 2월 7일 10여 명이 모여 종로구 운니동에서 발족식을 했다. 교수들과 인권운동단체, 구명운동 카페 회원들이 멤버다. 그중 눈에 띄는 인물은 김민수 서울대 교수(산업디자인학)이다. 그는 같은 대학 교수의 친일행적을 지적한 뒤 재임용에 거부당했다가 6년여의 소송을 통해 복직했다. 김 전 교수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기에 김민수 교수는 ‘김명호교수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가 김명호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12월, 대법원의 2심 파기 환송으로 승소 가능성이 높아져 들떠 있을 무렵이었다. 앞서 2심 법원은 1심 판결(김민수 교수 승소)을 뒤집고 ‘재임용 탈락은 소송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이 그것을 파기한 것이다. 미국에 있던 김명호 전 교수는 김민수 교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재판으로 많이 고무돼 있다.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 뒤 마침내 2심 법원은 다시 재판을 열어 김민수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김민수 교수는 “석궁사건만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지경까지 갔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게 먼저”라며 “나도 재임용에 탈락한 뒤 6년여 간 소송을 하며 정신적 황폐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민변 주요인사들도 적극 나서 김명호 전 교수가 테러에 사용한 석궁을 한 수사관이 들어보이고 있다. 교수들이 석궁사건을 통해서 짚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교수재임용 제도의 모순성이다. 김세균 교수는 “부조리한 제도가 전도양양한 김 전 교수를 범죄자로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87년 대법원이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이라며 재임용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린 이래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였다. 물론 변화는 있었다. 2003년 헌법재판소가 재임용과 관련해 옛 사립학교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재임용 탈락자 구제를 위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재임용이 거부된 교수들은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임용이 거부된 많은 교수는 아직도 학교 밖을 맴돌고 있다. 현재 400여 명의 해직교수 가운데 복직길이 열린 사람은 겨우 10명 안팎이다. 재판부는 번번이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세균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구조 아래서 재임용제도는 해직 방편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호 교수의 변호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주요 인사들이다. 여기엔 임종인 의원(무소속)의 역할이 컸다. “직감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걸 느꼈다”는 그는 직접 송파경찰서로 찾아가 두 시간 동안 김 전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1월 말, 민변 최병모 전 회장, 이기욱 전 부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이덕우·김학웅·이원구 변호사와 함께 기꺼이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다. 김 전 교수의 고교 동창인 진호근 변호사도 재임용 소송의 상고심 변호인으로 나설 예정이다. 교수들이 재임용제도와 사학권력에 주목하고 있다면 이들의 관심사는 사법제도의 모순성이다. 변론을 맡은 이기욱 변호사는 “(김명호 전 교수의 재임용 소송 판결문은) 전형적으로 한 쪽으로만 몰아가는 판결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1995년 김명호 전 교수는 이미 학과장으로 추천된 바 있는데 이런 내용은 판결문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판사들은 상급심에서 깨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판결에 유리한 자료들만 인용해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법조사회의 편의주의적 판결문화를 지적했다. 한편 2월 8일 서울동부지검은 김 교수에 대한 혐의(영장청구 당시 적용)를 살인미수에서 집단·흉기 등 상해로 바꿔 기소했다. 피해자인 박모 판사가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로써 석궁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대책위와 변호인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 중이다. “6년여 간 소송을 하면서 법에 인간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사건을 관행에 따라 내치지 않고 진지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 ‘내가 법의 보호권 안에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꼈다. 김명호 전 교수에게도 그런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부와 법원이 먼저 김명호 전 교수에게 손을 내밀 것으로 기대한다.” 김민수 교수의 말이다. 재판과정 어떤 문제 있었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재판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왔다. 그간 ‘나홀로 소송’을 해온 김 전 교수가 새롭게 변호인단을 선임함에 따라 재판과정의 모순을 둘러싼 공방도 예상된다. 김 전 교수의 홈페이지에 있는 기록과 자료를 토대로 김 전 교수가 지적한 내용을 정리했다. 