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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질서 흔드는 북한군 파병…김정은의 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2024. 10. 28 09:48)
- 2024. 10. 28 09:48 정치
- 한국과 대결 피하고 파병 가능성…미 대선 염두 전략적 선택일 수도 한국 정부 대책의 실효성 문제…한반도 영향 분석 뒤 대응 나서야 북한이 지난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연합뉴스 한반도 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북한의 움직임이 국제사회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병’됐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시기, 방식, 기대 효과 등이 모두 계산된 모양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장한 ‘두 국가론’, 지난 6월 북한이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개정’ 등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북한이 단순히 군사적 의미를 넘어 외교, 경제, 국제질서 등을 고려한 북한판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거대한 체스판’ 위로 단박에 올라섰다. ‘고립의 탈피’는 ‘진영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국제사회 작동원리를 이용했다. 경제 제재, 하노이 회담 실패, 한국의 정권 교체, 외교적 고립 등을 거친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확보했다. 북한 독재 정권 존속을 목적으로 한 ‘진영화’가 열강이 대거 휘말릴 수 있는 국제전 가능성을 연 것이다. 당장 후방지원을 담당해 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미국은 대응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남 일이 아닌 게 됐다. 이로써 북한을 고립시켜 힘으로 억제한다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구멍이 뚫렸다. 북한군 3000명은 누구인가 “북한 특수부대원이 러시아군에 현재까지 약 3000명 파병됐고, 오는 12월까지 파병 규모가 총 1만여명이 될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조태용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해 밝힌 정보다. 같은 날 북한군 파병을 두고 ‘조사 중’이라는 미국 정부의 태도도 ‘증거가 있다’로 바뀌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직접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력이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확인했다. 다만 파병 목적을 두고는 “두고 봐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가려내야 할(sort out) 문제”라고 답했다. 신중한 미국 정부 측 속내와 별개로 파병과 전투 참여를 구분하는 오스틴 장관의 접근에는 일리가 있다. 군사전문가인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일반적으로 파병은 역할에 따라 크게 2~3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며 “하나는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전투병이고, 또 다른 하나는 후방에서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는 지원군 역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에 다양한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중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라고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돼 있다. 이를 운용하기 위한 일부 기술 인력 역시 러시아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역시 넓게 보아 파병 개념에 속한다. 이들 외에도 북한군이 러시아에 이미 파병돼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지난해 러시아 내 소식통으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인민군 공병국(건설여단) 병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들이 후방에서 전쟁 지원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구 트위터) 갈무리 결국 조 국정원장이 밝힌 북한군 3000명이 무엇을 하는 부대냐에 따라 파병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직접 전투에 참전해 국제문제를 일으킬 것인가와도 직결된다. 국회에서 나온 정보에 따르면 파병된 북한군은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특수작전군 예하 11군단이다. 일반 부대에 비해 가볍게 무장해 기동력을 살린 ‘경보병여단’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역할은 후방에 침투해 교란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들 역할에 더욱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점이다. 조 위원은 “북한이 파병했다는 특수부대의 주 임무는 후방 침투 및 교란인데 러시아어도 못하는 병사들이 후방에 침투해서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며 “이들을 전방에 배치하더라도 북한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전투에 투입될 경우 포로로 붙잡히거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그게 오히려 러시아, 북한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두 실장은 “전쟁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러시아에 투입됐다고 알려진 3000명의 역할은 전선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 아닌, 이후 들어올 본대를 위한 사전 준비 병력에 가까울 것”이라며 “크게 러시아군과 협력해 전투를 이끌 지휘부와 러시아군에게 군사작전에 필요한 표준화된 전시교육을 받고 향후 북한군 본대를 교육할 선발대로 구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북한군은 드론 운용, 대드론 방어 체계 등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대로 전선에 투입되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선발대가 이를 북한군에 교육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고, 임무 수행이 가능할지 검증하는 데만 올해가 다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석을 종합하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을 즉시 전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전쟁 양상이 화력, 공습 등으로 비중이 옮겨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국정원도 북한군 1만여명 파병이 완료되는 시점을 올해 12월로 예측했다. ‘파병’이 아닌 파병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을 10여일 앞두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군 파병은 무엇을 노렸나 올해 북한은 주요 국면마다 정부와 전문가들 예측을 벗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0월 7~8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한국식 ‘국회’) 결과다. 애초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발표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종료된 후에도 헌법 개정과 관련한 북한의 특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대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 등을 끊고 요새화 작업만 진행했다. “한국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김 위원장 발언이 ‘실질적 조치’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7차 핵실험과 같은 대규모 도발이 진행될 것이란 예측 역시 빗나가고 있다. 이는 이른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과 그 대응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으로 “한국이 지난 (10월)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10월 15일에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고, 10월 19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무인기 잔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위협 발언의 수위는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군사적 수단의 침범행위가 ‘또다시’ 발견, 확정될 때”라는 전제가 붙었다. 당장 보복할 것처럼 열을 올렸지만 실상 발언의 방점은 ‘재발을 방지하라’는 요구에 찍혀 있었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는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왼쪽)/아스트라(ASTRA) 텔레그램 채널 갈무리. CNN은 지난 10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를 통해 입수한 러시아가 파병된 북한 군인에게 군복과 군화 등 보급품을 원활하게 지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한글 설문지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제공. 북한이 한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고 선택한 것은 러시아 파병인 것으로 기정사실화 됐다. 지난 10월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하루 뒤인 25일에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는 김정규 북한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의 발언을 실었다. 이로써 국면은 파병을 ‘했나, 안 했나’에서 ‘왜 했는가’로 전환됐다. 북한은 파병이라는 전략 변화를 통해 국제질서 변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북한과 한·미동맹 사이에 형성된 전선을 러시아를 포함한 지역 전선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통해 가장 얻고자 하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확고한 군사동맹”이라며 “북한 정예군이 파병될수록 유사시 러시아 역시 이에 상응하는 지원 및 협력을 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을 상대로 했던 한·미동맹이 이제 북·러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러 밀착이 파생할 국제질서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두 실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파병으로 인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안보우산 확약’, 쉽게 말해 러시아의 확장억제 제공”이라며 “이는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했음에도 미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안보의 장기적·질적 강화를 위해 정예 전력이 러시아로 빠져나가는 등의 단기적·양적 약화를 감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러한 선택을 단순히 ‘도박’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문제와 엮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당선을 바랄 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 후보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입장은 ‘조건 없는 빠른 종전’이다. 이 경우 이미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 혹은 전부가 러시아로 귀속된 채 전쟁이 끝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군 파병은 중동과 유럽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도 실패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대선에 나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겐 악재가 나타난 셈이다. 북한 파병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이와 연관 지어볼 수 있다. 두 실장은 “미국 정부는 지금 전략적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파병과 관련한 명확한 확인과 후속 조치는 결국 미국 대선이 끝나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만큼 주요 강국들 역시 해당 기조를 따라가고 있다. 차기 미국 정부의 입장을 알 수 없다는 점, 상관도 없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 국제사회 ‘진영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다. 실제로 이를 벗어나 파병된 북한군에 대한 공격 의사까지 밝히고 있는 나라는 10월 25일 기준, 딱 두 나라밖에 없다. 전쟁 당사자 우크라이나 그리고 한국이다. 북한군 파병, 정부가 막을 수는 있나 “북한군 파병 문제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 95%가 우크라이나발이고, 나머지 5%가 용산발이다.” 지난 10월 23일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급한 것은 이해되지만 미국이나 나토조차 파병 규모, 목적을 두고 신중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도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왜 정부가 앞장서서 전쟁에 휘말리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미국과 나토가 북한 파병을 확인하기 전인 지난 10월 22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정부는 북한의 전투병력 파병에 따른 러·북 군사 협력의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적인 대응조치를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격용 무기 지원’ 가능성이 여기서 나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0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현안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 파병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안보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의 적확성·실효성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과 북한군 파병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조치가 북한 외에 러시아라는 새로운 적대국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한국이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의 무기를 지원할 때 북한군 파병이 ‘왜’ 멈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부 역시 ‘살상무기 지원’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억제력을 발휘하는지 설명한 바 없다. 무기 지원에 사용할 예산, 지원에 따른 안보 공백 등이 검토된 것인지 역시 확실치 않다. 게다가 해당 조치는 사실상의 참전이다.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그냥 NSC에 소수가 모여서 ‘그럼 우리 이렇게 한 번 해볼까요’하고 발표한 수준 아니냐”며 “윤 대통령까지 ‘살상 무기’ 지원을 말할 정도면 왜 우리가 전쟁에 개입해야 하고, 어떻게 억제력을 발휘할 것인지 정도는 논리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발언만 보면 이제 한국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자다”고 덧붙였다. 대책의 실효성이 비판 받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정부는 인천 강화군 등 북한 접경지역에 울려 퍼지는 대남 확성기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도 해결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군을 억제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군사·북한 관련 전문가들은 “이 문제는 북한 전문가가 아닌 국내 정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라”고 답변했다. 