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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1) 기후위기, 숲이 주는 해답(2024. 11. 15 15:30)
- 2024. 11. 15 15:30 사회
- ‘천년의 숲’으로 불리는 제주 비자림에 서 있는 비자나무 / 정봉석 대표 제공 지난 11월 1일,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제주는 폭우에 휩싸였다. 200년에 한 번 올 법한 양의 비가 쏟아진 뒤, 다음 날 아침 그동안 찾아가고 싶었던 비자림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밑의 땅은 비에 촉촉하게 젖어 푹신했고, 공기는 상쾌하고 차분했다. 아침 공기 속에는 빗방울이 남긴 고요함이 스며 있었고, 숲 곳곳은 비의 흔적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었다. 비자나무 잎마다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작은 빛으로 반짝이고, 빗물에 씻긴 나무들은 더욱더 녹음이 짙어진 숲의 중심으로 나를 초대하는 듯했다. 비자림은 흔히 ‘천년의 숲’으로 불린다. 수령 800년이 넘은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들은 한국에서 특별히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이다. 주변에 떨어진 비자나무 열매를 살짝 누르면 향긋한 숲속의 냄새가 퍼진다. 그 안의 씨앗은 옛날부터 구충제로 요긴하게 쓰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비자를 하루 7개씩 7일간 먹으면 촌충이 없어진다”는 처방을 전하고 있다. 또한 비자나무는 내구성이 좋고 아름다운 결을 지닌 목재로도 유명하다. 특히 비자나무 바둑판은 최고의 품질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뿌연 안개가 흩어지듯 숲이 서서히 시야에 드러나고, 세월의 무게를 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주는 경외감에 압도된다. 어제의 폭우가 아무것도 아닌 듯 비자나무들은 수많은 폭풍과 계절의 변화를 견뎌내며 굵고 튼튼한 줄기를 세워 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이 숲을 거닐며 느껴지는 경외감은 단순히 나무와 숲을 넘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생명의 연대기에 대한 찬사로 다가왔다. 천 년을 지켜온 숲속에서, 한 세기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가 또렷해지며 자연의 본질과 영속성 앞에서 겸허해졌다. 기후위기를 막는 숲 여름 내내 이어진 폭염과 가을까지 지속한 늦더위로 올해는 관측 사상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평균기온 상승폭은 처음으로 ‘기후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한파, 대형 화재 등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에서 일상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후변화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비자림 같은 숲은 이러한 기후위기의 파도에 맞서는 소중한 방파제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이 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해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있다. 숲은 기후위기를 완화하는데 중요한 자연적 탄소저장소 역할을 한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방출하고 줄기, 가지, 잎, 뿌리에 탄소를 저장한다. 오래된 숲의 나무들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하며 지구의 ‘탄소 은행’ 역할을 한다. 숲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숲은 폭염과 가뭄, 폭우와 같은 극단적인 날씨에 대해 자연의 방어선을 제공한다. 나무 그늘의 온도는 주변보다 훨씬 낮고, 나무뿌리는 빗물을 머금어 비가 자주 오지 않아도 토양을 촉촉하게 유지한다. 더운 여름날 숲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로 알 수 있듯이 숲은 자연의 에어컨이자 물 저장고인 셈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 숲이 토양을 단단히 붙잡아 주어 지반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땅속 깊이 뻗은 나무의 뿌리는 비가 지나간 뒤에도 수분을 유지해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고 지역 생태계의 소중한 균형을 지탱한다. 도시에 조성된 ‘도시 숲’은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도시 숲은 여름철 한낮 평균기온을 도시 중심보다 약 3∼7도 낮추고, 평균습도를 9~23% 높여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한다. 또한 미세먼지는 평균 25.6%, 초미세먼지는 평균 40.9% 줄여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 인천시는 내년 52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8곳에 도시 숲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3800년 전 나무에서 얻은 탄소 감축 해법 작년 전 세계 화석연료와 산업 부문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약 370억t에 달한다. 숲을 포함한 육상식물은 매년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약 2200억t을 흡수하니 인류가 배출하는 양의 약 6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육상 생태계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불에 타거나 썩어 분해될 때 흡수했던 이산화탄소를 다시 대기 중에 방출하며, 그 양은 매년 약 2200억t에 이른다. 따라서 현재의 탄소 순환 구조만으로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안정적으로 줄이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육상식물의 탄소를 더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9월 학술지 ‘사이언스’는 땅속에 수천 년 동안 보존된 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탄소 저장 방식을 소개했다. 메릴랜드대 등 미국과 캐나다의 연구진은 캐나다 퀘벡의 지하 2m 지점에서 3800년 전에 묻힌 적삼나무를 발견했는데 이 나무는 생체량의 95% 이상을 보존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나무가 썩지 않고 탄소를 오랜 시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점토질 토양이 나무를 둘러싸 부패를 늦추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견을 기반으로 연구진은 나무를 지하에 묻어 탄소를 장기 저장하는 ‘나무 보관소(wood vaulting)’ 방식을 제안했다. 매년 발생하는 목재 수확량과 잔재물을 땅속에 묻는 식으로 전 세계에서 연간 100억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방식은 다른 탄소 제거 방식보다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공기에서 바로 뽑아내는 직접 공기 포집은 처리 비용이 1t당 600~1000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반면 연구진이 제안한 목재 지하 매립 방식은 1t당 100~200달러 수준이고, 앞으로 10~20년 동안 규모를 확대하고 기술을 최적화하면 30~100달러까지도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숲은 수백, 수천 년을 견디며 우리에게 숨 쉴 공기와 마실 물을 제공하고, 지구의 온도를 지켜왔다. 3800년 전 땅에 묻혀 보존된 적삼나무가 암시하듯, 숲은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을 품고 있다. 비자림처럼 오랜 세월을 버텨온 숲 하나하나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자산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숲은 기후위기에 맞선 우리의 방패다.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 기후위기에 사막이 된 바다…해녀는 생존할 수 있을까(2024. 10. 07 06:00)
- 2024. 10. 07 06:00 사회
- 해녀 소멸, 고령화 대응 위해 전국해녀협회 출범 “진정한 해녀문화 의미와 가치 고민해야” 제언도 2018년 3월 제주도 서쪽의 협재 해안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숨을 참고 바닷물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 ‘해녀’가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제주도에서 활동한 해녀 수는 2839명이다. 1970년(1만4143명)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최근 5년간 매년 약 200명씩 해녀가 줄고 있다. 지난해 활동한 제주 해녀의 90.3%(2565명)는 60세 이상이다. 50대가 6.1%(175명), 40대가 2.3%(66명)다. 30대는 0.9%(27명), 20대는 0.2%(6명)뿐이다.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는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지난해엔 ‘제주 해녀 어업’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어업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상업영화, 해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 유튜브 등 ‘해녀 콘텐츠’는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해녀의 전당’ 건립을 공약으로 냈고,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제주도를 방문해 “정부가 해녀의 가치와 소중함을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녀에 대한 외부의 관심과 달리 해녀들 사이에선 ‘조만간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최근 전국해녀협회가 출범했다. 전국 단위에서 해녀들의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과연 해녀의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그 대책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기자가 만난 해녀들, 해녀 문화를 고민해온 연구자들은 해녀의 소멸이 해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해 바다는 죽어가고, 진정한 해녀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논의는 부족하다고 했다. 현직 해녀 입에선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말이 나왔다. 거친 물살을 뒤로한 채 힘겨운 작업을 하는 제주도 성산포 해녀의 모습 / 정지윤 선임기자 제주 바다에 ‘물건’이 없다 해녀들 사이에선 ‘바다가 없으면 해녀도 없다’는 말이 있다. 바다가 건강해야 해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제주 바다는 “마치 사막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척박해졌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위기로 수온이 높아지고 생물은 사라졌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올해 여름엔 제주 바다 수온도 30도를 넘겼다. 이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건 해녀들이다. 생물이 없으니 생계에도 직격탄이다. “오늘 소라하러 갔다왔는데 10㎏ 하기 힘들어요. 오늘은 9㎏ 했어요. 9㎏면 5만원도 안 되거든요. 미치겠어요. 지금 바다가 그래요.” 지난 9월 25일 제주시에서 만난 40대 해녀 A씨가 말했다. A씨는 바다에 ‘물건(해산물)’이 없다고 했다. “농사는 (땅에서 하니까) 잘 되는지 안 되는지 눈에 보이잖아요. 바다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좋은지, 나쁜지를 모르죠. 그런데 우리는 매일 바다에 나가고, 매일 바다가 이상해진다는 것을 느껴요. 오늘은 바다에 나가서 독성게, 필리핀성게에 손가락을 찔렸어요. 우리 동네는 열대어도 엄청 많고 필리핀성게도 많거든요. 해녀들은 눈으로 보면서 그걸 느끼는데 바다가 안 좋은 상황을 알릴 길이 없는 거예요.” 40대 해녀 B씨는 “우리 동네는 소라가 전멸했다”며 “바다가 살아야 해녀가 사는데, 하루에 돈 1만~2만원도 못 버는 상황에서 해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B씨의 말이다. “원래 소라가 수입원의 90%인데 올해는 소라가 전멸했어요. 소라는 감태를 먹고사는데 감태밭 자체가 아예 없어졌어요. 소라가 있어도 빈껍데기만 있어요. 언젠가부터 보말(고둥)밖에 안 나와서 그걸 주 수입원으로 하는 거죠.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바다는 심각해요.” B씨는 바다에 ‘상어 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다. “제주 해역에는 원래 상어가 출몰을 잘 안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 올해 상어가 나온 거예요. 원래는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해역을 돌면서 한치 같은 것을 먹고 영역을 지키는데 남방큰돌고래가 죽고 있잖아요. 수온이 높아지면 한치도 없고요. 먹을 게 없으니 남방큰돌고래가 다른 지역으로 가고 상어가 들어올 수 있는 범위가 생긴 거죠. 돌고래는 오히려 해녀들에게 친숙해요. (해녀들이) ‘배알로~배알로~’라고 말을 해요. ‘내 배 아래로 지나가라’는 거예요. 