먼저 김 전 교수는 “재임용이 거부된 96년께 ‘잘못된 87년 판례’ 때문에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강조해 왔다. 1987년 대법원은 “재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 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는데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립대학 교수의 재임용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판례를 뒤집은 것.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해야 하는데도 이를 구성하지 않고 판사 단독으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여기가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김 전 교수는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관련 책자까지 펴냈다. 이기욱 변호사는 “판례변경에 대한 김씨의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1987년 판례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점이 김씨의 사법 불신을 키웠다는 점을 (석궁사건에서) 참작요소로 내세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또 재판부가 김 전 교수의 자료제출명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재임용 거부 원인이 입시부정폭로임을 인정하면서도 학생들의 시험성적평가 등 교육적 자질을 문제삼아 성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김 전 교수는 성적평가의 문제점을 들어 교수가 징계된 전례가 있는지 자료제출명령을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교수의 재임용 소송 상고심 변론을 맡은 진호근 변호사는 “김씨가 (성대측의) 증거가 부족했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의 소송지휘권 행사에 대한 불만도 눈에 띈다. 재판부가 김 전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을 따지기 위해 성대측이 증인을 신청한 사실을 뒤늦게 알려줘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김 전 교수의 주장이다. 반면 재판부는 성대측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1, 2심 재판부 모두 성대측이 답변기일(30일)을 넘겨 제출한 답변서는 번번이 받아주었다. 또 김 전 교수는 재판부에 공판과정을 녹음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거절했다. 사실 김 전 교수의 요구는 모두 민사소송법에 명시돼 있는 것들이지만 훈시규정이라서 재판부가 이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전 교수의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는 “편파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부분이다. 석궁사건 재판 시 하나의 참작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 2심 주심이었던 이정렬 판사는 “주장에 일일이 반박할 수는 있으나 소송 당사자와 재판부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언급을 피했다.
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어바웃펫, 목 편한 강아지 구명조끼 판매
- 2023. 06. 07 17:34 화제
- 반려동물 쇼핑 플랫폼 어바웃펫이 펫캉스를 앞두고 강아지용 구명조끼를 내놨다. 어바웃펫 PB브랜드 ‘펫띵’에서 내놓은 ‘펫띵 수영왕 구명조끼’로, 두껍고 넓은 넥카라가 강아지들의 고개를 받쳐줘 물 위에서도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이 제품은 행동학 수의사로 잘 알려진 곽지윤 씨와 협업해 개발한 것으로, 반려견이 물놀이를 할 때 불편함을 없애는 데 초점을 뒀다. 수영이 처음인 반려견이 물 위에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잡을 수 있고 외이염 등 세균 감염도 예방할 수 있다. 값은 2만7900원~3만1900원이다. 이와 함께 쿨조끼, 쿨스카프 등 여름나기에 도움을 주는 제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 ‘바른패드’ 누적 150만 장 판매를 기념해 패드 기획전을 이달 12일까지 열고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강아지용 구명조끼
- 탈북자 취재하다 구금된 석재현의 구명운동 나선 그의 아내 강혜원
- 2004. 03. 01 화제
- “깎인 머리, 부어오른 손가락, 동상으로 찢긴 살갗은 인간을 사랑한 사람에게 내려진 형벌”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반반. 50%라는 불확실성에 몸을 던져 탈북자를 취재하던 사진가가 중국의 얼어붙은 감옥에서 고독과 싸우고 있다. 석재현씨가 바로 그다. 갇혀 있는 그에게 원군은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유일한 아군인 아내 강혜원씨가 밝히는 석재현씨 구명기는 조국을 생각케 하고 사람을 추억케 하며 사랑을 느끼게 한다. 네번째 면회를 떠나면서 풀어낸 그녀의 사부곡. 탈북자 구출 작전명 ‘리본’ 결국 리본에 발목 잡히다 꼭 1년 만에 태양을 봤다. 여명이 빛의 향연을 준비할 즈음, 땅거미가 안간힘을 쓰며 막바지 버티기를 할 때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태양을 봤다. 그곳에서도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리도 찬미하는 예수님의 귀빠진 날인 성탄절 새벽에… 탈북자를 돕다가 중국에서 구금된 석재현씨(35)는 2003년 12월 25일 그렇게 옌타이(煙臺) 제2간수소(구치소)에서 웨이팡 교도소로 옮겨졌다. 죄가 있어 구금된 자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마는 동토에서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 나약한 한 인간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한국인 석재현은 그렇게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부터 철저히 유리되어 박제가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2003년 1월 18일, 석재현씨는 ‘리본’이라는 암호명 아래,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탈출하려던 탈북자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저널리스트다. 