안보 문제를 넘어선 정치 문제가 엮여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 전문가들은 해당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학에는 랠리 이팩트(rally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외부 위협이 발생하면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국민이 결집하는 현상이다”며 “김건희 여사 문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정부가 지지층을 묶고, 내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북한 문제에 강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업체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2030 남성층을 중심으로 안보 문제에 대해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만큼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지지율 추가 하락은 막을 수 있다”면서도 “이미 북한과 정부를 적대적 공생 관계로 인식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북한군 파병 문제가 민생 악화, 김건희 여사 문제, 한동훈 대표와의 갈등 문제까지 덮을 수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대남 확성기 등의 일상 문제,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안보 불안 등에 지친 국민은 주구장창 북한 문제만 붙잡고 키우는 정부에 반감만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보 문제의 국내 정치화는 정부가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을 힘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곧 피력해왔다. 그사이 북한은 ‘진영화’를 선택하며 남북 대립을 별개의 국가, 진영 간 대결로 변모시켰다. 상황은 변했다. 정부가 말해 온 고립과 억제에도 구멍이 뚫렸다.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정부가 내세운 것은 사실상의 ‘전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저와 대한민국이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홍 위원은 “아직 미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차기 정부의 입장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북·러동맹이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부터 면밀히 분석한 뒤 대응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유엔군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부글부글’ 들끓는 국제사회(2024. 10. 21 06:00)
- 2024. 10. 21 06:00 국제
- 국제사회 ‘국제법 위반’ 비판 불구 더 노골적 공격에 나서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 막을 실질적 방법 없어 속앓이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차량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상전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공격했다. 유엔 회원국인 이스라엘이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선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더 노골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동시에 레바논 전역으로 공습 범위를 넓혀 민간인 인명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유엔 기지 ‘헤즈볼라 방패’라는 이스라엘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오전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에 있는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기지 정문을 탱크로 부수고 강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 15명이 다쳤다. 앞서 지난 10월 11일부터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이 잇따라 다치자 파병한 40개국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 만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를 공격했다.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대에 주둔하며 양국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을 포함한 50개국에서 파병한 1만여명의 병사와 지원 인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을 정당화했다. 처음엔 “고의적 공격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내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따라 넓게 주둔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뒤에 숨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위한 ‘인간 방패’가 되고 있다”며 유엔에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 철수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 인근 현장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군이 기자들에게 국경지대 산비탈에 있는 땅굴 입구 2개를 공개했으며, 여기에서 불과 90m 떨어진 곳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진압 작전으로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병원 아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땅굴이 있다며 외신에 현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레바논 남부의 눈과 귀 없애려는 것”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10월 14일 처음으로 성명을 내고 “유엔 평화유지군과 시설은 절대 공격 대상이 돼선 안 된다”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유럽연합도 지난 10월 13일 “레바논에서의 즉각적 휴전과 안보리 결의안 1701호의 이행을 위해 이스라엘의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 중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국 외교장관도 같은 취지의 공동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유엔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의 새로운 장을 연 것”(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 등 국가수반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근거가 된 로마 규정에 따르면 평화유지 임무와 관련된 요원이나 시설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기소하고 재판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동안 국제형사재판소뿐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대량학살(제노사이드) 등 전쟁범죄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도 모른 채 해왔다.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종식을 위해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701호 내용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안보리 결의 제1701호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레바논 리타니강 이남에는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규군과 유엔 평화유지군만 주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안보리 결의 제1701호가 제대로 지켜진 적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레바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이 결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지상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하고 철수까지 요구한다고 본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 억지력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보리 결의 위반 상황 등을 유엔에 보고할 수 있다. 미셸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눈과 귀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통치권을 얻으려 한다”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국제 질서를 지키도록) 매우 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철수 요구에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역으로 공격 확대, 민간인 피해 속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 지역에서 지상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공격 범위를 확대해 레바논 전역을 폭격하고 있다. 헤즈볼라 본부 중심지로 알려진 남·동부와 거리가 먼 북부의 기독교 마을까지 공습하자 레바논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총 22명이 숨졌으며 공습받은 건물엔 피란민들이 거주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레바논 전체인구의 25% 이상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정부는 12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중 어린이는 약 40만명에 달한다. 테드 차이반 유니세프 인도주의적 행동담당 부국장은 “(한 달 사이) 레바논의 학교는 접근할 수 없게 됐거나 전쟁으로 손상돼 피란처로 사용되고 있다”며 “레바논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분쟁 지역 아이들은 학교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조차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레바논에서 2300명이 사망했다. 이중 75%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확대한 최근 한 달 새 숨졌다.
- “국제사회는 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방치하는가”(2024. 10. 07 06:00)
- 2024. 10. 07 06:00 국제
- 중동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정치 전문가들 e메일 인터뷰 “서구 이중잣대가 문제의 핵심”…전면전보단 국지전에 무게 중심 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다른 나라를 침범하여 공격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침공’의 정의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레바논 전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난 10월 1일에는 레바논 남부(이스라엘 북부) 국경지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주권국가 성립 이후 국제사회는 ‘침공’ 행위에 관한 정의를 문서로 확립해 왔다. 국제법의 한 영역인 ‘개전에 관한 정의론(jus ad bellum)’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연합헌장(유엔헌장) 제2조 제4항이다. ‘모든 회원국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를 금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피해 합법적으로 침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국제연합헌장 제51조에 나온 예외조항에 따라 ‘무력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self-defence)을 발동했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지난 1년, 이스라엘의 행보는 이 예외조항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지역을 기습공격했다. 즉각적 보복을 밝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폭격과 지상전을 시작했다. 압도적 무력을 앞세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하고,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것처럼 보였다. 개전 후 1년이 지났다.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진행 중이다. 첫째로 자위권 행사는 정해진 종료 기한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1주년을 맞아 오히려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레바논 내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돕는다는 것이 침공 명분이 됐다. 둘째로 자위권 행사는 보복 대상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 지상군의 레바논 진격을 두고 “자신과 자국민을 방어하고 민간인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권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자위권을 인정했다. 반면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움직임을 두고는 “어떠한 공격을 가하든 엄정한 후과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다. 셋째로 자위권을 시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그 우방국’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10월 1일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기간, 대상에 한계가 없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가 길어지는 만큼 사상자 수도 비례해서 늘었다. 이미 지난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명을 넘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으로 단 2주 만에 이미 1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지난 10월 1일 하루 동안에만 폭격으로 55명이 숨지고, 156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발생한 이스라엘인 피해는 1200여명 사망이었다. 자위권 행사는 필요성과 비례성을 충족해야 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자위권 행사와 침략전쟁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 목표가 ‘귀환’인가, ‘패권’인가 이스라엘은 전쟁을 중동 전역으로 확장할 기세다. 구체적으로 레바논(헤즈볼라)-예멘(후티)-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가 목표로 꼽힌다. 같은 시아파인 이라크·시리아 역시 잠재적 대상이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시아파 맹주’로 불리는 이란이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의 무장단체는 이란의 전통적 군사전략인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의 핵심이다. 이는 ‘이란 국경 밖에서 적과 전쟁을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이들 무장단체는 이란이 상정한 적에 맞설 대리인(Proxy)이 된다. 즉 이들의 궤멸을 목표로 한 공격은 이란 안보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는 의미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전쟁에 나오라”고 외친 것이다. 중동 지역에 형성된 시아파 벨트 이란은 응답했다. 지난 10월 1일 새벽 이란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 나타났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이날 발사된 미사일은 180여발이다. 다만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정권이 추가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보복 조치는 종료된다”며 확전을 경계하는 발언을 남겼다. 또 테헤란에서 암살당한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와 지난 9월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지역 표적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에 대한 보복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란은 최소한의 자위권만 행사했음을 거듭 밝힌 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반응은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헤즈볼라 거점 레바논, 친이란 정부가 통치하는 시리아, 후티 반군이 있는 예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거명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의 축’으로 자임하고 있는 국가 및 단체다. 