그러면 (돌고래들이) 다 같이 합창을 해요. 오랜 세월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알아듣는 거예요. 해녀들을 해코지하지 않고 장난도 쳐요. 돌고래가 공존해야 해녀들도 조금 더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는데 그런 게 바뀌니 힘들죠.” 최근 제주환경운동연합과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자료를 보면 제주지역의 남방큰돌고래 1년생 새끼 사망률이 4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돌고래 폐사 원인으로는 어업 활동 중 잡혀 죽는 혼획, 바다 쓰레기 등이 지목된다. 해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 tvN 제공 A씨는 “10명 중 8명은 1년 소득이 1000만원이 안 된다”며 “1000만원을 벌던 사람도 올해 성게가 없어서 성게로도 돈을 못 벌었다”고 했다. “‘물질(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이 늘면 소득도 늘어야 하잖아요. 물질하고 3년 차 됐을 때부터 성게나 소라, 이런 걸 잘했거든요. 실력은 처음 할 때랑 비교하면 ‘대상군(실력이 아주 좋은 해녀)’이 됐는데 소득은 더 못해요. 소라 수확량도 그렇고 성게 수확량도 그렇고…. 바다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계속 해녀를 하고 싶은데, 수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바다에 냉각기를 틀어놓을 수도 없고.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계속 악화하겠죠.” 지난해 기준 해녀 1명당 연소득은 683만원가량으로 집계된다. ‘물질’만 해선 먹고살기 힘든 실정에서 청년들에게 막무가내로 해녀가 되라고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양식장이 바다를 망쳤다는 말도 많다. 양식장이 사료 찌꺼기가 섞인 물을 정화하지 않고 배출해 해초류 새싹이 자라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남획, 무분별한 해루질도 바다를 황폐화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해녀들이 바위를 닦는 ‘갯닦기’나 바다쓰레기를 수집하는 ‘플로깅’ 등 청소를 하지만 바다의 오염을 멈추기엔 역부족이다. ‘물질로 자식 키웠다’는 옛말 바다 환경이 안 좋아지다 보니 상당수 해녀는 밭농사를 함께 해 생계비를 충당한다. 물질은 바다 높이나 물살에 따라 한 달 작업 일수가 15~18일 정도 된다. 서귀포시 성산리의 1년 차 해녀 박지은씨(33)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녀 일 외에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했다. 그는 “바닷속에 물건이 많지 않을 뿐더러 새내기라 어디에 물건이 많은지 잘 모르고, 숨도 그리 길지 않아 들어가는 날 수에 비해 아직 실력이 부족해 소득이 높지 않다”며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집 월세 등 의식주를 충당하기 위해 물질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낮에는 물질을 하고 저녁엔 식당이나 배달일 등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 해녀들이 “물질로 자식들 키웠다”고 했지만 이젠 통용되지 않는다. 여러 해녀가 제주 바다엔 물건이 없어 제주도 외의 다른 바다로 ‘육지 원정 물질’을 다닌다고 한다. 해녀 경력 53년, 서귀포시 동일리 어촌계장이자 제주해녀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계숙씨(71)는 지난 9월 24일 기자와 만나 “바다에 들어가면 (생물이 없는 게) 눈으로 확실히 느껴진다”며 “신규 해녀를 데려오고 싶어도 바다에 물건이 없으니까 미안해서 못 데려온다”고 했다. 김씨는 “주변 양어장 같은 데서 폐수를 많이 방출하기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고 백화현상(수온 상승으로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도 일어난다”며 “올해는 체감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데 그 햇빛이 다 바다에 내려가니 소라가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다 썩었다. 이런 해를 보지를 못했다”고 했다. 그가 덧붙였다. “못 먹고 어려웠던 시절에 언니가 하는 말이 ‘물질 배워놔 두면 땅 물려받아서 농사지어 먹는 것보다 돈 버는 데 효과적이다’라는 거였어. 돈 나오는 데도 없고 물질하면은 용돈 벌어 쓰고. 그러니까 열여덟 살 때부터 했지. (…) 그때 그 시절엔 (해녀 일해서) 아기 잘 키웠지요. 그런데 지금 벌면서는 아기 못 키워.”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시작하러 바다로 이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녀가 되려면 어촌계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다소 폐쇄적인 어촌계 관행, 1년에 120만원, 1년에 60일 이상 작업 등의 조건을 채워야 한다는 점은 신규 해녀 유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일부 어촌계에선 가입비를 받는다. 어촌계로선 해녀가 위험을 담보로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결속력과 공동체 문화가 강할 수밖에 없고, 아무나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제주도에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 제주도에 정착해 해녀가 되는 사례가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해녀 일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가 폐쇄적인 문화에 대한 적응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포기하는 때도 더러 있다고 한다. 어촌계장 대부분이 남성인 것은 어촌계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그나마 제주에는 여성 어촌계장이 많은 축이다. 2021년 기준 전체 어촌계 103개 중 여성 어촌계장이 22명(21.6%)이다. 신규 해녀를 양성하는 법환해녀학교 교감을 맡은 이원택씨는 “해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어촌계에 찾아갔을 때 잘 안 받아주는 경우가 있다”며 “해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어촌계가 여러 대화를 하면서 인턴으로라도 잘 받아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전국해녀협회 출범, 변화 있을까 지난 9월 20일엔 전국해녀협회가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 2017년 제주해녀협회, 지난해 경북해녀협회가 출범한 데 이어 이번엔 전국 단위 단체가 만들어졌다. 제주도는 제주를 비롯해 강원, 경남, 경북, 부산, 울산, 전남, 충남 등 8개 지역의 해녀 100여명이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협회 출범과 동시에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녀어업유산 보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해녀 수 감소와 고령화에 대비해 국가가 해녀들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5년마다 해녀어업 보전과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도지사가 시행하고, 해녀수당과 신규 해녀 정착지원금 등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도는 해녀 지원 시스템이 구축돼있다. 제주도는 지난 4월 신규 해녀 양성 추진계획을 확정하고 추진에 나섰다. 민관 협업시스템 구축, 해녀학교 교육과정 체계화, 기존 해녀와 인턴 해녀 간 1대1 멘토링, 신규 해녀 가입 우수 어촌계에 인센티브 확대 등이 계획에 포함됐다. 다른 지역은 통일된 체계가 없다. 제주도와 전국해녀협회 창립 준비위원회가 지난 9월 20일 오후 제주시 연동 메종글래드 제주에서 전국해녀협회 창립총회 및 기념식을 개최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경북 포항 구룡포리에서 활동하는 39년 경력 해녀로 여성 어촌계장, 경북해녀협회장을 맡은 성정희씨(72)는 2022년 처음 제주 해녀들과 교류하면서 지원 정책의 필요성을 느꼈다. 성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녀들이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어 ‘우리는 왜 노조가 없나’ 했는데 해녀는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노조가 안 된다고 하더라”라며 “제주에 해녀협회가 있는 것을 보고 경북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구룡포리도 ‘해녀 소멸위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구룡포리 해녀 30여명 대부분은 70~80대다. 30대 2명, 40대와 50대 각 1명, 60대 5명이다. 성씨는 “해녀를 시작한 39년 전만 해도 구룡포리에 해녀가 100명이 넘었는데 이후로 자꾸 줄기만 했다”며 “인적 자원이 고갈되는 게 제일 큰 위기”라고 했다. 경북지역은 6개월 이상 해당 지역 거주, 작업 일수 60일 이상이 어촌계 가입 조건이다. 성씨는 “물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를 내줘야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어디에 가서 60일 작업을 하겠느냐”며 “나도 60일 작업 일수를 따려고 강원도와 부산 등 타지를 돌아다녔는데 그 조건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10년이면 해녀가 사라질 텐데 이 문화를 전승하려면 대책이 시급하다”며 “소중한 바다를 지키는 새로운 해녀들이 들어올 수 있게 선배들이 지원도 해주고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파편화돼 있던 논의를 한데 모으고 해녀들이 주체로 나선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중구 안동대 대학원 민속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구룡포 지역의 해녀 사회에서는 자신들을 둘러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며 “여성 어촌계장 선출, 어획물 직거래 등 수익 창출 다변화를 통한 해녀들의 안정적인 생계 도모, 폐쇄적인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의 전환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양상은 인력과 자원이 동시에 감소하는 상황에서 해녀 스스로가 권익을 지키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주체적 대응”이라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변화의 바람과 위기에 체념하며 보수성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공존하는 가운데 어떤 반응을 유도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라고 했다. 실제 삶과 다른 ‘해녀 상품화’ 진정한 해녀 문화 계승을 위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유산 등재 이후 해녀가 각종 행사에 호출되고 관광상품처럼 전시된 반면 해녀 문화와 그 위기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었다는 비판이다. 또 전국해녀협회 설립을 제주도 측이 주도한 탓인지 기자가 접한 해녀들은 “해녀협회가 생긴지 몰랐다”, “내가 회원인지 아닌지, 어떻게 가입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9월 25일 제주시에서 만난 강경숙 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는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해녀의 지위가 높아지리라 생각했지만 제주도의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의 해녀의 삶은 삭제되고 지역의 상품화·자원화가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사회적으로 제주살이 열풍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주는 여전히 변방이거나 ‘힐링의 섬’, ‘관광의 섬’처럼 이상화·타자화된 곳”이라며 “여기에 해녀도 맞물려 있다”고 했다. 그는 “실제 해녀의 (고단한) 삶과, 해녀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생각이 단절돼 있고 위계화돼 있다”며 “국가가 주도해 해녀를 이야기하면서 해녀를 대상화하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제주 해녀들이 물질하러 바다에 들어가기 전 모습. 제주도 제공 조철기 경북대 사범대학 교수 등 4명은 지난해 논문에서 “제주 해녀의 상징 가치가 상승함으로써 나타나는 지나친 대상화는 경계해야 한다”며 “관광자원, 국가적 상징자원의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몰두해 해녀를 접근하다 보면, 정작 해녀들 자신의 입장과 생각은 무시한 채 활용책만 남발되는 일종의 도구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짚었다. 