한국의 탈북자구호단체 두리하나선교회와 유럽의 ‘국경 없는 의사회’,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풀러첸과 일본의 북조선난민구호기금 등 다국적 NGO들이 탈북자들을 선박 두 척에 태워 한국과 일본에 망명시킬 계획을 듣고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 그러나 대단위 탈출 계획이었던 만큼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그렇게 중국 공안에 잡혀 구금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개별적인 사람의 역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전체적인 틀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7개의 NGO들이 조직적으로 연대를 한데다 공해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점, 탈북자 수가 80명으로 최대 규모라는 점 등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음은 두말이 필요 없다. 그 탓에 그에게 ‘타인 불법 월경(越境) 조직죄’로 밀입국 조직 혐의가 덧씌워졌다. 그리고 얼마 전 2년형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올 1월 18일에 면회를 했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잡혀간 지 꼭 1년 만이었어요. 고슴도치처럼 박박 깎인 머리를 보니 처음엔 누군가 싶더라고요. 지난번 항소심이 기각되면서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변했기 때문에 머리를 깎인 것이죠. 귀는 동상으로 얼어 찢어졌고 손은 어묵같이 부어 있었어요. 181cm로 큰 키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닌지 60kg도 안 되어 보이더라고요. 전날 내가 면회를 온다고 추한 꼴 보이기 싫다며 찬물로 목욕을 한 탓에 감기도 걸려 있었어요. 만났더니 교회 나가라고 하더군요. 남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나는 교회를 안나가거든요. ‘너 때문에 기도발이 안 받는다’며 농담도 했고요. 사실, 하나님은 안 믿지만 그분과 약속을 했어요. 내 남편 빨리 내보내주면 나도 당신 자식이라고….” 석재현씨의 아내 강혜원씨(39)는 이제 흘릴 눈물도 없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허송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때가 세번째 면회였고 인터뷰 다음날인 2월 11일,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다시 중국에 간다고 했다. 이번에는 뿔테 안경을 준비해 간다고 했다. 그간 안경이 없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라며, 마치 남편에게 안경을 씌워준 상상에 빠지는 듯 입가엔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난해 9월 23일 처음 면회를 했을 때는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엔 진물이 났으며 피부는 약간 벗겨져 있었다고. 수감자 2백여 명이 공동으로 쓰하는 면도기를 사용하다 보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그때 두꺼운 겨울옷을 넣어주겠다는 말에 석재현씨는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10년 같은데, 나보고 겨울을 여기서 나란 말이야?” 일본인은 1개월, 한국인은 몇 년 기간도 나라 따라 간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방에 20명이 넘는 수감자와 생활을 해야 하는 통에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는 것이 당시 남편의 처지였다고. 다행히 조선족 수감자가 있어 말벗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 사람마저도 오래지 않아 처형되어 그 상실감에 한동안 몸을 지탱해내기도 힘들었단다. 결국 몸이 망가져 7~8월에 링거를 10병 정도 맞아야 했다고. 간수소는 교도소와는 달리 운동 시간도 없이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큰 고통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지난해 10월 23일 두번째 면회 때 “겨울옷 좀 넣어줘!”라는 말을 할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출감하는 것을 포기한 인상이었다고. 감옥 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던지 영양실조로 쓰러져 철문에 부딪힌 탓에 목 왼쪽에 상처도 있었다. 갇힌 남편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벌써 그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중국에 다녀온 것이 16번이나 되고, 일본에도 7번 다녀왔다. 같은 죄명으로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과 중국 판사를 만나는 일을 반복했다. 발품을 팔면 팔수록 속을 끓이는 부아는 잦아들지 않았다. 외교상부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 “열심히 하고 있다”란 답변이 다고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면 “대외비라서 말해줄 수 없다”는 통해 갑갑함만 더해졌다. “중국 공안에서도 ‘너희 나라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8월 7일 같은 죄목으로 잡힌 ‘북한 귀국자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야마다 후미아키(山田文明·54) 오사카 경제대 조교수는 잡히자마자 일본 영사 3명이 와서 구금 당시의 상황과 건강상태를 1시간 동안 확인했대요. 우리요? 담당 영사는 휴가중이었고, 영사 2명이 10분간 대충 질문을 하더니 돌아갔대요. 그런 탓인지 야마다씨 일행은 3주 만인 8월 27일에 풀려났죠. 