이스라엘이 이들의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해 졌다. 지난 10월 2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시아파 무장단체 공격→이란의 반격→이스라엘의 재반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전쟁의 목적’을 의심케 한다. 명분은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피란 주민들의 귀향’이지만, 실질은 ‘이스라엘의 지역패권 도전’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 전문지 ‘폴리티코’, ‘포린어페어스’, ‘포린폴리시’ 등에는 ‘이스라엘이 중동 권력의 현상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행보가 언제까지 중동의 ‘움마’(이슬람 공동체)를 깨우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중동 내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 시아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종파 갈등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대립 구도에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이 끼어들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다.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선례가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수교를 논의했던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공격하자 협상을 중단했다. 종파 갈등과 별개로 이슬람권이 공유하는 움마가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행보가 이를 자극할 경우 초래될 결과는 하나다. ‘제5차 중동전쟁’이다. 주간경향은 이스라엘 행보에 대한 중동 내 분위기, 확전 가능성 등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교수, 언론인, 연구원 등과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이번 전쟁의 의미를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키워드는 ‘Unjustified’(정당하지 않은)였다. 중동이 느끼는 ‘이중잣대’ 하마다 샤반 박사(Dr. Hamada Shaaban)는 반극단주의 및 평화 연구로 유명한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다. 그는 이번 전쟁의 의미를 두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서 자행한 민간인 거주 건물 폭격 사례는 이번 전쟁의 부당함을 잘 보여준다”며 “우리는 전 세계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인권을 강조한 서구식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를 보호해야 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말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건설을 목표로 중동지역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개념인 ‘대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경에 관한 정치적 개념이다. 좁게는 팔레스타인, 넓게는 1921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했던 영국령 자치국 트란스요르단 지역이 전부 이스라엘 영토라는 인식이다. 이곳은 현재 대부분 요르단 영토다. 쿠웨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ANA(Arab news agency) 소속 언론인 마그디 톨바(Magdy Tolba) 에디터 역시 유사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가 헤즈볼라 사령관이나 무장세력을 넘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약 10만명에 달하는 레바논, 시리아 국민을 난민으로 만들었다”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아랍 영토 점령에 단호히 반대하는 모든 저항 단체를 말살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을 구성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 예멘을 박멸할 때까지 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스타파 알사왈리(Mustafa Alsawahly)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교수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며 가자지구 저항세력(하마스)을 지원하면 어떻게 보복당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며 “이는 모든 문제가 그들이 가자지구를 야만적으로 점령한 것에서 비롯됐음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이스라엘 주장과 달리 이번 전쟁을 단순한 자위권 행사로 보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전쟁의 근원에 대한 이들의 관점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 등의 주요 행위자가 아닌 서구사회의 ‘이중잣대’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다. 샤반 박사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국가들의 경고를 보면 ‘이스라엘에 대해 어떠한 공격도 하지 말라’고만 할 뿐, ‘이스라엘이 새로운 단체나 국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자위권 행사이고, 공격받으면 확전이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행보보다 서구사회의 이중잣대가 아랍 세계의 ‘움마’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톨바 에디터는 “아랍인들 대부분이 인권과 도덕을 강조하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범죄행위를 중단하도록 하지 않는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지난 10월 2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왼쪽) 주유엔 이란 대사와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다만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단기적 상황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전면전’보단 ‘국지전’에 무게를 실었다. 가자지구, 레바논을 넘어선 지역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 형태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알사왈리 교수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에 직접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헤즈볼라를 완전히 궤멸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지리적 거리가 있는 이란으로까지 전선을 확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상황이 관리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샤반 박사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사실이 알려지며 주요 산유국들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폐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고, 지난 10월 2일 WTI(서부텍사스유) 국제유가가 한때 5% 이상 급등했다”며 “이로 인해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다면 극적인 휴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중동 내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이 하고 있지만 이를 지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미국 및 서구 지역이 두드리는 계산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의 군사력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서도 빛났다. 공격 감행 3시간 전 이미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이스라엘에 도달하는데 12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지중해 동부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구축함 두 척이 요격미사일 12발을 발사해 이란 미사일을 격추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동에서 바닥을 친 외교력이다. 본래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탈중동’이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연결해 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미국이 ‘역외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략이 일그러졌다. 이스라엘은 이를 ‘중동 재편’의 기회로 삼고 사실상 미국의 의사를 무시한 채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미국에 알리지 않고 헤즈볼라 대원들의 삐삐(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키며 단숨에 전선을 확장했다. 가자지구에서 휴전 협정 역시 이스라엘 측 거부로 공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의 참전은 미국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진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EPA=연합뉴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를 두고 “미국이 중동지역 분쟁에 너무 쉽게 끌려들어 가고 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셔틀 외교’(서로 직접 대화하지 않는 두 나라를 중재하는 외교)의 복원이다.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전쟁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이집트, 카타르 등과 함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압박하고, 하마스를 고립시켜 휴전안에 서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레임덕에 빠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게다가 중동에 만연한 미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걸림돌이다. 톨바 에디터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한 중동지역의 대립 구도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가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스라엘 문제는 미국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돈’이냐, ‘젊은 유권자의 지지냐’의 문제로 치환된다”며 “선거를 치르는 데 유대인의 자금력이 필요하지만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최선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중동 문제를 현상 유지 수준에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후에야 중동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현재의 전쟁 기조가 이어진다면 산술적으로 발생 가능한 사망자 수는 최소 2000명이다.
- 세계평화연합, 2024 국제지도자회의 개최(2024. 05. 08 06:00)
- 2024. 05. 08 06:00 사회
- 종교지도자 등 참석 세계평화와 한반도 통일 논의 세계평화연합은 지난 4월 22일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2024 국제지도자회의’를 열었다. 세계평화연합제공 세계평화연합(Universal Peace Federation)은 지난 4월 22일 경기도 가평군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종교화합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주제로 ‘2024 국제지도자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세계평화연합은 세계평화가정연합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2005년 창설한 비정부기구(NGO)다. 올해 국제지도자회의(International Leadership Conference)에서는 각국 종교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세계평화,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했다. 양창식 UPF 세계의장, 에드워드 바넷 미국 대은혜가정사역교회(Greater Grace Family Ministries Church) 주교, 요하네스 은당가 짐바브웨 사도기독교평의회(ACCZ) 대주교,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 송용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회장, 황선조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의장, 에크낫 다칼 네팔 연방의회 하원의원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문상필 UPF 신통일정책연구소장의 사회로 개회선언, 양창식 의장의 대회사, 바넷 주교·상진 스님·송용천 회장·데미안 던클리 가정연합 미국회장의 축사, 은당가 대주교·다칼 의원·황선조 의장의 기조연설, 통일의 노래 순으로 진행됐다. 양 의장은 대회사에서 “내년이면 한반도는 광복 80주년을 맞지만, 광복과 해방의 진정한 완성은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그날”이라며 “과거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에 주요 종단 지도자들이 하나 돼 앞장섰던 것처럼 통일운동의 선두에도 초종교적으로 영적 지도자들이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 이어 “항구적 평화 세계로서 신 통일세계의 출발점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부터”라며 “한반도에서부터 제시된 상생과 공존, 화합과 번영의 참된 평화 비전이 사회통합과 한반도 통일은 물론 장차 평화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넷 주교는 축사에서 “우리는 영적인 지도자로서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으며,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를 바꾸는 것이며, 바로 이 순간부터 함께 바꾸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진 스님은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깊은 교훈을 받아 결국 궁극으로 통하는 길은 한 길이고, 모든 종교가 나가는 길도 한 길”이라면서 “이 길은 어렵고 길지만, 우리 종교인들이 함께 걸어가며 한반도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천 회장은 “앞으로 더 나은 평화로운 미래와 한반도 평화를 열어 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경험과 통찰력과 깊이 있는 조언을 부탁드린다”라면서 “진심으로 본 대회가 전 세계 인류가 염원하는 평화 세계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은당가 대주교는 기조연설에서 “비록 종교들이 신에 대한 다른 이름과 다른 방식으로 신을 섬긴다 해도 각 종교의 중심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지 특정 인종, 국가, 교단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종교화합이 세계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임을 인정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자”면서 “폭력과 가난, 부도덕, 가정의 붕괴를 끝내고, 모든 인류를 위해 지속적인 평화의 세계를 건설하자”라고 말했다. 황선조 의장은 “지속가능한 세계평화는 인간의 힘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가능하며, 지속가능한 평화의 비전은 세계시민 행복공동체”라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전략으로는 하나님주의 가치관,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평화공존, 인공지능 AI와 사람의 공생공존 파트너십, 남북통일을 통한 신통일한국 건설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로서 세계시민이 하나님주의를 바탕으로 평화운동을 실천해 ‘세계시민 행복공동체’의 비전이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 [김우재의 플라이룸](49)정치적 편 가르기의 장이 된 국제학회(2024. 03. 29 16:00)
- 2024. 03. 29 16:00 정치