해녀 소멸을 해녀 개인의 복지 문제로 축소하고, 당장 해녀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해녀 문화의 가치를 진지하게 곱씹고 확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녀 문화는 ‘자연과의 공존’을 중요시하고, ‘아기바당(아기바다)’, ‘할망바당(할머니바다)’ 등 실력이 좋지 않은 해녀들도 해산물을 나누는 공동체와 나눔의 전통, 약자를 배척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조남용 제주해녀문화연구원 대표는 “단순히 젊은 해녀가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소외시키거나 강제하지 않고 모두가 조금씩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해녀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것”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해녀 문화를 내 삶과 일상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고 제주엔 쓰레기, 공항 건설, 환경, 약자 등 여러 이슈가 있지만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개발을 하는 상황 속에서 바다는 난리가 났다”며 “해녀 문화의 위기라면 자본주의 속 지나친 개인의 욕구 충족과 사유화 때문에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측면에서의 위기”라고 했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문제는 해녀들만의 문제도 아닌 전 국민, 전 세계적인 문제다. 40대 해녀 C씨가 말했다. “어느 때 물질한 것은 n분의 1로 나눈다는 게 있어요. 공동작업이죠. 전복 씨를 뿌린 바다는 건들지 못하고 쉬는 바다가 되는 거예요. 시간을 정해놓고 들어가서 채취한 다음 그 결과물은 나이가 많든 적든, 물질을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n분의 1을 해요. 어떻게 보면 (외지인의 시선에서) 해녀의 공동체 문화에 적응을 못 할 수도 있어요. ‘내가 잘해서 내가 많이 잡았는데 왜 나눠야 돼?’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해녀 문화예요.” 해녀 B씨의 말이다. “처음엔 아기 보면서도 돈 벌 수 있으니까,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니까 시작했어요. 그런데 삼춘(웃어른)들이 ‘아기가 아파도 바당(바다)에 가야 하는 게 해녀’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동네에서 아이를 같이 키운다고 했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엄마뻘 되는 동네 분들이 키워주셨어요. 가장 힘든 시기 양육을 같이 해주셨고, 모든 것을 받아준 건 바다였어요. 그런 문화를 계승하고 싶어요. 다만 젊은 해녀들은 해녀 문화를 계승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싶은 거예요. 이 문화를 계속 이어갈 세대이기 때문에 더 뒤가 걱정되는 거죠. 다른 것을 떠나 현장의 젊은 해녀들 목소리를 조금 더 귀담아 들어주면 좋겠어요.”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9)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댐?(2024. 09. 06 16:00)
- 2024. 09. 06 16:00 경제
- 후버댐은 미국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있는 콜로라도강 중류의 그랜드캐니언 하류, 블랙캐니언에 있는 중력식 아치댐이다. /Pixabay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은 사막이다. 햇빛과 모래만 무한히 반복되는 이곳은 태양의 열기로 모든 것이 녹아 없어지는 진공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을 무한히 달리다 보면 홀연히 나타나는 초현대적인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지치고 힘든 여정을 끝내고 거짓말처럼 나타난 네온사인의 열기는 여행자를 환락과 도박으로 유혹한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보면 이곳이 왜 ‘죄악의 도시’(Sin City)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공항에서부터 편의점, 차를 주유하기 위해 들른 주유소에도 슬롯머신이 있어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매년 40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여가활동, 쇼핑, 컨벤션 센터를 결합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도 성장 중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에 우뚝 솟은 라스베이거스 빌딩 숲을 보면 의문이 든다. 어떻게 물과 전기를 큰 도시에 공급할 수 있을까. 답은 도시 동쪽에 있는 후버댐에 있다. 후버댐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무너졌던 미국 경제를 일으킨 미국 뉴딜(New Deal)정책의 상징이다. 콜로라도강의 협곡을 막아 높이 221m, 길이 411m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 63빌딩 높이와 비슷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막아선 모양이다. 이 댐의 완공으로 미드호(Lake Mead)가 만들어졌는데, 서울시의 크기와 비슷한 거대 인공호수다. 댐의 저수량은 약 320억t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소양강댐 저수량(29억t)의 10배가 넘는다. 댐 건설 후 라스베이거스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지역의 주요 상수원이 됐다. 2080㎿의 발전 용량을 갖추고 있어 건설 당시 세계 최대 수준의 수력 발전 용량이었고, 지금도 주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한다. 후버댐에서 공급받는 물과 전기가 화려한 ‘불야성’ 라스베이거스를 만들고 있다. 문명 성공 요소, 치수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문명은 물을 다스리는 ‘치수’를 통해 과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의 근간으로 삼았다. 물을 통제하고 공급 확대에 성공한 소수 문명은 번영과 정치적 활력을 얻었다. 특히 댐은 과도한 강수량을 일시적으로 저장해 하류 지역으로 급격한 방출을 방지하고 홍수 위험을 줄여 인구 밀집 지역이나 농업지대에 피해를 최소화한다. 또한 가뭄 시기에 물을 방출해 농업, 산업, 가정용 물 공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태양광이나 풍력과 함께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재생 에너지다. 대공황 시기에 건설된 후버댐처럼 대형 토목공사는 심각한 불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도 잘 이용된다. 건설 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돈이 풀리고, 공사 인력을 구하는 과정에서 실업이 줄고, 새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돈을 쓰면서 경기 부양이 종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후버댐 같은 성공사례는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지난 7월 30일 한국 환경부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무려 14개의 댐이다. 낙동강 권역이 6곳으로 가장 많고, 한강 권역 4곳, 영산강·섬진강 권역 3곳, 금강 권역 1곳이다. 용도별로는 다목적댐 3곳, 용수전용댐 4곳, 홍수조절댐 7곳이다.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에 대응하고, 미래 용수 수요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2022년 서울 동작구와 올해 7월 전북 군산의 집중호우처럼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집중돼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이와 반대로 2022년 남부지방의 극단적인 가뭄처럼 생활∙산업 용수가 부족한 위기를 언급했다. 이를 예방하고자 댐 건설을 계획했고, 이름도 ‘기후대응댐’이라 지칭했다. 기후대응댐의 모순 위의 주장은 일견 맞아 보인다.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와 가뭄을 대비해 물 저장고를 늘리는 댐을 건설하는 것은 나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댐으로 늘린 물 저장공간은 극한 홍수에 대비해 버틸 수 있는 ‘몸집’을 키울 수 있지만, 댐 하류 쪽의 폭우에는 원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댐의 기능은 상류에 쏟아지는 폭우를 잠시 진정시키는 것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발표에서 언급됐던 2022년 서울 서남부 일대 반지하주택 참사나 2023년 충남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의 사례는 댐과 상관없이, 제방이나 배수 쪽 미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기후 패턴으로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홍수를 어떻게 고정적인 댐 건설로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홍수가 발생하면 댐은 그대로 물폭탄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1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이 실종한 리비아 대홍수 사태도 믿었던 댐 붕괴로 물이 쏟아지면서 시가지를 쓸어버린 결과다. 극한 홍수에 대비해 늘렸던 몸집이 오히려 더 큰 재앙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극한 가뭄에 대비한 수량 확대를 강조하면서 댐 건설이 초래할 수질 고민은 빠졌다. 댐을 통한 물흐름의 정체는 남조류 같은 수질 문제를 악화시킨다. 물이 더러우면 양이 많아도 쓸모가 없다. 댐을 잘못 건설하면 어떤 부작용이 빚어지는지 영주댐이 잘 보여준다. 내성천을 훼손하며 무리하게 추진된 영주댐은 녹조현상이 극심하고 수질만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댐 건설에 따른 경제적 비용 부담, 하천 생태계 파괴 그리고 지역주민 피해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빠져 있다. 셋째, 1990년대를 고비로 국내에서 대형 댐 건설이 가능한 입지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생태계 파괴 등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오랜 논의 끝에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댐 정책의 패러다임을 ‘건설’에서 ‘관리’로 바꾸고, 국가 주도의 대규모 댐 건설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환경부의 댐 후보지 발표는 과거의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6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14개의 댐이 왜 갑자기 필요해졌을까. 환경부의 발표는 기후대응댐이 ‘과학적’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과학적으로 홍수 조절이 이루어지고 용수 확보가 해결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홍수조절용 7개 댐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울산 울주의 2200만t 규모의 회야강댐인데, 소양강댐의 13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로 극한 홍수를 방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후위기 홍수 관리는 기존의 제방이나 배수, 댐을 보강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뒤에도 새로운 댐이 진정 필요하면 체계적인 종합 환경평가를 거치고 객관적인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하나씩 건설해야 한다. 구체적 검증 없이 14개의 댐을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논란과 오해만 일으킬 뿐이다.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8) 기후위기는 공평하지 않다(2024. 08. 09 16:00)
- 2024. 08. 09 16:00 경제