물론 영사님 한 분이 가끔 남편을 찾아 같이 기도를 하며 위안을 얻게 해줘 고맙지만 우리 정부가 보인 노력은 일본 정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듯해요.” 이때, 야마다씨와 같이 구금되었던 한국인 김기주씨가 전하는 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자국 영사에게서 들은 ‘위로의 말’도 수준이 달랐다고 한다. 야마다씨는 일본 영사로부터 ‘일본 정부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안에서 건강히 지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영사는 ‘아마 오래 갈 거다. 이 사건이 중국법을 위반한 것인지 알고 있었냐. 벌을 달게 받을 용의가 돼 있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약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결국 석재현씨는 한국인으로 잡힌 것이라 이렇게 오래도록 갇혀 있는 것이고, 김기주씨는 일본인과 같이 잡혀 3주 만에 풀려난 셈이다. “사진을 하고 싶고 인간을 구하고 싶다” 뉴욕타임스, 「GEO」와 일한 베테랑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가족의 상실감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올 설날을 앞두고 시댁에 모인 식구들이 강혜원씨에게 “왜 말리지 않았냐?”며 속에 없는 소리를 할 때도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고. 2003년 1월 11일, 석재현씨가 탈북자를 돕고 싶다는 말을 내비쳤을 때, 그동안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면서 남모르는 고민이 많았던 만큼 남편의 말에 동의한 것이 죄라면 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일본인들이 아주 많이 하잖아. 탈북자들이 우리 민족인데, 우리가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될 것도 같고… 꼭 내 손으로 그 일을 하고 싶어. 확률은 반반이야. 잡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50%의 실패 확률이었지만 설마 했다. 오히려 “젊었을 때 고생하는 거지”라며 맞받아쳤다. 같은 민족끼리 아직도 이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을 마음 아파했고, 저널리스트로서 그런 문제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남편을 만류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대화가 무서운 현실을 가져온 단초가 된 것. 더없이 서러웠다. 그런 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도 나주의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함박눈을 만났다. 길이 막혀 8시간이나 거북이 운행으로 갔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노라니 자유롭게 살게 될 탈북자가 떠올라 “난다, 난다! 탈북자”를 외치며 웃었던 기억이며, 그것도 농담이라고 “잡혀서 신문에 나는 것 아니야?”라고 아무 생각없이 내뱉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3일 동안 이곳저곳을 돌다가 대구 집에 도착한 것이 1월 13일 새벽 1시쯤. 바로 그날 남편이 중국으로 떠날 비행기표가 예약되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공항까지 바래다줄 텐데, 그간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콜택시 불러서 석재현씨를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일어났는데, 기분이 묘했다고. “책상 위를 깨끗하게 치워놓고 갔더라고요. 그 위에 탈북자 일지와 비상연락망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예요. 갑자기 ‘데려다줄 걸…’ 후회가 됐어요. 그리고 볼 일이 있어 일본에 갔는데, 18일 아침에 연락이 왔어요. 중국 공안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펼쳐진 18일 새벽 6시 30분께, 한국의 아는 목사님께 전화를 했나 봐요. ‘아무래도 이번 취재는 실패한 것 같다. 수많은 무장 공안이 주위를 포위해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앞이 캄캄했죠. 모든 일들이 눈앞에 스치고….” 당시만 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이란 후회가 가슴을 짓눌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남편이 탈출시키려 했던 탈북자 중에 용케도 그곳을 빠져나와 한국까지 살아 들어온 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시 임신한 몸이었던 탈북 여성은 그 탈출 행로가 험로였던 만큼 태아를 유산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들은 강혜원씨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고맙다는 말을 연신해 댔다. 그리고 또다시 임신을 해서 오는 7월 아이를 낳는데,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순간 남편이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하려는 일의 가시적인 결과가 바로 그들인 셈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석재현씨 구명 성과는 아직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다. 오히려 국제 언론단체의 성명과 구명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가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던 뉴욕타임스는 투옥을 규탄하며 석방을 촉구한 데 이어, 최근 하루빨리 다시 석재현씨와 함께 일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신원보증서’를 중국 당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와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보호위원회(CPJ) 등도 중국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렇게 그에 대한 관심이 큰 이유는 그가 명망 있는 사진가란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가 석재현씨는 뉴욕타임스즈, 「GEO」 등 명망 있는 매체들과 작업을 함께 해온 포토저널리스트. 