- 국제 학술회의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에는 의도치 않게 꽤 다양한 학회에 참석했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이 모이는 학회는 생산적이었고, 실험실 프로젝트를 알리고 공동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공동연구들은 학회가 아니라 직접 발품을 팔아 이야기를 나누고 노력한 곳에서 나왔다. 즉 학회가 모든 네트워킹의 중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초대받은 학회와 꼭 필요한 학회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학회의 목적을 학생교육과 공동연구를 위한 전략으로 재조정하기로 했다. 학회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공자와 노자가 제자들의 무리를 이끌고 다녔다. 현대적인 의미의 학회는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60년 영국 왕립학회가 세계 최초의 과학 학회였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학회가 속속 설립됐다. 학회의 시작은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던 셈이다. 학회의 역할은 ‘학문적 정보 공유’, ‘연구 결과 발표’, ‘학문적 교류 촉진’, ‘전문성 유지 및 발전’, ‘정책 수립 영향력’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가 가진 이 기능의 대부분은 e메일과 온라인 출판 및 미팅으로 모두 대체 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학자사회가 오프라인 학회 없이도 학문의 쇠퇴 없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회가 열리는 것일까? 국제학회의 명과 암 학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처음으로 참석했던 국제학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세포생물학회였다. 당시만 해도 샌프란시스코는 유명한 관광도시였고, 학회는 공부하러 가는 곳인 줄 아는 순진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학회시간을 빼먹고 근처 맛집을 찾아 떠나는 교수들을 보며 국제학회는 휴가의 목적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저명한 국제학회는 미국 아니면 유럽에서 열리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휴양지에서 열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건 한국 학회가 개최하는 여름 및 겨울 시즌 학회도 마찬가지였는데, 해수욕장이나 스키장이 주요 학회 장소가 되기 십상이었다. 미국의 고든 콘퍼런스 같은 경우엔 아예 대놓고 유명한 휴양지를 장소로 잡고 학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학자들에게 학회란 학문의 교류를 위한 활동만이 아니라 일종의 유흥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몇 년 전 뉴스타파 보도로 화제가 됐던 국내 학자들의 가짜 학회 참석 문제를 해석해볼 수 있다. 수천 명의 학자가 참석했던 그 가짜 학회 대부분이 유럽의 유명 휴양지에서 개최됐고, 학회를 핑계로 유럽에 놀러 간 학자들은 형식적으로만 학회에 참석하고 대부분 관광을 다녔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교수들이 상당수 주도했던 이 가짜 학회 열풍은 학회가 학문교류의 장이 아니라 학자들의 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학자는 학회를 일종의 관광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의사도 아니고 가난한 학자의 삶을 사는 처지에 이 정도의 사치 정도는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학자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건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참석했던 국제학회인 콜드스프링하버의 학회 때문이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조용한 시골인 콜드스프링하버에는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 덕분에 유명한 연구소가 있고, 이 연구소는 연구성과보다 일 년 내내 열리는 소규모학회로 유명하다. 아주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만 200명에서 300명 내외가 모이는 이 소규모 학회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세미나와 포스터 발표로 유명하다. 과학에 흥미를 잃어가던 박사학위 시절에 나는 이 콜드스프링하버의 학회에 참석하면서 과학자로 살아도 좋겠다고 결심했다. 거기엔 4박5일 동안 오직 과학에 관한 토론만으로도 즐거운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과 격의 없이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며 나누던 이야기들이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학회를 망치는 부끄러운 학자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학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학회의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차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초파리유전학회는 꽤 큰 기대를 하고 참석했던 학회였고,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참석한 국제학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으로 변했고, 한두 명의 공동연구자를 만난 것 외엔 돈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학회가 돼버렸다. 실망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주의 유명한 휴양지에서 열린 이 학회의 주목적 또한 학문의 교류가 아니라 유흥이었다. 산호초를 보러 가는 일정 때문에 학회의 하루가 거의 날아가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굳이 휴양지에서 학회를 하려는 욕심 때문에 학회장 시설은 정말 형편없었다. 둘째, 학회를 조직한 위원장이 상당히 편파적이었고 공평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열리는 학회라 그렇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격도 되지 않는 연구자들의 발표를 너무 많이 끼워 넣어 학회의 질이 상당히 낮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부분이 학회 위원장의 측근들이었다. 여야의 공천이 문제가 되는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학회 발표는 위원회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게 마련이다. 국제학회 대부분은 정치적 편 가르기의 장이다. 호주 학회가 실망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아시아태평양학회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학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조강연과 주요 강연시간을 모조리 미국에서 온 백인들에게 할애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미국의 과학이 강력하긴 하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미국 초파리유전학회가 따로 있는 마당에 아시아태평양학회는 더 많은 기회를 아시아인에게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학회 조직위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참석자의 대다수가 아시아인이었던 그 학회의 주요 연사는 모조리 백인이 되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그 백인 대다수가 70이 다 돼가는 원로 과학자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발표를 제외하면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시아인들의 돈으로 미국 과학자들 관광을 시켜준 셈이다. 특히 이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중국의 과학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학회를 주도한 이들이 대만 과학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국제정치의 비합리성이 과학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비극을 목도하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
- 김우재의 플라이룸
- ‘국제법 무덤’ 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 11. 13 07:00)
- 2023. 11. 13 07:00 국제
-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금기시되는 ‘악마의 무기’ 백린탄을 레바논 공격에 썼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15일 백린탄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군 포탄이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에 투하돼 폭발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이스라엘, 백린탄 사용·민간시설 공습…하마스, 민간인 살해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인 살상을 최소화하라’. 국제법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껴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리란 전망이 짙어짐에 따라 이번 전쟁은 수많은 무고한 이들의 무덤, 더 나아가 국제법의 죽음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빛바랜 ‘민간인 보호’ 여기서 말하는 국제법이란 1949년 제네바협약과 여기에서 파생된 추가 의정서들을 포괄하는 국제인도법(IHL), 종류별 무기 사용 규약,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규정 등을 총칭한다. 이러한 여러 국제법은 전투행위와 무관한 이들을 보호하고 전투의 수단과 방법을 제한함으로써 무력 충돌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러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의 평가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에서 크게 ▲백린탄 사용 ▲경고 없는 공습 ▲병원과 구급차 위협 ▲난민촌·빵집 등 민간시설 공격 등을 저질러 국제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10월 중순 헤즈볼라를 상대로 레바논 남부를 공습할 때 백린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앰네스티가 주민과 의사 등을 인터뷰해보니 이들이 묘사한 냄새, 발화 형태 등이 백린탄의 그것과 같았다. 백린탄 불꽃이 몸에 닿으면 살이 뼈까지 타들어 가기 때문에 백린탄은 ‘악마의 무기’, ‘악마의 비’로 불리며 국제법상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경고 없는 공습의 경우 지난 10월 31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 공습이 특히 문제가 됐다. 당시 대규모 폭격을 경험한 주민들은 “빵을 사러 줄을 서 있었는데 경고도 없이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과거 이스라엘은 공습 전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비폭발성·저화력 탄약을 사전 경고성으로 지붕에 떨어뜨리는 일명 ‘루프노킹(지붕 두드리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조치가 없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빵집과 구급차 등 민간시설 공격 또한 비판받고 있다. 국제법에 따르면 민간시설을 불가피하게 목표물로 삼아야 할 때도 모든 공격은 목표물의 군사적 가치에 비례해 행해야 한다. 유엔에 따르면, 11월 7일 현재 가자지구 북부에서 운영 중인 빵집은 단 한 곳도 없다. 폭격으로 파괴됐거나 밀가루와 연료 공급이 끊겨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빵을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설 때도 공습에 노출되는 실정이다. 의료시설 피해도 이어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스라엘군이 이달 초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구급차를 공격했다며 “전쟁범죄로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둘 다 잘못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이번 전쟁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보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공중, 육상 등으로 침투하면서 이스라엘인 약 1400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CNN이 정리한 통계를 보면, 이번 인명 피해 규모는 2008년부터 15년간의 이·팔 분쟁에서 사망한 이스라엘인의 총합보다 월등히 크다. 하마스의 살해 방식도 잔인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이스라엘인들의 충격과 분노가 터져나왔다. 아직 인질 약 200명이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붙잡혀 있다. 하마스의 행위 또한 국제법 위반이다. 싱크탱크 미 외교협회(CFR)의 데이비드 셰퍼 연구원에 따르면, 하마스가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제네바협약, ICC의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규정 등 국제법 다수에 저촉된다. 비국가행위자인 하마스가 국제법 적용을 받는 주체인지에 대해선 견해가 갈리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체 군사력을 보유한 사실상의 통치자라는 점에서 국제법 준수 의무가 있다”고 셰퍼 연구원은 해석했다. 이처럼 하마스와 이스라엘 각각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제로섬’은 아니다. 양측 모두 국제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으며, 각자가 택한 방식이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로 이어졌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잘못, 하마스의 잘못을 별도 맥락에서 언급한다고 해서 ‘둘 다 잘못’이라는 기본 전제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비례성의 원칙’ 넘어섰나 전쟁 초기에는 국제사회에서도 하마스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행한 가자지구 봉쇄, 병원·난민촌 폭격, 무차별한 공습의 명분으로 번번이 “하마스가 먼저 그랬다”를 들고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스라엘은 전쟁 3일 차인 지난 10월 9일부터 가자지구 봉쇄를 선언하며 연료, 수도, 전기 공급을 끊었다. 이 같은 비인도적 처사는 민간인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학살’, ‘집단처벌’이란 비판을 받았다.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10월 13일),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10월 24일)라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다른 여러 국가도 이스라엘의 민간인 위협을 규탄했으나, 이스라엘은 자국이 본 피해를 호소하며 반박해왔다. 이에 대해 HRW의 클라이브 볼드윈 수석법률고문은 “국제인도법은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는 이유로 내가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거나 집단처벌을 가하는 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참상을 규탄하는 여러 주체의 메시지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의 수단이 ‘목적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는 곧 국제인도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지목한다. 특히 민간인이 밀집 거주하는 난민촌이 공격을 받았고, 누적 사망자 절반가량이 아동과 여성이란 사실은 이스라엘에 불리한 정황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파괴 규모를 고려할 때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 공격”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말 ICC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누가 저질렀든, 어떤 범죄에 대해서든 조사하고 있다”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벌어진 전쟁범죄 혐의를 적극적으로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 생각으로 버티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국제법은 너무 멀다. ICC 상설재판소가 지난 21년 동안 내린 유죄판결이 10여 건에 불과하다는 점과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은 ‘국제법에 따른 정의’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오랜 법언이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뼈저리게 입증되고 있다.