- 가이아나 중서부 열대우림에 있는 카이어투어 폭포 / pixabay 넷플릭스의 드라마 <수리남>이 나오기 전까지 남미대륙 북동쪽, 브라질 위에 수리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또한 수리남 양옆에 가이아나와 프랑스령 기아나가 3형제처럼 쪼르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세계지도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중남미에서 특이하게 가이아나는 영어를, 수리남은 네덜란드어를, 프랑스령 기아나는 프랑스어를 쓴다. 각기 다른 언어만큼이나 이들 세 나라는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가이아나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가이아나를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탕수수와 쌀농사, 광업이 전부인 가이아나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됐다. 2019년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초 원유 생산량이 65만4000배럴로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이고, 2027년 말이면 130만배럴로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유생산국으로 올라선다고 전망한다. 열대우림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던 나라가 1인당 석유 매장량 기준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오일머니가 밀려오면서 국내총생산(GDP)은 급성장 중이다. 2018년 6100달러였던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2022년 1만8000달러로 치솟았다.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은 새 주택과 호텔, 쇼핑몰, 체육관, 사무실이 들어서며 공사판으로 변하고 있다. 2023년 조지타운에 가이아나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었다. 개업식에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과 주가이아나 미국 대사가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유전 로또’로 주목을 받은 가이아나는 최근 알리 대통령이 영국 BBC 대담 프로그램 <하드 토크>(HARDtalk)에 출연해 나눈 인터뷰로 또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BBC 진행자는 가이아나 해저유전 개발을 통해 20억t의 탄소가 배출돼 기후변화 문제에 위협이 된다는 염려를 전했다. 최근 영국 대법원이 석유 시추와 같은 화석 연료 프로젝트를 승인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등 영국 사회에 고조된 친환경 분위기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알리 대통령은 발끈했다. 알리 대통령은 “가이아나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면적을 합친 크기의 숲이 있고, 195억t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걸 아느냐”고 대응했다. 진행자가 “그렇지만 탄소를 배출할 권리가 있느냐”고 되묻자, 알리 대통령은 “당신이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를 가르칠 권리가 있느냐”며 격분했다. 선진국들이 가이아나와 같은 ‘후발주자’를 두고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분노했다. 선진국들이 산업혁명으로 환경을 파괴해놓고 이제 와서 우리를 가르치려 드냐고 진행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급증했고, 그 산업혁명의 열매는 선진국들이 차지했다. 특히 영국은 산업혁명의 본고장이고, 알리 대통령은 그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진행자와 거칠게 논쟁한 알리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을까? 열대우림 속에 살고 있으니 가이아나 국민은 유전개발 같은 환경파괴는 하지 말고 농사나 계속 지으며 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지 말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 원래 있던 대로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서구 선진국처럼 삶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산업혁명으로 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킨 서구 선진국처럼 가이아나도 유전개발로 자국의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들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거친 논쟁은 숨어있던 기후위기의 불평등과 모순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기후 불평등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한파, 대형 화재 등과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인 이러한 현상은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부자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기후재난에 대응할 경제적 능력이 있어 피해를 덜 받지만, 기후변화의 책임이 없거나 적은 가난한 나라는 오히려 너무나 큰 피해를 받는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미국 인구의 절반이지만 1인당 탄소 기여도는 미국의 4% 미만이고 1인당 소득은 미국의 3% 미만이다. 지난 5월 인도양 북동부 벵골만에서만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비롯한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고, 약 300만명에게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익사, 감전사 등으로 최소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저지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는 해수면 상승의 타격이 크다. 2050년이면 방글라데시인 1800만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자신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로 기후재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후위기는 국가 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국가 내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도 적용된다. 세계 불평등연구소의 ‘기후 불평등보고서 2023’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19년 소득 상위 10% 그룹은 70.3t, 하위 50%는 10.5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1인당 탄소배출량은 소득 상위 10% 그룹이 하위 50% 그룹보다 7배 많다. 중국의 경우 이 격차가 1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기후위기의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정에 비축된 자원이 적어 자연재해가 식량, 물,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난한 지역은 상하수도와 홍수 관리 등 도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우가 많고, 해발고도가 낮은 저지대에 있다. 2022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참변을 당한 것은 단적인 예다. 기후위기는 개인 간의 차이를 넘어 세대 간에도 불평등을 초래한다. 온실가스는 배출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누적되는데, 미래세대는 자기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의 피해를 보는 것이다. 202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된 ‘극한 기후 노출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에 관한 연구’는 2021년생이 6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7배 더 많은 폭염, 2배 더 많은 산불 등을 마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구나 미래세대는 기후위기 대응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현재 의사결정자의 무책임이 미래 위험을 발생시키는데도 말이다. 기후위기 책임을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고 ‘퉁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마치 선진국, 부자 그리고 현세대가 비싼 음식을 잔뜩 먹고 난 후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한 가난한 나라,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음식값을 같이 내자고 하는 것과 같다. 기후변화의 비용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사과하고 비용을 보상하는 것이 공정이다.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7) “기후위기를 기후기회로 만들겠다”(2024. 08. 05 06:00)
- 2024. 08. 05 06:00 정치
- ‘기후 전문가’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기후위기를 기후기회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7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51)의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슷한 표현은 22대 국회 개원 다음 날인 지난 5월 31일 김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나온다. “‘여당 내 유일 기후 전문가’로서 기후위기를 기후기회로 만들 힘을 보여드리고 싶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 그는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으로 여러 기후 관련 워크숍과 정책토론회에서 활약했다. 영국에서 개발학을 공부하고 기후변화센터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 2010년이니 15년 가까이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런 그가 정치에, 그것도 보수정당 의원으로 뛰어든 까닭은 무엇일까. -국회 기후특위를 상설화하자는 주장은 여야 모두 주장하는 사안이다.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지지 의사를 보였다. 그런데도 잘 안 된다. “현재 기후특위를 상설화하자는 법안은 민주당에서 두 건, 조국혁신당에서 한 건 등 총 세 건이 발의됐는데 국민의힘은 발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7월 30일) 제가 우리 안을 발의했다. 여야 안이 나오면 그 안을 가지고 양당 원내대표들이 논의할 수 있는데 이제야 그 틀이 갖춰진 것이다. 당론 발의까지는 안 되더라도 당 의원들께 최대한 같이 해달라, 신경 써달라고 설명·설득하고 싶어서 늦어졌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55명이 동참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의 안에서는 예산심의 등 기후특위의 권한이 대폭 늘어난다. “그렇게 대폭 권한을 주면 권한을 뺏기는 다른 상임위들이 반대한다. 제 법안에서 예산심의는 기후대응기금 딱 하나다. 일단 그거라도 시작해 상설화가 되면 전문위원도 배치되고 관심도 늘어날 것이다.” “작은 소망이긴 한데 우리 당 의원 108명 모두 기후 스피커가 됐으면 한다. 또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라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108명 의원 각자가 자기 지역 기후 이슈 대응 법안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의원이 됐으면 한다.” -야당과 협의가 될 것 같은가. “될 것이다. 기후대응기금은 기재부 소관지만 환경노동위(환노위) 몫이기도 하다. 환경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도 일부러 질문했다. 상설기후특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적극 노력하겠다는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법안 하나, 예산 하나 그렇게라도 시작하면 한 걸음을 떼는 것 아닐까.” -야당에서 기후 문제를 다루는 박지혜 민주당 의원이나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모두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소속이다. 에너지 문제 등을 두면 김 의원도 산자위에 가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초선이니 밀린 것인가. “그렇다(웃음). 국회에 들어와 우리 당에서 최다선인 모 의원을 만났는데 꺼낸 말이 ‘환노위 가서 열심히 해야지’였다. 그러니까 이분들 머릿속에는 기후는 곧 환경이라는 도식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환노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배출권 거래제 문제도 심각하고, 내년에 발표할 NDC(국가 온실가스감축 목표)도 그렇고,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릴 플라스틱 국제협약 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에 잘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총선 기간에 민주당의 RE100(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캠페인) 정책을 비판했다. 전력망이나 송전시설이 안 된 상태에서 RE100만 주장하면 뭐하냐는 것이었다. “지난 정부 때는 보급만 신경 쓰다 보니 인프라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지금 법이 통과돼도 실제로 설비하는 데는 5년 이상 더 걸린다. 그래서 그걸 좀더 서둘러 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우리 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당론으로 발의했다.” -해상풍력육성 특별법과 기후금융법안을 두고 어떤 것을 의원 1호 법안으로 할까 고민한 듯싶은데, 법안 내용을 보면 두 법 모두 야당이 반대할 것 같진 않다. “반대는 안 할 것 같은데 야당에서 ‘이거 해줄 게 다른 것 해줘’라는 교환 대상이 될 것 같다.” -총선 때 민주당의 RE100과 조국혁신당 3080정책 패키지(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30%, 2050년까지 80%를 달성하겠다는 정책)를 비판했다. 야당에서 미운털이 박히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를 한없이 밉게 보는 사람은 어떤 활동을 해도 계속 밉게 볼 것이다. 실천으로 옮기는 걸 보고 ‘어, 진정성이 있네’라고 생각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련된 법안 내고 활동하는 것이 1년, 2년 쌓이면 그 쌓인 결과로 인정받고 싶다.” -지난 총선 때 원자력시민협의회 같은 단체에서 김 의원을 ‘실질적인 탈원전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다시 이번 당대표 선거 때 ‘팀 한동훈’ 17명 의원 중 1명으로 거론되면서 ‘한동훈 위장보수론’의 근거로 사용됐다. “그때 선거가 이런 것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성명 낸 곳에 물어보니 노조가 쓴 글을 그냥 올린 것인데 자기들은 이런 내용인지 몰랐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가면서 한동훈 당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가 알기로는 아닌 것으로 아는데 맞으세요?’