지난해까지 대구 경일대 사진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검증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석재현씨는 2년 전부터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꾸준히 취재하며 그 내용을 뉴욕타임스 등에 기고해왔다. 이번 취재 내용 역시 뉴욕타임즈에 게재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언론단체에서 구명운동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인 강혜원씨는 아주 현실적인 구명 방안을 제시했다. “남편의 신병이 억류된 지 1년이 지났어요. 2년 형기의 절반을 채운 만큼 가석방을 신청해서, 강제 추방 형식으로라도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할 거예요. 물론 이것은 제가 주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적어도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요구가 선행되어야죠. 중국 실정법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가석방 제도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저도 구명운동을 잘못한 거죠. 정부도 대내외적으로 자국민의 보호에 얼마나 성의를 다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에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고요.” 빠른 시일 안에 무사귀환 바랄 뿐 형기 반을 채워 가석방 자격 갖춰 과연 그의 죄는 무엇인가? 그와 같이 구금된 사업가 최영훈씨(41)가 감옥에서 성경책을 오려 붙여 쓴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공의와 공평과 정직, 인간을 사랑한 죄’가 유죄의 이유일지 모른다. 석재현씨의 사진 인생도 인간을 사랑한 작품 세계를 보여왔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인간이 소재다. 미국 생활에서 작업한 ‘축제일’은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월간 「GEO」에 발표한 ‘울릉도 주민들의 이야기’는 섬에서 살고 있는 울릉도 주민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또 그의 개인전에서 보여준 ‘승방일기’는 불교에 귀의한 젊은 스님들의 일상을 꿰뚫어본 산사의 일상이다. 이렇듯 그의 생활과 작업의 대상은 인간을 그리는 구도자의 모습인 셈.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시각디자인학부에서 보도 사진을 전공한 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구 미래대학 사진과에서 계약교수로 근무한 바 있다. 그후 뉴욕타임스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현장 사진을 찍어온 그는, 사진이란 도구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보려는 철학자였는지 모른다. “2002년 초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5년만 내 일을 하게 해달라고요. 학교 강의란 것이 제자를 키우는 것은 30~40%고 나머지 60%가 학교 업무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진 할 시간도 없어지죠. ‘사진을 너무 하고 싶다’면서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학교로 돌아갈 테니까 5년간은 자유롭게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죠.” 아직 신혼의 깨소금 맛이 묻어나야 할 만 2년 차 새댁 강혜원씨와 연하 남편 석재현씨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 온 뒤 단단하게 굳어지는 땅처럼 이들의 사랑도 이 어려움을 하나하나 이겨내면서 더욱 강고해질 것. 한국 감옥에 있어도 쉽지 않을 텐데, 이국 땅에 면회를 가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디자인학부 조교수로 근무하던 중 이 학교 사진영상과 전임강사였던 석씨와 만나 2001년 10월 결혼에 골인한 강혜원씨는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자기 일에 대해선 결코 양보가 없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면회를 갔을 때 추방 형식으로라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화를 버럭 냈다고. 자동차로 중국을 횡단하며 사진을 찍을 계획인 석재현씨에게는 추방 형식으로 중국을 떠나면 다시는 중국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여전히 사진을 사랑하고 일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이 안타까왔다. “중국 국내법을 어긴 만큼 현재 수감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죠. 딱히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아요. 물론 구금된 자의 가족으로서 정부의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니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하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의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이 빨리 그곳을 벗어나길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라고 봐요. 어쨌거나 빨리 나오는 것이 급선무겠죠. 그것을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2003년 1월부터 멈춰진 그녀만의 세상을 보는 듯했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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