- [우정이야기]수상한 국제우편물…‘브러싱 스캠’ 주의보(2023. 07. 28 11:06)
- 2023. 07. 28 11:06 경제
- 지난 7월 21일 오전 11시 18분 대전 동구 주산동 한 가정집 우편함에 정체불명의 국제우편물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첩보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건이 발생했다. 정체불명의 노란 국제우편물 봉투가 지난 7월 20일 울산 사회복지시설 앞에 도착했다. 발신지명은 ‘Taipei Taiwan’. 이를 개봉한 직원 3명은 갑자기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을 느꼈다. 그로부터 닷새 동안 전국 곳곳에서 노란 혹은 검정 우편물이 매일 같이 도착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7월 25일 오후 5시 기준 수상한 국제우편물을 받았다는 신고가 모두 3021건이나 접수됐다. 오인 신고를 제외하면 총 1045건이 발신지 미상 우편물로 확인됐다. 이 우편물은 대전 동구 식당, 인천 부평, 천안 서북구 주택 등 생활 지역 및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전국 곳곳에서 발견됐다. 우편물에서는 인조손톱, 미니 담요, 호랑이 연고 등이 나왔다. 이를 두고 우편물의 정체가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이란 추측이 제기됐다. 브러싱 스캠은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발송한 뒤 수신자처럼 상품 리뷰를 올려 온라인 평점을 부풀리는 방식이다. 통상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등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자의 평점이나 상품 리뷰를 조작하기 위해 브러싱 스캠이 자주 이용된다. 통상 리뷰 작성 등을 위해서는 직접 상품이 배송됐음을 증명하는 송장번호 등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최근 브러싱 스캠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20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생한 ‘씨앗 우편물’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 켄터키와 버지니아 등 9개 주 1000여 가구에 중국발 씨앗 소포가 배송됐다. 보석·장난감 등으로 포장된 우편물 안에는 나팔꽃, 히비스커스 등 식물 씨앗이 담겼는데, 미국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을 ‘브러싱 스캠’으로 종결지었다. 중국은 이미 2019년 브러싱 스캠 금지 법안을 마련했다. 국무총리 소속 대테러센터는 7월 24일 “테러와의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폭발물 엑스레이 탐지와 생화학·가스농도 확인, 방사선 측정 등의 3단계 검사에서도 테러와 연관된 흔적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우편물 대부분이 중국에서 발송돼 대만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다고 보고, 중국 공안에 수사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사태가 확산하자 같은 날 주한 대만대표부도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부서는 문제의 소포가 중국에서 ‘화물 운송’을 통해 발송된 후 대만을 통해 한국으로 전달됐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이번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우본은 7월 26일 보도자료에서 부정한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대규모로 발송되는 이른바 ‘브러싱 스캠’이 확인되는 경우 반송 또는 폐기할 것을 당부했다. 현재 국내 반입이 일시 중지된 국제우편물은 안전성이 확인되는 대로 배달을 재개할 방침이다. 우본 관계자는 “앞으로도 본인이 주문하지 않은 우편물 등은 일단 주의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개봉할 게 아니라 바로 정부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정이야기
- [우정이야기]국제우편 마약밀수 “꼼짝마!”(2023. 06. 02 11:29)
- 2023. 06. 02 11:29 경제
-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왼쪽)은 지난 5월 26일 서울세관에서 윤태식 관세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마약 등 불법물품 반입 차단과 국제우편 서비스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에 서명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현재 대한민국의 마약 확산세는 경보음이 켜진 상태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은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제조 마약’이다. 외국에서 만들어 한국으로 들여오고 있다는 얘기다. 마약류 반입경로를 살펴보면 국제우편과 특송화물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 10건 중 8~9건 이상이 우편과 특송을 통해 국내에 밀수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올해 초 관세청이 발표한 ‘2022년 마약류 밀수입 검거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의 주요 유통경로는 국제우편이 461건(361㎏·30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특송화물은 196건(261㎏·268억원)으로, 우편과 특송이 건수 기준으로는 전체 밀수 마약의 85%를, 중량 기준으로는 95%를 차지했다. 사람이 직접 숨겨 들여오는 ‘항공여행자’ 단속에서는 112건(36㎏·24억원)을 적발했다.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의 절대다수가 우편 또는 특송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7월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은 라오스발 국제우편을 이용해 음료 파우더 봉지에 숨긴 필로폰 3607.2g과 커피 및 시리얼 제품에 섞은 야바 2만2823정을 적발했다. 인천세관은 멕시코발 특송화물로 위장해 텀블러 속에 숨긴 필로폰 985.10g을 단속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서울세관에서 ‘마약 등 불법물품 반입 차단과 국제우편 서비스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밀수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마약반입 차단과 국제우편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는 양 기관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0년 국제우편 마약밀수 적발 건수는 292건이었으나 2022년 들어 461건으로 158%나 증가했다. 단속을 강화한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우편을 통한 마약유통이 보편화됐다는 뜻이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을 통해 인천 영종도 소재 국제우편물류센터 내 세관검사를 위한 별도의 독립된 전용 장소인 ‘국제우편 세관검사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복합 X-ray기, 라만분광기 등 최첨단 검사장비도 신규 도입한다. 라만분광기는 레이저를 이용해 최대 1만2000종의 물질을 1분 이내에 분석·판별할 수 있는 장비다. 또 ‘우편물 사전정보’ 등 국제우편물에 대한 정보공유를 확대해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반입 차단을 위한 단속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편물 사전정보란 ‘만국우편협약’에 따라 세관신고 등을 위해 우편물을 보내는 국가가 받는 국가에 해당 우편물이 도착하기 전에 제공하는 우편물 정보를 말한다. 품명이나 중량, 물품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은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류 반입 차단에 관세청과 함께 노력하겠다”면서 “관세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민이 불편함 없이 우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업무협약 체결을 계기로 양 기관이 국제우편물 정보공유 확대, 최첨단 검사장비 및 시설 확충 등 협력을 강화해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밀수를 원천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 우정이야기
- 안갯속 국제 유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2022. 12. 09 11:26)
- 2022. 12. 09 11:26 국제
- ㆍ러시아산 유가 상한제 효과 두고 의견 분분 국제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 분석 전문가들도 유가 전망을 주저할 만큼 변동성이 크다. 내년 경기 침체 우려와 주요국 통화긴축 장기화 전망이 섞이면서 유가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보이는 지표만 가지고 향후 추이를 낙관하긴 힘들다. 상승압박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원유 생산국들의 감산과 중국의 방역조치 완화, 미국 원유재고 급감 등이다.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의 돈줄을 막으려 취한 원유가격 상한제의 효과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과 러시아 원유를 대체하려는 수요가 중동·미국으로 옮겨가면서 유가가 요동치리란 전망이 엇갈린다. 원유시장이 대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12월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민들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피해 방공호로 사용되는 지하철역에 대피해 있다.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 호주 등은 이날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시행했다. / 키이우 AP | 연합뉴스 서방국가의 러시아 제재와 반발 유럽연합(EU) 27개국과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7개국(G7), 호주 등이 합의해 12월 5일(현지시간)부터 시행한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유가 상한제)는 ‘배럴당 60달러(약 7만9000만원)’로 판매가격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러시아 우랄산 원유가격은 배럴당 70달러(약 9만2000원) 안팎이다. 상한 가격 이상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수송하는 선박이나 해운사는 90일간 미국·유럽 보험사의 운송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G7 국가들은 전 세계 화물의 90%가량에 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실상 제도권 내에서 운송되는 거의 모든 화물이 대상이다. EU 회원국의 경우 자국 선박이 이를 위반할 경우 국내법에 따라 처벌한다. 참여국들은 내년 1월 중 상한 가격을 다시 평가하고 2개월 단위로 재검토할 예정이다. 시장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45일간(내년 1월 19일까지)의 이행기간을 부여했다. 디젤과 휘발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추가 가격상한제는 내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서방국가들이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차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했으나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재를 시작하면서 서방국가들이 전망한 올해 러시아의 성장률은 마이너스(-) 12% 수준. 러시아의 올 1~9월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1.7% 축소되는 데 그쳤다. 