라고. 사실 너무 어이없었다. 문재인 정부 때 산업부 장관 간담회 자리에서 ‘장관님,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에어컨 사용률도 높을 것이고, 기후적응 차원에서 진짜 에너지가 많이 들 것이다. 그런데 원전을 버려야 되는 것이 맞냐’라고 질문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시민단체 사람들도 내가 탈원전이 아니라는 걸 다 안다. 그 질문했다가 환경부를 비롯해 정부 부처 자문에서 다 잘렸다.” -‘원전 대 재생에너지’라는 프레임이 ‘석탄 대 저탄소 에너지’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봐야 하는가. “온실가스 감축 차원에서만. 방폐장 문제는 별개 이슈다. 프랑스를 방문해서 시설 운영하는 걸 봤는데 고준위 핵폐기물 시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고, 스웨덴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중 어떤 것은 2000년, 어떤 핵종은 10만 년 이상 묻어야 하는데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보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저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생에너지로 다 할 수 없으니 그린 수소에너지 기술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원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초선의원들에게 드리는 공통질문이다. 4년 뒤엔 어떤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우리 당에 기후 전문가로 영입됐는데 민주당이 공격하면 방어하는 ‘기후 스피커 1명’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 작은 소망이긴 한데 우리 당 의원 108명 모두 기후 스피커가 됐으면 한다. 또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라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108명 의원 각자가 자기 지역 기후 이슈 대응 법안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의원이 됐으면 한다.”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6) 기후위기 시대 인공지능, 약인가 독인가(2024. 05. 31 16:00)
- 2024. 05. 31 16:00 경제
-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 여성 이미지 /픽사베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충격을 주며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의 서막을 알렸다. 지난 5월 13일 GPT 개발사 OpenAI는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 ‘GPT-4o(GPT-포오)’를 공개하며, 인공지능 발전의 또 다른 도약을 보였다. 새 모델명의 ‘o’는 모든 것을 뜻하는 라틴어 ‘옴니(omni)’를 뜻한다. 텍스트를 통해 대화할 수 있었던 기존 모델과 달리 이용자와 실시간 음성 대화를 통해 질문하고 답변을 요청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 알파고를 필두로 인공지능은 사람 곁으로 바짝 다가와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답변을 제공한다. 학생, 회사원, 연구원의 일상 숙제와 보고서 작성에 도움을 준다. 친절한 선생님으로, 유능한 직장 동료, 학자로 대화 상대가 되어 문제를 풀어준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혁신적이고 인간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부족한 부분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표현 방식과 차이가 있어 기계와의 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번 새 인공지능 시연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GPT-4o와의 대화는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레 이어진다. 말하는 와중에 끼어들 수 있고, 여러 명의 목소리도 동시에 인식한다. 응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대화하는 이와 다양한 목소리, 감정, 톤을 바꿔가며 복잡한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 <그녀(Her)>(2013)에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AI 운영체제 ‘사만다’가 현실이 됐다-실제로 시연회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영화 속 그녀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어느 순간 인격체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인공지능은 누구인가? 그것은 인간의 삶에 약인가, 독인가? 인류가 접하는 기후위기 속에 인공지능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 만큼이나 지구 온도 상승도 거침이 없다. 지난 4월까지 11개월 연속 ‘역대 가장 더운 달’ 기록을 경신 중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고 지구 물순환 사이클에 영향을 미친다. 따뜻한 대기는 대지 표면을 건조해 산불의 위험을 높인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해 극한 폭우의 가능성을 높인다. 건조한 대지는 단단해지고 폭우와 함께 홍수의 위험을 키운다. 최근 브라질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로 2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본 원인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로 발생할 극한 폭우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 예보와 폭우 예측은 물리적 수치 모델링에 기반하고 많은 가정과 조건-예를 들어 초기조건, 경계조건, 모델 단순화-이 포함된 어려운 시뮬레이션이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컴퓨터 성능이 강력할수록 정확도와 계산속도는 높아지지만 100% 정확한 예보를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지구온난화가 시작되고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보유하면서 마치 ‘물 폭탄’을 다루듯, 더 민감해지고 더 복잡해진 문제가 됐다. 날씨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이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 기후 모델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기후변화 예측, 홍수 예보 등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날씨 예측 방법이 논문으로 실렸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일기예보 시스템 그래프캐스트(GraphCast)’가 그것인데,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를 개발했던 구글 딥마인드 팀이 개발했다. 그래프캐스트 역시 알파고와 마찬가지로 딥러닝으로 1979년부터 2017년까지 38년에 걸친 기상관측 데이터를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최근 기상관측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해 날씨를 예측한다. 그래프캐스트의 주간예보는 최고의 수치 모델을 사용하는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ECMWF)의 예측값보다 더 정확했다. 1380개 항목 가운데 90%에서 실제에 더 가까운 값을 내놓았다. 그래프캐스트는 노트북에서 단 몇 분 만에 결과를 내놓았다.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 수치 모델은 100만개의 프로세서가 장착된 슈퍼컴퓨터가 몇 시간 동안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날씨는 본질적으로 100% 예측이 불가능하고, 알파고처럼 그래프캐스트의 결과를 개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이런 이유로 딥러닝 방식의 예측을 블랙박스라고도 부른다. 특히 인공지능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기에 과거에 없었던 이상 기후 현상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극한 기후의 결과가 나왔고, 그것이 많은 인명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결정이라면, 이를 얼마만큼 신뢰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알파고처럼 한 번 틀려도 되는 바둑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중기기상예측센터는 기존 수치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는 대신 그래프캐스트를 보완적으로 이용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특정 유형의 날씨 예측, 가까운 시간의 강우량 등을 예측하는데, 그래프캐스트의 빠른 계산 결과를 보완적으로 이용한다. 추후 그래프캐스트의 기여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캐스트가 기상 결과를 계속 학습하면서 기상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마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한 번 경기에 패배한 후 약점을 찾아내 학습하고 더 이상 인간에게 패배한 적이 없는 것처럼. 전기 먹는 하마 인공지능 인공지능 발전의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개발·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구글 검색에 평균 0.3Wh의 전력이 쓰일 때 생성형 AI 챗GPT는 그보다 10배에 가까운 2.9Wh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개의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전기는 일반 가정 100가구의 연간 전기 사용량을 초과한다는 추산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개발과 유지에 필수인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6년 최대 1050TWh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22년 전력 사용량이 460TWh였는데 4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뛰는 셈이다. 인공지능 발전이 당장 화석연료 발전의 의존도를 올리며, 기후변화 대응에 독이 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표절과 가짜뉴스 위험이 있고, 내재된 오류와 편견의 문제도 수반한다. 인공지능이 바꿀 산업 지형, 일자리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 평균보다 1.45도 높다.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라는 임계점이 이제 바로 앞에 있다. 인공지능도 계속 진화하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임계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인공지능이 기후위기로 위협받는 우리의 삶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2개의 판도라 상자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 [취재 후] 정치위기도 기후위기처럼 눈앞에 다가왔다(2024. 04. 24 06:00)
- 2024. 04. 24 06:00 정치
- 윤호우 선임기자 춥지 않은 겨울이 끝나는 즈음에 돌연 꽃샘추위가 찾아오더니 봄꽃들이 개화를 미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봄꽃들이 밀린 숙제를 하듯 개화 순서도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피어버렸다. 꽃잎이 떨어지자마자 여름 날씨가 4월 중순을 덮치고 있다. 어느덧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그리고 ‘기후위기’라는 용어로 변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4·10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치는 ‘정치변화’를 넘어서서 ‘정치위기’로 격상됐다. 거대 양당의 대립 구조는 더욱 격화돼 진영 간 갈등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제3지대의 역할은 미미해졌다. 올바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져야 할 정당은 한 석의 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유권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정권’을 우선 심판했다. 유권자가 내린 ‘정치적 1심 판결’이다. 차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패배자의 사과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하루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윤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과를 했다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 결과만으로 스스로 위로를 해야 할 판이다. 여권은 여전히 이·조 심판에 몰두할 태세다. 22대 국회 역시 온통 사법리스크와 특검 등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 사법리스크에 더해, 오히려 특검 정국으로 여권의 사법리스크 마저 불거질 가능성이 커졌다. 사법리스크가 정치의 손을 떠나 사법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불투명해진다. 뿌연 황사 하늘처럼 정치적 전망마저 어두워지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1차 피해자는 선진국이 아니다. 후진국의 기후 약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피해가 먼저 찾아간다. 정치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가 사법리스크로 격돌하는 동안 민생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도 생계 현장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약자들을 위해서라도 22대 국회는 사법리스크 정국에서 길을 헤맬 것이 아니라 민생 정치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 취재 후
