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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석궁교수 구명’ 동료들 팔걷었다
[사회]‘석궁교수 구명’ 동료들 팔걷었다(2007. 02. 20)
2007. 02. 20 사회
“이번 사건 계기 재임용제도·법문화 바꾸자” 김민수·김세균 교수 등 대책위 발족 교수재임용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서울고법 박홍우 부장판사를 석궁테러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지난 1월 16일 연구실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한 동료 교수로부터 이상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김명호 교수가 일을 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졌다. 사건은 놀라웠다. 교수지위확인 소송이 항소심에서 기각되자,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담당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았다는 것. 그날 저녁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를 통해 김명호 전 교수의 ‘복직투쟁’을 도와 온 김세균 교수에게 석궁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교수재임용 모순성 짚고 싶어” ‘사법테러’라는 언론의 표현이 부담됐지만 김세균 교수는 ‘피하지 말고 사건의 이면을 제대로 알리자’고 생각했다. 재임용이 거부돼 떠돌고 있는 ‘제2의 김명호 교수’들도 생각났다. 김세균 교수가 김 전 교수의 구명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석궁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 남짓. 이제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갈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법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으려는 이들이 속속 모이고 있다. 김세균 교수는 민교협을 통해 ‘김명호교수대책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지난 2월 7일 10여 명이 모여 종로구 운니동에서 발족식을 했다. 교수들과 인권운동단체, 구명운동 카페 회원들이 멤버다. 그중 눈에 띄는 인물은 김민수 서울대 교수(산업디자인학)이다. 그는 같은 대학 교수의 친일행적을 지적한 뒤 재임용에 거부당했다가 6년여의 소송을 통해 복직했다. 김 전 교수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기에 김민수 교수는 ‘김명호교수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가 김명호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12월, 대법원의 2심 파기 환송으로 승소 가능성이 높아져 들떠 있을 무렵이었다. 앞서 2심 법원은 1심 판결(김민수 교수 승소)을 뒤집고 ‘재임용 탈락은 소송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이 그것을 파기한 것이다. 미국에 있던 김명호 전 교수는 김민수 교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재판으로 많이 고무돼 있다.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 뒤 마침내 2심 법원은 다시 재판을 열어 김민수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김민수 교수는 “석궁사건만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지경까지 갔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게 먼저”라며 “나도 재임용에 탈락한 뒤 6년여 간 소송을 하며 정신적 황폐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민변 주요인사들도 적극 나서 김명호 전 교수가 테러에 사용한 석궁을 한 수사관이 들어보이고 있다. 교수들이 석궁사건을 통해서 짚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교수재임용 제도의 모순성이다. 김세균 교수는 “부조리한 제도가 전도양양한 김 전 교수를 범죄자로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87년 대법원이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이라며 재임용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린 이래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였다. 물론 변화는 있었다. 2003년 헌법재판소가 재임용과 관련해 옛 사립학교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재임용 탈락자 구제를 위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재임용이 거부된 교수들은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임용이 거부된 많은 교수는 아직도 학교 밖을 맴돌고 있다. 현재 400여 명의 해직교수 가운데 복직길이 열린 사람은 겨우 10명 안팎이다. 재판부는 번번이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세균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구조 아래서 재임용제도는 해직 방편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명호 교수의 변호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주요 인사들이다. 여기엔 임종인 의원(무소속)의 역할이 컸다. “직감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걸 느꼈다”는 그는 직접 송파경찰서로 찾아가 두 시간 동안 김 전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1월 말, 민변 최병모 전 회장, 이기욱 전 부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이덕우·김학웅·이원구 변호사와 함께 기꺼이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다. 김 전 교수의 고교 동창인 진호근 변호사도 재임용 소송의 상고심 변호인으로 나설 예정이다. 교수들이 재임용제도와 사학권력에 주목하고 있다면 이들의 관심사는 사법제도의 모순성이다. 변론을 맡은 이기욱 변호사는 “(김명호 전 교수의 재임용 소송 판결문은) 전형적으로 한 쪽으로만 몰아가는 판결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1995년 김명호 전 교수는 이미 학과장으로 추천된 바 있는데 이런 내용은 판결문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판사들은 상급심에서 깨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판결에 유리한 자료들만 인용해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법조사회의 편의주의적 판결문화를 지적했다. 한편 2월 8일 서울동부지검은 김 교수에 대한 혐의(영장청구 당시 적용)를 살인미수에서 집단·흉기 등 상해로 바꿔 기소했다. 피해자인 박모 판사가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로써 석궁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대책위와 변호인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 중이다. “6년여 간 소송을 하면서 법에 인간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사건을 관행에 따라 내치지 않고 진지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 ‘내가 법의 보호권 안에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꼈다. 김명호 전 교수에게도 그런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부와 법원이 먼저 김명호 전 교수에게 손을 내밀 것으로 기대한다.” 김민수 교수의 말이다. 재판과정 어떤 문제 있었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재판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왔다. 그간 ‘나홀로 소송’을 해온 김 전 교수가 새롭게 변호인단을 선임함에 따라 재판과정의 모순을 둘러싼 공방도 예상된다. 김 전 교수의 홈페이지에 있는 기록과 자료를 토대로 김 전 교수가 지적한 내용을 정리했다. 먼저 김 전 교수는 “재임용이 거부된 96년께 ‘잘못된 87년 판례’ 때문에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강조해 왔다. 1987년 대법원은 “재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 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는데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립대학 교수의 재임용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판례를 뒤집은 것.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해야 하는데도 이를 구성하지 않고 판사 단독으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여기가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김 전 교수는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관련 책자까지 펴냈다. 이기욱 변호사는 “판례변경에 대한 김씨의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1987년 판례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점이 김씨의 사법 불신을 키웠다는 점을 (석궁사건에서) 참작요소로 내세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또 재판부가 김 전 교수의 자료제출명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재임용 거부 원인이 입시부정폭로임을 인정하면서도 학생들의 시험성적평가 등 교육적 자질을 문제삼아 성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김 전 교수는 성적평가의 문제점을 들어 교수가 징계된 전례가 있는지 자료제출명령을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교수의 재임용 소송 상고심 변론을 맡은 진호근 변호사는 “김씨가 (성대측의) 증거가 부족했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의 소송지휘권 행사에 대한 불만도 눈에 띈다. 재판부가 김 전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을 따지기 위해 성대측이 증인을 신청한 사실을 뒤늦게 알려줘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김 전 교수의 주장이다. 반면 재판부는 성대측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1, 2심 재판부 모두 성대측이 답변기일(30일)을 넘겨 제출한 답변서는 번번이 받아주었다. 또 김 전 교수는 재판부에 공판과정을 녹음하겠다고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거절했다. 사실 김 전 교수의 요구는 모두 민사소송법에 명시돼 있는 것들이지만 훈시규정이라서 재판부가 이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전 교수의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는 “편파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부분이다. 석궁사건 재판 시 하나의 참작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 2심 주심이었던 이정렬 판사는 “주장에 일일이 반박할 수는 있으나 소송 당사자와 재판부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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