이번 유가 상한제는 강력한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러시아는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이번 조치가 국제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원자재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앞서 합의 소식이 전해진 12월 3일 “우리는 이 상한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상황 평가를 마치는 대로 어떻게 대응할지 알리겠다”고 했다. 러시아는 원유 생산량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시장의 조건에 맞춰 자국과 협력하는 국가에만 원유와 석유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못 박았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이번 합의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월 3일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의 주장처럼 상한선을 30달러로 하지 않고 60달러로 정함으로써 러시아는 연간 약 1000억달러(약 130조원)의 예산이 늘게 됐다. 기회를 놓치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27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 ‘발다이 클럽’ 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국가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합의를 앞둔 지난 11월 25일 “서방국가들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 모스크바 AFP | 연합뉴스 유가 상한제, 제재 효과 볼까 서방국가들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연구실 전문위원은 “서방국가들의 유가 상한제 조치는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의 구매를 유인하기 때문에 국제원유 시장의 하향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당초의 의도를 달성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제재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로 부상한 인도가 참여 거부를 밝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과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하루 217만배럴(올 4월 기준)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하루 184만배럴을 수입하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규모가 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2월 7일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를 설정하면서 중국이 더 많은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는 러시아에 수입해오는 비중이 우크라 전쟁 전 약 2%에서 지난 9월 23%로 치솟는 등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12월 5일 “인도는 자국의 에너지 수요를 우선시하며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계속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산 원유를 대규모 수입하는 네덜란드 역시 EU의 러시아 제재 논의 당시 “유가 상한제에 결함이 있으며 에너지 안보와 금융시장 안정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네덜란드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2020년 기준 하루 약 54만9000배럴로, EU 회원국 중 가장 많다. 러시아는 우회로를 통한 수송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국이 보유한 유조선인 ‘그림자 선단’을 최대한 활용해 원유를 내보내는 방안이다. 유가 상한제 합의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들어 100척 이상의 구형 유조선으로 꾸려진 그림자 선단을 만들고 있다. 그림자 선단은 국제사회의 주류 정유사·보험업계와 전혀 거래하지 않고, 국제 제재 대상국인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거래하는 유조선들이다. 애초 서방과 거래하지 않기 때문에 제재와 무관하게 러시아산 원유를 마음껏 운송할 수 있다. 보험을 이용하지 않아 각종 위험에도 노출돼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하면서 이윤을 남긴다. 최근 오래된 중고 유조선의 거래 가격 급등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례로 22년 된 그리스의 한 (쇄빙기능을 갖춘) 유조선의 경우 1년 전 1700만달러(221억원)에서 최근 3200만달러(416억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이렇게 판매되는 러시아산 원유는 시장 가격보다 낮게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2022년 11월 말 기준 일부 지역에서 거래된 러시아 우랄산 원유의 배럴당 판매가격은 52달러에 그쳤다. 서방국가들이 제시한 가격보다 낮게 거래될 경우 유가 상한제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유가 상한제 시행으로 서방국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중국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정석 전문위원은 “그림자 선단이 활성화하면 러시아의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서방국가들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제재를 피해 지속적인 원유 공급이 이뤄지면서 국제 유가의 하향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또 유가 상한제에 맞서 러시아산 원유가격에 고정 가격을 부여하거나 일정 비율 이상 할인하는 유가 하한제 카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의 혼선도 커질 수 있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내년 경기침체 우려와 주요국의 강력한 통화 긴축 영향으로 원유 수요가 줄면서 원유가격 상승 압력도 줄어들 수 있다. 당장은 유가 상한제의 실효성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다만 유가 상한제 적용과 관련한 기준과 절차가 명확지 않아 국제원유시장 참여자들의 혼란과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유가 상한제가 국제 유가 상승을 억제할 만큼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의구심도 크다. 제재 효과에 대한 판단은 실제 대상의 적발과 제재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2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하기 전에 악수하고 있다. 사우디는 서방과 달리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를 방문해 석유 증산을 요청했을 때도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다. / 베이징 | AP연합뉴스 국제원유 시장과 유가 향방은 국제원유 시장은 유가 상한제 시행 이후에도 일단은 하향 안정세다. 올 8월 말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던 국제 유가는 최근 70~8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며 근 1년 새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와 금리 인상에 따른 공포가 그만큼 원유 수요를 억누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추가 감산, 중국의 수요 증가, 내년 2월 러시아 석유제품 제재와 유가 상한제의 혼선 가중 등 원유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가 많다는 점이다. OPEC과 러시아 등이 참여한 OPEC+는 11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배럴 감산했다. OPEC+는 12월 4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기조를 내년 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현재 OPEC+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4185만배럴 수준이다. 다음 OPEC+ 정례 장관급 회의는 내년 6월 4일로 예정돼 있다. 3년 가까이 강력한 제로 코로나를 고집해온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은 원유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중국 국무원 방역 메커니즘(국무원)은 12월 7일 발표한 ‘10가지 방역 추가 최적화 조치에 대한 통지’에서 상시적 전수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무증상 감염자와 경증 환자는 시설격리 대신 재택치료를 허용한다. 고강도 봉쇄 중심에서 본격적인 경제활동 재개로 가닥을 잡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12월 6일 미국 CNBC에 출연해 “중국이 향후 3~6개월에 완전히 경제를 개방할 것”이라며 “중국의 리오프닝이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보다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재고 소진도 시장 불안을 키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12월 2일로 끝난 한 주간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518만6000배럴 줄어든 4억1389만8000배럴로 집계됐다. 원유재고는 직전 주에도 1258만배럴가량 줄어들었다. 4주 연속 감소세다. 러시아의 경고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러시아가 공언한 대로 유가 상한제에 참여한 국가들에 원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러시아 수출은 기존 하루 350만배럴에서 100만배럴로 대폭 축소되고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은 급등할 수 있다. 주요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2월 4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정부도 이러한 대외 변수들로 인해 연말을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국제 유가의 상방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본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석유공사는 지난 10월 “올해 4분기(10~12월)와 내년 상반기(1~6월)까지 국제 유가(두바이유)가 배럴당 평균 89~98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19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연 후 공식만찬 행사에 앞서 관계자로부터 한국가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추 부총리는 당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 기획재정부 제공 국내 미칠 영향은 한국 정부는 유가 상한제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내 수급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내 정유업체의 국가별 원유 도입 비중은 사우디아라비아 34.8%, 미국 16.3%, 아랍에미리트(UAE) 9.0%, 이라크 8.6%, 쿠웨이트 7.5% 순이다. 반면 올 1월 5.53%에 달했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전쟁 이후 줄어들면서 10월 0.96%에 그쳤다. 주요국들이 러시아산 원유 대신 대체지를 새롭게 모색하는 상황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이는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12월 1일 ‘EU의 제6차 대러시아 제재와 원유시장 불안요인 점검’ 보고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치솟은 유가가 최근 몇 달간 안정화되고 있지만 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발효로 국제원유시장이 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대희 실장은 “원유는 한정된 자원이다. 