- 기후위기 시대 돈의 논리 ‘고탄소 프로젝트의 종말’(2023. 09. 08 11:24)
- 2023. 09. 08 11:24 경제
-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기후행동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8일 BTS의 앨범 사진으로 유명한 강원도 맹방해변에서 신규 석탄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삼척블루파워는 시운전용 연료로 사용될 유연탄의 육상운송을 시작했다. /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대기 중에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1t 증가할 때마다 기후가 받는 악영향은 더 커진다. 화석연료 배출가스가 1t씩 늘어날 때마다 지구온난화가 가중되고, 기후변화로 인해 어린 원고들은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주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지 않고 화석연료 활동을 승인했다.” 지난 8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기후소송 재판에서 몬태나주 법원의 캐시 시엘리 판사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판결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2020년 당시 만 5~18세였던 원고 16명이 주정부가 석탄 및 천연가스 생산 같은 프로젝트를 허용해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며 주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이었다. 이날 판사는 주 환경규제당국이 새로운 에너지 프로젝트를 평가할 때 온실가스 배출의 영향을 무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주 헌법을 위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온실가스가 1t 추가 배출될 때마다 원고들이 돌이킬 수 없는 기후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산화탄소 1t이 배출될 경우 발생할 미래의 모든 사회적 피해의 현재가치를 사회적 탄소비용(Social Cost of Carbon·SCC)이라고 한다. 1t의 이산화탄소를 줄였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의 현재가치를 뜻하기도 한다. 몬태나주의 기후소송에서 SCC의 구체적 수치가 언급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민간의 화석연료 투자 사업을 승인할 때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인허가 결정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 눈에 띈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경제 활동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업의 시설투자,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마찬가지다. 판결문도 이런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탄소가격이 투자를 결정한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탄소 배출로 인한 피해를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배출에 따른 비용을 투자의 경제성 평가에 반영하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사업은 경제성이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배출 저감시설에 투자할 경우 기존에는 경제성이 없었지만, 감축에 따른 이익이 반영되면서 경제성이 개선될 수 있다. 자연히 기업과 정부의 탈탄소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가령 ‘푸르게’라는 기업에 A와 B 투자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는 온실가스 저감 설비를 갖춘 공장을 새로 짓는 투자안이다. B는 기존의 고탄소 설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생산 능력만 확충하는 투자안이다. A에 투자할 경우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현재가치는 10억원이고, 투자비는 7억원이라고 하자 B의 경우 미래 현금유입의 현재가치가 10억원, 투자비가 5억원이라고 가정하자. A 투자안으로 들어설 시설은 배출 저감시설이 있어 연간 배출량이 5000t이다. B 투자안의 배출량은 1만t이다. 이 회사의 투자위원회는 A 투자안이 환경에는 좋지만, 기업 이익의 측면에선 B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탈탄소 능력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과거엔 굴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에 아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지만 이젠 쓰레기를 버릴 때 종량제 봉투를 사듯, 온실가스를 버릴 권리를 배출권 시장에서 사야 한다.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의 가격이 1t당 5만원이라고 하자. 이 회사는 B 투자안으로 들어선 시설에서 나오는 연간 1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야 한다. 그 비용은 5억원이다. A 투자안이었을 경우 연간 배출권 구매비용은 2억5000만원이다. 이 상황에서 다시 A와 B의 경제성을 평가해보자.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현재가치는 배출권 구매비용을 빼서, A가 7억5000만원, B는 5억원이 된다. 편익과 비용의 비율은 A가 1.42에서 1.07로, B는 2.0에서 1.0으로 바뀐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에 선호됐던 투자안이 무시되고, 저탄소 투자가 더 선호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기업이 A에 투자해 1t당 처리 비용을 3만원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면 A의 경제성(B/C)은 1.21로 더 커지게 된다. 저탄소 기술이 있다면 경제성은 더 커지기 때문에 이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릴 유인이 생긴다. 배출비용이 1t당 5만원을 넘을 경우 B 투자안으로 들어선 시설은 ‘좌초자산’(이미 투자됐지만 수명이 다하기 전에 더 이상 수익을 못 내는 자산)이 된다. 탄소배출량과 배출권 가격에 따라 기업의 자산가치가 요동칠 수 있는데 이는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 중대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관련 정보는 투자의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과 기회의 요인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기후공시’가 2025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 6월 26일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밝힌 기후공시의 공개 사항 중 하나가 기업이 인식하는 탄소가격이다. 기업별로 ‘내부 탄소가격’(Internal Carbon Price)을 정해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투자를 결정할 때 반영하라는 것이다. 내부 탄소가격은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경제적 비용을 내부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에 부여한 가치를 뜻한다. EU 집행위가 제시한 유럽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도 기후변화 영역에서 내부 탄소가격을 설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탄소공개프로젝트(CDP)와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도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 중이다. 내부 탄소가격 도입하는 기업 늘어나 내부 탄소가격을 반영하려는 기업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CDP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가격을 도입한 기업의 수는 2019년에서 22% 증가한 853개 기업이고, 1159개 기업이 2년 내 도입을 계획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이나 공공투자에서의 사회적 탄소비용이 투자의 가부를 가르는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에너지·기후변화 정책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넥스트그룹의 한정현 선임연구원은 “탄소가격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투자 프로젝트의 비용과 이익이 제대로 산정된다. 기후공시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의 환경변화로 고탄소 사업을 배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부 탄소가격을 자체 산정해 심사하면 자연스레 고탄소 투자안은 배제되고 저탄소로 사업구조가 전환된다”고 설명했다. 이옥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파트너(ESG·기후)는 “기존에는 사업성(경제성)이 없어 투자하기 어려웠던 탄소 감축 투자건이 내부 탄소가격을 고려해 경제성을 재평가할 경우 투자 가능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내부 탄소가격의 목적 자체가 탄소 배출이라는 외부효과를 내재화하기 위한 수단인 만큼 내부 탄소가격을 투자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탄소 감축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윤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기후변화 대응을 내부적 경영 의사결정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다. 탄소비용을 경제성장률, 금리, 유가, 환율과 같은 변수들과 동일선상에서 다루는 과정에서 탄소 다배출 프로젝트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탄소 감축 규제를 강하게 받아왔던 석유화학 업종 내 글로벌 선도기업은 이미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하고 있다. 석유기업 BP는 2억5000만달러 이상의 투자 안건에 내부 탄소가격을 기준으로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 내부 탄소가격은 2025년 50달러에서 시작해 2030년 100달러, 2040년 200달러, 2050년 250달러로 설정했다. Shell도 2030년 1t당 25~200달러, 2050년 125~200달러를 목표로 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파리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종합 고려해 가격을 설정했다. 배출권 시장의 가격 수준에 맞춰 내부 탄소가격을 정하는 기업도 있다. 노르웨이의 석유기업 에퀴노어는 노르웨이 탄소세와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시장(EU-ETS)의 가격에 기반해 2022년 58달러, 2030년 100달러 수준으로 정했다. 옥시덴탈처럼 국제에너지기구 등 외부기관의 탄소가격 전망(2025년 63달러·2030년 100달러 등)에 기반해 내부 탄소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화학기업 Solvay는 1t당 100유로의 내부 탄소가격을 설정해 탄소 감축을 위한 투자 의사결정에 활용 중이다. 기업 내부적으로 탄소 배출에 대한 부담금(내부 탄소세로도 불림)을 매기는 사례도 있다. 모범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들 수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2023·다산북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2년부터 ‘지구에 유익한 것은 비즈니스에도 유익하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회사 내에 탄소부담금제도를 도입했다. 데이터센터, 사무실, 실험실 등 회사 내 모든 부서에서 배출하는 탄소에 대해 일정한 금액의 ‘세금’을 강제적으로 부과한 것이다. 2020년부터는 모든 공급망으로 확장해 1t당 5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효과는 컸다. 750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부담금 수입으로 100억㎾h에 달하는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회사 전체적으로 매년 1000만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최근 파나소닉도 2025년부터 1t당 143달러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가 건설하는 삼척블루파워(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1호기 석탄저장고가 앞에 보인다. / 삼척블루파워 제공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하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KT&G의 경우 2021년 신규 투자의 경제성 분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잠재적 탄소비용 부담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이 높고 대부분의 감축 활동이 이뤄지는 제조공장에서 투자 회수기간을 검토할 때 사용하고 있다. 내부 탄소가격제 적용 범위는 올해 인도네시아 등 3개 해외공장까지 확대한다. 가격은 1t당 5만원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현재 배출권 가격의 6배가 넘고 누적 최고가인 4만80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배출권보다 높은 내부 가격을 설정할 경우 그만큼 탄소 감축에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국내 배출권 거래시장이나 국제 탄소규제를 고려해 추가 인상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T&G 관계자는 “현재 보이지 않는 미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투자 결정 시 내부 탄소가격을 고려하기로 했다”면서 “미래 비용은 단순히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뿐만 아니라 기후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 탄소가격은 배출권 거래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도 내부 탄소비용을 책정해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활동과 관련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위험 요소를 발굴하는 데 활용 중이다. CJ제일제당은 탄소규제 강화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완화하고 실질적인 탄소저감 이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태양광 설비 도입 등 저탄소 기술 투자, 기존 설비감축 투자 등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종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선두에 있다. 이 회사는 2025년 71달러, 2030년 120달러, 2040년 200달러를 설정해 올해 하반기부터 시설투자 안건을 검토할 때 활용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나 KT&G의 경우 탄소가격이 100유로에 육박하는 EU-ETS의 가격보다는 낮지만, 국내 배출권 가격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게 설정돼 있다. 한정현 선임연구원은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면 잠재적 가격이든 묵시적 가격이든 내부 탄소세든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과 사회적 탄소비용, 배출권 가격은 모두 같아야 한다”면서 “국내 배출권 시장이 정상화돼 명확한 가격신호를 주는 게 가장 좋지만, 시장 정상화를 기다리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과 정치적 난관이 있어서 시장 정상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기업 자체적으로 내부 탄소가격을 만들고, 정부는 예타 조사를 할 때 사회적 탄소비용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 차이를 줄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돈의 논리가 탈탄소 이끈다 기업이 서둘러 내부 탄소가격을 도입하는 이유는 글로벌 경쟁사와 보폭을 맞추려는 목적도 있지만,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크게 작용한다. 특히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연합체인 ‘기후행동100+(Climate Action 100+)’와 같은 글로벌 투자사들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GDP의 6배에 달하는 1경3000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나 네덜란드 최대 연기금 운용사인 APG와 같은 대형 투자기관들이 모두 ‘기후행동100+’에 속해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이혜림 ESG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난 8월 25일 넥스트그룹이 주최한 사회적 탄소가격 토론회에서 “우리는 가장 큰 압박이 투자자 진영에서 오고 있다고 느낀다. 일례로 기후행동100+의 경우 넷제로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탄소 감축의 가장 큰 동기는 금융 부문에서 오고 있다. 기후공시 규제도 국내에 도입될 텐데, 이를 선제적으로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탄소 감축 로드맵을 이행하는 방안의 하나로 도입했다”고 말했다. 기업이 투자 안건을 심사할 때 내부 탄소가격을 기준으로 활용한다면, 은행은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줄 때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할 수 있다. 한 선임연구원은 “뉴욕의 경우 ESG 관련 기준이 부동산 가치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증권사부터 시작해 은행도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할 때 탄소비용을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윤 전문위원은 “미국 증권거래소의 기후공시, ISSB가 추진하는 글로벌 ESG 공시는 기업들로 하여금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을 요구한다. 즉 기후변화의 물리적 위험과 전환의 위험에 따라 기업이 처한 재무적 피해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해 공표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탄소비용을 기업이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어차피 반영해야 한다면 미리미리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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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 2판4판
- ‘기후위기 해결’ 외치는 후보, 내년 총선 나올까(2023. 08. 18 10:48)
- 2023. 08. 18 10:48 정치
- ㆍ김선철 기후정의 운동가 인터뷰 김선철 ‘기후정의 운동가’는 기자의 오랜 지인이다(그는 ‘위원장’ 내지는 ‘국장’, 심지어 ‘활동가’와 같은 직책 표기도 운동의 진정성을 알리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인터뷰 자리에서 굳이 직함을 표기하려면 ‘운동가’로 써달라고 부탁해왔다). 지난달 사적 모임 뒤 우연히 귀갓길이 겹쳐 버스를 같이 타고 이동 중 그와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기후정의운동’ 이야기를 나눴다. 생소한 주제였고, 그동안 여러 차례 내년 총선 구도와 전망을 다루는 기사를 쓰면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지난 8월 14일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나 좀더 깊숙한 대화를 했다. -기후정치를 풀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쯤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언제부터 쓰이고 있는 겁니까. “아직 제대로 쓰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시민사회 안에서도 어떤 시민권을 얻은 말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고.” -서구, 특히 유럽에는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내건 정당이나 의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서구권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요. 아프리카나 남미, 남반구라고 불리는 나라들에도 그런 정치가 없지 않고요. 사실 정치를 단지 국회의원 숫자로 보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담론의 확산 결과로 의원들을 배출하는 사례는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니까요. 녹색당과 같은 기후 이슈를 전면에 건 유럽연합의 정당들이 또 기후만 이슈로 삼는 것도 아니고요. 미국의 경우 민주당 안에 들어가 있는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민주적 사회주의자들) 그룹은 사회불평등 문제로 기후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지난해 청소년기후행동이 조사한 자료를 보니까 OECD 국가들 사이에서 인식 수준이나 정부 책임을 묻는 정도는 상당히 높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낮은 편인데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그건 맞아요. 한국 국내 여론조사뿐 아니라 퓨리서치센터나 해외에서 나온 국가 간 비교연구를 보더라도 한국은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의식, 그리고 기후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원인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높은데 그것이 정치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어떤 큰 장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양당이 제도정치를 독식하게 만드는 선거법도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고요. 이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느냐가 큰 과제일 것 같긴 합니다.” -기후정의행동에서 지난해 9월 24일 행진한 것과 함께 생각나는 일이 국회 정문에 쇠사슬을 묶고 진행한 ‘투쟁’이었어요. 그게 언제였죠. “2020년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있었던 비폭력 직접행동이었죠.” -그때 연행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곧바로 풀려났나요. “조사받고 나와서 결국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더 조사는 안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도 기후위기 대응 시급성이라는 대의를 인정한 걸까요. “인정했다기보다는 여러 번 시민불복종 행동 참여를 했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나오는 행사들, 예를 들어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마지막 전체회의를 서울 노들섬에서 열었습니다. 길에 드러누운 시민불복종 행동 참여자들을 경찰이 사지를 들어 옮기기는 했지만, 검찰이 기소하진 않았어요. 기록에 남기기 싫어하는 듯했습니다. 국회에서 했던 행동들도 검찰에 송치는 했지만 그런 고려가 있지 않았나 싶고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됐을 때 민주당사 앞에서 입구를 봉쇄하고 시위를 벌였는데 그것도 송치까지 되고 기소돼 재판을 8번인가 받았는데 나중에 민주당 측에서….” -정상참작 해달라는 탄원서라도 썼나요. “정상참작은 아니고 처벌불원서를 냈습니다. 지난해는 재판이 많았는데 한국의 경우는 재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한국 사법부에 기후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면 교육하는 장으로 자리잡힌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판결이 검찰 구형보다 감형된 결과가 나오고 두산중공업 페인트 행동은 무죄로 결론지어졌습니다. 대부분 판결마다 유죄는 인정하지만 또 이제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 그리고 한국에서 법적 효력을 가지는 국제 조약에 한국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항상 인정됐던 측면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밑바탕은 깔아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오송 지하도 참사나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엉망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도 기후위기 문제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지금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재난이 있을 때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끔 이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점점 더 이상기후 현상은 많아질 텐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과학자들, 국제 시민사회가 말해오던 부분 아닙니까.