러시아 원유 수급을 제한하면 시장 어디에선가는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오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파급 영향을 받게 된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유가 상승은 국내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통계청이 12월 2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0% 상승했다. 석유류의 기여도는 지난 1월 0.66%포인트에서 6월 1.74%포인트까지 커졌다가 10월 0.42%포인트로 내려앉았다. 국제 유가가 내려가면서 국내 물가도 하향세를 보였다. 바꿔 말해 국제 유가가 불안해지면 물가도 다시 요동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웅 한국은행 조사국장도 11월 30일 한은 블로그에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높은 에너지가격이 지속될 경우에는 성장에는 하방 압력이, 물가에는 상방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적었다. 시장의 불안감이 가장 우려스럽다. 당분간은 유가가 박스권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지만, 유가의 급격한 상하방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수십달러씩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오정석 전문위원은 “유가가 단기간에 배럴당 30~40달러 수준의 변동을 보일 정도로 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다. 국가는 당장 내년 경제정책을 전망하고 대비하기 어려워지고, 기업들은 투자는커녕 사업계획도 짜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 [박주연의 메타뷰](27)'한국인 첫 국제콩쿠르 우승' 81세 현역 피아니스트의 오늘(2022. 12. 02 11:09)
- 2022. 12. 02 11:09 문화/과학
- ㆍ한동일씨 “정기 연주회 여는 시니어 오케스트라, 얼마나 멋질까요” “오늘 새 여권을 받아왔어요. 표지색이 초록색이었는데 이번엔 남색이에요.” 그는 만나자마자 한껏 밝은 표정으로 외투 주머니에서 새로 발급받은 전자여권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러면서 “한국 여권이 미국 여권보다 더 많은 국가를 갈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2019년 영구 귀국해 65년 만에 한국 국적을 회복한 그는 “행복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만 1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최초로 국제음악콩쿠르(1965년 리벤트리트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한동일씨(81) 이야기다. 피아니스트 한동일씨가 지난 11월 29일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지난 11월 29일 그를 만난 건 오는 12월 9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공연(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에 그가 협연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2006년 창단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900여 회의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며 발달장애인의 재활과 자립,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활동해 왔다. 그가 어떤 인연으로 이 무대에 서는지, 한국 생활은 만족스러운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1950년대에 ‘천재소년’으로 불리며 한국·미국 양국의 신문과 방송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등장한 그의 지나온 삶이 궁금했다. 그는 영어를 섞어가며 쉼없이 이야기했다.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동작을 해보이며 생동감 있게 과거 상황을 재연하기도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는 그가 하루 걸러 한 번꼴로 혼자 들러 점심식사를 한다는 남산자락의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뤄졌다. 이 호텔이 오는 12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에 그는 못내 아쉬워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는 어떻게 인연이 됐습니까. “우선 인천 석모도에 전교생 70여명으로 한때 폐교 위기까지 겪었던 중학교(삼산 승영중학교)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 학교에 전교생 오케스트라가 있으니 한 번 방문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내가 얼마전에 받았거든요. 가서 보고 너무 감동했어요. 전교생이 강당도 아닌 체육관에서 낡디낡은 피아노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를 했어요. 다음날 오전 7시에 광화문문화포럼에서 내가 특강을 하기로 돼 있었어요. 거기서 이 학교의 딱한 사정과 함께 그랜드피아노를 기증하고 싶은 나의 바람을 이야기했어요.” 인천 석모도 작은 중학교 오케스트라에 그랜드피아노 기증하려다 시작된 인연 9일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협연까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2022년 정기연주회 / 하트-하트재단 제공 -청중의 마음이 움직이던가요. “내가 어린 시절 소련군에 피아노를 빼앗기고 서울 여기저기를 떠돌며 구걸하듯 피아노를 빌려 연습했던 상황도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포럼의 회장인 오지철 회장과 회원들이 나서 모금을 시작했어요. 일주일도 안 돼 그랜드피아노를 살 수 있는 금액이 모아졌어요. 나는 피아노를 직접 골랐어요. 11월 8일 승영중학교에서 기증식과 함께 기념음악회도 열었어요. 나는 슈베르트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직접 연주했어요. 오지철 회장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창단한 하트-하트재단 회장이기도 해요. 이 일을 계기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협연하게 된 거예요.”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협연인 만큼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아요. “영광이죠.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기를 소망해요.” -어떤 곡을 연주하나요. “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가장조 2악장’을 연주해요. 아주 슬프고 아름다운 곡이죠. 앙코르곡도 하나 준비해달라고 해서 쇼팽의 ‘녹턴 20번 올림다단조’를 준비했어요.” 한씨는 1941년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함흥시 일출동 82번지”라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동생 셋은 아기 때 사망해 2남3녀가 됐다. 할아버지는 과수원 3만 평 이상을 소유한 대지주였다. 아버지는 연희상대를, 어머니는 이화여전을 졸업했다. 장로교인으로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한인환씨는 함흥 중앙교회에서 교회 찬양대를 지휘했다.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찬양대원들은 자주 그의 집에서 연습했다. 그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1946년 가족은 서울로 피란을 왔다. -아들이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모님이 고향을 등지고 피란길에 올랐다지요. “우리집은 굉장히 부자였어요. 아버지는 캐딜락과 할리데이비슨을 몰았어요. 하지만 8·15 광복 후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우리집 재산을 다 빼앗아갔어요. 그들은 마차 두 대와 함께 들이닥쳤어요. 아버지는 내 아들이 피아노를 치니, 피아노만은 가져가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다고 해요. 그들은 화가 나서 나를 찾아 죽이라고 했대요. 다행히 당시 나는 할아버지의 과수원에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이 피란 온 거예요.” 아버지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한씨의 눈에는 그리움이 차올랐다. 그는 “나의 아버지는 위대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매일 마포 자택에서 돈암동, 후암동 등으로 이동하며 김성복(전 이화여대 피아노과 교수), 이애내(숙명여대 음대 초대 학장), 신재덕(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 등 피아니스트들에게 교습을 받게 했다. 한씨는 “모두 아버지의 친구였다”며 “그분들은 돈도 받지 않고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줬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내가 연습하기 싫어하면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다”고도 말했다. 아버지는 서울시향의 전신으로 1947년 창단된 서울관현악단의 초대 팀파니 연주자였다. 1971년 서울시향에서 정년을 마쳤다. 1962년 11월 19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일생의 큰 기회가 된 1953년 미(美) 제5공군사령부에서의 연주는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전차를 타고 귀가하는데, 누군가 ‘한 선생님 아니시냐’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어요. 우리의 사정을 들은 그는 당시 혜화동에 있던 미 제5공군사령부 강당에 피아노가 있으니 거기 가면 연습할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 길로 나는 매일 그곳에 아버지 손을 잡고 가서 연습했는데 어느 날 어떤 군인이 내게 다가왔어요. 그는 ‘다음주 한국인과 미국인 VIP를 위한 중요한 쇼를 하는데, 한 곡 연주해달라’고 요청했어요. 1953년 10월의 일이었어요. 나는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소(Rondo Capriccioso Op.14)’를 쳤어요. 연주를 마치자 높은 신분으로 보이는 군인이 무대 뒤로 우리에게 왔어요.” -새무엘 앤더슨 사령관(Samuel E. Anderson·1905~1982)이지요. “맞아요. 그분은 통역을 데리고 와서 아버지에게 자신이 나의 스폰서가 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어요.” -앤더슨 사령관이 천재를 한눈에 알아볼 만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나보군요. “노(No). 그분은 음악에 대해 몰라요. 하지만 제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953년 11월과 12월에 주한미군기지 24곳을 도는 모금 연주회를 열었어요. 내가 연주를 끝내면 관객 사이로 모자가 돌았어요. 미군들은 5전, 10전, 어느 중령은 5달러를 넣었죠. 모자는 금세 수북해졌어요. 이듬해 1월에는 일본 내 미군기지에서도 모금 연주회가 열렸어요. 모두 4350달러가 모였어요. 줄리아드에서는 무조건 장학금을 준다고 했어요. 전쟁 중인 대한민국에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소년을 모두 돕고 싶어했어요.” 1954년 6월 CBS 인기 버라이어쇼인 (The Ed Sullivan Show)가 미국에 온 한국의 천재소년 한동일군을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1954년 6월 1일 임기를 마친 앤더슨 중장과 함께 프로펠러 군용기를 타고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다. 거기서 앤더슨 중장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홀로 뉴욕행 기차에 올랐다. 당시 나이 열세 살이었다. 병역 미필자의 해외 출국을 엄격히 금지하던 시절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뉴욕타임스와 CBS 인기 버라이어쇼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 등 미국 언론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온 신동”이라며 그의 도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는 1954년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해 줄리아드에서 학사를 거쳐 1968년 석사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다. -미국으로 떠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기대감으로 들떴어요. 