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정부는 물이 넘치면 어떻게 퍼낼까, 불이 나면 어떻게 끌까만 말하고 있고 어떻게 물이 넘치지 않게 할까, 불이 나지 않게 할까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요. 재난이 있었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만 이야기하지 실제로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끔,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대비가 없다는 측면에서 어떻게 보면 그 재난의 원인을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기후위기 자체가 글로벌화된 현상이기 때문에 일국 수준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기후악당들, 예컨대 중국이나 트럼프 시대의 미국 같은 주요배출국이 안 움직인다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기저에서 진행되는 너무 거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기후악당에 항의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할 텐데 과학?기술자들이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내는 식으로 경고하는 것 외에 마땅히 제어할 해법은 없다는 점, 그게 문제 아닐까요. “아니요. 해법은 있는데 그 해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거죠. 저는 오히려 시민들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텀블러 들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재활용·분리배출 열심히 하는 분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문제는 그걸 가지고 이게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죠. 만약 탈플라스틱을 한다고 하면 시민들에게 ‘플라스틱 쓰지 마세요’, ‘최대한 적게 쓰세요’를 이야기하는 것은 맞는데 문제는 시민들에겐 선택지가 없잖아요. 마트뿐 아니라 재래시장을 가더라도 채소나 과일이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있는 걸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강연할 때 많이 하는 이야기이지만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애 방에다 초콜릿이랑 사탕을 깔아놓고 ‘먹지마, 먹지마!’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어떻게 줄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이건 사실 정책의 문제인데 그 정책은 수립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하지 마세요!’를 말하는 건 시민들에게 죄책감을 불어넣으면서 문제 해결과는 아무 상관 없는….” 2020년 11월 19일 멸종반란한국 등 소속 운동가들이 국회 정문과 목에 자전거 자물쇠를 채운 뒤 국회에서 열린 2050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공청회를 맞아 정부와 국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기후정의직접행동이다. / 멸종반란한국 인스타그램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거죠. “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시민이 많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력·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 측정에 따라 다르지만, 한 10%에서 15% 사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포스코라는 기업 하나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13%입니다. 온 국민이 집안의 전기를 다 끊고 도시가스 다 끊고 어둡게 살고 에어컨 안 쓰고, 난방 안 하고 살아도 포스코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를 다 못 쓴다는 말이거든요. 문제의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가 드러나는 건데 정부는 계속 그 산업계의 온실가스 의무는 계속 낮추면서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이런 것 자체가 시민들이 무력감과 혐오와 냉소를 갖게 합니다. 특히 ‘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어요. 이건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그래도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두 가지 정도 있어요. 윤석열 정부는 올해 3월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40%를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그 40%도 가짜였어요. 한 31% 정도 됐는데 이제 그것도 너무 높다, 기업들에 부담이 된다며 줄이려 했는데 한국도 가입한 국제협약에서 통과된 것이기 때문에 줄일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핵(원전)발전을 늘리는 방향으로 간 거죠. 그런데 사실 문재인 정부 때 탈핵을 내걸었지만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모든 걸 전 정부 탓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기 지지층을 끌어내기 위해 마치 문재인 정권이 탈핵을 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핵발전을 더 늘리는 게 이게 차이 나는 하나고,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이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부분인데,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똑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마치 기후행동을 하는 것처럼 말은 했는데, 윤석열은 그런 말조차 안 한다는 겁니다.” -기후정의동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단체의 목표로 ‘기후위기를 환경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성장체제의 문제로 보고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연대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후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하지 않는 환경이슈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네요. “그렇죠.” -그렇다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같은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건 양면의 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CSR이 먼저 나오고 ESG가 다음으로 나왔는데 ESG가 나오면서 기후문제가 중요하다는 사회의식은 퍼지고 있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 ESG가 문제의 해결, 즉 그 자체가 어떤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ESG는 사실 기업들이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지 국가 정책은 아니잖아요.” -탈정치적 경향으로 귀결되는 녹색소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밝혔는데 에너지 기본권이나 보편적 이동권·주거권과 같은 권리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는지요. “기자님은 양립 가능하다고 보세요?” -글쎄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자체가 어쨌든 상품 경제이고 대량 소비를 유도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건 이윤이에요. 이윤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고…. 이윤이 최우선이지 주거 기본권·에너지 기본권이 우선순위가 아니란 말이에요. 기후위기도 근원을 따져봅시다. 석탄이 있어 캐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석탄은 가치가 있어요. 팔면 돈이 되니까. 그런데 그 위의 또 다른 돌, 생명, 나무, 숲, 마을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오히려 비용입니다. 사실 이 관점이 지금의 기후위기 생태위기를 불러일으킨 거거든요. 정규직·비정규직이나 여성·남성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왜? 내가 이윤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돌봄노동은 가치가 없잖아요. GDP에 안 들어갑니다. 왜? 자본주의이니까. 어떤 동물, 예컨대 돌고래는 가치가 큽니다. 수족관에 넣어 사람들에게 구경하게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은 건 쓸모가 없는, 이런 식으로 차별의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됐을 때 항상 희생지대가 생깁니다. 기후정의에서는 지금 정책들은 희생지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겁니다.” -8월 10일에 내년 총선 전략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던데 기후정의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지금 논의 중입니다. 9월 1일 또 한 차례 논의할 예정이고, 기후정의에 관심을 갖는 진보정당마다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녹색당원이지만 녹색당도 당장은 당무위가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대응에 집중하고 있는데 뭔가 모색해봐야겠죠. 저는 기후정의 의원을 만들겠다가 목표는 아닐 것 같고, 일단 지역구에서 후보는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에서 그런 시각이 조금씩 커지고 있어요.” -출마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아직까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 문제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과 차별, 노동, 돌봄 등 전반적인 삶의 문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고 있는데, 지금의 여야가 기후위기 시대에 서민의 삶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하는데, 총선을 앞둔 지금 만족할 만한 대안은 보이지 않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공학적으로 후보를 내기보다는 기후정의의 의제들이 담론과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세력화가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공동의 강령, 혹은 공동의 요구안이라도 먼저 만들어 함께할 수 있는 후보나 정당을 모아보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각 정당에 정책질의서를 보내고 요구 행동 같은 걸 한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실 2020년 총선 때 그걸 했습니다. 당시 모든 후보자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지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당시 ‘다 하겠다’고 답했는데 하기는 개뿔. 그중 70명이 당선됐고, 다 OK 했던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019년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만들어 국회 앞에서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며 3대 요구를 냈습니다. 그 3대 요구가 기후위기 비상선언해라, 국가가 제도로 뭐를 만들어라, 온실가스 감축을 하라고 했는데 요구한 건 대충 다 받아들여졌어요. 탄소중립위원회 만들고 비상선언하고 온실가스감축계획 나오고 했는데 돌아보니 기후운동이 스스로 힘을 키우기보다 정치권에 의탁했더라고요. 그게 패착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인들에게 이걸 해달라고 요구하면 ‘응, 할게’라고 답은 하지만 안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는 9월 23일 준비 중인 대규모 기후정의행진 때 내걸 구호도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으로 정했습니다. 아직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기후정의 후보가 필요하다면 아래로부터 힘을 키워 실질적인 압력이 될 수 있는 기후정의운동의 맥락에서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이건 잊지 말고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9월 23일 토요일에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하고 불평등 해결을 촉구하는 기후정의행진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맞서 기후정의에 입각한 시민들의 힘을 보여주는 기회이므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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