당시 여의도공항에 배웅 나온 어머니가 많이 우셨는데, 철없는 나는 미국에 가는 게 마냥 신났어요.” -앤더스 사령관과의 인연은 미국에서도 계속됐습니까. “나의 미국인 아버지예요. 그분은 미국에선 워싱턴 국방성에서 근무하시다 앤드루스 공군기지 사령관으로 전임됐고, 다시 파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부사령관을 끝으로 은퇴하셨어요. 저와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계셨지만 특별장학금 계좌를 통해 생활비와 학비, 용돈을 지원해주셨어요.” 북한서 부유했지만, 소련군에 재산 뺏겨 월남 후 서울 떠돌며 피아노 무료 레슨 미 5공군사령부서 연주 후 미 줄리아드로 1958년 6월 극동지역 순회공연에 올라 귀국독주회를 열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를 예방한 그를 “Smart boy!”라고 부르며 장학금을 주고 치하했다.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배재중학교 1학년에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데, 영어가 안 되니 일반학교 6학년부터 시작했어요. 줄리아드 예비학교는 토요일에만 가고, 음악만 가르치니까요. 미국에서 나는 토니로 불렸는데, 영어를 어느 정도 하게 된 후에야 8학년으로 진급했어요. 재미있었어요. 나는 어머니와 이화여전 동창생인 김자경 선생님의 아파트에서 4년을 살았어요. 내게 음악에 대해 큰 가르침을 주신 줄리아드의 로지나 레빈 선생님은 제게 엄마 같은 분이셨어요. 공연장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셨죠. 당시 줄리아드 음대생이던 밴 클라이번, 존 브라우닝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많이 배웠고요.” -학교 성적은 좋았습니까. “석사를 마칠 때까지 줄리아드에서 내 성적은 항상 익셉셔널 아웃스탠딩(Exceptional Outstanding), 즉 EO였어요. EO는 요즘으로 치면 A플러스예요. 하하하….” -어린 나이에 모든 게 낯선 땅에서 부모도 없이 지냈는데, 외롭지는 않았나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로웠죠. 혼자서 어른들의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으니까요. 나는 매일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어요. 어머니도 자주 편지를 써보내셨고요. 그래서 내가 한국말을 잊지 않았어요.” 백악관 초청·국민훈장·25개국 공연 어린 나이부터 혼자 연주활동 지속하다 1968년 공황장애 겪은 후 교수로 정착 그는 1956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1958년 6월에는 극동지역 순회공연에 올라 하와이와 일본을 거쳐 귀국독주회를 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를 예방한 그를 “Smart boy!”라고 부르며 장학금을 주고 치하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1965년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1918~1990)이 심사위원장이었던 제24회 리벤트리트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음악콩쿠르 우승이었다. 이후 전 세계 25개국 순회 연주를 하고, 뉴욕필·런던필·로얄필·부다페스트라디오심포니·러시아국립심포니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쇼팽 24개의 프렐류드, 베토벤 4개의 발라드와 4개의 스케르초, 8개의 소나타,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소나타 등 다수의 음반을 발매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그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했다. 2004년 6월 1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한동일씨의 도미(渡美) 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한씨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운데 서울시향의 맨 뒷줄에 서서 팀파니를 연주하는 이가 당시 91세의 아버지 한인환씨다. / 한동일씨 제공 -최정상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은 만큼 자부심이 컸을 것 같아요. “웃는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인생 최대 위기나 좌절감을 느낀 건 언제였습니까. “1955년부터 연주활동을 했어요. 어린 나이에 혼자 많은 것을 감당하며 십수년간 연주를 강행하다보니 때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1968년 가을에 열린 베를린 연주회에서 일부러 건반을 계속 틀리게 두드렸어요. 내가 세일즈맨처럼 느껴졌고, 너무도 지쳐 있었거든요. 당시 거주지였던 런던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데 갑자기 천장과 벽이 나를 향해 돌진했어요. 공포감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꾹 참았어요.” -공황장애가 온 거군요. “이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 상태로 2~3주간 거의 쓰러져 좀비처럼 지냈어요. 그러다 한 음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나는 4층 건물의 2층에 살고 있었고 전화기는 1층에 있었는데, 어느 날 ‘토니, 미국에서 전화왔어’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인디애나대학에서 음대 교수로 근무하던 지인의 전화였어요. 교수 자리를 제안하는 내용이었어요. 바로 ‘OK’ 했어요. 그리고 BMW를 주문했어요. 너무 갖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는데, 교수는 안정적으로 급여가 나오니까요(웃음).” -당시 명성만으로도 충분히 수입이 많지 않았나요. “음악가는 연주가 많을 때는 돈을 많이 벌지만, 연주가 없을 때를 대비해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돼요.” 2004년 아버지와 함께한 공연 ‘인생 최고 무대’ “어머니의 나라에서 여생” 2019년 영구 귀국 “베토벤 협주곡 4번은 나의 찬송가이자 기도” 이후 학생 지도와 공연을 병행하며 마음의 안정뿐 아니라 직업적 안정도 찾았다. 아울러 명성도 높여갔다. 1971년에는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일리노이주립대, 북텍사스주립대를 거쳐 보스턴대학까지 차례로 옮겨가며 미국에서 36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2005년 울산대 음대 학장 및 석좌교수를 시작으로 일본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악대학 초빙교수, 순천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부인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음악인들과 여행객이 많이 찾는 런던의 한 뮤지컬 클럽에서 1969년에 처음 만났어요. 아내는 제가 유럽으로 연주하러 갈 때마다 덜컹거리는 낡고 작은 자동차를 끌고 와 함께 여행을 다녔어요. 1971년 결혼해 37년간 살았어요. 함께 한국에 오기도 했지만 아내는 프랑스에 살고 싶어했고,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아들 둘은 미국에, 왕족과 결혼한 딸은 영국에 살고 있어요.” 사진 / 한수빈 기자 -2004년 6월 1일 아버지와 한 무대에서 연주한 도미(渡美) 50주년 기념 공연을 인생 최고 무대로 꼽는다지요. “제가 피아노를 치는 그 무대에 91세의 아버지가 팀파니스트로 참여하셨어요. 그 공연은 아들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를 위해 내가 기획한 거예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선수로 뛸 만큼 테니스를 즐기셨어요. 당시 부모님은 미국의 내 여동생집에서 함께 사셨는데 합동 공연 5년 후 TV로 테니스 시합을 보시다가 잠이 드셨고, 그렇게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어요. 어머니는 그보다 앞서 92세에 떠나셨고요.” 2019년 영구 귀국한 후 그는 서울 종로구 홍파동의 홍난파(1898~1941) 가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을 얻어 살고 있다. “어린시절 마포집이 그랬듯 장독대가 있는 집”이라고 했다. 집에서는 피아노를 치거나 독서를 하고, 종종 밀레니엄 힐튼 서울까지 걸어가 점심을 먹으며 산책한다고 했다. 기차여행도 즐긴다고 했다. 그는 “지난 8월에는 한달반 동안 뉴질랜드를 여행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무슨 일로 다녀왔습니까. “지난 8월에 첼리스트 이동우 교수님(한국계 미국인 첼리스트이자 교육학자)이 대장암으로 예순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다 KBS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로 18년간 일했어요. 이후 울산대에서 교편을 잡다 올 2월 정년퇴임했죠. 그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함흥 중앙교회를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 사이였어요. 내가 1957년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연주할 때 그분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갔는데, 당시 이동우 교수님은 두 살이었어요. 그랬던 그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갔어요.” -어떤 대화를 했나요. “나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계신 그의 침대에 신시사이즈(대부분 건반악기 모양으로 된 전자 악기의 하나)를 걸어놓고 베토벤과 슈만의 곡에 이어 찬송가 ‘우리 다시 만나볼 동안’을 연주해 들려드렸어요. 그러고는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See you later’라고 했어요. 그는 3일 후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은 왜 예순여섯의 그를 먼저 데려가고 여든한 살의 나를 두셨을까요. 장례를 치른 후 뉴질랜드에 가서 매일 걸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했어요. 나의 삶도 조금씩 정리해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건강은 어떠신가요. “제 주치의 선생님이 부산에 계셔서 오늘 KTX 타고 다녀왔어요. 건강검진하고 백신 맞았어요.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하하하….” -인생의 회한은 없습니까. “있지만 말 안 할 겁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에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인도해주시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요.” -수많은 곡을 연주해왔는데, 특별히 사랑하는 곡이 있나요. “베토벤 협주곡 4번이에요. 이 곡은 나의 찬송가이자 기도라고 할 수 있어요.” -바람이 있습니까. “얼마전에 서현석 교수님(전 한예종 지휘과 교수)이 지휘하시는 시니어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KBS교향악단이나 서울시향, 광주시향, 전주시향 등 전국의 교향악단에서 은퇴하신 70여분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예요.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서 교수님께 시니어 시리즈 정기 연주회를 여는 오케스트라를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나는 이런 일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정부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오후 6시. 창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그는 걸어서 집까지 가겠다고 했다. 하루 한끼만 먹기 때문에 저녁식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쓴 노신사는 호텔 뒤편 오솔길에 놓인 계단을 타고 서울역 방향으로 총총히 내려갔다.
- 박주연의 메타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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